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수 씨가 요양보호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호기심이 낳은 우연의 연속때문이었다. 신학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해 학위를 준비하던 중 문득 신앙이나 종교적 행위가 실제로 신체 치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졌다. 어떤 방식으로 연구할까 고민하던 중 “간호조무사가 돼서 의료 현장에 들어가 보면 어떻겠느냐”는 담당교수의 제안에 그길로 간호조무사 시험을 준비했다.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근로 강도가 만만치 않기로 유명한 정신요양원이었다.
“제 면접을 본 원장님은 석사 출신 간호조무사를 부담스러워하셨지만, 저는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병동 특유의 냄새가 심했고 환자들은 다루기 힘든 대상이었지만, 치료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어 흥미를 느꼈어요.”
그렇게 1997년부터 2012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손 씨는 정신요양원에서 일했다.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도 이 곳에서 했다.
“2008년 기관에서 요양보호사 지원자를 찾는다는 공문이 내려왔어요. 당시엔 시험도 없었고 호기심이 나서 지원해봤죠.”
하지만 그때까지도 자신이 요양보호사로 일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궁금증을 해소하는 차원이었다. 그러던 중 주소지가 등록되어 있던 양주시청에서 전화를 받는다. 요양보호사로 일해볼 생각 없느냐는 제안이었다. 특유의 호기심이 또다시 발동했다. 요양원에서 오래 일한 만큼 자신도 있었다.
그래서 2017년부터 올 초 그만둘 때까지 요양보호사로 근무했다. 처음엔 15년간 해왔던 업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양보호사 일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요양보호사는 서비스를 받는 사람에겐 너무나 필요한 존재이지만, 기관에선 요양보호사를 너무 낮춰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시키는 일만 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갖게 돼요. 내가 한 번 더 신경 쓰고 움직이면 어르신들이 훨씬 더 행복해지는 걸 알면서도 안 하게 되는 거예요.”
요양보호사의 업무는 다양하다. 음식 제공, 목욕, 침구 정리, 일지 같은 서류 작성까지 할 일이 꽤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병원 행정 업무에 능숙한 손 씨가 빛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팀장을 맡았고 요양보호사들의 실무도 지휘했다.
“사실 환자들과는 문제가 전혀 없었어요. 어머니 돌아가실 때 제대로 돌보지 못한 한을 푼다는 마음도 있었죠. 사소한 것 하나만으로도 좋아하시는 환자들을 보면 없던 기운도 펄펄 났어요. 문제는 탁상행정에 맞추기 위한 형식적인 관리와 요양보호사들에 대한 낮은 처우예요. 이런 부분만 개선된다면 시설에서 생활하는 어르신들이 훨씬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손 씨는 요양보호사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개선되길 희망했다.
“사람들은 요양보호사란 직업에 대해 더럽다, 냄새난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위생용품이 좋아져 과거보다 일하기가 훨씬 편해졌어요. 우리도 언젠가 비슷한 처지가 될 수 있잖아요. 경험을 위해서라도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76세에 새로 취업을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최근 일본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시니어 대상의 취업 지원 기업 중 한 곳인 주식회사 시니어잡은 지난 2월 76세의 고령자를 취업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26세의 젊은 사장이 설립한 이 회사는 50세 이상의 시니어를 대상으로 취업 지원 컨설팅을 하고 있는데, 지난해에 비해 매출이 360% 이상 상승할 정도로 시장에서의 반응이 좋다고 밝혔다. 일본 시니어 구직시장의 발전은 단순히 고령화에 따른 수요 증가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평생 일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형성의 비결은 무엇일까.
최근 일본 구직시장에서 시니어만을 대상으로 한 회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의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기존의 인력파견 기업이 시니어 구직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자회사를 설립하는 경우도 있다. 파소나그룹은 지난 4월 중년 이상의 구직자를 위한 파소나 시니어의 창립기념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논의된 핵심 키워드는 ‘평생 현역 사회’. 시니어 인재들이 그간 쌓아온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활용해 나이를 불문하고 활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들은 일손이 부족한 기업에 적합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중년을 파견하거나 고용을 추천하고, 주요 기업의 정년 퇴직자를 확보해 일종의 인력은행처럼 운영을 하고, 시니어 구직자들이 경력을 살릴 수 있도록 연수나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고령에도 근로 원하는 비중 높아
실제 일본 고령자의 근로에 대한 의식은 어떨까. 일본의 기술인력 전문지인 ‘fabcross for 엔지니어’가 지난해 65세 이상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중 44.4%가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남성의 경우에는 일자리를 원하는 비중이 52.6%로 더 높았다. 노동을 원하는 이유는 수입을 원한다는 복수응답이 71.2%로 가장 높았고, 일이 즐겁기 때문에(40.8%),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싶어서(40.6%), 사회와의 접점을 원해서(40.0%) 등의 순서로 응답이 집계됐다.
일본의 평생 현역 사회에 대한 이런 분위기는 정부의 정책도 한몫했다. 현재 일본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25%가 넘었다. 4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인 셈이다. 일본 정부는 현재 60세인 중앙·지방 공무원의 정년을 2033년까지 65세로 늦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일반 기업들에게도 정년 연장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법안이 통과됐지만, 2025년 이후에나 의무사항이 된다.
일각에선 ‘정년 폐지’에 대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NTT 데이터 경영 연구소는 한 매체를 통해 “일본 내 남녀 수명 모두 70세를 넘고 있어 70대까지 일하는 사회를 대비해야 하며, 정년 폐지에 대한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이면에는 일본의 고령자 대상의 공적연금 기금에 대한 고민이 있기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기초노령연금의 수급개시 연령을 현 65세에서 68세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손 없어 “시니어 모시자” 풍토 바뀌어
고령자 노동시장에 순풍이 불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닥까지 내려간 일본 내 실업률이다. 올 1월 일본의 실업률이다. 24년 9개월 만에 기록한 최저치다. 이러한 배경에는 8분기 연속 성장한 일본 경제의 호황이 있다. 실제로 일본 내 구직시장에선 버블시대 이후 종적을 감추었던 ‘취준생 모셔가기’ 경쟁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 내 베이비부머 세대인 단카이 세대의 은퇴로 일손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매년 은퇴하는 단카이 세대는 80만 명 수준이지만, 연간 대졸자 수는 50만 명에 불과하다. 근로자 수요는 늘고 있는데 ‘노동 공백’이 발생한 셈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75세 정년시대’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사회적 정서나 경제 상황 모두 평생 현역으로 살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고령자 빈곤율 50%, 65세 이상 임금 근로자 중 35% 이상이 일용직과 임시직에서 일하는 한국 상황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주말에 아내와 가끔 산을 오르며 심신의 피로를 풀곤 했다. 정년퇴직 후엔 수도권에서 생활하면서 가까운 친·인척이나 친구들이 오면 환담을 하며 산책을 했다. 그중 3~4시간 코스로 ‘100세 건강이 저절로 담보되는 세 길’을 추천하고 싶다. 그 길은 북한산 둘레길(1~21구간 중 선택), 한강변과 한강변 다리를 따라 걷는 길, 수원 화성 성곽길이다.
북한산 둘레길
북한산과 도봉산 주위를 빙 돌아 이어지는 72.8km 길이다. 기존의 샛길을 다듬고 연결해 21개 코스로 나눈 뒤 테마를 구성한 길로 2011년 6월 30일 개통되었다. 한 구간이 짧게는 1.5km에 45분 코스, 길게는 6.8km에 3시간 30분 코스로 다양하다. 두세 코스를 묶거나 단일 코스를 선택해 걸을 수 있다. 아내는 몇 달 걸려 북한산 둘레길을 완주했다. 6구간 평창마을길, 11구간 효자길, 12구간 충의길, 17구간 다락원길, 18구간 도봉옛길, 21구간 우이령길을 걸을 때 필자도 동행했는데 북한산 둘레길을 다 돌고 나니, 북한산과 도봉산, 그리고 둘레길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많은 사람의 일상이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다.
