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는 정통 회화를 모방해 생활공간을 장식할 목적이나 민속적 관습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는 실용화다. 이러한 민화의 개념을 곧이곧대로 적용하면 그 역사는 매우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우리에게 익숙한 민화란 조선시대 후기 서민층의 무명작가들이 그린 그림들을 말한다.
도자기, 족자, 병풍, 부적류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한 민화는 그린 이와 쓰임새를 생각하면 당연히 일반 민중들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린 친숙한 그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현대로 넘어오면서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바뀌자 어느 순간 민화는 우리 곁에서 멀어지게 됐다. 그리고 떨어져 있었던 만큼 지금은 낯설고 어려운 그림처럼 느껴지게 됐다. 이러한 장벽을 작가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민화는 기본적으로 행복한 그림이에요. 그리고 오방색을 기본으로 화려하게 표현해 색채가 강하죠. 그래서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입니다.”
무엇보다도 민화는 의미를 지닌 그림이다.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활용됐기 때문에 저마다의 소망이나 목적이 숨어 있을 수밖에 없다.
“민화를 가르칠 때는 민화 속에 숨어 있는 뜻을 이해하고 느끼게 해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가르칠 때 하나하나 설명해줍니다. 호랑이 그림에는 주술의 의미가 들어 있고, 씨가 많은 것들은 다산을 뜻한다는 식으로요.”
이 작가는 아이들을 지도할 때 기존의 민화와 똑같이 그리는 걸 지양한다. 대신 그림에 쓰일 소재들이 가진 뜻을 설명해주고 원하는 대로 표현해보라고 한다.
“저는 그림은 느낀 대로 편하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기본적인 표현 기법은 알려줘야 하죠. 그렇게 해서 한두 명이라도 민화에 관심을 갖게 되어 심성이 고와지고 감수성이 좋아진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화실 갈 때가 가장 즐겁다
이 작가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가 진심으로 전통 미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 열정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지 궁금했다.
“그동안 제가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생계를 유지했던 게 아니라 취미로 해서 즐겁게 오래할 수 있었다고 봐요. 요즘도 토요일마다 화실을 가는데, 그날이 제일 즐거워요. 그렇게 그림을 즐기기 위해선 건강이 중요하죠. 체력을 위해 주말에는 등산을 하고 학교 출근해서 조회 시간 이전에 직원들과 40분 정도 산책을 해요. 강권하지 않는데도 다들 적극 참여합니다.”
그녀가 현재까지 만든 작품은 80~90점 정도 된다고 한다. 상당한 숫자다. 병풍도 소품도 많이 만들었는데, 그리기 시작한 지 5년 정도는 기존 작품을 많이 재현했다. 그 후로는 창작에 매진했고, 지금은 재현과 창작의 균형을 맞추는 중이란다.
“요즘은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고 있어요.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것을 이용한 마블링 기법으로 창작을 시도하고 있죠. 물론 민화의 기본은 유지하면서요. 정년퇴임할 즈음에는 개인전을 해볼까 합니다.”
제2인생 설계는 은퇴 10년 전부터
이 작가는 제2의 인생을 민화와 함께하려고 마음먹었다. 은퇴 후에도 문화센터나 평생교육센터 등을 통해 꾸준히 제자들을 가르치고 싶은 큰 걸음의 시작이다. 돈을 벌기보다는 재능을 기부하고 싶어 하는 그녀는 직장에서나 정년을 맞이했지 인생은 계속되어야 함을 여실히 보여줄 계획이다. 아울러 제2의 인생을 살려면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의 인생 설계는 최소 은퇴하기 10년 전부터 해야 한다고 봐요. 할 수 있는 일, 친구 관계, 사회 기여, 재력, 시간 등을 꾸준히 조금씩 준비해야겠죠. 제가 처음에 민화를 그릴 때는 남보다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느라 힘들었지만 지금은 다들 부러워해요. 에너지가 넘치다 보니 학교에서도 리더십이 잘 발휘되고, 교육청에서 좋은 평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부족한 거야 항상 많죠. 그러니 늘 공부하며 노력해야 해요.”
스스로에게 엄격한 그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민화 작업의 낯선 마블링 기법 시도도 그러한 성향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시작되면서 많은 선생님이 힘들어했지만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변하며 자신부터 바뀐 현실에 맞추려 노력했다.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진단이 나오는 지금, 어쩌면 그녀가 민화라는 우리의 옛것을 통해 보여주는 활력과 제2의 인생을 꿈꾸는 희망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가 아닐까.
민화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친숙한 이미지들이 있다. 익살스러운 표정의 호랑이,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도, 무속에서 나오는 작은 신들을 그린 그림들 등등 평자에 따라선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그려내는 그림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현대 민화 작가들의 손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돼오던 민화는 최근 미술에 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시금 주목받는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 민화는 주로 화가가 아닌 일반 민화 작가들이 그려왔다. 지난해 전국민화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이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자 민화를 그려온 이복자(60) 작가다. 그녀를 만나 민화를 통해 얻은 삶의) 의미와 제2의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강원도 영월군이 주최하고 조선민화박물관이 주관한 제22회 김삿갓문화제 전국민화공모전 대상은 ‘현역’ 교장선생님인 이복자 작가에게 돌아갔다. 그녀가 내놓은 작품은 8쪽 병풍으로 구성된 ‘평양감사향연도’.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이 소장한 작자 미상의 동명 작품을 재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민화에 속하긴 해도 우리가 흔히 민화 하면 떠올리는 소품이 아니다.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등장하는 연회를 소재로 하고 있고 8쪽 병풍으로 구성된 만큼 규모가 꽤 크다. 심지어 미국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라 관련 자료도 변변찮았다. 당연히 이복자 작가로서는 큰 도전이었다. 작품이 완성된 뒤 6개월 동안 안과를 다녀야 했을 정도다. 그러나 안구 질환과 함께 얻은 공모전 대상이라는 결실은 그녀가 민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어느새 13년, 대작을 완성하다
이 작가는 서울교육대학교와 인천교육대학교 미술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했다. 즉 천생 작가가 되어야 할 사람이었고, 스스로도 그 꿈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대학교 때는 채색화의 대가인 이숙자 선생님께 사사했어요. 대학원에서는 동양화를 공부했죠. 그때 한지공예도 배웠는데, 거기에 민화를 그리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리고 2007년 박수학 선생님의 인사동 전시회에 갔다가 ‘궁모란도’를 보고 홀딱 반했죠. 배워야겠다고 다짐했고 그때부터 제자가 된 지 13년이 되었죠. 지금도 스승이신 박 선생님 인사동 화실에 나가고 있어요.”
2019년 서울 남명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후에도 그녀는 뼛속까지 민화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을 작가이기 전에 교육자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사람들이 전통 미술을 너무 모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거듭 말했다.
“우리나라 전통 미술이 상당히 중요하고 교육 과정에서도 강조는 하는데 잘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이 부족해요. 아이들도 우리 것이 소중하다는 건 알지만 못 배우고 있어서 제가 열심히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요즘 한류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우리 민화도 전 세계 사람들이 즐겁게 감상하는 날들이 오면 좋겠어요. 최근 홍콩에서 우리 민화를 소개했는데 강의가 성황리에 끝났고 민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예요. 제가 초창기에 작업할 때보다 관심이 높아졌고 전국의 다양한 평생교육센터에도 강의가 많이 개설됐죠. 저도 민화의 저변 확대를 위해 교육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싶어요.”
이 작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이들에게 민화에 대해 가르쳐왔다. 2009년 초등학교 미술 교과서 집필위원으로 활동할 때는 민화 관련 내용을 교과서에 수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교감으로 지낼 때는 고학년들에게 민화를 지도했다.
