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행하느냐에 대해서는 사람 수만큼 다양한 정의와 이유가 있지만 아마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일상에 묻혀버린 꿈과 환상을 충전하기 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른이 된다는 건 시시해지는 것”이라고 일갈했듯이, 인생은 예술작품이 아니고 영원히 계속될 수도 없다.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꿈이 있어야 할 자리에 후회가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하고, 이럴 땐 다시 한 번 꿈을 충전하기 위해 무언가라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어떤 여행도 열정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여행이야말로 진정 젊음을 충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
아프리카와 인도 대륙 사이의 바다, 인도양에 유유히 떠 있는 섬 마다가스카르는 실제로 가본 사람이 많지 않지만 그 이름만은 의외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이곳이 바로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바브나무와 보아뱀의 고장이며,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여행은 비행기에 오르면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목적한 나라의 비행기를 타는 경우 여행 기분은 배가된다. 마다가스카르항공은 프랑스 것이라더니 모든 안내방송이 프랑스어가 먼저 나온다. 그다음이 영어, 그다음이 말라가시어(마다가스카르 공용어) 순이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여행의 인상은 바로 승무원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사이에 위치해 있는 마다가스카르에는 18개에 이르는 다양한 부족이 살고 있고, 외모 또한 아시아인에서 아프리카인까지 다양하다. 그 이유는 역사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 2000년 전 인도네시아인들이 배를 타고 건너와 살기 시작한 뒤 아랍의 상인들과 아프리카의 노예, 유럽의 제국주의가 밀려온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마다가스카르는 80%의 국민이 농사를 짓는 농업 국가로, 국토의 많은 부분이 논이며, 우리처럼 하루 세끼 쌀밥을 먹는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하루 세끼 흰쌀밥을 먹는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하게 다가오면서 왠지 마음이 푸근해졌다.
바오바브나무의 고향, 모론다바!
바오바브나무를 보기 위해서는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쪽 끝에 있는 모론다바라는 도시로 가야 한다. 모론다바로 가는 비행기는 19인승 프로펠러 비행기로, 손님의 숫자에 따라 제멋대로 항공시간을 변경해버리기도 해서 고객을 당황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탑승수속 땐 짐의 무게뿐만 아니라 승객의 몸무게도 잰다. 비행기가 워낙 작아 무게를 초과하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오지를 가든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천천히, 천천히”와 “문제없다”는 말이다. 마다가스카르어(말라가시어)로는 “모라모라”, “짜마니노나”라 한다. 황당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이들은 “모라모라”, “짜마니노나” 하며 활짝 웃는다. 오지 여행에서는 아무리 서둘러봤자 소용없다. 어차피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되니 느긋한 마음을 먹는 편이 낫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마다가스카르의 최대 볼거리로 꼽히는 바오바브나무 군락지와 칭기국립공원의 입구 역할을 하는 모론다바는 ‘긴 해안’이라는 뜻으로 바닷가에 면해 있다. 수도 안타나나리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살갗을 태울 듯 작열하는 태양 아래 사람도 개도 늘어져 있는 이곳에서는 휴양 모드의 유럽 여행자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동네 소녀들은 그늘에 앉아 머리를 땋으며 놀기도 하고, 소년들은 타는 듯한 태양 볕에도 아랑곳없이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천 년의 지혜가 들려주는 말들
해안가를 벗어나 바오바브 애비뉴로 들어서자 마치 영화의 예고편처럼 드문드문 바오바브나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침내 눈앞에 짠하고 나타난 바오바브나무 군락지! 그것은 목이 꺾어질 듯 올려다봐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고도 장대했다. 1년에 고작 3mm씩 자라는 나무가 저만큼의 크기가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걸까. 정말이지 바오바브나무 하나만 보고 간다 해도 마다가스카르 여행은 충분할 것 같다.
바오바브나무는 세계적으로 8종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마다가스카르와 아프리카에 7종이 흩어져 있으며 나머지 1종은 호주에 있다.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바브나무는 다른 바오바브나무와의 비교를 불허한다. 속이 뻥 뚫릴 만큼 하늘을 향해 길쭉길쭉 늘씬늘씬 시원하게 뻗어 있다.
감탄사가 터지는 순간을 많이 만나는 일, 그것이 바로 행복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소혹성 B612를 온통 엉망으로 만드는 무서운 식물이 있다”며 바오바브나무를 안 좋게(?) 묘사하고 있지만, 난 천 년이나 되었다는 신비한 바오바브나무를 보면서 식물이야말로 신의 안장을 충실하게 드러내는 생명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바오바브나무를 바라보며 한없이 걷고 또 걷는데 저 멀리 보이는 바오바브나무에 뭔가 자그마한 것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벌레라기엔 좀 크다 싶은 그것을 가까이 가서 보니 한 아이였다. 아이는 바오바브나무와 인간을 대조해서 보여주려는 듯 나무에 딱 붙어 서 있었다. 그 장면은 내게 영원히 잊지 못할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천 년이나 된 바오바브나무와 대조되는 작은 인간의 모습. 마치 “문명국가에서 온 너희들이 좀 산다고 오만해봤자 천 년 된 바오바브나무 앞에선 모두 다 ‘고작 요만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또 내게 나무처럼 살라고 말하는 듯했다. 현실이라는 대지에 굳건히 발을 딛고서도, 끝없이 천상을 향해 뻗어 나가라고….
러브 바오바브와 성스러운 바오바브
두 번째 날엔 바오바브 애버뉴를 조금 벗어나 독특한 바오바브나무들을 찾아갔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러브 바오바브(love baobab)’와 ‘성스러운 바오바브(holy baobab)’다. ‘러브 바오바브’는 다른 바오바브나무와 달리 두 개의 줄기가 엉켜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신혼여행객이나 연인이 많이 찾아와 사랑을 맹세한다고.
‘신성한 바오바브’는 성황당처럼 마을 입구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데, 주변에 울타리가 쳐져 있고 마을 주민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다. 동네 주민들은 이 나무를 몹시 영험하게 여겨 아침저녁으로 이곳에 가 소원을 빈다.
