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란 전통적인 양조법을 계승 및 보존해 빚는 술을 말한다. 흔히 전통주 하면 막걸리를 떠올리고, 그 외의 전통주는 쉽게 접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전통주의 종류는 다양하고 즐기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전통주 시음회, 전통주 직접 만들기 등 전통주를 재미있게 즐기는 법을 알아봤다.
전통주는 ①주류 부문의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제조한 술, ②대한민국 식품명인이 제조한 술, ③농어업 경영체 또는 생산자단체가 지역 농산물을 주원료로 제조한 술(지역 특산주)을 말한다. 종류로는 막걸리(탁주), 약주, 소주, 과실주, 일반 증류주, 리큐어 등이 있다.
3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1년 주류 시장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60.3%가 최근 음용한 전통주는 막걸리였다. 모든 연령층이 막걸리를 제일 많이 마셨는데, 그중에서도 50대 남성의 68.8%, 50대 여성의 67.6%가 막걸리를 마셨다고 답했다. 50대가 마시는 전통주는 막걸리에 편중된 경향이 있다.
더불어 전통주 하면 떠오르는 것에 대해서 25~34세 여성은 ‘요즘의 주류 트렌드’, ‘정성 들여 만드는 이미지’ 등의 의견을 내놓았다. 35~44세 남성은 예전에는 ‘저렴한 술 이미지’였다면 요새는 ‘고급 술’이라고 답했다. 즉 전통주는 트렌디하면서도 귀한 술로 평가된다고 할 수 있다.
STEP 1. 전통주와 쉽게 친해지기
맛 보며 체험하는 방법
전통주 입문 첫 단계로 전통주갤러리부터 찾아가는 것을 추천한다. 한국 전통주의 맛과 멋,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설립한 전통주 홍보 공간이다. 지난 4월 강남에서 북촌으로 이전했다.
전통주갤러리는 방문객이 연간 10만여 명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다섯 주종(탁주, 약주, 증류주, 과실주, 기타 주류)의 500여 가지 전통주를 상설 전시한다. 우리술품평회 수상작, 찾아가는 양조장 제품, 대한민국 식품명인 술 제품, 품질인증 제품, 새롭게 소개되는 전통주 등이 포함된다. 더불어 월별 추천주, 계절별 우리술 등 다양한 특별기획전과 특별시음회를 운영한다.
전통주 시음회 중장년에게 ‘인기’
특히 전통주갤러리에서는 매일 상설시음회를 개최한다. 전문가가 선정한 이달의 술 5종을 무료로 시음할 수 있다. 매일 7차례 상설시음회가 진행되는데(2회는 영어로 운영), 한 회당 최대 6명이 함께한다. 소요 시간은 20~30분이다. 네이버 예약을 통해 신청 가능하다.
전통주 소믈리에가 시음회를 진행하며, 전통주 5종을 친절하게 소개한다. 각 전통주의 맛과 향, 특징은 물론 탄생 배경이나 얽힌 이야기도 들려준다. 전통주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어도 설명을 재밌게 들을 수 있다.
또 참석자 모두는 태블릿PC를 지원받아 각 술의 당도, 산미, 향, 색 농도 등을 평가하는 시음 노트를 작성한다. 시음하면서 ‘당도가 높다’, ‘산미가 강하다’ 등을 음미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집중도가 높아진다.
남선희 전통주갤러리 관장은 “코로나19 여파로 잠시 중단됐다가 4월부터 다시 시음회를 열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참여하시는 분들의 연령층은 다양하다. 사실 온라인 예약이 어르신들께는 어려운 일 같지만 생각보다 어르신의 참여율도 높다. 비율로 따지면 50대 이상 참여율은 15%에 이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전통주는 무엇일까. 남 관장은 “아무래도 막걸리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탁주를 즐기시는 것 같다. 요즘 나오는 탁주는 도수가 6%에서 12%로 맛도 도수도 다양하다. 그래도 역시 어르신은 전통적인 막걸리의 맛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진짜 술맛을 선호하는 분들은 고도주의 증류주를 찾기도 한다”고 말했다.
남선희 관장은 “예전에 비해 전통주의 종류와 맛, 그리고 개성이 다양해졌다”면서 우리술에 변화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2000종이 넘는 우리술이 유통된다고. 그러면서 “우리술은 알고 마시면 더욱 맛있다”며 양조장 투어나 와이너리 방문 등의 여행을 추천했다.
전통주는 현재 국내외로 관심을 끌고 있는데, 이러한 역사는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2006년 MBC 드라마 ‘환상의 커플’ 속 여주인공 한예슬이 막걸리를 많이 마신 것이 계기가 돼 해외에서 관심도가 높아졌다고.
남 관장은 “저는 우리술의 장점이자 단점이 로컬화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땅도 넓고 쌀도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막걸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충분히 조성됐다. 10년 후에는 미국 현지에서 만든 막걸리를 먹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면서 전통주의 세계화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STEP 2. 전통주 직접 만들어 먹자!
전통주를 어떻게 만든단 말인가. 엄두가 안 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전통주는 쌀, 누룩, 물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술이다. 전통주의 출발점 역시 ‘가양주’(家釀酒, 집에서 빚어 만드는 술)다.
일가일주, 즉 집집마다 빚던 독특한 술 문화의 다양성이 일제강점기 수탈과 주세법 등의 영향을 받아 사라졌으나, 이를 계승·발전시키려는 국가적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전통주갤러리뿐만 아니라 전통주 교육기관이 늘고 있다.
전통주 교육기관
전통주 교육과 관련된 사업은 2012년부터 시작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현재 ‘우리술 전문인력 양성기관’ 6곳과 ‘우리술 교육훈련기관’ 16곳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교육생에게는 국비 지원을 해준다.
우리술 전문인력 양성기관은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12조에 따라 우리술 산업을 선도해갈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6개월 이상)하기 위한 곳이다. 양조 관련 학과나 과정이 설치된 대학 또는 전문 연구소가 지정 대상이다.
우리술 교육훈련기관은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우리술 산업의 저변 확대와 건전한 술 문화 조성을 위한 교육훈련(6개월 미만)을 실시하는 곳으로, 적절한 시설 및 인력을 갖춘 기관 또는 단체가 대상이다.
‘한국가양주연구소’는 두 조건에 모두 속한다. 한국가양주연구소는 대표적인 우리술 교육기관으로 꼽히며, 수도권 지하철 2호선 방배역에서 5분 거리다. 전통주 만드는 법을 배우는 ‘우리술 빚기’ 교육을 하고, 전문가로 거듭나는 ‘전통주 소믈리에’, ‘한국술 최고지도자’ 과정 등이 있다.
삼해소주 만들어볼까?
서울의 전통주 아카데미로 삼해소주 공방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교육기관은 아니지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명인의 전통주를 만들어볼 수 있다.
삼해소주의 故 김택상 명인은 2017년 전통식품명인 제69호로 지정됐다. 고려시대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에 등장하는 ‘삼해(三亥)소주’ 제조 방식을 계승해온 것을 인정받았다.
삼해소주는 조선시대 사대부 사이에서 널리 음용되던 서울의 대표적인 소주다. 음력 정월 첫 돼지일(亥日) 해시(亥時)에 첫 술을 담근 다음, 36일 후 돼지일에 2차 덧술을 한다. 또 36일이 지난 후 3차 덧술을 한다. 이처럼 세 번 덧술을 쳐 술을 빚기 때문에 삼해주라는 이름이 생겼다. 술을 마시기까지 대략 100일이 걸려 백일주라고도 한다.
故 김택상 명인은 삼해소주 공방을 운영하면서 전통주를 알리고 제자 양성에 힘썼다. 고인이 떠난 후 김현종 대표가 삼해소주의 명맥을 잇고 있다. 김현종 대표 역시 아카데미 수업을 들으면서 삼해소주와 인연을 맺었다. 삼해소주 공방은 지난해 북촌에서 마포로 이전했다.
삼해소주 아카데미는 술을 만들기까지 약 5개월의 과정이 걸린다. 첫 번째 날은 밑술을 한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와서 밑술에다 1차 덧술을 한다. 덧술은 멥쌀로 고두밥을 지어서 밑술과 같이 섞는 과정이다. 덧술을 해야 발효가 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36일이 지나면 술이 익는데 바로 마시지 않고 2차 덧술을 한다. 2차 때는 누룩과 물, 그리고 1차 때와 다르게 찹쌀이 들어간다. 3차 덧술은 2차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한다”면서 “36일이 또 지나 숙성한다. 발효가 모두 끝난 이후에도 맑은 약주만 건져내 증류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삼해소주가 만들어지기까지 약 반년의 시간이 걸리는 것. 수강생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지정된 날에 참석하면 된다. 김현종 대표는 반년의 시간 동안 계속해서 술이 잘 익는지 확인하고 보살펴준다.
