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깍두기라는 표현에 내심 놀랐다. 국내 최초의 팝페라 가수. 3500회 넘게 무대에 섰고, 미국과 영국에서 성악을 전공한 유학파 출신이다. 자존심 높은 성악가가 후배들의 공연에 ‘깍두기’를 자처하다니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의문에 대해 강마루(59)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이제야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대와 관객을 만나고, 노래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고.
“1등! 강마루.”
마이크를 든 사회자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까까머리 중학생은 어리둥절했다. 그간 그의 노래 실력을 칭찬해준 것은 학교 음악 성적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성가경연대회에서 1등이라니. 그것도 충남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회에서 말이다. 강마루 교수는 “성악의 길에 발을 내디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내가 재능이 있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죠. 물론 학교 음악 수업 시간에 성적이 좋긴 했지만, 그 정도 아이는 한 반에 하나씩 있잖아요. 당시만 해도 지역이나 교회마다 ‘가곡의 밤’이나 ‘성가의 밤’ 같은 행사가 많아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할 수 있었죠. 훌륭한 노래를 들으며 자란 것이 자양분 역할을 한 것 같아요.”
까까머리 중학생 성악가를 꿈꾸다
그날로 중학생 강마루의 미래는 성악가가 되었다. 음대 진학을 목표로 한 수험생 생활은 한양대 입학으로 결실을 맺었다. 장학금 덕분에 등록금 걱정도 없었다. 이후 그는 미국행을 선택한다. 성악가로 활약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고 강 교수는 이야기했다.
“당시 성악계에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해외 경험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었죠. 그리고 성악은 결국 서양 음악이니까, 그들은 어떻게 노래하는지, 발성은 어떤 식인지 현장에서 듣고 배우고 싶었어요. 물론 세계적인 무대에 서고 싶다는 야망도 있었고요. 한편으론 운이 좋게도 수업료를 면제받아 크게 고민할 것도 없었죠.”
미국 최고의 음악대학으로 꼽히는 메네스 음대(Mannes School of Music)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살인적인 뉴욕의 물가는 가난한 유학생에게 다양한 경험을 강요했다. 강 교수는 “안 해본 것이 없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택시 운전 같은 알바는 기본이고, 불러주는 무대에는 무조건 올랐다. 무대의 수준이나 어떤 관객이 오는지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다양한 무대에 올랐어요. 크고 작은 공연뿐만 아니라 한인 교회 성가대 지휘도 하고, 레슨도 하러 다녔죠. 생활비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은 무조건 해야 했거든요. 덕분에 미국에서 공부는 어려움 없이 마칠 수 있었어요. 이후 영국 런던 테임스밸리 대학원에서의 수학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죠.”
인생을 바꾼 노래 ‘슬픈 전쟁’
그는 미국과 영국에서의 유학 시절을 “마치 아이를 품은 산모와 같았던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기대에 찼던, 현실은 괴롭지만 핑크빛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어디에서나 차별을 겪어야 했어요. 한편으론 당연한 상황이라고 생각했죠. 실력으로 보여주고 이겨내면서 한국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해낼 수밖에 없었어요.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것을 이겨내면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꿈이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어요. 유학을 다녀와 한국에서 만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으니까요.”
한국으로 돌아와 경원대와 협성대 강단에 서며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일을 막 시작한 무렵, 그는 예기치 못했던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의 이름을 전국에 알린 계기가 된 노래, ‘슬픈 전쟁’과의 만남이다. 1996년 가요계에선 낯설었던 대중가요와 클래식의 만남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중앙일보 기사에선 “발라드의 미래를 제시했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사실 노래를 부른 최진경 씨와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당시 앨범 준비하던 제작자와 인연이 있었는데, 고음이 가능한 바리톤을 찾고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선뜻 나섰는데, 지금 생각하면 제게는 숙명 같은 일이었어요.”
이 노래는 그에게 ‘국내 최초의 팝페라 가수’라는 칭호와 함께 대중적인 인기를 안겨줬다. 물론 보수적인 성악계에선 그를 향한 비뚤어진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대중에 대한 그의 생각은 크로스오버나 팝페라에 대한 도전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클래식이라는 장르는 대중이 쉽게 접하기 어렵잖아요. 일단 기본적인 공부가 되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분야니까요. 그러다 보니 소수만 즐길 수 있는 관상용 도자기 같은 존재가 된 것 같았어요. 그에 반해 제 음악은 그 안에 김치도 담고 찌개도 담는 생활용 그릇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랐죠. 좀 부딪히고 상처가 나더라도 모든 사람이 쉽게 쓸 수 있는 그릇이요. 저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문제되지 않았어요.”
실패작 된 최고의 명작
그러나 화려한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만 받을 것 같았던 그의 인생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후학 양성을 위해 의욕을 갖고 나섰던 대학 설립은 결국 경제적 부담만 안겨줬다. 이후 의욕을 갖고 진행한 1집 활동은 매니저의 횡령으로 제대로 꽃피우지도 못하고 져버렸다.
“1집 ‘산책’을 준비할 때 너무 행복했어요. 1년간 공들여 준비하고, 제작에만 세 달이 걸렸죠. 세션으로 기타의 함춘호, 드럼에 신석철 같은 당대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이 참여했죠. 곡도 너무 좋았는데, 많이 아쉬워요.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잊혔으니까요. 그래도 너무나 좋은 곡이라 언젠가는 ‘역주행’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어요.”
그리고 9년 만에 발매한 2집은 의외의 선택으로 화제를 모았다. 트로트 가수 태진아의 곡 ‘동반자’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성악계 일부에서 ‘딴따라’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던 그에게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태진아 씨가 흔쾌히 곡 사용을 허락해줘서 타이틀곡으로 부를 수 있었죠. 그저 신나는 전통가요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가사를 음미해보면 무척이나 철학적이고 서정적인 노랫말을 갖고 있어요. 원곡의 ‘출신성분’ 같은 것은 제게 중요치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삶과 기쁨을 공유하는 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이에요. ‘동반자’는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어서 제게 수많은 무대를 선사해준 고마운 곡이에요. 주변에서 “왜 태진아냐”며 폄하하는 분도 많았지만, 그분의 창법이 갖는 매력이 있고, 둘이 함께 선 무대가 많지는 않았지만 둘 사이의 화합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달려오던 그의 무대는 잠시 멈춰야 했다. 많은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의 등장은 그가 설 수 있는 무대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잠시 멈춘 사이 그동안 저의 활동을 되돌아보았죠. 음악인으로 살아오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음악이 나를 정화시키고 힐링을 주어야 하는데, 삶의 수단으로만 남용한 것은 아닌지 반성했어요. 관객에게 감동을 전하면서 정작 제 자신은 위로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분은 저랑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 11월 30일은 그에게 소중한 경험을 전해준 날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모처럼 관객 앞에 설 수 있었다. 한국경제TV의 팝페라 페스티벌 무대였다. 그가 설립한 한국예술문화재단을 통해 조직한 성악 그룹 ‘더 텐테너스 그룹’과 함께 공연할 수 있었기에 더욱 의미 있었다. 30~40대 테너 10명으로 이루어진 이 그룹을 조직하기 위해 그는 3년간 공을 들였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그룹은 해외에선 활동이 활발하지만 국내에선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11월 공연에선 관객들이 박수는 가능했지만 환호성은 지르지 못했어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방역수칙 때문이죠. 무대에 서는 입장에선 김 빠진 사이다 같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았어요. 관객과 함께하는 무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누구나 열망하고 바라는 소망을 잊고 있었던 거죠.”
더 텐테너스 그룹에 대해서는 “성악계의 BTS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음악대학 강사 이상의 자리에서 활약할 수 있는 해외파 출신 테너들로 구성된 성악 그룹으로, 갈수록 설 무대가 좁아지는 후배들을 위해 강 교수가 기획한 작품이다. 후배 위해 깍두기 되고파 강 교수는 한국예술문화재단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꾀하고 있다. 대중이 성악이라는 어려운 장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마스터스 성악 최고위과정’은 벌써 21기가 되었을 정도로 전통을 자랑하고 있고, ‘노블레스 최고위과정’이나 ‘와인인문학 최고위과정’도 인기를 얻고 있다.
“어릴 적부터 음악이 꿈이었지만 이루지 못한 분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그런 분들의 염원을 담아 한 분씩 가르치다 보니 정규 과정이 되었어요. 처음엔 예상치 못했던 일이죠. 사회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모니를 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보람을 느껴요.”
