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디지털에 무능하면 ‘불편함’을 넘어 ‘불이익’을 보는 시대다. 키오스크 주문 방식을 알지 못해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지 못하고, 공공기관의 무인 민원 창구를 이용할 줄 몰라 한참을 기다려 수수료까지 지급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디지털 전환이 더욱 가속하고 있다. 디지털 세상은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반대로 노인들의 디지털 소외 현상을 초래한다. 식당에서 무인 기기(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 매장에서 상주하는 직원을 아예 없애거나 혼잡 시간대엔 무인 주문기로만 주문할 수 있는 ‘키오스크 타임’을 운영하기도 해 직원을 불러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처럼 노인들에게는 디지털 세상의 진입 장벽이 높게만 느껴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0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노인들 가운데 여건은 되지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자발적 비 이용’이 72.5%, 나머지 ‘비자발적 비 이용’에서는 ‘사용 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 이용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5.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서울시는 키오스크 사용법을 배울 수 있는 ‘키오스크 체험존’을 마련했다. 체험존에서는 음식 주문, 티켓 발매, 증명서 발급 등을 연습해볼 수 있다. 스스로 체험이 어려운 노인들은 설치된 기관의 사회복지사, 디지털 강사가 직접 돕는다. 체험존 위치는 스마트폰, PC로 네이버에 접속해 ‘스마트 서울맵’을 치고, 해당 홈페이지에 들어가 ‘도시 생활지도→키오스크 체험존’을 차례로 눌러 확인할 수 있다. 혹은 서울시 디지털포용팀에 문의해도 된다.
서초구에서 개발한 앱인 ‘서초톡톡C'를 활용해 집에서 연습할 수도 있다. 구글플레이 스토어에서 서초톡톡C를 검색해 무료로 다운로드한 다음 무인민원발급기, 패스트푸드, 고속버스, ATM기, KTX 발권, 병원 등 상황별로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서초구 관계자는 “우리는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어르신들에게는 힘든 경우가 많다”며 “인기가 좋은 강좌는 스마트폰 작동법과 키오스크 활용 수업”이라고 밝혔다. 정보취약계층인 노인들에게는 생활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수업이 가장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서울 강남구·강동구 등 노인복지시설에서는 지난해 말 AI 로봇 ‘리쿠’를 도입했다. 리쿠는 노인들에게 터치나 스크롤 같은 기본적인 작동법은 물론 카카오톡에서 친구를 검색하거나 사진을 전송하고 메시지 알람을 끄는 방법도 알려준다. 리쿠는 단순한 음성을 인식하고 답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 감정, 성향을 학습해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기술을 탑재했기 때문에 대화가 가능하고,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다.
이 외에도 ‘디지털배움터’에는 디지털 소외와 정보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강좌가 준비돼있다. 노인들이 집 가까이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온라인 맞춤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교육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디지털배움터 홈페이지 또는 전화로 신청하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강좌 내용, 일시, 장소 등 자세한 내용은 디지털배움터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일단 미국의 시니어들은 많이 움직여요. 장거리 운전도 하고, 봉사도 하고, 집도 고치고, 바느질하고, 뜨개질도 해요. 책도 많이 읽고요.” 미국에 이민 와 20년을 현지 사회와 접해온 20대 후반의 딸이 바라보는 미국 시니어들의 모습이다. 이민 1세대로서 삶에 치여 그들과의 교제와 접촉이 그리 많지 않지만, 딸의 시각과 시선을 따라 미국 시니어들의 일상 습관을 들여다보았다.
미국인들, 특히 백인들은 피부가 좋지 않아 실제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부지런히 외모를 가꾼다. 손·발톱과 모발을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가까운 마트에 갈 때도 옷·가방·구두의 색을 맞추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타인에 대한 예의이자 자신의 자존감이라 여긴다. 멋지게 차려입고 동네의 작은 박물관이나 아담한 식물원을 삼삼오오 방문한 후 카페에서 한가로이 담소하는 시니어들의 모습 역시 낯설지 않다. 시니어 관람객을 안내하는 제복 차림의 시니어 직원들의 활기찬 표정에도 자부심이 묻어난다.
미국의 시니어들은 대체로 부부가 같이 움직인다. 순한 눈을 한 나이 든 애완견을 사이에 두고 느릿한 걸음으로 산책하는 노부부의 모습은 아름답다. 거동이 심히 불편한 늙은 아내나 남편을 똑같이 연로한 배우자들이 조심조심, 느릿느릿 돌보는 모습은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우리처럼 간병인에게 맡기는 경우는 드물다.
남자들은 나이 불문하고 집 고치기가 일상화되어 있어 홈디포(대형 건축자재 스토어)를 즐겨 찾고, 차고에 깔끔하게 정리된 연장들은 그들의 재산 목록이다. 또한 백발 여성들은 수예나 뜨개질, 바느질 취미에 열중하여 옷감이나 실을 구입한 후 가게에 상주하는 강사들에게 직접 배워가며 각종 소품을 만든다.
미국 시니어들은 20대 후반부터 노후 대책을 세운다. 은퇴 후에는 사회보장연금이나 경제활동할 때 적립했던 퇴직연금 등으로 살아간다. 대부분의 은퇴자들은 미국 은퇴자 협회에 가입하여 의료 및 각종 보험 안내, 신용카드 사용액 포인트 적립, 여행, 쇼핑 등에서 할인 혜택을 누린다.
한편 봉사는 미국 시니어들의 진정한 힘이다. 이민자 영어학교 봉사자인 70대 초반의 린다는 늘 웃는 얼굴이다. 그녀는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건너온 이방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 생활의 어려움에도 귀를 기울인다. 그녀는 3남매와 남편, 어머니와 사별 후 홀로 된 아버지까지, 대가족을 보살피기 위해 초등학교 교사직을 그만뒀다.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자 일터로 복귀했으나, 기업체의 중견 지위에서 은퇴한 후 빨래방 두세 곳을 운영하는 남편과, 아흔을 훨씬 넘겨 점점 더 완고해지는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여전히 그녀의 몫이다.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고 지역 봉사단체에 짬짬이 일손을 보태며 바쁘게 살아가는 그녀가 어느 날 자신의 SNS에 가족사진을 올렸다. 성인 자녀들, 귀여운 손주들, 그리고 남편 틈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녀에게서 70대가 아닌 20대의 눈부신 아름다움이 읽혔다.
보람 있고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는 린다와는 대조적인 시니어로 신디가 있다. 미모와 명문대 출신이라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 81세의 그녀는 남편과 사별 후 늙은 개와 단 둘이 산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30분에는 20여 년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와 손·발톱을 매만져야 하기에 코로나 자가격리 기간 중에도 미용사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녀는 미용사 앞에서 여왕처럼 군림하며 매번 처음처럼 미용사 가족 하나하나의 안부를 묻고 나름대로의 충고를 지치지 않고 해댄다. 조울증과 강박 증상을 가진 그녀는 배타적이고 안하무인의 고압적인 자세로 주변 사람들을 질리게 한다. 외로운 그녀는 점점 더 괴팍해지는 중이다.
나이 들어 가족이 있고, 자신의 집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건 행운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시설로 들어가는데, 그곳의 휠체어 노인들은 거의 무표정하고 타인을 경계하며 웃지 않는다. 그나마 유일한 행복감은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할 때 잠깐 느낄 뿐.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런 삶의 과정이다. 그러나 감사한 마음으로 주어진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고, 주변과 따스하고 넉넉한 마음을 나누는 것은 나의 선택이자 나 하기 나름 아닐까.
농부가 땅에 비지땀을 쏟아 필수 식량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농업은 신성한 직업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천하의 뿌리’에 관여된 일이 농업이다. 반면 믿기 어려운 직업이 농사다. 땀 흘린 만큼의 공정한 대가가 주어지는 경우가 흔하던가?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에 따라 좌우되는 작황, 널뛰기하는 가격, 불안정한 판로 등 리스크 요인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의 악조건을 끔찍하게 여기면서도 귀농을 하는 이들이 많다. 나만큼은 성취할 수 있다는 뜨거운 신념을 가지고 농사에 뛰어든다. 경북 상주시의 산골로 귀농한 임원식(61, 상주갑장산굼벵이농장) 씨도 그랬다.
“경치 좋은 시골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정원이나 농장을 가꾸며 마음 편하게 사는 삶. 이건 대부분의 남자들이 가진 로망이 아닐까? 내게도 막연하나마 오래전부터 그런 꿈이 있었다.”
