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건강상태가 크게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노인이 절반에 이르고,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우울감을 느끼는 노인들도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노후 생활을 좋은 죽음을 위한 과정으로 보고 장례 위주로 죽음을 준비하는 경향도 보였다.
보건복지부가 7일 발표한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다고 응답한 노인은 49.3%로 절반에 가까웠다. 2008년 24.4%보다 2배 이상 높아졌다. 또 우울증상을 보이는 비율은 2008년 30.8%에서 2020년 13.5%로 절반이 넘게 줄어들었다. 우울증상 보이는 여성이 15.5%로 남성 10.9%보다 많았다.
1개 이상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 비율이 감소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 비율은 노인실태조사가 시작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계속 증가했다. 그런데 지난해 처음으로 줄어 2017년 89.5%보다 5.5%포인트 준 84%를 나타냈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이다.
2020년 노인들은 평균 1.9개 만성질병을 앓고 있다. 종류별 유병률을 보면 고혈압이 56.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당뇨병 24.1%, 고지혈증 17.1%, 골관절염 또는 류머티즘관절염 16.5%, 요통과 좌골신경통 10.0%으로 뒤따랐다.
과음주율과 영양 개선이 필요한 노인 비율도 줄었다. 과음주율은 2017년 10.6%에서 지난해 6.3%로 낮아졌다. 영양 개선 필요 비율은 2017년 19.5%에서 2020년 8.8%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흡연율도 2008년과 비교하면 소폭 줄었다. 흡연율은 2008년 13.6%에서 2020년 11.9%로 1.7%포인트 감소했다. 운동실천율은 2008년 50.3%에서 2017년 68%까지 늘었다가, 2020년 53.7%로 크게 떨어졌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비대면 상황이 발생하면서 활동에 제한된 탓으로 분석된다.
2020년 노인들의 건강검진 수진율은 다소 낮아졌으나 치매검진 수진율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검진율은 2014년 조사까지 계속해서 상승하다가 2017년 조사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건강검진 수진율은 77.7%로 2017년 82.9%보다 5.2%포인트 줄었다. 2017년부터 조사가 시행된 치매검사 수진율은 2017년 39.6%에서 2020년 42.7%로 소폭 증가했다.
노인 74.1%는 노인 연령기준을 '70세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 노인 20.8%는 대중교통 이용시 차별을 경험했으며, 식당이나 커피숍에서는 16.1%, 의료시설을 이용하면서는 12.7%가 연령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은 좋은 죽음(웰다잉)을 희망하지만 아직은 장례식 외 준비사항은 초보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생애말기 좋은 죽음은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노인이 90.6%로 가장 많았다. 이 외에도 신체적·정신적 고통 없는 죽음 90.5%, 스스로 정리하는 임종 89.0%, 가족과 함께 맞이하는 임종 86.9% 등이 높은 응답을 얻었다.
죽음에 대한 준비로 장례를 준비(수의, 묘지, 상조회 등)하고 있다는 응답이 79.6%로 가장 높았다. 이 외에 유서작성, 상속처리 논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장기기증서약 등 자기결정권을 행사한다는 답변이 24.7%를 차지해 전체적으로 장례 관련 비율이 3배 이상으로 매우 높았다.
노인 85.6%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반대했다. 연명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 기간만 연장하는 조치들을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 의사를 사전에 직접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같은 실천율은 4.7%에 불과했다. 실천율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나 캠페인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노인 절반은 노후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절반에 가까운 49.6%가 삶의 전반에 걸쳐서 만족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영역별 만족도를 살펴보면 건강상태 50.5%, 경제상태 37.4%, 사회·여가·문화활동에 대한 만족도가 42.6%였다. 배우자 관계는 70.9%, 자녀관계는 73.3%, 친구·지역사회와 관계는 58.9%에 달하는 노인들이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상태와 경제상태에 대한 만족도도 2014년도 조사 이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상태 만족도는 2017년 37.1%에서 2020년 50.5%로 13.4%포인트, 경제상태 만족도는 28.8%에서 37.4%로 8.6%포인트 높아졌다. 배우자와 자녀, 지역사회의 관계만족도는 이전과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4060 시니어들에게 골프 연습장은 일종의 복합문화공간이다. 단순히 골프라는 운동을 즐길 뿐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연습 도중 서로 조언을 통해 자세를 고쳐 잡기도 한다. 그렇게 인생의 피로를 건강하게 해소하던 공간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골프 연습장 폐업이 줄을 이었다. 타석 간 거리가 좁은 연습장에서 다수의 사람과 한데 모여 골프를 치는 것이 코로나19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존재해서다.
그러나 야외·스크린 골프장 매출은 늘고 있다. 스크린 골프장은 단순히 '연습'의 개념이 아니라 지인들과 독립된 공간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또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자 시니어들의 취미였던 골프가 MZ세대들 사이에도 유행하면서 비교적 저렴한 스크린 골프장이 성행하는 현상도 골프 시장의 흐름에 한몫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6일 발표한 ‘코로나19가 갈라놓은 골프 연습장과 스크린 골프장 차별화’ 보고서에 따르면 5월 기준 전국에서 영업 중인 골프 연습장은 9317개다. 보고서는 최근 5년간 약 3000개의 골프 연습장이 폐업했다고 분석했다. 이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000개가 지난해 문을 닫았다.
최근 10년 동안 골프 연습장 창업 수가 폐업 수의 연평균 1.5배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폐업이 창업보다 5배를 웃돌았다. 보고서는 “골프 연습장의 특성상 타석 간 간격이 다소 좁고, 불특정 다수와 줄지어 연습하기 때문에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방문객이 줄면서 폐업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스크린 골프장 업체 골프존은 지난해 매출이 2019년보다 21.2% 늘어난 2810억 원을 기록했다. 소수 지인과 한 공간에 있으면 감염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는 인식과 새로 골프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실외 골프장보다 스크린 골프장에 저렴한 가격으로 접근하기 쉽다는 점 등이 스크린 골프장 영업 호조의 배경으로 꼽혔다.
2020년 연간 골프장 이용객 수(4670만 명)도 2019년(4170만 명)보다 12% 증가했다. 골프가 실외 활동의 하나로 감염 확률이 낮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코로나19로부터 타격을 거의 받지 않았다.
보고서는 “골프 연습장은 코로나19에 따른 창업 감소와 폐업 증가의 영향으로 업황의 단기적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골프 산업의 전반적 성장과 신규 골프 입문자 증가로 코로나19의 진정 시기와 함께 골프 연습장의 성장세는 회복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조산사 엄순자(68, 청주 엄조산원) 원장은 40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그간 받아낸 신생아 수가 자그마치 7000여 명에 달한다. 이 바닥에서 그녀를 능가할 고수가 드물다. 세상은 요상하게 돌아가 인명을 경시하는 풍조까지 만연하지만, 출산만큼은 훼손될 수 없는 성역이다. 만약 자비로운 신이 존재한다면 신생아가 출현하는 순간엔 친히 출장을 나와 참견하고 싶어 할 테다. 세상에 태어나는 새 생명은 여하튼 무탈해야 하며, 사랑을 받아야 하며, 축복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고귀한 출산을 조력하는 조산사란 신성한 직업이다.
엄순자 원장이 조산사로 일하기 시작한 건 20대 중반부터다. 아기를 받는 일에 딱히 매력을 느껴 선택한 직업은 아니었다지. 간호대학을 졸업했으니 간호사로 취업하는 게 순서였으나 그녀는 조산사를 택했다. 환자들을 상대하는 간호사보다 산모들을 돕는 조산사 일이 한결 수월할 것 같아 택한 길이었다. 그게 평생의 외길이 될 줄은 몰랐더란다. 또 조산사 일에 그토록 빠르고 깊게 심취하게 될 줄도 몰랐다. 생명의 출산에 간여하며 신비감과 경이로움, 그리고 보람과 성취감으로 자족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일종의 열광적인 몰입을 했던 모양이다.
