오탁번의 시는 쉽고 통쾌하고 재미있다. 술술 읽혀 가슴을 탕 치니 시 안에 삶의 타성을 뒤흔드는 우레가 있다. 능청스러우나 깐깐하게 세사의 치부를 찍어 올리는 갈고리도 들어 있다. 은근슬쩍 염염한 성적 이미지들은 골계미를 뿜어 독자를 빨아들인다. 시와 시인의 삶은 정작 딴판으로 다를 수 있다. 오탁번은 여기에서 예외다. 그의 시와 삶은 별 편차 없이 닮았다.
올해로 77세. 어느덧 으슥한 노경에 접어들었지만 오탁번의 시작(詩作) 활동엔 휴업이 없다. 작년에는 시집 ‘알요강’으로 ‘목월문학상’을 받았다. 나는 ‘알요강’을 펼쳐드는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길이 없었다. 앞 페이지에 나오는 ‘서문’부터가 ‘오탁번표’ 해학의 폭죽이지 않은가. 그지없이 짤막한 서문의 내용을 보시라.
“오탁번 새 시집 ‘알요강’이 나온대/아직 안 죽었나?/죽긴, 요즘도 매일 소주 한 병 깐대/정말?”
오탁번과 마주앉은 곳은 충북 제천시 백운면 산촌에 있는 원서문학관 작업실. 그는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은퇴했다. 폐교를 손질해 꾸민 원서문학관은 퇴직 이후의 삶이 실린 창작공간이다. 용인시에 있는 시니어타운의 자택과 이곳을 오가며 지낸다. 날마다 소주 한 병을 눕힌다고 서문에 드러냈지만, 이곳에서 그가 하는 일은 아마도 주로 창작일 게다. 여차하면 흥겨워 한잔 마시듯이, 여차하면 설레어 작품에 손을 대는 사람. 그게 오탁번이니까. 이즈음엔 손에 쥔 물처럼 새나가는 세월에 눈이 가고 마음이 닿아서일까? 그가 나이 얘기부터 꺼낸다.
“이 나이 먹도록 내가 살아 있을 줄 몰랐다. 다행히 남들에게 욕을 먹지는 않고 살았다. 밥값은 하고 살았거든. 그렇더라도 이건 너무 오래 산 거 아닌가?”
“장수시대다. 오래 살고 싶지 않으신가?”
“얼마 전, 투병 중인 이어령 선생을 만났는데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 김유정이나 이상이나 다들 30세가 못 돼 죽었다고. 선생 자신도 30세를 넘겨 살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뭔가 공감되는 기분이더라. 오래 산다는 거, 그거 좋은 것만은 아니다. 불편한 게 많거든. 요즘 이빨이 흔들린다.”
“동양의 정신 중에는 노경을 삶의 절정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육체적 노쇠를 빼고 따지자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꽃으로 말하면 가장 활짝 핀 상태가 노경이지 않겠는가. 핀 꽃이 마침내 지는 게 죽음이고. 내가 바라는 건, 통째 톡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순간의 미학 속에 지고 싶다는 것이다.”
“나이 들며 찾아오는 태도의 변화에는 어떤 게 있을까?”
“난 담낭절제수술을 받아 쓸개 빠진 인간이 됐다. 이제 줏대 없이 그냥저냥 살면 된다. 그동안 줏대 있는 척 사느라고 무지무지 애먹었다고. 어휴! 속 시원한 거라. 늘그막에 내 인생의 표리부동을 청산했거든.”
특유의 화통한 언설이 흘러나온다. 언설만이 아니라 오탁번의 시는 흔히 자신의 밑바닥을 샅샅이 훑어 허울과 가면을 잡아내는 자가심문의 시어들로 직조된다. 그는 일찍이 시라는 차가운 수사관 하나를 고용, 자신을 미행하게 하고 불쑥불쑥 불심검문을 하도록 하명해둔 것 같다. 시로써 자신을 치고 때리니 말이다. 공자가 설한 뉴스 제목을 가져오자면 ‘신독’(愼獨, 남이 보지 않더라도 엄히 자신의 행세를 점검하라는 뜻)이다.
어머니라는 이름의 종교
문학은 재능과 열정의 폭발이 있고서야 가능하다. 오탁번의 문예적 발화(發火)는 이르고 화려했다. 20대 때 중앙지 신춘문예에 동화를 필두로 시와 소설까지 연달아 당선, 문단에 화제를 뿌렸다. 이후 소설에 주력하다 중년 즈음부터 시 쓰기에 몰두해왔다. ‘제명대로 못살 것 같은 소설 창작의 어려움 때문’이었다지. 시란 그에게 무엇일까.
“에헴! 하고 목에 힘주어서는 가능할 수 없는 장르가 시다. 자기 부끄러움에 관한 고백! 내겐 시의 의미가 그렇다. 내 안에 숨어 있는 악마적인 걸 다 까발리는 행위가 시이고 문학이다.”
“선생은 지난날 글 쓰는 사람의 처절함과 맹렬함을 자살폭탄조에 빗대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 하시나? 쉽게 읽히는 시로 보자면 한칼에 내려치듯 단번에 가볍게 써내려갈 것만 같은데.”
“한칼에? 어림없는 얘기다. 난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벼려 시를 쓰는 사람이지 않은가. 늘 사전을 찾아가며 시를 짓다 보면 하염없이 긴 시간이 소요된다. 진통을 자심하게 겪으면서 말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창작이란 어려워 코피를 쏟으며 쓴다. 문학뿐이겠는가? 삶 자체도 마찬가지. 난 실로 코피를 흘려가며 살아왔다. 아이고, 이런 나를 두고 남들은 누릴 것 다 누리며 살았다고 오해를 하네.”
“조지 오웰은 작가의 창작 동기 네 가지를 꼽았는데 순전한 이기심, 즉 명예욕을 첫째로 꼽았다. 어떻게 생각하시나?”
“명예는 멍에의 다른 이름 아닌가? 난 명예를 얻기 위해 문단의 패거리 놀음에 끼거나 눈웃음을 판 적이 없다.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은 가지고 산다. 그런 게 없다면 어떻게 쓰며, 어떻게 견디겠는가. 그러나 오탁번의 시에 숨겨진 보석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뭐 어쩌겠나? 보석을 몰라보는 사람만 손해볼 뿐이다.”
“좋아하는 시인은?”
“시라는 건 거미줄에 맺힌 아침이슬 같은 것이다. 거기에 돌을 얹어 거미줄을 끊어버리는 식의 시를 쓰는 시인이 흔하다. 그런 점에서 정지용은 단연 빼어난 시인이지. 그의 시 ‘백록담’을 보라. 기막힌 수작이지 않은가. 고어와 토속어를 빈번히 사용해 시어의 영역을 넓히고 모국어를 확장한 백석도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다.”
작업실 밖 뜰엔 겨울나무들. 거머쥔 것 하나 없는 나목들이 수도승처럼 허심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탁번은 이곳에서 지내며 많은 나무를 심었고, 텃밭을 일구기도 했다. 이젠 심고 가꾼 게 너무 많아 관리가 버거울 지경이다. 저만치 사방에서 성벽처럼 에워싸고 범람하는 산경(山景)마저 일쑤 허허로운 건, 한 번 가면 다시 못 오는 사람과 달리 자연은 순환과 회춘을 일삼아서일 테지. 그러나 자연이 주는 도저한 감흥은 노시인의 정신적 체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별에 닿을 시, 산야에 맞먹을 시를 쓰고 싶게 하는 열망의 원천일지도.
그런데 오탁번의 삶과 문학의 진정한 원천은 작고한 어머니다. 우리는 흔히 신성한 신전에서 읍소하거나 백두산이 드높아 자세를 낮추지만, 오탁번은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고개를 숙인다. 뜰 한쪽, 햇살이 들이치는 자리엔 어머니의 흉상을 모신 기념비가 고이 세워져 있다.
“어머니는 나의 종교다. 단순히 나를 낳아 길러주신 모성을 향한 고마움 때문이 아니다. 나의 상상력과 몽상의 원천이기도 했거든. 우리 집은 너무도 가난해 소나무 속껍질로 허기를 달랬다. 그 극도의 가난 속에서도 어머니는 밤이면 필사본 심청전 같은 걸 읽으시더라고.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자란 과정 자체가 나의 문학공부였던 셈이지.”
“고향에 문학관을 꾸린 건 결국 어머니가 못내 그리워서?”
“그렇지. 나에겐 스승 이상의 길이자 현재진행형의 신앙이니까. 문학청년 시절의 어느 날, 술 마시고 미쳐 한강에 빠져 죽으려 했다. 그런데 어머니 생각이 나서 죽을 수가 없던걸. 요즘도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어머니를 찾는다. ‘어머니! 이거 어떡해요?’ 그러면 어머니가 응답하시더라. 텔레파시로.”
“어떤 응답을?”
“‘너는 큰 인물인데 무얼 망설이느냐, 네 뜻대로 밀어붙여라!’ 매번 그런 답이 돌아온다. 일찍이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항상 말씀하셨다. ‘너는 큰 인물이 될 거야!’라고.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식이라면 누구나 범죄 없이 잘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글로 자기 어머니를 비난하거나 이상하게 그리는 작가를 증오한다.”
“물적 간난(艱難)의 체험 역시 창작의 자산일 수 있다. 그러나 가난은 괴롭다. 가혹한 가난에 시달린 성장기에 느낀 감정의 기류는 어떤 것이었을까.”
“분노의 감정이 컸다. 그래서 대학생 때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서너 번 징병 거부를 했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신성한 의무라 하지만, 내겐 지킬 게 하나도 없었다. 집도 땅도 없다, 국가가 나를 위해 해준 게 무엇이냐, 그런 원망으로 죽을 셈 치고 입대를 거부했지. 나중에 뒤늦게 병역을 마치긴 했지만 울분이 들끓더군.”