한강변과 한강변 다리를 따라 걷는 길
2008년 뇌수술을 마치고 요양할 때 건강 회복 여부를 테스트하기 위해 아내랑 잠실대교 근방에서 성산대교까지 걸어봤다. 한강변은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북쪽 한강변 쪽으로 걷다 보면 큰 다리를 16개 정도 지나는데 거리가 22km쯤 된다. 쉬엄쉬엄 걸으면 대략 6시간이 걸린다. 자전거를 타고 가도 되고 마라톤을 즐길 수도 있다. 물론 거리와 시간을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고 서쪽에서 동쪽,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입과 방향도 개인의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필자는 친구들이나 친·인척이 오면 가볍게 식사를 한 후 이 길들을 함께 걷곤 한다.
수원 화성 성곽길
수원 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둘레 6km에 화성행궁까지 약 7.5km 걷는 코스로 대략 2시간 정도 걸린다. 매교역에서 수원천을 거쳐 남수문, 봉화대, 창룡문, 화홍문, 장안문, 화서문, 서장대, 화서문, 화성행궁까지 도는 데는 약 11km에 4시간가량 소요된다.
캠핑카로 관광지를 옮겨가며 유유자적 여유를 즐기는 생활은 시니어가 한 번쯤 생각해보는 로망 중 하나다. 평생을 직장과 집에 얽매여 살았으니, 구속되지 않는 삶을 꿈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캠핑카는 중년의 욕망을 쉽게 해소해줄 수 있는 도구로 보인다. 그런데 요즘에는 캠핑카가 현실 탈출의 도구뿐만 아니라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도 쓰인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귀가 솔깃하다. 꿈꾸던 시골생활도 즐기며 돈도 벌 수 있다니. 과연 가능한 일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캠핑카와 카라반(caravan, 캠핑용 트레일러)은 같은 물건처럼 보이지만 다르다. 오토캠핑의 대표적 수단이라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캠핑카는 자동차와 결합해 스스로 동력원을 갖고 움직일 수 있는 반면, 카라반은 다른 자동차 뒤에 결착시켜 끌고 다녀야만 이동이 가능하다. 단순히 생각하면 혼자 이동할 수 없는 카라반은 캠핑카에 비해 매력이 떨어질 것 같지만 업계에서 인기가 높은 것은 오히려 카라반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예산 부담은 적고 매각은 쉬워 인기
관광업계에서 카라반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전후. 전국에 펜션 조성 붐이 일다가 인기가 한풀 꺾이면서 좀 더 자연 친화적인 캠핑과 카라반에 주목하게 된 것. 외국산 일색이었던 카라반 시장에 국산 제품이 하나둘 출시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카라반의 원래 목적은 이동이 가능한 숙박 공간 제공이지만, 한자리에 정박시켜놓고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캠핑용으로 쓰려면 주거뿐만 아니라 수도, 전기, 화장실 등과 함께 관련 위락 시설까지 제공되어야 하므로 관광객에게 카라반만 대여해서는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카라반이 인기 있는 것은 관광객들에게 체험 아이템으로 활용되면서 숙박까지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조성에 필요한 예산이 펜션이나 민박과 같은 기존 숙박 시설에 비해 훨씬 저렴한 것도 장점. 심지어 업계 관계자들은 “땅만 있으면 된다”고 말할 정도다.
펜션을 지으려면 건축허가 등 과정이 복잡하고, 건축비 역시 최소 1억 원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 이에 반해 카라반은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는 5~6인용 1대당 3000만 원 전후면 구입이 가능하다. 여기에 전기나 수도 등 제반시설의 설치비도 1대당 500만 원 정도밖에 안 든다. 이에 반해 카라반 대여료는 웬만한 펜션의 숙박비와 비슷하거나 비싼 수준이다. 여기에 매력적인 또 하나의 장점은 이동이나 처분이 쉽다는 것이다.
집은 이동이 불가능하다. 외진 장소에 지어진 펜션도 제 값을 못 받기 일쑤다. 급매가 필요할 땐 토지 가격으로만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반면 카라반은 원하는 곳으로 쉽게 이동시킬 수 있다. 그러한 점 때문에 처분도 빠르다. 실제로 중고 카라반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중고장터를 통해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은퇴한 시니어가 적당한 장소를 찾아 별장으로 사용하기에도 좋다.
지자체도 앞다퉈 조성에 나서
이런 장점들에 매력을 느껴 카라반을 기반으로 한 캠핑장을 운영하는 곳이 많아졌다. 각 지자체도 대표적인 곳 중 하나다. 지자체 입장에선 토지 확보가 용이한 데다 카라반 캠핑장 예산 확보 부담도 적고, 설사 사업을 철수하는 상황이 와도 큰 손실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주시와 영덕군은 카라반을 확보해 자체 캠핑장을 운영하고 있고, 문화체육관광부도 국민여가캠핑장 조성 사업 일환으로 강릉 연곡해변과 삼척 장호해수욕장을 선정해 캠핑장을 조성했다. 이들 시설에는 총 25대의 카라반이 설치됐다.
또 국제행사 등을 위해 일시적으로 숙박 수요가 있을 때도 카라반이 활용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마무리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한 패럴림픽 오스트리아 선수지원단은 국내 기업인 유엘피가 평창에 조성한 카라반 타운을 숙소로 이용했다.
국산 카라반을 공급하고 있는 이기순 카라반파크 대표는 “자연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 관광객들의 욕구와 시설 조성에 위험 부담을 줄이고 싶어 하는 업주들의 요구가 맞아떨어지면서 카라반 캠핑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최근에는 제작과 운용에 대한 국산 카라반의 경험이 쌓이면서 한국의 계절적 특수성으로 인한 누수나 동파 같은 기술적 문제들도 보완된 상태”라고 말했다.
카라반 캠핑장 관련 제도 개선 중
물론 땅과 카라반만 확보한다고 해서 뚝딱 캠핑장이 들어서는 것은 아니다. 다소 복잡한 등록 절차가 필요하다. 당연히 자동차면허도 필요하고 등록 여부도 결정해야 한다. 카라반은 차량의 총중량이 750kg 이상인 경우 특수면허에 속하는 견인면허가 있어야 이동시킬 수 있다.
이와 별개로 카라반 캠핑장에 대한 법적 규제가 이슈가 된 사건이 있었다. 2015년 카라반을 설치한 강화도 글램핑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5명이 사망한 사건은 카라반의 제도적 허점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자동차관리법상 원동기에 의해 육상에서 이동할 목적으로 제작된 용구와 견인되어 육상을 이동할 목적의 요구 또한 자동차로 정의된다. 때문에 견인용으로 제작된 카라반은 엄연히 등록이 필요한 자동차다. 자동차등록이 된 차량은 운행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숙박업을 위해 활용하면 불법 소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외 규정이 있다. 자동차관리법 제70조에는 도로 외 장소에서만 사용하는 자동차는 자동차등록이 필요 없도록 특례를 뒀다.
그래서 한때 경찰이나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가 입장 차이를 보였지만, 문화체육관광부가 관광진흥법 시행령 등을 통해 카라반 캠핑장과 관련한 제도를 개선하면서 일단락됐다. 카라반 사업은 이제 야영장업 관광사업자로 사전 등록을 하면 된다. 국산 카라반이 대부분 운행을 고려하지 않는 정박용, 숙박용으로 제작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자동차등록을 하지 않고 아예 야영장용으로 제작되고 있는 상태다. 이로 인해 구조나 인테리어도 운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외국 제품과는 많이 다르다.
