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립미술관으로 들어서자 대뜸 눈에 들어오는 게 봄꽃들이다. 나뭇가지마다 꽃 걸렸다. 하얀 꽃, 노란 꽃, 붉은 꽃들 소담히 만개해 살가운 눈짓을 보낸다. 산중의 4월은 통째 꽃 천지다. 저 멀리 산등성이에서도 벚꽃들이 아우성을 친다. 여길 보소! 날 좀 보소! 그렇게. 궁벽한 산골에 꽃 제전 벌어져 볼 게 둘이다. 꽃과 미술이 겹을 이룬 게 아닌가. 이런 미술관이 드물다. 순전한 자연 속에 들어앉은 미술관이다.
임립미술관은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그러나 한번 왔던 사람들은 다시 찾아온다. 미술관 일대의 목가적인 전원 경관에 홀딱 반해서다. 사람은 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편안해진다. 때 묻은 마음을, 뒤틀린 생각을, 어찌해볼 길 없는 불안을 자연과의 해후로 헹궈낼 수 있어서다. 자연이 지닌 치유 능력. 이건 미술 작품이 주는 감동의 힘과 동일하다. 다른 게 있다면 자연은 ‘그냥 그렇게’ 날것으로 존재해 완전한 생태를 이루지만, 미술은 불완전한 인간의 간절한 꿈과 욕망으로 가공된 인위의 세계라는 점이다. 그러기에 미술이 자연과 맞먹을 길은 없다. 조물주의 영역에 있는 자연을 탐색하거나 탐닉할 뿐이다. 모든 미술은 궁극적으로 자연을 모방하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자연의 비밀을 염탐한 게 많은 미술 작품을 우리는 명작이라 부른다.
자연은 결국 예술의 어머니다. 그 고귀한 어머니가 여기에서 생동하는 숨결을 뿜는다. 숲의 저 속삭임에서 보들레르는 시를 건졌고, 밀레나 루소는 그림을 얻었다. 무성한 숲속의 미술관을 만난 건 행운이다.
임립미술관은 새 둥지처럼 안락하다. 어린 것을 껴안은 어미처럼 산이 보듬고 있어서다. 굳이 멋 부려 미술관을 치장하지 않아도 절로 그윽한 미감이 살아나는 환경이니 자리 한번 기똥차게 잘 잡았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에 있다. 충남의 제1호 사립미술관으로 서양화가 임립(77)이 1997년에 개관했다.
임립을 만나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그가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누룽지탕에 반찬은 달랑 김치 하나. 워낙 식성이 담백해 소찬 식사가 잦다고 한다. 이는 어릴 적 식습관에서 유래한 기호란다. 예전엔 흔히들 곤궁해 별로 올라온 것 없는 밥상을 받기 십상이었다. 그럼에도 그리운 게 어린 시절이요, 고향이다.
소음과 풍문이 들끓는 도시에서 화가로, 대학 교수로 활갯짓을 했던 그의 마음은 자주 흘러 고향으로 향했다. 눈에 아롱거리는 고향의 산천. 코끝에 감도는 고향의 흙냄새. 철없이 덤벙거리며 희희낙락 도랑에서 멱을 감고 가재를 잡던 기억이 야기하는 그리움. 마치 꿈속에 펼쳐지는 선경(仙境)처럼 고향의 풍정과 서정이 파랗게 살아나 남몰래 깊은 향수병을 앓았던 모양이다. 이건 원색적인 감정이라 억누르기 쉽지 않다. 결국 그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동심으로 기뻤던 유년의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풍진세상 가뿐히 떠나리라. 이런 생각으로 고향의 산골짝에 세운 게 임립미술관이다.
미술관의 눈, 푸른 호수
이 미술관의 모든 걸 둘러보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자그마치 2만여 평이나 되는 부지 안에 갖가지 시설이 산재해서다. 전시 공간만 해도 가마 형상을 본떠 지은 본관과 특별전시관 A·B·C동 등 넉 동이나 된다. 야외 대공연장과 소공연장, 조각공원, 도예체험관, 세미나실, 학예실도 구비했으며, 편의 시설로는 게스트하우스와 카페가 있다. 부지의 크기도 어마어마하지만 시설물의 수효로도 단연 독보적인 사립미술관이다. 임립이 쏟아부은 땀의 총량이 아마도 드럼통으로 여럿일 테다. 흘린 땀이야 그렇다 치고 자금은? 산중의 임자 없는 청풍명월이야 공으로 거저 얻는 것이지만, 개인미술관의 건립과 운영이라는 게 워낙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난해한 사업이다. 우리가 사립미술관을 귀하게 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임립은 꽤 잘나가는 화가다. 작품을 팔아 모은 자금을 미술관 건립에 썼다. 창작의 실력과 단단한 심지로 하고 싶었던 일을 기어이 해낸 셈이다.
코로나19의 해일은 미술관에도 들이닥쳐 불황이 만연했다. 아예 전시회를 열지 않거나, 미루거나 축소하는 미술관이 흔하다. 임립미술관은 여기에서 예외다. 전시장마다 기획전이나 상설전이 진행되고 있어 쌩쌩하다. 그래도 찾아드는 이가 드물어진 건 어쩔 수 없다. 산책과 소풍에 적격인 산경(山景)이 찬연하고, 다수의 미술전이 극진한 갈망으로 관람객들을 기다리지만 감염병의 횡포를 당할 재간이 없다.
미술관의 역할은 단지 그림을 보여주는 데에만 있지 않다. 미술과의 접촉을 유도해 삶의 흥미를 북돋우는 데에서 나아가, 누구나 화가일 수 있고 모든 것이 예술이라는 걸 일깨우기 위한 체험 프로그램의 가동 역시 미술관의 주요 책무다. ‘예술은 나의 신(神)’이라 주장하는 작가도 있더라. 그러나 희로애락으로 점철되는 일상의 고행과 눈물이 이미 예술이다. 그럼에도 예술 장르의 체험 기회가 없어 미술을 어렵다고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임립미술관은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찾아가는 미술관 프로젝트’ 등 다수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올가을 18회째 펼쳐질 ‘공주국제미술제’(총감독 임립) 역시 임립미술관이 야심차게 끌고 온 대승적 미술운동의 일환이다.
임립미술관의 푸른 눈동자랄까, 공간의 중심부엔 멋진 호수가 있다. 호숫가를 한바탕 거닐자니 낭만적인 상념이 가슴에 고인다. 이래저래 임립미술관에선 하품 한 번 할 겨를이 없다.
< 2편에 계속 >
미술 작품 감상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곰곰 뜯어봐도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추상화 앞에선 머리에 쥐난다. 이게 관람객의 둔감 탓이라고만 할 수 있으랴. 작가 자신도 무슨 짓을 했는지 알 바 없이 휘갈긴 작품도 ‘천지삐까리’다. 작품이 난해하니 미술관에 가봐야 재미가 없다. 미술관들의 따분한 콘셉트에도 식상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여기에 꽤나 재미있는 미술관이 있다.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가나아트파크다.
일영리는 산 좋고 물 좋은 전원이다. 예전부터 교외선을 타고 장흥역(현재는 폐역)에 내려 일영 일대의 산수와 찻집을 즐기는 데이트족들이 넘실거리던 곳이다. 유흥주점과 러브호텔로 불야성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다 2008년 ‘장흥문화예술특구’로 지정되면서 슬쩍 변신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알록달록 치장한 업소들이 난립해 어지럽지만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등 문화 공간 다수가 이 골짜기에 들어서면서 좀 색깔 있는 동네로 부상했다. 처음 문화예술의 공기를 주입한 건 토탈미술관이었다. 토탈미술관을 서울 평창동에 있는 가나아트센터가 인수하고 개조해 2006년에 문을 연 게 가나아트파크다.
가나아트파크는 ‘쉬운 미술관’을 표방한다. 설립자는 가나아트센터의 리더 이호재 씨. 화랑계의 ‘큰손’이자 진취적인 기획자다. 그는 문턱과 눈높이를 낮추고 재미를 부여해 누구나 쉽게 찾아와 미술 체험을 할 수 있는 미술관을 궁리하다 가나아트파크를 열었다. 그의 지향과 방책은 선명했다. 어린이들을 주 타깃으로 삼은 거다. 아이들에게 미술과 미술관도 사이버 게임처럼 아주 신날 수 있다는 걸 경험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울러 아이들의 삶에 좁쌀만큼의 작은 크기로라도 미술이라는 소우주가 달라붙을 수 있길 바랐을 테고. 그게 결국은 미술 인구의 확대와 저변의 풍토를 다지는 지름길이라 보았을 테고.
이호재 씨의 이와 같은 궁리와 실천은 평범한 게 아니었다. 머리 잘 돌아가는 미술 사업가들이 많지만 아무도 ‘어린이 중심의 미술관’을 착상하지 못했던 시절에 기염처럼 토해낸 발상이었으니까. 요즘이야 어린이들을 주 고객으로 삼은 사립미술관이 꽤 있지만 예전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국내 최초의 어린이 미술관으로서 가나아트파크가 지닌 위상이 우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오나? 연간 관람객 수가 10만 명 이상이라 하니 순항이다. 하지만 적자를 면치 못한다더라. 이건 사립미술관의 숙명에 가깝다. 무료입장 제도를 운용하는 국공립미술관의 관람객 유인력을 당할 재간이 없다. 비싼 입장료를 내고(사실 비싸지도 않지만) 사립미술관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아무려나, 가나아트파크는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뜀박질로 흥겹다. 그러라고 놀이터처럼 꾸며놓은 공간과 시설이 많다. 아이들은 다들 부모나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이끌려 이곳에 온다. 그러기에 아이들 못지않게 어른들도 많다. 젊거나 늙숙한 부부와 연인들도 전시실의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너른 정원에서 짧은 피크닉을 즐긴다. 자유로이 마음 보따리를 풀어놓고 쉬기 좋은 미술관이다. 즉 남녀노소가 어울려 체면 차릴 것 없이 일락(逸樂)할 수 있는 곳이다.
