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도 멈추고 혼을 담아 셔터를 기운차게 누른다.
다소 무거운 디에스엘알(DSLR) 카메라지만 사진을 향한 열정이 있기에 몸은 가볍기만 하다.
1956년생으로 서울 한성고 24회 동창 ‘한사회’ 회원들은 올해 59살의 동갑내기들이다. 이들은 사진에 생각을 담아 세상과 소통하고 각자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다.
등산복 차림의 10여명의 중년들이 3월 초 북촌 골목길 장독대를 향하여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몰입의 순간이다. 꽃샘 추위도 아랑곳없다.
어떠한 구도로 카메라 위치는 어떤 쪽이 좋을까? 햇빛은 어느 방향에서 비취고 있나?
카메라의 조리개와 셔터속도로 빛과 어둠을 조절해 사진을 찍는다. 거기다가 광각 또는 망원렌즈를 통해 담은 세상은 무아지경에 이른 순간이 된다.
노재덕 한사회 회장은 “고교 동창들로 구성되다보니 팀웍은 말할 것도 없고 사진을 통하여 자기표현 방법이 생겨 자신감도 향상되는 등 아름다움을 추구하기에 마음도 정신도 맑고 젊어졌다”고 강조했다.
한사회 회원들은 어울려 사진 촬영하기에 좋은 곳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손주를 비롯하여 가족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즐거움도 있다. 뒤늦게 배운 사진 취미가 이들의 노후생활 준비를 탄탄하게 하고 있다. 하루가 너무도 빨리 간다.
어떠한 취미든 그 속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의 눈은 열정으로 빛난다. 취미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스스로 헤쳐나가는 특성이 있으며 그 결과물 또한 놀라운 경우가 많다.
사진기자의 관록을 지닌 노 회장은 “나이가 들면서 즐길 수 있는 취미로는 사진촬영이 제격”이라며 “무엇보다 길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후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피력했다.
그는 “사진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 디딤돌과 같습니다. 사진을 배우고 찍는 과정을 통해 일상생활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사회와 인간 간의 관계도 더욱 단단해진다”고 말했다.
일상의 사소한 대상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 데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나이 들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사진 창작을 한다는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며 행복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거나 짜증이 날 겨를이 없다. 많이 생각하고 돌아다니면서 끊임없이 결과물을 만들어내다 보니 몸과 마음이 늙을 새가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지난 5년 동안 결과물의 사진작업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회원 A씨는 아직 아마추어 수준이라고 겸손해 한다. 사진촬영을 할 때는 혼을 담아 찍어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하는 등 자부심도 대단하다.
“사진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디딤돌”
지난 2008년 우연히 모이기 시작한 이들은 그동안 50여 차례에 걸쳐 국내 추억공간과 사건의 뒤안길, 풍물문화 유적지를 답사하며 우정을 키워왔다.
사진기자협회장 직을 지낸 노재덕 회장에게 본격적으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사진의 이론 강의와 출사를 통해 사진의 깊은 세계에 빠져들었다. 1년에 10회 꼴로 출사를 다녔으니 주로 고궁, 잊혀져 가는 곳들, 아름다운 흔적, 추억의 장소들 중심으로 사진을 담아왔다.
출사를 가는 곳은 사진 선생인 노재덕 회장이 일상에서 공감하는 곳을 선정한다.
그래서인지 한사회 회원들의 카메라는 경치나 일출이 아닌 평소 동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등에 진 배낭에 무서운 카메라를 메고 온 회원 B씨는 “대학 때 사학을 전공해 문화 유적을 답사하다 보니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제는 교직을 나오고 보니 사진이 필수가 됐다”며 친구들을 보며 활짝 웃었다.
