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을 꿈꾸지만 막막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특히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왔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에 정부는 다양한 지원 정책을 마련, 귀농·귀촌 인구 증진에 힘쓰고 있다. 다만,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면 정부 지정 교육기관에서 관련 교육을 100시간 이상 이수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귀농, 귀산촌, 귀어로 세분화해서 자세히 살펴봤다.
정부는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인구가 농가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귀농·영농 교육 100시간 이수’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 농지와 농가주택 마련 방법, 작물 재배 방법, 판매와 홍보 방법 등을 배운다. 귀농·귀촌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귀농과 귀촌, 뭐가 달라?
귀농 농어촌으로 이주해 농·어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것.
귀촌 농·어업을 직업으로 삼지 않고 전원생활 등을 이유로 농어촌으로 이주하는 것.
귀농·영농 교육 100시간 채우기
농림축산식품부(농정원 포함), 농촌진흥청, 산림청 및 지자체가 주관 또는 위탁하는 귀농·영농 교육을 100시간 이상 이수하면 된다. 단,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에서 주관하는 농업교육포털(www.agriedu.net)에 등록된 교육 이수와 수료증만 인정받을 수 있다.
때문에 귀농·귀촌을 희망한다면 농업교육포털 가입과 이용은 필수다. 온·오프라인 교육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온라인 교육은 참여 시간의 50% 범위만 인정해주며, 최대 40시간만 인정된다는 점이다.
즉 온라인 교육으로 최대 40시간을 인정받으려면 80시간 이상 수업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오프라인 교육을 60시간 이상 들어야 100시간을 채울 수 있다.
정부의 자금 지원은?
각 지자체에서는 100시간 이상 교육을 이수했는지, 농지원부·농업경영체에 등록된 주 경작자인지, 생산물에 대한 증빙자료를 갖췄는지, 경작 규모가 기준 이상인지 등의 조건을 충족한 경우 자금을 지급한다.
대표적인 혜택은 농업 창업자금과 주택 구입자금 지원이다. 농업 창업자금은 대출 한도 3억 원 이내에서, 주택 구입자금은 7500만 원 이내에서 가능하다. 대출 금리는 연 2% 고정 또는 변동금리이며, 대출 기간은 15년 만기다.
농업 창업자금은 농지 구입, 온실·하우스·저장 시설 설치 및 구입, 농기계 구입, 농식품 가공시설 설치, 축사 구입 등을 지원한다. 주택 구입자금은 주거 전용면적 150㎡ 이하 주택을 대상으로 한다.
지자체마다 귀농·귀촌지원센터, 아카데미 등이 있을 정도로 귀농과 관련된 교육 과정은 많고 다양하다. 그중에서 시니어 독자에게 추천할 만한 교육 과정을 꼽아봤다.
귀농·귀촌 맞춤형 교육
전직 창업농 교육은 40·50세대를 대상으로 하며, 농업인으로서 삶과 변화 관리, 농산물 유통 전략, 농촌에서의 가족 생활 등에 대해 배운다. 은퇴 창업농은 6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하며, 농촌에서의 보건의료, 자산관리와 재테크 등을 배울 수 있다.
농업 일자리 체험 교육
농업·농촌 이론 교육 5일, 농작업 실습 교육 5일로 구성되며, 총 80시간을 인정받을 수 있다. 서울,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등 지자체마다 교육이 진행 중이다. 교육비는 국비 100%로 무료다.
지자체 귀농학교
봉화비나리귀농학교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은 학교다. 봉화의 주요 농산물인 사과, 고추, 수박 등에 대한 농사 기술과 현장실습 위주로 교육이 진행된다. 5박 6일 과정이며, 60시간 인정된다. 현재 8월, 9월, 10월 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창녕생태귀농학교 매년 200명의 수강생이 거쳐가는 곳이다. 8월 26일부터 10월 28일까지 9주 동안 100시간의 교육이 진행된다. 귀농 선배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농장 견학과 체험을 할 수 있다.
임업(林業) 관련 일을 하는 귀산촌은 귀농 안에 속하고, 농업교육포털에도 교육 과정이 등록돼 있다. 다만 귀농은 농업진흥청이, 귀산촌은 산림청이 주무 관청이자 지원기관이다.
귀산촌은 행정적으로 산림기본법상 산촌으로 이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산림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산림 관련 커뮤니티 활동이나 생활·생업을 위해 산촌으로 이주하는 행위를 말한다.
보통 전원생활, 나무·열매·버섯류·산나물류·약초류 등의 임산물 재배, 산촌 유학, 체험농장 운영, 농·임산물 유통 등의 일을 한다.
임업후계자 교육
임업후계자 교육은 예비 귀산촌인을 위한 대표적인 교육이다. 임업후계자란 임업의 계승·발전을 위해 임업을 영위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산림청 소속 기관인 산림교육원과 전문 교육기관에서 교육받을 수 있다.
한국임업진흥원 산림청과 함께 귀산촌 교육을 기획·운영하는 곳으로,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귀산촌 아카데미는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무료 공개 강좌로 귀산촌에 대한 관심을 유도한다. 더불어 산양삼과 산나물 재배기술 과정도 진행한다.
경남귀산촌학교 퇴직 후 제2의 삶을 찾는 사람,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을 위해 귀산촌 정착에 관련한 교육·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농장디자인 과정, 산림경영 과정 비대면 교육도 있으며, 6월에는 야생화 소득증대 과정 교육이 열린다.
귀어업인은 농어촌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 어업인이 되기 위해 농어촌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을 의미한다.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어촌어항공단이 귀어귀촌종합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지자체마다 귀어귀촌지원센터가 있다.
어촌에서 어업, 양식업을 희망하는 이들은 3단계 교육을 받아야 한다. 먼저 이론 교육을 받고, 이어 단기 기술 교육을 받아야 한다. 어업, 양식업 분야 현장견학 및 체험 위주의 단기 기술 교육으로 창업 업종을 선택하기 전 다양한 어업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그 다음에는 장기 실습 교육을 받아야 한다. 어촌에 임시로 거주하며 어업, 양식업 기술 등을 배우는 교육이다. 귀어학교를 통해 교육받을 수 있다.
귀어학교
이론부터 실습, 어업 소득 기반 실현을 위한 컨설팅까지 받을 수 있는 장기 실습 교육기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귀어학교는 경상남도 귀어학교로, 2018년부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인천시에서 8번째 귀어학교가 개교한다.
인천시 귀어학교 2023년 하반기에 문을 열 예정으로, 연간 80여 명의 수산 전문 인력을 배출할 계획이다. 어업과 양식업을 포함해 어촌 관광·서비스업 등 다양한 교육을 실시한다.
어촌체험휴양마을
본격적으로 귀어업인이 되고자 마음먹기 전, 어촌체험휴양마을을 찾는다면 어촌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다. 어촌체험휴양마을은 어업 체험을 중심으로 어촌 자연환경과 생활문화 등을 연계해 관광 기반시설을 조성한 곳이다. 현재 전국 121곳의 어촌마을이 체험휴양마을로 지정돼 운영 중이다.
남해 문항어촌체험마을 우럭조개잡이, 쏙잡이, 개막이 체험, 자연산 돌굴까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더불어 직접 잡은 해산물로 요리해 먹을 수 있는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어 재미를 더한다.
울산 주전어촌체험마을 육지에서 유일하게 30년 이상의 베테랑 해녀 선생님들로부터 물질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해녀 밥상 체험도 가능하다. 또한 스킨스쿠버, 투명카누도 즐길 수 있다.
일본 기업들이 연공서열 기준의 멤버십형 인사제도에서 성과와 역량 위주의 직무형 인사제도로 조직을 바꾸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과 인재 유출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청년층 이직률 10년 만에 최고
코로나 이후 일본의 청년층 이직률이 10년 만에 최고치에 달했다. 닛케이 신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약 15만 명이 첫 직장 입사 후 3년 안에 퇴사했다. 2017년 대졸자 기준으로 32.8%에 이르는데, 지난 10년 간 가장 높은 수치다.
같은 기간 이직에 성공한 청년들도 늘었다. 기업들이 ‘중고 신입사원’ 채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용시장의 변화로 보상의 유형이 다양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신입사원의 성장 가능성을 평가해 채용 후 인사법부터 가르치는 이른바 ‘포텐셜 채용’을 하는 기업이 많았다. 이 경우 명확한 직무를 정하지 않고 직무나 근무지를 순환하도록 한다. 또한 신입사원 일괄채용과 종신고용은 일본 기업만의 특유한 고용 방식이다.
한 직장에서 평생 일하는 구조가 유지됐지만, 최근 이직률이 늘어나면서 인사제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 중요시되는 ‘멤버십형’ 인사제도를 개인의 역량과 업무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무(Job)형’ 인사제도로 바꾸어 가는 것이다.
유모토 켄지 전(前) 일본종합연구소 부이사장은 “연공서열 임금제는 고령화와 경제성장 둔화라는 환경에서는 기업의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면서 “‘직무형 고용’은 다양한 인재가 다양한 일을 함으로써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시스템이며, 일본형 고용시스템의 한계를 타파하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개인 역량과 성과 중요한 ‘직무형’
직무형 인사제도를 도입하면 직무에 필요한 지식, 경험, 능력, 자격을 밝힌 직무 기술서에 따라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나이에 관계없이 채용한다. 직원이 스스로 연간 목표를 세우고, 그에 기초해 달성도를 평가한 뒤 처우에 반영한다. 따라서 근무연수가 아닌 업무 중요도나 개인 역량에 따라 급여가 달라진다.
일본 기업들은 이를 보통 임원이나 관리직에만 적용해왔다. 그런데 최근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일반직으로 확대 적용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 60세 이상 고령층에도 직무형 제도를 변형해 도입하고 있다.
대기업인 후지쓰(富士通), 미쓰비시 케미칼(三菱ケミカル) 등은 2020년 새로운 직무형 인사제도를 관리직 대상으로 적용하면서, 50세 이상 관리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모집했다.
후지쓰는 2023년부터 일반 사원에 이 제도를 확대 적용한다. 통신·전자기기 종합회사인 NEC 역시 2023년도에 전 사원 대상 직무형 인사제도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기·전자기업 히타치제작소(日立製作所)는 리먼브라더스 쇼크 이후 사업 구조를 전환하면서 관리직에 한해 직무형 인사제도를 도입했다. 올해 7월부터는 본사 일반 사원을 대상으로 확대 적용한다.
이런 직무형 인사제도의 도입은 중장년 사원들에게 일종의 압박처럼 작용한다. 연차와 관계없이 능력과 역량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년이 가까워지면 그에 따른 준비도 해야 한다. 은퇴 이후 근로자의 재고용을 정부가 나서서 촉진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제도가 자리 잡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베테랑 인재 잡아라
저출산 고령화로 일본 기업들은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든 업계가 그런 건 아니지만, 신규 채용도 미달하는 상황에서는 당장 투입 가능한 인력이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기업들은 60세 이상 시니어 직원 중 역량 있는 인력의 유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고용 확충을 준비하고 있다.
