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불가역적인 봄입니다. 춘삼월(春三月)이라 하지만 심술궂은 꽃샘추위로 간간이 옷깃을 여미고 어깨를 움츠려야 했던 3월과 달리, 이제부터는 오로지 화창한 봄입니다.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노랑나비가 살랑살랑 춤추며 날아다니는 봄. 어질어질하고 아찔한, 그런 봄날의 몽환적 분위기를 쏙 빼닮은 야생화가 있습니다. 봄이 농익어가는 4월부터 5월 사이 연보랏빛 꽃을 피우는 깽깽이풀입니다.
주로 산 중턱 아래 낮은 숲에서 자랍니다. 잎이 나기 전, 6~8개의 꽃잎이 지름 2cm가량의 원을 그리며 피는 꽃은 단번에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입니다. 민가와 가까운 곳에서 자라는 데다 관상미가 높은 까닭에 남획과 자생지 훼손이 심해 한동안 멸종위기 야생식물로 지정됐다가 몇 해 전에야 해제되는 곡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한두 송이가 각기 떨어져 피기도 하지만, 대개는 수십 송이가 뭉쳐서 여기에 한 무더기, 저기에 한 무더기 피는데, 바로 그런 특성에 깽깽이풀이란 이름의 유래와 번식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즉 듬성듬성 자라는 모습에서 한 발로 껑충껑충 뛰는 깽깽이걸음을 떠올리고 깽깽이풀이란 이름을 붙이게 됐다는 설이지요.
그런데 깽깽이풀이 이처럼 듬성듬성 자라게 된 데에는, 당분이 함유된 깽깽이풀의 씨앗을 개미들이 좋아해 개미집으로 운반해가는 도중에 여기에 하나, 저기에 하나 떨어뜨리면서 자연스럽게 분산 발아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창 농사일이 바쁜 4월 농부들이 만개한 이 꽃을 보면 ‘깽깽이(해금이나 바이올린을 낮춰 부르는 말)’ 켜며 땡땡이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늘하늘한 꽃이 예쁘기 그지없지만, 활짝 핀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개화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날이 조금만 흐리거나 기온이 차면 꽃잎을 아예 열지 않습니다. 게다가 길이 20~30cm의 꽃대 끝에 하나씩 달리는 꽃은 매우 연약해 바람이 조금만 심하게 불거나, 빗줄기가 강하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꽃이 진 뒤 나는 잎이 꽃 못지않게 귀여워 그 또한 충분히 볼만합니다. 줄기 없이 뿌리에서 바로 나오는 잎은 적갈색에서 점차 녹색으로 변합니다. 물결 모양의 가장자리나 물에 젖지 않고 딱딱한 형태가 연잎을 많이 닮았는데, 이로 인해 아예 황련(黃蓮) 또는 조황련(朝黃蓮)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Where is it?
“깽깽이풀도 없는데 뭐하러 와요?” 몇 해 전 제주의 ‘꽃동무’에게 4월에 방문하겠다고 하자 돌아온 답이다. 남한 최고의 산인 한라산이 있어 ‘없는 야생화가 없는’ 제주도이지만, 4월의 야생화로 손꼽을 깽깽이풀만은 자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 제주도와 남해 도서지방을 제외하고 전국에 분포한다. 그중 야생화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유명 자생지는 경북 의성의 고운사 주변, 대구 달성군 본리리 야산, 강원 홍천군 방내리 야산 등지다. 멸종위기종으로 관리하는 동안 인위적인 증식이 많이 이뤄져 전국 각지의 웬만한 식물원·수목원 등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다(多)주택자들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사실 한발 늦었다. 3월 31일까지 주택을 처분하지 못한 다주택자들에게는 양도소득세 감면을 위한 출구가 매우 좁아졌다. 그렇다고 무작정 집을 팔 수 없어 ‘보유’로 가닥을 잡았다면, 지금이라도 증여나 임대주택 등록을 통해 양도세를 줄이는 대안 마련이 필수다.
다주택자 ‘최고 68.2%’ 양도세 중과
수도권 소재 주택 세 채에서 나오는 월세 수입으로 노후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는 김모(62) 씨는 당초 아들이 결혼하게 되면 집 한 채를 물려줄 작정이었지만,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세금 압박이 커지면서 증여 시점을 앞당기게 됐다.
부동산 세금에 대한 김 씨의 우려는 괜한 걱정이 아니다. 다주택자를 정조준한 정부의 규제에 무작정 ‘버티기’로 대응할 경우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만일 김 씨의 주택이 조정대상 지역에 있고, 집값이 구입 당시보다 5억 원이 넘게 올랐다면 양도차익의 70% 가까이를 세금으로 내야 할 수도 있다.
4월 1일부터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가 대폭 늘어난다. 조정대상 지역에서 주택을 매각하면 2주택자는 기본세율에 10%포인트, 3주택자는 20%포인트가 추가된다. 여기에 올해 세법 개정으로 양도세 최고세율이 기존 40%에서 42%로 2%포인트 높아졌다. 양도차익이 1억5000만 원을 초과하면 38%, 3억 원을 넘으면 40%, 5억 원 초과인 경우 42%의 세율을 각각 적용받는다. 3주택자인 경우 기본세율에 20%포인트가 추가되고, 양도세의 10%가 다시 주민세로 붙기 때문에 최고 68.2%의 양도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집값 상승분의 70%가량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셈이다.
