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찬 노후 정착을 위한 노인 일자리 사업이 더욱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환경 미화나 교통 지도를 하는 공익활동형 일자리를 넘어 사회 서비스형, 시장형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가 등장했다. 음식 정기 배송, 농산물 재배, 취약계층 돌봄 등 보다 다양해진 일자리 현장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삶의 활력을 찾은 두 번째 청춘들을 만났다.
하나금융그룹의 100년 행복연구센터가 중장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만 60~64세의 60%는 70세가 넘어도 일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지난해 통계청이 공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1000만 명이 넘는 장래 근로 희망자 중 70~74세는 79세까지, 75~79세는 평균 82세까지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서’와 같은 이유로 대부분 은퇴 이후에도 근로 의욕을 드러냈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정책이 바로 ‘노인 일자리 사업’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고령층에 제공되는 일자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지역사회 공익 증진을 위한 ‘공익활동형’(공공형)은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를 참여 대상으로 하며, 주로 노노케어(건강한 노인이 병이나 다른 사유로 도움을 받고자 하는 노인을 돌보는 일), 학교 급식 지원, 도서관 등 공공시설 봉사활동을 한다. 10~12개월간 하루 3시간, 월 30시간 이상 활동하면 한 달에 27만 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곳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 서비스형’은 만 65세 이상 참여할 수 있고 복지시설, 보육시설, 금융기관 등에서 10개월간 월 60시간 이상 활동한다. 급여는 근로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월 71만 원 정도의 활동비를 받는다. 참여자 인건비를 일부 보충 지원하고 추가 사업소득으로 운영하는 ‘시장형’은 식품 제조·카페와 같은 소규모 매장, 아파트 및 지하철 택배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만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근로 수익금에 따라 활동비를 배분한다. 다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생계 급여 수급자나 직장 건강보험 가입자, 장기요양보험 등급판정자, 정부 부처나 자치단체에서 추진 중인 타 일자리 사업에 참여 중인 자는 신청 대상에서 제외된다.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 서비스형’
2021년 우리나라는 2조 6000억 원의 예산으로 82만 개의 노인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 중에서 73.8% 정도가 공공형 사업이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 참여자 평균 연령은 77세 수준으로, 참여에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은 주거환경 개선이나 스쿨존 안전 지킴이 등 단순한 활동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최근 변화하는 노인의 특성과 경력을 활용하는 사회 서비스형과 시장형 일자리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삼척시니어클럽은 사회 서비스형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2020년부터 ‘희망을 담는 빨래바구니’를 운영 중이다. 장애인, 독거노인, 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을 방문해 대형 빨래를 수거하고 세탁해 집으로 배송해준다. 이외에도 필요한 생필품이나 상비약을 주문받아 함께 전달하고, 가스·수도·전등 수리 및 가스 누출 점검 등 부가서비스를 제공한다. 세탁이 불가한 낡거나 보온성이 떨어지는 이불은 무료로 교체해주기도 한다. 백창석 강원도 일자리국장은 “빨래방 서비스와 더불어 생필품 구매 대행과 우유 배달을 진행해 취약계층 어르신과 지역사회의 연결고리를 하나 더 만든 셈”이라며 “통합 생활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발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보건복지부는 1월 16일 사회 서비스형 노인 일자리 ‘방역지원 사업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대응 체계가 재택치료 원칙으로 전환되면서 재택치료자·자가격리자 증가에 따른 일선 방역 현장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사업단의 주요 업무는 재택치료 키트, 자가격리 물품 점검·배달 및 지역사회 방역 등 지자체와 보건소가 수행하는 포괄적인 방역 현장 지원이다. 방역수칙과 개인정보보호 교육을 통해 노인 일자리 참여자의 건강과 안전을 확보하고, 재택치료자의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할 예정이다. 주철 복지부 노인지원과 과장은 “재택치료 키트 배달 등 방역 현장 지원이 절실한 지금, 노인 일자리 방역지원 사업단은 건강하고 경험을 갖춘 베이비붐 세대의 역량을 사회에 환원해 국민의 안전에 이바지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어르신과 함께 키워나가는 ‘시장형’
구로시니어클럽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장형 일자리 사업으로 주택가 한복판에 꽃송이버섯 재배 농장을 마련했다. 서울도시주택공사가 매입한 임대주택을 활용해 ‘시티팜’을 운영한다. 집 전체가 버섯 생육장이다.
여기서 자라는 꽃송이버섯은 암세포를 억제하는 베타글루칸 성분을 다량 함유해 항암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습도와 온도에 민감해 생장 요건이 맞지 않으면 금방 죽어버리는 탓에 키우는 과정이 꽤 까다롭다. 이곳에 근무하는 어르신들은 비치된 기계에 배양액을 채우고, 방 안에 고루 퍼지도록 버섯의 위치를 바꿔주는 등 생육 환경을 최적으로 유지하는 일을 한다. 다 자란 버섯을 수확하고 무게별로 포장하는 작업도 진행한다.
수익은 어르신들의 급여와 관리 유지비, 재료비 등으로 사용된다. 때문에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양임순 구로시니어클럽 관장은 “신생 사업이라 판로 확보를 위해 소상공인들이 운영하는 식당, 대형마트 등 직접 발로 뛰며 납품 계약을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꽃송이버섯은 원래 1kg당 10만 원에 거래될 정도로 고가지만, 중간 유통 과정이 없어 시중가보다 40% 이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로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담아드림’ 역시 시장형 일자리 사업 중 하나다. 담아드림은 샐러드 정기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식자재 마트에서 직접 장을 봐 신선한 재료로 매일 아침 샐러드를 만든다. 재료를 깨끗이 씻어 말리고, 껍질을 까거나 고기를 삶는 등 하나하나 어르신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포장과 배송도 다 이들의 몫이다. 샐러드 종류는 아보카도, 훈제오리, 닭가슴살, 새우, 게살, 버섯 등이 있다. 가격은 5000~6000원으로 시중의 다른 가게들보다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어르신들은 제작 및 포장팀과 배송팀으로 나뉘어 주 2~3회 근무한다.
현재 인근 관공서, 공공기관과 가산디지털단지를 판매 지역으로 정해두고 있다. 양 관장은 “시장형 일자리는 어르신들이 일하는 보람을 느끼게 하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면서 “앞으로도 어르신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현장 근무자들의 말말말
희망을 담는 빨래바구니 유을자(65)
“원래 보험 설계사 일을 했어요.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본사에서 영업소를 축소하는 바람에 근무 지역이 멀어져 직장을 그만두게 됐죠. 구직 활동을 하다 노인 일자리 사업을 알게 돼 신청했고, 참여자로 선정됐을 땐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어요. 지금은 한 달에 총 12일, 하루 5시간을 일해요. 수거한 이불을 빨아서 생필품과 우유를 함께 배달하고, 도움이 필요한 집을 선정해 이불을 교체해요. 혼자 사는 어르신을 보면서 나중에 나도 더 나이 들었을 때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 일 같지 않죠. 그래서 진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해드리려고 노력해요. 몸은 바쁘지만 사회에 도움 되는 좋은 일이니,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담아드림 조규숙(68)
“일자리 모집 공고를 지역 소식지에서 발견했어요. ‘아, 이거다!’ 싶었죠. 자식들도 다 커서 집에 아무도 없는데,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많으면 100인분가량의 샐러드를 만들 때도 있는데, 아침부터 재료를 손질하려면 전쟁터예요. 특히 훈제오리나 닭가슴살은 기름기를 일일이 다 빼고 알맞은 크기로 잘라야 해서 굉장히 손이 많이 가죠. 그래도 소스나 재료를 어디에 배치하면 좋을지 의논하면서 메뉴를 발전시키는 재미가 있어요. 출근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같이 일하는 언니들과 중간중간 이야기도 하고, 바쁘게 움직이니 운동도 되는 것 같아요. 삶의 활력소를 찾은 셈이죠.”
시티팜 최수자(80)
“꽃송이버섯에 대해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효능을 알고 나니 좋은 농산물을 재배한다는 자부심이 생겼어요. 출근하면 버섯 보며 잘 잤냐고 말도 걸어보고, 비닐이 구겨져 있으면 일일이 손으로 펴주기도 하죠. 시간이 지날수록 손주 보듯 사랑으로 돌보게 된달까요. 판로 확보가 중요하다 보니 책임감을 갖고 어떤 요리에 넣어 먹으면 맛있을지 개발해보는 등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특히 월급으로 가족들에게 선물을 한다거나 용돈을 줄 수 있어서 좋아요. 얼마 전에는 손주에게 시계를 선물로 사줬는데, 기뻐하는 아이를 보니 굉장히 뿌듯하더라고요.”