그렇게 러브 바오바브와 성스런 바오바브를 거쳐 이윽고 다시 돌아온 ‘바오바브 애비뉴’. 역시 마다가스카르는 바오바브나무 하나만 실컷 봐도 그만인 곳이었다.
마다가스카르에 온 지 며칠 안 되었지만 그래도 묘사할 게 몇 개 있었던 것 같다. 온종일 먹어도 좋을 것 같은 끝내주는 바게트 맛이라든지 수도 안타나나리보 재래시장의 생동감 넘치는 삶의 모습, 칭기국립공원의 찌를 듯한 암석들까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숙소를 향해 달리는 길. 군락에서 떨어져 혼자임을 즐기는 바오바브나무들이 양손을 펼쳐 바이바이를 한다. 하나하나 작별을 고하며 바오바브나무들에 이름을 붙여본다.
발레리나 바오바브나무, 고독한 바오바브나무, 체조하는 바오바브나무….
천 개의 느낌표가 가슴에 와 박힌다.
travel tip
★찾아가기인천에서 방콕까지 타이항공(5시간소요), 방콕- 마다가스카르까지는 마다가스카르 항공(9시간 소요).
★기본여행정보한달간 무비자국가로 오랫동안 프랑스식민지였던 관계로 현재까지도 불어가 널리 통용되며 마다가스카르어(말라가시어)가 공용어다. 화폐단위는 아리아리(Ariary)로, 1000원=2000아리아리 정도. 커피와 사탕수수, 쌀이 주농작물이다.
★지도 & 추천여행루트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시내관광, 재래시장, 유적지를 본후 국내선으로 모른다바로 이동해서 바오밥 군락지, 그랑칭기국립공원을 보는 것이 핵심코스.
★준비물오프로드에 가까운 비포장도로를 장시간 달리므로 앉아있기 편안한 차림을 하는게 좋으며, 오지마을을 지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필이나 공책, 천으로 된 가방, 의류, 풍선, 사탕 등 준비해가면 현지인들을 위한 소중한 나눔이 될 수 있다.
★여행경비350만원 내외
필자는 어릴 때 한옥에서 오래 살았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대문 앞에 있던 한 그루 대추나무 때문에 대추나무집이라 불렸던 아현동 집과 반듯한 서까래가 아름다웠던 돈암동 집 등 한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은 늘 넘친다.
오늘은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북촌 탐방을 하기로 한 날이다. 하늘이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차분한 날씨. 이런 날은 여행이나 산책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약속 장소인 안국역 3번 출구로 갔다.
필자는 약속을 참 잘 지키는 사람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첫 번째로 도착했는데 약속 시간이 2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데 필자 앞에서 외국인 여자 한 사람이 큰 지도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끙끙대고 있어서 서툰 영어이지만 방향 정도는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 자연스럽게 "can I help you?"라고 말을 걸었다.
여자는 매우 기뻐하며 동대문 마켓을 가려 한다고 했다. ‘역시 한국에 여행 왔으면 동대문시장은 가봐야지’ 하는 마음에 미소가 일었다. 교통편보다는 걸어가고 싶다 해서 방향을 알려주며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더니 두바이에서 왔다고 한다. 필자는 여자 혼자 그 먼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찾아준 것이 고마운 생각이 들어 우리나라를 방문해줘서 감사하다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오늘따라 영어가 술술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필자의 영어 실력은 기초 회화를 할 정도임). 그녀는 옥토퍼스(octopus) 푸드를 먹었는데 무척 스파이시(spicy)했다는 말을 했는데 아마도 매운 낙지볶음을 먹었나보다 했다. 그래서 필자는 추천하고 싶은 다양한 한식이 있다며 몇 가지 알려주었다.
그녀는 한국이 참 아름답다며 가방을 뒤적여 봉지를 꺼내더니 다 식은 국화빵을 두 개 필자에게 건넸다. 그 마음이 예뻐서 한 개를 집어 들었다. 감사하다며 떠나는 그녀를 보며 필자로 인해 우리나라가 친절한 나라로 인식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약속 시간이 되자 문화해설사와 일행 8명이 도착해서 북촌 탐방이 시작되었다. 필자는 돈암동에서 30여 년을 살았기 때문에 북촌을 잘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북촌에 8경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북촌 한옥마을은 청계천과 종각의 북쪽, 그중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한옥마을을 말하는데 옛날에 이곳은 왕가 사람들이나 권문세가, 양반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오늘은 문화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1경에서 8경까지 탐방을 하기로 했다.
1경은 창덕궁 담이 바라다보이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담 옆을 끼고 왼쪽으로 가면 북촌 문화센터가 있다. 이 집은 조선시대에 재무관을 지낸 양반집을 창덕궁 연경당을 모델로 복원해 사람들에게 북촌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 문화유산 우수상’을 받은 곳이라 한다. 관람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사랑방도 개방해놓았고 정자에도 앉아볼 수 있게 해놓았다. 우리 일행도 툇마루에 앉아 인증사진을 찍었다.
2경은 원서동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 가옥에서 시작되었다. 참으로 아담하고 예쁜 정취가 느껴지는 한옥이었다. 그러나 한때 친일파였다는 일로 폐가가 되었다가 다시 복원되어 사람들에게 개방되었고 서화전도 열리고 있다 한다. 이곳에는 ‘세한삼우(歲寒三友)’라는 세 명의 친구의 글, 그림, 서화가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세한삼우란 각자의 분야에서 민족계몽과 근대화를 이끈 춘곡 고희동, 육당 최남선, 위창 오세창 세 분을 말한다.
“그래도 마지막엔 부부밖에 없어!”
나이 들어가면서 친구들에게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올해 69세가 되었다. 70대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니 예전과 또 다른 느낌이 든다. 나름으로는 신세대처럼 살아왔다고 여겼으나 전반적 생활을 되돌아볼 때 가부장적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중 하나가 아내에 대해 이렇다 할 만한 선물을 하지 못한 점이다. 돈을 아껴서가 아니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란 생각이 든다. 가난한 시골에서 자라 생일 같은 기쁜 날에도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고 다른 가족에게 선물해본 적도 없다. 설날이 되면 옷가지나 양말 등 설빔을 부모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 전부다. 그러한 삶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내에게 이렇다 할 선물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고 그것이 버릇이 되어 아내도 아예 그러려니 하며 살아왔다.