단 양도세 중과세는 조정대상에 있는 주택을 양도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다주택자라도 조정대상 지역의 주택을 매각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중과세는 물지 않는다. 현재 조정대상 지역은 서울 전역(25개구), 경기 7개시(과천, 성남, 하남, 고양, 광명, 남양주, 동탄2신도시), 부산 7개구(남구, 해운대구, 수영구, 연제구, 동래구, 부산진구, 기장군)와 세종시다.
‘부담부 증여’ 양도세 따져라
주택 수는 개인별이 아닌 세대별로 계산된다. 본인 및 배우자 소유의 주택은 물론이고 세법상 동일 세대원의 소유 주택을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 별도 세대로 분리할 수 있는 세대원 소유의 주택은 떼어내는 것이 절세 포인트다.
대표적인 것이 자녀에게 증여하는 방법이다. 자녀가 세법상 별도 세대를 구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면 세대를 분리해 자녀에게 아파트를 증여하면 주택 수에서 제외된다. 세법에서는 결혼했거나 연령이 30세 이상, 최저생계비 수준 이상으로 독립생계가 가능한 경우에 한해 독립세대로 인정한다.
앞서 김 씨의 자녀가 결혼했거나 연령이 30세 이상이고, 소득이 있다면 자녀에게 증여해 주택 수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자녀가 미혼이고 독립생계가 어려운 경우라면 증여해도 주택 수가 별도로 계산되지 않는다.
증여 방법은 크게 단순 증여나 부채를 승계하는 부담부 증여 중 선택할 수 있다. 대개 세금을 줄이기 위해 부담부 증여를 선호한다. 부담부 증여는 대출이나 전세보증금 등 증여자(부모)의 채무를 수증자(자녀)가 인수하는 조건의 증여 방식이다. 전체 평가액 중 부채 승계금액을 제외한 금액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내고, 부채 승계금액에 대해서는 양도세가 붙는다. 김종필 세무사는 “4월 이후 부담부 증여의 경우 양도세 중과가 적용될 수 있어, 단순 증여와 부담부 증여 시 세금을 비교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집값이 크게 상승한 경우라면 배우자에게 증여하는 방법도 있다. 배우자에게 증여할 때 주택 수는 달라지지 않지만, 통상적으로 부부간 증여는 6억 원까지 배우자 공제가 적용된다. 가령 3년 전 4억 원에 구입해 6억 원으로 오른 아파트를 아내에게 증여하면, 배우자 공제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 경우 배우자가 아파트를 증여받은 후 제3자에게 6억 원에 매도하면 양도차액이 발생하지 않아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 단 증여 후 단시일 내 양도는 주의해야 한다. 증여 후 5년 이내에 매매할 경우 조세 회피를 위한 것으로 간주해, 애초 취득금액인 4억 원을 기준으로 양도차익이 계산된다. 증여 후 5년이 지나면 증여 당시 평가금액이 취득금액이 되므로, 5년 이상 보유 의사가 있다면 가족 간 증여 후 양도하는 방법이 효과적인 절세 방안이 될 수 있다.
임대사업 등록 … 8년 이상 장기전략
서울 마포구에서 다가구주택을 세놓은 임모(68) 씨는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놓고 고심 중이다. 임 씨는 다가구주택 외에도 현재 거주 중인 주택을 비롯해 아파트 두 채를 소유하고 있다. 임 씨는 “다가구주택에서 나오는 임대소득은 노후 생활비여서 당장의 매각은 고려하지 않지만, 자칫 임대사업 등록으로 소득만 드러나고 실익은 크지 않을 수도 있어 망설인다”고 말했다.
최근 임대사업자 등록을 선택하는 다주택자가 늘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2월 한 달간 신규 등록한 개인 임대주택사업자는 9199명으로 지난해 2월(3861명)에 비해 2.4배 증가했다. 지난 1월(9313명)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2월은 설 연휴로 등록 가능한 근무일수가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평균 등록자는 1월 423명에서 2월 511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주택임대소득에 대한 종합소득세는 굳이 신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국세청은 신고하지 않더라도 임대차 내역을 파악할 수 있다. 직장인의 월세소득공제는 물론, 주민센터를 통해 확정일자 정보도 확인이 가능하다. 따라서 임대 목적으로 다주택을 소유하고 있다면,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각종 세금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팀장은 “조정대상 지역에서 (임대)수익률이 높고 집값 상승 여력이 있는 주택을 가진 경우라면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장기적으로 세금을 줄여나가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양도세 중과를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건강보험료 등이 줄거나 면제된다. 장기특별보유공제 혜택도 있다. 다만 4월 1일 이후 사업자 등록을 고려한다면 선택지는 8년 이상 ‘장기임대’로 좁혀진다.
3월까지 사업자 등록을 한 경우 의무기간 4년의 단기임대주택을 운영할 수 있고, 5년 이상 임대하면 양도세와 종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4월 이후에 양도세 중과 배제와 종부세 혜택을 받으려면 8년 이상 임대주택 등록을 해야 한다. 8년 임대 시 건보료의 80%가 감면되고, 매각 시에는 매매 차익의 70%까지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장기 임대주택 혜택은 시·군·구청과 세무서에 모두 등록해야 하며, 임대료는 의무임대기간 동안 연 5% 범위로 인상폭이 제한된다. 의무임대기간에 주택을 매매할 경우 주택당 최대 1000만 원에 달하는 과태료가 부과되고 감면된 세금도 추징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살았던 돈암동과 이후 이사하여 오랫동안 살고 있는 정릉을 지나는 길로 아리랑 고개가 있다.
