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은 올해 연세가 아흔이시다. 자식들이 하나둘 둥지를 떠나 도심에 살림을 차리고 여든다섯의 장모님과 두 분만 남아 시골집을 지키신 지 수십 년이 되었다. 막내 처제가 오십이 넘었으니 30년 가까이 된 셈이다. 두 분이 텃밭에 참깨며 고구마, 그리고 배추를 심으셔서 가을엔 김장도 함께 모여서 하곤 했는데 몇 해 전부터는 자식들의 만류로 겨우 배추 몇 포기 먹을 것만 심으셨다. 서울보다는 시골에서 사시는 편이 마음이 편하신지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셔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한두 해 전부터 장모님이 기력이 쇠하면서 건망증이 심해지고 약간의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종갓집에 시집와서 조그만 체구에 10남매 모두 출가시킨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총명하시고 당당하셨는데 눈도 어둡고 몸도 약해 옛날 같지 않으니 우울하실 만도 했다. 당당하셨던 자신의 몸이 이렇게 망가지자 허무하고 한탄스러운 원망을 종종 장인어른에게 쏟아 부으시는 듯했다. 표현이 좀처럼 없으신 과묵한 장인어른은 안 되겠는지 가끔 딸들에게 전화해 다녀들 가라 해서 번갈아가며 시골에 다녀오곤 했다. 딸들이 내려가 말동무가 되어주면 장모님의 끊임없는 잔소리가 조금은 잦아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장모님의 원망이 더 심해지셨는지 엊그제는 바람 좀 쐬고 싶다고 의사를 내비치셨단다.
급기야 4남매 중 3남매가 의기투합했고 휴가를 얻어 2박 3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장인어른이 여행하는 동안 장모님은 장녀인 아내가 모시기로 해 필자의 집으로 오셨다. 그렇게 장인어른을 위한 특별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지는 장인어른이 젊은 시절 10여 년 동안 사셨던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이었다. 그곳은 장인어른에게는 특별한 곳이었다. 광산을 따라 젊은 시절을 보냈던 곳이어서 제2의 고향 같은 마을이었다. 장인어른은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가끔 젊은 시절에 대해 이야기할 땐 그곳 이야기를 많이 하시곤 했다.
여행 첫날, 장인어른은 충청도에서 출발해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을 찾았다. 여느 시골 마을과 다름없는 그곳을 90이 다 되어 찾아보는 장인어른은 감회가 새로운 모습이셨다. 옛날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고 몇몇 기억나는 지인들을 찾으니 나이가 몇 살 아래인데도 모두 다 돌아가시고 아시는 분이 없으셨단다. 반겨줄 사람이 한두 명은 있을 거라 기대를 했던 장인어른은 이방인의 모습으로 추억의 고향을 떠나셨다. 그 모습이 참 안타깝고 쓸쓸해 보였다고 한다.
일행은 동해안으로 방향을 잡고 속초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횟집에서 푸짐하게 회를 시켜 소주 한잔 기울이고 밤바다를 둘러봤다. 이튿날은 낙산사를 들려 절이며 바닷가의 풍경을 감상하고 좋은 음식을 찾아 즐겼다. 마지막 날은 설악산 온천에 들려 온천욕을 하고 귀향길에 올랐다. 장인어른이 동해안을 여행하시는 동안 필자의 집에서는 장모님을 모시고 오랜만에 불고기며 족발을 시켜 만찬을 즐겼다.
이제 다시는 가보지 못할 수도 있는 추억의 장소를 방문한 것은 매우 의미 있어 보인다. 나이가 드셔서 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던 장소를 90이 되어 자식들과 찾아본 장인어른은 감회가 깊었던 것 같다. 또한 힘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단풍이 곱게 물든 설악산과 푸른 동해를 보시고 참 만족해하시는 장인어른의 사진을 보면서 진즉 이렇게 모실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란다 너머로 노란 은행잎과 울긋불긋한 단풍이 마치 꽃 천지 같다. 두 분도 남은 삶을 저렇게 곱게 사시다 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본 홋카이도 어느 온천 마을에 있는 주민에게 늘 지진 위험이 있는데 왜 이사를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우리들의 보금자리는 우리가 지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향을 떠나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도 없고, 온천이라는 관광 수입원을 놓칠 수 없기에 그냥 살아간다는 말이 기억난다.
일본은 재해가 많은 국가다. 여기에 집값 폭락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복구비용은 250조 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에 대한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는 일본 전역을 강타했다. 이와 맞물려 우리나라 공항에서 가까운 인천 지역 빌딩에 일본인들이 관심을 갖는 바람에 가격 상승세가 일어나기도 했다. 1999년 몽골을 여행하던 중 관료로부터 일본이 지진 등 비상시에, 몽골로 이주해올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한 적도 있다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일본 문화는 이러한 자연재해 속에서 발달해왔다. 화산이 있어 온천문화가 생겨났고 지진이나 태풍, 대설에 대응하기 위해 건축물이 진화하면서 일본은 재난 대비 선진국이 되었다.