얼마 전 지인 한 사람이 자그마한 기념품 하나를 손에 쥐어준다. 포장지를 뜯어 보니 ‘결혼 35주년 산호혼식 기념’이란 글자가 새겨졌다. 부부가 좋은 날 지인들과 기쁨을 나누는 행복한 모습이 떠올라 필자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2년 전쯤 친구들과 칸막이가 되어 있는 서울의 한 한식점에서 저녁을 먹던 중 옆자리에서 들려온 여성 손님들의 수다 내용이 떠오른다.
두 여인이 있다. 두 여인 다 남편을 여의었다. 나이는 비슷한 50대 중반이다. 한 여인은 남편으로부터 많은 재산을 유산으로 받아 돈 많은 과부가 됐다. 다른 여인은 재산은커녕 오히려 남편의 카드 빚까지 짊어졌다. 돈을 많이 남겨준 남편은 생전에 검소하고 알뜰해 낭비하지 않았고 재산을 늘리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렇다 보니 부인에게 추억거리 하나 남겨주지 못했다. 받은 것이라고는 남겨준 재산뿐인 셈이다. 여인은 밤새 생각해봐도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남편 얼굴도 잊힐 듯하다. 지난 세월이 아쉽기만 했다.
다른 여인의 남편은 조금 달랐다. 돈은 잘 벌지 못했으나 필요할 때는 카드 빚을 지고서라도 생활을 즐겼다. 부인을 위해 그럴듯한 이벤트도 해주었고 함께 여행도 즐겼다. 남편이 갑자기 죽은 후 카드 빚을 짊어져야 했지만 함께 여러 가지 추억도 남겨주었다. 여인은 남편과의 즐거웠던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애통해했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준 생일 선물을 보면 남편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자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던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멈추지 않았다.
필자는 과연 어떤 남편으로 남게 될까? 상상해본다. 필자의 아내도 추억거리를 찾지 못할 듯하다. 게다가 재산도 모으지 못했으니 이도 저도 아닐 성싶다. 그냥저냥 세월 흐르는 대로 지낼 수도 있겠지만 너무 덤덤한 삶이 될 것 같다. 생각 날 때, 시간이 될 때 한두 가지 추억들을 만들어감도 좋지 않을까? 세월이 더 가기 전에 부부의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지 싶다. 여느 해보다 심한 한파가 기승을 부린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 따사로운 마음의 온기가 필요하다. 화재 참사로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처지의 마음만 아픈 사람도 주변에 생겨나고 있다.
“있을 때 먹어라~“ 하시며 음식 그릇을 필자 앞으로 내미시던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있을 때 잘해~’라는 가요도 정겨워지니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아내는 1월 초에 친구들과 4박 5일 일정으로 베트남을 여행하고 왔다. 3일 뒤 다시 예전에 살던 동네의 부인들과 10일 여정으로 제주도 올레길 걷기 여행을 떠나 어제 돌아왔다. 여행 가방을 챙겨주는 필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한마디 한다.
“여보~ 이제 눈치가 보이려 하네요.”
“눈꺼풀만큼도 눈치 볼 필요 없어요. 당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세요! 돈 더 필요하지 않아요?”
그동안 남편의 도리를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난해에는 추억거리 만들려고 아내와 중국 태항산을 다녀왔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어떤 남편으로 기억될까?” 한 번쯤 생각해볼 화두다.
해외여행에 익숙지 않은 초보 배낭 여행객들에게 홍콩은 매우 적격한 나라다. 중국 광둥성 남쪽 해안지대에 있는 홍콩은 1997년 영국령에서 반환되어 국적은 중국이지만 특별행정구다. 다른 자본주의 체제가 적용되는 ‘딴 나라’다.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라는 오래된 유행가를 흥얼거리면서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병 고쳐 달라 기원하면 낫게 해줄까? 웡타이신 사원
홍콩의 주룽반도(九龍半島)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도교 사원이 웡타이신(黃大仙)이다. 원래는 중국 광저우(廣州)의 황사에 있었는데 1912년 현재의 장소로 이전해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1956년부터다. ‘웡타이신’은 우리말로 황대선이라는 인물을 뜻한다. 그는 원래 저장성의 한 지방에서 살던 양치기 소년. 15세 때, 정제된 황화수은을 질병 치료 약으로 만들어 인술에 많은 공적을 쌓았다. 그래서 이 사원은 병 치료에 도움을 주는 신앙처로 알려지게 된다. 모습은 여느 사원과 비슷하다. 각자의 소원과 병 치료를 기원하는 제수를 놓고 향초를 피우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사원 안은 눈이 매울 정도로 향내가 진동한다. 특히 사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나무 산통을 이용해 행운의 점(산통점)을 친다. 일을 그르칠 때 쓰는 ‘산통 깨다’라는 표현은 바로 이 ‘산통점’과 관련해서 생겨났다. ‘산통(算筒)’에 대나무를 잘게 잘라 100개 정도를 넣고 산통의 막대가 나올 때까지 흔들고 막대가 나오면, 막대와 같은 번호의 종이와 바꾼다. 점쟁이는 그 내용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점괘가 나와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니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또 이 사원에 들러 꼭 찾아야 할 곳은 뒤쪽의 정원. 황대선이라는 이름이 선명한 정원은 연못과 함께 꾸며져 있어 주변 고층 아파트의 삭막함을 무색케 할 정도로 아름답고 정적이다.
