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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들면 한집에서 우리끼리 살아볼까?”
- 절친한 친구 사이, 우애 좋은 형제자매의 로망.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함께 사는 일이다. 꼭 그리 살아보자 약속을 했어도 지내다 보면 관계가 소원해질 수도 있고 누군가는 멀리 떠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꿈만 같은 상상을 현실로 만든 사람이 있다. 경기도 여주에 모여든 세 친구, 서울시 은평구 한옥마을에 둥지를 튼 삼남매. 이들의 집을 설계한 건축사 대표를 만나 집 짓기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 제공 요앞건축사 사무소, 삼공사건축사사무소 ◇ 세 친구, 럭셔리하면서도 소박하게 요앞건축사사무소 김도란·류인근 대표 남한강이 잔잔히 흐르는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내양리에 중고등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던 세 사람이 지은 집이 있다. 418㎡의 땅에 이들 부부가 사는 집 세 채와 공동생활을 위해 지은 커뮤니티 돔 한 채가 길게 들어서 있다. 같이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던 이들은 종종 귀촌해서 함께 살자고 했다. 김도란 대표 세 분이 오랜 친구이고 지금 60대 중반입니다. 공무원 생활과 개인사업을 하다가 은퇴하고 곧바로 집을 지었어요. 친구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귀촌한 케이스죠. 여주에는 아무런 연고도 없어요. 10여 년 전에 남한강에 놀러갔다가 풍광에 반해서 매물로 나온 땅을 즉시 매입했답니다. 세 분이 3필지를 샀어요. 공동소유입니다. 2015년 설계를 시작해 2016년에 완공된 세 친구가 사는 집. 건축주 3명과 그들의 아내까지 총 6명. 서로 의견을 조율하다 보면 작은 잡음이 생기곤 하는데 그런 일은 없었을까. 김 대표 없었어요.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으니까요. 그냥 같이 살자! 처음에는 건물 한 채 지어 함께 살겠다는 생각만 있었죠. 류인근 대표 미팅하러 여섯 분이 함께 오셔도 남편들은 빠지셨어요. “나는 뭐만 있으면 돼!” 이러고 세 분이서 당구 치러 갔다가 한두 시간 후 사무실로 들어와서는 “집에 가자” 그러기도 했어요.(웃음) 아내들이 대부분 아이디어와 의견을 냈습니다. 디자인이 나오기까지는 크게 세 번 정도 방향을 틀었다. 집을 길게 붙여도 보고, 특히 집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방향이 잡히고 난 뒤에는 세부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류 대표 집 방향이 사실 좀 문제였습니다. 남한강이 북쪽이거든요. 거실에서 강을 바라보느냐. 방에서 강을 바라보느냐가 관건이 됐습니다. 결국 거실에서 북쪽의 강을 보는 걸로 결정을 내렸어요. 대신 천장에 큰 창을 달아 직광이 들어올 수 있게 설계를 했습니다. 천장을 그렇게 처리하니 남쪽의 빛이 꽤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침실에서 보는 풍경도 좋아요. 논이 보이는데 사시사철 바뀌는 모습이 아름다워요. 세 친구가 구상했던 집은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할 공간이었다. 자연스레 시니어가 살아가기에 불편함이 없는 집을 건축하게 되었다. 김 대표 노년을 위한 집이기 때문에 100㎡ 규모의 단층으로 설계했어요. 다락도 있는데 주로 자녀가 방문할 때 사용합니다. 기본적인 공간은 1층에 다 있어요. 동선을 긴밀하게 연결했고 구성도 콤팩트하게 처리했어요. 사실 이 집은 더 먼 훗날 노년의 삶을 위해 만든 공간입니다. 지금은 아직 젊잖아요. 손주들이 자주 놀러 오는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오면 공간이 좁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북적거리고 좋다 하더라고요.(웃음) 세 채의 집 형태는 모두 같다. 똑같이 만드는 것이 목표이기도 했다. 같은 액수의 돈을 투자해서 진행을 했기 때문에 개인의 의견이 반영되면 공사비의 균형이 깨질 수도 있어 미리 합의한 사항이었다. 류 대표 실내 건축에 대한 의견은 별다른 게 없었는데 바깥 환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텃밭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이었어요. 커뮤니티 돔 뒤에는 부뚜막과 장독대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 옆에는 황토방을 만들고, 손주들이 와서 놀 수 있게 수돗가에 수영장 기능을 할 만한 공간을 넣어 달라는 주문도 받았어요. 김 대표 커뮤니티 돔도 만들었어요. 남편들은 여기에 전용 당구장을 만들고 싶어 했어요. 아내들은 밥 같이 먹는 공간이 되길 바랐고요. 그런데 당구대 설치는 사실 아내들이 더 원했어요. 남편들이 밖으로 나갈까봐요.(웃음) 나가서 술 먹으면 운전해서 오기도 어렵고, 걱정이 되잖아요. 함께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오픈형으로 만들었어요. 손님이 오면 잘 수도 있어요. 폴딩 도어를 설치해 날씨 좋은 날은 활짝 열어놓아요. ◇ 삼남매의 집 Privately, But Together 삼공사건축사 사무소 김덕호·윤효중 소장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을 간직한 삼남매가 함께 살기 위해 집을 지었다. 북한산 국립공원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들어선 그들의 집. 완공한 지는 올해로 1년을 갓 넘겼다. 진한 회색 벽돌로 지어진, 현대적인 감각의 건물이 보인다면? 바로 삼남매의 집이다. 김덕호 소장 모두 50대이시고 1남 2녀 삼남매입니다. 이분들 중 둘째가 학교 선생님인데 방학기간을 활용해 저희와 의견 조율을 했습니다. 위로는 오빠, 밑으로는 아직 결혼 안 한 여동생이 있다고 했어요. 삼남매가 같이 산다고 해서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도 자주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한잔하고 노래방도 같이 가고 정말 가깝게 지낸답니다. 우애가 깊어 보였습니다. 2017년도에 시작해 설계 6개월, 시공 후 완공까지 9개월이 소요됐다. 430㎡ 규모의 땅에 지은 2층짜리 건물 내부에는 방 8개, 주방 3개, 화장실 6개가 들어섰다. 첫째와 둘째가 함께 쓰는 공용 대문이 있고, 미혼인 막내 동생은 대문을 따로 냈다. 특별한 공간은 오빠의 집 욕실에 마련된 건·습식 사우나. 집에서 사우나도 하고 찜질도 즐길 수 있는 공간 마련은 내가 살 집을 직접 짓는 거라 가능했다. 김 소장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파트 생활을 많이 하기 때문에 시니어라도 집 지어본 분이 드물어요. 처음 지어보는 것이니 당연히 선호하는 스타일도 없죠. 그래서 설계할 때 정말 여러 가지 수를 제시합니다. 대문을 다 따로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집 형태보다는 밀도를 높여 사용하기 편하게 해주는 걸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그려볼 수 있는 도면이란 도면은 다 그렸다. 