우리나라 내진설계율은 35% 정도에 불과해
예측하기 어려운 재난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의 내진설계는 2005년 이후 건축허가를 받은 3층 이상의 주택에 대해 규정했고 이번 경주 지진으로 2층 이상으로 강화하기로 했다. 현재 초고층 아파트 등 일반 고층 건물은 진도 7 정도에 견디도록 설계된 원자력발전소 기준에 맞춰져 있다. 기존 건축물을 내진 보강할 경우는 건폐율, 용적률, 대지 안의 공지, 높이 기준 등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하여 적극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내진설계가 적용된 건축물은 약 35%에 불과하다. 앞으로 내진설계가 강화되면 공사비가 더 들어 분양가는 올라갈 전망이다. 내진 성능을 0.5 높일 때 분양가는 3~5% 더 상승한다고 한다. 소비자가 원하지 않을 때, 내진 설비를 특별 기준 이상으로 갖추는 건설업체는 드물다. 시장원리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원전의 경우, 내진설계 기준을 6.5에서 7.0으로 높이는 데 1000억원이 더 든다고 한다. 무엇보다 기준을 어느 정도에 맞춰야 할지 예측이 어렵다. 우리나라 동쪽은 원전 밀집 지역이다. 이제는 원전의 안전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원전을 줄이면 전기 부족을 해결할 현실적인 대안이 없어 부담이 되고 또 원전에서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고압선 문제는 지역 주민들의 불편사항으로 늘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우리가 정말 전기를 아껴 써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환경 문제와 재난에 대한 대비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기적인 조치가 필요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가 아닌 우리 후손들을 위해 준비하고 생각할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에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 다음 문제들을 풀어보세요
❶ 내진설계가 잘된 지역은 어디일까?
❷지진이 발생할 경우 고층이 안전할까, 저층이 안전할까?
❸우리나라에서 아픔과 교훈을 남긴 건축물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 해설과 답
❶비교적 새롭게 조성된 도시인 세종(50.8%)과 울산(41%), 경남(40.8%)은 내진설계율이 높다. 하지만 이미 대도시로 조성된 지 오래된 부산(25.8%), 대구(27.2%), 서울(27.2%) 등의 내진설계율은 낮다.
❷지진에 따른 건축물 구조 안전성은 저층 건물보다 고층건물이 뛰어나다. 다만 저층은 외부 피난이 수월하다는 점과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❸(1) 1970년 서울 마포구 와우아파트가 무너졌다. 공사 자재를 아껴야 했기 때문에 철근 70개를 넣어야 튼튼하게 유지될 기둥에 고작 5개의 철근을 넣을 정도로 부실공사를 행했다. 그 결과 준공 4개월 만에 아파트 한 동이 무너지고 말았다.
(2)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1년 후인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3) 예전에는 한강 둑이 무너진 적이 종종 있었다. 서울 상습 침수지역에서 다세대주택 저층이나 단독주택, 또 반지하에서 세를 살던 사람들은 물난리를 겪었다. 그때 그 지역에서 물나리를 겪은 사람들은 지금도 저층이나 저지대를 기피한다.
(4) 1980년대 말, 당시 정부는 아파트 200만 호를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연간 주택 공급물량은 50만 가구인데 일시에 네 배가 넘는 많은 아파트를 지었기에 원자재가 부족했다. 그 결과 바닷모래를 사용하기도 해서 새 아파트에 금이 가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1991년 부동산시장은 안정됐다.
>> 김정렬(金淨烈) 한국일반행정사협회 전임교수
국내 최초로 부동산 전문가들로 네트워크를 구성, RE멤버스를 설립하고 부동산써브 대표를 역임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자산신탁, 기업체, 금융기관 등에 부동산 자문을 꾸준히 하고 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가족용 어드벤처 판타지 영화이다. 영국, 스페인, 벨기에가 무대로 나오고 조나단 뉴먼 감독이 만들었다. 주연에 아뉴린 바나드(머라이어 역), 마이클 쉰(채리티 역), 레나 헤디(모니카 역), 샘 닐(루거 역)이 나온다
무엇이든지 손에 닿기만 하면 금이 된다는 신화처럼, 무엇이든 상자 안에 담기만 하면 황금으로 만든다는 전설의 마이더스 박스를 찾아 모험한다는 줄거리이다. 원제는 '마이더스 상자의 저주'라고 번역된다.
이 상자가 악당의 손에 들어가면 단순히 그 악당만 부자가 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제한으로 금을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에 경제학적으로 금의 희소가치가 떨어지면 전 세계 금융 질서가 무너져 대 혼란이 온다. 각국 은행이 보유한 금이 무용지물이 되어 금 본위 경제 질서가 무너지는 것이다. 금을 보유한 것에 바탕을 두고 화폐를 찍어내야 화폐 가치가 유지되는데 금 보유 없이 화폐를 찍어 내면 화폐 가치를 잃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상자는 공신력 아래 엄격히 통제 되어야 한다.
희소 광물인 금은 희소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용도도 많다. 광물에서 채취해야 하지만, 만들어낸다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그것도 화수분처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면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복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금을 만들어 내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금은 희소 광물이다. 금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 없으니 이렇게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악당 루거는 박스를 열 열쇠를 차지하기 위해 머라이어의 부모와 동생을 납치한다. 부모님의 오랜 친구 채리티 대위가 부모와 동생이 있는 곳에 가려면 배를 타고 섬에 있는 호화 호텔에 잠입하여 박스를 찾아내야 한다며 머라이어가 가라고 한다. 머라이어는 섬에 도달하자마자 호텔 짐꾼으로 취업한다. 호텔은 온천이 여러 가지 질병에 효험이 있다 하여 손님들로 북적인다. 일손이 부족한 것이다. 머라이어는 호텔 짐꾼으로 일하면서 호텔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한다. 머리이어의 제복을 만들어준 여자 모니카에게 협조를 요청하지만,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다며 거절한다. 그러나 결국 머라이어의 요청을 들어 준다. 부모를 찾겠다는 절실함도 읽었지만, 머라이어에게 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이성간에 끌리는 힘이 있어 그 사람이 좋으면 조건 없이 같은 편이 된다.