홍콩 영화 속 주인공처럼 침사추이 거리 헤매보기
주룽 지구의 침사추이(尖沙咀)는 홍콩 최대 번화가다. 고층빌딩 숲, 옛 향기가 가득 배인 칙칙하고 좁은 골목들. 오래된 재래시장과 파도처럼 일렁대는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의 물결.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영화 같은 매력이 폴폴 넘쳐나는 곳. 홍콩 누아르 영화 속에서 이미 친근해진 풍경이 반갑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영화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를 모티브로 만든 ‘스타의 거리’다. 2003년에 시작해 1년 뒤인 2004년부터 공개되었다. 너비 4~5m, 길이 440m로, 9개의 붉은 기둥에 홍콩 영화 100년사가 기록되어 있다. 또 영화를 찍고 있는 감독의 조형물, 이소령 동상 등이 눈요기를 시켜주고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길바닥에 새겨진 영화인 명판들. 이연걸, 홍금보, 임청하, 양조위, 오우삼, 서극, 매염방 등 국제적으로 친숙한 홍콩 스타들의 손도장과 사인들이 거리를 장식했다. 이름만 새겨진 배우는 스타 거리가 조성되기 이전에 죽은 사람들이다. 이곳이 유난히 좋은 이유는 주변 바다 풍치가 덧대어져 있기 때문이다. 유람선과 고깃배가 떠다니고 바다 너머로 홍콩섬 금융가의 건물들이 뾰족하게 올라가 있는 주변 풍광이 매력적이다. 이외에도 미술관, 우주박물관, 시계탑, 문화센터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주룽반도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시계탑(높이 44m)은 1910~1978년 중국과 유럽을 오가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역이었던 주룽역 앞에 서 있던 것. 조화롭지 않은 듯 조화를 이루고 있는 침사추이가 매력적이다.
홍콩의 부자 동네, 리펄스 베이
침사추이에서 리펄스 베이(Repulse Bay)로 가려면 일단 홍콩섬으로 들어가야 한다. 페리호와 해저터널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홍콩섬은 홍콩 개항 이후, 상업 및 정치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홍콩섬에서 가장 높은 산, 빅토리아 피크(554m) 고갯길을 넘어서면 차창 밖 모습이 조금씩 달라진다. 빽빽한 건물 대신 초록색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고, 띄엄띄엄 고층 아파트가 그림처럼 들어앉아 있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건축 형태가 자연과 잘 어울리고 있다. 이곳이 바로 리펄스 베이다. 성룡 등 홍콩의 유명 인사들이 주로 사는 부촌이다. 길 끝나는 바닷가 끝에 틴하우(天后) 사원이 있다. 사원 앞에 틴하우 여신이 해탈의 미소를 건네고 있다. 산정이 아니라 바다와 눈높이가 같다. 1865년에 세워진 도교 사원은 독특한 중국 건축 양식을 전하는 지붕의 곡선이나 조각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사원엔 바다의 수호신인 ‘쿤암(Kwun Yum)’과 틴하우를 모시고 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틴하우 여신은 뱃사람들이 복을 빌면 소원을 들어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을 구해준다고 믿었다. 또 건너가면 젊어진다는 장수교와 손으로 문지르면 재물복을 준다는 정재신(正財神) 석상, 만지면 3일 안에 인연을 만들어준다는 인연신이 있다. 특히 인연신 앞에서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떨어질 줄 모른다.
유럽 거리 걷는 건가? 스탠리 마켓과 머레이 하우스
리펄스 베이 해변을 벗어나 찾아갈 곳은 스탠리 마켓(Stanley Market)이다. 스탠리 메인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150여 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장 거리다. 마치 서울의 이태원동과 같은 분위기다. 마켓 거리는 고급 제품을 파는 곳이 아니다. 반면 스탠리 베이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확연히 모습을 달리한다. 아기자기한 유럽식 바와 식당, 숍들이 해변을 따라 이어진다. 세계 음식점들이 즐비하고 외국인도 많이 눈에 띄어 이국적인 풍치가 연출된다. 아기자기한 바와 레스토랑에서는 커피 한 잔, 파스타, 피자 한 조각으로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만(灣)’ 형태의 넓지 않은 바다를 따라가면 머레이 하우스(Murray House)를 만난다. 옛 센트럴에 위치한 1844년대 식민지시대 건축물을 1991년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 40만 개의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을 분해해서 옮긴 후 재조립했다고 한다. 아직도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건물은 딱히 멋은 없지만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식민지시대 건물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현재는 레스토랑과 홍콩해양박물관으로 이용된다. 머레이 하우스 앞 바닷가 쪽의 정자와 옹기종기 매여 있는 조각배의 풍치에 반한 여행객은 그 순간 긴장을 스리슬쩍 내려놓는다.
홍콩 야경 보고 레이저 쇼 보니 기분 최고, 맥주 한잔 어때?
홍콩 여행에서 야경을 빼놓을 수 없다. 야경을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가 여러 곳 있다. 그중 홍콩섬의 빅토리아 피크는 야경 보는 인기 뷰포인트. 홍콩의 가장 높은 전망대로 서울의 남산타워, 63빌딩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산정에서 바라보는 야경도 훌륭하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서야 완벽하게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곳의 명물로 꼽히는 것은 피크 트램. 1888년부터 긴 세월 동안 가파른(373m) 산등성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어느 순간 건물이 거꾸로 서 있는 듯 몽롱해진다. 특히 피크 타워 바로 옆, 사자 정자는 환상적인 야경을 볼 수 있는 명소다. 또 승강기를 타고 타워 꼭대기 층인 스카이 테라스로 올라가면 더 넓게 조망할 수 있다.
야경을 보는 데에도 피크 타임이 있다. 오후 8시부터 약 20분간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s) 레이저 쇼가 펼쳐진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영화 거리와 이어지는 시계탑 근처, 연인의 거리에 마련된 2층 뷰포인트가 명당자리. 바다 건너 홍콩섬의 금융가 건물에서 뿜어대는 광선에 취하는 홍콩의 밤이다. 이런 날, 침사추이 밤거리로 들어가 몽콕 야시장에서 야식을 사먹는 재미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Travel Data
교통편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캐세이패시픽, 타이항공 등에서 매일 인천~홍콩 간 직항편을 운행한다. 2014년부터 제주항공, 진에어와 같은 저가 항공사도 직항편을 운항 중이다. 3시간 30분~3시간 50분 소요.