처음 한동안 그녀는 산부인과 병원에 취직해 조산사 일을 했다. 경험과 실력을 키운 수련기였다. 그러다 28세에 독립해 조산원을 개업했으며 이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조산원은 청주시의 구시가지 대로변에 있다. 번듯한 4층 건물이다. 1991년에 부지를 사들여 지은 집이다. 출산율이 높았던 과거에 누린 조산원의 성업(盛業)을 증명하는 건물이다. 예전엔 조산원이 많았다. 그러나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하나둘 사라져 이제는 눈을 씻고 찾아도 도무지 볼 수 없다. 산부인과 수의 격감과 마찬가지로 조산원의 퇴출이 가속됐던 거다. 대한조산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16개소의 조산원이 남았을 뿐이다. 엄조산원은 충청 지역에 남은 유일한 조산원이다.
“산모를 가장 많이 받았던 건 1980년대였다. 한 달에 평균 40여 건, 최대 62건을 받기도 했다. 하루에 7명의 아기를 받아낸 진기록도 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줄어도 너무 줄었다. 월 2, 3건의 일이 있을 뿐이니까. 많아야 5건이더라. 그러나 이 나이에 여전히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과거와 다르게 여유시간이 충분한 덕분에 산악자전거를 즐길 수 있어 너무 좋다. 예전엔 휴일도 밤낮도 없이 24시간을 대기 상태로 지냈거든.”
분만은 ‘피와의 전쟁’
조산원 내부를 볼까. 약간의 의료기기들이 보이는 진료실과 둥근 욕조를 설치한 수중분만실, 소파가 놓인 상담실, 그리고 여러 개의 정갈한 방으로 이루어졌다. 진료실만 아니라면 일반 가정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색이라 편안하고 따사롭다. 그러나 수천 명의 산모들이 이곳에서 격심한 산통을 치르며 출산했을 걸 생각하자니 마치 태풍이 훑고 지난 자리를 바라보는 것처럼 애잔하다. 무참한 진통을 거쳐 마침내 기쁜 순산을 한 산모들의 눈물과 희열이 서린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다.
“내과나 외과 의사는 한 사람의 치유를 도모하지만 조산사가 돕는 건 두 생명이다. 산모와 아기, 두 생명을 동시에 조력한다는 점에서 조산사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한결 엄중하다고 느낀다. 귀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베테랑 조산사는 초심자와 어떻게 다른가?
“분만은 한마디로 ‘피와의 전쟁’이다. 분만 과정에서 가장 위험한 게 산모의 과도한 출혈이다. 노련한 조산사는 이 출혈을 최소화할 줄 안다. 산모의 상태를 미리 정확하게 판단하고 상황을 예측, 한 템포 빠르게 대처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출혈이 전혀 없는 출산도 가능한가?
“출혈은 회음부 열상(裂傷)이나 태반이 떨어진 자리에서 야기된다. 그런데 드물게나마 분만 직후 피 한 방울 안 흘리는 산모들이 있다. 이걸 우리는 ‘자연출산의 꽃’이라 부른다. 이런 출산을 볼 때면 나는 대단한 기쁨을 느낀다. 조산사의 기량과 산모의 훌륭한 의지가 합세해 만들어내는 작품이기 때문이지.”
출혈이 심해 위급한 경우엔 어떤 조처를 하지?
“완전한 자연출산을 추구하는 조산원은 산부인과 병원과 달라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 않다. 의료 시스템에 의지하는 분만은 자연출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혈이 너무 심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수축제를 주사해 응급조치를 하거나 연계된 산부인과 병원으로 이송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돌발 상황은 없었나?
“유능한 조산사는 산모의 배만 보고도 태아의 체중을 정확히 알아내거나 출산일을 오차 없이 예측한다. 이처럼 숙달된 기능을 발휘하기에 돌연한 사고가 발생할 수 없는 거다. 게다가 조산원에 오기 전에 산모들은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검사 등으로 충분한 사전 점검을 한다. 따라서 애초에 문제 발생의 소지가 없다. 매우 드문 경우지만, 산모나 태아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을 때엔 아예 받지 않는다.”
신조차 실수를 한다지? 가령 당신의 실수로 발생한 사고는 없었는지, 그걸 묻는 거다.
“그런 사고가 났다면 지금까지 어떻게 문을 열고 있겠나?(웃음) 전반적인 상태가 좋은 산모들이 조산원을 찾아오고, 상태가 위험해 제왕절개 등이 필요한 산모들은 산부인과로 간다. 조산원에선 사고 가능성 자체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일체의 난폭한 분만을 배제해
조산원은 산부인과와 달리 전적으로 자연출산을 한다. 그게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나그네인 인간의 생태에 알맞아서다. 자연출산이란 가정에서 분만을 했던 그 옛날의 출산 관습을 본으로 삼는 방식이다. 옛적의 마을엔 아기를 잘 받는 할머니들이 하나쯤은 흔히 있었다. 고대부터 존재한 ‘산파’가 쪼르르 달려와 출산을 돕기도 했다. 그러다 산부인과 병원의 출현과 활갯짓으로 풍속이 싹 바뀌었다. 대체로 1970년대부터 대부분의 산모들이 산부인과 의사의 기술과 의료 시스템에 출산을 맡기기 시작했다. 엄순자 원장은 이와 같은 풍습의 정착에 애석함을 느낀다. 자연출산으로 회귀하는 게 섭리에 맞다고 본다.
“여러 나라의 조산사들이 모이는 국제학술세미나에 참석해보면, 선진국에선 병원에서의 출산보다 자연출산을 선호하고 지원하는 경향이 뚜렷한 걸 알겠더군.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르다. 이미 오래전부터 임산부의 99%가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았으며, 지금도 99%가 그렇게 한다.”
산부인과 출산을 선호하는 이유는?
“갖가지 의료 장비와 약물이 완비돼 더 안전하다고들 본다. 촉진제 주사나 무통 주사로, 또는 마취를 통해 한결 편한 분만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거다. ‘하다 하다 안 되면 까짓 것 제왕절개로 낳지 뭐! 괜히 조산원에서 생고생할 게 뭐야?’ 다들 그런 생각을 한다. 조산원보다 저렴한 비용도 고려하는 것 같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판단은 합리적인 것 같다. 아닌가?
“안전하기는 조산원도 사실상 마찬가지다. 조산원과 산부인과의 가장 다른 점은 조산원은 응급상황 외에는 약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지. 무통 주사나 촉진제가 산모와 아기의 건강에 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조산원에선 흡입분만도 하지 않는다. 일체의 난폭한 분만을 배제한다. 이러한 특장이 자연출산의 미덕이며, 산모는 물론 아기의 인권과 건강한 심신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자연출산의 이러한 지향에 대한 공부와 이해, 철학이 있는 산모들이 조산원을 찾아오는 것이고.”
산모들이 심적 부담을 크게 느끼는 ‘굴욕 3종 세트’라는 게 있더라.
“면도를 통한 사전 제모, 관장, 내진, 이 세 가지에 산모들은 심한 수치심과 두려움을 느낀다. 조산원에선 이것들을 하지 않는다. 분만 직전 미리 회음부를 절개해두는 행위도 하지 않는다.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가장 자연스러운 출산을 구사하는 거다.”
아기가 나오자마자 번호표를 매단 바구니에 담아 신생아실로 옮기는 산부인과의 방식은 이해하기 어렵다.
“조산원에선 산모와 신생아를 떼어놓지 않는다. 캥거루 케어라고, 분만 직후 아기를 엄마의 배 위에 밀착시켜 스스로 젖꼭지를 찾게 하고, 긴 스킨십을 하게 해준다. 이 과정에는 아빠도 적극적으로 참여시킨다. 이와 같은 가족적 유대 맺기는 출산의 전 과정을 통해 지속되고 강화된다. 산모와 아빠가 함께 물에 들어가 출산하는 수중분만을 통해 이 유대감은 극에 달한다. 수중분만을 하는 케이스는 많지 않지만.”
요즘은 산부인과에서도 ‘자연주의 출산’을 표방한다.
“일부 병원에서 그리하지만 여차하면 용이한 분만을 위해 관행적인 의료 시스템을 바로 동원하는 걸로 알고 있다. 조산원의 자연출산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통이 격하게 오더라도 호흡법으로 고통을 줄여주며, 끊임없이 기다린다. 병원에서처럼 서두르지 않는다는 거!”
그녀는 아기 낳기를 충분히 뜸들이고서야 제대로 밥이 익는 일에다 빗댄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 이게 건강한 출산의 비결이란다.
