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이 지난 22일 뉴질랜드와 조별예선 1차전에서 0:1로 패했다. 전문가들은 선수단이 전체적으로 호흡이 맞지 않았고, 와일드카드로 데려온 대표팀 간판 공격수 황의조에게 패스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라도 패인을 찾았다.
경기가 끝난 뒤 작은 논란도 있었다. 미드필더 이동경이 상대팀 선수 크리스 우드의 악수를 거부하면서 경기에서도 지고 미성숙한 매너를 보여줬다고 비판받았다. 승자에 대한 존중을 표하지 않는 것은 올림픽 정신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시니어들은 최근 올림픽 축구 경기에서 과거 올림픽과 같은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열린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억하는 시니어들일수록 더 이런 지적을 많이 한다. 왜 이렇게 느끼는 걸까.
이번 올림픽 참가 선수들이 앳돼 보인다. 대회 첫 경기에서 긴장하고 있는 모습은 물론이고, 상대팀의 거친 몸싸움에 경기가 끝나고도 분을 못 이기는 모습도 보였다.
실제로 지금 올림픽 축구에 출전하고 있는 선수들은 서울 올림픽 출전 당시 선수들보다 나이가 어리다. 1988년 당시에는 30세 골키퍼 조병득이 있었고, 최강희와 최윤겸 등 20대 중후반 선수들이 많았다. 국내 선수뿐 아니다. 브라질의 베베투, 서독의 위르겐 클린스만 같은 20대 중반의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현재 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23세 이하 선수들로만 선수단을 구성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와일드카드’ 제도라고 해서 24세 이상 선수 3명을 쓸 수 있다. 한국 대표팀은 와일드카드로 부른 황의조, 권창훈, 박지수를 제외하면 모두 만 23세 이하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 다른 종목에는 없는 나이 제한이 왜 유독 축구에만 있을까.
올림픽 남자 축구 종목에 나이 제한이 처음 생긴 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다. 여자 축구는 23세 이상이어도 참가할 수 있다. 축구전문 미디어 풋볼리스트의 류청 취재팀장은 이에 대해 “국제축구연맹(FIFA)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오랜 다툼 때문”이라고 말한다. IOC는 206개 나라 올림픽위원회가 소속된 세계적인 기구다. 스포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FIFA의 위상은 IOC를 뛰어넘는다. FIFA 회원국은 211개로 IOC보다 많다.
FIFA가 4년마다 개최하는 월드컵은 단일 스포츠 대회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인기가 많다. 농구, 럭비, 아이스하키 등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 ‘월드컵’이라는 명칭으로 대회를 열지만 흔히 월드컵이라고 하면 축구를 떠올린다. 그만큼 FIFA가 개최하는 월드컵의 위상이 더 높다.
그런데 올림픽 축구에서 연령 제한 없이 모든 프로선수들이 참가하게 되면 FIFA 월드컵과 별 차이 없는 또 다른 대회가 만들어진다. 월드컵으로 막대한 수익을 내는 FIFA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FIFA는 나이 제한 카드를 빼들었다. IOC로서는 불쾌한 일이었지만 FIFA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었다. 실제로 FIFA는 지속적으로 올림픽을 견제해왔다. FIFA는 프로 선수들도 본격적으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던 1984년 LA 올림픽, 1988년 서울 올림픽에도 월드컵 경험이 없는 선수만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그래도 면면은 화려했다.
하지만 23세 이하 선수들로만 올림픽에 나갈 수 있게 되자, 올림픽은 설익은 유망주들의 대회가 됐다. 스타플레이어가 없어 대회 수준은 낮아졌고 흥행도 부진했다. 그러자 IOC는 전체 참가 선수 중 3명은 나이와 상관 없이 포함할 수 있도록 하자고 FIFA에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타협안이 바로 와일드카드 제도다. 와일드카드라는 용어는 한국에서만 쓰고 해외에서는 ‘오버에이지(Overage)’라고 부른다.
결국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부터 24세 이상 선수 3명이 함께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다.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올림픽 메달을 따면 군 면제 혜택이 있어 황선홍과 하석주, 유상철 등 와일드카드로 성인 대표팀 주축 선수들을 투입했다. 가장 최근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손흥민과 장현수, 석현준이 와일드카드로 대회에 참여했다.
비록 불의의 1패를 떠안았지만 한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메달을 노리고 올림픽에 참가했다. 한국 대표팀은 25일 루마니아전, 28일 온두라스전을 치른다.
하루 평균 34건. 치매로 실종된 부모를 찾아달라며 경찰에 접수되는 실종 신고 건수다.
경찰청에 따르면 치매 노인 실종 신고가 지난해 1만2272건 접수됐다. 하루에 34명꼴이다. 2015년 9046건, 2016년 9869건, 2017년 1만308건, 2018년 1만2131건, 2019년 1만2479건처럼 해마다 그 수가 늘다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소폭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치매 환자들이 흔히 보이는 증상 중 하나로 '배회'를 꼽는다. 목적을 갖고 나갔다가 인지 기능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외출 목적과 집으로 가는 길을 잊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런 배회 증상은 경증 치매 노인들 사이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실종된 노인 중 일부는 경증이라 가족들이 치매 상태인지도 몰랐던 경우도 있다. 또 치매 노인이 성인이다 보니 길 잃은 어린이처럼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걸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그만큼 치매 환자는 실종을 예방하고 실종됐을 때는 빠르게 대처해야 위험에 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IT 기술이 실종된 노인을 찾는데 도움을 주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전봇대나 지하철역 근처에 ‘사람을 찾습니다’ 전단을 부착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청와대 국민청원, 애플리케이션, 문자, 드론 같은 IT기술을 이용해 빠르게 실종 소식을 알리고, 실종자 찾기에 나서고 있다.
실종된 치매 엄마, 당근마켓 덕에 집으로
지난 6월 22일 직거래 중고 마켓 애플리케이션 ‘당근마켓’에 치매 어머니를 찾는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서울 강북구 번동에서 아버지 손을 잡고 노인 복지 시설로 가던 어머니 A(66) 씨가 실종되자 딸 B(40) 씨가 올린 글이다. 어머니 사진과 이름·연락처, 치매 상태 등과 함께 B씨가 직접 만든 ‘사람을 찾습니다’란 포스터를 담았다.
실종 포스터가 앱에 등록되자 해당 내용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다른 이용자들이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로 글을 퍼다 날라서다. 결국 실종 3일째인 6월 24일 번동에서 30㎞쯤 떨어진 경기도 부천시 한 길거리에서 A 씨가 발견됐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에서 본 A 씨 얼굴을 기억한 한 시민이 경찰에 신고했다.
이처럼 온라인은 파급력이 크고, 한 번 여론이 쏠리면 경찰도 부담을 느껴 많은 인력을 투입하다 보니 온라인이 ‘실종 신고 창구’ 역할을 한 셈이다.
갈대밭 살펴 쓰러진 실종 노인 찾은 드론
사람이 지나가려면 손을 힘껏 휘저어야 할 정도로 우거진 서울 동작대교 남단 갈대밭. 보통이라면 둘러보기도 힘든 이곳에서 지난 21일 의식을 잃어 쓰러진 노인을 발견했다. 발견한 것은 사람이 아닌 드론. 서울 방배경찰서에 지병을 앓고 있던 80대 노인 C 씨가 외출한 뒤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곧바로 실종 수사에 돌입했으나 거주지인 동작구의 모든 구역을 샅샅이 뒤지기엔 인력이 부족했다.
이에 방배경찰서는 서울경찰청에 드론수색팀 파견을 요청했다. 서울경찰청 장비계 소속 드론 전담 조종요원 2명은 C 씨가 마지막으로 향했던 장소로 추정되는 동작대교 인근 지역으로 출동했다. 그리고 수색 이튿날, 갈대밭 사이를 날던 드론이 촬영한 화상카메라 영상 속에서 사람의 형상이 포착됐다.
