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戊戌年) 부동산시장은 한 치 앞을 가늠키 어려운 ‘시계 제로’ 상태에 놓여 있다. 2017년 6월 이후 쏟아진 부동산 대책만 여섯 차례. 2018년 새롭게 적용되는 제도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 주택 수요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전방위적 규제로 시장이 얼어붙는 가운데, 서울 인기 지역은 ‘안전자산’으로 가치가 상승하는 양극화가 심화할 것으로 예측됐다.
# 다주택자인 박준혁(65·가명) 씨는 새해 양도세 중과 방침에 따라 주택 보유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박 씨는 “주택을 급하게 처분하기 쉽지 않아, 자녀들에게 서둘러 증여할지, 임대사업 등록을 할지 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소기업 부장인 김수형(51·가명) 씨는 금리 인상 뉴스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착잡해진다. 김 씨는 “주택담보대출 상환기간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금리가 크게 올라갈까 걱정”이라며 “새해 각종 규제로 집값마저 떨어지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전국 주택 가격 하락 경고음
새해 벽두, 부동산시장에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흐른다. 새해 촘촘한 규제의 영향으로 매매와 임대시장 가릴 것 없이 진정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주요 부동산 연구기관과 리서치업체들은 2018년 집값이 보합 내지 하락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2018년 전국 주택 매매가격이 2017년보다 0.5%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의 주택 가격은 2017년과 비슷한 보합을 유지하겠지만, 지방의 주택 가격은 1.0%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국의 전세 가격도 0.5% 하락할 것으로 봤다.
부동산 리서치업체인 ‘부동산114’가 최근 실시한 ‘2018년 상반기 주택시장 전망’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택 소비자 2명 중 1명은 내년 상반기 부동산시장에서 매매와 전세 가격 모두 ‘보합’을 이룰 것으로 전망했다.
매매와 전세 가격이 ‘하락’할 것이란 응답은 각각 23.99%와 21.08%로 나타났다. 소비자 10명 중 7~8명은 2018년 상반기에 주택 매매·전세 가격이 보합 또는 하락할 것으로 보는 셈이다.
2015년 이후 활황세를 보였던 부동산시장은 투기 지역에 대한 분양권 전매를 금지하고 대출한도를 축소한 ‘8·2대책’ 이후 움츠러들고 있다.
새해에는 금리 인상과 신(新)총부채상환비율(DTI) 시행으로 대출의 문턱이 높아짐에 따라 거래가 더욱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파의 직격탄은 서울 외곽, 지방을 향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거 양극화’가 심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서울 외곽 주택시장이 공급 과잉 몸살을 앓을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다.
정부는 지난 2017년 11월 말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에서 오는 2022년까지 수도권 주택보급률(일반 가구수 대비 주택수 비율)을 107%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서울 수서역세권을 비롯해 하남, 화성, 김포, 남양주, 성남 등 신도시 주택 공급을 크게 늘리는 것이다.
이명수 미래에셋생명 부동산 수석컨설턴트(공덕지점장)는 “탄탄한 수요가 뒷받침되는 서울 강남 등 인기 지역의 주택은 앞으로도 상승세가 예상되지만, 외곽이나 지방의 중저가 주택은 정부가 확대하는 공공 물량과 섞이면서 조정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도 ‘2018년 주택·부동산 경기 전망 세미나’에서 “지방은 하락세가 확대되는 반면, 서울 주거용 부동산은 금리 상승 압박과 준공 증가에도 오히려 안전자산으로 인식되고 있어 가격은 강보합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 등 규제 산적
부동산업계는 2018년 부동산시장을 좌우할 주요 이슈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 확대, 가계부채 대책과 관련한 대출 규제 등을 꼽고 있다.
부동산114의 주택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8년 주택시장의 파급 효과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제도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20.11%)였다. 다음으로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 추가 지정(19.14%)에 대한 응답이 많았고, △신DTI(총부채상환비율) 시행(16.50%) △DSR(총체적상환능력비율) 시행(12.62%) △중도금대출 보증요건 강화 및 보증비율 축소(9.85%) 등 ‘가계부채 종합대책’과 관련한 내용들이 다수 꼽혔다.
우선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는 주택 보유자들의 초관심사다. 4월 1일 이후 조정대상 지역 내 주택을 양도할 경우 2주택자는 10%, 3주택 이상자는 20% 가산세율이 붙는다. 양도세 기본세율이 6%에서 최고 40%임을 감안하면 3주택 이상자의 경우 최고 60%까지 높은 세율이 적용될 수 있다. 분양권의 경우 1월 1일 이후 조정대상 지역 내 거래의 경우 보유기간에 상관없이 양도세율이 50% 적용된다. 양도차익이 1억 원이면 5000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다주택자들은 집을 팔아야 할지, 임대사업자 등록을 해야 할지 셈법이 복잡해졌다. 정부는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면 양도세 중과 예외가 적용되고 건강보험료를 깎아주는 등 인센티브를 줄 방침이다. 2020년 말까지 등록한 연 2000만 원 이하 임대사업자에 대해서는 건보료를 8년 임대는 80%, 4년 임대는 40% 깎아준다. 또한 2019년부터 시행 예정인 임대소득자에 대한 분리과세 시, 필요 경비율을 등록 사업자는 70%로 높이고 미등록 사업자는 50%로 낮추기로 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 센터장은 “조정대상 지역 내 3주택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로서 장기보유 계획이라면 양도세와 임대사업자 등록 시 세제 혜택을 신중하게 비교·검토해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7 ‘8·2 대책’에서 서울 전역(25개구)과 경기도 과천, 세종시 등 27개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다. 이 중 서울 강남·서초·송파·강동·용산·성동·노원·마포·양천·영등포·강서구와 세종시 등 12개 지역은 투기지역으로 다시 묶였다. 이어 9월에는 분당·판교와 대구 수성구를 투기과열지구로 추가 지정했다. 이들 지역에서는 분양권 전매와 재건축 조합원의 지위양도가 금지되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최대 40%로 묶이게 됐다. 다주택자가 주택을 추가로 구입할 때는 전국 어디서나 LTV와 DTI가 10%포인트씩 낮아진다.
투기지역이 아니더라도 신DTI 시행으로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줄이 좁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DTI는 추가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을 받을 경우 대출 원리금 상환액에 신규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과 기존 대출의 이자만 반영하는 방식인 기존 DTI(총부채상환비율)과 달리, 기존 주담대의 원금과 이자가 모두 부채에 포함돼 산정된다. 4분기 시행 예정인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본인 명의의 주담대 외에 신용대출이나 자동차할부, 마이너스통장 등 모든 대출에 대한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비율이다. 모든 대출을 합산하는 만큼, 다중 채무자의 대출 여력이 낮아질 수 있다.
아이디어 닥터, 트렌드 몬스터, 강연여행가, 브랜드 전문가…. 이장우 브랜드 마케팅 그룹 회장(62)의 여러 별칭이다.
이 별칭들엔 이장우 회장의 개인 브랜드 혁신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현재 전통제조업에서 IT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종의 기업 7곳에서 고정·비고정의 급여를 받는다. 1년에 최소한 5~6회는 미래 유망 트렌드를 찾아보고자 해외 아이디어 탐방 여행을 가 브랜드의 촉과 감을 갈고 온다. 삶 자체가 ‘살아 있는 브랜드’로 부단한 자기 혁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을 햇빛이 투명한 어느 멋진 날,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화려한 컬러의 통 좁은 바지에 선글라스, 중절모는 물론 반지와 팔찌 등 액세서리 일습을 갖춘 그는 말 그대로 꽃중년 그 자체였다.
인터뷰 다음 날, 그는 인도로 3주간 홀로 명상연수를 떠날 예정이라며 한껏 부풀어 있었다.
보통 사람은 한 곳에서 월급을 받는 것도 좌불안석입니다. 무려 일곱 군데에서 급여를 받으신다니 부럽습니다(웃음). 퇴직 후 급여가 오히려 더 많아졌겠습니다.
“돈의 재미를 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세상이 날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니까요. 현재 다섯 군데가 고정급여이고 두 군데는 비고정급여인데 늘었다가 줄었다가 합니다(웃음). 솔직히 퇴직을 앞두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최고경영자들이 퇴직 즈음해선 쪼잔한 상념이 많아지거든요. 부러진 날개 신세에서 영웅담을 생각한다는 것은 뻥이에요. 하다못해 국민연금, 4대보험 문제는 어떻게 하나, 별 게 다 걱정이 됐어요.”
퇴직 후 바로 이장우 브랜드 컨설팅 그룹을 만드셨지요. 직원 한 명을 둔 미니 지식기업을 창직(創職)하셨습니다. 퇴직 후, 현직 때 마지막 연봉의 두세 배를 번다고 들었습니다. 성공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실정과 저의 현실을 냉정하게 본 것입니다. 조직 브랜드와 개인 브랜드를 헷갈리지 않은 것이지요. 퇴직 후 회사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조직을 키우기보다 개인으로서 나, 이장우를 키우는 게 효과적이란 생각을 했어요. 규모의 경제에서 제가 대기업, 다국적 컨설팅 그룹과 경쟁하려 한다면 백전백패입니다. 그런 기업들의 CEO와 경쟁한다면 승부수를 던질 만하지요. 개인 브랜드로 승부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퇴직 후 공황을 겪는 것은 조직 브랜드와 개인 브랜드를 헷갈려서입니다.”
퇴직 CEO들이 과거의 성공 스토리에 머물러 인생 2막 설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더군요.
“강의, 컨설팅 모두 부단한 콘텐츠 개발 싸움입니다. 대중의 열광, 과거의 영광 모두 거품이고 잠깐이에요. 길어야 1~2년 가기도 힘들고 곧 고갈되지요. 강의는 말이 아니라 콘텐츠로 하는 것입니다. 말 못해도 콘텐츠 있으면 오래 갈 수 있어요. 콘텐츠 없이 말만 잘하면 금방 바닥이 나게 돼 있지요. 멀리 보고 깊이 보려면 끊임없는 공부를 해야지요. 저는 책 공부보다 여행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 차원에선 스몰데이터, 감(感)이 브랜드 차별성이에요. ○○에서 들었다, 읽었다는 개인의 스몰데이터가 기업의 빅데이터를 이기기 힘들어요. ‘내가 직접 해봤다, 가봤다, 느껴봤다’를 이야기해야 먹히지요. 경쟁력은 기능이 아니라 나만의 느낌에서 옵니다.”
브랜드 전문가, 아이디어 닥터, 그리고 강연여행가로 별칭이 계속 진화하고 다각화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브랜드 연구는 제 평생의 업으로 한 일입니다. 여행은 콘텐츠 개발을 위해 하다 보니 어쩌다 본업이 돼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여행인문학 강의를 좋아하더라고요. 트렌드의 발상지, 원산지를 직접 방문해보자는 데서 출발했는데요. 요즘은 여행인문학으로 관심이 확장됐어요. 저는 관심의 촉, 미래의 촉이 느껴지면 배울 만한 곳이 어디에 있나 찾아봐 세계 어디든 직접 가보려고 합니다. 가령 2009년 도쿄 책방을 갔을 때의 일인데요. 트위터에 관한 책이 한 코너를 다 차지하고 있더군요. SNS가 뜨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미국 뉴저지 스테이트대학으로 공부하러 갔어요. 동양의 중년 남자가 그 먼 곳으로 한겨울에 SNS 공부를 하러 왔다니 학교에서 놀라더군요(웃음). 공부는 선(先)투자이자 선(善)투자예요. 공부하면서 계발하고, 계발하면서 공부해야지요.”
일반인이 ‘트위터’의 ‘트’란 말에도 익숙하지 않을 때 조기유학(?)을 한 덕분에 그는 SNS 브랜딩 홍보 분야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또한 현재 페이스북 팔로워 6만 명. 카카오스토리 5만 명, 인스타그램 1만 명의 팬을 확보하는 기틀이 되었다.