김 대표는 “삼해소주는 굉장히 복합적인 맛이 난다”면서 “수강생들이 자신이 담근 술이 잘 익었다면서 만족할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동안 수업을 거쳐간 사람만 5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김현종 대표는 “전통주 관련 종사자가 아니라 현업이 있고 취미 생활로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다. 요즘은 중장년층보다 20~30대 젊은이들이 수업을 많이 듣는 추세라고. 전통주 관련 사업을 계획하는 이들도 물론 있다.
김 대표는 “사실 저는 아카데미에 와서 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관심 분야가 같기 때문에 금세 친해진다. 수강생끼리 모여서 술도 마시곤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에너지를 얻어 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직접 삼해소주 아카데미 수업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강생들, 그리고 공방 사람들한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전통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 반죽을 빚고 술을 담그는 과정에 힘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고,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술을 즐기면서 만든다는 생각이다.
전통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나이가 많다고 겁내지 말고 전통주 교육기관의 문을 두드려보자.
막걸리 키트도 있지
아직 코로나19의 여파도 있고, 많은 사람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서 여유를 즐기면서 전통주를 만들어보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는 집에서 간편하게 전통주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막걸리 키트를 추천한다.
대표적으로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 키트가 있다. 키트에는 쌀가루, 누룩, 효모가 들어 있다. 1일 차에 술을 담그고, 2~4일 차에 술 익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탄산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하루에 한두 번씩 잘 섞어주면 된다. 5일 차에 술 거르는 과정까지 거치면 완성된다. 더불어 기호에 따라 재료를 추가해 자신만의 특별한 막걸리를 만들 수 있다.
막걸리 담다의 키트도 유명하다. 기본형부터 딸기, 바나나, 멜론까지 맛이 다양해서 취향에 따라 선택 가능하다. 해오름의 통곡물 현미 하우스 막걸리 키트는 물만 부어서 하루만 숙성하면 완성된다. 우리술방 막걸리 DIY도 물만 섞어주면 막걸리가 만들어진다. 막걸리 병이 고급스러워서 선물용으로 제격이다.
이승한 전 홈플러스 회장은 1970년 삼성그룹에 입사한 뒤 삼성물산을 거쳐 홈플러스의 대표이사로만 17년을 지낸 최장수 CEO다.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삶이 달려간다”고 말하며 77세의 나이에도 부단히 꿈을 꾸는 이 회장. 신간 ‘시선’에는 그가 경영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여섯 가지 방법이 담겼다.
서울 강남 선릉역 근처 어느 골목길. 북쌔즈(Book Says)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늑한 소파와 갓 구운 빵들이 눈에 띈다. 오른쪽 벽면과 2층 서가를 가득 메운 책은 덤이다. 전형적인 북카페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세련된 그랜드피아노와 웅장한 무대 장치, 천장의 화려한 조명 시설이 마치 ‘여기는 평범한 공간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 찾은 이들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곳의 주인은 이승한 전 홈플러스 회장이다.
2014년 대기업 회장직에서 물러나며 기업인으로서 전무후무한 족적을 남긴 그는 다음 해 넥스트앤파트너스(N&P) 그룹을 새롭게 설립했다. 현재 후배 기업가들을 위해 ‘살아 있는 경영’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서점, 카페, 공연장, 강연장을 합친 복합문화공간 북쌔즈를 3년 전부터 운영 중이다. 햇살이 가득 들어올 법한 큰 창, 책 매대, 의자 하나까지 이 회장이 직접 구성하고 디자인할 만큼 애정을 듬뿍 담았다.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
“북쌔즈는 일반 카페나 공연장처럼 뚜렷한 하나의 목적만 가진 기존의 공간과 다릅니다. 한 장소에 다양한 기능을 조화시켜 원 샷으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어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실 수는 있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을 수 있는 강연이 열릴까요? 저녁에는 자선 공연이나 무료 가족 상담 같은 나눔 활동이 이루어질까요? 또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기 힘들죠.”
실제로 북쌔즈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한 번에 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됐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 도서가 진열된 1층은 ‘감성의 책장’, 경영학 및 비즈니스 도서로 구성한 2층은 ‘이성의 책장’으로 총 1만여 권이 구비돼 있다. 커피나 차는 1, 2층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다. 금난새 지휘의 실내악 공연이 몇 차례 있었고, 영국의 유명 성악가 폴 포츠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최진석 서강대 교수의 ‘생각 혁명 경영자 과정’과 김형철 연세대 교수의 ‘지혜의 향연’ 등은 수시로 열린다.
치열했던 지난날을 내려놓고 편안한 삶을 영위하기는커녕, 그는 70대 후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 또다시 신생 기업의 대표가 됐다. 단순히 늙기(Getting Old)보다 성장(Growing Old)하고 싶어서였다. “체어맨(회장)이 대기업에서는 의자에 앉아서 지시하는 사람이라면, 작은 기업의 체어맨은 ‘의자를 들어 나르는 사람’이에요. 실제로 북쌔즈에서 공연이나 강연을 할 때 일손이 부족하면 나도 의자를 옮기듯 말입니다. 시선을 어떻게,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상상하고 탐구해야죠. 칠십 줄에 스타트업이라니, 좀 무모해 보이나요? 그래도 내 마음의 상태는 항상 청춘입니다.”
골목길이 중심이 되는 세상
2014년 이후 3~4년 사이에 선릉역 주변 뒷골목의 가게들은 거의 망하거나 주인이 바뀌었다. 망하지 않은 곳은 부동산 중개업소 네 곳뿐. 이 회장은 골목 상권이 죽게 된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꼽았다. 하나는 과도한 정책과 규제다. 길 양편에 펜스를 치거나 도로 중앙에 말뚝 블록을 설치한 탓에 사람들의 왕래가 끊겼다. 또 하나는 골목길의 문화적 특징이나 정체성의 부재다. 현재 선릉역 주변뿐 아니라 한국의 골목은 삼겹살, 국밥, 치킨 등 대부분 먹거리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그는 ‘사색의 길’, ‘친환경의 길’과 같이 테마가 있는 골목을 만들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대 사회로 올수록 우리의 삶은 개인이나 가족, 동네 중심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골목길은 우리 생활의 중심이자, 국부를 형성하는 기본이 됐죠. 걷고, 머물고, 즐기고 싶은 골목이 있으면 살기 좋은 동네가 될 것이고, 동네가 살면 도시와 국가가 차례로 살아날 테니까요.”
이 회장은 25년 동안 일하며 인연을 맺은 이 동네에 의미 있고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특히 주변 직장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공간 제공에 집중할 계획이다. “퇴근 후 술에 취해 정신없이 귀가하기보다, 배움의 기회를 누리고 그것에 관해 토론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향, 관점, 시선을 바꾸는 데 힘을 쏟는 거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져야 해요. 제 목표는 북쌔즈가 사람들을 자극하고 새로운 골목 문화에 영감을 주어 사회적 자산으로 영구히 남는 것입니다.”
어린왕자 (생텍쥐페리 저)
내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게 아니라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뱀을 그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보아뱀의 속을 그렸다. 어른들에겐 항상 설명을 해줘야만 한다.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저)
능력주의가 공공선인 사회에서 노력과 능력은 개개인의 부와 성공에 대한 알리바이가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세속적 성공을 이룬 삶은 겸양을 기를 필요가 없고 가난한 이들은 비난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린다.
세종처럼 (박현모 저)
‘소통하지 않는 정치는 이미 정치가 아니다’라고 보았던 세종은 설정된 목표에 왜 도달해야 하는지,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조만간 어떤 파국을 맞게 되는지를 상세하고 명확하게 일깨워가면서 함께 나아갔다.
앞으로 100년 (이언 골딘, 로버트 머가 저)
20세기 초 광고계의 중진이었던 프레드 바너드(Fred Barnard)는 “사진 한 장이 천 마디 말보다 낫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지도를 탐색할 때는 글자로 기록된 것을 봤을 때 놓쳤던 연결 관계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가 주거용 건축물에 일률적으로 적용해온 층고 규제를 없애기로 했다. 토지의 주요 용도를 규정하는 ‘용도지역’ 제도 또한 개편한다.
