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피부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어났다. 강한 자외선에 피부가 화상을 입는 것은 물론, 벌레와 곤충에 물려 알레르기나 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상처를 통해 감염돼 자칫 온몸에 물집이 퍼지기도 하는 ‘농가진’도 여름철 유의해야 할 질환이다.
강한 햇빛, 일광화상과 다형광발진 주의해야
여름철 가장 대표적인 피부질환은 ‘일광화상’이다. 자외선에 노출된 피부가 붉어지며 따갑거나 화끈거리는 증상을 나타내는데, 심하면 통증, 물집, 부종이 생기기도 한다. 강한 햇빛에 30분 이상만 노출되어도 일광화상을 입을 수 있는데, 4~8시간 후 노출 부위가 붉어지고 가려움을 느끼게 된다. 24시간 후 증상이 가장 심해지고, 3~5일이 지나야 호전된다. 또, 화상 부위에 색소침착이 발생해 수주 이상 지나야 서서히 옅어진다.
이러한 증상을 보이면 찬물로 샤워하거나 얼음찜질을 하는 것이 좋으며, 물집이 잡혔다면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일광화상을 예방하려면 자외선 차단이 우선이다. 자외선이 강한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외출을 피하는 것이 좋다. 야외 활동 시에는 양산이나 모자를 쓰고, 자외선 차단제를 잘 발라준다.
또 다른 질환으로는 ‘다형광발진’이 있다. 노출 직후 발생해 바로 사라지는 햇빛 알레르기와는 달리 몇 시간 또는 며칠에 걸쳐 몸에 붉은 발진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구진과 수포, 습진 형태의 병변이 나타나 가려움증을 호소하게 된다. 건국대학교병원 피부과 안규중 교수는 “다형광발진은 2주 정도 증상이 지속되다 사라진다”며 “흉터가 남지는 않지만 매년 재발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태양광선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긴 소매, 긴 바지를 입고 자외선 차단제를 잘 사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곤충교상, 심하면 호흡곤란 일으켜
모기, 벼룩, 개미, 지네, 벌 등 곤충에 물렸을 때 보이는 피부 반응을 ‘곤충교상’이라 한다. 곤충의 타액 속에 포함된 독소나 곤충의 일부가 피부에 남아 생기는 이물 반응에 의해 질환이 나타난다. 피부가 붉게 변하거나 구진이 생기며, 중심부에 물린 듯한 반점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통증, 부종, 가려움증 등을 동반한다. 벌과 개미에게 물린 경우 알레르기 반응이 발생하기 쉬운데, 드물게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곤충에게 물리면 해당 부위를 깨끗이 씻고, 벌에 물렸을 때는 벌침을 신속히 제거한다. 이때 호흡곤란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면 즉시 전문의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나방 피부염’은 독나방 유충인 송충과 접촉 후 피부에 붉은 발진과 두드러기 같은 구진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피부 자극뿐만 아니라 상처를 통해 독물이 들어와 피부에 염증을 유발하게 된다. 몇 시간, 길게는 며칠에 걸쳐 가려움과 통증이 지속되며, 독성이 강한 경우 발열, 오심, 구토 등을 호소할 수 있다. 접촉 부위를 긁거나 자극하지 말고 물로 잘 씻은 후 반창고 등을 이용해 송충의 체모를 떼어내는 것이 좋다.
농가진, 심하면 하루 만에 온몸에 퍼져
‘농가진’은 여름철 아이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질환으로, 전염력이 높아 주의가 필요하다. 벌레에 물린 상처나 아토피 피부염이 있는 부위에 생긴 상처를 통해 감염되는데, 물집과 고름, 노란 딱지 등이 생긴다. 물집이 난 부위가 가렵고, 전염성이 강해 하루 만에 몸 전체로 퍼질 정도로 쉽게 전염되는 것이 특징이다. 심한 경우 고열, 설사를 동반하고, 드물게는 성인의 겨드랑이, 음부, 손 등에도 증상이 나타난다.
초기에는 물과 비누로 감염 부위를 깨끗하게 씻고 소독한 뒤, 딱지를 제거해 연고를 바르면 도움이 된다. 고열이 나거나 전신에 증상을 보이는 경우에는 전문의와의 상담 후 7~10일가량 항생제를 복용한다. 안 교수는 “농가진을 예방하고 전염을 막으려면 손과 손톱을 청결하게 하고 피부를 긁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함께 사용하는 옷과 수건도 소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담낭(쓸개)은 오장육부(五臟六腑) 중에서 크기나 의학적 중요도가 크지 않음에도 유독 사자성어나 속담에 자주 등장하는 신체기관이다. 와신상담에선 각오를 다질 때 맛보는 대상이 되기도 하고,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쓸개가 없다’고 말한다. 고작 손가락 하나 정도 크기의 이 장기가 마치 잃어선 안 될 신념처럼 다뤄진다. 그런데 만약 이곳에 암이 발생한다면 어떨까? 모든 암이 쉽지 않겠지만 담낭암 역시 마찬가지다. 강동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강진구 교수는 “무엇보다 조기발견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담낭은 간 옆에 붙어 있는 7~10cm 정도 되는 작은 주머니다. 간에서 나오는 쓸개즙을 저장해뒀다가 농축시켜 음식을 먹으면 쓸개즙을 십이지장으로 방출하는 역할이다. 쓸개즙은 간에서 만들어지고 담낭은 저장과 농축 역할만 하기 때문에 의학적으로는 맹장이나 사랑니처럼 없어도 그만인 취급을 받기도 한다.
강진구 교수는 “실제로 담낭에 염증이나 용종 등이 발견된 후 증세가 심각해지면 떼어내기 때문에 병의 진행에 관한 통계자료가 많지 않을 정도”라고 설명한다.
발생 빈도도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2018년에 발표된 중앙암등록본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국내에서 발생한 암은 총 22만9180건인데 이 중 담낭암은 1.1%(2554건)에 불과했다.
주된 원인은 담석과 염증
강 교수는 담낭암 발병 원인으로 담석과 염증을 꼽았다.
“소화액이 굳어 담석이 되는데, 술과 담배, 비만, 호르몬 변화 등이 원인이에요. 이 담석이 담낭 안에서 염증을 일으키거나 쓸개즙이 십이지장으로 흐르는 담도를 막는 등 말썽을 일으키죠. 이렇게 담석증이 발생하면 담낭암이 발생할 확률이 정상인에 비해 10배 정도 높습니다. 또 담낭에 발생하는 만성염증이나 담낭 안쪽이 석회화되는 석회화 담낭도 위험인자입니다.”
담낭 용종도 위험하다고 강 교수는 설명한다. 1cm 미만의 용종은 양성일 수도 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보지만 그 이상 커지면 담낭 제거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된다고 말했다.
담낭암이 위험한 암으로 분류되는 이유 중 하나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담낭 내부 통로가 담석이나 종양으로 막히더라도 간에서 쓸개즙 분비가 이뤄져 소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아서다. 증상이 없으니 진단을 받지 않는 이상 질환을 알 도리가 없다.
복통이나 황달 등의 증상이 나타나거나 오른쪽 배 부위에 딱딱한 것이 만져지기도 하지만 이 정도가 되면 병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췌장암에 비해 진단이 비교적 쉬워 다행이라고 강 교수는 설명한다.
“능숙한 전문의라면 초음파 검사만으로 담낭 질환을 쉽게 찾아낼 수 있어요. 췌장암 발견이 어려운 것은 초음파로도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기 때문인데, 담낭은 비교적 잘 보이는 곳에 있어요. CT나 MRI 같은 복잡한 검사를 하지 않아도 이상 유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견 늦을수록 생존율 급락
만약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담낭암을 초기에 발견한다면 대처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복강경 수술을 통해 큰 흉터 없이 담낭을 떼어내는 수술을 진행한다.
암의 정확한 상태를 알기 위해 진행되는 담낭 조직검사는 다른 장기들과 조금 다르다. 담낭을 떼어내는 과정이 어렵지 않고, 후유증을 거의 남기지 않기 때문에 담낭에서 심각한 이상을 보이면 절제부터 한 후 조직검사를 한다. 다른 장기는 대부분 조직검사 후 수술 여부를 결정한다.
