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외식 매장을 운영해 성공하기 힘들다. 치열한 과당 경쟁 속에서 10명 중 9명이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최근 정부 보고에 따르면 신규 창업자 약 99만 명 중 84만 명이 폐업해 창업 성공률은 15%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식당업을 포함해 사람의 감성을 움직여야 하는 서비스업은 성공하는 공식이 따로 있다. 평생을 식당업이 아닌 경리, 회계, 총무, 인사, 기획, 생산 등 업무에 종사한 사람이 10%의 창업자만 성공하는 시장에서 살아남는 공식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매출-비용=이익’이라는 공식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이익=매출-비용’의 공식과 전자의 공식은 순서만 바꾼 것 같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다. 식당 창업을 위해 지금껏 생각해 온 선입견을 배제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선입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청년 창업자의 성공 가능성은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하는 청년층이 증가 추세에 있다. 20대 후반 대학교 졸업을 앞둔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 청년 창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다. 최근 청년층 중에는 취업보다는 창업 쪽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어려운 취업문을 뚫기보다는 창업을 통해 성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청년 창업의 종류는 무척 다양하다. 단순한 외식 매장 창업은 물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나 아이디어 상품을 개발해 유통하는 창업, 적은 자금으로 승부하는 청소업 등의 무점포 서비스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 창업은 선입견이 없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경험과 인맥 부족으로 실패하는 경우도 많아 부모님들이 청년 창업에 대해 우려하는 경우도 많다.
20대 청년 창업의 꿈을 이룬 이민수(25세) 씨의 경우 선입견을 버리고 자신이 부족한 경험과 인맥을 노력으로 승화시켜 성공한 경우다. 10평 남짓한 김밥전문점을 운영해 월 평균 2500만 원 이상 매출을 올리고 있는 이 씨. 이 씨의 성공 비결은 뭘까. 4가지를 짚을 수 있다.
첫째는 운영에 편리함을 더했다. 적은 인력으로도 운영이 가능하도록 주방과 카운터를 일체화함으로써 인건비를 절감하고 이렇게 절감된 원가를 음식에 반영해 푸짐하게 제공했다. 이 씨는 대학교를 갓 졸업한 터라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외식업 창업으로 진로를 결정하면서 동종 업종에 종사하는 점주를 친밀하게 대한 결과 노하우를 빠르게 습득해 자신의 사업에 적용할 수 있었다.
둘째는 대중성 있는 메뉴를 선택했다. 외식업은 유행에 민감하다. 그 때문에 유행을 덜 타는 김밥전문점을 선택한 것이 성공 비결이었다. 김밥은 남녀노소 누구나 가볍게 구매하며, 유행 또한 타지 않는다고 김 씨는 판단했다. 특히 김 씨 매장은 김밥 재료를 다양화하는 차별화를 통해 20~30대 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해 성공할 수 있었다.
셋째 성공 비결은 지속적인 메뉴 개발에 있다. 김 씨는 1개월마다 김밥 하나를 개발한다는 생각으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신제품이 계속 나오다보니 하나의 메뉴에 쉽게 질리는 20~30대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넷째는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점이다.
매일 구매해야 하는 재료의 원가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식재료 공급 회사의 상품 가격을 비교하고 품질에서 차이가 없다면 가격이 저렴한 상품을 적극 도입해 사용했다. 결제 조건을 명확하게 맞춤으로써 신뢰를 얻어 에누리 혜택도 얻고 있어 작은 매장이지만 수익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어려운 외식 창업에서 청년 창업의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이 씨와 같이 자신의 매장을 차별화하려는 노력과 노하우를 습득하려는 노력이 더해진다면 성공의 길은 멀지 않다.
이 씨의 사례처럼 청년 창업은 젊은이 특유의 빠른 습득력에 노하우와 전문지식이 더해지면 성공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따라서 자녀의 창업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가 진출하려는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또한 자부심을 가질 만큼 흥미를 갖고 있는지 등을 파악한 후 조언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글=이준혁 희망창업연구소장)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 동시에 기억의 동물이다. 세월에 쓸려 사라지는 기억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9월의 기억으로 1988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24회 하계올림픽, 그리고 올림픽 유치가 확정됐던 1981년 9월 바덴바덴, 올림픽 유치의 주인공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을 재조명해본다.
1981년 9월 30일, 자정을 앞둔 늦은 시각, 온 국민이 숨죽이고 TV 앞에 앉았다. 시선은 독일의 작은 도시 바덴바덴을 향했다. 사마란치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1988년 올림픽 개최지가 적힌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프랑스어를 알아듣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사마란치의 입에서 나온 “쎄울(서울)”은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집집마다 기쁨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의 9월을 환호의 계절로 만들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가난한 개발도상국이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지는 불과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승리를 예상하기 어려웠던 만큼 기쁨도 컸다. 더욱이 국민들은 상대가 일본이었다는 것이 더욱 기뻤다. 7년 뒤 1988년 9월에는 예정대로 서울올림픽이 전 세계의 전파를 탔다.
세계가 비웃던 유치선언, 세계가 놀란 역전극
서울이 일본 나고야와의 유치경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외국인들의 눈에 대한민국은 여전히 ‘전쟁폐허’ 이미지가 강했다. 더욱이 한국은 앞서 1974년에도 아시안게임을 유치했다가 능력 부족을 이유로 포기한 전력이 있었다. 일본은 이미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경험이 있었다. 기반시설, 자금력, 국제스포츠계 인맥 모든 면에서 서울은 나고야에 경쟁이 되지 않는 상대로 보였다.
국내의 시각도 올림픽 유치에 부정적이었다. 나고야와 표 대결을 해 봤자 형편없이 져 망신당할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다. 남덕우 당시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들은 설령 유치에 성공한다 해도 대회를 치러 낼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올림픽 망국론’을 펼쳤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유치 신청을 철회할 거란 소문이 파다했다. 훗날 서울올림픽 민간추진위원장이었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은 독일 바덴바덴으로 떠날 때 정부로부터 “창피만 당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개최지 선정 당일까지 서울의 승리를 점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외신은 누가 이길지가 아닌, 나고야가 몇 표 차이로 이길지에 초점을 뒀다. 하지만 결과는 52 대 27. 전체 79표 중 52표를 얻은 서울이 나고야를 두 배 가까이로 따돌리고 1988년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권을 따냈다. 세계가 깜짝 놀란 대이변이었다.