히말라야 설산에서 글 쓰고 싶다
오탁번이 냉장고에서 꺼내온 술병을 탁자에 올리더니 잔을 채운다. 이슬처럼 투명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소주다. 큰 공 들이지 않고도 판타지의 회랑을 산책할 수 있게 하는 게 소주 한 병이다. 오탁번은 주량보다는 음주가 주는 감각의 광량(光量)에 심취하는 술꾼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가 있다. 일독 이호색 삼음주(一讀 二好色 三飮酒)라! 이건 제주 유배에서 풀려난 시절에 추사가 쓴 현판 글이다. 이것의 원전은 청나라 ‘소대총서’(昭代叢書)이지만, 독서와 색과 술을 즐길 만한 것들 중에서 으뜸으로 쳤으니 인생의 정곡을 찌른 게 아니겠는가. 음주를 세 번째에 둔 건 술로 자칫 망가질 수도 있어서일 거라 본다.”
“반면에 독서를 첫손에 꼽은 건, 놀 때 놀더라도 독서를 먼저 해 정신부터 채우라는 뜻일 것 같다.”
“호색의 색을 반드시 섹스로 읽을 일도 아니겠지. 색즉시공의 그 ‘색’과도 무관하다곤 할 수 없을 테니까.”
“술이 아니더라도 삼라만상에 취하기 쉬운 게 시인이다. 선생 역시 자연에 취해 지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자연과 더불어 늙다 보니 내가 이젠 어린애 다 됐다. 순진성, 천진성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느끼는 것이지. 내가 사물을 찾아 바라보는 게 아니고, 어린아이처럼 그저 사물이 보여주는 그대로 보게 되더라고. 일부러 찾을 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더라는 얘기다. 이거 아는가. 갓난아이는 촛불을 보면 예쁘니까 만지고 싶어 하고 먹고 싶어 한다. 촛불의 아름다움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갓난아이의 마음. 이게 바로 시인의 마음이다.”
노구에 서린 세월의 흔적이 좀은 쓸쓸하지만 카랑카랑한 결기와 시퍼런 촉은 여전하다. 안경 너머 핼쑥한 두 눈은 간간이 빛을 뿜는다. 언젠가 그는 말했다. 시인의 시선은 나무를 밑에서 보는 게 아니라 독수리처럼 위에서 내려다본다고.
“감히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느낀다고 하면 건방진 소리이겠지만 이젠 일체의 것들에 감정이입이 자연스럽게 된다. 그 무슨 힘으로 나리꽃 새싹은 굳은 땅을 뚫고 거침없이 솟아올라오는가? 경이로워 새싹의 마음이 되곤 한다. 이젠 마음대로 별짓을 다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단 하나, 건강 문제엔 불편을 느낀다. 자다가 꼴깍 숨넘어가야 제일 좋을 텐데, 중풍이나 치매에 걸려 허우적거리다 떠나게 되면 이는 치욕이지 않겠는가.”
훗날의 일을 미리 앞당겨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당장 문밖에 나가 무슨 변을 당할지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다. 그러나 그 진상을 알 길이 없는 인생의 폐막에 그는 불안한 것이다. 그럼에도 끝내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으니 바로 글쓰기라는 숙업. 그러고 보면 그의 불안은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종막에 관한 것일 수밖에 없겠다.
“요즘 내가 구상하는 게 있다. 히말라야에 가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살아남는 날까지 설산을 바라보며, 일기 형식의 글을 쓰고 싶은 거다. 당신 생각엔 어떤가? 괜찮아 보이는가? 내가 떠난 뒤엔 책이 나오겠지.”
한국관광공사 캠핑정보 사이트 ‘고캠핑’(www.gocamping.or.kr) 기준 전국 캠핑장 수는 2300여 곳에 이른다. 과거 강가나 계곡 주변에서 텐트를 치고 즐기던 것에 머무르지 않고, 요즘은 펜션이나 휴양림, 카라반 등 다양한 편의시설에 체험활동이나 액티비티 등을 운영하는 캠핑장도 늘어났다. 산, 바다, 도심 등 주변 환경뿐만 아니라 휴식, 취미, 관광 등 그 목적까지 고려해야 선택지를 좁혀가며 만족스러운 캠핑장을 고를 수 있다. 캠핑장 찾기 팁과 더불어 테마별 추천 캠핑장 정보까지 담아봤다.
도움말 및 자료 제공 캠핑퍼스트(김한수 이사)
캠핑은 야외에서 먹고 자야 하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여기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안락하고 깨끗한 편의시설을 갖춘 캠핑장이 많아졌지만, 꼼꼼히 따져보지 않는다면 예견했던 불편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즉, 어떤 캠핑장을 고르느냐에 따라 캠핑의 질이 달라지는 셈이다. 캠핑장을 고를 때는 캠핑의 목적을 먼저 염두에 둔다. 휴식을 위한 것인지,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기 위함인지, 취미활동을 병행할 것인지 등에 따라 산, 바닷가, 계곡 등 주변 환경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또 가족 등 동반자의 특성을 고려해 서로의 취향을 잘 반영한 캠핑장을 고른다.
◇ 캠핑장 선택 시 주요 고려사항
① 접근성 캠핑장에 머무는 시간에 비해 이동시간이 길면 피곤할 수밖에 없다. 거리나 교통 상황 등을 확인해 무리가 가지 않는 위치를 선정한다. 새벽에 출발해 밤에 돌아오는 일정을 선호하는 캠퍼들도 많다.
② 예약 가능 여부 아무래도 예약을 해야 더 안정적이다. 몇몇 캠핑장은 예약자에 한해서만 입장 가능하다. 선착순 운영 캠핑장을 간다면 대안으로 근처 다른 캠핑장들도 미리 알아두자.
③ 편의시설 캠핑장 인근에 식료품이나 캠핑용품을 구입할 만한 편의시설이 있는지 확인한다. 이에 따라 캠핑 짐을 쌀 때 필요한 물품 리스트를 정리해 빠짐없이 챙기자.
◇ 캠핑장 찾기 Q&A
❶ 초보 캠퍼가 캠핑장을 찾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실제로 캠핑장을 보고 선택하기는 어렵고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나 블로그 등을 참고하게 된다. 이러한 캠핑장 후기의 경우 주관적인 견해이거나, 간혹 대가를 받고 호의적인 글을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가급적 다양한 리뷰를 살펴보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글이거나 홍보성 내용들은 걸러서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❷ 중장년이 캠핑장을 고르며 특별히 더 살펴봐야 할 것은? 지병이 있거나 건강이 염려되는 중장년의 경우 위급 상황에 찾아갈 인근 병원 위치를 파악해두도록 하자. 거동이 불편하다면 경사가 완만하고 평탄한 지형이 좋다. 자식이나 손주 등이 찾아올 계획이라면, 방문자 출입이나 인원 추가가 가능한지의 여부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❸ 가을철 캠핑장(캠핑사이트) 선택 요령은? 가을은 비교적 쌀쌀하기 때문에 해가 잘 드는 자리에 텐트를 설치하면 좋다. 마른 나뭇잎이 많거나 마른 잔디인 경우 작은 불씨에도 화재의 위험이 있으니 주의한다.
◇ 테마별 추천 캠핑장
Theme#1 자연환경 취향 따라 Pick!
[01]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캠핑장
행복한나드리 캠핑장 |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등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소규모 캠핑장이다. 가을에 찾는다면 알록달록 물든 주변 풍경과 더불어 코스모스도 만끽할 수 있다. 캠핑장 인근의 배론성지나 치악산 자연휴양림 쪽으로 단풍 구경을 가도 좋다. 솔방울 공예품 만들기, 목공예 등 시기별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충북 제천시 봉양읍 옥전리 286-1)
달숲 캠핑장 | 산속에 단풍나무와 밤나무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가을이면 절경을 이룬다. 주변 소음이 적고, 캠핑장 내에서도 고성방가 등을 엄격히 제한해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 청풍호와 청풍문화재단지, 도담삼봉 등이 가깝고, 제천 시내와 인접해 대형마트 등을 이용하기 편리하다. (충북 제천시 금성면 월림리 89-1)
[02] 숲속 힐링&자연휴양림 캠핑장
춘천숲자연휴양림 | 서울에서 1시간 이내에 닿는 거리로, 잣나무와 참나무 숲이 우거진 아늑한 자연휴양림이다. 산림휴양관, 숲속의집을 비롯해 야영데크, 글램핑장, 오토캠핑장 등이 마련돼 있다. 데크 이외에도 고급텐트와 캠핑에 필요한 모든 장비가 대여 가능해 초보자도 부담 없이 캠핑을 즐길 수 있다. (강원 춘천시 동산면 종자리로 224-104)
편백힐 치유의숲 | 치유의숲 내에 캠핑장이 있어, 편백나무 사이사이 텐트 설치가 가능하다. 피톤치드를 가득 내뿜는 조용하고 깨끗한 숲을 즐기기 제격이다. 야영장과 함께 편백나무와 황토로 벽을 만든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한다. 방 내부에도 나무보일러를 설치해 향긋한 편백의 기운을 따뜻하게 만끽할 수 있다. (전남 장성군 북하면 하남실길 212)
[03] 바다를 한눈에 오션뷰 캠핑장
몽돌바다 캠핑장 | 서해 몽돌해변과 인접한 500m의 전용 해변을 보유한 곳으로, 해수욕장을 바라보며 캠핑을 즐길 수 있다. 감성돔, 우럭, 도다리, 숭어 등이 잡히는 갯바위 낚시 포인트가 여러 곳 있고, 인근 갯벌에서 짱뚱어와 바닷게 채집 등 바다를 즐기기 좋다. 해질녘 노을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도 꼽힌다. (전남 신안군 암태면 신석리 413-1)
욕지도 파라다이스 오토캠핑 | 욕지도 유동마을의 한 폐교를 개조한 곳으로 민박과 야영장을 함께 운영한다. 캠핑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유동해수욕장이 나온다. 인근 방파제에서 바다낚시를 즐기거나 조개, 고동, 소라 등 해산물을 채집할 수 있다. 섬에 있는 캠핑장이기 때문에 예약 전 통영 삼덕항에서 배편부터 먼저 확인해야 한다. (경남 통영시 욕지면 유동길 111)
Theme#2 다양한 즐길 거리 따라 Pick!
