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은 멋 내기로 선글라스를 쓰는데, 필자는 건강을 위해서 쓴다. 안력이 약해서 눈이 아파 햇빛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안경이 익숙지를 않아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2년 전, 눈에 백내장이 와서 안과에 간다는 지인을 따라나섰다가 우연히 눈 검사를 하게 되었다. 백내장인 지인은 수술하려면 아직 멀었으니 그동안 지내던 대로 일상생활을 하면 된단다. 그런데 이게 웬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필자가 '녹내장' 이란다. 체질적으로 눈이 약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녹내장이라니!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갑자기 눈앞이 노래지고 무릎에 힘이 풀리면서 정신이 아뜩해졌다. 함께 간 지인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보니 미안해서 정신을 차리려 애쓰던 생각이 지금도 생생하다. 백내장과 녹내장에 대해서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백내장은 단백질의 노화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 눈 속 수정체가 뿌옇게 변해 눈앞이 흐려지는 병이다. 대부분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간혹 선천적으로 오기도 하고, 눈 속에 염증이 있거나, 눈을 다쳤거나 하면 젊은 사람에게도 찾아온다. 또, 당뇨병이 있거나 흡연, 음주를 하는 생활습관에서도 올 수 있고, 햇빛에 과도하게 노출되는 것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 외에 안질환의 합병증으로도 올 수 있다. 이런 원인으로 백내장이 오면 시력이 떨어지고 사물이 둘로 겹쳐 보이거나 눈이 부시고 빛이 번져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밝은 곳에서 오히려 더 안 보이는 현상이 생긴다.
백내장은 수술하면 말끔히 낫는 병이다. 수정체가 완전히 하얗게 덮이면 비로소 수술할 수 있다. 수술은 입원할 필요도 없고 간단하다. 그러므로 통원수술을 하면 된다. 이때 병원을 잘 선택해야 한다. 수술을 하고 나면, 안경을 착용해야 한다. 그러나 수술 후에 오히려 더 잘 보인다는 사람들도 있다. 큰 문제가 없고 깔끔하다. 그러나 녹내장은 문제가 좀 다르다.
녹내장은 안압이 높아질 때 시신경이 눌리거나 혈액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안압이 높아지면서 진행되는, 시신경 손상으로 인해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병이다. 약물로 진행하다가 안압이 조절되지 않으면 레이저로, 그것도 듣지 않으면 수술을 하기도 하는데, 녹내장으로 인해 이미 손상된 시각은 약물이나 수술로도 회복할 수가 없다. 시신경이 이미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급성 녹내장은 시야가 좁아지는 걸 느낄 수 있지만, 만성 녹내장은 증상이 거의 없어서 대부분 말기가 되어서나 알 수 있다. 시야가 손상될 때는 주변 시야의 손상이 먼저 오고, 중심 시력은 실명 상태에 이르기까지 보존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초기에는 거의 자각 증상이 없다가 말기에 가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평소에 정기적으로 안과 검사를 해야 한다. 필자도 지인을 따라가 검사를 해보지 않았다면 녹내장이 온 지도 몰랐을 것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자!
눈은 원래 촉촉하고 부드러워야 정상이다. 그런데 녹내장이 오면, 눈이 건조해져서 뻑뻑하고 눈알이 빠질 듯한 통증을 느낄 때도 있다. 눈앞이 뿌옇게 보이고 눈이 침침하다. 가끔 어지럽고 메스껍고 두통도 온다. 그러다 보면 피로를 쉽게 느낀다.
녹내장이 아니더라도 눈이 건조해지는 원인은 다양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도 생기고, 비만, 당뇨 환자에게도 생긴다. 또, 스마트 폰을 오랜 시간 사용하거나, TV를 긴 시간 시청하면 눈이 건조해진다. 눈의 건조를 막으려면 인공눈물을 사용해보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때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진료는 의사에게. 먼저 의사에게 물어보고 인공눈물을 사용해야 한다.
시신경이 손상되는 진행을 늦추려면 안압을 낮춰야 하는데, 그러려면 카페인, 알코올, 담배 등을 삼가야 한다. 음주와 흡연은 안압을 높이는 주범이다. 그 외에도 맵고 짠 음식을 먹는 것은 혈압, 안압이 높아지는 원인이 된다. 이때 균형 잡힌 식단으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고 음식 간을 싱겁게 먹으면 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운동도 가벼운 산책 정도는 눈의 압력 조절에 효과적이지만, 너무 무리한 운동은 오히려 안압을 높일 수 있으니 삼가야 한다. 특히 머리로 피가 몰리는 운동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가 잠을 잘 때도 자는 습관에 따라 안압이 높아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평소 옆으로 누워 자거나 엎드려서 자는 습관이 있다면, 오늘부터 당장 바른 자세로 천장을 향해 똑바로 누워 자는 것이 좋다. 좋지 못한 자세는 눈에 무리가 가서 안압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백내장보다 녹내장이 훨씬 무겁고 어려운 병이다. 지인을 따라 안과에 갔다가 이 무겁고도 무서운 녹내장이란 걸 처음 알게 되고, 의사의 권유로 시력은 아직 괜찮은데도 일반 안경과 선글라스를 쓰게 되었다. 눈이 아파서 쓰게 된 것이다. 무려 안경 6개를 장만했다. 집에서 책 볼 때 쓸 돋보기 1개, 밖에서는 렌즈에 색이 들어가 눈을 보호해주고 실내에서는 맑은 렌즈로 공부도 할 수 있게 쓸 수 있는 변색 렌즈 안경 1개, 교육받을 때 사용할 다초점렌즈 안경 1개, TV 볼 때 쓸 다초점렌즈 안경 1개, 그리고 도수용 선글라스 2개 이렇게 모두 6개다. 안경을 쓰면 눈은 편안하지만, 쓴지 벌써 2년이 다 되었는데도 쓰고 있으면 아직도 영 답답하고 거추장스럽다.
겨울이나 이른 봄에는 변색 렌즈 안경만 써도 햇빛차단에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점점 햇빛이 강해지는 계절이 되면 변색 렌즈는 강렬한 태양 아래서 힘을 쓰지 못한다.