앞마당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원하는 방향에 그려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삼남매의 의견을 반영해 지금의 집이 탄생했다. 삼남매의 추억에서부터 시작됐지만 각각의 이해관계도 작용했다. 출장이 잦아 자주 집을 비울 수밖에 없는 오빠, 오빠의 아들 또한 직장일로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고, 둘째의 아들도 유학 중이다. 그래서 남은 가족이라도 가깝게 모여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누가 집을 비우면 서로의 집을 돌봐줄 수도 있고, 돌아왔을 때는 가족이 기다리는 푸근한 정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삼남매의 집은 앞의 세 친구 사례와는 다른 점이 있다. 투자 비율도 다르고, 각자의 사생활을 존중해, 함께하는 커뮤니티 공간은 만들지 않았다. 윤효중 소장 이 집은 누가 얼마만큼 투자했느냐에 따라 각각 평수도 다르게 잡았어요. 가장 많이 투자한 오빠는 2층과 다락과 옥상테라스를, 둘째는 1층과 함께 이어진 중정마당을, 막내는 독채를 쓰면서 나머지 귀퉁이 땅을 선택했어요. 오빠와 둘째는 공용 대문을 사용하지만 각자의 현관 스마트키가 따로 있죠. 투자비에 따라 공간을 정확하게 나눴지만 오빠 집에 모여 자주 밥도 먹고 돈독함을 자랑한다. 윤 소장 이 집의 콘셉트가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면서 함께 살자’이거든요. 내 공간에 함부로 들어올 수 없으니 공동 주거의 개념은 아니죠. 둘째도 중정 조경을 따로 했으니까요. 설계 혹은 건축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있었다면 추진되기 어려운 프로젝트였어요. 둘째 분이 중간에서 상황 정리를 계속했습니다. 형제의 우애가 아무리 좋아도 이렇게 모여 살기는 쉽지 않은데,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세 친구와 삼남매 집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 가지 공통점을 찾아냈다. 첫째, 친하다는 개념 그 이상으로 서로를 존중한다. 둘째, 투자나 재산의 목적이 아닌 노후까지 생각하며 오래 살 집을 지었다. 셋째, 집을 지으면서 의견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 마음과 달리 누구든 살면서 서로 부딪칠 수도 있다. 집을 짓기도 전에 의견이 맞지 않아 갈등이 생긴다면 함께 사는 걸 포기하는 편이 낫다. 같이 거주할 집을 꿈꾼다면 각자의 생활 패턴에 대한 디테일한 이해와 존중이 우선 있어야 하겠다.
- 2020-03-1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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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기 동호회 ‘신나는도보여행’ 오순도순 함께 걸어요!
- 산으로 들로 향하기 좋은 봄이 왔다. 움츠렸던 몸 기지개 펴듯 꽃망울 터지는 요즘, 크고 작은 여행 모임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다음카페의 걷기 동호회 ‘신나는도보여행’도 시동을 걸었다. 한 해 동안 건강하게 잘 걷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시도제에서 느린 걸음으로 서로를 생각하며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버스로 두 시간 달려 도착한 곳은 강원도 횡성군의 청태산 자연휴양림. 다음카페 ‘신나는도보여행’이 시도제를 위해 선택한 장소다. 산악회는 ‘시산제’라고 하는데 걷기 모임이기에 명칭을 달리해 ‘시도제’라고 부른다. 거의 매일 소모임으로 북한산이며, 곳곳의 도보길을 다니는데 이날만큼은 많은 인원이 함께했다. 올해 도보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무릎관절의 무사안위 염원(?)하는 시도제 휴양림 입구 주차장 맞은편에 마련된 무대 위의 시도제(始道祭) 상에는 시루떡, 고기, 포, 대추, 과일 등의 음식이 차려졌다. 실제 돼지머리를 대신할 큼지막한 빨간 돼지 저금통도 올려 구색을 맞췄다. 걷다가 당이 떨어질 걸 대비해 준비하는 젤리도 상에 올랐다. 시루떡 위에 ‘신나는도보여행’ 회원이 가지고 다니는 작은 깃발 두 개를 꼽고, 현수막까지 걸고 나니 분위기가 제대로 난다. 모두들 오래도록 건강하게 함께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축사를 낭독하고 한마음으로 절도 하면서 시도제를 마쳤다. 올해로 결성된 지 2년을 조금 넘긴 ‘신나는도보여행’은 신미숙 카페지기가 만든 모임이다. 다른 도보여행 카페에서 길 주최자(아는 길을 카페에 공지하고 도보여행 시 앞서서 걷는 사람)로 시작해서 운영자를 거친 도보여행 고수이기에 찾는 이들이 꽤 된다. “5년여 한곳에 소속돼 있다 보니 제 성향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보이더라고요. 활동을 접고 쉬었는데 저와 길을 걷던 분들이 섭섭해 했어요. 우리끼리라도 만나서 걷자는 마음으로 카페를 열었습니다. 정말 많은 고민 끝에 ‘신나는도보여행’을 만들었어요.” 청태산 길을 걸으면서 회원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예전부터 걷기를 통해 신미숙 씨를 알았다고 했다. 특히 ‘신나는도보여행’은 누구나 쉽게 오가는 카페가 안 됐으면 해서 비공개로 운영하고 있다. “카페 운영이 공개가 되면 일단 저희 초상권도 문제이고 일정이 노출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요. 자연 훼손도 문제예요. 저는 여행에 앞서 걸어보고 새로운 여정으로 연결해서 다닙니다. 가끔은 보호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생명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그런데 한 번 알려지면 사람들이 떼로 몰려가더라고요. 조용하던 길이 그렇게 훼손되는 걸 너무 많이 봤거든요.” 함께하는 사람들은 질서를 잘 지켜줘서 좋다. 얼마 전 들어온 신입 회원 박연희 씨는 그동안 다른 동호회에서 활동했는데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피로를 느꼈다고 토로했다. ‘신나는도보여행’의 경우 도보할 때와 버스 안에서의 음주를 철저히 금지한다. 카페지기가 준비해간 술 이외에는 마실 수가 없다고. 단 도보가 끝나고 나면 한두 잔 하면서 회포를 푼다. 회원 대부분이 50~60대이다 보니 될 수 있으면 편안하고 안전한 여행을 지향한다. 저렴한 경비로 많은 곳을 걷기보다는 좋은 길 하나라도 제대로 걷고자 한다. “우리들은 그럴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애들도 다 키웠고 직장생활 마쳤잖아요. 힘들게 무박에다가 좁은 버스에 끼어다니지 말고 회비를 좀 더 내더라도 우아한 여행을 해보자 했어요. 회원이 빠르게 느는 건 아니지만 저희 모임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만 와요.” 그래서 현재까지 회원 모집은 지인들의 소개로 이뤄졌다. 