퍼솔종합연구소(パーソル総合研究所)는 조직의 고령화와 코로나로 인한 경제 상황 변화로 시니어 인재 활용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고 짚었다.
퍼솔종합연구소의 ‘기업의 시니어 인재 매니지먼트에 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규사원 중 고령자 비율이 높은 기업은 전체의 84%다. ‘조직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 또한 기존의 연공서열 임금제로 성과와 급여가 미스매치되고 있어 사원들의 동기부여 요인이 줄어들고 있다.
거기에 고령화로 인해 정부가 고령자고용안전법을 개정하고 기업에 ‘70세까지 근로자의 취업 기회 확보를 노력하라’고 하고 있어, 기업으로서는 신규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은퇴를 하고도 회사에 남을 수는 있지만, 이전보다 현저히 낮은 급여와 근무 환경으로 고령자의 근로 의욕은 줄어들게 된다. 더불어 코로나 이후에는 재택근무 등 근무 형태가 다양화되면서 역량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기업 이탈이 이어졌다.
이에 기업들은 신입사원뿐 아니라 정년을 앞둔 베테랑 시니어 사원들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직무·성과형 인사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고령자도 ‘성장할 수 있도록’
일본에는 ‘직무정년제’ 개념이 있다. 이를테면 관리직에서 일하던 사원이 기업 정년 나이인 60세에 은퇴하고, 계속고용이 가능한 65세까지는 관리직이 아니라 일정 권한을 가지고 책임을 지는 전문직에서 일하도록 하는 제도다.
직무정년제라는 건 결국 해당 직무에서 물러나 더 이상의 승진이나 임용이 불가능한 제도다. 급여와 상여 수준도 현역 때와는 달라진다. 그래서 시니어 사원의 의욕이 낮아지고 전문 기술을 가진 인재가 유출된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 3월 스미토모 생명보험은 온라인으로 시니어 직원 새출발을 기념하는 입사식을 열었다. 스미토모 생명은 올해부터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고, 60세 이상의 직원을 대상으로 ‘스페셜리스트’라는 새로운 직책을 만들었다. 60대 사원의 일할 의욕을 자극하고, 인재 유출도 방지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는 직무형 인사제도의 일환이다. 오랜 기간 일하며 각종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베테랑 직원들이 회사에 남도록 해 ‘수석 직원’으로서의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직책과 성과에 따라 임금을 결정한다. 일본 정부는 고령자고용촉진법을 통해 기업의 고령자 고용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재고용을 하면서 고령 근로자의 임금이 35% 수준으로 낮아진다는 이슈가 있었다.
이에 스미토모 생명은 스페셜리스트의 임금 수준을 최대 재고용의 1.5배 수준으로 유지, 임금이 크게 줄어들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했다. 또한 사내 복지도 이전과 같은 처우를 유지한다.
다이와 하우스 공업도 60세를 기준으로 한 직무정년제를 폐지하고, 60세 이후에도 승진할 수 있도록 인사 제도를 수정했다. 또 급여 등의 수준도 낮아지지 않도록 조정했다. ‘액티브 에이징 제도’를 신설해 70세까지 노동 의욕과 일정 업적이 있는 시니어 사원이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야마토 하우스 공업도 지난 4월부터 60세 직무정년을 폐지했다. 그리고 ‘월경 커리어 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직원이 자신의 커리어를 자율적으로 만들어가고, 자아실현을 위한 부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카시오 계산기는 60세 이상 현역 사원을 6에서 10등급으로 세분화해 성과에 따라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퍼솔종합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시니어 인재를 채용한 기업들은 “높은 전문성을 발휘한다”, “거래처와 인맥이 풍부하다”, “후진 육성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장점으로 꼽았다. 경험이나 전문성을 활용하는 업무에서는 일정 성과가 나온다는 것.
무엇보다 직무형 제도 안에서 활약하는 시니어들이 있으면 젊은 사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퍼솔종합연구소의 ‘시니어 종업원과 동료의 취업 의식에 관한 정량 조사’에 따르면, 시니어 직원이 활약하고 있는 직장에서는 젊은 사원들의 이직 의향이 낮았다.
이시바시 호마레(石橋誉) 퍼솔종합연구소 컨설팅2부 시니어매니저는 “기존 일본 기업에는 직무 순환 혹은 직원 육성이라는 명목으로 전근이 많아 사원이 스스로 자신의 커리어를 선택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하며 “시니어 인재가 스스로 활약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자율적 근무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연공서열 제도 아래 임원직이나 관리직으로 승진하지 못한 사원들의 근로 의욕 저하는 기업의 생산성 하락으로도 이어진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율적인 경력 설계가 필요하고, 그 첫걸음이 직무형 제도 도입”이라고 강조했다.
ICT, AI, IoT, 로봇 및 자율주행 기술이 불러온 4차 산업혁명은 애그리테크(Agritech)에도 혁명의 바람을 일으켰다. 오랜 농사 경험을 빅데이터로 순식간에 얻고, 청년들의 노동력을 로봇으로 대신하며, 악천후에 직관적 판단은 AI가 내리는 등 초보 농부가 단숨에 베테랑 농부를 따라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농업 첨단기술은 농사의 시행착오를 줄임으로써 자칫 귀촌이 노후 리스크가 될 수 있는 중장년에게 큰 조력자 역할을 한다.
◇ 인공지능 스마트 관개 시스템
초보 농부의 난관 중 하나는 논밭에 물 대기다. 대부분의 관개(灌漑) 작업은 정확한 데이터보다 농부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농업 기술을 세계 최초로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이 개발했다. 바로 ‘작물 수분 스트레스 진단 및 AI 기반 적정 수분 공급 기술’이다. ‘인공지능 스마트 관개 시스템’은 작물 재배 환경을 정확하게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시기에 적정량의 물을 공급해 작물의 생육을 촉진, 수확량 및 품질을 향상시킨다. 아울러 작물의 생체반응, 즉 엽온(葉溫)을 측정·분석해 스트레스까지 진단한다. 해당 시스템을 사과, 복숭아 재배에 적용했을 때 수확량(18~34%) 및 품질(8~64%) 향상, 물 사용량(25~31%) 및 물 관리 시간(95%) 절감 효과를 보였다.
◇ 농장 단위 맞춤형 기상·재해 예측 경보 서비스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로 농업 분야의 기상·재해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농진청에서는 농장 단위의 상세한 기상·재해 예측 알고리즘을 개발해 사전 알림 서비스를 시행한다. 이는 위치 기반 서비스 응용 사례 가운데 농업-기상-ICT 융합 실용화의 첫 사례다. 일반적인 기상청 예보의 경우 읍면 규모(5×5㎢)지만 농진청 농장 예보는 개별 농장(30×30㎡) 규모로 더욱 정밀하다. 해당 서비스는 기상 요소(기온, 강수량 등 11종), 농장 재해(가뭄, 저온해 등 15종) 정보 및 작물 30종(사과, 배 등)에 대한 생육 단계별 맞춤형 대책(사전·즉시·사후)을 알려준다. 2019년 기준 섬진강 수계의 24개 시·군을 대상으로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서비스를 원하는 1만 549개 농가(1만 7624필지)를 대상으로 실시 중이다.
◇ 지능형 자율주행 무인 방제 로봇
농업 인구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문제를 해결하고 생산성과 작업 편의성을 향상하려면 농작업의 자동화 및 로봇화가 필수다. 이에 과일나무의 형상을 인식해 과수에만 농약 살포가 가능한 지능형 방제 시스템과 자율주행 플랫폼을 융합해 과원용 방제 로봇을 개발했다. GPS 및 라이다(LiDAR, 레이저 펄스를 이용해 물체의 거리를 측정하고 이미지화하는 기술) 기반 자율주행 기술로 제초 작업, 병해충 방제, 수확을 대신하는 농업 로봇이다. 고역 작업인 농약 살포에 로봇을 활용함으로써 인력 대체 실현이 가능할뿐더러, 농약 사용 30% 절감 및 비용 절약 이점이 생긴다. 방제 로봇의 경우 지난해 현장 접목 연구를 통해 올해 시범 보급사업 및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이와 더불어 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는 디지털 사과 과수원 연구를 진행, 무인 자동 약제 살포 장치와 가지치기·꽃따기 기계에 대한 실증을 마쳤다. 기존 고속 분무기로 1㏊를 방제하려면 평균 3~4시간 걸리지만, 무인 자동 약제 살포 장치로는 20∼30분 만에 전면 방제가 가능하다. 스마트폰 앱으로도 병해충을 방제할 수 있어 편리하다. 가지치기, 꽃따기, 잎 솎기 등 수작업으로 해오던 일도 이 기계를 이용하면 1㏊ 기준 300~500시간 이상 걸리던 작업을 8시간 만에 마칠 수 있다.
◇ 화분 매개용 디지털 벌통
지난해부터 이상기후로 인해 야생 화분 매개자(Pollinator)가 대거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과채류의 67%가량은 꿀벌, 뒤영벌 등 화분 매개용 벌에 의존하는 형편이라 그 심각성이 커졌다. 이에 IoT 기술을 적용한 ‘화분 매개용 디지털 벌통’을 개발해냈다. 디지털 벌통은 벌통 내부의 온도, 습도, 탄산가스 농도를 모니터링해 자동으로 최적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벌통 입구에 이미지 프로세싱 및 딥러닝 기술을 접목한 카메라와 디지털 센서로 벌의 크기, 형태, 색깔을 학습시켜 실시간으로 벌의 활동량 측정·관리가 가능하다. 벌의 활동량이 떨어지거나 움직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농가에서 바로 건강한 벌로 교체할 수도 있다. 이러한 기술은 기존 대비 화분 매개 활동량을 2.3배, 작물 수정률을 1.2배 끌어올렸다.
