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마다 짜맞춘 듯 떠오르는 여행지가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는 시원한 바다와 계곡 생각이 절로 나고, 함박눈 내리는 겨울에는 산지 가득 핀 눈꽃 구경이 하고 싶어진다.
지금은 여러 사정으로 당장 어디론가 떠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방구석 피서는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38도를 웃도는 역대급 폭염에 시달리는 시니어를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줄 여행지로 남아메리카의 이구아수 폭포를 선정했다. 근심을 덜어줄 위대한 물줄기에 풍덩 빠져보자.
이구아수는 지역 원주민인 과라니(Guarani) 족 언어로, ‘큰 물’ 또는 ‘위대한 물’이라는 뜻이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국경을 따라 3km 가량 이어져 있으며, 높이는 60~82m에 달해 위대하다는 수식어가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이구아수 폭포는 강수량이 풍부한 아열대 기후대에 자리잡고 있다. 폭포로 흘러 들어오는 물의 양은 초당 1000톤으로 어마어마하다. 압도적인 규모에 감탄한 것일까,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영부인 엘리너 루즈벨트(Eleanor Roosevelt)는 “아, 나이아가라는 어쩌면 좋아!(Poor Niagara)”라는 감상평을 남겼다.
이구아수 강물의 절반은 U자형 폭포 ‘악마의 목구멍(Garganta del Diablo)’으로 쏟아져 내린다. 이구아수 폭포의 하이라이트로도 손꼽히는 이 곳의 이름에 악마가 붙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1분을 바라보면 근심이 사라지지만 30분을 바라보면 영혼을 뺏긴다는 것. 전해 내려오는 하나의 설화에 불과하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물줄기와 피어오르는 물안개, 엄청난 유량을 직접 보고 압도당하지 않을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구아수 폭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까지 총 3개 나라에 걸쳐 있다. 각 나라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 달라, 관광객들은 육로로 국경을 오가며 폭포를 감상한다. 아르헨티나 령 이구아수 국립 공원 내의 ‘뜨레스 프론테라스(Tres Fronteras)’는 3개국 국경이 만나는 곳으로, 분수 쇼와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는 숨겨진 명소다.
이구아수 폭포는 그 웅장함 덕분에 영화 속 배경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문명과 비문명 사이의 대립을 그린 종교 영화 ‘미션(The Mission)’에서 노예 상인과 과라니 원주민들이 돌짐을 지고 걷던 곳이 이구아수 폭포였다. 2008년 개봉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크리스탈 해골왕국’에서도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 바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이구아수 폭포를 보려면 열대우림 생태 기차나 폭포 기차를 타고 숲을 가로질러야 한다. 브라질 방향에서는 환경 보호를 위해 만든 통로를 걸어서 폭포 인근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걷기 힘들거나 폭포를 하늘 위에서 즐기고픈 시니어 관광객들은 헬리콥터를 탄 채로 관광을 즐길 수도 있다. 장엄하고 거대한 물줄기를 직접 만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눅눅한 한여름 더위가 기승이다. 습하고 더운 날씨가 몸을 지치게 하고,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 소식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훌쩍 떠나고 싶어도 쉽지가 않은 요즘, 브라보가 서울 사는 ‘1970년생 영숙’ 씨가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산림휴양지 3곳을 꼽아봤다.
서울시 중구 기준으로 1시간 내외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좋고, 초여름 숲의 싱그러운 경치까지 즐길 수 있어 일석이조다. 잠시 여유를 찾아 역병과 무더위에 지친 마음을 달래줄 ‘산캉스(산+바캉스)’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성인처럼 삼성(三聖)산에서 누리는 푸른빛 힐링, 삼성산산림욕장
삼성산은 안양시 명칭이 유래한 곳이다. 고려가 세워지기 전의 일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금주(지금의 시흥)와 과주(지금의 과천)를 점령하기 위해 삼성산을 지나다 산꼭대기에서 피어오르는 오색구름을 목격했다. 이때 홀연히 나타난 능정이라는 승려가 “이곳에 절을 짓고 안양사라 칭하면 태평성대를 이룬다”고 말했고, 이에 왕건이 절을 세워 안양사라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가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돼 있다. 이때의 안양사는 폐사되고 없다. 하지만 불교에서 극락세계를 뜻하는 ‘안양’이 지명으로 남아있다. 현재의 안양사는 1950년대 후반 유명 건축가 김중업의 설계로 재창건한 사찰이다.
삼성산의 ‘삼성’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윤필대사가 암자를 짓고 수도해 붙여졌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를 뒷받침하듯 삼성산산림욕장에서는 성인이 된 듯 삼성산 일대의 수려한 자연 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근처에 있는 안양예술공원에서 예술작품도 감상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삼성산산림욕장은 안양예술공원 입구에서부터 안양사와 제1·2전망대를 지나는 5km 구간이다. 관악산과 함께 다녀오기 좋은 삼성산은 안양예술공원 주차장 인근의 마애정 옆 작은 샛길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등산을 즐기는 시니어라면 1전망대나 2전망대를 거쳐 삼막사까지, ‘등린이’ 시니어라면 1전망대까지만 오르기를 추천한다. 이번 주말에는 성인처럼 녹음 속에서 마음 수양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하철 타고 떠나는 치유와 힐링의 숲, 계양산산림욕장
계양산산림욕장은 연간 500만 명 이상이 찾는 인천 명소다. 봄에는 튤립꽃 전시를, 가을에는 단풍놀이를 즐길 수 있어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자랑한다.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어 수도권 등산객들도 많이 찾는 계양산의 명소는 둘레길과 장미원이다. 이 외에도 계양산성과 문화회관, 어린이공원, 어린이과학관 같은 다양한 즐길거리가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산림욕장 내에는 계양산 능선을 따라 ‘치유의 숲길’, ‘측백나무길’ ‘하늘길’ ‘우리꽃길’ ‘해맞이길’ 등 계양산 둘레길로 향하는 다양한 산책 코스가 마련돼 있다. 이 중에서 무장애데크길이나 계양산성 탐방로는 걷기가 편하고 난이도가 높지 않아, 연로한 어르신이나 어린 아이들도 함께 이용하기 좋다. 특히 무장애데크길 옆에는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면역력을 강화해 주는 피톤치드를 내뿜는 편백나무가 곳곳에 있어 매력적이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시니어에게 무장애데크길을 추천한다.
계양산 둘레길은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발표한 ‘언택트 여행지 100곳’에 선정된 바 있다. 야외 관광지이면서, 자체 입장객 수를 제한해 거리두기 여행이 가능한 관광지로 인정받았으니 마음 놓고 다녀와도 좋겠다.
한 마리 학처럼 자유로와 한강, 북한까지 관망하는 심학산산림공원
경기도 파주에 있는 심학산은 조선시대 왕이 애지중지하던 학 두 마리가 궁궐을 도망나왔는데, 이 곳에서 찾았다고 해서 ‘학을 찾은 산’, 심학(尋鶴)산으로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학이 좁은 궁궐에서 벗어나 심학산에서 탁 트인 전망을 구경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추측을 부를 정도로 심학산은 멋진 전망으로 유명하다. 산 정상에 올라 감상할 수 있는 서해의 낙조가 일품이다. 이 외에도 파주출판단지와 자유로, 한강 하구, 김포, 관산반도를 바라보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점도 심학산만의 매력이다.
심학산은 다른 산에 비해 높지 않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어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심학산 둘레길 역시 난이도가 높지 않아 무릎이 좋지 않은 시니어도 운동 삼아 걷기에 적당하다. 우거진 숲이 햇빛을 가려주니 무더위를 피하기도 좋다. 심학초교에서 약천사,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의 끝에는 정상전망대가 있다. 날이 좋다면 저 멀리로 북한까지 볼 수 있다. 또 전망이 가장 좋은 낙조전망대도 있다. 멀리 나서지 않고도 빨갛게 저무는 노을을 보며 기분을 전환하고 싶다면 심학산 둘레길을 걸어보자.
뉴노멀의 등장과 함께 결혼문화도 바뀌고 있다. 백년가약이라 불리는 결혼은 인생의 중대한 사건이며, 모두에게 공식적으로 축하받고 사랑을 인증받는 행사다. 코로나19 때문에 시·공간적 제약이 생겼고, 이로 인해 결혼식이 점점 소규모·고급화 추세를 보인다. 다음에서는 뉴노멀 시대에 부상 중인 웨딩 트렌드에 대해 살펴본다.
자녀를 둔 시니어는 결혼 문제 때문에 고심이 깊다. 비혼주의를 선언하고 평생 혼자 살겠다는 자녀와 부딪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리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시니어와, 결혼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뉴노멀인 밀레니얼은 자꾸 어긋날 수밖에 없다. 한편 막상 결혼한다고 해도 문제다. 코로나19로 인해 줄줄이 결혼식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나? 덕분에 결혼식 비용을 줄이고, 그 금액으로 더 좋은 혼수와 예물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고 답례품도 예전보다 더 신경 쓸 수 있게 됐다. 갈수록 소규모와 고급화를 거듭하고 있는 결혼식, 코로나 시대에 자녀의 결혼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
자식과 부모의 동상이몽
코로나19라는 재앙은 결혼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으로 결혼식을 미루는 신랑 신부가 많았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2020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21만4000건으로 2019년 대비 10.7% 감소했다. 특히 30대 후반 남자와 20대 후반 여자에서 가장 많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관계자는 “30대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고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면서 혼인 건수가 줄어드는 추세다. 특히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결혼식이 많이 취소된 것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라고 설명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자료에 따르면 미혼 남녀의 54.5%는 결혼에 대해 미온적이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특히 미혼 남성(42.2%)보다는 여성(66.8%)이 결혼에 대한 의지가 적었다. 실제로 비혼을 남성(11.5%)보다 여성(20.2%)이 더 선호했고, 연령별로는 40대 초반(24.5%)이 비혼을 가장 선호했다. 흥미로운 건 10명 중 3명(29.3%)은 부모 밑에서 월급을 용돈으로 쓰면서 풍족하게 살며 연애만 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권미윤 경인여대 웨딩&이벤트과 교수는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나 노동 환경, 사회경제적 여건 등 다양한 요소가 비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결혼 적령기 자녀를 둔 시니어는 결혼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비교적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하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목매지 않는 자녀 세대와 달리 시니어에게는 결혼이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결혼과 출산을 연동하여 대를 잇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또한 윗세대가 자신들을 위해 그랬듯이 부모로서 결혼을 지원하는 것을 당연한 도리라고 여기는 부모가 많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기혼 남녀와 해당 부모를 대상으로 부모의 결혼 비용 지원에 관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8.0%가 긍정적이었다. 다만 세대별로 차이가 있었다. 부모 세대(84.7%)가 자녀 세대(64.8%)보다 비율이 높았는데, 이는 자녀의 결혼 비용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은퇴한 시니어 김영미(가명) 씨는 “학비와 용돈을 지원했지만 졸업 후엔 일절 지원하지 않았다. 애가 결혼할 때 보니 모아둔 돈이 없었다. 그때 혼수와 집을 구하는 데 조금 보태줬다”라고 밝혔다.
