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hibition
픽사 애니메이션 30주년 특별전
일정 8월 8일까지 장소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 , 등 독창적인 애니메이션 영화로 사랑받아온 픽사(Pixar,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스튜디오)의 30주년 기념 특별 전시다. 제작 과정에 쓰인 스케치, 스토리보드, 컬러 스크립트, 캐릭터 모형 조각 등 약 500여 점을 각 영화별로 전시했다. 정지된 이미지들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움직이는 듯한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토이 스토리 조이트로프(zoetrope)’와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담은 ‘아트 스케이프(artscape)’ 등을 통해 애니메이션 탄생 과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마련했다.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
일정 7월 30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이집트 문화부, 샤르자 미술재단의 협력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193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작품 166점을 초현실주의가 걸어온 흐름에 따라 다섯 파트로 나누어 구성했다. 출품작 중 상당수가 해외 최초로 한국에서 공개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미라’, ‘피라미드’로만 인식되어온 이집트의 새로운 문화와 마주하는 기회를 선사한다.
◇ book
남자 혼자 죽다(성유진 외 공저·생각의힘)
고독사 중에서도 시신을 인수할 사람이 없는 상태, 이른바 무연사(無緣死)로 생의 마지막을 보낸 209명의 모습을 그렸다. 특히 남자가 절대적으로 많은 한국의 무연사 현상을 현대 사회 남성의 어려움과 연관해 밝히고자 했다.
치매박사 박주홍의 뇌 건강법(박주홍 저·성안북스)
20여 년 동안 치매 전문가로 살아온 저자가 치매를 비롯한 우울증,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에 대해 환자와 가족들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한다. 질병에 대한 기본 정보와 더불어 식생활, 운동, 명상치료 등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담았다.
◇ movie
심야식당2
누적판매 240만 부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만화 을 원작으로, 2015년 국내 개봉했던 영화 의 두 번째 시리즈다. 1편에서 함께한 마츠오카 조지 감독과 배우 코바야시 카오루, 오다기리 조가 다시 만났다. ‘오늘도 수고한 당신을 위로하기 위해 늦은 밤 불을 밝히는 특별한 식당’이라는 콘셉트로 밤 12시부터 아침 7시까지 운영하는 심야식당에서 벌어지는 각양각색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개봉 6월 8일 장르 드라마 감독 마츠오카 조지 출연 코바야시 카오루, 오기다리 조 등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한국의 길고양이가 대만과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의 로드무비다. 고양이 마을로 알려진 대만의 관광지 ‘허우통’과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이 산다는 ‘고양이 섬’ 일본 ‘아이노시마’ 등을 돌아다니며 길 위에서의 공생의 의미를 탐구한다. 영화계 대표 애묘인(愛猫人) 조은성 감독이 기획과 연출을 맡아 고양이의 시점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발자취를 담았다. 고양이의 마음을 내레이션을 통해 들려준다.
개봉 6월 8일 장르 로드무비 감독 조은성 내레이션 강민혁
◇ stage
로미오와 줄리엣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이한 원로 연극인 오태석이 번안과 연출을 맡았다. 청사초롱 불빛 아래 한국무용과 풍물이 어우러져 한국판 이 탄생했다. 원작과는 또 다른 비극적 결말로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일정 6월 18일까지 장소 명동예술극장 연출 오태석 출연 이신호, 정지영, 정진각 등
천덕구씨가 사는 법
극본을 맡은 김태수 작가는 삶은 끝나지 않은 여행이며,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긴 여행을 준비하는 시니어 세대에게 삶이란 견딜만하다고, 또 웃을 수 있다고 격려한다. 그런 그의 시선을 담아 누구나 겪는 노년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일정 6월 8~18일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연출 김순영 출연 오영수, 차유경 등
복순이할배
‘사랑을 모른다’라는 이유로 짝사랑에게 거절당한 태수는 돈 많고 건강한 독거노인 ‘복순이할배’에게 연애 상담을 하게 된다. 산전수전 다 겪은 괴짜 노인과 연애 풋내기 청년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뤘다.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대학로 두레홀 4관 연출 박정우 출연 김시권, 정동진, 이재욱 등
시카고
미국 브로드웨이 대표 뮤지컬 의 오리지널 팀이 2년 만에 내한한다. 1920년대 미국 시카고 클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재즈 음악을 14인조 밴드의 연주로 즐길 수 있다. 강렬한 조명 아래 관능적인 안무가 돋보인다.
