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회향(廻向)이란 자신이 닦은 공덕을 타인에게 돌려 함께 성불(成佛)하길 바라는 행위다. 비단 불자만 이러한 양식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타심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모든 일에 이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희유(希有) 스님은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사회복지사의 삶 또한 수행자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게 승려복을 입은 서울노인복지센터장이 되어 회향을 실천한 지도 어언 10년에 다다랐다.
한때 탑골공원은 그야말로 노인들의 핫플레이스였다. 지금도 그 명맥이 남아 있지만 과거에 비할 순 없다. 당시 노인들이 이곳에 몰려든 가장 큰 이유는 무료 급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서울시는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탑골공원 성역화 작업에 착수했다. 이에 수많은 노인이 제 집처럼 드나들던 사랑방을 잃고 말았다. 그 해결책으로 서울시는 인근에 옛 통계청 건물을 개조해 2001년 지금의 서울노인복지센터를 설립했다. 도심 한복판에 군집해 있던 노인들이 탑골공원을 떠나 그 안에서 여가를 즐기길 바랐던 것이다. 그렇게 서울노인복지센터가 노인들의 성지 역할을 해온 지도 20년이 넘었다. 그리고 역사의 절반가량은 희유 스님도 함께했다. 사실상 인연은 그전부터였지만 말이다.
“2013년부터 서울노인복지센터장을 맡았어요. ‘아니, 스님이 왜?’라며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참 묘한 인연으로 시작됐죠. 과거 수행자로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고, 사회복지학 공부를 하며 그것을 채워보고자 했어요. 당시 학교에서 연우회라는 봉사단체 모임에 들었는데, 그 활동의 일환으로 방문한 곳이 바로 서울노인복지센터였습니다. 무료 급식소인 만발공양간에서 자원봉사를 했거든요. 어르신들이 정말 많이 오시더라고요.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게 일했는데도 너무나 보람찼던 기억이 나요. 우리 센터는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위탁 운영하는데, 그 후로도 이런저런 인연이 쌓이며 지금 자리에 오게 됐습니다.”
코로나19, 전화위복의 디딤돌로
그동안 센터를 운영해오며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심각했다. 특히 감염병 취약 계층인 노인을 대상으로 한 기관이다 보니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또 어르신 수준과 편의에 맞춘 대면 서비스가 많았던 터라 거의 모든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했다. 이는 기관 차원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센터를 찾던 어르신 개개인에 대한 염려도 놓을 수 없었던 희유 스님이다.
“지난 2~3년이 센터 어르신들에겐 아주 긴 시간이었을 거예요. 이곳에서 일과를 보내거나 일상의 활력을 채우곤 하셨는데, 하루아침에 발이 묶여버렸으니까요. 특히 연세가 많은 분들은 이곳에 다녀가시는 것만으로도 건강관리가 되거든요. 어떻게 해야 어르신들이 집에서도 센터와의 연을 이어가고 우울하지 않게 보내실까 고민했죠. 결국 그동안 마련해오던 스마트 시스템 구축을 확 앞당기기로 했습니다.”
그 출발은 ‘탑골 TV’(유튜브 채널)의 부활이었다. 이전부터 간간이 콘텐츠를 올렸지만 반응은 심심했다. 먼저 해당 채널을 매개로 사회복지사들이 직접 기획, 촬영, 편집까지 해낸 각종 복지 정보나 교육 프로그램 영상물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어르신들은 변화된 시스템에 잘 따라와 주었고, 채널도 점차 활기를 띠었다. 물론 온라인 플랫폼의 제약은 있었다. 자료 공유가 어렵다거나, 구성원 간 상호작용이나 소속감이 떨어지는 문제 등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러닝 시스템 ‘도시락’도 고안했다. ‘도전하는 시니어의 즐거운 배움의 맛’이라는 뜻을 담았다. 아울러 융합형 콘텐츠 제작을 위한 비콘 스페이스(Be@con Space)를 마련해 질 좋은 온라인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그렇게 한동안 온라인 플랫폼과 메타버스 등을 활용해 소통을 이어가는 사이, 코로나 빗장도 서서히 풀려갔다. 그간 센터도 더욱 스마트한 모습으로 어르신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그 대표적인 시스템이 바로 ‘복지i’와 ‘나.비’다.
“기존의 실물 회원카드를 통한 관리 체계는 효율성도 떨어졌고, 어르신들의 복합적인 욕구를 반영하기에 제한적이었어요. 깜빡하고 카드를 두고 오시는 일도 왕왕 있었죠. 그런데 보니까 어르신의 70%가량이 스마트폰을 쓰시더라고요. 아, 그러면 모바일에 회원증을 심어드리면 되겠다 싶은 거예요. 그렇게 디지털화된 회원관리 시스템 ‘복지i’가 탄생했습니다. 또 센터 어르신들을 위한 전용 마이페이지 ‘나.비’(나로부터의 비상)도 구축했어요.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공지사항을 알리거나, 개인별 프로그램 및 건강관리도 가능해졌죠. 아울러 센터에서는 건강, 문화, 스마트 등 각 영역에서의 활동 정도를 ‘나비지수’라 하고, 그것을 ‘봉봉’이라는 단위로 시각화해 다양한 활동 참여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하게 찾는 보람형 일자리
아직 서울노인복지센터를 가본 적 없는 이라면, 꼭 한 번쯤 들러보길 권한다. 입구에 있는 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센서부터, 실내 스마트 텃밭, LED 공기살균기, 카페 키오스크 등 발이 닿는 곳곳에 스마트한 시스템이 눈길을 끈다. 아울러 교육장을 비롯해 TOP 독립영화관, 물리치료실, 탑골미술관, 요리연구소, 커피전문랩실 등 다양한 시설들로 즐길거리도 풍부하다. 또 본관, 별관, 분관 등 규모도 작지 않은데, 이곳에는 희유 스님이 장을 맡고 있는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이하 취업지원센터)와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도 있다. 두 곳 역시 코로나19의 여파가 컸지만, 스마트한 대응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며 전화위복을 맞았다. 특히 취업지원센터의 경우 과거 취업훈련센터부터 거듭 변모하며 중장년 일자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취업훈련센터 시절에는 생계형 일자리 위주로 알선했어요. 요즘엔 일상에 의미를 더하는 보람형 일자리를 선호하는 분위기죠. 취업지원센터도 이러한 흐름과 욕구를 반영한 민간 일자리 발굴과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시장에 있는 기존 직무 중에서 시니어가 충분히 도전할 만한 일을 발굴해 기업에 제안하고, 교육을 통해 관련 역량을 강화하는 식이죠. 가령 비대면 상황에서는 배달업계가 한창 떴는데, ‘배달의민족’과 협력해 물류센터 파킹·패킹 업무 등의 일자리를 창출했어요. 또 택시기사의 경우도 어르신들이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근무 환경이 빡빡한 게 흠이었거든요. 한 모빌리티 플랫폼에 어르신들의 일상에 무리가 없는 주 4일, 주간 근무 가능 조건을 제안해 채용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어요.”
최근 많은 부분이 엔데믹(대면)으로 전환됐는데, 이미 팬데믹을 겪으며 디지털·스마트 기기 등에 익숙해진 시니어들의 능력치도 한껏 끌어올릴 계획이다. 오히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교육을 더 선호하거나, 디지털 환경을 편리하게 여기는 어르신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예전처럼 모두 오프라인으로 전환하기보다는, 새로운 융합 서비스를 고민하는 중이다.