혼수는 투자, 답례는 실용적, 여행은 예약
코로나19 이후 결혼 건수도 줄고, 소규모 결혼식으로 비용도 줄어들었다. 그 덕에 혼수나 답례품에 더 투자할 수 있게 됐다. G마켓에 따르면 결혼 관련 상품 매출을 분석한 결과, 혼수용 가구와 가전의 고객별 평균 구매 단가는 전년 동기 대비 총 22% 증가했다고 밝혔다. 반면 결혼식을 준비하는 스몰 웨딩용품의 구매 단가는 36% 감소했다. G마켓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결혼식 규모를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 1년 이상 이어지면서 결혼식보다 혼수 준비에 예산을 더 투자하려는 경향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결혼식장에서 식사하는 것이 꺼려지면서 답례품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식사를 대신해 떡이나 와인, 홍삼 같은 제품을 하객들에게 답례품으로 제공했으며, 이색 답례품도 등장했다. 손소독제나 핸드워시 등도 코로나 시대의 실용적인 답례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롯데백화점 웨딩센터에 따르면 결혼식 답례품 관련 문의는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롯데백화점의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시시호시’가 지난해 12월 시범적으로 내놓은 웨딩 답례품 400세트는 완판을 기록했다. 시시호시에서는 5만 원 이상의 세트를 선보였다. 건강한 음식으로 장수를 기원하는 ‘국수세트’, 달콤하고 정갈한 시간을 선물하는 ‘디저트세트’, 향기롭고 촉촉하게 즐기는 ‘스파세트’ 등을 선보였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시시호시의 프리미엄 웨딩 답례품은 형식적인 상품과 포장에서 벗어나 정성을 가미한 상품 선정과 고급스러운 포장이 특징이다”라고 말했다.
해외여행 길이 막히면서 신혼여행의 모습도 바뀌었다. 제주도와 울릉도 같은 국내 여행지가 허니문의 중심지로 변했다. 코로나19 종식 이후를 기대하며 미리 신혼여행 예약상품을 판매하는 곳도 생겨났다. CJ온스타일 홈쇼핑에서 소개된 노랑풍선의 유럽 여행 상품은 방송 65분 만에 5만2000명분이 전체 매진됐다. 롯데홈쇼핑이 지난 3월 판매한 필리핀 해난리조트 숙박권은 해외여행자가 격리 해제된 후 1년 안에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이다. 해당 상품은 총 14억 원어치가 판매됐으며, 동일한 조건으로 방송한 베트남 빈펄리조트 숙박권의 주문 금액은 18억 원을 넘어섰다.
최근 정부가 방역 체계를 신뢰할 수 있는 국가와 단체관광을 할 수 있는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 여행안전권역) 체결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해외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트래블 버블이 체결되면 PCR 음성확인서·예방접종증명서 제출, 도착 후 음성 여부 확인을 거치면 별도의 격리 조치 없이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다. 얼마 전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가는 신혼부부가 출국하기도 했다. 지난해 가을 결혼을 하고 하나투어를 통해 몰디브 신혼여행을 예약했다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소한 뒤 이번에 다시 예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결혼의 표준
최근 스몰 웨딩, 럭셔리 웨딩, 노웨딩, 리마인드 웨딩 등 다양한 방식의 웨딩이 등장하고 있다. 개성 강한 젊은 세대는 다양한 곳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진행한다. 예를 들어 둘이서 떠난 섬에서 결혼식을 하거나 남산한옥마을 내의 고택을 빌려 100년 전 혼례 방식에 따라 소규모로 결혼식을 올린다. 권 교수는 “전통적으로 부모가 결혼식의 주체였지만, 이제는 자녀가 주체적으로 결혼식을 진행한다. 다양한 결혼식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며, 밀레니얼이 선호하는 가치 중심적 소비문화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유튜브 라이브로 결혼식을 한 부부도 있다. 이 신혼부부는 지난해 결혼식을 치를 예정이었지만, 일가친척 대부분이 대구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결국 행사를 취소했다. 이 부부를 위해 KT는 해당 예식장에서 유튜브 결혼식을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KT는 신랑과 신부가 양가 친척·지인들과 축하 메시지를 실시간 영상으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양방향 다원 생중계 시스템 등을 지원했다.
웨딩의 규모가 줄면서 한층 더 개인적이고 고급화된 예식도 등장했다. 규모가 작아지면서 호텔에서 럭셔리 웨딩을 진행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데스티네이션 웨딩(Destination Wedding)이다. 데스티네이션 웨딩은 통상적으로 소수의 지인과 함께 해외 휴양지에서 진행하는 웨딩을 말하지만, 현재는 도심에서 벗어나 교외의 한적한 자연에 위치한 리조트에서 소수의 인원을 초대해 즐긴다. 소노호텔&리조트는 ‘데스티네이션 웨딩 스페셜 패키지’를 출시했다. 숙박과 다이닝을 함께 제공하기 때문에 웨딩에 참석한 가족 및 지인은 예식과 휴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제주, 양양, 고성 등 교외에서 천혜의 자연을 감상하는 동시에 가족 및 지인들과 함께 프라이빗한 웨딩을 할 수 있다.
해당 패키지는 ▲양·한식 코스 다이닝(30명 기준)과 ▲호텔&리조트 객실(10실)로 구성되며, 패키지 이용 시 2021년까지 대관료는 무료다. 객실은 신혼부부와 양가 부모님 및 친척용으로 4개가 제공되고, 나머지 6개는 하객용이다. 소노호텔 &리조트 관계자는 “데스티네이션 웨딩은 특별한 지인들을 초대하는 결혼식인 만큼 보통 1인당 10만 원에 달하는 다이닝을 제공한다. 30명 기준 다이닝과 객실을 포함한 총비용은 평균 800만~900만 원 정도다”라고 말했다.
간소화와 럭셔리는 앞으로 표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웨딩업계 관계자는 “향후 스몰 웨딩은 결혼의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고, 매년 약 두 배씩 성장 중인 데스티네이션 웨딩은 현재 대중적인 문화는 아니지만 앞으로 인기 있는 프라이빗 웨딩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한편 자녀 세대는 다양한 결혼식에 대한 부모 세대의 반감을 걱정했다. 미혼 남녀는 다양한 방식의 웨딩에 대해 긍정적이지만, 부모의 반대를 걱정했다. 트렌드모니터의 자료에 따르면 미혼 남녀 10명 중 6명(60.7%)은 스몰 웨딩을 부모 세대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결혼 문화라고 생각했다. 특히 하객이 없는 온라인 결혼식 진행 시 부모님이 반대할 것 같다고 말한 응답자가 61.9%에 달했다. 주영애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부모와 자녀가 선호하는 작은 결혼식이 다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녀는 특색 있는 결혼식을 선호하지만, 부모는 말 그대로 기능적으로 축소된 결혼식을 선호한다”라고 말했다.
7월 1일부터 예방접종 완료자는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모임 인원제한에도 속하지 않는다. 실내나 다중이용시설에서는 예방접종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가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백신을 맞은 시민들은 '이것 만으로도 어디냐'며 반기는 분위기다.
그런데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 국내 지역이 있다. 반면 접종증명서만 있으면 2주 자가격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해외 여행지도 있다. 백신도 맞았겠다, 들뜬 마음으로 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는 백신 맞은 시니어를 위해 관련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다.
제주도, 야외서도 노마스크 안 돼!
대표적인 여름 휴가지인 제주도에서는 아쉽게도 ‘야외 노마스크’가 불가능하다. 7~8월 두 달간 백신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실외와 실내공간에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하루 4만 명이 넘는 불특정 다수가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다음 달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에 따라 수도권에 준하는 기준을 제주에 적용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7월 1일부터 14일까지 2주간 사적모임 인원을 수도권 수준인 6인까지만 허용한다. 직계가족은 8명까지 모일 수 있다.
7명 이상이 모이는 동호회와 동문회, 동창회, 직장 회식, 친구 모임 등 사적모임과 행사는 금지한다. 식당과 카페, 상점 등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할 때에도 7명 이상은 동반 입장과 예약을 할 수 없다. 백신을 접종한지 14일이 지난 접종 완료자는 인원수 제한에서 제외하기, 테이블간 1m 거리두기나 한 칸 띄우기는 지속된다.
5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지역축제와 설명회 같은 행사는 자체적으로 방역계획을 준비해 소관 부서에 사전 신고를 해야만 개최할 수 있다. 집회는 500명 이상 참여가 금지된다.
임태봉 제주도 보건복지여성국장은 “제주는 변이바이러스 감염자 발생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관광지 특성상 강화된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며 “7~8월 두 달만큼은 제주도에서 모두가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트래블 버블 사이판, 격리 없지만 5일간 숙소서 머물러야
반면 접종 완료자는 ‘노 자가격리’ 사이판(미국령 북마리아나제도) 단체여행을 꿈꿀 수 있다. 이르면 다음 달 말부터 사이판 단체여행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단 여행사를 통한 단체여행객만 허용하는데, 여행 기간 방역안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정부가 30일 저녁 사이판과 ‘트래블 버블(여행안전권역)’ 시행 합의문 서명식을 연다고 밝혔다. 트래블 버블은 방역관리에 대한 신뢰가 확보된 국가 간 격리를 면제해 자유로운 여행을 허용하는 제도다. 이번 합의는 방역 신뢰국과 맺는 첫 트래블 버블이다.
여행객은 양국 국적자나 그 외국인 가족으로, 자국 보건당국이 승인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접종을 완료하고 14일이 지난 사람만 가능하다. 양국 보건당국은 화이자와 모더나, 얀센, 아스트라제네카 4종 백신만 인정한다.