“산모의 안전과 건강은 물론, 이상적인 상황에서 아기가 나올 수 있도록 차분히 기다려줄 줄 알아야 건강한 출산이 가능하다. 이 기다림의 과정에서 실로 신비한 경험도 했다. 가령 역아(逆兒, 거꾸로 자리 잡은 태아)의 경우 산부인과에선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마련이지만, 나는 역아가 스스로 바른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한번은 무려 6일간 기다리자 드디어 태아가 자세를 바로잡더라. 참으로 경이로웠다.”
산모도 조산사도 꾹꾹 눌러 견디는 기다림이 있고서야 신생의 환한 아침이 온다. 아프고 서러워도 기다릴 줄 알아야 사랑이라 했던가. ‘전쟁’에 가깝다는 출산의 압박감을 기다림으로 완화해 이윽고 평화로운 지평에 도달하는 이치. 이 기다림의 묘미야말로 삶의 전반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이거 아나? 뱃속의 아기는 천재라는 거!”
정말로?
“산부인과에선 산모의 골반이 좁아 아기의 머리가 빠져나오지 못할 경우엔 별수 없이 제왕절개 수술을 한다. 그러나 내 경험에 따르면,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아기가 결국은 자력으로 빠져나오더라. 좁은 골반의 폭에 맞춰 아기 스스로 제 머리통을 길쭉하게 늘려 무사히 빠져나오는 거다. 그러곤 바로 머리 모양이 원상회복된다. 이게 천재가 아니고선 가능치 않은 일이라는 얘기다.(웃음)”
어떤 상황에서도 순산을 거두는 당신도 보통이 아니다.(웃음)
“때로 과한 칭찬을 듣곤 했다. ‘원장님에게서 후광이 비쳤어요. 신의 손길을 느꼈어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가슴이 벅차게 뛰더라. 그러나 난관을 견뎌내고 무탈한 출산을 하는 산모보다 내가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아기 역시 위대하다.”
그녀는 자기의 조력으로 2대에 걸쳐 출산을 한 이들을 잊지 못한다. 차후 3대로 이어지는 출산을 돕고 싶다지. 한 20년은 기다려야 이룰 수 있는 꿈이다. 야생처럼 당당한 자연출산의 조력에 도가 튼 사람의 꿈이 이렇게 야무지다.
일연 스님(1206~1289)은 몽골의 침입이라는 국난에 맞서 한민족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스님은 입적하기 전 5년 동안 5권 2책의 ‘삼국유사’를 완성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며 나름의 답을 했다. 정사에서는 볼 수 없는 한민족 역사의 대기록이다. 우리의 반만년 역사를 밝힌 고조선과 단군신화, 14수의 신라 향가는 고대 문학사를 실증하고 있으며, 이 땅의 사람들이 남긴 기억을 모아 통일된 서사를 완성했다.
이처럼 한민족 정신사에 족적을 남긴 일연 선사의 자취는 군위의 인각사(麟角寺, 사적 제374호)에 남아 있다. 그의 생애를 기록해두었다는 보각국사비(普覺國師碑)를 보러 가자. 인각사로 가는 여행은 일연 스님의 정신과 그 비문에 얽힌 간곡한 마음 하나 알아보려고 떠난다.
인각사의 비문에 존재한다는 문장을 마음속에서 떠올려본다. 그 비문의 이름은 보각국사비다. 당시 이름난 민지(閔漬)라는 문장가가 글을 지었고, 왕희지의 서체로 4000여 자를 집자했다고 한다. 인각사라 자리한 군위로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가는 김에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왔다는 혜원(김태리 분)의 근사한 집도 들러보고 추억의 기차역 화본역도 다녀왔다. 카메라와 번역본 ‘삼국유사’ 한 권을 배낭에 짊어지고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를 거쳤다. 과연 온전히 이 글의 주인공의 드높은 정신세계를 느끼고 비문을 찾아볼 수 있을까? 비에 새겨졌다는 일연 스님을 찬하는 민지의 문장이다.
“말할 때 우스개가 없고(語無戱謔), 꾸며대지 않는 성품이며(性無緣飾), 참된 마음으로 사물을 대했다(以眞情遇物). 여럿이 함께 있어도 홀로인 것 같았으며(處衆若獨), 높은 위치에서도 낮게 처신했다(居尊若卑). 스승에게서 배워 공부하지 않고(於學不由於師), 저절로 환하게 알았다(自然通曉).”
인각사를 빛내주는 것은 바로 학소대에 노니는 학처럼 고고한 선사의 정신세계다.
참된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는 힘은 일연 스님의 끝없는 수행의 결과가 아닐까?
경북 군위는 세간의 시선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고장이다. 대구에서 가수 김광석 거리와 달성공원을 둘러보고 하루의 일정을 보낸 후 다음 날 아침 군위로 향했다. 간밤에 눈이 내려 앞산 정상이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시내는 금세 녹았지만 대구를 분지로 만들며 빙 둘러 병풍처럼 서 있는 산들은 만년설을 두른 듯 하얗다. 군위 방면에 있는 팔공산의 설경은 겨울답게 눈이 부시다. 대구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힘이 눈으로 더욱 영험해진 듯하다.
일연 스님이 말하고 싶은것은?
팔공산의 품은 넓고도 높아 군위로 향하는 내내 시선을 머물게 한다. 군위로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추위 탓인가, 코로나19 때문인가? 텅 빈 들판과 낙엽이 떨어져 벌거벗은 겨울나무 숲은 조용히 추위를 견디고 있다. 응달에는 아직도 하얀 눈이 쌓여 있다. 인각사로 향하는 지방도로는 산길로 접어들어 굽이진 길을 간다.
영천 방향으로 산길을 위태롭게 오르내리며 가는데 영락없는 산촌 풍경이다. 이런 궁벽한 산골에서 고려의 국사였던 일연 선사가 하안소(下安所)로 인각사를 선택하고 ‘삼국유사’의 저술을 마무리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는 얼마나 멀고 먼 땅이던가? 어렵게 산길을 거쳐 왔어도 막상 사찰은 평지에 있었다. 화산의 봉우리 끝에 상상의 동물인 기린의 뿔과 닮은 곳에 세웠다 하여 인각사라 명명했다 한다. 절의 맞은편 위천(渭川)이 흘러가는 강변에는 학이 깃들어 산다는 학소대(鶴巢臺)가 우뚝하다. 일반 여행객이라면 절에 눈길을 주기 전에 틀림없이 이 절벽에 주목할 만큼 절은 평범하다.
고려의 명승 일연 스님이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한 천년 고찰 인각사도 온통 추위 속에 서 있다. 인각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에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 이곳에서 구산문도회를 두 번이나 개최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전국 불교의 본산임을 알 수 있다. 인각사 경내에는 보물 제428호인 보각국사탑과 비가 있다.
도로변 평지에 위치한 인각사에는 엄청난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마침 주지 스님은 본찰인 은해사에 가서 부재중이었다. 직원에게 딸기 공양을 맡기러 컨테이너로 된 종무소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순간 발이 얼어붙는 듯했다. 계곡 바람이 차가웠다. 문을 닫고 종무소 안으로 들어가니 시골집 아랫목처럼 따뜻했고 뜨거운 차는 반가웠다. 부처님 품속에라도 들어온 느낌이었다.
다시 밖으로 나와 보각국사탑과 비를 본다. 비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몇 동강 나 있고 글자는 알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30여 개의 탁본이 남았고 금석학자들의 노력으로 대부분 해독이 가능하다고 한다. 글자가 명필 왕희지체여서 인기가 많아 수많은 탁본을 떴으며, 과거를 보는 선비들이 효험을 보려고 비를 갈아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에게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연 스님이 남긴 민족 역사의 대기록 ‘삼국유사’
민지의 비문으로 일연 스님을 기억한다면 우리 가슴에 새겨진 영원한 비문은 ‘삼국유사’다. 40년간의 몽골항쟁 후 ‘삼국유사’가 쓰였다. 외세 침략을 극복하고 민족 자존감을 고취하기 위해 한민족의 자존 용기와 기백을 그렸다. 스님이 활약하던 시기는 무신정권이 들어서고 몽골과의 길고 긴 항쟁을 하던 시기였다. 결국 장년기에 들어서는 원의 간섭을 받던 시절이었다. 스님은 대장경 간행에도 관여했으며, 출가 시절부터 전국의 사찰을 다니면서 민초들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았고 누구보다 그들의 힘을 믿었다. 국사라는 안락한 자리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효도의 예를 다했으며, 당시 시대의 과제를 피하지 않고 민족혼을 일깨웠다.