[01] 역사·문화·관광지 인근 캠핑장
화적연 캠핑장 캠핑장 | 바로 옆 한탄강이 흐르고, 근처에 명승 제93호 화적연이 있어 겸재 정선이 그림으로도 옮겼을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화적연은 영평8경중 제1경이자 포천 한탄강8경 중 제3경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그밖에 산정호수, 철원제2땅굴, 고석정 등이 인접해 주변 볼거리가 풍부하다. (경기 포천시 관인면 뗏마루길 43-116)
별을 다는 아이 | 온전히 캠핑을 즐기게끔 캠핑장 내에는 별다른 놀이 공간이 없지만, 인근의 다양한 문화 시설과 접근성이 좋다. 장흥유원지 내에 위치해 있고, 장흥자생수목원, 송암천문대, 권율장군묘,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장흥아트파크, 조각공원, 두리랜드 등이 인접해 아이들과 함께하기 제격이다. (경기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309번길 132)
영월 느티나무 캠핑장 | 영월 내리계곡에 위치해 청량한 자연 경관이 매력적인 곳이다. 물놀이를 즐기는 여름에도 좋지만, 주변 볼거리 덕분에 언제라도 지루하지 않은 곳이다. 김삿갓문학관, 별마로천문대, 고씨동굴, 청령포, 장릉, 모운동마을, 아프리카미술박물관, 호안다구박물관 등 찾아갈 명소가 즐비하다.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내리계곡로 1061)
[02] 농촌·텃밭·공예 체험 캠핑장
귀한농부학교 | 농부체험, 민속체험, 미꾸라지 잡기, 쿠키·피자 만들기, 목공예, 식물공예, 숲해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말체험농장의 경우 당일 또는 연간 회원권으로도 이용 가능하다. 캠핑장 내 민속체험장, 동물농장, 허브농장, 수생원 등이 마련돼 있다. (경기 파주시 법원읍 금곡리 422)
다릿재농원 | 캠핑장 천등산과 장병산 사이 기슭에 위치한 곳으로, 가을이면 사과(홍로) 따기, 밤 줍기, 모과청 담그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이번 가을에는 매주 토요일 선착순으로 인근 충주 고구려 천문과학관 견학도 진행한다. (충북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 765-4)
신화 가족목공체험 캠핑소 | 목수 부부가 운영하는 목공체험 캠핑장. 아버지가 만들어주는 책상, 가족이 만드는 식탁 등 원하는 품목을 정해 오랜 기간 숙박하며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캠핑장 내 카페와 가구 작업소, 갤러리, 수확체험농장 등도 이용 가능하다. 목공예 비용은 실비로 책정된다. (경기 양평군 강상면 강상로 326)
Theme#3 특별한 편의시설 따라 Pick!
[01] 글램핑·카라반 캠핑장
새연카라반 리조트 |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은 리조트형 캠핑장으로, 반려견과 함께하기 좋은 곳이다. 계곡 럭셔리 카라반, 프리미엄 폴딩도어 카라반, 스파 카라반 등 여러 콘셉트의 카라반과 감성 글램핑, 오페라 글램핑 등 다양한 글램핑도 즐길 수 있다. 짚바이크, 클라이밍 등 독특한 액티비티도 운영한다. (경기 가평군 조종면 운악청계로333번길 86)
생각 속의 집 | 모던한 디자인의 건축물이 눈에 띄는 글램핑장이다. 복층형 펜션 2동과 독특한 구조의 글램핑 사이트 5동이 자리하고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기 좋다. 원주 레일바이크가 캠핑장을 지나고,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 간현관광지, 한솔 오크밸리 등 관광지도 가까워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강원 원주시 지정면 판대리 52-5)
[02] 스파·찜질방 겸비 캠핑장
원주 참숯가마 캠핑장 | 힐링존, 피크닉존, 스카이워크존 등 다양한 콘셉트의 사이트가 마련된 이곳의 백미는 바로 ‘참숯가마 찜질방’이다. 캠핑장 입장객에 한해 무료로 이용 가능한데, 매주 불 빼는 날에는 참숯가마에 구운 ‘3초 삼겹살’도 맛볼 수 있다. 깡통열차 체험장, 모래놀이터 등 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무료로 개방한다. (강원 원주시 신림면 솔치로 88)
그린콩 캠핑장 | 깔끔한 농장형 캠핑장으로 오토캠핑과 일반캠핑 사이트 모두 운영한다. 사이트마다 느티나무가 한 그루씩 있어 그늘 걱정이 필요 없다. 여름엔 캠핑장 내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쌀쌀한 가을엔 따뜻하게 야외 스파를 즐기면 좋다. 스파 시설은 총 3동으로, 1회 5000원에 이용 가능하다. (경기 가평군 북면 소법리 627-54)
◇ 캠핑퍼스트가 제안하는 캠핑장 매너 15가지
1. 캠퍼들이 잠드는 밤 10시~아침 7시까지 매너(에티켓)타임을 지킨다(매너타임은 캠핑장에 따라 다를 수 있음).
2. 고성방가는 자제한다. 음악은 볼륨을 낮추거나 이어폰을 사용한다.
3. 쓰레기는 분리수거하고, 샤워실, 개수대 등 공용시설을 깨끗하게 쓴다.
4. 주변에 피해를 주는 과도한 음주는 자제한다.
5. 불꽃놀이 금지. 텐트에 불꽃이 떨어지면 장비 손상이나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6.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캠핑장이라도 통제가 안 된다면 출입을 삼간다.
7. 캠핑장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다니곤 한다. 자전거든 자동차든 꼭 서행한다.
8. 도난사고에 유의하자. 귀중품은 휴대하고 캠핑장을 벗어날 때 고가의 장비는 차량에 보관한다.
9. 드론은 항공법에 준수해 사용하자.
10. 풍등 날리기 금지. 나무가 많은 캠핑장 특성상 풍등은 자칫 화재로 이어진다.
11. 남녀노소 불문 노상방뇨 금지. 아무리 급해도 용변은 화장실을 이용한다.
12. 지정된 장소에서만 흡연하기.
13. 다른 옆 캠퍼의 생활공간인 사이트를 허락 없이 지나치는 일은 삼간다.
14. 각종 공놀이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즐긴다.
15. 캠핑장 내 과도한 애정행위 자제하기.
공주의 젖줄인 제민천을 따라 걸으면서 도심을 여행했다. 골목골목 걷는 내내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문장이 공주를 표현한 듯 느껴졌다. 공주는 풀꽃처럼 소박하고 소탈한 도시였다. 풍경도, 사람도, 음식마저도. 그래서 자세히 보고, 오래 봐야 진가를 알 수 있었다.
걷기 코스
공주시외버스 산성정류소(구터미널)▶ 공산성▶ 산성시장▶ 공주역사영상관(구읍사무소)▶ 풀꽃문학관▶ 충청감영 터(현 공주사 대부고)▶ 카페 ‘반죽동247’과 이미정갤러리▶ 하숙마을▶ 반죽동 당간지주(대통사 터)▶ 공주제일교회 (기독교박물관)▶ 루치아의뜰▶ 산성정류소 또는 공주역
금강 변 공산성과 산성 아래 산성시장
공주 산성정류소에 하차하면 공주의 자랑인 공산성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터미널에서 5분 정도 걸으니 공산성 매표소에 닿는다. 공산성은 공주가 백제의 수도였을 때 금강 변 야산에 지은 산성이다. 산 능선에 조성한 성곽이 물결처럼 울렁울렁 춤춘다. 성곽의 등을 타고 공산성을 한 바퀴 돌 수 있으며, 90분 남짓 걸린다. 성곽길이 이끄는 대로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공산성의 서문인 금서루를 통과해 성곽에 오르자마자 시원한 강바람이 반긴다. 바람을 얼싸안고, 발아래로 흘러내리는 성곽과 반짝이는 금강, 나지막한 공주 시가지를 여유롭게 굽어본다. 오랜만에 탁 트인 풍광을 마주하니 여행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공산성을 일주한 뒤, 다시 터미널 앞을 지나 산성시장으로 향한다. 공산성 아래에 있어 산성시장이라 불리는 이곳은 82년 역사를 지닌 공주 대표 시장이다. 그만큼 규모가 크다. 5개 구획마다 갖가지 생필품과 식자재, 식당들이 즐비하다. 특히 요기할 만한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맛 좋기로 전국에 소문난 ‘부자떡집’의 쫄깃한 떡, 줄 서서 먹는 ‘대박난찹쌀호떡’의 달달한 호떡, 가끔 생각나는 ‘단골닭강정’의 매콤달콤한 닭강정, ‘청양분식’의 잔치국수, ‘간식집’의 잡채만두 등이 있다. 대부분 소박한 음식이다. 맛도 그렇다. 공주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궁금하다면 하나씩 맛보는 것도 좋겠다.
풀꽃 시인 나태주와 풀꽃문학관
시장통을 벗어나면 이내 공주역사영상관(등록문화재 제443호)에 닿는다. 1923년에 지어진 충남금융조합연합회관 건물로 붉은 벽돌과 화강암을 섞어 쌓아 올린 근대건축물이다. 백제시대부터 현재까지의 공주 역사를 담은 디지털 영상기록물을 전시해두었다. 공주역사영상관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이국적인 목조 건물 한 채가 보인다. 1930년대에 지은 적산가옥을 개조해 나태주 시인의 ‘풀꽃문학관’으로 조성한 곳이다. 야생화가 오종종히 피어 있는 뜰과 오래된 목조 건물의 조화가 멋스럽다.
나태주 시인은 금요일에만 문학관을 방문한다. 문학관 앞에 자신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를 세워놓아 문학관에 있음을 알린다. 문학관 내부는 다실과 강연 공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모두 다다미방 형태다. 벽면 곳곳에 나태주 시인이 쓰고 그린 시화가 걸려 있다. 마침 나태주 시인이 다실에서 방문객들이 가져온 시집과 엽서에 정성껏 시를 써주고, 덕담을 건네는 중이다. 다실에서 웃음소리가 끓이지 않는다.
