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아! 이제 내 나이도 일흔을 넘어가고 너도 마흔 고개에 다다른다. 네가 태어나던 날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어머니에게 “엄마 아들 낳았어!”라고 보고했더니 전화기 너머로 함박웃음 소리와 함께 “그래 이십 전(前) 자식이고 삼십 전(前) 재물이다. 아들부터 먼저 낳아야지”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어제 들은 것마냥 생생하다. 2.9kg 너를 안고 병원 문을 나설 때 아버지가 되었다는 기쁨과 잘 키워야지 하는 책임감에 온몸이 부르르 떨리기까지 했고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온 세상을 다 얻은 것마냥 의기양양했다.
아들아!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잘 자라주어 아버지로서 고맙다. 지금 건강하게 직장생활하는 것도 고맙고 아들딸 낳아서 잘 키우고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세상살이가 어디 녹녹하기만 하더냐! 희망한다고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없지 않느냐! 너를 키우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하늘에 맡겨왔다. 그런 관점에서 너는 아버지 말을 거역하지 않고 늘 순종했고 그러한 네가 늘 기쁨이었다.
너는 잊어버렸을지 모르지만 너에게 미안한 일이 둘이나 있다. 더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희미해지기 전에 말해두고 싶다. 첫 번째는 네가 여섯 살 때 너를 자전거 앞에 태우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다가 무슨 실수를 한 것인지 나도 모르게 자전거가 곤두박질쳐 나와 함께 뒹굴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우리 둘은 크게 놀랐다. 십년감수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의자고 책상이고 어디든 높은 데를 잘 올라가던 네가 높은 데 오르는 걸 겁내더구나! 아직까지도 그날의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을까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금도 너의 행동을 유심히 본다.
두 번째는 좀 길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전국 사업장을 갖고 있는 공기업에서 간부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이사를 자주 했다. 승진하거나 보직이 바뀌면 이동은 필수적이었다. 가족은 가능하면 함께 살아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에 너희들이 어릴 때는 발령지마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다녔다. 너는 특별한 연고도 없는 인천 부평의 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글씨도 제법 잘 쓰고 똘똘해 여자 담임선생님의 귀여움도 받았다. 엄마는 그게 좋아서 스스로 학교 교실 청소도 해주고 교실 뒷정리도 자주 해줬다.
그런 기쁨도 잠시. 네가 2학년 때 내가 전라남도 여수로 발령이 나서 전학을 가야 했다. 어린 네가 전라도 사투리 쓰는 아이들과 잘 지낼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어울리더구나. 그 뒤 4학년 때는 내가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나서 너는 또 전학을 갔다. 당시 우리 집에 세든 사람이 계약기간이 남아 전셋집을 구해야 했고, 5학년 때 그 집으로 들어가느라 너를 또 전학시켰다. 신학기인 3월 초에 못하고 3월 중순쯤 전학을 시켰는데 문제가 생겼다. 저녁때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네가 울면서 나에게 덤벼(?)들었다.
“아빠 나 전학시키지 마. 엉엉엉~”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담임선생님이 전학 온 학생을 소개하겠다면서 어리둥절해 있는 네게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했다. 너는 앞으로 나가서 “○○학교에서 전학 온 ○○○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라고 소개말을 했다. 그런데 잘 부탁한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당시 국회의원 선거기간이었는데 출마자들이 모두 “잘 부탁합니다” 하면서 선거운동을 하던 시기여서 유행어와 겹친 것이다. 담임선생님이 무슨 생각으로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뭐? 잘 부탁한다고? 너 국회의원 선거 나왔나?” 하고 장난스럽게 농담을 한 것이다. 반 아이들은 빵 터졌고 여기저기서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창피하고 당황해 어찌할 줄 몰랐다고 했다. 네가 울먹이며 전하는 그 말에 나는 가슴이 먹먹해 너를 가슴으로 꼭 껴안았다. 울먹이는 등줄기에 힘을 더 주어 안았다.
“아빠가 미안하다. 다시는 전학 안 시키 마!”
너에게 굳게 약속하고 그 뒤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 나 혼자 짐 보따리를 싸서 내려갔고, 주말에는 언제나 집으로 돌아왔다.
네가 날 감동시킨 일도 많았다. 그중 하나가 네가 의무경찰로 입대해 데모군중을 막았을 때다. 네 말이 데모군중의 외침이 백번 맞는 말이지만 이를 막아야 하는 의무경찰의 임무 사이의 갈등을 말할 때였다.
“이놈의 자식들! 너는 애비 애미도 없냐! 어째서 우리를 막느냐!”
그렇게 외치면서 절박한 심정의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덤벼들었지만 너는 의경으로서의 의무는 치안질서를 지키고 데모군중을 막는 것이기에 그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네가 참 믿음직스러웠다. 군인이 총을 들고 싸울 때는 적진의 병사도 죽여야 한다. 사적인 감정이 없을 리 없지만 조국을 위해 명령에 따라 그런 상황을 감내해야 한다.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려는 네 모습이 무척 듬직해 보였다.
아들아, 어느 장소에 있든 본연의 직분을 잊어버리지 말고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또 이제 아들로서의 역할보다 한 가정의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직장에서도 항시 낮은 자세로 임하되 비굴해 보이지 않게, 당당하지만 거만해 보이지 않게 지내야 한다. 날마다 좋은 일이 있을 수는 없다. 내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풍파나 시련은 올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임하면 머지않아 밝은 태양이 다시 뜬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다시 말하지만 너의 가정을 잘 돌보는 것이 부모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이만 총총 줄인다. 2020년 겨울에 아버지가 보낸다.
트레킹의 묘미라면, 정상이나 완주를 목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쉬엄쉬엄 거닐면 그뿐이다. 그렇게 어디든 걸어도 좋아서일까? 전국 방방곡곡 이름 붙은 코스만 수백여 곳. 이 길과 저 길 사이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올여름 떠나기 좋은 테마별 트레킹 코스들을 소개한다.
참고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및 각 지자체 홈페이지
여름에 제격, 탁 트인 해안 트레킹
◇ 변산반도 마실길 (전북 부안군)
물때를 잘 맞춰가야 길이 드러날 정도로 해안과 인접한 코스다. 특히 1코스 조개미 패총길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 해안 야산길과 바닷길을 선택해 걸을 수 있다. 변산해수욕장, 고사포해수욕장, 격포항, 솔섬, 곰소염전 등을 거쳐 변산반도를 크게 도는 총 13개 코스로 구성된다.
[추천코스] 적벽강 노을길 산과 들, 바다를 동시에 감상하면서 갯벌체험이 가능하고 특히 석양이 아름답다. 격포항 주변 각종 해산물 맛집도 즐비함. 7㎞, 2시간 소요, 난이도 ★★☆☆
◇ 금오도 비렁길 (전남 여수시)
남해안에서 보기 힘든 금오도 해안단구 벼랑을 따라 조성된 트레킹 코스다. 길 이름 ‘비렁’은 여수 사투리로 ‘벼랑’을 뜻한다. 함구미 마을 선착장에서 출발해 촛대바위, 매봉전망대, 온금동전망대, 숲구지전망대 등을 둘러보는 총 5개 구간으로 조성돼 있다.
[추천코스] 3코스 함구미에서 배를 타면 곧바로 3코스의 시작인 ‘직포’에 도착한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기암괴석들이 이루는 장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구간. 3.5㎞, 2시간 소요, 난이도 ★★★★★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옛길
◇ 내포문화숲길 (충남 예산군)
이중환의 ‘택리지’ 팔도총론에서 언급된 지역으로, 충청남도 최장거리 트레킹 코스다. 가야산 주변에 남아 있는 불교와 천주교 성지, 백제 부흥 운동이 일어났던 흔적들을 따라 원효깨달음길, 내포천주교순례길 등 4가지 테마의 26개 코스가 마련돼 있다.
[추천코스] 22코스 여사울성지 입구에서 삽교성당까지 내포문화숲길에서 가장 긴 구간. ‘내포천주교순례길’ 중 한 코스로, 그야말로 순례하듯 오래 걷기 좋음. 23.8㎞, 7시간 소요, 난이도 ★★★★☆
◇ 밀양아리랑길 (경남 밀양시)
삼문동 밀양강을 따라 걷는 코스로, 아름다운 풍경은 물론 옛 성곽과 읍성, 봉수대 등을 돌아보며 오랜 역사를 만나게 된다. 밀양관아에서 시작해 영남루, 밀양향교, 추화산성, 충혼탑 등을 지나는 3개 코스로, 경남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밀양시립박물관도 들를 수 있다.
[추천코스] 2코스 밀양향교에서 시작해 밀양시립박물관까지, 밀양의 역사를 가장 함축적으로 느낄 수 있는 구간. 추화산성 주변으로 깔끔한 휴게시설이 마련돼 있음. 4.2㎞, 2시간 소요, 난이도 ★★☆☆☆
거동 불편한 시니어도 OK! 무장애 코스
◇ 가야산 소리길 (경남 합천군)
홍류동 옛길을 복원하고 다듬어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저지대 수평 탐방로다. 홍류동 계곡을 따라 칠성대, 낙화담 등을 두루 살피며 길상암에서 해인사까지 걷는 단일 코스로 남녀노소 누구나 수월하게 탐방 가능하다. 2.1㎞, 1시간 소요, 난이도 ★☆☆☆☆
◇ 주왕산 탐방로 (경북 청송군)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인 주왕산과 더불어 용추협곡, 용추폭포 등 자연경관이 빼어난 길이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환자나 노인, 유모차를 타는 아이 모두 함께할 수 있는 무장애 단일 코스로, 곳곳에 장애인 화장실과 쉼터가 마련돼 있다. 2.2㎞, 3시간 소요, 난이도 ★☆☆☆☆
코로나19 거리 두기에 딱! 인원 한정 예약 구간
◇ DMZ펀치볼둘레길 (강원 양구군)
민통선 북방지역 화채그릇(punch bowl) 모양의 해안분지 내에 조성된 둘레길로, 형상 자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미확인 지뢰지대와 인접해 탐방객의 안전과 산림자원 보호를 위해 예약제로 운영된다. 가이드와 동행해야 하며 탐방 가능 인원은 하루 200명이다(033-481-8565).