최근 농촌 고령화,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노동력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벌이 벌집에서 나갈 때 꽃가루를 자동으로 묻혀 나가는 ‘자동 꽃가루 부착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벌의 주광성과 정전기 힘을 이용한 것인데, 부착기를 설치한 벌통에 수정용 꽃가루를 넣기만 하면 된다. 벌이 사람 대신 직접 수분 작업을 해내며 노동력이 감소된다. 키위 농가의 경우 노동 비용은 70% 줄었고 생산량은 20% 이상 오르며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 모바일 다목적 스마트 영상 물꼬
논에 물을 넣고 빼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동력을 투입해야 하기에, 고령의 초보 농부가 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휴대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논물 수위를 확인하고 자동으로 물꼬를 여닫을 수 있는 스마트 영상 물꼬 시스템이 개발됐다. 스마트 영상 물꼬는 PTZ 카메라(Pan Tilt Zoom, 원격 회전, 줌 조정이 가능한 카메라) 및 수위 센서를 이용해 논물 양을 실시간으로 촬영, 분석한다. 농부는 논에 직접 가지 않고도 모바일 앱과 웹을 통해 물 조절뿐만 아니라 생육 및 수로 상황을 점검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기록도 남아 빅데이터나 AI 모델에 적용하면 스마트한 작물 재배가 가능하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의 저탄소 물 관리 시범사업을 통해 확산돼 온실가스 감축 사업 지역 중 고양시 등 9개 지역에 영상 물꼬 설치·관리를 지원하고 있다.
◇ 스마트 트랩 병해충 예찰 진단 시스템
해충 번식으로 인한 작물 피해가 속출하며, ICT 기반 병해충 예찰 무인 자동화 기술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이에 온실에 발생한 해충을 유인하고 관련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확인하는 스마트 트랩(지능형 덫)이 전국에 보급됐다. 지난 5월 농진청은 경남 함안군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시설원예연구소에서 ‘스마트 트랩을 이용한 해충 자동 예찰 기술 시연회’를 열었다. 스마트 트랩은 성 페로몬 및 LED(385㎚) 발광으로 해충을 유인, 이미지 분석 기술을 사용해 온실 내 병해충 방제 정보를 제공한다. 딥러닝을 활용한 나방류 이미지 분석 결과 및 스마트 온실 내 온·습도 진단, 방제 기술 정보 등을 모바일 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로써 실시간으로 해충 진단 정보를 받아 빠르고 효과적으로 방제 여부를 결정, 해충으로 인한 작물 피해 최소화에 기여한다.
◇ AI 기반 농산물 시세 및 경락 정보 서비스
농식품 스타트업 ‘록야’는 AI 기반 농산물 시세 예측 시스템 ‘테란’(TERRAN), 작물별 생육 정보 분석·의사결정 서비스 ‘잘키움’, 노지 작물 재해 기상 정보 제공 서비스 ‘FWRM’ 등 신기술을 접목한 농사 솔루션을 제공한다. 특히 빅데이터와 AI 전문가들이 공들여 만든 ‘테란’의 경우 농산물 가격 변동을 다각도로 분석해 표준화된 농산물 가격 정보를 내놓는다. 강원도의 경우 지자체 최초로 ‘테란’을 도입해 농산물 수급 및 출하 등 정책 수립에 활용할 방침이다.
권민수 록야 공동대표는 “귀촌 후 농사 초반에는 재배도 어렵지만, 애써 키운 농작물을 판매·유통하는 과정도 난항을 겪는다. 수요자에게 저렴하면서도 이윤이 남는 적정선이 얼마일지, 또 그 가격이 한 달 뒤에도 유효할지 등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농산물의 가격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분석해 생산자가 적합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디지털 농업 기술이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권 대표는 주식 시장처럼 AI를 기반으로 농산물 시장의 가격을 표준화하고 농산물의 전체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KAPI 지수’를 개발했다. 그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주 고객이지만, 일반 농업 생산자를 위한 보급형 앱 ‘테란 라이트’를 3개월에 6000원 선으로 저렴하게 내놓았다. 작물의 경락 정보를 분석한 AI 뉴스 및 경락 가격 그래프, 전문가 리포트 등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초보 농사꾼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및 일러스트=농촌진흥청 제공]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영화 ‘기생충’,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 등을 일컬으며 세계 시장 속 한국 문화의 인기와 성공에 대해 언급했다. 아울러 ‘어른들을 위한 TV’(TV for Grownups) 코너에 아래의 한국 작품 10선을 소개했다. 해당 작품들은 넥플리스 또는 애플TV 스트리밍 서비스로 시청 가능하다.
[1] 오징어 게임(Squid Game)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이들이 목숨을 걸고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한국 시니어들이 어린 시절 했을 법한 구슬치기, 설탕뽑기, 줄다리기 등을 게임의 소재로 삼아 해외에서도 패러디를 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2] 응답하라 1988(Reply 1988)
1988년 서울 쌍문동을 배경으로 다섯 명의 친구와 가족들의 일화를 그린 가슴 따뜻한 코미디 물로, 한국 중장년들의 추억을 회상케 한다. 미국 드라마 ‘원더 이어스’, ‘골드버그’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선호한다면 추천한다.
[3] 스카이 캐슬(Sky Castle)
공개 당시 한국 케이블 TV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으로, 한국 상류층의 교육열과 물질주의 세계를 묘사한다. 자녀를 최고의 명문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부당한 전략을 이용하는 등 물불 가리지 않는 부모들의 행태를 풍자한다.
[4] 파친코(Pachinko)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꼽힌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거대한 가족 서사를 그린다. 영화 ‘미나리’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이 출연해 기대를 모았다. 고국을 떠나 생존과 번영을 꿈꾸는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삶을 비춘다.
[5] 사랑의 불시착(Crash Landing on You)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중장년에게 추천하는 드라마다.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2세 사업가 윤세리(손예진 분)와,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북한의 특급 장교 리정혁(현빈 분)의 로맨스를 다룬다.
[6] 킹덤(Kingdom)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한국 드라마로, 시즌 3까지 이어오며 양질의 한국산 좀비물로 손꼽히고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불가사의한 역병과 싸워야하는 세자 이창(주지훈 분)과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려는 잠재적 음모 등을 다룬 정치 좀비 스릴러다.
[7] 사이코지만 괜찮아(It’s Okay to Not Be Okay)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처럼 어두운 주제를 다룬 기발한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면 볼 만하다.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 문강태(김수현 분)와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가진 인기 동화 작가 고문영(서예지 분) 등 각자의 트라우마를 지닌 이들이 정서적 치유를 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8] 빈센조(Vincenzo)
드라마 ‘베터 콜 사울’과 같은 법률 장르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조직에서 배신당한 뒤 한국으로 오게 된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송중기 분)가 또 한국의 베테랑 변호사(전여빈 분)와 함께 악당들을 일망타진하는 이야기다.
[9] 슬기로운 의사생활(Hospital Playlist)
‘그레이 아나토미’나 ‘댓 씽 유 두’ 같은 장르를 좋아하는 이라면 재미있게 볼 만한 의학, 밴드 소재 결합 드라마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가슴 뭉클한 감동 스토리와 더불어 1999년 의대 입학 동기인 주인공들이 직접 연주하는 밴드 음악까지 감상할 수 있다.
[10] 푸른 바다의 전설(The Legend of the Blue Sea)
한국 최초의 야담집인 ‘어우야담’에 나오는 인어 전설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수백 년에 걸쳐 평행하게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멸종직전인 지구상 마지막 인어 심청(전지현 분)과 멘사 출신 천재 사기꾼 허준재(이민호 분)의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을 그린다.
너나 할 것 없이 제 이야기 하고 싶어 야단인 세상이다. 들어보면 제각기 대단한 구석도 있고, 웃음 나는 구절도 있으며, 눈물 훔치게 하는 구간도 있다. 그러나 그 재미난 이야기 들어줄 사람 없이 혼자 떠들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이성화 관악FM DJ는 ‘듣는’ 아나운서다. 누구보다 말할 기회가 많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듣는 일이 우선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믿고 듣는, 현역 최장수 아나운서로 자리매김했는지도 모른다. 잘 듣는 사람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세상이지 않은가.
이성화 DJ는 1959년 부산 MBC에서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한 상업방송 최초의 여성 아나운서다. 이후 서울 MBC, RSB 라디오 서울(동양방송의 전신), TBC 동양방송까지 다양한 방송국의 개국 아나운서로 자리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현재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인 KBS 제2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초대 DJ를 1964년부터 1972년까지 8년 동안 맡기도 했다.
아나운서, 현대사 한복판에 서다
1959년부터 1980년까지, 그가 아나운서로 한창 이름 날리던 때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사건이 많던 시기였다. 부산 MBC 아나운서로 일하던 때였다. 그는 우연히 들어선 다방 창가에 앉아 있는 엄순영 씨를 발견했다. 시선을 사로잡는 미모에 감탄한 이성화 아나운서는 엄 씨를 미스코리아 경남 대회에 출전시키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그를 설득해 심사 3일 전에 아슬아슬하게 후보 등록을 마쳤는데, 부산 미스코리아에 선발되면서 엄 씨는 미스코리아 본선에 진출할 자격까지 얻었다.
당시 한국일보사에서 실시했던 미스코리아 본선 대회는 경복궁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대회 전날 엄 씨와 함께 서울에 올라온 그는 당시 김지태 서울 MBC 사장의 자택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아침 사모님이 그를 깨우며 하는 말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미스 리, 쿠데타가 일어났대요’ 하시는데,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멍한 채로 대문을 열었더니 집 앞으로 탱크가 지나가지 뭐예요.” 그때가 1961년 5월 16일 아침이었다. 2년 차 사회 초년생이 5·16 군사정변의 순간을 직접 목도한 것이다. 그는 이외에도 아나운서 자리에 앉아 3·15 부정선거, 4·19혁명 등 굵직한 사건을 보도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정치인부터 유명 가수, 배우 등 명사를 만날 일이 많았다. 만났던 당시에는 몰랐으나 후에 역사적 인물이 된 경우도 있다. 그가 부회장을 맡았던 여류방송인클럽이 한 군부대를 위문차 방문한 일이 있었다. “안내받으며 사단 내부를 둘러보고 사단장을 비롯한 장성들과 기념 촬영을 했죠. 굉장히 대접받으며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꿈에도 몰랐죠. 나란히 서서 사진 찍었던 사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역사적 인물이 될 거라고는 말예요.” 그는 지금도 김재규와 함께 있는 사진을 보면 권력이 다 무엇이고, 인생이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생각한다.
5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와 배짱
인생무상, 덧없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전성기는 빛나기 마련이다. 그는 업계 안팎으로 일찍이 능력을 인정받은 1세대 커리어우먼이었다. 재치 있고 순발력이 좋다고 소문 난 덕분에 당시 생방송 스케줄이 잡힌 PD들에게는 섭외 1순위 아나운서였다. 게다가 당시 발간되던 잡지 ‘아리랑’에서 진행한 아나운서 인기 순위 조사에서 당당히 1위를 거머쥐기도 했다.
“동양방송에서 ‘가로수를 누비며’를 진행하던 시절이었어요. 요즘처럼 방송에서 노골적으로 남녀 간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를 다루는 일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요. 택시 기사와 전화 연결을 할 때 제가 ‘기사님 밤늦게 운전하고 들어가도 부인께서 식사 정성껏 챙겨주시면 덕분에 기운 나시죠? 그러면 기사님도 부인께 친절을 베풀어야지요’ 하면 바로 알아듣고 상대편에서 ‘그럼요. 다음 날 아침상에 달걀프라이가 올라온답니다’ 하고 대답하거든요. 듣는 사람들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지요.”
