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일일수록 알리고 나눠야 한다는 핑계로 허례허식만 늘어난 우리나라 장례·추모 문화가 코로나19와 맞물리면서 변화하고 있다. 감염 우려로 인해 접객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의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고 추모에 집중하자는 취지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이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가 과도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크로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에서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인식 조사를 한 결과, 80.9%가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는 소모적인 경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장례 준비 및 절차에 따른 경제적 부담, 추모보다 접객에 치우친 문화 등 관례에 얽매여 피로감이 쌓인 데 따른 응답으로 해석된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는 복합장례 공간 ‘채비’를 마련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삼일장을 간소화한 ‘1일 가족장’과 빈소 임대료·식대를 없앤 ‘무빈소 가족장’ 서비스를 제공한다. 1일 가족장은 채비에 빈소를 차려 하루 동안 직계존비속을 비롯한 친인척을 초대해 고인을 기리고 추억을 나눈다. 무빈소 가족장은 일회성 추모식을 진행한 후 장례를 마무리한다.
고인이 운명한 직후부터 부고하고 빈소가 차려지면 정신없이 조문받기에 치우친 장례식 대신 오롯이 가족들끼리 진심으로 지나간 이를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김기혁 채비 홍보팀장은 “코로나19와 시기가 맞물리면서 의식은 간소하게 하고 추모와 애도가 중심이 되는 고인 중심의 장례식이 더욱 성행하고 있다”며 “국내 상조 회사가 이익을 독식하는 불합리한 구조의 개선을 위해 장례용품의 원가를 공개하고 공동 구매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 상조 회사와는 달리 불필요한 품목을 제외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비대면 추모·성묘에 관한 관심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 따르면 623개의 국내 장사시설에선 코로나19에 따라 성묘객의 안전을 위해 온라인 성묘·추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진흥원이 위탁 운영하는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누리집을 통해 제공되는 이 서비스는 유족들이 직접 고인에 대한 온라인 추모관을 만들고, 차례상·분향·헌화·사진첩 등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가상현실(VR) 조문·추모관 서비스 업체 별다락은 3D 모델링으로 만든 샘플 조문·추모관을 자체 누리집에서 선보였다. 별다락은 코로나19로 인해 조문조차 꺼려진 상황에서 누구나 빈소를 방문할 수 있도록 무빈소 온라인 장례식을 기획했다. 박수인 별다락 대표이사는 “장례 이후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납골당 예약과 방문이 어려운 상황을 개선하고자 서비스를 만들었다”며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이어 “현재 부고장 서비스와 함께 메타버스 추모관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며 “우선 안정적인 3D 화면으로 추모관을 볼 수 있게 구축하고, 이후 가상공간 안에서 아바타가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과 소통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이 들어 방향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인생이란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이 방향을 바꾸면서 점프슛을 터뜨리듯 그렇게 쓱싹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살아온 관성과 습성을 쉽게 버릴 수 있던가.
이 길이 내 길이거니 믿고서 지나온 날들에 대한 애착은 또 어떻고? 더구나 노년에 이르러선 방향 전환이 더 어렵다. 그런데 반백 년을 패션 디자이너로 살아온 최복호(73)는 항로 변경에 성공했다. 화가로 변신했으니까.
최복호는 알아주는 이도, 알아보는 이도 많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대구를 본거지로 왕성한 활약을 했으며, 해외에서 거둔 성과도 많았다. 단청이나 탱화 같은 전통 문양에 모던한 미감을 결합한 패션 디자인으로 서양인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해외 여러 나라에 수십 개의 매장을 두었고.
이랬던 그가 패션과 결별했다. 정확하게는 은퇴다. 아들에게 사업체를 물려주고 뒤로 나앉은 것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거치는 여정이다. 사업이 아무리 아깝더라도 죽을 때까지 붙잡고 살 수는 없으니 늘그막에 결국은 퇴장한다. 문제는 은퇴 이후다. 손에서 일을 놓자마자 예상보다 가혹한 권태가 따개비처럼 들러붙기 십상이다. 어쩌나?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궁리를 해봐도 별 답이 없다. 은퇴와 함께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살 생각을 하지만 실상은 딴판이다. 고매한 법정스님처럼 무소유를 숭상하는 노후 생활로 마음의 자유를 누리고 싶지만 언감생심이다. 격투기 링 같은 속세에 가담해 악착스레 살아오는 와중에 덕지덕지 붙은 욕망이라는 놈에겐 은퇴가 없다. 이렇게 되면 괴리에 괴로워진다. 허무감이 밀려든다. 영탄할 수밖에 없다. 아아, 마른 멸치 대가리처럼 따분한 노년이여!
최복호는 따분한 인생의 하오를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머리는 기민하게 돌아가고, 오만 가지 인생의 맛을 섭렵한 내공의 보유자이기도 한 그는 은퇴 전에 충분히 숙고해 현실성 있는 대안을 발굴했다. 그게 그림이다.
“나이 들어서는 한결 확실한 타임 스케줄을 가지고 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재미있는 일을 찾아 계획적으로 진척시키는 게 지혜롭지 않겠는가. 난 오래전부터 품었던 화가의 꿈을 실현하는 일에 인생 2막을 사용하기로 했다. 사실 그림은 내게 친근한 장르다. 패션 역시 크게 보면 미술의 한 분야니까. 옷을 디자인하고 그림을 그려 천에 프린트하는 일을 평생 해왔으니까. 옷에다 그렸던 그림을 이제 캔버스로 옮긴 셈이다.”
과거와 다른 삶 속으로
패션 디자인의 요체는 선, 형태, 색채를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다. 디자이너로 산 세월의 길이만큼 최복호가 축적한 예술적 경험의 질량은 풍성하다. 패션계 입문 초기부터 그는 패션을 미술의 한 장르로 보고 패션쇼에 행위예술을 접목했다. 1973년에 펼친 첫 패션쇼 ‘의처증 환자의 작품 D’만 하더라도 대단히 도발적인 퍼포먼스였다. 19세기 유럽의 정조대를 소재로 차용한 이 쇼를 통해 그는 현대의 뒤틀린 성 모럴을 야유했다. 환경 문제를 다룬 ‘고발 의상’과 ‘공해 오염 분해기’ 역시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퍼포먼스였다. 최복호의 성향과 미술적 재능을 짐작할 만하다. 그러고 보면 화가로의 변신은 자연스러운 이행이다. 비즈니스이자 종합예술에 가까운 패션 디자인의 복합 성분 중에서 미술만을 떼어 몰입하고 있다는 점에선 드디어 정곡을 파기 시작했다고 봐도 되겠다.
최복호는 지난 3월, 대구 대백플라자갤러리에서 ‘패션, 회화, 그리고 사유의 확장’이라는 타이틀로 첫 개인전을 펼쳤다. 회화와 그래픽 디자인 등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 이 전시회는 성황을 이루었다. 1000여 명의 관객이 몰려왔고, 평도 좋았다. 이것으로 화가 동네에 거주할 수 있는 시민권을 발부받은 셈인데, 인생의 황혼에 활짝 열린 새벽에 그는 억누를 수 없는 희열을 맛보았을지도 모른다.
“패션도 미술도 내게는 ‘색(色)으로 꾸는 꿈’의 세계다. 색이란 무엇인가? 그건 암호요, 유혹이요, 영혼이라고 나는 정의한다. 인생의 핵심이 색의 꿈에 다 들어 있다는 얘기다. 미술의 길로 접어들어 기쁘다.”
해야 할 일 없는 노후도 즐거울 수 있다. 일이 주는 억압에서 해방되니까. 무위도식이 아닌 무위자연 같은 걸 추구할 수도 있고.
“나이 들면 귀도 잘 안 들리고, 이도 흔들린다. 이렇게 되면 일상이 구차해지기 쉽다. 즐길 수 있는 일이 없으면 더욱 난처해진다. 잡념에서 벗어나 그림을 그리다 보니 정신세계가 맑아지더라.”
그림 작업이 힘들진 않나? 방울방울 피를 뿜듯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는 게 미술인데.
“개인전에 필요한 작품 준비를 위해 작업실에 파묻혀 살며 화가들의 심적 고통을 실감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잘 그려지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러나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린다. 그림에 큰 욕심을 부릴 이유가 있겠나? 남들이야 어떻게 보든 우선은 내가 나를 만족시킬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렸다.”
심심파적으로, 취미로 대충 그렸다는 얘기로 들리지만 이게 겸사(謙辭)다. 그림을 보면 그가 꽤나 빠른 공을 던진 신참 투수임을 알 수 있다. 물건이 나타났다! 뭐 이런 건 아니지만 웬만한 그림쟁이는 저리 가라다. 거침없이 갈긴 붓질의 능란함, 강렬하고 화려한 채색의 조화로운 구사, 화면에 난무하는 리듬감, 상상력을 증대시키는 추상적 형상의 오묘함 등 들여다볼 게 많은 작품들을 생산했다. 작심하고 틀어박혀 몰두한 결과물인 걸 알 만하다. 어설픈 그림놀음으로는 남들의 눈총만 받기 십상이다. 망신살이 뻗칠 수도 있다. 이걸 모를 리 없어 올인했나 보다.
“딴엔 절박한 심정으로 그렸다. 근래 두어 해 동안 시련이 많았거든.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사업상의 침체로 괴로웠던 거다. 이성적으로 극복해야 했다. 그림은 그 방편이었지. 그리면서 인생을 돌아봤고, 그리면서 반성도 많이 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삶으로 나를 데려가야 할 필연을 느꼈다.”
코로나19로 모두 위기를 경험하고 있지만 인생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언젠가 말 한 마리가 연구소 마당으로 걸어 들어왔더라. 이상하고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뭐라 설명하긴 어려우나, 나의 자아를 돌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방문한 놈일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코로나19 역시 내게 마찬가지 의미를 전하는 전령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라 독촉하는 거라고 보는 것이지. 이런 정황과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 전시회에 걸었는데, 말과 내가 등장하는 이 작품에 대해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좋다, 당신의 대표작으로 손색없다! 그런 얘기도 들었고.”