냉전마저 녹여낸, 역사상 가장 성공적 올림픽
1988년 9월 17일 예정대로 서울올림픽의 막이 올랐다. 서울올림픽에는 160개국에서 1만3304명의 선수단(선수 9417명·수행인원 3887명)이 참가해 올림픽 역사상 최다 참가국과 참가인원 기록을 경신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 냉전으로 ‘반쪽 대회’가 됐던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외신들은 분단국가인 한국에 냉전으로 대립하던 각국이 모인 장면을 보며 ‘냉전종식의 신호탄’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재정 측면에서도 당초의 우려를 불식했다. 당시는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의 이스라엘 선수단 테러사건으로 보안비용이 폭증했고,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몬트리올시의 파산 등으로 올림픽 유치 회의론이 퍼지던 시기였다. 올림픽조직위원회는 대회에 총 2조3826억 원이 투입돼 2520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상황에서 회계의 오차범위를 다소 고려한다 해도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둔 것만은 분명했다.
대회운영 자체도 성공적이었다. 전 국가 차원의 역량을 결집한 결과였다. 개막 전까지만 해도 성공 여부를 반신반의했던 세계 스포츠계는 서울올림픽의 매끄러운 대회 운영을 칭찬했다. 대회기간 총 237개 세부 종목의 경기 중 지연된 경기는 단 6개뿐이었다. 대회에서는 냉전의 양 축이었던 소련과 미국이 나란히 1, 2위를 기록했고 동독이 3위에 올랐다. 한국은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역대 최고성적인 4위를 기록했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올림픽 이후 달라진 한국
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의 도약에 커다란 시너지를 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두고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한국인은, 특히 젊은이들은 서울올림픽 이후 왕년의 고질적인 고립주의, 패배의식, 열등감을 털어버렸다”고 표현했다. 김운용 전 IOC부위원장은 “일본의 메이지유신이 일본인에게 신분에 상관없이 성공할 수 있다는 의식을 심어준 것처럼 서울올림픽도 우리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경제 측면에서 ‘3저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과 맞물린 올림픽의 성공은 오늘날까지도 한국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수출산업에 커다란 호재가 됐다. 올림픽은 ‘코리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던 세계 각국에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알렸다. 한국 경제의 국제적 지위가 올라간 것이다. 한국 기업의 공격적인 세계무대 진출이 시작된 시점도 서울올림픽 이후부터다.
전반적인 사회 모습도 대한민국은 올림픽 전후로 딴판이 됐다. 서울에 쏠린 세계의 이목은 민주화를 앞당겼다.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해 최저임금법이 제정된 것도 1988년이다. 임금이 높아지자 내수가 급격히 성장했다. ‘마이카 시대’로 대표되는 소비시대가 도래했다. 학교에서는 단계적으로 급식이 시작됐고, 먹거리와 생활용품을 공산품이 채워가기 시작했다. 올림픽을 계기로 마련된 지하철, 아파트, 체육시설 등의 사회간접자본도 한국인의 삶을 바꿨다.
해외 CEO들이 우리나라에 올 때마다 놀라는 장면들이 있다. 바로 아침 7시 부터 강연을 듣고 토론을 하는 게 일종의 문화가 된 한국 경영자들의 모습이다. 단순히 인맥을 쌓는 게 아닌, 800~900여 명의 경영자들이 모여서 열띤 배움을 추구하는 모습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과 같은 세계적 CEO들에게도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은 바 있다. 세계미래포럼(이사장 이영탁) 조찬회에서 만난 두 모자(母子)의 모습도 그런 강렬한 아우라가 있었다. 앞 좌석에 앉아 강연에 귀 기울이며 바쁘게 메모를 하는 그 모습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어떤 동기가 있는 것일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상이 비범해 보이는, 보통 할머니 같지 않은 느낌. 1960년생인 아들과 함께 세계미래포럼 조찬회에 참석한 1938년 생 이득해 씨는 첫눈에도 보통이 아니라는 인상을 줬다. 그 인상처럼, 그녀는 범상치 않은 삶을 갖고 있었다.
“부산에서 태어나서 대학은 서울에서 나왔어요. 법을 공부했는데, 친구들은 전교 1, 2등 하던 내가 판사나 검사가 안 된 것에 대해 의구심이 많아요. 동생들 키우느라 그랬죠. 그런데 내 자식들은 내가 법 공부 계속했으면 시집도 안 가고 일하다가 정의를 위해 싸우는 투쟁가가 됐을 거라고, 하나님이 도운 거라고 해요.”
자신감, 몰입과 고지식함, 그리고 승부욕. 그녀도 인정하는 자신의 특징이었다.
“어떤 직업을 해도 내 적성에 맞아요. 수학학원, 레스토랑… 한솥도시락은 전국에 200개 체인이 있었는데, 거기서도 1, 2등을 했었죠.”
몰입·강직·승부욕으로 인생을 경영하다
그녀는 현재 광고회사를 경영하고 있다고 한다. 4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은 물수건을 단체에 공급하는 사업을 했었다. 말하자면 부부가 함께 경영자였던 셈이다.
“남편 집안이 잘 살았던 건 아니고, 저와 같이 맨땅에 일군 거예요. 애초에 결혼할 때 양쪽 집에서 굉장히 반대가 심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보내기 싫었고, 시댁에서는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아주 싫어했어요. 좀 내가 키도 작았고…. 이해돼요. 그런데 막상 결혼하니 내가 시어머니한테 잘못한 적 없고 시어머니도 나에게 대놓고 뭐라 하신 적 없어요. 하긴 야단을 쳐도 내가 뭐를 모르니까. 그냥 칠푼이같이 해맑았던 거죠.”