시티팜 송현순(65)
“집에 있으면 겉모습에 신경 쓰기보다 편하게만 있게 되는데, 여기 나오고부터는 얼굴에 화장품도 찍어 바르고, 눈썹도 그려보면서 관리를 하게 돼요. 아무래도 밖에서 사람들과 만난다고 생각하면 신경을 안 쓸 수 없더라고요. 불면증이 있었는데 열심히 활동하니 잠도 잘 오고, 좋은 배양액을 덩달아 맞아서 그런지 피부가 좋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전체적으로 제 삶이 윤택해졌죠. 저도 얼마 전에 손주가 입학한다고 해서 책가방을 선물로 사줬어요.”
정부는 초고령화사회 진입을 앞두고 2004년부터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만 60세 이상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부의 사업이라는 사실을 막연히는 알겠지만, 정확히는 모르겠다. 수행기관도 많고, 복잡하게만 느껴진다. 노인을 위한 정책인데 정작 노인들이 어렵게 느끼니 접근부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이에 노인 일자리 사업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봤다.
우리나라는 2000년을 기점으로 노인 인구 비율이 7%를 넘어섰다.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노인 복지는 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됐고, 정부는 정책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면서 노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인 일자리 사업이 2004년에 도입됐다.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은 노인복지법 제23조에 의거해 시행되고 있다. 일할 의욕과 능력이 있는 노인에게 일자리 창출과 보급을 통해 사회참여와 근로 소득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활기차고 건강한 노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정책이다.
2022년 사업 확대의 중요성
더욱이 2023년에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14% 이상을 차지하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가 전원 60대 노인 세대로 편입된다. 더불어 2025년에는 예정대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약 50년 뒤인 2070년에는 고령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46%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통계청, ‘2020~2070년 장래인구추계’)
이에 노인 일자리 사업의 중요성이 부각됐고, 정부는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82만 개에서 올해는 84만 5000개로 사업이 확대 추진됐다. 만 60세 또는 만 65세 이상이라면 조건에 따라 참여 가능하다. 기초연금 수급자는 거의 모든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노인 일자리 사업의 임금은 평균적으로 월 30만 원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유형에 따라 천차만별인 것으로 확인됐다. 노인 일자리 유형에는 공공형, 사회 서비스형, 민간형 사업이 있다. 먼저 공공형에는 공익 활동(노노케어, 취약계층 지원, 공공시설 봉사, 경륜전수 활동)과 재능 나눔이 있다. 2020년 기준 일자리 참여 노인 76만 9605명 중 공익 활동에 참여한 노인은 55만 4101명으로 가장 많았는데, 평균적으로 월 30시간 일하고 27만 원을 받았다.
민간형에는 시장형 사업단, 취업 알선형, 시니어 인턴십, 고령화 친화 기업이 속한다. 이 중에서는 시장형 사업단 참여자가 가장 많았다. 2020년 참여자는 6만 879명이었고, 평균 임금은 32만 9000원으로 나타났다. 반면 취업 알선형, 시니어 인턴십, 고령화 친화 기업의 경우는 평균 임금이 100만 원을 넘었다.
고득영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장은 “노인 일자리는 참여자들의 노년기 소득에 큰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삶의 만족도 증가, 우울감 개선, 의료비 절감 등에서 성과가 있다고 인정할 만큼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사업 참여 노인 가구는 미참여 가구보다 상대적 빈곤율이 7.3%p 낮고, 가구 소득도 월평균 17만 원 많다. 또 스스로 경제적 상태가 좋다고 인식하는 비율도 사업 참여 후 14.9%p 상승했다. 이외에도 ‘건강이 좋아졌다’, ‘인간관계가 좋아졌다’, ‘아직 일할 수 있음을 느낌’ 등 긍정적인 응답을 보였다.
노인 일자리 체계 이해하기
먼저 복잡하게 느껴지는 노인 일자리 사업 수행 체계를 살펴보자. 보건복지부는 노인 일자리 사업 정책 결정, 관련 법·제도 개선, 예산 지원 등 정책 전반에 대해 관장하며,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노인 일자리 전담기관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2005년 12월 설립됐으며, ‘1000만 노인 시대, 100만 노인 일자리 선도기관’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다. 노인 일자리 사업 지원, 노인 일자리 사업 종사자 교육 훈련, 노인 일자리에 관한 조사 및 연구, 노인 일자리 종합 정보 시스템 및 노인 인력 데이터베이스 구축·운영 등의 일을 담당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사회 내 사업을 총괄하며 재정과 행정의 지도·감독을 맡고 있고, 사업 수행기관의 역할도 일부 맡는다. 지자체 외 사업 수행기관으로 시니어클럽, 노인복지관, 대한노인회 등이 있다.
“나에게 딱 맞는 일자리, 어디서 찾을까?”
앞서 언급한 다양한 노인 일자리 수행기관들은 각각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차이가 있을까.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싶은 시니어가 어디를 방문하면 자신에게 가장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정리해봤다. 전국 시니어클럽, 대한노인회, 노인복지관, 중장년희망센터, 그리고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를 소개한다.
지역 특화형+시장형 일자리 찾는다면 ▶ 시니어클럽
시니어클럽은 노인 일자리 사업을 가장 많이 담당하는 기관이다. 실제로 2020년 시니어클럽을 통해 일한 노인은 25만 6449명으로 가장 많았다. 2020년부터 시니어클럽은 노인 일자리 지원기관으로 변경됐고, 노인인력개발센터도 시니어클럽에 포함시켜 참여자가 더욱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니어클럽은 수행기관 중에서 시장형 사업단을 주도한다. 2020년 시장형 사업단 참여자는 총 6만 8729명이었는데, 이 중 시니어클럽을 통한 참여자는 5만 3935명으로 무려 78.5%를 차지했다.
시니어클럽은 노인 일자리 사업의 출발점이었다. 2001년 보건복지부는 시니어클럽 5개 기관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했고, 2004년 전국으로 확대하며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명명한 것. 시니어클럽은 지역사회 내에서 일정한 시설과 전문 인력을 갖추고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노인의 일자리를 창출·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경기, 부산, 대구 등 전국에 17개 지회를 두고 있으며, 회원 기관은 총 189개다.
경비원·청소원 취업 원한다면 ▶ 대한노인회 취업지원센터
대한노인회 취업지원센터에서는 노인 인력이 필요한 구인처, 60세 이상의 구직자를 모집한다. 취업을 알선해주고, 교육 및 취업 후 사후 관리까지 해준다. 근로 능력이 있는 노인에게 적합한 일자리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안정된 노후 생활을 보장한다는 목표다.
대한노인회가 발표한 2020년 취업자 실적을 보면 직종은 총 68개, 3만 7089명이 취업했다. 이 중 남자는 1만 9942명, 여자는 1만 7147명이다. 남자는 경비원이 6539명(여자는 164명)으로 가장 많았고, 여자는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이 6104명(남자는 2803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즐기면서 재능 나눔 원한다면 ▶ 노인복지관
노인들이 노인복지관을 찾는 이유 자체는 무료하지 않게 즐거운 노후 생활을 보내고 싶어서다. 보통의 노인복지관에서는 노인의 교양·취미생활 및 사회참여 활동이 가능하도록 각종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와 관련 노인복지관에서는 보통 노인 일자리 사업 중에서 재능 나눔 활동 지원사업을 주관한다. 재능을 보유한 노인이 재능 나눔 활동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재능을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사회참여를 통해 노후 성취감 및 대인관계 향상을 도모하는 사업이다. 참여자는 평균적으로 한 달에 10시간 일하고 10만 원을 번다.
노인 여가 복지시설 및 공공시설 안전 관리 활동, 노인 상담, 학대 예방, 인권 지킴 활동, 박물관 안내, 내외국인 대중교통 안내, 음악·미술·공연·전시·체험 등과 관계된 문화예술 활동 등이 있다.
40대부터 재취업 준비한다면 ▶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는 노사발전재단에서 운영한다. 만 40세 이상 퇴직자(예정자 포함)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 광역 단위에 12개 센터와 업종별 센터 1개를 운영 중이다.
중장년층에 대해 퇴직 이전 단계부터 이후 구직 활동에 이르기까지 전직 및 취업 등 전반적인 고용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업 맞춤형 인재 추천, 중장년을 위한 생애경력 설계 서비스부터 퇴직 예정 중장년을 위한 전직 스쿨 프로그램, 구직자 재취업 지원을 위한 재도약 프로그램 등이 있다.