“스마트 교실이라고 해서 일반 오프라인 강의실에서 태블릿 PC 등을 활용해 양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는 융합형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강사가 문제를 내면 각자 스마트 기기로 답을 하는 등 취업 교육 현장에서도 디지털 환경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보려 합니다.”
스스로 일궈가는 선배시민의 자긍심
지난해 설립 20주년을 맞아 펴낸 자료집에는 ‘선배시민이 참여하고 배우고 나누는 광장 서울노인복지센터’라는 비전이 담겨 있다. 그동안 센터에서는 권익증진 사업을 통해 사회와 정책 변화 속에서 노인이 스스로의 권리를 찾고 의무를 다하는 선배시민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도왔다. ‘어르신 정책 모니터링단’이나 ‘선배시민 거버넌스’ 등이 그 예다. 희유 스님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노인이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변화를 이끌었을 때 후배시민에게 존경받는 선배시민이 될 수 있으리라 조언했다.
“예전에 센터로 향하는 안국역 출구를 공사한 적이 있어요. 당시만 해도 건너편 운현궁 방향엔 횡단보도가 없었는데, 출구가 막히니 어르신들이 무단횡단을 하거나 다른 길로 돌아오시면서 사고가 자주 났어요. 예방 차원에서 안전 교육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죠. 결국 어르신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시라 제안했습니다. 몇몇 분들이 직접 경찰서도 찾아가고 의회에서 모니터링도 하면서 일종의 캠페인도 진행했죠. 덕분에 운현궁 쪽으로도 횡단보도가 놓이게 됐습니다. 그 성과를 다들 뿌듯해하시고 자랑스러워하셨어요. 그렇게 스스로 권리와 의무를 알아가고 실천하다 보면 어느새 주변을 돌아보고 공동체의 권익에 대해서도 생각이 확장돼요. 이로써 자신의 경륜을 후배시민에게 베푸는 선배시민으로 발돋움하는 거죠.”
희유 스님은 자신 또한 선배시민으로서 성숙한 삶을 살아낼 수 있길 희망하고 있었다. 기관장 은퇴는 만 65세인데, 올해 환갑을 맞아 이제 센터를 떠날 날도 5년 남짓 남았다. 물론 수행자로서의 삶은 은퇴가 없으니, 승려 신분으로 더욱 회향에 정진하리라는 계획은 분명할 테다. 센터에서 남은 5년을 희유 스님은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올해로 기관장 10년 차인데, 과연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라 할 수 있을까 반성을 많이 하죠. 그런 부족함을 채워가면서, 은퇴할 때 ‘그래, 이만하면 잘했지!’ 싶으면 성공일 것 같아요.(웃음) 센터를 책임지는 동안은 부처님의 가르침 중 ‘사섭법’(四攝法)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베풀고(보시섭), 따뜻한 얼굴과 말로 살피며(애어섭), 선행으로 이롭게 하여(이행섭), 센터를 찾는 어르신 한분 한분의 희로애락과 함께하려 해요(동사섭).”
회향도, 사섭법도 모두 실천하려면 타인이라는 마중물이 필요할 테다. 홀로 애쓴다고 이뤄지는 마음가짐이 아니기에 그러하다. 이에 희유 스님은 더 많은 어르신이 센터를 찾고, 주변에 있는 복지관을 애용하길 강력히 권했다.
“저는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전 세계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요. 실제로 해외에서 우리 센터에 견학도 많이 오는데, 일본에서도 감탄하고 가더라고요. 일본을 포함한 다른 나라 노인 시설을 보면 대개 케어와 돌봄 위주인 경우가 많거든요. 우리나라 복지관들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문화·여가 생활을 장려하는 곳이 드뭅니다. 그러니 ‘역세권’, ‘숲세권’ 이런 것만 따질 게 아니라, 유익한 노후를 위해 이제는 ‘복세권’이 더 중요합니다. 나이 들수록 복지관을 곁에 두고 사세요. 한국 노인복지관, 그야말로 ‘짱’입니다.”
“시어머님 간병을 번갈아 할 수 없으니까 정말 애가 타고, 일주일 넘게 혼자 맡아 하시는 형님께는 너무 죄송해서 어쩔 줄 모르겠더라고요.”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60만 명에 육박할 정도였던 지난 3월 중순 갑작스런 심장발작으로 시어머니가 입원한 B씨. 큰동서와 번갈아 간병을 할 요량으로 PCR 검사를 하려는데 본인이 코로나19 확진 후 격리 해제한 지 2주가 지나지 않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좌절했다.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가족까지 급박하게 대처할 일이 많은 상황에서 고통과 역할을 함께 나누지 못한다는 현실이 너무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어떤 가족은 자녀가 시간을 내어 찾아와도 요양원에 격리된 부모님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장례식에 조문도 받을 수 없었다. 방역 단계가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예약한 결혼식장과 날짜는 번번이 바뀌고 연기되다가 예비 신랑 신부와 그 가족은 끝내 갈등 속에 파투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가족, 친구, 동료, 이웃과 사회를 갈라놓았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방역지침은 심리적 거리마저 소원하게 해 인간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쳐온 것이 사실이다.
마스크의 역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강제했던 실외 마스크 착용이 5월 2일부터 해제되었다. 혹시나 하고 청계천으로 산책 나선 날.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마스크 벗은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까지, 그리고 다음 날 외출할 때도 거리나 공원, 버스정류장, 지하철 등에서 마스크와 함께했다. 지난 2년 남짓 마스크에 길들여져, 규제가 이제는 생활의 도구가 된 것일까.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남겨준 불편함과 제한이 안전과 건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준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2020년 첫 발병부터 지금까지 온 세상을 휩쓴 코로나19라는 역병(疫病)이 어느 정도 감당할 수준이 되면서, 그동안 단절되고 막혔던 부분을 어떻게 복구하고 대처해나갈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가족의 재발견
2021년 영국 통계청이 발표한 연령대별 행복도 조사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코로나19 기간 중 SNS를 활용한 노년층의 행복도가 젊은 세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대면하는 활동이 왕성했던 청년층은 행복도가 떨어진 것과 달리 비대면이더라도 가족과 유대를 잃지 않았던 노년층은 행복도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자신이 가진 인맥 안에서 깊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열망이 더 크기 때문이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가 2020년 조사를 바탕으로 발간한 ‘대한민국 행복지도 2021-코로나19 특집호’에서도 친밀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행복을 더욱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년층이 젊은 세대보다 감정을 잘 다스리고 삶의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도 행복에 영향을 준 요인으로 밝혀졌다.
인간관계에서 폭은 줄이되 깊이에 초점을 맞추면서 가족 간 대화가 늘어 사이가 더 좋아졌다는 사례도 많이 발견된다. 예전 같으면 퇴직한 아버지나, 취업 준비하는 자녀나 밖으로 돌기 바빠 ‘빈 둥지 증후군’인 어머니의 마음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부모 역시 MZ세대 자식이 얼마나 따로국밥 불통인지 화병이 났을 텐데, 코로나19 덕분에 온 가족이 서로를 지켜보고 관찰할 시간이 생기면서 ‘많이 힘들지?’ 물어봐 줄 수 있게 되었으니 한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자기를 들여다보고 주변을 살펴볼 특별한 시간을 주었다. 또 일상에서 찾는 소소한 행복에 눈을 뜨게 해주었다.