일정 5월 27일~7월 23일 장소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출연 딜리스 크로만, 로즈 라이언 등
나이 차이가 얼마 없는 진짜 남매를 알아채는 방법 한 가지가 있다. 원활한 관계를 위한 친절한 안부는 없고 퉁명스럽게 다짜고짜 본론부터 들어간다면 100%다. 멋진 추억여행이 있다기에 만난 김미혜(42)씨와 김대흥(40)씨는 완벽한 남매 자체였다. 화창한 봄, 꽃향기 살짝 풍기던 어느 날. 인사인 듯 인사 아닌 인사 같은(?) 직설 화법 쏘며 대화를 이어가는 남매. 이들이 만나 두서없이 나누는 이야기는 역시나 여행. 부모님과 함께여서 행복했다는 여행 이야기였다.
해군 출신 부자, 여행에 추억 더하기
“아버지! 저랑 같이 술 마시고 좀 돌아다녀요. 입원하고 나면 한 달간은 못 마시니까 여행이나 함께 하시죠?”
퇴역 군인 아버지와 배우 아들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해군에서 복무 중 잠수를 많이 한 탓에 생긴 염증으로 아버지 김성준씨가 고막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아들 대흥씨의 꿀맛 같은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술이나 마시게 여행을 가자니.
“동해안 해군 부대를 쭉 둘러보고 오자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어요. 아버지는 해군 퇴역 군인이시고 저 또한 해군으로 제대했거든요.”
군복을 벗고 다시 그곳으로 가면 어떤 느낌일까? 군부대 안까지는 들어갈 수 없겠지만 근처라도 닿게 되면 그 또한 뜻깊은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원도 봉평에서 메밀전병 사 먹은 것을 시작으로 정동진, 통일전망대까지 쭉 훑고 올라갔다. 아버지 김성준씨가 수술을 바로 앞둔 2012년 3월 중순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시간여행
여행의 행선지가 동해안으로 정해진 이유는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대흥씨가 찾아낸 빛바랜 아버지 사진. 발견 당시 기분은 소름끼칠 만큼 신기했다고 대흥씨는 말한다.
“해군에 들어가 얼마 안 됐을 때인 일병 시절, 배 위에서 사진 찍을 기회가 있었어요. 그 사진을 뽑고 난 뒤 집에서 앨범 정리를 하다가 아버지 젊을 때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게 됐어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저와 아버지가 찍은 사진 배경이 똑같은 거예요. 위치까지도요. 소름이 끼쳐서 ‘아버지 이거 뭐예요?’ 그랬더니 ‘그 배, 내가 미국에서 끌고 온 배야’라고 그때서야 말씀하셨어요. 시간을 초월해서 아들과 아버지가 같은 곳에 있었던 거예요. 나중에 언젠가 그 배에 가서 꼭 한번 같이 사진 찍자고 약속했어요.”
“늙은이들끼리 한번 늙은이 보러 갑시다”
여행에서 바라던 최고의 장면은 퇴역 함정과의 해후였다. 강원도 강릉시 정동진의 ‘강릉통일공원’에는 아버지와 김대흥씨의 군 시절을 함께했던 같은 기종의 구축함이 전시돼 있다. 배와 만난 시대와 그 이유는 달랐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는 오랜 친구임에 분명했다.
