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하는 태양 아래 높이 치솟은 팜트리, 그리고 역동적인 태평양 바다까지. 캘리포니아만큼 여름과 어울리는 도시가 있을까? 비키니 차림으로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미녀들과 파도를 가르는 서퍼들, 이 모든 것을 시니어가 함께 즐겨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곳. 그래서 캘리포니아는 액티비티 시니어들의 천국이다. 꼭 비키니에 서핑이 아니라도 좋다. 패들보드 위에서 우아한 요가는 어떤가? 흐르는 강물을 따라가는 플라이 피싱은? 와인과 치즈가 담긴 피크닉 바구니와 담요 한 장이면 되는 로맨틱한 음악회도 있다. 그들은 말한다. 색다른 것에 대한 도전은 늘 그렇듯 삶의 행복지수를 높여준다고. 캘리포니아 시니어들의 이색 여름나기를 소개한다.
◇ 플라이 피싱
브래드 피트의 리즈 시절이 담긴 영화 을 본 사람이라면 플라이 피싱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을 것이다. 플라이 피싱은 곤충처럼 보이는 미끼(플라이 훅)를 날려 보내 물고기를 낚는 방법이다. 진짜 벌레인 것처럼 얼마나 자연스럽게 날리느냐가 중요한데 그래서 필요한 기술이 바로 캐스팅이다.
캐스팅은 플라이 피싱의 백미다. 허공을 가르며 부드럽게 S자 형태의 루프를 그리는 모습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과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미주에서 몇 안 되는 한인 플라이 피싱 전문가인 캐시 김(55)씨는 플라이 피싱이야말로 시니어들이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취미생활이라고 말한다.
플라이 피싱은 과격한 몸놀림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하이킹이 동반되는 만큼 등산을 즐기는 시니어라면 금상첨화다. 또 물속을 걸어 다녀야 하는데 이것 자체가 몸의 밸런스를 길러주며 하체와 허리 근력을 강화시킨다. 무엇보다 집중력을 길러주고 심신을 안정시킨다. 플라이 피싱은 단순한 레저 스포츠를 넘어선, 자연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것이 캐시 김씨의 설명이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한 번 배우면 평생 즐길 수 있다는 점, 인조 미끼인 아티피셜 플라이(artificial fly)를 사용하는 친환경 스포츠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캘리포니아에서 플라이 피싱은 1년 내내 가능하다. 강, 계곡, 호수, 바다 등 다양한 장소에서 즐길 수 있지만 바다는 캐스팅 거리가 좀 더 길기 때문에 초보자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골프에 입문하듯 플라이 피싱을 처음 배울 때는 전문 강사에게 받는 것이 좋다. 두세 시간 기본 매듭과 캐스팅만 익히면 바로 출조(出釣)가 가능하다. 입문 한 달이면 캐스팅을 통한 짜릿한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필요한 장비로는 낚싯대인 플라이 로드(fly rod)와 손잡이의 감는 틀인 릴(reel), 낚싯줄 라인(line) 등이며, 물속에서 입는 옷과 신발 등도 구입해야 한다. 총비용은 1000달러 안팎. 부담 없는 가격은 아니지만 한 번 장비를 구입하고 나면 더 이상의 장비 구입 없이 평생 즐길 수 있다. 플라이 로드는 잡으려는 어종과 장소(호수, 바닷가, 강, 계곡, 시냇물 등)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로드와 릴, 라인과 훅 등이 서로 밸런스가 맞아야 한다.
대부분 지역의 플라이 피싱 전문 매장에서 1회 기본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강좌와 출조가 포함된 패키지도 선보이고 있다. 1회 레슨은 보통 50~100달러(약 5만~10만원)인데 장비 대여비가 포함된 가격이다. 또 미국에서 낚시를 하려면 면허가 필요한데 캘리포니아의 경우 1일 면허는 13달러,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면허는 55달러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플라이 피싱 출조를 오고 싶다면 캐시 김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플라이 피싱 전문 자격증인 FFF(Federation of Fly Fishers Certified Casting Instructor)와 캘리포니아 가이드 자격증(California Guide license)를 소유하고 있다.
◇ 한여름 밤의 야외 콘서트
오렌지카운티 풀러턴에 거주하는 한인 리처드 김(65)과 줄리 김(62) 부부는 여름이면 야외 콘서트를 즐겨 찾는다.
몇 해 전 LA 대표 야외 공연장인 ‘할리우드 볼(Hollywood Bowl)’ 음악회에 갔다가 여름밤을 즐기는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되었고 이때부터 부부의 특별한 취미생활이 시작되었다. 알고 보니 멀리 LA까지 가지 않아도, 큰돈 들이지 않고 얼마든지 음악회를 즐길 수 있었다. 덕분에 30년 넘게 살면서도 모르고 있었던 동네 공원의 야외 음악회도 찾아냈다. 인근 시티홀 잔디밭에서 매년 여름 주민들을 위한 ‘섬머 콘서트’가 토요일마다 열리고 있다.
이제 부부는 자동차 트렁크에 캠핑 의자와 담요를 늘 넣고 다닌다. 어떤 날은 커피 한 잔 들고, 또 어떤 날은 시원한 캔맥주를 사들고 간다. 그동안 몰랐던,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여유다. 김씨는 30년간 운영하던 자동차 정비소를 정리하고 은퇴하면 몇몇 친구들과 함께 정식으로 야외 음악회 동호회를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소란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 부담스럽다면, 여름 한철 이보다 더 좋은 여가생활이 있을까? 소박한 바구니 안에 샌드위치와 치즈, 와인 한 병만 가져가면 된다. 단 분위기가 생명인 만큼 와인잔은 잊지 않는다(깨질 걱정은 없다. 미국에서는 유리잔처럼 생긴 야외 와인잔을 어디서든 손쉽게 구할 수 있다). 피크닉 바구니를 든 남편과 담요 한 장을 품에 안은 아내, 노부부가 손을 잡고 근처 공원으로 가는 모습은 미국에서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여름이 시작되는 5월부터 9월까지 캘리포니아에서는 낭만 가득한 야외 콘서트가 곳곳에서 열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에서부터 동네의 작은 공원까지, 클래식 공연에서 무명의 밴드까지, 규모도 내용도 출연진도 다양하다.
LA의 대표적인 야외 공연장인 ‘할리우드 볼’을 비롯해 ‘샌타바버라 볼(Santa Barbara Bowl)’, 인랜드 ‘레드랜즈 볼(Redlands Bowl)’ 등은 캘리포니아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야외 공연장이다. 이들 모두 공연을 감상하면서 음식과 음료를 함께 즐길 수 있다. 또한 피크닉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공연 전에 미리 찾으면 여유 있는 피크닉을 즐길 수 있다.
공연에 따라 티켓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할리우드 볼의 경우 출연진에 따라 1000달러(약 100만원)를 호가하기도 하지만 종종 5달러짜리 티켓이 나오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무료 관람의 기회도 제공된다. 뒤편 언덕이든 잔디밭이든 음악이 들리는 곳에 자리를 잡고 즐기면 된다. 담요 한 장과 치즈 한쪽, 와인이 곁들여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이밖에 또 다른 캘리포니아 관광명소인 데스칸소 가든(Descanso Gardens), 게티센터(The Getty Center), LA카운티 박물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LACMA)은 여름철 무료 공연으로 유명하다. 평소 콘서트 일정을 살펴두면 수준 높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샌디에이고 발보아 공원(Balboa Park), 오렌지카운티 부에나파크 시티홀의 섬머 콘서트, 롱비치 엘도라도 공원 등도 매년 여름 무료 콘서트가 열리는 곳으로 이름나 있다.
◇ 패들보드
하와이 원주민들이 섬을 건널 때 통나무에 올라서서 노를 젓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패들보드. 공식 명칭은 SUP(Stand up Paddle)다. 미국에서는 대중적인 여름 레포츠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인 패들보딩이 최근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액티브 시니어들 때문이다. 패들보딩이 주는 놀라운 운동 효과와 적당한 스릴이 시니어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것이다.
뉴포트 비치의 시니어 패들보드 클럽은 보딩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운동이라고 소개한다. 기본자세가 관절염 예방과 척추교정에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보딩을 하기 위해서는 팔과 다리, 어깨와 허리 등 전신이 밸런스를 유지해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관절과 근육이 튼튼해진다.
배우기도 어렵지 않다. 보드 위에 균형을 잡고 서는 것이 관건인데 보통 한두 시간 정도면 가능하다. 일어선 후에는 패들을 이용해 방향을 바꾸는 스킬만 익히면 된다. 패들링에 익숙해지면 이때부터는 이리저리 물살을 가르는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구명조끼를 착용할 수 있어 수영이 익숙하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
패들보드는 바다뿐만 아니라 강, 호수, 연못 등 다양한 장소에서 즐길 수 있다. 사실 보드가 익숙해지면 타는 방법도 ‘내 맘’이다. 앉거나 무릎을 꿇고도 가능하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패들보드와 요가, 헬스트레이닝을 접목시킨 신종 레포츠도 등장했다. 특히 패들보드 위에서 요가를 하는 ‘SUP 요가’는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하는 운동으로 알려지면서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핫’한 레포츠로 떠오르고 있다.
패들보드도 진화하고 있다. 하드보드가 아닌 공기주입식 보드를 개발해 부피를 줄여 휴대가 가능해졌고 밑바닥에 LED 조명을 장착한 나이트서프도 등장했다. 밤바다를 훤히 들여다보며 보딩을 즐기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캘리포니아에서 패들보드는 바닷가 어디서나 쉽게 즐길 수 있다. 해변마다 패들보드 대여소가 있어 시간당 10달러(약 1만원) 선에서 대여할 수 있고, 패들보드 요가나 헬스트레이닝은 클래스당 30~40달러 (약 3만~4만원) 선에서 즐길 수 있다.
◇ 펫시터
취미생활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미국의 직업 안내 포털사이트 트레이드 스쿨(Trade School)에서는 애완견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운 시니어들에게 ‘펫시터’에 도전해보라고 권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동물과의 교감으로 정신건강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여자와 개의 천국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 정도로 개 사랑이 유별나고, 관련된 이색 직업도 많다. 뷰티밴(출장미용트럭), 도그위스퍼러(심리치료사), 펫시터(Pet Sitter), 도그 워커(Dog Walker) 등이 있는데 뷰티밴, 도그위스퍼러, 도그워커 등은 전문지식과 기술을 요하지만 펫시터는 누구나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특히 여름철 휴가기간 중 반려동물을 돌봐줄 펫시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시장도 넓다.