독실한 크리스찬으로서 그녀는 네팔에서 선교사업과 함께 교회를 짓고 있다. 힌두교 쪽에서 작업을 저지해서 힘들지만 내년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4년 전에는 네팔 아이 세 명을 한국에 데려와서 공부시켰어요. 중학교 아이를 고등학교에 보내고 세 명 다 대학도 보냈어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간 아이가 있는데, 걔는 자기 나라 가면대통령도 할 수 있겠죠. 그 아이들을 무섭게 키웠죠. 내 아이처럼. 그래서인지 엄마라고 불러요.”(웃음)
공부는 하면 할수록 자신을 발견하게 만든다
“공부는 할수록 나를 발견하는 일이죠. 공부는 하고 싶은 게 아니고, 해야할 거예요.” 그녀는 앞으로 배우고 싶은 분야로 미래가 들어가는 미래 지향적인 학문이나 건강 관련 분야를 꼽았다. 나이가 80이 다 되어 가는데 공부를 하다보면 피곤하지 않을까?
“피곤해도 공부할 땐 몰라요. 졸면서도 재밌고. 뭐 존 적은 없는데, 내가 피곤해도 새벽부터 내내 공부하니까.”
공부는 그녀의 에너지 넘치는 삶의 동력원이었다. 평생교육, 경영자과정, 일본어, 네팔어, 영어 등등, 그녀의 지적 욕구는 끝이 없어 보였다. 그녀의 그런 기질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제 어머니가 동생들이 많아서, 동생을 업고 학교를 갔다고 해요. 가서는 당시에 문도 없던 교실의 밖에서 안을 쳐다보면서 공부하셨다고. 그리고 동네에 간이역이 있는데 거기에 앉아서 사람들이 시계를 보고 ‘몇 시 몇 분이네’ 하면 그걸 보고 시계 보는 법을 익히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가 일제 때여서 어머니가 일본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다보니까 너무 잘하게 돼서 일본 부대에서 통역을 맡았었어요. 거기에 저를 항상 데리고 다니셨죠. 그때 부대에 가면 먹을 게 많으니까 이것저것 주는데 저는 누가 주는 건 안 먹고 어머니가 손에 쥐어주는 것만 먹었대요. 지금도 좀 그런 성격이 있긴 합니다.
너무 가난하니까 어머니가 올 때 통에 짬밥을 한 동이 이고 오시는데, 그 속엔 먹던 군인들 침도 들어 있고 코도 있었지만 그냥 끓여서 먹었어요. 근데 내가 그걸 먹을 수 있겠어요? 그걸 봤는데…. 못 먹으니까 난 안 먹었고 그래서 키가 안 자란 거 같아요.”
그녀는 자신의 교육비를 한 달에 백만 원을 쓰고 있단다. 많이 들 땐 300만 원도 드는데, 연평균 1200만~1500만 원 가량이라고,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게 교육비,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문화비, 경조사비 순. 한 달 용돈은 10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배움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후회 없는 삶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돌이킬 때, 이런 삶을 살았다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되는 점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은 없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라 그러면 싫어요. 지금이 좋다기보다는 그렇게 살아올 자신이 없어요. 너무 힘들게 살아왔고, 그렇게 가난했고, 하지만 그래도 한 번도 부잣집 아이를 부러워했다거나 하진 않았어요. 내 공부하고 내가 하는 것들만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녀는 최선을 다하지 말라고 3남2녀 자식들에게 얘기한다고 한다.
“‘차선만 다해라, 최선을 다하면 사람이 간다’라고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말이 돼버리는 거 같아요. 그보다 저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을 믿거든요. 그걸 위한 차선입니다.”
나이를 먹고 인생의 경험치가 쌓여도 늘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다. 특히, 은퇴한 중년 남성은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 변화가 생기며 관계 앓이를 하게 된다. 이덕신 이사를 만나 은퇴이후 관계리스크를 슬기롭게 넘어설 수 있었던 방법을 들어봤다.
듣고 싶은 말을 먼저 하라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남편 때문에 볼멘소리를 하는 아내들이 늘고 있다. 빈둥거리며 가사 일을 돕지 않는 남편에 서운한 아내와 잉여인간 취급당하는 남편 사이의 갈등은 깊어만 간다. 이런 처지에 놓인 남편들에게 이 이사는 “스스로 집안에서 내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가 집에 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재활용품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처리하는 것이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면 괴롭지만 자발적으로 할 일을 찾아 적극 실행하면 환영받고 존중받는 가장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은퇴했을 때 집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만 집의 주인이 되고, 내 자리가 생기게 된다”며 가족의 일원으로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는 가족 간 소통의 방법으로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상대에게 먼저 하라”고 제시했다. 그는 아내에게 “그동안 많이 서운했지? 뭐든 얘기만 해. 나도 때론 짜증내고 화냈지만 돌이켜보면 참 미안하고 고마워”라며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털어 놓는다. 그렇게 고마운 마음을 먼저 건네고 나면 아내 역시 그동안 고마웠던 마음을 표현한다. 나이가 들수록 ‘가족 사랑하는 마음이야 뻔히 아는데 뭐 하러 얘기하나’ 싶어 애정표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의무감에서라도 적극 대화하고 표현해야 한다. 그래야만 가족끼리 오해가 안생기고 따뜻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가장으로서 자리를 찾기 위한 노력 중 하나로 그는 지난 2006년 ‘아버지 학교’를 이수했다. 당시 받은 수료증을 늘 지갑에 넣고 다니며 그 의미를 되새긴다. 가족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TV 드라마를 보는 대신 2주에 한 번 온가족이 함께 영화관을 찾는다. TV에 빠져 있다 보면 가족 간 대화도 줄게 되는데 영화를 보면 가족이 외출하는 즐거움과 함께 그날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좋은 작품을 보고나면 그 감동과 여운이 오래 남아 가족 간 애정을 확인하고 마음으로 하나 되는 데 도움 된다.