“떼어난 담낭을 검사했는데 내부의 종양 뿌리가 담낭 근육층까지 파고든 상태라면 담낭 가까이에 있는 간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다시 진행합니다. 만의 하나 암세포가 전이되었을 경우를 생각해서죠. 담낭암은 많은 암종 중에서 전이가 잘 되고 성장하는 속도도 빠른 편입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항암제를 이용한 치료나 방사선 치료 등의 방법도 사용한다.
문제는 다른 장기에까지 종양이 퍼져 손쓰기 어려운 상태에서 암이 발견된 경우다. 담낭암은 발견이 어려워 이런 상태에서 알게 되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강 교수는 말한다.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항암 또는 방사선 치료만으로 보존적 치료를 선택하게 되는데 사실상 완치가 어려운 상태다.
“많은 제약회사가 발생 빈도가 높은 암의 치료제 개발에 매달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발생이 적은 담낭암을 위한 함암제 개발은 요원한 상태예요. 표적 치료제까지 개발되는 타 암종에 비해 담낭암은 1세대 항암제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나마도 효과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실제 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따르면, 2012~2016년 담낭 및 기타 담도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29%에 불과했다. 병기별 상대생존율을 살펴보면 1, 2기에 해당하는 ‘국한(암이 발생한 장기를 벗어나지 않은 상태)’은 53.3%로 낮은 편이고, 3기와 4기 초기에 해당하는 ‘국소’는 33.1%로 조사됐다. 4기 중 말기에 해당하는 ‘원격’ 생존율은 3.2%에 불과했다. 늦게 발견하면 대부분 5년 이상 생존이 어렵다는 얘기다.
여성 발병 남성과 비슷 주의해야
담석증의 경우 술과 담배가 주원인 중 하나이다 보니 담낭암이 남성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통계를 보면 그렇지 않다. 차이가 크지 않지만 오히려 여성의 발병이 더 많았다. 강 교수는 그 이유가 여성 호르몬 변화에 있다고 의심한다.
“임신과 출산, 피임약 복용 등으로 여성 호르몬 변화를 겪은 여성에게 발병 빈도가 높고 고령일수록 이 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여성들도 안심하지 말고 60세가 넘으면 정기적으로 검사해봐야 합니다.”
강 교수는 담낭 제거에 대한 선입견 또한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담낭을 떼어내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생각하는 환자가 간혹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담낭을 제거했다고 약을 먹어야 하거나 생활에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 수술 후 6개월 정도는 고기를 줄여야 하고, 설사 등의 후유증이 있을 수 있지만 신체 적응기간이 지나면 평소대로 일상생활을 해도 무방합니다. 수술도 2~3일 후 바로 퇴원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간단하고요.”
결국 담낭암 치료의 성패는 발견 시기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 검사가 까다롭지 않고 초음파 검사로 대부분 질환 유무 확인이 가능한 만큼 지금이라도 가까운 병원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시니어 건강에 또다시 적신호가 켜지는 무더위의 계절이다. 기상청은 올여름 평균기온은 예년보다 높고, 강수량은 비슷하거나 적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8월 1일 서울 최고기온은 39.6℃로 1907년 기상관측 이후 111년 만에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기온만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여름이라 부르는, 평균기온 20℃가 넘는 기간이 길어지는 상황도 시니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가올 폭염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을지대학교 을지병원 응급의학과 양희범 교수를 통해 알아봤다.
양희범 교수는 폭염이 예상되는 여름철에 시니어가 가장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온열질환’을 꼽았다. 흔히 ‘더위 먹었다’라고 표현하는 증상들이 나타나면 반드시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본격적인 여름철이 시작되면 라디오나 TV의 무더위 관련 기상 상황을 주목하고, 낮 시간대(정오에서 오후 5시 사이)의 외출이나 운동을 자제하고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폭염으로 인해 두통이나 어지러움, 메스꺼움 등의 증상이 나타나면 온열질환이 의심되므로 바로 그늘로 가서 쉬고, 증상이 개선되지 않거나 응급상황 시 119에 즉각 신고해 응급실로 가셔야 합니다.”
시니어 체온조절 기능 쇠약해
인간은 외부 온도 변화에 대응해 일정하게 체온을 유지하는 항온동물이다. 고온 환경에서 작업이나 활동을 계속할 경우 신체는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피부 혈관을 확장해 혈류량을 증가시키고, 땀을 흘리는 등 생리적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체온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겨 열사병 등의 고온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고혈압, 신장 질환, 심장병, 당뇨병 등을 앓고 있는 만성질환자나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 독거노인 등은 주의가 필요하다.
시니어가 폭염에 취약한 이유는 신체의 노화가 진행되면서 땀샘 감소로 땀 배출량이 줄어들어, 그만큼 체온을 낮출 수 있는 능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을 분석한 결과 사망자 중 65세 이상의 비중이 높고, 대다수가 논밭일을 하다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햇볕이 가장 강한 낮 시간대에는 하던 일을 멈추고, 시원한 곳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일사병과 열사병의 차이는 뭘까
더위로 인한 대표적인 온열질환으로 일사병과 열사병이 있다. 두 질환을 자칫 혼동하기 쉬운데 일사병은 고온에 노출돼 신체 온도가 37~40℃까지 상승하면서 탈수 증상을 동반하는 병이다. 심박동이 빨라지고 어지럼증, 두통, 구역감 등의 증상이 있으면 반드시 그늘진 곳을 찾아 쉬어야 한다.
열사병은 일사병보다 더 위험하고 증상이 심각하다. 과도한 고온 환경에서 열 발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고체온 상태가 지속되면서 생기는 질환이다. 40℃ 이상의 고열과 의식장애, 중추신경계 이상, 근육떨림 등이 나타난다.
이밖에도 손과 발, 발목이 붓는 열 부종이나 땀으로 염분이 빠져나가면서 근육 경련이 발생하는 열 경련, 혈관 확장 등으로 체위성 저혈압이 발생하면서 실신하는 열 실신 등도 더위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이다.
여름철 무더위 극복, 신선한 과일과 채소 ‘제격’
여름철 더위를 건강하게 이겨내는 먹거리로 과일과 채소를 추천한다. 제철 과일과 채소는 수분과 비타민, 무기질, 섬유소 등 영양소가 풍부하며,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
여름철 땀을 많이 흘려 체력이 손실된 뒤에는 수분과 당분이 많은 수박, 참외, 자두, 포도 등이 좋다. 그러나 평소 위장이 약하고 배가 자주 아파서 설사가 잦다면 여름 과일의 섭취를 적당히 하고, 껍질이 부드럽게 벗겨지는 숙성된 복숭아, 바나나 등을 먹는 것이 좋다.
여름철 채소로는 수분 보충과 이뇨에 효과가 있는 오이와 안토시아닌이 풍부한 가지를 추천한다. 냉국이나 무침으로 요리하면 갈증 해소에 도움이 된다. 제철 채소인 양배추, 부추 등은 면역 증강과 살균 작용이 있다. 비빔밥 재료 또는 겉절이로 무쳐 섭취하면 좋다.
● TIP #1 여름철 더위 건강하게 이겨내는 법
•낮 시간대(12:00~17:00)의 야외활동이나 작업은 피한다.
•외출 시에는 가볍고 헐렁한 옷을 입는다.
•현기증, 메스꺼움, 두통 등의 증상이 생기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한다.
•체온이 급격히 상승한 경우 옷을 벗고, 피부에 물을 뿌리면서 부채나 선풍기 등으로 몸을 식힌다.
•식사는 가볍게 하고 평소보다 물을 자주 많이 먹는다.
•에어컨, 선풍기 등은 환기가 잘되는 곳에서 사용한다.
•라디오나 TV의 무더위 관련 기상 상황을 주의 깊게 살핀다.
● TIP #2 여름에 쓰러진 사람을 발견한다면
•시원한 곳으로 옮긴 후 편안히 눕힌다.