민화를 가르치는 열정 교장선생님
“교장이 되면서 두 가지 모토를 생각했어요. 하나는 전교생에게 수업을 하는 것, 나머지 하나는 선생님들에게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주는 것이었어요.”
그 다짐대로 이 작가는 고학년들에게는 민화를 가르치고 저학년들에게는 그림책을 읽어준다. 아이들과 감성을 나누고 공감하기 위해 직접 수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지은 교내 미래관에 갤러리를 열었다. 원래 설계에는 없었으나 그녀가 교육청을 설득해 만든 것이다. 단순한 갤러리가 아닌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감상 교육을 하고 미래를 디자인하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또한 선생님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 철저하게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모임이라서 어떠한 인위적 강요도 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학교 만들기가 꿈인 그녀는 학교가 시각적으로도 예쁘고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목표를 위해 식물 재배와 시설 개량 등을 하면서 학교를 계속 가꿔나가고 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학교로 들어가면서 느낀 밝은 분위기는 그 때문이지 싶었다. 그야말로 에너지가 넘치는 삶이다.
“선생님들과 하는 미술 동아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활동해요. 거기서 배운 걸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도 하고요. 학부모 참여도 계획하고 있어요. 내년에는 학교 바깥에서의 전시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늘길이 닫혔다. 매년 당연하게 떠났던 해외여행은 잠정 중단되어 여행 일상에 제동이 걸렸다. 방구석 세계 탐방을 몸풀기로 시작했다. ‘부루마블’ 보드게임에서 아무리 많은 도시에 호텔을 사도 없어지지 않는 현장감을 채우고 싶었다. 안전상 멀리 떠날 수 없어 선택한 여행지는 ‘서울’. 이 도시에 뿌리내린 다른 나라를 찾아 나섰다. 거미줄 망처럼 펼쳐진 지하철을 이용해, 술 빚는 여행작가가 추천하는 서울 속 세계 음식점을 탐방해보자.
사직동 그 가게
아는 작가 동생이 이곳에서 일한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원활동가이며 ‘지기’라 불린다. 사직동 그 가게는 록빠(티베트 난민구호 단체, 티베트어로 ‘돕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출발했다. 이 공간은 지기들의 재능기부와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사직동 그 가게. 구어체 느낌의 상호다. 사직공원을 돌아 들어오면 약간 외따로 떨어진 가게가 보인다. 오른편은 티베트 관련 물품을 판매하는 소품 가게이며, 왼쪽 붉은 벽돌 문으로 들어오면 카페와 식당이 보인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그 흔적들을 찾는 재미도 있다. 이 가게는 인도 짜이, 라씨 그리고 커리를 판매한다. 커리를 주문하는 손님들은 주로 새우커리와 치킨커리를 선호한다. 두부커리, 시금치커리 같은 비건 메뉴도 있다. 인도 전통의 맛을 최대한 재현할 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아늑해 아지트에 머문 기분이 든다.
주소 서울 종로구 사직로9길 18
지하철역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454m
영업시간 매일 12:00~20:00 (Last order 19:30)
이스탄불그릴
공덕역 인근 노후한 건물들이 헐리고 새로운 마천루가 세워졌다. 자영 업장들이 서서히 건물 1층을 채웠다. 이스탄불그릴(Istanbul grilll)은 터줏대감 가게 중 하나다. 터키 사장님이 직접 구워주는 터키식 양갈비 그릴이 주요 메뉴다. 이스탄불그릴 사장님은 한국어에 능통하다. 벽면에는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사장님의 캡처 사진이 붙어 있다. 보통 두 명이 오면, 가장 무난한 메뉴가 이스탄불그릴(2인분)이다. 터키 빵+오늘의 수프+메인메뉴(그릴)로 취향에 맞게 6가지 종류로 세팅돼 있다. 식후에는 터키식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백범로 152
지하철역 5·6호선, 공항철도, 경의중앙선 공덕역 1번 출구에서 312m
영업시간 매일 11:00~15:00, 17:00~22:00, 주말 11:00~22:00 (명절 휴무)
레스쁘아 뒤 이부
지갑을 잃어버렸다. 함께 있던 친구는 내 행적을 물으며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도로 옆 우거진 쥐똥나무 속을 뒤지더니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다. 그 답례는 레스쁘아 뒤 이부(L'Espoir du Hibou)에서 이뤄졌다. 레스쁘아 뒤 이부는 청담동 속 작은 프랑스를 연상케 한다. 임기학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12년 차 프랑스 정통 레스토랑이다. 그는 뉴욕 미슐랭 레스토랑인 다니엘(Daniel)에서 근무한 이후 이곳에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미슐랭 2020 가이드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높은 인지도만큼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한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오면 볕 좋은 오후, 테라스에 앉아 유유자적 프렌치 요리와 와인을 즐기기에 탁월한 공간이 나타난다. 5만 원에 제공되는 런치 메뉴는 애피타이저부터 본 요리까지 순서대로 맛볼 수 있다. 하우스 스페셜 메뉴인 ‘오리 다리 콩피’는 이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다. 콩피는 염장한 오리를 기름에 넣어 낮은 온도에서 오랫동안 삶은 뒤 굽는 프랑스 정통 조리 방식이다. 그밖에 킹크랩과 엔다이브샐러드, 양파수프, 광어파스타, 에스카르고(달팽이요리)를 추천한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52길 33
지하철역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 4번 출구에서 456m
영업시간 매일 12:00~15:00, 18:00~22:00 (명절 휴무)
파르투내
색이 바랜 만국기가 펄럭인다. 여기는 동대문과 맞닿은 광희동. 만국기 아래 터를 잡은 몽골인들. 몽골타운 옆에는 중앙아시아 거리가 있다. 러시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를 기점으로 접경 지역에 있는 나라의 동포들이 이곳에 모여 살면서 상점을 형성했다. 여기는 ‘서울의 실크로드’다. 그 중심에는 파르투내(Restaurant Fortune)가 있다. ‘Fortune’는 러시아어로 ‘파르투내’이고, 영어로는 ‘포춘’이라 명명한다. 우즈베키스탄 남편과 러시아 아내가 9년째 운영 중이며, 건물 1층은 케이크 등을 판매하는 카페, 2층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본격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이다. 얼마 전, 맞은편에 식품 마트를 새로 오픈해 총 3개의 업장을 보유하고 있다. 현지인과 우리나라 손님 모두에게 인지도가 높다. 메뉴 책은 두껍고 무거워서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수프, 샤슬릭, 차가 기본 조합이다. 샤슬릭은 양, 닭, 소고기를 구운 러시아식 꼬치 요리인데, 평소 우리가 흔히 아는 꼬치보다 3배 정도 크다. 우즈베키스탄식 누들수프인 라그만은 기름진 우육면과 비슷한 식감이다. 감자샐러드 속에 당근과 비트 그리고 청어가 들어 있는 독특한 청어샐러드도 있다. 러시아 맥주 발티카와의 페어링이 무난하나, 러시아산 보드카에 도전해보자. 후식으로는 꿀 케이크인 메도빅과 러시아 차를 권해본다.