여행객은 자국 보건당국에서 발급한 예방접종 증명서와 출발 전 72시간 이내 코로나19 검사 음성확인서를 소지해야 한다. 예방접종증명서는 종이증명서(양국 모두 해당)나 전자 예방접종증명(‘질병관리청 COOV’ 애플리케이션, 한국만 해당)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자가격리를 면제 받는 대신 사이판 입국 절차는 다소 까다로워졌다. 현지 도착 당일에 한 번 더 진단 검사를 받아야 한다. 지정된 호텔 객실 내에서 대기하다가 음성확인이 돼야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첫 5일 동안은 지정 숙소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다만 격리 숙소 부대시설과 지정구역 내에 있는 해변, 쇼핑몰, 골프장은 이용할 수 있다. 입국 5일째 되는 날 다시 코로나19 검사 후 음성 판정을 받으면, 6일째부터 지정 숙소와 구역을 벗어날 수 있다.
현지에서 드는 검사 비용은 북마리아주 정부가 전액 부담한다. 여행 기간과 함께 늘어난 숙박비 등 비용도 여행사와 항공사를 통해 일부 지원한다. 여행 중 양성 판정이 나오면 전담 치료시설로 즉시 격리돼 치료를 받는다. 치료비용 역시 전액 무료로 지원한다.
여행 재개 시점은 현지 방역조치 사전점검과 여행사의 모객을 위한 준비기간 등을 감안할 때, 이르면 7월 말~8월 초로 예상된다. 그러나 방역상황이 악화되면 ‘서킷 브레이커’ 제도로 트래블 버블을 일시 중단할 수 있고, 양국 합의 후 개시일자를 미룰 수도 있다.
김홍락 국토부 국제항공과장은 "이번 협정 체결이 항공 및 관광사업 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방역우수 국가와 트래블 버블 체결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외 해외여행지 관련 정보는 인터파크투어 ‘그린여행’ 홈페이지와 외교부의 해외안전여행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린여행 홈페이지에는 나라별로 요구하는 코로나19백신 접종과 음성확인서 제시 여부, 자가격리 일수 등 필요한 조건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정리돼 있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각국의 검역과 격리 기준이 수시로 변하는 만큼, 올 여름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시니어라면 참고할 필요가 있다.
외교부는 현재 세계 모든 나라에 대해 특별여행주의보를 내린 상태다. 중동과 아프리카, 중남미 일부 국가는 여행경보 3단계인 ‘철수권고’ 또는 4단계인 ‘여행금지’ 지역으로 분류했다.
그린여행 데이터에 따르면 현지 자가격리가 면제돼 여행지 도착 후 바로 여행 가능한 지역으로 하와이, 괌, 사이판, 몰디브, 푸켓, 미주, 프랑스, 독일, 스위스, 체코, 크로아티아, 터키, 그리스, 스페인이 있다.
햇볕마저 좋다. 다음 주쯤 강화도에 한번 다녀올 참이었다. 고려산의 진달래가 온 산을 물들일 때다. 어느 곳이든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세상이지만, 불현듯 그 산하에 다가가고 싶을 땐 어쩔 수 없다. 강화도는 섬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땅이다.선사시대 고인돌 유적이 남아 있을 만큼 오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곳. 뿐만 아니라 이제는 곳곳에 새롭게 생겨나는 공간의 매력까지 더해지는 중이다.
물이 빠져나간 진득한 갯벌 위로 갈매기 떼가 날갯짓하는 외포항은 한적하다. 바람을 맞으며 포구 앞에서 갯골의 물길을 따라 바라보는 외포리의 생업 현장은 담담한 듯 조용하다. 수산물 직판장은 한가로웠지만 짭조름한 젓갈 냄새가 자연스럽게 풍겨난다. 한가로운 섬에 드니 이렇듯 편안하다.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 앞자리엔 바람 쐬러 나온 듯한 부부의 나란한 모습이 간간이 눈에 들어온다. 이 섬에서 얻는 휴식과 평온함의 풍경이다.
강화의 들길을 천천히 달리다 보면 진지나 요새를 만나고, 크고 작은 돈대가 나타난다. 외포항에서 5분쯤 달리면 나타나는 삼암돈대는 석모도를 마주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건너편으로 석모대교가 가로질러 있는 모습이 봄꽃 나무 사이로 보인다.
개화기 역사의 소용돌이가 스며 있는 강화 54돈대 중 하나다. 지금은 그 시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지만 4구의 포좌가 해안을 향해 열려 있는 모습을 보니 슬그머니 진지해진다. 인적 없는 자그마한 돈대 안은 적막하기까지 하다. 원형으로 축조된 돈대의 발아래로 바다가 유유하다. 바람에 날리며 떨어지는 봄꽃이 눈부시다. 무기를 보관하던 작은 창고인 듯한 입구엔 냉이꽃이 가득 피어났다.
여유롭게 바다를 내려다보고 석모대교 위로 오가는 자동차들의 꼬리를 따라가는 시선 끝에 또 다른 장소를 떠올렸다. 내비게이션을 확인해보니 멀지 않다. 정보를 통해 진작에 알고 있던 동네 책방이다. 다음 주에 가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이참에 가면 어떨지 잠깐 생각했다. 미리 연락도 해놓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찾아간다. 가끔은 사람의 만남도, 무심코 맞닥뜨린 여행지의 순간도 이럴 때 오히려 더 기억에 오래 남지 않았던가.
책방과 공방의 조화
호수처럼 너른 저수지 옆을 지나고 시골길이 깊어진다. 몇 개의 굽은 고갯길을 거치고 한적한 들판을 달린다. 이렇게 산골마을이지만 사실 강화읍에서는 자동차로 10분 정도 거리다. 길 건너편으로 산 아래 조용히 앉혀진 연꽃마을의 우공책방이 보인다.
금속공예와 목공예 작가인 ‘공방장님’과 시인이신 ‘책방장님’이 그곳에 있었다. 차분하고 담백한 인상의 작가 부부. 색감이 고운 차 한잔 내어주신 책방장님은 일정이 있어서 곧바로 외출했다. 갑작스러운 방문의 결례로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친절한 배려를 보여주신 공방장 김찬욱 작가님께 고마울 따름이다.
“원래 글을 쓰니까, 그리고 책이 많으니까 그 책을 누구라도 보는 데 쓰고, 사람이 안 와도 책 갖다놓고 책방이라는 타이틀을 놓으면 재미있겠다 싶었죠. 사실 책을 사기 위해 오는 동네 사람은 드물죠. 대부분 어르신들이고, 요즘은 농번기라 논에 물 대기 바쁜 농사철이기도 하고요. 강화의 지인들이 오고, 지나가다 신기하다고 들어오기도 합니다. 가끔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옵니다.”
책꽂이에는 아주 오래된 귀한 책들도 제법 많다. 절판된 책이나 오래전 책을 꼭 사겠다는 분도 있다고 한다. 8000권 넘는 책이 아래층과 위층으로 보기 좋게 가득가득 꽂혀 있다. 알음알음 동네 책방을 아끼는 분들이 책 주문을 하고, 우공책방의 독특함을 찾아서 먼 길을 오는 이들이 있어서 공감과 소통이 이어진다.
머릿속으로 그려오던 것을 나만의 북큐레이션으로 실천하는 것,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독자와 호흡하며 산골 책방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담백하다. 각자의 커리어대로 하던 일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현재는 멈추었지만 지역사회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입구에 나무와 환경에 관한 책이 배치되어 있다.
“이곳엔 공방이 있으니까 나무도 있고 식물에 관한 책이 많죠. 책방장도 나무나 자연에 관한 책을 많이 선택하고 또 다양한 시집도 북큐레이션을 하죠. 자연에 관한 책, 시집은 특별히 주문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책을 가지러 와서 얼굴도 보고 차도 마시고 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판을 깔고 의미 있게 보내는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스치듯 말한다. 어쩐지 울림을 준다. 바이러스가 사라질 날이 언제일지.
고요한 힐링, 북스테이
또 하나, 이 책방의 멋과 맛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북스테이가 있다. 전망 좋은 책방 2층에 책 여행자들이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정갈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무엇보다도 조식과 석식이 제공되는데 어느 셰프의 상차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손맛 깊은 맛깔스런 밥상이다.
“음식 만드는 것은… 제가 자취를 오래 했거든요. 그러기도 하고 음식을 제대로 맛나게 만들어 먹고 싶은 생각이 항상 있었죠. 그래서 궁금하면 어머니께 여쭤보곤 했어요. 식당을 40년 하셨고 못 만드시는 음식이 없었지요. 같은 재료인데도 내가 만들어 먹을 때는 왜 엄마의 그 맛이 안 나는지 늘 궁금했어요. 북엇국은 왜 엄마처럼 뽀얗게 안 올라올까 전화로 물어보면 기름에 한 번 볶아서 끓여야 한다. 또 순서가 어찌되었느냐, 시래깃국도 양념 넣고 잘 주물러서 넣어야 맛있다 말씀해주셨지요.”
우공책방의 북스테이에서는 엄마의 손맛을 그대로 이어받은 밥상을 받을 수 있다. 산골 동네엔 밥을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 없어서 제공한 식사였다. 그러다 보니 의외로 우공책방 북스테이의 푸짐한 고등어시래기찜이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힐링의 북스테이뿐만 아니라 우공책방에서는 목공예 작품을 만들어내는 체험도 가능하다. 작가의 예술적 감성이 스며든 작품을 배워볼 기회다. 책방과 공방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에서 따뜻한 나무의 질감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순하게 아날로그 정서가 발동되고 마음이 풍성해지는 여행 감성을 일깨운다.
자연, 나무, 목공예, 예술, 우공이산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주문받은 작품을 계속 다듬고 있었다. 깊은 손맛처럼 진심이 느껴지는 공방장님의 묵묵한 인상이 책방 이름 우공이라는 글자와 일치하는 느낌이다. 그런 내적 진중함이 만들어내는 목공 작품들이 책방 코너에 진열되어 있다.
햇볕이 쏟아져 내리는 산 아래 책방 마당, 데크를 지나 한편에 자리 잡은 공방장님의 작업장은 와우~ 신세계다. 나무와 금속을 다루는 갖가지 기계 장비들과 공구들이 빼곡하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들에게 잘 갖추어진 작업장은 뿌듯함이다. 우와~ 하며 놀랄 수밖에. 참죽나무로 만들어낸 책갈피부터 우리에게 친근한 빵도마도 만들어내는 곳, 절로 목공 작업이 확 당긴다.