귀농은 임원식 씨에게 오래 묵은 꿈이었던 거다. 비록 막연한 바람이었지만. 다시 말해 언젠가 기회가 오면 시골에서 한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언젠가’가 오지 않아도 무방할 몽상 차원의 꿈이었다. 그런데 그 ‘언젠가’가 별안간 도래했다. 회사에 감원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그는 경남 거제시에 있는 삼성중공업 직원이었다. 이름난 대기업이고 연봉도 높은 수준이라 자청해서 그만둘 이유가 없었으나, 구조조정의 칼바람 앞에서는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선배 직원들부터 차례로 무자비하게 잘리는 걸 본 그는 곰곰 궁리하다가 자신의 차례가 오기 전에 명퇴를 신청했다.
명퇴 뒤 그의 고민은 본격적으로 깊어졌다. 이제 어떡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 체인점? 창업? 그가 생각한 건 장사였으나 가만히 따져보니 그건 당최 적성에 맞지 않았다. 간이라도 빼줄 듯이, 심지어 영혼까지 팔 듯이 자세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상업인데 그건 참 싫었던 것이다. 이때 그는 오래된 꿈인 귀농을 카드로 뽑아들었다. 그리고 숙고에 들어갔으며, 결국은 귀농만이 믿을 만한 대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머리를 감싸 쥐고 더 고민할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내 박선숙(56) 씨의 동의를 얻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것. 남편들이 마치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는 투로 열렬히 귀농을 선창해도 아내들은 십중팔구 앵돌아앉기 십상이다. 그의 아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여러 가지 합리성 있는 이유를 내세워 ‘강력한’ 반대를 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아내와 함께 귀농해야 한다는 기본 방침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설득에 나섰다. 그 과정이 길고 힘들었다고 한다. 마침내 동의를 얻어내 귀농을 한 건 2016년 8월. 부부는 손잡고 나란히 경북 상주시 낙동면 갑장산 기슭의 산골로 들어갔다.
귀농 한 달 만에 시작한 굼벵이 농사
“터는 미리 사두었다. 인터넷을 통해 전국의 농지 매물을 검색해 곳곳을 답사한 끝에 이곳의 땅을 사들였다. 적은 자금으로 마음에 드는 터를 구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터는 좋아도 너무 외지거나 길이 없는 땅이 많더라. 헛걸음이 잦았지.”
Q 작물 선정도 미리 해두었나?
A “아니다. 일단 시골로 빨리 내려가고 싶어 작물에 대한 모색 없이 그냥 내려왔다. 산자락에 사둔 땅 인근에 있는 빈집을 임시로 빌려 살며 작물 구상을 시작했다. 처음엔 사슴농장이나 옻나무 재배에 관심을 가졌으나 실상을 좀 파악해보니 만만치 않겠더군. 생산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과수 농사나 자금이 많이 드는 시설 하우스 농사도 그렇고. 그러던 차 TV 방송에 나온 굼벵이(흰점박이꽃무지의 유충) 사육 농가의 성공 스토리를 보고 굼벵이 사업이 유망하겠다고 판단했지. 그게 굼벵이 농사에 뛰어든 계기였다.”
Q 귀농하자마자 곧바로 굼벵이 사육을 시작했나?
A “지체 없이 일을 착수했다. 경기도 연천에 있는 굼벵이 농가를 찾아가 상담을 하고, 교육을 받고, 굼벵이 종자(종충)를 분양받아 사육에 나섰던 거지. 셋집에 있던 창고를 사육사로 썼고.”
Q 보통은 미리 작물 선정과 공부를 하고 귀농을 한다.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지. 당신은 일사천리로 진도를 냈네?
A “사실 굼벵이 사육과 가공 생산이 별로 어렵지 않다. 여느 농사에 비해 한결 수월하거든. 물론 굼벵이 공부는 사육 착수 이후 충실하게 했다. 경북농민사관학교를 통해 2년에 걸쳐 천적곤충과정과 유용곤충과정 교육을 이수했으니까. 여하튼 귀농 한 달 만에 굼벵이 농사를 시작했으니 엄청 속도를 낸 셈이다. 내 땅에 내 집도 신속하게 지어 이사도 했다. 불과 서너 달 만에 이 두 가지 일을 해치웠지.”
Q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
A “지금 와서 돌아보면 너무 조급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월급이라는 게 없으니 한시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만 했던 거다. 매사 추진력을 가지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게 좋은 거라는 생각과 그렇게 살아온 습성도 작용했지만.”
땔나무를 베겠다면서 종일 낫만 가는 건 바보짓이다. 저 굴 속에 호랑이가 있는지 고양이가 사는지 궁금하면 굴로 들어가 봐야 한다. 그는 성격 자체가 느긋하기는커녕 박력이 넘쳐 뭐든 영감이 떠오르면 즉시 판단해서 즉시 해치우는 사람인 거다.
알아주는 굼벵이 농가로 부상했으나
허준의 ‘동의보감’에선 굼벵이를 아주 좋은 약용곤충으로 적시했다. 굼벵이 섭취를 혐오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지만, 예부터 약용은 물론 식용으로 민간에서 흔히 쓰인 곤충이었다. 굼벵이 사육이 농업의 한 장르로 등장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효능이 탁월하지만 식품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가 2016년에야 식약처에 의해 식품 원료로 승인됐으니까. 그즈음 곤충산업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굼벵이 농사가 블루오션으로 부각되면서 사육 농가가 급증했다. 1000개 이상으로까지.
상품화되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산란한 굼벵이 알을 리빙박스 안에서 3개월 정도 길러 살을 찌운 뒤 환, 분말, 엑기스 등 식용상품으로 가공하면 되니까. 질병이 거의 없고, 투자 비용도 적게 들고, 게다가 온·습도만 잘 맞춰주면 크게 손이 가지 않아서 매력적인 고소득 특화작물로 각광을 받았다. 민첩한 머리와 바지런한 손발을 가진 임원식 씨는 이 기특한 애벌레를 야무지게 잘 길러 고품질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상주에서 알아주는 농가로 급부상했다.
“굼벵이 농사는 신선놀음에 가깝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수월하다. 그러나 차별화된 고품질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선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역시 판로다. 기르기는 쉽지만 팔기는 쉽지 않은 거다.”
Q 어느 정도 수익을 올리는가? 사육 농가가 급증하면서 고전하는 농가들이 많다던데. 폐업도속출하고.
A “처음 3년간은 부진했다. 어떤 농사든 초기의 바닥 다지기에 3년은 걸린다. 시행착오도 겪으며 성장의 힘을 얻어가는 필수적인 수련기지. 아무튼 부진한 가운데에서도 서서히 매출이 올라 2019년엔 연매출 9000만 원을 기록했다. 블로그를 운영하고 노하우를 활용한 덕분이었다. 이젠 궤도에 올라섰구나! 그런 판단을 했지. 농장 이름이 알려지면서 견학을 오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다 코로나로 위기를 맞이했다.”
Q 매출이 급감했나? 코로나의 횡포로 곤경에 빠지지 않은 분야가 드물다.
A “2020년 매출이 반 토막 났다. 소비가 위축되고 주요 판로였던 지역 축제장에서의 가판이 불가능해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사육 농가가 포화 상태이기도 했고. 올해는 더 상황이 나쁜 것 같다.”
불운이라 할 수밖에. 아무도 못 말릴 급한 성격대로 후다닥 일을 진행했음에도 궤도에 올라섰으나, 코로나의 기습으로 주춤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절체절명의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낙심이 컸던 모양이다. 그러나 일단 대차게 강물에 오른 사공은 멈추지 않는 법이다. 급물살에선 노를 묘하게 잘 저어 나가면 그만이다. 비바람에 시달리지 않고 피는 꽃이 있겠는가. 그는 방향을 선회하기로 했다. 굼벵이의 사육 규모를 왕창 줄여 코로나 종식 이후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새 작물에 도전했다. 그 이름도 참신한 참두릅을 기르기로 하고, 올봄에 스마트 팜 타입의 시설 하우스를 지었다. 귀농 5년 차 이상의 귀농인에게 주는 연리 2%짜리 영농자금 3억 원을 지원받아서.