현장에 있던 경찰은 곧바로 드론 지점으로 이동했고, 실종됐던 C 씨가 누워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의식이 없었지만 희미하게 호흡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C 씨에게 심폐소생술을 한 뒤 구급차를 이용해 병원으로 호송했다.
‘실종경보 문자 제도’로 15분 만에 실종자 발견
일분일초가 생명과 직결되는 실종자 수사에서 ‘실종경보 문자 제도’가 시행 한 달 만에 ‘골든타임’을 확보하며 국민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실종경보 문자 제도는 실종된 치매 노인을 문자 메시지로 빠르게 찾는 제도다. 국민재난안전포털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6월 9일부터 7월 8일까지 59건에 달하는 실종경보·해제 문자를 발송했다. 이 가운데 실종경보 문자는 33건(31명) 보냈으며, 해당 문자를 본 시민들의 제보 덕분에 실종자 12명을 찾았다.
실종경보 문자 제도는 18세 미만의 아동이나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 치매 환자가 실종됐을 때 실종자 정보를 주민들에게 문자로 발송하는 서비스다. 재난 문자처럼 이동통신사 무선기지국을 토대로 해당 지역 내 주민에게만 실종자의 기본 정보를 알린다. 문자에 포함된 링크를 누르면 실종자 사진과 상세한 인상착의를 확인할 수 있다.
전남 여수에서는 실종경보 문자 제도로 실종된 치매 환자를 문자 발송 15분 만에 찾았다. 지난 6월 24일 여수경찰서는 "치매 걸린 아버지가 나간 뒤 들어오지 않는다"는 실종 신고를 받았다. 그리고 오후 2시 16분에 실종된 치매 환자 D(75) 씨의 인적사항을 담은 경보 문자를 발송했다. 그리고 발송 15분 만에 한 주민이 "치매 어르신에게 12시께 담배를 판 사실이 있다"는 제보를 보내왔다. 경찰은 제보를 토대로 실종자를 추적해 D 씨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AI CCTV로 노인 실종자 찾기 더 쉬워질까?
경기도 부천시는 ‘안면 인식’이 가능한 인공지능(AI) CCTV 시스템을 구축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공공 분야 지능 정보화 사업의 일환으로, 본래 코로나19 확진자 얼굴을 인식해 자동 추적을 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 AI 기반 CCTV는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확진자 정보를 AI에 학습 시켜, 방대한 CCTV 영상 속에서 동선을 추적한다. 이뿐 아니라 연령·성별·체형·옷차림, 마스크 착용 여부 같은 정보도 자동 수집하고, 개인 신원과 얼굴을 특정해 지속적으로 인물을 추적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 기술을 실종자 수색에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염병 역학조사를 위한 안면 인식 정보 수집 기술이 더 나아가 초동 수사가 중요한 실종자 추적에서도 핵심 기술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안면 인식이 가능한 이 AI CCTV는 지방자치단체가 특정한 시민이 언제, 어느 곳을 방문했으며, 누구와 만났는지 낱낱이 파악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실종자를 추적하기에 적합한 기술이라는 의견이다.
중국에서는 지난 2018년 장시성에서 열린 홍콩 스타 장쉐유의 콘서트장 출입구에 설치된 안면 인식 카메라가 관중 5만 명 가운데 경제 범죄로 수배 중이던 한 남성을 정확하게 집어내, 공안이 체포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비판도 잇따른다. 중국은 이미 국가 전역에 설치한 4억 대 이상의 감시카메라와 안면 인식 기술을 활용, ‘세계 최대 규모의 감시 사회’를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에서도 현재 사람의 얼굴은 개인정보보호법에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민감 정보'로 분류돼 있다. 따라서 당사자 동의가 있어야만 수집할 수 있다. 사생활 침해라는 선을 넘지 않으면서 안전한 사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관련 논의가 시급한 시점이다.
강영석 상주시장 인터뷰
오래전부터 쌀, 누에, 곶감의 도시로 유명한 상주시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 농업 도시로서의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지난해 치러진 4·15 보궐선거를 통해 민선 7기 8대 상주시장으로 취임한 강영석 시장은 상주시의 농업 혁신 도시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강 시장은 인터뷰에서 상주시가 귀농귀촌 1번지로서 손색이 없다고 밝히며, 농업 혁신 도시로서의 가능성과 귀농귀촌인을 위한 정책, 그리고 농촌의 애환 등을 솔직하게 술회했다. “농업 여건만 보더라도 상주시로 귀농귀촌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에게 상주시의 귀농귀촌 여건과 현실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 시는 낙동강과 백두대간을 사이에 낀 천혜의 자연환경과 방대한 농지, 풍부한 용수량 등으로 예부터 뛰어난 농업 여건을 자랑해온 곳입니다. 삼백(三白, 쌀·누에·곶감)으로 잘 알려진 전통적인 농업 도시로서 국제 슬로 시티로 인증도 받았죠.”
강영석 상주시장의 말대로 상주시의 농가는 1만3885호로 전국에서 네 번째, 경북에서 두 번째다. 농업 인구도 2만9290명으로 전국에서 일곱 번째, 경북에서 두 번째고, 농지 면적은 2만5315ha로 도내에서 으뜸이다. 그야말로 경상북도에서 손꼽히는 거대 농업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농업의 선택지도 무척 다양하다고 강 시장은 밝혔다.
상주시의 귀농귀촌 강점
“곶감과 시설오이는 전국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며, 근래는 신품종 청포도가 고소득 작물로 각광받고 있어 생산 면적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봉, 육계, 한우, 쌀, 배 등의 기존 작물도 전국 1~2위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팜 혁신밸리와 경북농업기술원을 유치함에 따라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선진 농업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강 시장은 곶감과 쌀, 친환경 농업, 과수 등의 중점 품목을 지속적으로 지원하여 농사만 잘 지으면 마음 놓고 살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상주시가 귀농귀촌인의 유입을 강력하게 필요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농지 면적은 도내 최고이나 전체 인구수는 면적에 비해 턱없이 적다.
“우리 시는 2019년 초부터 10만 이하 인구로 돌아섰습니다. 2021년 5월 통계로는 9만6337명입니다. 시내 동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가 4만9957명이니, 실제로 18개 읍면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4만638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1개 면의 인구가 2500명 이하로 떨어지면 생활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삶의 기반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됩니다. 특히 우리 시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31%가량 되는 초고령 지역이기도 합니다. 향후 농촌 사회, 지역 사회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규 인력이 유입되어야 합니다.”
2021년 귀농귀촌 사업비로 125억5000만 원
귀농귀촌인을 위해 상주시가 준비하고 있는 옵션은 다양하다. 올해 상주시 귀농귀촌 사업 비용은 총 125억5000만 원에 달한다. 분야는 귀농귀촌인 보조 및 융자 지원, 귀농귀촌인 유치를 위한 주거 조성, 귀농귀촌 활성화를 위한 교육 사업이다. 귀농귀촌인 보조 지원은 총 3억1200만 원으로 주민 초청 행사 운영, 주거 임대료, 주택 수리비, 정착 지원 사업 등을 추진한다. 융자 지원은 올해 상반기 선정분만 해도 45억 원 규모이며, 39개소의 귀농인에게 토지 구입, 하우스 신축, 농가 주택 매입 및 신축 등의 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한다.