앙코르 일자리 원하는 서울 시민이라면 ▶ 서울시50플러스재단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서울시 산하기관으로 40대부터 60대까지 50세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서울시 시니어를 위해 사회공헌 일자리, 창업·창직·전직 지원, 종합상담 및 교육 등 노후 준비에 필요한 다양하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재단은 ‘앙코르 커리어 일자리’를 추구한다. ‘50+ 세대의 경험과 연륜을 활용하되, 사회적 가치와 수익 모두를 적절히 만족하는 수준으로 제공하는 일과 활동거리’를 뜻하며, 보다 체계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공헌 일자리로는 ‘서울시 50+보람일자리’가 있으며, 약 3200명을 뽑고 월 57시간 이내 일한다. 시니어 인턴십 유형은 파트타임형인 ‘서울 50+ 인턴십’과 풀타임형인 ‘서울 50+ 뉴딜 인턴십’이 있다. 이 밖에도 창업·창직을 돕는 ‘점프업 5060’ 등이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 자신에게 가장 맞는 활동을 찾아 제2의 삶을 시작해보자.
재취업 원하는 55세 이상 서울 시민이라면 ▶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2004년 4월 서울시가 설립, 서울노인복지센터 부설 서울시어르신취업훈련센터로 운영했다. 만 55세 이상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재취업을 위한 상담, 교육, 알선을 담당한다. 2018년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로 확대 개편하고, 서울시 어르신의 취업과 사회활동 지원을 위한 다양한 기반 조성 사업, 재취업을 준비하는 시니어를 위한 다채로운 훈련과 실전 인턴십 등을 개발해 서울시 어르신들의 취업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Exhibition
◇ 파올로 살바도르 개인전 : 새벽의 백일몽
일정 1월 29일까지 장소 일우스페이스
국제 미술계에서 부상하고 있는 젊은 작가, 파올로 살바도르(Paolo Salvador, 31)의 개인전 ‘새벽의 백일몽’(Ensueos en el amanecer)은 국내에서 열린 첫 개인전이다.
파올로 살바도르는 페루 출신 작가다. 그는 잉카 제국의 모태였던 케추아(Quechua) 부족의 후예로, 역사적 자부심이 강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강력한 모국주의 정서는 그의 예술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됐다.
살바도르의 작품에는 인간인지 동물인지 모호한 생명체가 자주 등장한다. 고대 페루의 종교에서 사람과 동물은 동등한 존재이며, 페루 신화에도 사람과 신성한 동물이 상생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살바도르의 작품에서도 사람과 동물은 주종 관계가 아니라, 머나먼 미지의 여행을 떠나는 동반자로 표현된다. 살바도르는 급격히 변모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도 페루의 토착성,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페루의 고대 신화와 설화에서 이미지를 끌어오되, 개인의 경험과 현대 사회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화풍을 창안했다. 서구 르네상스와 표현주의 같은 미술사를 수용하면서도 페루 전통문화와 결합하는 조형 언어를 천착했다. 고립, 고독, 몽상을 주제로 삼으면서 느슨한 붓 터치와 청과 적의 자극적인 색채를 통해 우화적인 서사를 만들어냈다.
◇ 알렉스 카츠 개인전 : Flowers 꽃
일정 2월 5일까지 장소 타데우스 로팍 서울
미국 출신 작가 알렉스 카츠(94)는 ‘세계 10대 화가’이자 ‘현대 초상회화 거장’으로 통한다. 이번 전시는 카츠의 작품 중에서도 꽃을 주제로 한 회화들을 특별히 조명한다. 이 꽃 시리즈는 이전에 소개된 적 없었던 작품들이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그린 것이기 때문.
카츠는 “나는 (이 시리즈를 통해) 팬데믹에 지친 세상을 어느 정도 격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전시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초상화까지 아우르며, 한 장르의 작품만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아시아에서의 첫 번째 전시로 의의를 더한다.
●Book
◇ 인생을 바꾸는 100세 달력(이제경·일상이상)
100세 시대다. 이는 80세까지 일해야 하는 시대라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와 같이 20년 공부해 직장에서 30년 일하고 은퇴하는 ‘3단계 인생’(교육-일-은퇴)으로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 이에 이제경 100세경영연구원 원장은 책을 통해 ‘골드 인생 2.0’을 제시한다.
‘골드 인생 2.0’은 건강한 체력과 정신으로 노후에도 스스로 경제활동이나 취미를 즐기면서, 자신과 가족의 행복뿐만 아니라 지역과 글로벌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개인의 사회책임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먼저, 이제경 원장은 80세까지 일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 등으로 평생직장이 사라지므로 세 번은 은퇴하고 다시 도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비전문가에서 전문가로 변신하는 첫 번째 은퇴하기, 전문가에서 사업가로 대변혁하는 두 번째 은퇴하기, 사업가에서 사회봉사자의 길을 걷는 세 번째 은퇴하기를 추천한다.
비전문가에서 전문가로 변신해 근로소득 외에 업무 관련 기타소득도 얻고, 전문가에서 사업가로 대변혁해 사업소득 외에 금융과 부동산 등 자산소득도 얻고, 사업가에서 사회봉사자로 거듭나 사회가치 소득과 자산소득까지 얻으면 나뿐만 아니라 증손자까지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저자는 자신과 여러 부자들이 실천하고 있는 금융·부동산·미술품 투자 노하우, 합법적으로 세금 줄이는 방법 등도 소개했다. 또한 자신의 기대여명을 측정하고 ‘건강수명 늘리기’, ‘정신건강 챙기기’ 등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법, 가정과 사회에서 행복한 인간관계 만드는 방법도 담았다.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표재명·드림디자인)
키에르케고르 철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고(故) 표재명 교수. 그는 1978년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연구교수로 1년간 현지에 머물면서 아름다운 이미지의 엽서를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냈다. 가족들이 그 엽서들을 모아 펴낸 책으로, 아버지의 마음이 담겼다.
◇라디오 탐심(김형호·틈새책방)
강원도에서 방송기자로 일하는 저자는 30대 초반부터 라디오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책에는 라디오와 관련된 에피소드 27가지가 담겼다. 라디오가 탄생과 성장, 전성기와 쇠퇴기를 거치는 동안 인간, 사회와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고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얘기한다.
◇이까짓, 탈모 : 노 프라블럼 (대멀(김준석)·봄름)
천만 탈모 시대. 탈모는 이제 청년과 중년의 연결고리가 됐다. 15년 차 대머리 영화배우이자, 탈모인 대나무숲 채널 ‘대멀’의 주인장인 저자. 그는 탈모 고충부터 웃픈 가발 경험담 등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아내 탈모인들에게 정보와 희망을 전달한다.
●Stage
◇엑스칼리버
일정 1월 29일 ~ 3월 13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권은아
출연 김준수, 김성규, 이지훈, 에녹, 강태을, 신영숙, 장은아, 민영기, 손준호, 김소향, 케이 등
국내 대형 창작 뮤지컬 ‘엑스칼리버’가 서울에서 단 6주간 앙코르 공연을 펼친다. 아더 역 김준수, 랜슬럿 역 이지훈, 에녹, 강태을, 모르가나 역 신영숙, 장은아, 멀린 역 민영기, 손준호, 기네비어 역 최서연, 울프스탄 역 이상준, 엑터 역 이종문, 홍경수가 다시 한번 무대를 빛낸다. 여기에 아더 역 김성규와 기네비어 역 김소향, 러블리즈 출신 케이가 새롭게 합류해 기대를 더한다. ‘엑스칼리버’는 고대 영국을 지켜낸 신화 속 영웅 아더왕의 전설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평범한 소년 ‘아더’가 성인이 되고 왕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간인 아더가 고난과 역경을 헤쳐가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엑스칼리버’는 뮤지컬 ‘모차르트!’, ‘엘리자벳’, ‘웃는 남자’, ‘마타하리’ 등 수많은 흥행작을 탄생시킨 EMK의 제작 노하우가 집약된 세 번째 오리지널 뮤지컬로 2019년 월드프리미어로 초연됐다.
◇라스트 세션
일정 1월 7일 ~ 3월 6일
장소 대학로 티오엠
연출 오경택
출연 신구, 오영수, 이상윤, 전박찬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배우 오영수의 차기작으로 화제를 모은 연극이다. 오영수는 신구와 함께 프로이트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이상윤과 전박찬은 루이스 역을 맡아 연기한다.
정신분석의 대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나니아 연대기’ 작가이자 영문학자인 C. S. 루이스가 직접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극이다. 극은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한다.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신에 대한 물음에서 나아가 삶의 의미와 죽음, 인간의 욕망과 고통에 대해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하면서도 재치 있는 논변을 쏟아낸다.