그렇게 시작한 모험은 머라이어가 가진 부적으로 문이 열리고 비밀 통로 등이 나타난다. 비밀의 방을 뒤지다 보니 호텔 전 주인이 살해당했다는 사실도 알아낸다. 지하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동생 펠릭스도 찾아낸다. 드디어 마이더스의 상자도 발견한다. 악당 루거는 머라이어를 추적하고 아버지 친구 채리티가 나타나 이들을 구해 낸다. 호텔에 오래 전부터 잠입해 있던 왕실 비밀요원들도 합세하여 드디어 악당 루거 일행을 처단한다. 마이더스 상자는 왕실에 바친다. 장차 원하면 왕실 비밀요원 자리는 추천해준다고 한다. 머라이어를 도왔던 여자 모니카는 아버지를 잃었지만 머라이어가 같이 살자고 권한다. 사랑으로 결실을 맺는 것이다.
마이더스 상자를 찾았으니 머라이어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장면은 없다. 돈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돈은 오히려 충분하기보다는 알맞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마이더스 상자를 들춘 순간 재앙이 시작된다.
요즘 추세로 볼 때 이 영화는 유치하다. 스토리 전개가 뻔하다. 거대한 기계실, 비밀의 방, 마이더스의 상자 등이 등장하지만, 다른 데서 그 이상의 자극적인 소재를 많이 접하다 보니 그 정도는 만화 수준이다. 그러나 가족이 같이 보는 영화로는 그런대로 볼 만하다. 가족애가 있다. 상상이 있고 모험이 있다. 그리고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금의 가치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도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불가리아는 우리나라와 먼 나라가 아닌 듯하다.
불가리아 요구르트를 먹으면 장수한다는 TV 광고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불가리아에 가면 ‘장수’할까? 세계에서 가장 작은 마을 멜니크에서 조용한 휴식과 함께
와인 잔을 기울이고 온천욕을 즐긴다면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약간 큰 불가리아(면적 11만 879㎢)는 억압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014년부터 동로마 제국에게, 1393년부터 약 480여 년간은 터키의 지배를 받았다. 1908년 9월, 러시아의 도움으로 터키로부터 독립을 했지만 1989년 구소련이 무너질 때까지 40여 년간 소련의 영향을 받는 사회주의 국가로 살아야 했다. 1990년에 이르러서야 민주 정부를 세우고 나라 이름도 불가리아 공화국(The Republic of Bulgaria)으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필자는 수도 소피아(Sophia)에서 여행을 시작해 서남쪽으로 약 80㎞ 정도 내려가 릴라 수도원(Rila Monastery)을 찾았다. 릴라 산맥 속에 꼭꼭 숨어 있는 유서 깊은 수도원도 좋았지만 정작 필자가 매료된 곳은 멜니크(Melnik)다. 릴라 수도원에서 남쪽 그리스 쪽으로 약 100km(소피아에서 186km) 정도 가면 멜니크 배드랜드(Melnik Badlands)가 있다. 피린(Prin) 산맥의 해발 약 440m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마을은 불가리아어로 ‘흰색 점토, 분필’을 뜻하는 ‘멜(mel)’에 모래 산이 합해져 만들어진 지명이다. 불가리아에 현존하는 전통형태의 마을 중 가장 작고 마을 가옥 전부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러시아 작가인 유리 트리포노프(Yury Trifonov, 1925~19
전문가의 설명이 없어도 예사롭지 않은 건축물과 마을 뒤쪽의 독특한 모래 산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거기에 와인 상점, 와인 박물관, 와인 밭이 흩어져 있는 것만으로 ‘와인 산지’임을 한눈에 알게 한다. 멜니크는 트라키아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페르시안 1세(Persian I, 836~852) 때 크게 번성했고 이후 왕국의 남서부를 통치하던 알렉시우스 슬라브(Alexius Slav)에 의해 이 지방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센(Asen) 왕조(1185~1396) 때부터 독립적인 봉건 공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의 통치 기간에 경제와 문화가 발달해 학교와 교회가 많이 생겨났다. 이후 오스만 정복으로 쇠퇴하다가 17~18세기에는 담배와 와인 생산지로 알려지면서 번성한다. 특히 멜니크 와인은 경제권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했다. 이 지역의 와인은 향기가 아주 진해 일찍이 13세기부터 베니스의 부호들 식탁에만 올랐다고 한다. 주로 영국과 오스트리아, 해외로 수출되었는데 영국 처칠 총리가 좋아했다고 한다. 멜니크 종 포도는 프랑스가 원산지이나 불가리아에서 오래전부터 재배되어 온 우량 품종으로 와인 색은 진하고 맛은 무거우나 단맛이 난다.
이 마을은 발칸전쟁(1912~1913) 이후, 불가리아령이 되면서 기존에 살던 그리스인은 추방되었다. 일부 상점과 주택들이 그들에 의해 약탈되었지만 복원, 재건되었고 현재의 전통 가옥들은 숍, 숙소로 이용하고 있다. 또 근처에는 루피테(Rupite)와 대학도시로 유명한 ‘블라고에브그라드(Blagoevgrad, 애칭 ‘블라고’)’, ‘산단스키(Sandansik)’가 있다. 산단스키는 온천 휴양도시다. 그 외에도 수도인 소피아, 중세기 도시인 벨리코 투르노보(Veliko Turnovo), 플로브디프(Plovdiv), 소조폴(Sozopol) 등이 있다.
>>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2014년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대한한방 골병학회 회장 김산, 수석부회장 조상현 공저의 책이다. 건강 서적은 많이 읽었지만, 뼈에 대해 쓴 책은 전문 서적이 아니고 일반인을 위해 쓴 책으로는 처음이다.
“골병(骨病) 들었다”라는 말은 자주 듣는 말이다. 사람들은 “골병들었다!” 하면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크게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통을 동반하는 아주 아픈 병에 ‘골병’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그저 참기 힘든 고통에 붙이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방에 골병이라고 있다는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멀쩡한 사람이 종종 있다고 한다. 나중에 안 아픈 데가 없다며 병원을 찾지만 검사를 해봐도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경우는 골병이라는 것이다.