몇 년 전까지는 2차선 도로로 좁은 길이었는데 4차선 넓은 길로 확장되면서 아주 깔끔하고 시원한 길이 되었다.
4차선으로 넓히면서부터 심은 벚꽃나무가 아직은 그리 크지 않아서 꽃잎이 풍성하진 않지만 봄이 되면 돈암동 초입부터 1.5킬로미터에 이르는 아리랑 고개에 벚꽃축제도 열리고 있다.
지나다니며 본 벚꽃축제는 좀 안타까울 만큼 꽃잎이 빈약해서 웃음이 났지만, 시간이 갈 수록 든든하고 멋진 벚꽃나무가 되어 언젠가는 어느 곳의 벚꽃보다 풍성한 예쁜 꽃으로 명실공히 아리랑 고개 벚꽃축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리랑 고개 중간쯤에는 예전부터 환갑잔치하는 장소로 유명한 신흥사라는 곳도 있었지만 지금은 개발되어 없어졌다고 한다.
필자는 중. 고등학교 학창시절에 그 근처에 있는 보현사라는 절 옆의 독서실에 자주 공부하러 다니기도 해서 친밀하게 느껴지는 동네이다.
아리랑고개라는 명칭을 갖게 된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오는데 1935년 일제 강점기 때 그곳에 있던 고급요정의 이름으로 민요 아리랑의 곡명을 사용했다는 것과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영화인 아리랑을 촬영한 곳이기 때문에 그렇게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민족영화인 아리랑은 춘사 나운규 선생의 항일정신을 잘 나타낸 작품이며 일제 강점기에 국가를 찾겠다는 구국일념으로 보아 아리랑고개의 유래로 더욱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영화 아리랑은 항일운동을 하다가 감옥생활을 한 나운규 선생이 25세 때 감독 각본 주연까지 맡아 만들었으며 민족의 아픔과 굽히지 않는 항일정신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1926년 10월에 종로의 단성사에서 흑백 무성영화로 개봉되었으며 구성진 변사의 설명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는데 영화를 통해서 민족혼을 불살랐던 아리랑의 필름은 남아있지 않는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영화내용 중에서 오빠가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며 부르는 아리랑이 하이라이트라 하는데 바로 그 장면을 촬영한 장소가 이 아리랑 고개라 한다.
영화 아리랑의 극적인 장면을 촬영한 배경인 이곳을 1997년 영화의 거리로 지정하였다.
그 거리를 걸으면 인도 바닥에 설치된 동판을 볼 수 있다. 10미터 간격으로 박혀있는 네모난 동판은 세어보진 않았어도 166개나 된다는데 헐리우드처럼 손도장이나 발 도장 같은 게 아니라 방화 (국산영화)와 외화의 이미지가 담겨있다.
어느 것은 영화배우의 얼굴이 새겨져 있어 밟다가 깜짝 놀라며 좀 미안해진 경험도 있으며 ‘서편제’나 ‘미워도 다시 한 번’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한국영화 포스터와 ‘벤허’ ‘죠스‘같은 외국영화의 포스터가 동판으로 박혀있다.
테마공원으로 ‘나운규 소공원’도 있고 아리랑 고개 정점에는 아리랑 시네마극장과 정보도서관이 있어 전통과 역사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거리로 동네 사람들에게 휴식을 줄 수 있는 인기 좋은 거리가 되었다.
스카이웨이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한 아리랑 고개는 조금 심하게 경사가 진 도로이다.
필자는 기어를 조작해야하는 수동 차를 운전하고 있어서 경사진 그곳의 신호에 걸려 서 있을 때면 뒤로 미끄러질까봐 항상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그래도 수십 년을 지나다닌 아리랑 고개 이거리가 필자에겐 친숙하기도 하고 역사적인 배경도 있는 곳이라 자랑스럽게 생각되는 동네이다.
모르고 지나다닐 때보다 거리의 명칭에 대한 유래를 알고 나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앞으로 아리랑 고개가 봄이면 벚꽃도 더욱 탐스럽게 피어나고 사계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명절 연휴가 며칠씩 이어지다 보니 하루 세끼를 만들어내느라 매번 머리를 쥐어짰다. 가까운 큰 댁에 가서 잠깐 차례만 지내고 오다 보니 별달리 명절 음식도 없다. 잠깐 나가서 사 먹고 오자 하고 가끔 배달음식을 먹자고도 하지만 내키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끼니 준비하는 게 귀찮고 성가시기 시작했다. 간신히 먹고 살 정도로 민생고를 해결하는 성의 없는 밥상의 날들이 잦아졌고 남편의 회식이 자주 생겨나길 바라기도 했다. 한때는 요리의 즐거움과 호기심이 넘쳐서 무수한 요리강좌도 다니고 급기야는 각종 요리 관련 자격증을 수집하는 사람처럼 있는 대로 모아들이기도 했던 적이 있었다. 즐거움도 한때인 듯 이젠 주방 일이 귀찮아 죽는다.
설 쇠고 오래간만에 아이들도 함께 있는 날이기도 해서 작정하고 열심히 밥상을 차려보기로 했다. 손이 많이 가는 요리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지지고 볶고 이쁜 그릇세트도 꺼냈다. 효리네 민박을 보며 늦은 아침 브런치로 와플을 굽기도 했다.