귀농귀촌인 유치를 위한 주거 조성 사업에는 72억 원을 투자하여 한국토지주택공사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단지 사업과, 매년 2~3개소씩 추가로 조성하는 귀농인의 집 조성 사업이 있다. 귀농귀촌 활성화를 위한 교육 사업으로는 총 3억5000만 원을 투자하여 마을 단위 융화 교육, 공동체 귀농학교, 농촌생활기술학교, 귀농귀촌인 역량 강화 교육 프로그램 등을 추진한다. 또한 귀농귀촌인을 지원하기 위한 민간 지원 조직으로 상주다움 사회적협동조합을 지원하여 민간 차원에서 교육과 공동체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는 것도 타 시군과는 다른 상주시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전국 최초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 마련
특히 주목할 부분은 공검면 양정리의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단지와 사벌국면 삼덕리의 스마트팜 혁신밸리와 인접한 청년보금자리 조성 사업을 통해 농촌 지역에 주택을 마련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전국 최초로 올 연말에 조성되는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단지는 규모는 작지만 널리 알려져 농촌형 주거 복지 사업을 새롭게 이끌어나가리라 기대되고 있다. 농촌 지역에 단독주택단지를 지어 공공임대로 제공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1만여 명의 귀농귀촌인이 지역에 와서 농업과 농업 관련 직종에 종사하면서 지역의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각 지역의 농업과 농촌 관광, 농산물 가공 분야 등에 종사하면서 지역의 스타 농부가 되고 성공 사례가 되어, 다른 귀농귀촌인들을 유인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2009년에 생긴 민간 공동체귀농지원센터가 주축이 되어 귀농귀촌인들의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많은 귀농귀촌인의 디딤돌이 되어주었습니다. 매년 계속되는 교육과 모임으로 귀농귀촌인들이 모이는 구심점이 되어주고, 우리 시로 오고자 하는 귀농귀촌인들을 맞이하는 마중물이 되어주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귀농귀촌을 하려면 급격한 변화에 대비
많은 사람들이 귀농귀촌을 통해 농촌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의 귀농귀촌인들은 지역 사회에 적응하는 것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강 시장은 급격한 변화는 반드시 갈등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고, 변화의 밝은 부분에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역 사람들과 귀농귀촌인 간에 갈등이 생기면 기존 지역 사회에서 이루어지던 방식으로는 봉합되지 않고 갈등이 드러납니다. 이는 순기능도 있지만 귀농귀촌인에게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부 언론이나 방송에서는 귀농귀촌인들이 조용한 지역 사회에 갈등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도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지역에는 고소득 영농을 위해 귀농하는 분들이 많아, 막상 투자한 만큼 결과를 얻지 못하면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텃세를 지레 두려워하여 기존 마을과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자 하는 귀농귀촌인들도 있습니다. 고향에 온 귀농귀촌인 중에도 마을 주민들과의 불화로 마을을 옮기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귀농귀촌으로 인해 생겨난 변화가 좋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귀농귀촌인들이 지역에 와서 반드시 잘 지내는 것도 아닙니다만, 지역 주민과의 갈등을 ‘텃세’라고 이름 짓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봅니다.”
텃세라는 말의 어폐, 다르게 생각해봤으면
텃세라는 것은 지역 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새로 들어온 귀농귀촌인을 괴롭힌다는 뜻이 있지만, 귀농귀촌인이 관련된 갈등에서 기존 마을 주민들이 일방적으로 귀농귀촌인을 가해하는 경우는 없다고 강 시장은 밝혔다. 오랜 시간 지역민과 귀농귀촌인을 보아온 강 시장은 도시에서는 그런 갈등이 없느냐고 반문한다. 무엇보다도 현재 농촌의 현실이 텃세가 발생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존 마을 공동체도 많이 붕괴됐고, 노인들밖에 없어 텃세를 부릴 만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귀농귀촌인들이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 자율방범대장 등을 차지하고 있는데 텃세가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도시 지역에서도 층간 소음, 주차 등으로 끊임없이 언성 높일 일이 생깁니다. 특정 인물이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은 대도시에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농촌은 과거처럼 긴밀한 대면 접촉이 일상화된 공간이 아닙니다. 노년층도 스마트폰으로 정보화 사회를 살고 있고, 옛날처럼 동네 사람들이 장례식과 마을 잔치를 하며 모이는 일도 줄었습니다. 진입로와 토지 경계, 소음, 쓰레기, 축사 악취 등으로 이웃 간 갈등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텃세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포털 검색창에서 ‘상주 귀농’ 검색
강 시장은 매년 1400가구 1800명을 유치하여 농촌 지역의 인구 유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5년간 매년 1200여 가구, 세대원은 1700여 명이 유입되고 있다.
“귀농귀촌은 농촌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염원일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가꾸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꿈입니다. 통계와 숫자로는 잡히지 않지만, 지역에 이미 터를 잡은 귀농귀촌인들이 지역에 만족하고 기존 주민들과 화합하며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많은 고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강 시장은 마지막으로 귀농귀촌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당장 두 가지를 해봤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한 가지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검색창에 농업교육, 귀농교육을 입력하고 동영상 온라인 교육을 듣거나 오프라인 교육 행사에 참가해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가고 싶은 지자체의 이름과 귀농을 붙여서 ‘상주 귀농’과 같은 식으로 검색해서 시군 귀농귀촌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보는 것입니다. 귀농귀촌 담당자들이 친절하고 간결하게 귀농귀촌에 대한 여러 궁금증을 풀어줄 것입니다.”
강 시장은 다양한 귀농귀촌 정책을 개발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사람이 찾아오는 환경 조성’을 통해 인구 감소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기쁠 때는 노래의 멜로디가 들리고, 슬플 때는 노래의 가사가 들린다는 말이 있다. 음악을 듣는 건 어떤 마음을 느끼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1980~90년대 포크밴드 ‘동물원’의 멤버로 활약했던 가수 김창기는 서정적인 노랫말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 그가 기타를 세심하게 매만지던 손으로 초크 대신 펜을 들고 음악과 삶에 관한 얘기를 독자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죠. 천천히 빛나는 꿈밖에는. 두려움은 마음에 묻어두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어요. 세상의 풍파 속에서 나는 음악을 듣고, 눈을 감고 리듬을 느껴요. 음악은 내 마음을 사로잡아요. 이 얼마나 멋진 느낌인가요? 믿음이 현실이 된다는 것. 나의 열정을 현실로 만들고, 나의 춤을 추고 나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
위의 가사만 봐도 한 춤꾼의 애환과 열정이 느껴진다. 이 곡은 아이린 카라가 부른 ‘Flashdance What a Feeling’으로 1983년 개봉한 영화 ‘플래시댄스’의 주제곡으로 유명하다. 이 영화는 철공소에서 일하며 발레리나의 꿈을 꾸던 소녀가 역경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꿈을 성취한다는 이야기다. 결말은 뻔히 보이지만, 제니퍼 빌스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멋진 춤과 노래는 혼을 쏙 빼놓는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았다.
시련을 딛고 꿈을 이룬 소녀처럼 영화는 대성공을 거둔다. 700만 달러로 제작해 2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영화의 서사나 캐릭터는 미흡했지만 제니퍼 빌스라는 신선한 흑인 여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웠다. 그녀는 이 영화를 계기로 스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영상미를 돋보이게 했던 OST는 당시 빌보드 차트 상위권을 휩쓸었다. 신선한 배우, 화려한 연출, 신나는 음악. 이 삼박자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제작진의 열정이 만든 성공이라고 할까?
삶의 알맹이
‘열정’의 정의는 사랑만큼이나 다양하다. 비슷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열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열렬히 사랑하고, 매우 중요하다고 스스로 판단한 어떤 활동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열중하는 마음. 열정적인 활동은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강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내가 좋아하고,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고 선택한 일을 할 때 열정적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긍정적이고, 명확한 동기와 남다른 열정을 가졌기에 필요한 지식을 더 잘 습득한다. 그들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적 사고방식’(Mindset)을 기본값으로 가진다. 긍정적일수록 일에 몰입이 더 쉽고, 어려움이 있어도 해결책을 잘 찾는다. 잘 해결할수록 자신감도 커진다. 물론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위기를 극복하고 끝내 성취와 발전을 이루어내는 것. 고통과 기쁨이 공존하는 것. 그것이 열정의 기본값이다.