서울시는 이 내용을 담은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3일 발표했다. 도시기본계획이란 도시의 기본적인 공간 구조와 장기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계획으로서, 국토계획법에서 규정하는 도시의 최상위 법정 계획이다.
서울시는 이번 2040 계획안에서 기존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명시된 층고 기준을 삭제한다. 2014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 수립된 계획은 무분별한 돌출 경관을 방지할 목적으로 주거용 건축물의 높이를 ‘35층 이하’로 제한한 바 있다. 시는 이 같은 일률적인 높이 규제가 한강변 등의 스카이라인을 획일적으로 이끌었다고 봤다. 이에 ‘35층 높이 기준’을 삭제하고 개별 정비 계획 심의 단계에서 지역 여건에 맞게 층고를 허용해, 다채로운 건축이 가능한 스카이라인을 마련할 방침이다.
아울러 현행법상 기본 틀인 용도지역 체계도 전면 개편한다. 용도지역은 한 공간의 기능이 중복되지 않도록 땅의 용도를 정해 건물의 높이와 용적률 등을 규제하는 제도다. 서울 내 용도지역은 크게 주거·상업·공업·녹지지역으로 구분된다.
시는 이 제도가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뒤 지금까지 경직적으로 운용돼 복합적인 공간 구성에 제약이 된다고 보고, 이를 넘어서는 ‘비욘드 조닝’(Beyond Zoning)을 시도하기로 했다. 정부와 학계, 전문가 등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론화해 국토계획법 개정 등 법제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성장이 둔화된 3도심(서울도심·여의도·강남)은 기능을 고도화한다. 특히 서울 도심은 보존 중심의 규제와 정비 사업 제한으로 떨어진 활력을 되살리기 위해 정책 방향 재정립에 나선다. 이를 위해 남북 4대 축(광화문~시청 ‘국가중심축’, 인사동~명동 ‘역사문화관광축’, 세운지구 ‘남북녹지축’, DDP ‘복합문화축’)과 동서 방향의 ‘글로벌산업축’의 ‘4+1축’을 중심으로 서울 도심 전체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모든 게 멈춘 듯하지만 바람결에 흐르는 숲의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과 뚝 떨어진 듯한 고요함은 적적하기까지 하다. 서귀포 치유의 숲에 깃든 한낮의 햇살은 방문객에게 여유로움까지 준다. 적당히 거리두기를 하며 숲속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 온전히 자연에 맡기는 시간으로 이보다 편안한 곳이 있을지. 치유 인자가 가득한 편백 숲길과 삼나무 숲속을 내어주던 서귀포 치유의 숲이다.
올레길이나 둘레길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그 길을 걷기 위해 사람들은 나선다. 그렇다고 보통 5시간 이상 마냥 걷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 서귀포 치유의 숲은 무리하지 않고 꼬닥꼬닥(천천히를 뜻하는 제주어) 걸으며 숲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두 시간 남짓이면 편백과 삼나무의 피톤치드를 받으며 숲의 기운을 온몸 가득 담을 수 있다.
숲길은 총 11km 길이로 10개의 테마 길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에서 시작되는 약 1.9km의 ‘가멍오멍숲길’에서 나머지 9개의 길이 뻗어나간다. 그 길에 쉼터인 쉼팡이 군데군데 있어서 편백 의자에서 쉴 수도 있다. 피톤치드와 테르핀, 음이온 등이 발산되는 환경에 쉬면서 치유의 힘을 얻게 된다.
또한 산림치유지도사의 치유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예약만 하면 풍부한 숲 이야기와 명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자연에 대한 이해와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예약은 입장료만 내고 자유롭게 숲길을 걸으며 산책하는 느영나영 힐링숲 탐방 예약과, 해설사와 동행하는 세 시간 정도의 궤영숯굴보멍 코스 예약으로 구분되어 있다.
“지금 바람이 불고 있어서 숲길로 가면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숲속에 야자매트가 쭉 깔려 있어서 걷기 편할 겁니다. 천천히 15분쯤 걸으면 쉼팡이 나옵니다. 편백나무 숲인데 그쯤에서 쉬어가는 게 좋아요.” 산림치유지도사의 말이다.
큰길 옆의 숲으로 들어가면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좁은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가멍숲길이다. 중간쯤 가면 가베또롱숲길, 가멍오멍숲길이 나타난다. 요즘 길이 난 곳이라면 걷기 시합이라도 하는 양 그저 열심히 걷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이럴 때 걷다가 가만히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간간이 쉬어가는 게 좋다고 일러준다. 60년 된 편백나무 숲 쉼팡의 긴 편백나무 의자에 몸을 맡기고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계속 오르다 보면 가뿐하다는 뜻의 가베또롱숲길을 지난다. 걸으면서 드러나는 숲의 풍광에 감탄사를 멈출 수 없다. 숲속에선 맑은 새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잠깐 멈추어 두리번거리다 다시 걷다 보면 조선시대 국영목장의 울타리 담인 잣성길을 옆에 끼고 지나는 숲길이 나타난다. 벤조롱 치유숲길은 편백나무의 피톤치드가 상쾌하고 산뜻하다는 뜻의 길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각기 다른 숲을 걷는 듯한 느낌은 치유의 숲이 주는 매력이다. 각 숲길은 0.6~2km 내외의 길이로 조성되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숲길은 대체로 완만해서 오르는 동안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노약자는 물론이고 어린이와 함께하는 가족들의 나들이로도 문제없다. 잠수하던 해녀가 내뱉는 숨소리라 하는 숨비소리 치유숲길을 지나 오고생이길엔 돌이 많아서 더러 불편할 수도 있다. 오고생이는 있는 그대로라는 의미의 제주어로 돌길을 밟는 발걸음마다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나 역시 제주답다는 생각이 든다. 돌길이 주는 자연스러움과 고즈넉함이 보존된 오고생이 치유숲길을 나서면 눈앞에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원시림의 숲과 하늘과 바람과 햇살만으로 가득 찬 풍경, 청명하다. 숨통이 트이는 게 느껴진다.
이어서 가멍오멍숲길을 다 만나고 엄부랑숲길(‘엄청난, 큰’이라는 뜻)을 지나 힐링센터까지 가면서 100년 된 거대한 편백과 삼나무 군락지를 만나게 된다. 잘생긴 삼나무 숲의 위용이 압도한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 찬 숲이다. 피톤치드를 내뿜는 길을 걸으며 오감을 열고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편안하다. 이쯤에서 비로소 숲의 신비로움에 스며든 자신을 보게 된다. 순수한 자연 속에서 그 숲의 신령스러움에 감싸이는 듯한 기분이다. 피톤치드를 만끽하며 자연이 주는 위안으로 뭉클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숲 쪽으로는 군데군데 작은 오솔길이 있어서 숲속으로 들어가 파묻혀봐도 좋을 듯하다. 옆으로는 2km 정도의 하천이 흐르고 있다.
다 오른 곳에 산도록(‘시원한’이란 의미의 제주어) 치유숲길이 있다. 숲속 야외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있고, 참여자들의 맨발 족욕이나 산림교육도 이루어지는 곳이다. 명상과 복식호흡을 하며 차분한 시간에 잠겨보는 것도 좋다. 산책로에는 치유의 샘이 흐르고, 숲길 쪽으로 한참 걸으며 시오름 정상에 올라 한라산을 볼 수도 있다. 상쾌함의 최고조다. 경관 좋은 하늘바라기 숲길을 걸어보는 여유도 가져볼 만하다. 그러고는 아무 데나 멍하니 걸터앉아 숲이 일렁이며 내는 바람 소리에 고단했던 세상의 먼지들이 씻겨나가는 듯한 경험을 할 것이다.
숲길 끄트머리에 위치한 오소록 숲 주변에 자리 잡은 힐링센터는 주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다. 건강측정을 하거나 다담(茶啖)을 나누며 마무리하는 공간이다. 코로나 시국이라 때때로 개장이 불확실하므로 미리 확인해보는 게 좋다.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에 자리한 치유의 숲은 해발 320~760m에 위치한다. 사람이 가장 쾌적하다고 느끼는 높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말을 키우던 국영목장이었던 이곳에 100년 전쯤 화전민들이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현재 엄부랑 숲에는 사람이 살았던 집터가 있다. 그들마저 떠난 후 척박했던 삶의 흔적이 사라지고 덤불과 숲으로 뒤덮인 것이다. 그런 숲의 생태계를 그대로 보전해 지금은 편백과 삼나무 군락으로 치유의 숲이 되었다. 한라산의 다양한 식생과 조류, 야생동물들과 나무들이 고루 분포되어 있어 산림의 환경 요소를 활용할 수 있는 복합 휴양형 치유 공간인 셈이다. 하루 적정한 탐방객 수를 제한하고 있으며, 무장애 데크 시설 덕분에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2019년과 2020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하는 ‘열린 관광지’로도 지정되었다.