책방지기의 묵직한 내공으로 배려받은 잠깐의 시간, 그 진중함으로 산과 바다라도 옮길 수 있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모습이 그려진다. 더디 가더라도 내가 주체가 되어 하고 싶은 일 속에 있는 것, 그 시간을 의미 있게 쓰려는 것이 또렷이 보일 때 부럽다.
일어서는데 김찬욱 작가님이 한마디 던진다.
“적석사도 들러야죠? 3분입니다.”
고려산 기슭의 가파른 언덕 위 사찰 적석사에서 내려다본 청정한 연꽃마을, 그곳에 우공책방이 있다.
인천시 강화군 내가면 연촌길 77-10(고천리 217-10) / 고려산 낙조대 적석사 가는 길목
“새벽이나 늦은 밤에 방이 찬가 따뜻한가 항상 점검하고 요 밑에 손을 넣어보고 차면 항상 따뜻하게 몸소 불을 때드리되 이런 일은 종들을 시키지 않도록 해라. 그 수고로움도 잠깐 연기 쏘이는 일에 지나지 않지만, 네 어머니는 무엇보다 더 기분이 좋을 것인데, 너희들도 이런 일을 즐거이 하지 않느냐?”
조선 후기 대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천리 먼 길 유배지로 떠나 살면서 지아비로서의 애틋함과 가족을 향해 노심초사하던 내면을 담은 편지는 지금 읽어도 절절하다. 당시 유배지 강진에서 남양주 마재마을까지 한없이 느릿한 방식으로 아들을 향한 끊임없는 부성을 전했다. 지금처럼 이메일이나 스마트폰, SNS 등으로 빠르게 마음이 전송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 방법이었을 텐데.
경기도 남양주는 다산 정약용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후에 18년의 유배 생활에서 돌아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다산을 생각하면 다산초당이 있는 유배지 전라도 강진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물의 고장으로 알려진 남양주는 팔당 호숫가에 위치한 다산의 생가와 다산유적지가 있어서 인문 여행지로 의미 있다. 그리고 주변에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물줄기가 부드럽게 합쳐져 만나는 곳, 두물머리의 수려한 풍광이 곧잘 그곳으로 발걸음을 이끈다.
결국은 만나는 인연, 두물머리
새벽길은 언제나 상쾌하다. 남양주로 향하는 길에 들러보는 두물머리의 새벽. 두물머리는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이 양수리 남한강에서 합류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중간에 여러 경로의 길을 돌고 돌지만 결국은 하나가 되는 인연이다. 어떻게든 서로 만나게 되는 자연의 순리처럼 강줄기가 만들어낸 새벽 풍경은 신비롭다.
어스름한 두물머리의 새벽 공기는 쾌청. 이른 아침에 피어나는 물안개 속에서 400년 나이 먹은 느티나무가 두물머리의 파수꾼처럼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날씨에 따라 멋진 일출을 보지 못하면 어떠랴. 강 건너 산을 감싼 물안개 사이로 뱀섬이 아련하며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그 너머로 유려한 곡선으로 겹겹의 능선이 아스라하다. 빳빳한 자세로 돛을 세운 황포돛배가 오롯하다. 어슴푸레한 여명의 안개 범벅 속에 파묻혔던 시간을 가끔씩 떠올리는 기억의 공간으로 만들어두는 일, 짜릿하다.
두물머리의 새벽 의식은 길지 않다. 이윽고 서늘함이 가신 물길 따라 산책하다 보면 주변에 전망 좋은 브런치 카페도 있어서 여유롭게 쉬어볼 만도 하다. 일상에 브레이크가 걸려버린 요즘, 새벽길 달려와 반길 두물머리가 있다니. 머잖아 연꽃의 운치를 보여줄 차례다.
인문 여행지 남양주 마재마을
자동차로 15분 정도 더 달리면 남양주의 다산 생가가 금방 나타난다. 소박한 듯 기품이 느껴지는 생가 뒤편에는 다산 묘소가 있다. 정쟁에 휘말려 강진 유배 생활을 했지만 다산은 이곳에서 났고, 생을 마감한 곳도 여기다. 남양주의 아들이다. 다산의 5대조부터 자리 잡고 살았던 땅이다.
다산유적지에는 다산기념관, 다산문화관, 실학박물관, 거중기, 다산 문화의 거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주변으로 다산생태공원과 남양주 8경이 둘러 있고, 자연 속으로 북한강 자전거길이 이어져 있다. 산과 강으로 어우러진 다산 생가를 중심으로 슬로시티 남양주의 팔당 다산길을 라이딩 행렬이 시원하게 휙휙 지나간다. 팍팍한 일상을 벗어나고픈 언택트 여행자들이 넉넉히 위안을 얻는다.
또한 손 타지 않은 자연 마을답게 북한강을 앞에 두고 남양주 유기농테마파크가 조성돼 있어 들러볼 만하다. 우리의 24절기에 따른 농사와 의식주 문화를 알 수 있는 생활의 면면이 전시되어 있다.
문 밖으로는 야외 공연장과 동물 체험장, 체험실, 카페테리아 등이 갖추어져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이나 연인들로 가득하다. 당연히 슬로시티 남양주의 농작물 체험 농장이 많다. 그중에 딸기농장에 가면 유기농 딸기를 직접 따서 다양한 요리 체험을 할 수 있다.
다산 생가인 여유당에 들기 전 앞마당엔 수원성 축조 과정에 쓰였던 당시 실제 크기의 거중기를 만나게 된다. 실학정신의 실천을 엿볼 수 있는 역작이다. 여유당은 정갈한 한옥이다. 여유당(與猶堂)이라는 당호는 노자(老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여(與)함이여 겨울 냇물을 건너듯이, 유(猶)함이여 너의 이웃을 두려워하듯이’라는 글귀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관료로서 나라의 부패를 꾸짖던 검소함이 담긴 여유당이다. 고택의 구석구석을 살피다 보면 다산이 유배 시절 가족들과 떨어져 살았던 세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하고 5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긴 석학이지만, 아버지나 지아비로서의 간곡한 면모를 알 수 있는 기록도 제법 남겼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1801년 전라도 땅 강진으로 유배될 당시 다산의 나이가 40세였다. 아비로 인해 벼슬길에도 오를 수 없는 자식들을 위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간절하고 세세하게 편지로 소통했다.
부모 곁에 두고 가르칠 수 없어 노심초사하는 아비의 마음이 느껴진다. 친구 사귀는 법, 글을 읽고 쓰고 생각하는 방법, 정보의 중요성, 밭을 가꾸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 인간관계, 술맛을 아는 것, 잘못을 꾸짖거나 칭찬하기, 부모를 위한 생각 등을 세밀하게 전한다. 정약용은 당대 대학자이기도 했지만 자상하고 정이 넘치면서도 깐깐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아직도 효를 강조하고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한다고 누군가는 ‘꼰대’라 말할 법도 한 세상이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의 말씀은 200년이 지났어도 지당하기 그지없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받아들이는 것이라 하니 이해와 해석은 각자의 몫일 뿐.
다산의 저서 ‘유배지에서 보내는 편지’는 어린이용으로도 출간되어 있으니 부모의 마음을 전하는 독서로도 좋을 듯하다. 아이들이 어릴 적 읽었던 책이어서 오래전 기억이 난다. 200여 년 전의 내용이지만 시공을 넘어서 부모 자식 간의 소통 능력은 이 책으로도 충분하다 하겠다.
“몸져누운 아내가 해진 치마를 보내왔다. 천 리의 먼 곳에서 본마음을 담았구려. 오랜 세월에 붉은빛 이미 바랬으니 늘그막에 서러운 생각만 일어나네. 재단하여 작은 서첩을 만들어서는 아들 경계해주는 글귀나 써보았네. 바라노니 어버이 마음 제대로 헤아려서 평생토록 가슴속에 새겨두거라.”
유배 시절 아내 홍 씨가 보낸 빛이 바랜 다홍치마 여섯 폭을 받아 들고 그리움에 슬퍼하며 치마를 잘라 두 아들을 위한 서첩을 만들어 보낸 것이 ‘하피첩’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철학과 인생의 지침을 담은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혼인을 하는 외동딸에게는 남은 치마폭에 ‘매조도’를 그려서 보냈다.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이런 선물을 받아 든 자식들의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멀리서나마 지아비에게 사랑을 전하는 부인 홍 씨의 마음도 헤아려보게 된다.
이 땅의 대석학, 다산
생가 옆에 자리한 다산기념관과 다산문화관은 다산의 삶과 사상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곳이다. 다산기념관에는 다산의 친필 서한 간찰(簡札), 산수도 등과 대표적 경세서인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사본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실물 4분의 1과 2분의 1 크기의 거중기와 녹로가 눈길을 끈다.
200년 전 조선의 위대한 학자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다산문화관, 그리고 맞은편의 실학박물관은 2개 층으로 전시실과 북 라운지가 있다. 천천히 빠져 들어가는 시간이다.
실학박물관 옆의 돌계단을 오르면 다산정원이 푸르게 펼쳐진다. 평화로운 정원을 거닐며 역사 속 대석학의 인간적 고뇌와 철학을 마음에 담는다. 빠르게 변해버린 현대의 가족 간에 부모와 자식으로서 꼭 짚어볼 만한 메시지를 전한다. 20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마당에 와서 비로소 알아가는 그분의 인간미와 지적(知的) 서사, 과연 그분이 꿈꾸던 세상이 되었는지.
남양주 마재마을을 다녀와서 오래전 책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을 들췄다. 남도답사 1번지로 꼽았던 전남 강진을 초반에 소개할 때 다산의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어서였다. 유홍준 교수는 그분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다산 정약용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무던히 고심했다. 사실 나 또한 이 시대 대부분의 지식인처럼 다산 정약용을 존경하고 사모한다. 만약 단군 갑자 이래 이 땅의 가장 존경받을 인물을 꼽는 한국갤럽의 사회조사가 있다면 ‘학삐리’ 사회에서는 그분이 단연코 1등을 차지할 것이다.”