그가 최근에 설립한 공연장 ‘하다 아트홀’도 같은 맥락이다. 2020년 10월부터 준비한 장소가 지난해 11월 결실을 맺었다. 하다 아트홀은 후배들에게 공연할 장소를 제공하고, 한국예술문화재단의 교육 장소로도 활용하기 위해 만든 공연장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만나 사회적 관계를 만들며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놀이터’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담겨 있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말이 있잖아요. 인간의 본질이 유희라는 점에 기초하는 인간관인데, 저 역시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먹고 놀고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장소가 되길 희망해요. 모두가 ‘놀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지만, 제대로 노는 사람은 찾기 어렵잖아요. 술밖에 모르는 우리 현대인에게 인문학에 기반한 다양한 ‘노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해요.”
하다 아트홀이라 이름 지은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박정희 씨다. 노래를 하고 공부를 하는 다양한 행위의 산실이 되기를 바라며 지은 이름이라고. 마케팅 전문가로 활약하다 은퇴한 박정희 씨는 현재 수만 명의 팔로어를 자랑하는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강 교수는 “저희 공식 유튜브 채널보다 팔로어가 많아 샘이 날 정도”라면서도, “아내를 존경하는 마음이 커서 유튜브 채널 운영 등 여러 활동에 대한 다양한 조언에 늘 귀 기울이며 산다”며 웃었다. 가수 강마루로서의 계획은 어떨까? 그는 불쑥 깍두기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는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팝페라 가수들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많이 만드는 것이 꿈이에요. 이제 저도 신체적인 상황이 젊을 때와 많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져요. 앞으로는 제 무대에 대한 욕심만 챙기며 후배들과 경쟁하기보다는, 후배들이 성장하고 대중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관객들이 팝페라라는 장르의 매력을 알게 되고, 가수와 관객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길 기대하고 있어요. 전 그저 ‘깍두기’로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해요. 꼭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무대에 서서 관객의 환호와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생활을 마지막 그날까지 유지하고 싶어요. 그게 제 희망입니다.”
오전 9시와 오후 7시. 만화가의 안부 인사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봉선이’는 매일 다른 사진을 배경으로 아침저녁마다 인사를 건네온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150명에게 5년째 꾸준히 보냈다고 하니 내심 기대하는 마음마저 든다. 내일은 어떤 안부 인사를 받게 될까. 좋아하는 만화책 시리즈의 다음 편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팬의 마음이 바로 이런 걸까.
만화가의 상징인 빵모자와 검정색 긴 코트 차림. 만화박물관 로비에서 마주친 권영섭 한국원로만화가협회 회장은 ‘만화가 할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그 자체였다. 호쾌하게 주먹 악수를 건넨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는 대신 만화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로 향했다.
기획전시 ‘만화, #시대를 담다’가 진행 중인 1층 전시관에는 시대의 얼굴로 자리 잡은 만화가들의 이름과 대표작이 짝 맞춰 걸려 있었다. 한국전쟁 후 삶의 애환이 담긴 캐릭터 봉선이가 붉은 섬에 갇히고, 이를 구하러 가는 방울이 아빠의 여정과 봉선이를 둘러싼 사건사고를 다룬 작품. 만나뵙기 전부터 받았던 안부 그림 속 봉선이가 전시 액자 속 흑백 만화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캐릭터를 채색하는 스타일이나 말풍선 속 대사는 달라졌지만 1960년의 봉선이와 2021년의 봉선이, 둘의 그림체만큼은 한결같았다.
성실함을 타고난 그림 이야기꾼
60년이 훌쩍 넘는 꾸준함의 원천은 역시 만화에 대한 오랜 애정이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만화를 처음 접했다. 친구들이 만화책을 한두 권 들고 다니는 것을 눈여겨본 그는 집에 있는 감나무에서 감을 따다주고 친구들의 만화책을 빌려 읽었다. 감으로 빌린 만화책을 한 권 두 권 읽다 보니 그 만화책이 교회에서 빌려준 것임을 알았다. 이에 교회를 다니며 교회의 만화책을 모두 읽은 그는 만화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학생 권영섭은 만화의 근간인 이야기와 그림, 두 가지 모두 곧잘 했고 좋아했다. 신문 보기를 즐겼고 혼자 남아 그림을 연습했다. 수업을 마친 뒤 쉬는 시간마다 교실 칠판에 그림을 그리며 어렵잖게 이야기를 덧붙일 때면 친구들과 선생님께 ‘만화가 해보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는 그림을 계속 그렸고, 책과 신문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실력을 쌓아나갔다. 열아홉 살이 되던 해 지역신문 ‘대구매일’에서 주최한 만화 작품 공모전에 덜컥 입선하면서 만화가의 꿈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가 자란 영주 시골 동네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큰 신문사 만화 공모전에 당선돼 원고료를 탔다는 사실이 크나큰 자랑이었다고 한다.
꿈이 확고했던 그는 무작정 서울에 올라가 동아일보 편집국 문화부장을 만났다. 신문에 연재 만화를 그리게 해달라고 조르기 위함이었다. 원하던 대로 바로 만화를 그리지는 못했지만, 인쇄 조수로 일하면서 만난 김경언 만화가로부터 만화에 대해 배울 기회를 얻었다. 스승에게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1959년 연합일보 아동만화 공모전에 당선된 그는 과학만화 ‘우리들의 척척박사’로 연재를 시작했다.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 연재는 3년간 이어졌다.
“만화에 나온 그대로 시험이 출제돼 도움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내가 진짜 과학박사인 줄 알고 박사님, 박사님 하며 과학에 관해 묻는 편지도 받고요.”
아이들을 위하여
그를 당대 인기 만화가 반열에 올린 작품은 ‘오손이와 도손이’다. 고아로 자란 형제가 헤어졌다가 검사와 도둑이 되어 만나는 내용의 만화는 당시 아이들에게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 1960년대 만화계 3대 출판사 중 하나였던 부엉이문고가 소년만화에 두각을 드러내는 그를 알아보고 새 작품을 의뢰해왔다.
생각해둔 작품은 있었지만 제목과 주인공 이름을 정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는 교회에서 알게 된 김천애 전 숙명여대 음악대학장이 전국을 다니며 불렀던 가곡 ‘울 밑에 선 봉선화’를 듣고 마음을 정했다. 그렇게 당시 준비하던 작품의 제목은 ‘울 밑에 선 봉선이’, 주인공의 이름은 봉선화에서 본떠 봉선이가 됐다.
봉선이 만화의 이야기는 집안 형님을 보며 구상해냈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장교가 될 만큼 성공했지만 질 나쁜 친구들의 꾐에 넘어가 사업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불행해진다는 기구한 사연을 닮았다. “형에게 직접 충고하기가 어려워서 만화에 경고의 의미를 담았는데, 나중에 만화책을 받아본 형님이 자신에게서 착안된 인물이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에 불같이 화내시더군요.”
가족 내의 실랑이는 있었으나 만화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권영섭은 여세를 몰아 ‘봉선이 시리즈’를 이어서 발표했다. 시리즈 중에서 ‘울 밑에 선 봉선이’ 이후 발표한 ‘봉선이하고 바둑이’가 가장 인기가 좋았다. 1960년대 당시 남자아이들은 만화 ‘산호의 라이파이’, 여자아이들 사이에선 ‘봉선이하고 바둑이’ 만화를 보지 않으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수준이었다고 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신문 만화를 연재했는데, 봉선이 만화가 인기가 많으니 다음 이야기를 내달라고 독자들이 성화였어요. 출판사 사장이 한 달에 책 두 권을 그리면 집을 사주겠다고 부추겼지만 불가능했죠.”
당시 서울의 일반 가정집은 밤 12시면 전깃불이 나갔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촛불을 켜놓고 새벽 4시까지 작업에 몰두했다고 한다. 하루에 두 시간만 자고 일어나서 작업을 했다. 모두가 잠들었어야 마땅한 새벽을 노려 침입하려던 도둑을 깜짝 놀라게 한 뒤 내쫓은 경험은 그에게 우스갯소리일 뿐이다.
게다가 최초의 순정만화라 당시 여성 독자들로부터 하루에 팬레터를 스무 통씩 받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그는 진지한 고민을 적어 보낸 편지에는 일일이 답장을 써주었다. 만화 작업에 편지 답장까지 쓰니 이틀에 한 번은 밤을 새워야만 했다. 바빠도 그만두지 못한 이유는 보람 때문이었다. 한 번은 안 좋은 선택을 하려던 독자가 봉선이 만화 시리즈를 읽고 위로를 받았으며 용기를 갖게 됐다는 편지를 받은 적도 있다. 소녀 시절 만화로 접한 봉선이 덕분에 용기를 얻고 새 삶을 살게 됐다며 감사 인사를 하러 오는 이들이 아직도 종종 있단다.