주소 서울 중구 마른내로 154
지하철역 2·4·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6번 출구에서 121m
영업시간 매일 10:00~23:00, 일요일 09:00~22:00 (첫째, 셋째 주 월요일 휴무)
페트라
페트라(PETRA)는 서울 지부 중동 음식 순례지 중 0순위로 꼽힌다. 한국에서 중동 요리를 처음으로 선보인 음식점이기 때문이다. 레스토랑 대표 야서 가나옘은 순수 요르단 출신이다. 폭넓은 중동 음식 중 동지중해 부근의 레반트(Levant) 지역 음식을 선보인다. 특히 대부분의 재료를 요르단에서 공수해온다. 음식점 내부 문양만 봐도 이슬람 사원 속 어딘가에 온 듯하다. 페트라는 할랄 의식을 치른 고기로만 요리하는 할랄 레스토랑이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별도의 메뉴도 있다. 병아리콩을 삶아 각종 채소와 섞어 동그랗게 튀긴 팔라펠이 대표 메뉴이며 홈머스, 타볼리샐러드, 캅사, 쿠스쿠스 등 요르단 가정식을 맛볼 수 있다.
주소 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40길 33
지하철역 6호선 녹사평역 1번 출구에서 181m
영업시간 매일 11:00~22:00
울프하운드
펍(Pub)은 ‘퍼블릭 하우스’(Public house)의 준말로 ‘공공장소’란 뜻이며, 맥주의 동력으로 이야기를 생산하는 곳이다. 펍이 유래한 영국뿐만 아니라 그 옆 나라 아일랜드에도 아이리시 펍이 성행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만 해도 1000개에 가까운 펍이 존재한다. 아일랜드 문호인 제임스 조이스가 “펍을 피해 더블린을 걷는다는 건 마치 퍼즐게임을 벌이는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다. 서울에 현지 아이리시 펍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 있다. 바로 울프하운드(The Wolfhound) 펍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외국인(특히 영어권 국가) 손님 비율이 높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중요한 아일랜드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이면 대형 모니터 앞에 모여 맥주를 들고 응원하는 장관이 펼쳐진다. 아일랜드 대표 맥주인 기네스와 크림 에일 맥주 킬케니를 생맥주로 주문할 수 있다. 시그니처 메뉴는 달콤하면서 매콤한 치킨윙과 피시앤칩스다.
주소 서울 용산구 보광로59길 10
지하철역 6호선 이태원역 4번 출구에서 95m
영업시간 매일 16:00~02:00
하노이102
성수동 주택가에 붉은 벽돌로 된 2층 주택 앞에서 머뭇거렸다.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흰색 바탕 족자에 세피아 톤으로 그려진, 베트남 여성으로 추정되는 그림만이 이 건물의 힌트였다(현재는 이 그림 아래 한글로 상호가 새겨짐). 용기를 내어 문을 열었다. 특유의 베트남 쌀국수 향이 코끝을 자극하면서 의문이 해소됐다. 하노이102(Hanoi102)는 근처에 위치한 ‘할머니의 레시피’를 운영하는 대표가 베트남을 콘셉트로 오픈한 레스토랑이다. 대표는 약 7년 동안 하노이에서 생활하면서 하노이 가정식을 섭렵했다. 가구, 테이블 등 작은 소품까지 베트남에서 공수해와 레스토랑을 꾸몄다고 한다. 베트남은 프랑스 지배하에 있던 나라다. 그래서일까. 레스토랑 내부는 프랑스 느낌이 물씬 난다. 같이 온 친구들과 소품의 디테일을 감상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는 쌀국수, 철판 분짜, 쌈에 싸 먹을 수 있는 튀긴 만두 넴 등이 있다. 느끼함 없이 담백하고 깔끔하게 맛이 떨어졌다. 식후에도 인증 사진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을 정도로 내부 디자인에 감탄했다.
주소 서울 성동구 서울숲6길 18
지하철역 2호선 뚝섬역 8번 출구에서 356m
영업시간 매일 11:30~22:00, 18:00~22:00 (Last order 15:00, 21:00, 화요일 휴무)
여행 마니아인 윤나겸 세무사, 서동원 대표 부부.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인 요즘, 여행지의 추억을 떠올리며 리조트풍 아파트를 가성비와 가심비를 맞춰 홈스타일링으로 멋스럽게 변신시켰다. 홈 드레싱의 전체적인 테마는 ‘홈캉스’. 리조트와 휴양지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을 집 안으로 들였다.
홈스타일링 정유현디자인 시공 홈플릭스 사진 차경, 김도균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하와이 리조트풍으로 꾸민 거실. 각자의 일로 바쁜 이들 부부가 함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충분히 누리려고 만든 공간이다. 라탄 소재의 데이배드와 소품을 배치해 바캉스 무드를 더했고, 여름 잎사귀를 표현한 패브릭 커튼과 파파야 등 열대식물을 비치해 분위기를 고조했다. 특히 중앙에 설치된, 천장에서 내려오는 밧줄을 잡고 있는 원숭이 조명이 눈길을 끈다.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뷰를 자랑하는 이곳에서 이들 부부는 데이배드에 앉아 독서를 즐기는 등 휴식을 취한다.
그림 역시 홈스타일링 요소 중 하나로 꼽히는데, 거실 전면에 팝 아트적 컬러감이 돋보이는 ‘제이미 리’ 작가의 작품을 놓아 휴양지의 강렬한 색들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으로 인해 집이 입체적이고 넓어 보인다.
거실 가구는 상대적으로 차분한 톤의 패브릭 소파와 암체어, 카펫을 골랐고, 덴마크 최대 홈퍼니싱 브랜드 일바(ILVA)의 제품을 선택했다.
안방은 유럽 부티크 호텔 콘셉트로 조명과 벽지는 그대로 두고 커튼과 침구로 새 단장을 했다. 무게감 있는 블루와 레드 컬러를 골랐고 침구와 스프레드(커튼)는 정유현 디자이너가 맡았다. 침대는 퀸 사이즈의 일바(ILVA) 하바나 베드 2개를 두어 수면의 질을 높였다.
방 하나는 언제라도 쉽고 간편하게 찜질을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만들었다. 3개의 모듈형 편백나무 구들은 쉽게 분리하고 이동도 가능하다. 탁월한 찜질 효과를 자랑한다. 부부는 산책을 끝낸 후 욕조에서 힐링을 한 후 찜질을 한다. 일상의 루틴으로 건강한 라이프를 즐기는 면모도 살펴볼 수 있다.
인테리어 공사를 최소화하고 가구, 조명, 패브릭, 식물, 작품 등으로 손쉽게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장점을 지닌 홈스타일링. 부부의 추억을 되새김할 수 있는 럭셔리 리조트가 탄생했다.
안방 욕실의 편백나무 욕조는 부부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대형 크기(2m 이상)를 자랑한다. 반신욕과 독서를 즐길 수 있어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일상의 루틴으로서 힐링을 느낄 수 있는 포인트로 작용한다. 욕실에서 마치 향이 가득한 스파에 온 듯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서 대표는 “넓은 욕조에 앉아 책을 읽거나 와인 한잔 하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My Dear 피노키오展, 아무런 정보 없이 가서 봐도 친근한 전시 제목이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말이 진실인 줄 알았던 어린 시절, 그래서 정직함의 중요성을 일찍이 알게 했던 이야기 ‘피노키오의 모험’.
'피노키오'는 1883년 이탈리아 작가 콜로디의 동화로 탄생했고 우리에게는 월트 디즈니가 각색하고 제작한 '피노키오의 모험'이라는 애니메이션으로 더 익숙하다. 착한 목수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아 만든 피노키오 인형 이야기는 동화나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다뤄지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지금껏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가까운 벗처럼 친숙한 캐릭터인 피노키오를 주제로 한 전시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동안 책이나 영화 등에서 봐왔던 것과는 달리 쉽게 접하지 못했던 관련 희귀 도서나 소품들도 진열되어 있어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크다. 특히 국내외 작가들의 독창적인 해석으로 표현한 피노키오 작품 173점도 전시돼 있다.