정원을 가로질러 본관 건물로 들어간다. 지상 2층과 지하 1층으로 지은 이 건물엔 각각 층고가 다른 6개의 전시실이 있다. ‘카페 오월’과 아트숍도 있다. 1층 전시실 옆댕이엔 아이들의 놀이장인 ‘볼풀 아일랜드’가 있다. 그림 관람을 하는 어른들과 잠시 헤어진 아이들은 이곳에서 맘껏 논다. 아이와 어른을 동시에 배려했다. 이런 기발하고도 친절한 미술관을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을 위한 전시실도 따로 구획해 ‘교과서 속 그림여행’이라는 이름의 상설전을 펼친다. 피카소,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등 교과서에 나오는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인기를 끄는 백남준 전시실
2층 5전시실에선 기획전이 펼쳐진다. 젊은 서양화가 허보리의 ‘Love My Hero’전이다.(4월 30일까지) 허보리는 만화가 허영만의 딸이란다. 전시실로 들어서자 탱크 한 대가 눈에 쑥 들어온다. 허보리의 설치 작품이다. 그녀는 은퇴한 가장들의 양복과 넥타이를 잔뜩 수집해 오브제로 삼았다. 천을 잘라 감거나 둘둘 뭉쳐 캐터필러를 비롯한 동체와 포신을 만들었다. 이 괴상한 헝겊 탱크로 어떤 메타포를 전하는가? 쉽다. 삶이라는 전장에서 먹이를 물어오기 위해 탱크처럼 진격하는 생활의 전사(戰士)를 오마주했다. 포신은 맥없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탱크처럼 밀어붙여도 어찌할 수 없이 돌아오는 생의 피로와 패배를, 무기력과 발기부전을 보여준다. 정육 쇼케이스 안에 총알과 수류탄 따위를 만들어 고깃덩어리처럼 진열한 작품 ‘무장가장’(武裝家長)도 노골적이긴 마찬가지다. 인생의 희로애락 중에서 작가는 ‘애’(哀)를 끄잡아냈다. 삶이 기쁘고 아름답다고? 잉? 그럴 리가! 허보리는 그리 따진다. 혹은 가혹한 삶을 위무한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들을 모은 전시실도 있다. 가장 인기를 끄는 공간이란다. 새와 나무, 꽃을 그린 크레파스화들에서 드러나는 백남준은 어린애다. 세 살짜리 천진이 끼적인 낙서처럼 알량하나 생기롭다. 백남준의 나이 67세에 이 유치한 그림들이 나왔다. 도통하면 애로 돌아간다. 달통하면 쉬워진다. 그에겐 닫힌 게 없어 막힐 것도 없었다. 관조의 눈으로 세사를 넓게 읽었다. 자전거를 탄 모니터들로 이루어진 작품을 보라. 골치 아플 거 없이 쉽고 재미있다. 거기에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나. 백남준은 남들이 안 하거나 못 하는 걸 찾아 해치우는 재주를 창작의 견인차로 삼았을 뿐이다. 백남준이 괴로워한 유일한 문제는 어쩌면 경제였다. 당신은 왜 TV 모니터로 작품을 일삼는가, 이런 질문에 돌아온 답이 이랬다. “돈이 있어야 예술도 되거든. 집에서 보내주는 돈도 끊겼고, 뭘 해야 돈이 되나 궁리를 하다 하다 TV에 착안한 거라고.”
본동 외에도 가나아트파크엔 다수의 건축물이 있다. 동쪽 끝자락에 있는 아틀리에 두 개는 모텔을 사들여 개조한 건물로 많은 작가들이 입주해 창작활동을 한다. 루브르박물관과 대영박물관 내부 설계를 맡았던 장 미셸 빌모트가 개조 설계를 했다. 도드라지기로는 미술관 중심부에 나란히 선 박스형 건물 세 채. 각기 통째로 파랑과 노랑, 빨강을 입어 매우 강렬하다. 이 미술관은 피카소 작품 1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반가워라, 피카소! 파란색 건물에선 피카소 작품들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피카소의 일상을 담은 사진도 여러 점 내걸려 흥미롭다. 담배를 물고 싱긋 웃고 있으나 뭔가 길들지 않은 포악한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표정의 피카소. 살기등등한 송골매의 눈으로 작업을 하는 피카소. 그는 도발적인 화풍으로 타성에 갇히기를 거부했다. 피카소의 작품은 이제 고전이 됐지만, 치열했던 자유의지는 시대를 관통하는 패션으로 남아 세상의 모든 ‘우물 안 개구리’들을 일깨운다.
노랑 건물엔 섬유작가 토시코 맥아담이 아이들을 위해 만든 그물놀이터 ‘에어 포켓’(Air Pocket)이 있다. 공간을 가득 채운 초대형 뜨개질 작품이다. 이 기이한 구조물엔 구멍이 숭숭 뚫려 아이들이 기어 들어가 놀도록 했다. 거미줄에 매달려 곡예를 하는 거미처럼. 미지의 차원으로 넘어간 듯, 아이들은 신비감으로 도취될 수밖에 없겠다.
미술관의 너른 정원엔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조각 작품이 흔전만전하다. 류인, 문신, 강대철, 최종태, 앙투안 부르델, 조지 시걸, 세자르 발다치니 등의 작품들이 경연을 펼친다. 조각보다 보기에 좋은 풍경은 풀밭에 앉아 소풍의 한때를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정원을 희희낙락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이다. 이 미술관은 풀밭 위의 도시락 식사도, 야유회도, 낮잠 때리기도 허용한다. 분노도 많고 긴장도 많아 남몰래 아픈 그대여, 여기서 쉬어가라! 미술관은 그리 권하고 싶은가 보다. 이렇게 확 열린 미술관, 본 적 있나?
● Exhibition
◇ANDY WARHOL : BEGINNING SEOUL
일정 6월 27일까지 장소 더현대서울
팝아트의 황제 앤디 워홀의 회고전이 이탈리아 주요 미술관 투어를 마치고 한국에 도착했다. 여의도 더현대서울의 개관을 기념하며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동안 국내에서 진행된 앤디 워홀 전시 중 최대 규모다. 앤디 워홀은 미국의 대표적인 상업미술가로,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듯 작품을 찍어내는 실크스크린 기법을 택해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이라고 표현하며, 양극단에 있던 상업주의와 순수미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매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유명 스타들의 얼굴이 담긴 셀레브러티 시리즈와 캠벨 수프 등 소비 상품을 소재로 한 판화가 대표작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앤디 워홀의 대표작을 비롯해 그동안 쉽게 볼 수 없었던 드로잉 작품까지 총 153점을 공개한다. 앤디 워홀의 삶을 키워드로 돌아보는 인트로를 시작으로 총 6개 섹션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며, 마지막 섹션에서는 화려한 작품 뒤에 감춰진 내성적이고 겁 많던 앤디 워홀의 또 다른 모습까지 살펴본다. 그만의 예술적 감수성이 담긴 개인 소장품도 함께 엿볼 수 있다.
◇필립 콜버트 : 넥스트 아트 팝 아트와 미디어 아트로의 예술여행
일정 5월 2일까지 장소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0세기에 앤디 워홀이 팝아트의 신대륙을 개척했다면, 21세기에는 필립 콜버트가 있다.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차세대 앤디 워홀’이라 평가받는 영국의 팝아트 작가 필립 콜버트의 전시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기존 팝아트에서 한층 진화한 장르를 선보이고 있는 필립 콜버트는 오늘날 미술 시장이 주목하는 팝아트의 비전이다. 짧은 이력에도 불구하고 영국 런던의 유명 화랑인 사치 갤러리 소속 작가로 선정된 바 있으며, 몽블랑, 벤틀리, 삼성KX 등 글로벌 대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대중미술을 구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조형 작품과 미디어아트 등 60여 작품을 선보이며, 비디오아트의 거장 백남준을 향한 필립 콜버트의 헌정작이 세계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다. 또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과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인근에 설치된 3m 높이의 대형 조형작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독특한 회화 스타일로 현대인의 소비문화를 지적하고, 예술적 정체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의 작품은 영감이 필요한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 Book
◇은퇴의 맛 (한혜경 저·싱긋)
“다 내려놓으면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내 삶의 의미와 재미는 어디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교수로 재직 중 수많은 퇴직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들의 삶을 연구한 은퇴 전문가 한혜경이 교단을 떠나고 직접 마주한 달콤씁쓸한 은퇴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거나, 이미 맞이했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저자는 은퇴 전문가로서 은퇴 후의 삶을 나름대로 잘 극복해나가리라 자부했지만 실상은 그와 달랐다고 말한다. 은퇴는 생각보다 더 씁쓸했으며,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듯한 기분에 온갖 상념과 불안, 걱정이 한꺼번에 몰려왔다고. 은퇴와 관련한 책을 두 권이나 펴내며 간접 경험을 한 만큼 무언가 다르겠거니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고 저자는 반추한다.