지인 추천이라 신뢰도 높고 좀 더 편안한 카페로 정착하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이 모임에는 퇴직 교사가 유난히 많다. 취재 당일에도 10명 정도의 퇴직 교사가 참여했다. 물론 회원 전체가 다 모이면 교사들이 이보다 더 많다. 신미숙 카페지기와 이전에 같은 동호회에서 활동했던 김경숙(해피·62) 씨도 교사 출신이다. “여기서 활동한 지는 2년 됐습니다. 은퇴하고 뭘 할까 고민하다가 도보여행을 하게 됐습니다. 산들네(신미숙 씨 닉네임)가 주최하는 모임에 가야지 생각했는데 따로 동호회를 만들었더라고요. 시니어는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여행 다니기가 쉽지 않아요. 길 안내하는 사람이 봉사정신이 없으면 동호회도 운영하기 힘들고요. 일단 여행을 좋아해야 해요. 우리나라가 고령사회로 접어들었잖아요. 나이 들면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여기 와서 사람들과 걷다 보니 몸이 개운해졌어요. 무릎 통증도 사라졌고요. 혼자서는 걷기 힘든데 이런 동호회가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고 너무 감사하죠. 시니어가 건강해야 국가 경제 또한 건강해지는 거예요.” 한 달이면 열흘 정도 걷는다는 김경숙 씨는 외국 트레킹도 해봤지만 경치가 좀 다를 뿐 우리나라 산을 걷는 것이 훨씬 좋다고 한다. 이날 후미에서 회원들을 챙기면서 걷던 정영일(코아이·64) 씨는 도보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뒷산에도 못 올라갈 정도로 약골이었는데 지금은 북한산 둘레길 걷기 모임 리더로 활동 중이다. “이전에는 걷는 게 힘들어요. 자꾸 참여하다 보니 늘더라고요. 지리산 둘레길도 완주했고, 서울둘레길은 세 번인가 돌았어요. 저도 걷기 모임에서 리더로 활동하잖아요. 선두로 걸으면서 속도 조절도 하고, 회원들 상황을 살펴가며 쉬어야 할 때를 적절히 판단해야 합니다. 시간 맞춰서 식사도 해야 하고요. 북한산 둘레길이 71.8㎞입니다. 회원들과 만날 때마다 10㎞ 정도씩 걸어요. 지금까지 두번 걸었어요. 다음주에 회원들이랑 또 갈 거예요.” 그런데 정영일 씨가 ‘신나는도보여행’에 나오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바로 술 마시는 재미란다. “퇴직하고 좀 쉬다가 요즘 하는 일이 있는데 늦게 끝나다 보니 평소에는 시간이 없어요. 여기는 술 마시는 재미로 와요. 걷는 시간도 유익하지만 끝나고 나서 친한 사람끼리 어울려서 한잔 마시는 게 참 좋습니다.” 신미숙 카페지기는 같은 취미를 통해 만나게 된 회원들을 가족이나 옛 친구보다 더 자주 본다고 했다. 앞으로도 도보여행을 통해 함께 건강도 지키고 마음을 나누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기를 바란다. “너무 무리해서 걷는 건 싫어요. 길을 걸으면서 그 시간에 취하고, 행복을 느끼고, 야생화 한 송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바라보는 마음, 그게 중요해요. 정상을 향해서 가는 것이 도보의 목적은 아니잖아요?(웃음)” ※ 라이프@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창회, 동호회 등이 있다면 bravo@etoday.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 2019-04-1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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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산에서 치러진 셀프 접골
- 산행은 봄·여름·가을·겨울 사철 쉼이 없다. 어린 시절 눈이 잘 오지 않는 따뜻한 남쪽에서 자랐던 터라,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 산행을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러다 설상에서 손가락 탈골사고가 나고 말았다. 자기 손가락을 스스로 접골하는 희대의 사건전말은 이렇다. 2013년, 새해 초부터 눈이 엄청 많이 내렸다. 그날은 학교 동문 전체 산악회에서 북한산 백운대를 등반했다. 아침에는 눈이 별로 오지 않았는데 도선사 입구 탐방지원센터에 이르자 폭설로 바꾸었다. 안내자가 “오늘은 입산통제다, 뒤돌아가라” 했다. 그 말을 듣고 회원들의 의견은 중구난방이었다. “기다려보자, 식당으로 가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기별 동창모임은 거의 또래이기 때문에 의견통일이 잘 안 되었다. 하지만 전체 동문모임은 달랐다. 기별, 나이가 뒤섞여 선후배가 따로 없었다. 일부는 하산하고 나는 20여 명과 함께 기다렸다. 소나기는 피하라고 했던가. 몇십 분이 지나자 눈발이 그치고 날이 환해졌다. 입산통제는 해제했지만 그동안 내린 눈이 발목을 덮었다. 하루재를 향해 걷고 있는데 또 시커먼 눈구름이 몰려왔다. 우리 일행 뒤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또 입산통제.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하면서 쌓인 눈을 헤치면서 산에 올랐다. 눈구름이 다른 날의 안개처럼 인수봉의 파도가 되었다. 인수봉은 파도에 묻혔다 솟아나기를 반복했다. 얼마 뒤 우리는 쇠줄에 매달려 백운산장을 거쳐 백운대에 올랐다. 백운대 상판에 상고대가 피어 있었다. 나뭇가지의 상고대는 가끔 봤지만 돌 위에 핀 몇십 cm 두께의 상고대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려올 때를 생각하지 않은 일행의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산은 내려올 때 더 조심하라고 했던가.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와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눈이 쌓여 보호용 쇠말뚝 머리 외에는 길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조심! 조심!”을 외치면서 발로 길을 더듬는 방법밖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젖 먹던 힘까지 내야 할 막다른 골목이었다. 모두 입을 꼭 다물고 거친 숨만 내쉬었다.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큰 사고가 없기만을 바랄 뿐 두 눈의 살기마저 느낄 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는데 손가락 감각이 좀 이상했다. 장갑을 벗고 보니 오른손 약지 끝마디가 축 늘어져 덜렁거렸다. 손가락 탈골이었다. 그런데 아프지도 않았고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도통 짐작이 되질 않았다. 접골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으나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하산 후 병원에 간다면 손가락이 얼어버릴 것 같았다. 해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왼손으로 셀프 접골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손으로 한 접골은 성공했다. 곧 손가락에 온기가 돌아왔다. 병원에 한 번 안 가고 후유증도 없이 그날의 탈골은 셀프로 마무리했다.