•옷을 벗겨 체온을 낮춘다. 이때 일사병 환자는 머리보다 다리를 높게 한다.
•의식이 없거나 위험해 보이면 즉시 119에 신고한다.
•의식이 있다면 물이나 전해질 음료로 수분을 보충하며 휴식을 취한다.
•구토 등으로 물을 거부하거나 수분 섭취 후에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병원을 찾는다.
식초는 우리의 식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미료다. 늘 사용하고 있기에 그 효능에 대해 둔감해지기 쉬운데, 인체에 매우 좋은 약재다. 식초를 아세트산이라는 성분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보를 모르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양조식초, 현미식초, 발사믹식초 맛이 같을까? 성분이 같다면 가격도 비슷해야 하는데 큰 차이가 난다. 맛도 다르고 효능도 다르기 때문이다.
식초는 시큼한 맛이 특징이다. 시큼한 맛은 강한 신맛과 약한 신맛으로 나눌 수 있다. 강한 신맛은 황산이나 염산처럼 녹여버리고 뚫어버리는 성질을 갖는다. 그래서 뭉친 것을 강하게 뚫어주고 몸속의 물혹이나 종양 등도 녹여버린다. 또 강한 신맛에 오래 노출되면 뼈와 치아도 상한다. 콜라를 많이 마시면 뼈와 치아가 망가지듯이 말이다. 따라서 식초의 효능을 제대로 누리려면 약한 신맛이 나는 발효식초를 먹는 것이 좋다.
식초의 첫 번째 효과는 소화력 회복이다. 현미식초는 오래 숙성해도 신맛이 강해지지 않는다. 흑초나 발사믹식초도 마찬가지다. 오래 숙성될수록 시큼함은 덜해지고 오히려 끝맛이 달다. 그래서 오래 숙성한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 술을 먹으면 소화가 잘되는 것이다. 잘 묵힌 식초는 위산을 대신해 단백질 소화를 돕는다. 식사를 하고 서너 시간이 지나도 속이 더부룩하고 식욕이 안 생기는 증상도 호전시켜준다. 나이가 들면 뭘 먹어도 소화가 잘 안 되고 더부룩하다. 이럴 때 잘 숙성된 식초 몇 방울을 물과 섞어 마시면 도움이 된다.
신맛의 두 번째 효과는 활발한 장운동이다. 가스가 덜 차고 변비와 설사에도 좋다. 장이 건강해지면 혈액순환도 좋아져 머리가 맑아지고 피부도 깨끗해진다.
신맛의 세 번째 효과는 관절염 예방이다. 단백질은 관절 주변에 많이 축적되어 있는데, 위산 분비 저하로 단백질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우리 몸은 관절 주변의 단백질을 분해해 사용한다. 이로 인해 관절이 약해지고 석회화되며 점액낭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보통 오십견이라고 불리는 어깨 질환도 위산 분비 저하와 관련이 많다.
약한 신맛은 역류성식도염에 좋다. 나이가 들면 위산 분비 저하로 음식물을 소화시키지 못해 역류성식도염이 자주 발생한다. 이른 저녁에 먹은 음식이 잠잘 때까지 소화가 안 되면 자는 동안에도 위산이 계속 분비된다. 또 분비된 위산이 식도를 따라 역류하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식도가 불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럴 때는 제산제 대신 식사 후 물에 식초 몇 방울을 타서 마셔주면 도움이 된다.
식초는 피를 맑게 해준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어혈을 풀 때 식초를 많이 쓴다. 특히 멍이 잘 들고 생리통이 심하고 물혹이 자주 생기는 여성들에게 좋다. 식초가 혈액순환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가슴 통증이 있을 때도 식초 탄 물을 마셔주면 좋다. 식초는 ‘동의보감’에서도 자주 언급되는데, 급작스럽거나 오래된 흉통 모두에 좋다. 단백뇨, 냉, 하혈, 피똥 등에도 치료 효과를 보인다. 특히 약한 신맛을 내며 오래 묵힌 식초가 좋다. 외용 치료제로도 쓰여 벌레 물렸을 때 상처에 바르면 도움이 된다. 입안이 헐었을 때도 식초로 상처 부위를 씻어주면 좀 더 빨리 아문다.
식초는 크게 합성식초, 양조식초, 발효식초 3종류로 나뉜다. 합성식초는 석유에서 추출한 아세트산이며 영양소가 없다. 양조식초는 에탄올에 초산균을 넣어 1~2일 만에 빠르게 숙성시킨 것으로서 마트에서 판매하는 식초는 대부분 양조식초다. 이런 식초들은 신맛만 낼 뿐 유기산, 비타민, 미네랄 등의 영양소가 거의 없다. 발효식초는 과일이나 곡류 외의 성분은 추가하지 않고 천연 재료를 자연 발효시켜 만든다. 발효 과정이 3개월 이상 진행되기 때문에 다양한 유기산과 영양 성분이 포함된다. 자연 발효 과정을 거친 대표적인 식초로는 흑초, 발사믹식초 등이 있다. 이제부터라도 식사 후 식초 몇 방울을 물에 타서 마셔보자. 소화도 돕고 변비도 해결해주고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며 피부도 좋아진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치유학교 ‘그루’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
한의학과 양의학은 대장과 소장을 뇌와 연관시키는 경우가 많다. 꾸불꾸불한 모양이 뇌의 구조와 비슷하며, 뇌가 우리 몸의 주인공이듯 대장과 소장도 우리 몸에서 중요한 부위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로 교감신경이 항진되고 부교감신경이 억제되기 쉬운데, 부교감신경은 대소장과 연관이 많다. 인체 내의 가장 큰 부교감신경총인 태양신경총도 복부에 있다.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은 장에서 70~80%가 분비된다. 나머지는 대뇌 등에서 생성된다. 한의학에서 대장은 폐와 간, 소장은 심장, 비장과 관련이 있다. 이처럼 장의 건강은 신체는 물론 정신 건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대병과 난치병, 노화가 장내 불균형으로부터 발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생명체인 인체 속에는 수많은 균이 살고 있다. 나라는 존재와 이들이 함께 몸을 구성하는 것이다. 특히 장 속에서 사는 균은 매우 중요한 존재다. 예전에는 뱃속의 기생충을 죽이기 위해 구충제를 먹었지만 요즘은 유익균 수를 늘리기 위해 각종 영양제를 먹는다. 한의학은 일찍부터 충(蟲)을 내 몸의 일부로 봐왔다. ‘동의보감’에서는 위장과 오장 그리고 정신적인 문제가 충(蟲)의 작용에서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한의학의 목표는 이러한 충(蟲)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데 두고 있다. 지나치면 죽이고 허약하면 살려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음식과 오미를 강조한다. 장은 위장, 십이지장, 소장, 맹장, 대장, 직장 등을 포함한다. 각 장기에 따라 좀 더 뜨겁거나 차갑거나 건조하거나 습한 차이가 있겠지만, 장은 열대우림처럼 적절한 습도와 열기가 유지되어야 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래야 장에 유익한 유산균과 비피더스균 등이 잘 자란다. 이들 세균이 활발하면 장내 환경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만약 습도와 열기 조절에 문제가 생겨 유해균이 많아지면 복통, 설사, 변비, 장누수증후군이 생겨 알레르기, 염증, 자가면역질환, 정신병, 노화 등 각종 질병이 발생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야식과 과식, 폭식을 피해야 한다. 식사시간과 식사량을 지키지 못하면 위의 습도와 열기의 균형이 깨진다. 유해균이 늘어나는 환경이 되는 것이다.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먹어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우리 몸속의 균은 수만 년에 걸쳐 음식에 서서히 적응해왔는데, 최근 50여 년간 정제식품과 농약으로 키운 먹거리에 자주 노출되었다. 이렇듯 장내 환경이 어지러워지면서 유익균은 점점 줄어들고 유해균이 늘어났다. 가능하면 우리 선조들이 먹었던 음식을 우리 땅에서 재배해 제철에 먹는 것이 좋다. 그래야 유익균을 살릴 수 있다.