접촉 아니어도 언제나 접속 중
긴 코로나19 터널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점점 비대면 문화에 익숙해지고 있다. SNS나 메신저, 원격 화상회의 장치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때로는 폭넓게 때로는 깊숙한 이야기까지 자유롭게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영유아부터 청장년 대상 활동뿐 아니라 시니어 관련 교육, 봉사, 인지치료 등에도 비대면 화상 방식이 선호되는 추세다. 변화에 앞질러 새로운 환경에 대처하는 곳도 눈에 띈다. 인천을 지역 기반으로 치매 예방 및 인지 교육을 펼치는 한국시니어교육센터의 경우, 예전처럼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로 직접 찾아가는 대신 매주 일정한 시간에 원격 화상강의 방식을 이용해 어르신들을 만나 소통하고 있다. 비대면 화상 프로그램 시행 초기에는 방역과 안전을 내세웠지만, 2년 남짓 의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면서 장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방역 기준이 완화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소통을 병행할 수 있으니 그 효과와 만족도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상의 소중함과 연결 : ‘딥 콘택트’(Deep Contact)
코로나19 이전 우리는 잘 차려입고 꾸미고 시간을 들여 어딘가로 이동해서 누군가를 만나 사교와 업무를 수행해왔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대면 대화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는지 돌이켜보자. 그런데 코로나19를 겪으며 대부분의 만남이 비대면, 재택(혹은 특정 장소가 아닌 카페나 대중교통 등)으로 바뀌면서 모종의 해방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인간관계에서 고립과 단절을 가져와 고통으로 다가왔던 사람들도 어느덧 방역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여기저기 걸쳐놓고 집중하지 못했던 관계는 과감히 정리하고 자신에게 소중한 관계에 깊이 몰입하는 ‘딥 콘택트’의 시대가 주목받는 까닭이다.
국토교통부는 경북 경주시, 경북 의성군, 전북 장수군 총 3곳을 ‘고령자복지주택’의 2022년 제1차 사업 대상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경주시 120호, 의성군 60호, 장수군 80호로 총 260호가 생긴다.
고령자복지주택이란 국토교통부장관이 지자체와 협의해 지정한 65세 이상 노인이 입주할 수 있는 주택을 말한다. 고령자 주거 안정을 위해 무장애 설계(Barrier-Free Design)가 적용된 임대주택과 사회복지시설을 함께 조성한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사업 대상지 선정은 임대주택 규모, 사업비 분담방안, 사회복지시설 설치·운영계획 등에 대한 지자체 제안, 현장조사 및 평가위원회를 통한 입지 적정성, 수요 타당성 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거쳐 이루어졌다”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선정된 3곳인 경주시, 의성군, 장수군은 3곳 모두 고령화율(24~43%)이 전국 평균(17%)보다 훨씬 높은 곳이다. 즉 고령자 주거 수요가 높은 곳으로 고령자복지주택은 고령자의 편의를 돕기 위해 설계됐다.
무장애 설계인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으로 불리기도 한다. ‘누구나 사용하기 편하게’ 디자인하는 것이 목적으로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도구나 시설, 설비를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우리나라는 ‘주거약자지원법’을 두고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다. 주거약자지원법 대상은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 국가유공자, 보훈대상자 등이다. 고령자복지주택은 이 주거약자지원법에 따라 주택과 편의시설을 설치한다.
규정에 따르면 출입문은 너비 85cm 이상이 되어야 하고, 출입문 옆에는 60cm 이상의 여유 공간이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출입문 손잡이는 레버형 손잡이 등 잡기 쉽고 조작이 쉬운 것으로 설치되어야 한다.
또한 어르신들의 낙상 방지를 위해 미끄럼 방지 마감재를 써야 하고, 높이조절이 가능한 세면대를 설치해야 한다. 거실, 욕실, 침실에 경비실이나 관리실과 연결할 수 있는 비상연락장치 설치도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국토교통부는 시니어 카페, 옥상 텃밭, 건강관리실 등 고령자 특화 복지시설을 계획했다. 특히, 고령화율 전국 1위인 의성군은 인접 공립요양병원, 고령친화복지교육센터, 종합복지관, 재가복지시설 등과 고령자복지주택을 연계할 예정으로 시너지 효과 창출이 기대된다.
국토교통부 김홍목 주거복지정책관은 “고령자복지주택은 저렴한 임대주택과 함께 요양・돌봄・일자리 등 고령자 맞춤형 주거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으로, ‘27년까지 매년 1천호 이상 공급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더불어 그는 “새롭게 조성될 경북 경주시, 경북 의성군, 전북 장수군의 고령자복지주택이 내실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전문기관과의 협업 등 지자체와 함께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여, 지역 내 고령자 주거복지의 실질적인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인들이 안락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만족할 만한 주거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어려운 숙제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의 난제에 부닥쳤던 해외 여러 나라는 노인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했을까? 지구촌의 다양한 노인 주거 형태를 살펴보자.
은퇴 후엔 거주지를 옮겨 다니기가 쉽지 않다. 질병, 노환 등 신체적으로 한계가 올수록 더욱 불편하다. 그래서 집을 고르는 기준의 변화와 새로운 거주 방식이 필요하다. 현재 병원과 시설의 상황은 만족도가 낮다. 2020년 노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거동이 불편해도 내 집에서 간병 관련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살고 싶다’는 응답이 56.5%로 요양 시설 31.3%, 가족 합가·근거 거주 12.1%보다 많다.
초고령사회 초입에 선 지금, 혼자 생활하는 노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고 자택에서 돌봄이 필요한 노인 수도 급증할 전망이다. 노인성 질환으로 거동이 불편해지면 이동이 쉽지 않고 식사를 챙겨 먹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가족 중 누군가가 오랫동안 간병하거나 간병인을 고용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는 새로운 주거 대안을 선보이고 있다.
네덜란드의 노인 마을
대표적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외곽에 치매를 겪는 이들이 모여 사는 호헤베이크 마을이 있다. 중앙정부와 지역 기관들의 협조, 치매 요양 전문 간호사의 아이디어로 2009년 시작됐다. 1만 2000㎡ 규모에 영화관, 카페, 마트, 헬스장, 레스토랑, 미용실 등 웬만한 편의시설을 다 갖췄다. 거주 시설은 치매 환자 개인의 삶과 취향을 조사해 일곱 가지 인테리어로 지어 선택하도록 했다.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공방, 음악을 즐기는 이들을 위한 클래식 감상실도 있다.
환자의 안전을 위해 250여 명의 간병인·의사·요양보호사·직원 등이 마을 곳곳에 상주한다. 이들은 평소 슈퍼마켓 직원이나 미용사 등으로 생활하다 환자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만 나선다. 마을 주민들은 함께 모여 요리하고, 사교 행사를 열고, 장도 본다. 치매 환자의 일상생활 수행 능력은 최대화하고 간병인의 개입은 최소화하는 게 원칙이다. 정신이 흐릿하고, 손과 머리를 떨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어도 일반 요양원처럼 종일 침대에 누워 있지 않아도 된다. 치매 등급을 받은 입소자들은 개인 형편에 따라 한 달 최소 500유로(약 64만 원), 많게는 2500유로(약 322만 원)를 정부에 내면 된다.