안전하게 운영하려면 영업배상책임보험 등 사고 방지나 보상을 위한 보험 가입도 필요하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한다. 또 장기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카라반에 대한 기술적 이해도 필요하다. 최기석 델타링크아시아 과장은 “카라반의 장기적인 운영과 관리를 위해서는 사업주가 간단한 정비 지식을 익히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설명하면서 “사업적 활용을 고려한다면 무조건 고가 제품을 고집하는 것보다 구조가 단순하고 정비성이 좋은 제품이 적합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노후의 삶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장수리스크’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준비 없이 맞이하는 긴 노년은 괴로움만 더할 뿐이다. 따라서 나이에 맞는 ‘생애자산관리’가 뒤따라야 하며, 은퇴 직전인 50대뿐만 아니라 30~40대부터 노후필요자산에 대한 적정성 점검과 자산 극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은퇴 이후에는 노후 기간을 세분화하여 자산의 적정한 인출과 소득의 보완에 신경 써야 한다. 금융업계 전문가들이 꼽은 시니어가 알아야 할 재무 설계 키워드를 은퇴 전·후로 나눠 정리해봤다.
도움말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골든라이프연구센터
PART1. 은퇴 전 시니어 재무 설계 키워드
◇ By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김동엽 상무·은퇴교육센터장
#1 '5565'
직장에서 정년퇴직하기 직전 5년부터 퇴직한 뒤 5년에 해당하는 55세부터 65세 사이의 시기를 말한다. 직장생활을 잘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시기로 매우 분주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인간관계 중심이 회사에서 가정으로 바뀌므로 회사형 인간에서 가정형 인간으로 변화해야 한다. 아울러 노후자금 관리도 돈을 모으는 ‘적립’에서 ‘인출’ 중심으로 변화한다.
#2 임금피크 ≠ 인생피크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서 55세 전후로 임금피크를 실시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근무연한이 늘어나면 임금도 상승하는 연공서열방식 임금제도와 달리,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특정 연령부터 임금이 줄어든다. 임금이 줄어들면 덩달아 퇴직급여도 줄기 때문에 대응을 잘해야 한다. 기업에 따라 임금피크에 해당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사전은퇴 교육을 시행하는 곳도 있으니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노후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임금피크 전후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인생 후반전이 달라진다. 자칫 이 시기를 무의미하게 보내면 임금피크가 인생피크가 될 수도 있다.
#3 이중부양
은퇴를 앞둔 50대는 자녀부양과 부모봉양이라는 두 가지 짐을 짊어진 경우가 많다. 그나마 현재 50대는 경제가 고도성장할 때 직장에 다니며 부를 축적하고 노후준비도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부모 세대는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노후를 맞이했다. 게다가 고도성장의 열기가 식으면서 그들의 자녀 세대 또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생계를 꾸려가기 힘든 상황이다. 부모봉양과 자녀부양이라는 이중의 짐이 50대 어깨 위에 얹혀 있는 셈이다. 게다가 자신의 노후준비까지 하려면 연금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공적연금과 퇴직연금을 통해 기초생활비를 만들고, 여기에 개인연금과 주택연금을 더해 기본 생활비를 마련하자.
◇ By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조명기 수석연구원
#4 퇴직금을 지켜라
우리나라 남성 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6.7년으로 OECD 주요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평균 근속연수가 짧으면 이직 때마다 노후자금의 주요 축인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찾아 다른 용도로 활용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후자금 축적에 큰 위협 요인이 된다. 따라서 이직 시 IRP(개인형 퇴직연금, 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계좌에 이관된 퇴직금은 절대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말고, 55세 이후 5년 이상 연금으로 받는 것이 좋다. 이 경우, 퇴직금을 노후자금의 목적대로 보존할 수 있으며 퇴직소득세 감면 효과(30%)까지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하자.
#5 자녀 리스크 회피
자녀 지원을 아끼지 않는 우리나라 부모 세대는 오랜 기간 자녀 리스크에 노출된다. 사교육비부터 결혼자금 지원까지, 생애 지출의 상당 부분이 자녀를 위해 쓰인다. 즉 소중한 자녀가 노후준비의 걸림돌이 되는 것. 2016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5년 내 자녀를 출가시킨 부모의 3분의 1은 결혼자금 지원을 위해 노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산(부채, 퇴직금, 개인연금 등)을 활용했다. 자녀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보다는 자녀에게 부담 주지 않는 독립적인 노후를 보내는 것이 결국 자녀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임을 명심하자.
#6 연금라이프 점검
평균수명 증가로 은퇴기가 길어지면서 필요한 노후생활 자금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소득이 사라지는 은퇴기에도 삶의 질 하락 없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생활에 꼭 필요한 ‘필수생활비’를 확보해두는 것이 핵심이다. 이때 필수생활비는 살아있는 한 꾸준한 소득흐름을 보장하는 연금으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본적인 국민연금 이외에 종신연금처럼 죽을 때까지 소득흐름을 보장하는 연금상품이 충분히 갖춰져 있는지 확인해, 필수생활비를 연금으로 충당하는 연금라이프를 누릴 수 있을지 점검해보자.
◇ By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박 진 소장
#7 집, 소유 말고 사용하자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산을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 부동산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선진국의 경우 가계의 부동산 비중이 약 50%이지만, 우리나라는 70%가 넘는다. 집은 소유하는 개념이 아닌 사용하는 개념으로 바꿔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집을 사용하는 것으로 여기면 무리하게 투자해 집을 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7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10억짜리 집을 사기 위해 3억을 대출받는 것보다, 5억짜리 집에 살면서 2억을 연금보장형 상품 등으로 넣어두는 편이 낫다. 10억짜리 집을 사면 이자를 내야 하지만, 5억짜리 집에 살면 이자를 받는 셈인데, 이는 매우 큰 차이다. 여기서 나오는 이자를 노후자산에 톡톡히 활용할 수 있다.
#8 자산관리 분배 원칙 '5533'
5: 총자산의 50%를 금융자산으로! 가계의 총자산 내에서 26% 수준에 불과한 금융자산의 비중을 큰 폭으로 늘리자. 노후에 필요한 것은 정기적인 현금흐름이고, 이를 만들어내는 금융자산을 최소 50% 수준까지 확대하는 것이 좋다.
5: 금융자산의 50%를 투자형 자산으로! 저금리 시대를 맞아 금리연동형의 안전형 상품으로는 자산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 40%를 훌쩍 넘는 예금자산을 줄이고, 20% 수준에 불과한 투자형 자산의 비중을 늘려보자.
3: 투자형 자산의 30% 이상은 해외자산으로! 투자형 자산에 투자할 때는 해외자산의 비중을 늘려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 우리나라 증시는 전 세계 주식시장의 2%도 안 된다. 국내 종목에만 집중투자하기보다는 글로벌 분산투자의 개념에서 해외 종목을 30% 이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3: 연금자산은 총자산의 30% 이상으로! 100세 시대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자산은 결국 연금자산이다. 아무리 많이 잡아야 8% 수준에 불과한 연금자산을 최소 총자산의 30%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
◇ By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골든라이프연구센터 황원경 센터장
#9 장기보장자산 마련
장기보장자산 마련을 위한 재무 설계는, 늘어난 노년기에 경제적으로 독립된 노후생활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주요 키워드가 될 것이다. 장기보장자산 마련을 위해서는 일정 소득을 제공하는 노후자금기본형성 계획과 인플레이션을 따라가면서 ‘인플레이션+α’의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자산 확대 계획이 필요하다. 노후자금기본형성을 위해 개인형 IRP, 연금보험 등에 대한 이슈가 중요하며, 노후자금자산 확대를 위해 일정 부분 위험을 감수하는 자산관리 전략의 혼용이 필요하다.