“내가 시작한 참두릅 농사는 기존 노지 재배 방식과 크게 다르다. 노지에서 기른 두릅나무의 마디마디를 잘라 하우스 안의 물병에 꺾꽂이처럼 꽂아 기르는 방식이거든, 이걸 ‘마디수침 재배법’이라 부른다. 이 재배법으로 연중생산이 가능해 최대 10배까지 수익 증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메리트가 큰 농법이라 성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
‘이미 남들도 많이 하는 재배법 아닌가?’ 하는 생각이 대번에 들었지만 아직은 선도적 농법이란다. 이 분야의 고수를 만나 멘토로 삼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성공 보증서는 어디에서도 발부받을 수 없다. 인생이라는 미스터리가 늘 그렇듯, 농사에도 역시 복병과 변수가 음흉하게 나타나 행패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들 대수로울 것 없다. 행복이라는 밥상에는 늘 고난이라는 양념이 동행하므로 복병은 복병대로 열나게 때려눕히면 되는 거다. 임원식 씨의 기본 태도가 그렇다. 그는 약 7억 원의 자금을 들고 귀농했다. 내 생각엔 그 돈이면 그냥 경치 좋은 산골에 오두막 하나 짓고 놀고먹겠다만 그는 생각이 영 다르다. 백수에 흥미 없다.
“그간 지니고 온 자금은 전부 사라졌다. 농토를 사고 집을 짓는 데 주로 사용됐지. 적자에 따른 손실금도 좀 있지만 그건 수업료가 아니고 뭐겠는가? 다 투자분이라 생각한다. 75세까지는 열심히 농사를 지을 작정이다. 월 350만 원 정도는 가져야 생활이 되던데, 그걸 벌기 위해서도 뛰어야 한다.”
Q 월 100만 원으로 희희낙락 사는 시골 부부도 많던데?
A “내가 단지 돈벌이만을 위해 뛰는 건 아니다. 도시와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열심히 하며 살고 싶다는 기본 이상을 좇아 달리는 거거든. 당신 행복해? 누가 그리 물어보면 답은 ‘그렇다!’다. 몸은 고달프고 고민도 많지만, 난 지금보다 더 좋은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자유로운 영혼이 된 느낌이다.”
어떤 직업이든 유쾌하기만 하겠는가. 애환과 성취는 궁합이 잘 맞는다. 고로 그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는 거겠지. 그의 뇌에 세팅된 목적은 삶의 질을 높이는, 즉 자기 확장에 있는 것 같다.
임원식 씨가 주는 귀농 팁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짓는다고? 어림없다. 귀농은 절대 쉽지 않다. 단단한 각오와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하자.
•자칫하면 원주민들에게 왕따당한다. 절대적인 신임을 얻도록 노력하자. 인사부터 잘하고. 목에 힘주면 발붙이기 어렵다.
•관행 농사는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다. 똘똘한 작물 선정을 위해 미리 심각한 고민과 연구를 해두는 게 좋다.
•작목을 정했다면 확실한 멘토를 만나라. 그 사람의 실패담이 거울이다.
•교육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하라. 새로운 지식도 얻고 멘토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다. 각종 지원사업도 교육을 이수해야 받을 수 있다.
•직거래만이 답이다. SNS 마케팅을 공부해 적극 활용하라.
강영석 상주시장 인터뷰
오래전부터 쌀, 누에, 곶감의 도시로 유명한 상주시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 농업 도시로서의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지난해 치러진 4·15 보궐선거를 통해 민선 7기 8대 상주시장으로 취임한 강영석 시장은 상주시의 농업 혁신 도시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강 시장은 인터뷰에서 상주시가 귀농귀촌 1번지로서 손색이 없다고 밝히며, 농업 혁신 도시로서의 가능성과 귀농귀촌인을 위한 정책, 그리고 농촌의 애환 등을 솔직하게 술회했다. “농업 여건만 보더라도 상주시로 귀농귀촌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에게 상주시의 귀농귀촌 여건과 현실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 시는 낙동강과 백두대간을 사이에 낀 천혜의 자연환경과 방대한 농지, 풍부한 용수량 등으로 예부터 뛰어난 농업 여건을 자랑해온 곳입니다. 삼백(三白, 쌀·누에·곶감)으로 잘 알려진 전통적인 농업 도시로서 국제 슬로 시티로 인증도 받았죠.”
강영석 상주시장의 말대로 상주시의 농가는 1만3885호로 전국에서 네 번째, 경북에서 두 번째다. 농업 인구도 2만9290명으로 전국에서 일곱 번째, 경북에서 두 번째고, 농지 면적은 2만5315ha로 도내에서 으뜸이다. 그야말로 경상북도에서 손꼽히는 거대 농업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농업의 선택지도 무척 다양하다고 강 시장은 밝혔다.
상주시의 귀농귀촌 강점
“곶감과 시설오이는 전국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며, 근래는 신품종 청포도가 고소득 작물로 각광받고 있어 생산 면적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봉, 육계, 한우, 쌀, 배 등의 기존 작물도 전국 1~2위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팜 혁신밸리와 경북농업기술원을 유치함에 따라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선진 농업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강 시장은 곶감과 쌀, 친환경 농업, 과수 등의 중점 품목을 지속적으로 지원하여 농사만 잘 지으면 마음 놓고 살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상주시가 귀농귀촌인의 유입을 강력하게 필요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농지 면적은 도내 최고이나 전체 인구수는 면적에 비해 턱없이 적다.
“우리 시는 2019년 초부터 10만 이하 인구로 돌아섰습니다. 2021년 5월 통계로는 9만6337명입니다. 시내 동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가 4만9957명이니, 실제로 18개 읍면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4만638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1개 면의 인구가 2500명 이하로 떨어지면 생활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삶의 기반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됩니다. 특히 우리 시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31%가량 되는 초고령 지역이기도 합니다. 향후 농촌 사회, 지역 사회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규 인력이 유입되어야 합니다.”
2021년 귀농귀촌 사업비로 125억5000만 원
귀농귀촌인을 위해 상주시가 준비하고 있는 옵션은 다양하다. 올해 상주시 귀농귀촌 사업 비용은 총 125억5000만 원에 달한다. 분야는 귀농귀촌인 보조 및 융자 지원, 귀농귀촌인 유치를 위한 주거 조성, 귀농귀촌 활성화를 위한 교육 사업이다. 귀농귀촌인 보조 지원은 총 3억1200만 원으로 주민 초청 행사 운영, 주거 임대료, 주택 수리비, 정착 지원 사업 등을 추진한다. 융자 지원은 올해 상반기 선정분만 해도 45억 원 규모이며, 39개소의 귀농인에게 토지 구입, 하우스 신축, 농가 주택 매입 및 신축 등의 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한다.
귀농귀촌인 유치를 위한 주거 조성 사업에는 72억 원을 투자하여 한국토지주택공사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단지 사업과, 매년 2~3개소씩 추가로 조성하는 귀농인의 집 조성 사업이 있다. 귀농귀촌 활성화를 위한 교육 사업으로는 총 3억5000만 원을 투자하여 마을 단위 융화 교육, 공동체 귀농학교, 농촌생활기술학교, 귀농귀촌인 역량 강화 교육 프로그램 등을 추진한다. 또한 귀농귀촌인을 지원하기 위한 민간 지원 조직으로 상주다움 사회적협동조합을 지원하여 민간 차원에서 교육과 공동체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는 것도 타 시군과는 다른 상주시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전국 최초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 마련
특히 주목할 부분은 공검면 양정리의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단지와 사벌국면 삼덕리의 스마트팜 혁신밸리와 인접한 청년보금자리 조성 사업을 통해 농촌 지역에 주택을 마련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전국 최초로 올 연말에 조성되는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단지는 규모는 작지만 널리 알려져 농촌형 주거 복지 사업을 새롭게 이끌어나가리라 기대되고 있다. 농촌 지역에 단독주택단지를 지어 공공임대로 제공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1만여 명의 귀농귀촌인이 지역에 와서 농업과 농업 관련 직종에 종사하면서 지역의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각 지역의 농업과 농촌 관광, 농산물 가공 분야 등에 종사하면서 지역의 스타 농부가 되고 성공 사례가 되어, 다른 귀농귀촌인들을 유인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2009년에 생긴 민간 공동체귀농지원센터가 주축이 되어 귀농귀촌인들의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많은 귀농귀촌인의 디딤돌이 되어주었습니다. 매년 계속되는 교육과 모임으로 귀농귀촌인들이 모이는 구심점이 되어주고, 우리 시로 오고자 하는 귀농귀촌인들을 맞이하는 마중물이 되어주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귀농귀촌을 하려면 급격한 변화에 대비
많은 사람들이 귀농귀촌을 통해 농촌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의 귀농귀촌인들은 지역 사회에 적응하는 것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강 시장은 급격한 변화는 반드시 갈등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고, 변화의 밝은 부분에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역 사람들과 귀농귀촌인 간에 갈등이 생기면 기존 지역 사회에서 이루어지던 방식으로는 봉합되지 않고 갈등이 드러납니다. 이는 순기능도 있지만 귀농귀촌인에게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부 언론이나 방송에서는 귀농귀촌인들이 조용한 지역 사회에 갈등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도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지역에는 고소득 영농을 위해 귀농하는 분들이 많아, 막상 투자한 만큼 결과를 얻지 못하면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텃세를 지레 두려워하여 기존 마을과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자 하는 귀농귀촌인들도 있습니다. 고향에 온 귀농귀촌인 중에도 마을 주민들과의 불화로 마을을 옮기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귀농귀촌으로 인해 생겨난 변화가 좋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귀농귀촌인들이 지역에 와서 반드시 잘 지내는 것도 아닙니다만, 지역 주민과의 갈등을 ‘텃세’라고 이름 짓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봅니다.”