더 현역처럼 움직여라
지난날의 열정으로 쌓아 올린 인간관계는 은퇴와 함께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일’로 엮였던 모든 인맥이 이젠 서로에게 쓸모없어진 것만 같아 허무해진다. 이 이사는 이러한 상실감 대신 현역 때와 똑같은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재능기부 형태의 ‘봉사활동’을 선택한 그는 KT 사회공헌 Dream 드림 이사, 교육부 산하 (사)한국강사협회 이사, 서울시 평생학습 강사, 감정노동관리사 홍보대사 등 현역 때보다 더 다양한 타이틀로 활동하며 새로운 인맥을 얻었다.
“바쁘게 생활하고 열정이 넘치는 표정으로 일하다 보면 자연스레 인맥은 따라온다. 어느 정도전문성까지 갖추게 되면 주변에서 도움을 청하고, 만남과 대화를 원하는 것은 물론 강연도 초청받게 된다.” 돈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지금처럼 많은 일과 인맥을 얻지 못 했을 것이다. 그는 ‘돈을 초월한 사람이 빠르게 성장한다’라고 자부한다.
오래된 친구일수록 더욱 베풀어라
고향 친구만큼 편한 관계도 없지만 그럴수록 더 세심한 노력 필요하다. 어릴 적 도토리 키 재기로 비슷하게 뛰놀던 아이들이 사회진출을 해서 살아가다 보면 생활수준 등의 편차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누구는 정말 힘들게 육체노동을 하는가 하면 누구는 사장님 소리를 듣기도 한다.
“항상 어려운 친구들을 먼저 눈여겨보고 배려해야 한다. 편하다는 이유로 말을 막 하고 행동을 소홀히 하면 더욱 상처받는 게 고향친구들이다. 친구가 겪고 있을 어려움에 대해 먼저 물어보고 그의 처지에 관심을 갖는노력이 필요하다. 혹여 내가 조금 잘났다고해서 친구를 무시하는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 친구끼리도 겸손해야 한다.”
그는 작게라도 베푸는 미덕을 지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과수원에 있는 배나무 한 그루를 분양받았다. 그 배를 직접 따서 친구들에게 선물하곤한다. 시중에서 깨끗하게 닦여 상품화된 배보다는 ‘내가 직접 솎아내고 봉지 씌워서 수확한 배인데, 너무 달고 맛있어서 친구 생각나서 가져왔어. 어디 맛 좀 볼래?’하면서 서너 개씩 비닐봉지에 담아 건넨다. 친구들은 ‘내 친구의 손길이 들어가고 땀이들어간 거구나’하면서 더 의미를 두고 고마워한다. 작은 정성과 노력이 오랜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힘이 된다.”
집 밖에서 마주치는 이웃은 모두 나의 고객이어라
멀리 있는 친척보다 때로는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이 바로 이웃이다. ‘이웃사촌’이라고까지 불리는 그들과의 관계 또한 소홀이 할 수는 없다. 이 이사 역시 이웃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하기 위한 노력을 빼놓지 않는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만나는 모든 이웃은 나의 고객이라고 생각한다. 출근길에 엘리베이터나 아파트 입구 등에서 이웃을 만나면 활짝 웃으며 손을 뻗어 크게 인사를 한다. 요즘 사람들이 워낙 감정에 메말라 있어 처음에는 ‘저 사람 너무 오버하는 거 아냐’하고 부담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딱 다섯 번만 지나고 나면 그때부턴 함께 인사도 하고 호응도 해준다.”
이 이사 역시 처음에는 이웃의 냉랭한 반응이 힘들기도 하지만 서서히 마음을 열고 즐거워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정도는 감수한다. 웃는 얼굴로 활기차게 인사만 해도 돈과 시간을 투자 하지 않아도 이웃끼리 친밀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그는 아파트 단지 내 최고 인기 좋은 선생님으로 알려졌다. “그 501호 아저씨만 만나면 기분이 좋아져”라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 이러한 칭찬세례뿐만 아니라 실제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거나 이웃의 의견을 모아 일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에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그다.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대개 표정이 어두워지고 밋밋해진다. 그럴수록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더 의도적으로 밝게 웃는 얼굴로 마주해야 한다. 나 역시 거울 보면서 웃는 연습도 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주려고 한다. 이런 노력들이 인생 후반전 관계 형성에 있어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뭘해도 톡톡튀는 대한민국 1% 슈퍼 울트라 부자들.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일상에서 그들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슈퍼갑부들은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을 띠고 몸을 은신하거나 아니면 아예 군중들이 모이는 대중적인 장소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들은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생활을 무척이나 궁금해한다. 그래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직접 나서 슈퍼갑부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취재해봤다.
◇대기업 2ㆍ3세대들의 럭셔리 물물교환
자산이 1000억원이 넘나드는 슈퍼리치들은 대개 미술품(그림)을 좋아한다. 포르셰나 BMW 등 고급 자동차는 이미 모두 섭렵했고 명품패션도 모두 경험해 본 까닭이다. 차원이 다른 럭셔리 상품에 눈길을 돌리는 셈이다. 게다가 희귀 그림 등 안전자산인 고가의 미술품은 오래 묵혀둘수록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기도 하는 데다 자식에 상속할 경우 세금을 피하는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어 더 인기가 높다.
슈퍼리치들이 자신의 저택에 미술품이나 골동품을 보관하는 방을 따로 마련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그래서 일까. 극소수 이너서클(inner circle) 문화에 익숙하고 이를 즐기는 슈퍼갑부들은 자기들끼리 희귀 미술품과 고급주택을 맞교환하기도 한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맞닥뜨린 결과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3세인 유종팔(45ㆍ가명)씨가 그런 케이스였다. 수년전 서울 강남구에 25억원을 호가하는 고급주택을 사들인 그는 최근 이 집을 처분해야 했다. 당시엔 여자친구와 단둘이 조용히 지내기 위해 강남의 한 고급주택가 빌라를 선뜻 구입했지만 최근 결별하며 필요 없어진 것. 이 와중에 평소에 막역하게 지내던 VVIP마케터가 희귀 미술품을 가진 슈퍼리치를 연결해 줬고 강남집과 바꾸기로 결정했다.