◇그때도 오늘
일정 1월 8일~2월 20일
장소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2관
연출 민준호
출연 이희준, 김설진, 이시언, 차용학, 오의식, 박은석 등
연극 ‘그때도 오늘’은 네 가지 장소와 네 가지 시간을 가지고 총 여덟 명의 배역이 등장하는 에피소드 형식의 공연이다. 1920년대 광복 전의 모습, 1940년대 제주도, 1980년대 부산, 2020년대 최전방 등 총 네 가지 배경이 나온다. ‘그때’를 지금 ‘현재’로 여기며, 각자의 눈에 비친 미래를 확신하는 인물들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다.
오의식, 박은석, 김설진은 2020년대의 은규, 1980년대의 주호, 1940년대의 사섭, 1920년대의 윤재 역의 남자1 배역을 맡는다. 이희준, 이시언, 차용학은 2020년대의 문석, 1980년대의 해동, 1940년대의 윤삼, 1920년대의 용진 역의 남자2 배역을 연기한다.
자리 한번 잘 잡았다. 나지막한 야산이 품을 벌려 농장을 보듬은 형국이다. 둥지처럼 안온한 터다. 보이는 건 숲 아니면 하늘이다. 밤이면 부엉이가 악곡을 연주한단다.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의 변두리, 절묘하게 살짝 후미진 곳에 있는 자그만 농원이다. 정해정(62, ‘이레새싹삼’ 대표)은 이곳에서 새싹삼을 생산한다. 그의 귀농 이력은 특이하다. 이곳이 두 번째 귀농지니까. 첫 번째 귀농지에서는 거의 실패에 가까운 고난에 봉착해 ‘탈출’했다.
첫 번째 귀농은 2016년, 충남 천안의 산골짝으로 들어가 시작했다. 산 좋고 물 맑은 산촌이었던 모양이다. 거기서 그는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살았다고 한다. 내릴 것 내려놓고, 버릴 것 버리고 담백하게 살았다. 정직한 농사로 부부가 먹고살 만한 정도의 돈을 벌며 자족하고 싶었던 거다. 특별할 것 없는 이 계획과 희망은 차질 없이 실현되는 듯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빙벽을 만났다. 원주민의 횡포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원주민과 좋은 관계 맺기. 이는 흔히 귀농 생활 수칙 제1조에 꼽힌다. 불화가 깊어지면 마침내 짐을 싸 철수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은 원주민의 말도 안 되는 텃세에 있는가 하면, 귀농인의 돌처럼 아둔한 처신에도 있다. 여하튼 귀농을 했다면 일단 원주민과의 우호적인 관계 형성에 공을 들이라는 충고는 비처럼 쏟아진다. 정해정도 이를 유념해 공을 들였다. 따라서 주민 대다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 사는 곳 어디나 ‘삐딱이’들이 있는 법. 그는 몇몇 주민들이 은근히 행사하는 텃세에는 대범하게 자세를 낮춰 무마해나갔다. 그러나 도무지 기초상식이 통하지 않는 ‘강적’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트랙터를 몰고 마을 안길을 지나가다 어느 할아버지 댁의 헛간 모서리를 조금 망가뜨렸다. 당연하게도 수리를 해 원상복구를 해드렸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요구가 지나쳤다. 배상비를 별도로 내놓으라는 거였지. 옥신각신이 있었지만 결국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수리 비용은 50여만 원에 불과했지만 총 500만 원 정도 들어갔다.”
원상복구를 해주면 그만일 텐데 할아버지는 왜 배상비까지 요구했을까?
“평소에도 그분과 어려운 관계였다. 외지인을 배척하는 감정이 강한 할아버지였던 것 같다. 내가 원주민이었다면 배상비를 요구했겠나? 그렇다고 노인을 미워해서는 안 되지만 좋은 감정이 없어지더라. 귀농인을 불편한 이방인으로 여기는 일부 주민들의 심리를 확연히 깨닫게 된 계기였으며, 우리 부부가 인정받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엄습했다.”
주민과 어울리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던 면은 없었나?
“딴엔 최선을 다했다. 마을 발전기금을 냈고, 잔치를 벌여 신고식도 했다. 좋은 출발이었으며, 좋은 앞날을 예감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뭐든 나누며 살자는 평소의 신념으로 마을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한계를 깨달았다. 이곳은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 거지.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산야의 풀로 잃었던 건강 되찾아
결국 귀농 1년 만에 그는 철수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후 3년을 더 눌러앉아 살았다. 그러고자 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발이 묶였다. 이건 어인 일인가?
“집과 땅부터 서둘러 매물로 내놓았으나 도무지 팔리지 않더라.(웃음)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가격을 낮춰 내놓으면 되지 않나?
“애초 가격의 반으로 내려도 소용없더라고. 매물을 보러 드나든 사람들이 30여 명이나 됐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만 3년이 돼서야 어떤 회사 사장이 수련원을 짓겠다고 매수해 드디어 뜻을 이루었다. 떠날 수 있게 됐으니까.”
무슨 그런 요상한 일이 다 있나?(웃음) 감옥 생활 비슷하지 않았을까? 원치 않는 곳에 발목 잡혀 3년을 더 살다니….
“억울하진 않았다. 인생사,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보면 고통도 별거 아니다. 천안 산골에서의 4년여 동안 사실 큰 걸 얻었다.”
무엇을?
“건강을 얻었다. 도시에 살 때 부부의 상태가 아주 나빴다. 나에겐 심한 위장병과 비형간염이, 아내에겐 갑상선항진증과 빈혈, 가슴에 혹이 있었다. 우리는 산골로 귀농해서 건강을 회복하고 싶었다. 그게 귀농의 한 동기였는데 목적을 이루었다.”
자연이 유능한 의사였나? 산골에서 난치병을 고친 귀농인이 드물지 않더라.
“가령 봄이면 새벽부터 산에 올라 산야초를 배낭 한가득 얻어왔다. 산야초가 사람을 살린다는 말, 정말 맞다. 매우 빠른 속도로 부부의 건강이 좋아진 게 산야의 풀을 많이 먹은 덕인 거 같다.”
풀만 먹고 살 수는 없었을 테지. 돈은 무슨 수로 벌었나?
“귀농 전부터 공부하며 구상해둔 게 산약초 재배였다. 마을 주민들과 공동으로 산속에 ‘산약초 공원’을 만들어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길을 찾자는 계획이었지. 그래 명이나물, 땅두릅, 고사리, 도라지, 제충국 등 갖가지 약초와 나물류를 가꾸었다. 그러나 포기했다. 야생풀들을 제거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였다. 주민들이 뭉쳐지지 않아 공동사업도 무위로 돌아갔고.”
부부가 역할 분담해 마케팅 나서
정해정은 목사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직 목사다. 도시에서 20여 년간 개척교회를 이끌었던 그가 귀농을 결행한 건 ‘삶을 바꾸고 싶다’는 욕구에 추동되어서였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어라, 이건 아니잖아? 나, 이렇게 살고 싶었던 건 아니잖아? 그런 회의와 통찰이 방문해 나를 아프게 돌아보게 하는 게 인생이라는 드라마인데, 정해정은 하나의 반전을 연출했던 것이다. 목사로서 그는 일단 할 일을 할 만큼 했다고 결산했다. 20년간의 목회활동이면 졸업을 해도 무방하다 봤던 것 같다.
한편 졸업은커녕 자신에게 스스로 중퇴 명령서를 발부한 측면도 있다. 개척교회 목사란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차가운 광야에 몸과 마음을 쏟아 소명을 다하고자 하는 존재일 텐데, 그는 이 점에서 떳떳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했다. 매양 궁하다 보니 돈에 관심이 쏠리더라는 것.
“교회와 목회자의 역할은 사회봉사에 있다. 그런데 자주 한계를 느꼈다. 심지어 성도들의 주머니에 관심을 갖게 되더군. 이런 나를 감히 목사라 할 수 있겠나? 과감하게 정리했다. 이젠 내가 하고 싶었던 걸 하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예전부터 바랐던 건 시골 생활과 농사였다. 귀농이 대안이었던 거다.”
정직한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용기로 삶의 방향을 쇄신했다. 중도에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지도를 놓고 가야 할 좌표를 읽어 새로운 항해에 나섰다. 교회 안의 예수에게 매달려 도움을 청하기보다 내 안의 예수를 돋우어 길을 나선 셈이겠다. 이 진취적인 사람은 임야를 사들여 개간하는 것으로 숙원이었던 귀농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첫 시도였던 산약초 재배에선 쓴맛을 봤다. 이후 주력한 작목은 새싹삼. 새싹삼이란 인삼의 새싹을 먹을 용도로 재배하는 아주 어린 인삼이다. 묘삼을 심어 보름 내지 한 달 만에 수확한다. 어린 삼 이파리엔 5, 6년생 인삼 뿌리보다 사포닌 성분이 6배 이상 함유됐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이에 힘입어 약초 시장의 신예로 데뷔한 게 새싹삼이다. 그는 천안 산촌에서 약 4년간 새싹삼에 매달렸다. 작년에 찾아든 두 번째 귀농지인 현재의 터에서도 새싹삼을 기른다. 그의 농사는 순항할까?