덴마크 코하우징·일본 컬렉티브 하우스
코하우징(Co-housing)은 1970년대 덴마크에서 시작해 스웨덴, 노르웨이, 미국, 캐나다 등으로 전파됐다. 공동생활 시설과 소규모 개인 주택으로 구성돼 사생활과 공동체 생활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협동 주거 형태다. 일반적으로 거주하게 될 입주민이 주체가 되어 그룹을 형성한 뒤 지방정부, 건축가, 은행 등과 협조해 설립한다. 그중 ‘시니어 코하우징’은 핵가족화와 고령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시니어 코하우징은 ‘미드고즈그룹펜 코하우징’이다. 코펜하겐의 공영주택회사 라이예보에서 지은 560채의 아파트 중 5층 아파트 단지 4개 열을 개조해 만들었다. 대부분 1인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자기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층에 공동 거실, 식당, 회의실, 부엌, 창고가 있는 코먼하우스를 반드시 거쳐야 해서 서로 자주 만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일본에는 코하우징과 유사하지만 약간 다른 세대 결합 주택, 컬렉티브 하우스(Collective House)가 있다. 도쿄 아리카와구에 위치한 ‘캉캉모리’는 노인 시설과 보육원이 함께 입주한 12층 건물의 2층과 3층에 있다. 이곳에는 유아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살고 있다. 공용 주방과 식당, 게스트룸 등이 있으며, 관리하고 운영하는 일은 거주자들의 몫이다. 사람들은 일주일에 몇 번씩 공동 식사 자리에서 얼굴을 마주한다. 공동 식사는 월 1회 당번제로 거주자 몇몇이 날을 정해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독립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시간과 공간의 일부를 공유하는 식이다. 아이들은 노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배우고, 노인들은 아이들 덕에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어 세대 교류 효과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주목할 만한 국내 노인 주거 형태
세 할머니의 유쾌한 동거, 노루목 향기
여주시 금사면. 이혜옥, 이경옥, 심재식 씨는 자신들이 마련한 공간에 ‘노루목 향기’라 이름 붙이고 5년째 함께 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낸 직장동료, 친구 사이인 이들은 요양원이나 복지 시설이 아닌 마을형 노인 생활공동체를 꿈꾼다. 마을 노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많은 이들과 즐겁게 사는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
노인과 청년이 서로 돌보는 청춘발산마을
광주광역시 서구 발산마을은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몇몇 노인만 남아 있었지만 2015년 도시재생사업으로 청년들이 다시 거주하게 됐다. 노인과 청년이 한데 모여 골목이웃회를 열고 거리 청소, 분리배출 등 마을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러운 이웃 문화가 만들어졌다. 또 할머니들이 폐품을 모아 마을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거나, 청년들의 가게 일을 도움으로써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가 형성됐다.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음식점·카페 등에 키오스크 시스템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비대면 주문 문화가 퍼지자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 소외되고 있다.
서울디지털재단의 ‘서울시민 디지털역량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만 55세 이상 고령층의 디지털 기술 이용 수준은 100점 만점에 43.1점으로 서울 시민 평균인 64.1점보다 32.7%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층의 54.2%는 한 번도 키오스크를 사용해본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키오스크 이용률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줄어든다.
75세 이상에서 키오스크를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13.8%에 불과했다. 75세 이상이 사용하기 어려운 키오스크로 꼽은 곳은 패스트푸드점(53.3%), 카페(45.7%), 음식점(44.4%)이다.
고령층은 ‘사용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33.8%), ‘필요가 없어서’(29.4%),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17.8%)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또한 디지털 기기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20%는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부 도움을 받을 때는 ‘전화문의(73.7%)’, ‘지역거점방문(45.3%)’을 선호했다. 특히 연령이 높아질수록 대면 서비스를 선호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오영환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디지털 교육이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기차표 예매하는 일 등을 알려드리는데, 교육을 받고 나면 생활이 한결 편해졌다고 한다”며 “중장년층의 디지털 교육은 1:1 혹은 2:1로 이뤄져야 가장 효과적이고, 대면 교육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관계자는 “중장년층의 디지털 배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지만 비대면 교육으로는 한계가 있었다”며 “한편으로는 디지털에 익숙해지는 과정이었지만, 아직도 디지털 도구 활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중장년층이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을 잘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틈이 크게 벌어지자 정부는 ‘디지털 포용 추진계획’을 수립했다.
서울시는 이에 따라 디지털배움터 140여 개를 운영하고 키오스크 체험공간을 마련했다. 시니어 강사가 고령층에 일대일로 디지털 교육을 하는 ‘어디나 지원단’, 어르신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알려주는 로봇 리쿠(LIKU) 보급 사업 등을 실시하고 있다.
서울디지털재단은 보고서에서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 인구로 진입하면서, 고령층 내에서도 디지털 격차 문제가 복잡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며 “고령층 특성에 맞춘 맞춤형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조사 배경을 밝혔다.
강요식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은 “디지털 사회에서 시민 모두가 소외나 배제 없이 디지털 기술이 가져오는 기회와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디지털 포용 사업을 더 촘촘히 기획하고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56세 A씨는 노후 거주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이상적인 노후 거주지로 급부상한 실버타운에 대해 알아봤으나, 공동생활을 꺼리는 성격 탓에 노후 거주지 후보에서 제외했다.
59세 B씨는 실버타운 입주 가능 연령을 1년 앞두고 C 실버타운에 입주 예약을 신청했다. 그러나 실버타운 인기가 높아진 탓에 대기자가 넘쳐 2년은 기다려야 한다. 60세가 될 때에 맞춰 노후 생활에 맞는 거주지로 이사하고 싶지만 줄어들지 않는 대기자 명단에 B씨는 다른 거주지를 알아보고자 고민 중이다.
고령화 속도가 점차 빨라지는 요즘, 노후 대비를 두고 여느 때보다 관심이 높다. 노후 자산 관리뿐만 아니라 노후에 어디에 살 것인지, 거주지에 관련한 고민으로 이어지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생활을 꺼리거나, 실버타운에 가고 싶지만 대기 기간이 너무 길어져 포기한 A씨, B씨와 같은 중년을 위한 거주지가 있다. 바로 ‘실버하우스’다.
실버하우스는 노후 주거지 전문 유튜버 ‘공빠TV’에서 만들어낸 개념으로, 그들이 꼽는 이상적인 세 가지 노후 주거지 중 한 곳이다. 노년기에는 노화로 인해 체력이 약해지고 경제활동을 그만두면서 생활비도 부족해지기 쉬우므로, 중년기까지 살던 집과 노후에 거주할 집은 달라야 한다는 취지로 둘을 구분한다.
공빠TV의 문성택 씨는 “시니어들이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70대 중반부터 20년 이상 거주할 집을 70대 초반 이전까지 마련해서 가능한 한 일찍 행복한 여생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 실버하우스라는 개념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추천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빠TV는 이상적인 실버하우스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경제력, 둘째로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되는 입지, 셋째로 다양한 여가활동의 영위 여부이다. 문 씨는 “경제력이란, 실버하우스를 마련하고 유지하는 비용,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 매달 빠져나가는 비용까지 스스로 부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실버하우스를 마련할 때에 필요한 자금으로는 전 재산의 50% 이내가 바람직하다.