미국에서는 로버닷컴(Rover.com)이나 도그베케이(DogVacay) 같은 펫시터 중개 사이트가 활성화되어 있다. 도그베케이에는 3만 명에 달하는 펫시터가 활동하고 있다고. 실제로 이들 사이트에서는 은퇴 후 무료했던 삶이 펫시터를 시작하면서 즐거워졌다는 시니어들의 경험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펫시터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기소개서와 사진, 기르고 있는 반려동물 사진을 넣어 프로필을 작성한 뒤 운영진에게 보내 승인이 나면 펫시터로 등록된다. 이용자들은 등록된 펫시터들의 프로필을 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최고 시설의 도그 호텔보다 자신의 반려견을 손주처럼 돌봐줄 펫시터를 찾는 반려인이라면, 시니어 펫시터는 선택 1순위가 될 것이다.
펫시팅 가격은 경력자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시간당 10~20달러(약 1만~2만원), 1일 맡길 경우는 50~100달러(약 5만~10만원) 선이다.
세상이 각박해졌다는 말을 할 때 우리는 상징적으로 하늘을 얘기한다. 사실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해야 하는 급급한 상황에 치이다 보면 하늘 한 번 올려다볼 틈 없이 바쁘게 사는 현대인이다. 그런데 요즘은 하늘을 올려다봐도 특별히 보이는 게 없다. 낮에는 태양이 눈부셔서 올려다보기 힘들고, 밤의 하늘은 거리를 밝히는 가로등과 거리를 가득 메우고 달리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그리고 별들을 흉내 낸 인조 조명들이 정작 별들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도시에 모여 살며 그 많은 밤하늘 가득한 별들을 추방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마 그들은 자신들을 반기는 곳으로 갔을 것이다. 그중의 한 곳-별을 만날 수 있는 길을 나는 사진을 하며 알게 되었다.
물론 작정하고 도시를 떠나 한적한 산이나, 아직 오염되지 않은 시골로 가면 별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런데 난 의외의 곳에서 그 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몽돌들이 쉬지 않고 오르고 내리는 파도와 함께 으르렁 드르렁거리며 굴렀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같이 간 아내가 바로 곁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해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아내는 소리에 민감하다. 버스나 택시를 탔을 때 기사 아저씨가 틀어놓은 라디오나 음향기기의 소리가 조금만 커도 난 볼륨을 조금이라도 줄여 달라 양해를 구한다. 집 안이든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만날 때든, 아내와 함께 있을 때면 난 내 큰 목소리에 신경을 써야 했다. 이제야 겨우 내 목소리가 낮아져 아내의 지적을 많이 받지 않지만 그동안 38년이 걸렸다. 그런 아내가 이렇게 커다란 소리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조금도 얼굴 찌푸리지 않는다. 마치 아무 소리도 나지 않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작게 틀어놓고 무심히 할 일을 하며 즐기는 모습이다. 바람소리, 파도소리, 수천수만의 몽돌이 파도에 밀려 굴러 올라가고, 다시 한꺼번에 굴러 내리며 마냥 부딪치는 소리는 조금도 멈춤 없이 되풀이되며 막힘 없는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도 말이다. 세상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이 굉장한 소리가 아내의 귀를 압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막힘 없이 트이는 해방감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는 무조건 큰 소리를 싫어한 게 아니라 내 소리를 포함해 좋아하는 소리와 싫어하는 소리가 구분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틈날 때마다 그곳에 갔다. 힘든 일이 생겨도 집에서 도시락을 싸 각자 사진기를 챙겨 그곳으로 갔다. 그곳은 늘 한산하다. 우리와 우리가 초대한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우린 큰 소리 속에서 사진 작업을 했다. 사진기 뷰파인더를 통해 매번 다르기도 하고 크게 보면 같기도 한 바람과 물에 비치는 빛의 모습을 언제나 파도와 몽돌들이 서로 부딪쳐 으스렁거리는 소리 속에서 관찰했다. 사진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맨눈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그 이미지의 변화를 섬세히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해가 기울어 석양의 각도가 낮아지면, 굴러가는 몽돌을 감싼 물에 직접 비친 빛이 수면을 점점 더 넓게 비추며 그늘진 물빛과 대조를 이룬다. 수평선 가까이 태양이 떨어질수록 색 온도도 낮아진다. 주위에 깃들기 시작하는 어둠 속에서 갓 잘라낸 짙은 오렌지빛 태양은 수면에 면을 이루며 반짝인다. 때로는 그 빛들이 물과 하늘의 경계선이 되어 흐르기도 한다. 그때 렌즈 조리개를 가능한 한 닫아 셔터 스피드를 길게 해 파도에 밀린 몽돌이 구르며 사진에 남길 시간의 흔적이 내 머리에 떠오르게 한다. 스틸사진을 오래 되풀이한 사람의 뇌에 미리 그려지는 프레임 중 하나다. 그 이미지가 궤적이 되어 실제 한 장의 스틸에 담긴다. 돌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굴러간 속도도 달라 제각기 다른 흔적이 보인다. 굴러가는 속도가 빠를수록 긴 시간의 흔적을 남기고, 느린 속도는 짧은 흔적을 남긴다.
‘속도가 빠를수록 시간은 느려지고 이동거리가 짧아지면 시간은 그만큼 빨라진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사진 속에 들어온다. 한 천재 과학자가 이미 오래전에 발견하고 세상에 소개한 변하지 않는 수(상수-C) 얘기를 우리는 그렇게 겨우 렌즈의 힘을 빌려 볼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시간이라는 붓이 그려낸 변형된 빛의 흔적이었다. 그처럼 우린 수많은 몽돌에 다녀간 별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렌즈를 통해 들어온 별들은 결국 내 사진에 선과 면으로 맺혀졌지만, 나중에 자세히 보니 모두 점이었다. 수많은 별이 다녀간 것이다. 사진과 달리 실제 풍경을 보고 있는 내 눈에는 흐르는 파도도, 파도에 구르는 몽돌도 모두 빛나는 점이었다. 마치 동트기 전 새벽녘 하늘에 더욱 크고 밝게 드러내는 몇몇의 별처럼!
여기에 한 가지 이미지가 더 보태졌다. 점인 별이 선으로 모였듯이, 그 선이 이어져 구르며 면의 흔적을 만들어낸다. 이 이미지들은 사진이 아니면 나눌 수 없는 얘기다. “색은 우주와 인간의 두뇌가 만나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장소”란 말을 남긴 폴 세잔(Paul Cézanne)이 떠오른다. 시간에 따라 바뀌는 색을 맨눈으로 관찰한 그의 기억력은 절대색감에 바탕을 두었을 것이다. 그런 능력을 지닌 그의 두뇌와 우주에도 매 순간 서로 다른 새로운 별들이 빛으로 다녀갔을 것이다.
함철훈(咸喆勳)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대상 수상. 저서로 , 등이 있다.
새봄 냄새가 짙게 풍기는 휴일, 친구들과 을미사변 때 희생된 항일 인물들을 배향하는 장충단에 모였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에서 성곽길을 따라 남산에 올랐다. 차를 타거나 아스팔트를 걷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을 느꼈다.
남산에 오르면 고층 빌딩이 가득한 시가지 모습에 감격한다. 높은 건물 몇 개뿐이고 삼일고가도가 웬만한 건물보다 높았던 시절, 반듯한 건물이 언제쯤 들어서나 부러워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남산타워가 우뚝 솟은 262m 높이의 나지막한 남산광장에는 붐비는 여행객 만큼 수많은 사연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지나온 60ㆍ30년이 문득 그리워졌다. 젊은 시절 케이블카를 타려고 줄서서 한참 기다렸었다. 중년이 되어서는 자동차 드라이브를 하였고, 이제는 건강을 위하여 걷기운동을 하는 장년이 되었다.
지금은 9살 손자의 오늘이다. 내 나이에서 60년을 빼면 지금의 손자의 이야기이고, 30년을 지우면 자식의 일이 된다. 손주의 오늘에 60년을 더하면 나의 오늘 모습이 되고 30년을 보태면 아들ㆍ딸의 이야기가 된다. 앞으로 전개될 60ㆍ30년은 내 후손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남산은 북악산ㆍ낙산ㆍ인왕산 등과 함께 서울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의 하나이며 북악산과는 남북으로 마주하고 있다. 남산의 정상에는 5개의 화구를 가진 목멱산 봉수대가 남아있는데 전국에서 올라오는 중요한 봉화가 서울로 집결되는 곳이었다.
남산은 소나무를 비롯한 각종 수목이 이루는 푸른 수림경관이 훌륭한데, 특히 조선시대에 소나무가 많이 자랐다고 전해지며 이곳의 소나무를 함부로 베어내지 못하도록 하였다. 산꼭대기에서는 사방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서울 시가지를 볼 수 있다.
수림은 잘 보호되어 대도시 도심부임에도 꿩을 비롯한 각종 산새ㆍ다람쥐 등 산짐승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서울시 전망을 조망하는 조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정상부에는 탑골공원의 정자를 본뜬 팔각정과 N서울타워, 박물관, 레스토랑, 카페 등의 시설이 있고, 산정부에 한국의 경위도 원점이 있다.
남산 서쪽은 계단으로 이어진 세 개의 광장이 산허리를 타고 펼쳐져 있다. 맨 아래에 있는 광장은 녹지대를 포함하여 약 2,500평 규모의 어린이 놀이터다. 그 위에는 약 6,000평 규모의 백범광장이 있고, 위쪽 광장에는 남산 분수대를 중심으로 하여 그 북서쪽에 서울시 교육위원회 과학교육원이 있는데 서울시 교육위원회 과학교육원은 어린이회관으로 건립한 18층 건물이다.
그 맞은편에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있는데 1970년에 건립하여 의사의 사진ㆍ유묵 등을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 주변에는 안중근의사 동상과 휘호ㆍ·장인이 새겨진 비석이 있고, 남산골 한옥마을, 장충단공원, 정도 600년 타임캡슐 등이 주변의 명소들이다.
남산에서 옛일을 회상해 보니 수십 년 세월 동안 쓰레기 분리수거와 야외 취사금지 성공으로 우리 서울이 엄청 깨끗해졌다. 다음 60ㆍ30년에는 더 좋은 발전이 있기 바랐다.