“내 생각에 새싹삼 재배는 상당히 이상적이다. 재배 과정이 수월해 가혹한 노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계절 내내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재배사 안에서 일하기 때문에 더위와 추위를 면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우리는 30평 규모의 재배사를 운영한다. 매우 작은 규모지만 연중 일정한 소득이 발생해 만족할 만하다.”
소득액은 얼마나 되나?
“지난 5년여 동안 연간 매출 6000만 원에서 8000만 원 정도를 올렸다. 이 농사엔 비용이 많이 드는 편인데, 순소득 비율은 40% 정도다.”
월평균 250만 원쯤? 귀농인들의 일반적인 현실에 비할 때 나쁘지 않은 실적인 것 같다. 내가 취재한 귀농인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태반이 적자 구조에 허덕였다. 귀농이야말로 고행 장정임에 놀라웠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해도 먹고살기 힘든 게 농사다. 귀농은 신중하게 고려해 선택해야 한다. 특히 시니어가 경솔하게 귀농을 했다가는 수렁에 빠질 확률이 높다.”
누가 귀농해 새싹삼 농사를 하겠다고 하면 어떤 충고를 하고 싶나?
“자주 상담 요청을 받는다. 이미 새싹삼 농사에 뛰어든 사람에겐 나의 경험에 바탕을 둔 컨설팅을 해준다. 그러나 이제 시작하려는 이에겐 하지 말라 말린다. 막차에 올라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새싹삼이 아니더라도 귀농은 실로 난해한 길이다. 돈벌이가 목적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하다.”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자족할 수 있는 귀농 생활의 관건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소소한 소득이나마 안정적으로 얻기 위해서는 부부가 분업을 하는 게 좋겠다. 어떤 작물이든 생산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판로다. 우리는 분업으로 길을 모색했다. 나는 오프라인에서, 아내는 온라인에서 마케팅 활동을 했다. 적은 소득에 만족할 수 있는 마음도 귀농 생활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지닌 것 없이 귀농한 나에겐 빚도 많다. 그러나 아내와 사랑을 키우며 불안감 없이 지낸다. 소득이야 부진하지만 마음의 여유는 가지고 산다.”
매사가 이상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게 귀농이다. 작물의 비위를 맞추는 일만이 능사는 아니다. 농사에 현명한 최선을 다하되 날뛰는 욕망일랑 지그시 누르고 돌아오는 대가에 긍정하는 배짱, 순응. 이게 귀농으로 삶을 확장하는 방법이라는 게 정해정의 귀띔이다.
정해정 씨가 주는 귀촌 Tip
•TV 방송에 나오는 귀농 성공담을곧이곧대로 믿지 말자.
•부부 협력이 중요하다. 자리가 잡힐 때까지 한 사람은 농사를, 한 사람은 취업해 수입을 보충하는 방법도 슬기롭다.
•너무 외진 곳은 피하라. 나중에 팔고 나오기 힘들다.
•귀농 후보지를 정했다면 셋집을 얻어 1년 정도 미리 살아보자. 농사 경험도 익히고 마을의 풍토를 파악하기 위해.
•귀농인은 없고 원주민만 있는 마을은 피하는 게 좋다.
•가급적 마을 복판이 아닌 변두리에 터를 잡자.
•귀농 정책자금을 면밀히 파악해 적극 활용하자.
금융인 모임인 국민부자협동조합과 한국부동산산업협회가 지난 19일, 서초구 내곡동에 거주하는 에너지 소외계층을 위해 연탄 2,500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두 기관은 서초구 내곡동 주민센터와 NGO 단체 한숲의 협조로 난방비 걱정에 시달리고 있는 저소득층 5개 가정에 연탄을 전달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행사는 비대면으로 이뤄졌지만, 기부 규모는 전년보다 1000장이 늘어난 2500장을 지원할 수 있었다고 국부협은 설명했다.
국부협 한연숙 이사장은 “추위로 고생하는 저소득층 가정이 전달된 연탄을 통해 불씨와 온기를 되찾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고, "국민부자협동조합은 부동산과 금융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한숲 관계자는 “코로나19의 장기화로 후원이나 봉사활동이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며, "국부협과 한국부동산산업학회 같은 기업, 단체들의 따뜻한 나눔으로 지역사회 소외계층들이 조금이나마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느 청년과 마찬가지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남들 다 하는 ‘취업 준비’는 요즘 말로 ‘현타’를 불렀다. 무엇을 해도 좋은 인생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 머리도 짧게 깎은 김에 절에라도 들어갈까 했지만, 며칠 견디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무작정 해외로 떠났다. 6개월을 계획하고 떠났지만 돌아오는 데는 3년이 걸렸다. 위험을 각오한 무전여행에서 몇 번의 고비는 그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가 찾아낸 것은 ‘잘사는 법’이 아닌 ‘좋은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간병인 중개 플랫폼 스타트업 케어닥의 박재병(33) 대표 이야기다.
“삶의 여정은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잖아요. 태어나는 것도 제 의지가 아니었고. 부모를 선택할 수도 없죠. 그러나 죽음은 그렇지 않은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잘 죽는 것,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고, 개인의 의지가 반영될 수 있으니까요. 죽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니까 오히려 삶의 무게감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죠.”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찾은 곳은 저소득층 할머니들이 모여 있던 부산 범일동 쪽방촌이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일종의 ‘부채감’이라고 이야기했다. 자주 찾지도 못하고 여행 내내 감감무소식이었기 때문에 할머니와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시작한 것이 ‘원스텝모어’라는 서비스다. 할머니들을 돕기 위해 평범한 이들이 사회공헌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보고자 시작한 사업이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세상이 할머니들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였죠. 하지만 항구적인 서비스를 하기에는 여러 문제가 많았어요. 가장 큰 문제는 한 사람의 간병을 간단한 기부 활동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었죠. 제가 가진 돈을 다 쓴다고 할머니들의 삶이 변화되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가족 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지 않고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이죠. 결국 개인의 노력이나 봉사활동 차원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고, 국가마저 해결할 수 없는 복지의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는 시스템을 생각했죠. 그것이 케어닥 탄생의 근간이 되었어요.”
박 대표의 이러한 결정에는 개인적 경험도 밑바탕에 있었다. 농부의 아내로 유복하지 못했던 어머니가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돌본 과정은 지켜보는 사람도 견디기 힘든 경험이었다. 그는 “과연 어머니의 인생은 무엇이었는지 되묻게 됐다”고 설명했다. 간병이라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고스란히 바치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케어닥에 녹아 있는 셈이다. 단순히 내 병시중을 들 누군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과 가족의 삶을 함께 구원해줄 수 있는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인생은 무엇이었나?”
“예전에는 가족이 간병하는 게 당연시되었잖아요. 특히 며느리나 딸이 그 대상이었죠. 과연 지금 사회에 그러한 체계가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죠. 설사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간병에 전념한다고 해도, 환자에게 전문성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그 가족은 벌어지는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케어닥은 2018년 탄생했다. 단순히 돌봄 인력의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서비스가 목표는 아니었다. 돌봄을 제공하는 간병인과 요양보호사, 그리고 노인장기요양시설과 요양병원, 요양원 등 요양기관의 정보를 돌봄이 필요한 환자와 가족에게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이를 위해서 그는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을 ‘정보의 비대칭’으로 보았다.
“단지 사업적 관점에서 정보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에요. 소비자 입장에서 화가 날 상황이잖아요. 터치 몇 번으로 동네 짜장면집의 리뷰나 평점은 쉽게 알 수 있는데, 부모님을 맡겨야 하는 요양기관의 정보는 제대로 알 수 없었죠. 5000원짜리 음식이 아니라 매달 수백만 원 간병비가 들어가는 일인데 말이죠. 그래서 정부에 관련 정보 제공을 요청했다가 여러 핀잔을 들었어요. 감당이 가능하겠냐는 얘기도요.”
그러다 2018년 여름 보건복지부가 열었던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공모전이 터닝 포인트가 됐다. 케어닥이 이 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으면서 공공 데이터에 접근할 권한을 확보했다. 케어닥의 ‘장기요양시설 찾기’ 서비스는 각 요양기관의 평가 결과와 함께 의료진, 돌봄 인력의 현황, 입소 인원수, 돌봄 프로그램, 수가 등 정보, 이용자들의 후기를 보여준다.