그의 인기에는 뛰어난 순발력과 더불어 듣기 좋은 음성이 한몫 단단히 했다. 연극 연출가 오사량은 ‘5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라며 그의 목소리를 극찬했다. 목을 써야 하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평생 목 관리를 모르고 살았으니 천직이나 다름없다.
이성화 DJ의 방송 인생을 논할 때는 당찬 성격을 빼놓을 수 없다. 부산 MBC의 방송요원 모집 공고를 보고 응시했다가 덜컥 합격해 방송 인생이 시작된 것, 예상 못한 순간에 순발력을 발하는 기지도 그의 당찬 성격에서 비롯됐다.
전국체육대회가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리던 시절, 육영수 여사가 직접 방문한 일이 있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전국체육대회 중계방송의 진행석에서 방송 준비를 하던 그는 마이크를 쥐고 대뜸 육 여사가 앉은 단상으로 올랐다. 단상 밑을 지키고 서 있던 경호원 둘이 막아섰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동양라디오에서 나왔는데 잠깐 인터뷰만 할게요’ 하고서 그 둘이 망설이는 틈을 타 단상에 올라섰어요. 올라가는 동안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한 다음 육영수 여사한테 ‘안녕하십니까. 이따 방송 시작하거든 날씨가 어떤지만 여쭤볼게요. 오늘 날씨가 좋지요? 하고 물으면 ‘네’ 하는 대답이랑 선수들 잘 뛰라는 말씀만 해주세요’ 그랬어요. 돌이켜 생각해도 보통 배짱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결국 그는 계획에 없던 영부인의 인터뷰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쾌지나 청춘에서 제2의 청춘을 열다
이후 1980년 신군부의 주도로 언론통폐합이 이뤄지면서 당시 몸담고 있던 TBC 방송이 문을 닫았다. 이때 그의 활약상에도 일시정지 버튼이 눌렸다. 밖에서 그만 일하고 가정으로 돌아오라는 남편의 반대 때문이었다. 이후 방송에 대한 욕심, 재능, 외부의 인정을 모두 던져두고 30년을 주부로 살았던 그는 9년 전 뜻하지 않게 아쉬움을 풀 기회를 얻었다. TBC 방송국 막내 PD였던 동료의 소개를 받아 비영리 라디오 방송국 관악FM에서 라디오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서울 관악구에 사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회화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맡았다.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고 발음이 정확해 한국어 선생님으로 발탁된 것이다. 그러나 반응이 좋지 못했고, 방송을 맡은 그 역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에 제작진과 함께 고민한 끝에 폐지됐던 ‘쾌지나 청춘’ 방송을 되살리는 카드를 선택했고, 그는 현재 9년째 ‘쾌지나 청춘’의 월요일 DJ를 맡고 있다.
‘쾌지나 청춘’은 국내 최초 어르신 방송단이 만드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간 오전 6시에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쾌지나 청춘’은 고정 코너 ‘생활의 지혜’, ‘생활 건강’과 요일마다 다른 여섯 가지 단독 코너로 이뤄진다. 이성화 DJ와 함께하는 월요일에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인터뷰 코너가 진행된다. 코너의 아이템 기획부터 게스트 섭외, 인물에 대한 사전 취재와 원고 작성은 모두 그의 몫이다. 녹음을 진행해보고 더 끌어낼 이야깃거리가 있다고 판단하면 회차를 늘려 추가 녹음을 진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획 및 진행자만으로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완성할 수 없다. 관악FM 내의 오랜 파트너인 김우신 PD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베테랑 DJ로서 방송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알기에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며 방송 제작에 힘써준 그가 고맙기만 하다. “지금까지 기획진행 이성화, 기술편집 김우신 프로듀서였습니다.” 매 방송마다 빠짐없이 넣는 멘트만큼이나 그를 향한 애정이 빼곡하다.
한창때는 하루에 10시간도 방송했던 베테랑 방송인에게, 30년이란 기나긴 공백기를 뛰어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청취자에게 신청곡을 주문받으면 막내 작가가 서고로 뛰어올라가 CD를 찾는 동안 즉흥에서 멘트를 지어내던 시절과는 사뭇 딴판이지만, 라디오 DJ 일은 그에게 여전히 즐겁기만 한 분야다. 그는 매 방송이 끝난 뒤 직접 준비한 원고를 일일이 개인 블로그에 올리곤 한다. 젊을 때부터 습관처럼 하던 기록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방송과 게스트를 홍보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여성·드라마, 그가 전할 새로운 이야기
평생을 진행자로 살았지만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꿈도 꾼다. 이를테면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구상하고 제작하는 일 말이다. 만약 PD가 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는 중장년 여성들을 조명하는 프로그램 ‘라떼’를 만들고 싶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아내로만 살아오며 나이 들어버린 이들의 세월을 조명하고픈 욕심 때문이다.
“여성들이 남모르게 겪은 고통과 고난 같은 사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요. 가부장 사회의 제도와 법률에서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던 사람들이거든요.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었는데 각자의 가정에 자양분으로 쓰이고 만 거예요. 그래서 유능한 여자들이 가슴에 응어리가 많아요.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할 곳도 없으니 친구들이랑 만날 때나 털어놓고 말죠. 그런 얘기를 자주 듣는데 정말 가슴이 아파요.”
그만 해도 그랬다. 일에 욕심이 있고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남편의 반대를 거스르지 못해 끝내 집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았다. 은행에 입사할 때 결혼하면 그만두겠다는 각서를 써야 했고, 여자가 남편과 아이를 두고 바깥일을 하면 손가락질하던 시절이었다. 당대 여성들에게 선망받는 방송인이었던 그도 방송을 마치면 아내이자 엄마로서 일할 줄만 알았지 자기 계발에 시간 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주부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아나운서로서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한 채 흘려보낸 30년의 시간이 그에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아쉬운 만큼 그는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지금에 열중하다 보니 새로운 목표도 계속해서 생겨난다. 그는 80대에 들어서면서 드라마 공부를 시작했다. 예전부터 드라마 대본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야 도전할 여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촬영 현장에서 어엿한 스토리텔러로 활약하고픈 열정이 샘솟아 4년 전에는 전문 학원까지 등록해 수업도 들었다.
“쾌지나 청춘 기획하고 진행하랴, 집에 가면 블로그 글도 올리랴. 게다가 남편 밥도 챙겨줘야 해요. 쉴 새 없이 바쁜데도 드라마가 너무 쓰고 싶어서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면서 대본을 썼어요. 드라마라는 게 제각기 다른 갈래의 사람들이 한데 얽혀 진행되는 이야기잖아요. 저도 그렇게 멋진 예술의 한 줄기로 끼고 싶은 거죠.”
‘옛날 사람’인 그는 그가 실제로 보고 들은 ‘옛날이야기’를 50분짜리 대본 한 편에 풀어냈다. 요즘 사람들의 AI, 우주 공간 같은 요즘 이야기 말고 욕심쟁이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명예를 탐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담았다고 했다. 그 대본으로 당장 드라마를 제작할 수 없고, 촬영 현장에서 스토리텔러로 활동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지금은 아는 것이 없지만, 그는 꾸준히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다. 처음 아나운서 일을 시작했던 그 당찬 성격과 배짱을 무기로 내세우면서.
1세대 아나운서인 그는 아나운서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친화력을 꼽았다. 친화력이 있으려면 배려와 친절은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처음 보는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파악하며, 이를 이끌어내는 능력까지. 아나운서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이 친화력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관악FM에서만 4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을 만났다. 400개의 이야기를 듣고 400개의 아름다움을 뽑아낼 줄 아는 그는 친화력 그 자체나 다름없다. 이야기가 익숙하거든 잘 알고 있는 내용이라 좋고, 몰랐던 세월의 이야기라면 새로워 좋다. 들을 줄 아는 아나운서, 한결같은 그의 인생이 아름답다.
기본만 하자. 수없이 하는 말이지만 정작 지켜지는 일은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그만큼 기본을 지키기도 어려운 세상일지 모른다. 그런 세상에서 기본을 지키는 이는 도리어 빛이 난다. 김진숙(71) 이사가 그렇다. 모래에 덮인 금이 시간 지나 점차 드러나듯, 나서서 설명하지 않아도 가치를 알아주는 이 말이다.
방송인 홍진경의 어머니 김진숙이 품질관리이사를 맡고 있는 주식회사 홍진경은 ‘더김치’를 비롯해 만두, 다시팩, 된장 등 양념류를 판매하는 식품 회사다. 대물림한 방식으로 담가 먹던 김치 판매를 시작으로 다른 상품들을 내놓으며 18년째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하느님, 김치가 맛있어지게 도와주세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기 전 김 이사는 1년 정도 김치를 판매한 적이 있다. 집에서 직접 만든 것을 지인들에게만 조금씩 팔았던 건데, 이를 눈여겨본 딸 홍진경이 사업 제안을 해왔다. 아예 회사를 차리지 않겠냐는 본격적인 사업 제안이었다.
그는 강하게 반대했다. 망신당할까봐, 딸 이름에 먹칠하면 어쩌나 걱정부터 앞선 나머지 한 달 정도 도망까지 다녔다. “우리 식구 먹는 거야 내가 한다지만 이걸 어떻게 대중 상대로 판매한다고 이러나 싶었어요. 대량으로 만든 김치가 우리 해 먹는 김치랑 같은 맛이 나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죠. 만약 맛이 제대로 나지 않으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나한테 그 어려운 걸 시키느냐고 거절했어요.”
딸은 포기하는 대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럼 쇼케이스라는 걸 해보자. 신사동에 있는 식당 하나를 빌려서 지인과 기자들을 초청하는 거야. 엄마가 찾아오는 사람들 대접할 배추김치랑 총각김치를 맛있게 만들어줘.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면 사업을 하고, 맛이 없다고 하면 내가 포기할게.” 김 이사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쇼케이스를 앞두고 김치를 담글 때 매일 기도드렸다. “하느님, 이 김치가 맛있게 익도록 도와주세요. 이거 정말 중요한 겁니다. 이게 잘돼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면 김치 담그느라 고생하는 주부들 수고도 덜어줄 수 있어요.”