음식을 먹을 때는 침이 잘 나오도록 꼭꼭 씹어야 한다. 침은 유해 성분을 억제하고 장내 환경을 좋게 만들어준다. 저녁식사와 아침식사의 시간 간격은 넓어야 좋다. 그래야 장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저녁은 일찍 먹고 아침은 조금 늦게 가볍게 먹으면 대뇌도 건강해진다.
미국 최고 전문의인 스티븐 건드리 박사는 ‘플랜트 패러독스’라는 저서를 통해 장내 환경을 좋게 하는 음식과 나쁘게 하는 음식을 구분했다. 상추, 민들레, 치커리, 우엉, 돼지감자 등의 국화과 식물과 무, 순무, 배추, 양배추, 콜라비, 갓 등의 십자화과 식물을 추천하면서 콩과, 박과, 가짓과 식물은 피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콩과 식물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가 많다. 생콩은 몸에 해롭지만 발효시키거나 싹을 틔우거나 압력을 가해 찌면 독성이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된장, 청국장, 콩나물을 만들어 먹어왔다. 박과는 오이, 참외, 호박 등의 과일과 채소를 말하는데 찬 성질이 있기 때문에 숙성시켜 먹는 게 좋다. 가짓과 식물로는 가지, 토마토, 피망, 파프리카, 감자 등이 있는데, 대체로 근래에 유입된 것들이므로 많이 먹지 말라고 조언한다. 또 여름철과 가을철은 과일이 많이 나는 시기이므로 과일을 섭취해도 되지만, 이외 계절에는 과일을 먹지 않고 살아와 우리 몸의 유전자가 아직 익숙하지 않다면서 겨울과 봄에는 과일을 피하라 말한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우리 몸속에 들어가 좋은 영향을 주는 살아 있는 균을 말한다. 비피더스균, 유산균이 대표적이다. 이 균을 복용하면 장내 유익균이 많아진다. 음식에는 김치나 된장, 치즈, 요구르트 등에 함유돼 있다. 장내 유익균의 생장을 돕는 먹이는 프리바이오틱스다. 덜 익은 바나나와 망고, 무, 순무, 토란, 우엉, 돼지감자 등에 많다. 또 갓 지은 밥보다는 약간 식힌 밥이 장내 유익균에 더 좋다.
장내 환경을 좋게 하기 위해 황련 등 쓴맛이 나는 한약으로 과도한 습기와 열을 제거하기도 하고, 건강(乾薑, 말린 생강) 등으로 찬 기운을 제거한다. 장은 활발하게 움직여야 한다. 침치료와 도수치료, 단전호흡 등으로 장운동을 할 수 있다. 아랫배에 핫팩을 매일 30분씩 해주거나 뜸을 떠줘도 장내 환경에 도움이 된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치유학교 ‘그루’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
‘그리움’의 다른 말 ‘復古’ 이경숙 동년기자
조국을 떠난 지 한참 된 사람도 정말 바꾸기 힘든 것이 있다. 울적할 때, 특히 몸이 좋지 않을 때면 그 증세가 더 심해진다고 한다. 어려서 함께 먹었던 소박한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다. 식구는 많고 양식은 빈약하던 시절, 밥상에서는 밥만 먹었던 것이 아니었나보다. 둥근 상에 올망졸망 모여 앉아 모자란 음식을 나눌 때 느꼈던 진한 가족애와 혈육의 뿌듯함이 DNA에 녹아들기라도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가마솥 누룽지, 지겹던 보리밥,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던 시래기죽도 각자의 추억과 함께 잊히지 않는 음식이 되어 ‘그것만 먹으면 내 병이 다 나을 것’처럼 그리워지는 것 같다.
골목에 있는 만화방 주인은 청년이었다. 가끔 내게 만화방을 맡기고 외출을 하기도 했는데, 대신 보고 싶은 신간 만화를 실컷 볼 수 있어 좋았다. 만화방 앞에는 약간의 학용품이 놓여 있어 그것도 팔아야 했다. 그날도 만화방을 봐준다는 명목으로 독서(?)에 빠져 있었다. 누군가 나를 ‘툭툭’ 쳐서 보니 군인 아저씨가 물건을 들고 얼마냐고 묻고 있었다.
그렇게 몰두할 만큼 만화책은 너무 재미있었다. 그 만화방엔 안데르센 동화책도 많았다. 울적할 때면, 나는 동물들과 숲속 방앗간 짚 덤불에서 자던 소녀를 떠올리곤 했다. 샘물을 마시고 동물들과 대화하던 맑고 밝은 소녀가 아직도 가슴속에 있다. 지칠 때면 그 소녀가 가만히 내 창을 두드린다.
나팔바지를 입고 집을 나설 때마다 듣던 말이 있다. “동네 다 쓸고 다닐 거니?” 어깨는 각이 지고 허리는 잘록하고 엉덩이는 딱 맞고 바지통은 아주 넓은 디자인이었다. 그 시절엔 사실 유행이 일률적이었다. 지금처럼 다양한 취향을 주장할 만큼 당당하지도, 식견이 풍부하지도 못했다. 개성을 개인적 취향으로 인정해주기보다는 모자란 사람 취급을 하던 그런 시대였다. 그래서 좀 멋쟁이다 싶으면 일제히 미니스커트, 일제히 맥시스커트를 입는 그런 분위기였다. 어찌 보면 마치 유니폼을 입은 것 같았다.
테이블마다 달랑대는 조명등이 달려 있거나, 촛불을 켜는 낭만적인 카페도 많았다. 종종 작은 무대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술이 아니더라도 20대는 늘 무엇인가에 취해 있었다. 쉽게 흥분하고 자주 슬펐던 우리들의 20대. 끝도 없는 논쟁으로 밤을 새우고, 모든 게 다 진지하기만 했던 시절.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사랑 얘기를 쉼 없이 되풀이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모두 정의의 순교자라도 되고 싶어 했다.
미팅 땐 생맥줏집, 볼링장, 극장엘 갔다. 애프터 미팅은 카페에서 만나 주로 비원이나 경복궁, 덕수궁을 걸었다. 가난한 젊은 커플들은 버스를 타고 종점을 오가며 대화를 나눴다.
이런 추억들에 젖어보기 위해 옛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복고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냥 먹고 마시기만 하자니 심심하고 무미건조해 그리움이라도 불러와 옛 필름들을 다시 돌려보고, 식어버린 가슴을 조금이라도 데워보려는 것이다.
벼룩시장에서 보물찾기 윤종국 동년기자
“내가 나를 생각하는 만큼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는 이 말을 엄청 좋아한다. 난 늘 나를 생각한다. 나는 키도 작고 몸집도 작다. 그러나 머리는 크다. 표준 사이즈로 옷을 고르면 거의 맞는 게 없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드나들기 시작한 곳이 있다. 30여 년은 족히 된 듯하다.
독자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 먼저 알려준다. 바로 ‘벼룩시장’이다. 수백, 수천 가지의 물건이 있는 곳이다. 옛날에는 청계6·7가에 있었고, 지금은 동묘(동대문구) 일대에 시장이 형성돼 있다. 벼룩시장에서 레트로를 본다. 내게는 수만 가지 물건이 레트로 대상이다. 한 달에 두세 번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간다. 내 작은 체구를 잘 알기에 어울리는 옷도 찾아본다. 손에 주로 들리는 옷은 복고풍의 외투다. 벼룩시장에서 입수한 옷은 꼭 수선 집을 거친다. 그래야 진짜 내 것이 된다.
누구나 알고 있듯 없는 게 없는 곳이 벼룩시장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덤빌 곳은 또 아니다. 내게는 오랜 세월의 경험이 있다. 레트로를 사랑하려면 요령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레트로인이 된다. 예를 들면 맘에 드는 복고풍 옷을 하나 발견했다 치자. 구매의사가 있을 경우 먼저 입어보고 가격을 흥정하면 초보자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구매자 몸에 어울린다 싶으면 가격이 달라진다. 가격 매기기는 벼룩시장 주인들만의 특권이다. 그러므로 먼저 가격을 물어본 다음에 흥정을 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설사 맘에 들더라도 그 맘을 들키면 절대 안 된다. 그래야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있다.