- 2018-12-1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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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인, 신현대 싱어송라이터협회장
- 자신의 직업이 산악인인지 가수인지 모르겠다며 웃는 남자. 1990년 ‘난 바람 넌 눈물’의 작사·작곡자이면서 노래까지 불러 대중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지만 마치 그 노래의 가사처럼 바람같이 사라져버린 가수, 신현대(62)를 마주했다. 대중의 시선 밖에 있지만 그는 지금도 여전히 가수다. 그리고 산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산악인으로 살고 있다.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 회장으로서 음악의 본질을 되물으며, 자연인이자 자유인으로서 살고 있는 그 내밀한 세계를 들여다봤다. 백미현과 듀엣으로 부른 히트곡 ‘난 바람 넌 눈물’로 대중에게 알려졌고 지금은 산악인이자 산을 노래하며 포크의 부활을 꿈꾸는 가수 신현대. 1956년생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말하자 그는 “요즘 동안이 너무 많아서 별 의미 없다”며 웃었다. 동안 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걸까. 아니다. 공연장에서 들은 그의 목소리에는 나이를 뛰어넘는, 시간의 무게를 털고 훨훨 날아가는 힘이 느껴졌다. 산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만의 산이 있는 것 “방송국에 가면 직업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산악인인지 가수인지.(웃음)” 일찍이 알프스 마테호른, 유럽 최고봉 엘부르즈, 그리고 히말라야 초오유를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한 그는 요즘도 매년 때가 되면 히말라야를 향해 떠나는 영락없는 산악인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여름만 되면 무전여행을 하느라 한 달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그의 핏속에는 유랑인의 감성이 흐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는 산을 사랑하는 방법이 아닌 기술만을 가르치는 작금의 등산 문화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북한산을 탄 사람들 중에 ‘종주하면 5~6시간 걸리는데 난 3시간에 갔어’라며 자랑하는 이들이 있어요. 그건 산을 다니는 게 아니에요. 북한산 코스는 어마어마합니다. 그 코스들을 다 올라야 하는 건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요. 그들은 북한산의 일부분만 본 거지 속살을 본 게 아닙니다. 진정한 산악인은 산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야 해요. 나만의 산이 존재하는 거죠.” 산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사계의 모습이 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산에 갈 때면 항상 식물도감을 가져간다고 한다. 산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보다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에서다. 8300m 산 위에서 여는 콘서트 ‘노트콘’ 산을 사랑하는 만큼 신현대는 산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 산과 음악을 함께 다룬다. 그가 최근 열중하고 있는 작업은 우리나라의 산 노래를 정리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산 노래들을 보면 일본 군가에 개사만 해서 붙인 곡들이 많아요. 산 노래를 정리한 사람도 거의 없었죠. ‘설악가’만 봐도 각 대학 산악회, 일반 산악회가 부르는 멜로디가 달라요. 그래서 일본 군가는 다 빼고, 내가 만든 ‘선인봉’ 등 산 노래를 집대성하고 있어요. CD 3장짜리 전집으로 제작 중인데 돈이 의외로 많이 들어가서 모금을 해서 제작하는 방법을 생각 중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돈도 안 되는 산 노래를 왜 만드냐고 한단다. 그러나 그는 에베레스트(8848m)를 갈 때도 8300m 높이까지 기타를 갖고 간 사람이다. 산이 높으면 숨이 차서 노래를 못하는데도 그는 고소 체질이라서 고산지대에서도 노래가 가능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산을 타기 위해 몸도 타고난 것일까. 그렇게 산과 노래를 함께 아우르는 그이기에 산 노래는 단순히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호흡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매년 2월에 노트콘(노래하는 산 트레킹 콘서트)을 하고 있는데 내년 2월에도 에베레스트 트레킹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어요. 작년에도 안나푸르나 갔다 와서 사진전과 콘서트를 했고 수익은 현지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으로 사용했어요. 같이 간 사람들이 글을 쓰면 그걸로 가사를 만들어 음반을 제작하기도 하고요.” ‘예쁜 얘기’만 해야 했던 방송이 부담돼 그는 “음악도 등산과 같다”고 강조한다. 꾸준히, 자신이 평생 추구해야 할 업으로 삼아야 진정한 가수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그는 히트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가수였다. 그러나 자신의 말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방송에서는 볼 수 없지만 그의 음악 활동이 멈춘 적은 없기 때문이다. “방송을 가면 예쁜 얘기만 해야 해서 싫었어요. 왠지 불편하고 거기에 무대공포증까지 있다 보니 방송이 체질에 안 맞더군요. 대신 콘서트는 계속했습니다.” 요즘도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얼마나 단련된 가수인지를 바로 알 수 있다. 후배이자 현재 제7대 국립국악원장인 왕기석 명창에게 배운 소리로 공연 전 단가와 가곡으로 목을 푸는 그는 과거에는 마당 세실에서 하루에 2회씩 30일 연속 공연을 한 적도 있다. 룰라의 히트곡 ‘비밀은 없어’를 작사·작곡한 박선민, 김광석의 노래로 유명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원작자인 블루스의 대가 김목경과는 공연장에서 인연을 맺어 지금도 함께하는 동료다. “미디어에 나오지 않아도 꾸준히 음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타를 만들려는 지금의 세태가 어린아이들의 꿈을 죄다 연예인으로 만들고 있어요. 왜 그리도 부추기는지 모르겠어요. 연예인이 아니어도 가수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음악에서 받은 것 음악으로 돌려줘야 한다 사단법인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최근 ‘명가의 품격’이라는 이름의 시리즈 공연을 하고 있다. 6월부터 이치현, 김목경, 백영규, 추가열 등 소위 대가로 불리는 싱어송라이터들이 학동 엠팟홀에서 릴레이로 진행하는 이 공연은 대한민국 가요의 역사와 지난 세월의 다양한 면모를 관록의 힘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예전에도 싱어송라이터협회 같은 모임이 있긴 했어요. 그러나 몇 번 해산되었다가 사단법인으로선 이곳이 처음이죠. 등록 회원은 350명 정도 됩니다.” 그가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를 맡게 된 이유는 ‘산에서 받아먹은 건 산으로 돌려줘야 하고 음악에서 받아먹은 것은 음악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는 엠팟홀과 MOU 형태로 계약을 맺고 싱어송라이터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을 마련했다. 또한 매해 헌정 콘서트를 진행하는데 올해가 5회째이며 헌정 가수는 조동진으로 결정됐다. “어린 친구들은 연예인이 돼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음악을 하는 경우가 많죠. 우리가 노래하던 시절에는 그저 노래가 좋아서 가수가 된 경우가 많았어요. 누군가는 다 똑같지 무슨 차이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어요.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오래 노래 부를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좋아서 노래를 시작한 사람들은 누가 뭐래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묵묵히 자기 길을 갑니다.” 사람들의 가슴에 종을 울릴 수 있는 노래 사실 ‘난 바람 넌 눈물’은 완성하기까지 5~6년이 필요했다.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기술적인 것보다는 상대방 가슴에 있는 종을 울려주는 일’이라는 신현대의 지론. 그런 그가 사람들 가슴속 종을 울릴 수 있는 노래를 만들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노래를 굉장히 잘할 때가 있고 못할 때가 있어요. 속에서 솟아오르지 않을 때는 공연을 해도 할 노래가 없어요. 하기가 싫은 거지.” 그의 말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자연인’이었다. ‘자연인 신현대’는 거침이 없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제주의 둘레길이 유명해지니까 산에 별것 다 만들고… 그런 길들을 보면 정말 견디기 힘들어요. 모기만 늘어났으니…. 얼마 전 광화문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노래인 ‘산양의 노래’를 불렀어요. 거기서 백기완 선생을 만났죠. 오랜만에 봬서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는데, 후배가 그걸 보고선 ‘형, 좌파야?’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야 임마, 난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고 실파다. 파가 어디 있어 임마,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서 찍은 거지’ 했어요. 누구를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의 자유인 거지요. 있는 그대로가 좋은 거지, 그것 가지고 뭐라고 해선 안 되죠.” 자유로운 삶이 보상해주는 즐거움 “일을 벌일 때는 ‘내가 지명도가 더 높으면 일하는 게 편했을 텐데…’ 할 때가 있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무 때고 술을 먹을 수 있고 누가 알아보는 것도 아니어서 편해요. 그걸 고맙게 생각해요.” 자유인으로 살고 있는 그에게 미래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없으면 안 먹고, 있으면 먹고, 주위 사람들과 함께 지금처럼 살다가 떠날 때 되면 자연스럽게 떠나면 된다는 그의 말에는 무위자연의 인생관이 담겨 있었다. “후배 아버지 한 분이 기억나는데, 그분이 정말 멋있었어요. 술을 좋아하셨는데, 임종 세 시간 전에 아들에게 위스키 한 잔을 달라고 하셨답니다. 아들이 갖다 주니 그걸 마신 후 돌아가셨대요. 그 술맛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 술맛은 낙원의 맛이 아니었을까. 그가 추구하는 낭만과 자유처럼, 신현대의 삶은 제3자의 눈에는 너무도 달콤하게 보였다. 속박에 얽매이지 않고 훨훨 나는 듯한 그 자연스러움이.