요양 서비스 핵심은 ‘인력’
창업 초기의 숙제가 ‘정보의 비대칭’이었다면 앞으로의 과제 중 하나는 ‘인력’이다. 박 대표는 요양 서비스의 수준을 높이는 데 장애물로 작용했던 ‘수가 중심’의 구조를 깨고 환자를 돌보는 인력에게 동기부여 방법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지금의 장기요양보험제도에서는 더 나은 품질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어요. 정부의 인력이나 관리 방법은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을 경우 벌주는 것 정도밖에 없어요. 더 잘했을 때의 동기부여는 빠져 있죠. 그러다 보니 정부로부터 ‘수가’를 받는 데에만 최적화되어 있어요. 안 하는 것은 계속 안 하고, 해야 하는 것도 수가 수령에 지장 없으면 안 하는 것이죠. 서비스 대상은 환자지만 사실상 모두 정부만 바라보고 있어요. 환자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 수단이 아니라 간병의 대상이자 소비자라는 인식이 생겨나야 더욱 전문적인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겠죠.”
그래서 케어닥에서는 간병인이라는 명칭 대신 ‘케어코디’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요양 체계에 맞춰진 근로자가 아니라 새로운 전문 직종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처음에 합류하신 분들은 저희의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왜 앱에 가입해야 하는지, 면접은 왜 봐야 하는지, 보고는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고 공감하지 못했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처우가 보장되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중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많은 분이 합류했죠.”
요양 서비스 업계는 지금 심한 인력난에 처해 있다. 케어닥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이러한 인력난은 배가 됐다. 고령화로 계속 수요는 늘어나는데, 간병 업무는 기피 직종이 돼버렸다. 요양기관의 집단 감염이나 코로나19 전파의 원인으로 간병인들이 지목당하면서 기존 간병인 중 업계를 떠난 이들도 많다. 박 대표는 결국 이러한 인력 공백 중 일부는 외국인 간병인들이 해결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보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도 지금 간병인 중 베트남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요. 그 자리도 원래는 한국인이 하던 것이었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 공급이 부족하다고 해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먼저 해야 할 것은 요양 인력을 전문가로 인식 개선하고 국가적으로 돌봄 종사자를 양산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도 결국 외국인 요양 인력은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좋은 인력을 어떻게 필터링하고 교육할지 고민해야죠.”
돌봄 인력에 대한 인식 변화해야
물론 요양 인력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개선도 중요한 과제다. 소비자들이 돌봄 인력을 함부로 대해 발생하는 갈등은 풀어야 할 요양업계의 오래된 과제다.
“돌봄 인력을 가정부 정도로 대하면 다행이란 얘기도 우리끼리 해요. 식모나 종으로 대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원래는 가족이 하던 일을 대신 하는 거잖아요. 딸이나 며느리라면 비용 없이 했을 일을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시키려니 아깝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아요. 업무 범위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죠. 돌봄 인력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시킬 수 있고,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가이드가 부족해요. 식사부터 빨래, 집안일까지 디테일한 논의가 필요하죠. 그 고민을 케어코디들과 함께 해나가고 있는데, 돌을 뚫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자리가 잡히면 쉽게 지나갈 수 있으리란 기대와 함께 말이죠.(웃음)”
그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인생의 졸업, 마지막을 좀 더 착실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가족끼리 요양시설에 관한 이야기는 기피하는 실정이죠. 일종의 금기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들어가기 싫다면 싫은 대로, 혹은 지내야 한다면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스스로 공부가 필요합니다. 상황이 벌어질 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해요. 막연히 버티다가는 결국 무작정 비싸고 좋은 곳만 찾거나, 그저 조건에 맞는 곳에 맡기는 선택을 해버리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두렵더라도 피하지 않고 학습해보면 막연한 공포를 이기고 더 나은 돌봄, 더 나은 황혼을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노년기의 삶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영위할 수 있을까? 고령화사회에 진입하면서 등장한 질문에 독서로 답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취미이자 문화적 수단이며, 건강을 챙기고 장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양한 연구결과가 독서가 노년기 삶의 행복에 꼭 필요한 요소임을 증명한다. 예일대 공공보건대학이 50세 이상 3653명을 대상으로 12년간 조사한 결과 독서하는 이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약 2년(23개월) 더 오래 산 것으로 밝혀졌다. 아예 독서하지 않는 이들에 비해 신문과 잡지를 읽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순으로 장수하는 경향이 드러났다. 또한 치매 예방에 독서가 갖는 중요성은 익히 알려져 있으며, 과학자들은 꾸준한 독서가 뇌를 자극하고 뇌 기능을 유지하는 데에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독서량과 독서 시간이 감소하고 있다. 2019년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19~29세의 경우 77.8%가 독서를 하지만 60세 이상의 경우 32.4%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2021년 60+책의해 추진단’은 60+세대를 대상으로 범사회적 독서 캠페인을 열었다.
내년 2월까지 진행되는 캠페인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후원을 받아 전국 단위로 시행 중에 있다. ‘60+ 책 사진 공모전’, ‘치매환자를 위한 책 선물’. ‘60+ 독서동아리 지원’ 등 종류가 다양하다.
그 중에는 코로나 시국 맞춤형 사업이 있다. 비대면 책 낭독 지원 프로그램 ‘전화로 책 읽어드립니다’는 나홀로 어르신 대상으로 낭독활동가가 전화로 20분가량 책을 읽어주는 사업이다. 고령층의 독서격차 해소 및 사회적 교류 지원을 목표로 올해 처음 시행된 이번 사업은 광주동구시니어클럽, 여주사람들,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세 곳에서 진행 중이다.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는 10월부터 140명가량의 어르신들에게 전화로 책을 읽어드리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걸려오는 전화에 대한 어르신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귀찮게 여기거나 중도 하차하는 어르신이 있는 반면, 낭독활동가에게 유대감이 생기면서 과거 이야기를 꺼내놓는 어르신도 있다. 정정훈 발로뛰어 자원봉사 담당자는 “직접 고른 소설책의 낭독을 들으며 여주인공의 모습을 직접 그림으로 그리고, 이를 낭독활동가에게 선물한 어르신도 계시다”며 “이번 달 내로 프로그램이 마무리 되면 낭독활동가들과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니어가 직접 출연해 ‘내 인생의 책’을 소개하는 영상 콘텐츠를 제보받기도 한다. ‘백 세 인생 내 인생의 책’ 프로그램에서 선정된 60+책의해 유튜브 채널에 10분 내외의 영상을 게재한다. 단순한 책 소개 영상을 넘어 책에 얽힌 삶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소통, 공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제로 사연에 공감하거나 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게 해줘 고맙다는 등의 댓글 후기들이 달리고 있다.
짧은 서평만 작성하면 간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공모전도 있다. ‘60+세대가 60+글자로 건네는 책 이야기’ 사업으로, 책을 읽고 60자 이상의 서평을 작성해 제출하면 된다. 특별한 양식이나 서적 목록이 없으며, 60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할 수 있다. 다달이 60편을 선정하며, 우수작에 선정되면 소정의 상금도 받을 수 있다.
독서는 하고 싶지만 마땅한 책을 고르지 못한 이들을 위한 책 추천 프로그램도 있다. ‘60+ 책 추천’ 프로그램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추천받은 60+ 세대 맞춤형 책들을 소개한다. ‘노년의 삶을 담은 소설과 시’, ‘오래된 사진으로 세월을 기억할 수 있는 책’ 등 60+ 세대가 관심 가질 만한 주제로, 주제 하나당 서너 권의 책을 추천한다. 올 연말은 책 한 권 읽으며 건강한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은 어떨까.
보건복지부가 2022년 노인일자리 및 사회 활동 지원 사업의 참여자를 모집한다. 신청 기간은 29일부터 내달 17일까지, 만 60세 또는 65세 이상이라면 조건에 따라 신청 가능하다.
노인일자리 및 사회 활동 지원 사업은 지난 2004년부터 노년기 소득 지원 및 사회 참여 활성화를 목적으로 시행됐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1955년~1963년생)의 노년기 진입 등 급속한 인구 고령화에 대비한 핵심 정책이다. 올해 82만 개에서 내년에는 84만 5000개로 확대 추진할 예정이다.
노인일자리 사업의 참여를 희망하는 경우 온라인 또는 방문 신청이 가능하다. 세부적인 사업 내용은 노인일자리 상담 대표전화(1544-3388)로 문의하면 된다.
먼저, 가까운 노인일자리 수행 기관 및 해당 기관에서 운영 중인 일자리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온라인 창구인 '노인일자리 여기'(www.seniorro.or.kr)를 통해 온라인 신청이 가능하다.