신선한 재료, 굽히지 않는 원칙
행사 당일, 식당에는 돼지고기 수육과 조밥, 배추김치와 총각김치가 한 상 가득 차려졌다. 김치 본연의 맛을 느끼라고 새우젓은 일부러 챙기지 않았다. 목 축이는 데 필요한 직접 담근 식혜는 덤. 당시 쇼케이스를 위해 빌린 식당은 홍진경의 지인들로 북적거렸다. 엄정화, 최화정, 이영자 등 홍진경의 연예인 지인들부터 코미디언, 모델, 가수, 작곡가, 당시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 잡지사 기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최화정은 ‘어머니, 김치 맛이 살아 있어요’라고 했고, 이영자는 ‘엄마, 김치 진짜 맛있어’ 그랬죠.” 모인 사람들 전부 김치가 맛있다며 싸달라고 난리일 정도였다. 미리 소분해 포장해둔 김치를 한 봉지씩 챙겨 보냈고, 그 다음 날부터 신문이며 잡지에 ‘홍진경네 김치 맛있더라’는 기사가 잔뜩 실렸다.
2003년, 그는 결국 딸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가서는 주문량을 채울 수 없으니 OEM(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해내는 주문자위탁생산) 방식을 선택했다. 그는 김치 10kg 기준으로 필요한 재료와 김치를 담그는 순서를 세세하게 설명한 레시피를 정리했다. 공장 측에 레시피를 전달하기로 한 미팅 전날 밤, 그는 딸을 불러 앉혀놓고 약속을 받아냈다.
“재료에 돈 쓰는 거 아까워하면 나는 이 일 못 한다.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집에서 하던 것처럼 좋은 재료로 만들 거고, 어느 공장 어느 사장님이 만들더라도 내가 써둔 이 레시피 그대로 만들어야 해. 그거 약속해야 엄마는 이 일 할 수 있어. 그랬더니 진경이가 눈을 딱 쳐다보면서 ‘엄마,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그러더라고요.”
처음 계약을 맺은 건 평택의 한 김치 공장이었다. 당시 레시피를 받아든 공장장은 “이거 대박날 수밖에 없겠다”고 했다. 만들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조미료랑 설탕이 하나도 안 들어가. 그러니까 성공할 수밖에 없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역할 분담은 확실했다. 마케팅이나 회사를 경영하는 부분은 딸이 맡고, 재료부터 제품 품질 관리, 레시피 관련된 일은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사업 초기에는 힘든 줄도 모르고 공장과 배추밭에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곤 했다. 비 내린 뒤 질척한 배추밭을 얼마나 걸었는지 엄지발톱이 빠진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에겐 영광의 상처일 뿐이었다. 딸의 이름을 걸고 하는 사업인 만큼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로 가득 찬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직원 수도 몇 명 안 되고 주문받은 물량도 적어 공장 한켠으로 물러나 직원들과 함께 조용히 김치를 버무렸다. 그러나 김 이사의 고집과 원칙이 통했는지, 하루 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배가 넘는 양의 주문이 쏟아졌다. “지난주는 200kg, 이번 주는 300kg, 500kg 주문이 들어오더니 그 다음 주는 1000kg을 막 넘어갔어요. 1년 지난 뒤에는 우리 회사 김치부터 먼저 담그고, 그 공장에서 원래 담그던 김치를 자투리 시간으로 넘겨야 했죠.”
주문량이 많아졌어도 원칙은 그대로 유지됐다. 김 이사는 품질 관리를 위해 언제든 공장에 찾아와 김치에 쓰일 재료를 살펴볼 수 있고, 양념 맛도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잎이 꺾이거나 푸른 이파리 많은 배추는 아예 쓰지 않고, 풀을 쑬 때도 무조건 국산 찹쌀만 고집했다. 배추 한 포기를 그냥 넘기지 않고 모든 배추에 양념이 고루 발리도록 했다. 다른 사업체 김치랑 섞이지 않게 철저히 관리해달라는 부탁도 빼놓지 않았다.
김치의 질이 좋으니 주문이 폭주하는 건 당연한 일. 홈쇼핑에서 매진시킨 물량을 감당 못 하니 직접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직원들과 함께 김치를 담갔다. 방송에서 약속한 날짜까지 배송이 완료되지 않으면 소비자와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거래하는 공장을 자주 바꾸지 않고 최대한 조율해 계약을 유지하는 이유도 김치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는 음식의 맛 역시 소비자와 기업 간의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그는 신뢰와 신용을 중요시한다. 소비자와의 약속, 직원과의 신뢰, 혹은 공장과의 신용.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어려워도 “하던 대로 해요, 순리대로”
좋은 식재료를 판단하는 높은 기준, 재료의 맛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웰빙’ 조리법, 회사 직원들의 끈끈한 단합력. 더김치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서 매출은 계속 우상향 곡선만 그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치를 판매하는 회사가 몇 없었어요. 외국에 수출할 만큼 큰 회사랑 전체 판매량으로는 못 견줘도 그때 온라인 판매는 더김치가 1위였어요. 180억, 200억, 220억, 270억, 매출도 쭉쭉 올라갔어요. 주춤할 새가 없었죠.”
인기가 한풀 꺾인 건 3년 전쯤부터다. 연예인들이 직접 브랜드를 세워 판매하는 김치가 시중에 다양해지자 자연스레 매출 곡선이 꺾인 것이다. 다양한 회사,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제품들이 많아지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전에는 김 이사 혼자 혹은 딸 홍진경과 함께 홈쇼핑에 출연하는 일이 잦았지만, 최근 몇 년은 홈쇼핑에 베테랑 방송인 홍진경만 출연하고 있다. 타사 김치 매출을 따라잡기 위한 맞수다.
김 이사는 요즘 ‘혼자 홈쇼핑에 출연해도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 방송 출연에 유튜브 콘텐츠 기획 및 촬영, 홈쇼핑 출연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딸을 걱정하는, 영락없는 엄마 마음이다.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기보단 하고 있는 식품에 집중하려고 해요. 하고 있는 걸 잘 지켜내자는 마음이 커요. 제품 하나 출시하기까지 레시피 정리하고 필요한 재료 하나하나 찾느라 몇 년은 걸리거든요.”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새로운 제품을 함께 내보자는 제안이 수없이 들어온다. 육수를 간편하게 우려낼 수 있는 ‘더다시팩’을 출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리 정해둔 출시일 이전에 경쟁사에서 비슷한 제품을 먼저 내버리는 허망한 일도 겪었다.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당황하고 힘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공정을 마무리했다. 예정대로 출시된 더다시팩은 좋은 재료로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아 지금도 꾸준히 매출을 올리고 있다.
“처음 매출 부진을 겪을 때 걱정한 건 사실이에요. 그때 아들이 ‘우리 순리대로 해요.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거니까, 너무 남을 쫓아가려고 하지 말고 하던 대로.’ 말해줬는데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자식들에게 배운 기분이었죠.”
조용한 응원이 만든 빛나는 것들
유명 방송인의 엄마라고 다른 어머니와 뭐가 다를까. 그는 항상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워낙 통통 튀는 성격인 딸이 어릴 때는 마음 놓을 새가 없었다. 하지만 딸을 지켜봐 온 엄마의 마음에는 언제나 신뢰가 굳게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아들이 진경이 유튜브에서도 그랬어요. 누나가 갖고 있는 내공은 우리 가족들만 알고 있다고. 그게 정말 맞는 말이에요. 학교 공부는 안 했어도 책을 많이 읽어서 똑똑하고 명석하거든요.”
TV 방송부터 넷플릭스 예능, 유튜브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는 딸을 보는 요즘은 감사하기만 하다. ‘우리 딸의 진가를 세상이 알아주는구나’ 싶어 내심 뿌듯한 마음도 든다.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유튜브 채널에 달리는 댓글도 전부 읽는다. 구독자 수만 100만 명을 넘길 만큼 인기 있는 데다 댓글엔 적재적소에 터지는 멘트, 짜임새 있는 영상 기획력 등 칭찬 일색이라 언제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느님께 매일 기도했어요. 우리 아이에게 지혜를 주세요. 방송에서 빛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맡은 방송들 전부 다 빛나게 해주세요. 요즘은 딸이 그래요. ‘엄마가 맨날 기도했잖아. 그 기도대로 되고 있는 것 같아.’”
일이 바빠도 모녀는 하루에 한 번씩 꼭 안부 문자를 주고받는다. 딸이 출연한 방송 모니터링 후 칭찬은 필수다. 어느 부분이 좋았다고 콕 짚어주기도 하고, 재능은 항상 네 안에 있다며 북돋아주는 말도 한다. 아낌없는 응원이 홍진경과 라엘 모녀 특유의 솔직 당당한 매력을 자아냈다.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열었던 가족회의도 구김살 없는 성격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대화로 해결하는 시간을 만든 것이다. 덕분에 큰 소리를 내거나 험한 말 오가지 않고도 두 아이를 바르게 키워낼 수 있었다.
그는 엄마와 사업인으로서의 삶 중 무엇 하나 즐겁지 않은 것이 없었다고 말한다. 힘든 때도 많았지만 매사에 즐겁게 임했다. 일하면서 항상 나 아닌 가족, 지인, 한 번이라도 스쳐 지나간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잘 되기를 염원한다.
“배추나 무 농장에 가보면 일해주시는 동네 어르신들이 그래요. 용돈벌이 하면서 일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저희는 좋은 재료 받아 좋은 음식 만들 수 있어 좋고, 어르신들은 일거리도 생기고 돈도 벌 수 있어 좋고. 아무리 돈 버는 기업이라도 저희만 잘 돼서는 안 되잖아요.”
그는 앞으로도 충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일상과 직업, 신앙을 굳이 구분하진 않는다. 무엇이든 기본에 충실해서, 지금 당장은 알아주지 않더라도 시간 지나면 진가가 드러나는 사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부연하여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고개 끄덕이는 사람 말이다. 그가 키워낸 아이들이 그랬고, 담그는 김치가 그렇듯. 그가 소망하는 일을 이룰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국내에 프로스포츠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여러 가지 전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런 영웅담 중에서도 최고의 전설을 꼽자면 아마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두껍게 날리는 흙먼지 사이로 흑색과 적색의 유니폼을 입은 그들이 나타나면 상대 팀 선수들은 기가 죽고, 상대 팀 팬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상대의 전의마저 상실케 했던 해태 타이거즈 군단의 맨 앞에는 1번 타자 이순철(60)이 있었다.
“당시엔 사실 잘 몰랐어요. 해태 타이거즈에게 상대 팀들이 그렇게 기가 죽었는지를요. 그 공포의 유니폼은 우리에게는 그냥 촌스럽고 덥기만 한 존재였는데.(웃음) 현역 때는 모르다가 나중에 알게 됐죠. 술자리 같은 사석에서 다른 팀 출신 동료들이 이야기하더라고요. 그 유니폼이 그렇게 무서웠다고 말이죠.”
사실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 공식은 아주 단순했다. 타자들이 상대 팀보다 앞서 점수를 내면, 투수들이 막아 승리를 지킨다. 1번 타자 이순철이 시작하면 마무리투수 선동열이 지키는 공식이다.