유씨는 "희귀 그림 주인이 이 분야에 잔뼈가 굵은 대가인 것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딱히 현금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 그림과 교환했다. 세금을 아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며 "앞으로도 예술품들을 모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5000만원짜리 경주마 타는 거부도(巨富), 경주마에 투자로 벌어들인 돈이 10억
부동산개발업으로 1000억원대 슈퍼갑부 클럽에 가입한 김봉갑(70ㆍ가명)씨. 5년전부터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요즘 달고살던 수면제를 단방에 끊었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서러브레드 경주마를 타면서 부터다. 사연은 이랬다.
2009년 심장발작으로 전신마취 수술 후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진 김씨. 죽을 고비는 넘겼지만 이후 찾아온 지독한 불면증이 그를 괴롭혔다. 수면제 복용은 당연하고 불면증 클리닉 치료까지 받아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하지만 지인의 권유로 경기도 부천 인근 승마장에서 경주용말을 타고 나선 밤 9~10시를 넘기지 못한다. 그는 벌써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부터 졸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경주용말을 타면 낙마에 대한 걱정 때문에 몸과 정신(멘탈)이 바짝 긴장을 한다. 때문에 말을 타고 내리면 몸의 긴장이 갑작스레 풀리면서 피로감이 몰려와 꿀잠을 잘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말을 타는 자체가 굉장한 체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곯아 떨어지는 것이 시간문제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경기도에 한 승마클럽 회원인 그는 요즘에도 일주일에 두세번씩 경주마에 몸을 싣고 클럽 인근 갈대밭으로 갯벌로 내달린다. 뿐만 아니다. 그는 마주 명함까지 팠다. 지금까지 경주마에 투자로 벌어들인 돈이 10억원에 이른다. 손익을 계산해보면 투자금 대비 아직 마이너스이지만 경주 대회 결과에 따라 돈을 더 벌수도 있는데다 상위랭크한 말들도 있어 낙담하지 않는다. 말들 덕분에 지독한 불면증과 이별한 것만 생각해도 말은 여간 효자가 아니다. 더욱이 마주 동호회에서 대기업 임원을 비롯해 전직 장관, 장성 등 고급 인맥도 쌓을 수 있었다. 주말마다 마방을 찾아 자식같은 말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는 그런 고마움의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전 재산 기부하는 젊은 갑부 "또 벌면 되지요"
슈퍼리치를 상대하는 시중은행 PB팀장들에 따르면 돈이 많은 부자들도 5000원짜리 점심값을 아낀다. 그 돈을 아껴서 다시 종잣돈을 만들어 100억원대, 200억원대 300억원대 등 순차적으로 부자 클럽에 가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시 지독하다라고 할만큼 근검절약하는 사고방식과 습관이 그들을 부호의 위치로 올려준 셈이다.
하지만 기부할 땐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재산을 재단 등에 선뜻 기부하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특히 나이가 젊거나 IT(정보기술)계열에 몸담도 있는 젊은 갑부들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국내 한 IT기업에서 임원직을 맡고 있던 박웅구(48ㆍ가명)씨가 그런 케이스다. 그의 재산을 관리하던 담당 PB에 따르면 100억원에 이르는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그는 사실상 전 재산을 한 재단에 기부했다. 자신이 보유한 주식 모두를 그 재단에 기부하고 나니 박씨에게 남은 재산이라곤 분당의 아파트 한 채와 자동차가 전부였다고. 특히 그 엄청난 거액을 기부하고도 그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박씨는 "나는 여전히 회사에서 다시 돈을 벌 수 있다.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 회사에서 주식을 재단에 기부한 임원들이 서너명 더 있었다고 한다. 그의 담당 PB는 "기부로 인해 자신의 전재산을 내놓는 데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만큼의 부를 이룬 슈퍼리치는 역시 일반인들과 멘탈은 물론 가치관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슈퍼갑부는 신변노출을 꺼리다보니 괴이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특히 보통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야할 때 낡은 차를 타고 가기도 하고 일부러 헌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기도 한다. 자신이 고액자산가임을 숨기기 위해서다. 심지어 고급주택의 모델하우스(견본주택)에 15년 이상된 국산 구형 자동차를 끌고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한다. 이에 그들을 제대로 알아보는 것도 슈퍼리치 마케터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창업에는 나이가 없다. 불황으로 인해 명예 퇴직한 중∙장년층이 창업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특히 KT의 특별명예퇴직 인원은 역대 사상 최고 규모인 8300명이다. 그 중 50대의 비율은 절반을 웃도는 69%에 이른다. 이들 중 많은 수가 제 2의 인생을 위한 도약으로 창업을 선택하는 추세다.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다양한 분야의 인맥과 풍부한 경험은 창업에 있어서 큰 장점이다. 그러나 중∙장년층에게는 높은 연령대와 낮은 체력이라는 한계점이 있다. 이 때문에 시니어 예비창업자들은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해야 하거나 노동 시간 대비 효율성이 낮은 창업 아이템을 기피하는 편이다.
트램펄린을 카페에 도입한 키즈카페 ‘점프노리’의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하루 9시간 노동에 비해 수익률은 높은 편이다. 게다가 임대료와 관리비 외에 지출도 많지 않은 편이어서 단기간에 투자금 회수가 가능하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점프노리는 불고기피자, 돈까스, 햄야채볶음밥, 로스트 오븐 치킨 등 모든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식사메뉴를 갖추고 있다.
점프노리 관계자는 "모두 반조리상태로 매장으로 배송되기 때문에 전문 요리사 없이도 조리가 가능하다"며 "때문에 소인력으로도 매장 운영이 가능해져 인건비 부담도 적다"고 말했다.