한 집에 살아도 각자 바쁜 생활 속에 살다 보니 평소에는 함께 밥을 먹거나 아이들이 주방 일을 도울 틈이 없었다. 그런데 연휴다. 식사 준비에 아들도 참여시켰더니 제법 잘 한다. 구워놓은 생선을 각자의 접시에 담아 나르고 식후 커피도 내린다. 군대 다녀온 이후부터 설거지 실력은 가히 예술이다.
그렇게 명절 연휴 삼시 세끼의 즐거움과 보람도 느껴보지만 슬그머니 서운해지는 게 있다. 가끔 엄지 척을 할 때는 있지만 분명 맛있게 먹으면서도 콕 집어서 하는 칭찬을 잊는다. 필자는 가족들에게 이거 맛있지? 스스로 생색을 내기 좋아하다 보니 그들이 칭찬할 기회를 뺏은 건지도 모르겠다. 과한 리액션은 아니어도 수고로움에 한 마디 하는 건 필수다.
언젠가 유명한 호텔의 셰프가 하는 요리 강좌에 간 적이 있다. 그분은 손으로 식재료를 버무리며 말했다. 요리의 맛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먹고 난후 예의도 있다고 강조했다.
“벌써 오래전 일인데요. 어떤 선거유세 때문인지 한창 바쁘던 철이었을 거예요. 그때 여의도에 있는 호텔에 근무했었는데 국회의원 등 많은 정치인들이 와서 식사를 하러 왔어요. 그중에 그분이 자주 우리 식당에 오셔서 식사를 했어요. 그런데 오실 때마다 저에게 늘 눈인사를 하십니다. 일하느라 바빠서 못 마주칠 때도 있는데 굳이 절 찾아서 잘 먹었다고 말하고 가세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여의도의 정치인들이 그런 편이 아니거든요. 저는 정치가 뭔지 모르고, 또 지금도 잘 몰라요. 그런데 정치하는 사람 중에 그래서 그분 하나 안다고 할 수 있거든요. 대통령이 된 그분의 눈인사, 그분은 제가 만들어드리는 해물탕을 아주 좋아하셨는데...”
그의 따뜻한 눈인사와 칭찬 한마디 때문에 세상에서 오직 요리밖에 모르는 어느 요리사가 아는 유일한 정치인. 깊은 주름 선명한 이마 위로 밀짚모자 쓰고 순박한 미소로 봉하마을 들녘을 자전거로 달리는 사진 한 장이 눈에 선하다. 그분은 먼 길 떠났지만 셰프는 자신의 손맛과 수고로움을 알아주는 고마움을 내내 잊지 못했다.
맛난 한 끼를 먹고 새하얗게 빨래한 옷을 입으며 잘 자라고 있는 화초의 푸른 잎을 보면 무심할 수는 없다. 기분 좋게 고마워하며 칭찬하는 한 마디는 우선 자신이 행복해진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고마움을 오래오래 기억한다.
설 연휴 동안 전화 혹은 문자로 가장 많이 받은 인사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궁색하게 같은 말로 화답하거나 답장을 보내지만, 왠지 낯간지럽고 어색하다. 왜냐하면 바로 얼마 전 정초에 이미 서로 주고받은 인사말이기 때문이다. 새해가 된 지 한 달 반이나 지났는데 다시 같은 표현의 인사말을 동일한 사람과 주고받는다는 것이 어찌 이상하지 않단 말인가.
물론 인사말은 그저 형식으로 주고받는 것일 뿐이니 내용에 크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긴 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데 “아니 지난번에 하셨잖아요”라고 답하면 더 이상할 것 같아 까짓것 복이야 많이 받으면 좋은 게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한 번 더 선심을 쓰고야 만다. 그러나 아무래도 찜찜한 건 마찬가지다. 이참에 설날에 쓸 수 있는 인사말을 하나 개발해 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실 글을 쓸 때마다 판에 박힌 상투적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을 때면 무척 난감하다. 예컨대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나 ‘어떤 기능을 장착하고’ 따위의 표현들이다. 조금 달리 표현하고 싶어도 적당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새 말을 개발해 혼자 쓴다고 그 표현이 통용되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언론 등에서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유통시키려 애썼지만,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진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남들이 하는 대로 ‘새해 복 많이 받기’를 권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다만 이런 인사가 정착된 이유와 그 속뜻 정도는 알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이 인사가 언제부터 유행했는지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복’을 받기를 덕담하는 것을 보면 ‘복’이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도대체 ‘복’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너도나도 복을 축원하는 것일까.
복(福)은 하늘로부터 내리는 것이니 인간의 힘으로 좌우할 수 없는 타고나는 팔자소관이라고 정의하면 매년 복 많이 받으라고 빌어봐야 소용없다. 그러나 타고난 금수저는 아니지만, 가끔 지지리 궁상으로 살다가 로또 같은 대박을 치기도 하니 아마 이 인사말은 그런 번개를 두 번 맞을 확률이나마 기원해 보는 것일 게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에 그런 복에나마 의지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복이라면 무슨 의미를 담았다기보다 립서비스 정도의 인사로 볼 수 있겠다. 그런 인사가 그리 나쁠 것은 없지만, 그런 입에 발린 공허한 의미가 아닌 주체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행복’으로 해석한다면 좀 더 긍정적인 인사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 인사를 나누며 행복을 생각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니까.
올 한해 행복해지기 위해 여러분은 어떤 대책을 세우셨는가. 최근 이라는 책을 낸 롤프 도벨리의 행복론은 조금 특이하다. 책 제목처럼 행복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불행을 피하라고 한다. 성공은 우연의 결과일 뿐이니 부러워하지 말고 겸허하고 절제할 때 삶이 풍성해진다고 말한다. 인생은 어차피 불공평하니 투덜대지 말고 자신의 일에 집중하라고 권한다.