텃세라는 말의 어폐, 다르게 생각해봤으면
텃세라는 것은 지역 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새로 들어온 귀농귀촌인을 괴롭힌다는 뜻이 있지만, 귀농귀촌인이 관련된 갈등에서 기존 마을 주민들이 일방적으로 귀농귀촌인을 가해하는 경우는 없다고 강 시장은 밝혔다. 오랜 시간 지역민과 귀농귀촌인을 보아온 강 시장은 도시에서는 그런 갈등이 없느냐고 반문한다. 무엇보다도 현재 농촌의 현실이 텃세가 발생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존 마을 공동체도 많이 붕괴됐고, 노인들밖에 없어 텃세를 부릴 만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귀농귀촌인들이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 자율방범대장 등을 차지하고 있는데 텃세가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도시 지역에서도 층간 소음, 주차 등으로 끊임없이 언성 높일 일이 생깁니다. 특정 인물이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은 대도시에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농촌은 과거처럼 긴밀한 대면 접촉이 일상화된 공간이 아닙니다. 노년층도 스마트폰으로 정보화 사회를 살고 있고, 옛날처럼 동네 사람들이 장례식과 마을 잔치를 하며 모이는 일도 줄었습니다. 진입로와 토지 경계, 소음, 쓰레기, 축사 악취 등으로 이웃 간 갈등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텃세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포털 검색창에서 ‘상주 귀농’ 검색
강 시장은 매년 1400가구 1800명을 유치하여 농촌 지역의 인구 유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5년간 매년 1200여 가구, 세대원은 1700여 명이 유입되고 있다.
“귀농귀촌은 농촌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염원일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가꾸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꿈입니다. 통계와 숫자로는 잡히지 않지만, 지역에 이미 터를 잡은 귀농귀촌인들이 지역에 만족하고 기존 주민들과 화합하며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많은 고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강 시장은 마지막으로 귀농귀촌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당장 두 가지를 해봤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한 가지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검색창에 농업교육, 귀농교육을 입력하고 동영상 온라인 교육을 듣거나 오프라인 교육 행사에 참가해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가고 싶은 지자체의 이름과 귀농을 붙여서 ‘상주 귀농’과 같은 식으로 검색해서 시군 귀농귀촌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보는 것입니다. 귀농귀촌 담당자들이 친절하고 간결하게 귀농귀촌에 대한 여러 궁금증을 풀어줄 것입니다.”
강 시장은 다양한 귀농귀촌 정책을 개발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사람이 찾아오는 환경 조성’을 통해 인구 감소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MZ세대와 뉴노멀의 등장, 코로나 팬데믹으로 결혼문화도 크게 바뀌고 있다. 애지중지 키운 딸과 아들이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시니어들은 걱정부터 앞선다. 결혼 준비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자녀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지까지….
요즘 젊은이들은 자립심이 강해 스스로 준비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부모의 경제적 지원에 의존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부모가 자녀의 결혼을 모른 척하고 싶어도 모른 척할 수 없는 셈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7월호는 커버스토리에서 코로나19로 소규모‧고급화하고 있는 ‘2021 웨딩 트렌드’와 자녀를 품에서 떠나보는 과정에서 빠질 수 없어 알아두면 좋을 ‘혼주 에티켓’을 소개한다. 또 자녀 결혼에 필요한 예물과 혼수, 신혼집 마련에 필요한 꿀팁에 허니문 변천사도 알려 준다.
평생 화두 ‘동반성장’ 의지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상생 염원을 담은 오톨도톨한 점자혼용 명함을 제시하는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을 표지와 기사로 만날 수 있다. 정 이사장이 들려주는 참 좋은 시절, 그때는 그랬지 추억 속 이야기에 빠져보면 어떨까.
한줌의 늦깎이 역사 소설가 오세영 씨는 데뷔작 '베니스의 개성상인'에서 '자산어보'로 돌아왔다. 역사란 퍼즐의 이음새를 자신만의 결로 다듬어 모나지 않은 그림으로 완성할 때 보람을 느낀다는 그를 만나 북인북 코너를 구성했다.
‘경북 최대의 농지 면적과 적극적인 귀농귀촌 정책을 완비한 상주시’를 가보고 싶은 귀농귀촌 우수 지자체로 소개한다. 오래전부터 쌀, 누에, 곶감의 도시로 유명한 상주시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 농업 도시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농업 혁신 도시로 전환을 꾀하고 있는 상주시의 귀농귀촌 여건과 정책 지원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구해줘 부동산에서는 ‘아파트 말고 꼬마빌딩으로 노후준비’를 이야기한다. 대출 규제와 고강도 중과세, 집값 상승으로 부동산 시장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아파트 말고 빌딩을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빌딩 선호 추세가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 빌딩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꼬마빌딩이 궁금한 독자를 위한 알찬 내용이 담겨 있다.
슬기로운 보험생활에서는 기존 가입 보험의 숨은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보험 리모델링’을 소개한다. 보험 리모델링은 보험 가입 구조나 기능 개선을 통해 위험관리의 가치를 올리는 행위다. 시니어들을 보험 리모델링에 따라 노후 의료비를 대비가 달라질 수 있다.
1985년 강변가요제에 발표돼 선풍적 인기를 끈 노래가 있다. 임석범과 김복희가 마음과 마음이라는 듀엣으로 부른 ‘그대 먼 곳에’가 주인공이다. 36년이 지난 지금도 아내와 함께 마음과 마음을 이끌며, 음악과 라이브 카페, 유튜브까지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는 임석범을 만났다.
이 외에도 브라보 마이 라이프 7월호는 꿈에서라도 함께 살아보고 싶었던 첫사랑 이야기를 담은 브라보 마이 러브, 명나라 고관 대작의 집에서 벌어지는 운우지락이 그려진 중국 춘화 이야기를 담은 재미있는 性인문학, 고급 취미에서 재태크로 변신하고 있는 아트테크를 소개한 생활 속 법률 상식, 차려 먹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오는 장수 밥상을 알려주는 이달의 구독, 먼 길 가다 만난 나무처럼 맑은 청주(淸州)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느린 여행, 닭과 전복을 활용한 이색 보양 레시피를 담은 엄마가 엄마에게 같이 시니어들이 재밌고 알차게 즐길 수 있는 내용을 가득 실었다.
시니어 전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 7월호는 전국 서점과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다.
‘삶의 내용에는 건강과 즐거움, 질병과 슬픔, 늙음과 죽음이 있다. 질병을 통해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죽음을 통해 삶의 귀함을 아는 것이 삶의 본질이다.’ 정현채 교수의 책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결국 죽음을 잘 준비할수록 삶을 더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변화하는 장례 문화를 통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 살펴보자.
“죽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세상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가족은 무엇인지 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다시 곱씹어보고 생각해보고 그러면서 좀 성숙한 다음에 죽는 게 좋겠다. 한마디로 위엄이 있어야 하겠다. 밝은 눈빛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죽음과 마주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故 정기용 건축가의 삶과 마지막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에 나오는 대사다. 죽음을 어떤 마음과 자세로 준비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성찰은 곧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최철주 웰다잉문화운동 고문은 “존엄한 죽음을 위해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할지 미리 생각하고 공부하는 모든 과정이 웰엔딩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죽음을 앞두고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이제껏 살아온 삶을 잘 정리하는 웰엔딩이 필요하다.