전에 선생은 자연주의자의 오케스트라 정신을 얘기했었다.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어우러진 자연의 하모니를 삶에 끌어들여 남들과 소통하는 삶이 최고라고. 그래서인가 그림에도 자연이 자주 등장하네?
“모든 예술의 원천적 영감은 자연에서 얻는 게 아닐까? 다행히도 나는 늘 자연 풍경을 바라보며 산다. 자연 속에 사는 것들을 소재로 삼은 그림을 즐겨 그렸다. 자연을 화폭에 끌어들여 내면의 투박하고 질박한 본질을 표출하고 싶어서였지. 차기 전시회에서는 전혀 다른 소재와 작풍(作風)을 보여주고 싶다. 동어반복은 창의적이지 않으니까.”
“인생은 어차피 허무한 거잖아?”
최복호는 대구에 산다. 그러나 잠자는 시간 외의 대부분은 청도로 달려와 작업실에 눌러앉는다. 청도의 외진 산골에 있는 ‘최복호 패션문화연구소 펀앤락’(Fun & 樂)으로 출근한다. 그렇게 살아온 게 13년째. 이 연구소는 그의 아지트이자 다중에게 개방된 복합문화공간이다. 갖가지 소공연과 전시회를 숱하게 펼쳤다. 소주 서너 병쯤은 가볍게 쓰러뜨리는 애주가인 그의 사교장이기도 하다. 개그맨 전유성이 청도에 머물던 때엔 죽이 맞아 대작이 잦았다. 술 취해 이리 비틀 저리 휘청하는 꼴을 눈 뜨고 못 봐주는 성격이지만 무리 지어 노니는 걸 풍류 삼아 즐겼다. 그러나 요즘은 변했단다. 주로 혼자 논다. 벼랑을 움켜쥐고 홀로 선 소나무처럼 뭔가 뿌리부터 단단해진 모양이다.
“그림과 논다. 이건 혼자서도 가능하다. 그림이 아니더라도 노인은 혼자서도 잘 놀 줄 알아야 한다. 혼자일 때 창조적인 생활의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패거리 지어 산에 다니고, 골프 치고, 술 마시고, 이건 시간을 ‘때우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
타성에서 벗어나자는 뜻?
“우리 나이쯤 되면 어둠 뒤에 오는 빛 같은 거, 공평한 신에 관한 외경 같은 거, 이런 걸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야 긍정심이 커진다. 인생은 어차피 허무한 거잖아? 고통을 피할 길이 없다고. 하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경우엔 허무도 고통도 두려움 없이 받아넘길 수 있다. 자제력과 인내심도 긍정 마인드에서 강화될 테고.”
이미 100세 시대가 도래했지만 생명과학은 120세까지도 살게 해주겠다고 선전한다. 오래 사는 게 기분 나쁠 건 없지만 나이 들수록 긍정심보다 이기심이 커지기도 해 문제다. 더 진부해지고 더 까다로워지는 ‘꼰대’도 많다.
“내 경우엔 분노의 감정을 조절하기가 참 어려웠다. 바닥엔 항상 분노가 깔려 있었거든. 그래서 페이스북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고 내가 나를 보기 위한 글이었다. 글이라는 거울에 나를 비춰본 것이지. 그 효과는 컸다. 분노 조절이 가능해졌으니까. 글쓰기는 실로 자기발견을 할 수 있는 유력한 방편이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페이스북 팔로어가 5000여 명이라지? 사이버 공간에서 좋은 글쓰기가 가능하던가? 글은 자기발견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위장의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지 않나?
“폐단이 없지 않지만 이성적으로 접근하면 무리가 없다. 원초적인 감정 배설을 피해나가면 된다. 그러는 사이 감정이 순화되는 거고. 내 경우엔 그랬다.”
어찌된 일인지 세상이 재미없는 쪽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살면 살수록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느는 건 고통뿐이니 환장할 일이라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왜 혼자 놀며 그림을 그리겠나? 좀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다. 일단은 내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는 거다. 이제 우린 딴짓을 좀 하며 제2의 인생을 사는 게 좋겠다. 창의적으로. 고통?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게 있던가? 신은 그런 것은 주지 않더라. 암이라든가, 죽음이라든가, 그런 건 운명으로 받으면 되는 거고. 난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그가 점심을 차려낸다. 연구소 텃밭에서 기른 채소 일색의 찬에 식욕이 들끓는다. 정갈한 식물 밥상이 숫제 그림이다.
4060 시니어들에게 골프 연습장은 일종의 복합문화공간이다. 단순히 골프라는 운동을 즐길 뿐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연습 도중 서로 조언을 통해 자세를 고쳐 잡기도 한다. 그렇게 인생의 피로를 건강하게 해소하던 공간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골프 연습장 폐업이 줄을 이었다. 타석 간 거리가 좁은 연습장에서 다수의 사람과 한데 모여 골프를 치는 것이 코로나19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존재해서다.
그러나 야외·스크린 골프장 매출은 늘고 있다. 스크린 골프장은 단순히 '연습'의 개념이 아니라 지인들과 독립된 공간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또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자 시니어들의 취미였던 골프가 MZ세대들 사이에도 유행하면서 비교적 저렴한 스크린 골프장이 성행하는 현상도 골프 시장의 흐름에 한몫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6일 발표한 ‘코로나19가 갈라놓은 골프 연습장과 스크린 골프장 차별화’ 보고서에 따르면 5월 기준 전국에서 영업 중인 골프 연습장은 9317개다. 보고서는 최근 5년간 약 3000개의 골프 연습장이 폐업했다고 분석했다. 이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000개가 지난해 문을 닫았다.
최근 10년 동안 골프 연습장 창업 수가 폐업 수의 연평균 1.5배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폐업이 창업보다 5배를 웃돌았다. 보고서는 “골프 연습장의 특성상 타석 간 간격이 다소 좁고, 불특정 다수와 줄지어 연습하기 때문에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방문객이 줄면서 폐업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스크린 골프장 업체 골프존은 지난해 매출이 2019년보다 21.2% 늘어난 2810억 원을 기록했다. 소수 지인과 한 공간에 있으면 감염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는 인식과 새로 골프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실외 골프장보다 스크린 골프장에 저렴한 가격으로 접근하기 쉽다는 점 등이 스크린 골프장 영업 호조의 배경으로 꼽혔다.
2020년 연간 골프장 이용객 수(4670만 명)도 2019년(4170만 명)보다 12% 증가했다. 골프가 실외 활동의 하나로 감염 확률이 낮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코로나19로부터 타격을 거의 받지 않았다.
보고서는 “골프 연습장은 코로나19에 따른 창업 감소와 폐업 증가의 영향으로 업황의 단기적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골프 산업의 전반적 성장과 신규 골프 입문자 증가로 코로나19의 진정 시기와 함께 골프 연습장의 성장세는 회복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베이비붐 세대 김시골(가명)씨는 퇴직을 앞두고 고민이 많다. 공단에서 32년을 일한 그도 노후가 걱정이긴 마찬가지다. 연금은 받겠지만 아직도 군대 간 아들 복학 후 몇 년을 더 AS해야 해야 하니 주름이 늘 수밖에 없다. 사실 퇴직 후 시골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다. 이처럼 은퇴자들은 시골살이를 꿈꾸지만 귀농과 귀촌은 선뜻 도전하기가 만만치 않다.
2020년 진행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도시민의 41.4%가 은퇴 후 귀농귀촌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2019년보다 6.8% 증가한 수치다. 또한 지자체들은 인구 감소에 따른 해결책의 일환으로 귀농귀촌 인구 유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제 귀농귀촌이 퇴직자들의 전유물이란 통념에서 벗어나 도농 균형발전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연금이나 금융소득의 수입원이 있는 은퇴자들은 귀농보다는 귀촌에 힘이 더 실려 있다. 때문에 지자체들은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수요자 눈높이에 맞는 귀농귀촌 정책 지원 확대에 발벗고 나섰다. 예비 귀농귀촌인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가보고 싶은 귀농귀촌 우수 지자체 10選을 기획했다. 그 첫 번째로 경북 성주군 편을 담았다.
귀농귀촌으로 가는 길 [경북 성주군 편]
샛노란 성주참외로 부자농촌 대명사 등극
경상북도 성주군의 4월은 온통 노랗다. 성주의 들판을 뒤덮은 수만 동의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참외 때문이다. 전국 최고의 단일 품종 최대의 부자농촌 대명사가 됐다. 성주군은 지난 한 해 동안 성주참외 농사로 억대 매출을 올린 농가가 1230가구로 조사됐다. 전국 참외 재배 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참외 최대 생산지 성주군을 귀농귀촌 최대 수혜지로 찾았다.
성주군의 4200여 농가에서 생산되는 연간 15만 톤 안팎의 참외는 전국 유통 물량의 70%를 차지한다. 성주참외 맛의 비밀은 자연환경에 있다. 풍부한 물과 기름진 토양에 영남 내륙 분지라는 지리적 이점까지 갖췄다. 분지는 태풍·눈·비·바람을 막아줘 참외가 자라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전국에서 가장 긴 일조 시간도 한몫해 성주참외를 더 단단하게, 더 달게 한다.
이 지역의 참외 재배 역사는 60년이 넘지만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건 1990년대부터다.
참외는 여러 모로 우리나라에 특화된 채소다. 멜론의 변종인 참외는 해외에서는 Korean Melon, 즉 ‘한국 멜론’으로 불린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며,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다고 할 수 있다. 90%가 수분으로 이뤄진 시원함과 특유의 아삭하고 달콤한 맛이 특징인 참외는 삼국시대부터 재배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개량을 거듭하여 2000년대 후반부터는 오복꿀, 바른꿀 등 ‘꿀 시리즈’로 알려진 참외들이 시장을 장악했다.