그때부터는 도수용 선글라스를 쓴다. 그래서 어떤 안경을 쓰고 나가야 할지, 외출하는 날이면 베란다에서 날씨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하루는 외출하려고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니 날씨가 화창하고 참 좋은 날씨다. 그래서 기분 좋게 외출준비를 하고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는데 좀 전에 베란다에서 본 화창한 날씨가 금방 흐려져 잿빛이다. ‘우산도 안 가지고 내려왔는데 어떡하지?’ 은근히 걱정되었다. 그러나 잠시 후 필자는 화들짝 놀랐다. 아 참! 기가 막힌다. 정말 어이가 없다. 선글라스를 써서 날씨가 흐려 보였던 것이다. 이거 혹시 치매 아냐? 그때부터는 또 다른 걱정이 생긴다.
하루는 아들과 함께 이마트에 장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내가 운전을 하고 무거운 식품들은 아들이 맡아서 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날은 내가 운전을 했다. 차를 몰고 주차장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어두컴컴하다. 이마트가 얼마 전에 주차장을 증축하는 공사를 해서 주차장 구조가 전과는 조금씩 달라졌다.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약간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아니! 전기시설을 어떻게 한 거야? 차들이 접촉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려고 이렇게 시설을 어둡게 해 놓은 거야?”
그런데, 아들이 야릇하게 배시시 웃는다.
“왜 웃어?”
엄마가 묻는데도 아들은 계속 웃기만 한다. 잠시 후, 아차! 그때야 생각이 났다. 내가 선글라스를 쓰고 운전을 하고 왔지 않은가! 이제야 겨우 깨달았다. '아! 나 이러다 치매 환자가 되면 어쩌지?'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면서부터는 실수 만발이다. 앞으로 점점 실수가 늘어갈 테지만 그래도 눈을 보호하려면 이런 해프닝쯤은 웃음으로 가볍게 넘기며 살아야겠지. 그래도 오늘, 저 하늘, 찬란한 태양과 아름다운 달과 별, 내가 좋아하는 일출과 석양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아름다운 강산, 예쁜 꽃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지금 나는 행복하다. 나의 사람들, 나의 세상을 볼 수 있을 때 만끽하련다.
며칠 전이었다. 의외의 사람에게서 애먼 소리를 듣고 마음이 몹시 상한 일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의외였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말을 필자가 했다고 하는 애먼 소리를 들은 것이다. 며칠을 우울하게 지내며 생각해봤다.
사회적인 성공과 부가 곧 인격의 수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만심이나 오만으로 연결되기 쉽다. 훌륭한 지위나 부를 누렸던 사람들은 계급장을 뜯긴 상황에서도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잘나가던 사람인가를 강조하며 그때와 같은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은퇴 후 사회 부적응이 심해지기도 한다. 그런 대우는 그곳에서만 받을 수 있었던 것인데 아무 데서나 대우받기를 바라며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현실 인식이 부족하고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 또 스스로를 외롭게 만든다.
괴로운 마음이 가라앉자 교훈을 얻은 기분이 들었다. 각자의 생김새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니 개의치 말자. 겸손한 자세와 말씨로 흔들리지 않아야 결국 필자가 옳다는 것을 알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남의 눈의 티끌은 지적하면서 자기 눈의 대들보는 못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한 이유가 있다. 사람의 얼굴에 있는 눈은 밖으로 향하고 있어서 자신을 보지 못한다. 만약 안으로 향해 있다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눈이 적당히 안 보이는 것도 그동안 못 볼 것도 많이 보고 살았으니 적당히 그만 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지인이 얼마 전 백내장 수술을 했다. 안 보이던 것까지 다 보여서 청소할 일이 많아져 몸이 고달프다며 푸념을 했다. 다시 수술 전으로 돌아갈까 하며 웃은 일이 있다. 상대 얼굴의 티만 보여서 안도했는데 자기 얼굴의 검버섯까지 보여 괴롭다는 얘기였다.
내친김에 그럼 귀가 둘인 이유는 뭘까? 한쪽으로 듣고 다른 쪽으로 흘려야지 마음이 부대끼지 않는다는 의미일까. 그게 아니라면 남의 얘기를 이것저것 많이 들으라는 것일까. 귀를 닫고 자신의 말만 하기 시작하면 꼰대가 된다는 경계의 말도 있다.
마지막으로 입은 하는 일이 많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 먹기 위해 씹고 뜯고 맛을 본다. 입으로 남을 헐뜯고 귀를 깨물 수도 있고 칼이나 창과 같이 독기(毒機)가 되기도 한다. 입으로 들어오는 것은 좋은 것이 들어오지만 나가는 것은 부정과 긍정이 함께 있다. 입으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지만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하니 항상 입을 조심해야 한다.
늙으면 잊어버리는 것이 많아지는 이유는 뭘까? 그동안 보고 듣고 기억할 것이 많으니 보는 것만이라도 잊어버리라는 의미다. 동작이 느려지고 굼떠지는 것은 그동안 바삐 종종거리며 살았으니 이제 편하게 느리게 살라는 의미다. 그래서 노년을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오히려 편안함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육체의 눈이 성할 때는 마음의 눈이 어두웠지만 이제 육안이 흔들리는 대신 심안이 트이기를 바란다. 요즘 감사해하며 사는 마음 수련을 하고 있다. 며칠 흔들렸지만 다시 감사해하며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엄마가 아프다. 지난 가을 밴쿠버에 사는 언니네 집에 다녀온 후 나빠졌다. 항공권 발권을 마친 상태였는데, 엄마가 몸이 아프다며 안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저 감기 몸살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엄마의 등을 떠밀었다.