홈런이 귀했던 시대에 1번 타자가 10개 이상 홈런을 치고 50개 이상 도루를 밥 먹듯 하니, 상대 팀 입장에선 맞설 수도, 내보낼 수도 없는 골치 아픈 타자, 그가 이순철이었다.
“상대는 경기를 시작하면 무조건 선취점을 내려고 했죠. 선동열이 못 나오도록 해야 하니까. 그렇게 무리하다 보면 게임은 꼬이게 되죠.”
함께 흘렸던 목포의 눈물
1980년대 호남 사람들에게 해태 타이거즈는 억눌린 울분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이들이 겪었던 상처는 해태 타이거즈 선수들이 승수를 쌓아갈 때마다 조금씩 아물어갔다. 그래서 팬들은 관중석에 앉아 ‘목포의 눈물’을 목이 터져라 불렀다. 그런 감정은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고 이순철 위원은 이야기한다.
“지금과 달리 당시엔 선수들도 대부분 호남 출신이었죠. 팀 내에서 민주화 운동에 대한 말은 아끼는 편이었지만, 그 응어리나 한이 없을 수 없죠.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경기 일정부터 달랐어요. 해태 타이거즈는 한동안 5월 18일이 다가오면 전후 일주일 정도는 원정경기만 잡혔어요. 기념일에 광주 구장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요. 하지만 원정을 가도 전라도 분들은 어디에나 있었고, 계속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셨죠.”
1980년대에만 해태 타이거즈는 5번의 시리즈 우승을 이뤘다. 전체 우승컵의 절반을 가져온 셈이다. 대체 어떤 부분이 해태 타이거즈를 그렇게 강하게 만든 것일까? 이순철 위원은 그 비결로 3가지를 꼽았다. 강한 위계질서와 헝그리 정신 그리고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다.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았고, 이 선수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위계질서가 있었죠. 선배들이 짓누르니까 후배들은 압박도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추억담처럼 이야기할 수 있어요. 아마 프로야구 구단 중에서 OB(구단 출신 은퇴선수) 모임이 가장 활성화된 곳이 해태 타이거즈일 거예요. 그만큼 서로 사이가 좋아요. 또 구단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릴 수밖에 없었어요. 보너스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려면 말이죠.(웃음)”
사실 강한 위계질서는 후에 그가 해태 타이거즈를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타이거즈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응용 감독에 대한 항명 사건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이후 비슷한 사건을 겪는다. 43세 젊은 감독으로 LG 트윈스에 부임하자마자 팀의 고참 선수였던 이상훈과 갈등을 빚었고, 에이스인 그를 당시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를 보내게 된 사건이다. 한 번은 선수 입장에서, 한 번은 감독 입장에서 항명 사건과 맞닥뜨린 셈이다. 이 위원은 “철이 없었다”고 정리했다.
“철없던 짓이죠. 김응용 감독과의 갈등은 제가 철이 없었어요. 또 이상훈 선수와의 갈등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선배로서 더 아우를 수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죠. 이상훈 선수하고는 나중에 한잔하면서 갈등을 풀었어요. 직접 소통했어야 하는데, 가운데 누군가를 거쳐 말이 전해지다 보니 생긴 오해였더라고요. 김 감독님하고도 마찬가지예요. 얼마 전 감독님 팔순 잔치도 제가 주도해서 준비했을 만큼 지금은 모두와 잘 지내고 있어요.”
숙명의 라이벌과 한 팀으로
사실 이순철 위원이 처음 시작한 운동은 야구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부에 들어가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축구부가 해체되면서 다른 인생이 펼쳐졌다.
“축구부 다음으로 육상부에 들어갔죠. 그러다 핸드볼을 잠깐 하고 나서 야구로 전향하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응원은 받지 못했어요. 당시만 해도 운동선수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은 시절은 아니었으니까요. 공부하기를 원하셨지만, 먹고살기 바쁘니까 적극적으로 막진 않으셨죠. 저도 공부보다는 운동이 좋았으니까 계속 열심히 했고요. 운동부에서도 쉽진 않았어요. 당시 운동부는 지금 기준으론 범죄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체벌이 심했으니까요. 운동을 말리는 부모님에게 체벌 흔적을 들키지 않으려고 감추기도 하고, 상처 때문에 엎드려 자야 하는 날도 많았어요. 자식이 학교에서 맞고 다닌다면 누가 운동을 시키려 하겠어요.”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진가는 빛났다. 광주상고의 에이스로 발전해 광주일고 선동열과 맞서는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관계는 대학 때까지 이어져 연세대학교 81학번으로 같은 학번의 고려대학교 선동열과 계속 맞서야 했다.
대학 졸업 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을 때 세간의 관심은 1985년 신인왕을 어느 팀이 배출하느냐가 아니었다. 해태 타이거즈의 누가 가져가느냐였다. 결국 신인왕은 0.304의 타율과 12홈런, 31도루를 기록한 이순철의 것이었다. 이 기록은 지난 시즌 기아 타이거즈에 입단한 이의리 선수가 신인상을 받을 때까지 36년간 이어졌다.
10시간의 비행이 만든 프러포즈
1989년 어느 날, 이미 팀의 주전으로 자리 잡은 이순철은 스위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12시간이 넘는 비행이었지만 생경했던 기내식도 먹는 둥 마는 둥이었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허락할까?’
야구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스위스로 향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연인 이미경 씨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위원은 부인 이미경 씨를 연세대학교 학창 시절 처음 만났다. 그가 대학 시절 이미경 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골인한 것은 야구계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아내 키가 170cm가 넘어요. 제가 좀 작은 편이라 키 큰 여자를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미인인 아내를 보는 순간 한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만나서 계속 구애를 했죠. 그리고 연애를 10년이나 했어요. 아내가 승마 선수로 스위스에 유학을 가 있을 때 프러포즈를 했어요. 그전까지는 전화카드를 잔뜩 쌓아놓고 공중전화로 장거리 연애를 했죠. 그러다 저도 혼기가 돼서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겠더라고요. 스위스행 비행기에 올라서 어떤 말을 할지, 과연 승낙을 해줄지 이런저런 생각에 긴장이 돼서 기내식도 제대로 소화가 안 될 정도였어요. 걱정과 달리 순순히 허락을 해줘서 기뻤죠. 그리고 다음 해 바로 결혼했어요. 저 때문에 승마를 그만두게 되었다고 아직도 가끔 불평을 해요.”
‘모두까기’의 야구 사랑
야구 골수팬들에게 이순철이란 이름 석 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엄청난 기록의 선수였지만 말년의 기복 있던 모습이나 감독으로서는 좋지 않았던 성적, 방송이라도 입바른 소리는 뱉고 말아야 하는 성격 탓에 ‘모두까기’란 별명까지 얻은 해설위원으로서의 모습. 그러나 불만을 가진 팬들도 인정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야구에 대한 그의 사랑이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나서, 그는 단 1년도 야구계를 떠나본 적이 없다. 프로팀 코치나 감독 혹은 대표팀의 코치를 맡기도 했고,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한다. 이런 모습을 팬들이 인정해주는 것이다.
“제 인생에는 야구밖에 없어요. 인생의 다른 기술이 없어요. 다른 것을 할 용기도 없고,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까 야구에 몰두하는 것뿐이죠. 어릴 때부터 야구에 매달려 살았고, 야구를 하는 것이 가장 즐거워요. 편하고요. 그래서 인생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야구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실제로 그는 인터뷰를 위해 사진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어색해하다가 소품으로 준비한 배트를 손에 쥐자 표정이 달라졌다. 타격 자세를 취하고는 “이제야 좀 편해진다”며 웃었다.
이제 그에게는 선수 혹은 감독이라는 호칭보다 해설위원이라는 직함이 더 편안하게 들릴 정도가 됐다. 2007년 MBC를 시작으로 활동을 해오다 지금은 SBS 스포츠에서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사실 선수 출신 해설위원은 대표적인 ‘파리목숨’으로 불리는 자리다. 방송사에서는 매년 스타 출신의 선수가 은퇴하면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 위해 해설위원으로 스카우트하지만, 시청자들 반응이 좋지 않거나 약간의 구설이 발생하면 바로 계약을 해지한다. 실제로 우리가 알 만한 레전드들이 2~3년을 채우지 못하고 방송을 떠난 사례가 부지기수다. 그 가운데 방송국을 옮겨가며 장수하고 있는 이순철 해설위원은 이제 모두가 인정하는 ‘스타 해설가’인 셈이다.
“어릴 때부터 종이신문을 읽는 습관을 들였어요. 특히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신문 사설을 많이 읽었죠. 당시 신문들마다 한자 사용이 많았던 탓에 웬만한 한자는 읽을 수 있게 되었을 정도니까요. 프로선수가 되고 나서도 이 습관은 바꾸지 않았어요. 팀 매니저들에게 중앙 일간지는 꼭 로커 룸에 넣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니까요. 덕분에 해설위원이 되고 나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지식도 많이 쌓고요.”
그가 해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MBC의 제안이 있기 훨씬 전부터였다고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야구 해설의 전설 하일성 선배에게 사석에서 해설에 대한 이야기를 묻기도 했다고. 그래서 첫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 없이 “하겠다”고 답할 수 있었다. 물론 해설은 평생 운동만 한 선수 출신에게는 쉬운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이 위원에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많은 공부가 필요하죠. 제가 처음 해설을 시작할 때는 일본 용어가 많이 사용됐어요. 시합, 계투, 데드볼 같은 용어들이요. 일본도 미국에서 야구를 받아들이면서 본인들 쓰기 편하게 바꾼 것이 많아요. 야구는 미국에서 시작된 스포츠니까 외래어를 쓰려면 미국식 용어를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관련 자료들을 보면서 하나씩 고쳐나갔죠. 많이 변화시킨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어요.”
이 위원의 중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단짝 정우영 캐스터를 빼놓을 수 없다.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함께 중계하다 SBS 스포츠에서 재회한 특별한 케이스. 이 위원은 “정우영이라는 좋은 캐스터 덕분에 해설위원이 빛나는 것 같다”며, “까칠한 성격도 이해하며 잘 받아주고, 야구에 대해서도 해박해 좋은 방송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순철의 것이 아닌 이성곤의 야구
그가 야구에 대한 사랑을 쉽게 놓을 수 없게 하는 또 하나의 존재가 있다. 바로 아들 이성곤 선수다. 이제는 프로 9년 차의 베테랑 선수가 된 이성곤은 지난해 삼성 라이온즈에서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됐고, 현재는 주전 자리를 꿰차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위원과 이성곤 선수는 야구계에서 많은 에피소드를 낳았다. 이성곤이 1군 첫 홈런을 기록했을 때는 ‘비번’의 여유를 즐기다 방송국으로 호출당해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생방송에 출연해야 했다. 당시 선수 이성곤에게 늘 엄격한 해설을 날리던 이 위원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 야구팬들 사이에서 오래 회자됐다.