“둘 다 군 생활을 마치고 여행 가서 퇴역 배에 다시 올라탄 거잖아요. 다 고물로 만난 거죠. 배는 고물, 아버지는 퇴역 군인, 나는 제대 군인. 이 셋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말이다. 이 무심, 무뚝뚝, 무정한 부자는 정말 꼭 같은 장소에서 사진 한번 찍자는 말을 제대로 지키고야 말았다. 단둘이 간 여행에서, 단둘이 찍은 사진이 ‘바로 그 위치’란 곳에서 찍은 단 한 장(!)뿐이란다.
“남자들이 다 그렇죠 뭐(웃음). 만나면 술 먹고. 여행으로 서로 더 돈독해진다거나 그런 거 없어요. 낮에는 운전해야 하니까 술은 못 마시고요. 그때만 해도 아버지가 젊으셔서 술 정말 잘 드셨어요. 수술 앞두고 어머니가 술 못 드시게 하시니까 제가 아버지에게 술 실컷 마실 기회(?)를 드린 것이죠. 그러고 딱 돌아오자마자 입원하고 수술하셨어요.”
여행 가서 정치 얘기는 금물
“술 먹고 아버지랑 싸우지 말걸 그랬어요.”
술이 부르는 여러 가지 사건 중 하나가 싸움. 대흥씨도 아버지랑 여행하던 중 다툼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배에 관한 이야기로 훈훈하게 시작해 천안함 사건으로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더니 결국 정치 얘기로 가고야 말았다. 해서는 안 될 대화였다고 회상했다.
“당연히 군인으로 한평생을 산 아버지와 저는 분명한 이견이 있었어요. 여행 가서 아버지랑 얼굴 붉힐 줄이야(웃음). 지금은 싸운 것도 웃기지만 좋은 추억이 더 쌓여서 괜찮아요. 이 여행을 계기로 영화 시나리오도 썼고요.”
여행 뒤 김대흥씨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행’을 주제로 한 작품 를 집필했고 2014년 제주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가작’에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솔직히 엄마와 딸은 들어본 적 있어도 다 큰 아들과 나이 든 아버지의 여행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사실 아버지와 싸웠던 것도 시나리오에 녹였죠. 단 정치로 싸우는 거 말고 다른 것으로 상상해 썼어요.”
아버지와 단둘이 또 여행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기회만 되면 언제든 하고 싶다고 말하는 김대흥씨.
“아버지랑 함께 군함에 올랐던 것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거예요. 아버지가 정말 많이 좋아하셨거든요.”
부모와의 여행은 좋지만 늘 고민되는 일
그러면서도 부모님과의 여행이 쉬워졌다거나 편해졌다고 선뜻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솔직히 쉽지 않아요. 부모님과의 여행은 아무리 자주 여행을 함께한다 하더라도 늘 대단한 각오가 필요해요. 그게 쉽다고 말하면 정말 제가 이상한 사람이죠. 가기 전에 항상 고민해요. 이 돈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가서 맞출 것도 많고요. 그래도 갔다 오면 잘 다녀왔다 생각하게 됩니다.”
김대흥씨는 시시때때로 사진을 찍어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과의 시간을 기록한다. 여행은 부모와 가족 모두를 사진에 담기에 아주 적당한 장치 같은 것이다.
“지금 제 핸드폰에도 부모님 사진이 있거든요. 미혜 누나 결혼식 때도 북촌길을 걸으면서 사진도 찍고요. 요즘 보면 대부분 부모님이랑 같이 찍은 사진이 많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더욱더 부모님과의 여행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 누나가 여행에 관해 할 말이 더 많을 거예요. 누나는 엄마랑 대만 여행을 다녀왔는데 정말 잘 놀다 왔더라고요.”