최근 웰엔딩을 위해 생전 장례식을 하는 곳도 생겼다. 라온 피플은 ‘내가 준비하는 나의 마지막-웰엔딩페스티벌’을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이 축제는 삶에 대한 회고와 죽음에 대한 성찰 등을 주제로 웰다잉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해 마련됐다. 생전 장례식 체험 과정을 영상을 통해 보여줬는데, 유언장을 쓰고 입관 체험을 하는 생전 장례식장에서는 눈물을 보이는 참가자가 많았다. 생전 장례식을 마친 참가자 A씨는 “생전 장례식 이후 선물과 같은 두 번째 삶이 시작된 기분이다”라고 밝혔다.
친한 친구나 가족들을 불러서 생전 장례식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장례식은 보통 사후에 진행하다 보니 고인의 뜻과 마음을 미처 전하지 못하고 떠나기 때문에, 생전에 관계를 맺었던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보는 것이다.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문상 절차’만 있지 정작 ‘장례식’은 없다. 장례식에서 문상객끼리 잡담하다 오는 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생전에 자신이 직접 장례식을 디자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결혼식처럼 장례식 식순도 짜보고, 초청할 사람도 미리 정해보고, 신세 진 분에게는 살아 있을 때 만나 인사를 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례의 새로운 대안들
2000년대 초반부터 국가적으로 화장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는데, 그 결과 현재는 ‘화장의 천국’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화장이 늘어났다. 실제로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1월 기준 화장률은 90%에 육박한다. 묘지 면적을 줄인 점은 좋았지만, 화장도 역시나 문제가 있다. 증가한 화장률에 비해 화장 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장례업계 관계자는 “화장률은 높지만 화장 시설 설치 반대로 인해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후화된 화장 시설을 개선하고 공급을 늘릴 필요가 있다. 기술의 발달로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고 있는 만큼 사회적인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새로운 대안으로 ‘수목장’이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국수목장문화진흥재단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2%가 수목장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고, 응답자의 65.4%가 수목장을 장례 방식으로 선호한다고 대답했다. 한국수목장문화진흥재단 관계자는 “현재 수목장에 관한 긍정적인 인식이 크게 높아지면서 자연 친화적인 장례 문화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함을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디지털로 소통하는 장례
코로나19는 장례식의 풍경을 언택트로 바꾸고 있다. 장례식과 같은 대규모 시설에서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조문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실제로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직장인들의 경조사 참석 횟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잡코리아와 알바몬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남녀 직장인이 참석한 경조사는 평균 3회 정도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경조사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직장인도 10명 중 4명에 달했다.
더불어 조의금 문화도 달라졌다. 최근 장례식을 치르는 유족들은 조문객 사절과 함께 계좌번호가 적힌 부고장을 보내기도 한다. 상주 측은 조문을 받지 않으며 계좌번호를 적은 문자를 통해 조의금을 받고, 조문객도 조문 대신 계좌이체를 통해 마음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카카오페이 같은 모바일 간편 전송을 통해 부의금을 많이 전달했다.
언택트 기술은 새로운 장례 문화를 만들고 있다. 모바일 앱 ‘다큐다’는 유족과 조문객에게 새로운 IT 추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회고 영상, 추모 메시지 및 영상을 통해 유족과 조문객의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고 서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 다큐다 관계자는 “회고 영상과 더불어 장례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어 해외 거주로 인해 장례에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인기가 높다”라고 설명했다.
조문객은 해당 앱을 통해 추모 메시지와 영상을 유족에게 보내며 위로를 전한다. 유족은 사진만으로 쉽고 빠르게 회고 영상을 제작할 수 있고, 앱을 통해 부고 알림, 장례 일정 등을 한꺼번에 관리할 수 있어서 편하다. 회고 영상, 추모 메시지 등과 같은 조문 기록은 모두 저장되며, 실물 앨범으로도 제작하여 유족에게 제공된다. 다큐다 관계자는 “고인과의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분들은 앨범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삶과 함께하는 죽음
한편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장례식은 간소하게 변하고 있다. 이전에는 3일장이 대부분이었으나, 현재는 1·2일장이나 무빈소 장례와 같이 규모와 기간이 줄어든 장례를 선호한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 뷰’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변한 장례 문화에 대해 10명 중 6명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전 계층에서 모두 긍정적 평가가 높은 가운데 전통장례 문화에 익숙한 50대(68.1%)와 60대(73.4%)에서 특히 높았다.
장례 문화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은 ‘가족장 등 새로운 장례 문화 확산’(37.9%), ‘식사 등 불필요한 문상 문화 축소’(27.1%), ‘검소한 장례 문화 확산’(18.3%), ‘문상객 감소에 따른 상주의 피로감 감소’(13.8%) 등을 이유로 꼽았다. 장례 문화 스타트업 ‘꽃잠’ 유종희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작은 장례식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고, 긍정적인 반응도 많다.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작은 장례식의 대중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가족 중심의 작은 장례식이 확산될 전망이다. 실제로 위의 조사에서 장례 문화 전망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1·2일장, 무빈소 장례 문화 확산(29.8%) ▲장례식 중 화장 문화 인식 확산(20.7%) ▲밝고 긍정적인 죽음맞이 문화로의 변화(16.3%)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길 원하는 장례 문화 확산(14.5%) 순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천편일률적인 장례가 아니라 가족 중심의 작은 장례로 변하면서, 유족 중심의 장례 문화에서 고인을 중심으로 한 깊은 추모로 장례가 변할 가능성이 크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 장례 문화는 유족에게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는 겉치레만 있을 뿐 내용이 없다. 결혼식처럼 특정한 날과 장소에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행하는 의례가 없다. 일본이나 미국의 장례식은 어느 한 날을 정해 사람들을 불러 함께 의례를 치르며, 고인을 충분히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로한다”라고 말했다.
시대가 지나면서 장묘 문화도 바뀌고, 장례의 규모나 일정, 조문 방식 등 여러 가지가 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장례의 본질은 변함없다. 또한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고 외면할 이유도 없다. 죽음은 삶의 피할 수 없는 단계이므로. 당사자는 죽음을 잘 준비하고, 이들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도록 주변인들이 도와주는 것. 그것이 서로에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최 교수는 “죽음은 지상의 삶을 마치고 가는 인생의 졸업식과 같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죽음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일과 같으므로 슬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축하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죽음을 삶의 적으로 두기보다는 ‘삶과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초가집 한 채, 물가에 있다. 나무들 우거지고 옥색 냇물 돌돌거리는 산골짝이다. 개울 건너엔 들이 펼쳐져 후련하고, 들판 건너편은 높고 낮은 산들의 파노라마로 청신하다. 초가를 지은 이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석학인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3)다. 산천경개 수려하고 윤택하니 이 아니 좋을쏘냐? 그는 반색하며 무릎을 탁 쳤을 게다. 세상의 문장을 독하게 섭렵한 내공으로 산수를 가늠하는 눈썰미도 달인 경지에 이르는 게 성리학자다. 햐, 그런데 초가의 몸피가 한 줌 크기다. 왜 이렇게 지었나?
벼슬이면 벼슬, 학문이면 학문, 정경세는 헌걸차 몸담은 분야마다 큰 발자국을 남긴 준재다. 그런 그가 요즘말로 시골 세컨드하우스에 속할 정자를 아주 자그맣게 지었다. 성냥갑 크기의 방 한 칸과 마루 한 칸이 고작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대충 지은 움집이 아니다. 들보와 기둥은 제법 야무지고, 마루 벽엔 쌍으로 창을 달아 통풍과 채광에 지장 없게 했다. 몸 하나 편히 눕히고 비바람을 능히 피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던 거다. 그는 이 초가에 ‘계정’(溪亭)이라 이름을 붙였다. 중앙정치의 꿍꿍이와 아귀다툼에 밀려 한미한 신세가 될 때면 낙향해 이 오두막에 머물렀다.