환하고 밝은 분위기의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첫 번째 섹션 '서막: 피노키오의 모험'을 관람할 수 있다. 이 섹션의 작가는 카를로 콜로디. 어른 아이 구분 없이 누구나 유명 작가들의 피노키오의 해석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한 공간이다. 플래시 없이 대부분 촬영도 가능하고 군데군데 쉴 수 있는 곳도 마련되어 있다.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영상이나 나무로 설치된 작품과 소소한 소품 전시가 계속 이어져 지루할 틈이 없다.
저작권 보호 때문에 촬영을 할 수 없었던 로베르토 인노첸티 작품 위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나무토막으로부터 학교에 다닐 즈음의 나이로 만들어진 피노키오는, 유아기를 지나며 성장하는 과정 없이 그렇게 곧바로 세상 속으로 던져졌다." 로베르토 인노첸티는 많은 작가가 피노키오 캐릭터에 집중할 때 피노키오의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작품 속에는 피노키오의 성장 스토리가 녹아들어 있다. 마을이나 마을 사람들, 시대적 풍경이 피노키오의 유년기를 떠올리게 했다. 화풍은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의 소박하고 적막한 골목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앤서니 브라운, 제럴드 맥더멋, 마우리치오 콰렐로 등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션 거장들이 그려낸 개성 넘치는 피노키오를 볼 수 있도록 몇 개의 전시관이 이어져 있다. 국내에서는 민경아, 조민서 작가 등이 참여했다. 이들이 독특하고 현대적인 감성으로 우리가 몰랐던 피노키오 이야기를 풀어놓아 시종일관 흥미롭다.
피노키오를 소재로 한 그림과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영상 역시 재미있다.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에서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완성도 있는 관람을 시도해 눈길을 끈다. 시간 맞춰 도슨트 해설을 들으면 이해도 쉽고 몰랐던 사실까지 알게 된다. 다양한 콘텐츠로 구성된 복합 전시 'My Dear 피노키오展'이다
전시장에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주부가 유난히 많았다. 피노키오라는 동화적 특성이 한몫했을 것이다. 작가 콜로디는 동화를 쓰면서 "어른들은 즐겁게 해 주기가 너무 어렵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양한 작가들의 동화적 상상력이 발휘된 작품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기성세대들에게도 큰 즐거움을 준다.
전시장 입구부터 노랑과 분홍, 파랑 등의 밝고 과감한 색감이 압도한다. 그림동화다운 따스하고 서정적인 느낌 속에 푹 파묻혀 작품을 구경하다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낄 것이다.
전시기간: 6월 26일~10월 4일
관람시간: 10시~19시(매표 및 입장 마감 오후 6시) 매주 월요일은 휴관
전시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입장료: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1만3000원, 어린이 1만 원
★ 그림자 극장: 토․일요일 11:30 / 13:30 / 16:00 (선착순 20명)
★ 도슨트 해설: 화요일~일요일 11:00 / 13:00 / 15:30 / 17:00
★ 구연동화 : 피노키오의 오리지널 이야기(화요일~금요일 14:30 / 16:30)
여름철, 집 안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곳은 아무래도 욕실이다. 덥고 습한 날씨 탓에 불쾌지수도 높아지기 마련. 꿉꿉했던 공간을 보다 쾌적하고 산뜻하게 만들어줄 욕실 아이템을 소개한다.
사진 각 사 제공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분위기를 살린 단순하면서도 섬세한 스타일의 욕실 가구. 세면대 하부장과 거울수납장, 키큰장 등을 화이트 톤으로 맞추고 블루와 골드 컬러의 아이템으로 포인트를 더해준다. 이케아, 햄네스·레트비켄 욕실가구 5종 세트 100만 원대.
북유럽 디자인 브랜드 헤이 특유의 모던함이 묻어나는 욕실, 침실 겸용 거울. 상단 실리콘 스트랩 부분은 디자인 포인트인 동시에 벽에 거울을 달 때 고정할 수 있어 실용적이다. 100HOME, 스트랩 미러 28만 원.
촘촘하게 짠 패브릭을 방수 코팅한 샤워커튼. 진한 민트 컬러의 잎사귀 문양이 돋보인다. 무더운 여름 청량하고 유니크한 느낌으로 욕실을 꾸미고 싶을 때 활용하면 좋다. 이케아, 갓카모밀 9900원.
하부 수납장이 짜임새 있게 설계된 세면대. 도어 안쪽뿐만 아니라 개방형 선반과 유용한 엔드유닛이 있어 활용도가 높다. 61×41×92(cm)의 콤팩트한 사이즈로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고 설치 가능하다. 이케아, 릴롱엔 34만9000원.
코튼 소재의 타월로 시원한 초록빛 야자수 잎 무늬가 눈에 띈다. 상단에 고리가 있어 편리하고, 80×165(cm)의 여유 있는 사이즈로 물놀이할 때 비치타월로 쓰기에 제격이다. H&M HOME, 프린트 비치타월, 1만9900원.
이탈리아 조명 브랜드 플로스 제품. 단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욕실뿐만 아니라 거실, 침실 등 어느 공간에 둬도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 100HOME, IC 2colors 스몰 사이즈 113만 원.
유광 처리된 세라믹 소재의 욕실 소품 세트.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흑백 프린트 디자인이 특징이다. H&M HOME, 칫솔꽂이 1만2900원, 세라믹 케이스 1만9900원, 솝 디스펜서 1만7900원, 솝 디쉬 1만2900원.
(가격은 각 사 홈페이지 판매 정가 기준)
중장년들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막연한 불안감에 싸여 산다. 쫓기듯 사느라 은퇴 이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볼 여유조차 없다. 그래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탐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노사발전재단 대구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서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목공 직업체험교실(6월 20일)을 열었다. 목공 체험을 통해 새로운 적성을 찾았으면 하는 김철홍 컨설턴트의 바람대로 참여자의 호응도는 놀라웠다.
2시간 이론, 3시간 실습 총 5시간 동안 진행된 수업에 참여한 수강생들은 시종일관 흥미로워했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도마를 완성하기 위해 몰입했고 이웃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도 가졌다.
조패옥(56) 씨는 목공 체험에 대한 소감을 묻자 “내가 만들었다는 만족감이 가장 큽니다. 지금은 안경제조업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목공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어요. 도마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내가 만든 작품 같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 직접 만든 도마를 선물하고 싶어서 강좌를 듣게 되었다는 이상희(50) 씨는 봉사하기 위해 목공을 시작했고 앞으로 직업으로 삼고 싶은 바람을 전했다. “목공은 체험을 많이 할수록 실력이 늘어요. 따로 목공 수업을 받고 있는데, 다음 주에 자격증 시험을 볼 거예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목공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났다.
목공 직업체험교실을 진행한 다울협동조합 조기현(55) 대표는 철저한 준비를 하고 혼자가 아닌 함께 일을 도모하면 목공으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목수에게 버려지는 나무는 없습니다. 새로운 쓰임을 위해 몸을 내어준 이 느티나무는 동네 어귀에서 오래도록 마을 주민의 그늘이 돼주었다가 수명을 다한 후 이곳으로 왔습니다. 나무의 생이야말로 이모작입니다.”