그는 아들 이성곤 선수가 “야구 실력에 비해 방송 출연이 잦다”며 투덜거리지만 동반 출연도 꽤 즐기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이순철 해설위원의 개인 유튜브 채널 ‘순Fe’(순페이)에 이성곤이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우리는 야구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는 부자 사이는 아니에요. 본인이 물어보면 그때 대답해주는 정도죠. 어느 날 아들이 ‘아버지가 야구에 관해 깊숙하게 관여했으면 그것은 이순철의 야구지 나의 야구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그만큼 야구를 사랑하고 진지하게 대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됐으니까요. 그래서 바라보다 정 답답할 때만 문자 정도 주고받아요. 아직 대전에 마련한 집도 못 가봤는데, 올 시즌 대전에 내려가게 되면 어떻게 사는지 들러보려고요.(웃음)”
한국 배우 최초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오영수(79). 국내외에서 축하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그는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예정대로 연극 '라스트 세션'의 무대를 소화하고 있다.
오영수는 지난 10일(한국 시각) 열린 제 79회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TV부문 남우조연상(BEST SUPPORTING ACTOR)을 수상했다. 앞서 한국계 배우인 샌드라 오와 아콰피나가 연기상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한국 드라마에 출연한 한국 배우가 수상의 영광을 안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에서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의 1번 참가자 오일남 역을 맡아 연기했다. 반전을 지닌 노인 역할을 소화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 호평 받았고, 깐부 신드롬을 불러오기도 했다. 오영수는 대중에게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연기 경력 59년차로 연극계에서는 유명한 베테랑 배우였다. 그가 쌓아온 연기 내공이 이번에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오영수의 수상 이후 그를 향한 축하가 쏟아졌다. 이정재는 이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남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장면들 모두가 영광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깐부로부터"라고 오영수의 수상을 축하했다. 오영수와 '오징어 게임'의 깐부 신을 찍을 때 촬영한 사진도 게재했다. 이병헌 또한 "This is the Frontman speaking, Bravo!"라며 극 중 대사를 이용해 센스 있는 축하를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축하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반세기 넘는 연기 외길의 여정이 결국 나라와 문화를 뛰어 넘어 세계 무대에서 큰 감동과 여운을 만들어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배우 오영수 님의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을 국민과 함께 축하한다"며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 배우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외신의 호평도 이어졌다. 미국의 CBS방송은 "올해 골든글로브는 TV 생방송이나 스트리밍 행사가 없어 예년보다 더 조용했지만, 몇몇 스타들이 역사를 새로 썼다”며 "'오징어 게임' 스타 오영수가 골든글로브상을 받은 최초의 한국 배우가 됐다"고 평했다.
미국의 CNN방송은 "'오징어게임'의 배우 오영수가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최초의 한국 배우가 되면서 역사를 새로 썼다"고 보도했다. 특히 "한국 드라마나 배우가 후보에 올라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첫 번째 사례"라고 재차 강조했다. 로이터 통신은 "할아버지 오영수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상을 차지했다"고 전했다.
포브스는 "독창적인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순식간에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라는 명예를 얻었고 극 중 오영수는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였다"며 "(골든글로브 수상에 따라) 78살 그의 연기 이력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현재 연극 '라스트 세션' 무대를 펼치고 있는 오영수는 연극 연습 도중 수상 소식을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공연을 하는 배우 이상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라스트 세션' 배우와 스태프들이 오영수에게 축하 파티를 해준 모습을 인증하기도 했다. 사진 속 오영수는 케이크를 손에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이어 오영수는 11일 예정대로 공연 무대에 올랐다. 수상 이후 쏟아진 관심에 연극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던 바.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공연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오영수의 골든글로브 수상 소식이 알려지고, 이달 남은 11회 차 공연은 모두 전 석 매진되기도 했다.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 이후 차기작으로 연극 '라스트 세션'을 택해 주목을 이끈 바 있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그의 굳은 뜻이 전해진다. 오영수는 '라스트 세션' 기자간담회에서 "'오징어 게임' 흥행 후 광고가 들어오고 하는데, 왜 연극을 선택하냐는 사람도 있었다"면서 "내 나름대로 지향해왔던 모습 그대로 가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 뜻 깊다"고 말했다.
또한 "'오징어 게임'으로 주변에서 나를 많이 띄워 놓은 것 같다. 자제력이나 중심이 흩어지진 않을까 염려하던 차에 품격 있는 좋은 연극을 만나게 되어 뜻 깊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 7일 개막한 '라스트 세션'은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 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한다. 실제로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S. 루이스가 직접 만나 '신의 존재'에 대한 치열하고 재치 있는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극이다. 삶의 의미와 죽음, 인간의 욕망과 고통 등에 대한 대화를 통해 많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한편, 13일 미국 배우조합상(SAG)의 발표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4개 부문 후보에 올라 수상의 기쁨을 이어갈지 이목이 집중된다. '오징어 게임'은 TV드라마 시리즈 앙상블상 후보로 지명됐으며, 남우주연상(이정재), 여우주연상(정호연), 스턴트 앙상블상에도 이름을 올렸다.
‘시니어들이 집에만 있는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젊은 MZ세대만큼 활발하다. 백화점이든 카페든, 젊은 세대의 전유 공간이라 생각되는 곳에도 시니어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매장의 주요 소비자일 수도 있고, 직원일 수도 있다. 그런 활발한 시니어들을 보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시니어 직원이 바라보는 MZ 소비자, MZ 직원이 바라보는 시니어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정말 세대 차이가 존재할까?’
세대 차이의 실체를 알아보고자 정반대 상황에 있는 카페 두 곳을 방문했다. ① MZ세대가 직원이고, 시니어가 주요 고객층인 카페, 반대로 ② 시니어가 직원이고, 젊은 MZ세대가 주요 고객층인 카페. 확실한 비교를 위해 같은 질문을 했고, 그 차이점을 짚어봤다.
① 시니어 손님 vs MZ 직원
탑골공원 때문일까. 예로부터 서울 종로에는 시니어들이 많다. 종로에도 프랜차이즈 카페가 많이 생기고, 카페 직원들 나이도 점점 어려지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카페는 젊어지는데, 손님들은 여전히 시니어라는 소리다.
그 대표적인 예로 ‘카페 에이치(h)’를 들 수 있다. 카페 에이치는 종로3가역 2-1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다. 무려 3층짜리 건물로 올 블랙의 근엄한 자태를 뽑내고 있기 때문에 멀리서도 한 눈에 보인다. MZ세대 직원들 역시 올 블랙 의상을 입고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카페에 잠시만 앉아 있어도 시니어 손님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시니어 손님들은 음료 주문 하나도 쉽지 않다. QR코드 입력하는 데도, 무엇을 마실지 정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계산하는 모습마저 슬로모션이다.
시니어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젊은 직원들은 애를 먹는다. 잘 안 들리는 어르신들과 대화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QR코드가 있긴 있는데, 어디 있더라. 찾아줘 봐요”라고 부탁하는 시니어들도 있다. 기자가 보기에는 당황스러운 상황인데, MZ 직원은 익숙해 보인다. 아들처럼 친절하게 손님들을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카페 에이치의 장점은 앞서 말했듯이 3층짜리 건물에, 테라스와 흡연실까지 있어 여유롭게 앉아 있을 공간이 많다는 점이다. 또한 커피 맛으로 승부를 보는 카페다. 카페 에이치의 직원 강동우(30) 씨 또한 “커피가 맛있다. 특히 라떼가 시그니처인 것 같다”고 자랑했다.
② 시니어 직원 vs MZ 손님
‘함께 그린 카페’의 직원은 모두 만 60세 이상이다. 금천호암노인종합복지관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시니어들이다. 바리스타에 관심 있던 이들은 경제활동을 하면서 활기찬 노후를 보내고 있다. 총 25명이 격일로 근무하며, 하루 3시간 30분씩 10일간 일해 월급으로 약 36만 원을 벌어간다.
시니어들이 일하는 카페이기 때문에 맛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특히 이 카페의 판매 수익 80%는 아침 출근 시간에 발생하며, 주요 고객층은 20·30대의 MZ세대다. 커피든 디저트든 맛이 없으면 카페를 찾지 않는 고객층이다.
시니어 직원들은 좋은 재료로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인기 메뉴는 샌드위치와 커피로 구성된 모닝 세트. 오전 7시 30분부터 11시 사이에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한다. 2년 2개월이나 일한 베테랑 신선희(70) 씨는 “샌드위치를 제일 많이 만들었고, 자신도 있다. 토마토와 양상추를 가운데 쏠리지 않게 놓고, 빵도 노릇하게 잘 굽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카페 구조가 음료를 픽업하기 좋게 되어 있고, 가격도 저렴하다. 특히 시니어 직원들은 친절하고 밝게 손님을 응대한다. 가산디지털단지역 직장인들에게 ‘아침 맛집 카페’로 소문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커피 한잔일 수 있지만, 시니어 직원과 MZ 손님은 서로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주는 모습이다. 시니어 직원들은 젊은 에너지를 받고, MZ 손님들은 부모님 세대의 직원들을 보고 따뜻함을 얻어가는 것 같다.
- 어떻게 이 카페에서 일하게 됐나요?
시니어 카페 신선희 금천호암노인종합복지관 안 부장님 권유도 있었고, 예전부터 카페에서 일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연락이 와서 얼른 왔죠. 노인센터에서 교육도 받고, 2차로 개인이 하는 곳에 가서 자격증을 따기도 했고요.
김훈심 직장 퇴직하고 뭔가 해보고 싶었는데 지인이 잘할 것 같다면서 추천해 줬어요. 자녀들도 많이 호응해줬고요.
MZ 카페 강동우 원래는 회사 다니다가 카페 창업을 하고 싶어서 그만두고, 일 배우려고 여기에 오게 됐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창업할 생각은 계속 하고 있어요.
- 주요 고객층의 연령대와 가장 바쁜 시간은 언제인가요?
시니어 카페 신선희 20~30대부터 60~70대까지 다양해요. 오전 8시 20분 정도부터 9시까지가 바쁜 것 같아요.
김훈심 오전 시간에는 20~30대 분들. 주변에 회사가 많아서 직장인들이 많고, 그 이후에는 다양하게 오시는 것 같아요.
MZ 카페 강동우 50~60대 분들이 가장 많이 오시는 것 같아요. 오후 1~2시가 가장 바쁜 편이고, 6~8시도 요즘 손님이 좀 오시는 것 같아요.
- 주요 고객층인 젊은 or 시니어 분들이 좋아하는 메뉴는 뭐라고 생각되나요?