그렇게 1년 정도 지지고 볶으며 시행착오를 거치던 어느 날, 저자는 문득 행복을 깨닫는다. 재직 중에는 몰랐던, 온전히 내 시간의 주인으로 살며 느끼는 행복이다. 저자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노동하는 인간’으로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놀이하는 인간’으로서 삶의 재미를 찾는다면 은퇴 생활의 불안감도 서서히 끝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루이틀 사이에 끝날 놀이가 아닌, 여생을 바칠 수 있을 만한 가슴 뛰는 일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일생의 중요한 기로 앞에서 멘토를 찾는다. 초행길을 떠나기 전 자신보다 먼저 첫발을 뗀 이들의 이야기를 지도 삼아 펼쳐보는 것이다. 은퇴 또한 수십 년의 인생 경험이 무용해질 만큼 낯설고 두려운 여정이다. 하지만 앞서간 이들의 진심 어린 격려와 조언이 있다면, 조금 더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다. 이 책이 그 길라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다.
◇한국인의 종합병원 (신재규 저·생각의힘)
췌장암 4기를 진단받은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여러 의료기관을 방문한 저자가 직접 겪은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현안을 분석하고, 개선점을 제안한다.
◇걷는 생각들 (오원 저·생각정거장)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는 생각으로 매일 아침 산책하며 발견한 삶의 의미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나이 듦, 인연에 대한 성찰 등 중년 여성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개를 위한 노래 (메리 올리버 저·미디어창비)
미국이 사랑하는 베스트셀러 시인 메리 올리버의 시집으로, 인간과 개의 특별한 유대를 서른다섯 편의 시와 한 편의 산문에 담았다. 저자가 평생을 함께한 반려견의 그림도 함께 수록했다.
● Stage
◇시카고
일정 4월 2일~7월 18일 장소 디큐브아트센터 연출 김태훈
출연 최정원, 아이비, 박건형, 김영주, 차정현 등
매혹적인 하모니로 눈과 귀를 사로잡는 브로드웨이 대표 뮤지컬 ‘시카고’가 돌아온다. ‘시카고’는 문화적 황금기인 동시에 도덕적으로는 쇠퇴기였던 1920년대, 미국 쿡카운티 교도소 여죄수들의 유혹과 욕망, 복수를 다룬다. 미모의 죄수 ‘록시 하트’가 정부를 살해한 죄로 수감돼 시카고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고, 전직 배우 ‘벨마 켈리’의 자리를 위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죄수가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된 아이러니한 상황을 화려한 춤과 관능적인 재즈로 발칙하게 풍자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국내 초연부터 함께한 ‘시카고’의 살아 있는 역사 최정원과 200:1의 경쟁률을 뚫고 새롭게 선발된 걸그룹 소녀시대 티파니 영 등 클래식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캐스트로 전에 없는 무대를 선사할 예정이다. ‘올 댓 재즈’(All That Jazz) 등 유명 넘버를 15인조 빅밴드의 풍성한 라이브 선율로 감상할 수 있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일정 6월 6일까지 장소 예스24스테이지 1관 연출 오세혁
출연 도창선, 조풍래, 김재범, 김지온, 최석진 등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뮤지컬화한 작품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형제간의 갈등과 의심을 그린다. 친부 살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지만, 이를 통해 인간 내면의 모순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약 2000페이지에 달하는 원작의 서사를 밀도 있게 집약해 고전 속에 담긴 위대한 철학을 무대 위로 고스란히 옮겼다.
◇데스트랩
일정 6월 6일까지 장소 플러스씨어터 연출 황희원
출연 고영빈, 송유택, 이지현, 이현진, 선한국 등
한때 잘나갔던 극작가 ‘시드니 브륄’이 우연히 자신의 학생이 쓴 희곡 ‘데스트랩’을 발견하고, 이를 탐내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1978년 미국 극작가 아이라 레빈이 집필한 이 작품은 초연 당시 토니어워즈에 노미네이트될 만큼 짜임새 있는 줄거리를 자랑한다. ‘데스트랩’을 차지하기 위한 두 사람의 숨 막히는 심리전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금융기관에서 줄줄이 대규모 희망퇴직이 발생했다. 비대면 금융이 늘어나면서 필요한 영업점의 인원이 줄어든 탓이다. 은퇴한 전문직 종사자들은 근로 의욕이 상당히 높아서, 퇴직 이후에도 쉬지 않고 재취업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전문직 출신 은퇴자는 창업이나 창직에 관심이 많다.
참고 한국고용정보원, 신사업창업사관학교
적성을 고려한, 창업
박 씨는 대기업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한 선박 전문가였다. 선박 기술 서비스 분야에서 임원까지 올랐다. 오랫동안 일한 회사를 떠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예전부터 사업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실제로 적성검사를 하면 사업가 체질로 나왔다. 그래서 잘할 수 있고 자신 있는 분야인 선박 기술 서비스와 선박 엔지니어링 전문기업을 설립했다. 다른 일도 생각했지만, 이제껏 축적한 경험과 전문성은 포기할 수 없는 큰 자산이었다.
실제로 시니어 창업이 늘고 있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창업 기업은 34만여 개로 2019년과 비교해 13.3% 늘어났다. 특히 연령별로 규모를 파악했을 때 60세 이상의 전체 창업은 201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8% 올랐고, 기술창업은 28% 상승했다.
이들이 창업을 선호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은퇴 후 재취업이 쉽지 않고, 창업의 진입 장벽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전경련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가 중장년 구직자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6명 이상은 6개월 이상의 장기 실업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100년행복연구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퇴직자 3명 중 1명은 자영업을 선택했다. 선호하는 이유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업의 장기화와 손쉬운 접근성이 창업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하지만 창업의 길도 어렵다. 국민의힘 소속 양금희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창업 기업 생존률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창업 기업의 5년 차 생존율은 29.2%로 집계됐다. OECD 주요국 창업 기업 5년 생존율 41.7%와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한편 코로나19도 창업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중장년 취업 컨설팅 관계자는 “창업 문의는 많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창업을 미루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만약 창업을 준비한다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창업을 위해서는 4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창업자, 아이템, 상권, 창업자금이다. 어느 하나도 부족함 없이 유기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창업자의 역량을 스스로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 아이템을 찾았다면 적합한 상권을 알아보고, 그 상권에 입점하기 위한 창업자금을 비축해야 한다. 다음은 한국고용정보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예비 창업자를 위한 4계명을 살펴보고, 최근 부상 중인 유망 창업 아이템을 소개한다.
예비 창업자를 위한 4계명
#1 적성이 최우선
창업은 만만치 않다. 남들이 한다고 덩달아 휩쓸려 창업을 시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선은 ‘자신이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명확히 정하는 것이 좋다. 퇴직한 중장년 세대는 성격이나 장단점 같은 본인의 정확한 특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중장년 취업 컨설팅 관계자는 “평소에 즐기는 취미나 흥미, 그리고 자신이 쌓아온 역량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 유망 아이템은 적합성을 고려
유망 아이템을 정하라고 하면 모두 장사가 잘되는 일을 선택한다. 물론 수익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창업자와의 적합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직접 자료 조사도 하고, 발품을 팔면서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황윤정 한국열린사이버대학 디지털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시니어인 만큼 동년배의 니즈와 트렌드를 파악하고,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아이템을 정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3 상권의 분위기와 유동 인구
점포 창업에서 상권은 중요하다. A급 상권에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무조건 A급 상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A급 상권의 점포는 임대비용도 비싸고 권리금도 장난이 아니다. 상권이 좋다고 해서 모든 상품이 잘 팔린다는 보장은 없다. 상권 내에서도 입지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입지에 맞는 업종이 다 다르다. 황 교수는 “상권의 분위기가 업종과 어울리고, 유동 인구가 많은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4 비용과 매출
이제까지 조금 이상적이었다면 지금은 현실적인 얘기를 할 필요가 있다. 창업에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창업자금은 총투자비용의 70%를 자기 자본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 자본이란 그 돈이 없어도 당장 사는 데 문제없는 자산을 말한다. 만약 자금이 부족하면 선택한 업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창업 규모를 줄이는 것이 낫다. 중장년 창업 컨설팅 관계자는 “예상 비용이나 예상 매출액을 꼼꼼히 따져보고, 관련 분야의 비용 지원 제도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2021 뜨는 창업 아이템
맞춤형 향기 서비스 ▶ 최근 향초와 디퓨저 같은 향기 산업이 급성장 중이다. 영국 시장 분석 업체 ‘IAL컨설턴트’에 따르면 글로벌 향기 산업 규모는 2022년까지 약 40조 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쾌적한 실내 환경 유지 및 스트레스 해소로 향기 제품이 많이 애용된다.
공유 주방 ▶ 공유 경제를 활용한 공유 주방 사업이 뜨고 있다. 점포 창업을 하는 대신 공유형 주방을 이용해 배달음식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점포 창업보다 초기 비용이 저렴하다. 공유 주방은 4평 정도의 공간에 1000만 원 내외의 보증금과 월 160만 원 정도의 이용료만 지불하면 된다. 배달을 이용하는 1인 가구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창문농장 ▶ 반려식물이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창문농장(Windowfarm)이 뜨고 있다. 창문농장은 아파트 거실이나 베란다 창문에 수직으로 설치하는 수경 재배 시스템이다. 계절과 상관없이 친환경 채소를 직접 재배해서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홈가드닝과 플랜테리어에 대한 수요가 많아 앞으로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다.