그의 ‘본산지, 원산지 찾아 아이디어 탐방 삼만리’는 SNS에서 그치지 않았다. 프랑스 치즈학교, 미국 포틀랜드 커피 바리스타스쿨, 영국 수제맥주 학교, 이탈리아 전통 베네치아 파스타 학교 등 관심 분야도, 아이디어 탐방 지역도 무궁무진하다. 전국 방방곡곡, 아니 세계 도처를 누비며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익혔다. 말 그대로 ‘왔노라 보았노라 배웠노라’였다. 그곳에서 벌어지고 부딪치는 소소한 사고와 우연한 사건들. 그것이 경험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느낌이 되어 그만의 브랜드로 승화된다.
제가 소심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비용이 먼저 걱정되는걸요. 항공비, 체재비, 게다가 연수비용까지 만만찮을 것 같습니다.
“저는 버는 것의 20%는 자기계발에 투자한다는 주의입니다. 되도록 스폰서를 잡지 않고 제 돈으로 가는 게 원칙입니다. 후원을 받으면 여행 순서를 깨뜨리고 구속이 되거든요.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공부하는 데 2000만~3000만원 정도 들었어요. 결과적으로 강연, 컨설팅 요청이 들어와 투자한 것의 10배 정도는 뽑게 되더군요.”
그는 처음인 일을 나만의 것으로 차별화하면 브랜드가 된다고 말했다. 가령 커피 바리스타 강의를 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커피와 맥주를 전문적으로 강의하는 브랜드 전문가는 흔치 않다.
흔히 “관광이 아닌 현지 체험, 풍경이 아닌 사람을 만나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 회장님처럼 여행을 즐기면서 아이디어 탐방 기회로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여행은 필연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연을 만나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일단 떠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보세요. 너무 목적, 목적 하며 따지지 마세요.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틀에 갇히기 쉽습니다. 기회는 인과관계 밖에서 터져 나옵니다. 많이 가야 합니다. 삶은 가고 싶은 목적지를 갖는 것입니다. 여행은 꿈입니다. 꿈을 가져야 여행을 가게 되고, 여행을 가야 자꾸 꿈을 키울 수 있지요.”
이장우 회장은 “여행은 꿈이고 도전”이라며 “목적을 갖고 가지만, 가서 새로운 목적과 도전을 얻는 우연, 세렌디피티가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목적지를 정하면 온갖 정보를 검색, 6개월 전부터 치밀한 계획을 짜지만, 막상 가서는 널널하게 현지에서 자유여행을 즐긴다”고. 사전 계획 때는 채우고, 막상 가서는 비운다. 말하자면 서양식 사고의 과학적 플래닝과 동양적 사고의 인문학적 여백의 결합형이다. 이번에 가는 인도행은 이름하여 소울 트립(soul trip). 트렌드의 촉을 읽으면 정통 원산지를 찾아 도전하고, 스토리를 만들고,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다듬어 전달하고 퍼뜨린다. 그것이 바로 브랜딩 아니겠는가.
외국어가 가능하다는 점도 세계 도처 어디든 도전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를 포함해 6개 국어를 하시지요. 최근에는 힌두어, 라틴어까지 공부하신다고요.
“새로운 언어를 하나 더 배운다는 것은 머리가 하나 더 생기는 일입니다. 언어를 한다는 것은 사고를 한다는 것이거든요. 여행한 곳을 더하면 새로운 마음의 눈이 하나 더 생기고요. 외국어 공부는 자기를 다른 세상으로 집어넣는 일종의 유체이탈 행위입니다. 리얼하지요. 비유하자면 번역이 사진 속 풍경이라면, 원어는 풍경 그 자체라고나 할까요. 아무리 인공지능 즉시 통번역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외국어 공부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리얼한 것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니까요. 그것은 단지 속도가 아니라 느낌의 문제예요. 앞으로 세상은 지식이 아니라 필(feel)의 경쟁시대가 될 거예요. 지식과 상식은 보편화돼 검색하면 나오니까요. 느낌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아요. 새로운 아이디어 탐방을 멈추지 않는 이유입니다.”
요즘 문제되는 것은 세대 간 소통입니다. 기업 자문을 하실 때 신세대 직원들과 같이 일을 하셔야 할 텐데요. 그들이 어려워해 소통이 어렵진 않던가요.
“제가 얼마나 신세대랑 잘 노는데요(웃음). 저는 나이듦을 장점으로 활용해요. 바깥바람 막아주지, 아이디어 아낌없이 공유하지, 성과 올려주지, 이들의 입장에선 ‘성과와 실력은 향상시켜주면서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일은 쉽게 풀어가면서 어려운 책임은 상대가 가져가고’ 당연히 좋을 수밖에요. 신세대가 저처럼 나이 든 멘토와 일하는 장점이지요.”
그는 세대 간 불통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매력 자원이라는 무기의 문제라고 진단하면서 “신세대가 기성세대와 소통을 안 하는 것은 어렵거나 겁먹어서가 아니다. 기성세대를 무시해서다. 기성세대에게 배울 게, 물어볼 게, 아쉬울 게, 부러울 게 없다고 생각해서다. 기성세대가 신세대와 소통하려면 호통이나 비위 맞추기는 불필요하다. 그보다 실력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인은 재미와 의미를 갖고 일하지 않으면서 ‘나처럼 돼보라, 해보라’고 하면 누가 따르겠냐는 반문이다.
평생 재미와 의미로 점철된 흥미진진한 삶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에서의 ‘그늘’이 궁금합니다.
“웬걸요. 제가 콤플렉스 투성이인걸요. 콤플렉스가 힘이 되니, 인생은 알 수 없어요. 단점이 강점이 되고, 엎치락뒤치락이에요. 집은 가난했고, 머리는 나빠 구구단도 못 외울 정도였어요. 다행인 것은 지식이 들어가기 힘든 대신 나가기도 힘들더군요. 외우는 데 오래 걸렸지만, 한 번 외우면 잘 안 잊어버렸어요. 그게 외국어 공부의 동력이 되었지요. 또 집이 가난해 구멍가게를 했고, 상고에 진학해야 했지요. 어렸을 때부터 물건 팔고 장사를 하다 보니 세일즈에 일찍 눈을 뜨게 됐어요. 머리 좋은 사람이 끝까지 하는 사람을 못 이겨요. 제 삶의 모토가 ‘긴 호흡으로 살자’입니다.”
이장우 회장과의 인터뷰를 떠올리며 원고를 한 자 한 자 치고 있었다. 마침 그의 블로그에 인도에서 쓴 따끈따끈한 새 포스트가 올라왔다. 아쉬탕가 요가의 요람인 인도 마이소르의 한 수도원에서 올린 사진과 글이었다. 검은색 뿔테 안경에 주황색 승려복을 걸친 모습이 얼핏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를 연상시켰다.
“요가와 명상을 배운다는 사실이
설레었고, 그 느낌은 참 편안하고 좋았다.
영혼이 춤추는 세상을 찾아가는 새로운
배움의 여정임에 틀림없다.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명상과 요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by 이장우
어느 날 문득 그가 명상과 요가 브랜드 전도사로 새롭게 나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여행가 뒤에 붙을 그의 새로운 브랜드 네임이 문득 궁금해진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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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한 어르신이 건강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입니다.” 9월 1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치매 국가책임제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렇게 강조했다. 치매 환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개인과 가족이 떠안았던 고통을 국가가 나눠지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같은 정부의 전폭적인 관심이 치매 치료에 대한 생태계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제로 의료계 안팎에서는 벌써 정부의 ‘동기부여’가 효과를 내고 있는 듯하다.
먼저 지난 9월 발표된 정부의 ‘치매 국가책임제 추진계획’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전국에 47곳밖에 되지 않았던 치매지원센터의 확대다. 그동안은 서울과 수도권에만 설치가 집중됐지만, 다음 달부터는 전국 252곳에 ‘치매안심센터’가 설립될 예정이다. 센터에서는 치매 환자와 가족들이 상담과 조기 검진부터 관리, 의료·요양 서비스 연계까지 통합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센터에서 받은 상담 내용은 ‘치매노인등록관리시스템’에 등록돼 환자와 가족들이 이사를 하더라도 전국 어디서든 연속적으로 관리된다. 센터 안에는 치매 환자 가족의 정서적 안정을 도울 카페와 인지·신체 활동 프로그램으로 환자의 증세가 악화되는 것을 막을 단기 쉼터도 만들어진다.
기저귀 구매비용도 지원
중증 치매로 인해 이상행동 증상이 심해 가족이나 일반 시설에서 돌보기 어려운 환자는 ‘치매안심요양병원’을 통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전국 34개소에서 1898병상이 치매병동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립요양병원은 다음 달부터 79개 병원 3700개 병상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치매안심센터와 치매안심요양병원, 요양시설 등 치매국가책임제 실행을 위해 정부는 올해 추경에서 2023억원을 이미 집행했으며, 내년 예산안에도 3500억원을 배정한 상태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으로 인해 지난 10월부터 중증 치매 환자도 산정 특례 적용을 받게 됐다. 의료비 본인 부담률은 4대 중증질환과 같은 수준인 10%로 경감됐다. 복지부 계산에 따르면 연간 200만원의 자기부담금을 지불했던 입·내원일 수 52일 정도의 환자는 앞으로 77만원만 내면 된다.
그동안 신체기능이 양호하다는 이유로 배제됐던 경증 치매 환자도 장기요양서비스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장기요양 5등급을 확대하거나 6등급을 신설해 경증 치매 노인에게도 장기요양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을 위해 시설의 식재료비나 기저귀 구매비용을 장기요양보험에서 지원할 계획이다.
이외 전국 노인복지관에서 치매 예방을 위한 미술, 음악, 원예 등을 이용한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66세 이후 4년마다 받는 인지기능검사 주기도 2년으로 짧아진다. 치매안심마을 조성 사업과 치매 파트너즈 양성 사업도 확대된다.
한의학계, 치매 분야에 높은 관심
치매 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의학계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한방 치매 치료의 과학적 효과를 입증하는 데 애쓰고 있다. 최근 부산시 한의사회는 초기 치매 증상인 경도인지장애로 판정된 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한방 치료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전체 환자 중 80.5%(161명)이 인지기능개선 효과를 보였고, 환자 중 82%가 치료 재참여를 희망했다.
또 강동경희대학교 한방신경정신과는 ‘한방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치매 예방뿐만 아니라 노년기 생활습관 교정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다. 강동경희대학교 한방신경과는 서울시와 함께 ‘어르신 한의학 건강증진사업’을 통해 한방 치매 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런 한의학계의 노력에 화답이라도 하듯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치매 국가책임제에) 한의사도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치매 치료에 대한 관심 증가는 치과계도 예외는 아니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치매 구강건강정책 테스크포스팀을 통해 치매 예방과 관리를 위한 정책 제안서 제작을 결정하는 등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도 치매 다뤄
최신 IT 기술도 치매 진단과 치료에 나서고 있다. 류호경 한양대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 교수팀은 최근 국내 최초로 가상현실(VR)을 이용해 노화와 치매의 중간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여부를 판단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은행 ATM, 대중교통 이용 등과 같이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상황을 가상현실 속에 구현하고, 참가자의 움직임 분석을 통해 치매 증상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방식은 진단 과정에서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이 큰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기존 진단 방법은 설문 문항을 시험지처럼 작성하는 방식인데, 질문에 대해 반발하는 환자도 적지 않았다.
암 치료 방법을 제안하는 인공지능 ‘왓슨’과 유사한, 치매를 치료하는 인공지능의 등장도 멀지 않았다.