◇ 금강소나무숲길 (경북 울진군)
금강소나무숲길을 걸으며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과 천연기념물 서식지를 두루 탐방할 수 있는 코스다. 오지에서의 안전한 트레킹과 산양을 비롯한 멸종위기 동·식물 보호를 위해 숲해설가 동반 없이는 탐방이 불가능하다. 구간별 하루 40명만 예약 후 입장할 수 있다(054-781-7118).
◇ 백두대간트레일 (강원 양구군·인제군·홍천군)
백두대간 트레일 코스 중 아침가리 구간(인제군 기린면~홍천군 내면)은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 및 자연휴식년제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산림생태계 보전을 위해 산불 우려가 있는 봄, 겨울은 탐방이 어렵고 5~10월 중 하루 100명 한정으로 예약 후 이용 가능하다(033-461-4453).
◇ 점봉산 곰배령 탐방로 (강원 인제군)
점봉산 정상의 남동향 곰배령을 중심으로 희귀 야생화 및 산약초, 산채류 등이 다량 서식한다. 이로 인해 곰배령을 찾는 방문객이 많아지자 1987년부터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1일 450명 이내로 입산을 통제, 관리하고 있다(033-463-8166, 산림청 홈페이지 예약).
집 밖을 나서면 걷거나 또는 다양한 교통수단을 통해서 목적지를 향하게 된다. 대중교통이 발달한 요즘은 어디든 가지 못할 곳이 없다. 그리고 여행을 하거나 아주 먼 거리 이동을 할 경우엔 비행기나 기차, 버스는 물론이고 여객선 등의 교통수단이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다준다.
그동안 누가 뭐래도 여행의 맛은 기차였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각 지역의 모습과 계절의 풍경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셀렌 여행길을 기억할 것이다. 이제는 KTX라는 빠른 기차를 이용하면 전국 아무리 먼 지역도 당일 여행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엄청난 시간 단축을 선사한 것이다.
얼마 전 섬 여행을 했을 때는 다섯 가지 이상의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KTX로 두 시간 달려간 도시에서 버스로 한 나절 돌아다녔다. 그리고 여객선을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 조용하고 호젓한 섬 신안의 12사도 순례길을 앞에 두고 걷기 시작했다. 이동수단의 기본인 두 발로 긴 시간 걷는 행위가 사색과 치유의 시간을 준다는 것, 그래서 걷기 열풍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자전거로 돌아보아도 좋다. 근래 들어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하면서‘언택트’(비대면) 이동수단으로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자전거 대여소에서 분홍색 자전거를 빌려 천천히 섬을 돌아보는 재미도 있다.
다시 섬을 나올 때는 여객선을 타고 나와 약 한 시간 정도 요트를 타는 호사를 누렸다. 신안 섬 다도해를 즐기는 요트 투어가 있었다. 요트는 누구나 타기 어려울 거란 생각을 한다. 예전보다 대중화하고 있는 중이어서 가격도 많이 낮아졌기에 한 번 용기를 내볼 만하다. 누구나 즐겨봄직한 다채롭고 재미있는 해양 레포츠다. 우리나라에는 부산, 제주, 여수, 통영, 신안 섬 등 요트 타기 좋은 바다가 많다.
그리고 목포로 나와 역으로 가기 전에 잠깐 해상 케이블카로 도심을 즐겨볼 수 있다. 땅과 바다는 물론이고 하늘 높이 날아보자. 케이블카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목포 시내 전경과 유달산의 속살을 내려다볼 수 있다.
유달산 아래로 명량대첩의 요충지였던 고하도가 용의 모습으로 앉혀져 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서 목포 근대문화 거리와 옥단이 길을 찾아본다. 내리막 끄트머리쯤에 세월호가 누워 있어서 바라보는 마음이 아프다. 틈새 시간을 이용한 도시 구경이다. 짧은 여행 중에 묵묵히 두발로 걷고, 버스, 자전거, 여객선, 요트, 해상 케이블카, 왕복 KTX가 함께했다.
우리에게 탈거리가 이뿐일까. 이보다 훨씬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다. 바다에서 할 수 있는 것 중 보트 타기와 패들보트가 있다. 부모 세대는 그저 바닷가 모래밭에 앉아 구경이나 하는 줄 안다. 물론 패들보트는 강습을 받고 타도 일어나려면 물에 빠져버리기 일쑤다. 아이들처럼 우뚝 서진 못해도 그저 물 위에 엎드려 유유히 손으로 물을 밀어내며 바다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 없이 재미있다. 아이들에게만 어울리는 놀이라는 고정관념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카약을 한 번 타보는 건 어떨지. 연인들이 데이트할 때 보트 위에 둘이 앉아서 유유히 물 위를 나아가는 모습이 먼저 연상될 것이다. 이 또한 누구나 할 수 있다. 서툴게 노를 저어도 바다 위를 즐길 수 있다. 안전교육과 구명조끼, 안전요원까지 있으니 그리 겁낼 일은 아니다.
또는 바다 위를 빠르게 달리는 보트 타기를 경험해보는 것도 신난다. 튀어오르는 바닷물을 맞으며 망망대해를 신나게 달려 바다 동굴이나 기암괴석에 다가가 신비로움을 확인하는 감동을 맛볼 수 있다. 상쾌함에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간다.
또 한 가지, 최근 어딜 가든 각 지자체에서 여행객 유치를 위해 마련한 시설 중 짚라인(짚와이어)이 있다.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듯 출발해서 하늘길을 가르며 바다 위를, 그리고 산 위를 미끄러져 간다. 온 산하의 정경과 다도해의 아름다움이 모두 눈에 들어온다. 산 정상이나 전망대에서도 보이지 않던 풍광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이 땅의 자연이 이리도 아름다웠음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런 액티비티한 즐거움은 하동 금오산, 가평 남이섬, 단양 만천하 스카이워크. 보령 짚트랙, 강릉 아라나비 짚와이어, 정선 짚와이어, 김천 짚와이어와 출렁다리, 군산 선유도 등지에 가면 누릴 수 있다.
익스트림 스포츠가 모험적이란 생각에 지레 겁낼 일은 아니다.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가 필수이고 사용법이나 주의사항만 잘 지키면 문제없다. 미리 몸무게와 키를 재고 동의서 작성과 해당 질환이 있는지 확인한다.
어렵거나 헷갈리는 것 하나 없이 쉽고 신나는 놀이다. 타기 전에 겁을 잔뜩 먹고 긴장하지만 막상 타고 나면 또 하고 싶어 한다. 하늘을 나는 스릴을 만끽하고 이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한 짜릿함을 경험한다. 비행의 두려움도 단숨에 극복하게 된다. 연인들에게는 가성비 최고의 이색 데이트가 될 수 있다.
그 외에도 지역마다 스토리 투어 버스, 스토리 자전거, 하늘 자전거, 숲속 기차가 숲을 달린다.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다. 상공에서 걷는 아찔함을 즐기는 스카이워크, 출렁거림의 묘미를 즐기며 걷는 출렁다리도 지역마다 계속 생겨나고 있다.
굳이 해외까지 갈 필요 없다. 편리한 이동수단과 신나는 탈거리는 의외로 많다. 여행 떠나기 전에 미리 꼼꼼히 확인하고 예약을 하거나 계획을 세우면 더 확실하다. 수고로운 여행이나 동적인 놀이는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라도 마음먹기에 달렸다.
코로나로 인해 모두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좋아하는 멕시코 맥주 코로나가 어쩌다 이렇게 우울한 바이러스로 이름이 붙여졌는지 모를 일이다. 한국에서 수입 맥주 보기 힘들었던 때에도 하이네켄, 버드와이저, 그리고 코로나... 이렇게 수입맥주의 대명사 같던 그런 맥주였는데...
한국 맥주 회사가 만드는 짙은 갈색 맥주병이 아니라 투명한 병에 노란색 빛깔의 맥주.. 지금은 동네 편의점에서도 팔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호텔 바나 전문 클럽에서나 팔던 수입맥주 코로나. 레몬을 잘라서 병 입구에 멋들어지게 꽂아 주던 그 코로나 맥주, 그 브랜드 이름이 지금은 전 세계의 공포와 원흉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사실 코로나 맥주는 멕시코의 대표적 국가 브랜드다. 라임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멕시코 사람들은 레몬 대신 라임 한 조각을 병 입구에 꽂아 쏙 집어넣고 마신다. 미국에서도 멕시코 원조를 따라 코로나에 라임을 넣어 마시는 것이 일반화됐다.
라임을 병 안으로 쏙 집어넣으면 맥주의 노란 빛깔에 연두색 라임이 보글보글 빠지며 라임의 맛이 더해져 시큼하고 알싸해진다. 미국에 있을 때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는 태평양 바닷가 앞 카페에서 코로나 맥주를 마시곤 했다. 바닷가에서 마시는 코로나 맥주 맛은 언제나 진리이다. 코로나 맥주 한 잔이면 '바로 여기가 파라다이스'라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릴렉스 된다. 한마디로 매혹적인 맥주임이 틀림없다. .
코로나 정국으로 인해 한국 사회가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이다. 일을 하기 위해 나가는 것 이외에 영화 관람이나 콘서트, 전시회 등의 문화생활도 참고 있다. 아니 공연이 다 취소돼서 딱히 갈 공연들도 없다.
문화생활만 참고 있는 것이 아니다. 봄꽃을 보러 야외로 바람을 쐬러 가는 것도 뚝 끊었다. 지난해 벚꽃 만개했을 때 부산이나 광양, 여수, 순천, 보성 등 한국 전역을 돌아다니던 그때 사진을 구글 포토앨범에서 불러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어딘가 돌아다니다 괜스레 민폐 끼치면 안 되니 말이다. 지인을 만나 맥주 한 잔, 와인 한 잔을 하는 것도 서로 부담스럽다. 이 시국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자며 카톡으로 정(?)을 나누고 부대끼는 중이다.
잠깐 참고 집순이(?)로 당분간 살아야지 결심하며 실천하고 있지만 어떨 때는 갑자기 '욱'하고 그분이 올라오신다. 오늘 저녁 같은 경우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늘은 차츰 땅거미가 내려앉고 사람들은 지하철로 버스로 분주히 오간다.