마재마을에서 만난 조선 최고의 대학자 다산 정약용, 계절의 푸릇함과 함께 느닷없는 배움의 욕구가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푸르러가는 시절을 놓칠 뻔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 747번 길 11(마재마을)
코로나19 시대의 여가 활동으로 ‘캠핑’(Camping)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은 5인 이상 집결 금지 같은 사회적 조항으로 사람들은 친구, 연인, 가족 등 소수정예로 팀을 꾸리거나, 홀로 자연으로 들어가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면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캠핑 자체를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등산, 트레킹, 사이클, 카약, 낚시, 서핑 등의 아웃도어 활동을 결합하는 식으로 다채롭게 진행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같은 캠핑도 전혀 다른 캠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코너에서는 때와 상황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캠핑 ‘4대 주자’ 자전거캠핑, 오토캠핑, 차박캠핑, 백패킹의 특징에 대해 알아봤다.
자전거캠핑 | 걸어서 가기에는 먼 곳을 무동력으로 가고 싶을 때
자전거의 몸체에 짐받이 가방과 패니어백, 혹은 자전거 몸체에 연결한 트레일러에 아영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싣고 산악 임도, 해안, 자전거길 등을 이동하다가 어딘가에 텐트를 치고 즐기는 캠핑을 말한다. 바이크캠핑, 투어링캠핑이라고도 부른다. 오지와 같이 한적하면서도 차량 진입이 어려운 곳, 자동차로 가기에는 가깝고 도보로 가기에는 애매한 주변 여행지를 찾아가는 데 자전거는 효과적인 이동 수단이다.
자전거캠핑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는 두말할 필요 없이 ‘자전거’다. 즐겁고 쾌적한 자전거캠핑을 위해서는 자전거캠핑에 적합한 자전거를 준비해야 한다. 생활형 자전거, 산악자전거(MTB), 로드자전거, 하이브리드, 미니벨로, 전기자전거 중에서 캠핑 장소와 주로 형태, 이동 거리에 따라 크게 산악자전거, 로드자전거, 투어링 전용 자전거, 산악과 로드 중간 형태인 하이브리드를 선택할 수 있다.
자전거 다음으로 중요한 장비가 ‘복장’이다. 1박 이상 장거리 자전거캠핑을 할 때는 장시간 자전거 주행을 해야 하므로 기능과 안전을 고려한 라이딩용 복장을 추천한다. ‘쫄쫄이바지’로 통하는 ‘자전거 패드바지’는 폴리에스테르 재질이라 구김이 없고 건조가 잘되며, 자전거 안장과 밀착되는 부위에 두꺼운 패드가 붙어 있어 엉덩이 통증을 상당히 줄여준다. ‘저지’로 불리는 자전거 상의는 등 뒤에 주머니가 있어 휴대폰 등의 수납이 가능하다.
자전거캠핑은 온전히 사람의 힘을 동력으로 이동하는 만큼 수납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지만, 반드시 챙겨야 하는 장비라면 자전거용 멀티툴, 휴대용 펌프, 예비용 튜브, 체인 커넥터 같은 갑작스러운 고장에 대비한 미캐닉 장비다. 이외에 헬멧, 선글라스, 바람막이, 장갑, 버프, 모자, 두건, 팔토시, 랜턴, 비상식량, 스마트폰 충전기, 구급약품, 비상식량, 텐트, 침낭, 매트리스, 캠핑용 조리도구, 휴대용 식기와 수저, 다용도 나이프 등이 있다.
오토캠핑 | 자연 속에서 집이 주는 안락함을 누리고 싶을 때
차량에 각종 야영 장비를 싣고 떠나 캠핑장과 유원지 등 지정된 사이트에서 취사와 숙박을 하는 캠핑이다. 차량을 이용해 움직이므로 장비 수용에 제한이 없고, 차량 바로 옆에 사이트를 구축할 수 있으므로 캠핑 장비를 힘들게 옮기는 수고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캠핑 초보자라면 오토캠핑을 통해 캠핑에 재미를 붙이는 편이 좋다. 만약 캠핑에 필요한 장비가 없다면 캠핑 업체에서 텐트, 침낭, 취사도구 일체를 제공하는 ‘글램핑’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
오토캠핑에 필요한 주요 장비는 가볍고 견고한 텐트, 계절에 맞는 침낭,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습기를 차단해줄 매트리스, 햇빛을 가리고 비와 바람을 막아줄 타프, 캠핑용 조리도구 스토브와 연료, 휴대용 식기와 수저, 다용도 나이프, 랜턴과 이동식 랜턴(보조배터리),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에 체온을 지켜줄 기능성 의류, 만약의 비상사태에 대비한 구급약품이 있으며, 캠핑용 테이블과 의자, 그릴, 키친테이블, 아이스박스도 있으면 유용하다.
최근 들어 캠핑카, 캠핑 트레일러를 이용한 오토캠핑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매번 따로 수고롭게 텐트를 치고 접지 않아도 차량 안에서 편리하게 취사와 숙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4000만~1억 원을 호가하는 만만치 않은 캠핑카 가격이 단점이겠다. 11인승 이상 승합차를 캠핑카로 개조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또한 비용은 1000만~2000만 원 정도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카라반 전문 커뮤니티 ‘더 카라반’(thecaravan.co.kr)에서 확인하자.
캠핑카를 대여할 경우 보름 전 사전 예약을 통해 대여 업체 차고지를 방문하거나 홈 렌털 서비스를 이용한다. 렌털료는 1박 2일 기준 국산차 35만~50만 원, 수입차 45만~80만 원이다. 대여 조건은 만 26세 이상, 운전 경력이 최소 1년 이상 운전자. 대인, 대물, 자손 종합보험은 기본으로 가입돼 있으나 자차보험은 빠져 있다. 안전운행수칙 교육 업체에서 1시간 이상 교육을 받아야 한다. 캠핑장 정보는 한국관광공사의 ‘고캠핑’(gocamping.or.kr)을 추천한다.
차박캠핑 | 드라이브하다가 원하는 곳에서 멈추고 싶을 때
오로지 자가용 한 대에서 즐기는 캠핑을 말한다. 부담스러운 가격의 캠핑카,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 확보가 어려운 캠핑장 등이 차박캠핑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번거롭게 텐트를 치고 접을 일도 없다. 또 캠핑카처럼 부피가 크지 않아 기동성도 좋다. 산, 들, 바닷가 등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머물면서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으며, 오토캠핑처럼 취사도구를 이용해 제대로 조리해 먹기보다는 가볍게 때우거나 현지 맛집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차박캠핑이 반드시 SUV 차량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차량 뒷자리인 2열 시트 등받이를 접었을 때 트렁크와 이어지는 면이 수평으로 평평한 상태라면 경차, 소형승용차로도 차박캠핑을 즐길 수 있다. 평평한 바닥에 누웠을 때 본인 키보다 살짝 넉넉한 공간이면 된다. 필요에 따라 자동차 후미에 카트리퍼 혹은 도킹 텐트를 연결해 공간을 확장하기도 하는데 비용은 20만~50만 원 전후다. 차량 지붕 위에 설치하는 루프톱 텐트는 수백만 원 상당이다.
차박캠핑에 필요한 주요 장비는 쿠션감 있는 자충매트리스, 침낭 혹은 집에 있는 가벼운 이불, 외부에서 들어오는 한기를 막아줄 은박매트, USB로 연결 가능한 차량용 전기매트, 랜턴과 이동식 랜턴(보조배터리), 구급약품, 계절에 따라 모기장과 핫팩, 그리고 취사할 경우 캠핑용 테이블과 의자, 캠핑용 조리도구 스토브와 연료, 휴대용 식기와 수저, 다용도 나이프, 아이스박스 등이 있다. 필요하다면 카트리퍼 혹은 도킹 텐트, 루프톱 텐트, 타프도 구비한다.
차박캠핑의 장점으로 기동성을 꼽을 수 있지만 아무 데서나 차를 세우고 야영할 수는 없다. 법에 따라 전국의 도립, 시립, 군립, 국립공원, 국유림 임도, 사유지, 해안 방파제에서는 야영할 수 없다. 휴게소나 주차장에서 차박캠핑을 하더라도 불을 사용해 취사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차박캠핑 성지로는 당진 왜목마을, 충주 목계솔밭, 강릉 순긋해변과 안반데기, 홍천 모곡밤벌유원지, 여주 달맞이광장, 부산 오랑대공원, 태안 몽산포해수욕장, 부안 모항해수욕장이 있다.
백패킹 | 두 발로 정처 없이 걷다가 하룻밤 쉬고 싶을 때
야영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넣은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산, 숲, 트레일, 해안 등을 이동하다가 어딘가에 텐트를 치고 즐기는 캠핑을 말한다. 백패킹의 가장 큰 매력은 인적 드문 고요하고 신비로운 자연에서 잠들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장비를 짊어지고 이동해야 하기에 배낭을 최대한 가볍게 만드는 이른바 BPL(BackPacking Light)이 관건. 이동에 제약을 주지 않는 선에서 장비와 식량을 꾸려야 한다. 장거리 트레킹의 경우 배낭 무게는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
배낭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 추리니 자연스럽게 백패킹 이후 나오는 쓰레기 또한 줄어든다. 내가 머문 자연의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 바로 LNT(Leave No Trace)다. 백패킹 문화가 발달한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의 백패킹 인프라는 아직 부족한 편이지만, 자연을 소중히 여기며 그 속에서 잠시 쉬어간다는 생각은 백패커라면 가져야 할 공동의 마음일 것이다.
백패킹에 필요한 주요 장비는 트레킹 위주의 백패킹을 할지, 야영 위주의 백패킹을 할지에 따라 다소 달라지지만 크게 운행 장비, 주거 장비, 취사 장비로 나눌 수 있다. 트레킹 중심의 백패킹이라면 무게가 중요하다. 오래 걸으며 산행하기 위해서는 편한 트레킹화와 배낭을 기본으로 스틱, 헤드램프, 랜턴, 텐트, 침낭, 매트리스, 모자, 취사도구, 식량 등이 필요하다. 야영 위주 백패킹의 경우 이동 거리가 짧기에 소화 가능한 캠핑 장비를 추가할 수 있다.
백패킹에서 가장 중요한 트레킹화와 배낭에 대해 좀 더 설명하면, 우선 트레킹화는 평소 신는 신발보다 한두 치수 크게 신을 것을 권한다. 등산용 양말이 두껍기도 하고 피로로 인해 발이 붓기 때문에 너무 딱 맞으면 산행을 지속할 수 없다. 배낭은 여름철이라면 50~60L급, 겨울철에는 80~90L급 배낭에 수납한다. 역시 법에 따라 전국의 도립, 시립, 군립, 국립공원, 국유림 임도에서는 야영할 수 없으며, 자연휴양림 혹은 야영장에서 야영할 수 있다.