동대입구역으로 내려가는 순환로가 연인들의 산책로로 제격이다. 동대 정문을 거쳐 장충동족발과 막걸리 한 사발로 즐거운 남산 산책을 마무리하였다.
요즘 젊은 세대가 가장 관심을 갖는 아이템인 피규어. 그런데 시니어 대부분은 잘 모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런 선입견을 비웃듯, 기자가 3000여 점의 피규어가 전시된 마니아들의 성지 피규어뮤지엄W를 방문하게 된 것은 한 시니어 독자의 제보 덕분이었다. 그만큼 시니어들의 감식안이 일반적인 생각을 뛰어넘어 젊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피규어뮤지엄W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피규어와 그리고 피규어에 친숙한 아이들과 함께하며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영화감독이기도 한 김동원(金東元·54) 피규어뮤지엄W 관장을 만나 피규어 가치에 대해 그리고 캐릭터 문화에 대한 식견을 물어봤다.
몸은 중년, 마음은 초등학생. 어릴 적 좋아했던 캐릭터 피규어를 모으며 동심에 빠져 사는 오타쿠적 기질의 아재들이 늘고 있다. 구매한 피규어를 개봉하지 않고 박스째로 나란히 차곡차곡 쌓아둘 정도로 피규어를 모으고 즐기는 이들은 자신이 자신에게 선물을 하듯 살뜰히 챙긴다.
“평소 그다지 대화가 없던 부자가 함께 와 캐릭터를 매개로 ‘말문’이 터지는 경우도 있고, 손주 손잡고 온 시니어가 오히려 키덜트족이 돼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피규어를 좀 안다는 분들이 이곳 뮤지엄에 와서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나’ 하며 저마다 탄성을 터뜨리죠.”
피규어 소장의 즐거움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라고 여기는 김동원 피규어뮤지엄W 관장은 지난 10월 마니아들의 감성을 채워주는 일에 합류했다.
그에게 피규어 마니아들 사이에 부의 상징인 레어 아이템, 즉 희소성 있는 피규어가 있냐고 짓궂게 물었다.
“어지간한 피규어는 다 구경해봤는데 여기 뮤지엄에 와서는 제가 아는 피규어는 빙산의 일각이었어요. 사실 피규어 가격은 크기에 따라, 희소성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건담 시리즈를 진열했더니 사무실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지더라고요. 간혹 사람들이 놀러 와서 호기심을 보이기도 해요. 장난감 하나만으로 사무실 공간이 위트 있고 재미있게 변한 것 같아 좋아요.”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피규어뮤지엄W는 피규어와 토이를 통한 테마파크를 지향하며 만들어진 새로운 개념의 공간이다. 전시공간은 6층의 총 6개 테마로 구분되어 있으며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놀이공간, 카페가 있는 그랜드홀, 직접 피규어를 구입할 수 있는 마니아 숍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장품은 프라모델, 히어로 액션 피규어, 자동차 다이캐스트 등 3000여 점에 달하는 막대한 숫자를 자랑한다. 영화 촬영에 실제 쓰인 자동차 모형, 에 출연한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실제로 입었던 가죽 의상, 리샤오룽 타계 40주년 기념 특별 피규어 등 진귀한 수집품으로 가득하다. ‘감정가 2억원을 호가하는 건담 모형’, ‘순금으로 만들어진 나이트 오브 골드’까지 눈이 호사를 누리는 동안 누군가에게는 아련한 추억, 누군가에게는 보물창고, 누군가에는 꿈과 희망이 되는 곳이다.
피규어뮤지엄W는 예상치 못했던 그 시작처럼 기존 뮤지엄과는 다른 발상과 사고로 사업을 전개할 계획을 갖고 있다. 대중문화적 취향을 가진 영화감독 김동원 감독을 관장으로 기용한 것도 그러한 계획의 일환이다. 김동원 관장은 , , 등의 영화들을 감독한 바 있다.
피규어를 처음 접했을 때 받은 충격
“주변에서는 의아스럽다는 반응이죠. 그런데 사실 저는 방향을 튼 게 아니라 감독으로서 또 하나의 파트너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피규어의 상당수가 미국의 마블, DC코믹스에서 나오는 히어로를 소재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런 피규어들은 전 세계의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감독으로서 김동원 관장이 피규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국 영화계의 현실과 관련이 있다.
“현재 한국 영화는 수익을 관객으로만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캐릭터 산업을 병행해 나 처럼 관객 동원에 캐릭터 판매가 플러스돼서 거기서 창출할 수 있는 수익이 있다면 영화 산업의 규모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시리즈는 영화 관객을 통한 수익보다 몇백 배 더 많은 저작권 수익을 가져가고 있고 거기서 또 다른 고부가가치들이 창출되는 상황입니다.”
김 관장은 처음 피규어를 접했을 때 개인적으로 굉장히 부러운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무엇보다도 영화 속 캐릭터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과 기꺼이 돈을 지불하면서 그 피규어를 보며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아이언맨이 피규어 시리즈로 나오고, 각 피규어들이 노멀 버전, 파이팅 버전 등등으로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걸 보면서 우리나라도 이런 걸 갖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 은 1930년대부터 시작됐는데 캐스팅이 바뀌어가면서 영원히 존재하잖아요? 이제 우리도 그런 한국적 캐릭터가 있어야겠다 싶었습니다.”
감독과 관장 그리고 나
김 관장은 피규어뮤지엄W이 문화예술계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색다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놀이와 문화를 함께 담은 박물관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피규어뮤지엄W는 피규어를 테마로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도록 하여 즐거움을 줌으로써 박물관의 개념을 확대시켰다고 봅니다. 문화예술을 종합적으로 보 여주는 박물관인 만큼 전시, 교육뿐만 아니라 캐릭터 발굴과 개발을 넘어 그래픽 노블, 영화 등 콘텐츠를 생산하는 주체로서 새로운 문화를 이끌고 다양한 시도를 할 것입니다.”
그는 감독으로서의 역할과 뮤지엄 관장으로서의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결국 피규어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재현입니다. 기억 속에 있는 걸 다시 만들고 추억 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는 작업이죠. 저로선 영화감독의 길을 가면서 피규어라는 좋은 재료를 영화에 접목시켜 하나의 콘텐츠로 발전시킬 수 있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피규어가 결합된 한국의 마블 스튜디오를 꿈꾼다
영화와 캐릭터 산업을 보다 밀접하게 연결시켜 확장시키고 싶다는 그의 생각은 한류 관련 콘텐츠 사업의 차원으로까지 넘나들고 있다.
“일부에서는 피규어를 단순히 아이들 장난감, 키덜트만으로 생각하는데 그보다 더 큰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와 예능과 애니메이션을 아울러서 기존의 한류 문화처럼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거죠. 이제는 예능도 처럼 미국에 수출하게 됐습니다. 그런 걸 보면 우리가 어린 시절에 봤던 , , 등도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이미 피규어뮤지엄W에서 과거 심형래 주연의 인기 시리즈물이었던 영화 의 판권을 구매했다는 소식도 있다. 그런데 과거 우리가 가졌던 캐릭터를 현대에 더 발전시켜 만들자는 생각은 왜 아직까지 구체화되지 못했던 걸까?
“한국적 캐릭터가 미약해요. 미국은 오래전부터 슈퍼맨, 배트맨 등의 캐릭터를 만들었고 TV가 활성화되자 TV드라마 시리즈로 만화 원작인 히어로 물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 경험을 가진 이들이 성장해서 이제는 헐리우드에서 정교하게 만든 히어로 물을 만들고 시리즈로 만든 거죠. 그러면서 히어로 물이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원작조차도 남아 있지 않고 판권을 가진 분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그런 것들을 찾아 재조명하면서 디테일하게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시도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그걸 한번 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매우 어려운 시도가 될 것입니다.”
캐릭터 산업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싶다
김 관장이 토로하는 우리나라 캐릭터 제작 현실의 후진성은 놀이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문화적 현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캐릭터를 소중하게 만들고 소중하게 취급했다면 그토록 많은 것들이 모호하게 방치되어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한국적 캐릭터를 만들어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기 위한 문화적 기반이 만들어지려면 어떤 노력들을 해야 할까. 현장에 있는 김 관장의 의견을 들어봤다.
“흔히들 하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문화적인 계기가 있어야 한다’, ‘대기업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들은 기본적인 얘기들이에요. 저희들의 구상이 잘 맞아떨어져서 하나의 시도가 성공을 거두면, 위의 얘기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구자적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책임감을 갖고 돌파하면 된다는 거죠. 피규어뮤지엄W와도 그런 부분에서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겁니다.”
시니어 중에서도 동심이 그립거나 상상의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피규어뮤지엄W는 그런 사람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시니어들이 손자와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시니어들은 피규어뮤지엄W에서 과거 추억의 캐릭터를, 아이들은 자신이 어른이 됐을 때의 모습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디자인해보고 컬러링해서 완성해보는 ‘피규어아티스트’ 체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프라모델, 석고, 클레이 등 다양한 재료로 피규어를 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만화가, 캐릭터디자이너, 큐레이터, 피규어아티스트 등 다양한 직업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활발히 운영 중입니다.”
나이 들면서 깨달은 것들
히어로 물을 제작하고 싶다는 그에게 인생에서 언제가 가장 즐거웠는지, 젊게 늙어가는 비법은 뭐냐고 물어봤다.
“저는 그냥 막 놀 때가 행복했어요(웃음). 작품을 만드는 건 일이죠. 고등학교 때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얘들하고 사고나 치고 다니고… 굳이 재밌었던 시절을 말하라면 그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젊게 늙어가는 비법이요? 비법은 전혀 없고 캐릭터 좋아하고 철없이 살다 보니(웃음) 어렵게 생각 안 해요. 긍정적으로 사는 게 덜 노화되는 비결인 듯해요.”
그는 향후 계획을 중국이나 홍콩 등에 진출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구상하는 데 두고 있다. 당장은 피규어뮤지엄W를 태국에 개관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사실 좀 더 진행이 되어야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을 듯해요. 이곳과 같은 규모로 생각하고 있는데 파트너가 중요하겠죠. 그 과정 중에 캐릭터 산업으로서 하는 시도들이 영글어져야겠고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충무로 감독이라는 명함이 주는 인상과는 달리 소박하다는 느낌을 연거푸 받았다. 그는 자신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를 만들다 보면 영화에 제 인생까지 다 담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에 따라 작품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져요. 30대, 40대 때는 선배님들 인터뷰를 보면서 멋있는 말만 하시네 했어요. 그런데 제가 나이가 들어보니 그때 그분들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알 것 같더라고요. 그게 나이가 드는 것이겠죠. 예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을 잔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제가 그런 말을 하고 있고, 이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것도 보게 되는 거죠.”