700여 년 전 일연 스님이 남긴 민족 역사의 대기록 ‘삼국유사’, 마지막 생을 불태운 그의 기록은 민족의 뿌리를 기억하게 하는 보물이다.
지금 이 시대에 왜 ‘삼국유사’이고 보각국사비인가? 인간이 되려고 인고의 21일을 견딘 웅녀의 끈기와 태백산 신단수 아래 나라를 세우며 내세운 홍익인간 같은 사상이 필요한 때다. ‘삼국유사’에는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한민족 최초의 스트리퍼라 불리는 정수 스님의 이야기는 상징적이다. 한겨울 길거리에서 만난 산모에게 옷을 다 벗어주고 간 스님의 이야기는 너무나 인간적이다. 일연 스님의 생애를 새긴 보각국사비 양기(陽記)의 마지막 문장은 ‘온 산하가 다 불타 없어지더라도, 이 비만은 홀로 남아 전해주소서’라는 뜻이다. 비록 비는 부서졌어도 일연 스님이 말하고자 했던 뜻과 문장은 향기롭게 남아 시대의 등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군위 여행의 맛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반으로 많은 저작을 남긴 이윤기 작가의 고향이다. 그도 자신의 고향이 ‘삼국유사’의 고향인지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이 고을의 대표 브랜드는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다. 군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김수환 추기경의 자서전을 읽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 지역의 사계와 먹거리를 요리로 표현한 김태리 주연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가면 더욱 알찬 여행을 할 수 있다. 영화는 경쟁적 도회의 삶에 지치고 허기져서 귀향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추억 속의 시루떡은 달지 않은데 단맛이 나고 지금 먹는 떡은 짜지 않은데 짠맛이 난다.” 영화는 엄마가 딸에게 주는 인생 레시피다. 군위에서 듣는 일연 스님의 이야기는 시대와 역사가 주는 가르침이다. 군위 여행은 ‘삼국유사’라는 거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뜻밖의 깊은 맛이 난다. 우울함을 단번에 행복감으로 바꿔주는 영화 속 음식 크렘 브륄레처럼, 코로나19 시대 위기를 극복하는 ‘삼국유사’의 비기를 찾아가 보자.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 신종 코로나 팬데믹은 일상 속에서 즐겨볼 수 있는 여행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일상 속 여행. 홀로이 걸어서 다녀오기, 또는 자전거나 자동차로 한두 시간 내에 돌아올 수 있는 일종의 근교 여행, 마이크로 투어리즘이 대세인 요즘이다. 마이크로 투어라는 산뜻한 형태로 가뿐하게 즐길 수 있으니 나서는 기분도 가볍다.
이제 3월이다. 3.1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막상 천안의 독립기념관도 함께 떠올려 보지만 선뜻 나서지 못한다. 늘 그래 왔다. 언제든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거리가 멀다고 핑계 댔고 도로가 막힌다는 이유도 있었고 볼거리가 더 많은 곳이 있다 해서 밀려나기도 했었다.
독일 베를린 여행 중에 브란덴부르크 남단의 숲 쪽 방향의 추모공원 홀로코스트에 들른 적이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고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를 드러내며 오늘을 사는 그들의 자세가 신뢰를 갖게 했다. 그래서 독일의 현재가 있음을 느끼게 했던 곳이었다. 역사 왜곡에 안간힘을 다하는 일본의 모습이 겹쳐졌다. 이렇게 역사를 잊지 않고 개방하여 널리 알리는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Memorial)까지 가보았으면서 가끔씩 이렇게 눈앞의 것을 무심히 지나치곤 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역사적 사실과 그 정신을 가끔씩이라도 기려볼 일이었다.
독립기념관은 천안의 목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을 기준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만 달리면 김포에도 독립운동기념관이 있어서 가까이서 쉽게 그 의미를 돌아볼 수 있다. 물론 규모는 많이 다르다. 그뿐 아니다. 독립만세를 불렀던 천안의 아우내 장터와 같은 김포 오라니 장터에 만세운동의 현장이 있다. 경서 지방의 대표적인 장터였던 김포 양촌리의 오라니 장터와 월곶면 군하리 장터에서 3.1 만세운동을 조직적으로 벌였다는 사실도 새롭다.
시절 탓인지 독립운동기념관은 한적하다. 전시장 입구에서 맞아주는 멋진 영상의 선명한 태극기가 반갑다.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이와 전시실을 묵묵히 오가는 어르신이 눈에 들어온다. 만세운동을 재현한 미니어처와 캐릭터들이 첨단의 세상에 사는 이들에게 지루함을 덜어준다.
독립운동기념관 건물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획전시실, 사료열람실, 영상실, 로비, 상설전시실로 구성되었다. 잊고 살았던 시간을 재조명해 볼 기회다. 2층의 청소년 문화의 집이나 북카페 등은 코로나의 현실로 지금은 열리지 않지만 1층의 전시실만으로도 볼거리가 쏠쏠하다.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3.1 운동 이야기는 물론이고, 김포지역에서의 3.1 만세운동과 항일의병활동, 그 배경과 특징, 발발 과정을 음성이 포함된 영상과 함께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김포는 독립운동가와 항일의병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리고 김포 전 지역에서 주민들의 3.1 만세운동이 전개될 만큼 큰 규모로 투쟁했던 유서 깊은 고장이기도 하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약 2천만 명이었는데 3.1 독립운동 참여 인원이 2백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일제의 총칼 앞에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쳐댔던 순박했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비폭력 저항의 모습에 가슴 뭉클해진다.
이 모든 역사의 흔적들이 성실히 모아졌다. 당시 일본군들의 야만적이고도 처참한 만행을 볼 수 있고 독립군들의 유물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을 한 바퀴만 돌아도 당시의 독립을 향한 열망이 전해진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멋지게 조성해 놓은 기념관이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음을 모르고 지냈다니 이런 무심함이 어디 이뿐일까만.
독립의 함성이 느껴지는 전시물을 감상하다 보면 나라를 구하기 위한 그분들의 아픈 과거가 눈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특히 1910년 안중근 의사가 32세 나이로 뤼순감옥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받은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글 앞에서는 심장이 멈추는 듯하다.
“나라를 위한 죽음이라면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벌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글이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서신이 될 것이다. 여기 너의 수의를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 이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서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서서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겠지만 이런 기념관 관람만으로도 잊고 지냈던 시간을 되짚어 만날 수 있으니 다행이다. 덕분에 저절로 호국과 애국의 DNA를 되살려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기획전시실은 매 주기마다 다양한 주제로 기획전시를 열고 있다. 3.1 만세운동의 태극기 물결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장이다. 독립의 역사를 쉽게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결집력을 보여준 태극기의 다양함이 펼쳐진다.
‘역사가 담긴 태극기’ 전의 기획전시실이었다. 태극기의 상징성과 태극문양의 의미, 독립운동의 간절함을 담은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태극기 목판 등 저마다의 의미가 담긴 태극기들, 역사와 용도가 다양한 태극기의 면면을 알아가는 게 새롭고 흥미롭다. 한 점 한 점 아프고 묵직한 의미를 담은 태극기들과의 조우가 독립을 향한 당시 우리 국민들의 3.1 운동 정신을 절절히 전한다.
기념관 주변 언덕 위로 조성된 공원이 다시 찾은 평화로움을 대신하는 듯하다. 산책하듯 걸으며 3.1 운동 기념비와 위령탑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쳐 나라를 지키려고 항거했던 이들을 비로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기념관은 소박하지만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 속에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가득하다.
기념관 가까이에 있는 오라니 장터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축제가 열린다. 그 날의 함성을 떠올리며 3.1 만세운동 퍼레이드를 하고 다채로운 행사를 한다. 그렇게 3.1 운동 100년의 기억을 되살린다. 살면서 가끔씩 잊고 지냈던 것을 모두 함께 되짚어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김포의 독립운동기념관과 주변으로는 산성이나 돈대, 다양한 갤러리와 문화시설이 포진해 있다. 봄 햇살이 따사로워지면 소풍삼아 찾아볼만 하다. 조용한 하루나들이 코스로, 역사여행으로 의미 있음을 알아차렸다면 가볍게 나서보아도 좋을 듯. 한나절이면 된다.