현대차 ‘포레스트’, 자동차를 넘어 움직이는 집으로서의 가치
현대자동차 소형 트럭 포터Ⅱ를 기반으로 한 캠핑카 ‘포레스트’가 최근 핫한 캠핑카로 떠오르고 있다. ‘포레스트’는 어디에서도 캠핑할 수 있는 편안하고 넓은 실내 공간을 갖춰 ‘움직이는 집’이라는 콘셉트로 4인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캠핑카다. 국내 캠핑카 등록 대수는 2014년부터 5년간 약 5배 증가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른 여가 활동 수요와 캠핑카 개조 규제 완화로 캠핑카가 늘고 있다. 정부는 연간 6000대 차량이 캠핑카로 개조되면서 1300억 원 규모 시장이 생겨날 것으로 전망했다.
포레스트는 스마트룸, 스마트베드를 적용해 실내 공간을 전동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스마트룸을 사용하면 차량 뒷부분이 800㎜ 연장되고, 확장된 부분은 침실로 활용할 수 있다. 스마트베드 기능으로 침실을 두 층으로 나눌 수도 있다. 포레스트는 2열 승객석에 상황별로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가변 캠핑 시트를 탑재해 내부 공간 활용도를 끌어올렸다. 가변 시트는 주행 중에는 시트, 캠핑 시에는 소파, 잘 때는 침대 용도로 쓸 수 있다. 또한 캠핑지에서 샤워실, 화장실 등의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겪는 사생활 침해 등 불편을 고려해 독립형 샤워부스, 실내 좌변기를 선택사양으로 적용할 수 있다. 차량 내 각 창문에 커튼이 설치됐다.
또한 태양광을 전기로 바꿔주는 태양전지 패널도 사양으로 선택할 수 있으며, 대용량 배터리 및 효율적인 충전 시스템을 적용해 캠핑 중 배터리 방전에 대한 걱정을 줄였다. 이밖에 현대차는 포레스트 내에 냉난방기, 냉장고, 싱크대, 전자레인지 같은 각종 편의사양을 제공해 고객들이 집과 같은 안락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캠핑카 기능은 포레스트의 직관적인 터치식 통합 컨트롤러로 제어 가능하며, 블루투스 연결을 통해 스마트폰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해외여행이 낯설었던 1990년대 초반, 대학생 신분으로 유럽 여행을 다녀와서 쓴 책 ‘유럽 일기’를 시작으로 여행작가 채지형(51)은 세계 일주 1세대로 불리며 세계 곳곳을 누볐다. 숱한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책, 강연과 연재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여행의 매력을 알리는 데 앞장섰던 그녀가 2016년 이후 5년 만에 그간의 여행을 정리하며 써 내려간 신간 ‘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로 돌아왔다.
신간은 지난 5년의 공백을 설명하는 주석과 같은 여행기다. 잊지 못할 여행의 순간부터 여행지에서 수집해온 영수증, 냉장고 자석, 인형 등과 관련된 사연, 아버지와의 추억, 여행에서 마주친 사람과의 대화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녀에게 지난 5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지난 5년은 참 다사다난했어요. 좋았던 순간도 있었지만 괴로웠던 시간도 많았어요. 평생을 함께할 짝꿍이 생겨서 좋았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아파서 큰 수술을 받기도 했어요. 틈날 때마다 여러 군데에서 강의도 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의뢰받은 원고를 쓰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정작 다녀온 여행을 스스로 정리할 시간이 없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출장이 줄어들면서, 지난 여행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이번에 책을 내게 됐어요.”
지난해는 코로나19로 해외 여행길이 막혔다. 실제로 2020년은 1994년부터 매해 해외로 떠났던 그녀가 유일하게 해외를 못 나간 해라고 한다. 대신 새로운 여행의 맛을 알게 됐다고.
“작년은 국내 여행의 재발견이라 부르고 싶어요. 예전과 달리 깊게 국내 여행을 다녔어요. 물론 해외를 못 나가서 아쉬웠지만요. 사실 그동안 국내 여행은 일로 가거나, 가끔 부모님과 함께 가는 효도 여행이 전부였던 탓에 즐길 새가 별로 없었어요. 이번엔 일주일이나 한 달씩 진득하게 한곳에 머무는 방식의 여행을 했는데, 참 새로웠어요. 이렇게 조금 느긋한 여행을 하면서 마음의 여유도 찾고, 스스로 돌이켜보는 시간도 많이 가졌던 것 같아요.”
여행 유전자와 귀여운 앨범
1994년 대학생 신분으로 떠났던 배낭여행은 그녀를 세계 일주 1세대로 이끌었고, 세계 일주의 경험은 어엿한 여행작가의 길로 가게 했다. 도대체 여행의 어떤 매력에 매료된 것일까?
“6개월이나 1년씩 긴 여행을 떠나던 유럽 친구들이 되게 부러워서 긴 여행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세계 일주를 하면 여행에 대한 갈증이 해소될 줄 알았는데, 하고 나니 더 하고 싶더군요. 제일 무서운 맛이 아는 맛이라는 것, 그때 깨달았어요.(웃음) 생각해보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가서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우쿨렐레나 카타칼리 메이크업처럼 평소에 배우지 못했던 것도 배워보고, 다양한 문화나 종교를 접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제 삶에 끊임없이 좋은 자극을 불어넣어 준 것 같아요.”
사실 그녀에게 여행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유년 시절 매년 여름이면 친척들끼리 모여서 야외로 캠핑 가는 것은 기본이고, 한번은 외갓집 식구들과 함께 45인승 버스를 빌려서 전국을 유랑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진짜 여행을 좋아하셨어요. 신문·잡지 레저면에서 소개하는 여행 기사를 전부 스크랩하셨어요. 어찌나 열심히 하셨던지 스크랩북을 보지 않고도 전국 여행지 맛집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말할 정도로 줄줄 꿰고 계셨어요. 여행지에 가면 ‘종’이나 ‘배지’ 같은 걸 꼭 사서 돌아오셨는데, 제가 인형이나 냉장고 자석을 수집하는 것도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일종의 여행 유전자라고 할까요?”
실제로 냉장고 자석은 냉장고의 옆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고, 그녀의 작업실은 인형의 방이라 불러도 될 만큼 세계 각지에서 공수한 인형으로 꽉 차 있었다. 아무리 유전자라고 해도 이토록 열심히 수집한 이유는 무엇일까?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인형처럼 귀여운 걸 좋아했어요. 크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제 공간이 생긴 후로는 더 열심히 모으게 되더라고요.(웃음) 인형을 살 때는 좋은데 돌아올 때는 짐이 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골라요. 집에 있는 다른 친구들하고 어울릴지도 살펴보고요. 첨엔 귀엽고 좋아서 샀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이게 앨범 같아요. 예전에 좋아하던 노래를 들으면 그때 생각이 나는 것처럼, 인형을 보면 그 여행지의 순간을 다시 곱씹을 수 있어서 좋아요.”
새로운 무대의 출발, 책방
여행은 일종의 모험이지만, 이방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외롭고 힘들 때도 분명히 있었을 터. 오랫동안 여행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하면서 도둑맞아 빈털터리가 된 적도 있고 여자로서 불쾌한 경험도 있었지만, 여행을 떼놓고 제 삶을 말할 수 없게 됐어요. 같은 시간이라도 여행지와 일상에서 받는 느낌은 달라요. 한번 여행을 떠나면 다른 인생을 산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주어진 배역을 통해서 다른 삶을 체험하는 배우와 비슷해요. 다만 여행은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동화 속으로 들어가서 주인공도 만나보고, 주인공이 처한 시대적 배경이나 역사를 같이 보는 느낌이에요. 말하자면 살아 있는 책이라고 할까요?”
여행작가를 배우로 비유했을 때, 그녀가 목표로 하는 다음 무대는 어디일지 궁금해서 살포시 물어봤다.
“일단 작년에 4개월 정도 머문 동해에 관한 얘기랑 신혼여행기를 늦기 전에 정리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동네 책방에 흥미가 생겨서 관련된 서적을 탐독 중인데, 앞서 말한 작업이 정리되면 여행과 관련된 책방을 만드는 계획을 구체화하고 싶어요. 책방 주인이 새로운 무대의 출발이 될 것 같아요.”
그녀에게 여행이 곧 삶이었고, 삶이 여행 그 자체였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미지의 세계로 떠나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고, 인형을 수집하며 그 추억을 오래도록 마음에 새겼다. 여행에 대한 열정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컸고, 늘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새로 적은 버킷리스트는 여행을 통해 하나씩 지워갔다. 동시에 일상과 잠시 거리를 둔 채 스스로 성찰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다짐했다. 앞으로도 그녀의 삶은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강물이 끝내 바다에 닿듯 결국 여행으로 이어질 것이다. 언젠가 그녀가 운영하는 여행 책방에서 여행자들과 함께 이야기꽃을 활짝 피우는 날을 기대하며 마친다.
여행을 떠날 때 필요한 기술 중 하나가 짐 싸는 법이다. 가방 안에 여행 중 사용할 옷가지나 화장품, 생활용품 등 다양한 물건을 오밀조밀 담아내는 일에도 여행 전문가들은 노하우가 있다. 가령 와이셔츠는 두 개를 겹치고 옷깃을 세운 채 개어서 넣는 것이 좋다. 이러한 팁을 알려주는 한 브랜드의 영상이 유튜브에서 조회수 21만 회로 인기를 끌었다. 그 브랜드는 다름 아닌 루이비통이다. 명품 브랜드의 대명사 루이비통이 여행 가방 싸는 법을 알려주는 이유는 뭘까?
루이비통은 여행용 트렁크로 출발한 브랜드다. 루이비통은 지금도 정체성을 여행에서 찾는다. 창업자 루이 비통은 스위스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10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가 재혼하자 그는 새 삶을 찾아 나섰다. 14세에 길을 떠나 파리에 도착하기까지 2년간 도보 여행을 했다. 이 여정을 루이비통은 브랜드 최초의 여행으로 꼽는다.
