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이다. 1월 마지막 주 토요일, 추위가 좀 누그러진 것 같아 뮤지컬을 보러 대학로에 나갔다. 이곳에는 수많은 소극장이 있는데 자주 오다 보니 이제는 어디에 무슨 극장이 있는지 정도는 알게 됐다. 관람 작품은 ‘풍월주’. 신라시대의 스토리를 무대에 올린 픽션 창작극이다.
마로니에 공원길을 따라 유니플렉스 소극장을 찾았다. 몇 번 연극을 보러왔던 장소라 낯이 익다. 좌석 이름을 부이석이라 표현했는데 아마도 VIP석을 예스럽게 말한 듯 보였다. 1층 8열, 작품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자리였다.
연극이나 뮤지컬에 따라 사진을 허용하거나 제한하기도 하는데 ‘풍월주’는 막이 오른 뒤부터 커튼콜까지 사진 촬영이 불가하다고 했다. 보통은 커튼콜을 할 때 사진 촬영 정도는 허락하는데 이 작품은 촬영이 금지됐다. 아쉽게 로비에 마련된 포토존과 시작 전의 무대를 한 장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배우들이 등장했는데 의상이 좀 이상했다. 신라시대의 전통 의상을 예상했는데 다들 코트를 입고 있어 의아했다. 성의가 없어 보였지만 의상보다는 이야기에 공을 들였을 거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풍월주는 창작 뮤지컬로 벌써 네 번째 시즌 공연을 맞이했다. 그만큼 관객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시원하면서도 애절한 배우들의 노래가 감성을 자극했다. 풍월주는 신라시대 때 화랑의 우두머리를 이르던 말인데 이후 화랑도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게 됐을 때 각 갈래의 우두머리를 칭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뮤지컬은 남자 기생 풍월들에 관한 이야기다. 귀부인이나 높은 신분의 여인들을 상대하는 남자들이 모인 ‘운루’. 각각의 사연으로 이곳에서 지내는 그들을 바람과 달의 주인인 의미로 풍월주라 불렀다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열’은 풍월주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다.
핏빛 개혁의 중심에 선 진성여왕은 부귀영화를 약속할 정도로 ‘열’을 사랑하지만 그는 운루의 동료이자 오랜 친구인 ‘사담’ 때문에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열’이 궁으로 들어오라는 여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자 진성여왕은 사담을 찾아가 자결할 것을 명한다. 정인의 마음을 얼마나 얻고 싶으면 저렇게까지 할까? 진성여왕의 악마 같은 행동이 미웠지만 한편으로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잘되겠냐?”고 절규하는 사담과 “네가 죽으면 모든 것이 잘될 거다”라고 처절하게 울부짖는 진성여왕의 이중창이 너무나 애절해서 눈물까지 났다. 결국 사담은 절벽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지만 진성여왕은 끝내 ‘열’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
뮤지컬 배우들은 어쩌면 그렇게 노래를 잘할까? 몽환적인 무대 분위기와 이색적인 소재의 뮤지컬이 마음을 울렸고 다양한 레퍼토리가 신비로웠다.
설 명절 연휴가 이어지는 2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뮤지컬) 파가니니
일시 2월 15일~3월 31일 장소 세종M씨어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비운의 대가로 남게 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와 ‘바이올린 협주곡 2번-라 캄파넬라’ 등을 재편곡해 매력적인 ‘록클래식’으로 선보인다.
(오페라) 테너 마르첼로 알바레즈 내한공연
일시 2월 19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전설적인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발굴한 천재 아티스트 ‘마르첼로 알바레즈’.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인정받으며 전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 무대를 석권한 그의 첫 내한공연이다. ‘카르멘’, ‘팔리아치’, ‘투란도트’ 등 총 13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100분간 오페라 세계에 흠뻑 빠져보자.
(클래식) 알리나 이브라기모바&세드릭 티베르기엥 듀오
일시 2월 21일 장소 LG아트센터
영국의 대표 신문 ‘타임스’가 ‘음악계를 평정할 듀오’라며 극찬한 바이올리니스트 알리나 이브라기모바와 피아니스트 세드릭 티베르기엥. 이들의 합주로 낭만주의 실내악 명곡인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3번)’을 들을 수 있다.
(연극) 자기 앞의 생
일시 2월 22일~3월 23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출연 양희경, 이수미, 김한, 오정택, 정원조 등
세계 3대 문학상인 ‘프랑스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자기 앞의 생’이 원작이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랍계 소년 ‘모모’와 돈을 받고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키우는 유대인 보모 ‘로자 아줌마’의 대화를 통해 사회적 차별과 약자의 현실을 고발하는 수작이다.
(콘서트) 미스터션샤인 OST 오케스트라 콘서트
일시 2월 24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출연 안두현, 이현진, 송민제, 이신규
20세기 초 조선 의병들의 의와 사랑 이야기로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던 tvN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각종 차트를 휩쓴 미스터션샤인 OST가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재탄생했다. 뮤직비디오 영상과 함께 음악을 감상하며 드라마의 감동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
개봉 2월 27일 장르 다큐멘터리 출연 강금연, 곽두조, 박금분 등
인생 팔십 줄에 한글과 사랑에 빠진 할머니들의 욜로(YOLO) 라이프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경북 칠곡에 사는 ‘평균 86세’ 꽃다운 청춘들이 배움의 즐거움에 빠져 인생을 재밌게 사는 비법을 전수한다.