주변 볼거리
김포 아트빌리지 아트센터 & 김포 인삼쌀맥주 갤러리
백제 고대국가의 시원(始原)으로 추측하는 김포 모담산 운양동 자락에 위치한 김포 아트빌리지, 그곳에 수준 높은 전시를 볼 수 있는 아트센터가 있다. 쾌적하고 모던한 현대식 예술공간에서 감상하는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 공간이 고퀄리티다. 훌쩍 떠나온 하루 외출에서 품격 있는 시간 획득이다.
아트센터 앞의 너른 야외 공간과 전통놀이체험마당, 주변의 전통한옥 숙박시설, 맛집 등 누구나 언제라도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용요금 무료, 주차무료.
품질 좋은 쌀과 인삼의 특산지인 김포, 김포의 6년근 인삼과 김포쌀로 빚은 인삼쌀맥주와 인삼 전시장도 둘러볼만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지난해 고용 현황은 IMF 외환위기 이래 최악의 국면을 맞이했다. 60세 이상 고령자를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취업자 및 고용률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2020년 총 취업자는 2690만4000명으로, 2019년 대비 21만8000명이 감소했다. 전년 대비 취업자 수가 감소한 것은 2009년(8만7000명) 이후 11년 만이며, 감소 규모는 IMF 외환위기가 있던 1998년(127만6000명) 이후 가장 컸다.
2020년 15세 이상 인구는 4478만5000명으로 전년 대비 28만1000명이 증가했으나, 이중 경제활동인구는 2801만2000명으로 전년 대비 17만4000명이 감소했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62.5%로 전년 대비 0.8%p 하락했는데, 연령대별로는 유일하게 60세 이상이 상승세(1.0%p)를 보였다.
연령대별 상세 구간을 살펴보면 60~64세의 경우 0.4%p, 65세 이상의 경우 1.3p%로 고령층일수록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았다. 아울러 60세 이상 남녀를 구분하는 항목에서는 남성이 0.6%p, 여성이 1.4%p로 중장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더욱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취업자 및 고용률 면에서도 60세 이상만이 전년 대비 상승세를 기록했다. 취업자 수의 경우 60세 이상의 경우 37만5000명 증가했으나, 50대(8만8000명)를 비롯한 전 연령대에서 각각 15만 명 내외의 인원이 감소했다. 고용률 역시 60세 이상에서는 전년 대비 0.9%p 상승했으나 그밖에 연령대는 모두 하락했다. 특히 한창 취업 준비에 박차를 가할 25~29세의 고용률이 –2.8%p로 감소 폭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앞서 경제활동 참가율과 마찬가지로, 고용률 역시 60세 이상 중에서도 65세, 70세 이상의 고령자에서, 그리고 남성보다 여성에서 상승폭이 더 높았다. 고용률 수치를 살펴보면 60~64세의 경우 0.6%p, 70세 이상의 경우 1.2%p가 상승했다. 또, 60세 이상 여성 고용률은 1.2%p로, 동일 연령대 남성(0.7%p)에 비해 높았다.
한편 직업별 취업자를 나타낸 통계에서 전년 대비 증감을 살펴보면 ‘단순노무종사자’(18만5000명, 5.2%)가 가장 높았고, 농림어업숙련종사자(5만1000명, 3.8%)가 뒤를 이었다. 두 직업을 제외한 그 밖에 판매종사자(-13만4000명, -4.4%), 서비스종사자(-6만9000명, -2.2%) 등은 모두 감소세를 보였다.
한국표준직업분류표에 따르면 ‘단순노무 종사자’에 해당하는 직무로는 ‘청소 및 경비 관련 단순 노무직’, ‘가사, 음식 및 판매 관련 단순 노무직’, ‘운송 관련 단순 노무직’ 등이 있다. 가령 배달원이나 포장원, 경비원, 가사도우미 등인데, 은퇴 후 이러한 분야에 뛰어든 중장년 구직자의 증가가 경제활동 및 고용률 등의 수치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60세 이상 경제활동인구 및 취업자 수의 상승세는 2021년에도 지속할 전망이다.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따르면 2021년 정부는 3조 2000억 원 예산으로 직접일자리 104만2000개를 창출을 목표로 하는데, 이중 80만개 가량이 노인 일자리로 채워질 계획이다. 전년 대비 노인 일자리 규모는 6만 개, 예산은 1137억 원이 추가된 것이다.
아울러 지난해 발표한 기획재정부 예산안에서도 2020년 대비 1008억 원을 추가 책정한 3602억 원이 중장년의 재기를 돕는 일자리 지원 패키지를 위해 쓰인다. 이러한 흐름에 중장년 개인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현재 늘어난 단순노무직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군으로의 참여 및 고용률 상승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의 에세이스트 이노우에 가즈코는 자신의 저서에서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는 50대부터 덧셈과 뺄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안 쓰는 물건이나 지나간 관계에 대한 집착은 빼고, 비운 공간을 필요한 것들로 채워나갈 때 보다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잘 빼고, 잘 더할 수 있을까?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브라보 독자를 위해 인생에 필요한 여러 정리법을 3회에 걸쳐 안내한다. ‘비움 라이프’의 마지막 글에서는 죽음을 성찰하고 삶을 정리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봤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대부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한다. 8세기 인도의 고승 파트마삼바바는 “사람들은 죽음이 임박해서야 비로소 죽음을 준비 한다”고 말했고, 19세기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풍조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던 모양이다.
‘액티브’한 죽음을 위해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 양준석 연구원은 인간이 죽음을 기피하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봤다. 세상과의 단절로 사람들에게 잊힐 것이라는 불안, 알 수 없는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염려 등이다. 양 연구원은 “죽음을 두려워할 수 있지만, 때로는 한계를 직면하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된다”며 “죽음을 사유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새해 계획을 세울 때도 당장 3일 뒤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그 기간 동안 이루고 싶은 일을 상상해보면 허황된 다짐을 하기보다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며 “같은 이유로 새해에 유언장을 쓰고 한 해의 마지막에 다시 읽어보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이와 같은 주장은 ‘웰다잉’(Well-Dying)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맞이하고, 인식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웰다잉 관련 시장 규모가 해외에 비해 크지 않다. 그러나 2020년 700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65세 고령 인구로 진입하면서 관련 담론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여생을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로 살고 싶다면, 죽음마저도 ‘액티브’하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컨대 새해를 맞아 지나온 삶을 톺아보고, 생의 마지막 서류들을 준비해보는 것이 ‘좋은 죽음’의 출발점이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서명하기
웰다잉은 연명의료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시작됐다.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식물인간이 된 김 할머니에 대해 자녀들이 연명 치료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지만, 병원에서 거부해 소송까지 이어진 사건이다. 당시 대법원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김 할머니의 존엄사를 허용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됐고, 2018년 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관련법에 따르면, 19세 성인은 누구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자신이 향후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두는 서류다. 작성을 하려면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등록기관에 방문해 본인 확인을 받아야 한다. 등록기관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에서 찾으면 된다. 비용은 무료다. 만일 기관에서 비용을 요구한다면 보건복지부 지정 기관이 아닐 가능성이 있으므로 확인을 하는 것이 좋다. 작성된 서류는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되며, 작성자는 언제나 이를 열람할 수 있다. 이미 작성한 경우라도 의사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활용 방법은 환자의 의사 능력에 따라 나뉜다. 의사 능력이 있다면 담당 의사는 연명의료 정보처리시스템에서 서류를 조회하고, 환자에게 서류상의 내용이 현시점에도 유효한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환자가 의사 능력이 없는 상태라면,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인이 함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확인하고 연명의료 중단 등을 결정해야 한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따르면, 2018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작성자는 8만 명 남짓이었지만, 2020년 11월 기준 총 74만 명으로 9배 가까이 늘었다. 그중 80% 이상이 고령층이다. 아직 전체 인구 대비 등록률은 미미한 편이지만, 초고령화 사회가 성큼 다가온 만큼 앞으로 더욱 대중화할 것으로 보인다.