모든 병의 시작과 끝은 뼈라고 한다. 더 전문적으로는 뼈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뼈나 뇌 속의 유동 물질 즉, 정(精)의 문제라는 것이다. 정이 채워져야 인간 활동의 기본적인 틀이 만들어지며 그 속에서 건강과 수명의 함수 관계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정이 빨리 소모되면 빨리 늙는 것이고 정을 소모시키면서도 빨리 보충하여 잘 유지하면 노화도 늦출 수 있고 건강하다는 것이다. 정은 뇌 속에 있는 물질적 기초로서 뇌 기능은 물론 온갖 기능을 활발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뼈에도 미세한 구멍으로 피가 흐른다고 한다. 거기 피가 멈춰 있거나 덩어리 형태로 남게 되면 어혈과 담이 되는데 그런 것들이 혈액의 흐름을 방해 한다고 한다. 나쁜 것을 빨리 빼 내고 좋은 것을 채워줘야 정이 보관된다고 한다.
정(精)이란 보이지는 않지만 힘의 원천인 것 같다. 정력도 정(精)의 일종이다. 정액도 정의 일종이므로 한방에서는 함부로 쓰지 말라는 것이다. 성생활을 너무 지나치게 하다 보면 정이 소진되어 골병이 든다고 한다. 한 번의 성행위 후에도 남성들은 피로를 느끼고 곧바로 잠이 드는데 그것은 그만큼 정력의 소진은 대단하다는 것이다. 양방에서 정액은 곧 바로 채워지는 무진장의 것이고 용불용설처럼 자주 사용해야 오히려 건강에 좋다는 이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둘 다 일리가 있으므로 적당하지 않고 무리하면 좋을 것은 없을 것 같다.
키가 큰 사람, 백옥같은 피부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대체로 키가 큰 사람은 뼈가 단단하지 못해 부실하다는 것이다. 백옥같은 피부의 사람보다 황옥이 더 좋다고 한다. 병원에 오래 누워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피부가 흰 사람들이고 황옥의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건강해서 병원 갈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이 많은 식품은 무엇일까? 마늘 양파 솔잎 등인데 이들은 유황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유황이 뼈에 정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평소 냄새 나고 속을 따갑게 한다고 해서 마늘을 피했었는데 생마늘이 아니더라도 염두에 두고 먹어둘 일이다. 소금도 포함한다. 소금이 나쁘다고 얘기하는 것은 소금의 나트륨 때문인데 조미료 소금이 그렇다는 얘기이지 천연소금에는 나트륨이 그리 많지 않고 뼈의 영양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성분이라고 한다.
유황온천도 있고 시중에 ‘유황오리’를 파는 음식점들이 종종 눈에 띄는데 유황의 효능을 몰랐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유황의 중요성이 대단하다. 그러나 요즘 오리는 대량 사육되어 유황을 제대로 섭취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정을 보충해주는 방법으로는 잠도 있다. 잠을 자는 동안 정이 보충되는데 잠을 잘 못 잔다면 정을 보충할 수도 없고 정을 오히려 소모시키는 것이 된다. 그래서 수면 부족은 여러 가지로 건강에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강신영 동년기자-
회갑기념으로 4박5일 일정으로 고등학교 친구들과 백두산 여행을 다녀왔다. 심양까지 비행기로 1시간 10분 동안 간 다음 버스로 통화, 집안, 이도백화를 거쳐 백두산까지 가는 여정이다. 버스로 무려 8시간 이상 걸리는 힘든 여행이다. 백두산 여행의 백미는 천지를 제대로 보는 것에 있다. 수시로 변화하는 날씨로 안개가 끼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백두산 여행은 기온관계로 6-9월 4개월간만 가능하다. 같이 간 친구 중 한 명은 활화산인 백두산이 20년 내에 폭발할지 몰라 만사 제쳐두고 참여했다고 한다. 백두산이 폭발하면 주위는 물론이고 서울에도 4센티미터의 화산재가 쌓이고 기후이상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된다.
천지를 올라가는 길은 동, 서, 남, 북쪽이 있는데 동쪽은 북한 쪽에 있고. 남쪽은 경치가 별로여서 천지등반은 주로 서쪽길(서파)과 북쪽길(북파)로 행해진다. 이번 여행에서 서파, 북파 모두 선명하게 천지를 보고 내려오니 가이드는 운이 아주 좋다고 한다. 천지는 해발 2,194 미터, 면적 10만 평방 제곱미터, 최대수심은 370미터의 화산호수이다. 북파는 차로 내리면 바로 올라 갈 수 있지만 서파는 계단이 1,440여개 있어 힘든 사람은 인력거를 이용하여 올라가기도 한다. 왕복 운임은 6-7만인데 인력거원은 1만원밖에 못 받든다고 한다. 관광객이 대부분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이다. 중국의 10대 명산지로 손꼽혀 중국인도 많이 온다.
백두산은 고산지대라 나무는 없고 이름 모를 풀만 자라고 있다. 옆에는 장백폭포가 있다. 아직도 땅에서 온천이 솟아 나와 김이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83도의 유황온천으로 피부에 좋다고 하여 많은 사람이 손을 담그는 모습이 보였다.
왜 천지를 가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천지만 보러 가기엔 너무 고되고 비경제적일지도 모른다. 아마 우리민족의 기원으로 여겨 고향을 찾아가는 심정이 아닐까.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통일되어 가장 멋있는 북한쪽의 동파로 천지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아쉬운 마음으로 천지등반을 마치고 내려 왔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운 것 같다. 장마는 사라지고 연일 태양이 작열한다. 열대야로 잠을 재대로 잘 수 없는 밤이 이어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이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올림픽 중계를 보면서 뒤척일 수 있어 그런대로 길고 더운 여름밤을 버텨낼 수 있다. 낮에는 숨이 턱턱 막히지만 집에서는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거실 구석에 하나 서 있고 안방 벽에 하나 걸려있지만 몇 년 째 가동한 적이 없다. 전기세가 문제가 아니라 여름엔 땀을 흘려야 된다는 논리로 가동을 못하게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의 원성이 자자하지만 워낙 필자의 고집이 강경하므로 다들 선풍기로 버티고 있다. 이제 입추도 지났으니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고 하니 모두 어이없어 한다.