열정은 삶에서 도움닫기 역할을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모난 돌부리처럼 발목을 잡을 때도 있다. 전자를 ‘조화로운 열정’이라 부르고, 후자를 ‘강박적인 열정’이라 한다. 조화로운 열정은 기쁨과 보람, 자신감 같은 긍정적 감정을 삶에 불어넣고, 동시에 전체적인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나아가 한층 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반면 강박적인 열정은 집착의 성격을 가진 것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일중독으로 인해 가정이나 윤리 등에 소홀하거나 피해까지 주는 경우를 말한다.
조화로운 열정은 삶의 만족으로 이어진다. 조화로운 열정을 지닌 사람은 결코 스스로나 남에게 열정을 강요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행동한다. 삶의 단계마다 놓인 문제를 스스로 판단해서 해결한다. 잘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은 과몰입을 막고, 삶의 다른 부분도 돌보는 여유를 준다. 이들은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노년에도 조화로운 열정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호기심과 열정을 갖추고 배우기 위해 노력하면 어떨까? 이를 통해 스스로 존재의 가치를 깨닫고, 삶 속에서 자신감을 찾자. 나만의 시간을 통해 스스로 성찰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좋은 삶의 자세를 배우기 위해 열정적인 삶을 살 때, 우리는 비로소 맑은 정신과 더불어 삶 속에서 꽉 찬 알맹이를 쥘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멋진 느낌인가? 나의 열정을 현실로 만들고, 나의 춤을 추고 나의 삶을 산다는 것!”
Flashdance What a Feeling - Irene Cara
아이린 카라는 특이한 이력을 지닌 가수다. 배우로서 1980년에 개봉한 영화 ‘페임’에서 가수 지망생을 맡아 연기한 적도 있다. 동시에 이 영화의 OST를 불렀는데 당시에 인기가 상당했다. 이후 영화 ‘플래시댄스’의 주제곡 ‘Flashdance What a Feeling’도 그녀가 불렀고, 이 곡은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이 곡의 프로듀서 조르조 모로더는 1988년 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쓴 작곡가로 유명하다. 카라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하고, 8인조 그룹으로 활동했지만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가수로서 재능은 부족했지만 열정은 가득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30세대는 모든 게 빠르다. 자고 일어나면 유행이 바뀌어 있고, 며칠 전 신나게 쓰던 신조어는 한물간 취급을 한다. 좁히려 해도 좁혀지지 않는 세대 차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20대 자녀, 혹은 회사의 막내 직원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시니어를 위해 알다가도 모를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최신 문화를 파헤치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소개한다.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 영국의 팝 그룹 버글스는 1979년 자신의 노래로 라디오의 종말을 예고했다. 그 노랫말처럼 시대가 변함에 따라 시니어의 일상에 스며 있던 라디오는 설 자리를 잃어갔고, TV와 컴퓨터,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노래가 나온 지 40여 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영상이 음성을 장악하고 있지만, 최근 각종 오디오 서비스가 떠오르며 생태계에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화제의 ‘클하’…듣는 SNS 열풍
올해 초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음성 기반 SNS ‘클럽하우스’는 오디오 콘텐츠의 부활 가능성을 시사한 대표적인 사례다. 회원가입만 하면 이용 가능한 기존 SNS와 달리 지인의 초대장을 받아야 가입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 같은 폐쇄성이 비판적 여론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희소성을 중시하는 MZ세대 사이에서는 오히려 눈길을 끄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클럽하우스의 강점은 실시간, 쌍방향 음성 교류다. 이용자들이 올린 사진과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는 방식이 아니라 목소리로만 소통이 이뤄진다. 앱에 접속해 방에 입장하면 라디오를 켠 듯 낯선 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데, 라디오와 다른 점은 진행자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방의 성격도 다양하다. 잡담이나 성대모사를 하는 재미 위주의 방부터 비슷한 업계 종사자들이 모여 커리어 이야기를 나누는 곳도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 세계 거물급 인사들의 연이은 가입으로 유명인과도 전화를 하듯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 앱의 근본적인 열풍 원인이기도 하다. 해외에서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등이 연사로 등장했으며, 국내에서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등이 이용자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유례없는 소통 방식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클럽하우스는 이후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관심이 크게 줄었지만, 최근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유사한 음성 서비스 출시 계획을 발표하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TIP] 알아두면 쏠쏠한 클럽하우스 용어
① 초대장 클럽하우스의 가입 경로. 사전에 앱을 설치한 뒤 문자로 받은 초대 링크를 누르면 가입된다. 최초 가입 시 3장의 초대장이 제공되고, 활동량에 따라 개수가 늘어난다.
② 모더레이터 방을 만든 진행자로, 발언자를 정할 수 있다. 발언하고자 하는 이는 화면 우측 하단 손바닥 아이콘을 눌러 모더레이터에게 의사 표시를 하면 된다.
③ 박수 음소거 기능을 껐다 켰다 반복하는 것. 발언자의 말에 공감할 때 주로 쓰인다. 공식 기능은 아니지만, 유저들 사이에 자리 잡은 일종의 리액션 문화다.
책·전시·드라마까지 목소리로
목소리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또 다른 분야는 오디오북 시장이다. 오디오북은 인공지능(AI), 성우 등의 음성으로 책을 낭독하는 서비스로, 이미 미국에서는 전체 출판 시장의 10%를 차지할 만큼 대중화돼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지만, 최근 관련 플랫폼이 눈에 띄게 성장해 이목을 끌고 있다.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는 지난해 동기 대비 180%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밀리의 서재’는 올해 2월 누적 회원 수 300만 명을 돌파했다.
쏟아지는 영상의 홍수 속에서 오디오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강점은 ‘멀티태스킹’이다. 영상은 그 특성상 화면에 오롯이 집중해야 하는 반면, 오디오 콘텐츠는 운전·운동 등 다른 일을 하면서도 즐길 수 있다. 또 시니어의 경우 노안으로 인한 불편도 해소할 수 있다. 실제로 윌라는 회원 중 28%가 50대 이상으로, 중장년층의 이용이 활발하다. 윌라 관계자는 “나빠지는 시력으로 독서와 멀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중장년층 분들이 많은데, 오디오북은 이런 문제를 보완해 다른 디지털 콘텐츠보다 호응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전시 도슨트, 드라마 등도 오디오 콘텐츠로 재탄생하고 있다. 또 자신의 목소리로 오디오북을 녹음하거나 라디오 채널을 개설하는 등 참여형 콘텐츠도 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19년 기준 220억 달러에 달했던 오디오 시장이 2030년 753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영상의 시대에 오디오 시장이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을지 주목해볼 만한 시점이다.
[TIP] 떠오르는 오디오북 플랫폼
① 윌라 오디오북 전권을 전문 성우의 목소리로 실감 나게 들려준다. 다만 텍스트를 볼 수 없어 오직 두 귀로만 즐겨야 한다. 비즈니스·패션·과학 등 분야별 매거진과 제휴를 맺어 오디오 매거진도 제작하고 있다.
② 밀리의 서재 10만 권의 전자책을 보유해 텍스트와 오디오를 함께 제공한다. 일부 콘텐츠는 배우 이병헌, 조정석, 한지민 등 유명인의 목소리로도 감상할 수 있다. ‘내가 만든 오디오북’ 서비스로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책을 만들고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③ 오디오클립 2만여 권의 오디오북과 4600여 개의 다양한 팟캐스트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재혼황후’, ‘구르미 그린 달빛’ 등 자사의 유명 웹소설·웹툰을 음성으로 구현한 오디오 드라마로 차별을 꾀하고 있다. 대형 미술 전시의 오디오 도슨트 서비스도 제공한다.
