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독립 이후부터 시니어의 주거환경에는 변화가 생긴다. 아이들과 살던 집에서 부부 둘이 지내기도 하지만, 사별이나 졸혼 등으로 혼자 살거나, 자녀 세대와 함께 대가족을 이루기도 한다. 노후에 한 번쯤은 고민해야 할 주거공간, 어떻게 계획하는 것이 좋을까?
도움말 서지은 영남대학교 가족주거학과 교수, 니콜라스 욘슨 이케아 코리아 커머셜 매니저,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사진 제공 이케아 코리아
◇ 1인 ‘편리와 안전’ vs 다세대 ‘융합과 프라이버시’
[1인 가구] 1인 가구의 경우 인테리어는 자기 마음껏 꾸미면 되지만, 그 전에 따져봐야 할 것은 편리성과 안전성이다. 한적한 외곽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는데, 사실상 편리하고 안전한 곳은 도심이다. 대형 병원이나 각종 편의시설이 가까워 위기 대응이 빠르기 때문이다. 이에 최근 생겨나는 노인 대상 아파트의 경우 도심에 짓는 사례가 많아졌다. 또, 다양한 편의 시스템이 접목된 고가의 소형 아파트나 오피스텔, 원룸 등도 주목받는데, 그 활용도가 관건이다. 실제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많아도 사용법을 몰라 무용지물로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Tip+ 편리하고 안전한 ‘스마트홈 기기’ 활용하기
혼자 살다 보면 만일의 사고에 대한 염려를 놓을 수 없다. 긴급 상황 시 ‘원 터치’(one touch)로 가족 또는 지인에게 긴급 메시지를 전송해주는 SOS 버튼이나 사람의 움직임을 파악해 사이렌이 울리는 동작감지센서 등 스마트홈 기기를 적극 활용해보면 어떨까? 대표적으로는 LG U+ ‘스마트홈 패키지’, SK 브로드밴드 ‘지키미 SOS 버튼’, KT ‘기가 IoT홈’ 등이 있고, 월 1만~2만 원대로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괜찮다면 스마트 홈CCTV 등을 설치해 가족과 공유하며 안전을 지키는 것도 방법이다.
[다세대 가구] 다세대 가구는 하드웨어적(건축물의 구조나 구성 등) 측면과 소프트웨어적(거주자 사이의 규칙 등) 측면으로 나눠볼 필요가 있다. 먼저 가족끼리 충분히 논의해 교집합을 찾고 이를 우선순위로 주거지를 찾는다. 이때 개인 공간보다는 공용 공간(거실, 주방, 욕실) 중심으로 보는 것이 좋다. 가령 주방을 자주 쓰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방 위치를 정하거나, 여분의 주방이 필요한지 등을 고려한다. 아울러 서로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기 위한 공용 공간 사용 규칙을 만들고 공과금 문제와 가사 역할 분담에 대해서도 미리 상의한다.
Tip+ 다세대 가구 욕실 딸린 안방, 누가 쓰는 게 좋을까?
다세대의 경우 종종 안방 욕실을 누가 사용할 것인가를 두고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의견 차이를 보이곤 한다. 거동이 불편하지 않다면, 가급적 부모 세대와 손주들이 함께 공용 욕실을, 자녀 세대가 안방 욕실을 사용하길 권한다. 활동량이 적은 시니어가 방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면, 공용 공간 이용이 줄어 자칫 집 안에서 소외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아이와 노인은 안전성 측면에서 안전하게 설계된 욕실을 함께 이용하는 게 좋다. 이때 미끄럼 방지 타일이나 손잡이 등을 설치하면 도움이 된다.
◇ 자녀 출가 후 주인 없는 방 vs 모두가 함께 쓰는 공유 공간
[1인 가구] 자녀가 독립하며 쓰임새를 잃어버린 방은 자칫 주거생활의 활력을 떨어뜨리거나 허전함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이유로 집의 규모를 줄여 원룸이나 스튜디오형 오피스텔을 찾지만,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주거 형태이기에 생활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딱히 이사 계획이 없다면, 남은 방을 취미를 살리거나 분위기를 업그레이드해줄 공간으로 꾸며보는 것도 방법이다.
Tip+ 나만의 홈 컬렉션(갤러리)
남는 공간을 갤러리처럼 활용하면 다채로운 주거공간이 된다. 컬렉션을 구성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색상별로 아이템을 모으거나, 공간을 한 종류의 장식품으로만 진열하는 것이다. 비슷한 소품은 개별 진열보다 모아놨을 때 더 큰 미적 효과를 발휘한다. 투명한 선반이나 유리도어 수납장 등을 사용하면, 물건을 한층 더 돋보이게 연출할 수 있다.
Tip+ 홈 트레이닝 피트니스 룸
요즘처럼 바이러스나 미세먼지 등으로 바깥 활동을 자제하면 기초대사량과 근육량이 줄어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여유 공간에 홈 피트니스룸을 만들면 어떨까? 자칫 운동기구들로 바닥이 어질러지거나 공간이 좁아질 수 있는데, 이때 벽면 선반을 설치하면 효율적이다. 선반에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스피커 등을 올려놓고 헬스 동영상을 보며 동작을 따라 할 수 있다. 브래킷 사이 거리를 좁게 설치해 요가매트를 수납하거나, 후크를 달아 훌라후프, 밴드 등을 걸어도 좋다.
[다세대 가구] 함께 쓰는 공유 공간으로 ‘거실’을 꼽을 수 있지만, 대부분 텔레비전을 볼 때만 모여 앉아 있을 뿐 특별한 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함께 살면서 교류가 부족하면 집 안 분위기가 무겁고 무미건조해지기 쉽다. 최근에는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없애고 대신 책장을 두어 북카페처럼 공간을 꾸미는 등 가족 간 융합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인테리어를 시도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Tip+ 가족 전용 홈 시네마
탁 트인 공간이 있다면 가족을 위한 전용 극장으로 꾸며볼 수 있다. 가정용 빔프로젝터를 설치해 실내 한쪽 벽면이나, 옥상·마당에 행거와 흰 천 등을 이용해 스크린을 만들어본다. 편안한 의자와 분위기 있는 조명, 텍스타일까지 준비한다면 더욱 아늑한 공간이 된다. 영화관처럼 상영시간표를 만들거나 팝콘 등을 즐기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Tip+ 휴대기기 충전 스테이션
식구가 많으면 각자의 스마트폰, 디지털카메라, 노트북 등 휴대기기 충전기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간혹 제품에 맞는 충전기를 찾지 못해 곤혹스러울 때도 있다. 방마다 수납공간을 들쑤시다 보면 쓰임새가 모호한 전선이나 어댑터까지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집 안은 어수선해지고 이름 모를 물건은 쌓여간다. 거실이나 공유 공간 한 편에 각종 충전기기를 모아놓으면 이러한 불편을 줄일 수 있다. 때때로 가족이 모여 쓸모없는 충전기나 전선 등을 정리하는 시간도 마련한다.
어린 시절의 겨울을 떠올려보면 추운 날씨에도 바깥 활동을 참 많이도 했다. 팽이치기, 자치기, 썰매타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얼음땡 등 겨울 놀이가 풍성했다. 요즘은 세상이 변해서 따뜻한 실내에서도 다양한 놀이와 체험을 할 수 있다. 손주 손 잡고 가족과 함께 즐길 만한 핫 플레이스를 찾아봤다.
1. 힐링과 웰빙을 담는 곳 ‘미리내 힐빙클럽’
이 겨울 따뜻한 곳에서 제대로 된 휴식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미리내 힐빙클럽’(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몸과 마음을 함께 보해주는 예방 의학과 ‘마음 챙김’ 철학이 만난 공간으로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50분 거리에 있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상태로 심신을 내려놓고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피곤함을 떨쳐버릴 수 있는 곳이다.
스트레스 체크를 시작으로 유산균이 배합된 팩을 얼굴에 바르고 누워서 하는 ‘바디스캔 명상과 디토피팩’은 미리내 힐빙클럽의 특별 프로그램이다. 깊은 휴식을 통한 이완과 재충전도 하고 피부 노폐물도 제거할 수 있다.
‘실내 체험존’에는 ‘풀이 우거진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순우리말 이름의 ‘가든푸실’이 있다. 100여 종에 이르는 초록 식물과 반신욕, 족욕 등 물을 테마로 한 공간으로 조용하고 편안하게 안정을 취할 수 있다. 말초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테마별 족욕탕도 곳곳에 있다. 잇꽃 입욕탕, 겨우살이덩굴 입욕탕, 쑥탕 등 생약초 족욕탕, 오감 족욕탕, 게르마늄 족욕탕 등으로 나뉘어 있어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다. 바이오 세라믹볼 찜질도 방문객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라고. 인체에 유익한 다섯 가지의 광석 물질이 몸속 깊숙이 열을 전달해주는 원적외선을 방출한다. 옛날 아랫목이 있던 구들방을 연상케 하는 ‘구들잠休’는 평소 숙면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다. 잠깐 자고 일어나도 개운함을 느낄 수 있다. 힐빙체험존에는 간, 비위, 콩팥, 폐, 심장을 중심으로 한 오행 테라피와 향기, 명상, 소리, 색깔을 이용한 오감 테라피 등이 있다.