가천대 길병원은 뇌 질환 진료지침 정밀의료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일종의 뇌 전문 인공지능 의사로 디지털 뇌 영상 빅데이터를 구축해 암 치료에만 적용됐던 개인 맞춤형 정밀의학을 뇌 질환 치료에도 실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치매의 조기진단이나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가천대 길병원은 지능형 뇌과학연구센터·뇌과학연구원·가천뇌건강센터를 설립해놓고 기술 개발에 대한 역할 분담과 협업을 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도 조선대학교 치매예측기술국책연구단 등과 함께 딥러닝 기술과 컴퓨팅 인프라, 뇌 영상 빅데이터를 활용해 뇌 영상 분석 인공지능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조영환 AJ가족 인재경영원장(62)은 ‘가정도 회사처럼, 가족은 고객처럼 경영하라’고 말한다. 그는 “가정은 기업의 축소판”이라며 “가족에도 회사 경영 마인드가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제로 1990년부터 가정경영계획을 수립해, 27년여 실행해온 성공적 가장이기도 하다. 삼성그룹에서 26년간 인사조직 분야를 담당했다. 이후 5년간 강연, 집필 등을 하며 프리랜서로 활동했고 현재는 AJ가족 인재경영원 원장으로 3막의 인생을 경영하고 있다.
보통 베이비부머 세대의 직장인은 입사~퇴직이라는 한 우물의 인생이 일반적 코스입니다. 조 원장께선 55세에 퇴직해 5년간 프리랜서, 3막 기업인으로 재기와 변신을 거듭하셨는데요. 먼저 퇴직 후 프리랜서로의 변신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퇴직 후 충격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원래 자유로운 영혼의 피가 흐르고, 역마살 체질이 있어서 물 만난 고기 같다는 생각이 곧 들더군요. 특히 생활 리듬은 깨뜨리지 않으려고 유의했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아침식사는 집사람과 같이하는 등으로요. 퇴직한 지 3개월 만에 책을 냈습니다. 5년 동안 책을 13권 썼으니 그야말로 왕성한 활동이라고 할 만하지요. 그때 저는 삼성출신 전직 임원보다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러달라고 했지요. 태국에서 2종, 중국에서 2종이 번역됐고요. 김구라, 이경규 등이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강의를 위해 전국 팔도를 돌아다녔습니다. 머리도 기르고, 넥타이도 매지 않고요. 모범 직장인의 전형인 삼성 스타일에서 벗어난 것이 자유로움을 줬습니다. 강연, 집필 외에 젊은이들을 위한 무료 취업 코칭 등의 재능기부를 했어요. 그러다가 커플이 생겨 주례도 서고… 심지어 아파트 동대표 회장까지 맡아 지역 봉사활동을 하는 등 보람이 많았습니다(웃음).”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인으로 생활하시는 동안 특별히 명심하신 사항이 있었나요.
“회사 다닐 때, 하루 종일 밖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가족 간의 문제점, 약점이 눈에 들어왔어요. 같이 있을 시간이 많아지니 잔소리가 늘어났던 겁니다. 당연히 식구들이 점점 불편해했지요.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집사람에게 슬쩍 물어보더래요. ‘아빠, 언제까지 집에 계실 거냐’고. 그 말을 듣고 가까운 헬스클럽에 등록해 2시간 운동하고 점심과 저녁 약속 억지로라도 만들면서 집에 있는 시간을 줄였습니다. 잔소리하고 싶은 것 있으면 꾹 참고요. 좋은 점, 칭찬거리만 보고 말하려 애썼지요.”
프리랜서 생활 5년 만에 다시 새장(?) 안으로 들어가 AJ가족 인재경영원 원장이 되셨습니다.
“(웃음) 바쁜 중에도 모처럼 스케줄이 비는 날이 있잖아요. 어느 날 점심약속이 없어 오피스텔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먹는데 ‘여기서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하는 처량한 생각이 들더군요. 같이 일할 조직과 구성원이 그리웠어요. 마침 AJ가족의 문덕영 부회장이 제 책을 읽고 스카우트 제의를 해와 응하게 됐지요.”
베이비부머 세대가 ‘퇴직 이후 새로운 2막’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공통의 당면과제입니다. 아직 조직에 있는 사람이든 프리랜서이든 준비해야 할 필수사항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이전 조직에서의 좋은 평판이라고 봅니다. 평가가 실력에 관한 것이라면 평판은 인품을 포함하는 것이지요. 퇴직 후엔 평가보다 평판이 더 중요해요. 술버릇, 말과 행동, 주변과의 교류 등인데,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것이 평판입니다. 누구하고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평생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2막 때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제가 2막 인생에 빨리 적응한 것도 사람농사를 잘 지어놓은 덕분이었어요. 조직생활이 아닌 자신만의 새로운 일을 한다면 가장 잘하는 일,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성공률이 높습니다. 어설프게 다른 사람의 권유로 원하지 않는 영역의 일이나 잘 모르는 일을 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삼성화재 인사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인사기획, 이론연구, 노사관리업무를 담당했지요. 또 삼성화재 사업부장(상무이사급)을 지내셨지요. 이론연구와 현장 근무의 양수겹장 경력을 갖고 계신데요. 인사조직관리의 요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무엇인가요.
“인간 존중입니다. 저는 리더가 하는 일은 직원들의 일을 대신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군불을 때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말만이 아니라 진정한 인격체로 대해주면 성과는 저절로 따라옵니다. 일선 직원들과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고, 고충을 처리해주고 산간벽지라도 경조사는 다 찾아다녔지요. 제 자동차 1년 주행거리가 6만5000km로 웬만한 택시 버금갈 정도였어요. 보험사 사업부장 때는 보험설계사 900명의 이름을 석 달 만에 다 외웠어요. 본인은 물론 배우자, 자녀 대소사까지 챙겼지요. 혼자 사는 사람은 반려동물 이름까지 외우고 예방접종 시기까지 먼저 알려주며 인사했습니다. 고성과자에겐 그 사람을 위한 맞춤형 시를 써서 액자에 담아 감사를 표했고요. 그러니 제가 보험 지식은 하나도 없어도 저절로 사기, 성과가 함께 올라가더군요.”
그는 ‘인간 존중’의 핵심은 효율보다 효과를 따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의 계산으로는 손해보는 것 같지만 결산에서는 남게 돼 있다는 것. ‘작은 진동이 큰 감동의 파동을 일으키게 돼 있다’는 게 그의 수십 년 경험의 철칙이다. 조 원장은 지금도 그때 알고 지내던 직원들과의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전국 각지에 회원 100여 명의 ‘조사모(조영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운영되고 있을 정도라며 자랑했다. 퇴직 후 그가 고객 감동경영의 노하우를 묶어낸 처녀작의 제목은 다.
인간 감동경영도 배우면 가능합니까?
“저절로 할 줄 알면 성인이게요(웃음). 저는 신참 때도 꿈이 임원 승진보다 ‘상사한테는 신뢰, 부하한테는 존경을 받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현실에선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힘들잖아요. 상사한테 인정받으려면 직원들에겐 몰인정한 사람이 돼야 하고, 직원들한테 존경받으려면 상사한테는 무능한 사람으로 무시받기 쉽고…. 그래서 위아래에서 모두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람이 누가 있나 찾아봤어요. 롤모델로 삼으려고요. 책은 물론, 조직 내외의 인물들에서 찾아보고 적용하고, 실패하면 수정하고… 그러면서 제 나름의 감동경영 방식을 개발하고 만들어나갔습니다.”
직원 감동경영과 가족경영은 자칫 시소게임이 되기 쉬운데요. 어느 하나에 치중하다 보면 한쪽은 소홀히 하게 됩니다. 가족은 어떻게 감동시키셨는지 궁금합니다.
“고객감동 방식과 가족감동 방식은 다르지 않습니다. 가족경영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가족을 너무 쉽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족도 고객처럼 대하라고 후배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전략과 기획 마인드를 가지고 감동시킬 방법을 연구하라고요. 가족감동도 공짜는 없어요. 연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꾸준히 기대 이상으로 해주고, 생각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고요. 가족경영도 프로젝트를 세우고 예산을 배정해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점검하고 시정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조 원장께서 실행하신 가정경영의 대표적 히트작은 무엇인지요.
“가족경영과 조직 인사관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회사에서는 1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 회사 운영계획을 자세하게 수립하지요. 그러나 가정에선 그런 걸 잘 안 합니다. 저는 과장으로 지내던 시절인 1990년경부터 집사람, 두 아들 등 온 가족이 참여해 가정경영계획을 매년 세웠습니다. 먼저 가족 모두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 예컨대 건강, 재산, 가정, 친족, 문화, 지식 등으로 범주를 정해 각각 실천사항 등을 토의해 결정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노트에 기록해놓고 같이 실행할 것을 다짐하면서 서명, 관리합니다. 다음 해 초에는 결산을 해 잘잘못을 따져서 차기 계획을 수립하고요. 가족 구성원이 참여하고 공감한 것이라 실천하기가 한결 쉽고 실행률도 높더군요. 아이들에게 계획적인 삶을 사는 습관을 키워주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출근 전 1분간 가족과의 포옹 습관도 스스로 자부하는 가정경영의 히트작으로 꼽았다. ‘포옹이 포용’을 낳더라는 이야기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거실에서 1주일 1회 온 가족 회식 프로젝트 등을 실행했단다. 덕분에 각각 가정을 이룬 두 아들은 지금도 아버지를 친구처럼 여긴다. 술친구는 물론이고 스크린 골프, 당구도 같이 치고 고민이 있으면 제일 먼저 찾는 지피지기 1호다.
둘째 아드님이 내성적이라 친구를 못 사귀자 안방을 최고급 음향, 모니터를 갖춘 피시 장비를 설치해 오락실로 만드셨다고요. 그때 ‘예산 개념 없이 무조건 무한정 지원, 이 방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라는 글귀를 방문에 써 붙이셨다면서요.
“교육은 비용이 아니고 투자입니다. ‘정보화 기기들과 빨리 친해지고, 트렌드를 놓치지 말고, 그리고 즐거운 학창 시절을 만들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란 취지’에서요. 만일 내가 이것을 말로 수십 번 했다면 아이가 따랐겠어요? 결국 중요한 것은 환경 조성이에요. 왜 안 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고요.”
그는 “가정에서 부모도 마찬가지고, 조직에서 상사도 마찬가지다. 왜 못하냐고 질책할 것이 아니라 잘하려면 어떤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가를 고심하는 게 어른의 의무”라고 강조하면서 “내가 아닌 상대에게서 사고나 행동 규범을 출발시키는 게 필요하지요. 내 사고방식이나 가치체계, 생존 방식을 고객의 수준과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상대의 언어와 습관, 취미 등을 눈여겨보고 다가가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소통 방식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퇴 후 가장 확실한 보험은 배우자와의 금실이라는 시쳇말도 있습니다. 부부경영은 어떻게 하시나요.
“가슴에 안아버리는 것입니다. 따지기 시작하면 풀리지 않아요. 다 들어주고, 생각이 정말 다르면 다음에 마음이 편안할 때 다시 의견을 조율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에요. 서로 잘잘못을 따지고 비난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게 부부입니다. 나이 들어선 의식적 노력이 필요해요.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부부애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젊어서야 애정으로 살지만, 나이 들면 인간애로 사는 게 부부 아니겠습니까.”
조 원장은 고객 감동경영을 부인 감동경영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결혼 20주년엔 부인을 위한 글을 직접 써 감사패를 수여했고, 30주년엔 직접 끓인 소고기미역국을 비롯해 정성 어린 생일상을 진상했다. 동시에 30주년 숫자에 맞춰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30가지 이유’를 작성해 헌정했다. 처음엔 ‘쓸 것’이 없을 것 같았는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 아내의 장점들이 소록소록 떠오르더란다. 이런 패키지 상품을 선사하니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이 술술 잘 풀리더라고.