인생 이모작에 성공하고 트로트 가수를 목표로 인생 삼모작을 준비했던 이금수(63) 씨가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 고등학교 수학교사, EBS 수학 영역 스타 강사, EBS 입시 프로그램 방송 진행자, 서울진학지도협의회, 서울시교육청 대학지도단을 거쳐 은퇴 후 대진대학교의 입학사정관까지, 교육 분야에서 줄곧 일해온 이금수 씨의 트로트 가수 데뷔 스토리를 들어본다.
인생,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여~
이모작도 버거워하는 중장년들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희망을 주는 사나이 이금수 씨가 인생 삼모작 주인공으로, 마침내 꿈꿨던 가수로 데뷔했다. 이금수 씨의 데뷔 앨범은 최근 트로트 가수 강진의 ‘막걸리 한잔’으로 주가를 올리는 류선우 씨가 작곡과 작사를 맡고, 트로트 업계에서 고급스런 편곡으로 소문이 자자한 장승연 씨가 편곡자로 나섰다. 아내 주현선 씨와 ‘금실은실’이라는 혼성듀오로 2곡을 녹음했고, 부부가 각각 2곡씩 녹음해 총 6곡이 수록돼 있다.
지난해부터 이금수 씨는 1년 가까이 쉬지 않고 트레이닝을 받으며 트로트 창법을 익히고 연마했다. 워낙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남들에게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던 터라 ‘자신감’ 하나만 믿고 여기까지 내달렸단다.
이금수 씨의 솔로곡인 ‘중년고백’은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중후한 이미지를 잘 살렸다는 평이다. 아내 주현선 씨의 솔로곡 ‘우야꼬’는 어쩌면 가수로서 단점이 될 수 있는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가사로 풀어내 오히려 매력 포인트로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함께 부른 ‘꽃노래’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부부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듯한 노래라 중년부부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이금수 씨 부부는 처음 이 노래를 연습할 때부터 애착이 많이 갔던 곡이라 기대가 각별하다고. 트로트 업계에서 실력자로 통하는 작곡·작사가와 편곡자가 힘을 합쳐서인지 트로트의 구성진 가락에 세련된 사운드가 입혀져 감성을 건드리는 게 일품이다.
TV만 켜면 채널마다 트로트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요즘, 목소리만 꺾어대는 기교형 가수보다 진심을 담아 정감 넘치고 사람 냄새 나는 곡으로 승부를 던지는 신참내기 가수에게 기대가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 8개월의 보이스 트레이닝 끝에 지난해 연말부터 녹음에 돌입, 올 초 앨범을 발표했다. 특히 이번 트로트 가수로 도전하면서 트레이닝과 앨범 녹음 기간 아내와 줄곧 함께해 부부 사이가 신혼 때보다 더 각별해졌다고 이금수 씨가 환한 웃음을 짓는다.
그렇다면 이금수 씨는 젊은 시절부터 가수가 꿈이었을까? 본인에게 가수의 꿈이 있다는 것은 언제 알았을까? 술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친구, 동료들과 술 한잔에 얼큰해지면 노래를 하고 싶어 꼭 마이크를 잡았단다. 주현선 씨도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 아이들이 어렸을 땐 잠을 재워놓고 같이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온 적도 많다.
“지금 생각하니 아이들에게 미안하네요. 그래도 아내는 그렇게라도 노래를 부르면서 육아 스트레스를 견디지 않았을까요? 올해가 결혼 37주년이니 37년 이상 노래를 불렀습니다. 특히 고등학교에서 수학 교사를 할 당시에는 축구, 테니스 등 운동을 마치고도 동료들과 함께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췄네요.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부르면서 말이죠.”
그는 동료들이 “노래 잘한다”며 치켜세울 때는 기분이 우쭐해서 술값도 많이 계산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EBS에서 강의를 하고 있어 수입이 짭짤하니 술값을 내라는 칭찬 아니었을까? 갑자기 합리적인 의심(?)도 든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 것이, 그런 이야기를 자꾸 들으니 노래가 더 좋아지고 일하면서도 쉬지 않게 노래를 흥얼거리는, 말 그대로 생활 속에 노래가 꼭 박혀버렸다. 이렇게 시작된 노래 사랑은 개포동성당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신도들끼리 모여 합창을 연습하며 세속의 노래인 ’마법의 성‘을 부르는데 너무 멋있어서 마치 천사들이 하늘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환희의 순간을 맛봤다.
“한번은 성가대 연습을 마치고 성가대 단원끼리 동네 맥줏집에서 한잔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을 정도로 동요를 조그맣게 불렀는데, 호프집 손님들이 맥주를 보내면서 노래를 좀 더 크게 계속 불러달라고 조르기도 했어요. 화음이 정말 훌륭하다고 격려해주면서요.”
37년 결혼 생활을 맞춰온 팀워크로 혼성듀오도 완벽 깔맞춤
인생 이모작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하루하루 심적인 안정을 찾아갈 때쯤이었다. 대진대학교에서 입학사정관 실장을 하면서 인생 삼모작을 생각하게 되었고, 부부가 함께 노년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을 제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다가 부부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니 가수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의견을 나누게 됐고, 뜻을 합하게 됐다.
마침 EBS에서 오랜 기간 함께 일했던 지인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고, 그러자 지인은 자신의 아우가 작곡가라며 소개를 해주었다. 그 아우가 바로 ‘막걸리 한잔’의 작곡·작사가인 류선우 씨였다. 류선우 씨의 테스트를 거쳐 1년 가까운 훈련 기간을 마치고 마침내 신곡 ‘꽃노래’와 ‘중년고백’, ‘우야꼬’로 결실을 맺게 된 것.
처음 테스트를 받으러 간 날이 2020년 4월 19일. 그 전 3개월 정도는 실용음악학원에서 매주 1회씩 원장님에게 지도를 받았다. 류선우 작곡가는 부부의 노래를 처음 듣고 나서, 이금수 씨는 노래를 자주 불러서 익숙하게 느껴지는데, 주현선 씨는 목소리가 노래와 겉도는 등 익숙함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목소리 자체는 깔끔해서 집중적으로 훈련하면 톤이 좋아질 것 같다며 격려를 해주었다.
이금수 씨는 목소리가 탁성이라 앨범 전체를 솔로로 하는 것이 걱정이었고, 주현선 씨는 노래에 익숙하지 않아 역시 솔로를 하기에 부담이 있었는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혼성듀오를 결성해 가수로 데뷔하자고 의기투합했다. 하긴 37년을 혼성듀오로 살아왔던 부부인 만큼 그 어느 팀보다 팀워크만은 탁월하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트로트 가수를 준비하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인생 이모작이야 30년 넘게 몸담았던 같은 교육 분야로 이동한 것이니 이질감도 없고 그런대로 적응할 수 있었지만, 인생 삼모작으로 목표한 트로트 가수는 완전히 트랙을 달리하는 분야이니 사실 막막함이 더 컸다고.
앨범이 나오기까지 부부는 매일 2시간 정도 수락산 아랫자락에서 노래 연습을 했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그래도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앨범 발매 가수로서 무대에 서서, 부부가 함께 눈을 맞춰가며 노래 한 곡을 부를 때 느껴지는 성취감이 엄청나다고 한다.
야외무대에 서며 관객과 호흡해
지난 4월 26일 부부는 엠스타 TV가 천안 ‘화수목 정원’에서 진행한 ‘유예진의 히트가요쇼’ 녹화에 참가하는 기회를 얻었다. 야외에서 진행하는 녹화 무대에 서니, 앨범을 발매한 가수로 확실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이를 계기로 ‘금실은실’ 듀오는 무대에서 불러주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아예 무대를 직접 만들자는 마음으로 유튜브를 통해 라이브 콘서트를 진행하게 됐다.