- 2018-07-0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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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맛본 판소리의 매력
- 국민대학교가 주관하는 풍류나누기 ‘명인시리즈’를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국민대학교에 근무하는 동생에게서 지나가듯 들었던 것인데 이번 프로그램이 마침 판소리 공연이라는 소식에 귀가 번쩍했다. 남편이 “나이가 드니 판소리 같은 우리 가락이 좋아진다”는 말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 이참에 나도 한번 들어보자’라는 생각에 급히 공연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공연장의 운치 또한 그만이었다. 국민대학교 후문 옆에 멋진 고택이 자리하고 있었다. ‘명원민속관’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60칸짜리 양반 고택인데 원래 구한말 한성판윤을 지낸 한규설 대감의 장교동 집을 도시개발과 함께 이 자리로 이전한 것이란다. 북한산 자락을 끼고 솟을대문, 사랑채, 안채, 별채, 행랑채뿐 아니라 연못이 조성된 녹야당이라는 이름의 초당까지 그야말로 그윽한 도심 속의 휴식처였다. 공연은 안채 대청마루에서 열렸다. 병풍을 둘러친 앞쪽이 무대이고 북이 놓인 아래쪽에 가지런히 방석이 놓여 있었다. 이 또한 정겨웠는데, 낡아서 부실한 무릎이 견뎌줄 것인지 걱정이 앞섰다. 오늘의 주인공 판소리 창은 전남대 예술대학 국악과 교수이자 중요무형문화재인 전인삼 명인이다. 등장하자마자 자신은 인삼이지만 형님은 산삼이라는 우스갯소리로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도입부 ‘진국명산’이라는 단가를 디저트로 삼은 뒤 곧이어 ‘춘향가’ 중 ‘십장가(十杖歌)’로 넘어갔다. ‘십장가’는 이름 그대로 변 사또의 수청을 거절한 춘향이 곤장 열 대를 맞는 장면이다. 매를 맞을 때마다 그 숫자에 맞추어 고사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처연한 심사를 표현하는 노래다. 명창의 쇠를 긁는 듯한 탁성으로 슬픔을 고조시키니 가슴을 저미는 아픔이 전해졌다. 두 번째 노래는 ‘흥부가’ 중 ‘놀부 박 타는 대목’이다. 동생 흥부가 떨어져 다친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큰 복을 받은 사실에 샘이 난 놀부는 일부러 제비 다리를 제 손으로 부러뜨린 뒤 고쳐주고 역시 같은 복을 기다리다가 혼이 나는 대목이다. 앞의 ‘십장가’와는 달리 재미와 해학이 넘친다. 그래서 리듬도 주로 휘모리장단과 중모리장단이 많이 쓰인다. 창자도 흥이 나서 발짓 몸짓을 하며 청중을 웃긴다. 판소리는 세계에서 유래없는 우리만의 고유한 음악 장르다. 당시의 하층민을 중심으로 이런 음악이 탄생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나 사설 내용은 사대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대단히 수준 높은 현학적인 고사들로 이루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마당극 형태의 이런 음악이 당시 상류층의 지원으로 공연되었다는 점이다. 마치 르네상스 시절의 피렌체의 메디치가 같은 스폰서십을 연상케 한다. 내용을 듣고 있자니 한국적 정서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주제를 권선징악으로 뭉뚱그리지만 그런 교훈적인 면은 양반 스폰서에 대한 립 서비스이고 내면에는 강렬한 반항의식이 숨 쉬고 있다. 권력이나 신분을 이용한 갑질에 대한 저항정신은 오늘날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다. 창과 고수의 북소리가 어우러지는 중에 한 시간 반이 후딱 지나갔다. 무아지경에서 깨어나자 그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무릎이 비명을 지른다. 다리는 아프지만, 우리 정서의 정체성을 확인한 뿌듯함이 더 컸다. 그런데 TV의 국악 프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2018-06-1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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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 건강하게 걷고 싶은 당신을 기다린다!
- ‘걷기’가 열풍을 넘어 생활이 됐다지만 지역마다 생겨난 ‘길’을 제대로 찾아 걷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 걷다 보니 계획했던 길을 찾지 못할 때가 있고 결국 ‘중도 포기’란 말로 마침표를 찍기 마련. 어디든 아무 곳이나 막 걷는 것이 아니라 완주의 기쁨을 느끼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꼭 주목하기 바란다. 매년 봄가을 함께 걷는 행복과 즐거움을 알기 위해 100명의 사람이 뭉친다. 바로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다. 건강을 위해 걷고 행복한 삶을 찾아 떠나는 이들과 길을 나섰다. 춘풍 맞으며 자연과 맞닿은 길을 걷다 봄꽃이 피기 시작한 어느 주말 아침,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이하 100인 원정대)가 서울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 4번 출구 앞 공원으로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함께 걷기로 한 곳은 서울둘레길 2코스(용마산·아차산)로 12.6km, 5시간 10분이 걸리는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은 곳이었다. 3월 17일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서울둘레길 걷기를 시작한 100인 원정대는 6월 9일 서울둘레길 8코스인 북한산 구간을 끝으로 마무리한다. 묵동천, 망우산, 용마산, 아차산을 연결해 걷기 길을 조성한 2코스는 서울둘레길 중 풍광이 뛰어나 추천하는 이들이 많았다. 애국지사 묘역인 망우묘지공원과 아차산 보루 등 역사와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곳이기도 하다. 걷기에 앞서 원정대원들이 둘레길 우체통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섰다. 서울둘레길 스탬프북에 도장을 찍기 위해서였다. 도장으로 스탬프북을 다 채우면 서울둘레길 완주 증명서를 발급받게 된다고. 요즘에는 스마트폰에 스탬프북 애플리케이션이 있어서 도장을 찍기 위해 줄 설 필요가 없다. 그래도 도장은 직접 찍어야 제 맛. 보라색 다양한 문양의 도장으로 채워지는 원정대의 스템프북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부럽기까지 했다. 인원 체크를 끝낸 진행요원과 원정대원들은 간단하게 몸을 풀고 난 뒤 묵동천을 따라 걷는 것으로 서울둘레길 2코스 완주길에 올랐다. 시냇가를 지나고 밭도 지나다 보니 진달래가 곳곳에 피어 원정대의 발길을 잡아끌기도 했다. 경의중앙선 양원역을 지나 중랑캠핑숲에서 잠시 쉰 원정대는 망우묘지공원 산책로를 밟았다. 10개 조로 나뉜 100명의 원정대원은 트레킹 전문가와 함께 속도를 맞춰가며 걷는다. 초보자에게 100인 원정대를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전하게 완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건강을 걷기로 챙길 수 있을까요? 100인 원정대는 2014년 가을 서울둘레길 개통에 맞춰 대원을 선발하기 시작해 올봄 여덟 번째 기수를 맞았다. 서울시와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주관으로 봄가을 두 번 100인 원정대를 모집한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여 매주 토요일 지정한 코스를 함께 완주한다. 첫 만남은 어색하지만 헤어질 때가 되면 가족만큼이나 가까워진다고. 서로 도우며 넘은 산이며 들에 추억이 쌓이다 정도 든다. 사실 100인 원정대가 생겨난 이유는 간단했다. ‘새로운 걷기 길 홍보’다. 4년이 지난 지금은 홍보를 넘어 시민 복지와 건강에 초점을 맞춰 원정대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이번 기수의 경우 건강 측정도 함께 진행했다. 걷기 전, 걷는 중간, 둘레길 완주 뒤 체중과, 체지방률, 근골격량, 기초대사량을 측정해 건강이 개선된 우수대원에게 시상도 계획했다. 결과는 100인 원정대 8기가 활동을 마무리하는 6월 9일 이후 공개한다. 100인 원정대를 통해 서울둘레길에 애정을 갖게 된 대원은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에서 아카데미 교육을 이수한 뒤 리본 달기를 비롯한 다양한 자원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다. 오는 9월이 되면 9기 100인 원정대를 선발한다. 원하는 사람은 서울두드림길 홈페이지(gil.seoul.go.kr)를 참조하면 된다. ※ 라이프@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창회, 동호회 등이 있다면 bravo@etoday.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 2018-06-1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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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 ‘궁남지’ 여행 어때요?