배우자 몰래 만들어놓은 비자금 내지 비상금이 간혹 문제가 되곤 하는데요. 조 원장께선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비자금에 대해서는 찬반론이 있지만 저는 찬성 입장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가정살림에서도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거든요. 살다 보면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몰라요. 비자금은 숨겨둔 돈이라는 개념으로 보기보다는 긴급할 때 활용할 수 있어 남자나 여자나 어느 정도의 비자금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이 들수록 경조사비 부담도 만만찮고, 긴급 용도로 써야 할 경우도 있는데 이 비용을 배우자에게 구구절절 설명해 그때그때 손을 벌리려면 궁색합니다. 구태여 비율로 이야기하자면 총소득의 20% 정도는 비자금으로 비축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씀 들으니 조직관리의 노하우를 가정경영에도 잘 접목시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가장 행복하셨을 때는 언제인지요?
“후배들이 멘토라고 많이 찾아와줄 때입니다. 책을 출간한 뒤 여기저기서 후배와 친구들이 서점이나 가판대에서 사진을 찍어 보낼 때도 그렇고요.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면접토론 때 참고서적으로 제 책 을 제일 위에 꽂아놓았을 때도 행복하더군요. 다만 이순(耳順)이라는 육십을 지나니 잘났다고 뻐기거나 욕심내는 것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익어가는 징조인지, 기운 빠지는 징조인지 잘 모르겠지만요.”
그는 앞으로 인생 4막의 꿈은 집필하고 강의하고 코칭하는 생활이라고 말했다. “역사기행이나 문화기행 같은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젊은이나 후학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 사람부자가 되면 잘 사는 삶 아니겠습니까?”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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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현재 AJ가족 인재경영원 원장. 삼성화재 인사팀에서 채용-인사기획-노사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삼성경제 연구소 인사조직실 컨설팅 등을 수행했으며 삼성화재 인사담당 임원으로 부임, 상무이사 승진 후 삼성화재 사업부장을 지냈다. 당시 ‘함께 근무하고 싶은 상사’로 뽑혔다. 저서로는 , , 등 다수가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선진국, 스웨덴! 그들의 삶에 뭔가 특별한 것은 없을까? 바로 ‘독립’이다. 어린아이, 청년,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독립적 삶을 추구한다. 스웨덴 고등학생의 대학진학률은 50%가 채 안 된다. 많은 청소년이 드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배낭여행을 떠난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는 노인들도 자녀에게 기대지 않는다. 고독이 삶을 힘들게 해도 죽을 때까지 스스로 살아간다. 자식을 위해 평생 고생하거나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없는 살림을 쪼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나 몰라라 하는 비정한 사회일까? 그런 사회의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행복할까? 영국 신경제재단(NEF)에서는 매년 세계 140개국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해 발표한다. 2016년 스웨덴의 행복지수는 7.6으로 4위,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6.0으로 40위다. 그 비결은 뭘까? 역시 스웨덴인의 독립적 삶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독립은 서로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간섭을 하지 않으니 갈등의 요소가 사라진다. 그러니 행복할 수밖에.
대한민국 액티브 시니어들이 간절히 원하는 삶도 바로 스웨덴식 독립 인생 아닐까! 자녀 부양하느라 나이 들어서까지 허리 휘지 않아도 되고, 자녀 도움 없이도 살아가는 데 걱정이 없는 노후! 스웨덴 사람들이 이런 노후를 살아갈 수 있는 데에는 연금을 필두로 한 사회보장제도가 잘되어 있기 때문이다.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기반이 탄탄해야 함을 뜻한다. 사회보장제도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독립적이고 활기찬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자조노력 연금을 중심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연금생활플랜(Pension Life Plan, PLP)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액티브 시니어란?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니어는 연장자를 의미하니 결국 관건은 액티브에 달렸다. 단어의 구체적 의미가 애매모호하거나 헷갈릴 때는 어원을 살펴보면 된다. 온라인 어원사전(Online Etymology Dictionary)에 따르면 액티브의 어원은 라틴어 액티부스(activus)다. 액티부스는 액투스(actus)의 형용사형이니 액투스의 의미를 살펴보면 액티브의 용례를 알 수 있다. 액투스는 행위(a doing), 운전(a driving), 자극(impulse), 활기참(a setting in motion), 역할(a part in a play)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고대에 요즘 같은 자동차는 없었을 테니 운전이 의미하는 바는 말을 타거나 마차를 모는 행위를 뜻할 것이다. 자극은 감각이나 마음에 반응이 일어나도록 어떤 작용을 가하는 것을, 역할은 연극에서 어떤 배역을 담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원으로부터 알 수 있는 액티브 시니어의 뜻은 우선 행위, 즉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파에 기대거나 누워 TV를 친구삼아 시간을 축내는 정적인 삶이 아니라 적극적인 야외활동은 물론 타인과의 교류를 즐기는 동적 삶이어야 한다. 나이 들어 말을 타거나 마차를 몰려면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육체적 건강은 액티브 시니어의 필수조건이다.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동적 삶을 추구할 수 있고, 나아가 병원비 등 의료비를 대폭 아낄 수 있다. 자극은 정신적 건강함이 필요함을 뜻한다. 육체적으로 건강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쇠약하면 마력이 뛰어난 고급 승용차를 주차장에 파킹해놓고 자랑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육체와 정신이 모두 건강할 때 활기찬 삶이 따라올 뿐 아니라, 자연스레 사회적 역할도 주어지기 마련이다. 무대 위의 주연배우는 아닐지라도 극의 재미를 더하는 감초역할 정도는 맡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액티브 시니어란 육체적·정신적 건강함을 기반으로 일정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연장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동안 고생한 인생에 보답하는 데 초점을 맞춘 나 혼자 즐기는 삶은 그것이 아무리 동적이고 활기찬 삶이라 할지라도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삶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필자는 이를 소극적 액티브 시니어라 부르고자 한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자산을 사장시키지 않고 살려가며 어떤 형태로든 사회와 교감을 나누며 의미를 찾는 삶이야말로 전형적인 액티브 시니어의 삶이다. 필자는 이를 적극적 액티브 시니어라 부르고 싶다. 그냥 즐기는 삶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즐기는 사람이 진정한 액티브 시니어다.
세 명의 벽돌공이 일을 하고 있다. 길을 지나가던 나그네가 잠시 쉬면서 물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가까이 있던 벽돌공이 말한다. “네,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벽돌공은 이렇게 말한다. “네, 저는 벽돌로 집을 짓고 있습니다.” 멀찍이서 일을 하던 벽돌공이 땀을 훔치며 말한다. “저는 지금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동일한 작업을 하고 있는 세 사람의 답이 이렇게 다르다. 나그네가 세 사람의 말을 음미하며 속으로 읊조린다. ‘음, 벽돌을 쌓고 있는 벽돌공은 지금 생업에 종사하고 있음이며, 집을 짓고 있는 벽돌공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음이며,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있는 벽돌공은 천직에 종사하고 있음이로구나!’ 그렇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른 가치를 낳는다. 같은 시니어라도 여전히 생업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직을 찾아 의미 있는 인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미 생업에서 물러나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니어라면 천직에 한번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경제적 기반부터 챙기자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 중국 춘추시대에 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패권국으로 만든 관중의 말이다. 한마디로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어야 예절을 차리고 영광스러움과 욕됨을 안다는 뜻이다. “내 코가 석자”라는 우리 속담과 비슷한 의미다.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받쳐주지 않으면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액티브 시니어의 삶은 요원하지 않을까. 테레사 수녀 같은 삶을 일반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일반 서민에게 ‘등 따시고 배부른 삶’은 액티브 시니어의 전제조건이나 다름없다.
액티브 시니어가 은퇴 후 천직을 찾아 의미 있는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호구지책에 연연하지 않는 경제적 기반이 필요하다. 스웨덴의 시니어들이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든든한 사회보장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는 스웨덴처럼 든든하지 못하다. 게다가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어느 정도 돈을 모았다 하더라도 과거처럼 이자로 생활하는 금리생활자(rentier)가 될 수 없다. 사회보장과 사적 보장을 상황에 맞게 조합한 연금생활자(pensioner)로 호구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금리생활자의 해는 저물고, 연금생활자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은퇴 후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요소는 수입 상실, 예상치 못한 지출, 질병 리스크 등이다([그림1] 참조). 은퇴 후에도 일상생활을 영위하게 해주는 수입은 필수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지출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생활은 일그러지고 액티브 시니어의 삶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질병은 말할 필요가 없다. 질병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질병에 따른 지출도 경계해야 한다. 질병은 우리 몸만 갉아먹는 게 아니라 생활비도 갉아먹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이런 위협 요인까지 이겨낼 수 있도록 경제적 기반을 단단하게 마련해야 한다. 필자는 은퇴 후 맞닥뜨리게 되는 경제적 문제를 연금 중심으로 대처하고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꾸준히 이어가게 해주는 체계적 계획을 연금생활플랜, 이 계획을 실천할 수 있도록 잘 짜는 것을 ‘PLP(Pension Life Plan) 디자인’이라 부르고자 한다.
‘연금생활플랜’ 어떻게 디자인할까?
‘연금생활플랜’ 디자인의 핵심은 [표1]과 같은 현금흐름표를 만드는 것이다. 먼저 본인과 배우자, 자녀의 나이를 입력하고, 각 연도의 지출항목을 입력한다. 지출은 기본생활비·주거비·교육비·보험료·기타 지출·일시적 지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생활비는 각자가 생각하는 적정 생활비를, 교육비는 자녀 및 본인과 배우자의 교육비를, 보험료는 건강보험료 및 민영보험료 등을, 일시적 지출은 자녀 결혼비용 등을, 기타 지출은 경조사 비용 등을 입력하면 된다. 자녀가 독립했는데 무슨 교육비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액티브 시니어 정의에서 강조한 바 있는 정신적 성장과 삶의 자극을 위해서는 평생교육이 필요하다. 평생교육을 받다 사귀는 새로운 친구는 삶의 소중한 보너스다. 그리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험자산을 리뉴얼해야 한다. 은퇴 후 평생교육에 들어가는 돈은 비용이라기보다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출항목을 입력했으면 이제 수입을 계산해 입력할 차례다. 이 부분은 좀 복잡하다. 우선 각자가 가입해 있는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으로부터 얼마의 수입이 발생할지 계산해야 한다. 이는 금융감독원의 ‘연금포털’을 이용하면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 여기에다 기초연금을 더하면 기본적인 연금소득은 파악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 지출을 감당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많은 사람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공사 연금소득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른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추가적인 근로소득을 만들어내는 것과 주택을 활용해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액티브 시니어들은 이 정도만 하면 생활비는 충분히 조달할 수 있지 않을까. 기타 수입에는 만기된 적금액이나 곗돈, 경조사 수입 등을 기록하면 된다.
연금 외의 금융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액티브 시니어라면 이 금융자산을 활용해 현금흐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일시납즉시연금이나 월지급식펀드, 월지급식예금 등 연금성 상품을 활용하면 일시금에서 매월 현금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상품은 구조가 복잡하므로 전문가에게 자문해서 도움을 받는게 좋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세제상 불이익을 받거나 경제적으로 원하지 않는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세목별 내용은 [표2]의 수입상황표에 기록하면 된다.
현금흐름을 만들 때는 두 가지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사망할 때까지 일정한 현금흐름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각자 라이프스타일이 다르고 추구하는 삶의 행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은퇴생활 초기에 보다 적극적인 삶을 추구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균일한 삶을 원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은퇴 후 삶의 비전을 생각하면서 생애 현금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본인 사망 후 배우자의 여생까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우스갯소리로 배우자에 대한 마지막 복수로 본인의 사망과 동시에 현금흐름을 단절시키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는 말이 있다. 역으로 말하면 이는 배우자의 여생에도 현금흐름이 쭉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손성동(孫盛東)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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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한국연금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은퇴의 시작은 여행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사전 체크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은 앞으로 그동안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삶의 중심은 일에서 여가로, 직장에서 가정으로, 성장에서 관리로 변한다. 이에 따라 재산을 관리하는 재무설계 방식도 바꿔야 한다. 은퇴의 시작은 여행 가방을 준비하듯 꼼꼼히 챙겨야 즐겁고 안전하다. 은퇴재무 전문가 3인의 ‘믿고 맡기는 평안한 노후의 길’을 함께 떠나보자.