내 손으로 준비하는 작은 장례식
죽음에 대한 논의가 심화되면서 장례식을 자발적으로 준비해 간소화하는 문화도 확산되고 있다. 망자를 기리고 애도하는 자리가 유족 중심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오늘날 장례식장 문화를 보면 상을 당해도 슬퍼할 겨를이 없을 만큼 바쁘다. 식장을 알아보고, 부고(訃告) 소식을 알리고, 조문객을 맞이하다 보면 식이 끝난다. 실제로 2015년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1가구당 장례 평균 비용은 1300만 원 정도이며, 이 중 식장과 음식 접대비에 드는 비용이 80%에 달했다. 이와 같은 ‘보여주기식 의례’는 부모의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면 불효라고 여긴 조선시대 유교적 풍토의 영향이 크다.
이에 소박하지만 진정성이 담긴 장례를 원하는 이들은 ‘사전장례의향서’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사전장례의향서란 원하는 장례 의식과 절차를 미리 적어놓는 일종의 유언장이다. 부고 범위, 장례 형식, 부의금 및 조화, 음식 대접, 염습·수의·관 선택 여부, 시신 처리 등을 결정할 수 있다. 사전의료의향서가 임종 직전 생명 연장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전장례의향서는 죽은 뒤 떠나는 방식을 정해놓는 서류다.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의 사전장례의향서,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의 ‘장수행복노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 캠페인을 처음으로 시작한 이광영 한국골든에이지포럼 공동 대표는 “과거에는 시신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염을 하고 수의를 입혔지만, 요즘에는 영안실에서 시신을 안치하고 화장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고가의 관이나 수의는 큰 의미가 없다”며 “장례문화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간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 역시 자식들에게 내가 죽으면 장례 절차를 최대한 생략하고 산에다 뿌린 다음 내 생일에 식사나 한 끼 하라고 일러두었다”며 “자동차를 타고 다니다 고장이 나면 버리듯 때가 되면 육체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눈감는 순간까지 유언과 같은 삶을
편안하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만큼, 남겨진 사람들이 떠난 이의 몫까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유언장을 써두는 것이 좋다. 유언장은 가족 간의 ‘상속 분쟁’을 방지함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남길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민법 제1060조에 따르면 유언은 민법에서 정한 방식에 의해서만 행해져야 하며,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양식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유언장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자신이 남긴 유언장으로 가족 간 잡음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면, 법적 효력이 있는 유언장을 써야 한다.
유언은 크게 자필증서, 녹음, 공증증서, 비밀증서 등 5가지로 나뉜다. 그중 가장 많이 쓰이는 유언 방식은 자필증서다. 자필증서는 말 그대로 본인이 직접 종이에 작성하는 유언이다. 본인의 의지가 담겨 있더라도 타인이 대신 썼거나, 컴퓨터로 작성한 유언은 인정받지 못한다.
유언장에는 이름, 날짜, 주소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행복한 죽음 웰다잉 연구소 강원남 소장은 “어르신들이 유언장 쓸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주소를 적지 않는 것”이라며 “아파트 동과 호수까지 상세하게 적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유언장에 주소가 없다는 이유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유언의 법적 효력 여부를 두고 다툼을 벌인 바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 쓴 유언장이라도, 자신의 삶이 유언과 닮아 있지 않다면 가족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가족들이 유언의 내용을 지키길 원한다면 타인의 모범이 되고, 유언의 내용에 떳떳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강 소장은 “본인이 베풀지 않고 살았는데, ‘나누며 살라’는 말을 남기면 자식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며 “생전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면 설령 유언장이 없어도 자식들은 그 모습을 본받아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언장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을 감는 순간까지 유언장과 일치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홍영재 박사의 삶을 들여다보면 인생에 대해 이해하고 말하기보다는 그저 ‘인생이란 이렇구나’를 느낄 수밖에 없는 지점들이 있다. 그의 삶이 보여주는 다채롭고도 극적인 면모들 때문이다. 국내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였고 20년 전 두 개의 암에 동시에 걸려 죽음 직전까지 갔으나 청국장으로 극복했으며, 암을 이기는 청국장 전도사이자 식당 경영인의 삶도 살았다. 그런 그가 최근에 도전하게 된 영역은 유산균, 그것도 김치 유산균이다. 김치 유산균, 청국장 효소와 함께한 홍 박사의 기적 같은 삶과 나이를 잊게 하는 끊임없는 도전의식이 만든 이야기를 들어봤다.
홍영재 박사가 처음 사회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높인 것은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명성이었지만, 사실 그는 의사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어릴 적 꿈은 미대를 진학해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건축가였던 아버지가 만류했다. 당신이 건설업에 몸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예술계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만류는 홍 박사에게 묵직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의대에 들어가길 권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의사로서의 삶이나 화가로서의 삶이나 정교하게 손을 써야 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보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권고에 따라 의대에 발을 들이게 됐다.
최고의 산부인과 병원을 만들고 받은 6개월 시한부 선고
의사가 된 후 그는 쉬지 않고 일했다. 연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전문의, 차병원 산부인과 과장, 건대 부속 민중병원 산부인과 과장을 역임하면서 국내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로서 나아갔다. 그러나 명성이 높아지는 만큼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병원을 갈구하게 되었다. 결국 강남 한복판에 병원을 세우는 또 한 번의 도전을 시도했다. 주위의 반대가 심할수록, 그리고 경영의 어려움을 느낄수록 그는 더 도전했고 치열하게 일했다. 성과가 나아지면 되려 자신을 채찍질하는 이유로 삼았다. 그렇게 일한 만큼 홍영재 산부인과는 대한민국 최고의 산부인과로 거듭났다.
그러나 그 ‘일’이 문제였을까. 병원이 자리를 잡고 나니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01년 10월에 강화도를 방문한 그는 갑자기 아랫배에 통증을 느꼈고 서울로 돌아와 진단을 받았다. 결과는 대장암 3기. 더구나 대장암뿐만이 아니라 신장에도 암이 있었다. 하나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암이 두 개나 발견된 것이다. 그의 나이 59세, 환갑을 코앞에 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평소 몸 관리를 철저히 한다고 여기던 그였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피트니스 클럽과 골프 등 주기적인 운동으로 몸 관리를 한 것도 소용이 없었다. 삶의 시련이란 갑작스럽게 가차 없이 들이닥친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듯, 담당의는 그에게 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내렸다. 바로 수술을 하는 것 외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다행히 수술은 문제없이 끝났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수술이 끝난 뒤에 왔다. 인생에서 처음 겪는 항암치료. 크나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청국장과의 기적 같은 만남
수많은 암 환자들은 수기를 남긴다. 그 수기들은 하나같이 항암치료 시 겪어야 하는 엄청난 고통에 대해 증언한다. 홍 박사는 현역 의사였기에 그 사실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잘 알기에 더 큰 고통과 공포로 다가왔다. “죽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하지 못하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말에서, 두 개의 암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누구도 겪기 힘든 극한 상황이 짐작됐다.
“77~78kg이던 몸이 61kg까지 줄었고 우울증이 왔습니다. 입과 목의 염증으로 음식을 넘길 수 없었고 구토를 하느라 잠을 못 잘 지경이었습니다.”
그는 그때의 자신을 산송장이었다고 표현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 굶으면서 죽음 가까이 가던 날들이었다. 가족들은 그런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온갖 노력을 했지만 그의 식욕을 되찾아줄 음식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가신 어머니가 끓여주던 청국장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식욕이 돋았는데 신기하더군요.”
마치 운명처럼 청국장을 찾는 그를 위해 이모가 정성을 다해 끓여다 줬다. 놀랍게도 그는 아무런 구토 증세 없이 눈물을 흘리며 청국장을 먹기 시작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의 배를 따뜻하게 채워줬고, 이후로도 암 투병기간 내내 빠지지 않고 챙겨먹었다. 그는 이때 만난 이모님의 청국장을, 죽음의 코앞까지 갔던 자신의 인생을 또 한 번 전환시켜준 터닝 포인트라 생각한다.