갑자기 이 황금 같은 금요일에 어딘가 갈 수 있는 형편이 안된다는 사실이 갑자기 온몸으로 체감됐다. 서서히 그 분, '욱'이 올라오셨다. 아무래도 뭔가 스트레스를 풀어줘야 할 것 같다. 집 앞 도미노 피자에서 피자 한 판을 주문하고 편의점에서 4캔에 만원인 수입맥주를 골랐다. 하이네켄, 호가든, 블루문과 스텔라 아르투아 4캔. 평소 즐겨 마시던 코로나에는 손도 가지 않았다. 자, 오늘은 피맥이다.
왁자지껄한 펍의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피자 한 판, 깔아놓고 수입 맥주 골라 마시니 그럭저럭 집순이로 살아온 몇 주간의 스트레스가 조금 날아가는 것 같다. 근 한 달을 이런 생활을 하고 있다. 코로나 맥주병을 들고 가볍게 병목을 부딪히며 지인들과 건배를 나눴던 그 시간들이 갑자기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역시 사회적 동물인가? 은근 외톨이가 좋다고... 나에게 집중하겠다고 두문불출하던 내가... 타의에 의해, 사회적 환경에 의해 나가 돌아다니기가 꺼려지는 분위기가 되니 갑자기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정말 청개구리다.
멕시코의 대표 맥주 코로나 이야기를 꺼낸 김에 멕시코 사람들이 많이 마시는 미칠라다(Michelada) 이야기도 좀 해야겠다. 흔히 멕시코의 맥주 칵테일이라고 하지만 요즘은 맥주에 이것저것 섞기보다는 맥주를 따라 마시는 컵 입구에 소금과 라임을 무치고 칠리 파우더까지 묻혀서 차가운 맥주를 부어 마시면 이를 다 미칠라다라고 부른다. 마치 데킬라나 보드카 마실 때 소금과 커피를 컵 입구에 묻혀 마시는 것과 같다.
멕시코 시티로 출장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바에서 미칠라다를 시켜 마셨다. 칠리 파우더에 소금, 그리고 라임까지 어떨 맛일지 상상은 했지만….OMG!! 맛은 그 이상으로 강렬했다.
'어이쿠, 어떻게 이런 맥주를 마시지?' 멕시코 사람들은 이 맥주를 해장술로 마신단다. 정말 특이하다. 워낙 대중화된 술이라 간편하게 즐기기 위해 미칠라다용 인스턴트 컵까지 상품화됐다. 그 컵을 갖고 다니면서 찬 맥주만 부어 마시면 즉석에서 미칠라다가 된다.
이렇게 미칠라다 컵을 갖고 다니면서 맥주를 부어 마시고 또 마시고... 하루 온종일 맥주를 마시며 산다고 한다. 미칠라다 한 잔을 마셨더니 땀이 흘렀다. 마치 더운 여름날 매운 냉면 먹으면 땀이 흐르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해장을 하기 위해 이 술을 마시나 보다. 멕시코와 우리는 참 비슷한 식성을 가진 나라다.
'사회적 거리 두기' 스트레스로 오늘은 맥주 이야기만으로도 한 꼭지가 완성될 판이다. 정말 갑갑하긴 한 것 같다. 사실 지인들과 편안하고 예쁜 레스토랑을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술 한 잔 하는 소소한 즐거움으로 이 힘든 세상을 버텨 왔는데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요즘의 생활에 모두들 집단 우울증에 걸리겠다고 난리들이다.
집단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방법이 하나 있다. 미국에서 오래 살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비법이다.
집에서 대충 먹는다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과 밥통의 밥 한 그릇 덜어서 그렇게 막 차려먹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먹을 때가 훨씬 더 많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 그 주일을 마감하는 금요일에는 일부러 나만을 위한 요리를 한다. 내가 좋아하는 해물볶음, 연어샐러드, 치즈도 조금 잘라놓는다. 약소하지만 근사한 나만의 만찬이 된다. 그리고 여기에 곁들여지는 와인 한 잔.
내가 좋아하는 영화 한 편 다운받거나 내 지식욕을 충족시켜줄 다큐멘터리 한 편 보면… 금요일 저녁 남부럽지 않은 ‘나와의 데이트’가 어느덧 끝난다. 내 나이 50에 들어서 뒤늦게 알게 된 ‘나와의 데이트’가 의외로 나를 위로한다. 집단 우울증으로 힘든 브라보 멤버들에게 강추!!
여수엑스포역은 관광지 철도역으로는 만점짜리 자리에 있다. 열차에서 내려 역 구내를 빠져나오자마자 엑스포 전시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 왼쪽에서는 쪽빛 바닷물이 넘실댄다. 일정이 바쁜 사람들은 열차 도착 시각에 맞춰 역 앞에 긴 줄로 늘어서 있는 택시를 바로 잡아탄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끌리듯 엑스포 전시장으로 직진한다. 높낮이 없이 평평하게 설계된 전시장 길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걸어도 걸리는 곳이 없다. 시니어들에겐 맞춤 산책길이다. 자기도 모르게 왼쪽에 있는 바다 쪽으로 접근해 걷게 된다.
조금 걷다 보면 왼편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조그만 섬 하나가 눈에 잡힌다. 소문 난 오동도다. 전시장 끝자락에서 이어지는 다리가 있으니 그 섬에 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만만한 섬! 천천히 걸어도 30분가량이면 다 돌 수 있다. 이 섬이 소문난 건 동백꽃 덕분이다. 동백꽃은 한창 피어나는 겨울보다는 지기 시작하는 초봄에 장관을 이룬다. 바닥에 무리를 이뤄 떨어져 있는 빨간 꽃송이와 꽃잎들은 처연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우리 인간들에게도 질 때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라고 충고하는 듯하다! 그 교훈을 실감
나게 체득하려면 동백꽃이 떨어지는 3~4월께 오동도를 다시 찾아야 한다.
실비로 먹는 ‘시골밥상...’ 식당
오동도 구경을 마치고 나올 때쯤이면 뱃속에서 신호가 오게 마련이다. 더욱이 이곳이 맛의 고장 여수임에랴! 오동도 앞에서 돌산으로 가는 해상 케이블카 탑승장 바로 밑에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다.
8000원짜리 여수 가정식 백반을 파는 ‘뚱땡이 할머니의 밥상 시골밥상’ 집은 언제나 손님이 차고 넘쳐 끼니때는 이용이 쉽지 않다. 칠순을 넘긴 뚱땡이 할머니와 마흔도 채 안 돼 아이를 넷이나 출산한 ‘애국자’ 따님이 운영한다. 맞은편 엠블 호텔 투숙객들도 이 식당을 많이 찾는단다.
특별한 반찬은 없지만, 하나하나 간을 잘 맞춘 맛깔스러운 반찬들과 매일 바뀌는 국 종류 때문에 밥 한 그릇을 더 시키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 식사를 끝낸 자리엔 종업원이 큰 통을 들고 가서 남은 ‘아까운’ 반찬들을 모두 담는다. 음식 재활용을 않는다는 걸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좁은 자리가 꽉 차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아 사진도 못 찍고 문전에서 아쉬운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아쉽기는 뚱땡이 할머니와 따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문 앞에 서서 손님을 그냥 보내는 눈빛에 미안함과 아쉬움이 가득하다.
진남관 앞 ‘서울해장국’ 식당
그렇다고 애써 맛집을 다시 찾아야 한다면 여수가 아니지.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진남관. 그 오른쪽 앞과 길 건너편 거리에 여수의 오래된 먹자골목이 있다. 모두 다 소개하고 싶은 맛집들이다. 그중에서도 시민들이 많이 찾는 ‘서울해장국’이 있다.
아니, 맛집 고장 여수에서 엉뚱하게 옥호를 ‘서울~~’로 쓰다니! 그러나 사실 이상할 게 없다. 수십 년 전 여수가 관광지로 채 발돋움하기 전에 개업했으며 그 당시만 해도 서울은 대단한 동경의 대상이었기에. 마치 50, 60년대 서울의 빵집과 양복점 등의 이름으로 뉴욕, 파리, 런던 등을 많이 썼던 것처럼.
이 식당은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영업한다. 바싹 말린 우거지를 장어로 국물 맛 낸 된장국에 넣어 푹 끓여낸 우거지국, 바삭바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는 콩나물국, 두툼한 선지국은 모두 한 그릇에 6500원, 돼지고기를 아낌없이 넣은 김치찌개(8천 원) 등이 하나같이 별미다. 이 식당은 특히 밑반찬에 들이는 정성이 남다르다. 그 때 그 때 구워주는 생김을 찍어 먹게 집간장과 양념간장을 함께 내주고 갓 만들어 내오는 숙주나물, 고추멸치볶음, 계란부침 등도 모두 싱싱하고 맛깔스럽다.
주인 할머니와 따님이 조그만 식당을 무려 종업원 10명가량을 쓰며 운영한다. 김 굽는 직원, 식재료 다듬는 직원, 우거짓국 끓이는 직원, 김치찌개 끓이는 직원 등이 제각각이다. 맛집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불친절은 찾아볼 수 없고 직원들이 손님상을 수시로 체크하며 모자란 반찬은 알아서 채워주는 친절함까지 보인다. 손님들이 저마다 이 식당 칭찬하기에 바쁘다. 팔순이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 선짓국을 들고 계신다. 궁금해서 말을 붙여보았다. “40년 단골이지. 맛도 맛이지만 정성이 들어간 건강식이고 배고프던 시절 추억을 떠올려 더 좋지.” 여러모로 완벽한 맛집인 셈이다.
그 밖에도 복춘식당, 조롱박 등 여수의 별미를 즐길 수 있는 맛집들이 이 일대에 많다. 서대회, 아귀찜, 아귀탕, 생선 내장탕, 돌게장, 삼치회 등이 주메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일대의 많은 아귀찜 식당과는 비교도 안 되게 풍부한 아귀를 넣은 아귀탕이 1만 원. 둘이서 다 먹기 부담스러운 양의 아귀찜도 2만 원 미만이다. 마산 일대가 주산지로 알려진 아귀는 여수에서 더 풍족하게 요리된다. 여수 앞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삼치의 선어회는 여수의 특징적인 음식 중 하나다. 처음 접하면 물컹한 식감에 다소 거부감을 느끼지만 익숙해지면 삼치회만 찾을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구이로 먹는 삼치 머리는 클수록 맛이 좋다.