*경제활동기 이후 노후생활기 증가: 1985년 13.4년, 2016년 26.8세.
단순히 ‘노후자산관리’라고 뭉뚱그려 말하기엔 은퇴 이후, 즉
#10 '1세대가구형' 생존전략
가구에 대한 개념 변화와 기대수명의 연장, 부모에 대한 부양의식의 약화, 에이징인플레이스(Aging in Place)의 개념 등으로 은퇴 후 1인가구나 부부가구 증가가 예상된다. 전통적 방식의 2세대 이상 가구 유형(부모-자녀 세대)은 감소할 것이다. 특히 재무 설계의 목적을 설정할 때 1인 또는 부부가구 중심의 노후자금준비 목적이 이뤄지도록 반영해야 한다. 이는 1세대가구 생존을 위한 노후자금준비 목표에 대한 재점검과 자산관리 재조정으로 이어진다.
* 부양의식의 변화: 부모부양 부담에 대해 가족의 책임 2002년 70.7%, 2016년 30.6%.
* Aging in Place: 연령, 소득, 능력 수준에 관계없이 자신이 살던 집과 공동체에서 안전하고 자립적으로 살고자 하는 욕구.
PART2. 은퇴 후 시니어 재무 설계 키워드
◇ By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김동엽 상무·은퇴교육센터장
#1 일병식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수명이 늘어났다고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일본은 75세 이상 고령자 중 30% 이상이 와병 상태에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나이가 들면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늘어난 수명을 병상에서 보내지 않으려면 건강관리에 매진해야 한다. 보통은 아무런 질병이 없을 때 건강을 돌본다는 의미로 ‘무병식재(無病息災)’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이때는 오히려 자신의 건강을 과신해 별다른 준비를 안 하고 무리하게 된다. 건강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시기는 은퇴하고 나서 체력이 떨어지고 가벼운 질병을 하나 정도 갖게 됐을 때다. 이때부터라도 건강관리에 힘쓰면 장수할 수 있는데, 이를 두고 ‘일병식재(一病息災)’라 한다.
#2 평생월급
은퇴 후 삶의 시기를 크게 3단계로 나눠 정년퇴직 후 부부가 사망할 때까지 받을 수 있는 ‘평생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야 한다. 1단계는 정년퇴직 이후부터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을 수령할 때까지다. 월급이 끊긴 뒤 공적연금을 받을 때까지의 소득공백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퇴직금과 모아둔 금융자산으로 매달 얼마의 소득을 낼 수 있는지 점검해본다. 2단계는 공적연금수령 기간이다. 부부가 받는 공적연금으로 기본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부족하다면 주택연금을 받는 방법도 고려한다. 3단계는 독거생활 기간이다. 본인이 먼저 사망했을 때와 그 반대의 경우 소득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본다. 이런 점검을 통해 퇴직 후 부부가 사망할 때까지 소득이 얼마나 확보되어 있는지 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며 평생소득을 만들어가야 한다.
#3 딴 지붕 한 가족
자녀들도 나이 든 부모와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지만, 부모도 자녀와 함께 사는 것을 반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살려고도 하지 않는다. ‘방금 끓인 수프가 식지 않을’ 거리에 떨어져 살면서, 프라이버시는 지키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부모·자식 관계가 일상화되고 있다. 한 지붕 아래서 얼굴을 맞대고 사는 전통적인 가족관계에서 벗어나, 다른 지붕 아래 살면서 보고 싶을 때만 보는 ‘딴 지붕 한 가족’이 보편화되고 있다.
◇ By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조명기 수석연구원
#4 '100세' 보장
민간 건강보험으로 탄탄한 의료비 보장을 해놓은 이가 많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연장돼 100세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며 과거에 해둔 보장이 불충분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의료비 보장이 80세까지만 되어 있는 경우다. 특히 고령화 후기로 접어들면 간병비도 늘어난다. 이에 100세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의료비와 간병비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5 '4% 인출' 법칙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그동안 저축한 은퇴자산에서 자금을 찾아 써야 하는 은퇴자가 많아지고 있다. 은퇴자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평생토록 소득이 고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한정된 은퇴자산에서 매년 생활비로 인출할 수 있는 금액을 알려주는 법칙이 있다. 일명 ‘4% 법칙’이라고 하는데, 은퇴 직전 자산의 4%를 기준으로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금액을 더해 인출하면 평생토록 소득이 고갈될 우려가 없다는 법칙이다. 인출하고 남은 은퇴자산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소 달라지겠지만 은퇴자의 생활비 인출 범위를 대략적으로 가늠하는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다.
#6 버킷 전략
시니어도 젊은 시절에는 자산운용에 할애할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비교적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은퇴 이후엔 투자 실패 시 만회할 시간이 부족해 적극적 자산관리를 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자산관리를 소홀히 했다가는 보유한 자산이 생전에 고갈되는 장수 리스크에 빠지게 된다. 이럴 때 은퇴자산을 인출 시기별로 나누어 각각 달리 관리하는 이른바 ‘버킷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 올해 당장 써야 할 자금은 현금성 자산으로, 앞으로 10년 이내에 꺼내 쓸 자금은 각각의 인출 시기까지 운용할 수 있는 상품으로 보유한다. 나머지 자산은 향후 10년 이상 운용 가능하게 되어 더 적극적인 투자관리를 할 수 있다. 이 방법을 버킷 전략이라 하는데 최근 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 By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박 진 소장
#7 장수리스크, ‘일’로 대비하자
오래 살게 되는 상황에 대한 리스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반드시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관계와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일’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이 전 세계 1위이고, 이 중 47%, 즉 둘 중 한 명은 절대빈곤을 겪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재능기부 등의 일이라도 하면서 지내는 것이 좋다. 물론 이러한 활동이 가계에 도움이 된다면 금상첨화다.
#8 발품을 팔아야 한다
대부분 금융기관에서는 매월 시장의 동향과 좋은 투자 상품 등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한다. 퇴직 후 시간이 여유로운 시니어는 이런 프로그램을 직접 찾아다니며 들어보고, 자신이 거래하고 있는 금융기관의 담당 직원에게 관심을 가져볼 만한 상품에 대해 적극적으로 묻고 정보를 얻어 활용해야 한다. 이때 투자 결정을 할 때는 한 사람에게 들은 정보만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 정보를 같은 기관의 다른 직원이나 타 기관 직원에게 반드시 크로스체크하자.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투자 종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때 담당 직원에게 “왜 올랐나요?”, “왜 떨어졌죠?” 등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좋다. 그래야 다음에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을 때 스스로 판단하고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 By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골든라이프연구센터 황원경 센터장
#9 합리적 인출전략
기대수명 연장으로 늘어난 노후생활기, 에이징인플레이스의 확산 등에 따른 새로운 영역의 필요노후자금 등이 발생하면서 합리적 노후자금 인출전략 수립이 중요해졌다. 새로운 자산 증가나 소득 창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 보유한 자산으로 여생을 살아가기 위한 인출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인출전략 수립에 앞서 보유자산 진단, 예상되는 자산 유출 진단, 노후 라이프스타일 결정 등의 과제가 선행되어야 인출전략 수립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10 은퇴 후 기간 세분화
100세 시대라 할 정도로 기대수명이 증가하고, 노후생활기도 늘어나고 있다. 시니어 재무 설계에 대한 접근이 바뀌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지금까지는 은퇴 후 기간을 하나의 통으로 보고 재무 설계를 추진해왔으나, 이제는 개인의 자산 현황, 활동성 정도, 인생계획 등이 반영된 기간 세분화가 필요하다. 재무 설계는 이러한 분석 아래 시도해야 하며, 아울러 노후자금 인출전략을 세울 때도 주요 자료로 참고해야 한다.