풀꽃문학관을 내려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 정문이자 옛 충청감영의 정문이었던 포정사 문루 앞을 지난다. 으리으리한 문루를 통과해 등교하는 학생들의 기분은 어떨지 궁금하다. 제민천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지인이 추천한 카페 ‘반죽동247’에 들른다. 평일인데도 손님이 꽤 많다. 소문대로 커피 맛이 좋다. 시원한 카페라테 한 잔을 홀짝 비우고, 카페 2층에 있는 이미정갤러리 구경에 나선다. 공주 출신 서양화가 이미정 대표가 지역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종종 기획전을 여는 공간이다. 방문할 때마다 수준 높은 작품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유학생들의 제2의 고향, 제민천 변 하숙마을
제민천 대통교 앞에 이르자 ‘하숙마을’이 보인다. ‘하숙마을’은 옛 약국과 옆 건물 4채를 개조해 한옥 숙박시설 및 마을 안내센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공주와 하숙마을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공주는 예로부터 교육의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명문으로 알려진 공주대학교 사범대학과 공주사대 부속 고등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에는 전국에서 학생들이 공주로 유학을 왔다고 한다. 자연스레 학교 주변에 하숙집이 많이 생겨났다.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하숙집 주인은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선배가 후배에게 하숙집을 물려주거나 같은 하숙집에 산 인연으로 부부가 되어 부부 교사가 늘어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단발머리 여고생과 까까머리 남고생들이 수없이 거쳐갔을 비좁은 하숙집 골목길을 거닐며 당시 풍경을 상상해본다.
하숙마을 옆, 사대부고 학생들이 참새방앗간처럼 들르는 중앙분식을 지나 반죽동 당간지주를 만나러 간다. 동네 한복판 작은 쉼터에 527년(백제 성왕 5년) 백제 최초로 지어진 대통사의 당간지주(보물 제150호)가 홀로 서 있다. 당간지주 옆에는 1903년에 설립된 공주제일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충청도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이었으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곳으로 유명하다. 유관순 열사와 조병욱 박사가 이 교회에 다녔다. 지금은 기독교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후미진 뒷골목을 밝히는 등불들
다시 제민천으로 돌아와 대통교를 건넌다. ‘백성을 구제하다’라는 뜻을 지닌 제민천은 공주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담고 유유히 흐른다. 주민들이 대통교 그늘에 앉아 다리를 담그고 더위를 식힐 만큼 수질이 좋다. 제민천 변 건물 담벼락에는 옛 하숙마을 풍경 사진과 나태주 시인의 시, 하숙집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벽화가 전시돼 있다. 담벼락을 구경하며 한옥 찻집 ‘루치아의뜰’로 향한다. ‘맛깔’식당과 ‘이안게스트하우스’ 사이의 터널 같은 골목 안으로 쑥 들어가야 발견할 수 있다. 파란 대문 너머로 야생화가 만발한 뜰과 한옥 한 채가 반긴다. ‘루치아의뜰’은 차 문화 전문 사범인 아내 루치아와 쇼콜라티에인 남편 요한이 운영하는 찻집이다. 보이차, 홍차, 커피, 디저트를 판다. 폐허나 다름없던 집과 골목을 부부가 살뜰히 가꾼 덕에 공주 명소로 거듭났다. 도시 재생 성공 사례로도 손꼽힌다. 공간 못지않게 루치아가 차려내는 찻상 또한 작품처럼 아름답다. 찻상을 바라보고, 차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공주에서 루치아와 요한 부부처럼 이 도시를 사랑하는 이를 많이 만났다. 공주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조연 씨도 그중 한 명이다. 서울에 사는 그는 공주 사랑이 대단하다. “공주는 관광객들을 끌거나 관광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해 치장하지 않아서 좋아요. 다소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옛날 시골 동네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어 맘이 편안해져요. 이게 공주 원도심의 매력이죠.”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래 보고, 자세히 보면 그처럼 공주와 사랑에 빠지고 말 것 같다.
주변 명소 & 맛집
단골들이 추천하는 ‘중앙분식’
제민천 대통교 앞에 있는 중앙분식은 즉석떡볶이, 쫄면, 비빔만두 등을 판다. 떡볶이 1인분을 주문해도 커다란 냄비에 2인분은 됨직한 양을 내놓는다. 쌀떡, 쫄면과 당면사리, 양배추, 어묵을 듬뿍 넣어준다. 국물이 자작자작해질 때까지 졸여 먹어야 제맛이 난다. 맛의 비결은 안주인장이 만든 특제 소스에 있다고. 학생 때부터 즐겨 찾던 단골, 소문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올 8월 중순 공주우체국 옆으로 이전한다.
공주시 제민천1길 67, 041-856-1497, 10:30~19:00, 월요일 휴무
전국에서 소문난 ‘부자떡집’
1982년 산성시장 안에 창업한 떡집이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당일 생산·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삼는다. 작업장이 공개돼 있어 제작 공정에 대한 신뢰감을 준다. 영양떡인 부자떡이 대표 메뉴이며, 헤이즐넛 호두설기는 이곳에서만 파는 제품이다. 공주의 특산품인 밤을 넣어 만든 알밤찹쌀떡 세트가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다. 쫀득한 찹쌀떡 안에 밤이 통째로 들어 있다. 부자떡집의 떡은 달지 않아 부담 없다.
공주시 용당길 11, 041-854-5454, 08:00~19:00, 연중무휴
추억을 부르는 잡채만두집 ‘간식집’
산성시장 내 분식집이다. 잡채만두, 김밥, 떡볶이를 판다. 대표 메뉴는 잡채만두. 통통한 만두 안에 당면이 가득 들어 있다. 대구 납작만두의 통통만두 버전 같다. 만두피와 당면만으로 이루어진 만두가 특별히 맛있는 줄은 모르겠으나, 공주 사람들이 한 봉지씩 사간다. 간장 대신 초장을 찍어 먹는 것이 독특하다. 만두 맛보다 만두를 구울 때 나는 자글자글 소리가 정겹다.
공주시 산성시장1길 46, 041-852-4812, 화요일 휴무(1, 6일 장날 제외)
담백한 육수가 일품 ‘고가네칼국수’
공주는 예로부터 면 요리가 발달해 칼국수집이 많다. 고가네칼국수는 칼국수를 상에서 끓여 먹는 방식이다. 한우 사골, 양파, 무, 파, 닭발 등을 넣어 담백하게 끓인 육수에 각종 채소와 우리 밀 면을 넣어 익힌다. 직원이 우리 밀 면은 더디 익는다고 알려준다. 고가네칼국수는 저염식 식단을 추구해 칼국수 맛이 심심한 편이다. 배추겉절이와 섞박지로 간을 맞춰 먹는다. 1인분도 주문할 수 있다.
공주시 제민천3길 56, 041-856-6476, 10:00~21:30, 일요일 휴무
걷기 Tip
❶ 4월 5일부터 11월 30일까지 매주 금·토요일에 산성시장에서 공주 밤마실 야시장이 열린다.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한다.
❷ 5월부터 10월까지 매주 주말에 공산성에서 수문장 교대식을 진행한다.
4월의 찬란한 신록을 만나기 위해 하동으로 간다. 악양행 버스를 타고, 화개천 옆을 지난다. 간밤에 흩날렸을 벚꽃 잎을 상상하며 아름드리 벚나무 가로수 길을 달린다. 오른쪽 차창 밖으로 은빛 섬진강과 푸른 보리밭이 봄볕에 반짝거린다. 섬진강가 산비탈에는 야생차밭이 연둣빛 생기를 뽐낸다.
걷기 코스
화개시외버스터미널▶시내버스 타고 악양면으로 이동▶매암제다원(매암차박물관)▶하덕마을 담장 갤러리▶드라마 ‘토지’ 촬영지▶박경리문학관▶최참판댁▶시내버스 타고 화개장터 또는 화개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
산자락 아래 볕 좋은 동네 악양
화개시외버스터미널에 악양행 시내버스가 들어온다. 버스에서 내린 행복버스 안내 도우미가 연로한 승객들을 부축해 승하차를 돕는다. 기사도 승객이 승하차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한다. 안내 도우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악양(개치)정류장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도보 1분 거리에 매암제다원이 있다. 매암제다원은 3대에 걸쳐 40년 동안 친환경 자연농법으로 차밭을 가꾸고, 악양에 전해오는 전통 제다법으로 차를 만드는 곳이다. 다원 안으로 들어서 매암차박물관 옆을 지나자, 초록빛 야생차밭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원에 따사로운 봄볕이 가득하다. 높을 岳(악), 볕 陽(양) 자를 쓰는 악양다운 풍광이다.
마침 매암차박물관의 장효은 학예실장과 이윤경 기획실장이 야외에서 차담을 나누고 있다. 매암제다원에서 파는 차가 녹차가 아닌 홍차인 이유를 묻자 장 실장이 “많은 사람이 녹차나무와 홍차나무가 다른 나무라고 생각하는데, 같은 나무예요. 찻잎을 발효하면 홍차 잎이 돼요. 악양 사람들은 옛날부터 홍차로 만들어 먹었어요. 서양 홍차는 우리나라 찻잎보다 크고, 맛과 향이 진하죠”라고 대답한다. 이 실장도 거든다. “이곳 할머니들은 찻잎을 잭살이라 불러요. 4월에 처음 딴 찻잎을 참새 雀(작), 혀 舌(설) 자를 써서 작설이라고 부르는데, 거기에서 유래한 것 같아요. 식구들이 감기나 배앓이를 하면 잭살을 한 움큼 넣고 푹푹 우려 약차로 만들어 먹였대요.”
13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차가 처음 전래된 곳이 하동이다. 임금에게 차를 진상했던 곳도 하동이다. 악양과 화개 산비탈에 자리 잡은 대규모 야생차밭은 한없이 경이롭다. 하동 사람들의 차 사랑과 자부심이 대단할 만하다.
은은한 차 한 잔의 위로
2만여 평의 차밭이 굽어 보이는 매암제다원 마당에 매암다방이 있다. 나무꾼이 살 것 같은 아담한 오두막이다. 실내에 차밭이 보이는 벽마다 큰 창을 내어 자연을 담은 액자처럼 꾸몄다. 실내에 있기에는 아까운 계절. 찻그릇을 담은 차 쟁반을 들고 나가 차밭이 잘 보이는 감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는다. 간지러운 봄볕을 즐기며 찻잎을 우린다.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붓고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발효된 홍차는 녹차보다 맛이 순하고 구수하다. 찻잔이 작으므로 마주앉은 이의 잔을 수시로 살펴야 한다. 서로 잔을 채워주며 따스한 차담을 나누라고 찻잔이 작은 것일까 생각해본다.