유튜브 채널이 열리자 많은 분들이 실시간으로 댓글을 남기며 부부 가수와 소통을 했다. 진행자까지 투입된 유튜브 미니 콘서트 무대에 오르니, 비록 방송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나만의 콘서트를 연 듯한 가슴 꽉 찬 시간이었다.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처럼 ‘금실은실’ 부부 가수의 첫 유튜브 콘서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실시간 조회수는 1000회를 넘었고 ‘좋아요’는 60개를 넘는 등 부부 가수의 첫 콘서트라고는 믿기지 않는 훌륭한 성적이었다.
6월에도 역시 야외 녹화 일정은 물론 유튜브를 통한 2차 라이브 콘서트 계획이 잡혔다며 “부부 가수 ‘금실은실’로 조금씩 알려지면 애초 계획대로 지역 봉사활동을 많이 다니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내비쳤다.
트로트 맛깔나게 부르는 설운도 닮고 싶어
신참내기 트로트 가수로서 롤 모델은 마음속의 영원한 스타, 설운도란다. ‘58년 개띠’로 나이는 똑같지만 가수로 정점에 오른 후에도 꾸준히 노래 연습을 하며 곡을 쓰는 모습에서 배울 점이 정말 많다고 느꼈다.
“부러운 것 하나는, 설운도 씨는 가사를 직접 쓰다 보니 자신만의 감성을 듣는 이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것 같다”며, “아무래도 노래를 배워서 부르다 보면 기교에만 신경을 쓰게 되는데 설운도 씨의 노래를 듣고 가사 전달력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됐다며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요즘도 보컬 트레이닝을 꾸준히 받는데, 이 훈련을 통해 가사를 분석하는 것은 물론 마디마디 창법과 트로트 가수들의 전매특허라 할 밀당 기술 등을 꾸준히 연습해 몸에 착 배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요즘 배우는 노래는 ‘사랑반 눈물반’, ‘처녀뱃사공’ 등인데 나만의 노래가 됐다 싶을 때 녹음해서 유튜브에 올릴 생각이다.
트로트 부부 가수 데뷔하니 주위 사람들 반응 뜨거워
“트로트를 한 것이 돈을 벌려고, 유명해지고 싶어서 시작한 게 아니잖아요. 이렇게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게 있어서 늦은 나이에도 목표를 세우고 정진해서 꿈을 이루며 살 수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는 세월에 순응하며 사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인생의 다음을 걱정하려면 2~3년 고심하며 탄탄히 준비하고 미리 계획한 후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 이모작과 삼모작의 목표가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아마 실패하기 십상일 것이다. 단지 자신의 재능을 조금 더 사용해 여가생활에 보태고 이웃에 봉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훌륭하다고 말이다.
그래도 질투와 시기 어린 시선보다 격려와 따뜻한 말 한마디로 힘을 주는 분들이 훨씬 많아 힘이 됐다는 그는, ‘금실은실’의 첫 유튜브 라이브 미니 콘서트 날 주위 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크게 고무됐다. 그가 SNS 활동을 열심히 하는 ‘6070중년쉼터’ 밴드의 선배들과 동년배, 후배들이 접속을 독려하며 응원해준 것에 크게 감동한 것이다. 이들의 격려와 응원을 장착하고 신인 가수의 패기를 얹어 야외무대와 유튜브 미니 콘서트를 멋지게 소화해,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서 먼저 섭외 전화를 받는 가수가 되겠다는 각오다.
함께 취미를 공유하고 꿈을 나누며 이루어나가는 부부의 모습은 주위에 귀감이 된다. 결국 인생이란 바로 내 옆의 가장 가까운 가족과 소통하며 건강한 가족과 이웃, 사회를 만들어나가고 꿈을 이루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걱정만 하다 문턱을 넘어보지도 못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걱정만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딪혀보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요. 문턱을 넘을까 말까 걱정만 하면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루하루 손에 익히고 몸에 체화하는 것. 그렇게 매진하며 살다 인생 마지막에 내가 나를 인정하고 엄지를 치켜세워줄 수 있어야죠.”
TV, 라디오, 영화 등 어디선가 우연히 흘러나오는 옛 노래에 누구나 한 번쯤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진한 향수를 경험한다. 한때 지겹도록 들었던 음악이 어느 순간 들리지 않고, 익숙한 멜로디가 가물가물해지는 나이가 되면 반가움은 더욱 크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추억 여행이 고픈 시니어를 위해 그때 그 시절의 팝송을 실컷 들을 수 있는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맘마미아! (Mamma Mia!, 2008)
지중해 코발트빛 바다에서 오랜만에 재회한 세 명의 소녀들. 이내 주인공 소피가 폭탄 발언을 한다. “아빠를 결혼식에 초대했어.” 놀랄 일은 아니지만, 소피에게는 놀랄 일이다. 엄마 도나의 옛 일기장에 적힌 세 남자 중 누가 진짜 아빠인지 알 수 없기 때문. 소피의 충격 고백으로 소녀들의 수다는 뜨거워지고, 찬란한 풍광을 배경으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허니 허니, 하우 유 스릴 미~” 곧이어 장면이 전환되고, 도나의 ‘허니’일지 모를 세 남자가 섬으로 도착한다. 결혼식을 앞둔 소피가 엄마의 옛 연인을 섬으로 초대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맘마미아’는 시니어의 추억을 똘똘 뭉쳐놓은 작품이다. 잊고 지낸 첫사랑이 생각나는 서사는 물론, ‘아이 해브 어 드림’ ‘댄싱퀸’ 등 러닝타임 내내 울려 퍼지는 팝그룹 아바(ABBA)의 노래가 젊은 시절의 추억을 선물한다. 그리스의 아름다운 풍경과 세월이 흘러도 낡지 않는 아바의 명곡,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등 할리우드 원로 배우의 퍼포먼스까지 삼박자가 어우러지는 작품. 흥겨운 리듬에 몸을 맡기다 보면 “맘마미아!”를 외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2. 예스터데이 (Yesterday, 2019)
나이‧국적 불문 전 세계가 사랑한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 어느 날 세상에서 비틀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비틀스를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 비틀스의 명곡을 기억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나 하나밖에 없다면? 영화 ‘예스터데이’는 이 같은 발칙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무명의 뮤지션 잭이 비틀스 없는 세상에서 스타가 될 기회를 맞는 내용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무명생활을 이어오던 잭이 작은 공연을 끝으로 꿈을 포기하려는 순간, 전 세계에 정전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잭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퇴원한 뒤 친구들 앞에서 퇴원 기념 ‘예스터데이’를 부른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은 어리둥절한 표정.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잭이 비틀스를 언급하자 친구는 말한다. “무슨 비틀즈를 말하는 거야. 곤충, 자동차?”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한 잭은 이날로 제2의 비틀스가 되어 성공가도를 달린다. 영화는 ‘헤이 주드’ ‘렛 잇 비’ 등 20여 곡의 비틀스의 노래를 잭의 목소리로 재구성한다. 원곡과는 다른 느낌이지만, 여전히 반가운 멜로디가 두 귀를 즐겁게 한다. 그야말로 비틀스의, 비틀스를 위한, 비틀스에 의한 영화다.
3. 로켓맨 (Rocketman, 2019)
‘로켓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이름처럼 로켓을 타고 우주로 날아갈 듯한 4차원적인 의상에 알록달록한 안경을 쓰고, 피아노로 록을 하는 천재 뮤지션 엘튼 존이다. 영화 ‘로켓맨’은 그의 지나온 인생과 음악, 숨겨진 고뇌를 오롯이 담아낸다. 영화는 알코올 중독 상담에 참여한 존이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시작된다. 대중이 기억하는 무대 위 화려한 모습보다는 부모의 무관심과 친구의 배신, 약물 중독 등 알려지지 않은 그의 어두운 개인사를 내밀하게 다룬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인 전기 영화의 형식을 취해 외로운 유년을 보낸 천재 소년이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전개해나간다. 같은 감독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는 달리 음악보다 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지만, ‘유어 송’ ‘크로커다일 록’ 등 적재적소에 흐르는 명곡들이 감정을 극대화하며 제 몫을 다한다. 감각적인 연출과 엘튼 존을 완벽 재현한 태런 에저튼의 열연도 재미를 더하는 포인트. 러닝타임 120분간 엘튼 존의 인생을 간접 체험하는 듯한 생경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평일 오전 각종 콘서트가 열리는 공연장이 5060 여성 관객들로 붐비고 있다. 공연장에서 내뿜는 열기는 여느 세대 못지않게 뜨겁다. 실제로 매달 마지막 금요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KT와 함께하는 예술의전당 마음을 담은 클래식(KT 콘서트)’ 티켓 1000여 석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에도 모두 매진됐다.