주거문화 창조기업을 표방하는 ‘핸디페어’는 주거와 관련된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랜차이즈 업체다. 적은 투자금으로도 창업이 가능한 소자본 창업아이템으로 주목 받는다. 성실한 창업자라면 작은 평수의 매장에서도 적지않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핸디페어만의 철저한 교육을 통해 기술을 배우기만 하면 누구든지 창업할 수 있어 예비창업자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전언이다. 특히 핸디페어는 인테리어나 리모델링 등 대형공사의 경우 가맹점주들간의 협업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 노동 부담도 적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캔들 산업이 성장하면서 ‘퀸비캔들’은 천연 캔들 전문점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퀸비캔들에서 수입하는 캔들은 천연 비즈왁스와 천연향료만을 사용하여 인체에 무해하고 향도 은은해 인기가 많다.
회사측은 "캔들은 가격대가 높고 한 번 사용한 고객이 제품을 다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 작은 매장 규모 대비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인건비 부담이 없으며 초보창업자도 쉽게 운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구조조정 차원에서 명예 퇴직한 인원들이 창업시장으로 대거 유입되고 있는 추세”라며 “이에 따라 중∙장년층에게 적합한 업종들의 전망이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아들아, 이거 하고 싶은데 무슨 어플을 써야 되니?”
“에이, 엄마 그냥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봐요. 저 바빠요.”
똑똑한 기계 덕분에 살기 좋은 세상이 됐지만 시니어들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맘껏 모바일을 다루지만 시니어들에게는 아직 낯선 게 스마트 기기 사용법이다.
그렇지만 어려울 것이란 선입견만 없애면 누구든 손쉽게 스마트 세상에서 맘껏 정보을 얻을 수 있다. 공개돼 있는 정보는 위아래가 따로없고, 불평등이 있어서는 안된다.
조금만 숙달된 과정만 거치면 컴퓨터가 없이도 길거리에서 필요한 것을 검색할 수도 있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하 어플)을 통해 게임을 하거나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 어떠한 어플을 사용해야 될지 몰라 헤매는 시니어들이 적지 않다.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 마켓이나 아이폰의 앱 스토어(App Store)에서 셀 수 없을 만큼의 어플이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에스엔에스(SNS:Social Network Service)와 스마트폰을 통해 세대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연구를 하는 SNS 소통연구소의 이종구 소장은 이 같은 고민을 하는 시니어들을 위해 9개의 어플을 추천했다. 이 9개의 어플 중 사용법이 비교적 간단한 5개의 어플을 소개한다.
① 팟 게이트 (Pod gate)
“구글(Google), 네이버(Naver), 다음(Daum)이 검색포털사이트라면 팟게이트(Pod gate)는 어플 포털 커뮤니티라고 보면 됩니다.”
이 소장이 가장 먼저 소개한 것은 팟 게이트(Pod gate)다. 이 어플은 다른 좋은 어플을 추천해 주는 어플이다. 기본적으로 새롭게 출시된 어플에 대해 뉴스를 제공한다. 또한 최근 인기 있는 어플에 대한 순위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어플의 최고 장점은 따로 있다. 원래는 유료 어플이지만 이벤트로 무료 다운로드가 가능한 어플을 소개해 주는 기능이다. 이 기능만 잘 이용해도 좋은 유료 어플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복권 이벤트를 진행해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안겨주기도 한다.
② 캠카드(CamCard)
캠카드는 명함을 인식하는 어플이다. 높은 정확성을 가지고 있어 내용이 복잡한 명함까지도 잘 정리해준다.
타인에게서 받은 명함은 정리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쌓이면 찾기 힘들고, 점차 짐이 돼버리기 쉽다. 이렇게 가지고 있자니 불편하고, 안 가지고 있자니 찝찝한 명함을 어떻게 하면 쉽게 관리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이 어플을 통해 한방에 해결된다.
손에 들고 있는 타인의 명함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자동으로 이름ㆍ전화번호ㆍ주소ㆍ홈페이지 등이 각자의 카테고리에 맞게 자동 입력된다. 이 어플을 통해 손쉬운 인맥관리를 해보자.
③ 이럴땐 이런 앱
이 어플만 있으면 자식들에게 스마트폰 어플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을 처음 구입하면 가장 먼저 필요한 어플들을 설치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어플을 깔아야 할지. 또 어떤 어플들이 있는지 몰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때 사용하면 좋은 어플이 ‘이럴땐 이런앱’이다.
‘이럴땐 이런앱’은 상황별로 유용한 어플들이 정리가 되어 있어 카테고리에 따라 필요한 어플을 골라 사용할 수 있다. 생활, 교육, 엔터테인먼트, 여가, 유틸리티, 시즌 등으로 구분 돼 있다. 각각의 분류 안에 소분류로 찾아보기 쉽게 정리가 돼 있다.
④ 후후(WhoWho)
‘후후(WhoWho)’는 전화가 올 때 이것이 스팸전화인지 알려주고 이를 차단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어플이다. 대출이나 스마트폰 구매하라는 짜증나는 전화가 많이 올 때 KT전화번호부와 연계돼 상대방 전화번호가 어떤 형태인지 볼 수 있다.
전화를 받고 나서 그것이 스팸전화이면 바로 스팸 전화로 등록할 수 있다. 또 누군가 전화 받아 등록한 번호라면 상세 설명으로 어디에서 전화가 왔는지 알려준다. 아울러 스팸 신고 된 번호는 ‘스팸신고 몇 회’라는 문구가 핸드폰 액정에 떠 구분하기 편리하다.
스미싱 문자 메시지(불법 사기 문자메시지) 탐지하는 기능도 있어 요즘 피해가 많은 스마트폰 스미싱 피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⑤ 에그몬(Egg Mon)
바코드와 QR-CODE를 인식할 수 있는 어플이다. 특히 책이나 상품의 바코드를 인식하면 가격비교까지도 바로 확인할 수 있어 합리적인 소비를 할 때 유용하다.