-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토요일,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부여를 여행했다. 부추겉절이를 넣어 먹는 독특한 곰탕으로 따뜻하게 점심을 먹은 뒤 궁남지를 찾았다. 가늘게 내리는 빗속의 궁남지 분위기는 그윽하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634년) 때 만든 왕궁의 정원이라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만든 연못으로 삼국 중, 백제의 정원 기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10여 년 전, 궁남지를 찾았을 때는 초여름이었다. 남편의 직장 따라 대전에 와서 살 때였고 서울에서 놀러 온 두 친구에게 충청 지역의 뭔가를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마침 궁남지 연꽃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었던 터라 함께 갔다. 엄청나게 큰 연못 가득히 피어 있는 연꽃도 놀라웠지만 세숫대야만한 연잎과 연꽃으로 눈이 동그래졌다. 연잎은 우산으로 삼을 만큼 정말 컸다. 사진작가들이 떼 지어 몰려와 연못 곳곳에서 사진 찍느라 몰입해 있었는데 충분히 가치 있어 보였다. 친구들이 궁남지에 만족한 것은 물론이다. 그 뒤 한강 두물머리 세미원의 연꽃을 보면서도 감탄하였지만 내 기억 속에 ‘연꽃 1번지’는 여전히 '궁남지'이다. 그런 연꽃을 기대하기는 이른 오늘, 뜻밖에 연못 가득히 수련이 피어있다. 흰색, 붉은색, 노랑어리연까지. 연못 주변을 천천히 산책한다. 이 고즈넉한 풍경을 가리기 싫어 우산을 접고 비옷만 입고서. 자연의 생동 발랄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낀다. 문득 스치는 달콤하고 익숙한 향기가 있다. 찔레꽃이다. 며칠 전 다녀온 북한산에도 찔레꽃이 많지만, 아직 피기 전이었다. 빗속에 깨끗하게 핀 찔레꽃에 코를 가까이 대어본다. 역시 매혹적인 냄새다. 마치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반가운 친구 같다.
- 2018-06-0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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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세 건강을 담보하는 산책길
- 현직에 있을 때는 주말에 아내와 가끔 산을 오르며 심신의 피로를 풀곤 했다. 정년퇴직 후엔 수도권에서 생활하면서 가까운 친·인척이나 친구들이 오면 환담을 하며 산책을 했다. 그중 3~4시간 코스로 ‘100세 건강이 저절로 담보되는 세 길’을 추천하고 싶다. 그 길은 북한산 둘레길(1~21구간 중 선택), 한강변과 한강변 다리를 따라 걷는 길, 수원 화성 성곽길이다. 북한산 둘레길 북한산과 도봉산 주위를 빙 돌아 이어지는 72.8km 길이다. 기존의 샛길을 다듬고 연결해 21개 코스로 나눈 뒤 테마를 구성한 길로 2011년 6월 30일 개통되었다. 한 구간이 짧게는 1.5km에 45분 코스, 길게는 6.8km에 3시간 30분 코스로 다양하다. 두세 코스를 묶거나 단일 코스를 선택해 걸을 수 있다. 아내는 몇 달 걸려 북한산 둘레길을 완주했다. 6구간 평창마을길, 11구간 효자길, 12구간 충의길, 17구간 다락원길, 18구간 도봉옛길, 21구간 우이령길을 걸을 때 필자도 동행했는데 북한산 둘레길을 다 돌고 나니, 북한산과 도봉산, 그리고 둘레길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많은 사람의 일상이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다. 한강변과 한강변 다리를 따라 걷는 길 2008년 뇌수술을 마치고 요양할 때 건강 회복 여부를 테스트하기 위해 아내랑 잠실대교 근방에서 성산대교까지 걸어봤다. 한강변은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북쪽 한강변 쪽으로 걷다 보면 큰 다리를 16개 정도 지나는데 거리가 22km쯤 된다. 쉬엄쉬엄 걸으면 대략 6시간이 걸린다. 자전거를 타고 가도 되고 마라톤을 즐길 수도 있다. 물론 거리와 시간을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고 서쪽에서 동쪽,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입과 방향도 개인의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필자는 친구들이나 친·인척이 오면 가볍게 식사를 한 후 이 길들을 함께 걷곤 한다. 수원 화성 성곽길 수원 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둘레 6km에 화성행궁까지 약 7.5km 걷는 코스로 대략 2시간 정도 걸린다. 매교역에서 수원천을 거쳐 남수문, 봉화대, 창룡문, 화홍문, 장안문, 화서문, 서장대, 화서문, 화성행궁까지 도는 데는 약 11km에 4시간가량 소요된다.