시간은 철없는 사람도 어른으로 만들어준다. 그에게 자신이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지 물어봤다.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거 아닌가요? 누가 날 기억해주냐가 중요하겠죠. 매순간 열심히 살다 보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해요.”
김동원 관장은 피규어뮤지엄W가 얼마 전 판권을 구입한 영화 버전을 기획 중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피규어뮤지엄W의 전시를 볼 수 있도록 전시장 오픈도 계획 중이다. 현재 태국 파타야에 ‘피규어뮤지엄W 파타야점’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 청담동(84-9번지)에 위치한 피규어뮤지엄W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되며, 관람료는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1만3500원, 어린이 1만2000원이다.
지난 6월호에서 손주의 잉태 소식을 ‘생명은 기계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으로 전해드렸습니다. 이제 그 아기를 만나보고 몽골로 돌아왔습니다. 드디어 세상에 태어난 아기를 만나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따로 따로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갈아타며 다시 빨리 달린다는 열차와 자동차로 이름도 생소한 독일 에어랑엔(Erlangen)의 헤르초게나우라흐(Herzogenaurach)에 밤늦게 도착했습니다.
제 아내, 즉 아기의 할머니는 나보다 먼저 출발했고 할아버지인 나는 한 달 후에 닿은 것입니다. 세 살과 네 살인 아기 오빠는 아직 동생이 생소합니다. 언제라도 뛰어가 안길 수 있었던 엄마의 품안엔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아기가 있습니다. 자기들과 항상 놀아주던 엄마와 아빠가 새 아기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될 듯도 합니다. 자기들과 비교할 수도 없는 너무나 어리고 여린 생명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예 경쟁을 포기하고 자기들끼리 눈치껏 알아서 노는 데 익숙해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도 어른들이 보기에 착하게만 굴 수 없는 나이라서 어른들이 챙겨줘야 할 일들은 끊이지 않고 터집니다. 두 녀석의 활기찬 에너지는 언제나 생기가 넘쳐 어른 한두 명이 감당하기가 벅차다는 것은 현장에 도착하기 전 이미 아내의 카톡을 통해 내 머리에 입력되었습니다.
밤늦게 도착해 자고 나서 현장에 투입되니, 역시 내 주된 일이 그 두 녀석과 노는 것입니다. 내가 도착하기 전 아내는 어떻게 혼자서 이 일들을 감당하고 있었는지 존경스럽습니다. 나 혼자서도 만만치 않은 개구쟁이 두 녀석을 돌보는 일을 아내는 짬짬이 하는 곁다리 일로 담당했다니!
몸을 추스르고 있는 며느리가 행여 나중에라도 뒤탈이 있을까봐 아내는 모든 빨래와 집안 정리와 청소, 거기에 세끼의 식사를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단독주택이라 지하층부터 3층 다락방까지 오르내리기를 쉬지 않습니다. 두 녀석 유치원엘 자동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옵니다. 장을 봅니다. 그 와중에 아이들과 친분이 있는 가족들을 초대해 칭찬받을 대접도 하였습니다. 한국 아줌마의 놀라운 힘을 곁에서 직접 보니 정말 여러 번 혀를 내둘러야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드디어 늦게 일어나도 되는 토요일 새벽입니다. 다 쉬고 있는 새벽입니다. 깊이 자고 있는 저를 깨워 보여줄 게 있다며 아내가 조용히 문을 열고 골목골목을 돌아 데려간 곳은 새벽안개가 피어나고 있는 벌판이었습니다. 삶의 현장을 떠나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 것입니다. 공간적으로의 이동뿐 아니라 시간의 공백도 느껴졌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은 헤르만 헤세의 시가 정확히 떠올랐습니다. ‘Im Nebel(안개 속에서)’였습니다. 전혀 내 머릿속에는 이미 없을 거라고 당연히 치부하고 있었던 독일어 수업시간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되었습니다. 정말 기적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며 꿈에도 생각 못했던 독일의 안개 속에 오십 년의 시간적 공백을 느끼며 바라보았습니다.
Im Nebel
Seltsam, im Nebel zu wandern!
Einsam ist jeder Busch und Stein,
Kein Baum sieht den andern,
Jeder ist allein.
Voll von Freunden war mir die Welt,
Als noch mein Leben licht war;
Nun, da der Nebel fallt,
Ist keiner mehr sichtbar.
Wahrlich, keiner ist weise,
Der nicht das Dunkel kennt,
Das unentrinnbar und leise
Von allem ihn trennt.
Seltsam, im Nebel zu wandern!
Leben ist Einsamsein.
Kein Mensch kennt den andern,
Jeder ist allein.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
숲과 돌은 저마다 외로움에 잠기고
나무도 서로 보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다.
내 삶이 아직 밝던 시절엔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건만
이제 안개 내려
아무도 보이지 않는구나.
어쩔 수 없이 조용히 모든 것에서
사람을 떼어놓는 그 어둠을
조금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현명하다 할 수 없다.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
인생이란 고독한 것.
사람들은 서로 모르고 산다.
모두가 다 혼자다.
그렇게 그 시를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나이를 헤아려보며 아내의 손을 조금 더 느껴보았습니다. 조금 더 넓게 보기 위해 구릉에도 올라가 보았습니다. 풀에 맺힌 안개 이슬로 신발과 바지 섶이 젖었습니다. 마을로 되돌아와 아들 집에 이를 때 안개 속에 뿌옇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조금 더 굽어진 나의 등을 실감하였습니다. 아직 오십 년의 시간을 되돌리고 있는 중이었나봅니다. 아내의 한마디에 정신이 확 깨었습니다.
뭐해? 셀라 트림시키지 않고.
셀라: 지금 독일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둘째 아들의 셋째 아이 이름입니다. 성경 시편에 나오는 ‘멈춰서 들으라, 내용을 묵상하라’는 뜻의 후렴구, 추임새. 셀라! 제 입에 넣고 굴릴수록 너무나 마음에 드는 이름입니다. 셀라.
개인적인 생각을 안개로 전하면서, 우리 대한민국이 자꾸 보고 싶어집니다. 이럴 때 이런 기회에 사랑하는 나의 대한민국에 전하고 싶은 믿음이 제게 하나 자라고 있습니다. 외국에서 겪을 수 있었던 우리의 놀라운 힘입니다.
전 한국전쟁의 비참한 문제들 가운데 자랐습니다. 철이 들면서 4·19를 보았고, 돈벌이를 위해 중동과 해외를 다녀야 했습니다. 6·29선언을 거쳐 IMF를 맞을 때, 세계는 우리 대한민국을 비웃으며 놀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놀림이 놀람으로 바뀌는 사건을 현장에서 겪었습니다. 이번에 당면한 놀림거리로도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여기 몽골에서는 고려가 몽골의 속국이었다는 징기스칸제국의 지도를 자주 만나는 곳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큰 사랑과 진정으로 몽골이 잘되도록 도와주고 있음을 서로 간에 알고 있습니다.
역사를 배우며 우리는 세상의 비웃음에 처했을 때마다 언제나 그들의 놀림을 딛고 일어나 그들을 놀라게 해왔던 자랑스러운 민족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국가적 부끄러움을 만났지만 이 안개가 걷히면 우리 대한민국의 저력으로 오히려 세계가 놀라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소용돌이치는 우리의 힘이 드디어 응집되고 있습니다. 고요히 흐르던 물이 지금 바로 깊고 좁은 계곡을 만났습니다. 급변할수록 우린 서로 끌어안는 힘! 대동단결, 두레의 에너지가 분출되는 한민족이기 때문입니다.
>> 함철훈(咸喆勳)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사진으로 대상 수상. 저서로 , 등이 있다.
요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힐튼 헤드 섬(Hilton Head Island)이 은퇴자의 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골프 애호가라면 PGA투어 RBC 헤리티지대회가 매년 열리는 아름다운 하버타운 링크스코스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힐튼 헤드 섬은 미국의 은퇴자들이 좋아할 요소를 거의 다 갖추고 있다.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고 눈이 거의 오지 않는 온화한 기후는 한파에 시달리는 뉴욕, 보스턴 등 도회지의 은퇴자들에게는 큰 매력이다. 30도를 넘는 여름 더위가 9월까지 이어지기는 하지만 수온은 수상 스포츠에 최적이다. 저녁이면 선선해지니 휴식과 숙면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고즈넉한 대서양 해변과 하얀 요트가 즐비하게 정박된 마리나와 야자수가 어우러진 항구의 전경은 숨 막히게 아름답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넓게 펼쳐진 바다, 하얀 모래와 맑고 깨끗한 습지 그리고 이끼로 뒤덮인 울창한 떡갈나무 숲은 대자연이 주는 은퇴기념 선물이며, 넉넉한 남부 인심은 은퇴자들에게 기를 불러 넣어주는 활력소다. 눈부신 햇살 아래 짭짤한 갯바람을 맞으며 160㎞에 달하는 자전거 도로를 달리고, 30여 개 골프 코스에서 라운딩을 하다보면 인생 후반기의 허무감은 어느새 충만감으로 바뀐다.
카약, 승마, 테니스, 낚시 등 갖가지 스포츠와 취미활동은 힐튼 헤드 섬의 주요 일과다. 19㎞에 걸쳐 펼쳐진 해안을 따라 무리지어 유영하는 돌고래를 유람선을 타고 관찰하며 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붉은바다거북의 산란을 위해 해변의 조명을 모두 끌 때면 자연과의 일체감을 맛보게 된다. 저지대 늪지에서는 새우와 게를 쫓아다니는 푸른 왜가리와 큰 입을 딱 벌리고 햇볕을 쬐는 악어를 만나는 놀라움도 있다.
맨해튼(여의도의 30배)만한 넓이의 힐튼 헤드 섬에서는 4만여 주민이 오순도순 지내지만 해마다 250만 명의 외지인이 찾아와 한가하고 여유로운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쇼핑 환경도 맨해튼 수준이다.