장거리 여행에서 돌아온 엄마의 건강은 급격하게 무너졌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에 오른쪽 눈 백내장 수술을 했다. 왼쪽 눈이 안 보이는 엄마한테 다른 쪽 눈에 백내장이 왔다는 건 천지분간이 안 되는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백내장 수술을 하자마자 오른쪽 귀에 보청기를 했다. 엄마는 평생 오른쪽 눈이 안 보이고 오른쪽 귀가 안 들리는 상태로 살았다. 엄마의 행동이 이상하리만치 굼뜨고 답답했던 게 한쪽 눈과 한쪽 귀에 의지해 세상을 살아야 했기 때문인데, 이때까지 그 고통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살았다. 엄마는 얼마나 피곤했을까? 이제야 이런 생각이 들다니.
안과에서 시작된 병원 순례는 이비인후과, 내과, 산부인과를 거쳐 치과에 이르렀다. 엄마는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엄마의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왜 갑자기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받아들이는 게 힘들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말이 없어지고 아주 무뚝뚝해졌다. 옆에서 무슨 말을 해도 대꾸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비인후과에 입원해서 염증 치료를 받고 있다. 입, 퇴원을 반복하는 엄마를 수발드는 자식들도 힘들고 벅차다.
명랑하고 건강하던 엄마의 입에서 ‘죽고 싶다’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육신에 병이 생기니 정서적인 두려움을 피하긴 어려웠나보다. 헤르만 헤세는 ‘쉰과 여든 사이에는 그 이전의 지난 수십 년간 경험한 것과 거의 비슷하게 아름다운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든을 넘기는 것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 후에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산책길 정도로 느껴졌던 것이 멀고 힘겨운 길이 될 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아예 그 길을 걷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좋아했던 음식들도 포기해야만 한다. 육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쾌락은 드물게 나타나고 그런 것들을 위해 이제는 더 많은 댓가를 치러야 한다. 질병과 결함, 흐릿해지는 생각, 굳어가는 육신, 많은 고통, 더구나 그런 모든 것들을 길고 지루한 밤에 겪어야 한다는 것, 모두가 숨길 수 없는 쓸쓸한 현실이다.’
우리 엄마는 올해 83세다.
우리사회는 지금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 시니어들의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많은 기업이 참여하였다. 모르면 손해이다. 그냥 숨만 쉬는 것은 의미가 없다. 많이 보고 듣고 배우고 실행하여 건강 수명을 최대한 늘려야만 한다. 알고 실천하는 만큼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
삼성동 코엑스 C3 4홀에서는 '액티브 시니어 페어 2017' 행사가 열리고 있다. 기간은 10월 11일부터 3일간이었다.
혈액순환을 돕는 운동기구, 편안한 잠자리를 위한 건강베게 등이 있고 백내장 검사, 혈당 검사, 몸의 불균형을 잡아주는 도구 등 건강을 위한 다양한 제품들이 참살이를 추구하는 시니어들을 기다리고 있다.
박람회에서 문화 충격을 받은 것은 장례문화였다. 지금의 장례문화는 일제의 잔재란다. '헐! 이럴 수가! 80년대 초에 이외수의 를 읽고 경악했었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산맥마다 중심에 쇠막대기를 박았다. 우리민족의 혼을 말살하려는 술책이었다는 것이다. 그때 '악독한 일본놈들'이라고 이를 갈았는데 다시 한 번 디테일한 일본인들의 교활함에 섬짓해졌다. 삼베옷은 불효했다는 의미로 자손들이 입는 거지 망자가 입는 옷이 아니란다. 죄수나 천민이 입던 삼베옷을 일제가 의례준칙을 통해 수의로 제정한 후 실행을 강제했다고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값비싼 수의를 장만하느라고 애를 쓴 것이다. 대표 이미지 한복이 수의로 추천되는 샘플 중 하나이다. 중국산 삼베수의를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싸구려 폴리에스터 제품이 80만원짜리라고 하였다. 패션과 패블릭을 공부한 내가 보기에는 여간 허접한 것이 아니었다. 국화는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꽃이라 한다. 장례식에 추천되는 꽃은 카네이션이나 계절꽃을 사용하면 된다고 하였다. 수의도 본인이 좋아하던 옷을 입히면 된다고 하였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 생활 깊숙이 박혀 있는 일제 잔재를 하루속히 뿌리 뽑아야 한다. '우리 문화 바로 알리기' 캠페인을 벌여서라도 반드시 우리 고유의 문화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요즘 한낮의 태양이 너무 강렬하다. 필자는 원래 선글라스를 즐겨 착용하는데 꼭 멋을 내기 위한 건 아니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눈이 나빴다. 기억하기로는 안경을 처음 착용한 게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다. 엄마 아빠 손잡고 대전의 중심가인 은행동에 있는 윤 안과에 가서 검사를 하고 안경을 맞췄다. 처음 안경을 착용했을 때, 바닥이 꿈틀대는 듯 약간 어지러웠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그 후에도 계속 안경을 썼는데 중․고교 시절에는 외모에 신경을 쓰느라 잘 안 보이는데도 수업시간 외에는 끼지 않았다. 대학 입학 후에는 처음으로 콘택트렌즈를 착용했다. 무교동의 신예용 안과에서 맞춰 낀 당시의 렌즈는 하드 렌즈였다. 딱딱한 플라스틱 재질에서 오는 이물감 때문에 오래 사용하지 못했고 곧 소프트 렌즈로 바꿔 착용했다.