- 2018-04-1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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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나들이 어디로 갈까
-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오는 요즘. ‘방콕’이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분들 계신가? 부부가 혹은 가족끼리 또는 동성 친구끼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곳, 게다가 ‘먹방’까지 기대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볼까 한다. 경춘선 기차여행[김유정역]_실레마을 이야기길 따라 점순이를 만나다 7호선과 경의중앙선이 교차하는 만남의 장, 상봉역. 춘천 가는 기차는 대성리, 가평을 지나 출발한 지 72분 만에 멈춘다. 내린 곳은 근대문학 ‘봄봄’, ‘동백꽃’의 산실, 실레마을이 있는 김유정역. 역사 맞은편으론 ‘비단으로 병풍을 두른 산’, 금병산이 포근하게 안아준다. 역사를 빠져나와 약 5분 정도 걸었을까. 버선발로 마중 나온 ‘점순이’를 만난다. “그새 좀 컸는가? 반갑단 말보다 다짜고짜 키부터 재 보는데 잘 봐야 내 겨드랑 밑에서 넘을락 말락. 또 고갤 숙일밖엔 도리가 없다. 딸이 더 자라야 성례를 시켜줄 수 있다며 차일피일 미루고 일만 시키는 장인, 아버지를 못마땅해하면서 나를 충동질해대는 점순이, 반발하다가도 끝내 이용만 당하는 나는 정말 어리석은 머슴이던가. 빙장님, 올가을엔 꼭 성례를 시켜줘요. 더 이상은 못 참아요. 장인의 약속을 반신반의하며 뒷골 콩밭으로 향한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린 비로 안 그래도 고즈넉한 잣나무, 소나무 숲 사이 길은 더없이 폭신폭신. 그 순간이다. 왁자지껄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녀들이 다가오는 게 아닌가. 결코 머물 수 없는 눈웃음의 그녀들이.” 아주 치명적이었던 들병이들 ‘눈웃음 길’을 스치듯 빠져나오면서 그 들병이 꾐에 빠졌던 근식이가 걷던 그 ‘한숨사연 길’을 돌아본다. 오죽하면 자기 집 솥을 훔쳤을까? 세월의 무게만큼 겹겹이 쌓인 잣나무 가지들을 밟고선 심호흡 여러 번에 팔다리도 죽죽 펼쳐본다.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에 가장 많이 뿜어낸다지 아마. 이윽고 마주한 두 갈림길. 어느 쪽을 택할 텐가? 동백꽃(생강나무) 길 따라 정상도 좋겠고 산골나그네 길 따라 터벅터벅 걸어도 좋겠고. 오늘은 기어코 산골나그네가 병든 남편을 끌고 사라진 으슥한 산 저편으로 가볼 텐가? 김유정역 실레마을에선 김유정문학촌을 구경하고 난 다음 둘레길인 ‘실레마을 이야기길’을 반드시 한 바퀴 산책해야 한다.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의 그곳, 인쇄박물관이 지척에 있는데 많은 분들이 모르고 그냥 지나치고 만다. 김유정 선생이 귀향해 야학을 일으켰던 곳, 금병의숙(錦屛義塾)에서의 인증샷도 의미 있겠고 기차카페로 개조된 폐김유정역에서 타임킬링도 가성비 있다. 인근엔 레일바이크 장도 있고. 또 '먹방'도 빠질 수 없으리. 춘천 하면 닭갈비 아닌가? 역전에서 ‘점순네’를 찾으시라. 꽃 피고 새 우는 고궁 산책[창덕궁]_덕혜옹주가 남긴 마지막 메모를 찾아서 4월 어느 날. 마침 하늘빛은 미세먼지를 걷어내고 바깥 기운도 그리 차갑지 않다. 어제 생일을 챙겨주지 못한 아내를 위해 함께 집을 나섰다. 막상 어디로 가야 하나? 눈치를 살피는데 그냥 ‘가까운 곳’으로 가잔다. 더 어려운 숙제라고?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반겨주는, 다리품 많이 팔지 않아도 되는,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은 어떨까. 1405년 태종 때 제2의 왕궁으로 창건되어 임진왜란 이후 불타버린 경복궁을 대신한 곳. 마지막 임금 순종 때까지 약 270여 년간 왕조의 정궁 역할을 한 곳. 그나마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시크릿 가든’인 후원이 있어 자연과의 조화미와 전통의 조경미를 만끽한 적 있으신지. 그러나 오늘의 관심사는 따로 있다. 바로 낙선재! 경복궁의 건청궁이 그러하듯 창덕궁 내 단청을 하지 않은 유일한 곳. 여인의 '비운' 같은 게 서려 있다고나 할까? 일본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가 말년을 보낸 곳(정확히는 낙선재의 우측 끝에 있는 수강재). 두리번두리번 돌아서 드디어 만난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어쩌면 혼신의 힘으로 써내려간 것일까. 그녀의 마지막 편지(메모)에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옹주는 1989년 4월 12일, 향년 77세로 이곳 낙선재에서 운명한다. 새들이 우짖고 꽃들이 피어나는 4월이면 다시 찾아오고 싶은 곳. 올봄에 방문하신다면 한 가지 추가할 곳이 생겼다. 작년 말에 재개관한 창경궁 대온실이 바로 그곳. 후원 쪽으로 가면 이웃한 창경궁과 연결되는 출입구가 있는데 지척이니 함께 둘러보면 ‘엄지 척’ 장담할 수 있다. 세종마을 도보여행_이 골목 저 골목 헤매기 좋아라 세종마을은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부 지역을 말한다. 경복궁 서편에 있다 하여 북촌에 대비해 ‘서촌’으로 소문난 곳이다.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입구를 나와 대로를 따라 걷노라면 이윽고 우리은행 건물이 나타난다. 도보여행은 여기서부터 ‘딱’이다. 좌측 골목길로 접어들면 세종마을의 주요 목적지 중 하나인 ‘이상의 집(터)’이 나온다. 백부의 권유로 건축과에 입학한 시인은 1929년 3월, 수석으로 졸업하는데 화가의 꿈을 늘 간직하고 있었다고. 얼핏 카페 같은 이곳엔 비밀의 문이 있는데 그곳을 통하면 잠시나마 그와 호흡할 수 있다. 한 걸음 두 걸음 올라선 다음 이내 날개를 펼쳐 오래된 기와지붕 위로 훨훨 날아올라보라. 이걸 놓치고선 여길 다녀갔다 말할 수 없으리. 할머님과 며느님께서 푸근한 미소와 여유로 차근차근 귀엣말하시듯 이곳저곳 소상히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있는 헌책방’이 다음 코스다. 고인이 된 창업주 할아버지가 결혼하면서 부부의 가운데 이름을 따서 상호로 정했다는 곳, 대오서점이다. 분수를 아는 즐거움 정도로 해석되는 가훈 이야기, 다락방 사연, 풍금 이야기, 드라마 ‘상어’의 주인공(손예진과 김남길) 뒷담화(둘은 흥행작 ‘해적’에서 다시 인연을 이어간다)까지 줄줄 풀어놓으셨는데 그동안 세월이 좀 흘렀나보다. 없던 액세서리 진열대도, 사진 촬영금지 팻말도 보이고 그새 입장료(2500원)도 훌쩍 인상됐다. 오늘따라 주인장도 안보이고 대신 시니어 알바께서 맞이해준다. 가수 아이유가 앨범사진을 찍었다는 상업적 내음 물씬 나는 설명엔 노코멘트할밖에. 좀 걷다 보면 공통으로 생각나는 건 뭐? 때맞춰 신기하게 나타난 곳이 ‘통인시장’이다. ‘골라먹는 맛과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잡도리 쉼터 파라솔 아래에서 ‘셀프’로 즐기기도 편하다. 먼저 1인 5000원 하는 도시락을 구입하면 되는데 엽전 열 냥을 제공하니 하나에 500원인 셈. 그 복잡한 골목길에서 기다랗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 박노수미술관을 지나서 수성계곡 물소리를 벗 삼아 기린교를 건너는 상상도 분명 힐링이다. 다리품을 팔아 ‘시인의 언덕’에 오르면 북한산은 물론 북악산 아래 청와대, 경복궁 일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교통 편리한 역세권에 세종대왕, 정철을 비롯해 수많은 다양한 인물들이 살다 간 흔적이 이리도 집약된 곳 또 어디에 있을까? 종로구에 신청하면 해설사와의 동반 투어도 가능하니 봄날엔 놓치지 마시라. 서촌에 바람이 부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 봄날은 가고 있다.