어제 부모님 댁에 들어서는데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저층 연립주택에 사시는데 앞뒤 동 간격이 좁고 저층이라 집안에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다. 선풍기가 몇 대 돌아가긴 했지만 엄청 더웠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두 분이 더위로 고생하시는 것이 걱정스럽다고 했더니 전혀 문제없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아침 드시고 나서 근처 중랑천 변 그늘로 가신다고 했다. 그곳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로 오전시간을 보내신 후 오후에는 복지관에 가서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저녁까지 지내시다가 들어오신다고 했다.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특별한 피서를 하고 계셨다. 그것은 ‘무료 전철피서’ 아주 긴 노선을 택해서 하루 종일 시원한 전철 여행을 하고 계셨다. 우선 아버지 혼자 하는 여행은 다음과 같다. 간단한 도시락을 준비한다. 중랑역에서 전철을 타고 왕십리 역에서 신분당선으로 갈아탄다. 한 시간 이상 걸려서 수원에 도착하면 인천 행으로 갈아타고 소래포구에서 내린다. 소래포구 시장 구경을 하고 인근 다리 밑 그늘에서 쉬고 도시락을 드신다. 다리 밑에는 의자를 많이 설치 해 두어서 편하고 노인들이 많이 모인다고 하셨다.
어머니와 같이 가실 때는 전철 1호선을 타고 온양까지 가신다고 했다. 온양 온천에는 전국에서 모여 든 노인들이 점령했다고 한다. 온천 후 점심 드시고 시장 구경도 하시고 느긋하게 전철타고 서울에 도착하면 저녁. 하루 여행으로는 제격이고 가고 오는 동안 시원한 전철에서 피서할 수 있다고 하신다.
아버지는 가끔 복지관 친구 두 분과 전철여행을 하신다고 했다. 일산에 사시는 분이 계셔서 일단 종로3가에서 모인다. 오전 열시쯤 만나서 서울 역으로 이동한다. 서울 역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타고 인천 계양까지 가서 인천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탄다. 원인재 역에서 오이도행 열차를 갈아타고 가다가 소래포구에서 내린다. 시장에서 우럭 두 마리를 구입해서 식당에 가져가면 매운탕을 끓여준다. 막걸리 한 병 놓고 식사하신 후 시장 구경하고 노선을 거꾸로 타고 집으로 돌아오신다. 1인당 회비는 이만 원인데 몇 천원이 남는다고 한다.
전철피서의 하이라이트는 춘천 행 열차를 타는 것. 춘천 역에 내리면 인근에 닭갈비집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신다. 식사 후에는 닭갈비집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승합차를 타고 박사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유명한 박사동네, 소양강 처녀동상, 소양호를 두루 구경한다. 구경 후에는 춘천 역까지 친절하게 데려다 준다는데 이 모든 서비스가 공짜란다. 단, 일행이 여섯 명 이상이라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라고 한다. 그래서 춘천에 가실 때는 여러 명이 모여서 간다고 하셨다.
65세 이상에게 제공되는 전철 무료서비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노인들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교통비 부담 없이 시원한 피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노인들의 정신과 육체건강에 상당히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인생 65세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어르신, 노인으로 호칭되는 ‘고령자’의 대열에 편입된다. 국민연금 수급자가 되고 ‘지공거사’가 된다. 하지만 전철무료 지공거사! 요금 면제커녕 폭탄을 맞는 경우가 많다.
한국전쟁 와중에 출생신고가 몇 년 늦어 이제 65세가 되었다. 기초연금신고와 전철 무임승차권에 대한 안내문을 받았다. 고령자가 되었다는 실감이 났다. “전철을 무임승차하면 어떨까?”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설렜다.
주민의 일상으로 찾아가는 복지행정!
얼마 전 관악구 미성동 복지담당 공무원과 보건소 간호사의 방문을 받았다. 봉지형 복지사는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현장을 찾아가는 복지행정을 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전철무료승차권과 기초연금신청안내, 주택연금 활용방법 등 손에 잡히는 주제를 설명하였다. 김상희 간호사는 “사회은퇴 후 활동이 축소된 어르신의 건강이 문제된다.”고 하였다. 폐렴예방무료접종, 골밀도검사, 암 검진, 임플란트 치과지원도 설명하였다. 폐렴예방접종이 일생에 꼭 한번 해야 하는 것인 줄 처음 알았다. 치매검사, 우울증검사는 이상 없이 통과하였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찾아 친절하게 설명해준 복지사와 간호사에게 감사한다.
환승기능 없는 전철무임승차권
전철 무임승차 시행초기 춘천막국수, 온양온천 등 원거리 무임승차가 화젯거리가 되었다. 퍼주는 복지라고 야단났었다. 한편에서는 집안에 머무를 고령자를 밖으로 이끌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긍정론도 있었다. 즐거움은 여기까지였다. ‘어르신 우대용 교통카드’를 받으면서 ‘지공거사’에 대한 기대는 산산이 조각났다. 문제는 시민이 통상 버스타고 전철을 바꿔 타는 ‘환승’에서 발생한다.
전철무임승차권에는 환승기능이 없다. 대중교통 환승제가 시행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환승기능 없는 교통카드가 아직도 존재하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버스와 전철을 한번 환승하면 가까운 거리는 1250원 남짓이면 된다. 전철요금은 무료이나 버스요금은 내야한다. 전철요금은 면제로 알았으나 실제 면제요금은 50원, 한 달 왕복하더라도 3000원이다. “눈 가리고 아옹이지, 누가 전철요금 면제라고 하겠는가?”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공거사 오히려 요금폭탄!