다울협동조합 조기현 대표와 일문일답
Q. 코로나19로 인해 오랜만에 강의가 열렸는데 수강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무엇보다 제가 더 기뻤습니다. 대구에서 31번째 확진자가 나온 이후 그야말로 전쟁통 같은 나날이었죠. 수강생들의 생생한 표정을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수업 내내 모두들 밝은 얼굴로 체험에 참여했습니다. 휴식시간에도 좀체 쉴 생각을 하지 않네요. 남자 수강생 한 분은 아내가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답니다. 도마를 고이 들고요.(웃음)”
Q. 중장년들에게 목공이 어렵지는 않은지, 배워서 할 수 있는 일은 있는지요?
“목공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재주 있는 사람보다 더 나아요. 적성이다 싶으면 목공지도사자격증을 따기 위한 심화과정을 이수해 앞으로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공방을 운영하거나 가구를 만들어 팔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릴 겁니다. 베트남과 중국산 가구가 잠식한 국내 가구시장에서는 어렵습니다. 목공 교육을 하거나 반제품 납품을 하면 경쟁력이 있습니다. 체험용 반제품, 소품을 만들어 공방에 납품하면 됩니다. 혼자 할 수 없을 때는 같이 하면 됩니다. 함께하면 더 넓은 길이 열립니다.”
Q. 보람 있는 에피소드는요?
“시청 공무원으로 은퇴한 후 극심한 우울감에 빠져 지내던 분이 있었습니다. 목공 체험을 한 후 치유목공실에서 대패질을 통해 서서히 컨디션을 회복하더니 목공체험지도사 3급, 2급, 1급을 차례로 따냈습니다. 1년 만에 이룬 성과였죠. 열의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은 목재문화체험장에 취업해서 성공적인 인생 후반기를 살고 계십니다.”
Q. 다울협동조합은 어떤 곳인지, 그동안의 성과가 있다면요?
“다울은 ‘너도나도 다 우리’라는 의미입니다. 조합의 시작은 은퇴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먼저 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손에서 망치를 놓는 순간 퇴직금도 없고 국민연금도 없죠. 순식간에 사회적 빈곤층이 됩니다. 스스로 살아보자는 의지로 2014년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2017년 말에 인정받았습니다.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은 200명 정도 됩니다. 이윤보다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고 교육 사업, 목공 사업, 집수리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수익의 30% 이상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쓰고 있죠.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노숙인들에게 무료 급식 봉사를 했습니다. 공공근로를 할 수 없었던 지난 몇 개월 동안에는 도마 만들기를 했습니다. 물론 시간당 일정 금액을 지불했습니다. 여기 쌓여 있는 도마가 그때 완성된 것들입니다.”
Q. 다울협동조합과 노사발전재단에서 진행하는 목공직업체험은 어떻게 다른가요?
“협동조합에서는 마을목수학교, 건축아카데미, 학교 밖 청소년 목공교실, 도시재생 기반 주민역량교육 등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주로 합니다. 노사발전재단에서는 중장년 일자리에 중점을 둡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미뤄지고 또 미뤄지다 지금에야 첫 강의가 열렸습니다. 체험을 통해 자신의 적성을 찾는 기회를 주는 거죠. 작년에는 실업자 교육과정으로 목공교실을 진행했습니다.”
Q. 목공을 제2직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과도한 기대나 환상은 금물입니다. 목공교실을 진행하다 보면 대뜸 언제, 어디에 취업할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 ‘사장 입장이라면 당신을 목수로 쓰고 싶은가?’라고요. 먼저 재미를 느끼는 게 중요하고요. 여기에 의지까지 있다면 빠른 시간 안에 기술 습득이 가능합니다.”
박종서(74) 관장은 우리나라 자동차 디자인 1세대로 이 분야의 선구자이자 산증인이다. 예술 관련 잡지와 도록들이 꽂혀 있는 책장, 박 관장이 직접 만든 모자이크 작품과 다양한 소품들, 도자기들이 정갈하게 진열된 공간에서 잔잔한 피아노 선율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옆자리에는 세 살짜리 고양이 금이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먼저 2019 디자인코리아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 헌정 대상자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대상자로 선정됐을 때 쑥스러웠다. 후배들이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추천을 못하게 했는데 일방적으로 받게 됐다. 나는 명예의 전당에 올라갈 정도로 인품이 있지도 않다. 옛날에 많은 가르침을 주신 은사님이 계신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승낙했다.
코로나19로 미술관이 휴관 중인데 어떻게 지내시나요?
생활은 식칼과 똑같다. 한쪽에는 날카로운 면이 있고 한쪽에는 무딘 면도 있다. 삶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제일 행복하다. 어려서 구석진 곳에 있으면 너무 편안했다. 그래서 책상 밑, 어머니의 재봉틀 발판 속, 장롱과 벽 사이로 들어가 있곤 했다. 어른이 되어 등산할 때도 바위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지금도 그렇다. 이 미술관을 지을 때 건축가에게 “유리로 만들어서 한눈에 다 보이면 안 된다. 내가 숨을 공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그런 공간을 확보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혼자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날 일을 기록한다. 어제는 잎이 삐죽삐죽한 씀바귀를 스케치한 다음 마시던 커피를 이용해 잎사귀를 채색했다. 이런 시간들이 가장 행복하다.
관장님에게 디자인은 어떤 의미인가요?
음악은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준다. 사람을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한다. 그런데 디자인은 절대 사람을 울게 하지는 못한다. 감정적으로 음악만 못하다. 다만, 소유한 사람이 오래 소장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채워줘야 한다. 디자인은 항상 보편적인 개념을 존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는 비행기다워야 하고, 자동차는 자동차다워야 한다. 자동차 디자이너는 자동차가 갖는 보편적 개념과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무조건 새로운 게 디자인은 아니라는 뜻이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안목이다. 공부를 잘한다고 훌륭한 디자이너가 될 수는 없다. 스킬은 배울 수 있지만, 창의력은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안목을 키우려면 흙, 나무, 종이 등 기본 물질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이것은 학습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대학에서 디자인 공부를 한다는 것은 10년 후나 20년 후에는 못 쓰는 지식을 배우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지식의 반감기라고 하는데, 디자인은 90%가 없어진다. 지식이 반감되지 않으려면 내 손으로 만든 기억이 있어야 한다. 나는 무언가를 만들 때 어린 시절 진흙을 가지고 놀던 기억을 떠올린다. 진흙이 얼마나 미끄러운지, 어떻게 해야 갈라지지 않는지, 머리가 아니라 손이 기억하는 것들을 디자인에 적용한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르신데요. 자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자연은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고, 먼저 진화했다. 우리가 오늘날 겪는 시행착오는 이미 생태계가 오래전에 겪은 시행착오에 불과하다. 인간은 자연을 못 따라간다. 황금분할 1:1.61803은 암기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자연에서 뛰어놀았던 아이들 머릿속에 이미 다 들어가 있다. 유명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그렇다. 그냥 척척 했는데, 재보면 황금분할이다. 특별한 툴이나 연장이 필요 없다. 무엇을 만들고자 할 때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도구를 구하러 다니는 동안, 초기의 생각이 변질되고 왜곡되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하면 거짓일기처럼 된다.
자동차 디자인의 장인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디자이너는 월급이 아니라 명예와 사명감으로 살아간다. 윗사람이나 상대 부서 등 타인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모델이 있어야 하고, 논리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공부하지 않으면 논리는 빈약해진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도둑맞은 내 생각을 찾아오기 위해서다. 독서를 하다 보면 내가 생각한 것들이 이미 글과 디자인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는 바로 움직여야 한다.
아들 박찬휘 씨도 현재 아우디 디자인 파트에서 일하고 있지요?
