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릇파릇 돋아나 꽃보다 더 예뻤던 새순들이 아스라한 연두색으로 빛나더니 어느덧 짙은 초록으로 무르익어갑니다. 5월 인적이 드문 신록의 숲에서 산객 혼자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호젓한 오솔길을 걷다가 아무런 예고 없이 귀한 꽃 한 송이 만나길 빌었습니다. 복주머니란 한 송이 만나는 큰 운이 찾아오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때 필요한 건, 오복(五福)을 내리는 다섯 송이도 아니고, 만복을 기원하는 열 송이, 수십 송이도 아닌 단 한 송이의 개불알꽃이면 족할 것입니다. 이런 간절한 바람에 하늘이 답한 것일까. 일당백(一當百) 기상으로, 저 홀로 핀 단 한 송이 복주머니란을 만났습니다. 한참 동안 만났습니다. 산그늘에 잠겼던 복주머니란에 석양빛이 들어올 때까지 홀로 오랫동안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숲이 아직은 건강하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그때의 감격이 참 오래가더군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입니다.
야생의 꽃 한 송이에 무에 그리 호들갑을 떨까 의아하겠지만, 복주머니란의 매력을 알면 고개를 끄덕일 만합니다. 우선 화려함이 국내에서 자생하는 그 어떤 야생화에 비해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유난스럽습니다. 나무가 아닌 풀꽃인데도 큰 것은 50cm에 이를 만큼 키가 껑충한 데다 꽃 색도 붉어 초록의 풀밭 사이에 한 송이만 피어 있어도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긋나기로 달리는 3~5개의 타원형 잎도 너비 6~8㎝에 길이가 10~20㎝로 시원스럽습니다. 특히 홍자색 꽃은 곁꽃잎 2개과 입술꽃잎(순판·脣瓣) 1개로 이뤄진 독특한 형태인데, 주머니 또는 항아리 모양의 크기 4~6cm의 입술꽃잎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각기 그 이름이 달라집니다. 우선 학명 중 속명 시프리페디움(Cypripedium)은 ‘비너스’를 의미하는 시프리스(cypris)와 ‘슬리퍼’라는 뜻의 페딜론(pedilon)의 합성어인데, 항아리 모양의 입술꽃잎이 마치 미의 여신 비너스가 신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신발처럼 생겼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영어 이름도 ‘숙녀의 슬리퍼’(Lady´s slipper)로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선조들은 타원형으로 길게 늘어진 입술꽃잎을 보고 굳이 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아하 맞다’ 하고 고개를 끄떡일 만한 다른 이름을 지었습니다. 바로 개불알꽃으로, 일제강점기인 1937년 현대적 식물분류학에 따라 처음 발간된 ‘조선식물향명집’에 올라 있는 명칭입니다. 이외에도 요강꽃, 까치오줌통, 오종개꽃, 작란화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는데, 식물명을 정하는 ‘국가표준식물목록위원회’는 1996년 입술꽃잎의 모양이 전통 복주머니를 닮은 데 착안해 복주머니란으로 통일했습니다. 이에 단번에 식물의 특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옛 이름을 민망하거나 망측하다고 해서 ‘우아한 이름’으로 바꾸는 게 과연 옳은지 생각해볼 일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Where is it?
각종 도감에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 야생에서 자생하는 복주머니란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색이나 모양이 화려하고 예쁜 탓에 보이는 대로 남획당해 자생지가 파괴되고 있다는 뜻인데 결국 2012년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 즉 특별한 보호관리 대상으로 지정됐다. 때문에 다소 거북하긴 해도 만개한 꽃의 특성을 가장 설명하는 개불알꽃이니 요강꽃이니 하는 원래 이름을 복주머니란이라고 바꿔 부른 뒤 ‘복’에 환장한 손을 타는 수난을 겪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옛날, 이름이 예쁘면 저승사자가 일찍 데려간다는 속설이 있어 귀한 집 자손일수록 개똥이니 쇠똥이니 하는 천한 이름을 붙였는데, 일례로 고종 황제도 아기 때는 ‘개똥이’로 불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의미심장하다. 어쨌든 볕이 좋은 5월 중순 태백산과 지리산, 소백산, 보현산 등 한라산을 제외한 전국의 높은 산 중턱쯤에서 만날 수 있다. 그중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강원도 태백의 두문동재~금대봉~분주령~대덕산 코스가 운이 좋으면 그런대로 자연 상태의 복주머니란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생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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