시민은 보통 버스타고 전철로 환승하여 다시 버스를 타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대체로 요금이 1500원 안팎이었다. 그런데 지공거사가 부담하는 요금은 2400원이 된다. 면제요금 합한 총 요금은 2150원 1.43배 많은 3650원이 된다. 교통요금 면제커녕 오히려 폭탄이다. 이만큼 예산도 낭비하고 있다. 많은 시민이 실질적으로 전철요금 면제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현장이다. 이 대목에서 무료승차권 무용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전철무임승차가 노인에게 오히려 부담을 늘리는 기막힌 현실이다.
무임승차권 환승기능 부여하라
왜, 전철요금 전액 부담자와 면제자의 요금계산이 달라야 하는가? 지공거사의 무임승차카드 환승기능부터 부여하여야 한다. 환승기능도 없는 무임승차 교통카드 발급을 특정은행에 전담시키는 것도 큰 문제다. 계좌이동제, 인터넷 전문은행 출현 등 은행 간 벽이 허물어진지 이미 오래되었다. 모든 은행에 개방하여 시민이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하여야 한다.
대학 동창들이 오랜만에 외국으로 여행이라도 가자는 의견이 나왔던 어느 겨울에 일본으로 4박 5일로 계획을 짜서 가게 되었다. 홋카이도 여행이었는데 첫눈이 내렸다.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숙박 시설에 도착해서 모든 것을 즐기고 난 뒤, 두 명씩 조를 짜려는데 나 보다 한 살 위인 K가 큰 소리로 ‘난 너무 코를 골아서 미승이 하고만 자야해’ 라고 못을 박는 바람에 잠자리 짝꿍이 되어버렸다. K가 방에 들어오더니, 날더러 어서 자란다. 자기는 머리가 바닥이나 침대에 닿는 순간 잠이 들어버리는데 문제는 코를 몹시 곤다는 얘기를 들려주며 네가 빨리 잠들고 나면, 그때 자긴 눕겠다는 고백이었다. 먼저 잠들어야 하는 강박관념. 잠자리도 바뀌었고 아까 그 멋졌던 눈 쌓여가던 산속 풍경이 아른거려 왔다. 잠이 빨리 들어주려나? 약간의 걱정을 하며 먼저 누웠다. 친구는 짐 정리를 좀 하겠다며 내가 잠들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여간해서 잠이 생각대로 빨리 들 거 같지가 않았다. 친구를 자게 하려면 내가 빨리 자야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마음이 들어 조바심이 들었다, 눈을 감고 ‘자자, 내가 빨리 자야 내 친구가 잘 수 있다’ 하며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숨을 고르며 깊은 호흡운동을 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상쾌했다. 한 번도 깬 적 없이 뒤척이지도 않고 잘 자고 일어났다. 친구 또한 아주 상쾌한 아침이라며 4일간 ‘잘 부탁해’ 하고 둘만의 비밀을 가진 눈웃음을 나눴다. 여행하면서 잠을 설치면 그것처럼 곤란하고도 피곤한 일이 없는데 우린 아주 잘 어울리는 짝이 되었다. 그 뒤론 자연스럽게 우리 둘이는 킥킥거리는 잠자리 짝꿍이 되어버렸다. 다른 애들이 날더러 ‘얼마나 코를 고는데?’ 하고 물어보면 ‘응? 몰라. 나도 그냥 잠 들어버려서...’ 라고 대답하니까 너넨 정말 좋겠다. 난 어제 잠을 한 숨도 못 잤어! 해가며 심퉁대는 친구들의 불평소리를 들어가며 언제나 쿡쿡 웃는 우리가 되었다. 가끔이지만 여행가서도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는 짝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런데 정말 너무나도 놀랍게도 똑같은 이유로 또 그런 짝꿍이 한 명 더 생겼다. 수필 문인회 10년 선배님인데 여행을 가서 유독 나와 짝을 하겠다며 우기는 거였다. 이유는 너무 코를 골기 때문이란다. 나는 어이없어서 속으로 나와 자면 코를 골아도 괜찮다는 말인가? 하며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정도 말발이 서는 선배님이라 아무런 장애 없이 나와 한 방 짝이 되었다. ‘사실은 내가 머리가 바닥에 닿으면 바로 코를 냅다 골면서 잠이 들어버리는 습관이 있어서 자기가 먼저 잠들면 잘 테니 어서 자’ 하는 거였다.
속으로 쾌재를... 어? K와 똑같은 이유의 선배님이로군!? 이제 저 선배님과도 잠자리 짝꿍이 될 거 같은 조짐에 내심 아주 신기한 일이라 생각했다. 선배님의 말을 다 듣고는 ‘네 알았어요. 그럼 먼저 잘게요~’ 고분고분한 후배로 점 찍히면서 굉장히 편한 잠자리를 확보하게 된 행복함으로 말 수가 있었다. 문인회나 친구들끼리의 여행길에 오르면 나는 아무도 모르는 편한 잠자리를 얻게 된 셈이 된 거였다. 터득한 건 아니지만 획득했다고나 할까? 그것도 상대방의 탁월한 선택에 의해서 된 잠자리 짝꿍에 나는 대 만족이다. 시니어가 되면 누구나 남녀가 다 코를 골게 되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너무나도 고마운 잠자리 짝꿍에 감사하며 지낸다. 나의 여행길에서 가장 안심되고 항상 즐거운 숙면을 선물 해 주는 사랑스러운 두 짝꿍이 정말 좋다.