또 하나의 팁. 다른 물건에 관심이 있는 척하다가 진짜 맘에 드는 물건을 들고 슬쩍 “이건 얼마죠?” 하고 물으면 점포 주인은 대부분 낮은 가격을 부른다. 이것이 지혜롭게 레트로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수년 전 딸아이가 벼룩시장이 궁금하다며 따라나섰다. 그날 지나다 발견한 물건은 흙이 묻어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신발이었다. 신을 만해서 단돈 5000원에 손에 넣었다. 집에 와서 닦고 손질해보니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고가 브랜드 신발이었다. 딸아이가 좋아라 했다. 내가 벼룩시장 마니아로 인정을 받은 건 사실 그날이었다.
한 달 전 큰손주의 생일이 있었다. 그날을 위해 몇 번이나 벼룩시장을 찾아 헤맸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찾기 위해서다. 신제품도 생각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는 녀석의 발 사이즈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선물로 선택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전국, 특히 서울에서 인라인스케이트 붐이 일었다. 그러다가 아파트 내에서 어린이 안전사고가 일어났고 그 충격으로 슬쩍 사라져버렸다.
벼룩시장을 갔던 날, 다행히 손주에게 맞을 것 같은 인라인스케이트를 발견하고 흥정을 시작했다. 일단 가격부터 묻고 사이즈를 확인한 뒤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손주 발 사이즈를 물어봤다. 그러면서 주인의 눈치도 살폈다. 발 사이즈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듯 대화를 나눈 뒤 주인과 흥정을 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가격으로 물건을 손에 넣었다. 이런 요령을 터득해야 비로소 벼룩시장의 프로가 된다. 집으로 돌아와 깨끗하게 정비하니 새 물건보다 더 정감이 갔다.
손주 생일에 인라인스케이트를 건네주며 “지금은 키가 부쩍부쩍 크는 나이니까 일단 이것으로 먼저 타는 연습을 하자”라고 말했다. 갖고 싶어 했던 거라 그런지 손주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그날 나는 손주바보 할아버지에서 멋진 할아버지로 거듭났다.
옛것들에서 한 수 배우며 사는 삶 육미승 동년기자
“넌 조금만 더 나중에 태어났더라면 뭔가 해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심심찮게 이런 말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민망하지 않은 표정으로 다정하게 미소를 짓는다. 친구들 말은, 내 패션이나 생각 그리고 사는 방법이 자기들과는 전연 다르다는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레트로가 내 생활이니….
특히 패션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 옷을 살 때 겉옷은 지금 당장 유행을 타는 것들 중 나중에도 입을 수 있고 멋지게 소화해낼 수 있는 디자인을 고른다. 그리고 다른 옷들은 옷장 문을 열어 예전에 신나게 입고 즐겼던 옷들에서 선택한다. 그날의 모임 콘셉트에 맞고 남의 눈에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유행에 뒤떨어짐이 없는 은은한 멋을 지닌 그런 의상을 즐기는 거다. 나는 옛것을 너무 좋아한다. 옛것들 버리지 않고 여전히 아끼고 사랑하는 나를 보고 “어머 얘, 너무 잘 어울린다아~’ 하고 해주는 말들을 좋아하는 것도 같다.
회상하고 추억에 빠지는 시간은 천천히 꼼꼼하게 내 생각들을 정리하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인연이 끝나 지금은 만나지 않는 사람들과의 대화도 마음 한구석에 감춰두고 있다. 어느 날 그들과의 추억을 꺼내 감상하는 게 내 취미다. 나는 옛것들은 대부분 귀하게 여기고 좋아한다. 가끔은 그동안 읽었던 책 속에서 또는 영화 속에서, 예를 들면 사마의 같은 중국의 책사들에게 한 수 배우길 희망한다. 그 놀라운 생각의 회로를 닮아보려고 혼자 부단히도 노력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젊은이들. 그 두뇌를 못 따라가는 나는 느린 사고방식이 편하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싸워보질 못했다. 갈등이 일어날 것 같으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거나 가만히 듣고만 있는 게 내 모습이다. 져주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며 지내왔기 때문이다. 일처리를 할 때도 나를 뺀 모든 관계자들이 편한 쪽으로 해답을 구한다. 어느 면으로 보면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나를 길들이며 살아왔기에 불편하지 않다. 그러나 지인들은 불똥이 내 발 바로 앞에 떨어져도 “이게 뭐지?” 하며 그제야 슬쩍 뒤로 물러날 사람이라며 핀잔 섞인 말을 한다.
그렇다. 나는 오래 생각하며 말없이 기다린다. 특히 답이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끝까지 기다린다. 엉망으로 뒤섞여버린 물을 가만히 두면 침전물들이 여러 층으로 가라앉고, 맑은 물이 맨 위로 올라온다. 내 앞의 문제도 그렇게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면 마치 무위이화(無爲而化)하듯 저절로 아주 유효하고 명쾌한 답이 나온다. 그 신기함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 이것이 바로 레트로의 진가라고 믿는다. 새로운 기술과 기교도 좋지만 옛 성현들의 말씀에서 더 많은 답을 찾는다. 레트로는 내 단짝이다. 한 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복고 속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찾아내는 마음으로 패션, 음악, 미술,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을 즐기며 여유작작한 삶을 살아가려 한다.
레트로는 ‘마음의 휴식’이다 손웅익 동년기자
1980년. 그 해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다. 건축과 학생들 중 건축설계에 특히 관심이 많은 학생이 모인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다. 회원들은 매년 몇 달씩 동아리방에서 합숙을 하며 건축 작품전을 준비했다. 식사는 2학년생들이 돌아가면서 전체 회원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나 집에서 설거지 한 번 안 해본 학생들이 만든 밥은 그야말로 배가 고파서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는 정도의 상태였다. 그런 식사로 몇 달 합숙을 하다 보니 대부분 건강이 나빠졌다. 1980년의 교정은 봄부터 최루탄으로 뒤덮였다. 수업도 대부분 휴강이었다. 그렇게 혼란한 상황에서도 건축과 동아리 회원들은 밤낮으로 모여 작품전을 준비했다. 대체로 밤에 설계를 하고 낮에는 잠을 잤는데, 그 와중에도 매일 데모하러 나가는 회원도 있었다.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들은 최고참이라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저녁에 가끔 학교 앞으로 나가 막걸리도 한잔씩 했다.
그날도 4학년 동기들은 동아리방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학교 앞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4학년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막걸리를 마시고 난 뒤에는 학교 교문 근처 문방구점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중계를 봤다. 당시 텔레비전은 다 흑백이었다. 그런데 선발대회 중에 화면 아래쪽으로 대학교를 폐쇄하겠다는 자막 뉴스가 떴다. 합숙 중이었던 우리는 얼른 짐을 챙겨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학교로 들어가려는데 어느새 장갑차가 교문을 지키고 있었다. 1980년 5월 15일이었다. 17일에는 전국으로 계엄이 확대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 5월 18일.
그 해 우리가 준비했던 5월 전시회는 무산되었다. 전국으로 계엄이 확대되면서 집회는 일절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회원들 집에서 만나 작품전 준비를 했고 가을에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동아리 회장이었던 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준비해서 내 임기 중에 전시회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울이 또 왔고 어느 날 술친구들이 중국집에 모였다.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고량주를 마시면서 방송 시작 시간을 기다렸다. 그날은 우리나라 텔레비전 역사상 처음으로 컬러 방송을 하는 날이었다. 당시의 자료를 찾아보니 1980년 12월 22일 이었다. 우리는 컬러로 텔레비전을 보면 중국 영화처럼 피가 난무하는 장면은 너무 살벌할 것 같다는 둥, 연예인들이 옷을 더 화려하게 입을 것 같다는 둥 이런저런 추측성 대화를 나눴다. 그날 그렇게 흑백텔레비전 시대가 종료되었고 내 학창 시절도 저물어갔다.