- 2018-03-0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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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띠 남편과 사는 아내가 말하다, ‘58’의 일그러진 영웅들
- 2018년 1월 1일. 짝지의 60세 생일이다. 이제는 헤아리기도 버거운 시간을 지내왔다는 사실이 낯설다. 그 많은 시간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어쩌다 보니 같이한 세월도 34년이다. ‘인생 금방’이라는 선배들의 푸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그 시절 데이트는 대부분 ‘두 발로 뚜벅뚜벅’이었다. 좋아서 걷고, 작업하려고 걷고, 돈이 없어서 걷고, 사색하느라 걷고. 애꿎은 다리만 중노동하듯 시달렸다. 남자 친구가 학교에서 여자 친구를 만나 집까지 데려다 주다가 통금에 걸려 파출소에서 잤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남산, 능동 어린이대공원, 경복궁, 덕수궁, 동숭동, 인사동, 명동, 북한산, 수락산, 소요산 등등 참 많이도 걸었다. 그중 최고는 조국순례대행진! 8월 1일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대학생들이 한곳에 집결해 광복절 기념식을 하는 국가적 행사였다. 학교당 4인 1조로 참여하는 이 걷기순례에서 많은 추억과 인연이 만들어졌다. 필자 팀은 김천에서 출발해 청주까지 꼬박 14박 15일을 걸었다. 8월 한여름 태양을 머리에 이고 걷던 수많은 청춘의 진한 땀 냄새가 가득했다. 필자 인생에서 더 이상 가보지 못한 길들이다. 50대에 시작한 등산에는 그 시절에 대한 로망이 묻어 있음을 본다. 특히 지리산 종주 산행은 그때의 용기를 떠올리게 하는 자조의 시간이기도 했다. 조국순례대행진 때 추억을 만들어준 몇몇 인연이 58년 개띠였다. 아삼삼한 기억을 돌려보면 온통 개판이다. 참가자들의 학번이 대부분 77, 78이었으니 말이다. 두 발 데이트에 딱 어울리는 것은 영화와 연극 관람이다. 국도극장, 대한극장, 명보극장, 단성사, 피카디리극장, 동숭동 소극장, 덕수궁 옆 창고극장, 명동 소극장, 장충동 국립극장. 그 이름만으로도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DJ의 에코 멘트와 리퀘스트가 있던 음악다방. 어둠침침했던 레스토랑! 서양 필이 나던 커피 맛! 공강시간이면 내 아지트처럼 달려갔던 구석진 그곳! 학교 주변 호프집과 시장통 선술집 기억은 거의 없다. 그 주님(?)과 친하지 못한 관계로 특별한 에피소드도 없다. 그 시절 인기 있는 장소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또 있다. 바로 동네마다 들어서 있던 작은 서점과 만화방이다. 서점도 데이트 장소로 인기였다. 필자의 취미이자 특기인 독서는 만화책 읽기와 연애시집 사기에서 시작됐다. 가끔씩 집 정리를 하다가 발견되는, 자식 나이보다 더 오래된 누런 책을 아이에게 권해본다. 레코드판도 서점에서 구입했던 것 같다. 용돈 아껴 한 장씩 사 모았던 LP판. 이제는 골동품이 되었다. 서점 한쪽에 LP판을 매입한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추억을 팔 수는 없다! 하고 간직하고 있지만 보관이 어려워 애물단지다. 최근 턴테이블을 찾아 모양을 갖춰봤다. 어느 날 한 번은 꼭 틀어볼 셈이다. 옷과 가방을 구입할 때는 명동이나 이대 앞, 동대문시장이 최고였다. 전자제품은 세운상가나 용산전자상가로 갔다. 그러고 보니 당시 핫 아이템이었던 소니 워크맨을 사러 신촌 미제시장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우연히 들어갔던 당구장은 남자들과 담배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금녀의 공간이라기에 분위기가 어떨지 조금 궁금했는데 딱히 충격적이거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없었다. 40대 초반에 배운 포켓볼. 담배 냄새 없는 집 근처 당구장을 찾아 열공했던 시절도 있다. 주인장은 온종일 당구장에서 큐대를 들고 낑낑대는 필자를 보고 “아줌마! 밥하러 안 가세요?” 했다. 그러면 “밥 미리 해놓고 왔어요~” 했다. 그것도 벌써 20년 전 일이다. 그 시절은 포크송이 대세였다. 송승환과 왕영은이 사회를 보던 1980년대 인기 음악 프로그램 ‘젊음의 행진’에서 이어진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해변가요제의 등장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통기타 메고 가요제 참가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필자도 길거리에서 밴드 보컬 제안을 받은 쑥스러운 기억이 있다. 교내 축제 공연이 있던 날, 술자리에서 급조된 짝지네 팀 밴드는 딕패밀리의 곡 중에서 신중하게 ‘나는 못난이’를 간택(?)해 참가했다. 공연하는데 전기가 나가 비록 앰프와 마이크는 꺼졌지만 젊은 혈기는 청춘의 생목으로 끝까지 완창하는 투지를 발휘했다. 과 동기의 의리로 베이스 담당 짝지에게 꽃다발 들고 응원을 갔건만 노래 제목처럼 되어버린 기억은 지금 떠올려도 재미나다. 결과와 무관하게 지난 시간들은 모두 그리운 추억이 된다. 이제 그 청년은 한쪽 어깨에 통기타를 메고 ‘동해 하조대해수욕장’이라는 간판을 배경으로 빛바랜 사진 속에 서 있다. 나팔바지에 청재킷을 걸치고 긴 머리를 쓸어 올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고혈압을 조심하는 육순의 장년이 되어 있다. 필자는 견공(犬公) 세 분과 산다. 12세 레드 닥스훈트와 2세 믹스 유기견, 그리고 58개띠 짝지 그분이다. 34년을 동고동락한 그분과의 세월보다 선한 눈빛과 따스한 체온, 변함없는 신뢰의 견공 두 마리에게 더 맘이 간다. ‘호모 사피엔스 짝지 vs 거의 호모 멍멍이우스’ 필자와 동종이신 그분은 두 마리 견공에게 질투와 부러움을 대놓고 내비친다. 무엇을 해도 ‘개판’이 된다며 툴툴대는 58개띠 짝지님의 씩씩 건재함에 감사를 보낸다. “저기요~ 앞으로 남은 시간 사이좋게 지내봅시다!”
- 2018-01-26 1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