진남관. 이순신광장. 장군섬
식사를 마치고 여수의 상징인 진남관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는 이순신 광장을 ‘참배’ 할 차례다. 여수를 하루만 둘러봐도 곳곳에 있는 이순신의 흔적을 발견하곤 새삼 놀라게 된다. 심지어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가 거처했던 곳까지 여수에 있고, 거북선을 건조하고 수리하던 ‘선소’도 세 곳이나 있다. 어머니 처소는 보존작업이 마쳐져 관광객들의 발길이 띄엄띄엄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는 그 앞에 새로 이순신 공원 조성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심지어 실재하지 않은 소설 속 인물까지 끄집어내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데 ‘점잖은’ 여수 시민들은 ‘이순신 자원’을 그리 요란하게 활용하지 않는다. 기자도 여수를 몇 번 찾기 전까지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전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부임해 곳곳에 이렇게 많은 흔적을 남긴 줄은 알지 못했다.
이순신 장군은 사후에도 여수민들을 여러모로 ‘살려주고 있는’ 중이다. 거북선 빵집, 이순신 햄버거 등 여수 상가의 옥호 중 이순신과 거북선이 가장 많이 활용된다. 여수민들의 충무공에 대한 애정과 충성도 역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생전에도 사후에도 나라와 국민을 위한 충정이 한없는 불멸의 영웅은 여수에서 그 숨결이 가장 생생하게 느껴진다.
진남관은 2020년 봄까지 보수 일정이 잡혀있어 내부 관람이 금지돼 있다. 광장의 장군 동상 앞에 실물 크기로 지어졌다는 거북선도 기자 일행이 찾았을 때는 수리 중이어서 입장을 할 수 없었다. 관람객이 너무 많아 수시로 보수를 해야 한단다.
진남관 입구와 장군 동상 너머 장군섬에 이르는 곳까지 장군의 위세가 당당하게 뻗쳐져 있는 일대를 보는 것만으로 성웅 충무공에 대한 참배를 대신해야 했다. 참고로 해방 즈음까지는 장군 동상 앞에까지 바닷물이 들어차 있었단다.
종포공원 거쳐 오동도 가는 길
이순신 광장에서 오동도 방향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자산공원이 있는 방향으로 나지막한 언덕길을 거쳐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몇 해 전부터 여수의 포장마차 촌으로 유명해진 종포공원을 거쳐 바다를 끼고 가는 길이다. 우선 종포공원부터 걸어보기로 한다.
이 일대는 여수의 오래된 바닷가 놀이터 중 하나다. 지금은 공원으로 명칭이 붙여져 있지만, 낚시꾼이 모여들고 고기잡이배가 들락날락하던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바로 옆에 새벽마다 경매가 열리고 종일 생선 판매가 이뤄지는 선어 시장이 있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낚시꾼들도 간간이 모습을 보인다.
몇 년 동안 성시를 이루던 포장마차 촌은 인근 하멜기념관 옆으로 옮겨졌다. 정비 차원이었던 모양인데 아직은 포장마차 촌의 모습으로 보기엔 익숙하지 않다. 행정력도 자연스러움에 초점이 맞춰져야 바람직한데...
종포 공원 일대에 펜션 서너 곳이 있고 펜션 부근에 맛집이 꽤 늘어서 있다. 포장마차와는 구분되는 식당들이다. 여수 특산물 중의 하나인 돌문어 식당이 많다. 돌문어삼합, 돌문어라면 등등. 진화한 여수 음식 종류 중 하나는 해산물을 활용한 라면 요리다. 이 돌문어 식당엔 점심때부터 줄이 늘어서 있다. 젊은 층이 많다. 돌문어라면 뿐만 아니라 해물라면, 돌문어삼합 등 새로운 메뉴가 계속 개발되고 있다. 돌문어라면 1만 원, 네 사람이 먹어도 남을 정도의 푸짐한 돌문어삼합은 3만9000원.
기자도 몇 년 전 여수에 와서 라면 요리를 ‘개발’했었다. ‘꼴뚜기 라면’. 시장 아지매한테 1만 원만 주면 한 접시 가득 주는 꼬록(여수에선 꼴뚜기를 꼬록이라고 부른다)을 특별한 레시피 없이 라면과 함께 끓여주면 색다른 국물 맛을 내는 아주 맛깔스러운 라면이 완성된다. 강추!!!
몰포 나비와 나비 반도 여수
자산공원은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공원이다.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걸어 올라가기에 좀 힘이 들기 때문이다. 관광버스들도 코스로 잘 잡지 않는다. 그러나 노인 체력으로도 천천히 걸어 올라갈 만 하다. 아침저녁으로 산이 아름다운 자색으로 물든다 하여 자산으로 이름 붙여진 그 산속 공원엔 여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또 생뚱맞은 이름의 전시관이 하나 있다.
곤충체험관인데 이름하여 ‘빠삐용(나비) 전시관’이란다. 여수에 빠삐용 전시관이라니.. 입구에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 역을 맡았던 미국 배우 ‘스티브 맥퀸’의 사진이 걸려 있다. 여수에 빠삐용? 생각해보고 거듭 생각해 봐도 생뚱맞다!
전시관에 들어가 설명을 들어봤다. 여수시의 전직 공무원 한 분이 현직에 있을 때부터 집념으로 나비를 채집해 개인적으로 만든 전시관이다. 시에 기증해 지금은 시가 운영하고 있다. 수많은 나비 표본 중에서 대표적인 전시물이 저 멀리 중남미 원산의 몰포나비. 푸른 금속성 광택이 나는 아름다운 몰포나비와 그 나비 모양을 빼닮은 여수반도 그림이 나란히 전시돼있다.
아하! 그제야 조금 몰포나비 채집자의 의도가 이해될 듯했다. 그는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폈음 직하다.
“지구 저편에서 몰포나비가 너울너울 날아와 한반도 끝자락에 앉았다. 여수반도다!”
여수의 강남이라는 웅천에서
여수에서는 걷다가 가끔 시내버스도 타볼 만하다. 2층 관광버스도 좋지만 무작정 시내버스를 타고 한가롭게 시내를 돌다 보면 대충 여수 시내의 윤곽이 들어와 다음날 일정에 참고하기에도 좋다.
물어물어 버스 몇 번 갈아타고 여수의 강남이라는 웅천지역으로 갔다. 고급 아파트촌이 있고 인공 해변이 조성돼있으며 입구 상가엔 여수답지 않게 주차난이 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서울 사람들에겐 식상한 풍경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구원은 ‘예울마루’다. 전시회와 음악회를 수시로 여는 이 건물은 여수 산단에서 매출을 많이 올리는 어느 대기업이 외국인 건축가에 설계를 맡겨 지어서 시에 기부한 것이다. 건물 외벽 없이 자연 친화적으로 지어 건축물 문외한이 보기에도 시원하다. 건물 바깥쪽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있는 것도 특이한 모습이다.
예울마루 관람을 마치고 15분가량 옆의 산길을 돌아 걸어가면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짓고 수리했다는 선소가 나온다.
이순신 장군의 또 다른 작품 ‘선소’
이 선소는 여수반도를 에워싼 바다의 ‘골목길’ 맨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적군에게 노출되지 않는 장소를 고른 것이다. 실제로 가까운 웅천 쪽에서도 선소는 보이지 않고 웅천의 바다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촌에서도 이곳이 보이지 않는다. 입지 선택이 탁월했던 셈이다. 그러니 여유롭게 안정적으로 거북선을 짓고 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북선과 수전의 각종 전략 외에도 이순신 장군의 지모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순신 장군은 영국의 넬슨 제독과 함께 세계 해전사에서 최고의 명장으로 기록된다. 러일전쟁을 일본의 승리로 이끈 일본의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순신 장군에게 존경을 표한 것도 거북선 뿐만 아니라 해전 전술, 주민 친화력, 그리고 선소 운영 능력 등을 보았기 때문이다. 충무공께 새삼스러운 존경의 묵례를 보내고 이번엔 선소 길 건너의 그 유명한 보리굴비 식당으로.
명사들이 찾는 여수의 보리굴비 식당 ‘석정’
굴비 하면 영광 굴비, 법성포 굴비다. 그런데 여수에 명사들도 즐겨 찾는 보리굴비 전문식당이 하나 있다. 옛 여천 지역, 여수 시청 부근에 있는 석정 식당이다.
이 식당도 덕장은 법성포에 두고 있다. 법성포에서 굴비를 말려 여수로 가져와 조리한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굴비 정식엔 굴비와 함께 해물 보쌈김치, 여수산 각종 나물 등 17가지의 반찬을 내놓고 직원이 각 테이블을 돌면서 먹기 좋은 크기로 굴비를 찢어 준다. 기름기 잘잘 흐르는 보리굴비 속살, 군침이 돈다. 보리굴비 정식 2만 원. 여수엑스포 준비위원장을 지낸 전 건설교통부 장관 강동석 씨, 지금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윤정희, 백건우 씨 부부 등 명사들이 오래된 단골이란다.
여수에서 11월에 열렸던 세계한상대회 때의 에피소드 한 토막. 대회기간 중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온 참가자들이 각자 이 식당을 찾았다가 우연히 만나는 일이 몇 차례 있었단다. 각국 한인들에게까지 이 식당 소문이 났다는 식당 측의 자화자찬이다.
식당 판매보다는 전국에 보내는 택배 영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선물 포장된 다섯 마리에 택배비 포함하여 6만5,000원, 10마리 세트는 12만5,000원.
구여수와 신여수여수시청이 있는 구 여천지역과 구 여수를 잇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내륙 쪽 버스들이 다니는 길과 바닷가로 이어지는 길이다. 웅천지역을 지나 구 여수로 가는 길목 왼쪽에 한국화약 소유 대지가, 있으며 그 건너편엔 여수반도에서 가장 탁 트인 넓은 바다가 있다. 트레킹 코스로 개발하든지 아니면 대단위 리조트로 개발할 만한데, 웬일인지 방치되고 있다. 띄엄띄엄 바닷가 길을 둘러 가면 구 여수의 전통 항인 국동항이 나온다. 옛 여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국동항엔 항상 낚싯배들이 수백 척 정박해있고 경매장에선 새벽마다 활발하게 경매가 이뤄진다. 바로 앞 경도엔 미래에셋이 경도 리조트 재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경도는 골프장과 함께 여름 한 철 먹거리인 하모(갯장어의 일본말)의 주산지이다. 경도와 고흥 일대의 하모를 최고의 갯장어로 꼽는다. 경도 안엔 하모를 회와 샤부샤부(일본말. 유비끼라고도 함)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있다. 혹자는 일본사람들처럼 갯장어에 기름이 끼는 7월 이후엔 맛이 별로라고도 하고 혹자는 그때의 하모 맛이 일품이라고도 한다. 정답은 없고 각자 취향에 따르면 될 일이다.