청국장에 담긴 항암 효과를 확신하다
홍 박사는 마침내 암의 굴레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는 의사이기에, 청국장만으로 암이 나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의사의 진료와 처방을 잘 따르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적극적으로 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청국장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을까? 그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몸이 증거라 생각하고, 청국장에 암을 이기게 도와주는 힘이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확신을 보완하기 위해 청국장을 연구했고 그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발견한 사실들을 상세히 기록한 책 ‘청국장 100세 건강법’도 출간했다. 이때부터 청국장은 항암 효과를 가진 우리 음식의 대명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콩에서 올리고당이 발효될 때 특정한 산성물질이 생성되는데, 이것이 대장암을 일으키는 물질을 없애는 역할을 해 장 세포가 암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는다. 콩의 항암 효과는 콩을 발효시켰을 때 더 커진다. 콩이 발효되면 항암 효과가 있는 폴리글루타메이트와 면역력을 높이는 고분자 핵산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증명하듯 세계 각지에서 콩 음식은 건강식품의 대명사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홍 박사 또한 청국장이 지닌 건강식품으로서의 효능을 확신하게 되어 ‘홍영재장수청국장’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개업하고 식당 경영인을 겸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수한 강연을 통해 건강을 지키는 청국장 전도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김치에서 발견한 유산균으로 새로운 도전
그러나 그의 전통음식에 대한 관심은 청국장에서 끝나지 않았다. 청국장을 재발견하게 된 때로부터 어언 20여 년이 지난 지금, 홍 박사는 우리의 전통음식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바로 김치다.
“김치는 미국의 유명한 건강 잡지 ‘헬스’(Health)에서 세계 5대 음식 중 하나로 선정했습니다. 사스(SARS)가 우리나라를 피해간 이유로 꼽혔을 만큼 위대한 전통 발효식품입니다. 김치 유산균은 마늘, 고추, 염분 등 산도가 높은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번식하기 때문에 생명력이 그 어떤 유산균보다 강합니다. 따라서 서양인보다 더 긴 장을 가진 동양인 장에서도 살 수 있죠.”
사실 현재 시중에서 판매 중인 유산균 제품들은 유통 및 보관상의 문제로 대부분 캡슐 내 분말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균의 종류도 서양 유산균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분말형 제품은 건조 공정에서 많은 수의 유산균이 사멸하고 인체에 좋은 유기산, 천연비타민, 효소 등을 포함하는 유산균 배양 산물이 거의 없어진다는 게 홍 박사의 진단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 한국 토종 생유산균에 주목
장내에는 30%의 유익균과 10%의 유해균, 60%의 중간균으로 구성돼 있다. 홍 박사는 장내 질서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장에는 면역세포의 70%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장내에는 유산균 같은 균과 장내 부패를 촉진하고 가스를 발생하는 유해균, 그리고 중간균이 있죠. 그러나 잘못된 식생활로 인해 중간균과 유익균이 몰살되면서 현대인들의 몸이 망가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무너진 장내 질서에는 유산균, 특히 생명력이 강한 한국 토종 김치 유산균이 효과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인에게 유산균은 점점 더 각별하게 필요한 영양 성분이 되어가고 있다. 과도한 인스턴트식품 등에 의존한 식생활,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이 중간균과 유익균까지 몰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홍 박사가 다시 한 번 더 도전하는 삶을 선택하도록 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김치 유산균으로 만든 ‘닥터홍프로’와 ‘닥터홍구르트’를 출시했기 때문이다.
요즘 면역력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면역력 향상을 위해 가장 먼저 꼽는 것이 ‘腸 건강’이다. 장은 음식물을 흡수하고 배설하는 기능뿐 아니라 체내 면역세포의 70% 이상이 집중돼 있어 신체 면역기능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면역세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장내 유익균을 늘려주는 ‘유산균’을 섭취하는 게 좋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평생을 건강 아이콘으로 살아온 홍 박사가 김치 유산균 발효액 96.7%를 함유한 ‘닥터홍프로’와 김치 유산균 발효액 93.05%를 함유한 ‘닥터홍구르트’를 만든 건 사람들이 더 건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됐다.
건강 연구의 결정체가 유산균 음료로 녹아나다
제조와 생산은 한국 토종균주 전문기업 코엔바이오(대표 염규진)에서 하고 있다. ‘닥터홍프로’와 ‘닥터홍구르트’는 세계 최초로 김치에서 추출한, 지방 및 콜레스테롤 분해력이 뛰어난 균주 류코노스톡 등 다양한 균주를 함유하고 있다. 이들 제품에 들어간 6개 균주는 이미 미국식품의약국인 FDA의 HUMAN OTC DRUG에 등록 완료된 상태다. 닥터홍프로는 김치 유산균에 재래식 시골 청국장 분리 발효균과 발효 물질, 서목태와 하수오, 인삼 등의 한방 원료까지 더해 항암 효과는 물론 면역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닥터홍구르트는 망고농축퓌레, 꾸지뽕줄기, 치커리를 비롯한 유기농 천연원료를 배합해 만들었다. 설탕이나 색소, 방부제는 전혀 넣지 않고 천연감미료인 스테비아가 들어갔다. 그리고 분유를 포함하지 않은 100% 식물성 제품으로 유당불내증을 완화하는 효과도 노렸다. 닥터홍프로와 닥터홍구르트는 기존 유산균 드링크가 가진 여러 한계를 극복한 제품으로 보인다. 또한 4만여 명의 아이들을 만났던 산부인과 의사로서, 그리고 암을 극복한 청국장 전도사이자 식당 경영인으로서 살면서 터득한 홍 박사의 노하우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그야말로 수십 년간 공부하고 고민한 건강 연구의 결정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내하고 나누며, 젊게 살자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최신 기술 영역에서 또 한 번 도전을 시도한 홍 박사를 보면 도전정신이 삶의 한계까지 극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최근 그는 유튜브에 채널을 개설해 인터넷 방송도 하고 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죽음으로부터 벗어난 이후 여전히 그의 청춘은 계속 달리고 있는 중이라고 봐도 좋을 듯싶다. 그가 의욕적으로 선보이는 새로운 도전이 앞으로 어떤 반응을 얻게 될지 궁금하다.
거듭나는 삶을 살고 있는 홍 박사는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준 사람으로 두 명의 스승을 꼽는다. 한 사람은 홍 박사가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가는 ‘백인’(百忍)이라는 두 글자를 준 아버지다. ‘백인’은 ‘열 번이라도, 백 번이라도 참아라’라는 의미다. 과연 홍 박사의 고통과 그것을 극복한 과정들을 들여다보면 그 말이 좌우명인 게 이해가 간다. 백 번만큼 참아서 얻을 수 있는 결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스승은 군의관으로서 월남전에 참가했다 만난 맹호부대 포사령관 이셨던 심유선 대령이다. 홍 박사는 삶과 죽음을 오가는 무서운 곳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그분 덕분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끝까지 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2년 전에 그는 인구가 35만 명밖에 안 되는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던 중, 국민을 위해 애써준 주인공들을 발표하는 행사장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낸 사람들의 이름을 외치면서 진심 어린 박수를 쳐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1년마다 하는 행사라는데, “우리는 잘될 거다!” 하며 서로 응원하고 안아주는 그들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쉬지 않고 나눔의 자세를 실천하며 세상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아이슬란드 사람들, 심유선 대령, 선친을 보면서 홍 박사는 자신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깨달았다. 의사로서,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 돌아와 숙명을 받든 자로서, 뜨거운 가슴으로 느끼며 지키게 된 지침이기도 했을 것이다. 홍 박사의 지칠 줄 모르는 삶의 여정은 이제 인류를 향한 애정의 전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젊게 사십시오. 젊음에는 병이 깃들지 않습니다. 우리도 잘될 겁니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고령자 비중이 전체 사망자 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교통안전공단이 2016~2018년 교통사고 내용을 분석한 결과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의 53.6%가 65세 이상의 고령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고령자 사망자 비율도 2016년 50.5%에서 2017년 54.1%, 2018년 56.6%로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지방의 경우에는 전체 보행 교통사고 사망자 중 고령자 비율이 60%를 넘어섰다. 2016년 59.9%였던 비중은 2017년 66.0%로 높아졌으며, 2018년에도 63.7%를 기록했다.
고령자 사망은 저녁시간 도로 횡단 중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령 보행자 사망 사고 중 약 57.7%인 486명은 도로를 횡단하던 중 일어났다.
시간대별로는 낮보다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시간에 집중됐다. 도로 조명시설이 부족한 지방지역은 고령자 사망 교통사고의 40%가 오후 6시~밤 10시에 발생했다.
이에 공단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등과 도심속도 정책인 ‘안전속도 5030’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안전속도 5030은 도시 내 기본 제한속도를 시속 50㎞로 낮추고, 주택가 주변이나 어린이·노년층·장애인보호구역 등에서는 이를 30㎞로 지정하는 것이다.