특가 상품에서부터 디자이너 브랜드와 특별한 사람에게 선물할 독특한 기념품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200여 개의 아웃렛과 상점, 그리고 6곳의 마리나 빌리지 상가는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의 눈길과 발길을 끌고 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자동차로 5시간, 사바나에서 45분(57㎞) 거리에 있는 힐튼 헤드 섬은 큰 다리로 내륙과 연결되어 있어 여객선이 다니지 않는 섬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이나 사바나국제공항에서 항공편을 이용하면 이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 미국 동부 연안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힐튼 헤드 섬은 원래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따뜻한 기후와 야자열매, 풍부한 해산물을 즐기던 곳으로 1663년 영국의 윌리엄 힐튼 선장이 처음 이 섬을 발견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힐튼 헤드’라고 명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섬의 73%가 은퇴자를 위한 주택단지
힐튼 헤드 섬의 73%는 10개의 대단위 리조트형 주택단지가 차지하고 있다. 이 주택단지 가운데 상당수는 매입 자격을 55세 이상의 신중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부분 단지에는 관리사무소를 중심으로 실내외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테니스장, 연회장, 식당 등이 갖추어져 있고 호수와 숲, 골프 코스와 마리나가 인접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섬에 정착한 은퇴자들은 평균 6차례 이상 방문하여 생활환경을 체험한 후 주택을 매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웃과 격이 없이 지내는 이 섬의 분위기를 느끼고 썰물 때면 90m나 밀려나 숨겼던 민낯을 드러내는 갯벌을 산책하면서 돌고래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게 된다.
이 섬의 지난해 주택매매 가격은 단독주택의 경우 52만달러, 타운하우스와 아파트는 20만달러 수준. 침실과 화장실이 각 2개인 아파트는 20만~40만달러, 단독주택은 25만~45만달러, 그리고 침실과 화장실이 각 3개인 주택은 40만~70만달러를 호가한다. 바다 경치가 아주 좋은 주택은 150만달러를 훌쩍 넘고 700만달러를 호가하는 그림 같은 주택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6개월 정도만 빌려 살아볼 수 있는 아파트도 구하기 어렵지 않다. 스튜디오형은 월 평균 600달러, 침실 1개짜리는 800달러, 침실 2개짜리는 900달러 수준이다.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며칠만 빌릴 경우에도 임대료가 치솟는다. 침실 1개인 주택이나 아파트도 전망이 좋으면 1주에 1200~1800달러, 해변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면 1000~1200달러 정도다. 봄과 가을에는 20% 정도 할인되고 겨울에는 50%나 싸진다. 2억달러 넘게 투입해 새 단장을 한 리조트의 하루 방 값은 일반형 기준으로 130~340달러 수준이다.
주거비가 웬만한 휴양지나 은퇴자 생활지보다 비싸지만 주거비를 포함한 생활비 총지출은 맨해튼의 50%, 워싱턴이나 보스턴의 75% 수준을 넘지 않는다. 재산세가 다른 지역의 25% 수준인 데다 소득세, 소비세 등 각종 세율이 낮고 85세 이상의 주민에게는 더 낮은 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자동차보험과 휘발유 값이 저렴한 것도 수월찮게 도움이 된다. 이 지역 주민들 가운데는 현역 시절 주택을 구입해 별장처럼 이용하다가 은퇴 후 눌러앉은 사람도 적지 않다. 세컨드 주택을 구입하면 세제 및 금융 혜택이 있는 데다 에어앤비를 비롯한 휴가용 주택 알선 사이트가 붐을 이루면서 목 좋은 곳의 별장은 재테크 수단이 되었다.
미국 남부 사람들이 테러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이 허리케인이다. 힐튼 헤드 섬 주민들은 1850년 이후 섬 주변 반경 80㎞ 이내로 81차례의 허리케인이 지나갔지만 큰 피해를 입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는 전설을 믿고 있다. 천혜의 지형 덕분인지 주민들의 후덕한 인심과 간절한 소망 덕분인지 알 수가 없다.
각양각색의 취미활동 그리고 평생교육도
힐튼 헤드 섬에서는 축제와 이벤트가 풍성하다. 해마다 열리는 다양한 뮤직 페스티벌, 해산물 축제, 고기잡이 경진대회, 카약과 보트 경주 등은 주민과 관광객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자리다.
멋을 살린 음악 카페, 길거리 밴드,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지어진 건물이 늘어선 메이 강변에 각종 포장마차와 공예품 전시판매점까지 어우러지면서 남부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16㎞ 떨어진 블러프턴의 소도심에서는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고 남북전쟁 때의 화재와 파괴를 견뎌낸 대농장주의 저택과 교회는 박물관과 관광안내소로 활용되고 있다. 수백 년 된 거대한 나무와 옛 건물은 그림엽서로도 간직되고 있다.
은퇴자들의 취향은 제각각이다. 요트, 카약, 낚시 등에 빠져 있는 ‘해양스포츠파’, 생태관찰 보존과 식물 재배에 몰입한 ‘에코파’, 골프, 사이클, 테니스와 달리기 등을 주로 하는 ‘육상스포츠파’, 공예품 만들기, 독서, 해변 일광욕, 흔들의자 등을 즐기는 ‘정중동파’ 등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봉사활동과 평생교육은 이곳 은퇴 생활자들의 공통된 일과다. 해안사구와 야생동물 서식지 보호에서부터 노약자 서비스, 도서관 운영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자원봉사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과 협력관계를 맺은 오셔평생교육원은 1600명의 은퇴 생활자들을 대상으로 400여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1년 회비 40달러에, 수업료는 과목당 15달러. 모두 다 합쳐 연간 95달러를 넘지 않게 책정되어 있다. 선생과 학생이 따로 없다. 자신의 전공분야를 가르치고 관심 분야를 배운다. 학습을 하다가도 기분이 내키면 밖으로 나가 현장학습에 들어간다.
미국의 주요 언론과 관련 전문매체의 힐튼 헤드 섬 예찬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최고의 은퇴 생활지’, ‘인생을 바꿀 건강한 봄철 휴가지’, ‘하계 모임을 위한 남부 최고의 장소’, ‘2016년 북미지역 최고의 골프 휴가지’, ‘캐롤라이나 남부 최고의 사이클 친화지역’, ‘미국 남부 5대 하계 가족휴가지’, ‘세계 50대 테니스 휴양지’, ‘미국 최고의 섬’, ‘인터넷 검색이 가장 많은 섬’, ‘사우스캐롤라이나 최고의 해변’, ‘2015년 세계 최고의 여행목적지’ 등등. 이런 찬사 덕분에 이 지역 은퇴 생활자들의 만족감은 더 커지고 있다.
북유럽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핀란드의 겨울은 아주 길다. 겨울이 일찍 찾아들고 오후 3시만 되어도 어둠컴컴해지는 추운 나라. 추워서 핀란드 사우나를 일상으로 즐기는 이 나라는 한겨울이면 산타클로스, 요정, 루돌프, 오로라, 이글루 등으로 여행객을 유혹한다. 그것보다 더 재밌는 것은 헬싱키~스톡홀름을 잇는 실자라인 크루즈 여행이다.
800년간 스웨덴·러시아 지배받아
핀란드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항구도시로 한반도의 약 1.5배 크기다. 유럽 중에서도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이며, 잘살기로 유명한 나라지만 1914년까지는 약 100년이나 러시아의 속국으로 살았다. 아직도 핀란드에 입국하려면 비자를 받아야 한다. 러시아 지배를 받기 전, 12세기부터 1809년까지 약 700년 동안이나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스웨덴의 지배시절 러시아와의 잦은 전쟁으로 핀란드는 황폐했다.
이후 러시아가 핀란드를 장악하자 알렉산드르 1세는 스웨덴이 세운 수도 투르쿠(Turku)를 싫어해 1812년 러시아에 가까운 헬싱키로 수도를 옮겼다. 이때부터 헬싱키는 급속히 성장했다. 1904년, 러시아 총독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보브리코프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러시아가 러일 전쟁(1904~1905)에서 패배함으로써 강압정책이 다소 완화되었다. 러일 전쟁 패전 이후 러시아 국내 정세가 불안한 상황을 이용해 1906년에 입법기관을 민주적인 단원제 의회로 개혁했다. 그러니까 핀란드가 속국에서 벗어난 것은 110년이 조금 넘어났을 뿐이다.
헬싱키 랜드 마크는 원로원 광장
헬싱키 시내 여행은 어렵지 않다. 걷거나 트램을 타면 된다. 헬싱키의 가장 중심부는 원로원 광장(세네트 광장, Helsinki Senate Square)이다. 스웨덴의 지배가 끝나고 러시아의 속박이 시작된 1818년부터 30여 년에 걸쳐 독일 건축가 카를 루트비히 엥겔(Carl Ludvig Engel)에 의해 이 광장이 조성된다. 넓은 광장에는 약 40만개의 화강암 포석이 깔려 있고 중앙에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Aleksandr II)의 동상이 있다. 핀란드를 하나의 독립국가로 인정해 의회의 구성과 핀란드어 사용을 허용했던 황제다. 이곳에 핀란드를 상징하는 대표 건축물인 루터란 대성당(Tuormiokirkko)이 있다. 왕궁 스타일로 지은 이 건물은 바다에서 바라볼 때 한층 더 아름답다.
그 주변에는 사우멘 판키(Suomen Pankki, 1812년 설립)라는 중앙은행이 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은행이다. 건물 앞에는 핀란드의 민족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철학자이며 정치인이었던 요한 빌헬름 스넬만(1806~1881)의 동상이 있다. 그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핀란드의 독자적인 화폐 발행(1860)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바로 앞 1891년에 귀족의 집으로 건립된 사아티탈로는 현재 핀란드 정부기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화려한 건축 양식이 눈길을 끈다.
또 카우파토리(Kaupatori) 광장 앞쪽으로는 대통령관저 및 집무실, 헬싱키 시청, 스웨덴 대사관이 있다. 대통령관저 및 집무실은 근위병이 보초를 서지 않으면 눈여겨보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다. 바닷가 옆 길을 따라 가면 러시아 정교회인 우스펜스키 성당(Uspenskin Cathedral)이다. 이 성당은 핀란드가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1868년, 러시아 건축가 알렉세이 고르노스타예프(Aleksei Gornostaev)가 19세기에 비잔틴 슬라브 양식으로 세운 곳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정교회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그리스도와 12사도의 그림, 돔탑, 파이프오르간 등이 있다. 안온한 느낌이 드는 성당 내부다.