짐 싸주던 파리 청년
창업자 루이 비통은 파리에서 ‘패커’로 일했다. 패커는 여행 짐을 대신 싸주고 여행 가방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당시 파리의 귀부인들은 풍성한 드레스와 깃털, 리본으로 장식한 화려한 모자를 쓰곤 했는데, 여행할 때 이 모자와 드레스를 구김 없이 갖고 다닐 수 있게 포장해주는 전문 일꾼이었다. 그는 솜씨 좋은 패커로 유명세를 얻어, 나폴레옹 3세 황후의 전담 패커로 일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여행은 고급 문화였기에 그는 귀족들을 대상으로 일했다. 이 분야 전문가였던 무슈 파레샬의 공방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고, 1854년에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건 매장을 차렸다.
당시 프랑스는 자본주의가 급성장하며 여행 문화가 널리 퍼졌다. 그때만 해도 여행용 트렁크는 포플러나무로 만든 위쪽이 둥근 상자였다. 그래서 몹시 무겁고, 여러 개를 쌓기 어려우며, 마차가 코너를 돌면 넘어지곤 했다. 이에 창업자 루이 비통은 새로운 여행 가방을 개발했다. 사각 형태로 만들어 차곡차곡 쌓아 올릴 수 있었고, 방수 처리된 천 소재를 써서 가벼웠다. 운반과 적재의 편의성을 높인 그의 가방은 프랑스 부유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평평하고 네모난 트렁크는 현대 여행 가방의 시초가 되었다.
인기가 많은 만큼 모조품도 성행했다. 모조품을 막고자 아들 조르주 비통이 가방에 무늬를 넣었다. 체크 모양의 다미에 패턴, 창업자 루이 비통의 이름 철자 L과 V를 딴 로고와 장미 문양으로 만든 모노그램 패턴이 만들어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도난방지용 자물쇠 역시 당시 함께 개발되어 오늘날까지 루이비통 가방에 장착되며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핸드백 영역으로도 제품군이 넓어졌다. 샤넬 창업자 가브리엘 샤넬의 주문을 받아 만든 알마 백,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자신의 몸에 맞는 작은 사이즈를 주문해 만든 스피디 백 등 소형 핸드백을 만들었다. 이 제품들은 지금도 루이비통의 인기 핸드백이다.
셀렙을 위한 트렁크의 무한 변신
브랜드 창립 후 6년이 지나자 창업자 루이 비통은 파리 북서부 지역의 아니에르에 공방을 열었다. 이곳에서 각계각층 유명 인사를 위한 맞춤형 여행용 트렁크를 만들었다. 1879년 탐험가 피에르 브라자의 아프리카 탐사를 위해 만든 여행용 트렁크는 펼쳐놓으면 침대가 되었다. 1923년에는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위해 트렁크를 만들었는데, 수십 권의 책을 보관할 수 있어 여행지에서 펼쳐놓으면 서재가 되었다. 1926년에 인도 왕족을 위해 만든 트렁크는 찻잔과 찻주전자를 비롯한 티 세트를 담아 어디서나 차를 마실 수 있게 했다.
이후 루이비통은 더욱더 유명세를 얻어 다양한 셀렙들의 의뢰를 받으며 세계 각지로 뻗어나갔고, 이는 오늘날 글로벌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는 초석이 되었다.
아니에르 공방에는 지금도 장인들이 상주하며 세계의 명사들을 위한 맞춤형 트렁크를 만드는 일을 전담하고 있다. 현대에는 그 영역이 넓어져 월드컵 트로피 보관 트렁크,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명화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운송하는 트렁크도 제작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를 위해 스케이트 트렁크를 만들어 헌정하기도 했다.
2020년에는 미국 프로농구협회와 NBA 우승 트로피 보관 트렁크를 제작하는 파트너십을 맺었다. 아니에르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제작된 트렁크는 매년 6월 NBA 우승팀에 전달되어 트로피 보관, 전시, 운반 과정에 사용된다. 마이클 버크 루이비통 CEO는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승리는 루이비통 안에서 여행한다’는 전통을 다시 한번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하며, 루이비통의 여행 헤리티지를 강조했다.
전해 들은 얘기가 있다. 개그맨 전유성(72)이 젊었던 날 친구들과 놀러 간 어느 해변에서의 일. 그가 별안간 바다로 걸어 들어가더란다. 바닷물이 몸에 차오르고 마침내 머리까지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놀란 친구들, 그를 건져내기 위해 우르르 물로 달려갔다. 그때 전유성이 머리를 수면 위로 쑥 내밀더니 태연히 해변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고선 하는 말이 이랬다. “나 웃겼냐? 바다가 나를 부르더라고!”
그 해변에 폭소가 퍼졌더란다. 친구들을 웃기기 위해 온몸을 던져 펼친 해프닝이었으니 웃음 보시치고도 상품(上品)이다. 그런데 이 즉흥 쇼의 성공 요인은 그 액션 자체에 있지 않다. 물귀신 시늉으로 사람을 웃기는 몸짓은 독창적이지 않은 흔한 일이니 말이다. 전유성은 진부하지 않고 언제나 한 걸음 더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다. “바다가 나를 부르더라고!” 그는 다분히 서정적인 대사를 읊음으로써 이벤트의 격을 높인 게 아닌가. 그날따라 바다에 참을 수 없는 매혹을 느껴 물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 아무려나 그는 친구들을 웃기되 이왕이면 운치와 여운까지 가미한 쇼를 보여주고 싶었을 테다. 그렇다면 아마도 충동적으로 떠올린 각본으로 행위를 하고 대사를 읊조렸던 게 아닐까. 하나의 엽편(葉片) 모노드라마를 순간에 기획해 연출하고 연기했던 셈이다. 그의 삶에 피부처럼 붙은 예능 감각과 순발력을 엿볼 수 있는 예화다.
무덤덤한 일상에 웃음을 배포하고, 상황을 요리해 생기를 돋우는 일에 전유성은 능하다. 기발함과 도발을 밑천으로 삼아 지루한 인생사를 소극(笑劇)으로 끌어올린다. 쉼 없이 산소를 들이마셔 허파를 움직이게 하듯이, 그는 쉼 없이 머리를 회전시켜 개그맨이라는 직분에 부합하는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생산한다. 어디서 뭘 하든 ‘한 걸음 더 들어가는’ 집중력과 재능으로 롱런한다.
전유성은 지리산 근처 남원시 인월면에 산다. 벌써 4년째, 얼추 인월 사람 다 됐다. 그와 마주 앉은 곳은 딸과 사위가 운영하는 찻집 제비카페. 세한의 창밖 저 너머로는 지리산이 수묵화처럼 묵연하다. 많고 많은 곳 중에서 하필 이곳에 몸을 둔 건 지리산이 곁에 있어서다.
“내가 ‘절친’이다. 절하고 친하거든. 옛날에 지리산을 자주 오르기도 했고, 이 산의 절에 있는 스님 한 분과 가까워 지리산을 종종 찾아왔다. 그 인연으로 여기에 산다.”
지리산을 자주 오르겠다.
“아직 올라가진 않았다. 올해엔 제대로 올라볼까 한다. 지리산이 어디로 사라질 것도 아니고 마음 내킬 때 가면 되니까.”
어떤 매체에서 봤는데, 살면서 가장 잘한 걸로 쉬지 않고 일을 해온 거를 꼽았더라. 요즘은 무슨 생각, 무슨 일을 하나?
“코미디 전용 극장 만들 궁리를 자주 한다. 여건이 여의치 않아 지연되고 있지만 어떻게든 추진할 작정이다. 일상생활은 나름 분주하다. 남원 동편제 마을에 가서 창의력 강의도 하고, 우리밀로 빵 만들기도 가르친다. 마술도 가르치고.”
어딜 가나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 게 연예인이다. 이게 불편하진 않은가. 메릴린 먼로는 대중의 관심에 너무도 두렵고 외로웠다 하더라. 선생은 어떤가. 개인의 자유를 수시로 침해당할 수 있을 텐데.
“매우 피곤하다.”
몰래카메라가 늘 나를 주시한다는 기분이지 않을까?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피곤하다. 가령 라스베이거스를 여행할 때 사람들이 셀카를 막 찍어대던데, 만약 내가 도박장에라도 들어가 앉았다면 턱없는 잡음이 생길 수도 있는 거다. 그러나 저분들의 관심 덕분에 내가 밥을 먹고 산다는 걸 생각하면 고맙지.”
여행을 자주 한다지? 여행지에선 주로 무엇을 즐기나?
“유럽의 오페라극장을 가더라도 오페라보다 극장 앞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더 흥미롭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관찰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거든. 저 사람들은 무슨 얘기를 하며 저렇게 웃을까,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 상상을 하며 구경한다.”
사람 구경처럼 재미있는 게 없다지만 보통은 외모나 차림새 감상에 쏠린다. 전유성은 다르다. 한 걸음 더 들어간다. 남들의 얘기와 생각을 읽으려 집중하며 상상을 펼친다. 그는 상상, 공상, 몽상으로 사고의 외연을 확장해 쓸모 있는 아이디어 채집하기를 습관으로 삼고 사는 것 같다. 타성과 고정관념을 깨고 경계를 넘나들며 감각의 촉을 세운다. 이런 전유성의 유심한 촉수가 한번은 자동차 터널에 꽂혔다.
“남원의 어떤 터널을 통과하는데 밋밋한 터널 입구 전체를 돼지 코 모양으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 터널 내부에서 울리는 졸음 방지용 사이렌도 돼지가 꿀꿀대는 소리로 바꾸고. 이거 재미있잖아?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지만 별 관심이 없더라고.”
현장에 바로 도입할 만한 아이디어인데?
“당장에 돈 되는 일이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공공기관이나 민간이나 마찬가지다. 난 폐탄광촌을 활용해 누구나 스스로 들어갈 수 있는 사설 교도소를 세워도 유망할 거라 생각한다.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스스로 형기를 정하면 된다. 하루든 여러 날이든. 가령 소설이 안 써져 괴로운 소설가는 형기 동안 구상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에게 잘못한 게 많은 사람도 하루쯤 감옥살이를 하며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가지면 된다. 이곳에서 가끔 참선 강좌가 열리며, 모든 ‘수감자’에게 반성문을 쓰도록 하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반성문을 모아 책으로 내고. 이런 교도소, 어떤가?(웃음)”
이색 교도소로 순식간에 이름날 것 같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에 열광하니까. 교도소 옆엔 ‘출소자’들을 위한 주막집도 만들면 좋겠다. 인생에 달관한 주모가 있는.
