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의 사회학

기사입력 2018-12-26 16:11 기사수정 2018-12-26 16:11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중 한 장면.(네이버 영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중 한 장면.(네이버 영화)

역사는 기록하는 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편집되고 재해석된다. 사실 깨진 사금파리 조각같이 파편화한 역사적 사실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조각들을 다시 짜 맞추어 형상과 의미를 부여한 것이 이른바 역사 기록이다. 역사를 재구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는 현재의 기록자이므로 역사 기록에는 당대의 시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는 과거의 왜곡인 동시에 현재의 진실이다.

춘추필법이라는 역사가 그럴진대 개인의 기록들은 말할 나위가 없다. 소위 자서전이나 전기라 이름 붙은 책들은 현재의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된다. 대선이나 총선을 앞두고 갑자기 출마가 예상되는 사람들의 자서전이 쏟아져 나오곤 하는 것이 이런 이치다. 대필 작가에 의해 ‘천사의 편집’을 거쳐 나온 개인의 역사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다. 당선 필요라는 진실이 거짓된 과거를 지어내는 셈이다.

의도된 거짓은 아닐지라도 관객의 감동을 자아내기 위한 사실의 왜곡은 어떨까. 최근 우리나라에서 천만 관객을 바라보는 흥행 신드롬을 일으키며 역주행 중인 음악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이야기다. 처음에는 이 노래를 발표한 영국의 록그룹 ‘Queen’을 경험한 4050 이상에서나 관심을 가질 것으로 생각했으나 어느덧 2030들까지 감염되어 이 영화에 열광한다. 게다가 영화관에서 떼창까지 하는 지경이다.

사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 영화는 상당 부분 사실을 왜곡했다 한다. 오죽하면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죽은 후 퀸을 대변하고 있는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관객들이 한 편의 디즈니 영화를 보듯이 즐겼으면 한다. 이 영화는 퀸의 영화가 아니라 프레디의 영화다”라고 했을까. 매우 점잖은 대응이지만, 불편한 심경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관객 감동을 끌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재편집된 작품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본국인 영국을 넘어서는 흥행으로 치닫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우리나라 관객들이 음악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라라랜드’를 비롯해 많은 음악영화가 흥행에 성공했으며 뮤지컬 장르가 성행하는 것만 보아도 우리 관객의 취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지금의 ‘보헤미안 랩소디’ 신드롬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듯하다.

물론 퀸의 음악은 좋다. 음악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도 제목은 모른 채 어디선가 한두 번은 들었을 정도로 지금까지 주위에서 널리 연주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을 들으며 ‘아, 이 곡이 퀸의 노래였구나’ 하는 감탄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퀸의 음악은 실험성이 강하다. 영화 제목인 ‘보헤미안 랩소디’도 당시에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6분이라는 긴 시간을 견뎌낼 방송 PD는 없을 정도였다.

그들의 이런 실험성과 도전정신이 우리 관객의 동의를 얻은 것은 아닐까.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음악으로써 이 영화의 탁월한 전략은 마지막 20분여에 걸친 1985년의 ‘라이브 에이드’의 재현일 것이다. 관객 중에는 2002년 월드컵 이래 이런 속 시원한 기분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즉 암담한 정치, 경제 상황에서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감동이 절실했던 국민에게 이 영화가 시원한 사이다가 된 셈이다.

아울러 사실과는 좀 다를지언정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가 겪었던 기구한 인생역정이 관객들의 감정선을 건드렸던 듯싶다. 특히 보잘것없는 인도계 잔지바르 출신 이민가정으로서 갖은 무시와 따돌림 속에 외로움을 겪는 머큐리의 모습이 오늘날 한국의 흙수저 의식을 자극해 연민을 자아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영화는 우연히 울고 싶었던 한국인의 뺨을 후려갈김으로 흥행 성공 신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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