행복은 한방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저자 서은국은 말하지 않았는가. 설날 인사를 이제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불행 없는 한 해 되세요” 나 “새해 행복 자주 느끼세요” 제법 근사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설을 앞두고 떡국과 함께 먹으면 좋을 나박김치 만드는 비법을 배울 기회를 가졌다. 강남역 근처 한국전통식품문화관에 식품명인체험홍보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선 매주 토요일마다 명인들에게 한국전통식품 비법과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공식 지정한 식품명인들과 함께 술이나 한과, 김치, 장류 등을 만드는 경험을 통해 우리 전통식품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높이는 한편, 전통 식문화를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지난 토요일엔 식품명인 제38호 유정임 명인과 함께 나박김치 만들기 체험과 명인의 비법으로 만든 무말랭이 시연이 있었다. 김치 명인으로 유명한 유정임 명인은 방송을 통해서도 여러 번 본 적이 있어 반가웠다.
유정임 명인이 무말랭이를 만드는 방법은 남달랐다. 보통은 무를 썰어서 말리는데, 유정임 명인은 무를 소금에 절여 건조시킨다. 무를 소금에 절이는 명인의 비법은 특허를 낼 정도로 창의적인 방법이다. 소금에 절인 것을 조금만 건조하면 보다 맛있는 무말랭이가 완성된다는 명인의 말에 참가자들은 열심히 메모를 했다. 비법도 배우고 맛깔스런 레시피도 전수 받았다. 명인이 만든 아삭아삭 맛있는 무말랭이를 맛보며 집에 돌아가서 명인이 가르쳐준 방법대로 무말랭이를 만들면 과연 이 맛이 날까, 기대에 찬 눈치였다.
무말랭이 시연을 마친 후 곧 나박김치 체험에 들어갔다. 명인들은 다들 대대로 내려오는 나름의 비법을 가지고 가장 맛있고 신뢰할 만한 식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유정임 명인의 나박김치 비법은 파프리카와 당근이 들어간 국물이었다. 배추와 무를 소금에 살짝 절인 후 배. 미나리, 쪽파, 양파, 고추를 나박나박 썰어 단지에 담고 정해진 레시피대로 만든 국물을 단지에 담아 나박김치를 완성했다. 핑크빛이 도는 나박김치는 기품이 느껴지면서 입맛도 돌게 했다. 체험을 통해 3kg이나 되는 나박김치를 집으로 가지고 갈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체험을 마치고 2층 식품명인카페 이음에 들렀다. 카페에서는 식품명인들의 제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어 구매도 가능하다. 또한 식품명인의 제품을 활용한 수준 높은 차와 디저트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도 있다. 함께 간 지인과 2월 신메뉴인 딸기 음료와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나박김치 만드는 과정을 복기했다. 좋은 프로그램을 알게 돼 기쁘다는 지인의 말에 덩달아 행복해졌다.
명인체험프로그램은 토요일마다 열린다. 설을 연휴를 지나고 3월 3일엔 식품명인 13호 남상란 명인의 민속주 왕주, 3월 10일엔 식품명인 21호 유영군 명인의 창평쌀엿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계속해서 이어질 예정이다.
명임체험 프로그램 외 무료 시음ㆍ시식 프로그램 등도 참여 가능하며, 네이버 예약을 통해 사전 신청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식품명인체험홍보관 페이스북(www.facebook.com/kfmcenter)이나 블로그(www.blog.naver.com/kfmcenter)에서 확인할 수 있다.
8살 손녀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더란다. “할머니 이번 설에는 요! 세뱃돈 주지 말고 선물을 사서 주세요.”라고. 손녀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세뱃돈을 받기는 손녀가 받아도 손녀가 갖고 있으면 잃어버린다고 그 돈은 다시 며느리 수중으로 들어가는 메카니즘에 대한 손녀의 반발로 보인다. 손녀에게 “그럼 무슨 선물을 사 줄까?”라고 물었다. 이런 되물음에 미리 준비가 없었는지 손녀는 얼른 대답을 못하더란다. 물론 손녀가 받은 세뱃돈의 몇 배의 돈을 손녀를 위해 며느리가 썼겠지만 손녀의 눈에는 자기가 받은 돈을 직접 되돌려주지 않는데 대한 불만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면 세뱃돈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요즘 아이들은 생각한다. 옛날 우리 때는 일가친척의 어른들에게 세배를 해도 세뱃돈이 없었다, 농촌 자체에 돈이라고 씨가 말랐으니 줄 수가 없었다. 아주 귀하게 서울에 사는 친척어른이 할아버지에게 세배를 하러 왔을 때 우리도 친척 어른에게 세배를 올리면 지금 돈의 가치로 천 원 정도를 줄때가 있었다. 당시로서 세뱃돈을 받는 다는 것은 하늘로 날아갈듯이 기쁜 사건이다. 물론 부모님들도 흔한 일이 아니니까 세뱃돈을 낚아채지도 않았다. 그 돈으로 연필도 사고 과자도 사먹었다. 내년에도 꼭 세뱃돈을 주는 친척어른이 다시 오기를 기다렸던 추억이 있다.