찻잔 위로 스치는 봄바람에 참새 혓바닥 같은 찻잎들이 쫑긋거린다. 연둣빛 여린 찻잎에서 천 년을 이어온 생명력을 느낀다. 다원 입구에 있는 매암차박물관은 일제강점기에 수목원 관사로 사용했던 적산가옥이다. 흰 목조 건물과 푸른 차밭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차와 관련한 다양한 유물 130여 점을 전시한다. 차 문화사 강좌, 차 만들기 체험, 차 따기 체험, 하동 차문화 기행 등 문화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매암제다원(매암차문화박물관) 여름철 10:00~19:00, 겨울철 10:00~18:00, 월요일 휴무, 관람 무료, 매암다방(셀프) 찻값 3000원.
사계절 차꽃 피는 하덕마을
매암제다원을 나와, 시골길을 타박타박 20분쯤 걸어 하덕마을에 도착한다. 27명의 작가가 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 사진, 조형물을 만들어 골목을 아름답게 꾸며놓았다. 벽화뿐만 아니라 나무, 철, 도자기를 활용한 다양한 작품이 담장에 전시돼 있다.
마을 입구 ‘팥이야기’ 카페에서 출발해, 발소리를 죽이고 고요한 돌담길을 스며들듯 거닌다.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하얀 차꽃이 흩날리는 그림 ‘차꽃’과 매화가 핀 찻잔과 보름달을 그린 ‘달 아래에서’, 장식장에 찻잔이 가득한 ‘찻잔’ 벽화가 눈길을 끈다. 기와지붕 처마에 거꾸로 매달린 차꽃 조형물은 이름도 어여쁜 ‘꽃비내림’이다. 담장 위에는 농악대를 형상화한 철 조형물이 곡예를 한다. 가만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난다.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공통된 정서는 ‘푸근함’이다. 시골 정취가 가득한 하덕마을과 정감 있는 예술작품이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낸다. 오랜만에 맘에 드는 골목길을 만나 가슴이 설렌다. 마을 중앙에 있는 ‘차꽃오미’ 한옥 민박집에도 잠시 들른다. 위엄 있는 솟을대문과 잔디가 깔린 앞마당과 100년 된 고택의 조화가 멋스럽다. 하동군 악양면 악양서로 227.
최참판댁에서 평사리 들판을 굽어보며
하덕마을을 뒤로하고, 박경리 소설 ‘토지’를 드라마화한 토지 촬영장으로 향한다. 찻길 옆 인도를 따라 걷는다. 구재봉 자락에 40만여 평에 달하는 악양면 평사리 들판이 펼쳐진다. 들판 한가운데에 깃대처럼 서 있는 부부송(夫婦松)이 옛 친구 만난 듯 반갑다. 하덕마을에서 약 15분 걸으면 오른쪽에 ‘토지’ 촬영장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나온다. 이곳이 평사리 상평마을 입구다. 여기서 ‘토지’ 촬영장까지 10분 정도 다시 오르막길을 오른다. ‘토지’ 촬영장에 용이네, 판술네, 두만네, 월선네, 김훈장댁, 송관수네가 살았던 초가와 읍내 장터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당에는 황소와 토끼가 살고, 곳간에는 장작이 그득하다. 사립문 옆에는 샛노란 산수유와 개나리, 목련이 탐스럽게 피었다. 텃밭에는 상추가 싱싱하게 자란다. 실제 사람이 사는 마을처럼 관리한다. 일부 한옥은 민박집으로도 사용한다.
촬영장 바로 위에 2016년에 개관한 박경리문학관이 있다. 박경리의 유품과 작품, 각 출판사가 발행한 소설 ‘토지’ 전질, 초상화 등이 전시돼 있다. 문학관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최참판댁 솟을대문에 이른다. 서희가 자란 별채와 최치수가 머물렀던 사랑채가 그 모습 그대로다. 최치수인 양 사랑채 마루에 올라서서 평사리 들판을 굽어본다. 아득한 섬진강에 봄 아지랑이가 아롱거린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09:00~18:00, 연중무휴.
주변 명소 & 맛집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
화개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화개장터다. 화개장터는 하동군과 전남 구례군과 광양시의 경계 지점에 있다. 한국전쟁 전만 해도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한데 모여 각 지방의 토산물들을 사고팔았던 곳이다. 원래 위치는 화개천의 화개교 아래였는데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상설시장이 됐다. 시골 오일장의 구수한 정취는 사라졌어도 파는 물건과 음식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지리산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약초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동 향토음식 전문점 ‘은성식당’
섬진강가에 자리한 은성식당은 하동 특산물인 재첩, 은어, 참게를 이용한 요리를 판다. 재첩국, 은어튀김, 참게탕이 인기가 많다. 섬진강에서 채취한 재첩을 넣고 맑게 끓인 재첩국은 하동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송송 썰어넣은 부추가 향긋함을 더한다. 집게다리에 털이 북슬북슬한 참게에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푹 끓인 참게탕은 구수한 맛이 별미다. 밑반찬도 모두 맛깔나다. 창밖으로 보이는 섬진강과 차밭 풍광은 덤이다.
팥 전문 카페 ‘팥이야기’
하덕마을 입구에 있다. 도시에서나 볼 법한 이층 양옥이어서 눈에 금세 띈다.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고풍스럽다. 빈티지한 가구와 소품을 활용한 감각이 돋보인다. 대표 메뉴는 단팥죽과 팥빙수다. 작은 놋그릇에 담겨 나온다. 단팥죽의 당도가 적당하고, 팥의 풍미가 한껏 느껴진다. 식사 대용으로는 양이 부족하지만, 커피 한 잔 값에 맛있는 단팥죽을 맛볼 수 있으니 만족스럽다. 팥이야기에서 1분 정도 걸어가면 토속적인 분위기의 ‘타박네’ 카페(055-883-251)가 나온다. 팥소가 듬뿍 든 우리 밀 찐빵을 판다.
여행 정보 걷기 Tip
-위에 소개한 코스는 수도권 기준, 당일 여행이 가능하다. 대중교통으로도 가능.
-하동을 구석구석 여행하고 싶다면 주민공정여행 프로그램인 ‘놀루와’를 이용하면 된다. 하동 토박이가 여행 상담, 개별 맞춤 여행을 추천·진행한다.
자연을 벗 삼아 여유롭게 살아보고 싶은 생각으로 ‘전원주택’을 지어 시골로 떠났으나 적응을 못하고 1년도 채 못 되어 도시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많다. 주택의 규모가 너무 크고 비싸 팔리지 않을 경우에는 도시로 돌아오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최근 잘 지어진 멋진 전원주택이 경매 물건으로 많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세컨드 하우스’다. 물론 이전에도 ‘세컨드 하우스’는 있었다. ‘별장’으로 불리던 집인데 오늘날의 ‘세컨드 하우스’ 개념은 좀 다르다. 별장은 고급스럽고 호화롭고 큰 주택이다. 그러나 세컨드 하우스는 자연을 만끽하고 싶을 때 내려가 지낼 수 있는 집이다. 물론 도시에 메인 하우스가 있어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다. ‘세컨드 하우스’의 조건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규모가 작아야 한다. “초가삼간이면 족하다”는 옛말이 있듯 방, 마루, 주방만 있으면 된다. 둘째, 도시에서 가까워야 한다. 문화시설과 편의시설을 이용하려면 지하철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게 좋다. 또 30분 거리에 미술관, 박물관, 문학관 중 하나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이외 절, 교회, 성당 등의 종교 시설이 있고 전통시장도 열리는 지역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칼럼니스트 조용헌 씨가 시골에 마련한 집에서 글을 쓴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작은 규모의 시골집이 있어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내려가서 쉰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다. 홍만희 시인도 홍천에 있는 세컨드 하우스에서 시 낭송회를 연다. 이처럼 세컨드 하우스는 도시인들의 꿈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작은 집이라도 마련하려면 쉽지 않다. 그래서 새로 생겨난 직업이 ‘시골 마을 빈집 디렉터’다.
‘시골 마을 빈집 디렉터’는 어떤 직업?
시골에는 버려지거나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이 많다. 이런 집들 중에서 규모가 작은 집을 손질해 도시 사람들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시골 마을 빈집 디렉터’다. 머리를 비운 채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는 공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 글 쓰는 공간, 각종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 등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다양한 공간을 디자인해준다. 기획은 물론 빈집을 손질하고, 집 소유자와 연결해주는 일까지 모두 총괄해서 진행한다. 부동산 중개 업무를 보는 사람들도 전원주택을 소개하지만 그들은 주로 규모가 큰 집들을 중개한다. ‘시골 마을 빈집 디렉터’와의 차이점이다.
시니어에게 ‘시골 마을 빈집 디렉터’는 아주 적합한 직업으로 보인다. 운동 삼아 다니면서 경제활동까지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나도 쉬엄쉬엄 다니면서 이런 일을 즐겁게 하고 싶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직업에는 인턴 과정이 없다. 이 분야에도 인턴 활동을 하며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한다. 기회가 오면 꼭 도전해보고 싶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분들에게도 은퇴 후 제2의 직업으로 ‘시골 마을 빈집 디렉터’를 권하고 싶다.
며칠 전, 송파 문인협회에서 시 낭송을 난생 처음 해봤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4명이 4부분으로 나눠서 낭송했다. 몇 번 연습을 하고 보면서 낭송했는데 기억에 남는 구절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올 연말 행사에는 보고 읽는 것이 아니라 안 보고 암송하기로 했다. 박인환문학관을 다녀왔던 기억을 떠올려 ‘목마와 숙녀’를 선정했다. 그 동안 암기능력은 개발해본 적이 없다. 줄줄이 기억하던 은행 계좌 번호도 매번 통장을 꺼내 봐야 한다. 노래방에 가도 노래 가사를 몰라 모니터 자막 없이 못 부르는 지경이다. 술을 좋아하다 보니 알코올에 뇌세포가 많이 죽은 모양이다. 우선 문제는 아예 생각나지 않는 현상이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우리 가족력에 치매는 없었는데 필자에게 가능성이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손바닥에 커닝페이퍼처럼 사인펜으로 첫 머리만 메모해두는 방법, 맨 앞좌석에 앉은 사람에게 큰 글씨로 시를 출력해서 들고 있게 하여 안 보는 척 보는 방법 등, 여러 가지 편법이 생각났으나 그냥 암송하기로 했다.