현지 교통 정보 홍콩 공항에 도착하면 공항고속전철을 타고 20~30분 만에 중심가인 주룽반도와 홍콩섬에 갈 수 있다. 시내를 여행할 때는 배(스타 페리)와 2층 버스, 전차(트램)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된다. 옥토퍼스 카드라고 불리는 교통카드를 이용하면 지하철, 배, 전차, 버스 등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화폐 단위 홍콩 달러(HKD)를 이용해야 한다. 마카오에서는 홍콩 달러를 사용할 수 있으나 거스름돈은 현지 화폐인 파타카(Pataca)로 받을 수 있다. 화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음식과 숙박 정보 홍콩 음식은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완탕이 유명하고 시장통에만 가도 먹을 게 지천이다. 유명 호텔 숙박은 몇십만원대이지만 5만~8만원 선에 이용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주룽반도 쪽이 가격이 저렴하다. 특히 1928년 문을 연 페닌술라 호텔(香港半島酒店)은 세계 10대 호텔 중 하나로 꼽힌다. 또 40여 년의 전통을 지닌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mandarin oriental Hong Kong)은 미슐랭 스타(Michelin Star)를 받은 호텔로 10개의 레스토랑, 스파 및 피트니스 센터를 갖추고 있다. 가격은 70만~80만원대다.
물가 정보 홍콩은 면세가 되는 품목들이 대부분이다. 의류, 가방, 시계 등은 한국보다 다소 저렴하다. 그러나 주류, 담배 등의 품목 몇 가지는 한국보다 가격이 더 높고 세금을 부과한다. 전체를 합치면 홍콩 물가는 서울과 비슷하다.
날씨와 옷차림 정보 홍콩의 12월은 평균 최저기온이 15.9℃, 평균 최고기온이 20.2℃로 우리나라 가을과 비슷하다. 일교차가 작아 낮이나 밤이나 서늘하고 쾌적하다. 가을 옷 위주로 챙기고 머플러 등을 준비하면 된다.
시니어 한 달 여행 포인트 홍콩과 마카오(澳門)는 빼놓을 수 없는 밀접한 여행지다. 홍콩 항에서 뱃길로 40여 분(약 60㎞) 달려가면 마카오다. 또 홍콩과 인접한 도시가 심천이다. 홍콩의 지하철(MTR)이 주룽의 홍함에서 중국 국경인 광둥까지 국철(KCR)로 연장되지만 통과하려면 비자가 필수다. 심천은 경제특구 지역으로 새로 생긴 신흥도시. 건물들도 깨끗하고 홍콩보다 물가도 싸다. 매우 좁은 도시여서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면 된다.
추억이 있어서
언젠가 쓸 것같아서
비싸게 주고 산 물건이라
여러 가지 이유로 메모한장,다양한 기념이 될 만한 물건을 못 버린다.
아니 못버리고 산지 오래다.
정리수납에 대해 배우는 모임에서 정리수납의 달인들이 하시는 말씀이
정리정돈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잘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누군가 더 필요한 분들에게 기증도 하고 나눔도 하는 것 과감히 우리 집에서 내보내는 것
중요하고 선택해야할 활동이다.
책상 위가 아주 정신없는 학생 본인은 아주 지장 없이 잘 쓸수 있다고 하지만
바라보는 입장은 아내이든, 엄마든 간에 답답한 노릇이다.
그것보다 나이가 들어 자녀들이 결혼하여 분가한 경우라도
요즘 정리수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언젠가 방송에서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방송을 하였는데 재활용하거나 판매하여
물건을 현금화 하려는지 모으고 또 모아서 방으로 들어갈 때 자신의 집도 아주 힘들게
드나드는 분을 보고 놀래기도 하고 그 외에 들은 이야기인데요 물건을 쌓아두고 사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것을 치우는데도 며느리들과 아들들이 몇날 며칠 사람 써서
함께 치웠다는 말을 들었다.
필자도 이번에 새삼 집안을 정리정돈 하는 일하다 보니
미혼 유치원교사시절 언젠가 다시 재취업하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메모노트가 몇 권이 나오고 세상에 무슨 교육가서 받은 자료까지 나온다.
또 정리하다보니 아기 키우던 시절 사용하던 기저귀가방 큰 것 안에 장가간 두 아들의
배내저고리까지 나온다.
전문가 들이 정리수납에 대해 전하는 말씀이 시간, 체력,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주 수긍이 가는 부분이 상당하다.
좀 버릴 줄도 아는 태도가 아주 중요하다.
식빵구입하고 나온 반짝이 끈조차 모아둔 것도 나온다.
옷이든 뭔가 자신이 아끼던 물건중 옷이든 추억의 물건이든 쳐다보고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데 신혼여행갈 때 우리 시절에는 명동이나 이대앞에서 맞춰서 입고 신혼여행을
가는데 그 옷을 아직도 못 버리고 있다. 다이어트해서 입을 것 같지도 않은 사이즈에
옷 스타일도 연예인 평상복처럼 평범하다 예사롭지 않은데도 왜 아직도 못버리는지
그건 다시 옷걸이로 다시 걸어두었다.
정리수납 함께 공부하는 모임에서 전체미션으로 옷장, 주방, 냉장고를 정리하라고
과제를 주셔서 정리하여 본 주말시간이었다.
버릴 것을 생각하여 쓰레기봉투와 다시 들어갈 자료 수선이 필요한 것 등 분리하면서
정리수납하다보니 역시 삶이 더 의욕적이 되고 늘 살던 집인데도 애착이 간다.
우울증 치료에도 정리수납이 효과적이라더니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머리어깨무릎발이 다 아프다.
모든 것이 다 있다는 매장에서 다양한 수납도구를 저렴한 가격이 구입해서 해도 도움 되고
평소 택배 오는 박스나 각티슈를 이용하여 상자를 만들어서 정리 수납하니 아주 보람찬
정리의 시간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마구 아무렇게나 꺼내 쓰고 지냈는데 이젠 좀 정리하고 사는 습관을
들여 보려 한다.