자식들을 키울 때는 세뱃돈을 주고는 이놈들이 어떻게 사용하나 눈여겨봤다. 아이들이 세뱃돈을 많이 받으려고 보통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다. 어느 삼촌은 얼마를 줄 것이며 외가 집에 가면 누가 세뱃돈을 얼마나 줄 것인지를 주판알 굴리듯 복잡한 계산을 한다. 세뱃돈을 다 모으면 얼마가 될 것이며 그 돈의 사용처까지 생각해 본다. 그런 희망을 알고부터는 결산해서 희망금액에 부족한 금액만큼은 선심성으로 아버지인 필자가 채워 주기도 했다. 부모로서 자식이 희망한 금액에 미달되어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나 중, 고등학생의 경우 용돈의 쓰임새가 다르다. 합리적으로 차등해서 세뱃돈을 주었다. 적게 받는 동생이 울상이 되며 부당하다고 따지기도 했다. 그래서 겉으로는 똑 같이 주고 큰놈은 나중에 따로 불러 별도로 봉투를 준적도 있다. 금액의 고하간에 별도로 자신만 배려 받아 특별 대접을 받는 다는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기분 좋은 일이다.
한번은 형님 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세배를 갔는데 형님이 우리아이들한테는 만 원짜리 한 장씩을 주면서 당신의 손자에게는 십만 원 정도를 줬다. 자기 손자 더 주는 것을 뭐라고 탓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세배하는 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차별적으로 더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형님이 하는 일이라 못 본채 했다. 우리 아이들이 차별대접을 받았다고 입이 한발이나 나왔다. 집에 와서 십 만원을 채워주고 친아버지와 큰아버지이 차이라고 이해 시켰다. 다음해부터 큰집인 형님 댁에 아이들이 가지 않겠다고 토라져있어서 달래느라고 애를 먹었던 추억도 있다.
세뱃돈의 크기도 우리나라 경제력에 따라 많이 커졌다. 천원 오천 원을 세뱃돈으로 주면 단박에 얼굴빛이 변하고 실망한다. 만원이 거의 최하액수의 마지노선이다. 보통 2~3장은 줘야 아이들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한다. 세뱃돈 많이 받기 경쟁을 하고 어떤 집 아이는 그 나이또래로서는 만져보기 어려운 거금을 받기도 하는 모양이다.
사실 세배(歲拜)는 어른에게 ‘지난 세월에 감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어른들에게 지난한해 보살펴주신 존경의 의미를 담아서 직접 찾아가서 큰 절을 올리는 풍습이었다. 가난해도 동네 어른 댁에 소고기 한 근이나 고등어 한손 정도는 선물을 했다. 집에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이곳저곳에서 보내오는 선물꾸러미가 제법 쏠쏠했다. 아이들의 세뱃돈을 말하기보다 이웃의 노인들에게 세배를 어떻게 하고 무슨 덕담을 올릴 것인가를 걱정해야할 나이가 되었다.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인물도, ‘힙’이 터지는 젊은 패셔니스타도 브로치에 자신을 투영한다. 백 마디 말보다 강력하고, 어떤 액세서리보다 의미 있는 브로치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다.
주얼리의 힘은 이야기에서 나온다. 남편이 처음으로 사줬던 목걸이, 아들이 선물한 귀고리, 시어머님이 물려주신 브로치 등등 이야기가 담긴 주얼리는 패션의 영역을 넘어 주술과 같은 의미로 우리와 함께하게 된다. 그중 목걸이와 반지처럼 옷 속에 감춰지는 은밀한 주얼리와 달리 대놓고 자신의 존재감을 풍기는 브로치가 다시 트렌드의 쳇바퀴를 돌아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어느 때보다 젊어진 모습으로 말이다.
브로치가 말하는 것들
패션 디자이너 서정기는 한 인터뷰에서 브로치에 대해 정의하길, “브로치는 옷 위에서 ‘나를 봐주세요!’,‘나는 이런 취향을 가졌어요!’라고 외치죠. 고상하게도, 천박하게도, 화려하게도, 얌전하게도, 크게도, 작게도, 엄청 비싸게도, 싸게도 자기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브로치 입니다. 브로치는 개성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죠”라고 했다. 브로치는 자신이 어떤 취향의 사람인지를 드러내기도 하고, 때때로 말보다 더 강하게 의미를 전달하기도 한다. 최근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까만 드레스 위로 ‘Time’s Up’이란 브로치를 단 여배우들이 등장했다.
이 브로치는 직장 내 성폭력과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타임스 업(Time’s Up)’ 캠페인을 의미한다. 또 여성 정치인이 입은 옷은 정치적 성명 발표와 같다는 말처럼 종종 정치인들은 브로치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암시적으로 전달한다. 미국의 전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퇴임 후 ‘내 브로치를 읽어보세요’라는 이름으로 전시회까지 열 정도로 브로치 정치의 대가였다. 그녀를 비롯해 IMF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힐러리 클린턴 등 브로치를 패션 그 이상의 의미로 이용하는 이들은 수도 없이 많다.
스타일의 방점, 브로치
최근 하이 주얼리 브랜드 반클리프앤아펠은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보그의 전설적인 에디터이자,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뮤즈인 카린 로이펠드와 함께 브로치 스타일링법을 소개하는 ‘브로치 더 서브젝트(Brooch The Subject)’를 기획한 것. 몇 개의 하우투(How to) 영상과 사진으로 이뤄진 이 기획은 브로치에 대한 생각의 틀을 넓혀준다. 브로치의 자리를 으레 가슴쪽이나 스카프 위라고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카린 로이펠드는 클래식한 반클리프앤아펠의 브로치를 평범한 블라우스의 깃(칼라의 뾰족한 부분)이나 스커트 벨트 라인, 원피스의 어깨 부분에 살포시 얹었다. 아무것도 아닌 옷을 일순 특별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다.