김태우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부소장
평균수명이 50세를 조금 웃돌던 1960년(남 51.1세, 여 53.7세)에 5070은 그야말로 뒷방 늙은이였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한 지금 5070은 액티브 시니어로서 인생 황금기의 주인공들이다. 반백년 만에 완벽한 신분세탁이 이뤄진 셈이다. 연세대학교 김형석 명예교수는 라는 저서에서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75세까지는 정신적으로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올해 김형석 교수의 나이는 98세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 정도(78.3%)는 70세를 노인 연령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인생 100세 시대에 5070은 노년으로 넘어가기 전의 ‘신중년’인 셈이다. 지금의 5070세대는 그 전까지 일과 가족 때문에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했지만, 50세를 넘기면서 ‘신중년’으로서의 새로운 인생의 꽃을 피우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줄 경제적 토대다. 5070 액티브 시니어가 2040일 때는 월급이라는 끊이지 않는 현금흐름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해왔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아직 현역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5070은 여전히 풍부한 현금흐름을 확보하고 있겠지만, 이미 은퇴한 5070은 사정이 다르다. 안정적 현금흐름이 끊긴 상태에서 그동안의 관행을 답습하며 모아놓은 돈을 빼내 쓰는 행위로는 평안한 노후생활을 장담하기 어렵다.
현역 시절 안정적인 생활이 노후에도 이어지기 위해서는 5070 시절을 잘 보내야 한다. 특히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지위를 노후에도 이어가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스마트한 재무설계가 필요하다. 재무설계는 재무 상황을 파악하여 관련 목표를 세우고, 이에 맞추어 구체적인 자금 준비 등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5070세대가 이전까지는 월급을 통해 재테크, 저축, 목돈 중심의 재무설계를 해왔다면 지금은 새로운 관점, 가치관의 재무설계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재무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5070세대의 특성을 충분히 감안한 재무설계를 특별히 ‘은퇴재무설계’라 부르기로 한다. 여기서는 먼저 5070세대에게 ‘은퇴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 5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은퇴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 5가지
첫째, 속성이 다르다. 재무설계 측면에서 5070세대와 2040세대는 그 속성이 다르다. 2040세대가 샘물이 계속 솟아나는 우물이라면 5070세대는 더 이상 샘물이 솟아나지 않는 우물이다. 5070세대가 자신의 우물에서 죽을 때까지 목을 축이기 위해서는 막혀버린 샘물이 다시 나오도록 다른 길을 뚫거나, 우물의 물이 썩지 않은 상태에서 고갈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속성이 다른 2040세대 때 해오던 재무설계를 5070에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적잖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패션쇼에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2040 시절에 고수익·자산 중심의 재무설계로 재미를 봤다고 해서 지금도 그렇게 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5070 은퇴재무설계는 모아둔 자산을 어떻게 소비하고 지출할 것인가 하는 현금흐름 중심의 재무설계로 바뀌어야 한다.
둘째, 현역 때인 2040 시절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음악이 바뀌면 춤도 바뀌어야 한다(When the music change, So does the dance)”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을 노멀(normal) 시대, 그 후부터는 경제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고 해서 뉴노멀(new normal) 시대라고 한다. 최근에는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져 기존의 경제이론으로는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뉴애브노멀(new abnormal)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과거 5070세대가 살아왔던 노멀 시대는 어디에 투자하든 무슨 장사를 하든, 그리고 저축만 열심히 해도 돈을 불릴 수 있는 시절이었고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재무설계였다. 1980년에 시중은행의 평균금리는 24%였다. 5년 만기 재형저축상품의 금리는 무려 36%였던 적도 있다.
목돈을 만드는 데 얼마의 기간이 걸리는지를 간단하게 알아보는 방법으로 72법칙이 있다. 72법칙은 원금이 2배가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을 계산하는 공식으로 ‘72÷금리=기간’으로 산출한다. 과거 금리가 24%였던 시절에 1억 원을 예금해두었다면 원금은 3년(72÷24=3) 만에 2배로 불어난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어떨까? 예금 금리를 2%로 가정하더라도 원금을 2배로 만드는 데 36년(72÷2=36)이나 걸린다. 예전처럼 예금으로 자산을 급속히 늘려가는 시대는 끝났다. 다른 수단을 강구하지 않는 한 지금까지 모아놓은 한정된 자산으로 긴 노후를 보내야 한다는 의미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은퇴 자금으로 제법 큰돈을 모아놓았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은퇴할 때 노후자금으로 3억원을 준비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매년 2400만원을 노후생활비로 사용하고, 물가상승률은 2%라 가정하자. 이 사람이 3억원에서 언제까지 노후생활비를 꺼내 쓸 수 있을까? 이는 3억원의 운용수익률에 따라 달라진다. 3억원을 예금도 적금도 아닌 자신의 금고나 장롱에 넣어두고 사용할 경우(운용수익률 0%) 약 11년이면 소진된다. 운용수익률이 2%일 때는 12년, 4%일 때는 14년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7%일 때는 약 20년으로 노후자금 사용기간이 늘어나게 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요즘은 노후생활비를 이자로 조달하며 살아가는 금리생활자의 설 자리가 사라졌음을 뜻한다. 보다 적극적인 운용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셋째, 수명 증가 속도를 간과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100세 이상의 어르신은 몇 명일까? 통계청(2016) 자료에 따르면 3159명이다. 90세 이상 인구는 이보다 약 50배 많은 15만 명 정도다. 100세 이상 인구는 5년 전에 비해 72%, 90세 이상 인구는 67% 증가했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대수명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1980년에 66.1세였던 기대수명은 2015년 기준으로 82.1세로 2년마다 기대수명이 1년씩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생명공학 분야 전문가들은 금세기 안에 인간의 평균수명이 120세, 심지어는 140세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기도 한다. 5070세대가 2040 시절에 경험했던 것처럼 퇴직 후 10~20년을 더 산다는 전제로 노후를 준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5070세대 중 액티브 시니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의 기대수명은 더 길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서울대 의료관리학연구소와 건강보험공단 분석에 따르면, 소득이나 거주지역에 따라 기대수명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상위 20%에 속한 사람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83.7세로 소득 하위 20%의 기대수명(77.6세)보다 6년이나 더 길다. 한마디로 부자가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2011년에 상영된 이라는 영화를 보면 돈으로 인간의 수명을 거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상위 1%의 부자들은 불로장생(不老長生)하고, 나머지는 고된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영화 같은 현실이 우리 주변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넷째, 가계 재무상태가 적절치 못하다. 5070세대는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집단이다. 이 세대는 전쟁과 굶주림, 경제개발과 IMF 경제위기 등 롤러코스트와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축적한 자산은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물질적 토대가 되고 있다. 통계청 ‘가계금융조사(2016)’ 조사에 따르면, 50대의 자산은 4억4302만원, 부채는 8385만원으로 순자산이 3억5917만원이다. 60대 이상은 자산 3억6648만원, 부채 4926만원, 순자산 3억1722만원이다. 5070세대는 평균적으로 3억원 정도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지 않은 액수다.
문제는 자산의 구성이다. 50대는 전체 자산의 69%가 부동산이고, 60대의 부동산 비중은 79.1%나 된다. 60대 이상의 경우 금융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금융자산은 1656만원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하우스 리치(house rich)’, ‘캐시 푸어(cash poor)’ 현상이다. 자산은 많으나 현금이 없는 것이다. 자산으로부터 현금흐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조그마한 유동성 위기에 봉착해도 파산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어떻게 하면 자산에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을까? 5070세대의 가장 큰 숙제다.
다섯째, ‘노후난민’만은 피해야 한다. 지금은 5070세대가 액티브 시니어로서 충분한 생활기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80세 이후에도 그것이 그대로 유지되리란 보장은 없다. ‘노후난민’은 은퇴 후 자산이 계속 줄어드는 바람에 급기야는 의식주 같은 기본생활을 충족할 만한 자금조차 없는 노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돈과 수명의 경주에서 수명이 이기는 바람에 노후파산이라는 역설에 직면하고 만다. 적잖은 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수명과의 경쟁에서 돈이 지도록 만드는 원인은 뭘까? 자산관리 소홀, 의료비 부담, 자녀부양 문제 등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자산관리 소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요즘 같은 시대에 안전하다는 이유로 자금을 원금보장형 상품에 묻어두고 곶감 빼먹듯 빼먹으면 고갈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안전심리가 노후난민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셈이다. 일에서 은퇴했다고 투자활동까지 막을 내리면 곤란하다. 은퇴 이후에는 나를 대신해 돈이 일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은퇴 및 투자전문가인 노지리 사토시는 노후난민을 피하는 방법으로 개인의 삶을 은퇴 전과 은퇴 후의 2단계로 구분하지 말고 3단계로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즉 ①직장생활로 ‘돈 버는 시기’, ②은퇴 후 투자를 통해 자산을 불리는 ‘자산 투자기’, ③투자활동을 끝내고 불린 자산을 느긋하게 소진하는 ‘완전 은퇴기’로 구성할 것을 권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쓰면서 불려나가는 ‘자산 투자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지리 소장은 은퇴 후에도 20년 정도는 자산을 불려나간다는 생각으로 투자를 계속하고, 75세쯤에야 투자로부터 은퇴를 선언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2. 의료비 부담: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본적인 의식주 관련 생활비는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만 의료비는 늘어나는 게 보통이다. 운동과 식이요법 등으로 건강관리를 해보지만 도적처럼 슬며시 찾아오는 것이 ‘노후 질병’이다. 게다가 꽤 큰돈까지 삼켜버린다.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1인당 월평균 진료비는 30만2904원으로 전체 인구의 1인당 월평균 진료비(9만9315원)보다 3배 이상 많다. 70세 이후 보건의료비 지출은 소비지출의 15.5%나 차지한다. 노인이 금융자산의 상당 부분을 보유하고 있어 노인 부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조차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40년간 저축과 연금을 통해 노후를 대비했으나 배우자의 질병,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의 문제로 노후에 파산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후 의료비 지출은 일정연령이 되면 반드시 찾아온다는 점과 오래 살수록 위험이 급증하고 정도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3.자녀부양 문제: ‘73만7000원!’ 25세 자녀를 둔 부모가 한 달 자녀에게 쓰는 부양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성인 자녀를 둔 부모 10명 중 4명은 학교를 졸업했거나 취업, 결혼한 자녀를 계속해서 부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자녀가 사회에 진출해 독립의 기반을 마련하면 부모의 자녀부양 의무는 끝나고, 부모가 노인이 되면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선순환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요즘은 캥거루족, 부메랑족이란 단어가 유행할 만큼 부모가 성인 자녀를 돌보는 역부양 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자녀부양’과 ‘부모봉양’이란 ‘더블케어(double care)’ 현상에 직면해 있는 5070세대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 보인다.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ssdks@naver.com
A(65세)씨는 요즘 원치 않는 혼족 생활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 모임에 열심히 나갔으나 지금은 발길을 뚝 끊은 상태다. 한때 동기회 회장까지 맡았던 그는 몇 년 동안 일체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두문불출하고 있다. 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즐겁지만 식사비와 가벼운 음주 비용마저 두렵기 때문이다. 지금 그에게 유일한 친구는 TV뿐이다. 그는 지금 강남의 10억 정도 하는 아파트에서 소파를 침대 삼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TV를 보고 있다. 밖에 나간 아내가 빨리 들어오지 않아 분을 삭이면서.