(전시) 로메로 브리토 : Color of Wonderland
일정 1월 3일~3월 10일
장소 3·15아트센터 제1, 2전시실
팝아티스트 로메로 브리토의 회화와 조각, 영상미디어 등 총 100여 점의 작품을 공개한다.
밝은 색상을 많이 사용하는 그의 작품에는 유쾌한 에너지가 담겨 있어 ‘힐링 아트’라는 애칭이 따르고 있다.
(축제) 화천산천어축제
일정 1월 5~27일
장소 강원도 화천군 일원
5년 연속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꼽힌 화천산천어축제가 개막한다. 올해는 산천어 수상낚시, 루어낚시, 밤낚시 등의 산천어 체험과 눈썰매, 봅슬레이, 얼음축구 등으로 구성된 눈·얼음 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뮤지컬) 라이온 킹
일정 1월 9일~3월 28일
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오페라극장
출연 느세파 핏젱, 캘빈 그랜들링, 데이션 영 등
한국에서 원어로 만날 수 있는 최초의 ‘라이온 킹’ 오리지널 팀의 공연이다. 무대 위에 펼쳐지는 아프리카 초원, 그리고 화려한 의상과 가면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 그린 북
개봉 1월 10일
장르 드라마
출연 비고 모텐슨, 마허샬라 알리 등
천재 피아니스트와 망나니 매니저가 투어를 다니며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다.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며 작품상 등 골든글로브 5개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공연) 레젼드 마술쇼
일정 1월 17~25일
장소 공연하닭
출연 김준표
마술사 김준표가 진행하는 ‘레젼드 마술쇼’는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소규모의 근거리 마술 공연이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술을 마시면서 관람할 수 있다는 점. 50분간 믿기지 않는 마술의 세계에 푹 빠져보자.
(연극) 오이디푸스
일정 1월 29일~2월 24일
장소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출연 황정민, 배해선, 남명렬 등
연극, 영화,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수없이 재해석되고 있는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을 무대로 옮겼다. 배우 황정민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의 남자 ‘오이디푸스’로 변신해 기대를 모은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편집되고 재해석된다. 사실 깨진 사금파리 조각같이 파편화한 역사적 사실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조각들을 다시 짜 맞추어 형상과 의미를 부여한 것이 이른바 역사 기록이다. 역사를 재구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는 현재의 기록자이므로 역사 기록에는 당대의 시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는 과거의 왜곡인 동시에 현재의 진실이다.
춘추필법이라는 역사가 그럴진대 개인의 기록들은 말할 나위가 없다. 소위 자서전이나 전기라 이름 붙은 책들은 현재의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된다. 대선이나 총선을 앞두고 갑자기 출마가 예상되는 사람들의 자서전이 쏟아져 나오곤 하는 것이 이런 이치다. 대필 작가에 의해 ‘천사의 편집’을 거쳐 나온 개인의 역사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다. 당선 필요라는 진실이 거짓된 과거를 지어내는 셈이다.
의도된 거짓은 아닐지라도 관객의 감동을 자아내기 위한 사실의 왜곡은 어떨까. 최근 우리나라에서 천만 관객을 바라보는 흥행 신드롬을 일으키며 역주행 중인 음악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이야기다. 처음에는 이 노래를 발표한 영국의 록그룹 ‘Queen’을 경험한 4050 이상에서나 관심을 가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어느덧 2030들까지 감염되어 이 영화에 열광한다. 게다가 영화관에서 떼창까지 하는 지경이다.
사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 영화는 상당 부분 사실을 왜곡했다 한다. 오죽하면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죽은 후 퀸을 대변하고 있는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관객들이 한 편의 디즈니 영화를 보듯이 즐겼으면 한다. 이 영화는 퀸의 영화가 아니라 프레디의 영화다”라고 했을까. 매우 점잖은 대응이지만, 불편한 심경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관객 감동을 끌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재편집된 작품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본국인 영국을 넘어서는 흥행으로 치닫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우리나라 관객들이 음악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라라랜드’를 비롯해 많은 음악영화가 흥행에 성공했으며 뮤지컬 장르가 성행하는 것만 보아도 우리 관객의 취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지금의 ‘보헤미안 랩소디’ 신드롬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듯하다.
물론 퀸의 음악은 좋다. 음악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도 제목은 모른 채 어디선가 한두 번은 들었을 정도로 지금까지 주위에서 널리 연주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을 들으며 ‘아, 이 곡이 퀸의 노래였구나’ 하는 감탄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퀸의 음악은 실험성이 강하다. 영화 제목인 ‘보헤미안 랩소디’도 당시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6분이라는 긴 시간을 견뎌낼 방송 PD는 없을 정도였다.
그들의 이런 실험성과 도전정신이 우리 관객의 동의를 얻은 것은 아닐까.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음악으로써 이 영화의 탁월한 전략은 마지막 20분여에 걸친 1985년의 ‘라이브 에이드’의 재현일 것이다. 관객 중에는 2002년 월드컵 이래 이런 속 시원한 기분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즉 암담한 정치, 경제 상황에서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감동이 절실했던 국민에게 이 영화가 시원한 사이다가 된 셈이다.