두 번째로 꼽은 기준은 실버하우스에 거주할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수시로 건강상태를 체크해야 하거나, 돌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질병을 앓고 있다면 큰 병원과 가까운 지역을 알아봐야 한다. 주기적으로 가벼운 운동을 통해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운동시설이나 공원이 가까이 있는 곳,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노인복지관이나 식당가가 가까운 곳도 공빠TV의 추천 실버하우스 입지다.
문 씨가 마지막으로 여가 생활을 꼽은 이유는 다른 데에 있지 않다. 은퇴 후에는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때문에,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는 여가 생활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 그는 “행복한 여가를 보내기 위해서는 도서관, 노인복지관, 시민회관이나 박물관 등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가까운 지역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춘 ‘꿈의 실버하우스’ 입지로는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경기도 성남시 판교 등을 추천했다. 문 씨는 “의정부 신곡동의 경우 가까운 거리에 신곡 노인복지관, 의정부 백병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근처에 광역버스 정류장, 의정부 경전철 동오역이 있어 이동하기도 편리하다”며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의정부 과학도서관, 추동웰빙공원이 있으며 근처 부용천, 중랑천을 따라 걷기 운동이 가능하므로 실버하우스 입지로 알맞다”고 설명했다.
판교를 추천하는 이유로는 “우선 신분당선 판교역이 가까이 있어 이동이 편리하고, 판교 현대백화점, 백현동 카페문화거리가 가까이에 있어 식사를 해결하거나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며 “주변에 탄천이 지나가고, 낙생대공원이나 판교 노인복지관 등 판교 지역의 탄탄한 인프라를 누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버하우스를 노후 거주지로 선택했다면 경제력과 건강, 여가를 기준으로 선택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추천한 지역에 꼭 입주하라는 것이 아니고, 추천한 지역의 특징을 참고삼아 스스로에게 가장 잘 맞는 실버하우스를 찾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활기찬 노후 정착을 위한 노인 일자리 사업이 더욱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환경 미화나 교통 지도를 하는 공익활동형 일자리를 넘어 사회 서비스형, 시장형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가 등장했다. 음식 정기 배송, 농산물 재배, 취약계층 돌봄 등 보다 다양해진 일자리 현장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삶의 활력을 찾은 두 번째 청춘들을 만났다.
하나금융그룹의 100년 행복연구센터가 중장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만 60~64세의 60%는 70세가 넘어도 일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지난해 통계청이 공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1000만 명이 넘는 장래 근로 희망자 중 70~74세는 79세까지, 75~79세는 평균 82세까지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서’와 같은 이유로 대부분 은퇴 이후에도 근로 의욕을 드러냈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정책이 바로 ‘노인 일자리 사업’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고령층에 제공되는 일자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지역사회 공익 증진을 위한 ‘공익활동형’(공공형)은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를 참여 대상으로 하며, 주로 노노케어(건강한 노인이 병이나 다른 사유로 도움을 받고자 하는 노인을 돌보는 일), 학교 급식 지원, 도서관 등 공공시설 봉사활동을 한다. 10~12개월간 하루 3시간, 월 30시간 이상 활동하면 한 달에 27만 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곳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 서비스형’은 만 65세 이상 참여할 수 있고 복지시설, 보육시설, 금융기관 등에서 10개월간 월 60시간 이상 활동한다. 급여는 근로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월 71만 원 정도의 활동비를 받는다. 참여자 인건비를 일부 보충 지원하고 추가 사업소득으로 운영하는 ‘시장형’은 식품 제조·카페와 같은 소규모 매장, 아파트 및 지하철 택배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만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근로 수익금에 따라 활동비를 배분한다. 다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생계 급여 수급자나 직장 건강보험 가입자, 장기요양보험 등급판정자, 정부 부처나 자치단체에서 추진 중인 타 일자리 사업에 참여 중인 자는 신청 대상에서 제외된다.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 서비스형’
2021년 우리나라는 2조 6000억 원의 예산으로 82만 개의 노인 일자리를 만들었다. 이 중에서 73.8% 정도가 공공형 사업이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 참여자 평균 연령은 77세 수준으로, 참여에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은 주거환경 개선이나 스쿨존 안전 지킴이 등 단순한 활동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최근 변화하는 노인의 특성과 경력을 활용하는 사회 서비스형과 시장형 일자리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삼척시니어클럽은 사회 서비스형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2020년부터 ‘희망을 담는 빨래바구니’를 운영 중이다. 장애인, 독거노인, 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을 방문해 대형 빨래를 수거하고 세탁해 집으로 배송해준다. 이외에도 필요한 생필품이나 상비약을 주문받아 함께 전달하고, 가스·수도·전등 수리 및 가스 누출 점검 등 부가서비스를 제공한다. 세탁이 불가한 낡거나 보온성이 떨어지는 이불은 무료로 교체해주기도 한다. 백창석 강원도 일자리국장은 “빨래방 서비스와 더불어 생필품 구매 대행과 우유 배달을 진행해 취약계층 어르신과 지역사회의 연결고리를 하나 더 만든 셈”이라며 “통합 생활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발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보건복지부는 1월 16일 사회 서비스형 노인 일자리 ‘방역지원 사업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대응 체계가 재택치료 원칙으로 전환되면서 재택치료자·자가격리자 증가에 따른 일선 방역 현장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사업단의 주요 업무는 재택치료 키트, 자가격리 물품 점검·배달 및 지역사회 방역 등 지자체와 보건소가 수행하는 포괄적인 방역 현장 지원이다. 방역수칙과 개인정보보호 교육을 통해 노인 일자리 참여자의 건강과 안전을 확보하고, 재택치료자의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할 예정이다. 주철 복지부 노인지원과 과장은 “재택치료 키트 배달 등 방역 현장 지원이 절실한 지금, 노인 일자리 방역지원 사업단은 건강하고 경험을 갖춘 베이비붐 세대의 역량을 사회에 환원해 국민의 안전에 이바지하는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어르신과 함께 키워나가는 ‘시장형’
구로시니어클럽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장형 일자리 사업으로 주택가 한복판에 꽃송이버섯 재배 농장을 마련했다. 서울도시주택공사가 매입한 임대주택을 활용해 ‘시티팜’을 운영한다. 집 전체가 버섯 생육장이다.
여기서 자라는 꽃송이버섯은 암세포를 억제하는 베타글루칸 성분을 다량 함유해 항암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습도와 온도에 민감해 생장 요건이 맞지 않으면 금방 죽어버리는 탓에 키우는 과정이 꽤 까다롭다. 이곳에 근무하는 어르신들은 비치된 기계에 배양액을 채우고, 방 안에 고루 퍼지도록 버섯의 위치를 바꿔주는 등 생육 환경을 최적으로 유지하는 일을 한다. 다 자란 버섯을 수확하고 무게별로 포장하는 작업도 진행한다.