둘째 누나 김미혜씨의 꽃보다 엄마 ‘대만 편’
이제 그럼 김대흥씨 누나의 여행 이야기에 빠져볼까? 김대흥씨는 삼남매 중 막내. 둘째 누나 김미혜씨가 여행에 조예가 깊다고 귀띔해줬다. 특히 어머니와 함께하는 여행은 전문가 수준이라고. 현재 IT업계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미혜씨는 전직 여행작가다. 거짓말 약간 보태 국내외 구석구석 안 가본 지역과 나라가 없을 정도다. 지금도 호시탐탐 여행 기회를 노리고 있다. 미혜씨는 가방에서 앨범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엄마와 대만 여행 갔을 때 사진을 모아서 앨범을 만들었어요. 기념도 될 것 같고요. 엄마가 너무 좋아하셨어요. 제가 원래 여행을 좋아했으니까 자연스럽게 엄마랑 여행을 가야겠다 마음먹었어요. 여행지에서 맛있는 거 먹을 때는 늘 엄마가 생각나더라고요.”
김미혜씨 가족은 제주 출신이다. 해군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해군기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며 살았고 종착지는 부모님이 나고 자란 제주가 됐다. 제주에 살고 있는 부모님. 물리적인 거리가 다소 걸림돌이 되지만 엄마와 어떻게 하면 새로운 곳에 갈까 찾아보고 고민한다. 그렇게 떠난 첫 외국 여행지는 대만. 이유가 있었다.
“꽃보다 할배, 대만 편을 재밌게 보셨나봐요(웃음). 일본이나 중국 2박 3일로 갈 수 있는 곳을 추천해드렸는데 갑자기 대만에 가고 싶다고 하셨어요.”
혈액 투석하는 어머니를 위한 맞춤 일정
미혜씨는 고민 끝에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대만을 자주 다녔고 여행 일정도 짤 수 있었지만 패키지여행을 선택한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어르신이랑 여행을 할 때는 식사와 동선이 문제거든요. 젊으면 모르겠는데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다니는 게 힘들어요. 무엇보다 식사를 특히 잘 맞춰주잖아요. 현지식과 한식을 고루 섞어주니까. 자유여행의 경우 자식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걸 눈앞에서 보시니까 부담스러워하시더라고요. 패키지는 여행 전에 돈을 미리 지불하잖아요.”
혹시나 패키지여행의 일정이 빡빡하고 버스 이동이 많아서 어머니가 재미없어하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매 순간 즐기고 따라다니셨다고 했다. 그리고 패키지를 선택한 이유가 또 있다. 어머니의 건강이 문제였다. 어머니 이경숙씨는 일주일에 세 번 혈액 투석을 한다. 그래서 멀리 가고 싶어도 2박 3일이 넘는 여행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월·수·금 중 하루 투석이 끝난 오후 시간에 여행을 떠나요. 제주도에서 투석하거나 서울에서 할 때도 있어요. 만약 엄마가 속초나 이런 곳에서 여행을 하시게 되면 며칠을 자야 하니까 제가 미리 그 근처 병원을 알아보고 시설이 어떤지 확인하고 예약해요. 그런데 항상 하는 일이라(웃음). 대만 갈 때는 아주 많이 기대하셨고 다녀와서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라고 말씀하세요.”
여행남매, 지금도 여전히 여행 계획 짜는 중
작년 미혜씨는 엄마와의 홍콩여행 계획을 세웠다 어머니 몸이 좋지 않아 포기했다. 어머니의 투석은 여행을 참 힘들게 하지만 해결하고 넘어야 할 일. 그럼에도 미혜씨는 “엄마가 조금이라도 건강하실 때 짧게라도 여행을 꾸준히 다닐 것”이라고 말한다. 오는 10월 아버지 김성준씨의 고희(古稀)를 기념해 김미혜, 대흥 남매는 온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 오키나와 여행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중심은 단연 부모님이다. 아이들은 더 좋은 곳에 많이 갈 것이기 때문에 일정 대부분은 부모님 위주로 짤 계획이다.
김대흥씨는 자신과 누나의 여행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고 했다. 부모와의 여행이 불편하다는 편견을 좀 깨주고 싶었다고.