아울러 사실과는 좀 다를지언정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가 겪었던 기구한 인생역정이 관객들의 감정선을 건드렸던 듯싶다. 특히 보잘것없는 인도계 잔지바르 출신 이민가정으로서 갖은 무시와 따돌림 속에 외로움을 겪는 머큐리의 모습이 오늘날 한국의 흙수저 의식을 자극해 연민을 자아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영화는 우연히 울고 싶었던 한국인의 뺨을 후려갈김으로 흥행 성공 신화를 썼다.
(전시)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일정 12월 4일~2019년 3월 3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 미국, 영국, 이탈리아, 중국, 일본 등 국외 5개국과 한국이 참여한 이번 전시에서는 고려의 미술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주요 문화재 총 390여 점이 출품된다.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
일정 12월 6일~2019년 1월 27일 장소 아트원씨어터 1관 출연 이순재, 박인환, 손숙, 정영숙 등
강풀 웹툰을 원작으로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던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대학로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우유 배달을 하는 ‘김만석’과 파지를 줍는 ‘송이뿐’, 주차관리소에서 일하는 ‘장군봉’과 기억을 잃어버린 ‘조순이’가 서로 인연을 맺고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베테랑 연기자 이순재, 박인환, 정영숙 등이 출연한다.
(축제) 보성차밭빛축제
일정 12월 14일~2019년 1월 13일 장소 한국차문화공원 일원
차밭 빛물결, 은하수 터널, 빛 산책로, 디지털 차나무, 차밭 파사드 등 아름답게 꾸며진 빛 조형물이 보성의 겨울밤을 장식한다. 주말에는 불쇼, 불꽃, 음악, 레이저 조명이 어우러진 불꽃 공연, 실내정원에서 펼쳐지는 판타지 공연, 해외특별 공연 등이 진행된다. 또 소망카드 달기, 문화장터 등의 상설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영화) 스윙키즈
개봉 12월 19일 출연 도경수, 박혜수, 자레드 그라임스 등
1951년 거제 포로수용소, 탭댄스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오합지졸 댄스단 ‘스윙키즈’의 탄생기를 그렸다. 종군기자 베르너 비숍이 포로수용소에서 촬영한 사진 한 장이 모티프가 됐다.
(뮤지컬) 마리 퀴리
일정 12월 22일~2019년 1월 6일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출연 김소향, 임강희, 박영수, 조풍래 등
프랑스의 물리학자 마리 퀴리는 방사능 연구를 통해 방사성 원소인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는 등 새 방사성 원소를 탐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라듐의 유해성을 알게 된 그의 인간적인 고뇌를 작품에 담았다.
(전시) 피카소와 큐비즘
일정 12월 28일~2019년 3월 31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입체미술 운동의 탄생 배경에서 소멸까지의 흐름을 연대기적 서술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 ‘근대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 등 유명 작가의 진품 명화 9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깊고 외진 산골에 마녀들이 산다. 오순도순 친자매들처럼 정겹게 지낸다. 산골짝 여기저기, 멀거나 가까이에 떨어져서들 살지만 여차하면 만나고 모이고 뭉친다. 모임 전갈이 떨어지면 빗자루를 타고 나는 마녀처럼 모두들 득달같이 달려와 자리를 함께한다. ‘마녀들’이라지만 위험하거나 수상할 게 없는 아줌마들이다. ‘마음씨 예쁜 여자들’, 그걸 줄인 게 ‘마녀들’이라지.
‘마녀들’ 여섯 명은 모두 귀농인이다. 산골에서 산 세월의 길이는 저마다 다르지만 다들 농업을 통해 소득을 올린다. 모임을 제안해 만든 건 된장사업을 하는 임미숙(60) 씨. 지금으로부터 6년 전, 그녀는 귀농 동기인 강성대(70, 명박골 표고버섯) 씨를 왕언니로 해 동아리를 꾸렸다. 임미숙 씨는 도시에서 사업상의 부침을 거듭하다 활로를 찾아 7년 전에 이 산골로 귀농을 했다. 나 이제 욕심을 싹 비우고 살래! 그런 다짐을 하며 어버이처럼 푸근한 시골의 자연 속으로 거침없이 이주했다. 이후 용케도 그녀는 발랄한 또래 아줌마들을 만나 사교를 했다. 마침내 죽이 맞아 단단한 우애를 쌓게 되었다. ‘마녀들’이라는 모임 이름은 그녀의 작명.
“귀농으로 맺어진 우연한 인연이지만 친자매 같은 정을 나누고 지내니 큰 행운이죠. 귀농 직후 저는 갖가지 어려움을 겪었어요. 무엇보다 된장을 만드는 기술도 힘도 부족했어요. 혼자 끙끙거리며 남들 몰래 공부를 하고 실습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던 중 인근 마을의 또래 아줌마들이 드나들며 일을 도와주었지요. 모두들 귀농 선배들이라 일 외에도 여러모로 배울 게 많았어요. 게다가 살가운 여자들이라 순식간에 정도 들었고요. 그게 ‘마녀들’ 모임의 배경이에요.”