자매식당 등 국동항의 맛집들
그러나 여름철이건 겨울철이건 바닷장어 요리를 꾸준히 하는 식당들이 여수에 많다. 특히 국동항 주변엔 갯장어를 통째로 끓여 내놓는 통장어탕 식당이 몇 곳 있다. 그중에서 여수 시민들 사이에서도 소문 난 자매식당을 찾았다.
장어를 잘라서 국 끓이는 게 아니라 통째로 넣어 끓인 후 손님상에 내와서 종업원이 국자로 장어를 으깨서 먹기 좋은 크기로 나눠준다. 된장 국물에 우거지를 넣어 장어 맛과 함께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일반적으로는 토막 낸 장어를 숙주나물을 넣어 함께 끓여 내놓는다. 통장어탕 14000원, 장어 소금구이 2만 원을 받는다.
여수에 가장 많은 식당이 장어탕 식당과 돌게 간장게장 식당이다. 장어탕 식당은 수산시장 안, 시청 주변, 시내 곳곳에 있다. 그중 자매식당이 가장 생명력이 있다는 여수 지인들의 전언이다. 이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내놓는 멍게 젓갈이 또 일품이다. 자꾸 더 달라는 손님이 늘어나 포장 판매를 시작했단다. 한 통(3kg)에 3만 5000 원, 택배비 4000원이란다.
여수의 수산시장
여수에는 수산시장이 몇 곳 있다. 수산시장, 특화시장, 교동시장, 선어시장. 그중 수산시장이 중앙시장 격이다. 몇 년 전에 이 시장에 큰불이 나서 시장이 완전히 전소했었다. 주변의 지원과 상인들의 복구 노력에 힘입어 업그레이드된 새 시장 모습으로 태어났다.
시장 내 수십 곳 되는 활어 판매대에서 펄펄 뛰는 생선을 잡는 활발한 모습은 장관이다. 생선 잡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이 매우 좋다는 어느 보고서에 전폭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물새횟집 아지매. 수십 년간 온 가족이 이 업에 종사해왔단다. 종포공원 옆에 자그마한 건물도 소유하고 있다. 재빠르고 시원시원하게 생선을 잡고, 손님과 흥정도 시원시원하게 하며, 횟감은 그야말로 맛깔스럽게 썰어낸다. 전문가가 따로 없다. 일본 시장 상인들과 일 합을 겨루게 해봤으면 좋겠다. 여기서 회를 떠 가져갈 수도 있으나,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2층 식당으로 올라가 상차림 값으로 한 사람당 4,000원과 매운탕값 5,000원을 주고 식사를 한다. 서울의 가락시장, 노량진 시장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실비다. 생선 산지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세 명이 싱싱한 돔, 갑오징어, 농어, 삼치 등 각종 회를 남길 정도로 푸짐하게 먹고도 6만 원 미만을 냈다.
시내의 실비식당 ‘와사비’
게장 골목 소개는 생략한다. 여수의 전통적인 먹거리 중의 하나인 간장게장 식당들은 이제 시설과 메뉴에서 한 등급 더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신 시내의 횟집 한 군데를 더 소개하고 여수의 맛집 소개를 마친다. 여서동 네거리 근처의 ‘와사비’식당. 옥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름 때문에 최근 곤욕을 치렀단다. 얼마 전부터 보는 시선들이 좀 누그러지더란다.
옥호를 ‘고추냉이’로 바꿀 생각은? 이제 겨우 정착단계인데요... 이 식당은 문 연 지가 몇 해 되지 않았다. 6년 전께 문을 열자마자 여수에서 오래된 횟집들을 제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유는 초간단. 남자 사장이 새벽에 바다에 나가 직접 생선을 잡아 오고 여수 주변에서 구하기 어려운 건 통영 등지로 달려가 구해와서 오후부터 바쁘게 회를 만든다. 혼자서 몇 사람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게 몇 년을 일해 얼굴이 수척해졌을 정도다. 부인은 서비스 메뉴를 개발하고 상차림을 연구하는 한편 수시로 주방에 들어가 남편과 주방 보조 여인을 돕기도 한다. 이들의 노력은 상차림과 회접시에 그대로 반영된다. 이 식당도 갈치회, 삼치회가 일품이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 회 한 접시에 4만 원에서 6만 원이면 세 사람이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맛집 몇 곳을 소개했지만, 여수의 장점은 어느 식당에 가든 다른 지방에 비해 만족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식당마다 자부심이 대단하고 음식에 들이는 정성이 손님들 눈에도 보일 정도다. 전통인지, 요즘의 트렌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특히 엑스포 이후 시설과 함께 식당들의 자세가 확 달라졌다는 평가가 많다. 먹방과 인터넷에서 칭찬은 많이 받고 악평은 덜 받는 곳, 여수가 됐다.
오동도 입구의 일출
여수에서 일출을 보는 장소로는 돌산섬 일대를 많이 꼽는다. 그중에서도 섬 끄트머리의 향일암(向日庵)은 일출로 유명해진 곳이다. 정동진과 함께 일출 사진이 워낙 많이 나돌아다녀 우리는 다른 곳에서 일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여수 현지의 정보로는 요즘 오동도 입구의 일출이 장관이란다.
새벽에 일어나 이틀을 기다렸다. 해는 우리의 애를 태우면서, 햇살만 내려보내 고기잡이배들을 비춰줄 뿐이었다. 붉게 솟아오르는 태양 대신에 빛줄기만 담았다. 일정상 일출 장면 촬영을 포기하고 서울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철수하면서 여수 지인에게 일출 촬영을 간곡히 당부했다. 간곡히 간곡히 거듭 부탁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일출 사진이 메일로 왔다.
쌩큐 오 선생!
쌩큐 여수!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스스로 미욱하게 풀어낸 해답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족한 재주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틀릴 수도 있다. 여러분의 올곧은 지적도 기대한다.
육개장은 ‘오래된’ 전통음식일까? 전통음식이지만 ‘오래된’ 음식은 아니다. 육개장의 역사는 불과 100년 남짓이다. 늘려 잡아도 200년이 되지 않는다.
“육개장은 대구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 다수설이다. 그럴까? 부분적으로는 맞다. “육개장을 외부 공간에서 팔기 시작한 것은, 대구의 식당 혹은 시장통이었다”는 표현이 맞다. 이미 민간에 널리 퍼진 음식이었다. 그 음식이 대구의 시장통 등지에서 처음으로 상업화됐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육개장은 ‘우육(牛肉, 쇠고기)+개장국[狗醬羹, 구장갱, 개고깃국]’이다. ‘우육개장국’이 육개장이 된 것이다. 원래 된장 등을 푼 물에 개고기를 넣고 국을 끓였다. ‘구장갱’ 혹은 ‘구장’, ‘개장’, ‘개장국’이라 불렸다. 그러다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고 마치 개장국처럼 끓였다. 그래서 육개장이라는 게 다수설이다. 개장국 대용품이다. 이 음식이 대구의 시장통으로 나온 것이 바로 지금의 육개장이다.
역사는 100년 남짓
왜 대구일까? 교통 요지였기 때문이다. 일제는 효율적인 한반도 약탈을 위해 경부철도를 건설했다. 만주의 물자를 한반도를 세로로 질러 부산항에 운반해 배로 일본으로 보냈다. 군산, 목포, 여수, 부산이 모두 만주 혹은 한반도의 목재, 쌀, 밀 등을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세운 항구들이다. 대구는 경부철도의 주요 거점 도시다. 철도와 더불어 도시가 커지면서 시장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시장 상인들과 손님들을 위한 식사 공간이 필요해졌다. 식당이나 허름한 천막 아래서 옹기종기 모여 국밥 한 그릇씩을 먹었다.
조선시대에는 역원(驛院) 제도와 주막(酒幕)이 있었다. 역원은 초기부터 있었던 공식 숙박 시설이다. 사용자는 공무원들이다. 조선시대에는 역원 제도를 통해 공무원의 이동을 도왔다.
주막은 사설 기관이다. ‘막(幕)’은 집이 아니다. 주막의 시작은 정식 건물이 아니다. 비바람을 가리려고 천막을 쳤다. 임시, 가설 시설이다. 이곳에서 목을 축일 만큼만 술을 팔았다. 사설, 불법 시설물이다. 조선시대 후기, 숙종시대를 거치며 이들 주막이 슬슬 공식화(?)된다. 공무원들은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역원을 이용한다. 민간 여행자들은 이용할 공간이 없다. 결국, 주막이다. 주막은 조선시대 후기 ‘탈법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합법도 아니고 불법도 아니다. ‘눈감아주는’ 정도의 공간이 확대된다.
역원과 주막에서 개장국을 내놓았다. 유교는, 사람이 여섯 가지 가축을 먹도록 허용했다. 소, 말, 돼지, 개, 양, 닭이다. 소는 금육(禁肉)이다. 농사의 도구라 식육을 엄하게 금했다. 살아 있는 말의 가격은 도축한 말고기 값보다 비쌌다. 말을 도축할 일은 없었다. 교통, 통신의 수단이지 고기로 먹을 일이 아니다. 양은 한반도에서 잘 자라지 않는다. 돼지도 마찬가지. 한반도의 춥고 건조한 기후는, 습하고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는 돼지와 맞지 않는다. 돼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인간과 ‘먹이’를 두고 다툰다. 사람이 먹는 걸 먹는다. 사람이 먹을 것도 귀했던 시절이다. 돼지 키우기는 쉽지 않았다. 개, 닭이 만만했다. 닭은 개체가 적다. 여러 사람이 몰려드는 역원, 주막에서 닭은 어울리지 않는다. 결국, 개다. 개고기, 개장국은 보양식이 아니라 늘 먹는 상식(常食)이었다.