차롱 바구니에 담긴 제주의 로컬푸드
숲을 내려오면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차롱밥상이 기다린다. 차롱은 제주에서 음식을 담기 위해 대나무로 만들어 사용하던 제주의 전통 바구니다. 주로 밭에 나갈 때나 제사음식 담을 때 통풍이 잘 되어 신선하게 음식을 보관하던 용도였다.
차롱 도시락은 호근마을 주민들이 숲과 마을의 상생을 꿈꾸며 프로그램에 접목했다. 제주에서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 당일 만든 도시락으로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각자 배정된 힐링하우스의 편백 테이블에 차롱치유밥상이 차려져 있다. 즉석에서 담아주는 따끈한 국과 김치, 그리고 동고량이라는 밥 차롱 바구니에는 한라산 표고버섯전, 빙떡, 브로콜리, 채소와 과일꽂이, 톳 주먹밥, 곰치 쌈밥, 고구마 등 푸짐하면서도 정성 가득 담긴 건강한 음식이 가득 차 있다. 제주의 음식문화와 향토의 맛을 체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서귀포 치유의 숲
•주소: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 산 4
•문의처: 064-760-3067
•운영시간: 평일 매일 08:00~17:00 (하절기) 4~10월 18시, 매일 09:00~16:00 (동절기) 11~3월 17시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 600원
•산림치유 프로그램: 성인 2000원, 어린이·청소년 1000원
•차롱치유밥상: 3일 전 예약해야 가능. 1인용 차롱치유밥상 이용금액은 1만 7000원. 계절이나 식재료 또는 행사에 따라 가격 변동이 있다. 064-760-3067〜8
산속등대 복합문화공간은 미술 작품 감상과 재생건축 공간의 멋스러움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재생 공간의 태와 결을 음미하기에 충분하다. 보잘것없는 폐공장을 볼 것 많은 문화 공간으로 변신시켰다는 점에서는 진취적 생각이 집적된 곳이다. 설립자이자 운영 대표인 원태연(42) 씨는 기업인이다. 그는 다년간 마땅한 터를 찾다가 이곳을 점찍었다. 그가 주도해 마무리한 재생 작업은 호평을 받았다. 개관한 해인 2019년에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은 것. 하지만 개관 이후 2년여의 시간은 시련의 연속이었단다.
“개관 넉 달 뒤 코로나19가 들이닥치면서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복병을 만난 셈이다. 휴관이 잦았고, 문을 열더라도 찾아오는 이가 드물어 힘겨웠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결 단단한 정신으로 기초를 다질 수 있었던 거다.”
사람들은 흔히 미술관 문턱이 높을 것으로 예단한다. 미술 감상을 지루한 일로 여기기도. 사실 신바람 날 수도 있는 게 미술관인데.
“그간의 경험을 통해 미술관 운영이 얼마나 어려운 사업인지 충분히 실감했다. 관람객이 오지 않으면 무엇보다 비용 문제가 발생해 존립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국내 복합문화공간이나 사립미술관들이 흔히 난항을 겪더라.
“나름의 사전 리서치를 했는데 다들 말렸다. 애초 타깃은 미술 작품 향유 욕구를 가진 사람들, 즉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들이자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열에 아홉은 미술관으로 자리 잡기 어렵다고 조언했다.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라는 얘기였다.”
어떻게 운영비 문제를 해소하고 있나?
“미술관만 믿어서는 안 되기에 처음부터 전략을 달리했다. 사람들이 쉽게 찾아들어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와, 아이들 대상의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적극 가동해 운용의 묘를 살리는 걸 기본 방안으로 삼은 것이다. 즉 미술관, 카페, 문화 체험 프로그램, 이 세 가지에 동등한 무게를 두고 지속성을 도모해왔다. 이는 상당히 유효한 대안이라 판단한다.”
미술관을 선두에 두고 레이스를 하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더라는 얘기다. 미술관을 주력으로 삼고자 했던 의도에 스스로 제동을 건 것 같다.
미술관 운영이 어렵다지만 똑똑한 콘셉트를 가동할 경우엔 다르다. 미술관을 찾아주지 않는다고 탓할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전시 작품이 재미있고 품질이 뛰어나면 달려오지 않을까?
“악조건 속에서도 지난 2년간 다수의 전시회를 열었다. 그러나 반응은 기대 이하였다. 질적으로 좋은 전시회도 썰렁하더라. 작품의 퀄리티 여부를 중시하는 관람객은 전체의 10% 미만에 불과한 것 같았다. 좋은 기획전에 즉각 호응이 나타나는 추세를 감지했다면 목숨 걸고 좋은 전시회 기획에 나섰을 것이다. 미술관 운영상의 역량 강화, 내부 정비의 필요성도 물론 외면할 수 없는 숙제이긴 하다. 지금은 숨고르기를 하는 중이다.”
상상력을 돋우는 재생 공간의 미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은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국내 미술관 문화의 열악성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이를 깰 책임은 미술관 운영자들에게도 있을 테지만.
버려진 공장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흉물로 나동그라진 과거의 제지공장을 볼 것 많은 문화 공간으로 되살려냈으니까. 전북 완주군 소양면 야산 아래에 있는 산속등대 복합문화공간(이하 ‘산속등대’)이다. 낡고 닳은 폐허를 딛고 일어선 공간이다. 일컬어 ‘재생건축 공간’이다. 재생건축은 요즘 건축계의 화두다. 여기저기서 유행하고 있다. 무자비한 시간의 흐름 속에 마침내 쓸모를 잃고 덧없는 폐허로 붕괴한 공간에 문화를, 예술을, 그리고 꿈과 상상을 부여하는 일. 이는 오롯이 값지다. 이미 스러진 꽃을 되살려내는 것처럼 심지어 몽환적이다.
‘산속등대’의 부지는 8000여 평에 달한다. 이 너른 부지 안에 폐허를 자양으로 부활한 물상과 디자인 요소들이 우후죽순처럼 즐비하다. 중심축은 미술관이다. 관점과 시야를 확장할 경우 공간 전체가 미술이거나 미술관이다. 폐허의 뒤숭숭함과 허무를 오브제로 삼아 예술을 입혔으니까. 과거의 웅장하고 단단했던 것들이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지면서 남긴 잔해와 잔재들을 자못 날랜 솜씨로 반죽해 내향적 울림이 있는 공간을 구현했다. 신축 건물은 도저히 얻어 걸칠 수 없는 시간의 족적과 결이 아른거리는 게 아닌가. 지나간 것들, 흘러간 것들, 너절한 것들, 시든 것들에서도 이렇게 잘만 끄집어내면 자본만으로 빚어낼 수 없는 내면성이 우러나온다. 재생 공간만이 발할 수 있는 언어와 표정이 고여 있으니 재생이란 말 그대로 창의의 산물이자 생성의 동의어다.
재생한 건축과 공간에 들어선 미술관은 이제 낯설지 않다. 국내 곳곳에 등장했으니까. 해외에서는 더욱 활성화됐다. 1986년에 개관한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은 수명을 다한 철도역을 재생해 입주했다. 금세기 가장 성공한 미술관으로 꼽히는 런던의 테이트모던미술관은 별 볼일 없던 폐 화력발전소를 뜯어고쳐 들어앉았다. 이 미술관들은 세계적 명소로 떠오르면서 재생건축과 미술관의 결합으로 절묘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산속등대’가 출항한 건 2019년 5월이다. 만 2년이 지났을 뿐이니 이제야 걸음마 단계를 벗어났다. 불운하기론 코로나19의 창궐에 따른 고난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배를 띄우자마자 으르렁거리는 폭풍 속에 던져진 것이다. 신생의 기쁨과 기세로 활보하기 이전에 가혹한 담금질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가. 널따란 터에 꾸린 갖가지 볼거리, 그리고 중의적 미학이 가미된 공간들이 이색적이지만 어찌할 수 없는 고즈넉함이 서려 있다. 그러나 여느 미술관들에 비하면 그나마 방문객이 많은 편이라니 다행스럽다.