아들은 페라리, 벤츠를 거쳐 현재 아우디에서 일하고 있다. 2022년에 나올 자동차 프로젝트명이 아들 이름을 딴 ‘CHAN22’라고 한다.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명예롭게 근무한다. 이곳을 마지막 직장으로 생각하고 싶다”고 말한다. 아들을 키울 때 자연을 많이 접하게 했다. 내가 커다란 종이에 그림을 그릴 때 같이 그렸다. 그런데 아들은 자기가 그린 그림들을 모두 버렸다. 내가 그것을 모아 유학 준비를 하는 아들에게 “이게 네 진짜 그림”이라며 건네줬다. 덕분에 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아들은 이제 진실한 그림이 무엇인지 알고, 내게 많이 감사해한다. 자동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이 부딪친다. 언젠가 내가 티뷰론을 실험적으로 다시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니, “은퇴 후 졸작들을 만들더라, 아빠도 그 꼴이 되고 싶으시냐, 하지 말라”고 했다.(웃음)
자동차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동차는 비행기가 될 수 없다. 비행기처럼 날아가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동차는 그럴 수 없다. 미래에는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이 나와야 한다. 쓸데없는 것,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떼어내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는 디자인 명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을 강조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장식이 많아지고 허세가 넘친다. 지금 우리나라 차들이 그렇다. 대기업은 이제 소비자에게 판매만 할 것이 아니라 잘못된 인식에 대한 계몽적 마케팅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전기자동차부터 수소자동차, 자율주행자동차까지 자동차의 미래 트렌드가 많이 바뀔 것으로 예측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차의 형태가 지금과 같은 이유는 앞쪽에 엔진과 미션이 들어가고 뒤쪽에 트렁크가 있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라면 앞쪽이 텅 비어도 되니, 현재의 자동차 모습일 필요가 없다. 앞으로 고밀도 사회(high density society)가 도래하면 크기도 지금처럼 클 필요가 없다. 현재 패키지 레이아웃(package layout)은 가솔린 자동차 위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미래에는 모양과 디자인이 모두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테슬라도 그대로 하고 있다. 이게 급선무인데 관념에 묶여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 그게 제일 안타깝다. 소재도 철판으로만 한정하고 있는데 달라져야 한다. 카본 파이버는 철판보다 30배나 더 가볍다. 현재 쏘나타의 무게는 1톤에 가깝다. 카본 파이버로 바꾸면 200㎏ 정도밖에 안 된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나는 평생 메모를 습관화했다. 신입사원 시절 일본 출장을 갔다. 비행기 옆자리에 한 할아버지가 앉았다. 나는 멍하니 앉아서 가는데 그분은 뭔가를 계속 쓰고 있었다. “기록할 게 많은 일을 하시나보다” 했다. 나에 관해 물어봐서 신입사원이라고 했더니 “평소에 메모를 많이 해라. 윗사람이 지시하면 그것을 적어라. 상사가 묻기 전에 보고해라. 윗사람이 물어보는데 내가 ‘아차’ 한다면 이미 회사생활은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그 어르신은 일본 스미토모상사 그룹의 회장이었다. 그때부터 메모를 생활화했고 그 내용을 모아 책도 출간했다. 요즘 세대는 휴대전화나 컴퓨터에 기록한다지만, 우리 세대는 바로바로 손으로 쓰면서 생각도 정리하니까 더 좋은 것 같다.
좌우명이 있으신가요?
취미로 1990년대 초부터 스케이트를 탔다. 빙상 500m 쇼트트랙 전국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취미이지만 하나를 하더라도 기초만큼은 제일 탄탄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정확한 자세와 아름다운 폼은 기본이 튼튼해야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치에게 지도를 받았다. 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지는 건 자세가 흔들렸거나 승부욕이 넘쳤다는 의미다. 뭐든지 기본을 먼저 갖춰야 한다. 기본 원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테크닉부터 터득하려고 하니까 무너지는 거다.
아직도 열정적으로 일하고 계신데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뭔가 일을 벌이면 사람들은 “당신 나이가 몇 살인데 그래?” 한다. 대부분 그 말을 들으면 포기한다. 만약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생각날 때 바로 시작해야 한다. ‘포니정’으로 불렸던 정세영 회장은 “결론은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한다. 단점일 수도 있지만, 생각을 오래하면 하지 않을 구실을 찾게 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노년을 준비하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산에 가면 작은 꽃, 작은 버섯, 이름 없는 가랑잎을 보면서 재미를 느낀다. 벌레 먹어 썩은 나무가 있으면 가져와서 그 흔적을 입체적으로 만들곤 하는데, 벌레가 그린 그림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남들이 보면 정신 나갔다고 할 수도 있다. 자연은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다 보이는 건 아니다. 보고자 하는 사람, 뜻이 있는 사람에게만 보여주고 길을 열어준다. 즐거운 일, 사랑할 일이 구석구석에 많다.
우리 연배 사람들은 우리나라 경제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하는 화물차처럼 중요한 존재다. 그런데 노인들을 홀대한다. 이런 풍토는 바뀌면 좋겠다. 나이 들면 하찮고 소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길 바란다. 남을 배려할 줄도 알아야 한다.
버킷리스트가 있으신가요?
첫 번째로 이탈리아 스승을 기념하는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페라리 자동차를 만든 명인 스칼리에티는 나의 스승이다. 14세 때 기름 1ℓ를 넣은 오토바이를 타고 모데나에서 베로나까지 100㎞ 구간을 갔다고 한다. 집에 돌아올 때는 적정 속도와 연료 소모량을 계산해, 오토바이를 개조한 다음 소량의 연료만으로 오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1950년대 벨로솔렉스 오토바이를 주문했다. 미술관 아래 밭 근처에 있던 밤나무가 죽었다. 지름이 1m 정도 되는 큰 나무였다. 그 나무와 오토바이를 결합한 작품으로 스승에게 보답하는 오마주 작업을 준비 중이다.
두번째는 책을 출간하려고 한다. 10년 전 ‘꼴, 좋다! 자연에서 배우는 디자인’이라는 책을 펴냈다. 강의 교재로 썼던 내용을 쉽게 풀어쓴 것으로, 모든 형태는 자연을 따른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지금 두 가지 책을 구상 중이다. ‘꼴, 좋다’와 같은 내용의 글을 새로 써서 큰 사이즈로 낼 계획이다.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스승에게 들은 자동차와 카로체리아(carrozzeria)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소개할 생각이다. 카로체리아는 디자인 능력을 갖춘 소량 주문제작 방식의 자동차 회사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집 뒤에 있는 500평(1652㎡) 규모의 정원을 영국의 채리티 가든(Charity Garden)처럼 만들고 싶다. 자선 정원으로 운영해 입장료를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 이 사업은 아내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미술관을 통해 이미 사회에 기여하고 계신데요. 사재를 들여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술관을 통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 꼭 자동차와 관련된 꿈이 아니어도 좋다. 과학자가 될 수도 있고 미술가가 될 수도 있다. 그 꿈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교수로 있는 김상배 박사의 경우가 그렇다. 그가 연세대 공대를 졸업하고 뭘 할지 몰라 고민할 때 내가 “천장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도마뱀을 가지고 연구해봐라” 했다. 이후 스탠퍼드대학에 들어가더니 졸업작품으로 유리벽을 타고 오르는 로봇을 만들어 미국에서 올해의 과학자에 선정되었다. 많은 분이 여기를 자유롭게 방문하시길 바란다. 예약하면 전문가가 해주는 설명도 들을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장식품에 불과하지만 동일한 탄소 성분으로 이루어진 흑연 연필은 꿈을 그릴 수 있다. 연필로 꿈을 그리듯 이곳이 모두의 꿈을 그릴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소망도 커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장욱진(1917~1990)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미술관이다. 장욱진은 이렇게 썼다. “나는 심플하다. 이 말은 내가 항상 되풀이하는 단골말이다.” 심플! 그게 말 그대로 심플하게 거저 얻어지는 경지이겠는가? 인간사란 머리에 쥐나도록 복잡한 카오스이거늘. 명쾌한 삶의 실천과 창작의 순수한 열망을 지속하지 않고선 도달하기 어려운 차원이다. 그러나 장욱진은 자신이 지향한 가치를 정점까지 밀어붙였다. 그 무엇에 앞서 ‘심플한’ 작품으로 지지와 갈채를 받았다. 그런 장욱진의 유화, 벽화, 판화, 수묵 등 23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 존재하다니.