언제 누가 열어봐도 으악~~ 할 정도로 살지는 않으려 한다.
정리수납을 하면서 몇 가지 책을 들여다 보니
이런 말이 있다.
버림의 자유를 실천하고
채움을 바르게 채워야하며
나눔은 나눔의 행복을 이야기 하고 있다.
공간의 주인은 사람이다. 사람중심인 공간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깊어가는 10월의 부산은 여러 행사로 풍요로운 문화를 만나 볼 수 있다.
부산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이며 어쩐지 무언가 역동적이고 활발한 기운을 불어넣어 줄 것만 같은 멋진 곳이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에 섞여 자갈치시장의 회 맛도 보고 싶고 영화 국제시장이나 친구에서 장동건 유오성 등 네 친구가 교복 차림으로 비뚜름히 모자를 쓰고 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마구 달리던 그곳도 한번 찾아보고 싶다.
애틋한 이별이 있음 직한 항구도시로, 떠나는 이와 보내는 사람의 눈물이 뱃고동 소리와 함께 어우러질 것 같은 부산은 한 번쯤 배낭을 메고 훌쩍 떠나 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큰 국제행사로 부산국제영화제가 있어 흥겨운 10월에 눈여겨 볼만한 문화제가 있다. 다대포 해변의 바다 미술제이다.
필자가 직접 가보니 확 트인 시원한 넓은 바닷가 전체가 캔버스처럼 작품으로 가득하다.
지난 9월 16일부터 10월 15일까지 다대포해수욕장에 2017 바다 미술제가 열렸다.
바다 미술제는 바다+미술+유희를 주제로 11개국의 41팀이 작품 40점을 전시했다.
예술은 항상 진지하고 어렵기만 한 것일까? 혹은 예술은 유희일까? 라는 질문에 ‘미술이/미술은/미술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명제로 유희적 예술을 뜻하는 ‘아르스 루덴스‘(ars ludens)를 주제로 내걸었다고 한다.
이 용어는 ‘호모 루덴스’에서 착안한 단어로 문화학자 ‘호이징하(johan huizinga)가 인간의 특성 중 하나를 놀이하는 것으로 규정한 부분의 연장선으로 인간이 만드는 예술에도 역시 유희적 속성이 담겨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바다 미술제는 1987년 88올림픽의 프레올림픽 문화행사의 하나로 시작된 문화제이다.
1987년부터 1996년까지 해운대해수욕장과 광안리해수욕장을 주요 개최지로 활용하면서 대중적이고 특색 있는 야외전시를 매년 개최해 왔다.
그 후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부산비엔날레 행사에 통합 개최되었다가 2011년부터는 독자적인 문화브랜드로 성장시키기 위해 홀수 해마다 부산 곳곳의 해수욕장에서 독립적으로 바다 미술제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전시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전시 기간 동안엔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이곳에 종합안내소를 운영한다.
작품 감상을 위해 도슨트도 제공되며 물품보관소도 운영해 편리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철 지난 바닷가는 여름의 눈부신 화려함은 없지만 깨끗한 하늘과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는 넓은 모래사장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그 넓은 모래사장에 재미있기도 하고 심오한 뜻을 담기도 한 작품이 한가득 보인다.
파란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아름다운 해변에 세워진 작품을 돌아보니 여느 미술관 못지않게 훌륭한 화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침 병아리처럼 귀여운 부산 어린이들이 단체로 구경나왔다. 재잘대는 어린이들 옆에서 필자도 어린아이가 된 듯 작품을 보며 행복했다.
10월의 부산에는 풍성한 볼거리 즐길 거리가 있다. 가을에 여행을 떠날 계획이 있다면 부산으로 떠나도 좋을 것 같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보고,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진짜란다.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된다며 부추기기도 한다.
그러나 혼자 하는 여행은 위험하다. 필자도 혼자 잘 다니지만, 한적한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 그래서 혼자 산에 갈 때는 여차하면 방어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지팡이와 지갑에 어느 정도의 현금만 갖고 간다. 여차하면 다 주고 오자는 심산이다.
혼자일 경우 표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밀라노 두오모 성당 광장에 갔을 때 화려한 성당 건물과 사람에게 친숙하게 길들여진 비둘기들을 배경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일단의 흑인들이 오더니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었다. 카메라를 넘겨주려다가 섬뜩한 기분이 들어 사양했다. 근처에서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던 한 현지인이 큰일 날 뻔 했다며 주의를 주었다. 그럴 경우 카메라를 넘겨받은 자는 그대로 카메라를 들고 내빼고 그 자를 잡으려고 쫓아가는 사이에 다른 일당들이 가방을 가로 챈다는 것이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특히 여성은 자기 방어력이 약하고 성폭행의 대상도 될 수 있어 더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여행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데 세상을 상당히 믿는 모양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친절하게 말을 걸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혼자 여행할 때 조심해야 할 것으로 집을 떠나면 일탈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마련이다. 혼자는 외롭다 보니 생면부지의 사람과도 금방 친해진다. 좋은 사람이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밤에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며 걷는 경우 표적이 될 수 있다. 사고를 당하면 국내 같으면 CCTV라도 신세 질 수 있지만, 외국에서는 현지 경찰이 조사한다고 오라 가라 하기만 하고 해결해주기도 어렵다. 술 취한 경우에는 호텔 앞까지 동행자와 같이 가든지 택시로 다녀야 한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 걱정되는 점 중에 무슨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안전사고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 지병으로 인한 돌발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사람의 도움을 급히 필요로 할 경우도 있는데 곁에 사람이 없으면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밤에도 별일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몇 안 되는 안전한 나라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도 그런 줄 알고 착각한다. 미국만 가도 낮에도 승용차 창문을 못 열 정도로 위험한 나라이다. 출장 갈 때 반짝이는 구두에 정장을 하고 가는 것도 여행자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표적이 될 수 있다. 밤에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 외국에 처음 나가는 사람들은 이런 위험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동행자를 구하기는 쉽지 않지만, 알아보면 못 구할 것도 없다. 여행이 취미인 사람들을 평소에 알아두면 좋은 여행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동반자가 이성인 경우 소문도 두렵고 불편하지만, 시니어라면 신사협정을 믿어 볼 나이이다. 적어도 치한에게 당할 염려는 없다.