우정이란 고독한 인생을 보완해주는 보약. 소소한 사교 이상의 결속력으로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마녀들’ 모임은 시골살이를 한결 생동하게 하는 힘이 돼주었다. 이들이 모이면 일이 벌어진다. 또는 일이 생길 때면 재까닥 모인다. 생일 같은 축일엔 파티를 펼친다. 김천농업기술센터가 개설한 음식연구회에 참여해 함께 요리를 배운다. 귀농 교육생들이 찾아들면 모두 발 벗고 나서 일을 거들거나 팜파티를 펼친다. 농번기엔 일손이 딸려 애를 먹는 곳이 농촌이지만 이들은 끄떡없다. 우르르 자매들의 농장으로 번갈아 달려가 일을 해치운다는 게 아닌가. 품앗이의 귀감이다.
“마녀들 또 뭉쳤네!”
때로 외롭거나 따분할 수 있는 게 산골살림이다. 뒷산 소나무 외엔 불만을 털어놓을 상대가 더 이상은 없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는 게 귀농생활이다. 하지만 ‘마녀들’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해결한다. 끝없는 수다와 깔깔대는 웃음이 꽃처럼 피어 내부에 웅크렸던 그늘을 헹궈낸다. 멀리 대구로 나가 뮤지컬이나 영화를 즐기기도 하고, 더 먼 곳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은 탄성을 내지른다지. “어라? 마녀들이 또 뭉쳤네!”
농사란 어쩌면 희한한 방식의 고행. 난다 긴다 하는 고수가 아니고선 실패하기 십상이지 않던가. 그런데 말이다, 놀랍게도 마녀들은 모두 순항하고 있다. 다들 김천 관내에서 손꼽히는 강소농으로 알려졌다. 면면을 볼까? 마녀들 가운데 유일한 독신인 임미숙 씨는 된장사업에 야무지게 매달려 기반을 잡았다. 조현숙(60) 씨는 보리떡을 만들어 기세를 돋운다. 구나윤(58, 삼도봉 천마농장) 씨는 천마 재배로 5억 원의 연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전경정(58, 새송이 청암농장) 씨는 고품질 유기농 새송이버섯을 생산하는 유력 농군으로 부상했다. 양봉으로 꿀을 생산하는 이선화(57, 도마네 꿀집) 씨도 억대농.
화려한 이력들이다. 모든 귀농인들이 사력을 다해 성공을 추구하지만 숫제 물거품이 되는 경우마저 숱하다. 마녀들은 하늘의 자비로운 협찬을 유달리 옹골차게 누렸을까? 그럴 리가. 그들은 남들보다 더 분발하고 남들보다 더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고서도 참담하게 무너지기도 했다.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바닥을 친 그 좌절의 힘으로 다시 튀어 올랐다. 인생이란 실로 역전과 반전의 드라마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얘길 들어볼까.
구나윤 “천마 재배 이전에 다른 작물을 다양하게 재배했어요. 하지만 실패만 거듭했죠. 가지고 있던 자금을 다 털어먹고 빚만 잔뜩 남았을 때 실의 속에서 착안한 게 천마 재배였어요. 그러나 이마저 뜻대로 되질 않았어요. 복잡한 재배와 생산 과정을 숙달하고서도 판로가 여의치 않더라고요. 게다가 값싼 중국산마저 마구 밀려들었고요. 그러나 끈질기게 한 우물을 파겠다는 신념으로 포기하지 않았어요. 초기엔 한 해 빚만 1억 원에 달할 정도로 큰 실패를 봤지만 무심한 하늘을 원망하는 것으로 실의를 털고 다시 일어서야만 했어요.”
전경정 “저는 귀농 1세대에 속해요. 원래 시골을 좋아했기에, 시골에 사는 게 꿈이었기에, 귀농에 만족했어요. 하지만 농업이란 정말 만만치 않았어요. 본격적으로 새송이버섯 재배에 나선 게 10년 전이었는데 처음엔 고전의 연속이었죠. 모든 재산이 경매로 사라지는 곤경에 처하기도 했어요. 벼랑 끝까지 몰렸던 셈이죠.”
구나윤 “저희 농장의 문제는 판로에 있었지요. 제아무리 고품질 천마를 생산한다 하더라도 안정적인 판로를 구축하지 못하면 헛수고에 그치고 말아요. 그래서 인터넷 마케팅에 주력했고, 그건 매우 정확한 타깃이었어요. 현재 인터넷 단골 고객만 600여 명에 달해요.”
전경정 “한순간에 부도가 나자 주변 사람들이 말도 안 걸더라고요. 배척하는 그 분위기, 참 서글펐어요. 급기야 제가 간암 판정을 받는 상황까지 맞이했어요. 제대로 잘 살아보기 위해 귀농을 했는데 죽을병에 걸리다니…. 금전적 압박이 중병을 가져온 것인데 의지로 떨쳐야만 했어요. 암 치료 중에 부단히 운동을 하고, 모든 현실을 받아들여 순응을 하고 긍정심을 키우고…. 그런 노력 덕분에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어요. 버섯 재배에도 더 각별한 공을 들였어요. 남편과 함께 새벽까지 농장에서 불을 밝히고 일했어요. 그 결과 5년 전부터 빛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지금은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요. 저 들에 핀 꿋꿋한 풀꽃처럼.”