2. 도시 속 예뻐지는 정원 ‘아모레 성수’
이곳에 가면 예뻐질 수 있다! 건물 안에서 정원도 감상하고 아모레퍼시픽의 다양한 제품들을 직접 써볼 수 있는 공간, 바로 ‘아모레 성수’다.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특히 여성들에게 관대한 이곳은 지난 10월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 문을 열었다. ‘아모레 성수’는 아모레퍼시픽의 30개 브랜드를 중심으로 이뤄진 만들어진 뷰티 라운지다. 1층에서 3층 옥상까지 총면적은 300평 규모. 어린 시절 엄마의 콜드크림을 얼굴에 조금씩 발라보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곳이다. 마치 그때 그 시절 화장대를 넓은 공간에 예술적으로 표현해놓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아모레 성수 건물 안 중앙에는 ‘성수가든’이라고 이름 붙인 정원이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간을 배치해 건물 어디에서나 정원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정원수로 쓰인 꽃들은 비비추, 앵초 같은 우리 강산에서 나고 자란 식물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매장 입구에서 간단한 웹 체크인을 하고 나면 아모레 성수에서 체험할 수 있는 미니어처 교환권과 오설록 할인권 등을 스마트폰으로 다운로드해 쓸 수 있다. 화장품을 사용하기 전 세안을 할 수 있는 클렌징 룸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뷰티 라이브러리’. 아모레퍼시픽 30여 개 브랜드의 2000여 개 제품을 마치 도서관에서 책을 빼서 보듯 꺼내 쓸 수 있다. 뷰티 라이브러리 맞은편에 있는 가든라운지는 아름다움을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다. 비치된 의자에 앉아 성수가든을 바라보며 다양한 제품을 사용해볼 수 있다. 2층에는 오설록 아모레 성수점이 입점했다. 3층은 옥상으로 연결돼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성수동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3. 기차 안에서 놀자! 크루즈 열차 ‘해랑’
크루즈 여행은 한 장소에서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목적지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탑승과 함께 진행되는 유람선 안 프로그램이 낭만적이다. 아주 멀리 배를 타고 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기차 안에서 놀고 즐길 수 있는 해랑을 타고 달려보자. 일명 레일크루즈라 불리는 ‘해랑’은 코레일관광개발에서 운영한 지 11년째 된 관광열차다. 상시 여행 코스는 2박 3일 전국일주(서울-순천-경주-동해-태백), 1박 2일 동부권(서울-단양-경주-서울),
1박 2일 서부권(서울-고창-보성-순천-서울) 3가지가 있다. 오는 12월 30일과 31일에는 해맞이 특별 열차가 운영될 예정이다.
‘해랑’으로 운영되는 열차는 총 2대로, 1대당 8량으로 구성돼 있다. 중심 차량인 4호와 5호는 레스토랑 카페와 이벤트 라운지이고, 나머지 6량은 객실이다. 2인실(스위트·디럭스룸)과 3~4인실(2층 침대) 패밀리 룸과 스탠다드룸 등 4개 타입이 있다. 호텔식을 지향하기 때문에 시설 또한 고급스럽다. 관광 전용 열차에 걸맞게 침대, 소파, 화장실, 헤어드라이기 등 여행과 휴식에 필요한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다. 여행이 시작되면 승객과 승무원들은 이벤트 라운지에 모여 여행 시작을 알리는 작은 파티를 연다. 다양한 이벤트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준비하는데 승무원들의 장기자랑도 이때 볼 수 있다. 승객들은 각자 자기소개를 하면서 새로운 여행 친구들과 인사한다. 보다 친근한 여행을 즐길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해랑 승무원들은 맡은 소임은 물론 각 여행지에서 관광객 인솔과 이벤트 공연, 식음료 등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해랑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쇼핑을 강요받는다거나, 추가 요금을 내는 일이 없다는 게 큰 장점이다. 시니어들에게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출발하는 전국일주 2박3일 코스가, 어린 자녀가 있는 부부에게는 1박 2일 코스가 인기 있다.
4. 손주들과 함께 가는 실내 동물원 ‘주렁주렁’
주렁주렁은 도심 속에서도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겨울철에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동물원 나들이를 하게 된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실내 동물원 ‘주렁주렁’은 동물들과 함께하는 테마파크로 하남, 일산, 경주,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들어서 있다. 시간 여행자와 생명의 나무(타임스퀘어), 잃어버린 기억(하남), 여행자의 추억(일산), 숨겨진 비밀(경주) 등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운영된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간이라 실내 평균온도와 내부 환경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고. 실내는 23℃에 맞춰져 있어 외부 날씨 영향을 받지 않고 사시사철 이용이 가능하다. 춥거나 미세먼지가 많아도, 눈비가 와도 즐길 수 있는 동물원이다.
운영 프로그램도 각 동물원마다 색다른 특색이 있다 ‘하남 주렁주렁’에서는 전 연령 대상으로 앵무새 ‘민트’와 함께하는 토크쇼 ‘모퉁이 상담소’, ‘주렁숲 요정의 산책’이라는 환영 행사를 진행한다. 올해 7월에 문을 연 영등포 타임스퀘어점은 1000평 규모의 실내 동물테마공원으로 대중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복합쇼핑몰 안에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다. 시간 여행자와 생명의 나무 콘셉트에 맞춰 게임을 하듯 미션을 하나씩 수행하면서 동물원을 관람할 수 있다. 미션을 마친 뒤에는 영상 불빛 쇼도 볼 수 있다 하니 이번 겨울에 꼭 한 번 가보시길.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이 많은 ‘일산 주렁주렁’은 파충류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생생 도슨트 체험 파충류 대사전’과 ‘걱정인형 만들어주기’, 동물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 ‘생태체험 주렁쿠키’, 앵무새 비밀 친구(마니토)를 뽑아 특별 간식을 선물하는 ‘생태체험 나의 마니또는?’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경주에서는 동물먹이주기 체험이 주를 이룬다. 상어, 사바나캣, 카피바라에게 먹이를 주고 싶으면 현장에서 신청하면 된다. 방문 전 주렁주렁 사이트에서 가고 싶은 곳 정보를 확인하면 보다 알차게 동물들과 교감할 수 있다.
5. 숲속 맑은 공기와 찜질 스파 ‘테르메덴 풀앤스파’
서울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 이천. 복합휴양 공간인 ‘테르메덴 풀앤스파’가 있다. 추운 날씨에도 실내외 온천 사우나와 수영장은 물론 카라반 캠핑 시설과 한옥을 갖추고 있어 유럽에 온 듯한 숲속 정취와 우리 전통의 향취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실내에 마련된 풀앤스파는 각종 질병 예방과 요양,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개발된 건강보양온천 시설이다. 이를 바데풀(Bade Pool)이라고 하는데 독일의 바데하우스(Bade Haus)를 모델로 했다. 유수풀, 유아풀, 테마 이벤트탕, 아로마 사우나 닥터 피시 등이 마련돼 있다.
실내 시설 중 하나인 찜질 스파는 전형적인 온천에 찜질을 더한 것. 온천욕을 즐긴 후 편백나무방, 황토방, 소금방, 맥반석방 등에서 찜질을 할 수 있다. 일본의 편백나무와 히말라야의 암염, 전북 고창의 최고급 황도, 경북 예천의 맥반석을 사용해 최고의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찜질방과 함께 패밀리룸, 가든 커뮤니티, 안마의자룸, 키즈라이브러리 등의 시설도 갖추고 있다.
이밖에 건·습식 사우나, 온천탕, 노천 이벤트탕은 일상의 지친 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춥다고 해서 꼭 실내 시설만 이용할 필요는 없다. 노천 이벤트탕은 생각보다 춥지 않다고. 겨울에는 바닥에 살얼음이 낄 수 있어 걸어 다닐 때 조심해야 한다. 추위가 걱정된다면 긴팔로 된 래시 가드를 착용할 것을 권한다. 테르메덴 풀앤스파에서는 수영복 대여가 안 되므로 꼭 챙겨가야 한다.
트레킹과 맛집 순례가 대세다, 방송과 각종 매체들이 국내는 물론 산티아고 순례길 등 해외 코스까지 샅샅이 소개하고 있다. 과장되고 억지스런 스토리가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경쟁적으로 취재에 나섰으니 뭔가 성과를 보여줘야겠고, 그러다 보니 무리한 소개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시니어 세대를 위한 길과 맛 소개는 소홀하다. 시청률이나 구매력 면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동년기자들을 통해 편하게 걸으면서 그 지역의 특별한 맛도 즐길 수 있는 ‘Road & Food’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탐라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오 솔레 미오’
제주의 풍광은 역시 항상 ‘정답’이다. 더욱이 지금은 가을철임에랴.
먹거리 취재만 아니라면 오늘은 햇빛을 받으며 해안길 따라 하염없이 걷고 싶다. ‘오 솔레 미오(O Sole Mio)’라도 멋들어지게 부르면서. 그러나 우선 먹거리 취재부터 해야 한다. 하긴 걸으려면 뱃속을 채우는 게 우선이기도 하겠다.
먹방 프로그램에 많이 소개됐다는 우진해장국(제주시 서사로 11)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사진기자가 9시에 식당에 가서 대기번호표를 받았다. 대기시간은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1만9000원의 고사리해장국이 별미다. 그러나 소중한 아침 시간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각자가 선택할 사항이겠다.
모슬포에 사는 친지의 권유로 사계리 해안을 돌기로 했다. 그의 제안에 따라 오늘은 숙소가 있는 곳에 차를 놔두고 버스를 이용했다. 버스를 타고 아주 멀리까지 갔다(꽤 빙빙 돈다). 같은 제주 섬인데도 북쪽 제주시 해안과 느낌이 확연히 다른 남서쪽 해안의 풍광이 보인다. 제주에 올 때마다 이런 느낌이 계속 드는 건 아마도 도시화 진척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교통량도, 바닷가 풍경도 차이가 난다. 실제로 가파도 선착장 근처에서는 몇 명의 해녀가 바닷속으로 들어가 소라, 전복 등을 캐고 있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자연산!
“이거 모두 3만 원에 사서 듭소!”
해녀 한 분이 권하는 대로 꽤 많은 양의 소라를 사서 먹기로 했다. 해녀가 근처 탈의실에 가서 초고추장을 가져오더니 그 자리에서 소라를 까서 바닷물에 씻어준다. 오도독오도독 씹히는 식감과 함께 상큼하게 올라오는 바다 맛이 별미다. 이번 제주 취재 여행의 먹거리 중 으뜸!
간식은 간식이고 점심은 또 해야겠기에 일대에서 밀면 맛있다고 소문난 산방식당(서귀포시 대정읍 하모이삼로 62)을 찾았다. 부산에서 많이 먹는 밀면은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냉면이 그리울 때 메밀 대신 밀로 만들어 먹은 음식이다. 이 식당은 밀면 맛도 좋지만 돼지 수육이 별미로 꼽힌단다. 특이하게도 제육을 찍어먹는 양념으로 고추장을 내온다. 새우젓과 된장을 찾으니 단호하게 없단다.
점심식사 후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추사 김정호 유배지를 돌아보고 서귀포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이중섭 기념관도 찾았다.