먹고살 만큼은 돼야 하지 않겠나
1960년대 만화 대본소는 2만여 개가 넘었는데, 이곳에서 얻은 만화책은 한 번 읽고마는 것이 당연했다. 당시는 질이 좋지 않은 선화지를 사용해 출판 만화책 자체의 질도 떨어졌으며, 너나 할 것 없이 만화가를 하겠다고 몰려들어 만화의 수준에 악영향만 미쳤다.
만화책은 사회의 악으로 규정당해 질타를 받았다. 여성단체 등 여러 단체가 모여 어린이날만 되면 남산에서 만화책 태우기 운동을 할 정도로 평판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군부 정권은 만화자율심의위원회를 세우지 않으면 만화를 전부 없애버리겠다고 협박해왔다. 하는 수 없이 만들어진 것이 1968년 창립한 한국아동만화가협회다.
그는 이때부터 부회장 세 번, 회장 세 번을 역임하며 협회라는 큰 단체를 운영하는 방법을 익혔다. 이외에도 어린이전도협회 부회장을 지냈던 그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원로만화가협회를 만들고 12년째 회장을 맡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원로만화가협회는 만 60세 이상 작품 경력이 20년 넘는 원로 만화가들로 이뤄진 비영리 법인이다. 경로사상과 이웃사랑, 국민화합과 상생을 위한 작품을 제작하거나 만화 자서전을 의뢰받아 제작하는 등 재능기부에 망설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원로만화가협회 일을 하는 데는 다른 목적이 하나 더 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데 특별한 뜻이 있는 건 아니에요. 적어도 손자들이나 그 자손들이 ‘할아버지 나 뭐 먹고 싶어요. 저 장난감 갖고 싶어요’ 할 때 당당히 사줄 수 있는, 그런 체면 유지하는 정도로만 되길 바랄 뿐입니다.”
그는 한국원로만화가협회를 이끌며 원로 만화가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누구보다 힘쓰고 있다. 한국 만화 발전에 힘쓴 협회 회원들이 손주 앞에서 당당하길 바란다.
그래서 한국원로만화가협회의 신년 목표는 대체 불가능한 토큰 ‘NFT’ 사업의 성공이다. 희소성을 갖는 디지털 자산인 NFT는 블록체인 기술로 생성되어 교환과 복제가 불가능하다. 그는 원로 만화가들의 그림과 기술을 NFT에 접목해 원로 만화가들에게 고정적인 수입처를 만들어주려 한다. 그는 NFT 관련 스타트업 직원들과 만나 계약을 위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39년생 아니라 39세 현역 만화가
스스로 ‘39년생’이 아닌 39세라 말하고 다닌다. 그만큼 바쁘게 살고, 미래를 계획한다. 우선 100권짜리 성경만화 전집을 내는 것이 목표. 현재는 40권가량만 완성하고 출판사의 사정으로 더 이상 작업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어린이 성경 주석 전집 완성’이란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는 어린이에 대한 애정이 많으며 누구보다 어린이를 중시한다. 어른에게는 지금 현재의 가치뿐이지만 어린이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동 정서에 맞는 만화가 없어 순정만화를 그렸듯, 그는 3년 동안 수원시 어린이집을 돌며 유아를 대상으로 만화교실을 열었다. 자기 얼굴을 그리게 하고, 가족이나 사물을 그리게 하면서 창의력을 개발하는 30여 분의 수업에 집중한다. 다음에 또 와달라며 붙잡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다고 한다.
“어린이는 박사가 될 수도 있고 과학자가 될 수도 있죠. 심지어 대통령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봉사는 언제든 기꺼이 하고 있습니다.”
그의 봉사는 어린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원로만화가협회는 그를 필두로 노인들을 위한 만화교실을 열기도 했다. 여러 경로당을 돌며 일주일에 세 번, 두 시간 수업 동안 과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표현하게 하고, 책자도 제작하게 도왔다. 그는 이외에도 교육부나 문화관광부 측 인사에게 제안해 여러 재능기부 만화교실을 열고자 계획하고 있다.
매일 밖에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고 실천해나가는 그는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지하철 타고 오가는 시간에는 휴대폰을 꺼내 아침저녁으로 보낼 안부 그림을 그린다. 이 역시 5년째 빼먹지 않고 해오는 일. 적지 않은 나이에 현역 만화가로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만드는 그의 원동력은 지치지 않는 도전정신이었다.
5060세대에게 던지는 조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막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거나, 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더라도 문제는 없다. 그가 운영하는 실버만화교실에서 솜씨 좋은 이들은 만화가로 데뷔하기도 했다. 꼭 만화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든지 자기 안에 숨겨진 장점이 있거든요. 그걸 죽이지 말고, 나를 보면서 희망을 갖고 도전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건강만 하면 노인이라고 못 할 게 뭐 있겠어요?”
동서고금을 망라하고 인류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고, 공동체의 구성원이 사망하면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특정한 의례를 행함으로써 애도의 시간을 가져왔다. 이러한 죽음 의례에서 공통적으로 중요시 여긴 것이 시신을 정성스럽게 대하는 것이었다. 고인의 몸을 깨끗이 씻기고 깨끗한 옷을 입힌 후 장사지냈다.
이때 고인이 입는 옷을 우리는 수의(壽衣)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중국산 면수의, 삼베수의, 인견수의, 명주수의, 한지수의 등 다양한 수의가 유통되고 있는데, 상조회사 등에서 제공하는 중국산 면수의(삼베처럼 보이는)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종류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인 수의 중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을 위해 어떤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
삼베수의는 일제의 잔재다?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대체로 그렇다는 결론이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대표적인 예서인 ‘사례편람’(四禮便覽)을 보면 수의의 소재로 주(紬), 견(絹), 백(帛), 금(錦) 등이 제시된다. 다 비단의 종류다. 이러한 내용은 조선시대 분묘에서 나온 출토복식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문관과 무관은 관복이나 갑옷을 입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매우 화려한 한복을 입기도 했고 천을 덧대어 꿰매 입은 수의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일본은 의례준칙을 통해 삼베수의를 사용할 것을 명문화했다. 전쟁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토지를 시작으로 쌀, 비단, 면 등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수탈하던 시기였다. 그러니 수의에 비싼 비단 사용이 금지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1925년 김숙당이 편찬한 ‘조선재봉전서’에 ‘조선인들이 고인을 위해 준비하는 수의 소재는 고운 삼베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증거로 삼베수의를 일제의 잔재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숙당의 ‘조선재봉전서’가 일제의 의례준칙보다 먼저 발표되었기 때문에 이미 조선 사회에서 삼베수의가 일반화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숙당은 조선총독부로부터 급여를 받는 사람이었고, ‘조선재봉전서’ 편찬 시기가 일제의 식민정책이 문화통치로 바뀌던 시점인 것을 감안한다면 ‘조선재봉전서’에 일제에 입김이 들어갔음을 유추할 수 있다.
비단한복은 전통 수의인가?
모 대학 전통복식연구소에서 조선시대 분묘의 출토복식을 연구해 ‘왜곡된 전통 삼베수의’의 대안으로 전통 수의 제품을 개발해 상품화했다. 누가 봐도 고급스러운 비단수의의 가격은 무려 6000만 원(가장 비싼 수의 세트)이다.
조선시대 ‘예서’에 언급된 수의 재료가 비단이었고, 출토된 복식의 대부분이 비단이었다고 해서 우리의 전통 수의가 비단한복이라 말할 수 있을까? ‘사례편람’을 비롯한 예서의 내용도, 분묘에서 나온 출토복식도 모두 양반과 사대부의 것이었다. 일반 서민의 것은 아니었다.
추측하건대 대다수 서민들은 비단수의는커녕 관조차 쓰지 못한 채 매장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대다수를 제외한 특정 대상을 기준으로 한 것을 전통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수의 뭣이 중할까?
염습을 할 때 장례지도사는 고인의 모습을 최대한 아름답게 꾸며드린다. 지저분한 수염이나 코털도 정리하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는다. 여성의 경우 가볍게 색조화장을 한다. 고인의 입장에서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멋지고 아름답길 바라는 마음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의도 마찬가지다. 고인이 어떤 옷을 입고 가족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싶어 할지 생각한다면 어떤 수의를 입혀드려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있다. ‘내가 죽어서 마지막으로 입고 가는 옷’으로 어울리지도 않는 삼베수의나 평생 구경해본 적도 없는 고급 비단한복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어떤 옷을 입고 갈 때 가장 좋을지 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입혀드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수의 문화가 아닐까. 소위 전통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와 맞물려가며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 핫했던 전시로 ‘아트 오브 뱅크시’ (The Art Of Banksy : Without Limits)를 꼽을 수 있다. ‘얼굴 없는 화가’로 유명한 뱅크시(Banksy)는 영국의 미술가 겸 그래피티 작가다.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1000만 명대로 생존하는 화가 중 가장 인기가 많다. 도대체 뱅크시가 누구길래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뱅크시와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뱅크시는 누구인가?