두 번째 문제는 단어가 생소하다 보니 내가 쓰기 편한 단어를 만드는 버릇이다. ‘숙녀’라는 단어는 요즘 잘 쓰지 않는 단어이다 보니 ‘여인’, ‘그녀’등이 대신 튀어 나왔다.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가 ‘목마를 탄 여인‘으로 둔갑했다. ’술을 마시고‘는 ’술을 마시며‘로 ’방울 소리 울리며‘는 ’방울소리 울리고‘로 마구 뒤섞였다.
암송을 방해하는 요소로 각각의 연이 끊어질 때 마다 3초씩 멈췄다가 이어가는 것이 문제였다. 천천히 분위기를 잡다 보면 다음 단어가 막혔다. 문장을 몽땅 외워 좀 빠르게 숨 쉬지 않고 끝내는 방법으로 바꿨다. 끝없이 말이 이어지는 여자들의 수다에서 배운 요령이다. 그냥 멈추는 것과 숨을 쉬기 위해 멈추는 것은 다르다. 나중에 속도만 조정하면 되는 것이다. (/br)
1차 테스트를 받아봤다. 그런대로 암송에 성공했다. 아직 건재하다는 얘기이다. 기억을 살려 빨리 끝내려는 마음에 빨라지는 톤만 고치면 된단다. 연말 행사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더욱 세련되어 질 것이다. 암송 연습을 해보니 좋은 점도 있었다. 뇌의 기억 세포를 살려 놓는 것이다.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 과정에서 잠자던 세포를 살려내는 작업이다. 치매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br)
거리를 걷거나 계단을 오르면서 암송을 하면 힘든 줄 모른다. 발은 저절로 걸어가지만, 머리 속에서는 기억 세포를 계속 굴리는 것이다. 혼자 중얼거리고 다니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보지만 개의치 않는다. 시를 그냥 읽었을 때와 다른 것은 단어 하나하나가 깊이 박힌다. 책을 읽을 때 시 암송 습관이 도움 되기도 한다. 그냥 스쳐지나가던 단어가 속속들이 드러난다. ‘~한다’ 등 마치는 끝말도 시처럼 또렷하게 남는다.
이번 시 낭송이 끝나도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마음에 드는 시 하나를 뽑아 암송할 생각이다. 무미건조하게 생각 없이 길을 걷거나, 힘들게 계단을 올라갈 때 써먹자는 의도이다. 얼마 후 있을 히말라야 트레킹 때 하루 20km나 걸어야 한다. 지친 다리의 고통을 잊기 위해서도 시 암송이 도움 될 것만 같다.
숲으로 들어서자 솔 그늘이 짙다. 부소(扶蘇)란 ‘솔뫼’, 즉 소나무가 많은 산을 일컫는 백제 말이란다. 부소에 산성을 쌓았으니 부소산성이다. 백제 당시에는 사비성이라 불렀다. 산의 높이는 겨우 106m. 낮고 평평하나, 이 야산에 서린 역사가 애달파 수수롭다. 부소산성은 나당연합군에게 패망한 백제의 도성(都城). 백제 최후의 비운과 아비규환이 화인(火印)처럼 새겨진 현장. 숲길은 참신하지만 106m 높이로 퇴적된 한(限)과 비애가 비쳐 서글프다.
8월의 지독한 폭염 아래서도 숲은 싱그럽다. 잎잎이 푸른 여름 나무들. 열정처럼, 정념처럼, 눈부시게 환히 너울거리는 저 초록 불꽃들. 매혹될 수밖에.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초록의 사태는 어디까지나 고요해 평화롭다. 지친 마음을 숲길에 부려놓기 적격이다. 번잡하게 날뛰는 마음의 날치를 평온하게 길들여볼 만한 시간이다. 하지만 평온한 시간은 짧게 지난다. 평화로운 시국도 그리 길지 않다. 공주에서 부여로 천도했던 백제의 국력은 강성했다. 강성해서 평화로웠다. 하지만 종단엔 추락했다.
뭐 볼 게 있다고 부여를 여행하나? 흔히들 하는 야박한 소리가 그렇다. ‘백제문화제’가 열렬히 펼쳐지고, 백제 문화유산을 재현한 ‘백제문화단지’가 웅장한 규모로 조성됐지만 백제 당시의 유적은 놀랍게도 소소하다. 정림사지와 능산리 고분, 궁남지, 테뫼식과 포곡식 산성이 혼합된 부소산성의 흔적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문화강국 백제의 다채롭게 빛났을 유적들을 옹골차게 접할 길이 아예 없다. 참혹한 전화(戰禍)에 스러지고, 점령군의 횡포에 찢겨서다. 시절의 평화도, 문화의 정채(精彩)도 이렇게 한순간에 산산조각 난다. 오호 통재라, 망국이란 실로 완전한 소진이다. 숲의 저 천진한 생동과 우수에 찬 역사의 배치(背馳)라니.
백제의 융성한 문화는 일찍이 일본으로 흘러 일본 고대 문화의 끌텅을 이루었다. 신라 왕경 경주의 랜드마크였던 황룡사 9층 목탑은 백제의 명장 아비지의 작품이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백제의 궁궐 건축을 평하길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 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던’ 백제의 정신과 백제인의 마음을 헤아리자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찬사와 조의를 함께 표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숲의 초록 사이로 어둑한 소로가 거듭 이어진다. 뙤약볕이 간간이 스며들어 흰 강아지처럼 길에 드러눕는다. 가파를 게 없는 숲길이니 더위에 절여진 몸으로도 헐떡일 일은 없다. 길섶엔 백제를 상기시키는 건조물들이 들어서 있다. 백제의 세 충신 성충, 흥수, 계백의 영정을 모신 삼충사를 비롯해 군창지, 궁녀사, 영일루, 반월루, 사자루 등이 있다. 모두 백제 이후에 발굴되거나 복원되거나 현대에 이르러 신축됐다.
부소산성은 도성의 방어 기지이면서 왕궁의 후원 역할도 겸한 걸로 추정된다. 왕족들의 소풍과 산책이 숲에서 숲길에서 다반사로 펼쳐졌을 게다. 질박한 흙길로 자못 심원한 정취를 자아내는 태자골 숲길은 왕자들의 산책로였다지. 철부지 어린 왕자들이 간혹 참새처럼 조잘대며 이 숲에서 뛰놀았을까?
숲이 무성하니 고목도 숱하다. 상흔으로 겨우 선 나무도, 썩어가며 곰팡이에 몸통을 내주는 나무도 많다. 재난과 수난을 피할 길 없는 게 생태계이지만 생명은 이어진다. 한 줌 거름으로 돌아가 다른 생명의 밥이 되는 나무의 순환은 고고하다. 삶 안에 죽음이 있듯이 죽음 안에도 삶이 있다. 오직 사람만이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낙화암 벼랑에서 꽃처럼 분분히 떨어져 죽었다는 삼천궁녀들은 언제 다시 오려나.
궁녀들뿐이었겠는가. 망국과 함께 노을처럼 시든 수많은 부녀와 노약과 군병들이 백마강의 고혼으로 떠돌겠지. 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은 ‘해동증자(海東曾子)’로 칭송된 인물이었다. ‘과단성 있고 침착하며 사려가 깊어 명성이 홀로 높았다’는 기록 역시 의자왕이 준재였음을 웅변한다. 하지만 승자의 각색 속에 나오는 의자왕은 궁녀들과 더불어 음란과 향락에 취한 얼간이. 해서, 고인 물처럼 썩어 무너진 게 백제였다는 투의 오진이 활개를 쳤다. 낙화암 ‘삼천궁녀 전설’ 역시 승자들이 부풀린 조작일 뿐이다. 패자의 봉욕이란 슬픈 과보란 말인가. 백마강 수면에 물살이 어린다. 쏴아, 황량한 바람이 유령처럼 허공에 일어 숲을 흔든다.
탐방 Tip
부소산성 숲길 탐방엔 한두 시간이 걸린다. 산을 끼고 도는 백마강 나루에서 황포돛배 유람선을 탈 수도 있다. 인근 부여읍내에 있는 정림사지 5층 석탑, 궁남지, 국립부여박물관을 함께 탐방해 백제 문화를 살펴본다. 신동엽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도 둘러보자.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무등산 자락에 가면 ‘생오지문예창작촌’을 만날 수 있다. 소설가 문순태(文淳太·80) 씨가 추구하는 문학의 열정을 증명하는 이곳 주변의 도로명은 생오지길. 원래는 만월2구라 불렸다고 한다. 그 이름을 바꾼 것이 바로 문 작가다. 그가 어린 시절 이곳을 생오지라고 불렀던 기억을 되살려 문학의 집을 만들어 생오지라고 이름 붙인 것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소설 ‘징소리’와 ‘타오르는 강’ 등으로 한국문학사에 자신의 이름을 깊게 새긴 그가 말하는 고향과 문학, 그리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인생을 들여다봤다.
문순태 작가가 생오지에 자리를 잡은 지는 어느덧 13년째, 그동안 그는 이곳에서 문학제를 열고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을 완성했으며 창작집 두 권과 에세이집, 시집 등 다양한 책들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시 쓰기에 열중하고 있다.
“나이가 드니 소설 쓰기가 힘들어요. 수술을 여러 번 하기도 했고 기억력도 쇠퇴해서. 대신 자꾸 시가 써지네. 시는 누워서 앓고 있어도 영감으로 쓰는 게 가능하니까요.”
그는 지난 1년 동안 장편소설 ‘광주 가는 길’을 집필했다. 그 와중에 쓴 시들을 모아 ‘생오지 생각’이라 이름 붙이고 얼마 전 출판사로 넘겼다. 새삼 그가 1939년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올해 팔순의 나이.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창창했고 문학가로서의 그의 업 또한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그의 후배 소설가 김영현 씨는 얼마 전 전주에서 열린 혼불문학상에서 그를 만나 자신의 롤모델이, 문 작가처럼 80대까지 살아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다. 자신의 나이를 언급하는 말을 듣고 문 작가는 다소 슬픈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 큰 위로가 되기도 했다. 언제 죽어도 미련이 없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사후에도 영원히 남을 작품
“아버지는 전형적인 한량이었죠. 농사는 안 짓고 첩을 둘이나 두신 분이었으니. 반면 어머니는 전형적인 농사꾼이셨어요. 저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랐습니다. 덕분에 일찍부터 땅의 소중함을 알게 됐죠.”