영화 에서 주인공들이 순록고기를 사러 간 하카니에미 마켓(Hakaniemi Market)도 걸어갈만한 거리다. 2층짜리 벽돌건물 안에는 식품코너 말고도 아울렛과 구제숍, 공예품 숍이 있다.
헬싱키 중앙역 주변 볼거리 가득
헬싱키 중앙역 주변에도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 중앙역사의 건물이 예사롭지 않다. 공모전에서 우승한 핀란드 건축가 엘리엘 사리넨(Eliel Saarinen, 1873~1950)이 설계해 1919년에 완공된 역사다. 아르누보 양식이 가미된 적갈색 화강암 건물로 정문의 멋진 대형 아치와 높이 49미터의 시계탑, 벽면에는 램프를 들고 있는 네 개의 거대한 조각상이 있다. 19개의 승강장을 갖추고 있는 초고속 열차 노선인 펜돌리노(Pendolino)를 비롯해 다양한 등급의 열차가 있다. 역사 지하에는 헬싱키 지하철, 라우타티엔토리 역(1982년 완공)이 있다.
중앙역 주변으로도 멋진 건축물이 즐비하다. 그중 1902년에 개관한 핀란드 국립극장의 건축물이 눈길을 끌어 당긴다. 건축가 온니 타르야네(Onni Tarjanne)가 설계했으며, 당대 북유럽에서 유행하던 국가적 낭만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국립극장의 시작은 핀란드 극장(1872년 설립)에서 비롯되었다. 핀란드에 설립된 최초의 핀란드어(Suomi) 연극 전문 극장이었다. 스웨덴과 러시아 제국의 오랜 지배에 저항하는 핀란드 민족주의 문화운동의 일환이었다. 1954년과 1976년에 소극장 시설이 추가되었다. 855석 규모의 대극장과 2개의 소극장, 스튜디오, 회의실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영화거장 카우리스마키 흔적없어 아쉬워
극장 앞에는 핀란드의 대표적인 작가 알렉시스 키비(Aleksis Kivi)의 동상이 있다. 알렉시스 키비는 누르미야르비 출생으로 가난한 시골 양복점 아들로 태어났다. 헬싱키 대학에 입학했으나, 대학도 중퇴하고 일생 동안 심장병과 정신병으로 고통을 겪다가 38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겨우 10년간의 창작활동밖에 하지 않았지만, 핀란드 문학의 창시자로 인정받고있다. 그의 작품은 핀란드 문학사상 최초의 고전이 되었다. 대표작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소설 가 있다. 핀란드에서는 다음으로 치는 고전적인 작품이다.
무엇보다 필자는 핀란드의 영화 거장, 아키 카우리스마키(Aki Kaurismaki)의 영화 포스터가 눈에 띄길 바랐다. 국내 영화 마니아들은 이 감독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는 칸영화제를 비롯 많은 상을 휩쓸었다. 그 외에도 가 있고 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에는 항상 그만의 특유의 스타일이 존재한다. 인물들은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무성영화를 연상시키듯 대화가 없는 장면이 부지기수다. 얼굴이 익숙한 유명 배우들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만든 작품속에는 카티 오우티넨(Kati Outinen)이라는 여배우가 등장한다. 결코 예쁘지 않고, 차라리 못생긴 편에 드는 이 여배우는 감독과 늘 함께 한다. 비록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으나 그가 숨쉬고 있는 이 도시에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그 외에도 주변에는 아테네움 미술관, 키아스마 현대 미술관이 있다. 멀지 않은 곳에 나무로 만든 캄피(Kamppi)교회도 주목할 만하고 암석교회(Temppeliaukio Kirkko)도 유명하다.
또 국립박물관(Kansallismuseo)과 핀란디아 홀(Finlandia Hall), 올림픽 스타디움도 관광 목록에 빠지지 않는다. 또 유명한 관광지가 시벨리우스 공원(Sibelius Park)이다. 민족음악파인 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를 기리기 위해 만든, 600개의 철제 파이프로 제작한 기념비가 있다.
실자리안 나이트 클럽 체험 잊지 못해
여행의 백미는 헬싱키~스톡홀름으로 떠나는 선상 여행이다. 오후 3시 30분 경, 올림피아 터미널에는 사람들이 몰려 든다. 실자라인(siljaline) 여객선은 어마어마한 크기다. 1991년에 건조한 이 배는 약 6만 톤으로 선상에서의 높이만도 6층이다. 자동차 400대와 버스 60대를 탑재 할 수 있으며 탑승인원은 3000명에 육박한다. 2002년에 새롭게 리모델링한 배다. 배 안으로 들어서면 신천지다. 3인조 젊은 클래식 밴드가 연주하면서 환영한다. 일반 식당 여러 개, 뷔페 식당, 면세점, 옷가게, 바와 가라오케, 카지노, 나이트클럽, 사우나 등. 오후 5시에 출발한 배는 그 다음날 오전 9시 30분경에 스웨덴 스톡홀름에 도착한다. 이 선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체험은 나이트 클럽이다. 환히 불이 켜진 무대에서는 올드 팝송이 울려 퍼진다. 목소리가 흐느적거리는 에릭 클랩튼의 ‘원더풀 투나잇', 이럽션(Eruption)의 노래지만 우리나라 가수 방미가 불렀던 ‘원 웨이 티켓’, 일본인들이 많이 타는지 일본 노래도 부른다. 주변을 둘러보면 거의 다 노년층이다. 플로어에서는 나이든 커플이 춤을 춘다. 넓은 무대에 새로운 무희와 가수가 등장하면 조명은 더 화려해진다. 밤이 깊어가도 클럽을 떠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이 발산되는 곳. 분명코 어느 누구라도 이 크루즈 여행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Travel Tip!
항공편 핀에어(www.finnair.com/kr)가 인천~헬싱키 구간에 직항 편을 운항 중이다. 소요시간은 약 9시간 30분으로, 오전 10시 20분에 인천에서 출발하면, 당일 오후 2시에 헬싱키에 도착한다.
현지교통 핀란드 교통카드를 이용하면 된다. 장거리 여행을 하려면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운행 시각이 정확하며 열차 환승도 편리하다.
예약사이트 www.tallinksilja.com, 한국사이트: www.siljaline.co.kr
통화 유로 전압 220v
언어 핀란드어와 스웨덴어가 공용어, 어디서든 거의 영어로 대화 가능.
시차 한국보다 7시간 늦다. 서머타임 적용 시에는 6시간 느리다.
기온 헬싱키는 12월~3월 평균 기온이 영하 5도를 웃돈다. 때로는 4월 초까지 눈이 내리기도 하며 매서운 바람이 불기도 한다.
물가 헬싱키의 물가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지역의 국가들 중 가장 낮다. 특히 헬싱키 카드와 ‘가족 요금 제도(Family Tickets)’는 핀란드 배낭여행의 부담을 줄여주는 좋은 제도다.
쇼핑 정보 헬싱키의 주요 쇼핑지역은 에스플라나디 공원, 알렉산터린카, 구시가지 등이며 상점은 보통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음식 정보 헬싱키 에스플라나디 광장과 원로원 광장 근처에 레스토랑과 카페가 많다. 헬싱키 마켓광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생선요리를 맛볼 수 있다. 살미아키(salmiakki)라는 투명한 검은색의 단단한 젤리가 나름 유명. 단, 특유의 암모니아 향 때문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숙박 정보 요금과 운영기간이 시즌마다 천차만별이다. 단 헬싱키의 호스텔은 시트비를 따로 받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주변 볼거리 시간이 많다면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라플란드(Lapland) 이발로(ivalo)나 산타 마을 로바니에미(Rovaniemi)를 찾아도 좋을 것이다. 그 외 사우나의 본고장에서 리얼 사우나 체험도 해 봄직하다. 핀란드에는 약 250만여 개의 사우나가 있다고 한다. 사우나 카페, 사우나 바, 사우나 아일랜드, 사우나 버스 그리고 심지어 곤돌라 사우나까지 있다.
글·사진 이신화(의 저자, www.sinhwada.com)
나의 작은 관심과 노력으로 아픈 아이들의소원이 이뤄질 수 있다면 멋지지 않을까.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기부를 하면 그것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바로 ‘기부의 마법’이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 이처럼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찾아 그에 맞는 재능기부자를 연결하는 곳이다. 재단의 도움을 받아 소원을 이룬 아이들의 따뜻한 사연을 모아 봤다.
도움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www.wish.or.kr
◇돌고래를 좋아하는 혜서의 소원은…
“저는 커서 돌고래 사육사가 될 거예요.” 유달리 동물을 좋아하는 여덟살 강혜서양은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껏 힘을 준 목소리로 대답한다. 또래보다 어휘력이 풍부하고 자기표현이 확실한 아이다.
혜서의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 것은 유치원 입학 후부터였다. 병원에서는 뇌종양의 일종인 ‘수모세포종’이라고 했다. 100만 명 중에 5명 정도에게 생기는 병인데 원인조차 알 수 없다고 했다. 작년에만 서른 한 번의 방사선 치료를 했고 올해부터는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좋아하는 동물을 직접 보러 가보고 싶지만 밖에 나갈 수 없었다.
TV에서 동물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혜서는 눈을 떼지 못했다. 혜서는 특히 돌고래를 좋아했다. 돌고래를 보면 기분이 밝아졌다. 조련사의 말을 알아듣고 재주를 부리는 모습이 신기하고 사랑스러웠다. ‘돌고래를 돌보는 사람은 매일 돌고래와 같이 있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혜서에게는 돌고래 사육사가 되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다.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이뤄 주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 혜서의 소원이 전해졌다. 소원을 이뤄 주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비영리단체와 기부 참여자들이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인터넷기업 ‘11번가’가 후원을 약속했고 약 1만1000명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제주도에 위치한 한 아쿠아리움에서 혜서를 돕겠다고 나섰다. 소속 사육사가 재능기부에 나섰다.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실내는 웅성거렸다. 다소 낯가림을 하는 혜서는 굳어 있었다. 하지만 돌고래 ‘세나’를 만나자 이내 긴장감이 사라졌다. “돌고래도 충치가 생기나요?”, “돌고래도 감기가 걸려요?” 아프지 않길 바라는 혜서의 아이다운 질문이었다.