또 하나 매력적인 기능은 각 매장마다 발행해 주는 마일리지 카드를 에그몬 하나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에그몬에 각 회사의 마일리지 카드나 통신사 카드 등을 등록해 넣고 다니면 번거롭게 카드를 따로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진다. 화장품 포인트 카드, 음식점, 기업의 포인트 카드가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어플이다.
# 그 밖에 추천 어플
SNS소통연구소의 이 소장은 이 밖에도 4개의 어플을 더 소개했다. ‘캠스캐너’는 일종의 스마트폰 스캐너로 신분증이나 공공기관 제출 문서를 선명하게 파일로 남기고 싶을 때 유용하다. 신분증이나 공공기관 제출문서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게 되면 배경의 홀로그램 때문에 신분증 일부가 잘 안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 때 이 어플을 사용하게 되면 일반 프린터에서 스캔한 것처럼 선명한 결과물을 남긴다.
‘에버노트(Evernote)’는 메모를 할 수 있는 어플이다. 이 소장은 “메모 어플 중에 가장 좋은 어플”이라고 설명했다. 텍스트, 음성, 그림을 동시에 저장할 수 있다. 특히 가장 좋은 점은 그림 이미지 안에 있는 텍스트를 인식할 수 있어서 영수증이나 책을 보고 정리하기에 매우 좋다.
이미지 합성 어플도 소개했다. 바로 ‘포토퍼니아(Photofunia)’다. 이 소장은 “스마트폰과 컴퓨터에서 동시에 사용할 수 있어 유용하다”고 말했다. 이어 “400여개의 합성이미지가 있는데 사용하기도 매우 편해서 카톡이나 밴드를 할 때 재미있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어플”이라고 상세한 설명을 해줬다.
마지막으로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동기화해 사진이나 음악 등을 선 연결없이 주고 받을 수 있는 ‘모비즌’도 유용한 어플 중 하나다.
초저금리가 지속되고 있다. 이제 시중은행에서는 3% 예금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은퇴자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저금리 기조는 치명적이다. 필요한 노후자금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어떤 은퇴자가 매년 1000만 원의 이자수익이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이 은퇴자는 금리가 10%라면 1억원만 있어도 필요한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금리가 5%로 떨어지면 2억원, 2%에서는 5억원, 1%에서는 10억원이 필요하게 된다. 금리가 특정 수치 이하로 떨어지면서 필요한 자금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일의 가치가 올라간다…오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라
재미있는 점은 이처럼 저금리가 확산되면서 돈의 가치는 떨어지지만 일의 가치는 오히려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저금리 시대에 일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이 정년 후에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서 연간 1000만원 정도의 수입이 발생한다고 하자. 금리가 2%라고 가정하면 이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은 현금 5억원을 들고 있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금리가 1%로 떨어지면 이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의 가치는 10억원으로 증가하게 된다. 초저금리 시대에는 이처럼 금리가 떨어질수록 일의 가치는 급격히 올라가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의 효율적인 노후준비란 어떤 것일까.
일단은 보다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일의 가치가 올라가는 시대이므로 더 오래 일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노후준비가 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노년층의 업무 능력에 대해서 의구심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버드 대학교 하워드 가드너 교수의 다중지능 검사결과를 보면 논리, 수학, 공간 지능은 나이가 들면서 떨어지지만 일상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반면 언어, 음악, 인간관계, 자기성찰, 자연친화 지능은 더 높아진다.
또한 사회적 능력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성숙해지고 강해진다. 오랜 사회 경험으로 얻은 인맥과 정보력, 여기에 사회적 성공의 열쇠인 감성지수(EQ) 역시 나이가 들수록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문제는 자신감인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재교육을 통해서 오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각종 단체에서 제공하는 전직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금융자산은 중위험 · 중수익 추구를
일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해서 금융자산 관리에 소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을 얻기 위해서 더욱 부지런해져야 한다. 3~4% 이상의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면 필요한 노후자금 규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리스크를 통제하면서도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중위험 · 중수익 자산관리 전략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위험 · 중수익 자산관리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면서 시중 예금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말한다. 이에 속하는 상품군으로는 인컴 펀드, 절대수익 펀드, 해외채권형 펀드, 변액연금, 수익형 부동산 등이 있다.
그렇다면 왜 중위험 · 중수익 자산관리 인가. 은퇴 후 자산관리를 너무 안정적으로 가게 되면 은퇴기간이 길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의료비 등이 발생할 경우 노후자금이 부족해지기 쉽다. 반대로 고위험을 추구하게 되면 현역기간과 달리 추가 적립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못할 경우 원금을 회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
중위험 · 중수익 자산관리가 대안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자금여유가 충분하다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런 저금리 시대에 늘어난 수명을 감당할 만큼 충분한 노후자금을 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윤치선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구위원
첫 인상부터 강렬했다. 빳빳한 가죽재킷에 눈빛이 보이지 않을 만큼 새까만 선글라스, 그리고 재킷과 말구두까지. 68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박력 있는 패션 감각이었다.
바이크 동호회에서 쓰는 별명인 ‘종로신사’보다 ‘종로 터프가이’가 어울리는 그였다. 그렇다. 68세의 김홍선 씨는 커다란 오토바이 ‘할리 데이비슨’을 즐기는 바이커(Biker)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젊은 열정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 김 씨의 첫 번째 도전은 바로 ‘할리 데이비슨’이었다.
서울 종로에 터를 잡고 산악회 세 개를 운영할 만큼 김 씨는 등산을 즐겼다. 그러나 너무 잦은 산행이 고행이 됐던 것일까. 무릎 이상 증세 탓에 한동안 외출도 할 수 없었던 상태가 된 적이 있다. 힘든 나날들이었다. 사람과의 만남을 즐기고 활동적이었던 그가 꼼짝달싹 할 수 없으니 마침내 우울증 초기 증상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다른 취미 생활을 만들어 즐거운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이 많아졌다.