‘뱅크시’는 가명이고, 얼굴, 나이 모두 베일에 싸여 있다. “뱅크시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지만, 모두가 그가 누군지 안다”라는 말까지 생겼다. 뱅크시의 본명은 로버트 뱅크스이며 1974년 영국 브리스톨 출생으로 추정된다. 로버트 델 나자(영국 유명 밴드 ‘매시브 어택’ 멤버)도 뱅크시로 의심받은 적이 있는데, “우리는 모두 뱅크시다”라는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이는 뱅크시가 개인이 아닌 창작 집단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추가했다.
뱅크시는 1990년대부터 활동 중이다. 브리스톨의 지하 무대에서 성장해 점점 전 세계 도시의 거리, 벽, 다리 위로 작품 활동을 뻗어나갔다. 뱅크시는 전쟁과 난민, 불평등, 비인간성, 자본주의, 권위주의, 기후 온난화 같은 사회적 주제를 다루며 비판적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특히 2018년 ‘풍선과 소녀’(Girl with the Balloon) 파격 퍼포먼스로 유명해졌다.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100만 유로 이상으로 그림이 낙찰된 순간, 뱅크시는 미리 프레임 밑에 장치해둔 분쇄기를 원격으로 가동해 그림을 즉석에서 분쇄했다. 돈으로 구매하는 자본 미술 시장을 비판한 퍼포먼스였다.
‘아트 오브 뱅크시’, 짝퉁 전시인가?
‘아트 오브 뱅크시’는 개막 당시 ‘짝퉁 전시’ 논란이 일었다. 알고 보니 오리지널(원본) 작품 전시가 아니었고, 더욱이 뱅크시의 허락을 받지 않은 사실이 알려졌다. 뱅크시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내 이름을 내건 전시회 중 나와 합의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이름을 내건 모든 전시는 가짜(FAKE)”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시 주최사는 “대표 벽화 등 뱅크시의 예술 세계를 재현한 작품 외에도 ‘POW(뱅크시가 2003년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 설립한 딜러) 인증’을 받은 뱅크시의 원작들이 포함돼 있다”라며 “이런 소란마저 뱅크시스럽다”고 밝혔다. 전시회 작품 중 오리지널은 27점, 나머지 120여 점은 레플리카(복제본)로 알려졌다. 주최사는 뱅크시의 작품 세계를 공감각적으로 이해하고, 그가 던지는 메시지를 공유할 수 있는 전시라고 강조했다.
‘아트 오브 뱅크시’ 직접 가보니
‘아트 오브 뱅크시’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입장료 2만 원이 아깝다”와 “뱅크시가 궁금하다”로 나뉜다. 이에 직접 전시회를 찾아봤다. 여전히 사람은 많았다. 화려한 조명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지루하지 않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공간 활용률이 높은 전시였다. 뱅크시의 세계관과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꼼꼼히 채워져 있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도 많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뱅크시의 작품 대부분은 스텐실 작업(종이에 글자나 무늬, 그림을 그린 후 그 모양을 오려서 구멍에 스프레이를 뿌려 완성하는 방법)을 거쳤다.
또한 영국에서 5주간 한정 운영했던 ‘디즈멀랜드’를 재현한 퍼포먼스, 멀티미디어로 재창작된 작품들도 눈에 띈다. 전시회 중앙에는 뱅크시의 대표작 ‘풍선과 소녀’의 멀티미디어 작품이 있다. 시리아 내전의 아픔이 전해져온다. 뱅크시의 작품에는 전쟁 혹은 빈곤의 어두운 배경 속에 아이들이 있다. 이를 통해 그는 ‘희망은 있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그런가 하면 사전 지식이 없어도 뱅크시가 영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영국인으로서 자부심도 있으면서 비판적인 시선도 갖고 있다. 영국 고위층을 꼬집는 작품이 많다.
뱅크시는 인간을 원숭이로 많이 표현한다. 특히 그는 ‘원숭이 여왕’(Monkey Queen)이라는 작품으로 영국 여왕을 원숭이로 표현해 화제를 모았다. 뱅크시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한 ‘위임된 의회’(Devolved Parliament)에서는 브렉시트를 논의하는 하원들의 모습이 침팬지로 표현됐다. 뱅크시 작품 속 원숭이는 인류의 본성을 풍자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원숭이 말고 쥐도 많이 등장한다. 쥐는 노동자의 삶을 사는 일반 소시민을 표현한 듯하다. 또한 반체제적인 성향의 뱅크시는 경찰들을 풍자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왕실근위대가 소변을 보는 발칙한 그림도 있다.
뱅크시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전시회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는 그냥 평범한 영국 사람이었다. 우리는 때로 정부가 답답할 때도 있고, 전쟁으로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환경이 보존되기를 바란다. 뱅크시는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한, 용기가 조금 더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야 그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이유를 알겠다. ‘우리 모두는 뱅크시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전해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정리’는 점점 어려워진다. 어떤 물건이든, 사람이든 ‘추억’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리하지 않고 모아두면 의미 있던 물건도 짐이 되고 쓰레기가 되는 법이다. 그럼 도대체 정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국내 시니어 라이프 오거나이저 1호’ 김민주(55) 한국청소직업학원 이사를 만나 조언을 들어봤다.
먼저 ‘시니어 라이프 오거나이저’(Senior Life Organizer)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단어의 뜻을 풀어보면 ‘중장년(Senior)+생활(Life)+정리하는 사람(Oragnizer)’이다. 한국어로는 ‘생활조력 전문가’라고도 불린다.
시니어에게 정리란 노전(老前) 정리, 생전(生前) 정리 및 유품 정리까지 포함된다. 이에 시니어에게 정리가 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민주 이사는 2026년 초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시니어 라이프 오거나이저를 창직했다.
시니어 라이프 오거나이저는 기존의 수납 정리 전문가나 가사도우미와는 차별된다. 시니어들의 생활 공간 개선을 돕는 정리수납과 생애 설계를 연결해 효율적인 노후 생활까지 도움을 준다.
평범한 직장인, 시니어 라이프 오거나이저 되다
김민주 이사의 인생은 2009년 ‘정리수납’ 교육을 듣고 180도 바뀌었다. 정리수납 전문가 이전의 그녀는 무역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었다.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20년 넘게 일했다. 정리수납, 살림 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살림을 도와준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집안일을 도맡게 됐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결혼한 지 15년이 넘었을 때 처음으로 살림을 오롯이 하게 됐어요. 집안일을 해보니 할 일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너무 재미가 없고 바쁘기만 했어요. 살림을 못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관심 분야는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살림을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어 정리수납 교육을 듣게 됐죠.”
정리수납 교육 후 그 매력에 푹 빠진 김민주 이사. 그녀는 2012년 12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13년 정리수납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2016년 12월 시니어 라이프 오거나이저를 창직했다. 김 이사는 “정리수납 일로 가정집을 돌아다니다 보니 부모님들이 정리를 못 한 집들을 보게 됐다. 그래서 부모님 집 정리 프로그램을 해야겠다 싶어, 시니어 라이프 오거나이저로 명명하면서 특허를 냈다”고 설명했다.
김민주 이사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한국정리수납협동조합도 꾸렸다. 지금은 임기가 끝나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또한 그녀는 현재 한국청소직업학원의 이사로 있다. 행정 일을 하면서 강사로 교육도 한다. 김 이사는 의뢰를 받으면 ‘정리·청소·소독’을 함께 한다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니어에게 정리가 중요한 이유
앞서 말했듯이 시니어 라이프 오거나이저의 출발점은 ‘부모님 집 정리 프로그램’이었다. 김민주 이사는 어르신들이 ‘정리를 못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리정돈을 못 해서가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녀들은 결혼해서 집을 떠나는데, 물건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물건들은 자신들이 피땀 흘린 돈으로 산 것이기도 하고, 자녀들의 추억도 배어 있기 때문에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
“어르신들은 전쟁도 겪으셨고, 그 이후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잖아요. 굉장히 치열하게 살았고, 근검절약, 희생, 봉사의 아이콘이죠. 자기들은 아껴 쓰면서 자녀들에게는 많은 것을 해주셨죠. 월급 타서 살림도 장만하고, 학교도 고등교육 이상 투자했죠. 컴퓨터, 그랜드피아노도 사주고요. 그런데 자녀들이 결혼할 때 자기한테 필요한 것만 가져가다 보니 본가에 짐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 넓은 집에서 부모님들이 짐과 함께 사시는 이유죠. 결국에는 몸이 아파오니 정리를 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죠. 그래서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정리를 같이 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김민주 이사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시니어의 마음을 이해했다. 먼저 베이비부머가 어떻게 살았는지 이해해야 했다. 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에 대해 김 이사는 “물욕을 못 채운 상태로 자랐다”고 짚었다. 그 베이비부머들이 결혼할 당시에 13, 15평의 아파트가 생겼고, 자녀들이 중고등학생이 됐을 때는 24, 28, 32평 아파트로 옮겨갔다. 집이 넓어지다 보니 장롱, 냉장고, TV 등을 사들인 것. 거기에 홈쇼핑, 대형마트의 확대로 크고 작은 물건들을 더욱 사들였다는 설명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자신이 못 채웠던 물욕을 자녀들에게 채우고, 물건을 사들이는 것으로 충족했죠. ‘못 버린다’를 그냥 이해하면 쉬워요.”