혜서는 직접 돌고래를 지휘했다. 많은 이들의 바람이 돌고래 세나에게도 전해진 것일까. 세나를 매일 돌보던 사육사는 평소보다 더 활발한 세나의 모습이 놀랍다고 했다. 그토록 좋아했던 돌고래를 만난 혜서가 까르르 웃었다. 혜서의 웃음소리가 공연장 곳곳을 채웠다. 많은 이들의 따뜻한 ‘관심’이 모여 동물을 좋아하던 한 아이의 소원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퍼레이드
지난 9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진행된 퍼레이드는 아주 특별했다. “예쁜 공주가 돼서 멋진 왕자님과 퍼레이드를 하고 싶다”던 여섯살 김연우양의 소원이 이뤄지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연우가 세살이었던 2012년, 연우의 아랫배에 뭔가 딱딱한 것이 만져졌다. 병원에서 ‘난소종양’ 진단을 받았다. 활발하지만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6번의 항암치료를 거치며 참 많이도 울었다. 만화 속에 나오는 공주처럼 항상 예쁘고, 항상 행복하게 웃고 싶었다.
삼성전자 부품사업부(DS)가 후원하는 대학 봉사팀 ‘위시 엔젤(Wish Angel)’이 소원을 이뤄 주기 위해 연우를 만났다. 연우는 금발에 분홍 드레스를 입고 왕자님과 퍼레이드를 하고 싶어 했다.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나눠 주는 착한 공주가 되고 싶다고 했다. 삼성전자 임직원과 에버랜드가 연우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나섰다. 연우의 소원이 이뤄지는 날의 기억을 사진으로 남겨 주기 위해 황영철 사진작가가 재능기부에 나서기로 했다.
“공주님, 이제 백성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왕자님과 함께 퍼레이드에 오르실 시간입니다.” 원하던 대로 공주가 된 연우가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달리던 차가 잠시 멈추자 연우는 차에서 내려 가방 속에 담아 온 과자와 사탕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연우가 자라는 동안 큰 용기와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모아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낸 어머니 박윤서(가명)씨가 딸의 손을 꼭 잡았다. 박씨는 “이 정도까지 우리 아이의 소원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공주가 되고 싶다던 소원을 이뤘으니 이제 앞으로 연우가 커서 무엇을 하든지 다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드론으로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요
김규현(15)군은 또래의 평범한 아이들처럼 활발한 소년이었다. 2013년 1월, 스키캠프에서 다리가 부러져 병원을 다닐 때까지도 뼈가 붙기만 하면 다시 두 발로 뛸 거라고 생각했다.
치료 3개월째가 되던 때였다. 갑자기 고열이 생기고 염증수치가 높아졌다. 황급히 찾아간 큰 병원에서 뼈에 악성 종양(골육종)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뒤로 세 번의 큰 수술과 여섯 번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전처럼 걷거나 뛸 수 없었지만 규현이는 장애진단을 원치 않았다.
규현이는 차분한 성격에 말수가 적은 성격이지만 ‘레고’ 이야기가 나오면 눈망울을 빛냈다. 자유롭게 날고 싶은 규현이의 방에는 레고로 만든 비행기가 많았다. 규현이는 ‘드론(무인비행기)을 갖고 싶다고 했다. “다리를 다쳐서 산에도 못 올라가고 움직이는 게 불편하니까 저 대신 드론을 높이 띄워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보고 싶어요.”
9월 어느 날, 한 식당에서 규현이를 위한 깜짝 이벤트가 열렸다.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간 규현이의 눈에 무언가 보였다.
“저거 새야?” 맑은 하늘에 떠 있는 낯선 물체는 규현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준비한 드론이었다. 규현이의 사연을 들은 한 드론교육 전문가가 재능기부로 조종법을 알려 주기 위해 경기도에서 청주까지 달려왔다. 드론 조종기를 손에 쥔 규현이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소원이요? 이제 이뤘는데요.” 규현이는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드론을 조종하는 동안 자신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기부자가 먼저 알아야 할 사실 10가지
기부 문화는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다. 빌 게이츠는 사회로부터 얻은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기부운동에 참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기부자들은 의미있는 일, 관계하는 일, 확실한 목적에 쓰여지는 일에 기부를 원한다. 기부자들의 동기부터 따져보자.
1. 기부의 종류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기부에는 먼저 기부자가 특별한 용도를 지정하지 않는 ‘순수 기부’가 있습니다. 반면 기부자가 특정한 사업을 후원할 목적으로 지정해서 기부하는 ‘조건부 기부’도 있고요. 또 개발사업 등을 진행할 때 시행자들이 국가나 지자체에 제공하는 ‘채납형 기부’,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 예술작품을 제공하는 ‘기증형 기부’도 있습니다.
2. 우리나라 기부 현황이 궁금해요
아름다운재단 ‘기빙코리아’의 기부금 집계를 보면 2011년 한국인의 연평균 기부금액은 21만9000원으로 직전 조사년도인 2009년의 18만2000원에 비해 20% 이상 늘었습니다. 기업의 경우 상장기업(1700개사)의 한 해 평균 기부금은 8억3700만원, 비상장기업(1만5651개사)의 평균 기부금은 4500만원 수준입니다.
3. 개인들은 어떤 동기에서 기부를 하나요
아름다운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기부 동기로 ‘동정심’이 62.1%로 가장 높게 나타나 ‘불쌍하다’는 감정이 여전히 기부 동기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감’의 비중이 2009년 54.8%에서 59.4%로 상승하여 기부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4. 우리나라에서 기부액이 많은 기업은 어디인가요
기업의 기부금(2012년 재무제표 기준) 지출 1위는 삼성전자입니다. 삼성전자는 2353억4900만원을 기부했습니다. 2위는 현대중공업(1329억2700만원), 3위는 삼성중공업(1115억2430만원) 등입니다. 이밖에 케이티, SK텔레콤, 포스코, 현대자동차, 삼성디스플레이, CJ제일제당, 한국전력공사 순으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5. 정부에도 기부할 수 있나요
우리 법률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은 모금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은 개인과 기업에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어 이들 기관이 모금활동을 한다면 암묵적인 강요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기부금에 대한 세제혜택은 어느 정도입니까
먼저 기부하고자 하는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알아봐야 합니다. 기부금대상 민간단체와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된 곳에 개인이 기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3000만원 이하인 경우 소득금액의 30% 이내에서 15%의 세액공제, 3000만원이 넘는 기부금에 대해서는 30%의 세액공제를 합니다. 법정기부금 단체의 경우 기부자의 소득금액 100% 한도에서 15%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7. 기부금 영수증만 있으면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나요
영수증을 발급한 기관이 ‘지정기부단체’나 ‘기부금대상민간단체’로 등록돼 있어야 합니다. 이 같은 단체를 세제적격단체라고 부릅니다. 당국에 기부금품 모집등록을 한 단체라고 해도 세제적격단체 선정을 받으려면 별개의 자격과 등록이 필요합니다. 모집단체가 세제적격단체가 아니라면 기부금과 후원금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이 없습니다.
8. 현물기부의 경우 기부금액을 어떻게 산정하나요
기부금 단체에서도 현물의 기부금품 가액의 기준을 얼마로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현물의 기부금은 ‘현재 시장에서 유통되는 정당한 매매가격’으로 계산합니다. 아울러 세월호 참사 당시의 진도군과 안산시, 태안기름유출사고 등에서의 태안군처럼 법률상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은 그 곳에서의 자원봉사도 기부금으로 산정될 수 있습니다.
9. 기부금을 받은 단체가 돈을 손에 쥐고 있지는 않나요
기부금은 2년 내에 반드시 사용하도록 법률에 명시돼 있습니다. 만약 정해진 기한 내에 기부금을 사용하지 않으면 모금단체는 기부금을 기부자에게 반환해야 합니다. 등록관청에서도 기부금품을 어떻게 모금하는지, 어디에 사용하는지를 검사할 수 있습니다.
10. 기부금을 받은 단체의 활동을 상세하게 확인하고 싶어요
원칙적으로 기부금을 받은 모든 단체는 기부자에게 기부한 내용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보고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기부자를 일일이 접촉할 수 없어 대부분 ‘연차보고서’를 공개·제공합니다. 또한 모금기관은 모금액의 사용결과 ‘나눔포털’과 단체의 홈페이지 등을 통해 기부금 모집결과 및 사용결과를 게시 공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자료제공 서울시 기부 길라잡이
너희가 청춘을 아느냐?
요즘 한국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이 배낭여행에 도전하는 TV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이 인기를 모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나 또한 지난 2월 중학교 동창생 7명이 나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와 뜻하지 않게 첫 ‘도쿄번개’(이태문 객원기자는 현재 도쿄에 거주하고 있다)의 행복을 맛본 적이 있다.
그리고 지난 9월에는 고등학교 동창생 4명이 어려운 시간을 만들어 도쿄를 찾아와 2박3일간 구석구석을 함께 누비며 추억 만들기에 성공했다.
평소 차를 타고 다니던 친구들은 내가 짜 놓은 코스를 열심히 걷느라 지치고 힘들어하면서도 다들 “이렇게 간단한 일인데, 그냥 떠나면 됐는데 왜 그리 망설이고 힘들었는지”라며 한결같이 여행이 주는 색다른 재미에 새롭게 눈을 뜬 것 같았다.
곧잘 인생은 연극, 혹은 여행에 비유되는데 리허설 없는 본 공연인 인생은 일상의 연속이면서도 종착점을 향해 떠나는 기나긴 여행인 셈이다. 여기가 서울인지 도쿄인지 내 자신이 분간하지 못한 채 함께 웃고 울고 떠들다가 공항까지 배웅한 뒤 돌아설 때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인불지이불온 불역군자호
공자는 ‘논어’의 첫머리 학이편(學而篇)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 하지 않음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이번 친구들의 방문을 통해 공자의 가르침을 새삼 되새겼는데, 특히 청춘(靑春)이 무엇인지, 여행(旅行)은 무엇이고, 삶(人生)은 뭘까 다시금 생각해 봤다.
되돌아보는 느림의 미학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자식을 키우다 보니 어느새 ‘기성세대’로 불리게 된 요즘, 그때 ‘청춘’의 한 복판에서 비판했던 부모님과 지금의 나 뭐가 다를까 곰곰이 따져 보니 아직 철없는 ‘철부지’ 아저씨가 거울 앞에 서 있다.