육개장의 전신 개장국
조선시대 후기. 역원과 주막에서 널리 사용했던 개고기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다. 중국 청나라 때문이다. 청나라는 개고기 식용을 피했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개의 지위(?) 때문이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수렵, 기마민족이다. 개는 사냥의 동반자이자 목숨을 지켜주는 동료다. 농경민족의 개와는 지위가 다르다. 인간은 동반자, 동료를 먹지 않는다. 유목, 기마민족의 청나라가 개고기 식용을 피한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청나라를 세운 태조와 개의 인연 때문이다. 청나라(후금)를 세운 이는 누르하치(Nurh achi, 努爾哈赤, 1559~1626)다. 개가 누르하치의 생명을 두 번이나 구해줬다고 전해진다. 청나라의 통치자는 만주족이다. 이들이 개를 먹지 않자 피지배자인 중국 한족들도 따른다. 중국인들이 개고기를 피한 이유다.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 ~1637)을 겪으며 조선은 견디지 못할 치욕과 약탈을 당한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명나라를 그리워하고 ‘오랑캐 청나라’를 증오, 멸시했다.
시간이 흘렀다. 강희제, 건륭제, 옹정제 등 명군들은 청나라를 세계 최강의 나라로 바꿨다. 서양 문물들이 급격히 중국으로 몰려들었다. 청나라의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된다. 사절단으로 중국에 간 조선 사신단은 발전한 중국과 서양의 문물을 중국, 북경에서 본다. 북학파도 생긴다. 명나라에 대한 막연한 호감, 모화사상(慕華思想)이 엷어지고 청나라에 대한 호기심, 흠모가 생긴다.
‘문명 개화된 중국, 청나라’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개고기를 먹는 것은 야만의 짓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개고기를 피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이유원(1814~1888)은 조선시대 말기의 문신이다. 고종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임하필기(林下筆記)’를 남겼다. 그가 듣고, 보고, 기록한 내용은 19세기 후반, 고급 관리의 시각으로 본 조선시대 후기의 사회상이다. ‘임하필기’에 조선시대 후기, 개고기 식용에 대한 재미있는 내용이 실려 있다.
“연경(북경)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을뿐더러 개가 죽으면 땅에 묻어준다. 심상규가 북경에 갔을 때 경일(庚日, 복날)을 맞아 개고기를 삶아 올리도록 하였다. 북경 사람들이 크게 놀라면서 이상히 여기고 팔지 않았다. 심상규가 그릇을 빌려 삶았는데 그 그릇을 모조리 내다 버렸다. (황해도) 장단의 이종성은 잔치에 갔다가 개장국을 보고 먹지 않고 돌아와 말하기를, ‘손님을 접대하는 음식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두 사람이 달랐다.”
두 사람이 등장한다. 심상규와 이종성이다. 심상규는 개고기 식용론자이고, 이종성은 식용 반대론자다. 두 사람 모두 이유원보다는 앞선 시대의 사람이다. 이종성은 심상규보다 더 앞선 시대 사람이다. 그는 개고기가 먹을 음식이 아니라 하고 심상규는 복날에 삶아 올리라 했다. 영조, 정조시대를 지나며 조선시대의 사회는 개고기 식용과 반대가 뒤섞여 있었다. 민간도 마찬가지. 문제는 봉제사(奉祭祀) 접빈객의 음식이다. 제사를 모시거나 손님맞이에 음식은 필수다.
혼례와 제사에도 국수가 필수적이다. 국수는 귀한 음식이었다. “언제 결혼하느냐?” 대신 “언제 국수 먹여주느냐?”라고 묻는 이유다. 일반 인들은 결혼식에나 국수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상(喪)’을 당했을 때는 음식을 미리 준비할 수 없다. 급작스럽게 닥치지만, 손님맞이 음식은 필요하다. 지금도 상가에서 늘 육개장을 만날 수 있는 이유다. 시작은 개장국인데 피하는 이들이 늘어나 어느 날부터인가 육개장으로 바뀐 것이다.
대구 시장통에 등장한 ‘육개장’
‘대구가 육개장의 시작’은 아니다. 조선시대 후기, 민간에서 꾸준히 육개장을 먹었다. 이 음식이 처음 식당에 등장한 것이 ‘대구 육개장’이다.
사족 하나. “왜 육개장은 매운 고춧가루를 많이 쓰고 붉을까?”에 대한 엉터리 대답 둘. 귀신을 쫓기 위해 붉은색 음식을 만들었다! 엉터리다. 상가는 돌아가신 조상을 모셔서 먼 길 떠나기 전에 대접하는 자리다. 붉은색으로 귀신을 쫓는다? ‘벽사(辟邪)’의 붉은색이다? 도대체 상가에서 혼령을 모시자는 건가, 아니면 혼령을 쫓자는 건가?
또 하나 엉터리. “대구는 분지라서 춥다. 그래서 매운 고춧가루를 많이 쓴다?” 틀린 말이다. 대구보다 추운 지방은 훨씬 많다. 남쪽치고는 추운 편이지만 서울 이북보다는 춥지 않다. 분지? 대구만 분지도 아니다. 다른 지역에도 추운 분지 많다.
육개장의 붉은 고춧가루는 개장국의 영향이다. 개장국은 누린내가 심해 매운맛으로 감춘다. 향신료 사용량도 많다. 개장국이 육개장으로 발전하면서 고춧가루, 붉은색을 본뜬 것이다.
황광해 맛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경향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년간의 기자생활 동안 회삿돈으로 ‘공밥’을 엄청 많이 먹었다. 한때는 매년 전국을 한 바퀴씩 돌았고 2008년부터 음식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KBS2 ‘생생정보통’, MBC ‘찾아라! 맛있는 TV’, 채널A ‘먹거리 X파일’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한국 맛집 579’, ‘줄서는 맛집’, ‘오래된 맛집’ 등이 있다.
트레킹과 맛집 순례가 대세다, 방송과 각종 매체들이 국내는 물론 산티아고 순례길 등 해외 코스까지 샅샅이 소개하고 있다. 과장되고 억지스런 스토리가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경쟁적으로 취재에 나섰으니 뭔가 성과를 보여줘야겠고, 그러다 보니 무리한 소개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시니어 세대를 위한 길과 맛 소개는 소홀하다. 시청률이나 구매력 면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시니어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동년기자들을 통해 편하게 걸으면서 그 지역의 특별한 맛도 즐길 수 있는 ‘Road & Food’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탐라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오 솔레 미오’
제주의 풍광은 역시 항상 ‘정답’이다. 더욱이 지금은 가을철임에랴.
먹거리 취재만 아니라면 오늘은 햇빛을 받으며 해안길 따라 하염없이 걷고 싶다. ‘오 솔레 미오(O Sole Mio)’라도 멋들어지게 부르면서. 그러나 우선 먹거리 취재부터 해야 한다. 하긴 걸으려면 뱃속을 채우는 게 우선이기도 하겠다.
먹방 프로그램에 많이 소개됐다는 우진해장국(제주시 서사로 11)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사진기자가 9시에 식당에 가서 대기번호표를 받았다. 대기시간은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1만9000원의 고사리해장국이 별미다. 그러나 소중한 아침 시간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각자가 선택할 사항이겠다.
모슬포에 사는 친지의 권유로 사계리 해안을 돌기로 했다. 그의 제안에 따라 오늘은 숙소가 있는 곳에 차를 놔두고 버스를 이용했다. 버스를 타고 아주 멀리까지 갔다(꽤 빙빙 돈다). 같은 제주 섬인데도 북쪽 제주시 해안과 느낌이 확연히 다른 남서쪽 해안의 풍광이 보인다. 제주에 올 때마다 이런 느낌이 계속 드는 건 아마도 도시화 진척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교통량도, 바닷가 풍경도 차이가 난다. 실제로 가파도 선착장 근처에서는 몇 명의 해녀가 바닷속으로 들어가 소라, 전복 등을 캐고 있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자연산!
“이거 모두 3만 원에 사서 듭소!”
해녀 한 분이 권하는 대로 꽤 많은 양의 소라를 사서 먹기로 했다. 해녀가 근처 탈의실에 가서 초고추장을 가져오더니 그 자리에서 소라를 까서 바닷물에 씻어준다. 오도독오도독 씹히는 식감과 함께 상큼하게 올라오는 바다 맛이 별미다. 이번 제주 취재 여행의 먹거리 중 으뜸!
간식은 간식이고 점심은 또 해야겠기에 일대에서 밀면 맛있다고 소문난 산방식당(서귀포시 대정읍 하모이삼로 62)을 찾았다. 부산에서 많이 먹는 밀면은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냉면이 그리울 때 메밀 대신 밀로 만들어 먹은 음식이다. 이 식당은 밀면 맛도 좋지만 돼지 수육이 별미로 꼽힌단다. 특이하게도 제육을 찍어먹는 양념으로 고추장을 내온다. 새우젓과 된장을 찾으니 단호하게 없단다.
점심식사 후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추사 김정호 유배지를 돌아보고 서귀포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이중섭 기념관도 찾았다.
9년간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한 조선의 대표적 문장가이자 서예가인 추사는 유배지에서도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구석구석 그의 흔적을 느껴본다. 유배 중에 그린 ‘세한도(歲寒圖)’의 발문에는 “날씨가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알 수 있다”는 공자의 글이 들어 있다.
이중섭이 전쟁통에 헤어진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그린 그림들도 감상했다. 제주여행 중 이들의 흔적을 살펴보며 한 번쯤 깊은 사색에 잠기는 것도 좋겠다.
수월봉 - 자구내 포구길은 걷기 좋은 올레길 코스로 많이 소개됐다. 이 길을 걸으며 전망 좋은 카페를 만났다. 1시간여 계속된 취재를 잠시 쉬면서 넋을 잃고 차귀도와 바다를 감상했다.
친지의 차를 얻어 타고 제주시 쪽으로 향했다. 신창-용수 해안도로를 타고 올라가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며 내려준 곳. 월령 선인장마을에는 바닷속에 일렬로 박혀 있는 수십 대의 풍력발전기가 있다.
일몰과 함께 찍은 사진이 대박!!! 해가 질 때 꼭 이곳을 찾아 석양과 ‘바람개비’를 감상해보기를 권한다.
“황 기자, 저쪽으로 좀 더 가서 찍어보지!”