고진(苦盡)의 짝꿍은 감래(甘來)
하늘엔 때로 느닷없는 비구름이 엉기고, 인간사엔 자주 우환이 끼어든다. 하지만 지구상의 가장 강인한 생물에 속할 인간은 때로 무적함대처럼 용맹하다. 운세를 경영하는 촉이 살아 있을 경우 우환이라는 놈은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귀농으로 고진감래의 여정을 연수한 두 ‘마녀’의 술회엔 가슴을 파고드는 감명이 서려 있다. 뜬구름처럼 덧없는 게 인간사라지만, 어떤 상황에서고 할 일을 능히 찾아 치열히 행하고 볼 일이렷다.
농사 혹은 돈벌이만이 마녀들의 본분사는 아니다. 심혼을 촉촉이 적시는 정서적 만족감이 있어야 생이 즐거울 게 아닌가.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간에 이른 이 아줌마들이 갈구하는 건 즐거운 나날들의 지속일 테지. 그 어엿한 지향을 실현하기 위해 귀농을 택했고, 시골은 그녀들에게 응분의 선물을 주었다.
임미숙 “여자 혼자 사는 제 입장에선 일 자체가 매우 힘들어요. 하지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는 게 시골생활이에요. 마녀들끼리 서로 돕고 의지하고 격려하며 지내는 일에서도 커다란 보람과 즐거움을 느낍니다. 흔히들 시골엔 문화 여건이 열악한 걸로 알지만 사실과 달라요. 가령 김천농업센터만 해도 다양한 문화강좌가 개설돼 있어요. 저는 그곳에서 우쿨렐레와 천연염색을 배웠어요. 제과제빵 기술도 배웠고, 한식요리사 자격증도 땄어요.”
이선화 “시골생활 초기엔 모든 게 힘들었어요. 그러나 원래 허약 체질이었던 몸과 마음이 온전히 건강해졌는데요, 우선은 거짓말 없는 자연에 마음을 두고 산 덕분이라 봐요. 잔바람에 흔들리는 들꽃 한 포기도 사랑스럽고, 하늘과 구름과 달과도 대화가 되는 기분이에요. 저희 부부는 이동 양봉을 합니다. 철 따라 꽃 따라 산천을 찾아다니는 일이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모르겠어요. 제가 사실은 현대판 집시여인이에요.(웃음) 꽃이 좋아 꽃을 따라 늘 여행하는 여자라는 거.”
구나윤 “처음엔 시골이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았어요. 새벽부터 동동거리며 수많은 일들을 해야 했으니까요.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죠. 몸은 망가지고, 부채만 쌓이고, 화병이 생기고, 참 문제가 많았던 시절이 길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누군가 귀농을 한다면 뜯어말리고 싶을 지경이에요. 하지만 시련기가 지나고선 서서히 안도와 행복을 느꼈어요. 판로를 구축해 천마 판매에 탄력을 붙이면서였어요. 나름의 부를 일굴 수 있었던 덕이죠. 이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삽니다. 사고 싶은 것 사고, 가고 싶은 곳 가고, 먹고 싶은 것 먹고…. 거의 맨날 붙어 지내는 남편과는 충돌이 많지만, 그동안 꾹 참고 살았지만 이젠 눌려 살진 않을 거예요. 밥을 찾아 먹거나 말거나.(웃음)”
전경정 “시골이 싫다는 여성이 많지만 저는 참 좋아요. 그래서 촌스럽게 생겼을까?(웃음) 마음도 촌스러워요. 주변 산과 꽃의 경이로움을 사진에 담는 일이 참 즐거워요. 그보다 좋은 건 ‘마녀’ 언니들과 어울리는 일이에요. 제겐 원래 언니가 없어서 이 언니들에게 더 기대는지도 몰라요. 음, 농사란 좋은 직업이라 봅니다. 생명공학도라 할까? 농부는 항상 자기개발을 하는 사람이라 봐야 할 거 같아요.”
인사만 잘해도 탈날 일 없어
수많은 인구가 넘실거리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타인을 골똘히 주시하지 않는다. 피차 피곤할 수 있는 간섭을 가급적 자제한다. 그러나 시골에선 다르다. 마을 인구가 워낙 적기에 이웃에게 자연스레 관심이 쏠린다. 게다가 마을 나름의 질서와 풍습을 고수하는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누군가가 귀촌을 했다면, 그는 이삿짐을 푸는 첫날부터 무대에 오른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 놓인다. 입길에 오른다. 야무지고도 건실한 마녀들, 이들은 원주민과의 융화에 애로를 느끼진 않았을까. 들어보자.
구나윤 “시골분들이 합리적이진 않을지라도 자연스럽게 물들며 살아왔어요. 가령, 모처럼 치장 좀 하고 외출할 경우, 저걸 옷이라고 입고 다니느냐는 투의 손가락질을 당할 수도 있어요. 지나친 참견이죠. 하지만 귀농인들이 조심하며 지내는 게 상책이라 봐요.”
임미숙 “간섭으로 들릴 수 있는 얘기들을 간섭으로 듣지 않으면 돼요. 그냥 하는 소리니까요. 재치 있게 받아넘기는 게 필요하고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인사만 잘해도 탈날 게 없어요.”
전경정 “시골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건 이웃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이었어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적극 노력을 했어요. 저희 남편은 마을의 초상집을 찾아다니며 시신까지 만졌어요. 궂은일을 도맡다시피 했죠. 이웃과 어울리지 못하면, 결국 도시로 돌아가야 하는 낭패를 볼 수도 있어요.”