문 작가는 당시 ‘아무나 못 들어가는’ 광주고등학교를 들어갔고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문학을 만나게 됐다.
“2학년 국어선생님이 수필가였는데 글을 써내라고 해서 에세이를 썼어요. 그런데 그 에세이를 엄청 칭찬하는 거예요. 너무 잘 썼다면서 문예부에 들어오기를 권했고 들어가니 이성부, 조태일 같은 친구들이 있어서 함께 어울렸죠. 특히 시인인 김현승 선생님을 너무 존경했어요. 고등학생인 우리를 데리고 숲 산책을 하면서 시는 무엇이고 인생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하시곤 했죠. 사실 김현승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 시를 쓰게 된 거예요.”
1965년 ‘현대문학’에 시 ‘천재들’이 추천되어 등단한 문 작가는 전남대학교 철학과, 숭실대학교 기독철학과를 거쳐 조선대학교 국문과를 다니면서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에서 독일어 강사를 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삶이라고 보기 힘들었기에 내심 답답했던 그는 신문사로 갔다. 신문사에서 일하며 독일 연수를 다녀오니 유신이 나라를 뒤집어놨다. 절박해진 현실에서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됐고, 마침내 1974년에 ‘백제의 미소’가 ‘한국문학’에 당선되어 소설가라는 명찰을 달았다.
“그때가 서른네 살이었으니 늦게 된 편이었죠. 쓰고 싶은 욕망이 넘쳤고 너무 많이 썼어요. 그런데 내가 죽은 후에 이 많은 작품들 중 몇 편이나 살아남을까 싶어요. 살아남을 수 있는 작품을 쓸걸 하는 아쉬움이 있죠. 최하림, 이청준, 조태일을 보세요.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그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넘쳐났어요. ‘야, 이청준이도 아직 살아 있고 최하림도 살아 있네’ 했죠. 단 한 작품이라도 시공을 초월해 살아 있으면 돼요. 그걸 일찍 깨달으면 많이 쓸 필요가 없어요. 작가들은 헛된 욕심 때문에 막 쓰게 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괴로운 존재죠.”
문학은 역사의 칼
문 작가가 오래 살아남을 작품을 못 썼다는 자괴감을 갖고 있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그에겐 이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대표작 ‘징소리’와 ‘타오르는 강’이 있지 않은가. 이제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차례였다. 그의 초기 작품세계는 누가 봐도 철저한 리얼리스트의 감성을 보여준다.
“문학은 역사의 칼이다, 잘못된 역사는 문학이란 칼로 베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창작과비평사 외에는 내 글을 안 받아주더군요. 주변에서도 ‘너무 색깔이 강하다,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그는 ‘빼앗기고 짓밟혔을 때 울부짖는 소리야말로 문학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문학은 관념이 아니라고 봤던 것이다. 철학과 출신으로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어까지 배운 그가 그렇게 말한다는 게 이채롭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은 ‘알 만큼 알기 때문에’ 내놓을 수 있는 말일 수도 있다.
“관념적 주제를 만들기는 굉장히 쉬워요. 황석영이 한 말이 있는데, 관념은 보기 좋은 상자를 보기 좋은 종이로 싸서 계속 끌러 봐도 상자들만 나오다가 맨 마지막에 찌그러진 성냥통을 보면서 ‘휴, 소설 쓰기 어렵다’라고 말하는 거라고 한 적이 있어요. 저도 똑같은 생각이었죠. 우리 삶의 실체를 보고 거기서 주제를 이끌어내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징소리’가 주는 울림
문 작가의 신념과는 달리 주변에서 그의 소설을 보고 자꾸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했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그럼 한번 해보겠다’며 작심하고 내놓은 소설이 ‘징소리’였다.
교과서에도 수록되며 많은 독자에게 읽혀온 문순태 작가의 대표작 ‘징소리’. 이 작품에서 그는 20세기를 고향 상실의 시대로 정의하고 고향을 관념화해 인간성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래서 ‘징소리’에서는 ‘고향은 무엇인가’를 물으며 인간 존재의 양식으로서의 고향을 보여주길 시도했다. 그 결과 평론가들의 찬사가 이어졌고 ‘징소리’는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됐다. 그는 그때를 계기로 문학 예술성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그에게 문학은 어떻게 정의되고 있을까?
“육십이 되니 ‘문학은 역사의 칼에서 삶의 길 찾기로 변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됐어요. 문학은 시대정신을 꿰뚫어보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혜를 빌려주는, 그래서 무엇이 인간다운 삶인가에 대한 길 찾기가 돼야 한다고 봐요. 이제는 ‘성찰의 거울’이 되길 바랄뿐이에요.”
얼마 전 국민대학교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 자리에서 나이 들어 그가 갖게 된 문학관을 설명하자, 학생 한 명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선생님도 도인이 됐다는 소리군요?”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한 소리였다고 한다. 물론 문학에서의 깨달음은 중요하다. 그러나 깨달음은 자칫 작가로 하여금 현실과 유리된 세계 속에 빠뜨려 방관자로서의 공허한 외침만 반복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철저한 리얼리스트였던 그는 순간 당황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그는 ‘역사라는 칼은 주머니칼로 변해서 아직 내 주머니에 있다’고 답했다. 그것을 증명하는 작품이 그 자신이 진정한 대표작이라 여기는 ‘타오르는 강’이다.
평범한 사람이 바꾸는 세상을 꿈꾸다
36년.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 전 9권의 완결을 맺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말 그대로 문순태 작가의 반생이 담긴 작품이다.
그가 1970년 무렵 신문사 문화부 기자였을 때 나주 양반집 취재를 간 적이 있었다. 1886년에 노비제가 폐지되면서 노비문서를 나눠줬는데, 그 집 할머니가 문서를 보여주며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그때 당시 노비들은 울면서 내쫓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노비들은 자의적인 삶을 산 사람들이 아니니 그런 반응이 나온다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는 얘기를 듣는 순간 ‘아 이건 뭐가 있다’ 싶어서 노비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기사화했다. 그리고 이를 소설로 써서 ‘월간중앙’에 연재한 것이 바로 ‘타오르는 강’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꿈이 있어요. 제 소설에서는 의도적으로 지식인을 등장시키지 않아요. 평론가들은 지식인이 등장해야 소설이 고급화된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긴 해요. 그런데 지식인들은 세상을 정직하게 보지 않습니다. 굴절시키고 자기화하죠. 그러나 무지렁이는 있는 그대로 보고 전달합니다. 나 또한 지식인이지만 지식인처럼 그러고 싶지는 않았어요. 지식인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내 소설을 받아들이고 삶의 변화를 가져오길 바라는 마음이 ‘타오르는 강’을 쓴 동기였죠.”
작가는 언어의 채굴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그는 ‘타오르는 강’에 심혈을 기울여 전라도의 정서와 역사를 담아냈다. 한 국어학자는 문 작가를 가리켜 우리나라 소설가 중 전라도 토박이말을 가장 폭넓게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만큼 향토색이 가득한 작품이다.
“‘타오르는 강’이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왔을 때 잘 안 팔렸어요. 어떤 사람이 사투리를 전부 표준어로 바꿔라, 그러면 팔릴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그 책을 읽고 있던 법정 스님이 누군가에게 그 말을 듣고는 ‘어떤 미친놈이 그런 말을 하냐’고 화를 내셨습니다. 토박이말은 그 지역의 혼이 담겨 있는 것이라면서요. 그래서 아예 3년에 걸쳐 ‘타오르는 강’ 토박이말 사전을 별도로 만들었어요. 그 뒤로 단어를 모르겠다는 전화가 오면 그거 읽어보라고 했죠.(웃음)”
관계를 끊어야 본래의 나를 찾는다
‘타오르는 강’을 집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전라도를 떠나본 적이 없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특히 광주는 계속해서 일하며 지낸 운명적 장소다. 전남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주필까지 한 그는 작년까지도 유니버시아드의 오프닝과 폐막 시나리오, 광주전남연구원 이사장 등 사회적인 역할을 계속 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정리할 때라고 보고 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뒤로 물러서서 지갑을 자주 열고 좋은 말을 해줘야 하는 법이죠. 그런데 관계를 정리하느라 하나하나 끊을 때마다 외롭긴 해요.”
인간은 욕망이 무한한 존재이기에 욕구충족을 위한 경쟁을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욕망이 의미 없다는 걸 깨닫고 버리게 된다. 그래서 문 작가에게 세상과의 관계를 끊는 것은 본래의 나로 돌아오는 일이다.
“관계를 많이 유지하며 죽는 것은 괴로워요. 그러나 나에게로 돌아와서 죽는 것은 멋진 일이죠. 나이 들수록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욕망을 가진 채로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절대로 안 돼요. 죽음도 존엄하지 않고요.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때 존엄한 죽음이 가능하죠. 제가 고향에 돌아온 것도 그걸 위해서예요.”
작은 것에서 감동받는 게 삶의 희망
문 작가는 “풀벌레와 나비와 경쟁할 거냐?”고 되물으며 웃었다. 고향의 자연 속에 있다 보니 한없이 낮아진 자신을 발견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작가는 미세한 존재를 통해 우주를 보는 사람입니다. 작은 곤충 속에서 우주를 보니 제가 낮아져요. 무라카미 하루키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인 ‘소확행’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죠. 젊을 때는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보여요. 빨간 것은 빨간색으로밖에 안 보이죠. 그러나 나이 들면 빨간색 안에 많은 색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총체적으로 보는 안목이 생기니까, 나이 들어가면서 시력은 점점 더 나빠지지만 세상은 더 잘 보여요.”
최근 핸드드립 커피에 푹 빠져 지내는 그는 과테말라산 ‘안티구아’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과테말라 정부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커피농장 노동자 2만여 명을 학살한 역사가 떠올라서 슬픈 영혼들을 생각하며 ‘검은 눈물’을 마신다고 말했다. 수많은 작은 것들에는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으면 모를 삶과 역사가 새겨져 있다. 그래서 삶은 작은 것에서 감동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매사에 의미를 부여해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남 험담하고 쓸데없는 것에 시간 보낼 필요 없잖아요. 사실 우리는 감동받을 게 굉장히 많은데, 지금까지 너무 냉정하게 살았어요. 작은 것에서부터 감동을 받는 것, 이것이 삶의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읍내’ 작가 쏜톤 와일더 말처럼 ‘인생은 커피 마시고 싶을 때 커피 마시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는 것’인가보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순수하고 맑은 성정을 가진 문순태 작가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무등산 자락 산골 생오지의 고추잠자리를 보았다.