얼마 전에 영화 ‘로마의 휴일’을 텔레비전에서 다시 봤다. 오래전에 갔던 로마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옛날 영화를 보다 보면 흑백 화면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흑백이라서 불편하거나 아쉬운 점도 없다. 오히려 로마의 유적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상상을 자극하는 것 같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컬러 사진이 보편화하기 전의 흑백 사진들은 그 분위기로 시간을 되돌리는 신비로움이 있다. 흑백 사진을 손에 들면 사진을 찍던 순간으로 순식간에 되돌아가는 듯하다. 흑백이라는 무채색의 아름다움은 그래서 복잡하고 바쁘고 혼란스러운 현대인들에게 향수를 자극하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휴식을 주는 것 같다. 현대인들은 현란한 색과 형태 그리고 자극적인 소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정보의 홍수와 자극의 파도를 견디려니 모든 감각기능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이런 현실에서 흑백은 잠시나마 여백의 세계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눈이 편안해지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나는 새벽안개를 좋아한다. 특히 두물머리의 새벽안개는 한 폭의 수묵화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에는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변한다. 안개의 농담(濃淡)으로 그려놓은 수묵화는 화려한 가을날의 유화 같은 풍경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이 있다. 그 여백은 흑백 사진처럼 아련한 시간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한다.
요즘 펜화 스케치를 하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곤 한다. 검은색으로만 그림을 그려놓고 원본의 컬러와 비교하면 흑백이 가진 깊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가끔 의식적으로라도 흑백의 세계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흑백은 레트로다. 나는 레트로에서 마음의 휴식을 찾는다.
현금 및 유가증권, 귀금속류, 부동산(회원권), 주식(상장 및 비상장 불문), 금융자산(금융상품) 등의 전통적인 상속 재산 이외에 미술품에 대해서도 상속 문의가 늘고 있다. 미술품은 고급 취미를 즐기면서 저금리 시대의 대체 투자 상품이 될 수 있다. 세무변호사의 시각에서 본다면 부동산, 주식 및 금융자산은 실명 등기 또는 등록이 의무이고 그 평가기준이 비교적 체계화되어 있어 과세당국이 양도, 증여 및 상속과 같이 그 소유자(귀속자)의 변동을 쉽게 포착해 과세할 수 있다. 반면, 미술품은 양도, 증여 및 상속 여부와 같은 소유자(귀속자)의 변동을 과세당국이 쉽게 포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사 이를 포착하더라도 그 과세표준(즉, 세금을 얼마나 매길 것인가)을 정확하게 산정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
미술품 부과 세금, 이렇게 다르다
그렇다면 미술품에 대한 세금은 어떻게 부과될까? 원칙적으로는 미술품의 생성단계(작가의 측면), 유통단계(화랑, 경매 회사의 측면), 소비단계(수집가, 미술관의 측면)로 구분해야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필요한 범위인 수집가 측면에서 미술작품을 양도, 증여 및 상속하는 경우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미술품 과세를 소개한다.
먼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개인이 미술품을 양도할 경우다. 양도인은 미술품 양도로 인해 일정한 소득을 얻는다. 그 소득에 대해서는 ①그 양도가액이 건당 6000만 원 이상인 경우에 한해(금액 기준), ②그 작품이 외국 작가의 작품이거나 또는 양도 시점에 국내 원작자가 이미 사망한 경우에 한해(작가 기준), ③‘양도소득’이 아니라 ‘기타소득’으로 분리과세 된다(기타소득으로 분리과세). ④기타소득으로 과세되는 경우라도, 미술품 양도가액의 80%, 미술품 보유 기간이 10년 이상인 경우 양도가액의 90%까지 필요경비가 인정되고, 실제 소요된 필요경비가 위 금액보다 크다면 실제 소요된 금액만큼 필요경비가 인정된다(고율의 필요경비 인정). ⑤분리과세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미술품 양도인에게 그 대가를 지급하는 자가 양도가액에서 위 필요경비를 차감한 금액에 22%(지방소득세 포함)의 세율을 적용한 금액을 원천징수한 뒤, 다음 달 10일까지 세무서에 납부하는 것으로 세금 납부가 종결된다(세금신고 및 납부의 간편성).
요약하면, 다른 경우에 비해 소득세 부담이 적고 소득세 신고납부의 절차도 간편하다. 또한 미술품 거래에는 부가가치세가 면세된다. 부가가치세 및 개별소비세까지 과세되는 귀금속 거래에 비해 유리하다. 주식거래와 달리 증권거래세도 없고, 부동산(회원권) 거래와 달리 취득세도 없다. 게다가 실무적으로 볼 때 미술품은 등기·등록 자산이 아니기 때문에 양도의 경우 양도인에게 그 대가를 지급하는 자가 원천징수를 하지 않더라도 이를 과세당국이 포착해 과세하기는 더더욱 어렵다(참고로 양도인이 원천징수를 하지 않을 경우 원천징수불이행가산세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다운계약서, 불법적 요소 주의해야
양도와 달리, 미술품을 증여 또는 상속할 경우에는 다른 재산 대비 유의미한 절세제도는 도입되어 있지 않다. 미술품을 증여 또는 상속할 때는 다른 재산과 동일하게 증여 또는 상속세를 신고 및 납부해야 한다. 다만, 증여 또는 상속세를 과세하기 위해서는 증여 또는 상속 재산을 증여 또는 상속일 당일의 ‘시가’가 얼마인지를 금액으로 평가해야 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미술품에 대해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2인 이상 전문가의 감정평균금액과 국세청위촉 3인에 의한 감정평가심의회 감정가액 중 높은 금액으로 미술품의 ‘시가’를 결정한다. 미술품의 경우 일반적인 재화와 달리 작품별 소장가치 및 투자가치가 가격 형성의 기초가 되어 참고할 만한 다른 가격을 찾기 어렵다. 전문가라 하더라도 평가에 주관적 가치가 개입될 수밖에 없어 그 평가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평가금액이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 최선은 아니겠지만 차선으로 위와 같은 ‘시가’ 결정의 기준이 마련돼 있다.
그 때문인지 위와 같은 미술품의 ‘시가’ 결정에 대한 세법규정에도 불구하고, 실무상으로는 세무조사 단계에서 피상속인의 미술품 취득가액이 입증될 경우 그 취득가액을 기준으로 증여세 또는 상속세를 과세하는 사례도 여전히 존재하고, 이를 고려해 일단 미술품 취득에 대해서는 소위 ‘다운계약서’를 체결해야 한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다운계약서’ 작성은 오히려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서 조세포탈죄로 처벌받을 여지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물론, 다운계약서가 아니라 실제 취득가액을 기재한 매매계약서나 경매기록을 보관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고, 실제 큰 도움이 된다. 이런 기록들은 관리를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챙겨두는 것이 자녀들의 상속세 또는 세무조사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길이다.
한편, 부동산이나 유가증권과 달리 상속 재산인 미술품으로 물납(物納)할 수 없다. 즉 미술품의 경우 상속세를 현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따라서 자녀에게 다수의 미술품을 상속하려면 그에 대한 상속세 납부재원을 반드시 함께 마련해야 한다. 미술품을 자녀들에게 상속하지 않고 공익법인에 출연해 자녀들에게 관리하게 함으로써 당장의 증여세 또는 상속세를 절감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겠지만, 공익법인의 경우 미술품 출연 이후 생각보다 까다로운 규제가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미술시장은 거래정보에 대한 접근이 어렵고 거래비용이 과다하다. 이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품의 유통 및 감정에 관한 법률을 추진 중이고, 부동산처럼 일정 기준 이상은 등록제 또는 공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미술계의 지적도 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무책임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향후 어떻게 미술품 관련 법과 세제가 정비될 것인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미술품에 대해서도 상속세 물납을 허용하도록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개정하고, 개인 소장자의 미술품 양도에 대한 과세기준을 현행 6000만 원에서 1억 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며, (이번에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법인의 미술품 구매에 대한 손금 인정 한도를 건당 취득금액기준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해, 이를 통해 전체적인 미술품 거래가 활성화 및 양성화되길 바란다.