작고 초라한 계정은 인테리어 하나 없으나 아름답다. 잎이며 꽃이며 군더더기 다 털어내고 본질만으로 존재하는 한 그루 겨울 나목처럼 개결하다. 비우고 또 비웠으니 득도에 가까이 간 정자다.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난 옛사람의 자유로운 정신을 이 집에서 보지 않고 무엇을 더 볼 것인가. 정가의 이전투구에서 패퇴한 사대부들은 흔히 번듯한 원림(園林)을 지어 경영하며 울분을 달랬다. 정경세는 달랐다. 그의 내부는 이미 넓어 보잘것없는 초소형 정자에서도 활달하게 노닐었다. 겨우 나뭇가지 하나를 침상으로 삼아 발톱으로 움켜쥐고 밤을 보내는 산새들의 생태와 유유상종하며 허름한 초가를 우주처럼 크넓게 썼을 게 아닌가.
계정 옆댕이엔 대산루(對山樓)가 있다. 2층짜리 조선 전통한옥을 본 적 있는가? 우리의 옛집은 왜 다들 단층이냐고 섭섭해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라면 2층으로 지어진 대산루를 찾아볼 일이다.
한옥으로선 이례적인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一’자형 1층 위에 정면 2칸, 측면 5칸의 ‘l’자형 2층 누각을 올려 전체적으로는 ‘ㅓ’자형을 이루고 있다. 예사 건축 구성이 아니다. 아마도 당대의 첨단 테크놀로지를 동원했을 테다. 2층 누각에 온돌방을 설치한 데에서도 대단한 창의적 발상으로 지어진 집임이 확인된다. 2층 하부에 벽을 치고 흙을 채워 인공지반을 확보한 뒤 구들과 고래, 아궁이를 설치해 온돌방을 만든 것이다.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을 사각 돌덩이들로 조성한 점도 이채롭다. 왜 그랬는지 딱히 밝혀진 건 없다. 누각 마룻장에 빠끔하게 뚫어둔 구멍 하나도 요상하다. 용변을 보거나 청소를 위한 배출구라는 설이 있으나, 여하튼 익살스럽다. 1층 계단 쪽 회벽엔 ‘工’(공)자 문양들을 또렷하게 새겨 넣었다. 이건 누각의 풍류를 즐기되 공부에도 열을 내라는 뜻? 공부에 미치되 설 미쳐서야 푼수밖에 될 게 없다. 깨달음을 좇는 게 선비들의 공부였으니 산수 간에 앉아서도 궁구(窮究)를 일삼았다.
대산루 자리엔 원래 정경세가 제자들을 가르쳤던 학당 건물이 있었다. 그걸 6대 후손 정종로(鄭宗魯, 1738~1816)가 새롭게 지어 대산루라 했다. 정경세 생시의 학당 모습을 볼 수 없어 실로 아쉽다. 그러나 대산루의 형상과 디테일이 매우 기발해 기분을 돋우기엔 부족함이 없다.
계정도 대산루도 고귀하지만, 정경세가 늘 바라보았을 물가 풍경도 내 눈엔 절경이다. 화려하지 않으나 정겹고, 웅장할 거 없으나 섬려하다. 옛사람의 꿈과 상상이 저 산수와 함께 무르익었을 게다. 예학(禮學)의 대가였던 정경세는 ‘섬김’의 도리를 실천, 타자를 가슴속에 들여놓는 일을 본분으로 삼았다. 사설 병원 존애원(存愛院)을 세워 백성들을 무료 진료하기도 했다. 정경세의 말년은 곤궁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랑곳없었다. 적게 먹고 끝내 담백하게 살았다. 가난을 가난으로 느끼지 않았으니 무소유의 본이다. 비범한 한 생애였구나.
답사 Tip
경북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에 있다. 우복종택(국가민속문화재 제296호) 공터에 주차하고 종택과 계정, 대산루 순으로 답사한다. 종택 들머리엔 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규칙적인 취침과 숙면은 이미 잘 알려진 100세 시대의 장수 비결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니어 5명 중 1명은 불면증을 겪으며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시니어를 비롯해 수면 부족으로 피로를 호소하는 현대인이 많아지면서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각종 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수면 관련 제품과 IT 기술을 접목한 ‘슬립테크’(Sleep Technology)가 잠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신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니어를 장수의 길로 한 발짝 다가가게 해줄 이색 슬립테크 서비스를 소개한다.
수면은 우리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작게는 매일 아침 컨디션을 좌우하고, 크게는 심신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인지 기능이 저하되고 각종 중증 질환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건강에 관심 있는 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얘기다. 실제로 수면 시간이 하루 5시간 이하인 시니어는 7~8시간 수면한 시니어보다 치매에 걸릴 위험이 두 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나 매일 아침을 커피 한잔으로 시작하는 현대인은 대다수가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41분으로, 18개 회원국 중 최하위다. 젊었을 때는 일하느라 바빠 잘 시간도 없었다면, 나이가 들어서는 신체 기능이 저하되면서 자고 싶어도 잘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린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잘 먹고 잘사는 것에 이어 잘 자는 법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면서 ‘슬리포노믹스’(Sleepono mics)가 주목받고 있다. 잠과 경제학의 합성어로 수면과 연계된 모든 산업을 총칭하는 말이다. 단순 침구류뿐 아니라 무드등을 비롯한 소형 가전, 차(茶), 아로마테라피, 수면을 유도하는 자율감각 쾌락반응(ASMR) 등 온라인 콘텐츠까지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오늘날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분야는 ‘슬립테크’다. 다양한 IT 기술로 수면 중 겪는 불편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 개개인의 침구류나 수면 습관을 맞춤형으로 관리해주는 제품과 서비스를 말한다. 시장조사 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슬립테크 시장은 2026년 약 320억 달러 규모로 2019년에 비해 3배가량 커질 전망이다. 개인의 체형에 따라 설계된 베개를 베고, 인공지능(AI) 비서가 추천해주는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하는 모습이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셈이다.
‘꿀잠’도 맞춤형…1:1 수면 컨설팅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키워드는 ‘초개인화’다. 개인의 특성과 상황 등을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슬립테크 시장에서도 초개인화 마케팅이 활용되고 있다. 사람마다 체형이나 수면 자세, 수면 습관 등이 모두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 맞춤형 침구류를 추천하고, 수면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중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 뜨고 있는 곳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슬립라운지’다. 슬립라운지는 토털 슬립케어 브랜드 이브자리에서 운영하는 무인 베개 체험 공간으로, 자가진단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 키오스크를 통해 개인에게 적합한 베개를 추천받고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1시간 단위의 사전 예약제로 진행되며, 슬립라운지 홈페이지에서 날짜와 시간을 예약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출입문 좌측에 있는 카드리더기에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를 대고 들어서면 20여 가지 베개와 아늑해 보이는 침구가 눈에 띈다. 무인 시스템이기 때문에 직원이 보이지 않아도 당황할 필요 없다. 키오스크가 웬만한 것을 해결해준다. 하지만 키오스크가 낯선 시니어는 홈페이지 예약 시 자유체험이 아닌 1:1 베개 컨설팅 프로그램을 선택해도 된다. 컨설팅은 매주 월·화·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된다. 비용은 체험과 컨설팅 모두 무료다.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디지털 경추 측정기에 등을 붙이고 바른 자세로 앉은 다음 경추의 길이를 잰다. 경추 길이는 측정기에서 가장 앞으로 튀어나온 스케일의 맨 뒤쪽 색상을 보면 된다. 그 다음 키오스크에서 ‘나만의 베개 찾기’를 누르고 경추 길이, 수면 자세, 선호하는 베개의 느낌 등 몇 가지 설문에 답을 한다. 결과가 나타나면 베개 진열장에서 추천받은 베개를 찾아 누워 안락한 정도를 느껴본다. 이때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침구에서 체험하는 것이 좋다. 체험한 베개가 마음에 들면 키오스크에서 곧바로 구매해도 된다.
방문 당시 두 종류의 베개가 결과지에 나타났다. 추천받은 베개는 경추 길이 3~4cm 이상의 옆으로 자는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신체가 닿는 부분에 따라 높낮이가 다른 것이 특징이다. 가령 양 끝부분은 돌출된 어깨로 인해 머리와 바닥 간의 거리가 멀어지는 점을 고려해 중앙 부분보다 높고, 후두부 부분은 오목하게 들어간 경추 부분보다 낮게 설계됐다. 집에서 쓰는 베개와 다른 모양새지만, 직접 누워보니 발 크기에 꼭 맞는 신발을 신은 듯 안정감이 더했다. 조은자 이브자리 수면환경연구소 부소장은 “사람마다 경추 높이나 수면 자세 등에 따라 적합한 베개가 다르기 때문에 직접 체험해보고, 몸에 맞는 제품을 찾는 것이 수면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층 다양한 체험을 하고 싶다면 경기도 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지하 1층에 위치한 이브자리 ‘슬립앤슬립 플래그십 스토어’를 이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곳에서는 베개뿐 아니라 마사지 기구나 수면 유도 차, 스프레이 등 잠을 부르는 이색 제품을 체험해볼 수 있다. 또 전문 수면 컨설턴트인 ‘슬립코디네이터’가 상주해 개개인의 수면 습관을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해준다. 30분(3000원), 40분(4500원), 50분(6000원) 단위로 체험이 가능해 달콤한 단잠도 즐길 수 있다.