이러한 참외를 생산하는 땅이 가장 집중된 곳이 경상북도 성주군이다. 전국 참외 재배 면적의 70%를 차지하는 성주군은 그야말로 참외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참외에는 ‘성주참외’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걸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성주군에서 참외 하나로 벌어들이는 조수입(비용 포함 수입)이 연 5000억 원 이상이라니,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대표 농작물로 계속 언급되는 이유다.
최고의 참외 전문가들과 함께 품질 유지
물론 성주군에서도 성주참외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작년에 성주참외 50년을 기념하고 미래 50년을 준비하는 성주군에는 전국 224명, 경상북도에 46명 있는 농업 마이스터가 6명 있다. 이들은 모두 참외 재배 분야 마이스터다. 또한 참외명인 1명, 참외명장 2명을 두어 우수 기술을 계속적으로 컨설팅하며 성주참외의 위상과 품질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명장들의 손길 덕분인지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에 따르면 성주참외에는 베타카로틴이 딸기에 비해 3배, 감귤에 비해 2배 함유되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또한 성주참외를 위한 새로운 로고와 캐릭터, 포장재 등을 개발했으며, 전국 최초로 농식품부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100억 원을 투자하는 비상품화농산물자원센터를 2023년까지 건립할 예정이다. 이 센터를 통해 상품화되지 못한 참외들을 효율적으로 분류하여 다양한 재가공을 통해 한우 사료 및 기타 가공품으로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성주참외는 코로나19 확산과 소비 침체 와중에도 해외 수출 415톤을 기록했다. 해외 시장 진출은 K 시리즈로 대변되는 해외 문화 수출 기획과 함께 이뤄지고 있다.
18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기억들
인구 4만3000여 명의 성주군은 성공적인 참외 산지 외에도 다양한 문화 공간을 구축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성주군은 1800년 전 고대 가야 연맹국 중 하나인 성산가야가 있었던 곳이며, 조선시대 초기에는 경상도에서 개간된 농토가 가장 넓었던 자리였으니 농업 지역으로서 일찌감치 높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 또한 태종, 단종, 세조의 태실이 자리할 정도로 명당의 평가를 받았으며,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고도 있었다. 성주군은 이러한 역사성을 바탕으로 도심 공원형 복합문화공간 ‘성주역사테마공원’을 만들었다.
2020년 10월 말에 준공된 성주역사테마공원에는 조선시대 영남의 큰 고을로 위상을 떨쳤던 성주목의 옛 모습인 성주읍성 북문과 성곽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전기 4대 사고 중 하나인 성주사고와 조선시대 전통 연못인 쌍도정도 있다. 밤이면 은은한 조명이 성곽과 문루를 비춰 고즈넉한 야간 명소로 각광받는 중이다.
해발 1433m의 가야산을 품은 가야산국립공원도 성주에서 경험할 수 있는 천혜의 공간이다. 특히 정견모주길은 가야산국립공원 속에 숨어 있는 진주로 불리는데, 봄에는 연분홍빛 진달래가 흐드러지고 그늘이 계속되는 숲길과 시원한 계곡 물소리가 가득하다.
성산동 고분군은 성주군의 역사를 활용한 또 하나의 대표 관광지다. 참외가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재배된 것과 맞물리는 묘한 인연이랄까. 삼국시대의 한 축이었던 성산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이곳은 거대한 규모의 고분들이 집결되어 있으며, 가야부터 신라까지 이르는 다양한 토기와 마구류 등이 출토되어 우리 역사를 다시 보게 만든 중요한 유적지다.
성주군의 문화 명소
천연기념물 제403호인 성밖숲은 2017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2018~21년에는 대한민국 생태테마관광지로 선정되었다. 이곳에는 500년 긴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신비롭고 기이한 형상을 지닌 52그루의 왕버들이 모여 산다. 매년 7~8월이면 맥문동이 피어 성밖숲을 시원한 자줏빛으로 물들이며 짙푸른 왕버들과 보색(補色) 대비를 연출하기에 사진작가와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인간적인 전통을 느껴보고 싶다면 한개민속마을로 가보는 것도 좋다. 이곳은 국가민속문화재 제255호로 60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성산 이씨 집성촌이다. 하회마을·양동마을과 더불어 우리나라 7대 민속마을 중 하나이며, 경북도지정문화재 9채와 6채의 재실을 포함한 총 75채의 초가집·기와집이 돌담길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주의 명소 무흘구곡과 성주호 둘레길의 드라이브 코스는 하나의 길 안에 있다. 아라월드 입구에 들어서자 만나는 성주호 둘레길은 호반을 끼고 이어지는 숲길이다. 이 길은 숲으로 호수로 구불구불 이어져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자동차로 59번 국도를 따라 북진하다가 30번 국도와 만나는 교차점에서 서남쪽으로 우회전하면 성주호를 끼고 돌게 된다. 이 길은 매년 봄이면 벚꽃 터널로 덮여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 드라이브 코스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성주댐을 지나 김천시 증산면 청암사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의 입구를 지나면 무흘구곡을 만날 수 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 신종 코로나 팬데믹은 일상 속에서 즐겨볼 수 있는 여행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일상 속 여행. 홀로이 걸어서 다녀오기, 또는 자전거나 자동차로 한두 시간 내에 돌아올 수 있는 일종의 근교 여행, 마이크로 투어리즘이 대세인 요즘이다. 마이크로 투어라는 산뜻한 형태로 가뿐하게 즐길 수 있으니 나서는 기분도 가볍다.
이제 3월이다. 3.1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막상 천안의 독립기념관도 함께 떠올려 보지만 선뜻 나서지 못한다. 늘 그래 왔다. 언제든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거리가 멀다고 핑계 댔고 도로가 막힌다는 이유도 있었고 볼거리가 더 많은 곳이 있다 해서 밀려나기도 했었다.
독일 베를린 여행 중에 브란덴부르크 남단의 숲 쪽 방향의 추모공원 홀로코스트에 들른 적이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고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를 드러내며 오늘을 사는 그들의 자세가 신뢰를 갖게 했다. 그래서 독일의 현재가 있음을 느끼게 했던 곳이었다. 역사 왜곡에 안간힘을 다하는 일본의 모습이 겹쳐졌다. 이렇게 역사를 잊지 않고 개방하여 널리 알리는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Memorial)까지 가보았으면서 가끔씩 이렇게 눈앞의 것을 무심히 지나치곤 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역사적 사실과 그 정신을 가끔씩이라도 기려볼 일이었다.
독립기념관은 천안의 목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을 기준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만 달리면 김포에도 독립운동기념관이 있어서 가까이서 쉽게 그 의미를 돌아볼 수 있다. 물론 규모는 많이 다르다. 그뿐 아니다. 독립만세를 불렀던 천안의 아우내 장터와 같은 김포 오라니 장터에 만세운동의 현장이 있다. 경서 지방의 대표적인 장터였던 김포 양촌리의 오라니 장터와 월곶면 군하리 장터에서 3.1 만세운동을 조직적으로 벌였다는 사실도 새롭다.
시절 탓인지 독립운동기념관은 한적하다. 전시장 입구에서 맞아주는 멋진 영상의 선명한 태극기가 반갑다.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이와 전시실을 묵묵히 오가는 어르신이 눈에 들어온다. 만세운동을 재현한 미니어처와 캐릭터들이 첨단의 세상에 사는 이들에게 지루함을 덜어준다.
독립운동기념관 건물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획전시실, 사료열람실, 영상실, 로비, 상설전시실로 구성되었다. 잊고 살았던 시간을 재조명해 볼 기회다. 2층의 청소년 문화의 집이나 북카페 등은 코로나의 현실로 지금은 열리지 않지만 1층의 전시실만으로도 볼거리가 쏠쏠하다.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3.1 운동 이야기는 물론이고, 김포지역에서의 3.1 만세운동과 항일의병활동, 그 배경과 특징, 발발 과정을 음성이 포함된 영상과 함께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김포는 독립운동가와 항일의병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리고 김포 전 지역에서 주민들의 3.1 만세운동이 전개될 만큼 큰 규모로 투쟁했던 유서 깊은 고장이기도 하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약 2천만 명이었는데 3.1 독립운동 참여 인원이 2백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일제의 총칼 앞에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쳐댔던 순박했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비폭력 저항의 모습에 가슴 뭉클해진다.
이 모든 역사의 흔적들이 성실히 모아졌다. 당시 일본군들의 야만적이고도 처참한 만행을 볼 수 있고 독립군들의 유물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을 한 바퀴만 돌아도 당시의 독립을 향한 열망이 전해진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멋지게 조성해 놓은 기념관이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음을 모르고 지냈다니 이런 무심함이 어디 이뿐일까만.
독립의 함성이 느껴지는 전시물을 감상하다 보면 나라를 구하기 위한 그분들의 아픈 과거가 눈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특히 1910년 안중근 의사가 32세 나이로 뤼순감옥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받은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글 앞에서는 심장이 멈추는 듯하다.
“나라를 위한 죽음이라면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벌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글이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서신이 될 것이다. 여기 너의 수의를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 이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서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서서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겠지만 이런 기념관 관람만으로도 잊고 지냈던 시간을 되짚어 만날 수 있으니 다행이다. 덕분에 저절로 호국과 애국의 DNA를 되살려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기획전시실은 매 주기마다 다양한 주제로 기획전시를 열고 있다. 3.1 만세운동의 태극기 물결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장이다. 독립의 역사를 쉽게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결집력을 보여준 태극기의 다양함이 펼쳐진다.
‘역사가 담긴 태극기’ 전의 기획전시실이었다. 태극기의 상징성과 태극문양의 의미, 독립운동의 간절함을 담은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태극기 목판 등 저마다의 의미가 담긴 태극기들, 역사와 용도가 다양한 태극기의 면면을 알아가는 게 새롭고 흥미롭다. 한 점 한 점 아프고 묵직한 의미를 담은 태극기들과의 조우가 독립을 향한 당시 우리 국민들의 3.1 운동 정신을 절절히 전한다.