새로운 대안, 창직
A씨는 호텔리어로 20년 동안 일하다 은퇴했다. 은퇴 후 여가를 즐기려고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 아내의 잔소리와 더불어 계속해서 비는 통장 잔고를 메워야만 했다. 얼떨결에 대리운전을 시작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취객의 난동과 폭언 및 욕설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아들의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 이동 서비스에 영감을 받아 결혼식 당일 웨딩카로 신랑 신부를 이동시켜주는 웨딩쇼퍼 사업을 시작했다. 호텔리어와 대리운전 경험을 발휘해서 창직을 시도한 것이다.
위는 대표적인 창직 사례다. 저성장이 계속되면서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탓에 중장년의 재취업도 쉽지 않다. 음식점, 숙박업, 카페 등 이미 포화 상태인 시장에서는 창업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이러한 현상과 맞물려 고학력 베이비붐 세대가 재취업 시장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창직’이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관계자는 “생계유지와 함께 일로써 보람을 얻기를 원하는 중장년층이 많아지면서 창직을 원하는 수요가 생기고 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원하는 진로 유형을 파악했는데, 창직 추구형이 64.27%로 가장 높았다. 이 유형은 자신의 경력을 활용해 지속해서 경제적 소득을 얻기를 희망했다. 주로 장기 근속한 도시의 화이트칼라 남성 노동자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양한 사회관계망을 통해 구직하고 있었으며, 정부의 창업과 자영업 지원 정책을 선호했다.
창직은 쉽게 말해서 새로운 직무를 만드는 일이다. 그 직무를 하기 위한 내용과 지식, 기술 등이 포함된다. 창업의 비즈니스 모델은 주로 제품이나 기술이다. 반면에 창직은 직무를 분석하고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창업과 창직을 자주 혼동하는데, 이는 창직을 통해 구현되는 방법이 대부분 창업이기 때문이다.
창직을 위해서는 참신성, 수익성, 실현 가능성,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 일은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것인 만큼 참신해야 하고, 새 직업의 직무 수행은 기존의 일과는 확실히 다른 특성을 가져야 한다. ‘직업’이기에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법적 및 제도적 여건을 살펴야 한다. 창직 관련 전문가는 “창직은 새로운 업을 만드는 일이기에 업으로서 지속할 수 있고, 경제적 소득이 있어야 한다.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도 이상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창직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미래에 전망이 밝은 창직 업종을 소개한다.
예비 창직자가 알아두면 좋은 Tip
#1 다방면으로 탐색하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면 웰빙에 대한 관심과 주 5일 근무 확산으로 여가 생활이 늘어나면서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나 파티 플래너가 생겨났다. 또한 빅데이터의 발달로 빅데이터 분석가도 유망한 직업으로 부상했다. 이처럼 새로운 직업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변화, 수요자의 욕구, 과학기술의 발전 등 다방면으로 탐색할 필요가 있다.
#2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해외 직업 중에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해 적용 가능한 직업을 찾을 수 있다면 새로운 직업을 만들 수 있다. 맥주 주조사나 VJ 같은 직업도 해외에 있던 직업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경우다. 다만 각 나라의 문화, 제도, 시장에 따라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직업을 그대로 수용하기는 쉽지 않다. 적용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한 뒤 조정해야 한다.
#3 융합을 고려하자
기존 학문, 직업 간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직업을 만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음악치료사나 미술치료사가 있다. 기존 노동 시장에 전혀 없던 직무보다 기존 직업 간의 결합 또는 융합으로 발생한 직업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따라서 직업 간의 결합과 융합 가능성을 찾아보자. 특히 반려동물과 관련된 시장을 주의 깊게 보면 좋다.
#4 분화를 검토하자
새로운 수요에 따라 기존 직업에서 분화되거나 전문화하여 직업이 나타나기도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애견 옷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애견 옷 디자이너가 나타났다. 이 직업은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핵가족 및 독신 인구 증가로 애완동물 시장이 성장하면서 패션 디자이너에서 분화된 것이다. 기존의 직업과 사회 전반적인 현상을 살피면서 분화할 수 있는 직업을 눈여겨보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창직
로봇 컨설턴트 ▶ 일반 기업의 로봇 사업 도입 및 전환에 대한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해 콘셉트 디자인, 타당성 연구, 품질 관리 등 다양한 테스트를 실시한다. 고령화와 자동화 추세에 따라 생활 전반에 로봇 사용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심 RPG개발자 ▶ 도시를 게임판 삼아 참여자가 직접 역할을 수행하면서 도시의 문화나 역사를 체험하는 일종의 놀이마당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게임을 문화 체험, 도시 체험 등 다양한 영역에 접목하여 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VR이나 AR 체험이 늘어나면서 유망한 직종으로 뜨고 있다.
스마트팜 전문가 ▶ 시설 원예 및 축산 농가를 대상으로 사물인터넷 등 ICT를 활용해 농가 시설을 현대화하고, 이를 통한 지속적인 성장 및 수익 창출을 지원하기 위해 스마트팜 설계, 구축, 운영 등에 관해 조언한다. 스마트팜은 한국고용정보원이 정한 8대 혁신성장 산업 중 하나다.
세상에서 가장 흐뭇한 풍경은? 여주미술관에 와서 보니 그 답은 미술관이다. 산기슭에 살포시 기대어 앉은 미술관의 유려한 자태를 바라보자면, 이보다 오롯한 낙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풀과 나무들은 사람의 가슴을 보듬어주고, 미술관 건축물은 저만의 미학을 두런거리며, 전시 작품들은 마음으로 스며들어 삶의 피로와 권태를 씻어주는 게 아닌가. 그러니 낙원이다. 그러나 지방에는 찾아갈 만한 미술관이 드물다. 아예 미술관이 없는 지역도 숱하다. 여주미술관이 생기기 전에는 여주시에도 미술관이 없었다.
여주미술관은 2019년에 개관, 1년 반쯤 지난 신생 미술관이다. 이제 막 설레며 옷고름을 풀었다. 누구나 와서 미술의 속살과 내밀한 감흥을 만끽하라고 품을 열었다. 고려제약 대표이사이자 화가인 박해룡(86) 명예관장이 사재를 털어 지은 사립미술관이다. 오래 생각하고 깊이 헤아려 지었을 테다. 운영난으로 고전하다가 나자빠질 수 있는 게 사립미술관이다. 그러니 숙고가 많았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이라서 낼 수 있었던 용기로 태동한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여주시 외곽 야산 자락에 자리한다. 재기 넘치는 나무들의 동향과 저만치에서 술렁거리는 숲의 모습을, 그리고 너른 터로 들이치는 햇살과 나그네처럼 지나가는 구름까지 다 누릴 수 있는 곳이니 이상적인 공간이다. 미술관 한쪽 저 멀리로 딱딱하게 솟은 고층 아파트가 보이지만 소음도 소란도 침범 못 할 전원 미술관이다.
부지 면적은 약 2000평이다. 산자락을 깎고 밀어내는 토목 공사가 필연적이었겠으나 원래의 지세와 형국을 존중해 인위를 자제한 티가 완연하다. 한참 터를 에둘러 오르고서야 미술관에 닿게 만든 진입로에서 단도직입적이고 과격한 성형을 배제한 뜻이 도드라진다. 곡선으로 연신 휘어드는 진입로는 심지어 음악적이다. 리드미컬해서다. 안단테풍의 선율을 연상시킨다. 급하게 조여진 마음의 현을 여기에서 순하게 조율해보라는 뜻일 게다. 망중한과 심심파적으로 미술관과 만나는 기분을 새삼 부추기는 들머리길이다.
미술관 건물로 들어서기 전에 너른 야외정원에서 한바탕 산책을 한다. 대담하게 구획하고 섬세하게 기획한 정원이다. 모두 3개 섹터로 구성했다. 미술관 초입에 있는 ‘야외정원 1’은 퍼포먼스나 공연 때 무대로도 활용할 수 있는 필로티 계단을 통해 중정과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야외정원 2’는 국내에 드문 수령 100년의 백송과 탱자나무, 화살나무 등 다양한 수목과 조각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야외정원 3’은 여주미술관이 표방하는 콘셉트 ‘숲속의 미술관’에 걸맞게 한결 다채로운 나무들이 모여 수군대는 공간이다. 이 정원은 미술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조망이 빼어나다. 미술관 전체의 경관은 물론 도시 외곽의 풍치와 저 먼 곳에서 물결치는 산경까지 한눈에 쓸어 담을 수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엔 서정이 서린다. 늦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원근 풍경은 괜스레 애틋하다. 소나무 빼곡한 숲은 푸르러 까닭 없이 슬프게 아름답다.
야심 찬 대형 기획전 펼쳐
이제 건축물을 볼까. 본동과 스튜디오로 쓰이는 부속 건물 하나로 이루어졌다. 철근콘크리트와 철골조를 주조로 지은 본동의 벽엔 온통 하얀 칠을 입혔다. 그래서 밝고 맑아 청량하다. 빨간빛, 초록빛, 파란빛을 한 지점에다 동시에 투과시키면 흰빛이 나온다던가? 유채색들을 무채색으로 수렴하는 흰색의 포용력은 어쩌면 자연의 관용에 가장 근접하는 속성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개성 없이 밋밋한 색상일망정, 사람들은 흔히 흰색에 평온과 호의를 느끼는 게 아닐까. 미술관 외벽의 색을 그냥 색으로만 보면 재미없다. 미술관 벽에 생각 없이 흰색을 채택했으랴. 색채 심리나 색상 미학을 고려했을 법하다.