헐렁한 바지와 감촉 좋은 티셔츠의 편한 차림, 가벼운 가방. 화장기 없이 모자를 눌러쓰고 자동차 열쇠를 챙겼다. 지하로 내려가며 오늘 할 일에 머릿속이 분주해진다. 양평으로 달릴 참이다.
요사이 혼자서 하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연습 삼아 다녀보려고 하니 좀 긴장된다.
양평에 도착해서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양평 성당 근처의 식당에 들렀다. 점심시간이 좀 지나서인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집은 음식이 정갈하고 인심이 후해서 다른 손님들에게 소개해도 다들 좋아했다.
맛도 토속적이고 현지의 싱싱한 채소를 쓰다 보니 음식이 살아있는 느낌이 좋다.
자리를 잡고 둘러보니 계산대 위의 십자고상과 푸른 성지가지 꽂힌 것이 보였다.
가장 토속적인 차돌박이 된장찌개를 시켰다. 9천 원.
그때 허름한 차림의 할아버지가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여주인은 반색하며 달려가 말했다.
“ 아~ 여기는 VIP용 메뉴판을 드려야죠.”
할아버지는 자연스럽게 메뉴를 고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음식은 다른 손님을 제치고 먼저 나왔다. VIP니까. 다른 손님들은 익숙한 듯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나도 그냥 묻혀서 조용히 기다렸다. 아니 돌아가는 분위기를 흥미 있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음식을 먹은 다음 계산대에 돈을 내고 나갔다. 수행원만 없을 뿐 분명 VIP가 분명했다.
나는 그 VIP용 메뉴판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메뉴의 가격은 정상가의 3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그 식당에서는 독거노인이나 경로당 노인에게 2500원을 받고 음식을 주고 있었다. 식당 주인은 손해나지 않는 범위에서 배고픔을 해결하고 배부르게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특별히 다른 메뉴판을 만들어 그들이 미안해하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얼마나 따스한 나눔인가.
계산대 위의 십자고상이 멋지게 보였다. 한 사람의 따듯한 마음이 공동의 선을 만들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명절이 다가온다. 구호품을 앞에 쌓아놓고 불편한 아이들이나 사람들을 엑스트라로 놓고 사진을 찍어 자신의 홍보용으로 쓰는 사람들은 해마다 줄고 줄어 없어졌으면 좋겠다. 봉사하면서 오히려 많이 배우고 감동을 한다고 한다. 함께 감사하는 마음은 인간이 가진 멋진 감정이다. 그래도 과연 주는 사람이 좋은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에게 정말 유익한 나눔인지 늘 생각할 일이다. 자신의 체면은 세우고 받는 사람이 굴욕적인 나눔이야말로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필자는 평소 백팩을 메고 다닌다. 캐주얼 의상이든 정장이든 항상 백팩을 멘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일상적인 패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백팩이 아직 낯선 모양이다. 백팩을 애용하는 이유는 양손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양손이 자유로우면 위기 상황에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어 좋다. 원래는 댄스 하는 날 댄스용 신발과 의상을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백팩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필자의 백팩은 큰 편이라 쇼핑 물건을 담을 때도 편리하다. 백팩은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재질이나 크기도 중요하다. 한때는 어깨에 메는 숄더백을 주로 메고 다녔으나 숄더백은 한쪽에 메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한쪽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007 백’이라 불리는 서류가방도 마찬가지다. 신체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 게다가 내용물을 넣을 공간이 부족하다. 서류가방에 수박을 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백팩은 다르다. 내용물의 형태에 관계없이 담을 수 있어 편리하다.
필자의 백팩은 명품 가방들의 역사를 볼 때 원조 백팩에서 진화된 형태의 디자인이다. 인조 가죽으로 만들었고 윗부분을 끈으로 조인 뒤 뚜껑으로 덮게 되어 있다. 클래식한 분위기를 풍긴다. 시중에 나와 있는 백팩의 디자인을 보면 99%가 지퍼 형태로 되어 있다. 그래야 가방 안의 내용물이 빠져 나오지 않을 거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그러나 상단이 뚜껑으로 되어 있어도 백팩을 뒤집지 않는 한 중력의 작용으로 내용물이 빠져 나올 일은 없다. 지퍼로 되어 있는 가방은 열고 닫을 때 양손을 써야 한다. 한 손으로는 가방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지퍼 고리를 잡고 당겨야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뚜껑으로 디자인된 백팩은 집어넣기도 빼기도 쉽다. 또한 옆쪽으로 지퍼가 달려 있어 아래쪽에 있는 내용물도 쉽게 꺼낼 수 있다.
필자가 메고 다니는 백팩의 단점은 인조 가죽이라 수명이 짧다는 데 있다. 인조 가죽은 늘어나기도 하고 습도 때문에 오래 쓰면 껍질이 벗겨진다. 발트 연안에 있는 라트비아로 여행을 갔을 때 같은 모양의 가죽 백팩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가격을 물어봤더니 100달러를 불렀다. 그러나 가죽 소재가 너무 무거워 결국 사지 않았다. 백팩은 디자인도 실용적이어야 한다. 몸통 바깥쪽으로 사이드포켓이 있어야 좋다. 한쪽에는 물병을 넣어 다니고 한쪽에는 삼단 우산을 넣고 다니면 편리하다. 생수병과 삼단 우산이 들어갈 만큼 깊이도 있어야 한다. 그 외의 잡동사니는 정면의 사이드포켓에 넣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으면 곤란하다. 몸통에 온갖 내용물을 다 넣으면 찾기가 어렵다. 수납공간이 따로 없어 마구 뒤섞여버리는 것이다. 물건이 섞이지 않을까 우려되면 부직포로 된 별도의 작은 가방을 넣어가지고 다닌다. 필자의 백팩은 디자인 면에서는 명품 흉내를 내고 있지만, 실용적인 면에서는 부족한 게 많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해외여행을 갈 때도 같은 백팩을 멘다. 어지간한 필수품은 백팩 안에 다 들어간다. 해외여행 때는 세면도구와 양말, 여벌의 옷가지 정도가 추가될 뿐이다. 한번은 초봄에 서울 근교에 갈 일이 있었는데 날씨가 추웠다. 눈도 왔다. 일행 중 추위를 유난히 타는 사람이 있어 우산도 꺼내주고 장갑도 꺼내줬다. 가볍고 부피도 크지 않아 항상 가지고 다니는 바람막이도 꺼내줬다. 필자는 모자를 꺼내 썼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도 잡아주고 눈발도 견딜 수 있게 해줬다. 사람들은 백팩 안에 없는 게 없다며 놀라워했다. 다만, 견딜 수 있는 무게가 3kg 정도인데 더 무거울 경우 어깨 근육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주의는 들었다.