대기업 부장으로 재직하다 55세에 퇴직한 A씨는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아내와 함께 고품격 해외여행은 물론 뮤지컬 관람 등 문화생활을 즐겼다.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로서 그동안 고생한 보람을 맘껏 누렸던 것이다. 그러나 고가의 아파트도 있으니 어찌 되겠지 하는 맘으로 5년을 즐기는 동안 어느새 저축해놓은 돈이 동나버리고 말았다. 그 허전함과 불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정했던 아내와의 사이는 벌어지기 시작했고 A씨는 집 안에 틀어박혀서, 아내는 밖으로 나도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A씨가 다시 액티브 시니어로서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주택연금 가입하면 얼마나 받을 수 있나?
A씨가 가택연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주택을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10년 동안 일을 쉰 65세의 은퇴자에게 재취업의 길은 멀기 때문이다. A씨는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분해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 9억원 이하의 아파트로 이사하면 1억원 정도의 여유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A씨가 9억원짜리 아파트로 이사한 뒤 바로 주택연금 신청을 하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주택연금 월 수령액은 신청 당시의 연령과 주택가격, 지급방식, 보증료 크기 등에 따라 다르다. 만일 A씨가 매월 일정한 금액을 종신지급받는 조건으로 가입할 경우 월 227만4000원 정도를 받게 된다([표 1] 참조). 현재 A씨는 국민연금으로부터 매월 약 70만원을 받고 있으므로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을 합치면 30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생활비를 250만원 정도로 낮추면 7억짜리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고, 200만원까지 낮추면 5억짜리 아파트로 이사할 수도 있다. 월 생활비를 250만원으로 낮추면 3억 정도의 여유자금을 확보할 수 있고, 200만원으로 줄이면 5억원의 여유자금을 손에 쥘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액티브 시니어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주택연금 신청자 얼마나 되나?
주택연금은 2007년 7월에 도입된 이후 가입자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누적 가입자 수는 2012년 말 1만1393명에서 2016년 말에는 3만4444명으로 증가했다. 매년 주택연금에 가입하는 신규 가입자 수는 2012~2015년 5000~6000명 선에서 2016년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그림 1] 참조). 2016년 신규 가입자 수(1만309명)는 2015년보다 58.9%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지난해 주택연금 신규 가입자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내집연금’ 3종 세트 출시와 가입요건 완화 덕분이다. 주택연금이 고령층의 주요 노후준비 수단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한편 2007년 7월 주택연금 출시 이후 2016년까지 주택연금 가입자의 평균 연령은 71.9세, 평균 주택가격은 2억8300만원, 월 평균 수령액은 98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유형은 아파트가 84.0%로 가장 많았고, 주택 규모는 85㎡(약 25.8평) 이하가 78.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집연금’ 3종 세트란?
‘내집연금’ 3종 세트는 2016년 4월 25일 출시된 상품으로 다음 3개의 주택연금을 묶었다. ① 일시인출 한도를 70%로 늘여 만 60세 이상 고령자의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하고 주택연금을 이용할 수 있게 한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 ② 40~50대가 보금자리론을 이용하다가 향후 주택연금으로 전환할 때 최대 연 0.3%p의 전환장려금을 지급하는 ‘주택연금 사전예약 보금자리론’, ③ 1억5000만원 이하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60세 이상 고령자에게 월 지급금을 최대 15% 더 많이 주는 ‘우대형 주택연금’.
첫째,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은 부부 중 한 명이 만 60세 이상이고 부부 기준 9억원 이하 1주택 소유자 또는 다주택 보유자의 경우는 보유주택 합산 가격이 9억원 이하이면 가입할 수 있다. 합산 가격이 9억원을 초과하는 2주택자는 3년 이내에 비거주 주택을 처분하는 조건으로 가입 가능하다. 주택연금에 가입할 때는 주택가격의 1.0%를 가입비 형태로 초기보증료를 납부해야 하며, 매년 연금지급 총액의 1.0%를 연보증료를 납부해야 한다. 보증료는 월 지급금 보장 및 미래손실 충당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된다. 보증료는 연금지급 총액에서 자동 공제되므로 직접 납부할 필요는 없다.
연금지급 한도의 70%까지 일시에 인출해 주택담보대출 상환에 활용할 수 있다. 일시 인출한도 금액은 주택가격과 연령에 따라 다르므로 주택금융공사에 문의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만일 인출한도 전액을 사용했음에도 주택담보대출 전부를 상환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최대 1000만원 한도 내에서 서울보증보험의 내집연금연계신용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 부부 모두 사망하거나 주택소유권을 상실했을 경우, 그리고 1년 이상 거주하지 않을 경우에는 주택연금이 종료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종료 시점에 주택가격이 연금수령 총액보다 많을 경우에는 남는 부분이 자녀에게 상속되므로 주택연금 가입 후 주택가격이 오르면 손해 보는 것 아니냐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연금수령 총액이 주택가격보다 많으면 부족분에 대한 청구는 하지 않으므로 혹시라도 자녀에게 빚으로 떠넘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필요도 없다.
둘째, 주택연금 사전예약 보금자리론은 40~50대 중·장년층이 주택연금 가입을 미리 약속할 경우 이자 혜택을 주는 연금상품을 말한다. 주택금융공사가 취급하는 장기 주택담보대출로 보금자리론을 빌려 집을 살 때 주택연금에 가입할 것을 약속하면 연금전환 시점까지는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다가 전환 시점이 되면 빚을 일시에 상환한 뒤 남는 돈을 연금으로 수령하는 방식이다. 부부 중 한 명이 만 40세 이상이고 무주택자 또는 부부 기준 9억원 이하 1주택 보유자일 경우 이용할 수 있으며, 주택 소유자 또는 배우자가 만 60세가 된 후 희망하는 시기에 주택연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 주택연금 전환가능 여부는 전환신청 당시의 주택연금 가입요건에 따라 결정된다. 만일 전환신청을 했는데 가입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에는 주택연금 가입이 거절될 수 있다. 초기보증료는 주택가격의 1.5%, 연보증료는 연금지급 총액의 0.75%다. 주택연금 종료 사유는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과 동일하다.
이 주택연금은 금리를 0.15%p 우대해준다. 또 은행에서 만기 일시상환식 변동금리부 주택담보대출을 이미 받은 사람이 보금자리론으로 갈아타면서 주택연금 가입을 약정하면 추가로 0.15%p를 우대받아 총 0.3%p의 금리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대이자는 60세 연금 전환 시점에 전환 장려금으로 일시에 받을 수 있다. 가령 만기 일시상환식 변동금리부 은행 대출을 가진 45세 B씨(3억원 주택 소유)가 보금자리론으로 갈아타고 주택연금 가입을 예약하면 주택연금으로 전환되는 60세에 296만원을 받는다. 사전예약 보금자리론에 가입한 뒤 주택연금으로 전환할 경우 조기상환 수수료는 면제된다. 단 주택연금 전환 이후 해지할 경우에는 면제된 조기상환 수수료를 납부해야 한다.
셋째, 우대형 주택연금은 부부 기준 1.5억원 이하의 1주택 보유 고령자의 노후생활비 지원을 위한 연금상품으로 일반 주택연금보다 월 지급금이 8~15% 정도 많다. 대출한도의 45% 이내에서 필요에 따라 수시인출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상품의 장점 중 하나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이 대출한도 45%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자기자금으로 초과하는 금액을 상환한 뒤 우대형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다. 자기자금이 부족할 경우에는 주택담보대출 상환용 주택연금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상품의 초기보증료는 주택가격의 1.5%, 연보증료는 연금지급 총액의 0.75%다. 주택연금 종료 사유는 앞의 두 상품과 동일하다.
주택연금 가입 방법
주택연금에 가입하려면 ‘상담→가입신청→주택연금 약정 및 실행’이라는 3단계를 거쳐야 한다. 상담은 콜센터(1688-8114)를 이용할 수 있고, 가까운 주택금융공사 지사나 은행 지점을 방문해 받을 수도 있다. 방문상담을 할 경우에는 예약상담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예약을 하지 않고 그냥 방문하면 오래 기다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예약상담은 홈페이지(www.hf.go.kr)나 콜센터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가입신청 단계에서는 필요서류 제출 및 주택연금 보증신청이 진행된다. 필요 서류는 신분증, 주민등록등본 2부, 주민등록초본 1부, 전입세대열람표 1부, 가족관계증명서 1부, 인감증명서 2부 등이다. 가입신청을 하기 전에 거래할 은행을 정하고 대출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있는 은행에서 주택연금에 가입할 경우 조기상환 수수료가 면제된다. 주택연금 약정 및 실행 단계는 주택금융공사에서 은행으로 보증서를 발급한 뒤 고객이 거래은행을 방문해 주택연금 약정을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연금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주택연금 이용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은?
주택연금은 노후준비가 부족한 고령자들이 노후 생활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연금을 수령하다 중도에 해지하면 초기보증 수수료를 날리게 되므로 배우자와 자녀 등 주택의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한 의견을 나눈 뒤 신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07년 7월 주택연금 도입 이후부터 2016년 말까지 주택연금에 가입했다 중도에 해지한 사람은 총가입자(3만9429명)의 12.6%인 4985명이나 된다.
주택 소유자가 사망한 뒤 배우자가 계속 연금을 받으려면 배우자가 채무를 인수해야 한다. 배우자가 채무인수 및 소유권 이전 등기를 완료할 때까지 주택연금이 일시적으로 정지되기 때문이다. 주택연금에 가입할 때 사전에 채무를 넘겨받는다는 약정, 즉 사전채무인수약정을 맺으면 주택 소유자 사망시 추가 약정을 맺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 소유권 이전 등기는 소유자 사망 후 6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
주택연금 이용 중 이사를 할 경우에는 담보주택을 변경해야 주택연금을 계속 이용할 수 있다. 단, 이사하려는 주택가격(평가액)에 따라 월 지급금이 달라지거나 정산을 해야 할 수도 있으므로, 사전에 주택금융공사에 문의해보는 게 좋다.
>>손성동(孫盛東)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한국연금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ssdks@naver.com
“성동아, 니 연금 전문가니까 잘 알겠네. 내가 지금까지 국민연금하고 퇴직연금, 개인연금 들어놨는데. 이 정도면 노후준비 충분할까?” 필자가 친구들로부터 종종 받는 질문이다. 그럼 필자는 이렇게 되묻는다. “언제 가입했는데?” “몰라.” “월 납입금은 얼만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아노.” 이렇게 나오면 답이 없다. 언제 가입했는지도 모르고 월 얼마를 납입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노후준비가 충분한지 아닌지 어찌 알 수 있나. 아마도 이 친구는 내가 아주 용한 점쟁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많은 친구들이 이렇다. 가입은 한 것 같은데 가장 기본적인 내용조차 모른다. 머릿속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도 없으니 필자로서는 조언을 해줄 도리가 없다. 아마 이런 친구들은 자신이 연금에 가입돼 있는지조차 모르거나, 가입했더라도 무슨 연금인지 모를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에서 연금이 노후준비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지는 꽤 됐다. ‘연금이 효자’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지원은커녕 돈 빼갈 궁리만 하는 자식에 비하면, 매달 꼬박꼬박 생활비를 주니 이보다 더한 효자도 없을 것이다. 연금으로부터 제대로 된 효도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연금을 잘 가꿔야 하고, 연금이 내게 줄 수 있는 효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연금으로부터 내가 어느 정도의 생활비를 받아낼지 아는 것이 쉽지 않다. 제도는 복잡하고, 계산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통합연금포털이 있기 때문이다.
통합연금포털이 뭐예요?
통합연금포털(100lifeplan.fss.or.kr)은 100세 시대를 대비해 국민들이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자신이 가입한 공적·사적 연금 정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금융감독원에서 운영한다. 2013년 12월에 첫 삽을 뜬 통합연금포털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 사학연금 등을 한곳에서 조회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진화했다. 2016년 12월 27일부터는 주택연금까지 조회할 수 있으며, 2017년 중에는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도 조회할 수준으로 발전할 전망이다.