본동 건물의 외관은 한마디로 간결하고 수려하다. 일부러 멋 부린 티 없이 멋스러우니 단순 구조란 인간의 처신에서나 건축에서나 두루 통하는 미덕이다. 건물의 전체적 모양새는 ‘ㄷ’자 모습이다. 특이한 건 지붕 디자인이다. 맞배지붕을 쌍으로 올려 옆에서 바라보면 ‘M’자 지붕이다. 이렇게 지은 집이 두 채라서 마치 지붕이 4개처럼 보인다. 이는 지붕을 잘게 분할, 건물의 덩치를 작아 보이게 하기 위한 매우 똑똑한 기법이며, 자연 속에 짓는 집이라면 마땅히 몸집의 스케일을 과시하지 않아야 한다는 건축주의 소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M’자 지붕의 선을 그대로 반영한 내부 천장은 ‘V’자다. 따라서 예각을 그리며 뻗은 천장의 의외로운 선으로 전시장에는 긴장감과 역동감이 감돈다. 이 부분은 여주미술관 건축의 감상 포인트이기도 하다.
미술관의 품격은 건축물의 수준으로만 가름할 수 없다. 요리로 치자면 건축물은 그릇일 따름이고, 전시 작품은 거기에 담기는 음식이다. 그러기에 미술관마다 미술의 진수성찬을 차리느라 애를 쓴다. 여주미술관에선 현재 중견 서양화가 서용선의 ‘만疊산중서용선繪畫’전이 펼쳐진다.(6월 30일까지) 신생 미술관의 패기와 야심을 보여주기 위해 아주 오랜 준비 기간을 거친 끝에 오픈한 대형 기획전이다. 서용선은 역사·신화·도시·자연·인간 등 다양한 주제를 구상화로 혹은 반추상화로 그려온 화가다. 그는 세상과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 방울방울 피를 뿜듯이 화폭에 심혼을 쏟아붓는다. 강렬한 원색 물감으로 붓을 갈긴 화면의 질풍노도를 보라. 통렬하나 진중하며, 거칠지만 유심하고, 능란하면서 과잉이 없다. 그림마다 튼튼한 서사가 박혀 있다. 애호가들로서는 놓칠 수 없는 전시회다.
전시실을 아예 개조하다시피 공간을 파격적으로 분할하고 임시 벽면들을 설치해, 마치 미로 속에 들어와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회화의 첩첩산중을 거니는 판타지를 부여하는 구성법이기도 하니 황홀하다. 만사 새롭지 않으면 김새고, 새로우면 새록새록 돋는 게 많다. 미술관에서 그 이치를 또 깨닫는다.
< 2편에 계속 >
주기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며 제품이나 서비스, 콘텐츠 등을 이용하는 ‘구독경제’의 몸집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뿐 아니라 의식주부터 취미와 여가 등 삶의 전반에 다양한 방식으로 침투하고 있다. 심심할 때 TV 대신 넷플릭스를 보고, 유튜브 구독자 수로 인기를 가늠하는 구독 전성시대, 시니어가 알아두면 좋을 이색 서비스를 소개한다.
사진 오픈갤러리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한 지 1년, 집에 머무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주거 공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단순한 의식주 생활을 넘어, 개인의 취미와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카멜레온처럼 변하고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은 다양한 커피용품으로 ‘홈카페’를 만들고, 영화광들은 빔프로젝터를 구매해 ‘홈시네마’를, 운동 마니아들은 각종 운동기구를 들여 ‘홈짐’을 차리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 집의 기능이 겹겹이 추가되는 현상을 ‘레이어드 홈’이라고 명명했다.
다양한 인테리어와 가전용품으로 주거 공간의 역할이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전시회·갤러리 등 문화생활을 편히 즐기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림 소장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미술관에 가는 대신 집 곳곳에 그림을 걸어 자신만의 갤러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명 화가의 원화는 구하는 과정부터 어렵고,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전문가가 아닌 이상 어떤 작품을 어디에 걸어야 하는지 등 지식이 부족해 혼자 결정하기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림 렌털 서비스 ‘오픈갤러리’
‘오픈갤러리’는 이처럼 그림을 소비하고 싶지만 선뜻 시도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국내 인기 작가의 원화를 대여하는 그림 렌털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큐레이터와의 상담을 통해 어울리는 작품을 선정하면 전문 업자가 작품 설치를 돕는다. 최초 이용 시에는 큐레이터가 방문해 도슨트 서비스도 제공한다. 그림은 3개월을 기준으로 교체가 이루어져 계절이나 유행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2021년 2월 기준 약 1100명의 작가와 3만7000여 점의 작품이 등록돼 있으며, 이 중 오픈갤러리가 중장년층 고객에게 주로 추천하는 작품은 전미선, 이현열, 임은정, 고재군, 류지선 작가의 그림이다.
대여 요금은 작품 크기에 따라 다르며, 1개월 기준으로 책정한다. △10호(약 50×45cm) 이하 3만9000원 △20호(약 70×60cm) 이하 6만9000원 △30호(약 90×70cm) 이하 9만9000원 △40호(약 100×80cm) 이하 12만 원 △60호(약 120×90cm) 이하 15만 원 △80호(약 145×110cm) 이하 20만 원 △100호(약 160×130cm) 이하 25만 원이다. 이는 작품 원래 가격의 1~3% 수준이다.
대여 전 상담은 온라인 및 오프라인 방식으로 진행한다. 온라인은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보낸 뒤 유선 상담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성된 제안서에서 원하는 작품을 고르면 된다. 제안서에는 약 5점의 작품이 추천된다. 신청서를 작성할 때는 개인의 취향이나 공간의 특성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 취향을 모른다면 오픈갤러리 홈페이지에서 AI 취향 분석 서비스를 이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오프라인 상담은 큐레이터가 가정을 방문해 공간을 확인하고 어울리는 작품을 추천한다. 단 서울·경인 지역에 한하며, 6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그림이 마음에 든다면 기간을 연장하거나 구매할 수 있다. 대여에서 구매까지 이어지는 비율은 3% 정도다. 대여 기간 지불한 요금을 제외한 금액으로 살 수 있다. 만일 이용자의 실수로 작품에 복구 불가능한 정도의 손상이 발생할 경우 매매가의 50%를 청구하며 작품을 회수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 주의는 필요하지만, 눈으로만 감상한다면 결함이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픈갤러리 관계자는 “중장년층 고객 90%가 만족하고 있다”며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멋진 풍경이나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Plus+] 시니어 홈갤러리 엿보기
[CASE 1] 송그림 씨 (구독 14개월)
“자식을 다 키워 보내니 쓸데없이 집이 넓다며 외로워하시는 엄마를 위해 선물해드렸어요. 그림 하나로 집 안 분위기가 확 바뀐다고 지금까지 해드린 선물 중에 제일 좋아하시네요!”
작품 임은정, DOOR-초대(Invitation)
대여 요금(월/VAT 포함) 6만9000원
구매 가격 900만 원
[CASE 2] 박미술 씨 (구독 7개월)
“여행 가면 미술관, 박물관부터 가실 정도로 ‘아트러버’인 엄마를 위해 그림을 걸어드렸어요. 코로나19 때문에 강제 ‘집콕’ 중이신데, 집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너무 좋아하세요!”
작품 이여운, duplicate_3
대여 요금(월/VAT 포함) 15만 원
구매 가격 750만 원
소마미술관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안에 있다. 드넓은 공원엔 나무들이 많으니 얼추 자연 풍경과 동행하는 미술관이다. 세한에 부는 바람은 차고 황량하다. 공원 외부의 대로를 달리는 차량의 소음마저 강풍에 고꾸라진다. 이런 날씨에는 따뜻한 차를 마시고 싶다. 마음을 데워준다는 점에서 미술 작품 관람도 미진할 게 없다. 바람에 산발처럼 너울거리는 옷자락을 여미며 소마미술관으로 접어든다. 어떤 매력의 올가미가 기다리고 있으려나.
소마미술관 건축은 단출하다. 박스 형태의 2층 구조물 하나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수평으로 전개된 1층 건축이 분위기를 주도한다. 들썩이는 구석이 없어 차분하다. 허공으로 불쑥 솟은 게 없고 거추장스러운 치레도 없어 고상하다. 자연스레 친근감을 자아낸다. 모자라지 않으려면 간명한 게 좋고, 지나치지 않으려면 평범한 게 좋다. 이게 처세에서뿐이랴. 건축도 마찬가지, 거창하면 자칫 허점을 초래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소마미술관의 외양은 미더운 느낌을 준다. 마치 가장과 과장이 없는 성향의 사람을 바라볼 때처럼.
그런데 나지막한 건물을 지은 데엔 유별한 연유가 있다. 어떤? 이 미술관은 2004년 9월에 개관했다. 진통을 겪고서였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의 반발이 심했던 것이다. 푸르고 향긋한 올림픽공원을 제집 앞마당처럼 여기며 애호했던 주민들이 “미술관 건립이 웬 말이냐?”며 쌍심지를 켜고 반대운동을 했다. 공원 경관 훼손을 이유로 삼아서였다. 기어이 뭔가를 지을 거면 차라리 도서관을 지으라고 했다. 결국 낮은 건물을 짓는 것으로 타협을 보고서야 공사를 착수할 수 있었다.
건물의 외관은 단아하다. 노출 콘크리트를 주조로 한 벽면의 일부에 적삼목(메타세쿼이아) 패널을 입히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치장을 자제해 실용성과 단순미를 구현했다. 간간이 유리창을 집중 설치한 건 외부의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아울러 내부를 외부로 열어 보이기 위해서다. 따라서 풍경이 소통된다. 건물의 처신이 이러하니 사람도 답답할 게 없다.