회원인 C씨는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은 삶을 배우는 겸허한 값진 시간이고 중년에 만난 건전한 취미는 일상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보배와도 같다”고 밝히며 “사진의 역사부터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직접 보며 가르쳐 주신 노 회장 덕분에 사진에 대한 열의가 더욱 뜨거워졌다”는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서울 한성고 24회 동창 ‘한사회’ 회원 12명은 지난 2월 충무로에서 ‘풍경속으로’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모두 생업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짬을 내 작업한 작품 사진 24점을 내걸었다. 갯벌에서 일하는 아낙네들, 해안가의 일몰, 메밀꽃과 소나무, 골목길과 아이의 미소 등 우리 주변의 풍경들이다.
노 회장은 “전국 곳곳을 누비며 담아낸 작품들을 하나 둘 모아 일반에 공개하는 자리였다”면서 “사진은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민낯을 드러내 쑥스럽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비춰 본 거울을 가감 없이 보여드린다는 점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고자 했다”고 말했다.
사진전에서 만난 한사회 D회원은 “제 사진이 작품의 완성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손주에게 할아버지가 ‘세상살이는 이런 것이다’라며 들려주고 싶은 사진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회원들 대부분이 현재는 전시에 참여 할 정도로 실력들이 출중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동호회에 가입하기 전에는 그저 핸드폰 사진 찍듯이 하나하나 담아 놓기에 위해 찍는 수준이었지만 사진에 대한 열정만큼은 컸다.
경향신문사에서 30년 동안 일하다 정년퇴직한 노 회장에게 인생 2막 1장의 길을 물었다.
“해왔던 일의 연관된 길에서 답을 찾아야 노후가 평화로울 수 있다”며 그는 새로운 일을 하더라도 자기가 해 오던 분야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며 사진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을 맺었다.
활기차게 노후를 사진으로 즐기려는 한사회 회원들의 모습을 보며 찰나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게 해주는 사진, 그들이 있어 중년들이 바라보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듯하다.
친정엄마께서 이메일을 보내오셨습니다.
친정엄마 모시고 구례산동 산수유마을에 갔던 날, 친정엄마께서 너럭바위에 앉아 백일장 대회 나온 소녀처럼 쓰셨던 그 글이 궁금하여 읽어보고 싶다며 졸라댔더니 이렇게 보내오신 것입니다.
친정엄마께서는 산수유 노란 꽃너울 속에서 느끼신 봄의 감흥을 잔잔하고 따뜻한 글로 풀어내셨습니다. 풋풋한 봄편지 내용이 마냥 좋아 당신의 고운 글을 이렇게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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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하순의 날씨는 변덕쟁이 할멈 같다.
아침저녁엔 영하의 날씨로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려 눈꽃이 만발하고, 남녘엔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 꽃이 손짓하니 사람들이 갈팡질팡한다.
썰매 장으로, 꽃 마중으로 신나게 달려가는 젊은이들이 부럽다.
여기도저기도 끼지 못하는 방콕대학생이던 난, 심기가 따분하던 참에 서울에서 셋째 딸이 아침 일찍 내려와 봄 마중을 가자고 했다.
딸 내외는 어미가 지난 가을 다리와 허리를 수술하고 겨우내 방에서만 지낸 것이 안쓰러워 시간을 내었다며 사양하는 나를 부추겨 데리고 나섰다.
구례 산동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하니 1시간 좀 넘게 걸렸다.
일찍 나섰기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 조용했다.
햇살이 퍼지지 않아서 꽃들이 잠을 덜 깬 듯 이슬에 젖어 있었다.
다음주말에 산동면에선 산수유 꽃 축제를 연다고 길 아래편엔 뾰족 천막들이 즐비했다.
날씨는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하고 꽃도 지금이 한창 만개라니 잘 맞춰 온 것 같았다.
반곡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먼저 냇가로 내려가는 꽃담 길을 걸었다.
반곡 마을을 끼고 흐르는 서시천 가운데는 100m 정도 되는 넓고 긴 반석이 아래쪽 위쪽에 널려있었다.
나는 반석을 보자 반하여 징검다리를 겅중겅중 건너 너럭바위 가운데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야아, 참 좋다!" 소녀처럼 탄성을 질렀다.