안경 없이 눈이 잘 보이니 얼굴도 예뻐 보이고 마치 딴 세상에 온 것처럼 기분도 좋았고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손 소독도 깨끗이 했는데 어느 날인가 눈병이 나고 말았다. 며칠 동안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몹시 고생을 했다. 렌즈를 사용하려면 손 소독은 필수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외출할 때 외모를 생각해서 계속 소프트 렌즈를 착용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얼굴이 못생겨 보이거나 말거나 편하게 안경을 쓰고 다닌다. 특히 시력 때문에 햇빛을 잘 못 보는 필자는 선글라스가 여름철 필수품이 되었다. 한때는 선글라스 끼는 걸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멋내기용이 아닌 눈을 보호하기 위한 선글라스는 꼭 필요하다. 자외선에 의한 눈 피해가 심각하므로 눈을 보호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자외선은 파장이 짧고 투과성이 높은 강한 에너지라서 직접 쏘이면 다양한 눈 질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장기적으로 노출될 경우 백내장을 유발하고 시력 상실까지 가져올 수 있다니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러니 눈 보호를 위해서라도 선글라스 착용은 이제 필수품이 된 것이다. 선글라스는 렌즈에 색을 입힌 뒤 전자파 차단막과 수막 그리고 자외선 차단막을 코팅한 것이다. 렌즈 표면과 컬러의 균일성이 가장 중요하며 자외선 차단기능(UV 마크) 표시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해변 등 햇빛이 강렬한 곳에서는 자외선 차단 효과가 크고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녹색이나 회색이 좋고, 황색이나 갈색은 신호등을 구별하는 데 좋으므로 운전할 때 적합하며, 노란색이나 붉은색 계통은 흐린 날이나 원거리 경치를 볼 때 착용하면 좋다고 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검정 계통을 선호하는데 잘 어울리는 듯해서다. 선글라스 판매는 매출액 기준으로 볼 때 외국 제품이 70% 정도 차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내면 코팅 등 렌즈 생산 기술과 수백 가지 모델을 통해 국산 제품도 우수함을 인정받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다. 눈 보호를 위해 국산제품의 선글라스를 하나씩 장만하는 것도 여름철의 무시무시한 자외선으로부터 우리 눈을 지키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상상을 한번 해보자. 자고 일어나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의 풍경들이 조금씩 사라진다. 마치 무엇이 가로막고 있듯.
고개를 돌려 피해보려고 해도 여전하다. 보이지 않는 부분은 점점 커지고, 주위를 볼 수 있는 시야가 좁아져 급기야는 작은 창만 해진다. 환자를 더 옥죄는 것은 당장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그 작은 창마저 닫히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다. 황반변성과 근무력증, 안검하수까지 겹친 김성겸(金成兼·69)씨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그는 씩씩했다. 그의 옆에 성공적인 투병을 도운 동반자 건국대병원 안과 신현진(申賢眞·38)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랏?!”
10여 년 전 어느 날 김성겸씨는 운전 중 느닷없이 작은 비명을 질렀다. 이상한 일이었다. 차는 똑바로 가고 있었고 길도 평범한 직선도로였는데, 갑자기 길이 두 개로 보였다. 처음에는 차선이 늘어난 줄 알았다. 깜짝 놀라 손등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앞을 쳐다봤다. 길은 그대로였다. 별일이 다 있다 싶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자신의 건강에 관대한 다른 중년 남성들처럼. 하지만 그날의 사건은 앞으로 벌어질 일의 전조였다.
움직여지지 않던 왼쪽 눈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주 그런 일이 일어났다.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현상은 ‘어쩌다 한 번’에서 ‘꽤 자주’ 발생했다. 그리고 곧 주변 사람들도 눈치 챌 정도가 됐다.
“야! 너 눈 돌아갔다!”
김씨의 친구는 소주잔에 술을 따르다가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그때는 이미 자신에게 일어나는 증상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닥치라는 농을 던지며 넘어갔다. 하지만 왜 나아지지 않는지 의아했다. 눈을 몇 번 껌뻑거리면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눈이 ‘돌아가는’ 증상은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결국 용기를 내어 동네 안과를 찾아갔는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서울에서도 손꼽힌다는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았다. 그때가 2010년이었다. 병원에서는 낯선 병명을 그에게 전했다. 근무력증이었다.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병
근무력증(筋無力症)은 신경과 근육을 연결하는 신경근육접합부라는 부위에 이상이 생기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쉽게 설명하면 뇌에서 “이렇게 움직이자”라는 명령이 신경을 통해 전달되어도, 근육에 제대로 미치지 못해 그 신체 부위가 움직이지 않는 증상이다.
김씨의 경우는 근무력증이 왼쪽 안구를 움직이는 눈근육에 발병했다. 마치 사지가 축 늘어져버리는 것처럼 한쪽 눈이 사시처럼 아래로 처져버리는 것. 오른쪽 눈은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데 왼쪽 눈은 그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하니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장 큰 불편은 복시, 즉 사물이 겹쳐 보이는 현상이었다.
“온 세상이 다 두 개로 보여 어떤 물체가 진짜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특히 계단에서는 너무 위험했어요. 계단이 두 개로 겹쳐 보이는 데 어떤 계단이 진짜인지 알 수 없어 발을 자주 헛딛었어요. 그러다 넘어지기 일쑤였고. 그래서 아예 한쪽 눈을 가리고 다닌 적도 많아요.”
이렇게 불편한데 신경과에서는 계속 약만 먹으라고 했다. 주변의 시선도 문제였다.
“차라리 모르는 척해주면 좋은데, 눈이 이 모양이니까 사람들이 빤히 쳐다봐요. 신기한 동물 보듯이 말이에요. 당연히 기분이 안 좋죠. 이렇게 된 지 몇 년 안 되어 익숙하지도 않고. 그래서 그때부터 이 안경을 썼어요.”
그가 내민 안경은 흔히 ‘라이방’이라 부르는 익숙한 모양의 선글라스였다. 그렇게 3년을 병원에 다녔는데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병원을 바꿨다. 바로 건국대학교병원이었다.
쌍꺼풀 수술로 오해받는 안검하수 수술
신현진 교수는 신경과 교수와의 논의를 통해 수술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했다. 신 교수가 김씨를 처음 만났을 때인 2015년에는 건국대학교병원 신경과에서 치료를 진행해 눈움직임근육이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여서, 수술을 통해 눈 위치로 인한 복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운동을 안 하면 알통이 줄어드는 것처럼 위축이 일어나고 눈 근육 역시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상태가 점점 더 악화돼요. 늘어진 근육을 잡아당겨 안구가 반대쪽 눈과 비슷한 위치에 오도록 조정하는 수술을 했어요. 발병 전 상태로 돌아갈 순 없지만 그래도 복시가 나타나지 않고, 남들이 봤을 때도 어색하지 않은 눈 상태가 되셨죠”라고 설명한다.