기념관 주변 언덕 위로 조성된 공원이 다시 찾은 평화로움을 대신하는 듯하다. 산책하듯 걸으며 3.1 운동 기념비와 위령탑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쳐 나라를 지키려고 항거했던 이들을 비로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기념관은 소박하지만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 속에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가득하다.
기념관 가까이에 있는 오라니 장터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축제가 열린다. 그 날의 함성을 떠올리며 3.1 만세운동 퍼레이드를 하고 다채로운 행사를 한다. 그렇게 3.1 운동 100년의 기억을 되살린다. 살면서 가끔씩 잊고 지냈던 것을 모두 함께 되짚어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김포의 독립운동기념관과 주변으로는 산성이나 돈대, 다양한 갤러리와 문화시설이 포진해 있다. 봄 햇살이 따사로워지면 소풍삼아 찾아볼만 하다. 조용한 하루나들이 코스로, 역사여행으로 의미 있음을 알아차렸다면 가볍게 나서보아도 좋을 듯. 한나절이면 된다.
주변 볼거리
김포 아트빌리지 아트센터 & 김포 인삼쌀맥주 갤러리
백제 고대국가의 시원(始原)으로 추측하는 김포 모담산 운양동 자락에 위치한 김포 아트빌리지, 그곳에 수준 높은 전시를 볼 수 있는 아트센터가 있다. 쾌적하고 모던한 현대식 예술공간에서 감상하는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 공간이 고퀄리티다. 훌쩍 떠나온 하루 외출에서 품격 있는 시간 획득이다.
아트센터 앞의 너른 야외 공간과 전통놀이체험마당, 주변의 전통한옥 숙박시설, 맛집 등 누구나 언제라도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용요금 무료, 주차무료.
품질 좋은 쌀과 인삼의 특산지인 김포, 김포의 6년근 인삼과 김포쌀로 빚은 인삼쌀맥주와 인삼 전시장도 둘러볼만하다.
최근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전 세계가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19가 장기간 이어지리라는 진단이 의료계에서 거듭 나오고 있는 지금, 경제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이루려면 기존과는 다른 차원으로의 도약이 필요한 상황. 정부에서는 이를 위한 ‘한국형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들이 성공적으로 지역에 안착해 주민들이 좋은 일자리를 체감하는 게 정부의 목표이자 지역의 목표이기도 하다. 이는 양천구를 책임지고 있는 김수영 양천구청장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에게 직접 일자리와 양천구 개발의 미래상을 들어봤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지난해 7월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회에서 지방정부를 대표하는 지역위원으로 위촉된 이후,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목소리를 대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는 각 지방정부에서 시행되고 있는 우수한 일자리 정책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중앙-지방정부 간, 지방-지방정부 간 협업을 강화하는 소통의 창구 역할이다. 양천구는 2019년 119개 사업에 7231개 일자리 창출 목표를 수립해 119개 사업, 68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과를 이뤘다.
“일자리는 더 이상 단순한 생계유지 수단이 아닌,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핵심적인 복지 영역입니다. ‘일자리가 곧 복지’인 거죠. 질 좋은 일자리 창출에 힘써 다양한 계층이 체감하는 내실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는 모두의 바람이자 희망입니다.”
중장년층 일자리 확보를 위한 다양한 노력
김 구청장은 50대 이후의 중장년층을 위한 양천구만의 일자리 지원 사업들을 준비하고 있다. 먼저 양천구의 어르신복지과 ‘인생 이모작 팀’이 중장년층을 위한 여러 솔루션들을 기획 중이다. 그리고 50대 독거남들이 사회에 다시 진출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는 ‘나비남 프로젝트’, 80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의사, 간호사, 영양사 등 전담 팀이 직접 방문해 건강관리를 해주는 ‘백세건강 돌봄 사업’ 등 세대별 맞춤형 복지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외 양천시니어클럽을 운영하고 있으며 중장년층이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게끔 다양한 정보 제공 및 취·창업 지원을 위한 양천50플러스센터를 2021년 7월 개관할 예정이다. 또한 ICT 기술을 독거노인 및 취약 계층에 도입해 디지털 취약 계층과의 정보 격차를 줄이고 고독사를 예방하는 신중년 일자리 사업도 추진 중에 있다. 예를 들어 ‘ICT 기반 돌봄 서비스’는 신중년 ICT 케어 매니저들이 AI 스피커를 활용해 독거 어르신의 고독사 예방 및 신속한 위기 대응 등의 돌봄 서비스를 수행하는 일이다. 더불어 조리사 자격을 갖춘 신중년들이 어린이집의 대체조리사로 활동해 급식 공백을 최소화하는 서비스인 ‘대체조리사 지원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자치단체로는 전국 최초 ‘목재교육전문가’ 양성기관 지정
양천구가 자치단체로는 전국 최초로 목재교육전문가 양성기관으로 지정됐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양천구가 선정된 배경에는 먼저 ‘연의목공방’이 서울시 자치구 목공방 중 규모가 제일 크며, 목재 관련 박사학위가 있는 외부 강사를 인력풀로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지자체에서 목공지도사를 직원으로 채용해 직접 운영하는 것도 높이 평가받았다.
“양천구는 주거 지역이 전체 면적의 약 72%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베드타운으로 흔히 목동을 얘기하면 대입 전문학원이나 목동 아파트 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런 입시학원 중심의 목동에서 평생학습 중심의 양천구를 만들기 위해 오목공원 내 창고로 방치돼 있던 공간을 목공예 체험장으로 조성한 것이 연의목공방의 시작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2020년 7월 산림청에서 전국적으로 공모한 ‘목재교육 전문가 양성기관’에 지원하였으며, 지정을 받았습니다. 전국 총 44개 기관에서 신청했는데 6개 기관만 선정되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양천구죠. 앞으로 목재교육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국가자격증반도 운영할 계획입니다. 개강은 곧 할 예정입니다.”
12월부터 개강할 목재교육전문가는 산림청에서 목재교육전문가 양성기관으로 지정한 기관만이 배출할 수 있다. 6개월 과정으로 운영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목재교육 분야의 전문지식·기술습득 및 국가자격증을 취득하면 목재문화체험장, 강사 활동, 학교 방과후 교사 및 마을 학교 강사, 소창업 등이 가능해진다. 양천구에 목공방 마을 1호가 머지않아 탄생될 것으로 기대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마음 치유는 공원에서
일자리를 못 구하는 일도 사람의 마음을 척박하게 만들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그 이전에 가혹한 생존의 문제가 하나 생겼다. 바로 코로나19다. 김 구청장은 자칫 몸과 마음이 삭막해질 수 있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삶의 질’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그런 기준에 따라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서 여가를 보내는 대신, 쾌적하고 안전하게 ‘쉼’을 누릴 수 있는 공원을 추천했다. 양천구는 이러한 방향성에 맞춘 다수의 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양천구 면적은 17.4k㎡로 이 중 주거 지역이 71.8%인 12.5㎢입니다. 녹지는 23%인 4㎢로 그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며 전역에 크고 작은 공원 104개소가 조성되어 있어 힐링하기에 좋은 환경이죠. 특히 연의목공방에서 700m 떨어진 곳에 양천도시농업공원을 작년 4월에 개장했는데, 7000평 규모에 농업체험학습장, 친환경텃밭, 야생초화원, 생태연못 등이 마련돼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삭막한 도시 환경을 개선함은 물론 마을공동체 사업과도 연계해 건강, 교육, 공동체 개선 등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이끌고 있는 중입니다.”
양천도시농업공원에서 수확한 채소는 각 동의 취약 계층과 어르신 사랑방에 기부하거나 양천푸드마켓을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된다. 작년 한 해 동안 기부된 채소들은 300kg이 넘는다. 공원을 가꾸는 재미가 정서적 위안과 함께 공동체 정신을 높이는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김 구청장은 이러한 호응에 힘입어 2022년까지 연의목공방 맞은편에 제2의 도시농업공원을 하나 더 개장해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균형 발전을 위한 대규모 사업들
“양천구는 강남권과 비강남권을 말하는 서울시의 축소판처럼 목동과 비목동 간의 지역 격차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청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균형 발전에 대한 밑그림을 구상했고 민선 7기를 열면서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 구청장이 균형 발전을 위해 구상한 ‘H-Plan’은, 양천구의 큰 개발 계획을 통해 동쪽(목동)과 서쪽(비목동)이 균형 발전을 이루고 상생할 수 있도록 마련한 정책 사업이다. 미래 양천의 30년 발전을 위해 주민들과 약속한 내용이기도 하다. 우선 동쪽에는 중소기업 혁신 성장 밸리를 조성하고 서쪽에는 서부트럭터미널을 개발해 도시 첨단 물류단지를 추진할 계획이다. 남쪽은 신정차량기지를 이전 및 개발해 문화 상업 복합 시설을 유치하며 북쪽으로는 국회대로와 차도를 지하화해 지상에 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신정3동의 서부트럭터미널 개발은 운영사인 서부T&D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해 그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경전철 목동선도 서울시와 정부에서 재정사업으로 추진하기로 발표한 이후, 국토교통부 국가교통위원회의 심의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의 승인이 끝나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 다음 절차가 진행될 것입니다. 워낙 큰 사업들이라 임기 내에 모든 것을 마무리할 수는 없겠지만 미래의 먹거리 사업이라 생각하고 차근차근 추진해나가려고 합니다.”
자발적인 착한 소비 운동에 감동
김 구청장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양천구민들에게 감동을 받은 경험이 있다. 구청에서는 코로나19로 지역경제가 어려워지자 힘들어하는 소상공인을 응원하기 위해 ‘착한 소비’ 캠페인을 시작했다. 동네 단골집에 미리 ‘착한 선결제’를 한다거나 포장 주문을 하거나, 1+1 구매를 해서 주변 이웃과 나누자는 ‘착한 소비자’ 운동이 그 내용이다.