날로 커지는 시장…수면 질환 치료까지
수면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면서 신기술을 활용한 이색 슬립테크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출시된 코웨이의 ‘모션베드 프레임’은 사용자가 원하는 용도에 따라 머리와 상체, 엉덩이, 허벅지, 다리 등의 각도를 바꿀 수 있는 기능이 탑재돼 있다. 상체를 살짝 올리고 다리를 심장보다 높이 두는 ‘무중력 자세’로 설정하면 체중을 분산하고 혈액 순환을 촉진시켜 편안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최근에는 사용자가 손을 대지 않고도 뒤척임을 자동으로 감지해 최적의 수면 자세를 만들어주는 기술도 나왔다. 스마트 매트리스 브랜드 아이오베드의 ‘스마트 슬립 시스템’이다. 아이오베드가 특허권을 따낸 이 기술은 매트리스 안에 들어 있는 스마트셀이 공기압의 변화를 감지해 매트리스의 푹신한 정도를 자동으로 조절한다.
무너진 생체 리듬의 균형을 잡아주는 스마트 안경도 주목할 만하다. 슬립테크 스타트업 페가시가 지난해 선보인 ‘꿀잠 수면안경’은 녹색 자연광을 내뿜는 장치를 이용해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를 활성화시킨다. 낮 동안 햇빛에 노출될수록 분비가 왕성해지는 멜라토닌 특성상 오전 7시에서 9시 사이에 기기를 착용하면 14시간 후 호르몬이 분비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페가시에 따르면 제품에 사용된 LED는 광생물학적 안정테스트를 통과해 사람과 동물의 눈에 직접적으로 조사되어도 안전하다.
시니어의 골칫거리인 각종 수면 질환 치료에 도움을 주는 기기도 최근 개발됐다. 신현우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2018년 교내 창업한 슬립테크 스타트업 아워랩은 수면 무호흡증 치료를 위한 구강 삽입형 기도 확장기 ‘옥슬립’을 개발하고, 지난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기기 품목허가를 받았다. 교정기를 입에 물어 억지로 턱을 당기는 기존 기구와 달리 바로 누운 자세에서만 아래턱을 전진시키고, 옆으로 누워 잘 때는 턱의 위치를 되돌려 하관 근육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한다. 기기를 통해 수면 중 자세 변화나 작동 횟수 등도 확인할 수 있어 이용자 스스로 관리가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향후 슬립테크 시장의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한다. 임영현 한국수면산업협회 회장은 “수면은 성인병과 치매 등 인간의 건강에 직결되고, 더 나아가 경제활동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단순 휴식 차원으로 인지해선 안 된다”라며 “일본은 이미 관련 시장의 성장 규모가 약 8조, 미국은 22조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우리나라도 수면과 관련된 전 분야가 IT 기술과 병합해 슬리포노믹스 시장의 비중이 굉장히 막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니어의 편안한 밤을 위한 베개 컨설팅
① 밤에 더위를 많이 탄다면? 나이가 들면 온몸에 열감이 나타나 잠을 설치는 시니어가 많다. 호르몬 변화가 들쑥날쑥한 갱년기에는 더욱 그렇다. 이럴 땐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폴리에틸렌 파이프 소재의 베개를 사용해보는 것이 좋다. 파이프 소재 베개는 내부가 원형 모양의 칩으로 채워져 있어 통기성이 뛰어나며, 잦은 세탁에도 손상이 적어 땀을 많이 흘리는 이들에게도 적합하다.
② 주변 환경에 예민해 자주 깬다면? 작은 소음에도 예민한 편이라면 내용물이 바스락거리는 파이프 소재보다 부드럽게 감싸주는 솜이나 메모리폼 소재 베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간혹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입소문 난 기능성 베개를 선호하는 이들이 있는데, 모양이 지나치게 굴곡지고 딱딱한 베개는 수면 중에도 의식적으로 자세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③ 목에 잦은 통증이 느껴진다면? ‘높은 베개보다 낮은 베개가 좋다’는 기존에 알려진 건강 상식 때문에 높이가 낮은 베개만 선호하는 시니어가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맞지 않는 베개 높이는 오히려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높은 베개도 마찬가지다. 누워 있을 때의 모습을 사진 찍어보고 목이 지나치게 꺾여 있거나 경직돼 있다면 베개 높이를 바꿔보는 것이 좋다. 누웠을 때 척추의 자연스러운 S자 곡선을 유지해주는 베개가 최적의 베개다.
④ 허리가 불편하다면? 누웠을 때 허리가 바닥에서 떠서 종종 배긴다면 보디필로(전신베개)를 사용해보는 것이 좋다. 몸의 압력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고 균형 있는 자세를 만들어준다. 그럼에도 통증이 느껴지면 매트리스에 꺼짐 현상이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특히 시니어는 나이가 들면서 체중과 체형이 변하기 때문에 젊은 시절 구매한 매트리스를 쓰고 있다면 교체하는 것이 좋다. 고가의 매트리스가 부담된다면 기존에 사용하던 매트리스 위에 토퍼(바닥형 매트리스)를 깔아도 된다.
도움 조은자 이브자리 수면환경연구소 부소장
여행을 떠날 때 필요한 기술 중 하나가 짐 싸는 법이다. 가방 안에 여행 중 사용할 옷가지나 화장품, 생활용품 등 다양한 물건을 오밀조밀 담아내는 일에도 여행 전문가들은 노하우가 있다. 가령 와이셔츠는 두 개를 겹치고 옷깃을 세운 채 개어서 넣는 것이 좋다. 이러한 팁을 알려주는 한 브랜드의 영상이 유튜브에서 조회수 21만 회로 인기를 끌었다. 그 브랜드는 다름 아닌 루이비통이다. 명품 브랜드의 대명사 루이비통이 여행 가방 싸는 법을 알려주는 이유는 뭘까?
루이비통은 여행용 트렁크로 출발한 브랜드다. 루이비통은 지금도 정체성을 여행에서 찾는다. 창업자 루이 비통은 스위스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10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가 재혼하자 그는 새 삶을 찾아 나섰다. 14세에 길을 떠나 파리에 도착하기까지 2년간 도보 여행을 했다. 이 여정을 루이비통은 브랜드 최초의 여행으로 꼽는다.
짐 싸주던 파리 청년
창업자 루이 비통은 파리에서 ‘패커’로 일했다. 패커는 여행 짐을 대신 싸주고 여행 가방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당시 파리의 귀부인들은 풍성한 드레스와 깃털, 리본으로 장식한 화려한 모자를 쓰곤 했는데, 여행할 때 이 모자와 드레스를 구김 없이 갖고 다닐 수 있게 포장해주는 전문 일꾼이었다. 그는 솜씨 좋은 패커로 유명세를 얻어, 나폴레옹 3세 황후의 전담 패커로 일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여행은 고급 문화였기에 그는 귀족들을 대상으로 일했다. 이 분야 전문가였던 무슈 파레샬의 공방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고, 1854년에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건 매장을 차렸다.
당시 프랑스는 자본주의가 급성장하며 여행 문화가 널리 퍼졌다. 그때만 해도 여행용 트렁크는 포플러나무로 만든 위쪽이 둥근 상자였다. 그래서 몹시 무겁고, 여러 개를 쌓기 어려우며, 마차가 코너를 돌면 넘어지곤 했다. 이에 창업자 루이 비통은 새로운 여행 가방을 개발했다. 사각 형태로 만들어 차곡차곡 쌓아 올릴 수 있었고, 방수 처리된 천 소재를 써서 가벼웠다. 운반과 적재의 편의성을 높인 그의 가방은 프랑스 부유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평평하고 네모난 트렁크는 현대 여행 가방의 시초가 되었다.