요즘이 휴가철이긴 한가보다. 꽉 막힌 고속도로를 보니 확실히 느껴진다. ‘다들 어디 가려고 이렇게들 나온 걸까?’ 했지만 우리처럼 여름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일 것이다. 밀리면 밀리는 대로 여행 시작의 들뜬 기분은 필자를 설레게 한다.
참 오랜만에 여름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아이가 어릴 땐 여름, 겨울 꼭 휴가를 갔는데 한동안 휴가 여행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텐트에 물놀이 기구, 밥해 먹을 도구, 식료품을 가득 싣고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정말 즐거웠다. 요즘에야 어딜 가든 잠잘 곳을 예약하고 떠나지만, 예전엔 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서 민박을 하거나 야영지에서 텐트를 쳤다.
우리가 주로 택했던 여행지는 동해안과 설악산이었다. 1년에 두어 번씩 다니다 보니 강원도 인제 원통을 지나서 가는 길이 고향길처럼 익숙하고 정겨웠던 기억이 난다. 오색약수를 지나 한계령으로 올라가는 길은 참으로 아름답기도 하고 즐거운 추억을 많이 남겨준 고마운 코스다. 당시 새로 지어진 한옥 민박집. 수다스러웠지만 훈훈한 인심을 보여줬던 할머니도 생각나고 물레방아 휴게소에서 맛있게 먹었던 점심마저도 그립다. 특히 잊을 수 없는 건 바람불이 계곡에서의 야영이다. 설악산의 세찬 물살이 흐르는 계곡 옆 유료 야영장 ‘바람불이’에서 텐트를 치고 테이블을 펼쳐 파라솔을 꽂으며 자연 속에 동화되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관리소 마룻장 밑에 잔뜩 들어 있던 뱀을 보며 소스라치듯 놀랐던 일, 밤하늘의 쏟아질 듯 가득한 별을 세 식구가 바라보았던 추억이 아직도 아름답게 남아 있으니 여행의 소중함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크면서부터는 사는 일에 바빠 가족 여행이 점점 줄어들다가 언제부터인지 휴가 여행이라는 말을 아예 잊고 살았는데 얼마 전 낚시를 같이 다녀온 시동생 부부가 멋진 펜션을 예약했다고 해서 휴가를 같이 보내게 되었다. 목적지는 안면도로 섬 안 바다와 호수가 마주 보는 장소에 우리가 지낼 펜션이 있었다. 어디나 펜션이 있는 곳은 경관이 뛰어나다. ‘레이크 앤 시’라고 이름 지은 이 펜션은 주인이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풍광이 아주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숙소 선정부터 여행 내내 스케줄을 미리 짜보았다며 시동생이 의기양양하셨다. 점심은 ‘딴뚝’ 이라는 곳에서 간장게장을 먹을 것이며 저녁은 가는 길 홍성의 한우매장에서 고기를 사서 준비하고 다음 날 아침은 그 지방에서 유명하다는 게국지라는 음식과 함께 바닷가에서 회를 먹을 예정이라고 했다. 게국지는 게로 만든 찌개인데 먹기가 좀 불편한 음식이었다. 게살을 발라먹기가 귀찮았지만 국물은 아주 시원한 게 괜찮았다. 이러니 맘먹은 다이어트는 멀리멀리 떠나버렸고 식도락에 빠져 휴가 내내 행복하기만 했다.
특별 이벤트로 시동생이 요즘 취미로 푹 빠지신 색소폰 연주회도 있을 거라고 했다. 펜션 주인과는 구면으로 같이 색소폰을 연주한다고 했다. 펜션 관리실에는 조촐하고 아담한 음악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가끔 연주회도 열린다는데 아름다운 풍경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색소폰 선율이 한여름 밤의 정취를 한껏 높여주었다.
펜션의 잘 가꾼 마당을 지나면 바다 건너편으로 큰 호수가 있고 그곳에 낚시터가 있었다. 사유지로 통해서인지 매우 깨끗하게 관리가 잘되어 있어 특별히 낚시를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였다. 이번엔 아예 읽다가 만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가방에 넣어왔다. 지난번 낚시터에서 다들 낚싯대 찌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통에 낚시를 좋아하지 않는 필자는 경치 감상밖엔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파란 잔디와 잔잔한 호수, 깔끔하고 예쁜 집, 어느 곳에 눈길을 줘도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낚시를 하며 희희낙락 즐거운 식구들을 바라보다가 벤치에 앉아 소설책 한 페이지를 넘기니 마치 동화 나라에 들어온 것처럼 환상적인 기분이었다. 2층 숙소의 삼각 창을 통해 밖의 경치를 내다볼 때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된 기분도 들었다. 유치하긴 하지만 아직 녹슬지 않은 필자의 감성이 기쁘다.
빠듯한 일상을 살다 보면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 휴가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지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일부러 짬을 내서라도 휴식시간을 갖는다면 몸과 마음이 재충전된다. 한동안 잊고 지낸 휴가를 잘 보냈다. 훗날 생각해보면 오늘도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