“그런데 하려는 사람이 없더라. 돈이 생기는 사업은 아니라고 보는 거다.”
흔히 돈에 목숨을 걸다시피 집착한다. 돈만이 행복을 보장한다고 믿는다. 돈 없는 노후를 맞이할까 봐 미리 과도한 불안감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나의 노후 대책은 돈이 아니라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것보다 더 좋은 노후가 어디 있겠나. 특별히 욕심 부리지 않으면 적은 돈으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시골에서 살다 보니 월 100만 원 정도로 무난하게 사는 경우도 있더군.”
그는 인월에서 월세 50만 원짜리 아파트에 산다. 집이야 몸을 눕힐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그리 산다. 안으로 너른 사람은 바깥 치레에 도통 관심 없는 법이다.
시골 주민들, 특히 노년층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돈보다 참여가 가능한 문화 공간이다. 그분들도 공연 같은 걸 보고 즐겨야 하지 않겠나. 경로당이나 지어주고 외면하는 건 유기(遺棄) 행위에 가깝다.
“관람은 물론 직접 공연할 수 있는 기회 제공도 필요하다. 이를테면 노인 합창단이나 무용단을 만들어 공연에 나서게 하면 된다. 이때 중요한 건 단체 이름부터 재미나게 지어야 한다는 거다. ‘임플란트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할아버지들의 합창단’이라거나 ‘며느리가 꼴 보기 싫은 할머니들의 합창단’ 같은 이름이라면 빵 터지지 않겠는가.”
끔찍하게 요상하고 재미없는 세상에서도 가장 끔찍한 건 시골 노인들의 지루하고 고독한 일상이다. 전유성, 이 센스쟁이야말로 그 문제풀이에 일조해야 하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던 차, 그의 입에서 기발한 합창단 이름들이 데굴데굴 굴러 나온다. ‘명란젓을 좋아하는 할머니들의 합창단’이라는 이름도. ‘소녀시대가 되고 싶은 할머니들의 무용단’이라는 이름도. 시골 노인들을 위한 복안이 이미 내심에 박혀 있다는 표시겠지.
“너무 진지하게 살 거 없다”
남원에 오기 전 그는 경북 청도에 살며 하고 싶은 일을 다 했다. 코미디 전용 극단 ‘철가방극장’과 야외 음악 공연 프로그램 ‘개나소나 콘서트’를 만들어 10년을 쾌속 질주했다. 덕분에 고즈넉한 청도군이 일약 코미디와 콘서트가 난무하는 지역으로 도약했다. 개그맨으로서, 문화기획자로서 거둔 성취가 참 많았다. 그중 전유성이 가장 기뻤던 건 구경을 와 흥겨이 들썩이던 시골 노인들의 모습이었다고.
“정말 좋아하시더라. 열댓 번씩 공연장을 찾아오기도 했다. 내가 썩 괜찮은 일을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에 즐거웠다.”
그랬으나 판이 흐트러졌다.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시피 군과의 소통에 불협화음이 생겼고, 전유성은 홀연히 청도를 떠났다. 상심이 남았을 것 같지만 그는 훌훌 털었다. 다만 문화를 바라보는 비좁은 시야에 대해서는 보탤 말이 있다.
“문화를 적자와 흑자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무형 자산이기 때문이지. 계산을 앞세우는 태도를 버리고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와 경험의 폭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
선생의 인기, 기획력, 추진력은 청도에서 입증됐다. 다른 지자체에서 콜 사인을 보내왔을 것 같은데?
“남원에 온 뒤 몇몇 지자체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오더라고. 그때마다 내가 물었다. ‘1년에 공연을 몇 번이나 보십니까?’ 제대로 본 사람이 없더라고. 이래서야 일이 되겠어? 포기했다. 결국 자력으로 코미디 전용 공연장을 만들 수밖에. 문제는 자금이다. 요새 좀 고민하고 있다. 남의 돈을 뜯어올 재주는 없고.(웃음)”
차를 마시다 그가 소주 한잔을 목으로 털어 넣는다. 전유성은 술꾼이다. 생활에 술이 딱 달라붙었으니 외로움인들 범접 가능하랴. 술이란 무적함대? 때로 인생의 난제들을 척척 해치운다. 전유성을 보면 그게 증명된다. 슬럼프니, 못 채운 오욕칠정의 사무친 서러움이니, 무슨 고뇌니, 우리에게 한없이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종목들을 술 한잔으로 거꾸러뜨린다.
“즐거울 때나 고달플 때나 한잔 마시고 잊는다. 날려 보낸다. 난 그게 되더라.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살 거 없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오늘 하루를 재미있게 살면 되는 거 아냐? 그러고도 남는 불편이 있다면 팔자려니 하면 되고. 근데 나 예전처럼은 안 마셔. 건강 문제 때문에 어쩌다 소주 한두 잔 마실 뿐이라고.”
아예 끊어버리진 않고? 선생은 오래 살아 재미없는 세상을 비틀어 웃겨줘야 할 거 아닌가.
“술을 어떻게 끊나? 액체를 어떻게 끊어?(웃음) 담배는 끊었다.”
햐. 그 무슨 금연 비법으로?
“금연을 선언한 뒤 흡연하는 사람들을 마구 욕했다. 그러고서 뻔뻔하게 다시 담배를 피울 순 없잖아?(웃음)”
선생을 ‘아이디어 뱅크’라 한다. 어디서든 반짝거린다고.
“어? 와서 보니 나 아니잖아. 반짝거리지 않잖아?”
겸손하구나, 그리 여겼으나 5초 뒤 다시 생각하니 이게 또 아재 개그다. 내가 유리로 만들어졌냐? 새벽별이냐? 뭐 그런 게 축약된 ‘썰’이지만 거기엔 겸양이 스며 있다.
시퍼런 촉으로 솟은 야산
종교가 인류를 구원한다고 하지만, 내 생각엔 웃음이 종교보다 파워풀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고인 빙하를 녹이는 게 웃음이지 않던가. 삶이 멸치대가리처럼 따분한 건 웃음이 말라붙었을 때다. 전유성은 이 진귀한 품목을 생산하고 가공하고 유통하는 전문가다. 매사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머리와 행보로 ‘개그의 제국’을 구축했다. 이게 백지 상태에서 그냥 된 게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다독가다. 열 권짜리 ‘구라 삼국지’를 비롯해 다수의 책을 써낸 촉과 깡을 보라. 공부인이 아니고선 도달하기 어려운 지평이다.
“과거엔 개그든 공연이든 잘해 보려고 노력했다. 근데 그건 아마추어 시절에나 필요한 미덕이더라고. ‘잘’하는 것보다 좋은 건 ‘재미있게’ 하는 거거든. 좀 서툴면 어때? 뭐든 재미있어야 하지 않겠어?”
재미있게 살고 싶어도 그게 잘 안 되니 환장할 일이다. 재미라는 샘물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니 그냥 목마르게 사는 거지.
“발상을 전환하자고.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보자는 거다. 가령 그 왜 가수들 공연 시작 때 불꽃 같은 축포를 발사하잖아? 난 뭐든 남들과 똑같이 하는 건 싫더라고. 그래서 내 공연 때는 시장에서 뻥튀기 기계들을 빌려다 뻥뻥 터뜨렸다. 관객들이 재미있어 하며 엄청 폭소를 터뜨리더라.”
머리에 서리가 내린 뒤에도 장난기와 유머와 재기가 번뜩인다. 단무지 없는 짜장면을 먹는 것처럼 섭섭한 인생에 고소한 양념을 뿌리는 데 이골이 났다.
“생각의 타성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재미있는 ‘거리’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가령 ‘직접 만든 수제 칼국수’라고 써 붙인 말 안 되는 간판을 봤다 치자. 그때 저거보다 재미있는 이름이 없을까 생각해보는 거다. 그러면 뭔가 떠오른다. ‘놀러 온 사람이 시켜 만든 수제 칼국수’라거나, ‘소주가 생각나는 수제 손만두’라거나. 이거 재미있잖아? 장사도 더 잘될걸?”
재미의 출처가 곳곳에 널려 있다는 건가?
“바로 그거다. 특별할 거 없는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면 기발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언젠가 마트 입구에 놓인 카트에 이런 문구가 적힌 걸 봤다. ‘정관장 드신 분들은 살살 밀고 가세요!’ 야, 이거 기발하잖아? 기똥찬 광고 문안이잖아?”
강적을 만난 기분이었겠다. 나보다 한 수 위 인간이 있네 하며.(웃음)
“관찰과 생각도 많이 하지만 내 아이디어의 상당 부분은 일상에서 나온다. 특히나 사람들과의 잡담은 아이디어 공장이지. 잡담에 소재를 하나 올려두고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저절로 떠오르거든. 요번에 준비하는 책은 이 잡담에 관한 얘기다.”
가제목도 생각해뒀다. ‘다 알 필요 없다. 잡담이나 알고 지내자’로. 어떤 신들은 인간이라는 미증유의 생물이 너무 불어나거나 장수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세를 규합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몰라서다. 반란은 왜? 전유성의 사고에 기대자면 인간들이 너무 진지하게, 너무 재미없게 살아서다. 그러니 잡담이나 하고 가자는 거다. 잡담으로 안면 근육을 실룩여 웃음의 파랑이 너울거리게 하자는 거다.
그의 나이 올해로 일흔둘. 이 나이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다들 그걸 생각해보거나 의논한다. 치매 역시 관심사다. 전유성에게 물어볼까? 이 두 가지 성가신 문제를.
“무슨 수가 있겠나? 오면 오는 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되겠지. 난 지나간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엔 별 관심이 없다. 치매? 가족들이야 고생하겠지만, 치매에 걸린 당사자는 아무것도 몰라 고통도 없을 텐데 무슨 걱정이야?(웃음)”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지만 그게 쉬울까 보냐. 그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떡할 건가. 농담과 언어유희, 해학과 기지가 맞물려 돌아가는 그의 얘기엔 인생과 세상의 문제를 찍어내려는 갈고리가 들어 있어 짭짤하다. 달관한 시늉이 없어 미덥다. 거침이 없어 시원하다. 시퍼런 촉으로 솟은 야산이라 할까 보다. 그 산 언저리에서 귀 호강 한번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