9년간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한 조선의 대표적 문장가이자 서예가인 추사는 유배지에서도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구석구석 그의 흔적을 느껴본다. 유배 중에 그린 ‘세한도(歲寒圖)’의 발문에는 “날씨가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알 수 있다”는 공자의 글이 들어 있다.
이중섭이 전쟁통에 헤어진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그린 그림들도 감상했다. 제주여행 중 이들의 흔적을 살펴보며 한 번쯤 깊은 사색에 잠기는 것도 좋겠다.
수월봉 - 자구내 포구길은 걷기 좋은 올레길 코스로 많이 소개됐다. 이 길을 걸으며 전망 좋은 카페를 만났다. 1시간여 계속된 취재를 잠시 쉬면서 넋을 잃고 차귀도와 바다를 감상했다.
친지의 차를 얻어 타고 제주시 쪽으로 향했다. 신창-용수 해안도로를 타고 올라가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며 내려준 곳. 월령 선인장마을에는 바닷속에 일렬로 박혀 있는 수십 대의 풍력발전기가 있다.
일몰과 함께 찍은 사진이 대박!!! 해가 질 때 꼭 이곳을 찾아 석양과 ‘바람개비’를 감상해보기를 권한다.
“황 기자, 저쪽으로 좀 더 가서 찍어보지!”
“더 가면 바닷속인데요. 후훗!”
풍력발전기 풍광 사진이 너무 탐나서 동료기자를 바다에 밀어 넣을 뻔했다. 저녁에는 대정읍 하모항구로에 위치한 덕승식당을 찾았다. 우럭매운탕이 일품. 국물이 칼칼하면서도 특이한 맛이다.
몸국 한 사발에 담긴 제주의 맛
몸국은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에 해초인 모자반과 돼지고기를 넣어 끓인 국이다. 취재기자들은 몸국을 제주 이외 지역에선 먹어보지 못했다. 제주의 특별 음식 중 하나인 ‘김희선제주몸국’(제주시 어영길 19)이 소문이 자자하다기에 찾아갔다.
식당은 자그마했다. 6000원짜리 몸국, 1만 원짜리 성게미역국에 대한 평가점수를 모두 후하게 줬다. 김희선제주몸국은 다른 식당보다 몸(모자반의 제주도 사투리)을 풍성하게 쓰고 약간 매콤하게 맛을 냈으며 성게의 양도 풍부하고 싱싱했다. 한마디로 둘 다 진국이었다. 이 집 몸국은 전국으로 소문이 나서 서울에서도 택배 신청을 한단다.
맛있게 아침을 먹고 자동차로 5·16도로를 달려 서귀포로 넘어갔다. 5·16도로는 한라산을 관통하는 제주도의 남북 연결 도로 중 가장 경관이 좋다. 특히 서귀포에 거의 다다르면 도로 양쪽의 우거진 나무들이 만든 숲 터널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그재그로 굴곡이 심해 상업용 차량 이용률은 높지 않다고 한다.
올레길에서 가장 인기 높다는 7코스의 바다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가 있다. 바로 외돌개. 중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어 이 길을 걸으면 행인들 속에서 중국말이 자주 들려온다. 해안 중간에 위치한 널찍한 바위 좌우에서 스카프를 휘날리며 사진을 찍는 여인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외돌개 바위 좌측에는 호수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천연 바다수영장이 있다.
여름이 되면 이곳에서 스노클링을 한단다. 스노클링을? 다시 보니 최적의 장소다. 해변에 붙어 있고 앞으로는 큰 바위들이 막아주고 있어 안전할뿐더러 아늑하기까지 하다.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그물을 쳐놓고 하는 스노클링보다 규모 면에서는 작지만 안전성은 높다. 어린이 스노클링 장소로도 제격이겠다. 제주에 자주 오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장소란다.
점심식사 장소로 택한 식당은 시내 의 오분자기 뚝배기의 원조격 식당. 그러나 이번 제주 맛 취재를 위해 방문한 곳 중 가장 실망스러운 식당이었다. 죽은 미리 끓여놨는지 시키자마자 곧바로 나왔고 뚝배기 맛은 겉돌았다. 그런데도 가격은 높았다. 점심시간이 한창인데도 손님이 많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저녁때는 더 맛 좋은 흑돼지 구이 식당을 찾기 위해 기자들이 각자 흩어졌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의견을 취합해본 결과 흑돼지 구이 맛은 대동소이! 다시 한 번 제주의 흑돼지고기 맛은 대부분 괜찮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전날 흑돼지 안주로 과음들을 한 탓일까. 갈칫국으로 해장을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부둣가에 있는 물항식당(제주시 임항로 37-4)을 찾아갔다. 수산물은 역시 부둣가 식당이 최고다. 재료가 신선하고 양도 푸짐하다. 전복뚝배기 1만5000원, 갈칫국 1만3000원, 갈치구이백반 1만3000원, 성게국 1만3000원. 아침식사비로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맛이 훌륭했다.
내친김에 자리물회와 한치물회 맛까지 보려 했으나 제철이 아니란다. 돌이켜보니 이번에는 제주에 와서 회다운 회를 먹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취재를 마치고 물항식당에서 저녁식사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도시에는 대표 빵집이 있게 마련이다. 전주의 풍년제과, 여수의 거북선빵집 등이 잘 알려진 빵집이다. 제주에는 보리빵을 파는 신촌덕인당(본점, 제주시 조천읍 신북로 36)이 있다. 매장에는 대기하는 손님을 위한 테이블이 딱 하나만 놓여 있다. 순수한 보리빵과 팥보리빵, 통팥보리빵 등을 판매한다. 건강한 빵이라는 느낌이 든다.
함덕해수욕장은 제주에서 보기 드문 고운 모래의 넓은 백사장이 조성돼 있다. 왼쪽은 해변에서 10여m 나갈 때까지 바닷물이 허리 정도의 깊이밖에 안 돼 가족 놀이터로 제격이다. 제주 시내에서 가까워 이용객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보건복지부(장관 박능후)는 12월 2일부터 13일까지 2020년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공익활동, 시장형사업단) 참여자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대상은 만 60 ~ 65세 이상으로 세부 사업유형에 따라 자격조건, 활동내용이 다르다.
공공형 공익활동은 기초연금수급자 대상 사업으로 노노(老老)케어, 공공의료 복지시설 봉사, 학교급식 도우미 등에 월평균 30시간(주 3회, 1일 3시간) 활동하면 약 27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또, 재능나눔 사업은 만 60세 이상자를 대상으로 개인의 재능(자격, 경력)을 활용해 상담 안내, 학습지도 등을 월 10시간 활동하면 10만 원을 지급한다.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는 노인의 경력과 역량을 활용하여 사회적으로 필요한 영역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자리로 만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지역아동센터, 보육시설 돌봄지원, 장기요양서비스 업무지원 등에 월 평균 60시간(주 5회, 1일 3시간) 활동하면 급여 65만 원을 준다.
민간형 일자리사업은 만 60세 이상이면 신청할 수 있다. 시장형사업단(공동작업장, 카페운영, 어르신 택배 등)사업은 월 평균 30시간 활동에 월 31만 원을 지급한다. 취업알선형 사업은 경비, 청소, 가사, 간병인 등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연계해 주는 사업으로 월 134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시니어인턴십은 기업의 계속 고용을 유도하기 위해 3개월간 인건비를 월 170만 원 지원한다. 고령자 친화 기업사업은 노인 다수 고용기업과 우수고용기업에게 인건비로 월 95만 원을 지원한다.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를 희망하면 12월 2일부터 가까운 시니어클럽, 노인복지관, 행정복지센터(읍면동 주민센터) 등에서 방문 신청하면 된다.
참여자 선정은 소득 수준 및 세대구성, 활동역량, 경력 등 사전에 공지된 선발기준에 따라 고득점자 순으로 이루어진다.
최종 선발 여부는 접수한 기관을 통해 12월 말부터 내년 1월 초 사이에 개별 통보한다.
전주를 감싸고 있는 완주군은 전주보다 존재감이 덜할 뿐 매력이 차고 넘친다. 아마도 완주에 안 가본 이는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이는 없을 듯하다. 완주를 음식에 비유하면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우러나는 ‘곰탕’ 같다고나 할까. ‘어느 날 문득, 무궁화열차를 타고 완주 삼례에 다녀오리라’ 했던 결심을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걷기 코스
삼례역▶ 삼례문화예술촌▶ 삼례책마을▶ 수도산근린공원▶ 비비정▶ 비비정예술열차▶ 호산서원▶ 비비낙안▶ 삼례역
느린 무궁화열차 타고 삼례 여행
완주 삼례에는 삼례문화예술촌, 삼례책마을, 비비정, 비비정예술열차, 카페비비낙안 등의 명소가 모여 있다. 모두 삼례역에서 도보 5~10분 거리에 있어 걸으며 둘러보기에 좋다. 호남선 무궁화호 열차가 정차하는 삼례역은 서울 영등포역에서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긴 이동시간이 지루해지면 4호차에 들른다. 무궁화열차 4호차는 자유석 객차이며 창밖을 볼 수 있는 좌석이 있다. 이 좌석에 앉아 멍하니 창밖 풍경을 감상하거나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글을 쓰며 기차에 머무는 시간을 즐긴다. 연산역, 계룡역, 부황역, 개태사역 같은 낯선 간이역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삼례역에 도착한다.
1920년대 양곡 창고의 대변신, 삼례문화예술촌
삼례역을 빠져나와 3분 정도 걸으니 삼례문화예술촌 입구가 나온다. 맹꽁이 조형물의 환영 인사를 받고 입장한다. 옛날 이 지역은 습지여서 개구리, 두꺼비, 맹꽁이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삼례 농민들에게 수탈한 쌀을 보관하기 위해 대규모 양곡 창고들을 지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 창고들을 개조해 문화예술공간으로 조성한 곳이 바로 삼례문화예술촌이다. 이로써 삼례에도 옛 건물을 공간 재생한 뉴트로 콘셉트 명소가 탄생했다.
삼례문화예술촌 안에는 어울마당을 중심으로 모모미술관, 문화카페 뜨레, 책공방, 커뮤니티 뭉치, 김상림목공소, 디지털아트관, 소극장 시어터애니 등이 자리해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에 들어서면 모모미술관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녹슨 건물 외벽에 흰 페인트로 쓴 ‘삼례농협창고’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출입구 옆에는 로봇 태권브이 조형물이 문지기처럼 지키고 있다. 모모미술관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교육아카데미, 미술 체험 등을 진행한다.