‘산속등대’의 랜드마크, 등대
이곳에 들어서면 맨 먼저 ‘기억의 파사드’가 눈에 들어온다. 빨간 벽돌로 쌓은 삼각형 모양의 구조물 세 개를 병치한 파사드다. 고색창연한 사물들이 넘치는 가운데 그 새뜻한 형상으로 도드라지는 이 벽은 아마도 ‘기억에로의 초대장’이다. “이 문을 들어섬으로써 이제 당신의 기억은 과거를 유영하게 될 것입니다!” ‘기억의 파사드’가 하는 말이 이렇다. 폐공장의 잔해에서 과거 산업공장의 무상한 흥망성쇠 드라마를 유추하라고, 삶의 허무와 다르지 않은 공장의 쓸쓸한 잔해를 더듬어보라고 한다. 풀을 끌어안고 으스러진 공장의 주춧돌에서 끝내 거머쥘 수 있는 시간과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느껴보라고, 인생 역시 몇 점의 기억만 남기고 매순간 허공으로 흩어진다는 걸 알아보라고 한다. 파사드가 전하는 얘기가 그렇다.
저기 저 뒤편엔 돌올하게 치솟은 게 하나 있다. 제지공장 시절의 굴뚝으로 높이가 33m다. 설립자는 이 굴뚝을 놓고 생각이 많았다더라. 저 높고 우람한 덩어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그는 숙고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굴뚝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이냐고. 돌아온 답은 하나같이 등대가 연상된다는 거였으며, 설립자는 이를 채택했다. 공장의 기계들이 기운차게 잘 돌아갔던 과거엔 허연 연기를 뭉게구름처럼 뿜어낸 굴뚝의 이미지를 변용, 문화와 예술의 불을 밝히는 등대로 상징화하기로 한 것. 온갖 잡동사니와 아귀다툼이 난무하는 속세에 한 송이 문화의 꽃을 피우겠다는 게 이 문화 공간의 지향점이다. 그 옹골찬 포부를 등대라는 거대한 물상으로 함축해 표출한 것이다. 빨간 칠을 입어 한결 돋보이는 등대는 이곳의 랜드마크로 부상했다.
미술관 건물을 볼까. ‘산속등대’의 구조물 대다수가 그렇듯 이 역시 재생건축이다. 구슬픈 소리를 내는 법 없이 그저 외로이 무너져가는 폐건축물들 중 그나마 상태가 가장 나은 건물에 구조 보강을 해 미술관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 털어낼 건 털어내고 놔둘 건 놔두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혼성 교합이다. 과거와 현재의 합작으로 미래를 도모하는 건물이다. 전시실에선 장안순의 개인전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가 펼쳐지고 있다.
미술관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 우선은 매력적인 건축물로 사람들의 구미를 동하게 해야 한다. 건축 자체를 작품으로 흐뭇하게 즐길 만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역시 전시의 품질이다. 전시 기획의 개성과 지향을 딱 부러지게 노정한 콘텐츠를 보유한 미술관이어야 미술계는 물론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살 수 있다. 이는 돌을 부술 강펀치를 구사하는 복서만이 살아남는 링 위의 생리와 비슷하다. 이게 어지간한 실력으로 구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점에서 이곳의 설립자는 고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는 일단 부지런히 전시회를 전개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매년 전시회를 빈번히 열었다. 기후 문제나 등대를 주제로 한 기획전은 미술관의 아이덴티티를 모색하는 차원의 전람회들이었다.
‘산속등대’는 미술관을 가슴에 품은 복합문화공간이다. 미술 작품 감상으로 지겨운 삶의 우수와 권태를 다독이라고, 그러고도 미진한 게 있다면 재생 공간 곳곳의 세련된 설치와 디자인과 오락적 요소들을 즐겨 기분을 돋우라고 만들었다. 창밖의 경관을 즐기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슨슨카페, 대형 고래 조형물을 설치한 고래 놀이터, 기존 폐수처리장을 재생해 콜로세움을 형상화한 야외 공연장, 아이들의 문화예술 체험 공간인 어뮤즈월드, 별빛 광장과 별빛 동산 등 별별 이색과 이채가 줄줄이 이어진다. 그러나 뭔가 아쉽다. 터의 일부를 빼곡히 채운 컨테이너 박스들의 건조한 품새가 재생 공간의 고적하면서도 유려한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해서인가? 그렇더라도 진귀한 문화 공간이다. 버림받은 흉물에 빛을, 낡고 낡은 사물들에 생명을 주입했으니까. 갈 길이 멀 테지만, 폐허를 딛고 일어선 탄성을 보루로 튀어오를 수 있겠다.
개항 이후 인천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문화와 유행을 선도했던 신포동. 지금은 구도심이 된 이곳 신포동에 30여 년간 자리를 지키며 인천시민의 지친 하루를 위로해주는 LP 카페 ‘흐르는 물’이 있다. 따뜻한 LP 음악 사이로 손님 한명 한명과 담백하면서도 다정한 인사를 나누는 안원섭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LP 음반과 통기타, 오래된 시집들과 빛바랜 사진들. 가게 내부엔 주인장의 취향과 그가 살아온 삶의 자취가 잔뜩 묻어난다. 안원섭 대표는 유랑극단 단원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음악을 접하고 즐겼다. 대학에서는 건축을 전공한 그가 29세의 나이에 LP 카페를 차리게 된 이유다.
예술하는 청년들의 사랑방
음악만큼이나 ‘시’를 좋아했던 안 대표는 학창 시절부터 백일장이나 창작문예대회에서 자주 입상할 정도로 예술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남달랐다. 청년이 되어서는 직접 쓴 시에 통기타로 음을 입혀 노래를 부르고 작은 공연도 열곤 했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음악과 시를 향유하면서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은 마음에 1989년 1월, 테이블 여섯 개 들어가는 13평 남짓의 첫 번째 가게를 이곳 신포동에 오픈했다. “지금은 신포동이 구도심이 됐지만, 개항 직후에는 서울보다 신문물이 빨리 들어오고 관공서도 전부 위치했던 핫한 도심이었다”라며 “민감한 시기인 청소년·청년기를 이곳에서 보내면서 음악·패션 등 다양한 문화를 접했다”라고 설명했다.
상호인 ‘흐르는 물’은 정희성 시인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흐르는 것이 어찌 물뿐이랴’라는 구절은 왠지 모르게 그의 마음을 울렸다. “뒹구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듯이 흐르는 물은 썩지 않거든요. 세상은 흐르는 물과 같아요. 그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게 법이에요. 노자의 사상 중 ‘상선약수’도 있잖아요. 이게 진리거든요.”
시적인 이름만큼이나 낭만적인 공간이다. 가게 오픈 초기, 음악과 시를 사랑하는 젊은 사장이 운영하는 이 가게에 예술을 사랑하는 인천 지역 청년들이 자주 찾아왔다. 화가, 작가, 음악가, 시인 등 다양한 예술가들의 교류와 활동의 전당이었다. 손님들과 밤새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날도 많았고, 술 한잔에 예술과 삶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도 나누며 청춘을 함께했다. 돈 없는 예술가들에게는 외상도 망설임 없이 해줬다. 시인에게는 커피값 대신 시집을, 화가에게는 술값 대신 그림을 받기도 했다. “그때는 그냥 가게에 돈통 하나 놓고 알아서 넣고 가시라고 했어요. 물감 살 돈도 없던 전업 화가 손님한테 어떻게 돈을 받아요. 그냥 ‘나중에 많이 벌면 주세요’ 했죠. 다 내 선배고 후배인데 술 한잔 베푸는 거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지금도 예술가들은 이곳을 찾는다. 공짜로 음악과 술을 즐긴 손님들은 이내 미술 작품이나 시집을 들고 다시 찾아온다.
규모가 큰 가게는 아니었지만 예술가들이 찾았던 낭만적인 공간이었던 만큼 차츰 이름을 알렸고, ‘타악기의 대가’ 김대환, ‘들국화’의 조덕환, ‘포크의 전설’ 양병집 등 7080 가요계의 전설적인 음악인들의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안 대표는 “이 작은 가게에서 한국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의 공연을 진행할 수 있어 매우 영광스러웠다”며 “특히 존경했던 故 김대환 선생님의 연주를 ‘흐르는 물’에서 들을 수 있었던 건 정말 감사하고 명예로운 일이었다”라고 설명했다.