지난 2, 3월에 'KT 콘서트' 관람객을 분석한 결과 50대와 60대 관람객이 46%에 달했으며, 70%가 여성이었다.
예술의전당에서 매달 둘째주 목요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한화생명과 함께하는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한화 콘서트)’는 5060 여성 관객에게 인기가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3, 4월 ‘한화 콘서트’ 티켓을 구매한 고객을 분석해보니 절반이 넘는 50.1%가 50대와 60대였다. 그리고 전체 고객에서 여성이 85.3%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오전 11시에 열리는 콘서트 공연 프로그램을 50대와 60대 여성 관객이 주름잡고 있는 셈이다. 오전 11시에 열리는 두 콘서트가 50대와 60대에게 인기를 얻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 두 콘서트들이 호평을 얻는 이유는 클래식 입문자도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어서다. 특히 입담 좋은 스타 연주자나 예술대학 명예교수 같은 클래식 전문가가 직접 곡 해설을 곁들여 클래식을 잘 모르는 입문자도 지루하지 않게 클래식을 즐길 수 있다.
공연 프로그램 선정과 연주도 인기 비결이다. KT 콘서트에서 해설을 맡고 있는 김용배 추계예대 명예교수는 “이미 잘 아는 곡을 실연으로 들었을 때 관객들의 만족감이 크다”며 “잘 아는 곡과 새롭게 든는 곡 비율을 잘 섞어 프로그램을 짠다”고 설명했다.
올해로 18년 차를 맞은 한화 콘서트는 공연전후로 브런치를 즐기거나 맛집에서 점심을 먹는 고유한 ‘루틴’도 생겼다. 이를 경험해본 관객이 주변 사람에게 소개하고 함께 즐기면서 평일 오전대에 즐기는 공연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반적인 클래식 공연에 비해 티켓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사실도 50대와 60대를 부르는 이유다.
시니어 전문가들은 50대와 60대의 자신의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나서는 액티브시니어들이 문화생활 소비에 적극 나서고 있는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각종 통계 자료에서도 경제력이 뒷받침된 액티브시니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처럼 액티브시니어들이 문화 소비에서 유행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여름, 뜨거운 여름 햇살을 피해 평일 오전에 즐길 수 있는 클래식의 세계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명곡 ‘마음에 쓰는 편지’를 부른 가수, 그리고 1990년대를 휘어잡은 최고의 MC. 임백천(63)은 지금도 매일 낮 12시부터 KBS2 라디오 해피FM ‘임백천의 백뮤직’을 통해 사람들과 만난다. 1978년 MBC ‘대학가요제’로 연예계에 입문했으니, 어느덧 43년 동안 현역 방송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셈. 아날로그 시대에 시작해서 디지털 시대에까지 이르렀기에 ‘디지로그’를 지향한다고 밝힌 그는, 느릿하면서도 편안한 목소리로 자신이 지나온 세월과 현재의 시간을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어떤 정점에 도달했던 사람이 들려주는, 자신이 관조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①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내 인생 단 하나의 영화 같은 순간
임백천에 대해 얘기하면서 아내 김연주 씨를 빼놓기는 어렵다. 성공한 가수이자 MC였던 노총각과 서울대 출신 재원이자 역시 떠오르는 MC였던 두 사람의 결혼은 1993년을 장식한 큰 화제였다. 올해 결혼 생활 28년째, 1남 1녀를 둔 부부의 생활은 어떤지 물어봤다.
“(웃음) 아주 나이스한 친구예요. 제가 서른다섯 살에 아내에게 구제받았어요. 지금이야 서른다섯은 결혼 적령기지만 그때는 노총각이었고, 여자 마음을 사는 데 소질 있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다 프러포즈를 받아준 사람이 나보다 여덟 살이나 아래고, 여러 가지 면에서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결혼하겠다고 하자 ‘신부가 너무 아깝다’는 말이 나왔죠. 심지어 저의 엄마까지도 아내가 아깝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결혼식에서 그는 장인어른에게 양해를 구하고, 신랑 신부가 동시에 식장에 입장했다. 부부가 동등하게, 잘 살겠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입장을 해서 주례에게 가는 그 시간이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요. 지금도 그분의 보살핌에 힘입어 잘 살고 있고…. 한 집에서 식구들과 복작대며 살 맞대고 살아간다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잘 사는 건 아내가 현명한 답을 갖고 참아주고 희생해서 유지되는 거예요. 안 그러면 힘들겠죠.”
유튜버 제안받았지만 ‘거부’한 이유
임백천과 시니어로서 제2의 인생 얘기를 하다 보니, 방송인인 만큼 자연스레 유튜브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 또한 유튜브 채널을 제안받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그의 방송 철학과는 정반대였다.
“유튜브에서 방송계 비하인드 스토리를 푸는 걸 하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나는 그런 걸 싫어해요. 후배, 선배, 동료들 뒷담화는 해서는 안 될 짓이라고 생각하니까.”
물론 그도 유튜브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유튜브 방송 중 하나로 ‘주현미TV’를 꼽았다.
“지금은 트로트 전성시대잖아요. 옛날에는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전통 트로트 시대였는데 지금은 세미 트로트, 댄스 트로트 시대예요. 대중가요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겁니다. 전통 트로트를 공부하고 세미 트로트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있어요. 들어보면 알아요. 주현미 씨는 지금 시대에도 전통 트로트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죠. 본인이 그걸 본보기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주현미TV’를 보면 전통 트로트를 쭉 하고 있어요. 굉장히 잘하는 거죠. 돈이 막 벌리는 일도 아니고, 사명감으로 하시는 거죠.”
SNS 좀 안 하면 안 될까?
임백천 또한 유튜브를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있다고 한다. 만약 하게 되면 ‘주현미TV’처럼 자신만의 소울이 있는 것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전에, 인터넷 방송이 자신에게 맞긴 한 건지부터가 고민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 망설임에는 매일같이 인터넷 방송과 SNS를 통해 여론몰이가 일어나는 세태에 대한 그의 예리한 시선이 있었다.
“SNS 계정은 있지만 사용은 안 해요. 첫 번째 이유는, 게을러요. 글을 올리고 반응을 보고 댓글을 남기고 하는 걸 챙기는 빠릿빠릿한 사람이 아니에요. 두 번째는 지금 복잡한 사회가 됐잖아요. 서로서로 잘난 사람들뿐이에요. 서로 말하고 있어요.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이름 좀 알려진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면 언론에서 확대 재생산하고…. 그러니까 너무 시끄러운 거예요. 제발 사람들이 ‘낄끼빠빠’ 좀 했으면, SNS 좀 안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책임지지 못할 얘기를 고견인 양 올리면 시끄럽고 적이 생기고 싸우게 되고…. 그게 싫어서 안 합니다. 제가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신경을 쓰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런 게 싫어요. 조용한 사회를 원합니다.”
가수로서의 숙명, 다시 시작됐다
사실 임백천은 이틀에 영화를 세 편씩 보는 영화광이기도 하다. 다시 태어나면 배우를 하고 싶다는 소망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열망을 지금 생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가끔씩 드라마나 영화에 카메오로 나오는데, 본인 말마따나 커리어가 꽤 된다. 가장 유명한 것은 영화 ‘라디오스타’에서의 카메오 출연. 그 외에도 드라마에서 조연을 여러 번 맡았다. 최근에는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 시즌2에 카메오로 나오는 촬영을 끝냈다.