자칫 주의해야 할 것은 정리를 못 한다고 해서 쓰레기 집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김 이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의뢰인으로 서울 송파구의 고급 아파트에 혼자 사는 한 할머니를 꼽았다. 할머니는 11년 동안 한 번도 청소를 안 했고, 아들·딸과의 사이도 멀어진 상태였다. 김민주 이사는 할머니의 동의 하에 대청소를 했는데, 이후 할머니는 자기한테 소중한 물건들이 사라졌다며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누가 봐도 버려야 할 것들인데, 할머니는 그것들을 다 품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 김 이사는 “물건을 버린다는 것을 못 견디고 상실감을 크게 느낀 것”이라며, 시니어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2022년, 시니어에게 추천하는 정리 방법
그렇다면 어렵게만 느껴지는 정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김민주 이사는 “버리기 전에 물건이 더 이상 집 안으로 안 들어오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건을 사기 전에 꼭 필요한지, 집에 대체할 물건이 있는지 고려해볼 것을 조언했다. 다만 잘 먹고 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식재료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구입하라고 말했다.
더욱이 물건을 사들여도 ‘아끼다가 똥 되는 경우’가 많다. 그녀는 “물건은 쓰려고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왜 쓰지 않고 아끼냐”면서 “이 세상에서 아까운 존재는 시간과 사랑뿐이다”라는 어록을 남겼다. 더불어 김 이사는 모든 정리의 시작은 ‘물건 째려보기’라고 생각한다. ‘역할이 끝난 물건, 방치된 물건, 설레지 않는 물건’을 찾는 과정이다. 더불어 “40세부터 정리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가 40대 때 창직을 했잖아요. 그때부터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째려봤어요. 안 보이던 물건이 보이기 시작하고, 역할이 끝난 물건도 보이는 거죠. 집에 보면 자녀는 다 컸는데 공갈젖꼭지, 유치원 때 읽던 전집류, 중고등학교 교복, 그랜드피아노 다 있을걸요. 추억인 건 알겠지만 다시 쓸 일이 없잖아요. 그걸 버릴지, 갖고 있을지는 그 물건의 주인인 자녀가 결정하는 거예요. 귀중한 거니 결혼할 때 가져갈 수도 있고, 버리라고 할 수도 있죠. 그렇게 정리를 하는 거예요. 저도 10년째 째려보니 이제 조금 정리가 됐어요.”
김민주 이사는 2022년을 시작하는 시니어들에게 ‘비움-나눔-채움’이라는 3단계 정리법을 제시했다. 사람도, 물건도, 식재료도 비우고 나누는 정리를 한 뒤, 최상위 것들로 다시 채우자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하면 ‘내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 또한 갖게 된다’고 궁극적인 의도를 밝혔다.
“하루에 하나씩 물건 버리기를 해보는 거예요. 휴대폰의 전화번호부도 ‘ㄱㄴㄷ’ 순서로 하루에 한 명씩 정리해보세요. 우리는 20%의 물건만 쓰고, 80%는 안 쓰는 물건이에요. 안 쓰는 것들을 버린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눠준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유익해요. 그리고 휴대폰에 ‘버림의 행복’이라는 사진 폴더를 만들어 놓고, 버리기 전에 사진을 찍어두세요. 내일은 뭘 버릴까 기대하게 돼요. 평생 하라는 건 아니에요. 매일 계속 버리면 상실감이 생기니까, 어느 정도 충족되면 좀 쉬어야죠. 사람들이 비우면 행복하다 하잖아요. 비워야 다른 것들로 채워져요. ‘비운다, 버린다’를 나눠준다로 생각하시고, ‘채운다’는 제대로 된 것들로 채운다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김민주 이사는 홀로 살다 86세에 세상을 떠난 이모 이야기를 전했다. 이모는 근검절약했고 물건을 아껴뒀지만 세상을 떠난 뒤 그것들은 다 쓰레기가 됐고, 자식들에게 짐만 됐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김 이사는 살아 있을 때 ‘정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금쪽같은 자식들에게 그렇게 우려하는 ‘짐’ 같은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이모님이 돌아가시고 4남매 자식들이 조를 짜서 집 청소를 했는데 3개월 이상 걸렸어요. 정리를 해보니 옷, 스카프, 장갑 등 안 입은 좋은 것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처음에는 딸들이 좋다고 가져갔지만, 나중에는 한탄이 되는 거죠. 그러다 어느 날 서랍장에서 돈이 나오니까 자식들의 자세가 달라졌죠. 그걸 보면서 현금, 통장, 도장이 아닌 것은 다 쓰레기가 된다고 느꼈어요. 저는 시니어들이 뭘 남기고 뭘 버려야 좋을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돈 있으면 자식들 다 주라는 것도 아니에요. 건강하게 살면서 좋은 것 드시고, 좋은 데 다니시라는 거예요.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를 하고 있기도 하고, 앞으로 시니어 라이프 정리 교육은 더욱 중요해질 것 같아요. 국가 차원이면 더 좋고, 교육이 확대됐으면 좋겠어요. 시니어에게 정리란 자신의 빛나는 인생을 돌아보면서 추억을 반추하는 것이고, 금쪽같은 자식들을 덜 고생시키는 것이죠.”
집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정리정돈 팁
정리수납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납 도구를 미리 구매할 필요는 없다.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박스(홍삼, 화장품, 각티슈)나 쇼핑백을 활용하면 수납 도구가 된다. 홍삼 박스 옆면에 손잡이를 부착하면 수납 트레이가 된다.
◆ 쇼핑백을 활용한 수납 도구 만들기
손잡이 끈을 풀어놓는다. → 들어갈 공간의 높이보다 조금 낮게 접는다.(앞뒤로 각각 접기) → 접힌 부분을 안으로 집어넣어 바구니 형태로 만든다. → 그대로 냉장고 야채칸에 넣어두면 저절로 칸막이가 생겨서 종류별로 나눠 수납할 수 있다. 또한 쇼핑백 옆면에 링 라벨을 안팎으로 붙인 다음 풀어둔 손잡이 끈을 넣으면 또 다른 수납 도구로 활용 가능하다.
"무대에서 연기하다 죽고 싶다." 배우 이순재가 한 말이다. 이순재는 노년의 나이에도 무대 위에 올라 연기를 펼친다. 그와 같이 배우들은 드라마나 영화로 유명해지더라도 무대를 잊지 못해 돌아온다. 최근 개막을 했거나 앞둔 작품들을 보면 연기력을 인정받은 중장년 배우들이 출연해 눈길을 끈다. 추워지는 날씨에 문화생활을 즐기기 좋은 작품이 될 것으로 보여 소개한다.
오영수, 오일남 벗고 프로이트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 역을 맡은 배우 오영수. 20대 초반 1963년 광장 극단의 단원으로 입단한 그는 연기 생활 50여 년 만에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오징어 게임' 이후 오영수의 차기작에 관한 관심이 뜨거웠는데, 그는 무대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오영수가 선택한 작품은 연극 '라스트 세션'이다.
오영수는 '라스트 세션' 기자 간담회에서 "갑자기 '오징어 게임'을 통해 많이 알려지고 나서 나의 중심이나 연기자로서의 의식 흐름이 흩어지지 않을까 염려했다"며 "광고가 들어오고 하는데, 왜 연극을 선택하냐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내가 연극을 선택한 게 잘한 일인 것 같다. 내 나름대로 지향해왔던 모습 그대로 가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 뜻깊다"고 강조했다.
연극 '라스트 세션'은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 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한다. 정신 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S. 루이스가 직접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극이다. 오영수와 신구는 프로이트 역에, 이상윤과 전박찬은 루이스 역에 각각 더블 캐스팅됐다.