LP 음반의 따뜻한 감성을 느끼는 곳
‘흐르는 물’에는 외국 팝송, 포크, 블루스, 재즈, 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LP 음악이 흐른다. 매일매일 그날의 분위기, 날씨 등에 따라 어울리는 음악을 재생하고, 손님들의 신청곡에 따라 음악이 바뀌기도 한다. 5000장이 넘는 LP 음반을 보유하고 있는 안 대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내 소원은 만 장을 모으는 거였는데 어렵게 됐죠. 원체 생산되지 않으니까 구매할 수가 없는 거예요.”
재생 목록을 만들어놓으면 연이어 노래가 나오는 음원과 달리 LP 음반은 계속해서 디스크를 갈아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실제로 안 대표는 인터뷰 중에도 흐르는 음악에서 관심을 뗄 수 없었다. 노래가 끊임없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음악이 끝나기 전에 다음 디스크로 바로 바꿔줘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편안하고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지만 안 대표는 LP 음반을 고집하며 LP 카페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안 대표는 다양한 비유를 통해 LP 음반만의 매력을 설명했다. “요즘 우리는 정화된 생수를 많이 마시지만, 옛날에는 정수기가 없어서 누룽지 먹을 때 나오는 숭늉을 많이 먹었거든요. 그 후에는 보리차를 끓여 먹었고요. CD나 MR은 정화된 생수예요. 그저 깔끔하죠. 하지만 숭늉이나 보리차를 생각해보세요. 가끔 건더기도 나오고 구수하잖아요, 고향 집의 엄마 품처럼. LP는 깔끔한 소리를 내지는 않아도 마음에 따뜻한 울림을 줘요.”
그 따뜻한 울림을 직접 느껴본 시니어 세대는 물론, 최근 ‘뉴트로’의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도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어 이곳을 찾는다. “한번은 20대 청년이 산울림 레코드판을 들고 왔어요. 이 음악 듣고 싶다고. 그래서 내가 ‘예쁘다’라고 했어요. 그 사람의 청춘도 예쁘지만 제대로 경험해보지도 못한 LP 음악을 듣고 싶다고 이곳을 찾아온 행위 자체가요.”
‘백년가게’로 지정된 최초의 카페
전국에 현존하는 LP 카페는 다수 있지만, 한 주인이 30년 넘게 운영한 카페는 ‘흐르는 물’뿐이다. 신포동에서 30년 넘게 자리를 지킨 동네의 터줏대감이지만, 신포동 내에서 자리를 네 번이나 옮겼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동안 색을 잃지 않고 가게를 일궈오니, 젊음을 함께한 단골손님들이 이제는 자식 혹은 제자들을 데리고 찾아온다.
이곳은 음악과 커피·술을 즐길 수 있는 음악 카페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진행되는 복합문화공간이기도 하다. 공연은 물론 출판기념회, 그림 및 사진 전시회 등이 소소하게 열린다. 오랜 역사와 함께 풍부한 문화를 담고 있는 이 공간은 카페로서 전국 최초로 지정된 ‘백년가게’가 되었다. 백년가게는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의 가게를 말한다.
안 대표는 30년 넘는 긴 시간 동안 가게에서 겪은 수많은 에피소드 중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로 꼽았다. “30주년 된 해에 8일 동안 릴레이 공연을 했어요. 8일째 되는 공연 마지막 날, 인천시립합창단의 소프라노 백혜숙 선생 팀이 와서 공연을 했는데, 그들이 손님들과 함께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짠 거예요. 30명의 손님이 장미꽃 한 송이씩 저랑 제 아내한테 나눠줘서 30주년 기념 30송이의 장미꽃을 선물받았어요. 너무 감사했죠. 감정이 벅차올라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우리 손님들한테 큰절도 했어요.”
손님들의 공간을 지켜주는 ‘소사’
주인장에게 이 공간은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안 대표는 “이 가게가 내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며 “찾아주시는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과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게를 30년 넘게 운영할 수 있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저 이곳을 관리하고 지키는 ‘소사’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난 그냥 소사예요. 학교에 상주하면서 잡일을 도맡아 하는 관리자를 소사라고 부르잖아요.”
이곳을 찾아주는 이들에게 보답하는 일은 지친 하루 일과를 끝내고 온 손님들이 편히 쉬다 갈 수 있도록 원하는 음악을 틀어주고 음식을 내어드리는 것뿐이다. 실제로 안 대표는 단골손님들의 18번 곡을 알아서 틀어주곤 했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정신이 온전하고 사지가 멀쩡하면 언제까지라도 우리 손님들을 위해 음악을 틀고 싶어요.”
광주 동구에 위치한 ‘충장로’는 옛 모습을 간직한 보기 드문 상권이다. 현대적으로 개발된 신도시가 각광받는 요즘, 충장로는 쇠퇴한 도심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광주 시내’ 하면 여전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충장로. 이곳에는 86년간 자리를 지킨 ‘광주극장’이 있다. 고화질 사진 대신 손그림 영화 포스터, 키오스크 대신 사람이 발권하는 매표소, 거대한 필름 영사기와 빨간색 벨벳 의자까지. 광주극장의 곳곳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자 예술영화전용관인 이곳 광주극장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광주극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독점한 지역 문화계 상황에 맞서 조선인의 자본으로 설립, 운영된 호남 지역 최초의 극장이다. 광주극장이 개관한 1935년 10월 1일은 광주의 인구가 10만 명이 넘어 광주읍에서 광주시로 승격한 날이기도 하다.
광주의 빛과 그림자를 동행해온 단관극장
그만큼 많은 광주시민의 축하 속에서 개관했으며, 광주의 성장과 민족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25년째 광주극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형수 이사는 “1930년대를 생각해보면 1250명 수용 규모의 극장 건물을 조선인이 세웠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겠냐”라며 “당시 광주극장은 광주의 랜드마크였다”라고 설명했다.
일본인이 설립한 극장들은 일본 영화를 주로 상영하던 것에 반해, 광주극장은 조선인을 위한 문화공간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당시 극장 외에 시민회관이나 공연장 등 문화를 향유할 공간이 없어 지역의 모든 문화행사는 광주극장에서 진행됐다. 영화는 물론이고 한국 고유의 창극, 국극 등의 공연을 비롯해 판소리, 연주회, 그리고 예술대학의 졸업발표회까지 이곳에서 열리며 광주 지역의 다채로운 문화공간으로 기능했다.
이외에도 일본인의 눈을 피해 조선인들끼리 응집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다양한 목적으로 집회의 장이 되기도 했다.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 메달을 따온 선수들의 환영회도 암암리에 진행됐고, 해방되던 해에는 해방 축하대공연도 광주극장에서 열렸다. 김 이사는 “광주극장의 역사를 들어보면 극장이란 공간이 참 다이내믹하다”라며 “한 편의 영화와 같이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극장이다”라고 설명했다.
1968년 1월 큰 화재로 건물 전체가 전소되면서 광주극장은 첫 번째 위기를 맞았다. TV가 보급되던 1960년대 후반, 극장 산업이 크게 주춤했던 터라 극장을 접으라는 주위의 만류가 많았다. 하지만 당시 광주극장을 운영하던 설립자의 아들 최동복 씨는 아버지의 유지를 저버릴 수 없다며 극장을 개축해 같은 해 10월 다시 운영하기 시작했다. 외관은 달라졌지만 더 튼튼한 건물을 세울 수 있었고, 1935년에 새긴 석각은 다행히 화재를 면해 건물 상단에 다시 세웠다. 이 석각은 광주극장의 상징이 되었다.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1980년 5월엔 광주의 아픔도 함께했다. 광주시민들은 그들에게 가해진 무차별 폭격을 피해 광주극장으로 숨어들었다. 해방 이후 벌어진 잔인한 사태에 광주극장은 다시 한번 시민들을 보호했다.