시니어 카페 신선희 아침조는 식사를 안 하고 오시는 직장인들이 많잖아요. 샌드위치 세트가 가장 잘나가는 것 같아요.
김훈심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리고 샌드위치나 카야토스트로 구성된 모닝 세트가 많이 나가는 것 같아요.
MZ 카페 강동우 레몬차, 자몽차도 좋아하시고요. 달달한 커피도 많이 좋아하세요.
- 젊은 or 시니어 손님들을 만나보면 어떤가요?
시니어 카페 신선희 젊은 손님들을 보면 같이 젊어지는 기분이고, 자식 대하듯 소중하게 여기며 항상 유쾌하게 대하려고 해요.
김훈심 젊은 분들이 아무래도 밝고 활기차잖아요. 에너지를 받는 것 같아요.
MZ 카페 강동우 젊은 손님들보다 QR인증이라든지 설명을 해드려야 하는 부분이 아무래도 많은 편이죠. 어르신들한테는 좀 크게 또박또박 말씀드리려 하고 있어요. 가끔 잘 안 들리시는 분들에게는 서너 번 더 설명해드리죠.
- 젊은 or 시니어 손님들과 세대 차이를 느낄 때가 있었나요?
시니어 카페 신선희 가끔 젊은 손님 중에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주문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제가 얼른 못 알아듣고 다시 물어볼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내가 나이 먹었나, 세대 차이를 느끼곤 하죠. 귀찮아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김훈심 줄임말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아아’, 바닐라라떼를 ‘바라’, 이렇게 주문하면 빨리 캐치하지 못하니까 어려운 게 있어요. 대여섯 명이 와서 빨리빨리 주문할 때는 ‘죄송합니다. 저희가 좀 늦다 보니 천천히 말해주세요’라고 하기도 해요.
MZ 카페 강동우 젊은 세대는 당연하게 카페 다니고 주문도 자연스럽게 하시는데, 시니어 분들은 주문 자체를 어색해하실 때가 있어요, 진동벨도 어색해하시고요. 그럴 때 세대 차이가 조금 느껴지는 것 같아요.
- 기억에 남는 손님 있나요?
시니어 카페 신선희 젊은 여자 손님 두 분이 단골로 오세요. 그중 한 분이 엄청 사근사근 상냥하게 주문하시는데요. 하루는 아이스라떼가 주문이 잘못되어 아이스커피로 나가게 됐어요. 손님이 라떼를 생각하면서 ‘아이스 두 잔’이라고 하신 거예요. 잘못된 것을 알고 얼른 다시 라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니 오히려 주문하신 손님이 미안해하면서 그래도 되겠냐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김훈심 자주 오시는 젊은 아가씨인데, 개인용 텀블러에 커피를 받아가세요. 그 모습이 예쁘게 보여요.
MZ 카페 강동우 특정한 누구보다는 좋았던 기억은 아무래도 손주처럼 보이고 막내아들처럼 보이니까 가끔씩 간식거리도 챙겨주시는 분도 있고, ‘잘생겼다’, ‘예쁘다’, 칭찬도 해주실 때 기분이 좋더라고요. 반대로 안 좋았던 기억은 어려 보이니까 가끔 함부로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코로나19 이후 더 심해진 것 같은데, QR코드 같은 것 하기 싫다고 무대뽀로 들어오시는 분들도 있고 그래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해주세요.
시니어 카페 신선희 금천호암노인종합복지관에서 이런 일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이대로 쭉 함께 그린 카페에서 일하고 싶어요. 나이는 더 먹기 싫어요. 노인 일자리를 열심히 찾아서 참여하면 훨씬 젊게 살 수 있답니다. 많이들 참여하셔서 활력을 얻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훈심 금천구청이나 금천호암노인종합복지관 관장님께 감사드리고 싶어요. 나이 든 어른들께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주셨잖아요. 최고로 청결하고 정성을 다해서 만들고 있거든요. 많이 많이 오셔서 잡수고 가세요~.
MZ 카페 강동우 아무래도 손님들이 나이대가 있으니, 허니브레드 같은 빵을 처음 먹어보시는 경우가 있어요. 정말 맛있다고 해주시고, 메뉴 이름도 휴대폰에 적어 가시고 그러면 진짜 뿌듯하더라고요. 공부하실 때도 그렇고 사람 만나서 얘기하실 때도 우리만 한 카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종 진단
시니어와 MZ 사이에 약간의 세대 차이는 존재했다. 시니어의 노후에서 비롯된 차이였다. 아무래도 시니어는 귀가 잘 안 들리고, 요즘 젊은 세대의 말을 모르기 때문.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아니고, 감수할 수 있는 정도였다. 오히려 엄마 같아서, 반대로 아들 혹은 딸 같아서 서로에게 더욱 친절하게 대하고 배려하려는 모습이 엿보였다. 이는 이전에 비해 시니어 세대도, MZ세대도 다름의 차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일반적으로 MZ세대는 ‘시니어 세대는 무조건 해달라고 한다, 짜증만 낸다’, 시니어 세대는 ‘MZ세대는 예의 없다’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진단 결과, 실제로는 세대 간의 벽이 많이 허물어졌고,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기 이틀 전이었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아.” 수화기 너머의 퉁명스러운 한마디 믿고 나선 길. 곧 추워질 날씨를 생각해 홍삼 음료수를 샀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10분쯤 걸었을까. 낡은 간판 옆 느리게 돌아가는 삼색등과 빈 의자 네 개를 발견했다. 손님이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국 최초 여성 이용사의 특급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 바로 성북동 새이용원이다.
구성진 트로트 가락, 엇박으로 어우러지는 가위 소리 대신 크게 틀어둔 TV 뉴스, 문 앞에 길게 늘어진 주렴 대신 칠이 떨어진 낡은 문. 이용원 내부는 상상했던 모습과 조금 달랐지만 세월이 그득 배어 있었다. 새이용원의 주인장, ‘명랑 이발사’ 이덕훈(87) 씨는 주 고객층 연령대에 한참 못 미치는 기자에게 앉아 계시던 자리를 권했다. “여자는 하체가 따뜻해야 해. 이리 와서 앉아.”
장녀, 아내, 엄마, 그리고 이용사
권유에 못 이겨 자리에 앉았을 때 손님이 찾아왔다. 최근 전파를 탄 유명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이 씨가 이용사의 상징인 흰색 가운을 걸치고, 손님 목에 보자기와 두루마리 휴지를 두르는 동안 4평 남짓한 공간을 둘러봤다. 큼직한 거울 위 빛바랜 이용사 면허증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이발 준비를 마친 베테랑 이용사가 손님에게 싱겁게 물었다. “여기 처음 왔어요? 나 유명한 사람이야. 방송도 많이 탔어.” 이윽고 이발을 시작하는 대신 서랍에서 누렇게 바랜 사진을 꺼내 들었다. “이 양반이 우리 서방님. 얘들은 우리 아들들이야. 인물이 아주 좋지?” 잘 짜인 각본처럼 이야기가 줄줄이 엮여 나왔다.
5남 2녀 중 장녀인 이 씨는 일제강점기 때 군부대 이발 담당관으로 차출됐던 아버지를 보며 이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려면 한 명이라도 손을 보태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는 국민학교만 졸업하고서 이발 기술을 배우며 동생들을 뒷바라지했다. 이발소 허드렛일과 집안일을 전부 도맡으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에 1958년 이용사 면허시험에 합격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이발사가 됐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김두한이 ‘성북동 아줌마’를 찾아 머리를 맡길 정도로 솜씨도 좋았다.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남편에 아들들, 시부모까지 먹여 살리느라 하루에 스무 시간을 일했다. 이발소 안의 여자를 원숭이 보듯 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견뎌야 했다. 하지만 몸이 고된 것보다 가족을 먼저 보낸 아픔이 더 컸다. 스무 해 전 먼저 가버린 남편이 아직도 그립고 애달프지만 그는 새로운 해가 뜨면 다시 이용원 거울 앞에 선다. 제 몸보다 아꼈던 남편, 딸 하나와 아들 셋을 보내며 무던히 살아내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또다시 가위와 빗을 쥐었다. 한 달에 1cm, 열흘에 1mm 자라는 150만 개의 머리카락을 만진 지 60년 세월이다. 처음 보는 손님 가르마를 보고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임을 파악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위험을 감수하는 진짜 예술가
지난해 여름엔 셋째 아들마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꽃을 좋아했던 아들은 어머니에게 형형색색 꽃 사진이 가득한 휴대폰을 남겼다. 평생을 거울 앞에서 마네킹처럼 일하는 엄마를 생각하며 찍은 아들의 꽃 사진. 그는 매일 꽃 사진 너머로 아들을 만난다. 수백 종류 꽃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건 무궁화다. “오늘 하루만 살아. 내일이 어떻게 될 줄 알아?” 매일 피고 진다는 무궁화는 휴무일인 화요일을 빼고 매일 손님을 맞았던 이용원을, 이용사 이덕훈 그 자체를 닮았다.
시대가 변하면서 이용원을 찾는 손님들이 줄었다. 아쉽긴 했으나 그는 불평하는 대신 이용원을 찾는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손님이 없을 땐 일기를 썼다. 아들들이 사준 18년 된 철제 드라이어와 25만 원짜리 사감 선생님 안경, 아버지가 물려준 100년 된 바리캉을 앞에 두고 펜을 잡았다. 어느 날은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적었고, 어느 날은 죽은 남편과 아들들을 향한 그리움, 가난해 제대로 먹이지 못했던 딸에 대한 미안함을 토해냈다. 그렇게 이용원 거울 앞 서랍장 속에, 탁자 위에 먼지 묻은 삶의 추억이 겹겹이 쌓였다.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진짜 예술가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럼 당신은 정말로 잃을 게 없다.” 빈 페이지 없이 빽빽한 공책 속 한 구절이 눈에 띄었다. 갈망하며 우직하게 나아가는 이, 잃을 것 없이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글귀 속 예술가의 정의가 그와 겹쳐 보였다. 여든일곱 나이에 가위를 쥐고도 흐트러짐 없는 손아귀 힘, 손님들이 찾아오는 한 이 일을 계속하겠다는 굳건함이 예술가의 것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부쩍 짧아진 해가 기척 없이 저물었다. 비워뒀던 이용실 의자 위에 보자기를 덮고, 잘린 머리카락을 쓸어다가 버린다. 인터넷에 고지된 영업 마감 시간 오후 7시가 채 되기 전. “요즘은 해 지면 닫아. 어차피 손님도 안 오는데.” 분주히 움직이던 그가 다른 편 보자기를 들춰 자양강장 음료수와 두유, 과자를 가득 쥐여줬다. “사랑해. 조심해서 들어가.” 마지막 인사와 함께 그날의 삼색등이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