“현장에 나가 보면 손님이 너무 없어 힘들다는 사장님이 많은데 ‘주민들이 이렇게 착한 소비 운동을 해주시니 그래도 버틸 힘이 난다’고들 하셨습니다. 그중 한 식당 사장님은 주민들이 방문 포장도 하고 선결제도 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자신도 단골 미용실에서 선결제를 하는 착한 소비자 운동에 동참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더군요.”
정부에서 재난지원금, 새희망자금, 소상공인 신용보증 융자 지원 등 여러 가지 정책들을 통해 소상공인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일시적인 지원보다 단골손님들의 응원과 소비가 더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사실 ‘착한 소비’ 캠페인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없으면 불가능했을 사업입니다. ‘나도 힘들지만 우리 이웃을 위해 함께 이겨내자, 힘내자’ 하면서 서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동참해주시는 주민들을 보면참 감사한 마음도 들고, 사회를 움직이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은 주민들에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니어 구민을 위한 행정
최근 김 구청장이 관심을 갖고 있는 또 다른 분야는 시니어 구민을 위한 디지털 격차 해소다.
“얼마 전 모 신문에서 국민 10명 중 8명이 유튜브를 이용하고, 한 달 평균 30시간이나 시청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뉴스가 가장 많은 채널을 묻는 질문에 50대와 60대의 절반 이상이 유튜브를 지목할 만큼 가짜 뉴스에 노출되어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에서 진짜를 가려낼 수 있도록, 중장년 어르신들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해줄 ‘디지털 문해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김 구청장은 로봇과 시니어를 연결하는 일도 하고 있다. 관내 어르신들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교육용 로봇 사업을 도입한 것이다.
“어르신 복지관 3개소에 얼굴과 음성 인식이 가능한 카카오톡 교육 로봇인 ‘리쿠’를 40대 보급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손님들이 비대면 주문을 선호하고, 사업주의 인건비 부담도 적어 매장마다 늘어나고 있는 무인단말기 ‘키오스크’ 사용을 어려워하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패스트푸드점 주문, 기차표 발매, 영화관 티켓 발매, 무인발급기 이용 방법 등을 알려주는 교육용 키오스크를 복지관에 설치하고 관련 강좌를 개설할 예정입니다.”
김 구청장은 또한 ‘스마트폰 사용 기초 과정’을 시작으로 유튜버로 활동할 수 있는 ‘1인 크리에이터 교육’, ‘시니어를 위한 빅데이터 교육’ 등을 실시해 다가오는 스마트 미래 시대에 신중년들이 당당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라고 했다.
현재진행형의 인생 2막
“보통 정년이라고 해서 퇴직하는 나이가 정해져 있는 직업에서는 은퇴 후를 ‘인생 2막’이라고 표현하지만 저는 계속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더 일해야 할 때라고 말하는 김 구청장은 양천의 미래 30년을 위한 굵직한 사업을 많이 추진하고 있다. 그런 사업들을 꼼꼼히 챙기면서 양천구민들을 위해 어떻게 잘 마무리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밝혔다. 50대 중반의 신중년인 김 구청장이 생각하는 시니어로서의 삶은 뭘까. 그녀는 나무와 같다는 말로 비유했다.
“울창한 산길을 걷다 보면 주위에 나무가 참 많은데, 이 나무들의 나이를 겉만 보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나무는 우리처럼 나이를, 이마나 눈가에 주름으로 새기는 것이 아니라 나무 속에 나이테로 새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봄이 되면 모든 나무가 푸른 잎을 꺼내는 것은 똑같죠.”
김 구청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성해지는 나무처럼 나이 들수록 더욱 울창하고 푸르른 나무가 되어, 누군가 와서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주는 그런 포용력과 배려심을 키우는 게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큰 나무처럼 양천의 미래를 책임지며 자신의 나이테를 깊이 새기고자 하는 그녀의 소망이 어떤 봄을 맞이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바람이 서늘해지자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건 인지상정인가보다. 지인들과 서울 곰탕 맛집 정보를 공유하다 멀리 나주곰탕 이야기로 흘렀다. 꿀꺽 군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주곰탕, 돼지국밥처럼 향토색 강한 음식은 타지역에서 먹으면 왠지 그 맛이 안 난다. 곰탕 먹으러 나주에 갈 거라는 내 말에 지인들이 숟가락을 얹었다. “나주곰탕 포장 부탁해.” 말은 이래도 그들도 안다. 나주곰탕은 나주에서 먹어야 제맛인 것을.
3味로는 부족한 맛의 고장
나주가 호남 물류 중심지였던 호시절이 있다. 영산강 유역의 비옥한 나주평야와 뱃길 교통이 편리한 영산강을 품은 지리적 여건 덕이었다. 100여 년 전 영산강 나루터에는 특산물과 산해진미가 넘쳐났다. 사람이 몰려드는 만큼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그 문화가 ‘나주 3味’라 불리는 ‘나주곰탕’, ‘영산포 홍어’, ‘구진포 장어’로 이어졌다.
나주곰탕은 우시장에서 나오는 머리 고기와 뼈, 내장 등을 푹 고아낸 장터국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예부터 조선시대 관아인 금성관 앞에 큰 장이 섰다는데,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상인과 구경꾼들이 밥에 고깃국을 말아 후루룩 먹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군납용 소고기 통조림 공장에서 나온 소 부산물로 국을 끓인 것이 나주곰탕의 시초라는 설도 있다. 시초가 무엇이든 맛있는 곰탕을 지금 시대에도 맛볼 수 있으니, 식탐 많은 나 같은 여행자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나주 사는 지인이 “나주에 오면 곰탕보다 홍어를 먹어야죠” 하며 홍어 자부심을 드러냈다. 물론이다. 나주 3味에 연탄돼지불고기까지 야무지게 맛볼 생각이었다.
나주 여행의 시작은 곰탕으로
서울에서 아침 일찍 나주행 KTX를 타면 아침 식사로 곰탕을 먹을 수 있다. 나주역에서 구도심의 나주곰탕거리까지는 차로 약 5분 거리다. 많은 곰탕집 중에서 주로 가는 곳이 하얀집, 노안집, 남평할매집이다. 하얀집은 개업한 지 110년이나 되었고, 노안집과 남평할매집은 60년 정도 되었다. 동네 주민에게 최고 맛집을 물어도 똑 부러진 대답을 듣기 어렵다. “어느 집에서 먹어도 맛있어요. 다만, 식당마다 맛이 조금씩 달라요. 서울 사람이 좋아하는 식당이 있고, 나주 사람이 좋아하는 식당이 있어요” 한다. 결국 직접 맛을 보고 비교할 수밖에 없다.
나주곰탕은 설렁탕과 달리 국물 색이 맑다. 나주곰탕과 설렁탕 모두 소뼈와 고기를 푹 고아내는 방식은 같지만, 나주곰탕은 소뼈를 적게 넣고 양지나 사태로 육수를 내기 때문이다. 밥은 말아져 나온다. 밥이 담긴 뚝배기에 가마솥에서 펄펄 끓은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몇 차례 토렴한다. 밥알에 짭조름한 간이 배고, 뚝배기가 뜨끈해지면 살코기, 달걀지단, 대파를 올려 손님상에 낸다.
곰탕 맛은 국물 빛깔처럼 맑고 개운하다. 다진 양념을 풀면 칼칼해진다. 숭덩숭덩 썰어 넣은 고기는 새콤달콤한 초고추장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다. 곰탕 맛을 북돋는 김치도 중요하다. 숟가락 위에 밥, 고기, 잘 익은 배추김치 또는 깍두기를 올려 먹어야 제대로 먹은 것 같다. 노안집의 배추김치는 감칠맛과 시원한 뒷맛이 일품이다. 사장에게 비결을 물었다. “김치 담글 때 여러 가지를 섞은 잡젓을 넣어요. 봄배추를 싹둑싹둑 썰어서 잘 익힌 김치가 최고 맛있지요. 봄에 또 오세요.”
곰탕 먹고 나주읍성 산책
곰탕거리 일대에는 고려시대 초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호남의 중심지였던 ‘나주목’의 사적지들이 모여 있다. 조선시대 객사이자 나주목의 중심 관청이었던 금성관, 나주 관아의 정문 정수루, 나주목을 다스렸던 목사들의 살림집 목사내아, 고려시대 때 세운 나주향교 등을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왜구 방어를 위해 축조한 고려시대 읍성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성문과 성곽이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 1993년부터 나주읍성 사대문 복원 사업을 추진, 2018년 완공해 나주읍성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최근 나주향교 옆에 ‘39-17마중’이 들어서 구도심에 활기를 더한다. 39-17마중은 카페&와인바, 게스트하우스, 공연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은 원래 나주 의병장 난파 정석진의 손자 정덕중이 1939년에 어머니를 위해 지은 난파 고택이었다.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이 집을 한 젊은 부부가 매입해 ‘1939년의 근대문화를 2017년에 마중하다’라는 뜻을 지닌 39-17마중을 조성한 것이다. 부부의 눈에는 한·일·양의 건축 양식이 결합한 근대 건축물과 마당의 아름드리 금목서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고 한다. 영화 세트장 같은 난파 고택은 게스트하우스로, 마당의 큰 창고는 벽면을 통유리로 마감한 카페로 탈바꿈해 손님을 맞는다. 향교 담장이 카페 창가에 앉아 나주산 농산물로 만든 음료를 마시노라면 진짜 나주 여행하는 것 같다.
홍어 튀김 먹을 줄 알아야 홍어 고수
“홍어앳국 드셨나봐요.” 택시기사가 딱 알아본다. 홍어앳국 첫 경험을 이야기하자 “제대로 만든 홍어앳국을 드셨네요. 홍어 숙성도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데 손님이 드신 앳국이 가장 많이 삭힌 등급 같아요. 나주 사람들은 그 정도 삭힌 걸 좋아해요. 앳국에는 4~5월에 나는 여린 보리 순을 넣어야 제맛이 나죠”라며 거든다.