독립예술영화로 관객과 호흡
광주와 오랜 역사를 공유하며 시민들의 복합문화공간 역할을 해오던 광주극장은 2000년대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위기를 맞이했다. 기존의 단관극장과 달리 복수 영화를 동시에 상영하고, 첨단 시설로 영화 감상의 질을 제고하는 ‘멀티플렉스’의 등장은 영화 산업의 성장과 함께 자본에 의해 극장이 운영되는 변화를 가져왔다. 단관극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고, 잘 만든 한국 영화들이 극장에서 대우받지 못하고 상영 기간마저 보장받지 못한 채 내려가는 경우도 다수였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낀 광주극장은 2000년부터 광주에서 개봉되지 않은 영화를 골라 심야에 상영하는 ‘레이트쇼’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등 뛰어난 작품성에도 주목받지 못한 영화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독립영화의 유통이 어려워진 구조적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영화진흥위원회는 2003년 ‘예술영화전용관’ 사업을 실시했고, 광주극장은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선정되어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세상에서 극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여러 가지다. 김 이사는 “다채로운 영화를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 독립예술영화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는 것 전부 극장의 역할이다”라며 “광주극장은 대중성은 부족해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극장이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길이었다. 상업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예술영화전용관은 보조금 없이 입장 수익만으로는 극장 유지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광주극장은 관람료도 매우 싼 편이다. 주말이면 1만 원이 훌쩍 넘는 멀티플렉스의 관람료에 비해, 광주극장의 관람료는 주말, 평일, 시간대에 상관없이 8000원이다. 65세 이상 노인은 5000원에 영화를 볼 수 있다. 물가가 크게 오른 최근 10년 동안 변동이 없는 가격이다. 관객이 많은 편도 아니다. 하루 관객이 몇 명 정도 되냐는 질문에 김 이사는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가 활개를 치는 코로나 시국에도 극장에 발걸음해주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라며 “독립예술영화를 통해 시민들의 취향과 생각을 공유하고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의 말처럼 광주극장은 이곳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애정으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광주극장은 입장 수익과 예술진흥위원회 사업 보조금, 그리고 440여 명의 후원자가 매달 1만 원 이상씩 기부하는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말이다.
상영할 영화가 마땅히 없었던 예술영화전용관 사업 초창기와는 달리, 지금은 관객들도 다양한 영화를 보고자 하는 니즈가 있어 독립예술영화를 수입하는 배급사, 만드는 제작사도 다양화됐다. 광주극장은 이왕이면 멀티플렉스에서 소외된 영화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매년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예술성을 인정받는 영화들이 나오는데 그런 영화들조차 생각보다 접근성 좋게 볼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광주극장은 이렇게 작품성이 뛰어남에도, 대중성이 떨어지고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한 영화들을 적극적으로 상영하고 있다.
광주극장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작년부터는 젊은 세대에게 광주극장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기념품을 제작·판매한다. 주로 광주극장에 애정을 가진 광주시민 작가들과 협업하여 광주극장의 역사를 아카이빙하고 옛 디자인을 활용해 스티커, 포스터, 에코백 등 기념품을 만들었다. 광주극장의 오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도 판매 중이다. 김 이사는 “극장의 미래를 위해서는 젊은 관객이 필요한데, 기념품은 이들에게 극장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극장의 역사가 쌓이니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해 정체성을 표출할 수 있어 좋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극장 옆 골목을 활용해 문화예술 공간으로서의 정체성도 확장했다. 흉흉했던 골목길에 광주의 극장들과 영화문화사를 볼 수 있는 ‘메모리 월’ 등을 설치해 문화와 역사가 있는 골목길로 탈바꿈하고, ‘영화가 흐르는 골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골목이 정비되니 인문학 서점, 독립기획자들의 갤러리도 생겨났다. 김 이사는 “젊은 기획자들이 들어옴으로써 앞으로 더 특색 있는 문화기획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이런 문화자원들이 몰려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충장로를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곳, 광주극장
한때는 광주의 자랑스러운 랜드마크였던 광주극장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그저 낡은 건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누가 광주극장의 가치를 알아줄까’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한결같이 광주시민들의 곁을 지켜오고 있다. 그 세월이 긴 만큼 소년·소녀 시절부터 40~50년 동안 광주극장을 애용하신 할머니, 할아버지 단골손님들도 극장을 찾는다. 이들에게 광주극장은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이 충장로 5가를 지키는 반가운 공간이다.
김 이사 역시 광주극장을 사랑하는 시민 중 한 명이다. 그는 사원으로 입사해 이사직에 오르기까지 25년을 광주극장과 함께하고 있다. 그 25년에는 멀티플렉스가 들어서며 극장이 위기에 처한 순간부터 예술영화전용관으로서 정체성을 키워오기까지 광주극장의 역사와 그의 청춘이 함께 맞물려 있다. 김 이사는 “일을 하면서 힘들 때는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극장에서 상영되는 많은 영화를 보면서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내가 느낀 영화의 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라며 살짝 웃었다.
광주극장에 대해 알면 알수록 광주극장이라는 공간과 극장을 사랑하는 시민들 간의 따뜻한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의 끊임없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잔잔하게,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는 극장. 그리고 노후한 극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변함없는 애정으로 극장을 찾는 지역시민들. 이들의 호흡이 광주극장에 쌓인 오랜 시간을 함께 지켜가고 있다. 올해 86주년을 맞은 광주극장에 90주년, 100주년이라는 새로운 역사가 기다리고 있다.
●Exhibition
◇IN TO THE WILD - 이바 트린쿠나이테 개인전
일정 2022년 1월 8일까지 장소 ART Corner H
발트 3국 아트 신에 등장한 리투아니아 작가 이바 트린쿠나이테(leva Trinkunaite). 그의 개인전 ‘IN TO THE WILD’(인 투 더 와일드)가 햇빛담요재단의 복합문화예술공간 ‘Art Corner H’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리투아니아 루벤 아트 파운데이션(Lewben Art Foundation)의 전폭적인 지지로 성사됐다.
이바 트린쿠나이테는 동물과 자연 그리고 인간 사이의 복잡다단한 관계성을 평면 회화 속에서 조망한다. 작가는 인간과 동물의 생태계적 위치 불평등에 주목했다.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자연이 아닌 자연과 동물이 주체가 되어 인간을 응시하는 듯한 눈빛을 작품에 표현해냈다.
이바 트린쿠나이테는 유럽 신진작가들의 회화 연대기로 평가받는 ‘Young Painter Prize’에서 입상한 바 있으며, 발트 국가 특유의 독특한 정서를 담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신작 총 13점이 전시되며, 전시 수익금은 보호종료아동의 한 끼를 위한 ‘밥집 알로’의 식사비로 기부된다.
◇ 한글, 공감각을 깨우다
일정 12월 23일까지 장소 사비나미술관
이번 전시의 부제는 ‘눈, 코, 귀, 입, 몸으로 느끼는 우리말’이다. 13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한글의 소리, 형태, 구조 등을 다각도로 탐구해 한글을 다양한 형식의 시각예술로 구현했다. 특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문자 중 가장 창의적이고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우리 고유의 문자인 한글의 공감각적 요소에 주목했다.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총 47점이 소개된다. 오감을 활용해 작품을 느끼고 체험하면서 관객은 즐겁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Book
◇플라멩코 추는 남자(허태연·다산책방)
올해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허태연 작가의 ‘플라멩코 추는 남자’가 장편으로 출간됐다. 은희경, 전성태, 이기호, 편혜영, 백가흠 등 한국 문학 중심에 있는 소설가 심사위원 전원에게 고른 지지를 받은 작품이다. 심사위원회는 “코로나19 시국에 맞는 따뜻한 작품이며, 가독성이 매우 좋다”고 호평했다.
제목만 보면 청춘의 이야기일 것 같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은 67세의 허남훈이다. 허남훈은 실제 허태연 작가의 아버지 이름이다. 허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 “1997년 겨울,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다. 이야기 속에서라도 그분이 살아 계시길 바라며 아버지의 이름을 주인공에게 줬다”고 말했다.
남훈은 26년 동안 굴착기를 운전하며 반평생을 살았다. 마침내 은퇴를 결심한 그는 자신의 중고 굴착기를 거래하기 위해서 한 청년을 만나게 되고, 소설은 시작된다. 그러나 자신의 굴착기 자랑만 늘어놓다 거래는 불발되고, 이후에도 몇 명을 더 만나지만 거래는 불발된다.
스스로도 ‘전형적인 꼰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남훈은 변화를 결심하고, 과제를 마련한다. 남훈의 과제는 ‘청결하고 근사한 노인 되기’ 같은 소박한 것들이지만 ‘스페인어 배우기’, ‘플라멩코 배우기’같이 노인인 그에게 험난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특히 남훈의 최종 과제는 스페인에서 ‘진짜 가족’ 만나기다. 남훈의 좌충우돌 가족 찾기는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따뜻한 위로를 전해준다.