모모미술관 뒤에 있는 문화카페 뜨레는 차를 마시며 음악 공연과 미술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는 힐링 공간이다. 천장이 높고 실내가 시원하게 트여 있어 갤러리 같은 느낌을 준다. 뜨레 옆에는 책공방이 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의 인쇄 기계들과 책 만드는 옛 공구들이 가득하다. 이곳에서 팝업북, 앨범북, 가죽다이어리 만들기 등의 체험을 진행한다.
건물 앞에 목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곳은 김상림목공소다. 목공소 안에 들어서자마자 청량한 소나무 향이 풍겨온다. 전통 목가구 전시장과 목수들의 작업실 공간으로 나뉜다. 작업실 벽에 전시된 옛 목수들의 손때 묻은 연장이 눈길을 끈다.
김상림목공소에서는 김상림목수학교와 나무 브로치, 나무 목걸이, 나무 촛대 등의 소품 만들기 체험을 진행한다. 이밖에 VR기기를 통해 미술 작품을 입체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아트관과 국악·마술 공연 또는 영화 상영을 하는 시어터애니가 있다.
삼례책마을에서 즐기는 독서삼매경
삼례문화예술촌 앞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삼례책마을에 닿는다. 잔디밭에 창고형 건물 세 동이 ‘ㄷ’ 자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곳 건물도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 사이에 지어진 양곡 창고를 공간 재생한 것이다.
삼례책마을의 중심 건물은 고서점, 헌책방, 북카페로 이루어진 북하우스다. 외벽은 붉은 벽돌로 지었고, 내부는 목조로 마감했다. 이곳에서 10만 권에 달하는 헌책과 고서를 만날 수 있다. 북하우스에 입장하면 옛 창고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천장에 시선이 먼저 간다. 천장 분위기와 어울리게 헌책방 서가도 아날로그 감성으로 꾸몄다. 곳곳에 있는 벤치는 관람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2층 서가에는 1인 책상을 짜 넣은 코너가 있어 학창 시절 독서실에서 공부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2층에서 고서점인 호산방이 한눈에 보이는데 서가의 높이가 아찔하다. 한국, 중국, 일본, 서양 고서까지 취급한다고 하니 그럴 만하다. 헌책을 사면 1층 북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실 수 있다. 북하우스 옆에는 전시장, 공연장, 강연실, 자료실, 무인 헌책방 등으로 사용하는 건물 두 동이 있다.
기러기도 쉬어가는 경치 좋은 비비정마을
삼례책마을을 둘러보고 다시 삼례역 방면으로 가다 보면 문화생태탐방로 이정표를 만난다. 비비정 방향으로 걷는다. 삼례역사 왼쪽 담장을 따라가는 길로, 붉은 바닥에 자전거 표시가 되어 있다. 통행하는 이가 적어 자전거를 피해 걸어 다닐 일은 없겠다. 낯선 길에서 불안하던 참에 자전거를 탄 아이가 지나간다. 아이에게 비비정 가는 길을 물으니 모른다 한다. 다시 제 갈 길을 가던 아이가 잠시 뒤 자전거를 멈춘다. “가르쳐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가 가본 적이 없어서요”라고 외친다. 삼례가 더 좋아진다.
삼례역 상공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를 지나면 수도산근린공원이 나온다. 누군가 부르는 7080 대중가요를 엿들으며 구릉 같은 공원을 넘는다. 공원을 벗어나 오른쪽 찻길로 내려가다 보면 후정리 남쪽 언덕에 세워진 비비정을 만난다. 비비정은 조선시대 선조 때 정자인데 소실되어 1998년에 복원했다. 한자로는 ‘飛飛亭’이라 쓴다. ‘날아가던 기러기가 쉬어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옛날 선비들이 비비정에 올라 한내 백사장에 내려앉은 기러기 떼를 바라보며 풍류를 즐긴 것을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고 했다. 비비정 아래로는 한내라 부르는 삼례천이 흐르고 주변에 넓디넓은 호남평야가 펼쳐져 있다. 하얀 백사장에 기러기 떼가 내려앉은 옛 풍경은 사라지고, 갈대와 풀이 무성한 강변에 낚시꾼들만 보인다.
비비정에 오르면 한내를 가로지르는 옛 만경강 철교가 한눈에 보인다. 일본이 호남평야의 농산물을 반출하기 위해 세운 다리다. 2011년 근처에 호남선 철교를 새로 놓아 폐철교가 되었다. 폐철교 위에 놓은 비비정예술열차가 명물이다.
새마을열차 객차 네 량을 개조해 각각 레스토랑, 카페, 수공예품 가게, 갤러리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맨 마지막 칸의 카페는 일몰을 기다리는 손님들로 늘 붐빈다. 비비정예술열차 카페에서 호남선 철교를 건너 삼례역을 오가는 열차를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비비정에서 언덕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비비정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카페비비낙안에 도착한다. 사방이 탁 트여 가슴이 벅차다. 삼례에서 이처럼 트렌디한 카페를 만나게 될 줄이야. 카페 뜰의 옛 물탱크를 활용한 전망대에 오르자 마을 전경과 만경강, 호남평야가 와락 달려와 안긴다.
주변 명소 & 맛집
새참수레
새참수레는 완주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한식뷔페 레스토랑이다.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완주 지역의 식자재를 이용해 슬로푸드를 만든다.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으면서도 음식을 맛깔나게 요리해 단골이 많다. 메뉴는 쌈채소, 샐러드, 꽃김밥, 한방수육, 두부까스, 잡채, 제철 나물 등 20여 가지나 된다. 삼례문화예술촌 앞에 있다. (봉동읍 봉동동서로 11)
호산서원
비비정 아래에 아담한 호산서원이 있다. 조선시대 순조 때 송시열, 정몽주, 김수향, 정숙주, 김동준을 추모하기 위해 송시열이 거주했던 비비정 옆에 서원을 세우고 위패를 모셨다. 누가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렸을 때 헐렸다가 1958년 다시 세워졌다. 현재 홍살문, 강당, 외삼문, 사당 등이 남아 있다. (삼례읍 후정리 137)
삼례성당
삼례문화예술촌과 이웃한 삼례성당은 2016년에 개봉한 독립영화 ‘삼례’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1951년 한국전쟁 중에 본당이 창설되었고, 전쟁 직후인 1954년에 착공해 이듬해 8월에 준공했다. 붉은 벽돌 건물로 정면 중앙에 종탑이 우뚝 솟아 있고, 좌우에 8각 첨탑이 설치돼 있다. 종탑 아래 주 출입구와 보조 출입구를 아치형으로 만들어 장식미를 더했다. (삼례읍 삼례역로 65)
여행 정보 걷기 Tip
• 삼례 여행 전에 전북투어패스를 구매해두면 알뜰하게 여행할 수 있다. 삼례문화예술촌 안내소에서 전북투어 패스를 제시하고 무료 관람권을 받으면 된다. 삼례문화예술촌 내 모든 시설을 할인받아 관람할 수 있다. 비비정예술열차도 할인 혜택이 적용된다. 전북투어 패스 홈페이지나 네이버 예약에서 모바일 패스를 구매할 수 있다.
• 삼례문화예술촌은 장애인, 어르신, 영유아 동반 가족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무장애 시설이다. 장애인 전용 주차장, 촉지 안내판, 장애인 화장실 등을 갖췄으며 휠체어 이동 동선을 안내한 브로슈어를 제공한다. 안내소에서 휠체어와 유모차도 대여해준다. 삼례책마을 북하우스는 시각장애인 겸용 도서관을 운영한다.
후배들에게 넓은 길을 터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정도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인생 전반부의 정열을 바쳤던 첫 직장과 후회 없는 이별이었다. 인생 전반전을 마치고 시니어로서의 삶을 준비하고 있던 찰나. 이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역전의 용사는 다시금 회사로부터 부름을 받고야 말았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다른 곳으로의 항해 대신 회귀를 선택한 최찬식(59) 씨를 만났다.
“정년 3년을 남겨두고 명예퇴직했습니다. 조건도 상당히 괜찮았어요. 그땐 기분 좋았죠. 얽매이는 생활 안 해도 되니까요. 인문학 강의도 듣고 요가와 요리도 배우고 알차게 살았습니다. 바빴죠. 사회적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다시 돌아오라고 하더라고요.”
한국지엠 부평공장 옆 카페에서 만난 최찬식(59) 씨는 지난 5월 마침표를 찍었던 옛 일터로 다시 돌아왔다. 명예퇴직하고 또다시 같은 일을 하기 위해 직장으로 돌아가는 일은 흔하지 않다. 1986년, 한국지엠의 전신인 대우그룹에 입사한 최찬식 씨는 대구에 있던 대우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을 시작해 1990년 말 대우국민차 공장이 있던 창원으로 사간전보를 갔다. 1996년 4월 부평공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해외 자동차 공장 건설사업 분야에서 일했다.
“인도, 이란, 이집트, 베트남, 태국 등 세계 각 나라에 자동차 공장을 많이 지었어요.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를 다 만들어야 했어요. 그 차들을 생산할 수 있는 있는 설비를 현지에 가서 설치해야 했어요. 1998년까지는 참 좋았죠.”
1990년대 후반 대우자동차의 인기는 꽤 높았다. 부동의 1위였던 현대자동차의 아성을 대우차가 흔들었다. 이렇듯 대우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 자동차 생산 공장을 지으며 사업의 규모를 키웠다. 이쯤 되면 나오는 얘기가 바로 IMF 금융경제위기. 해외 사업을 통 크게 벌였던 대우그룹은 계열사 전체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우그룹의 몰락 중에서 자동차 사업의 인수 합병은 국가적 충격이었다.
“그때 인생이 조금 힘들었어요. 월급이 3개월 정도 안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엠(General Motors) 사가 대우자동차를 흡수하면서부터 월급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엠 공장에 자동차 설비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어요. 해외 현지에 나가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자동차 양산할 때까지 관리했습니다.”
자동차 양산 시점이 되면 철수하고 또 다른 나라로 향했다. 2010년까지 해외 지사에서 일한 이후 팀의 수장으로서 한국에서 해외 사업을 지원했다.