수익은 어르신들의 급여와 관리 유지비, 재료비 등으로 사용된다. 때문에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양임순 구로시니어클럽 관장은 “신생 사업이라 판로 확보를 위해 소상공인들이 운영하는 식당, 대형마트 등 직접 발로 뛰며 납품 계약을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꽃송이버섯은 원래 1kg당 10만 원에 거래될 정도로 고가지만, 중간 유통 과정이 없어 시중가보다 40% 이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로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담아드림’ 역시 시장형 일자리 사업 중 하나다. 담아드림은 샐러드 정기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식자재 마트에서 직접 장을 봐 신선한 재료로 매일 아침 샐러드를 만든다. 재료를 깨끗이 씻어 말리고, 껍질을 까거나 고기를 삶는 등 하나하나 어르신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포장과 배송도 다 이들의 몫이다. 샐러드 종류는 아보카도, 훈제오리, 닭가슴살, 새우, 게살, 버섯 등이 있다. 가격은 5000~6000원으로 시중의 다른 가게들보다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어르신들은 제작 및 포장팀과 배송팀으로 나뉘어 주 2~3회 근무한다.
현재 인근 관공서, 공공기관과 가산디지털단지를 판매 지역으로 정해두고 있다. 양 관장은 “시장형 일자리는 어르신들이 일하는 보람을 느끼게 하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면서 “앞으로도 어르신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현장 근무자들의 말말말
희망을 담는 빨래바구니 유을자(65)
“원래 보험 설계사 일을 했어요.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본사에서 영업소를 축소하는 바람에 근무 지역이 멀어져 직장을 그만두게 됐죠. 구직 활동을 하다 노인 일자리 사업을 알게 돼 신청했고, 참여자로 선정됐을 땐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어요. 지금은 한 달에 총 12일, 하루 5시간을 일해요. 수거한 이불을 빨아서 생필품과 우유를 함께 배달하고, 도움이 필요한 집을 선정해 이불을 교체해요. 혼자 사는 어르신을 보면서 나중에 나도 더 나이 들었을 때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 일 같지 않죠. 그래서 진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해드리려고 노력해요. 몸은 바쁘지만 사회에 도움 되는 좋은 일이니,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담아드림 조규숙(68)
“일자리 모집 공고를 지역 소식지에서 발견했어요. ‘아, 이거다!’ 싶었죠. 자식들도 다 커서 집에 아무도 없는데,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많으면 100인분가량의 샐러드를 만들 때도 있는데, 아침부터 재료를 손질하려면 전쟁터예요. 특히 훈제오리나 닭가슴살은 기름기를 일일이 다 빼고 알맞은 크기로 잘라야 해서 굉장히 손이 많이 가죠. 그래도 소스나 재료를 어디에 배치하면 좋을지 의논하면서 메뉴를 발전시키는 재미가 있어요. 출근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같이 일하는 언니들과 중간중간 이야기도 하고, 바쁘게 움직이니 운동도 되는 것 같아요. 삶의 활력소를 찾은 셈이죠.”
시티팜 최수자(80)
“꽃송이버섯에 대해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효능을 알고 나니 좋은 농산물을 재배한다는 자부심이 생겼어요. 출근하면 버섯 보며 잘 잤냐고 말도 걸어보고, 비닐이 구겨져 있으면 일일이 손으로 펴주기도 하죠. 시간이 지날수록 손주 보듯 사랑으로 돌보게 된달까요. 판로 확보가 중요하다 보니 책임감을 갖고 어떤 요리에 넣어 먹으면 맛있을지 개발해보는 등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특히 월급으로 가족들에게 선물을 한다거나 용돈을 줄 수 있어서 좋아요. 얼마 전에는 손주에게 시계를 선물로 사줬는데, 기뻐하는 아이를 보니 굉장히 뿌듯하더라고요.”
시티팜 송현순(65)
“집에 있으면 겉모습에 신경 쓰기보다 편하게만 있게 되는데, 여기 나오고부터는 얼굴에 화장품도 찍어 바르고, 눈썹도 그려보면서 관리를 하게 돼요. 아무래도 밖에서 사람들과 만난다고 생각하면 신경을 안 쓸 수 없더라고요. 불면증이 있었는데 열심히 활동하니 잠도 잘 오고, 좋은 배양액을 덩달아 맞아서 그런지 피부가 좋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전체적으로 제 삶이 윤택해졌죠. 저도 얼마 전에 손주가 입학한다고 해서 책가방을 선물로 사줬어요.”
지난해 말 발표된 '2020년 주민등록 연앙인구'를 보면 전국 시군구 10곳 중 4곳은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경북 의성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40.8%를 차지했다. 이어 전남 고흥(40.5%), 경북 군위(39.7%), 경남 합천(38.9%), 전남 보성(37.9%), 경남 남해(37.3%), 경북 청도(37.1%), 경북 영덕(37.0%) 순으로 뒤를 이었다.
통계만 봐도 대한민국은 빠르게 늙어가고 있고, 특히 농어촌 지역은 벌써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농어촌 지역에서는 노인 복지를 위해 마련된 정부의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사업'이 잘 시행되고 있을까.
이와 관련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김수린 부연구위원이 집필한 '농촌 노인의 활동적 노화를 위한 노인 일자리 사업 개선 과제'를 지난 11일 발표했다. 본 연구는 농촌 노인의 활동적 노화 현황을 검토하고, 이를 지원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의 실태를 짚었다. 특히 '농촌'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와 한계가 있었고, 이에 대한 개선 과제 제언이 이뤄졌다.('농촌 노인'은 농어촌을 포함한 행정구역상 읍·면 지역에 거주하는 만 65세 이상 법정 노인)
그동안 농촌에 거주하는 노인이 복지 정책에서 소외된 이유는 '얼마든지 자구적으로 활동할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 농촌 노인은 '몸만 움직일 수 있다면 일을 놓지 않는다'고 표현될 정도다. 그러나 인식과 다르게 2020년 노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노인 일자리 및 사회 활동 참여 수요는 농촌 노인 21.9%, 도시 노인 22.5%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수행기관(지역당 평균 3.21개), 전담인력(지역당 평균 8.5명) 등의 수행 인프라는 농촌이 도시보다 더 열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요 수행기관 유형을 봐도 대도시와 중소도시에서는 시니어클럽(각각 25.35%)과 노인복지관(21.06%)에서 가장 많은 사업이 추진됐다. 반면 농촌 지역은 이들 기관 대신 지자체(37.07%)와 대한노인회(24.25%)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사업량을 수행하고 있다.
도시 지역과 비교해 농촌 지역에서 노인 일자리 사업을 수행할 기관의 종류와 수 자체가 충분치 않으며, 특히 노인 일자리 및 노인 복지 전담기관이 아닌 지자체가 가장 많은 사업량을 추진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농촌 노인이 대부분 공익 활동에 참여하는 것과도 연관됐다. 농촌 지역의 노인 일자리 주요 유형은 공익 활동과 시장형이 있다. 공익 활동은 지역 노인이나 지역 아동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이, 시장형 사업에는 영농 사업과 카페 사업이 포함됐다. 특히 영농 사업은 농촌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일은 익숙하지만 다른 일자리보다 힘이 드는 관계로 노인들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농촌 노인들 사이에서 노인 일자리 사업은 '인기가 좋다'고 표현될 만큼 수요도가 높다. 그러나 제한적인 사업량과 참여자 선발 기준으로 인해 원하는 모두가 참여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농촌 지역에는 초고령 노인이 많은데 더 젊은 노인과의 경쟁에서 밀려남으로써 참여 기회를 얻는 일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농촌 노인들은 사업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해짐을 느낄 뿐 아니라 사적 안전망(private safety net)을 유지·확대할 기회를 갖기 때문. 무엇보다 농촌에서 고령의 노인이 정기적인 활동수당(급여)을 통해 경제적인 보탬까지도 얻을 수 있다. 고령에도 무언가 일(활동)을 할 수 있다는 자기유용감과 즐거움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이점이었다.