책을 읽다 보면, 시니어 세대는 나의 이야기 같다며 공감할 것이고, 젊은 세대는 부모님을 떠올릴 것이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꿈을 내려놓고 억척스러워질 수 밖에 없었던 부모님. 그만큼 현실적이어서, 더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어린이 호스피스의 기적(이시아 고타·궁리)
일본 오사카시 공원 한편에는 일본 최초 민간형 어린이 호스피스인 ‘쓰루미 어린이 호스피스’가 있다. 책의 저자인 저널리스트 이시아 고타는 쓰루미 어린이 호스피스를 짓기까지 분투한 사람들의 기록을 담았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논픽션 스토리다.
◇탑으로 가는 길(김호경·휴앤스토리)
금융회사 CEO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증권맨이 문화유산답사기를 책으로 펴냈다. 저자는 2년여에 걸쳐 전탑과 모전석탑을 찾아 나섰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문화재에 진심인 그가 전하는 정보는 유쾌하고 유익하다.
◇냄새들(김수정·꿈꾸는인생)
영화기자로 10년을 일하다 작가가 된 그녀. 에세이 ‘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 이후 두 번째 책을 냈다. 들 시리즈 네 번째 책이기도 한 ‘냄새들’은 냄새에 관한 책 같지만 기억에 관한 책이다.
냄새에 예민하지 않아도 괜찮다.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하며 편하게 읽을 수 있다.
●Stage
◇잭 더 리퍼
일정 12월 3일~2022년 2월 6일
장소 한전아트센터 공연장
연출 신성우
출연 엄기준, 이홍기, 남우현, MJ, 인성, 신성우, 김법래, 강태을, 김바울, 이건명 등
3년 만에 돌아오는 뮤지컬 ‘잭 더 리퍼’는 화려한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배우 신성우가 연출을 맡았고, 잭 역을 맡아 연기도 한다. 무엇보다 주인공 다니엘 역에 엄기준, 이홍기, 남우현, MJ, 인성까지, 쟁쟁한 배우들이 캐스팅돼 눈길을 끈다.
‘잭 더 리퍼’는 1888년 회색 도시 런던이 배경이다. 당시 실제로 일어난 미해결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극 중 사건을 따라가는 극 중 극 형태다. 퍼즐 조각처럼 얽힌 살인마의 존재를 파헤쳐가는 스릴러 뮤지컬로 오랫동안 사랑받은 작품이다.
이번 시즌 역시 흡인력 있는 스토리와 전개, 클래식하면서도 대중적인 넘버로 강렬한 짜릿감을 선사하며 새로운 흥행 기록을 써 내려갈 예정이다.
◇엘리펀트 송
일정 11월 26일~2022년 2월 13일
장소 예스24스테이지 3관
연출 김지호
출연 전성우, 강승호, 김현진, 신주협, 이석준, 정원조, 정상운, 고수희, 이현진 등
자비에 돌란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잘 알려진 연극 ‘엘리펀트 송’은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의사 로렌스의 행방을 찾기 위해 병원장 그린버그가 로렌스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환자
마이클을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세 사람의 이야기가 엇갈리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고, 마침내 밝혀지는 진실과 반전이 극의 포인트다. 2015년 11월 국내 초연 후 매 시즌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다.
◇썸씽로튼
일정 12월 23일~2022년 4월 10일
장소 유니버설아트센터
연출 이지나
출연
강필석, 이충주, 양요섭, 서경수, 윤지성, 임규형, 황순종, 남경주, 정원영, 이영미, 안유진, 이채민 등
지난해 초연한 ‘썸씽로튼’이 1년 만에 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초연을 성공으로 이끈 강필석, 서경수와 함께 뮤지컬 데뷔 10주년을 맞은 양요섭, 전역 후 첫 뮤지컬 복귀를 앞둔 윤지성이 출연을 확정해 기대를 더한다. ‘썸씽로튼’은 1595년 르네상스 시대, 인류 최초로 뮤지컬을 제작한 바텀 형제의 고군분투기를 그린다. 바텀 형제와 함께 셰익스피어, 노스트라다무스 등 톡톡 튀는 캐릭터가 인류 최초의 뮤지컬을 완성하기까지의 여정이 유쾌하게 펼쳐진다.
우리는 사업을 하는 연예인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연예인이라는 신분으로 사업을 할 때 장점이 많기 때문일 것. 자본도 어느 정도 모아졌고, TV에 사업에 대한 내용이 자연스럽게 노출돼 홍보를 하기 용이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고운 시선만이 존재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우려를 넘어서 자신의 사업에서 성공한 중년 연예인들이 있다. 누군가는 꿈을 쫓아서,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서 등, 그 이유 또한 다양하다.
정보석, 빛나는 빵집 사장님
지난 1986년 데뷔한 연기 35년차의 배우 정보석. 그는 극 중 맡는 역할 때문에 '명품 악역 배우'로 통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성이 좋기로 유명한 배우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푸근한 인상의 빵집 사장님으로 변신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정보석은 지난 6월 서울 성북구에 빵집 '우주제빵소'를 오픈했다. 18년 전에 지은 자신의 집을 개조한 것. 원래는 카페를 하려고 했는데, 빵이 맛있다고 난리가 나서 빵집이 됐다. 특히 둘째 아들이 제빵사, 아내가 바리스타의 역할을 각각 맡아서 하고 있다. 정보석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스스로 "빵 만드는 일 외에는 다 한다", "허드렛일 담당이다"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정보석은 최근 빵집 사장님으로 변신한 것에 대해서 여러 방송에 출연하면서 알리고, SNS인 인스타그램도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빵집에서의 일상 사진을 게재하며 호기심을 자극하고 방문으로 이어지도록 하면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정보석은 연기 활동을 지속하면서 가맹점, 프랜차이즈 빵집을 내는 것이 목표다.
임채무, 빚 내면서까지 두리랜드 운영
배우 임채무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그 이름 '두리랜드'. 예전부터 아이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놀이공원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두리랜드 사장님이 됐고, 빚을 지면서까지 운영하고 있어 귀감을 사고 있다.
임채무는 지난 1989년 사비 130억 원을 들여 경기도 양주시 장흥에 약 3000평에 달하는 테마파크 두리랜드를 오픈했다.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 위주로 구성됐고, 임채무는 30년 동안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온 젊은 부부가 돈이 없어 주저하는 모습을 본 뒤로 입장료를 없애버렸다.
이로 인해 수년 간 적자 상태로 경영난이 일어 2006년부터 약 3년 간은 휴업했다. 그리고 2009년 30억 원을 들여 구조를 바꾼 후 재개장했다. 2017년 10월에는 미세먼지 등 환경적인 문제로 두리랜드를 휴장했고, 2년 6개월 만인 2020년 4월 24일 콘텐츠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뉴얼한 뒤 다시 문을 열었다. 인건비와 전기세를 감당할 수 없어 입장료도 받기 시작했다.
임채무는 놀이공원 리뉴얼 전 아내와 두리랜드 화장실에서 1년 간 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더불어 그는 지난 9월에도 "앞으로도 갚아야 할 돈이 140억, 150억이 된다"고 밝혀 이목을 사로잡은 바 있다. 이와 같이 임채무는 자신이 빚을 감당하면서까지 두리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는 미련하다고 하지만, 동심을 지키고자 하는 그의 진심은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
이무송, 결혼정보업체 대표 우뚝
가수 이무송은 노사연의 남편 혹은 결혼정보업체 대표로 더 유명하다. 이무송은 지난 2010년 결혼정보업체 '바로연'을 론칭했고, 업계에서 손에 꼽히는 회사로 자리를 잡았다.
이무송은 론칭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결혼정보업체 사업 구상은 10년 전부터 해왔다"며 오랜 시간 고심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렸다. 또한 그는 "사람들이 나이나 주변 상황에 못 이겨 결혼한 경우가 많았다. 서로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결혼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서 "우리 부부는 많이 싸웠다. 싸움도 소통의 계기가 될 수 있어 부부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결혼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바로연이 잘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무송과 노사연이 스타 부부라는 데 있다. 이무송과 노사연은 각각 회사의 대표이사, 홍보이사를 맡고 있다. 그들은 각종 방송에 출연하면서 바로연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알렸는데, 이는 바로연을 이용하면 두 사람처럼 알콩달콩 살 수 있다는 왠지 모를 믿음을 갖게 했다. 여기에 실제로 이용해본 고객들의 만족스러운 후기가 더해져 현재의 위치에 이른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