“물론 중요한 시점에는 공장을 짓고 있는 현지로 날아갔죠. 외국은 20~30군데 다녀온 것 같아요. 작년 3월 부장까지 달고 회사생활을 마쳤어요. 끝낼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인으로 1년 살기
회사를 관두고 한 달 남짓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좀 쉬었는지 몸이 근질거려 작년 5월부터 듣고 싶었던 강좌를 들으러 다녔다. 휴식을 하겠다며 회사를 박차고 나왔는데 생각지도 않게 수료증이 쌓였다.
“5월부터 바삐 지냈습니다. 수료증이 대단히 중요한 것은 아닌데 연속으로 듣는 것도 있지만 두세 번만 들어도 수료증을 주는 데가 있다 보니 스무 개나 되더라고요. 중국어 공부도 하고, 재테크 관련 수업도 들었습니다.”
한국지엠으로 다시 돌아오기 전, 잠깐 사회적기업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다. ‘지혜의 밭’이라는 스타트업 기업이었다. 한 달 정도 기획과 관리를 도맡아 일했다. 설립한 지 1~2년 된 기업이었고 공연 예술 쪽 일을 하는 사업체였다.
“제 입장에서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평생 공장에만 있던 사람이었고 대표는 예술만 아는 분이었죠. 회사를 이끌어가는 기본이 안 되어 있었어요. 제가 한글이나 파워포인트 같은 팁을 조금만 줘도 무척 감사해하더라고요.”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면서 안타까운 현실을 느꼈다고. 대표와 최찬식 씨가 맨땅에 헤딩하듯 일을 하고 열정을 쏟아 부어도 끝이 없었다. 회사에 3~4명만 있어도 상황은 좀 나았을 것이다.
“어느 순간 ‘이게 뭐지? 지금 잘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업의 수익 모델이 좋아서 성장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주말에도 일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측면에서 고민이 좀 있었습니다.”
퇴역 베테랑에게 날아온 SOS
사회적기업에 대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닐 때 한국지엠에서 연락이 왔다. 공장건설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해 달라는 전 직장 상사의 부름이었다. 함께 일할 조직은 이미 구성돼 있었다.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이렇게 또다시 회사에 들어와도 될까 싶더군요. 회사 측에서는 그런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들어오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기존 기업에 대한 의리가 있잖아요. 다시 회사로 돌아갔더니 먼저 온 사람 몇몇이 있었어요.”
한국지엠 입장에서 봤을 때 인재를 육성해야 하는 시간과 물리적 상황을 감안했을 때 신규채용보다는 기존에 일했던 사람들 중에서 쉬는 사람 혹은 다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게 이득이었을 것이다.
“애초에 직장 상사는 제가 퇴직하는 것을 말렸습니다. 저는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에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해서는 제가 일을 잘했다고 말하면 너무 건방진 것 같습니다. 회사를 나가기 전에 관계가 좋았고 일도 깔끔하게 처리했으니까 저를 불렀다고 생각해요. 문제가 있었다면 부르지 않았겠죠. 회사가 시대의 풍파 속에 쓸리고 깎이기는 했지만 32년을 한결같이 다닌 오랜 일터였습니다.”
스스로도 인복은 타고 났다고 생각한단다. 어딘가로 움직일 때마다 항상 은인을 만났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팀워크가 좋았고 헤어질 때도 인상 찌푸리는 일은 없었다.
아빠는 워커홀릭! 좀 쉬셔요
“명예퇴직을 결심했을 때 조건이 좋았긴 했지만,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30년 이상 하니 쉬고 싶었습니다. 또 들어올지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내의 불만도 제가 너무 쉬지 않고 일하는 거예요. 그래요. 워커홀릭(일 중독자)이 맞는 거 같아요.(웃음)”
최찬식 씨가 일을 끊임없이 하는 것에 대해 제일 반대하는 사람은 딸이다.
“쉬려고 나왔는데 왜 계속 일을 하느냐고 그러더군요. 사회적기업에 다닐 때도 출근시간만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 족히 걸렸어요. 딸이 일 그만두라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현 회사에서 하는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서, 언젠가는 사회적기업에서 제대로 일해볼 계획이라고 했다. 제가 직장생활에서 했던 경험을 조금이라도 알려주면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도와주면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진지하게 쉬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 너무 달려만 온 것 같다고.
“이런 얘기하면 우리 딸이 뭐라고 하냐면 ‘아빠는 못 쉬어, 두세 달 쉬면 또 뭔가를 할걸!’ 하고 말합니다.”
야심차게 은퇴했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제2인생을 시작한 최찬식 씨. 시니어 전문가로서 다시 돌아간 새(?) 직장에서 또 다른 가능성과 멋진 삶을 찾아가기를 기원한다.
“고2 때 친구들과 남산에 올라갔어요. 서울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여고 동창생들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학생, 사진 좀 찍어줄래?’ 하며 카메라를 내밀더라고요.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이라서 언감생심 만져보지도 못한 카메라였어요. 친구들끼리 서로 미루다가 그분들이 일러준 대로 셔터를 눌렀죠. ‘찰칵’ 하는 소리가 기막히더라고요.”
까까머리 소년은 그날 손끝으로 느꼈던 셔터 음의 짜릿함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그리고 그 소년은 칠순을 넘긴 지금까지도 카메라와 함께 살고 있다. 사진을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까지 가르치느라 하루도 쉴 틈이 없다는 한국사진작가협회 교육이사 문제민(文濟珉·76) 씨. 현역 시절보다 더 바쁘고 할 일이 많은 사람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 만나기로 한 날, 그가 들고 온 가방에는 노트북과 각종 자료들이 가득했다.
“법무부 산하 기관에서 공무원 생활을 끝낼 무렵 퇴직 후의 시간을 생각해봤어요. 평생 카메라를 끼고 다녔으니 디피점이나 열어볼까 했죠. 그런데 그 무렵 디지털카메라가 막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사진 관련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잠깐씩 사진 강의도 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사진 교육 강의를 하게 됐어요.”
은퇴 후의 시간을 고민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준비되어 있는 사진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공무원 시절 국비유학으로 일본 연수를 떠났을 때도 시간만 나면 도쿄의 책방을 드나들며 사진 책을 봤다. 시간 가는 줄 몰랐고, 귀국할 땐 사진 관련 서적을 한아름 안고 돌아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진 공부는 그에게 일상이다.
“은퇴 후에는 누구든 한동안 공허함 속에 있게 돼요. 그러나 이 무렵의 위기는 성장을 견인하는 시간이기도 하죠. 매일이 소중하고 가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려면 미리미리 조금씩 준비하는 게 중요해요.”
집념의 한 우물이 열어준 인생 2막
요즘도 그는 사진 수업 준비를 하느라 컴퓨터 작업에 여념이 없다. 나날이 도약하는 제자들의 실력에 용기를 주는 것도 큰 일과다. 그의 인터넷 카페엔 제자들 사진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그래서 매일 아침 일어나면 두 시간 정도 올라온 사진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감상평을 남긴다.
그는 늘 긍정적이다. 학생들 사진을 보며 절대 부정적 평가를 하지 않는다. 다양한 삶을 살아온 이들의 특성을 존중한다. 이런 태도는 오랜 직업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법무부에서 청소년 보호 관찰 업무를 담당할 때도 비행청소년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문책을 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단점은 감싸주고 장점은 열심히 칭찬해주는 것이 오히려 재발 방지에 효과적이더라고요. 그렇게 지낸 40년의 사회생활이 퇴직 후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준 셈이죠.”
물론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도 있다.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 대부분은 연륜이 있는 시니어. 자기 삶의 방식으로 오랜 세월 지내온 이들이라 자아가 강한 사람도 더러 있다. 그렇지만 그런 딜레마조차 약으로 삼고 보람으로 채운다. 그는 특히 제자들의 개인전 초대장을 받았을 때, 함께 단체전을 기획하는 모습을 볼 때 행복하다. 사진 작업을 통해 멋진 인생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받는 위로가 참 좋아요. 사진을 통한 교류는 예술 감각도 키워주고, 자연 속으로 돌아다니며 풍경을 찍으니 건강에도 도움이 돼요. 사진 활동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멋지게 살아가는 제자들을 보면 뿌듯합니다.”
별명은 제비콩, 콩샘
‘제비콩’은 그의 별명이다. 문제민이라는 이름의 ‘제’ 자를 따 어린 시절 친구들이 지어줬다. 그때는 그 별명이 왜 그렇게 싫던지 친구들에게 화를 내며 못 부르게 했다. 그런데 한참 세월이 지나 사진 관련 사이트를 만들게 됐을 때, 닉네임을 무엇으로 만들까 고민하다가 어릴 적 친구들이 만들어준 별명이 문득 생각났다. 그 호칭이 이제는 제자들에게까지 사랑스럽게 불리게 됐다. ‘콩샘’이라는 귀여운 애칭까지 생겼다.
그에게서 강의를 들은 한 제자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해 겨울, 교외로 출사를 나간 적이 있어요. 쨍! 하고 얼음이 갈라질 만큼 추웠던 날이었는데 그날따라 장갑을 안 가지고 나갔어요. 셔터만 누르면 되는데 ‘추워봤자 얼마나 춥겠어’ 하는 배짱으로 나갔다가 손가락이 떨어져나가는 줄 알았어요. 손이 너무 시려 더 이상 사진을 찍지 못할 정도였어요. 그때 지도교수로 오셨던 콩샘이 차를 세워둔 주차장까지 한참을 걸어가셔서 장갑을 가져다주셨어요. 제 손에는 커서 헐렁거렸지만 그렇게 따뜻한 장갑은 처음이었어요. 그날의 기억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누구나 은퇴 후의 삶을 걱정합니다. 더구나 콩샘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제2의 업으로 삼기는 쉽지 않죠. 그런 면에서 콩샘이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문제민 씨는 제2의 인생을 쉽게 맞이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운명처럼 카메라를 만났을 때 미친 듯이 빠져들었고, 거짓말을 하고 사진을 찍으러 가느라 돌아가신 어르신을 또 한 번 돌아가시게 했다고 말하며 웃는다. 박봉의 공무원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내 적금을 들고 그 돈으로 아내 몰래 카메라와 렌즈를 구입하면서 그때마다 들키지 않으려 숨겼던 일도 있었단다.