문순태 소설가
1939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광주고등학교, 조선대학교 문학부와 숭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되었고 1974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징소리’, ‘고향으로 가는 바람’, ‘철쭉제’, ‘된장’, ‘울타리’, ‘생오지 뜸부기’ 등과 장편소설 ‘걸어서 하늘까지’, ‘그들의 새벽’, ‘41년생 소년’, ‘도리화가’, ‘소쇄원에서 꿈을 꾸다’,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전 9권) 외에 시집 ‘생오지에 누워’가 있다. 순천대학교와 광주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고향 담양에서 ‘생오지문예창작촌’을 열어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귀농·귀촌을 결심하기 전, 원하는 마을을 미리 둘러보게 될 것이다. 이왕 방문을 계획했다면 휴가를 겸해 마을의 명소와 맛집도 두루 즐기고, 다양한 농촌 체험도 맛보기로 해보자. 마을의 자연과 전통문화를 활용해 체험과 휴양 공간을 제공하는 ‘농촌체험휴양마을’에서라면 가능하다. 지 단편적인 사례를 통해 귀촌·귀농의 성패 요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 제공 및 도움말 웰촌
◇ 전북 고창군
‘구시포 해수욕장’은 해변이 넓고 완만해 아이부터 노인까지 안전하게 즐기기 좋은 피서지다. 이곳에서 차로 5분 남짓 거리의 ‘상하농원’은 이국적인 풍광과 더불어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최근 tvN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주목받고 있는 ‘고창 학원농장’은 한여름이면 해바라기가 만개해 절경을 이룬다. ‘미당시문학관’, ‘선운사’, ‘고창 고인돌유적지’ 역시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고창 여행 필수 코스 중 하나다.
체험 포인트>> 상하농원 상하농원에는 우유 제조공장 견학을 비롯해 머핀 만들기, 아이스크림 만들기 등 다양한 먹거리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또 올해 7월부터 ‘파머스빌리지’를 열어 운영 중이다. 농원 식당과 테라스 룸, 패밀리 룸 등 숙박 공간도 마련돼 있으니 여행 일정에 참고하자.
◇ 경북 예천군
‘삼강주막마을’에서는 두부, 묵, 배추전 등과 곁들여 먹는 막걸리 한 상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내성천이 휘감아 돌아나가는 ‘회룡포마을’은 육지 속 섬처럼 독특한 모습이다. 인근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은 예약을 통해 무료로 양궁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출렁다리마을’은 시골 인심 가득한 밥도 먹고, 다양한 농산물 수확 체험까지 즐기기 제격이다. 여행을 끝내기 아쉽다면, 마을에서 차로 15~20분 거리에 있는 ‘문경주조’에서 오미자막걸리 한잔 어떨까?
체험 포인트>> 삼강주막마을 500년 수령의 회화나무가 지키고 있는 삼강주막마을에서는 떡메치기, 팥죽 끓이기, 양반 자전거 타기, 양반 과거길 체험 등을 경험할 수 있다. 하루 묵어갈 계획이라면 황토찜질을 겸하는 황토방과 한옥 스타일의 민박, 체험관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 경남 하동군
화개천 계곡을 따라 4.2km 이어지는 ‘서산대사길’은 실제 서산대사가 걸었던 길이다. 걷다 보면 그 끝자락에 ‘지리산역사관’이 보인다. 지리산 반달가슴곰이 사는 마을로 유명해진 ‘의신마을’에서는 계절마다 다양한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난다. 이곳에서 하루 묵은 뒤 다음 날에는 ‘화개장터’로 향하자. 끝으로 ‘박경리문학관’과 소설 ‘토지’의 배경인 ‘최참판댁’에 들러 수시로 열리는 문화행사에도 참여해보자.
체험 포인트>> 의신마을(베어빌리지)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을 만나는 탐방 해설과 야생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리산 청정 지역에서 나는 산약초, 산나물 등을 직접 채취해볼 수 있다. 베어빌리지와 도서관, 놀이터, 캠핑장 등도 이용 가능해 손주와 함께라면 더욱 유익하다.
◇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과 감악산이 둘러싼 ‘산머루마을’은 계절에 따라 산나물 캐기, 요리체험, 문화답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곳에서 1979년부터 머루 재배를 시작한 ‘산머루농원’에서는 머루 관련 체험뿐만 아니라 와인숙성터널 관람 및 머루와인 시음까지 즐길 수 있다. 파주 일대에서 가장 높은 감악산(675m)에는 국내에서 최장 길이의 출렁다리가 있다. 높이 45m, 길이 150m에 이르는 출렁다리를 건너다 보면 운계폭포가 보이고, 그 끝자락에 법륜사가 나온다.
체험 포인트>> 산머루농원 ‘산머루 와이너리 투어’, ‘머루 수확 체험’, ‘나만의 와인’을 비롯해 ‘패키지체험’(머루 초콜릿, 머루 잼, 머루 비누 만들기, 와이너리 투어 및 시음)을 예약제로 운영한다. 와인을 즐기는 어른부터 달콤한 초콜릿을 좋아하는 아이까지 두루두루 유익하다.
◇ 충남 금산군
‘대둔산 자연휴양림’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이 다녀가며 잘 알려졌다. 편백 숙소, 피톤치드 치유의 방을 비롯해 집라인과 글램핑장 등 레저 시설도 마련돼 있다. 휴양림 산책을 마친 뒤에는 ‘금산인삼약령시장’에 들러보자. 전국 인삼 생산량의 80%가 거래되는 곳으로, 각종 인삼류와 약초를 20~50% 할인한다. ‘조팝꽃피는마을’은 그 이름처럼 조팝꽃 자생 군락지가 유명하다. 대표 특산물 인삼과 각종 농산물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체험 포인트>> 조팝꽃피는마을 희망센터캠핑장, 농촌인성학교 등을 운영하고, 여름에는 들깨 모종, 깻잎 따기, 매현천 물고기 잡이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볏짚 공예, 풍등 날리기 등 전통문화체험과 인삼 수확체험, 인삼콩 두부 만들기 등 인삼을 활용한 프로그램도 인기다.
◇ 강원도 횡성군
‘풍수원성당’은 빨간 벽돌과 뾰족한 종탑이 어우러진 클래식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풍수원성당을 둘러본 후에는 ‘오마이갤러리’에 방문해 명화를 감상해보자. 트릭아트, 3D 입체 명화 등을 즐길 수 있다. 맛집과 체험을 모두 겸비한 오음산캠프는 산골 부녀회가 직접 나선 농가 맛집 ‘오음산 산야초밥상’과 농촌체험학교 ‘꿈꾸는풍뎅이’를 운영한다. 농촌의 계절 음식과 문화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귀농·귀촌을 염두에 둔 중장년층이 즐겨 찾는다.
체험 포인트>> 오음산캠프 오음산 산야초밥상은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밥상을 즐길 수 있다. 해바라기 씨가 들어간 도토리묵과 매일 아침 만드는 손두부를 등 시골건강밥상을 내놓는다. 꿈꾸는풍뎅이 학교에서는 향토절기문화교육, 친환경 제품 만들기, 숲속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365일 즐기는 농촌체험관광 포털 ‘웰촌’
'웰촌' 웹사이트에서는 전국 농촌체험휴양마을이 등록돼 각종 정보 및 서비스를 살펴볼 수 있다. 특정마을 소개 및 체험 프로그램, 숙박·캠핑, 음식·특산물 등은 물론 인근 관광지와 맛집까지 소개한다. 사이트 내 추천 여행코스와 네티즌 여행코스를 참고하면 일정을 잡는 데 수월할 것이다. 나만의 색다른 여행코스를 만드는 서비스와 농촌여행 스탬프 투어 등 이벤트 소식도 제공한다.
직장을 퇴직한 시니어 중 하는 일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남달리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바로 액티브 시니어다.
바쁘든 바쁘지 않든 그동안 살아온 인생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왕성한 에너지로 책을 쓰고 글을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목적을 위해 내가 10년 전에 시작한 것이 ‘책과 글쓰기 학교’다. 2년 전까지는 ‘에세이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전문 수필가를 모시고 수필 쓰기 중심으로 학교를 운영했다.
책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현재 밴드 회원이 불과 1년 만에 30명에서 3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글을 잘 쓰려면 전문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뭐든 쓰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오프라인에서 매월 두 번째 화요일 모임을 갖고 있다. 현재 네이버 밴드에 가입한 회원 중 70여 명은 연회비(30만 원)를 내고 있다.
월례회 모임은 1, 2부로 진행된다. 1부에서는 책을 많이 낸 전문 작가 선생님이 한 시간 특강을 하고, 2부에서는 회원들이 써온 글을 작가 선생님이 하나하나 교정해준다. 자신이 써온 글을 직접 교정받는 과정을 통해 제대로 글쓰는 방법도 배우고 자신감도 키운다. 실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다.
책·글쓰기 학교는 단지 글쓰기 공부에 그치지 않고 책쓰기에 대한 특강도 하고 문학기행도 한다. 책쓰기는 책을 한 번도 내보지 않은 왕초보 회원들에게 책쓰기에 대한 기본은 물론, 기획서 작성 등 전체 프로세스를 알려주고 출판사까지 연계해주어 결과물이 조기에 나오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지금은 한 달에 2~3명이 책을 출간하고 있다. 금년 말에는 회원들이 쓴 글들을 모아 10주년 기념 문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문학기행은 1년에 한두 번 하고 있는데 작년 하반기에는 풀꽃으로 유명한 나태주 문학관을 다녀왔고, 금년 상반기에는 중국 길림성에 있는 용정의 윤동주 문학관을 다녀왔다.
이제는‘2060’시대라 한다. 20대부터 80세까지 60년 동안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60세도 20년은 현역으로 움직여야 한다. 책쓰기와 글쓰기는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 한 해고가 없다. 누구든 나이에 관계없이 용기를 내어 평생학교에 입학하라. 책쓰기, 글쓰기 학교라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