사시 수술 얼마 후에 진행한 또 하나의 수술은 안검하수 수술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쌍꺼풀 수술’ 논란으로 세상에 알려진 이 수술은 정확히 말하면 쌍꺼풀 수술과는 다른 수술이다. 노화와 질병으로 인해 처지는 눈꺼풀을 제 위치로 돌려놓기 위해 눈꺼풀 속 검판이라는 부위를 눈꺼풀올림근과 연결하는 수술이다. 신 교수는 안검하수 수술에 대해 일반인들의 오해가 많다고 말한다.
“흔히 쌍꺼풀 수술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임상적으로는 쌍꺼풀 수술과 안검하수 수술은 완전히 다른 수술이에요. 사람들이 쌍꺼풀이 보이는 눈을 예쁘다고 생각하니까 수술 과정에서 쌍꺼풀을 만드는 것뿐이지, 원치 않는다면 쌍꺼풀이 안 생기게 안검하수 수술을 하기도 해요.”
수술은 복잡하지 않아 하루면 끝난다. 전신마취 같은 것도 필요 없고, 입원도 불필요한 간단한 수술이라고 설명한다.
맹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시달려
하지만 김성겸씨가 세상을 보는 방법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이번엔 황반변성이었다. 황반변성(黃斑變性)은 망막 가운데가출혈 등의 이유로 인해 물이 차고 붓는 질환이다. 사무실이나 카페에서 쓰는 빔 프로젝터의 스크린을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평평해야 할 스크린을 뒤에서 누군가가 손으로 누른다고 생각해보라. 스크린의 굴곡이 영상에 반영되면서, 화상이 왜곡돼 보이게 된다.
황반변성도 마찬가지. 상이 맺히는 망막에 혹이 생기면서 사물이 찌그러져 보인다. 가장 손쉽게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은 욕실의 타일이나 모눈종이 등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만약 직선들이 똑바로 보이지 않거나 중심이 가려보이면 황반변성의 초기 증상이니 바로 안과를 찾아야 한다. 신 교수는 황반변성의 위험을 이렇게 설명한다.
“황반변성은 안과에서 백내장, 녹내장과 함께 3대 질환으로 꼽히는 흔한 병이에요. 문제는 정확한 원인도 잘 모르는 데다, 한 번 발병하면 완치는 어렵다고 봐야 해요. 발병하면 더 나빠지지 않도록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악화를 늦추는 것에 만족하는 정도죠. 게다가 한 번 발생하면 다른 쪽 눈에도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 치료를 위해 안구에 직접 약물을 주사하는데, 1개월에서 3개월 주기로 계속 주사를 맞아야 하고, 주사를 맞으면 감염 방지를 위해 2~3일 정도는 세수도 못하니 환자 입장에선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닙니다.”
또 환자를 옥죄는 것은 정신적 트라우마다. 왜곡돼 보이던 시야의 중앙은 병이 심해지면서 아예 보이지 않게 된다. 검은 반점이 되는 것. 그리고 병이 심해질수록 이 현상도 심해진다. 자고 일어나면 보이지 않는 부위가 점점 더 넓어져 언젠가는 맹인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환자를 힘들게 한다. 실제로 65세 이상 인구에서 법적인 실명의 빈도가 가장 높은 질환이 황반변성이다.
신 교수는 노화와 함께 반드시 주의해야 할 질환으로 황반변성을 꼽았다.
“노령인구가 증가하면서 황반변성 환자도 늘어나고 있어요. 하지만 수명이 증가하면서 눈이 필요한 기간은 더 길어지고 있잖아요. 그러므로 질환이 생기기 전에 주의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당뇨, 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을 관리하고, 야외에서는 자외선을 막는 선글라스를 챙기세요. 고기 위주의 서구화된 식생활을 피하고, 담배는 반드시 끊으셔야 합니다.”
여전히 희망을 말해야 하는 이유
남들처럼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에 시달릴 법도 한데 김성겸씨는 씩씩하게 이겨내고 있다. 첫 사회생활을 공무원으로 시작해 그 후 제조업과 유통업, 식당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경험을 한 탓인지 병마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남달랐다.
“그때마다 스트레스받으면 어떻게 살겠어요. 그런가보다 하는 거지. 신경 쓰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생활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요. 신 교수님께서 사시 수술을 예쁘게 잘해주셔서 남들 시선도 덜 의식하게 됐고, 복시도 사라져서 일상생활의 불편함은 없어요. 앞이 뿌옇게 보이니까 사람을 만났을 때 제대로 못 알아보는 것이 약간 불편할 뿐이죠. 또 술 따를 때 자주 넘치도록 따르는 것도 불편하다고 해야 할까(웃음).”
아직도 끊지 못한 소주 얘기를 털어놓으며, 옆에서 듣고 있는 신 교수에게 미안한지 인상 좋은 너털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는 아직까지 직장을 다니고 있다.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일을 놓을 생각은 없다.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김씨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하지만 상대가 강한 상대이다 보니 황반변성은 조금 나아진 정도.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은 상태다. 그래도 김씨는 여전히 희망을 말했다.
“눈이 좋아지면 차로 아내와 여기저기 다니면서 여행을 하고 싶어요. 젊었을 때 자동차 시트커버도 팔아보고, 엔진오일 도매도 했었는데, 정작 자동차로 여행을 다녀본 기억은 없어요. 여행도 다녀본 사람이 다닌다던데 눈이 좋아지면 주변 조언을 얻어서라도 경치 좋은 곳들을 두루두루 다녀보고 싶어요.”
최근 방송된 건강 프로그램에서 동갑내기 여성 탤런트 L과 전직 스타 농구선수 H의 ‘뼈 나이’를 비교한 적이 있다. 골밀도를 주로 비교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한창 뼈가 건강한 나이에 운동을 많이 한 H는 4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20대의 뼈 나이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 반면, 같은 나이의 L은 뼈 나이가 60대로 측정되면서 무려 40년 정도의 차이를 보여줬다. L은 거의 골다공증 위험 수준이었다. L은 왜 이렇게 뼈가 급격히 노화된 것일까? 그것은 생각만 해도 마음 아픈 그녀의 병력 때문이다. 한창 나이에 뇌종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질환을 앓았던 그녀는 후유증 때문에 몸의 절반에 마비가 왔고,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 스테로이드 호르몬제를 과다 투여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이 무리한 요법을 쓸 수밖에 없었고 결국 부작용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끝내 고관절이 괴사되는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인공관절 수술까지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당시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방송활동을 다시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처럼 스테로이드제를 쓰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인데, 왜 스테로이드제는 그렇게 심각한 부작용을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것일까?