예전에는 먹고살기가 힘들어 흰쌀밥을 먹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백미만 먹으면 좋지 않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현미나 잡곡밥을 많이 먹고 있다. 약은 아플 때만 일시적으로 먹지만, 곡식은 매일 먹기 때문에 효능이 조금만 달라도 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땀이 자주 나고 기운이 없다면 찹쌀밥을 먹어야 한다. 더운 여름에 몸의 습기를 빼고 체중을 줄이려면 안남미를 먹어야 하고, 콩국물이나 미숫가루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모든 만물은 각각의 효능을 지니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체질이나 병증에 적합한 음식을 늘 먹어 보양하는 것이 좋다.
먼저 쌀에 대해 알아보자. 쌀에는 안남미와 우리 쌀이 있다. 안남미로 밥을 지으면 푸석푸석하고 찰기가 없는데, 이런 음식을 먹으면 우리 몸도 영향을 받는다. 즉 살을 빼주고 날씬하게 해준다. 그래서 안남미는 열대지방이나 우리나라의 여름처럼 습열이 많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이 먹으면 좋다.
우리 쌀은 밥을 하면 찰기가 있고 찧으면 떡이 된다. 그래서 우리 몸도 찰지게 해준다. 즉 적당하게 살이 붙게 하고 추위를 이기도록 해준다. 추위를 더 강하게 이겨내려면 떡으로 만들어 먹는 것이 좋다. 그래서 가을송편, 겨울새알 등 추운 계절에 먹는 음식이 떡이다. 여름에는 떡을 먹지 않는다. 찹쌀은 찰기가 더 많아서 소화가 잘되고 기운을 보충해준다. 사상의학에서도 찹쌀은 소음인 음식으로 소개하는데, 허약해서 땀이 나거나 자주 설사하는 사람에게 좋다. 또 임신 중 산모가 허약해서 유산 위험이 있을 때도 찹쌀을 먹으면 좋다. 산후 젖 분비에도 좋다. 찹쌀은 살찐 사람이나 얼굴이 붉은 사람에게는 맞지 않고, 마르고 몸이 차며 소화력이 약한 사람에게 적합하다.
쌀은 백미로 먹을 때와 현미로 먹을 때 차이가 있다. 백미와 현미는 도정을 어느 정도 했느냐의 차이다. 즉 속껍질을 남겼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데, 속껍질은 위장관과 혈관, 피부를 청소해 깨끗하게 해준다. 일을 많이 하고 자주 굶주리던 시절에는 영양 공급이 가장 중요했기에 백미를 먹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몸은 많이 쓰지 않으면서 너무 많은 것을 먹고 있다. 이럴 때 몸 내부 특히 위장관과 혈관이 더러워져 청소가 중요한데, 현미의 속껍질과 씨눈이 이 역할을 해준다. 아토피와 당뇨 등에 현미가 좋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물론 현미를 먹을 때는 환자의 체질과 위장 능력을 살펴봐야 한다. 소화가 안 되는데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다.
좁쌀은 매우 작고 둥근 쌀이다. 허약하거나 허열이 있을 때,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 허열을 내려준다. 몸이 약해지면서 진땀이나 구토, 설사가 잦은 사람에게 좋다.
‘동의보감’에서는 오곡 중 보리가 가장 따뜻하다고 했다. 그래서 보리밥을 먹으면 위장관이 잘 움직이면서 방귀가 나온다. 가스가 잘 차거나 대변이 무르거나 설사를 할 때, 그리고 소변이 시원치 않은 사람에게 좋다. 몸을 데워주므로 겨울철에 먹는 것이 더 좋다. 그런데 껍질째 볶아서 먹는 보리차는 성질이 차다. 맥주가 차갑듯이 말이다.
귀리는 2002년 ‘타임’ 지가 선정한 10대 슈퍼푸드 중 하나다. 귀리는 고단백, 저당(低糖) 식품이라 당뇨병 환자에게 알맞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동맥경화, 고혈압에 좋으며 땀이 자주 나거나 변비가 심할 때 좋다. 또 산모의 젖 분비를 촉진하고, 소아 발육부진과 허약증에 좋다. 그러나 과하게 섭취하면 위경련과 더부룩함을 유발한다. 많이 먹으면 대변을 자주 보게 하고, 분만 촉진 효과가 있으므로 산모는 주의해야 한다.
요즘은 메밀을 섞어 먹기도 하는데, 메밀도 혈관과 위장관을 청소해준다. 열이 많고 잘 먹는 사람이 몸에 여드름이나 종기 같은 피부병이 생기거나 당뇨, 고혈압, 동맥경화 등의 혈액 관련 질환이 있는 경우에 좋다. 겨울에 땀을 배출하지 못하고 기름진 음식만 먹어 피가 탁해졌을 때는 메밀이 좋다. 단, 몸이 차갑고 소화력이 약한 사람은 섭취를 주의해야 한다.
홍국(紅麴, red yeast rice)쌀은 일반 쌀을 쪄서 홍국균(紅麴菌)으로 발효시켜 만든 붉은 쌀이다. 북경오리의 겉이 빨간 것은 홍국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홍국은 발효시킨 쌀이어서 소화가 잘되도록 도와주고 혈중 콜레스테롤도 낮춰주고 고지혈증에도 효과적이다. 한의학에서는 어혈 제거에 좋은 홍국쌀을 활용해, 교통사고 등 상처를 입었을 때 회복을 돕는다. 혈압과 혈당, 갱년기 증후군과 골다공증에도 효과적이다.
율무는 소변을 잘 나가게 해서 몸의 습기와 부종을 없애준다. 그래서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이 율무를 자주 먹는다. 다리가 붓거나, 남자의 경우 낭습이 차거나, 아침에 일어나면 손발이 붓거나, 몸이 무거운 사람, 몸이 부으면서 설사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다리가 부으면서 쥐가 잘 나는 경우에도 좋다.
강낭콩, 완두콩, 서리태, 팥 등은 모두 콩과인데, 소변을 잘 나가게 해서 부기를 빼주는 효능이 있다. 해독하는 힘도 강해 술독을 잘 풀어주고 종기나 염증을 해결해준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이 있다.
무궁화가 우리나라 꽃이라는 노래도 있고 애국가 가사에도 들어있지만 법적으로 나라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우리나라 최고훈장 명칭이 무궁화 대훈장, 국기의 깃봉은 무궁화 봉우리 모양 등 국화(國花)가 무궁화임을 전제하는 규정들은 다수 존재하는데도 나라꽃으로 지정받지 못한 이유를 자료를 통해 알아봤다.
무궁화를 국화로 법제화해야 한다는 측 주장은 무궁화는 1000년 이상을 우리 겨레와 함께한 꽃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민족혼의 꽃이라고 말살 정책을 폈다는 것이다. 애국가 가사에도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들어가 있다. 많은 독립운동가가 무궁화의 수호·보급을 위해 헌신하는 등 무궁화는 한민족을 상징하는 역사성이 있는 꽃이다. 국화로 지정하여 국가의 정체성을 대표하고 내부적으로 국민의 단합을 도모하자는 뜻으로 법제화를 찬성한다.
무궁화를 국화로 법제화하는데 반대하는 논거는 무궁화는 황해도 이북에서 잘 자라지 않는 지역적 제한성이 있어 남북통일 후에 말썽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또한 무궁화는 교잡이 쉬워 국내에 도입된 무궁화의 품종이 다종다양한 관계로 어떤 품종을 국화로 해야 할지 법제화가 쉽지 않다. 인도 원산의 외래종이며 병충해에 취약하고 개화 기간이 7~9월로 짧다는 등의 이유가 열거되어 있다.