“그 비싼 필름을 사서 정신없이 찍었어요. 그야말로 카메라에 미쳤던 거지요.(웃음)”
칠순이 되었을 때 지인들이 잔치를 해라, 개인전을 해라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의 사진과 십수 년간 가르친 제자들의 사진 500점을 정리해 함께 실은 사진집을 출간했다. 그동안 나눈 대화와 댓글 내용도 실었다. 그리고 300여 명의 제자들과 출판기념 자리도 마련했다.
“이 책은 나의 역사입니다. 은퇴 후 건강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수강자 몰리는 인기 강사
지금도 그가 강의하는 수업을 들으려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문화원 수강 신청은 금방 마감된다. 주부, 퇴직자, 젊은이, 심지어 아픈 환자도 그의 강의를 듣고 싶어 한다. 한때는 신청자가 너무 많아 큰 강당을 빌려야 했다. 입소문을 타며 인기 강사가 된 그는 백화점 문화센터와 다양한 지역에서 강의를 한다. 17년 동안 가르친 제자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요즘은 사진 출사만을 위해 오는 수강생들도 있다고 한다. 전국의 풍광 좋은 자연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으니 소문이 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관심사로만 사진을 대하는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했다.
“물론 그렇게라도 사진을 찍으면 좋아요. 그런데 컴퓨터도 배우고 사진 폴더 관리도 할 줄 알면 더 좋아요. 포토샵도 배우고 인터넷 카페를 통해 서로 정보를 나누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시니어는 디지털 퍼스트 시대의 순기능을 적극 이용해야 해요. 컴퓨터는 여러 가지로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놀이기구이거든요. 더불어 테마를 정해 자신만의 사진 세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래야 실력이 향상되고 오랫동안 사진을 즐길 수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어느 신문에서 “예술가 중 가장 오래 사는 사람들은 사진가”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자연 속에서 잡념을 버리고 즐길 수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안개 속 몽환적 풍경, 계절의 변화를 담아내는 셔터 소리는 짜릿함의 끝판왕이다.
그는 지금도 1960년대의 풍경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나라 각 지방은 물론이고 중국의 오지 차마고도, 티베트 등지로 출사를 다녀오곤 한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 중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는지 물었다.
“잘 찍은 사진요? 그런 거 없어요. 앞으로 찍어야죠. 건강하게 계속, 강의도 하고요.”
그가 추구하는 삶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 사진을 통한 건강한 삶은 그의 모토다. 그리고 언제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뜨거웠던 여름 마음은 가슴 트이는 바다로, 시원한 계곡으로 향하고는 있지만 더위 탓에 바깥나들이가 쉽지 않았다. 여름 휴가를 가지 않았던 분들에게 치일 필요 없이 우아하게 가을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마음에 쏙 들 핫한 셀럽 명소를 소개한다.
하와이 오아후섬 - 미국 -
호놀룰루 국제공항이 있는 오아후 섬은 필수로 들러야 하는 곳이다. 일정을 잡을 때 4박을 기준으로 그 이하일 경우 오아후 섬만 충분히 관광하는 것이 좋다. 하루를 더 보낼 수 있으면 한 곳 정도 다른 섬 투어를 가는 것도 괜찮다. 렌터카 여행이 활성화되어 있어 공항뿐만 아니라 도시 어디서든 렌터카 업체 이용이 가능하다. 숙소도 다양해 9만 원대부터 원하는 가격에 맞춰 선택할 수 있다. 오아후 섬은 하와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섬으로 쇼핑, 관광, 휴양 등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호눌룰루 시내에는 하와이를 상징하는 건물인 주정부 청사와 주지사 관저, 하와이 왕조의 칼라카우아 왕이 1882년에 건설한 이올라니 궁전 등이 있다.
하와이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아히 포케 아히는 하와이어로 참치, 포케는 무침이라는 뜻으로 한국식 회무침을 생각하면 된다. 참치회를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하와이산 해조류와 소금간, 참기름, 레몬즙으로 간한다.
마카다미아 너트 땅콩과 아몬드보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나는 견과류. 전 세계 마카다미아의 90%가 하와이에서 생산된다.
아사이볼 황산화 기능과 함께 콜레스테롤 조절에 도움이 되는 아사이베리. 아사이볼은 아사이베리 스무디 위에 그레놀라와 갖가지 과일을 올리고 꿀을 곁들여 먹는 것. 식사 대용이 가능하다.
바나나브레드 바나나가 주재료. 파운드케이크 모양으로 한 입 베어 먹으면 바나나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상품명 ‘하와이풀팩’ 부모님과 함께 가는 효도여행 4박 6일
항공 대한항공 가격 200만 원대부터
문의 여행박사 홈페이지(drtour.com)
3대가도 - 독일 -
서유럽을 대표하는 국가 독일은 찬란한 문화유산과 다양한 자연 풍경을 품고 있어 관광객이 선호하는 여행지다. 롯데관광에서 추천하는 독일 여행지는 3대 가도다. 원래는 독일관광청이 ‘7대 가도’라는 이름으로 관광길을 만들어 권장하고 있는 일종의 드라이브 여행 코스다. 그중 ‘고성가도’와 ‘로만티크가도’, ‘알펜가도’를 따로 선택해 함께할 수 있는 여행지로 묶었다. ‘고성가도’는 하이델베르크, 로텐부르크, 뉘른베르크, 밤베르크 등의 도시를 지난다. 중세 기사와 귀족이 살던 고성이 많이 남아 있으며 이를 개조한 호텔도 다양하다. ‘로만티크가도’는 가장 인기 있는 가도다. 과거에는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이르는 통상로였다. 작은 규모의 도시에서 중세시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알펜가도’에서는 독일의 알프스 가르미슈 파르텐 키르헨에서 하이킹과 등산 등을 즐길 수 있다.
독일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예거슈니첼 송아지 고기 안심 부위 등을 얇게 저며 빵가루 옷을 입혀서 튀기고 버섯을 넣은 크림소스를 얹어 내는 독일 동부 음식.
글뤼바인 독일인들이 감기 예방을 위해 자주 마신다. 와인과 과일을 듬뿍 넣고 푹 끓인 과일와인으로 우리나라 쌍화차와 비슷한 효능이 있다. 향과 풍미가 좋고 비타민이 풍부하다.
상품명 ‘독일 완전일주’ 9일
항공 대한항공 가격 200만 원대부터
문의 롯데관광 홈페이지(lottetour.com)
다낭- 베트남 -
2018년 하나투어 통계 기준에 따르면, 시니어에게 가장 높은 사랑을 받았던 나라는 바로 베트남.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고단한 장거리 여행보다는 짧은 비행시간으로 현지에서의 여유로운 관광 일정, 자연 경관을 즐길 수 있어 선호 여행지로 많은 선택을 받았다. 다낭이 있는 베트남 중부지방의 경우 강수량이 적고 습도가 낮아 연중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베트남을 대표하는 커피 프랜차이즈인 ‘콩 카페’는 최근 한국인 관광객이 필수 코스로 여기는 곳이다. 코코넛 커피, 요거트 커피 등이 대표메뉴다. ‘다낭 대성당’은1923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유일하게 지어진 성당이다. 외부는 자유롭게 볼 수 있지만 내부는 미사시간에만 방문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아름다운 해변 베스트10으로 꼽히는 미케비치는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 때묻지 않은 자연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파도가 높은 10월과 12월에는 요트, 서핑, 윈드서핑 등의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베트남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
퍼보 베트남 대표 음식으로 한국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소고기 쌀국수. 지역에 따라 북부는 담백하고 남부는 달고 자극적인 것이 특징이다.
분짜 숯불에 구분 돼지고기 완자를 하얀 쌀면과 함께 먹는 음식, 채소와 함께 피시소스를 찍어 먹는다.
껌땀 숯불에 바짝 구운 돼지고기를 밥에 얹은 음식. 볶은 채소와 계란프라이, 베트남 액젓 늑맘에 설탕과 레몬 등을 넣은 소스와 함께 먹는다.
상품명 ‘우리끼리 단독여행’ 다낭·호이안 5일
항공 대한항공 가격 80만 원대부터
문의 하나투어 홈페이지(hanatour.com)
인생을 재밌고 멋지게 사는 액티브 시니어가 많다지만 세대를 뛰어넘어 이리도 신나게 유쾌하게 사는 사람이 또 있을까. 마치 나이를 거꾸로 거스르며 사는 사람 같았다. 말투건 표현이건 도무지 언제 태어났는지 가늠 불가다. 그의 취미는 디제잉과 수상 스포츠. 그리고 라틴댄스도 요즘 온몸으로 접수 중이다. 올해 나이 64세, 젊음 지수는 딱 그 반의반으로 느껴지는 이 사람. 전 홍익대학교 건축도시 대학원 겸임교수이자 아방디자인그룹의 최범찬(崔範瓚·64) 소장을 서울마리나에서 만났다.
“이런 거 봤어요? 얼마나 폼나요.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전화번호까지 다 적혀 있잖아요. 이런 명함 처음 볼 거예요. 게다가 이 작은 명함을 뒤집으면 승선권이에요.”
서울마리나(서울 영등포구 여의서로)의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최범찬 소장이 가방에서 명함 몇 가지를 찾아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아방가르드호 요트 탑승권’이라고 쓰여 있는 명함에는 요트를 조종하는 선장이라는 뜻의 스키퍼로 자신을 명명해놓았다. 최범찬 소장은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건축 업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능력자로 살았다고 자부한다. 올해 홍익대학교 건축도시 대학원 겸임교수에서 온전하게 물러나면서 요트와 취미에 투자하는 시간이 좀 많이 늘어났을 뿐. 늘 그랬듯이 젊은이들과 어울리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고 있다.
꼴찌 학생, 건축에 매료되다
“제 인생이 꽤나 재미있어요. 영등포구 당산동이 제 고향입니다. 파란만장했던 시절 제 일터였던 곳이 바로 여의도고요. 정년 마치고 당산역 근처 한강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잖아요. 제가 나고 젊은 시절을 보낸 곳에 돌아와 있는 느낌은 매번 좋습니다.”
요트를 타고, 홍대 클럽 구석구석 안 가본 곳 없다는 60대. 젊음의 거리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구태의연함을 증명하며 사는 사람. 인생에 있어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입학이었다고 입을 뗐다.