스테로이드 호르몬제가 신약으로 처음 선보였을 때 인류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며 그 효과를 극찬했다. 기존의 소염제로는 염증성 질환이나 알레르기 질환에 효과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단시일 내에 염증과 알레르기를 가라앉히는 스테로이드 효과는 분명 축복이었다. 스테로이드 호르몬제는 항염증, 면역억제, 혈관수축 등의 효과를 가져오는데, 광범위한 질환에 사용된다. 접촉성 피부염, 아토피성 피부염, 지루성 피부염, 건선, 수포성 질환, 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피부질환 치료에 사용된다. 염증이 생길 경우, 혈관을 통해 염증의 원인 물질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혈관을 급격하게 수축시키면서 염증을 가라앉히는 스테로이드의 효과가 필수적인 질병들이 그 대상이다. 심지어 난임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하는 시험관 시술에서도 많은 의사가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한다. 착상 전에 산모의 몸 안에 있을 수 있는 염증을 가라앉히고 면역력을 약간 저하시켜 과도한 면역반응 때문에 착상에 실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스테로이드가 불법적인 목적으로 악용되는 일도 빈번하다. 즉 식품에 스테로이드를 섞어 팔면서 효과를 과장하는 것이다. 주로 노인들에게 많이 사용되는 수법인데, 이런 수법으로 연간 10억여 원의 판매 실적을 올리는 떴다방도 많다. 식품이라 부작용도 없고, 먹기만 하면 관절염이고 통증이 싹 낫는다고 광고하면서 심지어 만병통치약처럼 과장하는 일도 많다.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탑골공원 등지에서 관절에 특효약이라면서 지네가루를 담은 캡슐을 팔기도 하는데, 스테로이드가 무차별적으로 함유된 내용물도 많다. 현혹된 구매자들이 주변에 참 좋은 식품이라며 소개하는 일도 많은데, 그 결과는 참혹하다. 면역력이 억제되면서 고혈압, 당뇨병, 백내장, 골다공증 등의 발생이 거꾸로 급습하는 것이다.
사실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외용제로 스테로이드를 자꾸 쓰다 보면 피부가 얇아지고 혈관이 확장되는 것은 다반사다. 근골격계가 현저히 약해지면서 시험관 아기 시술을 여러 번 시도한 주부가 척추 압박골절을 겪은 사례도 있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눈꺼풀이나 눈 주위에 잘못 바를 경우 백내장이나 녹내장을 유발할 수도 있다. 실제로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함유된 안약을 오랫동안 사용하던 청년이 녹내장 발생으로 실명 위험에 처한 사례도 있다.
스테로이드도 금단증상을 일으킨다. 금단증상은 주로 중독성 약물을 복용하다 강제로 끊었을 경우 발생하기 때문에 마약과 관련이 높은 현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영국의 30세 여성은 3세 때부터 아토피성 습진에 걸린 피부치료를 위해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해왔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스테로이드제가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사용을 중단했다. 그러자 피부가 빨갛게 변하면서 생으로 벗겨지는 증상이 나타나 그녀는 커다란 고통에 시달렸다. 이것이 바로 일명 레드스킨 신드롬(Red Skin Syndrome, RSS)으로 알려진 스테로이드 금단증상(Topical Steroid Withdrawal, TSW)이다. 그녀는 벗겨진 피부에 이물질이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 번 피부 드레싱을 해야 했고, 하루에 거의 20시간 이상을 욕조의 물에 몸을 담그고 피부를 진정시켜야 했다. 결국 그녀는 우울증까지 겪었다. 국부성 스테로이드 중독증이라고도 불리는 이 증세는 오랫동안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데, 사용을 중단할 경우 심한 가려움증과 피부가 타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또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증상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심할 경우 직장과 학교에서의 정상적인 생활도 힘들다.
따라서 장기간의 스테로이드 사용은 결국 심각한 부작용이라는 굴레를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테로이드의 효과와 부작용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할까? 환자의 입장에서는 의외로 답이 간단하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를 때는 가능한 한 얇고 정확하게 바르고, 자신이 스테로이드를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해왔는지에 대해 처방의사에게 알려줘야 한다. 또 스테로이드 복용을 장기화하지 않도록 하고, 효과가 기대에 못 미쳐도 양을 늘리지 않는 등 기본적인 사항을 지키면 된다. 많은 환자가 스테로이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어 부작용 피해에 노출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 최혁재(崔爀在) 경희의료원 한약물연구소 부소장
경희대 약학대학 객원교수, 한국병원약사회 법제이사, 서울시 약사회 병원약사이사, 대한약물역학위해관리학회 총무이사.
환자는 의사의 봉인가? 필자는 60대 초반까지도 좌우 시력이 1.0에서 1.2 정도로 양호한 편이었다. 그러나 4~5년 전부터 점차 시력이 약해지기 시작해 삼성동에 있는 S병원 안과에서 6개월에 한 번씩 검진을 받아왔다. 담당 의사는 백내장 증세가 약간 있으나 심하지 않다면서 매번 좀 더 두고 보자고 하였다. 그러나 시력이 0.4~0.6 정도로 나빠지면서 책을 보거나 핸드폰, 컴퓨터를 볼 때 돋보기를 써야 했다. 또 TV나 영화 그리고 먼 곳을 보거나 운전을 할 때는 원시 안경을 사용해야 해서 안경을 두 개나 가지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특히 결혼식 주례를 할 때는 예식 장갑을 낀 채 안경을 번갈아 바꿔 써야 해서 그 불편함이 매우 심했다.