장욱진은 번잡한 도시를 피해 살았다. “서울로 표상되는 문명 자체가 싫다”고 했다. 자연, 고요, 고독. 그에겐 이 셋이면 충분했다. 그러하니 장욱진미술관을 도심에 두랴. 산 아래, 냇물이 흐르는 곳에 터를 잡았으니 적격이다. 미술관 건물은 나무들의 초록이 술렁거리는 산들과 눈을 맞추며 들썩이나? 큼지막한 규모에 흰색 외벽을 두른 건물이 생동해 밝다. 애써 멋부린 치레 없이 산뜻하고 단순한 외관이다.
어떻게 보면 세련된 대형 창고 형태? 산을 은유적으로 축약한 미니어처? 수직 일색의 벽면과 삼각 지붕의 연쇄로 이루어진 다면체라 멀리서 언뜻 볼 적엔 정체가 집히지 않아 아리송하다. 외부 마감 자재는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카보네이트. 가볍고 소박한 재료로 도배한 셈이라 묵직한 맛은 없지만 위압이 없어 편안하다. 화려하거나 기발하거나 심각할 게 없는 외관이다. 실용성과 단순미를 성실하게 구현해 어엿하다. 장욱진의 담박한 캐릭터를 고려한 설계자의 의도가 내비친다.
2014년 ‘세계 8대 신설 미술관’에 선정돼
이 미술관은 개관한 해인 2014년에 ‘김수근 건축상’을 받았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에 의해 ‘2014년 세계 8대 신설 미술관’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명민한 건축가가 지은 기념물로서의 미술관은 재미있다. 화가라는 주체의 성향, 그가 지향하는 예술세계에서 모티브를 끌어내 건축을 하기 때문이다. 즉 건축가는 화가를 닮은 집을 짓는 걸로 실력을 입증한다. 장욱진미술관은 이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장욱진을 잘 담은 그릇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람객은 장욱진을 표상하기 위해 설계자가 미술관의 내·외부에 매립해둔 유비(類比)와 알레고리를 찾아 즐길 만하다.
이 미술관의 외양은 사실 상당히 흥미롭다. 정원에 서서 바라보면 그저 좀 도드라지는 다각형 건물일 뿐이지만, 드론을 띄워 살펴보거나 뒷산 중턱에 올라 내려다볼 경우엔 다르다. 실을 꼬아 만든 노리개 매듭 형태라서 이색적인 건물의 전모가 비로소 부감되는 게 아닌가. 텅 빈 중정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각으로 뻗은 지붕마루의 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설계자는 ‘최-페레이라 건축’의 공동대표이자 부부 사이인 최성희와 벨기에 출신 로랑 페레이라. 이들은 설계에 나서기 전 장욱진의 작품들을 오랜 시간 바라보며 콘셉트의 맥락을 잡아나갔다. 숙고 뒤 얻은 결론은 화가의 작품에 숱하게 등장하는 집과 방의 개념을 건축에 도입하자는 것.
“가장 단순한 형태로 화가의 세계를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작고 단순한 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하나의 몸을 이루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겹겹의 공간이 아니라, 장욱진의 그림에 나오는 한옥 홑겹 방의 이미지로 이어지는 공간을….”(최성희)
장욱진은 명리(名利)에 무심해 붓 한 자루 손에 움켜쥐면 그만이었다. 목으로 털어넣을 술 한 잔이면 만족했다. 언젠가 그의 작품이 최고가(最高價)로 거래된다는 소리를 듣고서 하는 말이 이랬다. “그림에 가격을 매기다니. 난 슬퍼!” 그의 그림만 자연을 닮은 게 아니었다. 장욱진의 생태계 역시 자연에 가까워 탈속(脫俗)으로 순박했다. 설계자는 이러한 화가의 성정 역시 고스란히 건축에 반영했다.
“거창한 기념비적 건축물을 만들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장욱진의 정신과 맞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고급스런 자재 대신 가벼운 플라스틱 재료로 외벽을 마감한 이유가 이와 같다.”(로랑 페레이라)
‘단순하게, 그러나 조금은 복잡하게!’ 설계
미술관 내부 1층 전시실에선 기획전 ‘장욱진을 찾아라’가 펼쳐지고 있다. 국내외 화가들의 작품과 장욱진 그림을 비교 감상할 수 있는 전람회다. 피카소와 마티스의 소품도 두 점씩 걸려 한결 실속 있는 전시회다. 지하층에서부터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도 유심히 들여다볼 만한 경관이다. 단순미의 추구를 기조로 설계된 건물이지만 계단 부위만큼은 특별하다. 층계의 딱딱한 획일적 흐름을 배제, 폭과 커브의 각을 유연하게 구성해 리듬감을 부여했다. ‘주로 단순하게, 그러나 조금은 복잡하게!’ 설계자의 이와 같은 의도가 기교적으로 여실히 발현된 공간이다.
층계 공간은 벽면과 천장까지 온통 새하얀 색이다. 고로 2층 공간 전체가 지루한 화이트 큐브일 것 같은 예감을 하지만 전혀 아니다. 장욱진 상설전이 열리는 네 개의 전시장 모두 유별하니까. 모양새와 벽면의 색상, 조도(照度)까지 제각각이니까. 공통점이라면 모두 자그마한 방의 형태와 사랑방 같은 분위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오막살이 단칸 골방을 자주 그린 장욱진에게 바치는 오마주처럼. 덕분에 그림과 공간이 합을 이루었다. 작품 감상을 한결 실감나게 할 수 있는 정밀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장욱진의 작품은 커봐야 30호 미만이다. 손바닥 사이즈의 그림도 많다. 그러나 그림 안엔 장욱진의 우주가 들어 있다. 까치가 날고, 붉은 해가 뜨고, 나무 우듬지에 묻힌 아이가 낮잠을 때리고, 콧수염 달려 웃기는 호랑이가 어슬렁거리고, 옹기종기 모인 도토리들처럼 앙증맞은 일가족이 등장하고…. 장욱진이 관조한 자연과 인생의 다채로운 모습이 간결한 화풍으로 시각화됐다. 토속적인가 하면 모던하고, 관념과 직정(直情)이 교차하고, 문인화풍인가 하면 해학적 민화풍이다.
누가 뭐래도 장욱진의 그림은 정겹고 평화롭다. 우리가 놓치고 살지만, 실은 그리워 마음속에 도사린 삶의 근원적인 노스탤지어를 환기한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장욱진의 그림을 좋아한다. 작의를 짐작하기 어려워 득득 머리를 긁을 수밖에 없는 미술품들이 난무하지만, 그의 그림은 누워서 떡먹기처럼 쉽게 감상할 수 있으니 대승적이자 이타적이다. 그러나 쉽기만 하랴. 어린 것이 끼적인 낙서처럼 쉽게 다가오지만, 그림 안에 들어 있는 도(道)와 선(禪)까지 읽어내려면 숨이 차다. 어린애 시늉을 해 그린 그림과, 어린애로 돌아간 심상으로 그린 그림은 천양지차다. 세상과 사물의 이치를 알면 어렵고 복잡하던 것들이 쉬워진다 했다. 장욱진은 수행으로 그림을 놀고 싶었던 게 아닐까.