#11 현금 가능한 고정수입 유동화
은퇴는 고정수입 창출에 큰 변화를 발생시킨다. 근로자의 경우 근로소득이, 사업자의 경우 사업소득이 발생하다가, 은퇴 후에는 초기 연금이나 금융자산의 이자소득 등으로 수입이 창출된다. 이후에는 금융자산, 부동산자산 순으로 유동화하여 수입을 창출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가구주 연령 60세 이상 가구에서 부동산자산 비중은 80%에 이른다(2016년 3월 통계청 기준). 이를 노후자금으로 유동화하는 과정은 대부분의 가구가 거치게 될 것이다. 자산 감소와 유동화 시기 점검으로 재무 설계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퇴직 전 교직에 있을 때부터 한국어 강사를 하고 싶었어요.”
현재 다양한 기관에서 한국어 강사로 활동 중인 이상용(李相庸·64) 씨는 평생 초등학교 교단에서 활동해온 교사 출신. 40여 년간을 넘게 학교에서 근무하다 2015년 8월 정년퇴직했다.
원래 영어를 전공한 데다, 학교 내에서 교감과 교장 등 중책을 맡으면서 다양한 다문화가정을 경험했다. 자연스레 그들과 가까워지면서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이나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퇴직 전부터 온라인 교육과 오프라인 실습에 참여해 한국어교원 자격증 2급을 따놨죠. 아무래도 평생을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해온 터라 유리한 부분이 있었어요.”
퇴직 후 201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한국어 강사로 데뷔했다. 법무부에서 시행하는 사회통합프로그램을 통해 영주권을 원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쳤다. 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이 많았다.
“지난해 말까지 총 6기 교육에 참여했어요. 평생 만나온 어린 학생들과 달리 나이도 많고 사용하는 모국어도 제각각이었지만 가르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어요. 다들 절실함도 있었고요. 교육 후에는 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 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가르치는 학생도, 과목도, 장소도 달랐지만,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는 여전했던 모양이다. 근무시간에 쫓기는 외국인 근로자의 수업 참여를 위해 고용주를 전화로 설득하기도 했다. 그렇게 맺게 된 사제관계는 4개월 교육기간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메신저를 통해 한국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지도하는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온라인 교육기업 세이글로벌을 통해 전 세계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그의 한국어 강습 실력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아, 강사 중에서도 수강신청이 많은 편에 속한다. 이 씨는 걱정과 달리 온라인 수업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또 한국어에 대한 지식 전달만큼이나 수업에서 올바른 우리 문화를 전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아무래도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해외에서 인기 있는 다양한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돼요. 그들에게는 한국어 강사가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되는 유일한 창구가 되는 것이죠. 이를 통해서 외국인 학생들은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게 되고, 동화됩니다.”
그렇다면 좋은 한국어 강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베테랑 입장에서, 이제 시작하는 한국어 강사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을까. 이 씨는 한국어로 말하고 싶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한국어 수업이라고 해서 다른 수업과 원리가 다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말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많이 하도록 입을 열어주는 것이에요. 일방적으로 끌고 나가지 말고 학생 스스로 말하는 것을 터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해요. 물론 강사 경력이 짧다면 그 과정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는 한국을 알리는 민간외교관으로서의 자긍심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큰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을 세계에 소개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단순한 언어교육 이상의 효과가 있어요. 그만큼 정확한 정보가 전해지도록 노력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국내 최고의 유대인 전문가인 홍익희 세종대학교 대우교수(65). 그와의 3시간여 ‘인생 2막’ 인터뷰는 한마디로 선입관의 전복이었다. 수치에 밝은 냉철한 전문가일 것 같았지만 인간미 넘치는 인문학자에 가까웠다. 직선의 경력을 쾌속으로 걸어왔을 것 같지만 굽이굽이 곡선의 지각인생, 갈지(之) 자 이력이었다. 경력과 브랜드를 보고서 지레 짐작한 선입관은 무너졌다. 홍익희 교수의 인생은 반전과 역전 그리고 결전의 파노라마였다.
첫째 반전,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는 32년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생활을 한 뼛속까지 코트라(KOTRA)맨이다. 중남미, 뉴욕, 유럽 각지에서 해외근무를 했지만 정작 중동 근무를 한 적은 없다. 둘째 역전,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정작 글쓰기와 관련한 일을 본격적으로 해본 적이 없다. 정년퇴직 후 58세에 본격 글쓰기를 시작한 게 전부다. 셋째 결전, 코트라 무역관장을 거쳐 대학교수로 연착륙한 그의 인생은 겉으로 보기엔 꽃길이다. 정작 본인은 “내 인생의 8할은 열등감과 실패로 가시밭길이었다”고 술회하는 것 아닌가. 노력, 노오력을 넘은 사력으로 역경을 경력으로 전복시켜왔다는 고백이다. 자, 그의 인생 2막의 반전, 역전, 결전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국내 최고의 유대인 전문가로 꼽히시는데요. 코트라 재직 중 정작 중동 지역이나 관련 문화권에서 근무한 적은 없으십니다. 인생 2막에서 유대인이란 주제를 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32년간의 코트라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금융산업을 포함한 서비스산업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내가 서비스산업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을 것 같지 않더군요. 그래서 고대로부터 서비스산업을 창안하고 주도했던 유대인 이야기에 당의정을 입히면 공감대를 넓히는 데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32년간 수출전선에서 근무지가 늘어날수록 유대인의 힘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서 금융업뿐 아니라 서비스산업을 창안하고 주도하고 있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게 배경이 되었지요.”
그가 맨 처음 유대인들의 힘을 느낀 것은 1983년에 파견된 콜롬비아의 보고타 무역관에서다. 유대인 대형 바이어들과 거래하고, 유대인 군수품 에이전트와 같이 입찰에 응찰하는 것을 비롯, 금융도시 뉴욕에서 근무하면서 유대인의 실체에 대해 보다 깊이 알게 됐다. 세계 각국에 투자된 외국인 자본의 3분의 2는 미국 자본이고 그 태반이 유대계 자본이더란 것. 한 줌밖에 안 되는 유대인들이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것을 지켜보며 유대인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근무지 곳곳에서 경험한 유대인의 힘의 근원을 천착, ‘유대인 이야기’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유대인 전문가란 브랜드를 구축, 작가-교수로서 인생 2막을 성공적으로 시작한다.
책이 작가로서 인생 2막의 터닝포인트가 되었군요. 뼛속까지 무역맨인 분이 전문작가로 전업하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퇴직 후 투자에 크게 실패했어요. 경제적 손실이 컸지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퇴직 후 모 중견기업의 경영자로 가기로 돼 있었는데 틀어졌어요. 알고 보니 의례적 인사말을 착각, 김칫국을 마신 것이었어요. 정말 깜깜절벽에 출구가 보이지 않더군요. 경제적 손실만이 아니고 미래의 대책마저 보이지 않으니 살아 있지만 산 것 같지 않은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더군요. 현실을 잊기 위해선 무언가에 몰입해야 했습니다. 말하자면 글쓰기는 도피처였다고나 할까요. 온종일 글쓰기에 매달렸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습니다. 자는 시간 외에는 글만 치열하게 썼습니다. 이때 탄생한 게 50여 권의 전자책들입니다.”