이태문 일본 통신원 gounsege@gmail.com
◇ 몸에게 묻는 것이 건강관리의 기본
마에다 비바리(前田美波里·영화배우, 1948년 가나가와 현 출생)
더위를 모르고 여름을 무척 좋아하는 마에다 비바리는 이전 주목받았던 화장품 광고 이래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젊고 탄력 있는 몸매와 촉촉한 피부를 유지하고 있다.
“언제 어떤 역할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동작도 소화할 수 있도록 늘 몸을 다듬어 놓는데, 피아노의 조율과 마찬가지이다. 여배우로서 건강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는 걸 항상 의식해 몸 만들기에 신경을 써 왔다. 무대에서는 모든 각도에서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어디서 보더라도 좋게끔 해 두고 싶다. 나아가 반듯한 몸에는 제대로 된 정신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몸을 만들고 있는데, 특별한 것은 하고 있지 않다. 해야 할 것만 하고 있을 뿐이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매일 습관처럼 하는 노력은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이상 정성을 기울인다고 하겠다.
“아침에 눈 뜨면 먼저 전신 ‘임파(淋巴) 체조’를 10분, 그 뒤로 온천물을 데워 한 잔 마시는 게 일과이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신문을 읽고, 아침을 먹는다. 주로 채소 샐러드에 빵과 삶은 달걀 한 개. 그리고 머그컵에 커피를 붓고 코코넛 오일을 우유를 넣어 카페오레로 마신다. 달달한 과자를 군것질로 곁들여. 몸을 깨우는 데는 아침 식사가 중요하다.”
비 바리는 작년 가을 비 오는 날 비탈길에서 미끄러져 어깨를 골절했다. 그때 뼈가 붙자마자 재개한 ‘에고스큐(egoscue) 체조’가 빠른 회복에 크게 도움이 됐다.
“시작한 지 4년 반쯤 되는데, 아침 식사 후 30~40분 에고스큐 체조를 반드시 한다. 근육을 자극하고 단련해 똑바로 움직이고, 몸의 비틀림을 바로잡는 운동이다. 몇 년 전부터는 되도록 차를 이용하지 않고 걷는 생활을 하고 있으며, 1주일에 한 번 수중에어로빅도 하는데 물의 저항이 몸에 좋다. 내부근육도 단련되고, 달랑거리는 팔의 살도 금방 없어지고…”
울퉁불퉁 근육질의 여성스럽지 않은 몸은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기계를 이용한 트레이닝은 하지 않는다. 어떤 운동이 몸의 어느 부분에 효과가 있고,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는지 이미 파악하고 있다.
“오랫동안 여러 가지 운동을 하면서 연구해 왔는데, 이게 나의 재산이다. 허리가 아프다는 연기자나 스태프가 있으면 내가 가르쳐 주고, 나 자신도 한 달에 한번 에고스큐 선생님과 상의해 새로운 메뉴를 지도 받는다.”
운동 이외에 아름다움과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건강보조 식품과 효소, 온천물 등을 함께 일하는 동료 배우와 친구들이 추천한 게 많은데, 괜찮다고 생각 들면 먹어 보고 자신에게 맞으면 받아들여왔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라는 것은 없다. 수십 년 계속 먹어온 건강보조 식품도 무대 공연으로 피곤할 때는 좀 많이 먹는다든지 그날그날의 몸 상태에 맞게 양을 조절한다. 그렇다고 건강보조 식품에 의지하는 삶은 싫다.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지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손발이 찬 체질이라 몸이 차가워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는데, 에어컨은 되도록 쓰지 않고 여름에도 샤워만 하는 게 아니라 탕에 들어가 여유 있게 기분전환을 한다.”
욕탕에는 수소 거품이 발생하는 걸 넣어서 수소를 흡입하고, 수소수 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탕에서 나와서는 바디오일을 바르고 침실은 향수를 뿌리기도 한다. 바닐라, 망고 등을 좋아하는데, 맘이 차분히 가라앉고 잠도 잘 온다.
“자기 몸에 물어보고, 좋다고 생각하는 걸 계속 해 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 어떤 명의도, 명약도 수면 부족에는 진다
유카와 레이코 (湯川れい子·음악평론가·작사가, 1936년 도쿄 출생)
지난 1월 80번째 생일을 맞이한 유카와 레이코는 지금도 아티스트 취재로 국내외를 돌고 있으며, 집필활동 외에도 합창단의 멤버로서 노래하는 등 “지금이 내 인생 중 가장 바쁠지도 모르겠다”며 팔순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바른 자세와 환한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음악가를 양성하는 ‘스쿨 오브 뮤직 전문학교’의 명예 교장이기도 한 그녀는 삿포로, 센다이, 도쿄, 나고야, 오사카, 후쿠오카에 있는 학교를 돌며 졸업식과 입학식에 6번 참석해 인사를 했다.
“연설은 내가 1년간 일을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를 실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살아 있는 음악정보를 말하는 거야말로 젊은 학생들의 마음에 스며들지, 과거의 추억담을 얘기하면 전혀 울림이 없다. 그래서 내년에도 학생들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올 한 해도 더욱 열심히 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올해 아티스트 취재로 호주와 영국에도 갔다 왔으며, 개인적으로는 한 달에 한 번 4인조 코러스 그룹 ‘스완시스터즈’의 연습에 본인이 단장을 맡고 있는 가스펠 그룹 ‘도쿄여자합창단’의 단원으로서 동일본 대지진 부흥 자선콘서트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음악평론가와 작사가 이외에도 라디오 DJ를 하거나 젊은 사람들을 응원하고 노래하면서 환경과 평화와 관련된 문화활동도 소화하는 등 한마디로 사방팔방 종횡무진 대활약중이다.