마을 전체를 내 집으로, 마을 주민 모두를 내 가족으로 생각한다면 실패할 일이 없겠지. 그게 쉽겠냐마는 마을 공동체를 존중하지 않고선 설 길이 없다. ‘마녀들’처럼, 우정과 공감에 찬 동아리를 만든다면 한결 든든할 테고.
소설가 박원식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내 재산을 후대에 잘 이양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봤다. 이번에는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어놓은 세계 부호들이 준비하는 인생 마무리에 대해 풀어볼까 한다. 세상 돈 많기로 소문난 부자들 미담 대부분 역시 돈. 똑똑하게 굴려놓은 재산을 내 자손뿐만 아니라 사회 모두가 쓸 수 있도록 물려주는 부자 이야기를 한 번 들여다보자.
죽기 얼마 전 유언장 다시 쓴 리처드 커즌스 회장
작년 12월 31일. 호주 시드니 근교에서 관광용 수상 비행기가 추락해 조종사 포함 6명이 전원 사망했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이들은 세계 최대 식음료 출장 서비스 업체 영국 컴퍼스 그룹의 리처드 커즌스(58) 회장 일가족이었다. 두 아들은 물론 커즌스의 약혼녀, 약혼녀의 딸까지 한날한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기업 회생 전문가였던 커즌스. 그는 생전 기울어가는 회사들을 살리고 고용 안정을 이끌어내던 탁월한 전문 경영인으로 평가받아왔다. 사고 후 잊히는가 싶었던 커즌스 회장의 이야기가 8월 말 해외토픽을 타고 날아들었다. 그가 남긴 유산 4100만 파운드(약 600억 원)가 영국에 근거지를 둔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에 기부됐다는 소식이었다. 당초 커즌스는 두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로 했다. 그러나 죽기 1년 전 혹시 두 아들과 자신이 모두 죽게 될 경우 재산 대부분을 옥스팜에 기부하겠다는 ‘공동비극조항’을 유언장에 삽입했던 것. 사고만 없었더라면 훗날 두 아들이 받을 유산이었다. 그렇다면 왜 커즌스는 옥스팜을 굳이 지목했을까? 한국에도 지부가 있는 옥스팜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국제구호기구다. 그러나 2011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구호 현장에서 벌어진 옥스팜 활동가의 성 매수 파문으로 도덕적 치명타는 물론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이로써 7000여 명의 정기후원자가 집단 탈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뜻하지 않았던 고인의 유언 덕에 기적적으로 구호 중단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유언에 따른 커즌스 회장의 기부 소식과 함께 옥스팜 이름이 거론되면서 스캔들 때문에 잠시 잊었던 구호의 중요성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린 것은 아니었을까.
내 재산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
작년 7월 미국 CNBC의 에미 마틴 기자가 CNBC 인터넷 판에 쓴 ‘자식에게 유산을 남기지 않기로 한 7명의 억만장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흥미로운 통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녀의 68%가 상속을 기대하고 있는 반면 부모는 40%만이 자식에게 유산 상속 용의가 있다고 했던 것.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투자 왕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기로 선언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은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것에 대해 우려섞인 말을 했다. 게이츠는 “부모가 남긴 돈을 자식들이 온전하게 지킬 수 없을 뿐더러 그들의 인생을 제대로 걸을 수 없게 한다”고 했다. 버핏 또한 1986년 경제전문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자식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충분한 돈을 남기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정도의 유산을 남기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게이츠 부부는 2011년 영국 ‘데일리메일’을 통해 “재산 810억 달러 중 자녀 3명에게 각각 소량의 돈을 상속할 것”이라고 했다. 버핏 또한 3명의 자녀에게 각각 20억 달러만 남겨줄 계획이라고. ‘포브스’에 따르면 버핏의 개인 재산은 올해 기준 840억 달러다. 게이츠 부부는 2000년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을 설립해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질병과 가난, 굶주림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 이후 버핏도 막대한 재산을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과 죽은 부인의 이름을 딴 ‘수잔톰슨버핏재단’ 등 5개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올해 기부액만도 34억 달러다.
유산을 자식에게 남기지 않겠다는 또 다른 이가 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크다. 2015년 첫딸 맥스가 태어났을 때, 그와 아내 프리실라 저커버그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딸이 살아갈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이기를 원하기에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말이다. 딸만을 위한 세상이 아닌 모든 미래세대를 위한 준비를 하고 싶다는 것이 이 젊은 부호 부부의 생각이었다.