홍어앳국은 홍어 뼈 육수에 된장을 풀고, 삭힌 홍어 내장과 보리 순을 넣어 얼큰하게 끓인다. 홍어 애는 홍어 간이다. 생 홍어 애는 연두부처럼 부드럽고 고소해 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삭힌 홍어 애를 넣은 홍어앳국은 암모니아 향이 매우 강하다. 알싸한 냄새에 막혔던 코가 뻥 뚫린다. 처음에는 냄새 때문에 먹기 힘들지만 후각이 조금 마비되면 얼큰하고 구수한 맛이 느껴진다.
삭힌 홍어가 나주의 별미가 된 사연은 이러하다. 고려시대 말 공민왕 때 왜구 침략을 피하고자 흑산도 사람들을 나주 영산포로 이주시킨 적이 있다. 흑산도 사람들이 생선을 잡아 배에 싣고 며칠 동안 나주로 건너오는 사이 생선들이 상하고 말았다. 그런데 상한 생선을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고 맛있는 생선은 홍어뿐이었다고 한다. 그 뒤로 영산포에 정착한 사람들이 홍어를 삭혀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산포는 곰탕거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영산포 선창가에 40여 개의 홍어 식당과 홍어 판매장이 자리해 있다. 거리에서부터 홍어 삭히는 냄새가 풍긴다. 홍어요리 전문점에서 홍어정식을 주문하면 홍어삼합, 홍어튀김, 홍어무침, 홍어찜, 홍어전 등이 한 상 차려진다. 삭힌 홍어는 열을 가할수록 향이 강해지므로 차가운 음식부터 나온다. 홍어무침, 홍어삼합, 홍어전, 홍어찜, 홍어앳국, 홍어튀김 순으로 먹어야 삭힌 홍어 맛에 차차 적응할 수 있다. 마지막에 등장한 홍어튀김은 홍어 고수라고 자부했던 내게 굴욕감을 안겼다. 한입 먹었을 뿐인데 입천장이 까져 젓가락을 내려놓아야 했다.
사심 가득한 나주 4味 연탄돼지불고기
영산포 선창가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구진포 장어거리가 있다.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기 전에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던 곳이라 민물장어가 흔했다. 당시에는 장어 식당 열댓 채가 성업했다. 지금은 다섯 채 정도만 남아 장어거리의 명맥을 유지한다. 구진포 장어 원조집으로 알려진 신흥장어도 이제는 타지역 장어를 사용하지만, 오랜 내력의 깊은 손맛은 여전해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나주 3味에 별미 하나를 추가한다면 송현불고기집의 연탄돼지불고기를 손꼽는다. 외지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오래된 맛집이다. 8년 전 송현불고기집에 처음 갔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길가 허름한 식당 안에 손님이 많아 놀랐고, 주인이 연탄불 앞에 앉아 석쇠 위 삼겹살을 쉴 새 없이 굽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번듯한 건물을 지어 이전했다. 고기 맛이 바뀌었을까봐 걱정했는데, 고기 표면에 기름이 번드르르하고, 달고 짭조름한 맛은 그대로다. 가위로 고기를 직접 잘라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맛으로 상쇄하고도 남는다. 싼값에 배불리 한 끼 먹었으니 가성비와 가심비를 다 잡았다.
◇ 이색 명소 & 맛집 ◇
나주목사내아(금학헌) 목사내아는 조선시대 나주목 최고 수장인 목사의 살림집이다. 건물 이름이 금학헌이다. 1825년에 건립된 ‘ㄷ’자형 전통한옥으로서 내아 1동과 행랑채 1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사 의복 무료체험과 한옥 숙박체험을 할 수 있다. 성정을 베푼 목사들의 이름을 딴 온돌방에는 옛집에 걸맞은 전통가구와 침구가 갖춰져 있다. 나주시에서 운영해 숙박료가 저렴한 편이다. 나주시 금성관길 13-8, 09:00~18:00 관람료 무료, 061-332-6565
영산강 황포돛배와 영산포등대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면서 농수산물을 실어 나르던 황포돛배가 사라졌다가 30여 년 만에 관광용으로 부활했다. 영산포 선착장을 출발해 다시면 회진리 천연염색문화관 앞 풍호나루터까지 약 5km 구간을 왕복 운항한다. 영산포등대는 내륙 하천에 남아 있는 유일한 등대다. 지금은 등대 기능을 상실했지만, 밤마다 불을 밝혀 옛 추억을 되살려준다. 나주시 등대길 80, 10:00~17:00 월요일 휴무, 영산포 선착장 매표소 061-332-1755
전라남도 산림자원연구소와 도래한옥마을 산포수목원으로 더 잘 알려진 이곳에는 명품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 있다. 수목원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풍산 홍 씨 집성촌인 도래한옥마을도 둘러볼 만하다.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홍기응 가옥과 홍기헌 가옥,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의 시민유산 제4호로 선정된 도래마을옛집 등 조선시대 양반집이 많다. 나주시 산포면 산제리 산23-7, 09:00~17:00 입장료 무료, 061-336-6300
한때는 섬진강 상류의 가장 외진 오지마을로 통했다. 그러나 비포장 오솔길이 찻길과 자전거길, 트레킹길로 바뀌면서 한층 개방적인 강촌으로 변했다. 수려한 강물과 다채로운 강변바위들, 오래된 마을들, 깨끗한 산야를 만날 수 있다. 내비게이션에 ‘김용택 시인 생가’를 치고 진뫼마을 안통에 닿아 탐승을 시작한다.
멀리 있는 친구에게서 날아온 뜬금없는 기별처럼, 문득 가을이 다가와 창밖에 서성거린다. 차가워진 공기에 핼쑥해진 꽃 하나 창가에서 눈짓하는 기분이다. 이럴 때면 길을 나서고 싶다. 하루 여행에의 충동. 이 돌연한 유혹. 이건 꽤 좋더라. 배낭 하나 달랑 메고 길을 나설 때의 희열보다 더 짜릿한 건 흔치 않다.
먼 길을 달려 내려온 여긴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뫼마을의 섬진강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강가에서는 바위들이 털버덕 주저앉아 뜻 모를 회의를 한다. 강 둔덕엔 풀과 나무들, 그 너머로는 숲이거나 산이다. 물속에도 나무가 있고 산이 있어 그윽하다. 그림자로 물에 뛰어들어 물구나무선 나무와 산으로 풍경이 한결 유현한 게 아닌가. 실물이 아니면서 실물도 자아내지 못하는 신비감을 야기하는 산 그림자의 재능을 예술로 친다면 이보다 웅장한 초현실주의 예술이 다시없다. 사람의 마음을 고요하게 씻어준다는 점에서는 명상 선생이다.
길은 강을 따라 이어진다. 흙을 밟을 수 있는 오솔길이었던 걸 포장을 해 아쉽지만 시야 가득 범람해오는 강과 산으로 가뿐하다. 게다가 이상적인 적막감이라니. 번잡한 생각들 온전히 내려놓고 풍경에 심취하기 좋은 시간이다. 이럴 때 마음은 둥근 빵처럼 따뜻하게 부푼다. 좁아터진 마음으로 내가 나를 희롱하는 우행일랑 일단정지다. 실컷 지청구를 들어도 싼 가난한 마음을 산천은 보살처럼 눈감아준다.
저기 강 한가운데 바위 위에 뭔가가 있다. 말뚝처럼 우두커니 서서 수면을 바라보는 허연 새, 왜가리인가? 가까이 가 보자니 이놈의 낚시질이 삼매경이다. 외다리로 미동 없이 선 채 동그란 눈알이 빠져나갈 듯 수면을 노려보며 밥이 될 물고기를 기다린다. 새는 노래하는 일을 천직으로 삼은 걸로 여기지만 사실 온종일 먹이 사냥을 하느라 바쁘다. 풀과 나무도 마찬가지다. 제 몸으로 물 한 줌, 햇빛 한 조각이라도 더 끌어당기려고 쉼 없이 용을 쓴다.
사람인들 다르랴. 먹어야만 살 수 있도록 디자인된 생명체들의 얄궂은 운명을 누구에게 원망하랴. 우리를 손아귀에 틀어쥔 절대적 존재의 계략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노자에 따르면 하늘은 자비롭지 않다. 너희 일은 너희끼리 알아서 해라! 툭 그 한마디 던지고 그만이라 했다. 죽는 날까지 왜가리는 오직 혼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슬기로워 혼자서도 끄떡없다. 독존(獨存)의 ‘짱’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다 그렇다. 섬약한 가을 노래를 부르는 풀벌레도, 허공을 비행하는 고추잠자리도, 강물에 사는 꼬맹이 피라미도 마찬가지다. 산천에 사는 것들, 저마다 강철처럼 강인해 아름답다. 산천을 바라보는 기쁨은 풍광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산에 강에 거주하는 동식물들이 온몸으로 부르는 생의 짙푸른 합창과 군무에서도 온다.
진뫼마을엔 ‘섬진강 시인’으로 통하는 김용택 시인이 산다. 그는 마을의 산야와 강의 순수를 수호하기 위해 애써왔다. “섬진강 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라고 시로 탕탕 외쳤다. 댐 건설 반대운동에도 앞장서 관철했다. 시인이 달리 시인이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편에 서서, 모든 찍어 누르는 힘들과 맞설 수 있어야 시인이다.