“여행 가고 싶은데 불편해서 못 간다구요? 어머니 투석 챙기는 누나 보세요. 그래도 누나는 하루라도 젊을 때 엄마랑 여행 가고 싶다고 말하거든요. 게다가 저희 부모님은 제주에 사시잖아요.”
돈이 꼭 있어야만, 그리고 건강해야만 할 수 있는 게 부모와의 여행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터뷰 말미, 호기심이 발동해 질문 하나를 던졌다.
“누나와 동생, 단둘이 여행 가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이구동성으로 단호히 대답했다.
“없죠(웃음).”
짙푸른 동해 바다. 저 멀고 깊은 곳으로 눈길이 따라가면 하늘이 시작된다. 바람과 파도소리도 경계가 흐려져 귓가에는 하나의 소리로 들릴 뿐이다. 구름 아래 뻗은 손가락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주황색 빛이 몸을 감싸 내린다. 그곳에 서 있는 기분? 이게 바로 축복 아닐까.
산과 바다, 하늘이 이어진 예술가의 놀이터
멀리 바다에서 시야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면 청록색 소나무 숲길과 다양한 형상을 한 조각상이 자유로이 서 있다. 한적한 해안도로 옆, 예술가의 숨길과 손길이 쉼 없이 스쳐지나가는 하슬라아트월드(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발길이 머무는 순간 관람객이 아닌 설치된 미술작품의 한 소재로서 존중받는 곳이다. ‘하슬라’는 고구려·신라시대에 사용됐던 강릉의 옛 지명으로 ‘해와 밝음’이라는 의미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여기에 ‘아트월드’를 붙여 ‘강릉에 세워진 예술가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강릉 출신 미술가 박신정·최옥영 부부의 예술가적 기질이 이 공간을 채웠다. 박신정 대표는 하슬라아트월드 홈페이지를 통해 “외국에 작품 전시를 다니면서 예술품뿐만 아니라 전시 장소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감동을 받아왔다”며 “모든 것이 조화롭게 화합하는 곳을 꿈꿨다”고 공간 건립 배경을 설명했다. 2003년 조각공원을 시작으로 2009년 뮤지엄 호텔(24개 객실), 2010년 현대미술관, 2011년 피노키오 박물관과 마리오네트 미술관을 순차 개관했다. 하슬라아트월드는 연간 약 15만 명이 찾는 강릉의 관광 명소다. 최근 SBS 드라마 와 영화 촬영 장소로 이용됐고, MBC 드라마 의 주요 무대가 됐다.
하슬라아트월드의 크고 작은 모든 공간이 예술가들의 작업 현장이자 방문객의 관람 장소다. 이곳은 뭐든 다중적인 감각과 의미가 부여돼 있다. 호텔일 수도, 전시실일 수도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이 이곳의 특징. 보는 사람에 따라 자유로이 생각하고 상상을 즐기는 곳이다. 작가들은 이곳에 상주하면서 작품 활동도 한다. 취재를 갔던 4월 초에는 마침 최옥영 대표가 전시에 필요한 작품을 손보고 있었다. 작업복 차림의 최 대표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온몸에 먼지가 잔뜩’이라고 멋쩍게 웃었다. 최 대표는 “자연 자체로도 아름다운 곳과 인연이 된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면서 “예술가라 타협도 잘 못하고 부족하지만 생긴 대로 오랫동안 이곳을 지킬 것”이라고 말하고는 다시 작업에 집중했다.
고래 뱃속을 걷는 피노키오처럼
하슬라아트월드는 정해진 방식은 아니지만 현대미술관, 피노키오 박물관, 마리오네트 미술관 순으로 관람한다. 현대미술관은 호텔 건물 로비에서부터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지상에서 지하로, 다시 지상으로 오르내리며 작품 감상을 하는 구조다. 동해의 파란빛과 자연광, 목조 마루, 겉치레 없는 시멘트벽을 배경으로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건물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마치 어딘가 ‘툭’ 하고 놓아둔 느낌에 시선이 간다. 감각적이고 기발함이 돋보이는 회화와 조각 작품 200여 점도 전시되고 있다.