'노인일자리 여기'에 접속해 검색 창에 거주지 지역 명을 검색하면 거주지 내 위치한 수행 기관에서 운영 중인 일자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 중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선택해 신청하면 된다. 또 '복지로'(www.bokjiro.go.kr)를 통해서도 온라인 참여 신청이 가능하다.
방문 신청의 경우, 지방자치단체 별 행정복지센터(구, 동사무소)나, 가까운 노인일자리 수행 기관(시니어클럽, 노인복지관, 대한노인회 등)을 방문해 신청할 수 있다.
이번에 모집하는 일자리 유형은 공익 활동(노노케어, 학교급식지원봉사, 도서관 등 공공시설 봉사), 재능나눔활동(학대노인 예방·지원, 노인이용시설 안전관리), 사회서비스형(지역사회 돌봄, 노인맞춤돌봄 서비스, 보육시설업무지원), 시장형(소규모 매장 및 아파트 택배, 지하철 택배), 취업알선형(시험감독관, 주유원, 단순노무직, 관리사무직) 등이다.
참여자는 소득 수준 및 세대 구성, 활동 역량, 경력 등에 따라 고득점자순으로 선발되며, 지급 단가 및 선발 인원 등은 2022년도 예산 규모 확정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최종 선발 여부는 접수한 기관을 통해 12월 말부터 내년 1월 초 사이에 순차적으로 개별 통보된다.
보건복지부 고득영 인구정책실장은 "노인일자리는 참여자들의 노년기 소득에 큰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삶의 만족도 증가, 우울감 개선, 의료비 절감 등에서 성과가 있다고 인정할 만큼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2022년에는 급증하는 노인일자리 수요에 대응하여 사업을 양적으로 확대함과 동시에, 지역사회 돌봄 등 사회서비스형 및 민간형 일자리 비중을 확대하고, 사업 참여 노인의 역량 및 안전 교육 강화 등 사업 내실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라고 전했다.
노인일자리사업은 참여 노인에게 경제적·사회적으로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사업 참여 노인 가구는 미참여 가구보다 상대적 빈곤율이 7.3%p 낮고, 가구 소득도 월평균 17만원 많다. 또 스스로 경제적 상태가 좋다고 인식하는 비율도 사업 참여 후 14.9%p 상승했다. 이외에도 '건강이 좋아졌다', '인간관계가 좋아졌다', '아직 일할 수 있음을 느낌' 등 긍정적인 응답을 보였다.
이연수 관장은 자연에 심취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다. 자연과 밀접하게 교제하는 삶을 최상으로 친다. 미술의 여러 장르 중 조각이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지론의 소유자이기도. 이런 그에게 가장 인상적인 미술관은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이었다지. 자연과 조각이 잘 어우러진 이 미술관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마침내 조각 작품들을 근간으로 한 모란미술관을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원래 이곳의 자연 경관이 마음에 들어 미술관 터로 정했다. 조경을 하면서도 자연의 순리에 따랐다. 이곳에 있었던 나무와 돌, 풀들을 가급적 그대로 두고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경관을 조성했다.”
별다른 손질을 하지 않은 정원이 오히려 운치를 자아낸다. 인위적 기교로 세련미를 추구하는 여느 미술관들과 다소 다른 분위기다.
“모란미술관 자체가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라 말하고 싶다. 그렇기에 행복하다. 자연 안에서 자연을 배우며 성장하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어서.”
사립미술관마다 만성 적자로 고전하더라. 모란미술관은 어떤가?
“말도 마라. 지난 30여 년간 매해 2억 내지 3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재정 문제로 보자면 겁 없이 뛰어든 셈이지. 그러나 앓는 소리 할 것 없다고 생각한다. 미술 발전을 위한 봉사활동쯤으로 여기면 된다.”
한국화가 김병종 선생에 따르면 일본에는 1만 개 이상의 미술관이 있는 반면, 한국엔 겨우 160개 정도가 있을 뿐이다. 너무 또렷하게 대비된다. 한국의 문제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사람들은 여전히 예술보다 오락을 더 즐긴다. 어려서부터 미술을 경험하지 못한 채 성장하는 교육 환경에도 폐단이 많다. 모란미술관은 개관 이래 줄곧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 미술 체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해왔다. 미술의 토양을 다지는 데 꼭 필요한 일이라 봤기 때문에.”
선생이 생각하는 좋은 미술 작품, 좋은 미술 작가란?
“처음엔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작가가 좋은 작품을 생산하는 걸로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30년의 경험을 통해 알고 보니 작품은 곧 작가의 인성 그 자체더군. 사람의 됨됨이가 좋아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 영혼이 실린 명작은 선량한 인간성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작품과 작가는 분리해서 봐야 하지 않나? 어떤 비범한 부류는 인격보다 광기 어린 몰입으로 창작의 질을 높인다.
“그들을 일컬어 천재적 재능의 소유자라 하겠지. 아쉬운 건 너무 빨리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천재들이 있다는 점이다. 모란미술관과 인연을 맺은 작가들 중에도 돌연히 떠난 이들이 있다. 난 그들을 위해 해마다 천도제를 올린다.”
이 관장은 독실한 불자다. 인상적인 건 묘원의 무덤을 최고의 미술로 치는 심미안이다. “묘보다 뛰어난 조각 작품이 있을까? 봉분의 곡선미처럼 아름다운 게 다시 있을까?"
그는 미술관 옆에 있는 모란공원을 즐겨 거닌다고 한다. 묘지에서 삶과 죽음을, 그리고 예술을 성찰하는 것 같다.
신섭(83) 씨는 젊은 시절 약품을 옮기는 자전거 배달원으로 시작해 30대에 수십 개 회사를 운영하는 CEO로 발돋움했다. 뜻하지 않은 시련으로 몇 번의 좌절을 겪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재기했다. 은퇴 후 현재는 시니어 모델로 활동 중이다. 그를 만나 7전 8기의 여정과 더불어 포기하지 않는 삶의 가치와 의미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두산 등 대기업에서 본부장 및 대표이사를 두루 역임하고, 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며 가는 곳마다 경영인으로 승승장구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CEO, 지자체장과 같은 리더를 대상으로 리더십 및 동기 부여에 대해 강연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팬데믹이 닥쳤고, 그것은 하나의 기회이자 또 다른 전환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
“1년의 반은 해외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는데, 팬데믹 때문에 출국이 요원해졌어요. 처음엔 좀 갑갑했지만, 나중엔 방전한 것을 채우라고 준 기회로 여겼죠. 바빠서 못 읽었던 책들도 읽고, 구상했던 책을 출간하기 위해 틈틈이 글도 썼어요. 건강을 위해 사이클도 다시 시작했는데, 우연히 한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시니어 모델 공고를 봤어요. 밑져봐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그때부터 모델 아카데미에 다니기 시작했죠.”
젊은 시절 주위에서 모델을 해보라는 권유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형편이 어렵고 먹고사는 게 바빠서 차마 도전하지 못했던 모델의 꿈이 인생 후반전에 그렇게 찾아왔다.
“그간의 커리어와 다른 길이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어요. 모델 아카데미 1등 출석을 한 번도 놓친 적 없을 만큼 열정을 다해서 임했죠. 모델 도전은 처음이라 서툰 게 많았고 힘들기도 했어요. 청년 시절에 운동을 꽤 많이 했던 터라 몸으로 하는 건 자신 있었는데, 모델 동작을 익히는 게 쉽지 않았어요.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다시금 이렇게 설렘을 맛볼 수 있어서,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이었죠.”
첫 무대와 캐스팅
지난 5월 패션모델 선발대회 ‘2020 더룩오브더이어 클래식’(THE LOOK OF THE YEAR CLASSIC)에 시니어 모델로 처음 참여했다. 첫 무대에 선 기분은 어땠을까?
“오랜 세월 강연자로 무대에 섰기 때문에 첫 무대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다른 참가자에 비해 덜했어요. 오히려 연습할 때가 더 힘들었지요. 워킹은 굉장히 근사해 보이지만, 직접 해보니 신체적으론 다소 불편한 걸음이에요. 숙달하려면 적어도 만 번 정도는 연습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더군요. 타고난 끼나 재능은 부족했기에 노력을 많이 했어요. 동작 하나라도 몸에 익숙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연습했어요. 다행히 본무대는 긴장하지 않고 무사히 마쳤는데, 운 좋게도 포토제닉상을 받았어요.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고, 모델로 나아가는 데 용기를 불어넣어준 상이에요”
한편 포토제닉상은 또 다른 기회로 이어지는 교두보가 됐다. 바로 전속모델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캐스팅을 제안한 알렉스 강 EMA 대표는 “모델에 대한 간절한 의지가 눈망울에서부터 느껴졌다. 7전 8기의 삶에서 마주친 시련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다시금 재기한 끈기와 인내의 여정이 시니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고, 내면의 미를 가진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보았다”라고 말했다.