그러나 수행기관의 현장 전문가들은 농촌 지역의 한계를 체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중 일부는 종사자 처우, 사업량 배정 체계, 초기 투자비 등 노인 일자리 사업이 가진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또한 '농촌이기에' 경험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어려움도 상당했다. 지금까지 노인 일자리 사업이 주로 도시와 도시 노인을 기본값으로 설정돼 기획 및 운영되어 온 까닭이다.
이에 김수린 부연구위원은 개선 과제로 몇 가지 제언을 했다. 먼저 사업 설계 및 기획 단계에서는 사업량 배정 체계 재고와 시장형 사업을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에 대한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는 사업량이 확정된 이후 배분에 대해서만 지자체와 수행기관이 협의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다음 해 사업량 추정을 위한 논의 단계에서부터 지자체와 수행기관이 협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김 위원은 사업 운영 단계에서는 농촌 환경에 적합한 인력 운영을 통한 수행 역량 강화와 농촌 노인의 이동 편의를 위한 차량 운행 제반 지원, 사업 평가 단계에서는 공익활동의 공익성 강화와 농촌 인지적 관점에 기초한 평가 제도의 개선 및 인센티브 도입을 제언했다. 수직적(중앙-현장)·수평적(수행기관-수행기관) 소통 및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농촌 노인 일자리 사업 협의 기구 도입 의견도 제시했다.
"30년 넘게 우울증에 걸려서 많이 힘들었는데, 송가인 가수 님을 만나고 약을 안 먹고 있어요." - 송가인 중년 팬클럽 회원
'덕질'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해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이다. 사회에서는 보통 '덕질'은 좋아하는 연예인을 향한 팬들의 '팬질'로 통용된다. 특히 요즘은 40~60대의 중장년 층 사이에서 덕질이 화제인데, 10, 20대의 젊은 층과 비교해도 차이가 없다. 오히려 더 열성적이기도 하다.
40~60대 사이의 팬 문화는 2019년 TV조선 '미스트롯', 2020년 '미스터트롯'으로 이어지면서 꽃폈다. 중장년 층은 추억과 애환이 담긴 트로트를 구성지게 잘 부르는 가수들에게 열광했다. 그들의 목소리에서 용기와 위로를 받았다. '미스터트롯'은 최대 시청률 35.7%를 기록하기도 했다.
가수들에게 푹 빠진 중장년의 팬들은 팬클럽 활동으로 덕질을 이어갔다. 현재 공식 팬클럽 기준 회원 수를 보면 송가인은 5만 8천 명이 넘었고, 임영웅은 16만 명을 넘어 17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트로트 가수 뿐만 아니라 K팝 가수들에게도 중장년 팬덤이 생겼다. 특히 월드 스타 방탄소년단은 세대 불문 팬 층이 두터워지며 세대 통합을 이루었다. 30대의 조 모 씨는 "시어머니도 방탄소년단을 좋아하셔서 같이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서 얘기를 많이 나눈다"고 말했다.
중장년층의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의 TV 프로그램 챙겨 보기, 콘서트 관람, 스밍(음원 스트리밍) 작업은 기본이다. 중장년층은 스마트 폰과 인터넷이 취약하기 때문에 팬클럽 내에서 자체적으로 스트리밍 교육까지 진행한다. 또한 조공, 굿즈 제작 등의 문화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중장년의 덕질 문화를 조명하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생겼다. 지난 20일 첫 방송된 KBS2 예능 '팬심자랑대회 주접이 풍년'(이하 '주접이 풍년')은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덕질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주접단'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다.
편은지 PD는 "기획하면서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스마트폰이 낯설었던 중장년 층이 '덕질'을 시작하면서 요즘 세대 못지않게 스마트폰을 잘 다루게 됐다는 점이다. 덕질을 하며 젊어졌다는 이분들은 아직까지도 좋아하는 사람이 TV에 나오는 것에 가장 열광하는 세대다. 이분들이 가장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스타를 모셔서 행복한 추억을 선물해드리는 것이 목표이자 섭외 포인트다"고 밝혔다.
첫 방송에서는 송가인이 나왔고, 다음주에는 임영웅의 출연도 예고됐다. '핑크 깃발 부대'로 유명한 송가인 팬클럽 '어게인'(Again)은 체계적으로 운영되기로 유명하다. 자문, 고문, 지역별 장 등, 조직도도 있다. 그 중 고문 변호사를 맡고 있는 진시호 변호사는 "팬카페 고문 변호사는 제가 최초인 것 같다"면서 "수임료는 무료다. 팬심으로 해준다. 누군가 악플을 달면 법적 조치도 하고, 카페 운영진들한테 자문도 해준다"고 말했다.
또한 중년의 팬들은 딸뻘인 송가인을 보고 눈물을 보이며 감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10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또 재발이 되면 어떡하나 불안했는데 가수 님을 만나고 제 삶이 달라졌다. 남편이 동참해서 부부가 같이 팬클럽 활동을 하고 있다", "30년 넘게 우울증에 걸려서 힘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정신과 쪽에서 최고 권위자인 분들을 만나 뵙고 입원 치유 권유도 받았는데 가수 님을 만나고서는 약은 안 먹고 있다"는 팬들도 있었다.
2021년 2월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트로트 열풍으로 보는 오팔 세대의 부상과 팬덤 경제' 발표에서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오팔 세대의 팬덤은 잃어버린 나의 정체성을 찾고 위안을 얻는 수단으로 관련된 소비에 매우 적극적이며 지속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오팔(Opal) 세대는 'Old People with Active Lives'의 약자로, 5060 액티브 시니어를 말한다.
또한 "팬클럽 활동을 통한 네트워킹과 소비를 통해 대상에 몰입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고 나를 표현함으로써 사회 생활을 할 때와 같은 활력을 느끼는 것"이라며 "시간적 여유가 있어 결집력과 행동력이 매우 강하며 활동 빈도도 높고 1020세대와 달리 좀 더 관대하게 스타를 바라보기 때문에 지속성이 긴 편이다. 높은 디지털 향학열로 디지털 기반의 활동과 소비에도 MZ세대와 유사한 행태를 보인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개항 이후 인천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문화와 유행을 선도했던 신포동. 지금은 구도심이 된 이곳 신포동에 30여 년간 자리를 지키며 인천시민의 지친 하루를 위로해주는 LP 카페 ‘흐르는 물’이 있다. 따뜻한 LP 음악 사이로 손님 한명 한명과 담백하면서도 다정한 인사를 나누는 안원섭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LP 음반과 통기타, 오래된 시집들과 빛바랜 사진들. 가게 내부엔 주인장의 취향과 그가 살아온 삶의 자취가 잔뜩 묻어난다. 안원섭 대표는 유랑극단 단원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음악을 접하고 즐겼다. 대학에서는 건축을 전공한 그가 29세의 나이에 LP 카페를 차리게 된 이유다.