창으로 들이치는 자연광의 농도에 따라, 시차에 따라 회랑이나 중정, 혹은 전시실의 광도가 다변한다. 그 소리 없는 빛의 스펙트럼에 실내는 한결 고요하고 유려하다. 차고 건조한 인공조명에 비해 자연 조명은 따뜻한 내면을 지닌 것만 같다. 물론 어느 건물이건, 아파트건 산중 오두막이건 창이 달려 빛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자연조명을 미술 행위의 하나로까지 여기는 미술관 건축에서처럼 매혹적인 자연광은 드물다. 건축가는 자연광을 건축 재료의 하나로 존중해 고도의 기교를 발휘한다. 이 미술관의 건축가도 빛의 포획에 능란하다. 가급적 인공조명 대신 자연광선을 전시장에 배포하기 위해 통유리 창을 매우 과감하게 구성하기도 했다. 그게 살짝 지나쳤나? 과도한 자연광에 전시 작품이 훼손될 걸 우려해 전시실 유리벽의 일부를 패널로 틀어막았다.
소마미술관 설계자는 건축가 조성룡이다. 지형에 순응하기, 수평성을 강조하되 동선의 유기적 순환 체계를 확보하기, 저만치에 있는 몽촌토성의 경관을 위압하지 않도록 규모를 자제하기, 채광과 조망을 위한 개구부를 기능적으로 설비하기, 이것들이 설계의 기본 지침이었다. 조성룡은 ‘결국은 풍화(風化) 과정을 통해 퇴화하고 소멸할 건축물의 숙명’을 염두에 두고 건축을 설계한다. 건축물을 일종의 생명체로 바라보는 것이겠지. 인생의 희로애락을 미술로 토로하는 화가처럼, 그 역시 건축으로 삶과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가보다.
올림픽조각공원, 미술사의 획기적 사건
개관 이래 소마미술관은 묵직한 기획전을 자주 펼쳤다. 이름난 이름들의 작품을 심심할 짬이 없이 불러들였다. 파울 클레, 반 고흐, 피카소, 요셉 보이스, 백남준, 밀레, 프리다 칼로…. 불구경을 하다가도 달려가고플 대가들의 작품전을 펼쳤으니 그 방면으로 한가락 하는 미술관? 올림픽공원의 운영 주체이자 소마미술관 경영주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이 흐벅진 일을 하고 있다. 체육기관이 예술과 손을 잡았으니 이색이다. 이 미술관은 2006년, 국내 최초로 드로잉센터를 설립, 드로잉 분야 기획전을 집중적으로 펼쳐왔다. 물론 드로잉 외에 다양한 장르의 미술전도 정기적으로 선보인다.
지금은 ‘푸룻푸룻뮤지엄: APPLE IN MY EYES’ 전이 진행(2월 14일까지) 중이다. 주제는 주로 과일과 나무다. 국내 작가 15명이 참여했다. 회화, 설치, 조각,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미술 행위를 통해 주제를 요리한다. 저마다 기발하게, 요상하게, 상큼발랄하게 모티브를 풀어냈다. 눈을 후비는 현란한 색감과 비주얼로 전시실이 아예 만화경 속이다. 미술도 이쯤이면 쉽고 재미있는 유희다. 오감에 스파크 튀게 하는 판타지 영화관이다. 아이들은 여기에서 놀면 좋겠다. 어른들은 여기에서 감각의 굳은살을 벗겨낼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관람객이 가뭄에 콩 난 형국으로 드물다. 도대체 코로나가 삼키지 않은 게 뭐람.
미술관을 나와 올림픽조각공원으로 들어선다. 43만 평에 달하는 올림픽공원의 전체 부지 가운데 자그마치 23만 평이나 되는 너른 공간에 조성된 올림픽조각공원은 소마미술관이 보유한 최상의 자산이다. 국내외 작가들의 조각 220점이 산재했다.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하는 예술 향연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이곳은 공간의 스케일과 작품들의 품격으로 세계적인 조각공원이라 평가된다. 스위스의 저명한 화가 한스 에르니(Hans Erni)는 ‘금세기 미술사의 획기적인 사건’이라 극찬했다.
그러나 정작 알아보는 이가 많지 않다. 일부러 찾아와 유심히 감상하는 눈들로 후끈할 법하지만 실상은 다르단다. 미술계 사람들은 그래 속이 쓰리다. 진수성찬을 차려놨지만 먹자는 사람이 드문 꼴이다. 구미에 맞는 사람만 한갓지게 포식한다. 꿈과 상상을 말없는 말로 두런거리는 조각 작품이 흔전만전한 산책 공원이라니. 한풍이 맵차지만 기분은 상승한다.
< 2편에 계속 >
자유로를 벗어나 파주출판단지로 들어서자 드문 정경이 펼쳐진다. 저마다 개성과 미감으로 돋보이는 외형을 가지고 늘어선 건물들로 풍경이 생동한다. 너절한 난개발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계획도시다. 내로라하는 건축가 여럿이 숙의하고 궁구해 만들었다. 홀로 있어도 매력으로 튈 건물이 군락을 이루어 볼거리로 족하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출판단지 북쪽 끝자락에 있다.
주차장에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으로 이어지는 동선엔 작은 갈대밭이 있다. 하릴없이 누렇게 시든 채 살랑거리는 갈대들. 애잔한 서정을 자아낸다. 겨울 찬 바람 속에서 바라보이는 헐벗은 식물엔 한 번 더 눈이 간다. 괜스레 들머리에 갈대밭 소로를 조성했으랴. 몇 걸음 안 되는 길이지만 갈대들의 고요한 율동에 마음을 조율해보라는 뜻이겠다.
갈대밭을 돌아 너른 잔디 정원으로 들어선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전면부가 와락 시선을 압도한다. 유별한 건물이다.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형상이다. 수직으로 곧추선 건물의 삼면과 달리 곡면과 곡선의 연쇄로 이루어진 전면부 벽면의 이색이라니. 다각도로 휜 벽면이 두루마리 풀려나가듯 흐른다. 매끄러운 유영을 한다. 거대한 콘크리트 매스이지만 둔탁하지 않고 유려하니 모순적인 웅자(雄姿)다. 곡면들의 부드러운 파동에선 선율이 느껴지고 언어가 흘러나올 것만 같으니 건축으로 구현한 음악이자 시라 할까보다. 무감각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하여금 이토록 고매한 내면을 열어보이게 하다니. 경이로운 건축미라 할 수밖에 없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매년 서너 차례씩 미술 기획전을 펼친다. 언제 방문하더라도 그림을 즐길 수 있다. 그림만이 다는 아니다. “건축물 자체가 예술품이다!” 이렇게, 뮤지엄 측이 표방한다. 관람객의 상당수는 건축 자체의 디자인을 구경할 목적으로 찾아든다지. 국내외 건축가들, 건축학도들의 발길도 이어진다는 거고. 디자인과 미학은 물론 공법을 들여다보기 위해.
문외한의 눈에도 인상적인 건 건축 공법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건물의 서편 동체는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을 준다. 건물을 떠받친 하부 기둥이 전혀 없는 구조여서다. 이른바 캔틸레버(cantilever, 일명 외팔보) 공법을 적용했다. 이는 건축 일반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기술이다. 그러나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경우에선 상황이 다르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내리누르는 어마어마한 하중을 캔틸레버로 감당하기가 실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실제로 사고가 날 뻔한 일도 있었다. 캔틸레버에 타설한 콘크리트가 한쪽으로 밀리는 위험 상황이 발생했던 거다. 그러나 극복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작업을 해냈다”는 얘기도 있는 걸 보면 이 건축물에 동원된 기술력의 수준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1400평 부지에 지은 연면적 1100평 규모의 3층 건물로 이루어졌다. 설계를 맡은 이는 알바루 시자(′Alvaro Siza)다. 포르투갈이 낳은 세계적 건축가로 흔히 ‘모더니즘의 마지막 거장’이라 부른다. 대표작으로 포르투 세할베스 현대 미술관, 아베이루대학교 도서관, 리스본 엑스포 파빌리온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비롯해, 안양 알바루 시자 홀, 아모레퍼시픽 연구원을 설계한 바 있다. 1992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고, 1988년 미스 반 데어로에 유럽 현대 건축상, 2001년 울프 예술상, 2002년, 2012년 두 번에 걸쳐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알바루 시자를 ‘모더니즘 건축의 대가’라 치지만 그는 사실 초기 모더니즘 건축의 경향에 대해선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복잡다단한 생활환경과 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점, 과거 양식과의 과도한 단절로 마땅히 존중하고 반영해야 할 전통성을 무시했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러나 모더니즘의 합리성만큼은 적극 수용했으며, 건축 패턴의 전통성과 지역성을 외면하지 않는 건축적 고려와 추구로 독자적인 건축 세계를 다졌다.
곡면과 평면, 곡선과 직선의 드라마틱한 조합과 변주가 야기하는 감흥은 이 뮤지엄 건물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의 핵이다. 단순하되 정밀하며, 웅장하되 고요하다. 이 점에서 이 뮤지엄은 시자의 시그니처 스타일에 값한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건축에서 가장 눈여겨보고 감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명료성과 단순함이다.” 그는 건축에 덕지덕지 군살을 붙이지 않았다. 군살빼기에 차라리 능하다. 이는 창의 수효를 최소화해 지은 뮤지엄의 외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자가 말한 ‘명료성’과 ‘단순함’은 모든 진리의 요체이기도 하다. 아무리 복잡한 사물이나 현상도 참뜻을 알고 나면 뜻밖에도 간명하지 않던가. 시자의 건축이 그저 하나의 시설물에 불과한 게 아니라 치열한 지적 탐색의 결과물일 수 있는 건 바로 이 대목에서다.