비슷한 나이의 주변 사람들은 백내장 수술을 받으면 수일 내에 눈이 무척 밝아져서 그런 불편함이 완전히 없어진다고 말했다. 귀가 번쩍 뜨이는 솔깃한 이야기에 올여름 마침내 백내장 수술을 받기로 마음을 정하고 다니는 안과 의사 선생님과 상의했더니 두 명의 다른 안과 선생님들에게 추가 진단을 받으라고 해서 복잡한 검사 후에 수술할 단계가 되었다는 진단이 주어졌다. 수술비용을 알아보니 35만원이었다. 그런데 수술 전, 정밀 검사가 또 필요하다 해서 105만원 정도가 추가됐다. 그동안 매년 두 차례씩 검사를 받아왔는데 왜 또다시 큰 비용을 들여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주변에 알아보니 눈 한쪽에 보통 30만원에서 50만원 정도의 수술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안과를 알아보기로 하고 종로의 G안과와 강남역 근방의 G안과를 방문해보았다. 종로의 G안과는 환자도 많고 혼잡하여 일정이 맞지 않았다. 필자는 늦은 나이에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금요일 오후 늦은 시간이나 토요일에만 시간을 낼 수 있는 처지다. 강남역 G안과는 환자도 꽤 많지만 큰 건물의 3개 층을 사용하고 있어 여유 있는 아늑한 분위기에 검사 장비도 잘 갖추고 있고 일정 조율도 가능해 마음에 들었다.
강남역 G안과에서의 검사 결과, 필자는 백내장뿐 아니라 노안과 난시도 가지고 있었다. 원장은 한쪽 눈에 35만원인 일반 백내장 수술보다는 노안과 난시를 함께 교정할 수 있는 330만원의 고가 수술을 권유했다. 며칠 동안 고민을 하며 망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내 몸, 특히 내 눈이라는 생각으로 고가의 수술을 받기로 했다.
드디어 지난 9월 24일 토요일 오전, 왼쪽 눈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의 검사 절차는 상당히 복잡했으나 정작 수술은 겨우 15분 정도에 불과했다. 주의 사항이 많았다. 술과 담배는 절대 안 되고, 직사광선도 피해야 하며, 눈에 물이 들어가면 오염될 수 있으니 일주일간은 세수나 샤워를 하지 말라고 했다. 정 불편하면 수건을 빨아서 짠 후 얼굴과 몸을 씻도록 했다. 다음 날 오전, 병원에 들러 수술 경과 확인을 위한 검사를, 수술을 담당한 원장이 아닌, 당직 의사에게 받았으며 정상적으로 잘되었다는 소견을 들었다. 소염제도 복용하고 오염방지 용도의 안약도 3가지나 매일 수차례씩 눈에 투여했다. 무척 불편하였으나 며칠만 참으면 시력이 정상적으로 좋아지리라는 기대로 참을 수 있었다.
수술 후 일주일 만에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정상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시력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조금 더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하면서 다음에는 보름 후에 검사를 하자고 했다. 의사의 주문대로 눈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혼자서 눈을 번갈아 감고서 시력을 자가 검사해 보았으나 매번 같은 상태로 좋아지는 것 같지 않아 점차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병원에 갔더니 원장이 검진하고 수술은 이상 없이 잘되었으니 기다리면 된다고 하면서 한 달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한 달은 무척 길고 길었고 시력에는 역시 아무 차도가 없었다.
11월 17일, 여러 검사를 받은 후 원장의 진료 시, 자세한 설명도 없이 레이저 치료를 하자고 하여 치료를 받았다. 치료 후 접수창구로 갔더니 치료비 11만3700원을 내고 약은 약국에서 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 CT 촬영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했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은 1~2주 만에 시력이 확실히 좋아진다는데 필자는 무려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변화가 없으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병원 측의 잘못일 텐데 왜 필자가 장시간 고생을 하고 추가로 비용까지 더 지급해야 하는지 속이 상했다. 다음 날 CT 촬영을 하고 6만600원을 추가로 냈다. 이번에는 3개월 후에 병원에 오라고 하였다. 병원 측에 제대로 따져 묻고 싶었으나 눈 치료에 악영향이 주어질까봐, 화를 억누르고 3개월 더 참아보기로 했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치과와 내분비 내과 등 병원을 찾는 일도 점점 더 많아진다. 그런데 의사들이 환자와 제대로 상의도 하지 않고 각종 고가의 검사와 치료 등을 임의로 결정해 이를 따르지 않을 수도 없고 그대로 따르기도 어려워 고민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환자를 위한 의사가 아니라 병원 영리만을 위한 의사가 아닌지 의문이 많다. 눈이 좋아지지 않고 계속 현재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조언을 받고 싶지만 어디에서 누구한테 받아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50대 후반까지도 인생을 헛되이 살아왔음을 이제야 절실히 느끼게 된다. 송나라 때 학자인 주신중(朱新中)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다섯 가지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 인생을 참되게 살아가기 위한 생계(生計).
둘째 병마나 부정으로부터 몸을 보전하기 위한 신계(身計).
셋째 집안을 편안하게 꾸려가기 위한 가계(家計).
넷째 멋지고 보람 있게 늙기 위한 노계(老計).
다섯째 아름다운 죽음을 맞기 위한 사계(死計).
이 중 60대에 들어선 후에야 그나마 겨우 챙기기 시작한 것이 두 번째인 신계인데, 이미 적절한 시기를 놓쳐버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아직 기회가 있는 분들을 위한 참고사항으로 자세하게 글로 남기고 싶다. 50대 중반부터 고혈압과 당뇨 증세가 나타났으며, 60대에 들어서면서 시력도 점차 나빠지고, 청력도 한쪽 귀가 난청으로 시끄러운 장소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난처한 경우가 가끔 생기곤 하며, 치아도 못쓰게 된 이가 많아 임플란트 시술로 시간과 돈을 꽤 들여야만 하는 실정이다.