손자·손녀의 감성자극 미술 공간이 현대미술관 다음에 이어지는 피노키오 박물관이다. 특히 박물관으로 향하는 통로가 매우 인상적이다. 피노키오가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형상화한 공간으로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다. 큰 원형 통로 내부를 플라스틱 비닐로 촘촘하게 감싸놓았고, 형형색색 움직이는 조명을 설치했다. 마치 고래 뱃속을 여행하는 피노키오가 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사각거리는 비닐 소리와 사람의 말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조명이 마블링되듯 섞여 완벽한 예술작품으로 거듭나는 곳이다.
피노키오 박물관에는 피노키오 관련 작품 500여 점이 있다. 3개월에 한 번씩 작품과 전시 성격을 바꾸고 있다고. 이곳에는 꽃으로 만들어진 피노키오와 유럽에서 들여온 각양각색의 피노키오를 만날 수 있다. 디즈니 만화영화 피노키오 관람은 덤이다.
마리오네트 미술관에서는 센서로 움직이는 하슬라아트월드의 특허품 ‘마리봇’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이 가까이 오면 팔과 다리를 흔들어 몸을 움직인다. 체코,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가지고 온 특별한 마리오네트가 관람객을 맞는다.
편견 없이 예술작품을 감상할 것
실내 관람을 마치면 조각공원 산책을 한다. 호텔 안 매표소 쪽으로 다시 돌아가 실내 계단을 이용해 조각공원 입구로 간다. 반드시 편한 신발을 준비하라. 빨리 다녀도 최소 30분이고 나지막한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솔향 가득한 소나무 정원을 지나 무심히 서 있는 조각들을 보며 걷다 잠시 뒤를 돌아보시라. 자연이 내려준 예술작품(?)을 벅찬 마음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동해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바다카페와 전망대, 아이들의 체험학습장과 소똥박물관 등이 있다. 자연 속 나 자신이 작품의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소중한 공간이 하슬라아트월드 안에 있다.
하슬라아트월드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 작품의 제목, 작가 이름 그리고 거울이다. 심지어 거울은 화장실에도 없다. 시멘트벽도 골조 외에 별다른 장치가 없다. 이 모든 것에는 편견 없이 작품을 바라보고 집중해달라는 대표의 철학이 담겨 있다. 단, 예약제로 진행되는 도슨트 시간에는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품에 관한 설명이 듣고 싶다면 도슨트 설명을 들어보시라.
새해 맞이하기 바쁜 세밑이다. 한해를 정리하면서 가까이서 새해일출을 즐기는 방안을 찾는다.
준비물을 철저히 챙겨야
북한산ㆍ도봉산ㆍ관악산 등 평소에 쉽게 다니는 등산 코스도 준비물을 철저히 챙겨야 한다. 햇볕 없는 겨울 산 속은 상상을 뛰어넘게 춥다. 에스키모처럼 중무장이 필요하다. 방한모ㆍ목도리는 필수품이다. 특히 방수가 잘된 신발을 신어야 한다. 눈이나 비가 오지 않는 날이더라도 아이젠이 꼭 챙겨야 한다. 겨울철에는 항상 미끄러운 얼음이 있기 마련이다.
일출 전 산 속은 엄청 어둡다. 랜턴 준비를 잊어서는 안 된다. 배터리는 새
로 교체하고 여벌도 꼭 챙기기 바란다. 남이 비추는 불빛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불빛은 흔들리기 때문에 오히려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뜻한 물과 비상식량도 꼭 준비하여야 한다.