자신의 노후 예상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체계적으로 노후를 대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앞서 소개한 필자 친구처럼 자신이 어떤 연금에 어느 정도 가입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면 대략 난감이다. 통합연금포털은 자신이 가입한 기관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문의해야만 정보를 알 수 있었던 기존의 답답한 현실을 디지털 시대에 맞춰 스마트하게 환골탈태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내 연금을 확인하기 위해 발품은 그만 팔고 스마트하게 알아보자.
통합연금포털은 어떻게 이용하나요?
통합연금포털에 접속하면 [그림1]과 같은 화면이 나온다. 이 포털을 이용하려면 먼저 메인 화면 오른쪽 상단의 ‘회원가입’을 클릭해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 회원가입을 번거로워하거나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통합연금포털 회원가입은 매우 간단하다. ‘서비스 신청 및 이용 동의’와 ‘개인정보 입력’만 하면 끝이다. 먼저 회원가입을 클릭하면 ‘금융감독원에 본인의 연금정보 통합조회 서비스를 신청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신청’을 클릭하면 ‘이용 동의’로 넘어간다. ‘모든 사항에 대하여 동의(요구)합니다’에 체크하고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한 뒤 인증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보통 다른 웹사이트들은 많은 경우 공인인증서를 요구하는데 통합연금포털에서는 공인인증서와 함께 휴대폰 인증을 허용하고 있어 편리하다. 필자는 휴대폰 인증을 통해 가입했다.
휴대폰 인증이 끝나면 개인정보 입력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설정해야 한다. 여기저기 다양한 홈페이지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가지고 있다 보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고, 특히 요즘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설정할 때 알파벳과 숫자, 특수문자의 조합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외우기가 더욱 어렵다. 이런 점을 감안했는지 통합연금포털은 아이디와 비밀번호 저장기능을 가지고 있다. 저장하지 않았다고 해서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아이디와 비밀번호 찾기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설정한 뒤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몇 가지 개인정보만 입력하면 회원가입은 끝이다. 이렇게 처음 서비스를 신청하면 나의 연금정보를 조회하는 데 3일(영업일 기준) 걸린다. 이후부터는 매월 말 기준으로 연금정보가 업데이트되므로 즉시 조회할 수 있다.
나의 연금정보조회 신청을 하고 3영업일이 지난 후 통합연금포털에 접속해 로그인을 하고 [그림2]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상단 중앙에 있는 ‘내 연금조회’를 클릭하면 내가 가입돼 있는 연금의 종류와 예상연금액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내 연금조회’ 화면에서 ‘예시연금액’을 클릭하면 [그림3]처럼 표와 그래프로, 몇 세부터 수령할 수 있고 연금액은 얼마인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냥 클릭만 하면 된다. 너무 편리하다. 이렇게 쉽게 내 연금을 조회해도 되나 싶을 정도다. 꼭 해보시라.
내가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노후 재무설계’를 클릭하면 [그림4]와 같은 화면이 뜬다. 여기에는 국민연금연구원에서 설문조사를 토대로 산출한 개인 및 부부 기준 최저·적정 노후생활비가 나온다. 이 금액과 내 연금 예상수령액을 비교해보면 나의 노후준비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 부족하다고 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다. 노후생활비는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원하는 노후생활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연구원 자료는 어디까지나 설문조사에 바탕을 둔 평균일 뿐이다. 자신의 노후생활 비전을 구체화하는 게 우선이다. 이를 토대로 노후생활비를 재산정해볼 것을 권한다. 이때는 반드시 부부가 함께 논의하는 것이 좋다.
만약 부족하다 싶으면 아직 가입하지 않은 연금이 있는지 확인해보거나, 그 부족분을 보충하는 데 필요한 추가 납입액을 산출해볼 수도 있다. 아직 가입하지 않은 대표적인 연금은 주택연금일 것이다. 자가 소유의 주택이 있는 분이 주택연금에 가입하고, 여기에다 국민연금을 합치면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어느 정도 노후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 추가 납입액을 활용할 수 있는 연금에는 연금저축과 개인형 퇴직연금인 IRP 등이 있다. 내 연금정보뿐만 아니라 가족의 연금 정보와 본인 소유의 자산 정보까지 추가하면 보다 정확한 납입액을 산출할 수 있고, 각종 연금 관련 정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으니 자신의 노후준비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꼭 이용하시기를 강력 추천한다.
통합연금포털에서 확인 가능한 정보는?
통합연금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사적연금과 국민연금의 차이가 조금 있다. 사적연금의 경우는 가입회사, 상품유형, 상품명, 가입일, 납입보험료, 총납입액, 적립금, 납입종료(예정)일, 납입상태, 예시연금액, 연금개시(예정)일, 연금지급종료(예정)일 등 총 12가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사적연금 가입자 중 많은 사람들이 가입 회사는 알아도 자신이 가입한 상품 유형이나 이름, 납입보험료, 지금까지 납입한 총금액, 납입종료(예정)일, 연금지급종료(예정)일 등은 거의 잘 모른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통합연금포털은 ‘나의 연금이력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에 국민연금에서는 현재 가입상태, 납부한 연금보험료, 예상 총납부보험료, 가입월수, 예상 총가입월수, 연금 기수급 여부, 예상연금월액(현재가치·최저·평균·최고), 연금개시(예정)연월 등 총 8가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예상 총납부보험료와 예상 총가입월수는 지금부터 60세가 되는 시점까지 납입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보험료 총액과 가입월수를 말한다.
통합연금포털의 장점은?
첫째, 공적연금과 사적연금 정보를 한 번에 조회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공단을 비롯한 87개 금융회사 연금 정보를 ‘통합연금포털’에 집적해놓았기 때문이다. 이외 여러 계약사항을 통일된 기준으로 조회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상품 간 비교를 해볼 수도 있다.
둘째, 체계적인 노후준비를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퇴 후 필요한 생활비에 비해 내가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연금액이 부족할 것으로 판단된다면 각 연금의 연령별 예시연금액,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추정 납입액을 기초로 노후준비를 보완하면 된다.
셋째, 수령하지 않은 연금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래전 연금저축에 가입했는데 이사를 하거나 전화번호가 바뀐 경우에는 금융회사로부터 연금 개시일 도래 사실을 통지받지 못한다. 이때 통합연금포털을 활용하면 연금종류별로 정확한 연금수령 날짜를 알 수 있다. 만약 지급받지 못한 연금이 있다면 신청한 뒤 받으면 된다.
통합연금포털을 이용할 때 유의할 점은?
첫째,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등 사적연금 정보는 가입과 동시에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내 연금 정보를 조회하는 데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어 최소 3영업일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적연금 정보가 한 번 집적된 뒤부터는 언제든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국민연금 정보는 로그인과 동시에 조회가 가능하다.
둘째, 국민연금의 예상연금액은 만 59세까지 가입한 경우를 가정하고 여기에다 소득 및 물가변동률 등을 감안해 산정한 추정금액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확정된 금액이 아니라는 뜻이다. 앞으로의 가입 이력이나 소득, 물가 등에 따라 실제로 받게 되는 금액은 예상연금액과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사적연금의 예시연금액 역시 금융회사 등이 자체적으로 계산한 금액으로, 이 금액은 향후 본인의 연금납입 여부, 실제 수익률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연금펀드의 경우 직전 3년간 납입한 연평균 납입액을 계속 납입한다는 가정하에 금융회사에서 예상연금액을 산출하는데, 납입액이 예상과 달라지면 당연히 받는 연금액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셋째, 본인이 입력한 연금 정보를 기초로 산출되는 것이므로 향후 연금납입 여부 및 규모, 개인의 경제환경 변화 및 세금 등은 고려되지 않은 금액임을 알아야 한다. 만일 본인의 연금 정보에 오류가 있는 경우에는 통합연금포털 홈페이지 내의 ‘연금정보 오류신고’ 또는 각 기관의 콜센터를 통해 문의하면 된다. 실제로 포털서비스 초기에는 신상품이나 최근 가입상품 정보가 누락되는 오류가 있었다고 하니 참고하면 된다.
>>손성동(孫盛東)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한국연금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전시(exhibition)
1) 프랑스 국립 오르세미술관 이삭줍기 전: 밀레의 꿈, 고흐의 열정
일정 3월 5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9세기 서양미술사를 빛낸 거장들의 명작 130여 점을 만날 기회다. 작품 보존을 위해 엄격하게 관리하는 고흐의 ‘정오의 휴식’은 오르세미술관 개관 이래 수십 년 동안 유럽 이외 지역으로 반출된 적이 없으나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대여를 허가했다.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아카데미즘과 사실주의, 인상주의와 자연주의, 상징주의와 절충주의, 20세기 예술의 다양한 원천 등 5개의 테마로 나누어 각 주제를 중심으로 작품 간의 대비와 유기성, 예술사의 흐름까지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2) 닉 나이트 사진전: 거침없이, 아름답게
일정 3월 26일까지 장소 대림미술관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로 손꼽히는 닉 나이트(Nick Knight)의 국내 첫 사진전이다. 사진과 디지털 그래픽 기술의 결합이 돋보이는 닉 나이트 특유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상 실험을 접목한 패션필름까지 폭넓게 마련돼 있다. 초상사진, 디자이너 모노그래프, 페인팅·폴리틱스, 정물화·케이트 등을 주제로 한 110여 점의 각양각색 작품을 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 매주 일요일에 열리는 ‘선데이 라이브 앤 클래스(SUNDAY LIVE & CLASS)’ 등 유익한 전시 연계 교육 프로그램들도 살펴볼 만하다.
◇도서(book)
1) 인생의 발견(시어도어 젤딘 저·어크로스)
21세기의 예언자라 불리는 영국의 철학자 시어도어 젤딘이 유명 인물들의 전기와 철학적 탐색을 통해 발견한 28가지 질문을 담았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인간과 삶에 관해 끊임없이 성찰해온 저자의 성숙한 지혜와 혜안을 엿볼 수 있다.
2) 브릿마리 여기 있다(프레드릭 배크만 저·다산책방)
로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소설이다. 59세 중년 남성 오베와 얼핏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향을 지닌 63세 중년 여성 브릿마리. 누군가의 그늘에서만 살아온 그녀가 삶의 위기를 통해 온전한 자신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그렸다.
◇영화(movie)
1)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희귀암에 걸린 26세 청년이 한국인 최초로 49일 만에 뚜르 드 프랑스 풀코스를 완주한 실화를 영화화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체육교사를 꿈꾸었을 정도로 건강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절망스러운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던 그는 뚜르 드 프랑스 완주라는 꿈을 키운다. 3500km 레이스의 마지막 지점인 파리 개선문을 통과하며 꿈을 이룬 순간의 가슴 벅찬 감동이 영화의 포스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봉 1월 12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이윤혁 출연 임정하, 전일우, 박형준 등
2)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떠돌이 음악가와 고양이 한 마리가 우연히 만나면서 인생의 희망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제목처럼 주인공 제임스는 어깨에 고양이 밥을 올리고 거리 이곳저곳에서 기타를 치고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따뜻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두 주인공은 2007년에 만나 현재까지 뜨거운 우정을 나누고 있다. 데이비드 허슈펠더 음악 감독과 싱어송라이터 찰리 펑크 등 실력파 제작진이 대거 참여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개봉 1월 4일 장르 드라마 감독 로저 스포티스우드 출연 루크 트레더웨이, 루타 게드민타스 등
◇공연(stage)
1) 인간
프랑스의 천재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유일한 희곡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인류 마지막 생존자인 화장품 연구원 라울과 호랑이 조련사 사만타가 ‘인류는 이 우주에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재판을 벌이는 2인극이다.