외국의 입법례를 보더라도 헌법·법령·관습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국기·국가(國歌)의 경우와 달리, 연방법으로 장미를 법제화한 미국 외의 대다수 국가가 국화에 관한 법령상의 근거 없이 관습에 따르고 있다는 점도 법제화를 서두르지 않는 큰 이유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이미 대다수 국민들이 무궁화가 나라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우수한 품종을 정해서 국화로 인정하면 될 것이다. 무궁화를 대대적으로 피우는 금강 자연휴양림에 있는 무궁화동산에 가보면 놀랄 만큼 무궁화가 싱싱하게 잘 피어있다. 무궁화 가꾸기 팻말을 읽어보니 무궁화는 햇볕과 거름을 좋아해서 일반 나무보다 50% 정도 비료나 거름을 많이 줘야 한다는 재배법이 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가지치기와 가지고르기를 자주 하여 꽃눈이 많이 생기게 하고 무궁화는 새싹이 나올 때 진딧물이 많이 생기므로 디프테렉스나 메타시록스 등 살충제 1000배액(물 1000cc에 살충제 1cc)을 골고루 뿌려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무궁화즙은 무좀, 설사, 눈병, 생리 불순, 위장병 등의 여러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설이 있지만 현재는 무궁화의 성분 분석이 없는 상태다. 그만큼 무궁화에 대한 국화로서의 대접이 소홀하다. 무궁화 뿌리나 줄기, 나아가 잎이나 꽃의 성분을 분석하여 효용 가치를 더 발견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를 우리가 모르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무궁화가 국화가 된다면 무궁화 가꾸는 방법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어 어릴 적부터 교육하면 될 일이다. 애국가 가사처럼 무궁화강산을 만들고 외국인을 초청한다면 새로운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여름은 무더워 신체가 상하기 쉬운 계절이다. 누구나 기진맥진해하고 힘들어한다. 선풍기나 에어컨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몸이 허약하면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도 싫어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절이다. 나이 든 사람일수록 더 힘들다. 고산이나 북쪽의 서늘한 곳으로 피서를 떠나는 것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한두 달 피서를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외부의 더위를 피할 수 없다면 신체 내부의 환경을 바꿔 열을 식혀야 한다. 여름 무더위는 한의학적으로 습열이라 하는데, 폐가 이 습열을 식혀준다. 그런데 몸이 약해지면 폐가 손상되어 습열을 제거하지 못해 비위와 콩팥 기능까지 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여름 병증이다.
이번 호에는 무더위를 이기는 맛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무더위를 이기는 맛은 약한 신맛과 약한 짠맛, 그리고 단맛이다. 이미 우리의 음식 문화에는 이런 맛이 여름 먹거리로 녹아들어와 있다.
첫째 약한 신맛은 약간 시큼한 맛이다. 황매실차, 오미자차를 먹어보면 새콤한 맛이 느껴지면서 침이 고인다. 그리고 전신의 피부가 닭살처럼 일어난다. 새콤한 맛은 피부의 땀구멍을 닫아주는 효과가 있다. 더위를 먹는다는 것은 폐의 기운이 부족해 피부의 땀구멍이 열려 땀이 줄줄 흐르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면 기운이 떨어지고 밥맛도 없어진다. 새콤한 맛은 땀구멍을 닫아 기운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중국 명의인 손진인 선생이 “여름철에는 늘 오미자를 복용해 오장의 기운을 보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매실차는 3년쯤 묵힌 황매실차가 좋다. 갓 담근 매실차는 강하게 시큼한 맛이라 체했을 때 소화제로는 좋지만 여름 보양 음료로는 적합하지 않다.
장수 음식으로 꼽히는 흑초도 좋다. 현미식초를 먹어보면 강하게 시큼한 맛이 느껴지다가 끝 맛이 쓴데, 이런 맛은 체한 것을 풀어주지만 여름 보양 음료로는 적합하지 않다. 흑초나 홍초는 약간 시큼하다가 끝 맛이 달면서 입에 침이 고인다. 이런 맛이라야 여름 보양 음료라 할 수 있다. 또 당연히 오래 묵힌 것일수록 효능이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오미자가 들어간 생맥산(生脈散)을 여름 보양 음료로 추천한다. 맥문동 8g, 인삼 4g, 오미자 4g을 물에 달여 여름철에 늘 마시면 좋다고 했다. 여름철 보양식으로 유명한 보신탕도 약한 신맛이 나는 음식이라 구분할 수 있다. 보신탕에 넣는 부추도 약한 신맛을 낸다.
둘째 약한 짠맛이다. 약한 짠맛이란 처음에는 약간 짭짜름하다가 단맛이 나면서 입에 침이 고이는 맛을 말한다. 찌는 듯이 더운 사막을 횡단하는 카라반은 소금을 늘 먹어서 기운이 땀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한다. 약한 짠맛을 먹으면 진액을 끌어당겨 땀이 덜 나가게 한다. 몸의 열을 내려주는 효과도 있다. 음식점에 가면 보통 고춧가루나 식초가 놓여 있다. 그런데 여름에만 특별히 놓이는 양념이 있다. 바로 소금이다. 여름철에 콩국수를 주문하면 소금이 따라 나온다. 보신탕, 삼계탕을 주문해도 소금을 준다. 여름철 별미인 우무에도 소금이 들어간다. 뱀장어도 여름에는 소금을 곁들여 먹는 것이 좋다. 운동하고 나서 땀을 많이 흘린 후 마시는 미네랄 음료도 약한 짠맛이다. 약한 짠맛은 흡수가 빠르고 소변을 잘 보게 해 열을 가라앉혀준다.
그런데 어떤 소금을 쓰는가가 중요하다. 정제염이나 갓 만든 천일염은 아니다. 이들 소금은 매우 짜면서 끝 맛이 쓰고 입이 말라 물이 당긴다. 3년 이상 묵힌 천일염이나 구운 소금, 죽염, 함초 소금은 약간 짜면서 끝 맛이 달고 입에 침이 고인다. 여름에 기운이 없을 때는 생수 1ℓ에 죽염 4g 정도를 녹인 물을 한 모금씩 마시면 좋다. 기운이 나고 땀도 덜 난다. 너무 싱겁게 먹으면 여름이 힘들고 기운이 없어진다.
셋째 단맛이다. 더운 여름에는 체력 소모가 많아, 이를 보충하기 위해 단것을 많이 먹는다. ‘동의보감’에서도 “더위는 기를 손상시키니 진기를 보하는 것이 요체다”라고 했다. 더운 동남아와 중동 사람들은 단것을 엄청 많이 먹는다. 수박과 참외, 야자 등 여름철 과일과 열대 과일류는 대부분 달다. 이때의 단맛은 정제 설탕 맛과 다르다. 정제 설탕을 먹으면 달달하다가 입이 텁텁해지면서 물이 당긴다. 초콜릿을 먹어도 달다가 입맛이 쓰면서 물이 당긴다. 이런 맛은 여름 먹거리로 적합하지 않다. 야자즙, 망고 등 천연과일은 달달하면서 입에 침이 고인다. 이런 단맛이라야 여름 더위를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참외나 수박처럼 차가운 과일은 적당히 먹어야 한다.
‘동의보감’에서는 사계절 중 여름철 건강관리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더워서 겉으로는 땀이 나지만, 속은 반대로 차가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땀을 과도하게 흘려 탈진하거나 더위를 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더워도 위장은 차갑기 때문에 차가운 음식을 주의해야 한다. 여름철에 얼음물과 차가운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으면 가을철에 추웠다 더웠다 하면서 배변 상황이 나빠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현대인은 에어컨 때문에 여름에 오히려 냉방병에 걸리기 쉽다. 머리가 아프고 몸이 쑤시면서 발열, 오한, 복통, 구토, 설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중간중간 따뜻한 음료를 마셔야 한다.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을 쓰면 효과가 있다.
여름은 콩팥이 가장 약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므로 과도한 성생활이나 음주를 주의해야 한다. 콩팥이 손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더울 때 갑자기 찬물로 세수를 하면 눈에 혈액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시력이 나빠질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더운 곳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찬물로 양치하되 삼키지는 말아야 한다. 인체 내부로 갑자기 찬물이 들어가면 손상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