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우리에게 그리 낯선 이름의 병은 아니다. 아니, 병이라기보다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한 증상, 즉 인생여로의 한 모퉁이 이름이다.
백내장의 조짐이 서서히 있었을 텐데 진작 알아채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눈이 점점 침침해졌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증상이라고만 생각했다. 다른 신체의 기관들처럼 100% 기능을 하지 못해 그럴 거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백내장의 초기 증상은 첫째, 햇빛을 볼 때 유난히 눈부시다, 눈은 신체에서 가장 정밀한 기계와 같으니 나이 들기 전에도 눈을 보호해야 한다는 눈 건강 상식이 있어 필자는 외출할 때면 짙은 색을 넣은 안경을 사용했고 햇빛의 눈부심을 미처 감지하지 못했다.
둘째, 돋보기 없이도 근거리 시력이 좋아진다. 근시안인 필자는 돋보기 없이도 근거리를 잘 볼 수 있는 시력을 가졌는데 마치 신이 내린 선물이라 여기며 무척 좋아했다. 식당에서 메뉴판을 볼 때 친구들은 돋보기를 꺼냈지만 필자는 안경을 벗고도 글자를 잘 읽었다. 은근히 음지는 언제나 양지를 품고 있지 않냐고 속으로 웅변하면서 말이다.
백내장 수술을 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주위의 의견이 분분했다. 먼저 수술을 한 사람들의 예후도 달라 어물쩍거리며 시간을 끌었다, 백내장은 일생에 딱 한 번밖에 수술 기회가 없으니 최대한 견딜 때까지 견뎌보자는 심사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 못지않게 수술을 주저하게 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팔자처럼 근시안인 경우 시력은 좋아지지만 근거리에서는 돋보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 영 마뜩지 않았다.
필자는 근거리 시력이 좋은 게 생활하는 데 더 편리할 것 같았다. 필자에게 근시안 교정 안경은 50년 이상 사용했으므로 이미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설사 망막에 맺히는 상이 시력이 건강한 사람의 상보다 약간 세밀하지 못한들 생활에 큰 불편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주저하다가 어느 날부터 모든 물체가 투명보자기를 씌운 것같이 보여 더 이상 수술을 미룰 수 없었다.
아는 것에는 언제나 오류가 포함된다. 백내장은 소화불량만큼 흔한 질환이어서 필자가 아는 것이 백내장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수술 전에 전문의로부터 수술 과정이나 주의 사항을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환자에게는 어떠한 선택의 여지도 없는 기계적 의료 과정이라고 단정했으며 그저 수술 후 돋보기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만 마음에 걸렸다. 어쩌랴 신체의 노화는 숙명이지 하면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의사는 뜻밖의 말을 했다. “지금의 시력을 유지하면서 백내장 수술을 할 수 있다. 평상시에는 근시 안경을 사용하고 돋보기 없이도 근거리를 보고 독서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얼마나 기쁜 소식인지 손뼉을 치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이었다. 필자에게는 선택을 하고 말고가 없었다. 당연히 현재의 시력을 유지하면서 백내장만 제거하길 원했다.
백내장 수술을 하면 바로 그때부터 시야가 밝아져 신통방통하다더니 지금의 필자 눈에 보이는 세상은 물체들이 너무 선명하고 밝아 현기증마저 들 정도다. 또 백내장 수술 후에는 맨눈으로 책읽기가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오히려 글자들이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잘 보이니 그 행운을 확인하려고 자꾸만 책을 끌어당기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