서울 근교 산 새해일출
서울 근교 산의 새해일출은 아침 7시 40분경에 완성된다. 평상시 주간등반보다 야간등반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므로 충분히 고려하여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손전등을 안내삼아 산행을 하여야 한다. 남산이나 정동진 등 일출명승지 못지않게 평소보다 등산객이 훨씬 많다. 앞 사람 궁둥이만 보고 걷고 또 걸어야 한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모습이 일개미들의 행진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좌우로 흔들리는 손전등 불빛이 여름철 반딧불 같기도 한다.
먼동이 터오기 시작하면 봄이나 여름에 보았던 산과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정상에는 발 디딜 틈 없다. 자리를 잡고 동쪽 하늘을 쳐다보면서 추위를 달래야한다. 따뜻한 물 한 모금 마실 여유가 없고, 발이 시려 제자리 뛰기를 하여야 한다. 바로 옆 사람과 품앗이로 사진 한 장 겨우 찍을 수 있다. 저 멀리 옅은 구름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하면 눈을 지긋하게 감고 무언가를 갈구할 것이다.
서울에서 50년 넘게 살면서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서을 근교 산을 자주 오르고 있다. 봄철의 연두색은 새 색시처럼 포근하다. 여름날에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도록 시원한 그늘로 가슴을 연다. 붉은 단풍으로 물든 가을은 가슴을 뛰게 한다. 순백의 겨울은 아름다움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서울 근교 산은 어느 곳보다 뛰어난 새해일출 명승지다.
둘레길 새해일출 명소
등반시간 맞추기 어려우면 둘레길 수준의 일출명소를 찾으면 된다. 남산이 대표적인 명소다. 지하철역에서 접근하기 쉽고 거리가 길지 않아 새해일출 보기에 딱 좋은 곳이다. 하지만 지하철 출퇴근 때처럼 사람에 밀려다니는 북새통이 문제다. 좀 일찍 서둘러야 사진 한 장 남길 수 있다.
인왕산, 서대문 안산, 아차산, 강동구 일자산 등 우리 주위에 새해일출 명소가 많다. 시간 여유를 가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먼 거리 여행도 좋고 이름 없는 호젓한 바닷가도 좋다. 아니면 자기 집 옥상에서라도 새해일출을 맞보기 바란다. 새해일출! 내 손 안에 있소이다!
뜨거웠던 8월, 강원도 정동진으로 향했다. 푸른 동해를 배경으로 1995년 안방을 뜨겁게 달궜던 드라마 의 주제곡 ‘백학’이 울려 퍼지는 곳. 그런데 8월의 정동진에는 바다 말고 기다리는 것이 또 있다. 이 작은 마을에 벌써 올해로 18회째 열리고 있는 ‘정동진독립영화제’이다. 조용하던 동네에 알 만한 영화감독과 배우가 속속 모이고 함께 어울리며 영화를 보고 즐긴다. 천국의 느낌 같은 영화제라고나 할까? 관객도, 영화를 만든 사람도 신나고 즐거웠던 그곳에 흠뻑 취해 봤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18년 동안 어김없이, 변함없이 관객들과 영화인들을 맞이하고 있다. 요일과 장소도 변하지 않는다. 8월 첫째 주 금·토·일, 정동초등학교 운동장. 이때 운동장은 영화제를 위한 유일한 상영관이 된다. 독립 단편영화와 장편영화가 상영된다. 함께 여행 온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도 상영되며 모든 영화 관람은 무료이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관객도 관객이지만 영화인들이 사랑하는 영화제다. 1년에 한 번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만 만나서 ‘밥하는 특급 팀’이 있을 정도다. 2박3일 동안 열리는 영화제에는 독립영화인은 물론 알 만한 얼굴의 배우와 감독도 찾는다.