“여보, 바이크 한 번 타보는 것은 어때요? 당신 바이크 타고 싶어 하셨잖아요.”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 아내 김남연(63)씨가 깜짝 놀랄만한 제안을 했다. 여느 60대의 아내였으면 바지자락을 붙잡으며 말렸겠지만, 사진 찍기를 취미로 했던 그의 아내는 달랐다. 그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찍기와 같은 색다른 취미가 삶의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그러나 김 씨는 선뜻 나서지 못했다. 젊은 시절 바이크가 동경의 대상이긴 했지만 환갑에 가까운 나이가 되자 망설여졌다. 그러나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우울증이 깊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울증 극복. 그것을 위해 김 씨는 결국 바이크라는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 무미건조함에서 뜨거운 희열로
“바이크를 시작한 것을 하나도 후회하지 않아요. 바이크를 시작한 후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삶으로 변화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바이크를 즐기다 보니 배려와 협동심도 생기더라고요.”
무미건조했던 삶이 촉촉해졌다. 바이크 덕분이었다. 도전을 망설였던 김 씨는 하절기 주 2~3회, 동절기 월 1회 바이크를 즐길 정도로 바이크 마니아가 됐다. 이제는 바이크 동호회의 멤버들과 호형호제할 정도로 많은 인맥도 형성됐다. 60대 바이커는 아마 전국에 10명도 안될 것이라며 김 씨는 자신의 멋있는 취미 생활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웠다.
# 빠져 나올 수 없는 바이크의 매력
“바이크 특유의 폭발음과 함께 들리는 심장소리, 그리고 그것과 어우러진 자연의 경관을 보면 벅찹니다.”
김 씨는 기자에게 자신이 투어(Tour)했던 곳의 사진을 소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소개하는 그의 입가에는 미소로 가득했고, 표정에는 강한 자부심이 배여 있었다. 김 씨가 유난히 마음에 들었던 장소는 소양강 옛길이었다. 강을 끼고 즐기는 약 50km의 도로가 그렇게 눈이 부셨다고.
김 씨는 바이크가 매력적인 이유를 한 가지 더 설명했다. 바로 튜닝(Tuning)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바이크에 빠져있는 사람들 중 튜닝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다. 이와 함께 어울리는 복장을 하나씩 하나씩 갖추어가는 것도 색다른 재미라고 했다. 큼지막함을 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위협감까지 느끼게 하는 바이크보다 오히려 복장의 가격이 비싼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김 씨는 그것을 즐긴다. 현재 안정적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금전적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색다른 매력을 느끼고 많은 사람과 이를 공감하는 것. 그것이 바이크의 매력인 것이다.
# 68세,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이제 바이크뿐만 아니고 음악에 도전할거에요. 기타, 플롯, 색소폰과 같은 악기를 배우려고 해요. 곧 시작할 계획입니다.”
바이크를 시작으로 김 씨의 도전은 탄력이 붙었다. 바이크를 즐기는 사람들 중에는 유난히 감성적인 사람이 많다고 했다. 자신도 그렇다고. 그래서 김 씨는 바이크와 음악을 접목 시키려고 한다. 바이크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60대 우울증 초기 증상에 힘들어 하던 중년 남성 김 씨가 새로운 도전을 망설여하는 신중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진심어린 조언이었다.
“자신만의 취미생활을 가지십시오. 취미가 있어야 노후가 즐거운 것 같습니다. 저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합니다. 얼마나 살지 모르고 체력적으로 점점 벅차고. 때문에 빨리 도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야가 국세청 퇴직공무원의 재취업을 제한하는 법안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세무사로 개업하더라도 퇴직 전 근무지 관할 사건을 일정 기간 수임하지 못하도록 하는가 하면, 대형 로펌이나 주류업체로의 이직도 금지하는 등 퇴직공무원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주를 이뤄 2월 임시회 처리가 주목된다.
10일 국회에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세무사법 개정안, 국세청법 제정안이 각각 계류돼 있다.
먼저 새누리당 서병수 의원이 낸 세무사법 개정안은 퇴직공무원이 세무사로 개업해도 퇴직 전 1년부터 근무한 세무관서에서 처리하는 사건을 퇴직 후 1년 동안은 수임할 수 없도록 했다. 지역 세무관서에 근무하며 형성한 인맥과 영향력을 퇴직 후 부적절한 유착고리로 이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현재 법관·검사의 경우엔 퇴직 전 1년간 근무한 법원·검찰청 등에서 처리하는 사건을 맡지 못하도록 변호사법의 제한을 받지만, 세무공무원들은 이러한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2010년 이후 국세청 4급 이상 명예퇴직자의 절반 이상이 퇴직 전 마지막으로 근무한 세무관서 또는 인근지역의 세무사사무소에 버젓이 취업하거나 직접 개업할 수 있었던 이유다.
민주당 조정식 의원이 내놓은 국세청법 제정안은 서 의원의 법안보다 더 세게 퇴직공무원의 발을 묶고 있다.
조 의원은 법안에서 국세공무원이 퇴직 5년 전부터 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사기업체엔 퇴직 후 2년간 취업하지 못하게 금지했다. ‘주류 제조면허를 받은 사기업체’도 재취업 금지 업체로 명시했다. 로펌이나 주류업체 재취업과 같은 ‘전관예우’를 법으로 막겠다는 의도다.
실제로 지난해 3월 기준으로 김앤장 등 국내 10대 로펌에 근무 중인 국세청 퇴직공무원은 55명에 달했으며, 이 중 40명은 퇴직 후 2년도 안돼 재취업했고 퇴직한 해에 로펌으로 직행한 이도 26명이나 됐다. 여기에 주류업계 전반에 대한 면허·허가·취소 등 각종 관리감독권을 쥐고 있는 국세청이 병마개 제조업체까지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낸다는 비판은 국정감사 단골메뉴다.
이 때문에 국세청 입장에선 일부 불만이 있어도 이 법안들에 대해 공식적인 반대나 우려를 표할 명분이 없는 상황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비정상화의 정상화’ 측면에서 봐도 이러한 법안 추진은 옳은 방향”이라면서 “다만 재취업 제한에 있어 강도조절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