일정 3월 5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연출 문삼화 출연 고명환, 오용, 박광현 등
2) 꽃의 비밀
네 명의 아줌마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각자의 남편으로 변장해 벌이는 사건들을 유쾌하게 그렸다. 장진 감독이 직접 쓰고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코미디 장르의 연극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일정 2월 5일까지 장소 대명문화공장 연출 장진 출연 배종옥, 소유진, 이청아 등
3)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중국 고전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를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의 비극성에 희극적 요소를 곁들여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2015년 이 작품의 무대에서 유명을 달리한 배우 고 임홍식의 공손저구 역은 중견 배우 정진각이 이어받았다.
일정 1월 18일~2월 12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연출 고선웅 출연 장두이, 하성광, 정진각 등
4) 아이다(AIDA)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던 해 토니 상과 그래미상 등을 휩쓸었던 명작으로 한국에서는 2012년 이후 5년 만에 막이 오른다.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파라오의 딸인 암네리스, 두 여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라다메스 장군의 사랑을 노래한다.
일정 3월 11일까지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키스 배튼, 박칼린 출연 윤공주, 아이비 등
글 손성동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ssdks@naver.com
어느 택시기사에게서 엿본 50대의 자화상
온 나라가 최순실 게이트로 들끓던 어느 날 택시를 탔다. 갑자기 불편해진 다리와 피곤한 몸에 잠깐이나마 휴식을 주기 위해서였다. 푹신한 의자에 등과 목을 기대고 편히 쉬고 있는데 기사분이 말을 걸어왔다. 눈을 감고 건성으로 대답해도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 말을 걸어왔다. 피곤한데다 슬슬 짜증지수가 올라왔지만 어느 순간 호기심이 발동했다. 사연은 이렇다.
“제가 퇴직을 하고 마땅히 할 일이 없어 택시를 몰고 있는데, 하루 12시간 일해도 한 달에 100만원 벌기가 어려워요.”
“그래요?”
“3년 무사고면 개인택시를 신청할 수 있는데, 그걸 기다리며 참고 있습니다. 근데 그게 만만찮아요.”
동병상련인가. 기사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초보 택시기사라 해도 하루 12시간 일하고 한 달에 100만원 벌기가 힘들다니…. 일주일에 12시간 강의하고 한 달에 200만원 정도 버는 나는 그에 비하면 호사스런 퇴직자가 아닌가! 이번에는 내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하루에 몇 킬로미터 운전하세요?”
“대략 230킬로미터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교통지옥 같은 서울 시내에서 하루 230킬로미터씩 운전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말 힘든 노동이다. 3년 무사고가 만만찮다는 것을 처음엔 수긍하지 못했지만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 달에 100만원 벌기도 힘든데 누구는 한 방에 10억, 20억, 100억을 해먹었다니 박탈감이 너무 커요.”
최순실 일당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마음의 상처가 큰 것 같았다. 3년 뒤 개인택시 신청할 날을 기다리며 힘든 나날을 참고 견뎌나가는 초보 택시기사에게 최순실 일당은 정말 못할 짓을 했구나. 저 마음의 상처는 누가 보듬어줘야 하나.
택시에서 내려 걷는 동안에도 초보 택시기사가 한 말이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무거운 발걸음 위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고군분투하는 50대들의 자화상이 슬그머니 내려앉았다. 지금 50대는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한창 공부할 자녀도 있는데,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자신들의 노후 준비도 불확실하고, 고령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급한 마음에 자영업에 뛰어들어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은 경우가 허다하다. 100세 시대에 50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연령대다. 50대 10년을 잘 견뎌내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노후는 크게 달라진다. 50대 10년을 잘 견뎌낸 사람은 국민연금을 기본으로 하고 부족분을 사적연금이나 다른 자산으로 보완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동안 쌓아온 노후 자산에 손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진퇴양난의 길에 내몰린 50대!
연금해지의 경제학
요즘 연금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순실 일당에겐 연금이라는 말 자체가 낯설겠지만, 일반 서민들에게 연금은 금과옥조 그 자체다. 기나긴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내느냐, 불안에 떨며 보내느냐는 연금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과옥조 같은 연금을 깨트려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 50대들이 많다. 필자의 이야기부터 해본다.
어느덧 1년 전의 이야기다. 갑작스레 닥친 퇴직은 나름 평온했던 필자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렸다. 엄청난 대지진이었다. 이로 인해 지상의 평화로운 날들은 순식간에 극도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고 필자의 일상도 완전히 망가져버리고 말았다. 정신은 혼미해졌고, 가슴은 불구덩이로 활활 타올랐고, 두 발은 갈 길을 잃고 방황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줄기 빛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연금이었다. 연금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유지해야 하나, 해지해야 하나. 한 달 보름 정도의 고민 끝에 아내를 대동하고 해지의 길에 올랐다.
해지의 길에서 자괴감이 몰려왔다. “당신은 연금 전문가라면서 이렇게 해지를 해도 돼요?” 아내의 말에 뜨끔했다. “나만 믿어.” 그 당시 뭘 믿고 아내에게 그렇게 큰소리를 쳤을까? 당시 내게 남은 유일한 길은 ‘배수의 진’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으므로,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우선 몸을 가볍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배수의 진’을 친 장수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거운 갑옷으로 몸을 감싼다면 행동이 굼떠 적의 포로가 되거나 몇 발짝 나가지 못하고 지쳐 쓰러지고 말 것이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은 갑옷 때문에 오히려 위험에 빠지는 역설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당시 내 형편은 엄청난 무게의 갑옷을 입은 것처럼 무거웠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안게 된 수억의 빚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빚을 안고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내 몸을 꽉 쪼이며 발걸음을 무겁게 만드는 이 족쇄를 떼어내지 못하면 사즉생(死則生)의 ‘배수의 진’도 별무소용일 터! 그래서 선택한 길이 ‘연금을 죽임으로써 연금을 얻는 방법’이었다. 연금을 해지해 우선 몸을 가볍게 만든 후 난관을 돌파하고, 그 과정에서 획득한 수확물로 즉시연금을 구입한 셈이다. 나는 해지가 불가능한 국민연금을 제외한 모든 연금을 해지해버렸다.
그런데 필자와 같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 문제다. 올 상반기에만 보험 해약 환급금이 사상 최대인 14.7조원을 넘어섰고, 작년 한 해의 연금저축 해지 금액은 2.5조원에 달한다. 대부분 손해를 감수하며 해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해지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필자처럼 어쩔 수 없이 모든 사적연금을 해지해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부만 해지하면 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흔히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합쳐 사적연금이라고 부른다. 개인연금에는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 연금저축이 있고, 이런 혜택은 없지만 10년 이상 유지할 경우 발생한 이자소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연금보험이 있다. 연금저축의 경우 5년 이상 유지하고 만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하면 3.3~5.5%의 연금소득세만 부담하면 되지만, 중도에 해지하면 16.5%의 기타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따라서 연금저축을 중도에 해지하면 납입 원금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연금보험은 다소 복잡하다. 연금보험을 중도에 해지하면 세제상 불이익을 보는 일은 거의 없지만 해지 환급금이 납입 원금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납입 원금 대비 해지 환급금의 비율을 의미하는 해지 환급률은 어느 보험사 상품이냐, 적용 이율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다. 공시이율형 연금보험의 해지 환급률이 납입 원금의 100%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공시이율형 연금보험이 대략 7년, 최저이율보증형 연금보험이 10년 정도다.
퇴직연금은 근무기간과 최종 3개월간의 평균 임금에 의해 급여가 결정되는 확정급여형, 적립금의 운용 수익률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 확정기여형, 이직할 때 적립금을 계속 쌓아가는 계정인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나뉜다. 퇴직연금 적립금을 연금으로 인출할 경우에는 나이에 따라 3~5%의 연금소득세를 적용받지만, 일시금으로 인출할 경우에는 퇴직금에 해당하는 금액은 퇴직소득세를, 근로자 자신의 불입금이나 운용 수익에 해당하는 금액은 기타소득세(16.5%)를 적용받는다. 연분연승법이 적용되는 퇴직소득세는 계산이 복잡하지만 가입해 있는 퇴직연금사업자에게 문의하면 알 수 있다.
이처럼 각각의 연금은 세제가 다르고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면 더욱 다르다. 따라서 개인 사정으로 연금 해지를 고려할 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
첫째,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고민하자. 일분일초가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해지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 연금은 한 번 해지하면 해지 이전의 상태로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둘째, 해지가 아닌 다른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납입액이 부담스러워 해지를 결심한 경우라면 해지보다는 납입 중단을, 자금이 필요해 해지를 결심한 경우라면 중도인출 후 추가납입이나 담보대출 등의 방법을 먼저 생각해보자. 중도인출 후 추가납입은 연금보험 가입자가 자금 필요시 해약 환급금 범위 내에서 중도인출하고 나중에 추가납입으로 인출액을 보충할 수 있는 제도를, 담보대출은 퇴직연금 적립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제도를 말한다.
셋째, 해지를 해야 할 경우에는 손해율을 따져보고 손해율이 적은 것부터 해지하자. 개인이 손해율을 계산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각자 가입해 있는 금융회사에 문의하면 된다.
가교연금 만들기
지금까지 빚 때문에 고민이 많은 50대의 연금술에 대해 살펴봤다. 이른바 연금해지의 경제학이다. 인생 100세 시대의 50대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50대 10년의 강’을 무사히 잘 건너는 사람은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50대에 연금을 무턱대고 해지해버리면 노후에 가택연금당하기 십상이다. 50대 연금술의 핵심은 죽을 때까지 연금에서 소득이 창출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빚 규모가 미미하거나 없는 50대 중에 퇴직으로 인해 생활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적지 않은 돈을 벌었지만 자녀교육과 내 집 마련, 부모님 봉양 등으로 수중에 남은 돈이 별로 없는 50대들이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이 나올 때까지 생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소득이 적더라도 제2의 일자리를 찾고 가교연금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는 가교연금에 대해서만 살펴보겠다.
먼저 국민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나이를 확인하고, 지금부터 그 나이까지 안정적인 소득 흐름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가입해 있는 개인연금이 있다면 수령 방법으로 수급기간이 정해져 있는 확정연금형을 선택하면 된다. 이 방법으로도 생활비를 마련하기 힘들다면 퇴직할 때 받은 퇴직 급여를 활용해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할 수 있도록 확정연금형 즉시연금이나 인출형 예금상품, 월지급식 펀드 등에 가입한다. 고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즉시연금과 인출형 예금상품과 달리 월지급식 펀드는 수입이 일정하지 못하거나 예상보다 일찍 수입이 중단되는 일이 생길수도 있지만 적극적인 운용을 통해 높은 수익을 추구할 수 있으므로 각자의 위험 성향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적합한 상품을 선택하면 된다.
가교연금을 구축하고도 남은 퇴직 급여가 있다면 국민연금 수급 연령에 도달했을 때 종신지급형 즉시연금에 가입해 부족한 국민연금 급여 수준을 보완하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에는 개인형 퇴직연금에 넣어두고 계속 운용할 필요가 있다. 이때는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낮은 수준의 이율에 만족하지 말고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적극적인 운용을 통해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퇴직 급여를 가교연금 만들기에 다 써버린 50대라고 불안에 떨 필요는 없다. 집이 있다면 60세 이후에 주택연금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신연금 만들기
50대 중에는 생활비가 전혀 문제가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 50대 후반의 A씨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지내다 지금은 가교직업(bridge job) 형태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A씨의 고민은 자녀의 결혼이다. 최근 직장에 다니는 아들이 A씨의 재산 상태에 관심을 가지며 눈치를 살피기에, 결국 A씨는 두 자녀에게 결혼자금으로 거액을 떼어주기로 결심했다. 그러고 나니 A씨 부부의 노후생활 자금이 빠듯해질 것 같더란다. 더 이상의 재산을 자식에게 빼앗길 수는 없다고 결심한 A씨는 비상자금을 제외한 금융자산은 모두 즉시연금으로, 집은 주택연금으로 활용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 손성동(孫盛東)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