오영수는 "대사가 일상적인 용어가 아니고 관념적이고 논리적이어서 헤쳐나가기가 상당히 힘들다"며 "신구 선배가 이 역할을 하셨다고 해서 용기를 갖고 참여하게 됐다. 결과가 좋았으면 하는 바람, 염려가 있다"고 말했다.
'라스트 세션'
일정 2022년 1월 7일 ~ 3월 6일
장소 대학로 티오엠
연출 오경택
출연 신구, 오영수, 이상윤, 전박찬
황정민, 다시 리차드3세
'믿고 보는 배우' 황정민이 2년 만에 연극 '리차드 3세'로 무대에 돌아온다. '리차드 3세'는 2018년 초연 이후 4년 만이다. 황정민은 초연 당시 10년 만의 무대 복귀작으로 '리차드 3세'를 선택해 화제를 모았으며,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악인 연기로 호평받았다.
'리차드 3세'는 영국의 장미 전쟁기 실존 인물 리차드 3세를 모티브로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가 탄생시킨 희곡이다.
황정민은 선천적으로 기형인 신체 결함에도 불구하고 콤플렉스를 뛰어넘는 뛰어난 언변과 권모술수, 유머 감각, 탁월한 리더십으로 경쟁 구도의 친족들과 가신들을 모두 숙청하고 권력의 중심에 서는 악인 리차드 3세를 연기한다.
황정민은 "시대를 막론하고 명작은 보는 이들이나 만드는 이들 모두에게 깊은 울림과 에너지를 전달한다. 많은 분이 쉽게 접하고 연극과 예술을 어렵게 느끼지 않도록 양질의 좋은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 '리차드 3세'는 그러한 편견을 깰 가장 적합하고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작품 출연 이유를 밝혔다.
'리차드 3세'
일정 2022년 1월 11일 ~ 2월 13일
장소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연출 서재형
출연 황정민, 장영남, 윤서현, 정은혜, 임강희, 박인배 등
신성우, 연출 겸 배우
뮤지컬 배우로 자리 잡은 가수 신성우는 뮤지컬 '잭 더 리퍼'의 연출을 맡은 동시에 배우로 출연도 한다. 앞서 신성우는 지난 2019년 10주년 기념 공연 당시 연출을 맡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는 섬세한 연출로 극의 몰입도를 높여 호평을 이끌고 있다.
'잭더리퍼'는 1888년 실제 런던에서 일어난 미해결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극 중 사건을 따라가는 극 중 극 형태다. 퍼즐 조각처럼 얽힌 살인마의 존재를 파헤쳐 가는 스릴러 뮤지컬로 강력한 반전을 선사한다.
신성우는 극에서 잔혹한 살인마 '잭' 역을 맡아 연기한다. 그 외에 김법래, 강태을, 김바울이 잭 역을 연기한다.
'잭 더 리퍼'
일정 12월 3일 ~ 2022년 2월 6일
장소 한전아트센터 공연장
연출 신성우
출연 엄기준, 이홍기, 남우현, MJ, 인성, 신성우, 김법래 등
완연한 겨울이다. 날씨가 추울 때는 주말에 전시회를 찾아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요즘 교과서에서 본 유럽 미술 거장들의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표적인 전시회 세 가지를 추천한다. 내년까지 전시가 이어지니 마음의 여유를 갖고 어떤 전시를 가면 좋을지 알아보자.
'살바도르 달리 : Imagination and Reality'
장소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 전시관
일시 : 11.27 ~ 2022.03.20
무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다. 그의 국내 첫 공식 회고전이 서울 동대문 DDP에서 내년 3월 20일까지 열린다. 살바도르 달리는 스페인 초현실주의 거장으로 '괴짜 천재 작가'로 통했다. 녹아서 흘러내리는 시계 등이 등장하는 몽환적이고 독특한 그림들이 유명하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복제품이 아닌 진짜 원화다. 살바도르 달리 재단과의 공식 협업으로 성사됐으며, 유화와 삽화를 비롯해 설치작품, 영상, 사진 등 총 140여 점을 볼 수 있다.
전시는 191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달리의 유년 시절부터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시기별 작품을 조명하고 작가가 영향을 주고받았던 인물도 소개한다. 예술이 인생을 지배해야 한다는 달리의 신념을 다양한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샤갈 특별전 : Chagall and the Bible'
장소 : 마이아트뮤지엄
일시 : 11.25 ~ 2022.04.10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의 회고전이자, 샤갈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 창조의 원천이었던 '성서'를 주제로 한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이 오는 2022년 4월 10일까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개최된다.
마르크 샤갈은 러시아 유대인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화가다. 다채로운 색감과 몽환적인 화풍을 바탕으로 삶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전파해 피카소, 마티스 등과 함께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번 전시는 기존 국내에서 진행된 샤갈 전과 달리 그간 단독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성서'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또한 샤갈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강기슭에서의 부활', '푸른 다윗 왕' 등 유화, 과슈를 포함한 19점의 명작과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4m에 육박하는 대형 태피스트리 2점 및 독일 Kunstmuseum Pablo Picasso Münster 소장품 총 220여점의 오리지널 작품이 공개된다.
샤갈은 성서를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리는 시간 동안 전쟁과 학살로부터 고통받는 인류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펼쳤다. 이런 샤갈이 성서를 통해 전달하는 인류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를 올 연말 따뜻함을 전해줄 것으로 예상된다.
'초현실주의 거장들展'
일정 : 11.27 ~ 2022.03.06
장소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초현실주의 거장들展'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다. 유럽 전역에서 가장 많은 초현실주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의 주요 작품을 포함해 180여점을 선보였다.
본 전시는 ▲초현실주의 혁명, ▲다다와 초현실주의, ▲꿈꾸는 사유, ▲우연과 비합리성, ▲욕망, ▲기묘한 낯익음 총 6개의 주제로 구성으로 초현실주의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발전하고 확산하였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특히 이번 전시의 메인이 된 작품은 르네 마그리트의 1937년 작 '금지된 재현'이다. 등돌리고 선 남성이 거울 속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살바도르 달리의 '아프리카의 인상', 마르셀 뒤샹의 '여행 가방 속 상자', 만 레이의 '복원된 비너스' 등 초현실주의 대표작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인터뷰를 위해 다시 만난 것은 3년 만의 일이었다. 처음 김석중(52) 키퍼스코리아 대표가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소개됐을 때는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다. 길게 길러 뒤로 묶은 머리와 유품정리 과정에서 허락을 받아 쓰고 있던 작은 캐리어와 함께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모험을 떠나는 여행가 았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국내의 대표적인 유품정리사로 손꼽히는 유명인이 되었다. 유재석과 함께 TV에도 얼굴을 비췄고, 대학 강단에도 섰다.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는 이제 그가 양복 차림이 잘 어울리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러나 변치 않은 것도 있다. 유품정리 분야의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여전히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안부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최근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은 우리에게 다소 친숙해진 듯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와 tvN의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 퀴즈’) 등을 통해 이 직업이 대중에게 노출되면서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했다. 그가 이 사업을 국내에 소개했을 때 유품정리 분야는 고독사한 시체 곁의 혈흔을 지우고 사용하던 물건을 처분하는 특수청소라는 인식이 강했다.
특수청소라는 사회적 인식 여전
“‘유 퀴즈’를 통해 소개되긴 했지만, 제 입장에선 많이 아쉬웠어요. 프로그램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감성적인 부분만 부각된 편집이었거든요. 저희가 하는 일에 대한 충분한 소개가 이뤄지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죠. 넷플릭스 드라마도 마찬가지예요. 특수청소의 연장선에 있는 직업으로 소개되었으니까요. 갑자기 사망한 사람의 집에 들어가 살았던 흔적을 지우는 청소로 여기는 인식은 아직 여전한 것 같아요.”
실제로 그의 회사를 포털사이트에 기업 등록하는 과정에서도 유사한 일을 겪었다고 한다. ‘키퍼스코리아’를 장례 관련업에 포함시키고 싶었지만, 심사 과정에서 결국 폐기물업으로 등록되었단다. 그로서는 기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그간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사회의 변화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변화의 요인으로 ‘유품에 대한 인식’을 꼽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품은 불길한 것 혹은 쓰레기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죽은 사람의 물건이니 함께 사라져야 한다는 거죠. 그러나 지금은 인식이 달라졌어요. 유품이 추억이 되기도 하고 재산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 이뤄지면서 유품정리업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됐어요.”
또 대중의 인식 변화로 ‘사자’(死者)의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본가를 정리한다는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유품정리 분야의 의미 있는 변화로 봤다.