대학 수업에서 곧잘 ‘호기심을 잃은 사람은 청춘을 포기하는 것이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 앞서 주위에 끊임없는 관심으로 ‘알고 싶은 욕망’을 충족하라”고 전하는데, 맥없는 젊은이 이른바 ‘애 늙은이’가 늘어나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죽을 때까지 ‘배우고 또 익히는’ 정신이 바로 늘 푸른 봄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50대라고 하는데, 추수가 끝난 텅 빈 들판과 낙엽 진 앙상한 가지를 떠올리지 말고 풍성한 결실과 값진 수확만을 생각하자.
무한긍정의 힘이야말로 청춘의 밑거름일텐데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첫 50대이기에 설레고, 다시 오지 못할 ‘청춘’이니 더욱 알차게 보내고 아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조용필 형님의 노래처럼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도시의 소음 수많은 사람 빌딩 숲속을 벗어나’ 보자. 그 길에서 알몸의 자신과 만날 것이며,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며, ‘우물 안 개구리’의 얼굴을 처음으로 볼 것이다. 단 뛰지 말고 걷자. 쉴새없이 듣고 만지고 맛보는 거다.
직립보행의 인간이 주마간산(走馬看山)의 시대를 거쳐 자동차, 고속철도, 비행기의 속도전 속에 일상을 소비하고 있는데, 그런 현대인들이 여행이랍시고 무서운 스피드로 관광지를 돌며 수천 장의 추억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아 컴퓨터로 복사한다.
이전 아놀로그 시절에는 한 장씩 앨범에 넣으며 그때 그곳의 향기까지 되새김질했지만, 대량 생산 및 대량 복사의 디지털 시대에는 하드디스크가 인간의 수고로운 ‘감수성’까지 저장해 버렸다.
걸으면 자세히 보인다. 아니 꼼꼼하게 보게 되고,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다. 뛰면 풍경도 뛰고, 달리면 세상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다. 다 털고 인간의 오감까지 모두 열어 놓은 채 떠나는 여행의 묘미, 물결마다 향기가 다르고 바람결마다 색깔이 있다는 걸 느껴보자.
내 속에 잠들어 있던 ‘감수성’이 기지개를 켜고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여행은 결국 내 ‘감수성’과 세상의 만남인 셈이다.
실버에게도 필요한 눈높이
지난 10월 23일은 결혼기념일로 올해 20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해 여름방학을 이용해 프랑스를 시작으로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도는 여행에 나섰다. 출발 전날까지 허둥지둥 쫓겼던 성적 처리를 유럽미술사 책을 다 섭렵하지 못한 좋은 핑계거리로 삼고서 떠난 첫 유럽여행은 한 마디로 ‘청산별곡’이었다.
유토피아는 이상으로 그리는 가장 완벽하고 평화로운 사회라고 하는데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도 갖고 있다. 유럽 도시를 돌며 그곳의 자연과 유적들을 직접 보면서 놀란 것은 고대와 중세의 흔적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 속에 숨쉬는 고대와 중세라는 점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상(理想)사회가 아니라 공존하는 청산(靑山), 그렇기에 다가갈 수 있고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은 200년이 훨씬 넘은 아파트라고 밝힌 로마 가이드의 말처럼 실제로 이상 사회를 구현시키고자 1000 여년 전에 세운 건물 속에 현대인이 살고 있으며, 가장 이상적인 황금비율의 조각상들이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가 아니라 지금도 건재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을 비롯해 루브르박물관, 로댕갤러리, 퐁피두센터 등에서 크고 작은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눈높이’의 즐거움도 함께 느꼈다. 미리 유명 작품을 체크해 잰걸음으로 달려 기념사진을 담은 뒤 다음 작품을 찾아 서둘러 자리를 뜨는 분주한 동양인들 틈에서 손주의 손을 잡고서 차근차근 그림을 함께 맛보는 여유가 참으로 부러웠다.
정작 ‘눈높이’ 교육이 필요한 건 내가 아닐까 뼈저리게 느꼈다. 까놓고 말해 난 세계사에 자신이 없는데다가 중세미술은 문외한(門外漢)이다. 가이드의 설명이 어쩌면 그렇게 쏘옥쏙 귀에 들어오던지 저게 바로 명강의구나 싶어 고개가 숙여졌다. 그 눈높이 덕분에 그림들이 내게 말을 걸었고, 조각들이 움직여서 내게로 다가왔다.
또 한 가지, 파리, 인터라켄, 루체른, 밀라노, 베네치아, 로마 등을 돌며 내 눈에 들어온 거리이다. 여행의 ‘여(旅)’자는 한자옥편에서 ‘깃발을 앞세우고 그 뒤를 따라가는 군사’라고 뜻풀이하고 있다. 그런 탓일까? 유독 동양인 관광객들은 깃발 아래 뭉치고 좋아하고, 줄줄이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정해진 코스를 예정된 시간대로 성실하게 돈다.
그런 이방인(異邦人)인 나는 쏟아지는 햇살 아래 노천 카페에서 몇 시간째 커피와 맥주를 즐기며 소일(消日)하는 유럽의 거리에서 ‘거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들의 ‘일상’이 나에게는 ‘비일상’이며, 그들과 같은 여유는 아예 처음부터 부재했던 사치였는지 모른다.
일상의 쉼으로 떠난 여행이지만 결국 우리는 ‘비일상의 탈출’속에서 다시 일상을 짜맞추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물으면서 모든 걸 다 내려놓은 짐 없는 ‘가벼움’의 여행을 꿈꿔 본다.
힐링은 몰라도 ‘나그네’
소풍 전날 밤잠을 설친 사람은 마약 같은 ‘설렘’을 알지 싶다. 운동회 가장행렬에서 맛본 ‘낯선 쾌감’도 중독성이 강하다. 여행 역시 떠나기까지가 귀찮아서 그렇지 한번 맛보면 인이 박이는 법.
속된 말로 ‘힐링’이다 ‘웰빙’이네 떠들지만, 또 언제부턴가 맨토라는 말도 불쑥 튀어나와 다들 쓰고 있다. 영어로 써야 더 고상한 느낌이 드는가 싶은데, 아무튼 여행은 ‘힐링’이자 살아있는 ‘멘토’이다.
三人行 必有我師焉
삼인행 필유아사언
擇其善者而從之
택기선자이종지
其不善者而改之
기불선자이개지
다시 논어 ‘술이편’의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선한 사람을 가려 따르고 선하지 못한 자는 살펴 자신을 고친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되새겨 본다.
여행에서 마주치는 낯선 세계, 그 속에 던져진 꾸밈없는 자신과의 만남, 그리고 화보집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그곳 사람들이 뿜어내는 삶의 향기 등 이 모든 게 나에게 스승이고 가르침인 것이다.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것만큼 보인다’라고 했는데, 여행에서는 ‘아는 것만큼만 본다’는 게 문제이다. 사전 지식이 결국 마지막 지식으로 고스란히 보존되고 자신만이 느끼고 얻어낸 새로움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시간과 돈의 낭비이겠는가?
오히려 선입견은 버리고 편견없이 旅행을 떠나자, 홀가분하게 비운 상태에서 호기심의 촉수가 움직이는 대로 여行의 ‘새로움’을 채워넣자.
첫 50대의 이 긴장감처럼 ‘낯선 체험’이 기다리는 여행이야말로 각 세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맞춤복일 수 있다. 50대만이 누릴 수 있는 여행의 참 묘미, 훌쩍 속옷 몇 가지 든 가방만 들고 집을 나서자.
내 발길 닿는 그곳의 사람들에게 나는 한낱 불청객(不請客)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들은 내게 값진 삶의 거울이자 살아있는 백과사전이다. 일탈을 두려워 말고 망설임을 돌파하자.
여행은 힘껏 발을 굴러 높이 올라가는 그네 뛰기, 더 높이 더욱 널리 세상을 구경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나, 그네’이기에 걱정하지 말라.
※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독자 이기섭(92)씨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두 아들과 함께 딸과 사위가 있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여행기입니다. 이기섭씨 처럼 독자 여러분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항상 기다립니다.
프라하는 연간 약 3천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는 동유럽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비엔나에서 프라하까지는 고속버스를 이용했는데, 전망 좋은 앞자리를 미리 예약해 왕복 10시간 도로 주변 경관을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나는 버스, 지하철, 비행기를 타고 자 본적이 거의 없다. 잠이 안 든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아들은 잠도 잘 자고, 좌석에 부착된 장치를 이용해 영화나 음악을 혼자 잘 즐기는 것 같았다. 아무튼 프라하는 짧은 일정 때문에 프라하 성, 카를교, 구시가지 등을 주마간산 격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프라하에서 비엔나로 돌아오는 버스에선 나도 모르게 틈틈이 잠이 들었는데, 강행군에 몸이 상당히 고단했던 모양이다.
체코는 다른 유럽 국가와 다르게 그들만의 화폐를 사용한다. 그렇다 보니 거리 곳곳 환전소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많이 바꿨다가 나중에 체코 돈이 남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일정이 짧아 호텔에 짐을 맡기자마자 택시타고 프라하 성으로 향했다. 오후 늦게 경로우대로 입장한 프라하성은 폐장시간이 가까워 다른 관광객을 뒤따라 여기저기 다니기 바빴다. 빠른 걸음으로 다니다가 연금술사가 작업하던 공간에 들렸는데, 그들이 쓰던 각종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침 같이 있던 며느리가 연금술 덕분에 화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할 수 있었고 그래서 남편이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그 덕에 지금 먹고 살게 된 것 같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말로만 듣던 아기예수성당이 프라하 성 가까이에 있어 들렀다. 하느님의 배려인지 마침 저녁미사가 있었다. 포도주에 담근 영성체를 영하게 되어 뜻 깊게 생각했다.
호텔로 돌아가면서 카를교에 들렸다. 프라하성과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다리로 자동차는 다니지 않았다. 역시 소문대로 많은 관광객이 몰려있었다. 긴 다리를 따라 양편에는 교황, 성인 등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 조각상들이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작은 노점상들, 거리 악사의 연주, 관광객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 등 카를교는 거리 예술가들의 아름다운 무대였다. 아들이 사준 달콤한 즉석 구이 빵을 먹으며 많은 조각상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천천히 구경했다.
저녁식사를 한 후 호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천년 古都 프라하 역사가 만들어낸 건축물들을 구경했다. 건축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각기 다른 시대에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구시가지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의 야경은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묵었던 호텔은 현대적인 인테리어이고 부엌과 세탁기까지 딸린 곳으로 5인이 머무르기에 충분했다. 아침 뷔페식사도 다양한 종류로 푸짐하고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