알바루 시자 설계, ‘명료성’과 ‘단순함’ 추구
건물 곡면의 흐름에 편승해 천천히 잔디밭을 가로지르자 뮤지엄 출입구 앞이다. 문을 열고 로비로 접어드는데 내 발로 걸어 들어왔다기보다 후루룩 빨려 들어온 기분이 든다. 홀리듯 외관에 한참 취했던 바람에 벌어진 심리적 오작동? 뮤지엄을 찾은 재미가 이렇게 쏠쏠하다.
1층 공간은 로비와 카페테리아, 아트숍 등이 있는 휴게 공간과 미술 전시실로 양분돼 있다. 물론 둘을 나누는 벽은 없다. 개방적인 성향의 공간이다. 입구서부터 안통까지 층고가 점차 높아지는 구성으로 홀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북서향으로 난 대형 유리창으로 들이치는 자연광으로 공간의 반쯤은 밝으나 반쯤은 침침하다. 이곳에 인공조명은 거의 없다. 이게 외부의 자연을 끌어다 내부에 배포하는 것으로 공간에 깊이를 부여하는 알바루 시자의 방식이다.
한쪽 벽엔 높고 기다란 책장이 있다. 책들이 빼곡하다. 관람자들은 자유롭게 뽑아 읽을 수도 있고 할인가 구매도 가능하다. 출판사 ‘열린책들’이 만든 책들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등 외국문학 번역서로 다수의 밀리언셀러를 배출한 출판사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열린책들’의 홍지웅 대표가 지은 미술관이다. 건축에 조예가 깊은 그는 일찍부터 알바루 시자에게 꽂혔다고 한다. 언젠가는 시자의 설계를 받은 건축물을 짓고 싶다는 숙원이 있었던 모양이다. 포르투갈이나 영국에 날아가 시자의 건축물 답사에도 열을 냈다. 그리고 마침내 시자와 손잡고 뮤지엄을 건립했다. “디자인이 정말 맘에 들어. 미메시스는 내 작품 가운데 최고야!” 가슴 깊이 품었던 숙원을 푼 홍지웅에게 시자가 건넨 말이 그랬다.
뮤지엄 건립엔 건축가 김준성(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도 한몫 단단히 했다. 건축평론가들은 김준성을 ‘감성 건축의 대가’라 부른다지. 그는 건축 견습생 시절에 시자의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며 배운 적이 있다. 대가를 사사했으니 무엇으로, 왜, 어떻게 건축을 해야 하는지 옹골차게 얻은 게 많았을 것이다. 시자와의 이런 인연으로 김준성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건축에 일익을 담당했다. 그가 시자를 말하는 글을 볼까.
“사실 시자의 건축적 행보는 논리적으로 혹은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정리하기 어렵다. 다만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투명하리만치 선명한 공간을 체험하게 하는 그의 작업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켜들이 존재할 것이라는 점이다. 작게는 재료에서 크게는 관계적인 스케일에 이르기까지 켜켜이, 단단하게.” (2020년 5월 20일자, 서울신문 기사 중)
전시실을 볼까. 1층의 절반과 2~3층 전체가 전시공간이다. 세 개의 전시실은 물론 계단 벽면들도 건물 외부 벽처럼 온통 하얀색으로 칠갑을 했다. 내·외부에 통째 순백색 입히기. 이건 시자의 관습이다. 그가 추구하는 ‘명료성’과 ‘단순함’을 구현하는 데엔 백색이 적격이라 봐서일까? 그러나 순전한 화이트 큐브에 현기증을 느끼는 경향이 있는 관람자에겐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
전시실들에서는 면과 선이 극적인 광경을 연출한다. 곡면과 곡선이, 평면과 직선이, 예각과 둔각이 상호 교접하거나 교차하며, 또는 대비를 이루며 공간에 생기와 긴장감을 부여한다. 화이트 큐브의 지루한 단조로움을 타파한다. 이 뮤지엄을 예술적 건축물로 보는 눈이 많은 이유는 선과 면의 다채로운 조합에서 야기되는 심미감 때문일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건 아무래도 조명의 구사 방식이다. 전시실마다 인공조명을 자제하고 태양이 무상으로 보내주는 빛을 끌어다 쓴다. 3층 전시실은 숫제 인공조명을 전혀 도입하지 않았다. 슬래브 지붕을 뻥 뚫어 설치한 천창으로 들어온 자연광이 천장에 매달아놓은 이중 천장의 가장자리를 통해 공간에 흩어질 뿐이다. 이렇게 살포된 빛은 그 농담(濃淡)의 묘를 붓으로 삼아 화이트 큐브에 수묵을 그린다. 시시각각 광량과 광도가 변하는 게 빛이다. 따라서 전시실의 조도(照度)도 시시각각 변하며 덩달아 분위기도 미묘하게 변전한다. “비 내려 빛이 너무 약하거나 어두운 저녁에는 그림을 어떻게 보여주죠?” 뮤지엄 공사가 진행 중일 때 건축가 김준성이 스승에게 물었다. 알바루 시자의 답은 이랬다. “안 보여주면 돼!”
시자의 건축은 건축 자재들만의 집적이 아닌 거다. 자연의 빛이 가세하고서야 건축이 완결되고, 그 쓰임새와 미감이 완성된다고 본 것 같다. 그렇다면 시자는 빛을 다루는 달인? 빛의 탐식가? 그건 그렇고, 아무튼 자연광이 어슴푸레 아롱지는 3층 공간은 미술 전시실이지만 뭔가 원초적인 동혈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게 한다. 상상력을 북돋아 아득한 시원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3개의 전시실에서는 기획전시전이 열리고 있다. 30~40대 작가들이 참여했다. 기량도 개성도 저마다 발군이다. 그림을 감상할 때엔 세상에서 그림처럼 재미있는 게 없지 싶다. 오늘도 그런 감흥을 느끼며 깜냥껏 즐겼다. 그러나 뇌리에 남은 건 미술작품이 아니라 건축 자체다.
● Exhibition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
일정 3월 28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934년생 80대 할머니 화가 로즈 와일리의 세계 최초 대규모 개인전이 한국에서 열린다. 어린 시절부터 화가를 꿈꾼 로즈 와일리는 결혼을 하며 꿈을 접고 40대에 들어서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그녀는 당시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매일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76세의 나이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주목을 받으며 신예 작가로 떠올랐다. 현재는 세계 3대 갤러리 중 하나인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 전속 작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로즈 와일리의 열정적인 미술 인생을 엿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회화, 드로잉, 설치미술을 포함한 원화 150여 점을 단독으로 선보인다.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 VIP룸에서 전시했던 희귀작뿐 아니라, 영국 프리미어 리그 토트넘 홋스퍼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 선수를 그린 작품까지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로즈 와일리의 작품은 일상 속 순간이나 영화의 한 장면같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을 소재로 한다. 어느덧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그녀의 천진난만한 예술세계는 회색빛으로 물든 우리네 일상에 긍정의 힘을 전파한다.
● Book
◇클로리스 (라이 커티스 저·시공사)
비행기 사고에서 살아남아 산속에서 길을 잃은 70대 노인 클로리스와 그녀를 찾는 구조대원 루이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인물과 삶에 대한 독창적인 통찰로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미국 주식으로 은퇴하기 (최철 저·황금부엉이)
유튜브 채널 ‘미주은’이 알려주는 미국 주식 투자 노하우. 시니어들의 풍요로운 은퇴를 위해 실전 용어부터 유망 종목 분석 등 미국 주식을 시작할 때 알아야 할 정보를 총망라한다.
◇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 (정애리 저·다산북스)
수십 편의 작품으로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연기 활동을 해온 배우 정애리의 세 번째 에세이. 화면에서는 볼 수 없는 그녀만의 소소한 일상과 진솔하고 따뜻한 내면을 기록했다.
● Stage
◇명성황후
일정 1월 19일~2월 26일 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연출 안재승 출연 김소현, 신영숙, 강필석, 손준호 등
한국 창작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준 ‘명성황후’가 25주년 기념 공연을 올린다. 조선조 말 고종의 비로서 격변의 시대 열강에 맞서 나라를 지켜야 했던 명성황후의 삶을 그린다. 이번 공연은 노래로만 진행되는 ‘송스루’ 형식에서 벗어나 대사를 추가하고, 의상과 소품을 시대에 맞춰 새로 디자인하는 등 대대적인 변화를 통해 한층 완성도 높아진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앙리할아버지와 나
일정 2월 14일까지 장소 예스24스테이지 1관 연출 이해제
출연 이순재, 신구, 유리, 박소담, 채수빈 등
프랑스 극작가 이방 칼베락의 작품으로, 홀로 사는 고집불통 할아버지 ‘앙리’의 집에 대학생 ‘콘스탄스’가 룸메이트로 들어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꿈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콘스탄스를 위해 그녀의 ‘인생 멘토’가 되어주는 앙리의 모습이 훈훈한 감동을 자아낸다. 국민 배우 이순재, 신구와 상큼 발랄한 여배우들의 귀여운 ‘케미’를 확인할 수 있는 연극이다.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고독을 그린 이로 유명하다. 예건대 작품 ‘브루클린의 방’에선 먹먹한 창 밖 풍경 앞에 홀로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여자가 등장한다. 어찌 해볼 수 없는 외로운 심상이 감도는 그림이다. 삶에 만연한 고독과 피로를 도려내 캔버스에 담았다. 인생사의 답답하고 불안한 연극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사실 일상이란 고달픈 것, 군중 속에서도 외로운 게 사람이다. 미술은 이 참을 수 없는 고독과 불쾌에 숨통을 열어준다. 한 모금의 청량제. 길 위에서의 잠깐 휴식. 미술작품 관람의 의미가 그쯤에 있을 게다. 그러기에 미술관을 만나면 반갑다. 여기에 거리를 걷다 쉬어가기 좋은 미술관이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이다. 소음과 차량이 홍수처럼 범람하는 신사동 길모퉁이에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은 코리아나화장품이 설립한 미술관이다. 2003년에 개관했으니 어언 20여 년에 가까운 연조가 묵직하다. “돈을 벌기만 하면 무슨 재미? 작으나마 뜻있는 사회 환원을 하리라.” 코리아나화장품 유상옥 회장이 미술관을 설립한 연유가 이와 같다. 그는 일찍부터 미술품과 화장 관련 골동품을 모으는 취미에 푹 빠져 살았다. 오직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시작한 취미생활이었으나 점점 수집 물량이 늘어 집이 미어터질 지경에 이르렀고, 마침내 숙고 끝에 미술관과 화장박물관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 두 개의 뮤지엄을 들여앉히기 위해 6층 건물을 지어 ‘스페이스 씨’(space*c)라 이름 붙이고서.