“단순히 부동산을 처분하기 위해 물건을 비운다는 개념이 아니라, 부모님을 추모하고 추도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유품정리사의 역할도 커지고 있어요. 무엇을 남길지, 버릴지 돕는 카운슬링 기능이 강화됐으니까요. 비우는 것이 아니라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우리 일이 된 셈이죠.”
우리에게 맞는 ‘한국식’ 추모 도입
그는 11년 전 키퍼스코리아를 창업하고 유품정리라는 생소한 분야를 국내에 소개하는 과정에서 사업의 전환점이 된 사건으로 ‘누가 내 유품을 정리할까?’라는 저서 발간을 꼽았다. 본지와의 첫 번째 만남의 계기이기도 하다.
“책이 나오고 나서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죠. 학교로 들어가 장례학과에서 강의도 하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큰 변화는 유품정리라는 서비스 시스템을 되돌아보고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거예요. 물리적으로 고인의 물건을 정리하는 것 이외에 법적인 소유권과 관련된 상속, 고인을 기리는 장례와 관련된 것까지 개념을 확장시키고 체계화한 것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죠.”
그의 사업은 영감을 받은 NHK 다큐멘터리 ‘천국으로의 이사를 도와드립니다’의 주인공이자 일본 최초의 유품정리 회사 키퍼스 대표 요시다 다이치(吉田太一) 사장을 통해 2010년 시작됐다. 일본의 유품정리 시스템을 그대로 들여오다 보니 당연히 한국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일본 특유의 가타미와케(かたみわけ) 문화를 배경으로 한 일본식 유품정리는 물건의 가치나 본질보다는 고인과 관련된 ‘추억’을 정리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것을 우리만의 시스템으로 변화시켜 한국식 매뉴얼을 만드는 데 10년 걸렸어요. 그 기간 한국에서 노력했던 과정을 일본 키퍼스에서도 오롯이 지켜봤기 때문에, 한국식 유품정리로 변화하고 자리 잡는 것을 응원하고 있죠. 또 일본의 경우 유품정리 업체가 유품의 운송, 폐기처리, 재활용 등 모든 분야에 대한 권한을 허가받고 직접 처리하는 반면, 우리는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연결하고 컨트롤타워 역할만 한다는 것도 차이 나는 부분입니다.”
고인에 대한 추모 방식도 일본과는 다소 다르다. 일본의 경우 유품을 모아 한꺼번에 합동 공양을 드리지만, 김 대표는 집에서 먼저 공양을 드리는 것으로 바꿨다. 한국 정서에 맞게 축문으로 고인에게 인사를 드리고, 유품을 만지는 허락을 구하는 절차를 밟는다. 또 유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모든 물건에 대한 기록을 만들어 다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변화를 통해 그간 우리에게 안 맞는 것처럼 느껴졌던 옷을 벗어버리고, 우리 몸에 맞는 것을 찾게 되었어요.”
유품정리, 장례지도학과 만나다
사회적 인식이 확대되고 인지도가 높아지면 회사의 몸집을 키우거나 새로운 사업체를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그는 학교로 들어갔다. 기존의 ‘장례지도학’이라는 학문 분야에 유품정리를 접목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10년 전 전국의 장례 관련 학과 교수를 대상으로 요시다 다이치 대표의 특강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이 순회강연을 계기로 각 대학 교수들과 인연을 이어나갔는데, 학교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학교도 나름의 고민을 갖고 있었죠. 장례지도사를 선택해 입학한 학생들이 사회적 편견이나 장례지도사 업무 영역의 한계 때문에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거든요. 지금의 업무 범위는 ‘장례식장’을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더 나은 새로운 사업적 시도나 변신을 꾀하기 힘든 한계가 있었어요.”
그는 대학의 커리큘럼 자체가 전통 장례에 매몰되어 있는 것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적어도 상속법이나 유품의 행정처리를 위한 관련법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어야 하고, 사회적인 서비스 요구에 응답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가 학교에서 일본의 장례나 죽음 준비에 대한 ‘엔딩 산업’을 한국에 맞게 학문적으로 적용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품정리 사회적 관심 중요
그렇다면 앞으로 유품정리 분야는 어떻게 바뀔까. 김 대표는 급격한 증가가 예상되는 사망자 수와 그로 인한 유품의 증가가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도 매년 30만 명 정도의 사망자가 나오고 있어요.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사망하기 시작하면 그 숫자는 50만을 훌쩍 뛰어넘을 겁니다. 이 세대는 갖고 있는 물건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한국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며 절약이 몸에 밴 세대죠. 이분들이 갖고 있는 물건, 그 물건의 역사적 가치가 동시다발적으로 사라질 겁니다.”
베이비붐 세대 할아버지, 아버지를 통해 일제강점기와 8·15 광복, 한국전쟁 등 우리의 역사와 연관된 수많은 사료가 가보로 전해 내려왔지만, 가치를 제대로 알기 어려운 자녀 세대에 이르러 버려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격동의 시대에 대한 역사적 자료의 보고인데, 아직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아요. 일본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단카이(団塊) 세대의 유품정리를 고고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죠. 역사적 증언과 증거물 확보를 위한 생전정리도 이뤄지고 있고요. 우리도 이와 같은 사회적 합의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물건을 정리해두는 생전정리의 필요성이 더욱 대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래된 물건의 인기가 올라가고 찾는 이가 많아지고 있어, 고령층이 보유하고 있는 물건의 경제적 가치도 오를 것이란 전망이다. 결국 생전정리가 노년층의 또 다른 자금 확보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환경적으로도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생전정리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흔히 생전정리라고 하면 죽기 전에 갖고 있는 물건을 처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후에 어떻게 정리할지 미리 정해놓고 그 우선순위에 맞춰 물건을 정리하는 시기를 결정하는 겁니다.”
생태계 조성 위한 플랫폼 구축 희망
그렇다면 키퍼스코리아의 미래는 무엇일까? 그는 ‘장례·유품정리·상속 플랫폼’이라고 정의하고, 죽음을 준비하고 장례를 치르는 모든 과정에 대한 정보와 서비스를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례·유품정리·상속 분야의 전문가를 한자리에 모을 예정입니다. 한 번의 상담으로 모든 과정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죠. 일반적인 플랫폼과 다른 점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저희의 검증을 거친다는 점이에요. 고객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고, 불필요한 지출을 방지하도록 담합이나 바가지요금이 불가능한 구조를 만들려고 합니다.”
장례·유품정리·상속 생태계가 조성돼 양성화되고 산업적으로 고도화되기를 그는 희망하고 있다. 죽음과 그 과정에 대한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고 소수에 의해 음지에서 진행되는 구조로는 발전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장례·유품정리·상속 분야의 산업화가 국가적으로 큰 기여를 할 거라고 믿어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상속과 증여가 활성화되면 세수 확보에도 유리하죠. 환경 측면에서도 일회용품을 줄일 수 있고요. 또 유산을 둘러싼 상속 분쟁이나 가족관계 악화를 방지하고, 고독사 예방도 가능하죠. 새로운 생태계로 변화한다면 소모적인 부분을 생산적으로 바꿀 수 있고,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요즘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시니어, 우리 인생의 선배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한국의 역사와 밀접한 삶을 살았고, 그들이 살아온 삶의 족적은 우리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겨주기 때문일 것. 이에 해당하는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최근 개봉작을 살펴봤다.
왕십리 김종분
감독: 김진열
개봉 : 11월 11일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02분
벌써 50년, 서울 행당동 왕십리역 11번 출구 앞에는 노점을 운영하는 김종분 씨가 있다. 김종분 씨는 1991년 노태우 정권 당시 백골단 강경 진압에 목숨을 잃은 고(故) 김귀정 열사의 어머니다. 이번 영화는 김귀정 열사 30주기를 기려 제작됐다.
팔순의 현역 노점상인 김종분 씨는 항상 씩씩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그는 세상을 떠난 작은 딸을 가슴에 묻은 아픔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영화는 김종분 씨의 길 위의 삶, 그리고 어머니의 삶을 조명한다. 또한 김종분 씨를 포함한 가족들과 함께 성균관대학교 동문이 참여해 고인을 향한 그리움과 추모의 마음을 전한다.
노회찬6411
감독 : 민환기
개봉 : 10월 14일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27분
'노회찬6411'은 고(故) 노회찬 의원의 삶을 다룬 첫 번째 다큐멘터리로, 그의 3주기를 맞아 명필름에서 제작했다. '6411'은 노 전 의원이 2012년 진보정의당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새벽 노동자'의 버스 번호로 언급했던 것이다.