권병윤 공단 이사장은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고령 보행자의 안전대책 마련의 중요성이 높아졌다”며 “차에서 내리면 운전자도 보행자라는 생각을 갖고 속도를 낮춰 안전하게 운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바이러스는 오래전부터 인류를 위협해왔다. 질병을 일으키고 전염시키면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왔다. 심지어 ‘가짜 정보’가 나돌아 피해가 커지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는 잘못된 바이러스 정보는 이제 또 다른 공포가 됐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공포가 계속되고 있다. 언제 어떻게 감염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람이 몰리는 곳을 피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틈 날 때마다 손소독제를 사용하는 수준이다. 아직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서 더 무섭다. 과거에 발생한 전염병부터 최근 코로나19까지 전 세계로 확산되는 바이러스의 위협을 보고 있으면 마치 영화 속 재난이 현실화되는 것 같다.
2002년 겨울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코로나바이러스(사스)는 10%의 치사율을 보이며 이듬해까지 전 세계 774명의 생명을 빼앗았다. 2012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등장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돌았다. 치사율 38%의 메르스는 2015년까지 전 세계 528명의 목숨을 가져간 후에야 조용해졌다. 이외에 조류독감, 에볼라, 신종플루 등의 바이러스도 빠르게 퍼져나가며 인류를 위협했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지난 4월 14일 기준으로 전 세계 확진자가 200만 명이 넘었고, 13만3400명이 사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확진자가 1만 명 이상이고, 약 230명이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라 피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생명을 위협하는 또 다른 바이러스가 나타날 수도 있다.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존재가 우리에게 감당하기 힘든 공포를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공포, 근거 없는 가짜 정보
잊을 만하면 발생해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신종 바이러스도 무섭지만, 최근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함께 확산되는 ‘가짜 정보’로 인한 ‘인포데믹’(정보전염병)도 심각하다. ‘표백제가 코로나19를 치료한다’거나 ‘알코올로 입을 헹구면 낫는다’는 등의 의학적 근거가 없는 거짓 정보가 자칫 실제 치료법인 양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런 루머는 세균이나 곰팡이를 사멸시키는 약효가 체내 바이러스까지 없앨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발상으로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
심지어 가짜 정보는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일반인이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리얼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유언비어가 나돌 정도다. ‘확진자 아버지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거나 ‘○○카페에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등 마치 실제 행정기관이 발표한 것처럼 ‘의무팀’이라는 명칭도 썼다. 이로 인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큰 피해를 입고,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코로나19 공포에 따른 불안증을 호소하고 있다.
가짜 정보는 해외에서도 유행하고 있다. 급기야 가짜 정보로 생명을 잃은 사례까지 발생해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지난 3월 이란에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메탄올이 코로나19를 치료한다’는 유언비어에 속아 술을 직접 제조해 마신 300여 명이 사망했다. 같은 달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는 한 시민이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복용한 후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에는 5세대(5G) 이동통신이 코로나19 사태를 악화시킨다는 내용도 등장했다. 유튜브에 실린 인터뷰에서 영국의 음모론 전문가 데이비드 아이크는 “앞으로 개발될 코로나19 백신에는 나노기술 마이크로칩이 포함돼 사람을 통제할 것”이라며 “개발을 지원하는 빌 게이츠를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유튜브는 관련 동영상을 모두 삭제했다.
◇전염병보다 빠르게 퍼지는 유언비어
이런 가짜 정보는 전염병이 퍼질 때마다 비슷한 유형으로 등장했다. 성균관대학교 이재국 교수팀이 최근 발표한 ‘가짜 뉴스 확산 경로 추적’ 연구에 따르면, 조작된 거짓 정보는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반복성’을 지닌다.
지난 1월 말 ‘○○마트 화장실에서 피 묻은 마스크 발견’이란 글과 사진이 유포되면서 경찰과 보건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2015년 메르스가 유행할 때도 ‘감염자 A 씨가 ○○학원에 다녀갔다’, ‘바셀린을 콧속에 바르면 안 걸린다’ 등의 거짓 정보가 나돌았다. 이외에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접속을 차단하거나 삭제한 허위 게시물만 170개가 넘는다.
가짜 정보는 SNS 등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 일부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는 커뮤니티가 가짜 뉴스의 단초를 제공하고, 회원들이 인터넷에 퍼다 나르면서 불특정 다수가 피해를 입고 있다. 또 정치인이나 연예인, 방송인 등이 언급할 경우 ‘인플루언서 효과’로 파급력이 엄청나게 커진다.
이재국 교수는 “가짜 뉴스가 반복해서 쏟아지고, 각종 커뮤니티에 축적된 음모론이 유튜브를 통해 재생산되고 있어서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는 항상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며 “언론 역시 속보 경쟁이 아니라, 철저한 사실 확인을 통한 검증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영화 속 허구
가짜 정보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짜 뉴스와 목적은 다르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영화 속 이야기에 빠져들면 관객은 허구를 사실로 오인할 수 있다. 실제로 재난 영화 속 설정이나 주인공의 행동은 현실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픽션’(허구)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대표적인 한국 영화는 2013년 개봉한 ‘감기’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한 바이러스는 초당 3.4명에게 전파되고, 감염되면 2~3일 안에 모두 죽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한 얘기다. 치사율이 100%일 경우에는 이런 전염 속도가 나올 수 없다. 바이러스는 숙주를 매개로 전염되기 때문에, 감염자가 죽으면 전파될 기회가 그만큼 낮아진다. 90% 치사율을 가진 에볼라바이러스가 최초 발생지인 아프리카 일부 지역을 빼고 자연적으로 전파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반대로 1918년에 발생해 1919년까지 전 세계 5000만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의 치사율은 10% 내외였다.
영화 속에서 성남시 분당 인구 48만 명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은 5일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기간 안에 인플루엔자 백신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인플루엔자 백신 생산 과정은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린다. 최근 동물세포에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방식의 생산법이 새롭게 고안됐으나, 이 역시 3개월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구 속 또 다른 거짓 설정
허구성이 극대화된 사례이기는 하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물 영화에도 거짓 설정을 찾아볼 수 있다. 1968년 작품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이후에 제작된 영화들은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이라는 콘셉트로 어느 정도 궁금증이 풀린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숙주가 살아 있지 않으면 증식이 불가능한데 죽은 시체를 움직인다는 설정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2007년 작품 ‘나는 전설이다’는 바이러스가 확산된 상황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이 다른 생존자들을 찾아다니지만 그가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생존자는 극소수뿐이고 대부분 바이러스에 감염된 ‘변종 인류’ 좀비들이었다. 이 영화에서 좀비는 인류보다 숫자가 많다. 물론 바이러스 자체가 사람을 직접적으로 죽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바이러스 감염으로 면역력이 약화된 상태에서는 2차적인 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2017년에 개봉한 영화 ‘메이즈러너: 데스 큐어’에는 공기를 통해 전파되는 좀비 바이러스가 등장한다. 영화 속 단체 ‘위키드’는 얼마 남지 않은 지구의 자원으로는 한정된 수의 인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해 바이러스로 일정 수의 사람을 없애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공기를 통해 감염되는 바이러스는 전파 경로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여기에 인수공통감염이 동반되면 날아다니는 새가 바이러스를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트릴 것이다. 결국 위키드 구성원도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인간은 하루에 평균 3600번 정도 사물을 만진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코로나19가 계속 확산되고 있다. 만약 공기를 통해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면 그 피해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일 것이다.
◇주인공의 행동, 현실에선 처벌 대상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 영화 속 주인공처럼 행동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영화 ‘감기’ 속 주인공은 자신의 딸이 바이러스 감염 의심자로 분류되자 검사를 피하지만 별다른 처벌 같은 건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같은 행동은 허용되지 않는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79조의3, 제80조에 따르면 감염병 의심자가 의료진의 입원 및 격리조치에 불응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또 감염병 병원체 검사를 거부할 경우 300만 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을 수 있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은 박쥐의 배설물을 먹고 자란 돼지를 요리한 셰프로부터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내용이 코로나19의 최초 숙주가 박쥐로 예상되는 것과 흡사해 주목받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모습이 나온다. 실제로 올 초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소비자의 불안심리를 이용해 마스크 등을 매점매석해 폭리를 취하는 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보건용 마스크 및 손소독제 매점매석 행위 금지 등에 관산 고시’에 따르면, 마스크 및 손소독제 매점매석 행위를 한 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