인기가 많은 만큼 모조품도 성행했다. 모조품을 막고자 아들 조르주 비통이 가방에 무늬를 넣었다. 체크 모양의 다미에 패턴, 창업자 루이 비통의 이름 철자 L과 V를 딴 로고와 장미 문양으로 만든 모노그램 패턴이 만들어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도난방지용 자물쇠 역시 당시 함께 개발되어 오늘날까지 루이비통 가방에 장착되며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핸드백 영역으로도 제품군이 넓어졌다. 샤넬 창업자 가브리엘 샤넬의 주문을 받아 만든 알마 백,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자신의 몸에 맞는 작은 사이즈를 주문해 만든 스피디 백 등 소형 핸드백을 만들었다. 이 제품들은 지금도 루이비통의 인기 핸드백이다.
셀렙을 위한 트렁크의 무한 변신
브랜드 창립 후 6년이 지나자 창업자 루이 비통은 파리 북서부 지역의 아니에르에 공방을 열었다. 이곳에서 각계각층 유명 인사를 위한 맞춤형 여행용 트렁크를 만들었다. 1879년 탐험가 피에르 브라자의 아프리카 탐사를 위해 만든 여행용 트렁크는 펼쳐놓으면 침대가 되었다. 1923년에는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위해 트렁크를 만들었는데, 수십 권의 책을 보관할 수 있어 여행지에서 펼쳐놓으면 서재가 되었다. 1926년에 인도 왕족을 위해 만든 트렁크는 찻잔과 찻주전자를 비롯한 티 세트를 담아 어디서나 차를 마실 수 있게 했다.
이후 루이비통은 더욱더 유명세를 얻어 다양한 셀렙들의 의뢰를 받으며 세계 각지로 뻗어나갔고, 이는 오늘날 글로벌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는 초석이 되었다.
아니에르 공방에는 지금도 장인들이 상주하며 세계의 명사들을 위한 맞춤형 트렁크를 만드는 일을 전담하고 있다. 현대에는 그 영역이 넓어져 월드컵 트로피 보관 트렁크,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명화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운송하는 트렁크도 제작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를 위해 스케이트 트렁크를 만들어 헌정하기도 했다.
2020년에는 미국 프로농구협회와 NBA 우승 트로피 보관 트렁크를 제작하는 파트너십을 맺었다. 아니에르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제작된 트렁크는 매년 6월 NBA 우승팀에 전달되어 트로피 보관, 전시, 운반 과정에 사용된다. 마이클 버크 루이비통 CEO는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승리는 루이비통 안에서 여행한다’는 전통을 다시 한번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하며, 루이비통의 여행 헤리티지를 강조했다.
강과 산과 하회마을이 맞물려 자아내는 파노라마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서애와 겸암의 행장을 더듬어보는 재미도 짭짤하다. 부용대 주차장에 당도한 뒤 부용대-겸암정사-옥연정사 순으로 탐승한다. 하회마을 나루터에서 도선을 타고 강을 건너 부용대에 오르는 방법도 있다.
그저 봉긋할 뿐, 야트막한 야산이다. 산길은 밋밋한 데다 펑퍼짐해 풍경이 맺힐 리 없다. 꼭대기에 오른들 뭐 볼 게 있으랴 싶었으나, 웬걸, 부용대(芙蓉臺) 산마루에 닿자 급격한 반전이다. 별안간 확 트이는 시야 가득히, 수직벼랑 저 아래로 사행(蛇行)하는 낙동강이 엄습해오는 게 아닌가. 강의 젖을 물고 들어앉은 물동이동(洞) 하회마을도 한눈에 들어온다. 강변 모래밭을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몽당연필처럼 작달막하게 짜부라져 코믹하다.
부용대는 강물과 하회마을을 한꺼번에 부감할 수 있는 전망대다. ‘부용’은 연꽃을 상징한다. 이곳 아찔한 벼랑 위에서 옛사람들은 하회마을을 통째 연꽃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국)의 길지라고 일렀다. 긴 말이 필요 없겠다. 조선의 인문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를 통해 물가의 마을 중 살기 좋은 곳으로 하회를 제일로 쳤다.
살기에 좋아 출세한 이들이 속출했나. 풍산 유 씨 씨족촌인 하회마을은 겸암(謙菴) 유운룡(柳雲龍, 1539~1601),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 형제 대(代)부터 번창해 위력을 떨쳤다. 현대에 이르러선 인파가 몰리는 관광명소로 거듭난 마을이다. 고택과 초가로 연출한 관광 재료들에 힘입어 상업이 기차게 발달했다. 그러나 부용대에서 내려다보면 그저 땅에 납작 엎드려 포복하는 마을일 따름이다. 거뭇한 기와지붕과 누런 초가지붕이 어우러진 자못 이상적인 색감 조합으로 평화롭다.
하회마을을 에두른 솔숲과 강물은 또 얼마나 평온한가. 마을 안에선 지금 열띤 호객 경쟁이 벌어지고, 여행자들이 왁자하게 떠들어대고, 연인들은 혹간 초가집 뒤란에 숨어 숨 막힐 키스를 할지도 모르지만 높은 곳에서 보면 일체가 은자처럼 마냥 고즈넉하다. 티 없이 조화롭다. 삶이란 이렇게 멀리서 보면 모든 게 상통이자 상생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모든 게 작아 애잔하다. 가장 드높은 곳에 상주하는 신이나 하늘에게 우리가 사랑을 갈구하는 건, 미미한 존재에 불과해 슬픈 나를 자각할 때다.
부용대 서편 오솔길을 따르자니 숲이 제법 깊어진다. 솔향기 감돌아 청신하다. 아무리 작은 야산이라도 향이 있고 깊이가 있고 기품이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에서 멈춰 산에 산다. 청산을 건너던 나비가 들꽃에 꽂혀 갈 길을 잊듯이. 강물에 밀리는 모래알처럼 덧없는 인생, 굳이 꿍꿍이와 아귀다툼이 난무하는 비정성시(悲情城市)에 살 일이 뭐람. 그쯤의 생각이었을까. 겸암은 문득 벼슬을 버리고 낙향, 이 야산 자락에 공부방을 두고 지냈다. 겸암정사(謙菴精舍)가 바로 그곳이다.
부용대 동쪽 산자락 아래편엔 서애 유성룡이 벼슬을 마치고 머문 옥연정사(玉淵精舍)가 있다. 야산 양편에 형제가 나란히 정사를 짓고 자연 속에 은거했던 셈이다. 벼슬살이로 보낸 세월이 길었으나 둘 다 퇴계를 사사한 도학자로서도 쌓은 게 많았다. 못 말릴 산야 기질도 스승을 닮아 자연을 경전으로 읽었고, 흐르는 강물과 솔의 푸름을 바라보기를 유락(遊樂)으로 삼았다. 그래 격물치지의 혜안이 환하게 열렸을 테다. 특히나 사람 보는 눈에 있어서 서애를 따를 이가 누구랴. 서애는 임진왜란이 터지자 이순신과 권율을 임금에게 천거했다. 실로 신의 한 수였다.
지척에 살아 형제간 만남도 잦았던가보다. 심심파적으로 산꽃 보러 나갔다가 우연히 맞닥뜨린 일도 흔했으리라. ‘층길’이라는 이름을 달고 야산의 3부 능선쯤에 아직도 온전히 남아 있는 옛길 하나. 형제는 이 ‘층길’에서 상면하길 즐겼다고 전해진다. 옹색해서 위험한 층층 벼랑길이라 요즘은 아예 출입을 금지했다.
옥연정사는 강변의 높직한 둔덕에 있다. 고가의 관용과 운치로 아름답다. 서애는 여기에서 임진왜란의 전말을 담은 ‘징비록’을 집필했다. 전쟁의 사령탑 역할을 한 서애였으니 리얼리티로 생동하는 책이다. 그의 성품은 맑고 온유했다지. 그러나 실록엔 곱지 않은 평도 간간이 나타난다. 줏대가 약해 폐단을 당차게 간하는 일이 드물었다고 기록했다. 만년의 서애는 “평생 부끄러운 일이 많아 한스럽다”고 탄식했다. 세상의 갈채에도 불구하고 묵은 빚을 느꼈다? 그렇더라도 그 겸허한 풍모가 오히려 출중하다.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설령 비바람의 광란에 수면을 찢기더라도 유유히 흐를 뿐이다. 먼지구덩이 세상이라도 아랑곳없이 나아간다. 눈앞이 캄캄한 삶이라면 저 강물에게 물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