“더 가면 바닷속인데요. 후훗!”
풍력발전기 풍광 사진이 너무 탐나서 동료기자를 바다에 밀어 넣을 뻔했다. 저녁에는 대정읍 하모항구로에 위치한 덕승식당을 찾았다. 우럭매운탕이 일품. 국물이 칼칼하면서도 특이한 맛이다.
몸국 한 사발에 담긴 제주의 맛
몸국은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에 해초인 모자반과 돼지고기를 넣어 끓인 국이다. 취재기자들은 몸국을 제주 이외 지역에선 먹어보지 못했다. 제주의 특별 음식 중 하나인 ‘김희선제주몸국’(제주시 어영길 19)이 소문이 자자하다기에 찾아갔다.
식당은 자그마했다. 6000원짜리 몸국, 1만 원짜리 성게미역국에 대한 평가점수를 모두 후하게 줬다. 김희선제주몸국은 다른 식당보다 몸(모자반의 제주도 사투리)을 풍성하게 쓰고 약간 매콤하게 맛을 냈으며 성게의 양도 풍부하고 싱싱했다. 한마디로 둘 다 진국이었다. 이 집 몸국은 전국으로 소문이 나서 서울에서도 택배 신청을 한단다.
맛있게 아침을 먹고 자동차로 5·16도로를 달려 서귀포로 넘어갔다. 5·16도로는 한라산을 관통하는 제주도의 남북 연결 도로 중 가장 경관이 좋다. 특히 서귀포에 거의 다다르면 도로 양쪽의 우거진 나무들이 만든 숲 터널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그재그로 굴곡이 심해 상업용 차량 이용률은 높지 않다고 한다.
올레길에서 가장 인기 높다는 7코스의 바다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가 있다. 바로 외돌개. 중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어 이 길을 걸으면 행인들 속에서 중국말이 자주 들려온다. 해안 중간에 위치한 널찍한 바위 좌우에서 스카프를 휘날리며 사진을 찍는 여인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외돌개 바위 좌측에는 호수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천연 바다수영장이 있다.
여름이 되면 이곳에서 스노클링을 한단다. 스노클링을? 다시 보니 최적의 장소다. 해변에 붙어 있고 앞으로는 큰 바위들이 막아주고 있어 안전할뿐더러 아늑하기까지 하다.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그물을 쳐놓고 하는 스노클링보다 규모 면에서는 작지만 안전성은 높다. 어린이 스노클링 장소로도 제격이겠다. 제주에 자주 오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장소란다.
점심식사 장소로 택한 식당은 시내 의 오분자기 뚝배기의 원조격 식당. 그러나 이번 제주 맛 취재를 위해 방문한 곳 중 가장 실망스러운 식당이었다. 죽은 미리 끓여놨는지 시키자마자 곧바로 나왔고 뚝배기 맛은 겉돌았다. 그런데도 가격은 높았다. 점심시간이 한창인데도 손님이 많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저녁때는 더 맛 좋은 흑돼지 구이 식당을 찾기 위해 기자들이 각자 흩어졌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의견을 취합해본 결과 흑돼지 구이 맛은 대동소이! 다시 한 번 제주의 흑돼지고기 맛은 대부분 괜찮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전날 흑돼지 안주로 과음들을 한 탓일까. 갈칫국으로 해장을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부둣가에 있는 물항식당(제주시 임항로 37-4)을 찾아갔다. 수산물은 역시 부둣가 식당이 최고다. 재료가 신선하고 양도 푸짐하다. 전복뚝배기 1만5000원, 갈칫국 1만3000원, 갈치구이백반 1만3000원, 성게국 1만3000원. 아침식사비로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맛이 훌륭했다.
내친김에 자리물회와 한치물회 맛까지 보려 했으나 제철이 아니란다. 돌이켜보니 이번에는 제주에 와서 회다운 회를 먹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취재를 마치고 물항식당에서 저녁식사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도시에는 대표 빵집이 있게 마련이다. 전주의 풍년제과, 여수의 거북선빵집 등이 잘 알려진 빵집이다. 제주에는 보리빵을 파는 신촌덕인당(본점, 제주시 조천읍 신북로 36)이 있다. 매장에는 대기하는 손님을 위한 테이블이 딱 하나만 놓여 있다. 순수한 보리빵과 팥보리빵, 통팥보리빵 등을 판매한다. 건강한 빵이라는 느낌이 든다.
함덕해수욕장은 제주에서 보기 드문 고운 모래의 넓은 백사장이 조성돼 있다. 왼쪽은 해변에서 10여m 나갈 때까지 바닷물이 허리 정도의 깊이밖에 안 돼 가족 놀이터로 제격이다. 제주 시내에서 가까워 이용객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따듯한 남쪽 나라’라고 하지만 겨울은 그 어느 곳에서나 역시 겨울입니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고 몸은 자연스레 움츠러듭니다. 거센 바닷바람이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불더니, 어느 순간 다시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종잡을 수 없게 춤을 춥니다.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아 삼다도(三多島)라 불렸다던 말이 생각납니다. 검푸른 바다와 거무튀튀한 현무암 갯바위, 모래밭 뒤로 펼쳐진 풀밭이 깡마른 갈색으로 바뀐 지 오래. 모래밭에 촘촘히 뿌리를 내린 채 가늘고 긴 이파리를 무성하게 올렸던 통보리사초 더미도, 좌로 우로 비스듬히 줄기를 뻗은 순비기나무도 푸른빛을 잃었습니다. 푸르던 하늘에도 어느새 시커먼 구름이 들어와 반쯤 자리를 차지하니, 겨울 제주의 바닷가 풍경이 일순 을씨년스럽습니다.
황량한 바닷가 풍경에 모처럼 제주를 찾은 길손이 여수(旅愁)에 빠져들려는 순간 달덩이처럼 둥근 꽃송이가 방긋 웃으며 인사를 합니다. 미국에 ‘상하(常夏)의 낙원’ 하와이가 있듯 한국에는 사시사철 꽃이 피는 제주도가 있으니 힘을 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주도 바닷가에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한겨울에도 많지는 않지만 찾아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여전히 꽃잎을 활짝 열고 있는 야생화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황금색 국화인 갯국을 비롯해 철 지난 해국과 감국, 수선화,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갯쑥부쟁이 등등. 물론 각종 도감은 갯국 등의 개화 시기를 11월까지로 소개하고 있어, 실제와 차이가 있습니다.
누군가 말했듯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12월. 산방산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탁 트인 바닷가에서 갯쑥부쟁이의 환한 꽃 무더기를 만난 것은 각별했습니다. 모든 것이 사위어가는 한겨울 세찬 바닷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꽃 피운 모습이 ‘이 땅의 장한 여인’들을 똑 닮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모진 시집살이와 가난, 굴곡진 근현대사의 풍파를 이겨낸 며느리와 아내, 어머니의 모습이 갯쑥부쟁이 둥근 꽃다발에 투영된 걸 보았습니다. 그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고 훗날을 기약하는 모습이 정말 비슷합니다. 흔히 들국화라 부르는 가을꽃 가운데 하나인 갯쑥부쟁이. 쑥부쟁이와 개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눈개쑥부쟁이, 가는쑥부쟁이 등과 마찬가지로 국화과 식물의 하나인데, 주로 바닷가에서 자라는 쑥부쟁이라는 뜻에서 갯쑥부쟁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높이는 30~100㎝로 자라며, 8월부터 11월 사이 원줄기와 가지 끝에 지름 3~5㎝의 동그란 꽃이 하나씩 달립니다. 꽃은 가운데 노란색의 대롱꽃과 대롱꽃을 둘러싼 혀 모양의 자주색 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Where is it?
제주도는 물론 남해안과 동해안 등 전국 바닷가에서 자란다. 일본·대만·만주·중국 등에도 널리 분포한다. 제주도에서는 동서남북 가릴 것 없이 빙 둘러 바닷가에 자생하는데, 일부 도감은 키가 다소 작고 바닥에 기듯이 자라는 것을 섬갯쑥부쟁이로 구분한다. 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은 제주도 남부에서 자라며 붉은색을 띤, 줄기가 가지를 많이 치고 억세고 나무처럼 딱딱해지는 것을 왕갯쑥부쟁이로 분류한다. 여러해살이풀로 꽃도 지름 5~7㎝로 다소 크다. 제주도 바닷가에 자생하는 쑥부쟁이의 경우 갯쑥부쟁이로 부르고 있다. 야생화 동호인들이 제주도에서 많이 찾는 갯쑥부쟁이 자생지는 성산일출봉이 바라다보이는 섭지코지와 광치기 해변, 산방산 앞 사계포구 해변, 그리고 마라도 등지다.
지난해 담갔던 김치가 똑 떨어가는 요즘, 이제 서서히 김장 준비에 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김치는 배추와 무, 고춧가루 등 재료에 따라, 만드는 이의 손맛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지만
날씨도 맛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올해 김장 날짜 잡으실 때는 기온도 꼭 살펴보세요!
올해 김장은 언제 해야 좋을까?
일반적으로 김장하기 좋은 시기는 일 평균 기온이 4℃ 이하이고, 일 최저기온이 0℃ 이하로 유지될 때로 본다. 기온이 높으면 김치가 빨리 익고, 기온이 너무 낮으면 배추와 야채가 얼어 제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153웨더’에 따르면 올해 김장 적정 시기는 대체로 예년보다 늦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각 지역별 김장 적정 시기를 알아보자.
◇ 수도권 ◇
서울 11월 30일 / 수원 11월 30일 / 인천 12월 1일
◇ 강원권 ◇
춘천 11월 21일 / 강릉 12월 7일
◇ 충청권 ◇
청주 12월 1일 / 서산 12월 2일 / 대전 12월 3일
◇ 영남권 ◇
안동 11월 29일 / 대구 12월 8일 / 울산 12월 15일 / 부산 12월 31일
◇ 호남권 ◇
전주 12월 5일 / 광주 12월 8일 / 목포 12월 17일 / 여수 12월 25일
하루 동안 여수를 알차게 여행하고 싶다면, 오동도를 중심으로 한 해양공원 일대를 둘러보길 권한다. 동백숲이 그윽한 오동도와 스릴 넘치는 해상케이블카, 항구 정취가 가득한 종포해양공원, 여수 밤바다를 즐길 수 있는 빅오쇼와 낭만포차 등을 두루 경험할 수 있다. 걷는 내내 여수의 비췻빛 바다가 펼쳐지는 이 코스를 소개한다.