마을 동구엔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다. 선대들에게 그랬듯 이 나무는 지금도 마을 사람들의 야외 사랑방이다. 노장들의 준열한 담론이 오가는 회의장이며, 중구난방한 수다로 왁자해지는 사교장이다. 놀이와 오락과 휴식이, 잔치판과 술판이, 간혹은 막춤으로 자지러지는 춤판까지 벌어지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하필이면 왜 정자나무 아래에서? 시원한 나무 그늘의 쓸모 때문만이랴. 정자나무가 마을과 마을 사람을 지켜준다고 믿어서일 게다. 그렇기에 정자나무의 털끝 하나 건들지 않고 살뜰히 섬긴다. 즐기되 존중한다. 아마도 방귀마저 함부로 터뜨리지 않을 것이다. 나무와 마을,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이보다 더 공정하고 조화로울 수가 있을까. 이야말로 진보적인 상생이자 컬래버레이션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본이다.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른다. 미끈한 S라인을 그리며 제 갈 길을 총총히 간다. 굴레를 모르는 행보다. 큰 바위를 만나도 돌아가면 그만이고, 소(沼)가 나오면 쉬엄쉬엄 흐르니 유유하다. 이는 채우지 못한 오욕칠정의 잔해로 뒤엉킨 인간세의 탁류와 얼마나 다른가.
비규제지역에 가려진 ‘알짜’ 호재들 6·17 부동산 대책이 호재로 작용한 지역이 있다. 부동산 규제를 피해 ‘아직 안전하다’, ‘투자할 만하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수요가 몰린 ‘김포한강신도시’다. 그렇다면 다른 호재는 없는 걸까. 김포한강신도시의 잠재된 미래가치를 살펴보기 위해 직접 찾아가봤다.
2기 신도시 개발사업으로 조성 중인 김포한강신도시를 중심으로 ‘풍선효과’가 나타나 관심이 쏠린다. 6·17 부동산 대책에 이어진 7·10 대책 이후에도 김포한강신도시의 부동산 가치 상승세는 여전하다. 오로지 정부의 부동산 규제를 피해 부동산 가격 불안 요인이 없어졌다는 평가 때문일까. 김포한강신도시의 지역가치 성장이 기대되는 건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대출 규제 등에서 자유롭기 때문만이 아니다.
◇저평가된 풍부한 교통호재
김포한강신도시는 다양한 호재를 품었다. 운양지구, 장기지구, 구래지구 총 3지구로 나뉘어 개발된 이 지역은 광역M버스를 통해 서울 여의도, 서울역, 강남, 인천, 일산 등 인접 도시로의 접근성이 매우 좋다. 김포한강로~올림픽대로 이용 시 20분대 서울권 진입이 가능하다.
또한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는 광역버스 대폭 확대와 정시성 개선을 위한 전용차로 도입 추진도 발표했다. 김포시가 추진하는 사업 구간은 김포한강신도시부터 올림픽대로 여의하류IC까지다. 여기에 김포시 직행좌석 9개 노선이 경기도형 준공영제인 ‘경기공공버스’ 사업으로 추가 선정돼 내년부터 총 14개 노선이 운영된다.
무엇보다 지난해 9월 지하철 9호선과 연계된 김포도시철도 개통에 따른 호재로 투자가치가 상승했다. 김포는 도시가 선형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도시철도 노선이 대부분 주요 아파트 단지 사이를 관통해 운행한다. 또한 김포도시철도의 배차 간격은 3분으로 현재 수송 능력에 문제가 없는 상황이지만, 향후 배차 간격을 2분으로 줄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어 보다 편리한 교통수단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포한강신도시는 광역급행철도(GTX) 개통 호재도 예상된다. 정부는 수도권 서부지역에 새로운 GTX 노선을 추가 검토해 내년 하반기까지 확정, 발표하기로 했다. GTX 3개 노선 외에 새로운 노선(가칭 GTX-D)을 신설하겠다는 것. 다만 노선의 도입 시점과 대상 지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국토교통부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GTX-D 노선 등을 포함한 ‘4차 광역국가철도망’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현재 경기도와 인천시에 이어 서울 강동구가 자기 지역에 공개적으로 GTX-D 노선 유치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무엇보다 경기도와 김포·부천·하남시가 공동으로 김포한강신도시에서 출발하는 것을 추진하는 만큼, 김포지역 GTX-D 노선 수혜가 예상돼 골드라인 개통과 더불어 일대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총선을 거치면서 수면 아래에 있던 김포한강선 노선과 차량기지 유치전도 재부상하고 있다. 김포한강선은 서울지하철 5호선 연장선으로 홍철호 전 국회의원의 요구에 따라 2018년 12월 ‘수도권 광역교통망 개선방안’에 반영된 뒤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가 같은 해 10월 명칭을 확정해 ‘대도시권 광역교통 2030’ 기본 구상안에 포함됐다. 이외에 인천지하철 2호선이 김포를 통과해 GTX-A 노선 킨텍스역까지 연결될 예정이고,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김포~파주 개통(예정) 등 교통호재가 풍부해 이에 따른 수혜도 기대된다.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김포한강신도시의 교통개발사업은 서울로의 접근성이 향상되는 만큼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서울 강서(마곡, 김포공항 등)와 양천구(목동), 마포구(상암, 공덕), 여의도, 서울역, 시청, 광화문 쪽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거주지로서 훌륭한 선택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값 견인하는 주거 인프라
김포한강신도시는 풍부한 교통호재와 인프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구래지구에는 이마트, 장기지구에는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가 있어 언제든 편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운양지구에는 CGV, 구래지구에는 메가박스, 롯데시네마(예정) 등 영화관이 있어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다. 최근에는 경희대의료원이 인근 풍무역세권 개발사업에 참여의사를 공식 전달한 만큼, 향후 경희대 김포메디컬 캠퍼스가 조성될 계획이다.
주민을 위한 여가활용시설도 만족스럽다. 운양지구에는 가족의 쉼터와 아이들의 놀이공간을 제공하는 ‘야생조류생태공원’이 있고, 장기지구에는 총길이 2.7㎞로 조성된 수변형 공원 ‘금빛수로’가 있어 주민들이 쾌적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구래지구에는 도심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한강신도시 호수공원’이 있다.
이처럼 김포한강신도시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생활 편의성과 자연을 품은 여가 환경이 풍부한 교통호재와 맞물리면서 미래가치가 높아지는 분위기다. 실제로 한동안 하락세를 보인 김포 부동산 경기는 다시금 호황을 보이고 있다. KB국민은행 부동산리브온에 따르면, 지난 7월 김포시 아파트 m²당 매매가격은 328만7000원으로 지난 6월 322만3000원보다 1.99% 상승했다. 같은 기간 김포와 함께 비조정대상지역으로 남아 있는 파주가 271만9000원에서 274만2000원으로 오른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의 상승률이다.
김포한강신도시의 최근 1년 아파트 가격을 살펴봐도 상승세가 눈에 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운양지구에 위치한 ‘한강신도시 운양푸르지오’(이하 전용면적 84㎡)의 경우 지난해 4억5000만 원에 매매됐으나 올 7월 5억2000만 원에 거래됐다. 또 지난해 3억7000만 원이었던 ‘풍경마을 래미안 한강 2차’는 올 8월 4억6500만 원으로 뛰었다.
장기지구 내 아파트도 가격이 오른 건 마찬가지다. 지난해 2억7000만 원이었던 ‘고창마을’(자연앤어울림)의 매매가는 올 7월 3억1500만 원으로 올랐고, 3억 원이었던 ‘고창마을’(이지더원)은 올 8월 3억4000만 원에 팔렸다. 또 구래지구 내 ‘호반베르디움 더 레이크 2차’ 매매가는 지난해 3억9000만 원에서 올 7월 4억4000만 원으로 상승했다. 3억7000만 원이었던 ‘김포한강아이파크’도 올 7월 4억3000만 원에 거래됐다.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수도권 일대의 가파른 매매가 상승세와 청약경쟁이 심화하면서 상대적으로 대출과 청약 제한이 적은 김포시장에 수요가 몰려 집값이 오른 것으로 보인다”며 “김포한강신도시는 그동안 저평가돼 있었고, 하나둘 현실화되는 교통호재로 서울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집값은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배후수요 탄탄한 상권 기대
김포한강신도시는 지속적으로 인구가 유입되면서 약 6만2000세대, 16만 명이 거주하는 자족형 도시로 거듭났다. 특히 구래지구는 김포 최대 번화가이자 중심 상업지구로 많은 주거 단지가 모인 곳이다. 인구밀집도도 한강신도시 내에서 가장 높고 소비력이 높은 젊은 세대로 구성됐다. 주거시설이 밀집돼 풍부한 배후수요를 갖춘 데다 김포골드밸리, 김포도시철도 호재까지 더해져 김포한강신도시를 대표하는 중심상권 지역으로 가치를 높이고 있다.
먼저 김포골드밸리는 구래지구에 인접한 수도권 서북부 최대 산업단지로 현재 5개 산단이 조성돼 입주 업체 1만8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외에 학운3-1, 학운4-1, 학운5, 학운6, 학운7, 대포, 양촌2 등 7곳의 산업단지가 조성 및 계획 중이다. 사업이 완료되면 총 12개 단지 약 632만 ㎡ 규모의 산단 클러스터가 구축된다. 개발이 완료되면 총 2000여 개의 기업이 입주하고 5만여 명의 상주 고용인구가 유입돼 배후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게다가 구래지구의 유일한 단점으로 지적받았던 교통 여건도 김포도시철도 개통으로 개선됐다. 이를 통해 서울 접근성을 높이고 서울 및 인근 지역 인구의 구래지구 중심상권 유입도 기대할 수 있다. 합리적인 분양가도 수요자들을 사로잡는다. 인근 산업단지는 3.3㎡당 평균 600만 원 안팎으로 공급되는데, 이는 2~3년 전 분양가 수준에 불가해 입주 후 높은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C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김포한강신도시는 최근 상가의 공실이 많이 줄었는데, 지역 내에서도 구래지구는 김포골드밸리, 김포도시철도 수혜를 받아 김포한강신도시에서 핫한 상권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구래지구는 주상복합, 업무시설, 대형마트 등 위락이 가능한 상업시설 분양이 대부분 완료됐다. 탄탄한 배후수요를 둔 만큼 상권의 성장이 기대되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김포한강신도시는 서울 강남과의 접근성과 교통호재를 발판으로 한 판교·광교 신도시에 밀려 2기 신도시 중 상대적으로 소외당한 지역이었다”며 “하지만 유동자금이 풍부한 환경에 정부의 규제마저 비껴가면서 풍선효과를 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괴짜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그는 작업실에 갈 때면 정장 차림에 단장까지 들고 안방을 나섰다. 그 작업실이라는 게 몇 발짝이면 도착하는 집 안의 주방이었다. 힘들이지 않고 사람을 웃기는 이색 소극(笑劇)이다. 소다미술관(SoDA, Space of Design and Architecture)은 짓다가 버린 찜질방을 고쳐 만든 미술관이다. 이 역시 주방 화실만큼이나 이색이라 흥미롭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던 폐건물에 생명을 주입했으니 태생부터가 예술적? 스러지는 사물에, 무의미한 존재에 숨을 불어넣는 게 예술이지 않은가.