“운명이죠. 홍대 건축학과에 들어간 거 말입니다. 대학 시험을 앞두고 뭐에 홀리듯 놀아서 홍대 건축학과를 최하위로 아슬아슬하게 합격했더군요. 35명 중에 34등이었어요. 다행이었던 점은 전공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는 겁니다.”
최하위 등수로 입학했지만 전공에 대한 매력에 흠뻑 젖어 살았다. 친구들 놀러 다닐 때 최대한 자제했다고. 대신 돈이 모이면 외국 건축 서적을 구해봤다. 꼴찌 학생에서 장학생으로 환골탈태했다. 건축학도로서 학업에 대한 깊은 애정은 대기업 마다하고 힘들기로 정평이 난 한국의 건축 거장인 김중업 선생의 건축연구소에 들어가게 했다. 하지만 가시밭길에 고행이었다.
“당시 각 대학교에서 공부 잘하던 사람들이 일곱 명이나 김중업 선생 밑으로 들어왔습니다. 2년 사이에 다 떠나고 저 혼자만 남더라고요. 아버지 같고 너무 좋아했지만 넘지 못하는 큰 바위 같은 존재였죠. 제가 학교 다닐 때 체격이 좋았어요. 그런데 김중업 선생님 사무실 그만둘 때가 64kg이었습니다. 이후에 위암수술도 했는데 그때는 74kg이었어요. 힘들고 외롭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을 두고 다른 회사로 가는 모습이 제 생각에는 좋지 않아 모교 대학원에 진학해 조교 생활을 병행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서 발견한 바다
석사학위를 마치고 난 뒤 몸담은 곳은 일리노이공과대(IIT) 학장을 지냈던 김종성 교수가 문을 연 서울건축종합건축사 사무소였다. 중동 건설 현장 사업 수주가 많던 시절 최범찬 소장은 힘겹던 리비아 현장에서 완벽한 인생의 터닝 포인트, 바로 수상 스포츠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저는 리비아 정부 종합청사 프로젝트 설계팀에서 1년 반을 근무했어요. 리비아 내전 훨씬 전이었는데 수도 트리폴리의 항구가 세계적인 미항으로 꼽히던 곳입니다. 부호들이 출입하는 고급 마리나(요트나 모터보트의 계류·연료 보급 등을 위한 기지)가 많아서 다양한 요트도 보게 됐어요. 그때 스쿠버 다이빙도 배웠습니다. 돈이 생기면 외국산 수상 장비들을 사 모았죠.”
리비아 시절 뭔가 잘 안 풀리면 넋 놓고 바라보던 달력이 하나 있었다고 했다. 항공사 이름이 새겨진 달력이었는데 다이빙, 요트를 비롯해 각종 수상 스포츠의 시원한 사진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줬다. 훗날 다시 보니 그 달력에 소개된 수상 스포츠들을 다 섭렵했더란다.
“아직도 당시의 달력을 가지고 있어요. 리비아 시절 눈과 마음으로 담았던 것들을 실현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리비아 업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과장 명찰을 달기도 전에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대학 동창들과 함께 작은 건축인테리어 사무실을 열고 사업을 시작했다. 인테리어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성과를 내면서 오랜 시간 승승장구했다. 홍익대학교 야간대학원 출강은 1997년도부터 했다. 학생들은 현업에서 10년 이상 일하고 있는 경험자들. 최범찬 소장은 그들 앞에 설 수 있는 적임자였다. 스스로도 50세 정도에 명예롭게 대학 강단에 서보겠노라 생각했는데 10년 앞당겨 강단에 섰다. 성공가도와도 같던 인생이었지만 IMF 금융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병마와도 싸워서 이겨내야만 했다.
암에는 해피바이러스가 특효, 요트에 입문하다
“2002년도에 사업체를 부도 처리하고 등촌동에 사시던 누님 집에서 살았어요. 학교 수업만 신경 쓰면서 프리랜서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도에 위암이 발병했어요. 가톨릭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 잘라낸 암 부위가 워낙 컸나봐요. 11cm에 가까웠대요. 수련의가 제 수술 장면을 참관할 정도였답니다. 수술 후 시간이 많아 빈둥거릴 때 리비아에서 가져온 달력을 꺼내봤습니다. 문득 ‘내 소원 중 하나가 요트 타는 거였지!’ 하고 요트를 배우게 됐습니다.”
1980년대 말 사업을 시작했을 때 윈드서핑을 좀 배웠는데 바람을 이용하는 것이 비슷해서 그런지 요트에도 금방 적응했다.
“암 투병하고, 항암치료제를 먹으면서 요트를 배웠어요. 왜냐?! 죽기 전에 타야 하잖아요.(웃음) 사실 암 걸리기 전에도 요트에 관심이 많아서 서울마리나 분양 카탈로그를 가지고 다녔어요.”
현재 최범찬 소장이 운영하는 ‘아방가르드호’는 J/24 기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연안용 요트다. 10명이 공동 출자해서 산 중고 요트인데 지금은 멤버들이 다 떠나고 요트만 남았다. 돈이 좀 생기면 사비를 들여 요트를 유지 관리했고 지금껏 즐기고 있다.
“정년퇴임 이후 저의 놀거리를 위해서 요트 조정을 배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서울마리나 창립 때부터 이곳에 나왔어요. 그러니까 제가 소속해 있는 탑세일 요트클럽이 가장 오래됐습니다.”
사실 요트는 혼자서만 타는 것이 아니다. 요트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권해도 보고 편하게 탈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제가 홍대에서 DJ를 하니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요트를 타보라고 권합니다. 서울마리나에서 요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가서 한 번씩 말하죠. 어렵게 생각 말고 일단 요트에 와보라고요.”
홍대 놀이터의 늦은 밤은 ‘DJ 차니’
수상 스포츠에 대한 갈망과 함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음악 이야기였다. 홍대 앞 젊은이들이 모여 춤을 추고 버스킹을 하는 문화 공간에 떡하니 자리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최범찬, ‘DJ 차니’다.
“저 젊을 때만 해도 그랜드하얏트호텔 JJ마호니가 최고 클럽이었어요. 저는 그곳 VVIP 단골일 정도로 많이 갔어요. 건축 일과 관련한 사람들도 주로 그곳에서 만났죠. 그리고 홍대건 이태원 클럽이건 음악을 들으러 다녔어요. 춤추는 거도 좋아했고요. 주말마다 한 20군데 돌아다니다 보니까 딱 클럽마다 일정하게 음악을 트는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싫증나더라고요. 직접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DJ 개인 강습을 받았어요. 3년 동안 암 투병하면서요.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라 수업 끝나고 학교 앞 놀이터에서 음악 틀고, 그 옆 피시방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살았어요. 피시방은 인터넷 속도가 빠르니까 웹서핑하기가 너무 좋잖아요. 지금은 제가 홍대 놀이터에 등장하면 애들이 자리를 비워줍니다.”
최근에 젊은 사람들이 주로 추는 라틴댄스인 살사에도 도전했다. ‘DJ 차니’로 활동하다 보니 주어진 미션과도 같았다.
“지난해 11월부터 살사를 배우고 있는데 잘 안 늘어요. 배우게 된 동기는 제가 라틴팝 음악을 틀었는데 남미에서 온 외국인들 호응이 좋더라고요. 뭐든 올인하는 성격이라서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서울마리나 루프톱에서 살사 파티 같은 걸 열어볼까 생각도 하고 있어요. 멋있을 것 같아요.”
큰 암 덩어리를 잘라내고 시작한 요트와 DJ, 같은 세대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젊음의 춤 살사 도전까지.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 만큼 건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암은 완치 판정을 받았어요. 행운이죠 두 번 사는 거니까요. 그리고 이 나이에 요트도 타고 춤까지 배우고 있으니 즐거운 인생이죠.”
세상에 참 많은 것을 가진 사람 같다. 그러나 정작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말했다.
“사실 사업체 부도가 크게 나서 제 소유로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의 실제 소유주는 다 다른 사람이에요. 요트도 운영은 제가 하지만 동호회 요트잖아요. 저에게는 소유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참 속 편하게 살고 있죠?”
행복하게 살다 고민 없이 세상과 이별할 계획이지만 언제든지 실내 건축가로서 현장에 뛰어들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도 좋은 일이 있으면 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전 제 일을 정말 사랑하니까요. 단 아무 일이나 안 하겠죠. 정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그나저나 지금 제 바람은 살사 춤 실력이 좀 빨리 늘었으면 하는 겁니다.(웃음)”
점프슈트를 입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방미가 소녀처럼 웃었다. 특유의 눈웃음, 그리고 다부진 몸매, 허스키한 목소리로 팬들의 마음을 흔들며 데뷔한 40년 전의 얼굴 그대로라면 믿겠는가. 부동산 관련 책을 출간하고 저자의 삶을 살고 있는 그녀는 요즘 ‘BangmeTV’ 제작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맨 얼굴로 그날그날의 이슈와 생각을 이야기하면 할수록 재미와 의미가 더해지는 작업이란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여자 방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봤다.
MBC 2기 공채 개그맨으로 1978년 연예계에 데뷔한 방미는 1980년 ‘날 보러 와요’로 한국 가요계를 휩쓸었고 동명의 영화 출연료를 종잣돈으로 국내 부동산 투자를 시작해 해외 부동산까지 성공, 서울 강남은 물론 제주도까지 섭렵하며 큰 부를 쌓았다.
“1983년 LA 공연차 미국을 방문한 뒤 해외 진출과 비즈니스를 꿈꿨어요. 그러다 1993년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발표한 후 연예계를 떠났고 미국 뉴욕으로 갔어요. 2007년 거기서 이모가 하던 주얼리숍 등을 운영하면서 뉴욕, 로스앤젤레스, 하와이 등의 부동산에 투자했어요. 성공을 거둔 건 맞아요. 이 모든 것들이 근검절약하고 노력한 덕분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어요.”
연예인을 하면 돈 좀 벌 수 있을까 하고 시작했다는 그녀는 그동안 전심전력하며 열심히 살았던 젊은 날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육십의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에 호탕하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너무 반갑다.