고혈압과 당뇨는 젊어서부터 술을 좋아해서 과음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특히 40대 이후 회사의 간부로 근무하면서 술 접대를 하거나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늦게까지 폭음과 폭식을 한 것이 주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아직도 술을 좋아하지만 10여 년 전부터는 지나친 과음은 삼가고 있다. 40~50대 때 1년에 한두 번은 술자리 후에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의식을 못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최근 10여 년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
안경을 두 개씩이나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로 시력이 나빠진 원인은 아마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무렵 약 4년 동안 매주 주말마다 울산과 서울을 오가면서, 주로 오후 시간대 고속버스를 이용하면서 버스 안의 흐린 불빛에 의존해 오랜 시간 책을 본 것이 주원인으로 짐작된다. 요즘에는 흔들리는 차 속에서는 가능한 한 장시간 독서는 안 하고 있다. 약 한 달 보름 전에 노안과 난시 교정까지 치료된다는 다초점 렌즈를 삽입한 백내장 수술을 받고 밝은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있다.
귀가 나빠진 원인으로는 30대 초반 기업체에 종사할 때, 일본어 회화를 공부한다고 출퇴근 시 등 시간만 나면 리시버를 귓속에 꽂고 일본어 회화 테이프를 자주 들었던 때문인 듯하다. 귀에서 이명 현상이 생겨 울산의 종합병원과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으나 확실한 원인이 파악이 안 되고 치료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진단 하에 거의 방치된 상태로 지냈다. 5년 전에 약 400만원 정도 들여 보청기를 구매해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가끔 사용하고 있지만 번거롭고 효과도 별로 좋지 않아 여전히 애로사항이 많다.
치아가 나빠진 원인은 어렸을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할 때 겨우 한 번 이를 닦고 이런 나쁜 습관을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해왔기 때문인 듯하다. 나이가 들면 음식을 먹은 후에는 무조건 이를 닦아야 한다고 알고 실천했으나, 이미 많은 치아가 심한 손상을 입은 후라서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사후 약방문이 돼버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바보 같은 습관으로, 위에 언급한 여러 가지 장애에도 불구하고 생활하는 데 심각한 문제가 없고 주변으로부터 나이에 비해 건강해 보인다는 말을 듣는 것은 필자가 약 10년 전부터 꾸준히 시행해오고 있는 새벽 운동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선후배와 동년배인 장·노년 분들께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1. 이목구비와 두피 마사지
2. 복부, 발, 발바닥 마사지
3. 괄약근 및 회 음부 근육 운동
4. 전신 관절, 척추 근육 이완 운동
이런 운동을 새벽 6시부터 약 40~60분 동안 매일 꾸준히 해오고 있어 나 자신을 사랑하고 챙기는 법을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다. 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과 순서는 PPT로 만들어져 있어 원하는 분께는 개인적으로 나눠드릴 수 있다.
지난주에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우리에게 그리 낯선 이름의 병은 아니다. 아니, 병이라기보다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한 증상, 즉 인생여로의 한 모퉁이 이름이다.
백내장의 조짐이 서서히 있었을 텐데 진작 알아채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눈이 점점 침침해졌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증상이라고만 생각했다. 다른 신체의 기관들처럼 100% 기능을 하지 못해 그럴 거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백내장의 초기 증상은 첫째, 햇빛을 볼 때 유난히 눈부시다, 눈은 신체에서 가장 정밀한 기계와 같으니 나이 들기 전에도 눈을 보호해야 한다는 눈 건강 상식이 있어 필자는 외출할 때면 짙은 색을 넣은 안경을 사용했고 햇빛의 눈부심을 미처 감지하지 못했다.
둘째, 돋보기 없이도 근거리 시력이 좋아진다. 근시안인 필자는 돋보기 없이도 근거리를 잘 볼 수 있는 시력을 가졌는데 마치 신이 내린 선물이라 여기며 무척 좋아했다. 식당에서 메뉴판을 볼 때 친구들은 돋보기를 꺼냈지만 필자는 안경을 벗고도 글자를 잘 읽었다. 은근히 음지는 언제나 양지를 품고 있지 않냐고 속으로 웅변하면서 말이다.
백내장 수술을 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주위의 의견이 분분했다. 먼저 수술을 한 사람들의 예후도 달라 어물쩍거리며 시간을 끌었다, 백내장은 일생에 딱 한 번밖에 수술 기회가 없으니 최대한 견딜 때까지 견뎌보자는 심사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 못지않게 수술을 주저하게 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팔자처럼 근시안인 경우 시력은 좋아지지만 근거리에서는 돋보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 영 마뜩지 않았다.
필자는 근거리 시력이 좋은 게 생활하는 데 더 편리할 것 같았다. 필자에게 근시안 교정 안경은 50년 이상 사용했으므로 이미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설사 망막에 맺히는 상이 시력이 건강한 사람의 상보다 약간 세밀하지 못한들 생활에 큰 불편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주저하다가 어느 날부터 모든 물체가 투명보자기를 씌운 것같이 보여 더 이상 수술을 미룰 수 없었다.
아는 것에는 언제나 오류가 포함된다. 백내장은 소화불량만큼 흔한 질환이어서 필자가 아는 것이 백내장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수술 전에 전문의로부터 수술 과정이나 주의 사항을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환자에게는 어떠한 선택의 여지도 없는 기계적 의료 과정이라고 단정했으며 그저 수술 후 돋보기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만 마음에 걸렸다. 어쩌랴 신체의 노화는 숙명이지 하면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의사는 뜻밖의 말을 했다. “지금의 시력을 유지하면서 백내장 수술을 할 수 있다. 평상시에는 근시 안경을 사용하고 돋보기 없이도 근거리를 보고 독서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얼마나 기쁜 소식인지 손뼉을 치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이었다. 필자에게는 선택을 하고 말고가 없었다. 당연히 현재의 시력을 유지하면서 백내장만 제거하길 원했다.
백내장 수술을 하면 바로 그때부터 시야가 밝아져 신통방통하다더니 지금의 필자 눈에 보이는 세상은 물체들이 너무 선명하고 밝아 현기증마저 들 정도다. 또 백내장 수술 후에는 맨눈으로 책읽기가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오히려 글자들이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잘 보이니 그 행운을 확인하려고 자꾸만 책을 끌어당기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