화장대 구석에 방치해둔 오래된 브로치를 다시 꺼내 들게 만드는 매력적인 스타일링법은 무엇을 입느냐보다, 어떻게 입느냐가 더 중요한 요즘 시대에 딱 알맞다. 특히 옷장을 열면 한숨만 나오는 이들에게 옷에 대한 스타일링의 영역을 우주만큼 확장해준다.
브로치를 고리타분한 액세서리의 자리에서 ‘힙’, ‘핫’ 같은 요즘식 형용사를 붙이게 만드는 것은 비단 이 프로젝트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고전으로 불리는 버버리 프로섬 역시 이번 시즌에 얼굴만 한 사이즈의 브로치를 선보였다. 어떤 주얼리보다 화려한 버버리 프로섬의 ‘왕’ 브로치는 스트리트 감성이 풍만한 젊은 세대들을 동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액세서리 리스트에 브로치 영역을 추가하게 만들었다. 이토록 젊어진 브로치는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의 패션을 신선하게 만들어준다.
다가올 설, 철 지난 한복이 촌스럽게 느껴진다면 브로치의 힘을 빌려보자. 하나도 좋지만 여러 개의 브로치를 레이어드하면 또 다른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이때 유색과 무색의 조합을 적절히 이용하면 촌스럽던 한복도 한결 세련돼 보일 것이다. 또한 브로치를 옷이 아니라 진주목걸이 위에 연결해 펜던트로도 활용해보자. 심플한 니트에 브로치를 더한 진주목걸이는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다.
다가올 봄, 좀처럼 생기가 돌지 않는 패션을 위해 브로치 처방을 내려보면 어떨까. 그것도 당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브로치라면 금상첨화겠다.
얼마 전에 어느 여성 국회의원이 발언 중에 비정규직 급식 요원을 ‘밥 하는 아줌마’로 비하했다고, 매스컴의 공격을 받고 발언자가 당사자들인 급식요원 앞에서 공개 사과하고 곤욕을 치룬 일이 있었다.
옛날 우리 모두가 못 살던 시절, 서울의 웬만한 중산층 가정이면 거의 대부분 ‘밥하는 아줌마’인 가정부를 집에 두고 살았다. 다만 한 식구라도 먹는 입을 줄이기 위해 빈곤한 농촌에서 어린 딸을 서울로 올려 보내 흔히들 말하는 상주하는 식모살이를 시켰다. 당시엔 식모라고 불렀으나 언제부터인가 파출부나 가정부로 변하더니 요새는 가사 도우미로 명칭이 바뀌어서 조선족들이 그 일을 많이 하고 있는 걸로 안다.
그 시절 추석이나 음력 설 때가 되면 가정부 언니들이 자기 시골집에 다녀온다고 해서 주인이 차비랑 시골 식구 선물 꾸러미를 안겨서 잘 다녀오라고 보내면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행방불명되어 사라지는 일도 있고 또 다른 집으로 스카우트 당하는 일도 있었다. 우리 친정도 물론 필자가 결혼 할 때까지도 아줌마가 계셨고, 또 결혼 후 시댁에서 시집살이를 할 때도 살림을 돌봐 주는 도우미가 언니가 있었다.
금자 씨는 시골에서 초등학교 졸업을하고 어려서 우리 시댁에 들어와서 우리 시어머니 시중을 들며 자란 시댁의 도우미 언니였다. 금자씨는 46개 띠인 필자와는 띠 동갑으로 58 개띠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3살 때 우리 집으로 들어와서 28살에 결혼하는 날까지 15년을 우리와 함께 살았다. 금자 씨의 한문이나 영어 등의 중등 교육은 시어머니가 학습지를 배달 받아서 직접 시키셨다. 금자 씨가 어느 정도 자라서는 시어머니 대신 우리 집 가사 일을 책임지게 되었다. 사실 금자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사나 육아에 꽝인 필자가 그 시절로는 드물게 결혼 후에도 워킹 맘으로 활동을 하면서, 승진을 하고 또 총수 비서실장의 꼬리표를 달 수 없었을 것이다.
금자 씨가 나이 들어 결혼 적령기가 되자, 필자는 당시 시동생이 사장으로 있던 중소기업인 의료기 회사의 기술 사원과 선을 보고 두 달만에 결혼을 시켰다. 데이트는 주로 아파트 앞 정원에서 만나 외식은 압구정동 맥도날드에서 했다. 신랑은 가방 끈은 짧지만, 손재주와 머리가 좋고 A/S 기술도 좋아 회사에서 매우 촉망 받았던 의료 기구 기술자였다.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대학을 포기 했다고 수줍게 말하는 청년이었다.
필자의 아들을 내 대신 키워 준 금자 씨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던 필자는 마치 본인의 결혼처럼 설레고 신이 나서 가구 시장을 함께 돌아다니며 혼수 감을 준비했다. 물론 비싼 물건을 사서 주지는 못했지만 당시 유행하던 티크 장롱과 설합장을 구입했다.
금자 씨 부부는 시어머니가 해준 미아리 방 한 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고 나중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난 후에는 동대문 지하상가에 조그만 의료 소모품 및 의료 기구 상회를 차렸다.