영국의 인기 셰프 고든 램지 또한 순순히 남매들에게 재산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4남매는 각자 일을 해서 교통비와 전화사용료를 낸다고. 단, 남매들이 각자 자립할 때 아파트 보증금의 25%는 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자녀들이 밥 먹는 일도 흔하지 않은 일이고 여행할 때 일등석에 태우는 일도 결코 없다고 영국 신문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린 바 있다. 이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캐츠’의 유명 작곡가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 또한 2008년 영국 일간지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그가 벌어들인 돈을 극장에 투자하고 음악가를 돕는 데 쓰고 싶다고 했다. 영화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 영국 가수 스팅 또한 상속 대신 기부를 선택한 인물로 꼽힌다.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 회장의 은퇴 계획
중국 IT업계 거물이자 세계적인 유통 사이트 ‘알리바바’ 창업주인 마윈(馬雲·54) 회장이 내년 9월 10일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윈의 쉰다섯 살 생일이자 친구 17명과 함께 중국 항저우의 작은 아파트에서 알리바바를 창업한 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연매출 41조 원, 지난해만 3300명이 훨씬 넘는 일자리를 창출해낸 마윈은 종종 은퇴에 관한 얘기를 해왔다. 구체적인 날짜와 시기를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은퇴와 맞물려 그가 꺼낸 카드는 교육을 기반으로 한 자선사업이다. 최근 알리바바가 공식 웨이보에 공개한 마윈의 새 명함에는 ‘회장’이라는 직함 대신 그 자리에 ‘교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중국 저장성 ‘항저우 사나이’라는 문구와 함께 ‘알리바바 탈빈곤펀드 주석’, ‘마윈 공익펀드 창업자’, ‘농촌교사대변인’ 등 자선사업 관련 약력이 눈에 띈다. 마윈은 이미 2014년도부터 마윈재단을 설립해 농촌의 교육 환경 개선과 자선사업에 불을 지피고 있다. 평소 롤모델을 빌 게이츠라고 말해왔던 마윈이기에 자선사업과 관련한 은퇴 계획에 귀추가 주목되는 것이다. 2017년 기준 ‘포브스’가 집계한 마윈의 재산은 43조 원에 달한다.
한국 부자들은 어떻습니까?
상속이 기부로 이어지는 사례 혹은 은퇴 후 재단을 설립해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사례는 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18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상속과 승계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사회 환원에 대한 고민이 전년에 비해 높아졌다고 한다. 상속과 관련해 ‘재산의 일부 또는 전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견은 지난해 1.5%에서 8.7%로 7.2%포인트 증가했다. 금융자산 50억 원 이상 보유자는 사회 환원 의향이 17.4%에 달했다. 자식이 아닌 사회를 위한 기부에 자산가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부금액은 OECD 회원국 36개국 가운데 23위다. 자산가들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한국에서도 기부왕이 나왔으면 한다.
(전시) 케니 샤프, 슈퍼팝 유니버스
일정 10월 3일~2019년 3월 3일 장소 롯데뮤지엄
‘팝아트의 황제’라 불리는 케니 샤프(Kenny Scharf)의 예술세계를 총망라하는 회화, 커스텀 조각, 설치작품 등 100여 점이 출품된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젯스톤(Jetstones) 시리즈와 낡고 버려진 장난감, 가전제품을 가지고 형광의 총천연색 공간으로 꾸민 설치작품 ‘코스믹 카반(Cosmic Cavern)을 놓치지 말자.
(뮤지컬) 1446
일정 10월 5일~12월 2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출연 정상윤, 남경주, 박소연, 이준혁 등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기념한 뮤지컬 ‘1446’은 훈민정음이 창제된 1446년을 뜻한다. 세종이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 한글 창제 당시 세종의 고뇌와 소헌왕후와의 사랑 이야기 등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담았다. ‘세종’ 역으로 정상윤, 박유덕, 세종의 아버지 ‘태종’ 역으로 남경주와 고영빈이 무대에 오른다.
(축제) 한화와 함께하는 서울세계불꽃축제
일정 10월 6일 장소 여의도 한강공원
서울세계불꽃축제에서는 매년 세계적인 수준의 불꽃 전문 기업들이 초청되어 여의도 밤하늘을 무대로 불꽃 연출을 선보인다. 올해는 스페인, 캐나다, 한국이 참가하며 10만여 발의 불꽃을 쏘아 올린다. 이외에 푸드트럭존, 수제맥주존, 플리마켓존 등이 운영되며 불꽃 애프터 파티, 63멀티미디어 쇼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도 진행된다.
(연극) 오슬로
일정 10월 12일~11월 4일 장소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출연 강진휘, 김수아, 김정환, 손상규 등
1993년 일촉즉발의 위기상태였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두 정상이 최초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오슬로 협정’으로 이름 붙여진 이 사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았다.
(영화) 퍼스트맨
개봉 10월 18일 장르 SF, 드라마 출연 라이언 고슬링, 클레어 포이, 제이슨 클락 등
전 세계에 ‘라라랜드’ 열풍을 이끈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차기작이자 라이언 고슬링과 다시 한 번 협업한 작품으로,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의 전기를 다뤘다.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섹션에 초청되며 화제를 모았다.