비록 100여 페이지에 불과한 전자책이지만 거의 이틀에 책 한 권 분량을 쓴 꼴이었다. 퇴직 후 출판사에 원고를 가져갔더니 자그마치 10권 분량이었다. 이때 쓴 ‘유대인 경제사’ 10권을 한 권으로 축약해서 출판한 게 2013년 초에 발간된 ‘유대인 이야기’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썼던 전자책 원고들이 지금은 아이디어의 보물창고가 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 전문가도 투자에 실패하는군요. 퇴직 후 투자 실패였으면 더 타격이 크셨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하느님의 계획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인생 계획대로 차근차근 진행되었더라면 강의와 저술을 하는 오늘날의 내가 되지 못했겠지요.(웃음) 외형적 성공은 몰라도 지금처럼 행복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글쓰기는 배부르고 등 따시면 하기 힘들거든요. 절박하고 절실해야 글이 써져요. 돌아보면 내 인생의 8할은 실패와 열등감이에요.”
홍 교수님의 이력에서 인생의 8할이 실패와 열등감이란 이야기는 의외입니다.
“열등감이 과도한 인정욕구로 이어지면서 자충수를 둔 경우가 많았어요. 지그재그 인생을 돌아가게 만들고요. 지각인생이고 뒤처진 삶이었어요. 대학 시절, 3학년 1학기까지 다닌 건축공학을 접고 대학과 전공을 바꿔 재입학한 것도 그렇지요. 외무고시 공부 죽어라 매달려 거의 붙었나 했더니 시위 경력으로 막판에 징집당해 군대를 갔다 오느라 동기들보다 사회 진출이 늦었지요. 코트라 다니면서도 또 사업 한답시고, 가구사업 벌였다가 부도났어요. 당시 채무자에게 전화로 재촉받은 트라우마가 아직까지 남아 있어서 전화를 늘 진동으로 해놓는답니다. 그런데 퇴직 무렵에 또 투자를 해서 재산을 날렸으니….”
그는 하느님의 계획이란 말을 자주 했다. 돌아보면 당시엔 역경이고 힘들었던 일들이 나중엔 경력이고, 혜택으로 작용하는 일이 많더란 것이다. 상사의 신문칼럼 대필을 하느라 애면글면하는 게 부당하게 느껴졌지만, 그것이 글쓰기의 힘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해외의 경제상황 보고서 격무로 연일 야근을 하면서 몸무게가 10kg 이상 줄 정도였지만, 그것이 오늘날 경제사 집필의 원천 자료가 되고, 사업 실패가 경영자들에 대한 이해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으니 말이다. 가깝게는 책 출판이 예정 시기보다 지체된 것도 불만이었다. 하지만 대기(待機)하는 동안 자료를 보충하며 ‘대기(大器)’로 숙성시킬 수 있었다. 홍 교수가 되새기는 말이 ‘현재에 충실해라’다. “과거의 불완전성, 미래의 불확실성에 불평하고 고민하느니 현재에 몰입한다.” 그가 인생 수업료를 비싸게 치르고 얻은 교훈이다.
말씀 들으니 참 곡절도 많으셨는데 잘 넘기셨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사랑입니다(3초도 안 돼 그는 즉답했다). 제가 청소년기에 비뚤어지지 않은 것은 어머니의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너무너무 사랑했거든요.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 돈을 어머니께 갖다 드릴 때 웃는 얼굴을 보는 게 참 좋았어요. 만인의 사랑보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사랑이에요. 저는 그 점에서 운이 좋지요. 늘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집사람도 내가 사업 부도내고 힘들었을 때 만났어요. ‘학벌도, 얼굴도, 돈도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을 나 아니면 누가 구제해줄까’ 하는 모성본능을 발동시켰다고 말하더라고요.(웃음) 많은 사람이 경제적인 문제로 괴로워합니다. 돌아보면 돈으로 인한 고난이 제일 약하더군요. 생활수준을 낮추거나 참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건강, 사랑을 잃으면 회복 불능입니다.”
그는 인생엔 ‘동심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어려서 애늙은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애어른’으로 중심을 잡다 보니 지금 오히려 ‘철부지 어른애’로 허당기를 발동한다는 것.
남보다 훨씬 세게 좌충우돌하셨군요. 그러면서도 늘 티핑포인트와 터닝포인트를 마련해 헤어나오셨습니다.
“내가 뭐든 한 번 빠지면 깊이 빠져 잘 헤어나오질 못해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 역시 장점이 약점이고, 약점이 장점입니다. 무언가에 필이 꽂히면 무섭게 빠지는 것, 좋게 말하면 몰입이고 나쁘게 말하면 중독인데요. 식음을 전폐하고 2박 3일 바둑을 둔 적도 있습니다. 인생 반전은 결국 결단력입니다. 뒤늦게나마 정신 차리고 결심을 무섭게 하고 바람직한 것에 몰입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지요.”
그는 ‘인생의 3대 결단’으로 “첫째는 어려운 가정형편인데도 3년 반이나 다닌 대학을 그만두고 재입학 결정을 내린 것, 둘째는 중년기에 바둑을 끊고 그 시간을 독서 등 건설적으로 사용한 것, 셋째는 정년퇴직 후 투자 실패로 힘들었던 시기에 글쓰기에 올인했던 것”을 꼽았다.
아드님만 셋이시지요. SNS를 보면 아드님이 아버지와 이야기도 나누고 가족을 위해 양갈비 요리도 하는 등 살갑더군요.
“(얼굴이 환해지며)요즘 세대는 우리와 근본부터 달라요. 나는 전쟁 치르듯 치열하게 살았지만, 얘네는 즐겁게 누리고자 하니까요. 공학을 전공했는데 모 방송 주최 랩 오디션에 나가 본선에 진출하기도 하고…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요. 내가 애들에게 오히려 배웁니다.”
그는 아들 이야기를 꺼내자 영락없는 아들 바보가 됐다. 아들과 와인 관련 공동칼럼을 쓴 적이 있었단다. 소비자가 앱을 통해 와인 품질을 즉각 분석, 판단할 수 있게 한 와인평가 앱이 출현, 전문가 위주의 와인평가 2.0시대에서 소비자 중심의 와인평가 3.0시대로 넘어간다는 트렌드 기사였다. 기성세대인 홍 교수는 이 기사를 쓰는 데 그쳤지만 신세대 아들은 와인 검색 비비노 앱 창업자인 하이니 자카리아슨(Heine Zachariassen)에게 기사를 번역, 복사해 이메일로 보내 교신까지 하더란다. 그는 현재 아들과 ‘실리콘밸리 이야기’와 ‘유대 금융자본과 비트코인 세력 간의 세계대전’ 두 권을 공동집필하고 있다.
유대인 하면 교육열이 떠오릅니다. 자제분들께 적용한 유대인 교육이 있으십니까.
“웬걸요. 애들 어릴 때 저는 유대인에 대한 관심이 없었지요. 손주들한테는 유아 때부터 적용해보고 싶어요. 특히 베갯머리 교육과 밥상머리 교육은 꼭 해보고 싶어요. 잠자기 전 동화를 읽어주고, 밥상에서 인생의 산 교훈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하는 것이죠. 유대인이나 한국인이나 교육열이 높지만 큰 차이가 있어요. 우리는 혼자 잘나길 원하지만, 이들은 철저히 협업을 강조합니다.”
그는 유대인과 한국인 교육의 가장 큰 차이를 두 가지로 요약했다. 달란트 vs 베스트, 학업 vs 인성이 그것이다. 우리는 공부의 목적을 역량강화, 즉 성공력에 둔다. 반면에 유대인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재능개발에 둔다.
또 우리는 경쟁에서 승리, 최고가 될 것을 주문하지만 유대인은 단결력에 둔다. 어려서부터 합숙교육을 통해 협동력을 체화해 유대인끼리 서로 형제처럼 돕는다. 상대의 단점을 보며 시기, 경쟁하기보다는 강점을 보며 협력한다. 이들에게 협상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협동능력이다. ‘남을 비난하는 자’뿐 아니라 그것을 말리지 않고 들은 사람까지 ‘공공의 적’으로 금기시한다. 또 실력보다 매력, 즉 인성과 협동심을 우선시한다.