걷기 코스
여수엑스포역▶ 여수엑스포박람회장▶ 여수엑스포해양공원▶ 아쿠아플라넷 여수▶ 오동도▶ 해상케이블카(지산공원- 돌산공원 왕복)▶ 하멜등대▶ 종포해양공원▶ 이순신광장▶ 여수수산시장▶ 차량 이동▶ 여수엑스포역
여수 여행의 관문 여수엑스포해양공원
여수엑스포역을 나오면 길 건너 맞은편에 여수세계박람회장이 있다. 박람회장 주 통로인 디지털갤러리를 통과해 박람회장으로 입장한다. 디지털갤러리는 터널형 둥근 천장에 초대형 LED 스크린을 설치한 공간이다. 거대한 범고래와 해양 생물들이 스크린 속 바다를 유유히 헤엄쳐 다닌다. 갤러리를 지나면 여수엑스포해양공원으로 이어진다. 우주선처럼 생긴 은빛 초대형 전시관들이 둘러섰다. 2012년 박람회가 끝난 뒤 일부 전시관만 운영 중이다. 대형 나무인형 ‘연안이’가 반기는 한국주제관에서는 상설 전시가 이뤄진다. 엑스포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빅오쇼, 아쿠아플라넷 여수, 스카이타워는 건재하다. 이 시설물 옆에 스카이플라이, 범퍼카, 카트레이싱 같은 레저 시설을 추가해 엑스포해양공원으로 재개장한 것이다.
여수의 자랑인 빅오(Big-O)는 높이 47m의 커다란 O형 조형물이다. 빅오 둘레에 분수 노즐을 설치해 워터스크린을 만들고, 홀로그램과 레이저를 쏘아 3차원 입체 영상을 선보인다. 레이저 외에 화염, 분수, 안개 등 다양한 보조장치가 총동원돼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빅오 근처 좌석에서는 화염의 열기와 분수와 안개의 물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마치 4D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이다. 빅오 안에 여수 소녀 ‘하나’가 등장해 오염되고 파괴된 바다를 되살리자는 원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쿠아리스트의 환상적인 수중 공연
빅오 옆에 있는 원통형 스카이타워는 폐시멘트 저장고를 재활용해 만든 전망대다. 높이 60여m에 달하는 전망대에 오르면 엑스포해양공원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외벽에 설치된, 세계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파이프오르간도 특별한 볼거리다. 여수엑스포역에 열차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1일 5회 뱃고동 음색을 내며 연주한다. 낮에는 볼품이 없으나 밤에는 무지갯빛 조명을 밝히고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내며 환상적인 자태를 뽐낸다.
빅오쇼 앞을 지나 그늘막 아래로 걷다 보면 아쿠아플라넷 여수에 도착한다. 이곳의 360° 돔 수조와 초대형 메인 수조 안에 약 280여 종, 3000여 마리의 해양 생물이 살고 있다. 물고기 떼가 돔 수조를 오가며 관람객 머리 위를 지나 발밑으로 사라지는 풍경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아쿠아플라넷 여수의 관람 포인트는 각종 공연을 챙겨보는 것이다. 메인 수조에서 펼쳐지는 수중발레와 탭댄스, 마술, 물고기의 식사시간이 매우 흥미롭다. 식탐 많은 가오리들이 아쿠아리스트를 에워싸고 작은 입으로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스릴만점 여수해상케이블카와 사랑의 섬 오동도
아쿠아플라넷 여수에서 10분 남짓 걸으면 오동도 입구가 나온다. 오동잎을 닮았다는 오동도는 육지와 약 768m의 방파제로 연결돼 있다. 방파제를 걷거나 동백열차를 타고 갈 수 있다. 오동도에는 동백나무 약 3000여 그루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화살 재료로 사용했다는 시누대를 비롯해 약 194종의 희귀 수목이 산다.
길 양옆에 늘어선 동백나무들이 서로 가지를 뻗어 천연 터널을 이뤘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오동도 정상의 등대 전망대와 해안절벽 속 용굴을 들르게 된다. 여수 사람들은 오동도를 ‘사랑의 섬’이라 부른다. 연인들이 데이트 장소로 즐겨 찾기 때문이라고.
오동도에 많이 피는 동백꽃은 ‘그대를 누구보다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을 지녔다. 사랑 고백하려면 왠지 오동도에 와야 할 것 같다. 오동도에서 나와 여수 여행 필수 코스가 된 해상케이블카에 탑승하기로 한다. 오동도 입구에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지산공원 케이블카 탑승장에 오른다. 케이블카는 바닥이 강화유리로 된 크리스털 캐빈과 일반 캐빈 두 종류가 있다. 성인 왕복 기준 7000원 차이가 나는데 날이 좋다면 크리스털 캐빈을 추천한다. 바닥이 투명해서 거북선대교와 하멜등대, 종포해양공원이 발밑으로 지나갈 때면 오금이 저린다. 탑승시간은 편도 13분이다. 돌산공원에 도착해 여수의 푸른 바다와 해안을 만끽하고 지산공원으로 되돌아온다.
여수와 하멜의 인연
지산공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터널 안으로 진입한다. 터널을 통과해 하멜등대가 있는 종포마을로 향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10분 정도 걸으면 하멜등대에 도착한다. 항구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곳을 여수 사람들은 ‘쫑포’라 부른다. 종포에 하멜등대가 있는 이유는 1653년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제주에서 표류하다가 14년 동안 억류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들은 제주도, 강진, 여수에서 부역하다가 1666년 여수에서 탈출에 성공, 일본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멜이 조선에 억류됐던 생활을 기록한 보고서가 바로 ‘하멜표류기’다. 이 보고서는 조선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이다. 이런 인연으로 하멜 일행이 부역했던 장소가 종포와 가까워 하멜전시관을 짓고, 전시관 앞 등대는 하멜등대라 이름 붙였다.
종포마을에서 이순신광장까지는 해양공원으로 연결돼 있다. 해안산책로 길이는 700m 정도 된다. 낚시하는 사람,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등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걷는다.
미항 여수의 맛과 멋
해질녘이면 이 길에 낭만포차들이 모여들고, 거리공연이 펼쳐진다. 낭만포차는 저녁 7시부터 동시에 영업을 시작한다. 대표 메뉴는 삼합이다. 전복, 낙지, 새우, 주꾸미 등의 해산물과 채소를 고추장 양념에 볶아 먹는다. 수많은 이가 바닷가 낭만포차에서 삼합에 ‘여수밤바다’ 소주를 마시며 낭만을 만끽한다.
낭만포차거리에서 조금 더 걸으면 이순신광장이 나온다. 광장의 랜드마크인 이순신동상과 거북선이 마주보고 서 있다. 이순신동상 뒤로는 여수 유일의 국보이자 이순신 장군 유적지인 진남관이 있는데 2020년까지 보수 공사를 한단다. 광장 옆으로는 좌수영음식문화거리가 이어진다. 돌게장, 꽃게장, 서대회 등 여수 향토음식을 파는 식당이 많다. 흔한 백반을 주문해도 한 상 가득 차려진다. 미식가라면 여름 제철을 맞은 하모회와 하모샤브샤브를 먹어줘야 한다.
좌수영음식문화거리와 이웃한 수산시장은 여수 대표 시장이다. 여객선터미널과 이웃해 오가는 인파로 분주하다. 건어물 상점가를 지나면 활어회센터와 돌게장, 갓김치를 파는 상점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여수를 떠나기 전, 이곳에서 싱싱한 활어회도 맛보고 장도 보면 좋겠다. 갓김치와 게장은 매장에서 택배로 부쳐주니 두 손 가볍게 귀가할 수 있다.
주변 명소 & 맛집
고향민속식당
여수에 오면 한 끼는 돌게장백반을 먹는다. 세계엑스포박람회장 정문 근처에 있는 고향민속식당은 여수 도착 후나 출발 전에 들러 식사하기 좋다. 주민들이 추천하는 곳이라 믿음이 간다. 돌게장백반을 주문하면 밑반찬이 한 상 가득이다. 간장게장, 양념게장
두 종류가 나와 골고루 맛볼 수 있다. 짜지 않은 간장게장은 밥도둑이 따로 없다. 게장은 1회 리필해준다. 여수시 동문로 129, 평일 08:00~21:30 주말 08:00~22:00.
여수동백빵
여수 특산물인 동백을 소재로 만든 빵이다. 모든 빵은 저당, 무방부제로 만든다. 동백꽃 모양의 빵은 예뻐서 먹기 아깝다. 동백화과자, 동백만주, 동백양갱 등의 메뉴가 있으며 세트를 구성해 선물상자에 담아 팔기도 한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포슬포슬한 대두앙금에 찹쌀피를 얇게 두른 동백화과자다. 여수시 중앙로 66-1, 10:00~21:00.
중앙게장백반
이순신광장 옆 좌수영음식문화거리 입구에 있는 게장백반집이다. 돌게장, 꽃게장 모두 파는데, 꽃게장이 단연 인기라고 한다. 돌게는 크기가 작아 살이 적은 게 흠이다. 이 식당의 꽃게장은 살이 꽉 찬 큰 꽃게를 사용해 흡족하다. 주방에서 꽃게 다리를 먹기 편하게 손질해준다. 게 육수로 끓인 된장찌개도 별미이고, 막걸리 식초를 넣어 요리한 서대회무침도 맛깔나다. 여수시 중앙로 72-30, 평일 07:30~22:00 주말 07:30~20:00.
걷기 Tip
여수시티투어 야경코스
여수 야경을 편하게 구경하고 싶다면 야경시티투어버스를 강력 추천한다. 야경시티투어버스는 매일 밤 운행한다. 1967년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중화학공업단지인 국가산업단지 야경과 오동도 야간분수, 거북선대교와 돌산대교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투어가 끝나면 낭만포차가 있는 종포해양공원 앞에 내려준다. 소요시간은 약 두 시간. 여수엑스포역 맞은편 도롯가에서 탑승한다. 탑승시간 19:30 요금 어른 9000원, 예약 홈페이지에 예약, 잔여석이 있으면 현장 매표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