(연극) 엄마 이야기
일정 10월 19~27일 장소 아이들극장 출연 박정자, 전현아, 박주업, 이승열 등
한스 안데르센의 동화 ‘어머니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으로 죽음이 데려간 아이를 되찾기 위해 죽음의 사자를 찾아 나선 어머니의 애틋한 여정을 담아냈다. 슬픔, 절망, 인정, 애도의 과정을 통해 사랑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일정 9월 4일~10월 1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출연 하성광, 장두이, 정진각, 이영석 등
억울하게 멸족당한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을 지켜내고 복수를 도모하는 한 필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2015년 초연 직후 동아연극상 대상을 포함해 대한민국연극대상, 올해의 연극 베스트3 등 각종 연극상에 이름을 올리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이 연극은 뱉은 말에 대한 의리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연극) 운명
일정 9월 7~29일 장소 백성희장민호극장 출연 양서빈, 홍아론, 이종무, 박경주 등
이화학당 출신의 여성이 하와이에 사는 남자와 ‘사진결혼’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다. 1921년 예술협회 창립공연에서 상연된 극작가 윤백남의 작품으로 1920년대 ‘하와이 사진결혼’의 폐해를 드러내려는 의도로 창작되었다. 작품 전반에서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의 삶과 애환을 엿볼 수 있다. 국립극단 ‘근현대 희곡의 재발견’ 시리즈 아홉 번째 작품으로 김낙형이 연출을 맡았다.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일정 9월 9~22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출연 지창욱, 강하늘, 김성규, 임찬민 등
일제에 항거하고 아스러져가는 조국을 다시 세우기 위해 온몸과 마음을 바친 청춘들의 이야기. 항일 독립전쟁의 선봉에 섰던 신흥무관학교를 배경으로 격변하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담아냈다. 육군 본부가 건군 70주년을 기념해 선보이는 뮤지컬로, 현재 군 복무 중인 배우 지창욱, 강하늘, 가수 성규 등이 무대에 오른다.
(전시) 균열Ⅱ: 세상을 보는 눈 / 영원을 향한 시선
일정 9월 18~22일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3, 4전시실
다양한 방식으로 고정 관념에 균열을 일으키고자 했던 작가들의 도전정신을 ‘현실’과 ‘이상’ 두 가지 주제로 접근했다. 곽덕준, 백남준, 노순택 등 작가 40여 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영화) 안시성
개봉 9월 19일 장르 액션 출연 조인성, 남주혁, 박성웅, 배성우 등
당나라 대군과 맞서 싸운 고구려 전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안시성’이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개봉한다. 동아시아 전쟁사에서 가장 극적인 전투로 평가되는 88일간의 안시성 전투를 약 200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스크린에 옮겼다.
(축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일정 9월 28일 ~10월 7일 장소 경상북도 안동시 안동시내 일원
하회별신굿탈놀이, 송파산대놀이 등 12개 중요무형 문화재단체 공연과 중국, 터키, 볼리비아 등 12개국의 외국 탈춤 공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나만의 탈 만들기, 탈춤 따라 배우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영화) 신과함께 - 인과 연
개봉 8월 1일 장르 판타지, 드라마 감독 김용화 출연 하정우, 주지훈, 김향기, 마동석 등
환생이 약속된 마지막 49번째 재판을 앞둔 저승 삼차사가 그들의 천 년 전 과거를 기억하는 성주신을 만나 이승과 저승, 과거를 넘나들며 잃어버린 비밀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지난해 말 개봉한 ‘신과함께-죄와 벌’이 한국 영화 관객 수 역대 2위에 이름을 올린 가운데 이의 후속작이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강림 역의 하정우는 “저승 삼차사 중심의 드라마로 1편보다 깊어진 감성을 만날 수 있다”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전시) 황금문명 엘도라도 - 신비의 보물을 찾아서
일정 8월 4일~10월 28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순금으로 길이 포장되어 있고 온몸에 금가루를 바른 사람들이 산다는 전설의 황금도시 ‘엘도라도’. 20세기, 콜롬비아 구아타비타 호수 근처에서 황금 전설이 표현된 작품 ‘무이스카 황금뗏목’이 발견되면서 엘도라도의 전설이 전설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때 ‘엘도라도’로 불렸던 콜롬비아의 황금 유물 중 322점을 선보인다.
(뮤지컬) 바넘 : 위대한 쇼맨
일정 8월 7일~10월 28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출연 유준상, 박건형, 윤형렬, 김소향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뮤지컬을 찾는다면 ‘바넘:위대한 쇼맨’을 추천한다. 희대의 엔터테이너 P.T. 바넘의 생애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기존 뮤지컬에서는 볼 수 없는 서커스를 극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프로덕션 토니상 3개 부문, 런던 프로덕션 올리비에상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탄탄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올여름 국내에서 초연되는 이번 무대에는 유준상, 박건형, 김소향 등 베테랑 배우들이 오른다.
(전시) 지도예찬 - 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일정 8월 14일~10월 28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국내 최초로 진행되는 대규모 ‘지도’ 전시로, 동국대지도, 대동여지도 등 국가 지정 문화재를 포함한 주요 지도 및 지리지 130여 건을 만나볼 수 있다.
(뮤지컬) 오! 캐롤
개봉 8월 16일~10월 21일 장소 디큐브아트센터 출연 서범석, 성기윤, 박해미, 김선경 등
1970년대를 풍미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팝의 거장, 닐 세다카의 히트 팝을 배경으로 리조트에서 펼쳐지는 러브스토리를 담은 작품이다. ‘Oh Carol’, ‘You Mean Everything to Me’ 등 중·장년층에게 익숙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일정 8월 25일 장소 하남문화예술회관 대극장 출연 국립창극단
고선웅 연출가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저평가된 판소리 ‘변강쇠전’을 재해석했다. 박복하지만 당찬 여인 옹녀를 새로운 주인공으로 부각하면서 변강쇠와 옹녀의 19금 이야기를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로 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