영국 런던의 내로라하는 미술관인 테이트모던(Tate Modern)은 공해 문제로 가동을 멈춘 화력발전소를 고스란히 살린 뮤지엄이다. 해마다 5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아든다. 부산 망미동의 F1963은 45년간 와이어로프를 생산했던 폐공장을 재생시킨 복합문화공간이며, 청주의 골치 아픈 초대형 흉물이었던 구 연초제조창은 ‘청주공예비엔날레’를 펼치는 공예 클러스터이자 시민 예술촌으로 부활했다. 이 특별한 공간들은 모두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의해 되살아났다. 소다미술관의 발생 역시 ‘재생’을 키워드의 하나로 삼은 요즘의 건축적 사조에서 추동되었다.
소다미술관은 사립 미술관이다. 경영학을 공부한 디자인 컨설턴트 장동선 씨가 관장을 맡았으며, 그의 남편 권순엽(건축가, ‘SOAP 디자인스튜디오’ 대표) 씨가 조력자로 움직인다. 이 부부는 어느 날, 찜질방을 짓다가 혼란에 빠진 어느 건축주의 컨설팅 의뢰를 받았더란다. 당시 건축주는 1층 철근 콘크리트 벽체와 천장 구조까지 마무리한 과정에서 건축을 중단, 이후 4년여를 방치한 상황. 입지의 열악한 조건과 소비 트렌드의 변화로 준공을 해도 사업성이 없을 거라는 판단을 하고서였다.
‘재생’의 취지를 살린 별난 미술관
짓다가 포기한 찜질방 풍경은 슬럼화로 스산했다. 쓰레기와 풀들이 부지를 뒤덮은 채 뼈대만으로 멈춰선 건물의 내부로까지 틈입하고 있었다. 장동선 씨 부부는 숙고 끝에 지역사회에 유용할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생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이를 공감한 건축주는 완공 후의 운영 책임까지 장동선 씨에게 맡겼다. 이렇게 해서 2015년 소다미술관이 개관됐다.
리모델링은 최소한에 그쳤다. 건축주는 적극적인 구조 변경도 무방하다, 싹 부숴도 좋다 했지만 ‘재생’의 취지를 고수, 거의 건드린 곳이 없다시피 은근슬쩍 손질을 했을 뿐이다. 빛과 구름이 풍경을 연출하는 허공의 동향을 조사할 수 있도록 건물 일부의 천장만 도려냈으니까. 애초 부실한 공사라 바닥의 높낮이도 불균형했으나 그대로 놔뒀다. 휑하게 늘어선 콘크리트 벽면엔 약간의 그래픽 아트를 입혀 이곳이 예술 공간임을 나타냈다. 마당과 옥상엔 화물용 컨테이너 박스들을 조형적으로 배치해 실용성과 미감을 동시에 확보했다.
이렇게 해서 통째 건축 폐기물로 버려질 뻔한 쓸쓸한 건조물이 독특한 형태의 미술관으로 순식간에 진화했다. 정밀한 의도, 파격적인 실험, 대담한 근성이 발현된 공간임을 직감할 수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사설 미술관의 안정적 운행 사례는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물다. 흔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운영을 한다. 그럼에도 어떤 풍랑이 몰아칠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바다에 미술관을 띄우다니. 응분의 항해술과 순항에 관한 확신이 선행했을 테다. 미술관 측의 얘긴 이렇다.
“(소다미술관은) 기존의 고답적인 미술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과 가능성을 모색하는 미술관으로서, 문화 불모지인 인근 지역에 도시재생의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버려진 것들이 디자인 순환(Redesign)을 통해 재발견-재해석-재생산될 수 있다는 것을 철학으로, 창작자들과 대중이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적·체험적 문화 소통의 공간적 매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소다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줄여 해석하면, 값진 항해를 하겠다는 뜻. 개관 이후 5년이 흐른 현재, 소다미술관은 쿵쿵 뛰는 심장으로 생동한다. 초기의 고전(苦戰)은 살풍경이었겠으나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즐비하게 입장하는 요즘의 풍경은 자못 윤택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미술관은 형상부터 편안한 느낌을 줘 다가가기 쉽다. 콘크리트 벽체에 으슴푸레 서린 잿빛. 이는 한때 퇴기처럼 버림받았던 건물이 지닌 상처의 잔영? 오래 낡은 사물이 아니면서도 미묘하게 허름하다. 그래 만만해 보이며, 그 내부에선 뭔가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을 하게한다. 여느 화려한 대형 미술관들이 지닌 딱딱한 위압이 없다. 빈티지 풍색이면서도 세련된 모더니티는 또 어떻고?
와우, 별난 미술관이네! 단박에 호기심과 친근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외양은 어쩌면 이 미술관이 보유한 최상의 자산이 아닐까. 곁을 오가던 지역 주민들은 심심하던 차에 출현한 예술 공간의 의미에 대해 한 번쯤은 곰곰 생각해봤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들어가서 살펴보고 싶었을 것이다. 소다미술관은 이처럼 사람들의 내면에 잠재한 본능적인 문화 욕구를 수면 위로 쓰윽 끌어올렸다. 다양한 콘텐츠 개발로 미술관의 힘과 개성을 돋우었다.
다양한 콘셉트로 보여주는 예술의 맛
소다미술관은 미술작품전은 물론, 건축과 디자인에 관한 기획전도 주기적으로 펼친다. 음악공연, 아트장터, 플리마켓, 크리스마스 파티, 할로윈 파티 같은 이벤트도 잦다. 아이들 대상의 스카이샤워, 액션페인팅, 무빙아트 등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예술과 놀이, 문화와 소비에 관한 엄밀한 분석으로 도출했을 이 다양한 콘셉트는 용케 먹혀들고 있다. 입장객이 늘어나면서 문화적 토양과 시설이 유난히 취약한 지역사회에서 존재감을 부각하게 되었다. 서울을 비롯한 외지에서 찾아오는 이들도 증가하고 있다지.
국내엔 엄마와 함께 찾아와 뜰에서, 전시장에서, 팔랑팔랑 뛰노는 아이들을 작품처럼 유심히 관찰하기 좋은 미술관이 하나 있는데 바로 소다미술관이다. 어린아이란 천진난만한 요정을 하나씩 가지고 사는 존재. 이 미술관은, 알고 보면 저마다 맛이 약간 간 어른들(아닌가? 나만?)과 다른 종(種)인 아이들에게 예술의 맛을 살짝 보여주는 일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것 같다. 그게 미술관의 역할이라 믿어 담장을 팍 낮췄을 게다. 이 미술관의 종사자들은 국가의 평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동들과 동네의 평화쯤은 구현하는 게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는지도 모르겠다. 미술관 큐레이터의 얘기를 들어볼까.
“우리의 의도는 문화예술을 친숙하게 소개하는 데 있다. 미술에 관심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들도 미술관에서의 시간과 공간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콘셉트를 마련했다. 전시실의 미술작품만 아니라, 건물의 구조와 디자인, 다양한 이벤트 등 이곳의 모든 게 예술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미술만 아니라 삶과 일상 전체가 예술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김모란 큐레이터)
기발하다, 예사롭지 않게 섬세하다
소다미술관의 창의적인 전시 기획력도 돋보인다. 개관하던 해엔 세계 3대 디자인상에 속하는 ‘레드 닷 디자인상(2015 Red Dot Design Award)’의 디자인 분야 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건축가들의 지어지지 않은 꿈’이라는 타이틀의 건축 전(展)에 주어진 상이었다. 이 미술관은 그간 건축가들이 작가로 참여하는 다양한 공간설치전을 펼쳐왔다. 현재 천장 없는 전시 동(棟)에서 ‘모으고 잇다: gather together’ 전이 진행 중이다.
실내 전시장에선 인간의 우울한 감정을 테마로 한 ‘COMPLEX SOCIETY: 불완전한 아름다움’ 전이 펼쳐진다. 코로나19와 맞붙은 국면이라는 시의성에 착안한 전시회다. 감상자들에게 위안과 관조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기획했다. 앙리 마티스는 말했다. “예술은 진통제이거나 피로를 푸는 안락의자”라고. 그렇다면 예술가는 치료사? 감염병의 발호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감정은 자주 억압돼 감옥살이를 한다. 화가는 그 억압을 유심히 관찰한다. 관찰을 통해 그가 발견한 감정의 본질을 표현해 억압으로 아픈 자신과 남들을 위로한다.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울 단서를 찾게 한다. 날뛰던 마음이 미술관에서 잠시나마 얌전하게 가라앉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소다미술관은 기발하다. 예사롭지 않게 섬세한 전시 디테일로 감상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준다. 전시실 한편에 정갈하게 진열한 마음 관련 책자들. 무료 벤딩머신을 누르면 튀어나오는 위안의 글귀들. ‘잘 지내!’라는 타이틀을 달고 탁자에 올라앉아 은은한 향을 풍기는 디퓨저. 미술관도 이쯤이면 미련퉁이 애인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