자전거에서 고급 승용차로
모델 이전의 그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하지만 사업가였던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나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그는 자전거 핸들을 잡았다.
“당시 교사 봉급으론 동생들 뒷바라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했죠. 사업가로 자수성가해서 집안을 일으키고 싶었어요. 차근차근 시작하기 위해 서울의 약국에 약품을 배달하는 자전거 배달원으로 살았어요. 후발주자였던 탓에 도심의 약국으로는 물건을 납품할 수 없었고, 서울의 변두리로 많이 다녔죠. 지금이야 길이 워낙 좋지만, 그 당시엔 정말로 길이 험했어요. 약품 상자를 가득 싣고 무악재 고개 같은 곳을 넘어 다니는 건 상상 이상의 중노동이었죠.”
그는 고구마 하나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부지기수였지만, 영어사전을 곁에 두고 늘 단어를 외웠다. 몇 달 지나자 고정 거래처도 생겼고, 짬이 날 때마다 영어 단어를 외운 덕분에 웬만한 도매상보다 약품을 더 해박하게 알 정도였다. 특유의 수완을 발휘해 차 한 대 분량의 물건을 대형 제약회사로부터 받아 일주일 안에 판 것이 도매상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처음 도매상을 할 때는 화물차를 임대해서 전국으로 다녔어요. 배달량이 많아진 이후로는 아예 화물차를 샀어요. 그것을 발판 삼아 나중엔 운수회사를 차렸죠. 운수회사와 더불어 주유소와 가스충전소도 운영했어요. 그렇게 건설, 중장비 등 관련 있는 사업체를 하나둘씩 늘려서, 30대 초반에 재벌 소리 들을 정도로 경영인으로 성공했죠. 20대 시절 기필코 10년 안에 자전거 대신 고급 승용차를 운전하겠다는 꿈을 세웠는데, 6년 만에 그 꿈을 이뤘어요.”
자살미수와 판매왕
그것도 잠시, 그가 자수성가로 쌓은 부와 명예는 한순간에 먼지처럼 전부 사라졌다. 그때 그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당시 제가 마약을 한다는 등의 음모성 투서부터 시작해 각종 루머와 더불어 세무사찰이 진행됐어요. 물론 모두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사업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결과적으로 회사를 도산해야 했어요. 정말 하늘이 무너진 기분이었죠. 피땀과 눈물로 이룬 성취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면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어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만, 그때는 그 구멍조차 생각할 여력이 없었어요. 삶을 포기하려고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어요. 물론 가족이나 친척에 의해 미수로 그쳤지만요. 제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절이었죠.”
당시 아내의 권유로 3년 반 정도를 기도원에서 지내면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실망 등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버리고,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몸이 불편한 장애인을 돌보는 것이 제 주요한 일과였는데, 봉사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꿈을 품었어요. 힘들다고 삶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보람차게 살기 위한 워밍업을 그때 한 거죠. 술과 담배, 골프 같은 유흥도 그때 끊었고, 지금까지 안 하고 있어요.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결연한 의지이자 맹세였거든요. 그곳에서의 시간은 재기의 큰 밑거름이 됐어요.”
기도원에서 나와 미국 브리태니커 한국지사 외판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질은 고급 승용차 한 대 가격과 맞먹었다. 경영인 출신을 우대한다는 공고만 보고 지원했는데 바로 합격했다.
“외판원 이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어요.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었거든요. 아이들은 뿔뿔이 남의 하숙집에서 살고, 아내는 아프고, 가족이 한 집에 모이려면 돈을 벌어야 했죠. 그때 체면과 자존심을 다 내려놓았어요. 첫 고객은 회장 시절 운전기사였어요. 가서 무릎 꿇고 사달라고 부탁했죠. 저의 간절함을 보고 흔쾌히 사주더군요. 하지만 파는 일이 마냥 쉽지는 않았어요. CEO를 하는 친구들을 찾아갔는데 회사 앞에서 잡상인 취급받고 쫓겨나기도 했어요. 마지못해 산 친구에게는 다음 날 육필로 쓴 전보를 보냈어요. 정말 미안하고, 앞으로 성공하면 이 빚을 제대로 갚겠노라고. 우여곡절이 참 많았죠.”
그는 “노크를 하고 들어간 방에서 팔지 못하면 시신으로 나오겠다”라는 심정으로 그 일에 임했다. 받을 수 있는 수수료가 매출액의 16%에 불과했지만, 그는 첫 달 월급으로 단칸방을 얻을 만큼 성과를 올렸다. 덕분에 뿔뿔이 흩어졌던 식구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됐다. 그의 절박함과 진심을 눈여겨본 고객들은 그에게 다른 고객들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54개국에서 판매 성적 1위라는 기록을 세웠고, 외판원 시절 글로벌 판매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비우는 삶
판매왕 이후 동아프라임, 한미약품, 일양약품 등 유수의 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경영인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너무 혹사한 탓일까? 원인 모를 고열로 병원에 40일간 입원하며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기적같이 살아서 돌아온 후 택시 기사로 한동안 살았죠. 그 이후 삶이 더욱 소중해졌어요. 스스로 몸과 마음을 돌보면서 작게나마 선한 영향력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었어요. 당시 IMF 시절이라 스카우트 제의도 뜸했고,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아 지리에 밝았어요. 내비게이션도 없을 때였지만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손님들과 좋은 얘기를 많이 나눴죠. 기사를 하면서 손님들로부터 좋은 기운을 얻은 덕분에 다시 재기할 수 있었고요.”
택시 기사, 외판원 등 자존심과 체면을 내려놓는 선택을 했을 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내와 가족의 묵묵한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우리 가족을 만난 것이에요. 사모님 소리 듣던 사람이 외판원, 택시 기사 아내로 변했는데도 한 번도 만류한 적이 없어요. 묵묵한 내조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택시 기사나 외판원을 할 때 자식들이 저를 창피해하지 않았어요. 그게 제일 고맙고 미안해요. 형편이 어려워서 아내가 면사포를 쓰지 못한 채 시집을 왔는데 올해 아내 생일날 자식들 덕분에 리마인드 웨딩을 할 수 있었어요. 애들의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KO를 당하고 다시 일어나 경기에 임하는 권투선수처럼 고비마다 난관을 헤치고 나아갔다. 이러한 삶으로부터 그는 무엇을 배웠을까?
“시련은 위장된 축복일지도 몰라요. 뜨는 해는 언젠가 지는 법이에요. 해가 진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잖아요. 해가 사라지면 별이 가득한 밤을 볼 수 있죠. 그래서 낙심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해요. 건강한 사람에게도 마음의 고통이 있듯이, 알게 모르게 누구나 아픔과 상처가 있죠. 시련 속에 있을 때 너무 자책할 필요 없어요. 자신을 믿고 조금씩이라도 정진하는 자세.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 그게 필요해요. 걸림돌이 디딤돌이 되면 더 멀리 가요.”
끝으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시니어에게 조언과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부둣가에 묶어만 두면 배는 영원히 출항하지 못해요.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삶이라는 항해에서 출항하지 않는 배로부터는 배울 수 있는 게 적어요. 출항을 시작했으면 목표를 세우고 끝까지 완수해야죠. 인생 2막의 목표는 비우는 삶이에요. 옷이나 책도 다 정리해서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했어요. 산문집과 마케팅 서적을 출간할 예정인데, 이 책의 수익도 다 기부하려고요.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간소하게 살고 싶어요. 모델이란 꿈을 이뤘지만, 명예에 목을 매고 싶지는 않아요. 무대에 선 그 순간을 즐기는 모델이 되고 싶어요.”
잠시나마 엿본 그의 삶은 마라토너를 닮았다. 그에게 시련은 마라톤의 사점(死點)과 같았다. 마라톤에서는 극한 고통이 따르는 사점을 넘어야 완주가 가능하다. 그는 시련을 극복하면서 자신만의 레이스를 완주했고, 더 나은 단계로 조금씩 나아갔다. 그것은 1등을 하겠다는 조바심이 아니라 완주를 목표로 한 간절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양의 유명한 철학자는 인간은 방황하는 한 노력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향성 없는 방황은 애매한 재능만큼 괴롭다. 시련 속에서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자신을 믿고, 남들이 비웃을지언정 자신만의 방향성을 잃지 않은 덕분이었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는 힘은 자신의 소신을 잃지 않는 뚝심과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다. 새로운 삶의 출발선에 놓인 그가 새로운 레이스를 멋지게 완주하기를 응원하며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