인생 2막을 앞둔 분들께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하늘은 일단 들이대는 사람을 좋아한다”입니다. 당장의 일자리를 찾기보다 오랫동안 할 일거리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들이대고 저지르고, 그다음엔 밀어붙여라. ‘하늘은 열정에 반해 마법을 일으키게 한다.’ 힘들 때 내가 스스로에게 한 주문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후, 홍 교수가 자작시를 문자로 보내왔다. 이 시를 읽으며 ‘절대 절대 절대’란 말에 목울대가 울컥해졌다. 지금 2막의 새 신발끈을 묶고 있을 당신, 거센 풍랑에 맞부딪히더라도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 제목은 ‘거센 풍랑을 만나거든’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하고
박차고 일어나 맞서라.
일생에 한 번은 독해져라.
처절하리만큼 치열하게 맞붙어라.
길고 긴 힘들고 지루한 싸움이 될 것이다.
출구 없는 절망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마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
절대. 절대. 절대.
그 거대한 고난을 이겨내면 은혜는
슬며시 다가온다.
고난에 좌절하면 은혜 역시 고개 돌린다.
은혜는 항상 고난을 앞세우고 다가온다.
거저 오는 법이 없다. 얄미운 은혜다.
지난해 12월 26일 '서리풀 문학회' 문우 최선옥 님의 수필집 출판기념회와 송년회가 있었다. 남부터미널역 팜스 앤 팜스에서였다.
서리풀 문학회 지도 선생님은 상지대 학장님으로 퇴직하신 신길우 교수님이다. 문학박사이자 국어학자이신 신 교수님은 수필가, 시인이다. 평생을 국어 연구와 문학 사랑에 헌신하신 신 교수님의 문학에 대한 열정은 아무도 못 말린다. 그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자제분들에게 이렇게 선언하셨단다.
"퇴직금 중 1억 원은 문학에 쾌척하겠다. 아무도 말리지 마라."
이 말씀을 들은 필자는 감동의 도가니 속에 빠져버렸다. 이후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문학의 강'이라는 계간지를 발간하고 있다. 교대역 부근 오피스텔에 문학 동지들의 아지트도 만들어놓으셨다. 신 교수님도 필자 못지않게 책 욕심이 많으셔서 아담한 오피스텔은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신 교수님은 길이도 짧고 문장도 간결한 걸 추구하신다. 만연체나 화려체를 멀리 하고 간결하고 함축된 문장을 쓰도록 지도하신다.
필자는 퇴직하던 해인 2012년 가을부터 서초문화원 수필 창작반에 발을 담갔다. 햇수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10여 명의 문우들이 수필가로 등단했다. 처음에는 어설프고 엉성한 문장들이 시간이 갈수록 짜임새 있고 의미 있는 문장으로 바뀌었다.
문우들이 하나하나 수필가로 등단할 때 필자는 뭘 했나? 문제는 욕심이다. 다른 사람들이 수필에 매달릴 때 필자는 패션디자인 공부에 왈츠 배우기, 발레 수강, 패션모델, 서초문화 해설사, 시 낭송, 영어 회화에 때때로 오페라 감상, 발레 감상, KBS ‘명견만리’ 서포터스 활동까지 하고 싶은 걸 몽땅 다 하려고 취미활동 영역을 마음껏 펼쳐놓았다. 마치 내일 죽을 사람처럼 욕심을 부렸던 것이다. 2017년에는 세 곳에서 기자활동까지 했다.
최 수필가는 막내로 태어나 장남하고 결혼했다. 시누이들과 시동생의 어머니 노릇에 홀시아버지를 23년간이나 모셨다. 상황이 이쯤 되면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 해도 힘들어서 도망갔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그녀의 낭군님은 그녀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변했다면서 엄청 좋아한단다. 너무 좋아서 그녀의 수필집 출판 비용도 기꺼이 내줬고 서리풀 문학회 송년회 비용도 마음껏 쓰라며 카드를 통채로 맡겼다고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종이에 수다를 떠는 것이다. 사람과 만나 수다를 떨 때는 공간적, 시간적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글은 그런 굴레에서 자유롭기에 좋다. 그녀의 글에는 그녀의 따스한 마음이 배어 있고 하루하루 잘 살아내는 삶의 향기가 묻어 있다. 수필집 제목을 '날아올 행복'이라고 붙였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그녀 곁에는 행복이 이미 껌딱지처럼 요지부동 붙어 있다. “나 아무 데도 안 갈 거야' 하듯 말이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다. 쉽게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염불이 된다. 때로는 지나가는 말로 약속 아닌 약속을 하기도 한다. 그냥 해 본 소리라 이른다. 약속은 늘 상대가 있다. 두 사람 모두 농담으로 한 이야기로 받아들였다면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대방 한쪽이 진실로 이해했다면 약속이 실천되지 않을 경우 다른 한쪽 사람은 실없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힐지 모른다. 양치기 소녀가 되어 신뢰성을 회복하기 힘들게 된다. 약속하게 되면 충분한 이유가 없는 한 지켜야 한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인간 사회의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 그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그중에 하나고 교육자도 그러지 싶다. 진실을 알려야 하는 기자를 비롯한 언론인도 마찬가지다. 모범이 되어야 하고 진실을 알려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부류 속에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강사도 포함된다. 진실과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고 작은 약속이어도 지켜나갈 때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출발점은 언제나 작은 데에서 시작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작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큰 약속도 기대하기 힘이 든다.
필자는 강사다. 한 사람을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청중이 다수다. 강사의 한 마디가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 영향력은 적다고 볼 수 없다. 한 마디 한 마디를 쉽게 하지 못하는 이유다. 한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 강의를 위하여 그 준비 시간은 몇 배 아니, 수십 배에 이를 수도 있다. 자료를 준비하면서도 다시 확인하고 또 확인을 거친다. 강의 중에 청중과 약속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해당 강의 순간을 넘기면 끝난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끝까지 그 약속을 지켜줄 때 또 다른 신뢰를 얻는다. 필자는 허투루 한 약속이어도 지키려 애를 쓴다.
그런 일의 하나로 지난해 지키지 못했던 약속 하나를 새해 첫 근무일인 1월 2일에 지켰다. 연말 무렵의 바쁜 일정에서 틈바구니를 찾지 못해 차일피일하던 약속을 이행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필자는 공무원연금공단 연수원에서 여가 설계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많은 퇴직 예정 공무원들과 만난다. 지난해 10월 중순에 수안보 상록호텔 대강당에서 공무원 120명을 대상으로 강의 중간에 질문하고 정답을 맞힌 수강생에게 책 한 권을 선물로 우송해주기로 약속을 했다. 수강생은 농담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필자는 그 수강생의 연락처를 메일로 받았다. 마침 서울지역의 주민센터 동장으로 정년을 2년 정도 남겨둔 공무원이었다. 책을 우송하는 일이 손쉬운 일임을 알면서도 직접 만나 전달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작은 물품이지만, 전달하는 방법에 따라 감동이 다를 수 있다고 보아서다. 시간과 노력이 더 들어도 좋은 인연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초에 그 결단을 내려 찾아갔다. 약속한 책 한 권과 새해에 적합한 필자의 사진 작품을 소품 액자로 만들어 직접 전달했다. 너무 고마워했다. 상대방도 캐비닛을 열고 손님에게 일상적으로 주던 선물용 수건과 여행용 세면도구 세트 등을 내민다. 작은 약속이었지만, 지키고 나니 3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하였다. 새해 첫날에 약속 하나를 지키며 새로운 인연의 끈을 묶었다.