대체로 미술관 건축들은 그 독특한 외양부터 튄다. 웬만하면 유명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겨 누가 보더라도 감흥이 돋을 건축물을 짓고자 노력한다. 건물은 물론 정원이라든가 외부 공간 전체에 예술미를 부여하기 위해 각별한 신경을 쓴다. 이건 하나의 트렌드로 건축가마다 가급적 기발한 방법을 동원한다. 그렇게 미감을 구현한 미술관 건축물이 이미 곳곳에 들어섰다. ‘스페이스 씨’는 이 대열에서 어느 정도 비켜서 있다. 얼른 돋보이게 지은 건물이 아니다. 신사동 대로변에 고만고만한 세련미를 가지고 늘어선 빌딩들의 무개성한 모습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외양이니 말이다.
왜 이렇게 지었을까. 이 건물의 설계를 맡은 이가 건축가 정기용(2011년 작고)임을 알고 나면 수긍이 된다. 그는 겉멋을 애써 추구하는 건축을 극히 싫어했다. 고도의 조형 구사로 예술적 건축을 설계하기에 능해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통하는 르 코르뷔지에를 불신할 정도였다.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 폰티는 ‘건축가는 신(神)’이라 주장했다. 이 역시 정기용에겐 가당찮은 허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건축을 학문적으로 구분하면 예술이나 기술이 아니다. 차라리 인문사회과학 영역에 속한다.”
건축 행위를 인문학으로 본 정기용의 관심사는 결국 인간의 문제였다. 그 무엇에 앞서 인간의 삶과 일상의 편의성을 존중하는 집이라야 집다운 집이라 봤다. ‘거주하는 사람의 생활 흔적이 서서히 누적되어 그 사람의 향기가 배어나오는 집’을 좋은 집이라 했다. 건축물을 읽는 철학이 이랬는데 겉멋에 쏠릴 리가. 사람의 삶과 자연스럽게 연계되는 건축을 추구한 그였으니 ‘스페이스 씨’ 역시 실사구시와 휴머니즘을 근간으로 설계했을 걸 알 만하다.
그렇다고 건축이 무덤덤하기만 하다면 무슨 맛? 고수는 은연중 묘수를 쓴다. 티내지 않은 듯 티를 남긴다. ‘스페이스 씨’를 밖에서 보면 층과 층을 잇는 계단을 건물 전면의 유리벽에 붙여 설치한 걸 알 수 있다. 따라서 층계를 따라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외부에 그대로 드러난다. 건물 내부에서 외부를, 외부에서 내부를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함으로써 내·외부 풍경이 소통되도록 했다. 흔히 집의 내부에서 내다보이는 ‘뷰’를 중시한다. 그러나 정기용은 달랐다. ‘삶이란 풍경을 소비하는 것, 혹은 풍경과 관계 맺는 것’이라 했던 그는 건물 내부에서 움직이는 사람 풍경을 하나의 퍼포먼스로 보길 바라며 벽을 허문 것이다. 층마다 나무들을 심은 정경에서도 풍경의 기운과 서정을 중시한 의도가 읽힌다.
여성 관련 탐색전 자주 열어
이처럼 곰곰 뜯어볼 게 드물지 않은 ‘스페이스 씨’는 서울에 유일한 정기용 작품이다. ‘스페이스 씨’를 설계하며 들인 공이 많아서였을까. 대장암 투병을 하다가 타계하기 하루 전날, 정기용이 코리아나미술관 유승희 관장에게 전화를 걸어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란다. 무엇이 고마웠을까. 유 관장의 얘기는 이렇다.
“이미 지쳐 몇 마디 못하시더라. 고맙다고, 건물을 고치지 않아 고맙다고, 그 한마디뿐이었다. 살아 숨 쉬는 건축, 사람을 중심에 둔 건축을 지향한 그의 설계를 받은 건 ‘스페이스 씨’의 행운이다.”
코리아나미술관의 전시 기획엔 뚜렷한 지향이 있다. 화장품 회사가 설립한 미술관답게 여성성, 여성의 노동, 여성의 몸 등등 여성의 정체성 탐색을 테마로 한 전람회를 자주 열었다. 여성주의를 표방한 셈이지만 성차별에 대한 도전과 저항의 메타포로서의 여성 내러티브를 내세우진 않았다. 억눌린 타자가 아닌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여성, 즉 대안적 여성을 모색하는 기획전을 미술관의 지표로 삼았다. ‘텔 미 허 스토리’(Tell Me Her Story), ‘아티스트스 바디’(Artist's Body), ‘히든 웍스’(Hidden Works) 같은 전시회들로 화단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분명한 방향성에 추동된 양질의 미술전 개최로 존재감을 돋운 셈이다.
현재 진행되는 ‘호랑이는 살아있다’ 전은 성격이 전혀 다른 기획전이다. 왜 호랑이를 테마로 삼았을까. 자연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호랑이는 공포의 대상만은 아니다. 경외의 대상이기도 했다. 인도에선 신의 수레를 끄는 신수(神獸)로 섬김을 받았다. 우리의 토속신앙에 등장하는 호랑이 역시 하늘과 소통하는 신령한 존재이지 않던가. 민화에 나타나는 호랑이는 재롱떠는 고양이처럼 귀엽고 익살스러워 민간에 스민 호랑이 애호 풍정을 웅변한다. 이렇게 역사와 신화, 민속을 관통해 특유의 위상으로 존재하는 ‘호랑이 현상’의 광활한 스케일과 의미를 재조명하자는 게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이겠다. 다른 변수도 있다. 지금이 바로 호랑이를 부각할 시절이라는 거다. 유승희 관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88올림픽 때 ‘호돌이’ 마스코트가 각광을 받기도 했지만 요즘 들어 호랑이가 새삼 인기를 끄는 분위기다.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에 열광하는 대중들을 보라. 호랑이 마니아들이 늘고, 호랑이라는 이름을 상호로 쓰는 카페도 많아졌다. 이 급작스런 바람을 미술전을 통해 부양하고, 우리 민족의 상징인 호랑이를 미술 코드로 해석하고 싶었다.”
전시실은 지하 1·2층에 있다. 1층 전시실에선 호랑이 관련 전통 장신구와 조선시대의 수묵화 등을 볼 수 있다. 층고 8m에 이르는 지하 2층 공간은 큐브형 갤러리로 대형 퍼포먼스를 펼치기에 적격이다. 여기엔 호랑이 관련 국내외 작가들의 회화와 다큐, 영상작품 등이 전시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건 이번 기획전의 타이틀로 채용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호랑이는 살아있다’이다. 비록 소품이지만 백남준의 기재(奇才)를 즐기기엔 충분하다. 그는 말하길,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건 빤한 생각, 지루한 감상이다”라 했다. 타고난 삐딱이 기질과 사람을 사로잡는 쇼맨십, 그리고 기존 사조와 형식을 갈아엎는 도발의 힘을 지렛대로 미술세계를 통째 전복하고 떠난 사람. 백남준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그가 그립다.
이제 5·6층으로 올라가 화장박물관을 볼까. 화장의 시원을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찾아낸 연구 보고서도 있다. 화장이 여성의 전유물만도 아니었다. 예컨대 신라의 화랑들도 화장을 즐겼으니까. 인류는 왜 그렇게 화장에 꽂혔을까. 화장 재료와 도구의 변천사는 어떤 것일까. 화장으로 외모를 가꿔 내면까지 아름답게 다듬을 수 있는 메이크업이 가능할까.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볍게 관람하기 좋은 박물관이다. 국내 유일의 화장전문박물관인 이곳엔 남녀용 화장도구와 화장품과 용기들, 동경(銅鏡), 그리고 도자기와 미인도, 은장도 등등 온갖 골동품이 숱하게 전시돼 흥미롭다. ‘백자에 물든 푸른빛’이라는 타이틀의 청화백자 기획전도 볼 만하다.
화장박물관 관람까지 마치고 거리로 나서자 화장하기 어려운 얼굴들이 오고간다.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가렸으니 도리 없다. 너나없이 마스크를 쓰다니. 이게 무슨 기발한 미술 퍼포먼스가 아닌 ‘레알’ 현실임은 얼마나 큰 불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