예술하는 청년들의 사랑방
음악만큼이나 ‘시’를 좋아했던 안 대표는 학창 시절부터 백일장이나 창작문예대회에서 자주 입상할 정도로 예술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남달랐다. 청년이 되어서는 직접 쓴 시에 통기타로 음을 입혀 노래를 부르고 작은 공연도 열곤 했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음악과 시를 향유하면서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은 마음에 1989년 1월, 테이블 여섯 개 들어가는 13평 남짓의 첫 번째 가게를 이곳 신포동에 오픈했다. “지금은 신포동이 구도심이 됐지만, 개항 직후에는 서울보다 신문물이 빨리 들어오고 관공서도 전부 위치했던 핫한 도심이었다”라며 “민감한 시기인 청소년·청년기를 이곳에서 보내면서 음악·패션 등 다양한 문화를 접했다”라고 설명했다.
상호인 ‘흐르는 물’은 정희성 시인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흐르는 것이 어찌 물뿐이랴’라는 구절은 왠지 모르게 그의 마음을 울렸다. “뒹구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듯이 흐르는 물은 썩지 않거든요. 세상은 흐르는 물과 같아요. 그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게 법이에요. 노자의 사상 중 ‘상선약수’도 있잖아요. 이게 진리거든요.”
시적인 이름만큼이나 낭만적인 공간이다. 가게 오픈 초기, 음악과 시를 사랑하는 젊은 사장이 운영하는 이 가게에 예술을 사랑하는 인천 지역 청년들이 자주 찾아왔다. 화가, 작가, 음악가, 시인 등 다양한 예술가들의 교류와 활동의 전당이었다. 손님들과 밤새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날도 많았고, 술 한잔에 예술과 삶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도 나누며 청춘을 함께했다. 돈 없는 예술가들에게는 외상도 망설임 없이 해줬다. 시인에게는 커피값 대신 시집을, 화가에게는 술값 대신 그림을 받기도 했다. “그때는 그냥 가게에 돈통 하나 놓고 알아서 넣고 가시라고 했어요. 물감 살 돈도 없던 전업 화가 손님한테 어떻게 돈을 받아요. 그냥 ‘나중에 많이 벌면 주세요’ 했죠. 다 내 선배고 후배인데 술 한잔 베푸는 거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지금도 예술가들은 이곳을 찾는다. 공짜로 음악과 술을 즐긴 손님들은 이내 미술 작품이나 시집을 들고 다시 찾아온다.
규모가 큰 가게는 아니었지만 예술가들이 찾았던 낭만적인 공간이었던 만큼 차츰 이름을 알렸고, ‘타악기의 대가’ 김대환, ‘들국화’의 조덕환, ‘포크의 전설’ 양병집 등 7080 가요계의 전설적인 음악인들의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안 대표는 “이 작은 가게에서 한국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의 공연을 진행할 수 있어 매우 영광스러웠다”며 “특히 존경했던 故 김대환 선생님의 연주를 ‘흐르는 물’에서 들을 수 있었던 건 정말 감사하고 명예로운 일이었다”라고 설명했다.
LP 음반의 따뜻한 감성을 느끼는 곳
‘흐르는 물’에는 외국 팝송, 포크, 블루스, 재즈, 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LP 음악이 흐른다. 매일매일 그날의 분위기, 날씨 등에 따라 어울리는 음악을 재생하고, 손님들의 신청곡에 따라 음악이 바뀌기도 한다. 5000장이 넘는 LP 음반을 보유하고 있는 안 대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내 소원은 만 장을 모으는 거였는데 어렵게 됐죠. 원체 생산되지 않으니까 구매할 수가 없는 거예요.”
재생 목록을 만들어놓으면 연이어 노래가 나오는 음원과 달리 LP 음반은 계속해서 디스크를 갈아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실제로 안 대표는 인터뷰 중에도 흐르는 음악에서 관심을 뗄 수 없었다. 노래가 끊임없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음악이 끝나기 전에 다음 디스크로 바로 바꿔줘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편안하고 깔끔하게 즐길 수 있는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지만 안 대표는 LP 음반을 고집하며 LP 카페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안 대표는 다양한 비유를 통해 LP 음반만의 매력을 설명했다. “요즘 우리는 정화된 생수를 많이 마시지만, 옛날에는 정수기가 없어서 누룽지 먹을 때 나오는 숭늉을 많이 먹었거든요. 그 후에는 보리차를 끓여 먹었고요. CD나 MR은 정화된 생수예요. 그저 깔끔하죠. 하지만 숭늉이나 보리차를 생각해보세요. 가끔 건더기도 나오고 구수하잖아요, 고향 집의 엄마 품처럼. LP는 깔끔한 소리를 내지는 않아도 마음에 따뜻한 울림을 줘요.”
그 따뜻한 울림을 직접 느껴본 시니어 세대는 물론, 최근 ‘뉴트로’의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도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어 이곳을 찾는다. “한번은 20대 청년이 산울림 레코드판을 들고 왔어요. 이 음악 듣고 싶다고. 그래서 내가 ‘예쁘다’라고 했어요. 그 사람의 청춘도 예쁘지만 제대로 경험해보지도 못한 LP 음악을 듣고 싶다고 이곳을 찾아온 행위 자체가요.”
‘백년가게’로 지정된 최초의 카페
전국에 현존하는 LP 카페는 다수 있지만, 한 주인이 30년 넘게 운영한 카페는 ‘흐르는 물’뿐이다. 신포동에서 30년 넘게 자리를 지킨 동네의 터줏대감이지만, 신포동 내에서 자리를 네 번이나 옮겼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동안 색을 잃지 않고 가게를 일궈오니, 젊음을 함께한 단골손님들이 이제는 자식 혹은 제자들을 데리고 찾아온다.
이곳은 음악과 커피·술을 즐길 수 있는 음악 카페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진행되는 복합문화공간이기도 하다. 공연은 물론 출판기념회, 그림 및 사진 전시회 등이 소소하게 열린다. 오랜 역사와 함께 풍부한 문화를 담고 있는 이 공간은 카페로서 전국 최초로 지정된 ‘백년가게’가 되었다. 백년가게는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이상 존속을 돕고자 지정한 30년 이상 업력의 가게를 말한다.
안 대표는 30년 넘는 긴 시간 동안 가게에서 겪은 수많은 에피소드 중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로 꼽았다. “30주년 된 해에 8일 동안 릴레이 공연을 했어요. 8일째 되는 공연 마지막 날, 인천시립합창단의 소프라노 백혜숙 선생 팀이 와서 공연을 했는데, 그들이 손님들과 함께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짠 거예요. 30명의 손님이 장미꽃 한 송이씩 저랑 제 아내한테 나눠줘서 30주년 기념 30송이의 장미꽃을 선물받았어요. 너무 감사했죠. 감정이 벅차올라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우리 손님들한테 큰절도 했어요.”
손님들의 공간을 지켜주는 ‘소사’
주인장에게 이 공간은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안 대표는 “이 가게가 내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며 “찾아주시는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과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게를 30년 넘게 운영할 수 있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저 이곳을 관리하고 지키는 ‘소사’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난 그냥 소사예요. 학교에 상주하면서 잡일을 도맡아 하는 관리자를 소사라고 부르잖아요.”
이곳을 찾아주는 이들에게 보답하는 일은 지친 하루 일과를 끝내고 온 손님들이 편히 쉬다 갈 수 있도록 원하는 음악을 틀어주고 음식을 내어드리는 것뿐이다. 실제로 안 대표는 단골손님들의 18번 곡을 알아서 틀어주곤 했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정신이 온전하고 사지가 멀쩡하면 언제까지라도 우리 손님들을 위해 음악을 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