“샐러드도 상추만으로는 질리고, 여러 가지 채소가 들어 있으면 맛있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면 다채롭고 풍부한 삶이 더 즐겁다고 생각한다. 또 늘 앉아서 하는 일의 피로가 노래함으로써 풀리고 위안을 받는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21살 때 급성복막염 수술을 받을 때 수혈로 인해 C형 간염에 감염. 병명을 알게 된 것은 1989년 53세 때이다. 하지만, 감염이 판명되었지만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아서 의사는 C형 감염 환자의 87%가 간경화에서 간암이 된다며 아무도 도와줄 수 없으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으니 의사는 술 마시지 말고, 과로하지 말고 적당한 운동을 할 것을 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분히 잠을 자라며 어떤 명의도 명약도 수면 부족을 이기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수면이 부족하면 면역력도 저항력도 떨어진다. 그 뒤로 하루에 적어도 8시간은 잠을 자도록 하고 있다. 사실 60대 중반에 건강진단을 받고서 췌장암과 간암이 발견됐었다. 의사는 더 크면 위험하니 수술하자고 했지만 안 했다. 불안은 있었지만, 나이 들수록 어딘가 나쁜 곳이 나오게 되는 법인데, 나는 병과 싸우는 게 아니라 면역력을 높여 병과 공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뒤로 더욱 수면과 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결국 규칙적이고 바른 생활이 몸을 지켜준다고 믿게 됐다.”
공연 취재와 지방 강연회 등으로 바쁘더라도 전날 1박 하는 식으로 7~8시간의 수면을 확보하고 있다는 유카와는 “잠이 안 오거나 도중에 깰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눈을 감고 어쨌든 자는 상태를 유지한다. 안 자더라도 누운 상태만으로도 수면 중의 3분의 1 정도 체력이 회복이 된다고 하니까. 생각하기 시작하면 뇌가 쉬지 못하니까 잠이 안 올 때는 침대 위에서 호흡법을 한다. 단전 아래 3㎝ 정도 떨어진 곳을 의식해 코로 숨을 쉬고 천천히 길게 입으로 내뱉으면 잡념이 없어지고 뇌가 빈 상태로 되는데 그대로 자연스럽게 잠이 든다”며 “해외로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고 밝혔다.
“식사를 하면 위장이 움직이고 몸이 활동 모드에 들어가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는 거의 안 먹는다. 탑승하기 전에 와인 한 잔 마신 후 호흡법을 하면서 마냥 수면을 취한다. 그러면 긴 장거리 비행에도 피로가 안 쌓이고, 시차도 없다.”
60세쯤부터 부교감 신경을 자극해 면역력을 높이는 호흡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데, 잠이 오지 않을 때뿐만 아니라 전철 안 혹은 책상 앞, 자기 전에도 꼭 한다.
“수면과 호흡법 덕분에 암이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크지 않고 있다. 호흡법은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나 할 수 있다. 요즘에는 등골과 관절 등을 움직여 뼈에 적당한 부하를 거는 ‘뼈 호흡 체조’를 한 달에 한 번꼴로 도장에 다니며 지도를 받고 있다. 뼈를 강화해 주고 비틀림을 고쳐주고 대사를 촉진해 준다.”
연예계가 남성 중심의 경쟁 사회라 싫은 일도 많고 낙담하는 경우도 있는데, 고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늘 일은 오늘로, 싫은 것들을 내일로 가져가지 않는 게 중요하다. 침대 위에서 호흡에 집중해 푹 자고 나면, 다음 날 기분 좋게 눈 뜨면 그럼 오늘도 파이팅! 하는 힘도 생기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떠오른다.
“끙끙거리고 우울할 때는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낙담하는 감정은 좌뇌로 거기에 음악의 템포를 부여하면 자동적으로 우뇌가 우선이 되면서 좌뇌의 고민을 잊을 수 있다. 걷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가 되니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리듬에 맞춰 걸으면 그 효과는 몇 배 커질 것이다.”
몸과 마음의 젊음은 음식이 정한다
◇ 우에키 모모코
(植木もも子·관리영양사·국제중국의사·국제중국의약요리관리사, 1953년생)
젊고 똑똑하고 즐겁고 건강하게, 이것이 삶의 주제라고 말하는 우에키 모모코는 서양의 영양학과 동양의 한방학 모두를 섭렵한 전문가로. “늙지 않기 위해서는 식생활을 고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자신이 스트레스에 약한 체질을 알고 평소의 식사습관을 고치고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체질이 있어서, 생활습관에 개인 차이가 생긴다. 나이 들수록 그 차이는 커지기 때문에 자신의 몸과 마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동양의 한방의학에서는 인간의 몸은 기(氣), 혈(血), 수(水) 세 가지 요소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 나이 먹으면 그 균형이 깨지기 쉽고, 몸의 이상이 생기는 원인이 된다. 이 상태로 두면 몸의 노화가 빨라지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다. 기는 영양과 피, 수분을 몸 구석구석에 옮겨준다. 생명 활동을 행하는 에너지, 기가 부족하면 체력이 떨어져 제대로 보충하는 게 중요하다.”
건강의 근본이 되는 기를 보완하는 식재료는 닭고기, 고등어, 양배추, 산마, 꿀 등. 체력은 물론 기력이 저하됐을 때 추천할 만하다.
“적당한 운동도 필요하다. 몸을 움직임으로써 피의 흐름이 좋아지고, 또한 운동으로 땀을 흘리면 체내에 쌓인 여분의 수분과 노폐물이 배출될 수 있다. 덥다고 냉방기를 틀어놓은 실내에서만 지내면 물의 순환이 나빠지며 발이 붓고 관절통 등의 증상도 나타난다. 여름에도 샤워만이 아니라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가 적절히 땀을 흘리고, 음료수와 음식도 따뜻한 걸 권하고 싶다. 기, 혈 수가 잘 돌도록 하는 생활을 계속해 나가면 몸도 마음도 활기차고, 더위도 먹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