기분이 좋아 감탄을 하니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에 마음 놓고 소리를 질렀다.
연노란 꽃구름을 병풍처럼 둘러놓고 바위 양 옆으로 졸졸졸, 쏴아쏴아, 철철철 흐르는 청아한 물소리의 연주를 들으니 자연의 풍광에 도취되어 한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잠시나마 속세를 떠나 신선으로 변해 있노라니 창조주의 솜씨와 사랑에 찬 배려에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철따라 아름다운 모습을 주시어 세상사에 찌들고 지친 상한 갈대 같은 영혼들을 이렇게 위로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래쪽 반석을 보니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진작가들, 동호인들이 무리지어 온 분들의 알록달록한 의상들이 노란 산수유 꽃과 어우러져 더 고운 풍경을 이루었다.
사진작가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가려고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나는 ‘내 눈과 가슴에 담아가야지!' 메모를 하느라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건너편 언덕에서 딸이 “엄마 너무 멋있어요.”하며 몇 컷을 찍어대면서 나오라고 손짓했다.
그제야 일어나서 맑은 물에 손을 대고 싶어 비탈진 바위를 내려가다가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물에 빠질 뻔했으니 치신머리없는 노인네를 어찌할꼬!
놀란 사위는 신발을 벗어들고 건너와 부축하여 손을 꼭 잡고 하위마을 꽃길을 다니며 감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들이 밀려와 주차장을 채웠다. 전국에서 온 상춘객들은 연인들, 아기들과 온 가족들, 부모를 모시고 온 분들이 꽃 속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은 노란 산수유 꽃만큼이나 예뻤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딸도 이리저리 다니며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산수유꽃의 내력은 잘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마을에 몇 그루의 나무가 있었는데 6.25전쟁 때 빨치산 소탕작전으로 마을이 수난을 당하여 빈 집이 많아지자 빈터 여기저기에 심은 것이 지금은 군락을 이루어, 산수유 하면 구례 산동이 으뜸이란다.
상위마을로 접어들면 집집마다 울타리나 언덕배기에 오래된 나무가 많다.
꽃송이를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꽃잎 5개가 돋보기를 써야 보일정도로 작다.
밤알만한 꽃대 하나에 여러 꽃송이가 달려 있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꽃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산수유 찬양론을 나대로 상상해 보았다.
산수유 꽃은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봄의 전령사다. 이는 부지런함을 나타내는 것이요.
산수유나무는 언덕이나 평지의 척박함도 가리지 않고 무리지어 살면서도 다투지 않고 예쁜 꽃을 피우며 종족을 보존해가는 배려심 많고 사랑 많은 나무다.
낱낱이 보면 보잘 것 없는 꽃이지만 한 꼬투리에 몇 송이가 모여 있는 것은 협동심을 나타냄이라.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은 고상한 자태는 요란스레 뽐내고 자랑하고자 날뛰는 요즘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 싶다.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한 향을 풍기며 배려하는 다정다감한 품성에 반해 벌들이 찾아오지 않는가.
작은 꽃 한 송이에 많은 열매를 맺었다가도 서로 튼실한 송이에 양보하는 미덕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날 모든 것을 다 자기가 가지고 우쭐대고 싶어 안달하는 세상에 심성 고운 어머니처럼 자식을 달래며 타이르는 듯 꽃들은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배웅한다.
긴긴 겨우내 방콕대학생 노릇에 지친 팔십을 바라보는 노인네가 노란 산수유 꽃들에 반하고, 서시천 너럭바위에 반하며, 물소리에 반하고, 노고단자락의 황홀한 풍광에 반했으니 소녀로 착각할 만하다.
거기에 산수유 꽃들이 주는 교훈을 가슴에 담뿍 담고 돌아왔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으랴.
이렇게 즐거운 봄맞이를 하게 해 준 막내딸과 사위가 정말 고마웠다.
◆글쓴이 (79세)
전북 전주시 완산구 마당재길 14-26 (남노송동 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