영화는 우리가 몰랐던 노회찬 의원에 대해 보여준다. 대학생 시절 용접공으로 위장 취업했던 노동운동가, 진보 정당 창당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정치를 펼치고자 했던 정치인 등, 인간 노회찬의 인생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펼쳐진다.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호평받고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노회찬보다는 그가 마음에 품었던 꿈과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하는 한편,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판단을 관객에게 맡긴 점이 좋은 평가를 이끌었다.
울림의 탄생
감독 : 이정준
개봉 : 10월 21일
등급 :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 96분
'울림의 탄생'은 마음을 울리는 단 하나의 소리를 찾기 위해 60년 넘는 세월 동안 북을 만들어 온 임선빈 악기장(경기무형문화재 30호(북 메우기))의 삶과 예술을 조명한 다큐멘터리이다.
6·25 전쟁 중 태어나 고아로 자란 임선빈 악기장은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가 불편했는데, 이곳저곳 전전하며 돈을 구걸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패거리의 폭력으로 한쪽 청력을 잃게 되고, 북 만들기가 그의 유일한 생존 방법이라는 스승의 가르침에 임선빈 악기장은 60년 넘게 일에 매달렸고, 장인의 위치에 올랐다.
장인은 한쪽 청력마저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고, 더 늦기 전에 자신만의 북을 남기려 한다. 어린 시절 들은 북소리를 잊지 못한 그는 그것을 재현하고자 23년간 아껴뒀던 나무를 꺼내 들었지만, 쉽지만은 않다. 임선빈 악기장의 옆을 지키는 아들 임동국 전수 교수와의 협업도 눈길을 끈다. 전통을 잇는 일이지만 세대교체를 고민하는 부자(父子)의 모습은 영화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태일이
감독 : 홍준표
개봉 : 12월 1일
등급 :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 99분
고(故)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 됐다. 전태일의 이야기가 영화로 나온 것은 지난 1995년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후 두 번째다.
'태일이'는 1970년 평화시장, 부당한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뜨겁게 싸웠던 청년 전태일의 이야기를 그렸다. 홍준표 감독은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십분 활용, 보다 따뜻하고 밝은 색채로 이야기를 담아냈다. 전태일과 동년배인 시니어들은 과거를 추억하며 영화를 볼 수 있고, 젊은 세대는 몰랐던 역사를 새롭게 배워갈 것이다. 남녀노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뜻이다.
홍 감독은 "대중에게 전태일의 최후가 분신으로 각인돼 있으나 열사의 이미지를 강조하기보다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한 청년 전태일을 그리고자 노력했다"면서 "너무 무겁지 않은, 인간적인 측면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 따뜻함도, 울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 장동윤, 염혜란, 진선규, 박철민, 권해효 등이 목소리 연기로 영화에 힘을 보탰다. 오는 12월 1일 개봉.
●Exhibition
◇게오르그 바젤리츠 : 가르니 호텔
일정 11월 27일까지 장소 타데우스 로팍 서울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독일 신표현주의의 거장이며, 1960년대 이후 국제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가이다. 바젤리츠는 타데우스 로팍의 서울점 개관을 기념해 회화 12점과 드로잉 12점을 선보였다. 전시의 제목인 '가르니 호텔(hotel garni)'은 프랑스어로 저가 호텔을 의미한다. 이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에서 착안된 발상이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연상의 과정을 거쳐 고안된 제목이다.
바젤리츠는 독일 미술판의 한계를 느끼며 표현주의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통해 독일 신표현주의를 이끌었다. 특히 그는 1969년부터 '거꾸로 뒤집은 그림(인물화)'을 발표, 이는 바젤리츠의 아이덴티티가 됐다. 이번 전시 그림들 역시 모두 뒤집혀있다. 자화상을 비롯해 40년의 뮤즈 아내 앨케, 사슴, 말 등의 그림이 돋보인다. 그의 거꾸로 보는 세계관을 통해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꽃의 시간
일정 11월 30일까지 장소 국립한국자생식물원
'꽃의 시간'의 안진의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색채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30년 가까이 꽃을 모티브로 유려한 채색화를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꽃'을 소재로 한 희화와 판화 작품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작품에 착안된 다양한 오브제를 이용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보는 'Collage your Nature'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Book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강봉희·사이드웨이)
지난해 2월 대구 발 코로나19 확진으로 전국이 떠들썩한 가운데, 주목받은 이가 있다. 모두가 꺼려하고 있을 때 발 벗고 나서 시신들을 수습한 사람. 그의 이름은 강봉희로, 장례지도사로 산 지 벌써 20여 년 이다.
40대 중반, 방광암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기도 했던 그는 그때부터 건축업을 그만두고 죽음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2004년부터 700여 명의 고독사 사망자들과 기초수급자 고인들의 장례를 아무런 보상도 없이 도맡아왔다.
특히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수많은 무연고 고독사의 시신이다. 이와 함께 그는 누군가 고독하게 죽었다고 호들갑을 떨지 말라고 사회를 향해 일침을 가한다. 그 시간에 부모님이나 소외된 이웃에게 연락하고, 찾아가 보라고 조언한다.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은 과거에는 '염장이'라고 불렸고, 천대받는 직업이었다. 현재도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더불어 장례 시설은 혐오시설로 통하고, 잘못된 장례 문화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그는 죽음을 무서워하고 금기시하는 사회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에게도 죽음이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처럼 멀리 있지 않은 죽음, 그것을 인지하고 현재의 삶을 행복하게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의 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그의 생각을 읽어보며,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어떻게 더 행복하게 살아야할지 느껴보자.
◇하버드 건강 습관 (다카하시 사카에·이너북)
하버드 의대에서 연구한 경력이 있는 정신과 의사는 '마음'이 아닌 '몸'에 대해 얘기한다. 몸 상태가 개선되면 마음의 병은 뒤따라 나아진다는 것. 사소한 생활 습관만 바꿔도 비만, 음주, 중독(의존증), 발기부전, 불면, 스트레스 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니, 그의 비법을 배워보자.
◇기후 위기, 마지막 경고 (서형석·문예춘추사)
북극곰으로 대변되는 기후 위기. 꽤 오래 전부터 들어온 말이지만 기후 위기의 위기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에 서형석 기후환경연구원 대표는 기후 위기의 실태를 알려주고, 인류 생존을 위한 대응법을 제시한다. 작은 실천이 지구를 살릴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기후 위기를 직면해야 할 때가 왔다.
◇너의 바다가 되어 (고상만·크루)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가족은 소중한 존재다. 인권운동가로 유명한 고상만 작가는 돌고래의 모성애 실화에서 감동을 받아, 가족애 소설을 집필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마음의 위로를 전해준다.
●Stage
◇레베카
일정 11월 16일~2022년 2월 27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출연 민영기 김준현 에녹 이장우 신영숙 옥주현 임혜영 박지연 이지혜 최민철 등
다프네 듀 모리에의 동명소설과 이를 원작으로 한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뮤지컬로 옮긴 작품이다. 성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감동적인 로맨스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서스펜스, 이와 함께 극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강렬한 선율과 화려한 세트로 매 시즌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지난 200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레이문드 극장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전 세계 12개국, 총 10개 언어로 번역돼 공연됐다. 국내에서는 2013년 초연 이후 2019년 다섯 번째 시즌까지 총 687회 공연에 총 관람객 83만 명, 평균 객석 점유율 98%를 기록했다. 특히 초연부터 '레베카'의 흥행 주역으로 통해온 배우 옥주현, 신영숙이 댄버스 부인 역으로 출연해 많은 관심을 이끌고 있다.
◇프랑켄슈타인
일정 11월 24일~2022년 2월 20일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연출 왕용범 출연 민우혁, 전동석, 규현, 박은태, 카이, 레오, 해나, 이봄소리, 서지영, 김지우 등
매 시즌 최고의 화제작으로 통한 '프랑켄슈타인'이 3년 만에 네 번 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특히 배우 박은태가 이번에도 참여해 기대를 더한다.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 출간된 메리 셸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19세기 유럽 나폴레옹 전쟁 당시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전쟁에서 죽지 않는 군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신체 접합술의 귀재 앙리 뒤프레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젠틀맨스가이드 : 사랑과 살인 편
일정 11월 13일~2022년 2월 20일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연출 김동연
출연 유연석, 이석훈, 고은성, 이상이, 오만석, 정성화, 이규형, 정문성, 이정화, 유리아 등
화려한 스타 캐스팅으로 주목받고 있는 뮤지컬이다. 유연석과 이상이는 두 번째 출연이고, 이석훈과 고은성은 새롭게 합류해 기대를 모은다. 뮤지컬은 1900년대 초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코미디극이다. 가난하게 살아온 몬티 나바로가 어느 날 자신이 고귀한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다이스퀴스 가문의 백작이 되기 위해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후계자들을 한 명씩 제거하는 과정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