머리와 가슴을 쥐어짜도 찔끔 요실금처럼 새나오다 마는 게 예술이다. 장욱진도 괴로웠을 게다. 오죽하면 “나에겐 그림 그린 죄밖에 없다”고 했겠는가. 그림이 죄? 그림 그리는 사람이랍시고 부린 객기가 없지 않았겠으나, 그에게 많았던 건 고독의 죄가 아니었을까. 예술의 핏줄인 고독이라는 놈. 장욱진은 고독해서 술 마시고, 고독해서 서울대 교수직을 헌신짝처럼 벗어버렸다. 그러고선 해탈? 그림으로 볼 적엔 그렇다. 강퍅한 세상을 가뿐하고 따뜻하게 읽는, 장욱진의 저 헐거운 그림들의 정신을 보라.
전시실엔 장욱진의 대표작 ‘자화상’이 걸려 있다. 일화가 많은 ‘진진묘’(眞眞妙)도 볼 수 있어 반갑다. 간략한 선묘로 된 이 작품은 부인 이순경(현재 101세) 여사를 불상의 모습으로 그린 초상화다. 생활에는 대책 없는 헐렁이였던 장욱진이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건 부인의 조력 덕분이었다. 그런 아내가 불경을 외는 모습을 보고 별안간 그려낸 게 이 작품이다. 먹거나 마시지도 않은 채 1주일에 걸쳐서. 그림을 완성한 뒤엔 여러 달을 앓았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불안했던 아내는 작품을 팔아 없앴고, ‘진진묘’를 자신의 대표작으로 여겼던 화가는 이를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무엇에 그리 아쉬웠을까? 대표작이 사라져서? 아내에게 그림으로 모처럼 바친 애련(哀憐)의 마음을 몰라줘서?
장욱진 화백의 큰딸 장경수 선생
“아버지는 차라리 스님이자 자유인이었다”
“아버지는 숫돌에 몸을 갈 듯이 그림 작업으로 몸을 혹사했다. 밥벌이에는 무관심했다. 그게 미안해서 가족들에게 늘 저자세였다. 얼굴엔 항상 고독이 묻어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내 눈엔 얼마나 가엽던지….”
장욱진 화백의 큰딸 장경수(75, 장욱진미술관 명예관장) 선생은 아버지를 생각하면 자긍심과 함께 아직껏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아버지에게서 겪은 화가로서의 고통과 고독이 얼마나 뼈저린 것인지 또렷이 봤기 때문이다. 장 선생은 그런 아버지를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부녀간의 정이 아주 좋았다. 아버지가 말하길, ‘간이 맞는 딸’이라 했다. ‘경수가 화실에 다녀가면 냉수 한 사발 마신 것처럼 시원하다’고도 했다. 말이 많은 분은 아니었다. 차라리 지독히도 말이 없었지. 표현도 어눌했다. 술을 드시고 하는 얘기도 외마디 선문답 같은 것이었다.”
가령 어떤 식으로?
“‘너는 누구냐? 나는 또 누구냐?’ 뭐 그런.(웃음) 나도 그림에 생각이 있어 아버지에게 미대에 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돌아온 답은 ‘응?’ 하는 한마디였다. 나는 그게 ‘안 돼!’라는 응답임을 알아차리고 바로 뜻을 접었다. 화가로 사는 일의 어려움을 딸에게까지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읽어서였다.”
장욱진 화백은 40대 때 6년간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다 별안간 그만두고 나왔다. 왜 그랬다고 보나? 딸로서 불만을 터뜨리진 않았나?
“원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성품이셨다. 사표를 낸 걸 알고 가장으로서 무책임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대뜸 하긴 했다. 그러나 금방 후회되더라. ‘누군들 아버지처럼 감히 직장을 팽개칠 수 있을까? 아버지 같은 자유인이 아니면 누가?’ 그런 생각에 이르자 차라리 아버지가 대단해 보였다.”
장경수 선생은 최근 ‘내 아버지 장욱진’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비범한 한 예술가의 치열한 정신과 창작의 일상을, 가족과의 조용한 유대와 쓸쓸한 사랑을, 과도한 음주와 유랑하는 영혼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장욱진 화백이 한창 무르익은 작품을 하던 시기에 돌연 타계해 아쉬웠다.
“그림은 아버지의 내면이 표출된 한 부분일 뿐이다. 좋은 화가였으나, 더 정확하게는 스님이고 자유인이었다.”
가슴에 남은 아버지의 말씀이 있다면?
“세상과 사물을 데면데면하지 않고 친절하게 보라 하셨다. 친절하게 보면 거기에 모든 아름다움이 들어 있는 걸 알 수 있다며. 이 금언을 나는 좌우명으로 품고 산다.”
아버지 사후, 장경수 선생은 “한 1년쯤 울었던 것 같다”고 했다. 너무도 허탈해서. 그는 장욱진미술관이 “아버지의 분신과도 같다”고 한다. 영별(永別)은 슬프나 기억 속의 아버지는 영속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날씨가 더워질수록 입맛도 떨어지고 음식 만드는 일도 귀찮게만 느껴진다. 때론 주방 아이템을 바꿔보자. 공간이 산뜻해지면 요리하는 시간도 즐겁다. 사진 각 사 제공(가격은 각 사 홈페이지 판매 정가 기준)
수작업으로 만든 라탄 소재 의자로 시원해보이고 멋스러운 다이닝 공간을 꾸며보자. 깔끔한 모노톤 테이블과 수납장을 배치하면 한층 더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이케아, 닐소베 팔걸이의자 12만9000원, 팅뷔 테이블 19만9000원, 이도센 미닫이유리수납장 44만9000원.
코펜하겐 티볼리 공원에 있는 양파 모양 돔, 회전목마, 풍선 등에서 영감을 받은 조명. 3가지 컬러가 조화를 이룬 독특한 디자인으로 주방에 포인트를 주기 좋다. 100HOME, 루이스폴센 써크 램프 49만 원.
구리 전문 세공사들이 제작한 수제품으로 내부는 주석, 손잡이는 황동으로 만들었다. 은은한 광택이 특유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낸다. 윌리엄스 소노마 코퍼 캐니스터 7만9000원부터(사이즈별 상이), 코퍼 페이퍼타월 홀더 14만3000원.
수납공간 겸 조리공간으로 사용하는 독립형 아일랜드로 어디든 쉽게 설치 가능하다. 참나무무늬목이 조리대 상판으로 쓰여 내구성이 뛰어나다. 상단에 조리기구를 걸어두는 고리가 달려 있어 실용적이다. 이케아, 바드홀마 69만9000원.
우아하면서도 시원한 천연 대리석 소재와 목재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치즈 보드. 치즈나 과일 등 디저트를 플레이팅하거나 서빙할 때 활용하기 제격이다. 윌리엄스 소노마 마블/우드 치즈보드 스몰 4만7500원, 라지 7만9500원.
화려한 듯하면서도 깔끔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아이스 버킷. 여름철 음료를 즐기는 홈 바(home bar)를 꾸밀 때 놓아두면 더욱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포터리반 블리커 바 아이스 버킷 10만1000원.
곡선형 디자인에 파스텔 톤이 더해져 산뜻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유연성이 좋은 플라스틱 쉘 소재를 사용해 앉았을 때 불편함이 적다. 일룸, 세타플러스 의자 13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