‘꽃잎은 바람결에 떨어져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데…’
나의 명동 쉘부르 입성 즈음 대한민국은 온통 전영 씨의 ‘어디쯤 가고 있을까’의 나라였다. 그 노래 하나로 모두가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때 ‘쉘부르’를 빛내던 전영 씨였기에 내 상업적인 무대의 시작은 이 노래와 함께 출발한다.
나와 비슷한 시절을 보낸 청춘들은 한 번쯤 다녀갔을 명동의 통기타 생맥주 살롱! 아니 그보다 통기타 가수들의 요람이라 함이 옳을 듯싶다. 그곳은 돈 없고 기댈 곳 없는 수많은 무명가수들의 등용문인 동시에 ‘쉘부르’라는 이름 안에 가두어 자부심을 갖게 하는 통기타의 메카였던 것이다. 지금 열광하는 오디션의 효시인 셈이다. 그랬기에 객관적 평가를 받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노래를 준비해 국민 DJ 이종환 씨의 평가를 받으려고 토요일 오후마다 북새통을 이뤘다.
사실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단순히 상금 때문에 지원해서 두 차례 고배를 마시고 세 번째 도전에서 쉘브르家에 입성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서로 익숙해진 얼굴들 서로의 실력 또한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에 자주 만나는 사람끼리 눈인사도 하며 하나가 된 분위기… 노래라는 공통분모 덕분에 그리 될 수 있었던 통기타 시대의 역사이기도 할 것이다.
그들 중에는 이문세도 매번 만날 수 있었는데 노래는 예나 지금이나 무척 잘했지만 이종환 씨 눈에 들지 않아 끝내 쉘부르 무대 시간표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 그곳에서 만난 얼굴들 중에 나중에는 유명 가수가 된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실력이 있어도 오디션 문턱을 못 넘은 사람이 많았을 만큼 이종환 씨의 주관적인 평가는 많은 이들의 꿈을 빼앗아가기도 했고 나처럼 가수가 목표가 아니고 상금이 목적이었던 사람들에게 무대를 허락하기도 했다.
내가 1977년 10월에 문을 두드려 얻어낸 자리를 노래보다는 말솜씨가 좋아서 발탁된 첫 케이스, 주병진! 뭔가 멋져 보였고 수줍음 많고 조용했던 청년 하덕규! 그는 시인과촌장으로 대중가요 명반 대열에 이름을 올린 훌륭한 뮤지션으로 훗날 ‘재회’란 노래를 내게 준 음악적 동지이자 은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탄탄한 가창력의 소유자 김승덕은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를 작곡한 친구인데 이들 모두 똑같은 방법으로 내 뒤를 이었다. 40년 전의 일인데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렇게 청춘은 흘러 이제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쉘부르와 함께 추억에 젖어본다.
젊음! 20대의 기웃거림! 청바지와 통기타를 앞세워 암울했던 시기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불러댔던 노래들! 그 시절의 명동은 ‘쉘부르’, ‘오라오라’, ‘가젤’, ‘PJ’ 등등 몇몇 통기타 라이브 클럽이 성행했으며 12시 야간통행금지가 있었던 때라 10시가 지나면 마치 썰물처럼 사람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가곤 했다.
그 시절 노래하는 사람들 중 형편이 좋은 사람은 많지 않았고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나와 노래했던 터라 용돈이 풍족할 리 만무였다. 그저 좋아하는 노래를 한다는 이유로 우린 늘 굶주림 속에서 배고픔을 안고 생맥주로 휘청거리는 명동, 무교동을 무거운 통기타를 들고 오가며 행복했다. 무명가수였지만 나름 이름을 빛내고 있었고 배가 고파서 불행하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는 진정한 딴따라였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 제일백화점 왼편에 있던 제일 값싼 막국숫집에서 거의 한 끼를 해결했고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겨 라면 골목으로 달려가 그냥 라면도 아닌 계란라면이라도 먹는 날은 우리들 모두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때 우리에겐 짜장면도 사치였으니… 지금도 사랑받는 ‘명동교자’ 그땐 ‘명동칼국수’ 집이었는데 상금 타던 날 회식한 이후로 몇 번 가보지도 못한 채 명동 시대를 접었던 기억도 슬픈 추억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적 있는가?’ 다산으로 인해 모든 게 부족하기만 했던 우리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했을~ 그리하여 단단해진 우리 세대들이 난 늘 자랑스럽다.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눈을 반짝이며 꿈을 키우던 날들~ 몽당연필의 소중함으로 늘 근검절약을 하던 시절~ 소풍 갈 때 전날 미리 사둔… 계속 손으로 만지작거려 미적지근한 사이다 병이라도 드는 날엔 어깨가 으쓱했던 기억하며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뻘건 소시지와 계란프라이가 있는 친구들이 한없이 부러웠던 그런 시절!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던 시절의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것은 더욱 선명하게 남아 있다.
꿈같은 시간들이 흘러 이젠 꿈의 시간으로 왔다. 60세! 예전 같으면 ‘고려장’을 이미 치렀을 나이에 서 있다. 더러는 정년퇴직을 해야 하거나 은퇴를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되고 보니 정년 없는 무대에 서의 삶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젊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정받고 달려온 날들이 있는가 하면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관심받지 못함도 견뎌내야 하고 이젠 젊은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는 설움도 감수해야 할 나이다. 하지만 난 예전이나 지금이나 찬란하고 푸르르다. 내 마음이 그러하고 내가 그러하다.
내가 지켜온 40년 동안의 대중문화예술계! 꼭 내가 지켜왔다고 할 순 없지만 수백, 수천의 가수들 중에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지 않은가? 40년을 자의이든 타의이든 무대를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축복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노래하는 친구들 중에 과연 40년을 살아남을 자들은 얼마나 될까? 내가 힘들게 올랐던 그 산의 정상에 오를 사람들은 몇이나 될 것이며 과연 몇이나 나처럼 근사한 곡선을 그리며 하산할 것인가? 오르며 만난 수많은 꽃과 나무… 그리고 사람들… 그 아름다운 관계 속에서의 행복을 과연 몇이나 알겠으며 몇이나 나처럼 단단하게 여물겠는가? 중턱에서 바라보기만 할 친구들이 얼마나 많을지는 충분히 상상 가능한 일이다. 노래를 시작한 40년을 되돌아보니 참 잘 살아왔다는 자찬이 절로 나온다. 내가 이 얼굴로 살면서도 성형수술이나 어떤 시술을 하지 않고 예쁜 여배우들한테도 꿀리지 않고 살아왔듯이 나를 사랑하기에~ 진심을 다해 온전히 나를 사랑하기에~ 내가 찬란한 내 인생의 주인공이기에~ 어떤 것도 내가 불행해지게 내버려두지는 않은 듯싶다. 난 누구보다도 건강한 정신이 있기에 절대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행복해야 하고 그리하여 지금 행복하다. 그 원천은 건강한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누군 ‘이 나이 육십에 뭘~’ 이런 이야기는 사형선고 받은 사형수들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삼천갑자를 살다간 동방삭의 삶에 비하면 이제 겨우 하나의 갑을 보낸 나이에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난 거짓말처럼 60세가 되길 기다렸고 24세 개띠 해에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로 가수 인생 최고의 영광 속에 지냈었고 이제 또 개띠 해를 맞게 되니 새로운 열정이 뜨겁게 올라온다.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기에 충분한 나이! 어떤 일도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나이!
그렇게 하얀 마음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나는 다시 한 살로 태어나고 싶다. 비움으로 순수함으로아름다운 남은 시간들을 맞이하고 싶다. 그렇게 호기심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궁금해하며 공부하고 가슴으로 모든 걸 사랑하고 싶다. 내가 태어나던 무술년 그 가을처럼 그렇게~ 60년 만에 다시 돌아온 무술년이기에 그렇게~
2018년 1월 1일
남궁옥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