그렇게 이제 곧 배우로서의 임백천을 보는 것과 더불어 가수로서의 임백천도 보게 될지 모르겠다. 그의 목소리로 불리는 새 노래들이 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앨범인 3집이 1991년에 나왔으니 어언 30년 만의 일이다.
“마지막 앨범이 될 것 같아요. 가수를 했던 사람들이나 배우를 했던 사람들은 죽기 전날까지도 좋은 노래를 불렀으면, 좋은 연기를 했으면, 그러고 살아요. 어떻게 보면 숙명 같은 거예요.”
이번에 만드는 앨범은 젊은 감각의 프로듀서와 함께하는데, 프로듀서 말을 ‘백 프로’ 듣는 중이라고 한다. 안 그러면 한풀이지 가수로서 옳은 태도가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중장년층에 맞추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요즘 중장년층도 디지털 세대에 맞춰졌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 적응해야 해요. 요즘 중장년층은 살기가 힘들어요. 꼰대가 돼서는 살 수가 없으니까.(웃음)”
젊은 세대와 아무런 만남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인터넷을 하고 쇼핑도 해야 하니 요즘 세대에 적응하며 살 수밖에 없다. ‘야, 내가 사는 세상은 따로 있어. 네가 사는 세상은 찰나적인 거야’라고 생각하면 ‘꼰대’가 된다는 것이다. 시니어로서 요즘 세상과 마주치는 법을 선선히 받아들인 그의 모습은, 자신이 추구하는 디지로그적 인간에 한층 가까워 보였다. 가수 임백천의 잔잔하고 자연스럽고 가식 없는 목소리와 만나게 될 새로운 노래가 기대될 수밖에 없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를 노래할 거예요. 올가을까지 완성하는 게 목표입니다. 노래 연습과 기타 연습은 꾸준히 하고 있고요. 그런데 기대하지 마세요.(웃음)”
늘 이렇게 여운이 있다. 그래서 여백이 있는 임백천인가 보다.
명곡 ‘마음에 쓰는 편지’를 부른 가수, 그리고 1990년대를 휘어잡은 최고의 MC. 임백천(63)은 지금도 매일 낮 12시부터 KBS2 라디오 해피FM ‘임백천의 백뮤직’을 통해 사람들과 만난다. 1978년 MBC ‘대학가요제’로 연예계에 입문했으니, 어느덧 43년 동안 현역 방송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셈. 아날로그 시대에 시작해서 디지털 시대에까지 이르렀기에 ‘디지로그’를 지향한다고 밝힌 그는, 느릿하면서도 편안한 목소리로 자신이 지나온 세월과 현재의 시간을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어떤 정점에 도달했던 사람이 들려주는, 자신이 관조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임백천은 1978년 연예계에 입문했을 때 국민대학교 건축학과 재학생이었다. 생방송 중 대본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임백천을 눈여겨본 PD는 MBC ‘젊음의 행진’의 전신인 ‘젊음이 있는 곳에’의 진행을 맡겼다. ‘미래의 국민 MC’ 임백천의 시작이었다. 1980년이 되자 대학교 3학년이었던 그는 독집 앨범으로 1집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가수 경력도 갖게 되었다. 타이틀곡은 ‘나 여기 왔네’. 포크를 사랑하는 청년의 마음이 담긴 노래였다. 그러나 방송인으로 살아갈 자신감이 부족했던 그는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1981년부터 건축 기사로 일하기도 했다.
실패 끝에 올라선 1990년대 최고의 MC
하지만 방송인으로서의 기질은 어쩔 수 없었던 걸까? 1986년 임백천은 KBS ‘광장 마로니에’의 MC를 맡으며 방송가로 복귀했다. 하지만 복귀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방송인으로서의 감각을 잊고 지냈던 탓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왔고, 프로그램은 결국 6개월 만에 폐지됐다.
방황하던 그때 그를 붙든 것은 노래였다. 노래가 히트하면 다시 방송가에서 일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절치부심한 그는 마침내 1990년 2집 ‘마음에 쓰는 편지’를 발표, 대성공을 거둔다. 비록 그다음에 나온 3집은 실패했지만, 방송인으로서 그는 199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만들었다. KBS2 ‘슈퍼선데이’, ‘좋은나라 운동본부’, ‘세대공감 토요일’, ‘임백천의 라디오 7080’과 MBC ‘가요 큰잔치’, ‘특종TV연예’ 등 당대 인기 있는 프로그램에는 그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명실상부 1990년대 종횡무진하며 전성기를 누린 MC였다.
‘임백천의 백뮤직’으로 전달하는 진심의 세계
TV와 라디오를 아우르는 방송인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 봤던 그는 이제 예순셋의 나이를 맞이한 방송계 고참이 되었다. 그에게 과거와 요즘은 무엇이 다른지 물어봤다.
“라디오는 점점 진행이 어려워져요.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라디오는 듣는 사람이 누군지 몰라요. 밤하늘에 활을 쏘는 작업이죠. 맞긴 하는데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내가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면서 이야기를 하는지 청취자들은 며칠만 들어보면 아는 것 같더라고요. 그 와중에 재미도 있어야 하고 감각도 놓치지 않아야 하니까 보통 어려운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러나 라디오는 사람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보여주기에 중장년층이 여전히 선호하는 게 아닐까.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이 듣고 있어, 라디오에는 지금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아날로그적 진정성의 매력이 있다.
“사실 라디오는 비대면 시대에 좋은 매체예요. 그리고 최후의 매체입니다. 전쟁이나 재난에 의해 모든 게 블랙아웃이 됐을 때도 라디오는 살아남을 수 있어요. 라디오로 소통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환태평양지진대, 소위 불의 고리에 속하는 나라들에서는 라디오가 필수 준비물이에요.”
MC는 ‘스타’가 아닌 ‘스태프’
임백천은 장수 MC로서 자신의 원동력을 한마디로 ‘살아남으려는 노력’이라고 표현했다. 편안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치열함이 그의 내면에는 있었다.
“살아남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하고 있고요. TV든 라디오든 요즘은 더 심한데, 시즌제 개념이라 몇 달 만에 없어지거나, 좋으면 다시 시작하거나 하죠. 라디오도 6개월이나 1년마다 변화가 있거든요. 진행자나 PD나 작가를 바꾸는 등…. 피를 말리는 생존경쟁이죠. 낮 12시에 땡 하고 시작하는 프로그램만 수십 개예요. 도태되지 않으려면 생산성을 높여야 하죠.”
그는 방송을 PD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처럼 PD가 기획을 하고 그에 맞는 작가, 진행자를 골라서 완성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PD, 작가들과 합이 잘 맞아야 해요. 매일 만나고 밥을 먹고 회의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이라. PD들은 다 실력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달라요. 작가들도 마찬가지고. 그 사람들과 융화를 잘 해나가는 게 제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는 대중문화계에서 스타란 영화, 연극, 코미디에 나오는 배우와 노래를 부르는 가수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스태프라고 단언한다. 그러니까 MC로서 자신은, 스타가 아닌 스태프다.
“1990년대 초부터 2000년 직전까지 10년 정도가 제 전성기였어요. MC 순위를 조사하면 항상 1등을 했으니까요. 그때도 내가 인기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냥 ‘나는 스태프다’ 생각하고 방송을 했어요. 그래서 PD들이 좋아했어요. 그 사람들 방송하기 좋게 편집점을 잡아주니까. 내가 스태프 마인드이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죠. 그런데 요즘 유재석, 신동엽, 김성주 등 후배 MC들을 보면 스타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스태프 마인드로 방송을 마칠 거예요.(웃음)”
*②편으로 내용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