사람들은 아직도 감칠맛 나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싶어 한다. 그녀를 ‘날 보러 와요’를 부른 1980년대 인기가수로만 여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2007년에 가수생활 종료를 선언하고 재야의 부동산 투자 고수로서 활약한 지 오래다.
언니, 아직 죽지 않았다요?
서울 신사동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지금 한국 사회는 뭔가 안 풀리고 답답한 상태라며 쓴소리를 한다. 그 답답함이 너무 싫어서인지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그녀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그런 시원시원함이 나이를 거스르는 듯한 그녀의 외모와 잘 어울렸다.
방미는 2018년부터 유튜브를 통해 ‘BangmeTV’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 삶의 이야기, 헬스, 부동산 투자, 정치에 대한 얘기들을 풀어내는 출구다. 그런데 그녀의 채널은 댓글을 달 수 없게 해놨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맥락 없는 비난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나를 꼴 보기 싫어해요. ‘너는 뭐냐. 뭔데 잘난 척이냐’라는 식으로 말하죠. 하지만 저는 전혀 신경 안 써요. 버닝썬 사건처럼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잘난 척하는데 알고 보니 ‘바지사장’인 경우 많잖아요? 심지어 나를 사기꾼이라고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세금 안 내고 사기꾼이었으면 가만 놔뒀겠어요?”
그녀의 솔직 담백함은 지독히 가난했던 ‘흙수저’ 시절을 극복한 자신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되는 듯싶었다.
“어린 나이에 너무 어렵게 살다가 출세를 하고 돈을 벌고 명예를 얻었죠. 돈을 벌기 시작한 건 ‘날 보러 와요’를 부를 무렵이었고, 버는 대로 저축했어요. 시작과 동시에 계획을 잘 짰어요. 돈에 대한 플랜을 말이죠. 적금을 부어 오백만 원을 모으면 차를 사고 전세를 얻을 수 있겠다 하는 식으로 구상이 늘 있었죠. 그게 습관이 됐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계획에 맞춰 살아왔죠.”
물론 그녀의 삶이 생각한 대로 흘러간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젊었을 때는 굉장히 싸가지 없었다”라고 표현하는 그녀는 20여 년 전, 믿었던 사람에게서 1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그때 그녀는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하고는 자신의 교만함을 반성하고 깨닫게 됐다고 한다.
잘 하는 일 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계획을 중시하는 방미답게 오래전부터 유튜브 방송도 차근차근 준비했다. 사실 그녀는 유튜브를 하기 전에 이미 10년 넘게 블로그 ‘악질 방미’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었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가수를 그만뒀어도 ‘연예인’이라는 자신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번 연예인은 영원한 연예인이죠. 방미가 죽으면 신문에 ‘가수 방미’라고 기사화될 테니까요. 그러니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가볍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행사를 하거나 신곡을 또 내기는 싫었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블로거에서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또 다른 모험을 하며 그녀는 제작, 연출, 각본, 진행 등 실로 다양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 중이다. 현재 구독자 수는 1만6000여 명.
“아직 폭발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지는 않고 있어요. 50대, 60대가 시청자의 주류이다 보니 구독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분위기는 아니예요. 그게 좀 아쉽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제가 여전히 무대 체질인 거 같기는 해요. 유튜브를 하면 신나거든요.”
유튜브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고 싶은 마음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특히 비중을 두고 방송을 하는 분야는 재테크다.
“제가 현물은 잘 모르지만 부동산은 40년간 발로 뛰면서 많은 정보를 얻었어요. 그래서 알려줄 게 많아요. 20년은 한국에서, 20년은 미국에서 부동산 투자를 하며 보냈으니까요.”
‘나는 해외 투자로 글로벌 부동산 부자가 되었다’
사실 방미는 그동안 세 권의 책을 낸 저자이기도 하다. 그녀가 가장 최근에 낸 책은 ‘나는 해외 투자로 글로벌 부동산 부자가 되었다’로,
5월 초에 발간되어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보를 쉽게 얻기 힘든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내용을 다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그녀가 실제로 수익을 낸 지역들을 예로 들어 비자 발급, 관련 용어 설명, 미국의 각 지역 정보에서부터 수수료와 세금까지 다양하고도 실전적인 투자 정보를 담고 있다. 해외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주목할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그녀는 지금도 국내외를 오가며 지내고 있지만 현재는 청담동에서 거주하고 있다. 사무실은 압구정동에 있다. 그리고 작년에 제주도에 리조트도 마련했다.
“해외에서 살다 보니 한국에 왔을 때는 꼭 자연을 충분히 느낄 수 이 있는 곳이어야 하더라고요. 이장희 ‘형’(그녀는 이장희에게 노래 ‘주저하지 말아요’를 받으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도 울릉도에 사는 이유가 그래서일 거예요. 산과 바다 등 자연을 보면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부동산 관련 책을 출간한 의미까지 듣고 나니 부동산 투자가로서의 방미가 궁금해졌다. 특히 제주도는 10여 년간 계속 투자가들의 관심을 끌었기에 그녀가 전문가로서 제주도의 부동산 가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슬쩍 듣고 싶었다. 독자들을 위해 제주도 투자에 대한 그녀만의 노하우를 청했다.
제주도 투자, 이것만은 명심하라
“제주도는 집을 잘 선택해야 해요.”
그 이유는 중국인들이 이미 많은 땅을 선점했고 매체의 영향으로 제주도 붐까지 일어나면서 난개발을 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 속에 지어진 집들이 문제점이 많다는 게 방미의 진단이다.
“제주도는 섬이고 초원이다 보니 야생동물, 바퀴, 개미 등 벌레가 많아요. 그리고 하수구 등 배수 문제도 있고요. 나이 들어서 거기 가서 영원히 살겠다? 그건 무리라고 봐요. 제주도 초원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죠. 그런데 가서 막상 살면 한 달도 못 견뎌요.”
방미는 제주도에서의 집은 세컨드하우스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세컨드하우스로 살 때 제주도의 분위기를 한껏 내보겠다고 검은 화산석으로 치장한 집을 사는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말리고 싶어요. 제주도 돌은 TV에서나 다른 사람 집 보면서 감상하고, 정말 편하고 세련된 집을 선택해야 해요. 집 밖으로 나갔을 때 KFC도 있고 스타벅스도 있는 편의성이 있는 곳에 마련하는 게 좋아요.”
그녀는 사방이 펼쳐져 마치 그림 같은 풍광을 자랑하는 곳은 오히려 불편함이 많다고 지적했다. 밖으로 나오면 바로 문화를 즐길 수 있고 편리함이 있는 곳, 인프라 접근성과 재밋거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재야의 부동산 고수로서 한마디
“그래서 제주도는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집을 사면 안 돼요. 그건 하와이도 그래요. 철칙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
바닷가 앞에 있는 집에는 필연적으로 벌레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습한 날씨가 많은 섬에서 바닷가까지 앞에 있으면 생활 환경이 최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제주도는 쉬려고 가는 곳이지 고생하려고 가는 게 아니라는 게 그녀의 관점이다. 얘기를 듣고 보니 그녀가 주택이 아닌 리조트를 선택한 것이 당연해 보였다. 리조트나 레지던스는 청소와 식사 등 필요한 서비스들을 기본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투자처로서의 제주도는 지금 어떨까? 그녀는 제주도의 부동산 경제 사정이 현재 최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되려 그렇기 때문에 투자처로서의 가치는 높아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눈여겨보고 있어요. 올 하반기가 투자할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삼방산 밑 지역과 서귀포 중문 관광단지 쪽이 괜찮아 보여요. 삼방산은 요즘 방송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예전부터 핫한 곳이었어요.”
최소한 10년 계획을 세운다
부동산 투자에서 전문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그녀를 보니 현재의 방미에게 가수로서의 욕구는 더 이상 없다고 봐도 좋을 듯했다. 사실 그녀는 꼭 참석해야 할 행사가 있어도 가서 노래는 절대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설 수 있는 무대들은 이제 후배에게 물려줘야죠. 그 자리 외에도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자리들이 있을 테니까요.”
가수로서 최선을 다한 시절이 있기에 후배의 자리를 뺏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인간에 대한 배려와 정의(正義)가 느껴졌다. 그렇다면 가수가 아닌 부동산 투자 강의를 하는 방미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제 강의료가 1000만 원이에요. 그렇게 금액을 정한 건 강의를 꼭 들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시라는 의미도 있지만 너무 비싸니까 부르지 말라는 의미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 의미가 있는 자리에서 강연을 할 때는 돈을 받지 않으려고 해요.”
그녀는 삶을 충분히 즐겼다고 말한다. 해외에서의 삶도 풍족했다. 뉴욕에서 10년 번 돈으로 LA에서 5년 동안 즐겁게 살았다. 이제 그녀는 4~5개월은 한국에서, 3개월은 미국에서, 나머지는 여행을 하며 여생을 보낼 생각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잘살았어요. 이제 내일모레가 칠십(?)인데 인생 정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해봐야죠. 그러니 더 돈을 벌겠다, 다시 노래 좀 불러볼까 하는 욕심은 없어요.”
방미는 모든 계획의 단위가 최소한 10년이라고 했다.
내 마음대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
그녀는 유튜버 활동이 큰 욕심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매력이 있단다. 그걸로 돈을 벌기는커녕 되려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며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으니 그 정도 자유는 당연하지 않냐는 게 그녀의 말이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쉬운 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앞으로 10년 동안은 내 맘대로 살고자 해요. 이제는 나한테 투자를 하고 싶어요. 우선 충분히 잘 멋지게 쓰고 행복해지는 데 집중하자, 그러니 미리 고민하지 말자는 생각이죠.”
물론 늘 계획하고 사는 게 습관이 된 그녀가 모든 걸 내려놓을 리는 없다. 우선 유튜브 구독자 수를 올해 말까지 3만 명 정도까지 늘리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어요. 강연과 세미나, 공연, 요가, 운동, 놀이터 등이 가능한 만남의 공간을 마련하고 싶은 거죠. 요즘 시니어는 예전에 비해 훨씬 건강해요. 베네피트에 공감하며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브라보는 젊은 애들이 잘 안 하는 말이다. 진정 우리 나이여야 할 수 있는 말”이라면서 멋지게 정리해버리는 방미는 그야말로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라고 외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브라보’스러운 미래 계획은 또 어떻게 세울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