점차 사업이 안정되고 애들이 자라자 부부는 자연스럽게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금자 씨의 아들은 아빠를 닮았는지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더니, 그 어렵다는 의대를 입학하고 거기서도 우수해서, 요즘 제일로 쳐준다는 안과를 선택하여 수련의를 마치고, 동료 의사인 방사선 여의사를 만나 얼마 전에 결혼했다.
이제 금자 씨는 의사 아들에다 의사 며느리까지 둔 시어머니가 되어,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받으며 남들이 그토록 바라는 행복한 사람이 됐다. 금자 씨, 그대가 부러워요.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전만 해도 다양한 작품이 상영관에 걸렸다. 규모가 크건 작건 작품성이 입소문을 타면 영화관 속으로 관객이 파도처럼 빨려 들어갔다. 멀티플렉스라... 동네 구석구석 들어와 영화 보는 횟수를 늘렸지만 작고 소박한 영화가 설 자리를 빼앗고 말았다.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싶고 또 보고 싶은 사람이 갈 곳 없는 지금의 현실. 그런데 이 척박한 영화 환경을 비집고 보석 같은 영화 한편이 개봉했다. 바로 영화 ‘돌아온다’이다. 정말 그 곳에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올까?
영화 ‘돌아온다’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담다
영화 ‘돌아온다’(감독 허철/제작 꿈길 제작소)는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온다’라고 쓰인 표구가 걸려있는 시골의 한 막걸리 집이 배경이다. 주인공을 비롯해 등장하는 인물마다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 어머니를 찾는 스님과 아들을 찾는 노모, 집 떠난 부인을 기다리는 남자,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모두가 하나같이 막걸리를 들이키는 이유가 있다. 매일 이곳에 모여 누군가가 돌아오기를 염원하며 한 잔, 두 잔 막걸리 잔을 채우던 어느 날. 묘한 분위기의 주영(손수현)이 비밀을 감추고 나타나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었다 뭉쳤다를 반복한다.
영화 ‘돌아온다’는 원래 연극이 원작이다. 2015년 무대에 올랐던 연극 ‘돌아온다’(원작 선욱현/연출 정범철/극단 필통)가 허철 감독의 마음을 흔들었다. 수차례 공연장에 찾아가 연극을 보는 매 순간마다 눈물이 흘렀다고. 허철 감독은 이런 감정의 소요가 생기는 근원이 뭘까 고민하다 연극‘돌아온다’를 영화화하기에 이르렀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 김유석도 지난 6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친구인 허철 감독이 내민 ‘돌아온다’의 시나리오를 읽다가 세 번이나 눈물이 터졌다”고 고백한 바 있다. 영화 ‘돌아온다’는 2016년 6월에 촬영해 올해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이어 지난 9월, 제41회 몬트리올국제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성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일종의 실험극이다
연극‘돌아온다’를 본 관객이 있다면 흥미로운 점 몇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는 주인공인 김유석과 손수현 이외 주요 인물이 원작 연극에 출연한 배우라는 점이다. 스님을 연기한 배우 리우진, 노모에 김곽경희, 이황의, 강유미, 정연심 등이 원작에서와 같은 역할로 영화에 등장한다. 연극이 영화화 된 작품이 지금까지 있어 왔지만 원작의 주요 배역을 똑같이 기용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덕혜옹주’나 ‘미스사이공’같이 공연 실황을 영화처럼 편집, 제작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영상으로 표현해야하기 때문에 영상에 맞는 배역을 대부분 찾아 나서지만 허철 감독은 연기 잘하는 기존의 배우를 제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연기파답게 영화에도 잘 녹아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데 연극배우들이 큰공을 세웠다.
두 번째는 배경과 장면을 마치 연극처럼 배치했다는 점이다. 허철 감독의 실험 정신이 엿보인다고나 할까. 이야기 대부분은 막걸리 집에서 시작해 다른 시간과 장소 혹은 장면으로 이동한다. 사건이 해결되고 다시 막걸리 집으로 돌아오면 또 다른 이야기로 사건이 번지고 말이다. 혹은 장소를 이동하는 대신 장소의 성격을 변화시켜 활기를 북돋거나 공간에 새로운 성격을 불어넣기도 한다. 새로운 손님이 오지 않는 막걸리 집은 적막하고 조용하기 이를 데 없다. 막걸리잔 마주치는 소리와 사람들이 조용조용하는 말소리가 전부. 그런데 이곳에 주영이 들어와 일하면서 SNS에 막걸리집을 홍보한다. 이후 막걸리집이 지역의 맛집으로 소개돼 조용했던 장소가 시장만큼 떠들썩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성격이 바뀌기도 한다. 하나의 무대를 마치 여러 장소처럼 이용하는 연극의 기법과도 비슷하지 않은가.
셋째, 이 영화가 연극에서 왔든, 관객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실험 정신이 깃들어져 있든 ‘돌아온다’를 보고 나면 최근 영화에서 느끼지 못했던 후련함과 시원함이 느껴진다. 잠시 잊고 있던 순수를 찾은 것과 흡사하다. 혹시 잔혹하게 피가 철철 흐르는 장면이 보기 싫고, 온 몸을 휘감을 듯 한 대형 SF영화에 질린 관객이 있다면 이 겨울, 잔잔한 영화에 젖어드는 것은 어떨까.
끝으로, 영화 ‘돌아온다’의 허철 감독이 극적인 장면에서 카메오 출연을 한다는 스포일러를 남긴다. 아는 사람만의 깨알 재미이니 눈 부릅뜨고 찾아보기를 당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