정동진독립영화제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제는 애초에 영화인들이 재미있게 보는 독립영화를 더 많은 관객과 함께 보고 싶어서 기획한 것”이라며 “관객이 재미있게 볼 수 있고, 영화인도 재미있게 준비하고 놀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됐으면 하는 영화제”라고 말했다. 2박3일 동안 이곳에 머무르는 배우 등 영화인들은 정동진 해수욕장에서 연례행사처럼 자장면을 시켜 먹고 바다 수영을 즐긴다고. 올해 정동진독립영화제에는 권해효, 조은지 등 배우와 이해영, 변영주, 김조광수 감독이 참여했다. 특히 이번 영화제에는 배우 문소리가 의 감독으로 참여해 동전으로 투표하는 정동진독립영화제 유일한 상인 ‘땡그랑동전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다. 상금으로 약 24만원을 받았다.
영화제 개막작으로 신상옥 감독의 (1961)이 컬러 영상으로 상영됐다. 영화와 함께 판소리 를 곁들인 공연으로 꾸며져 다채로운 모습을 연출했다.
정동진독립영화제 최고령 참가자 안학섭(86)씨. 다큐멘터리 영화 (김동원 감독·2003)에 출연했던 비전향 장기수다. 영화 출연 이후 줄곤 영화제를 찾았는데 부산에 사는 6년 동안 영화제 방문을 잠시 접어 뒀었다. 재작년 인천시 강화군으로 이사해 작년부터 다시 이곳을 찾고 있다. 안학섭씨는 정동진독립영화제에 대해 “독립영화는 사회발전의 동력인데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 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기특한 일이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소리 감독이 ‘땡그랑동전상’을 거머쥐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10세에서 12세 정도 되는 관객이 영화가 재미없다고 해서 이 영화가 마지막일 것 같다”더니 관객상을 받았다. 상금으로 받은 동전 24만원을 영화제에 쾌척할 뜻을 밝혔으나 영화제의 박광수 프로그래머는 “그 돈은 가져 가고 다른 방법(?)으로 후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영화제의 밤이 시작되면 아이들이 뛰놀던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은 넓은 야외 상영관으로 변한다. 영화도 보고 금방 쏟아져 내릴 듯한 별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을 찾는 관객들은 간이 의자에 돗자리, 텐트형 모기장을 준비해 와 영화를 감상한다.
60대 초반 정년퇴직과 함께 몸 좀 만들어 보겠다는 심산으로 가끔 타고 다니던 자전거로 장거리 라이딩이란 황당한 도전에 처음 나선 것은 지난해 가을. 동해안 최북단인 강원 고성군 금강산콘도에서 강릉시 정동진까지 2박 3일간의 해안선 라이딩에 나선 것이다. 심장이 방망이질 쳐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수백 번, 수천 번을 들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정동진까지의 라이딩에 성공했다. 비록 작디작은 성공이지만 스스로가 너무 대견했던 필자는 올해는 자전거 라이더들의 영원한 꿈인 낙동강 700리 길(3박 4일) 라디딩에 도전하기로 했다. 거리가 멀다 보니 혼자 달리는 것은 너무 외롭고 위험할 것 같아 필자가 속해 있는 자전거 동아리 SD21 회원 5명도 당돌한 도전에 동참하라고 사주했고 회원들도 흔쾌히 동의해줬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작은 도전기를 5회로 연재한다.
5월 5일 어린이날 드디어 그토록 고대하던 출발이다. 우리는 서울에서 자동차에 자전거와 먹을 것을 싣고 경북 안동댐으로 향했다. 쾌청한 날씨는 왠지 모를 설렘으로 다가왔고 우리의 도전을 축하해주는 것 같았다. 안동댐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쯤이었다. 낙동강 700리 길 자전거 라이더들이 도장 받는 안동보인증센터 주차장에서 모두 라이딩 복장으로 갈아입고 라이딩의 첫발을 뗐다. 오늘의 목표는 안동보에서 상주보까지다.
아직도 서늘한 기운이 있어 바람막이 옷을 입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등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자전거길 중간마다 나타나는 업힐을 오를 때는 숨이 막혀 오뉴월 개처럼 헐떡거렸다. 어쩔 수 없이 나이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말로만 듣던 낙동강 700리 길의 첫 도입부는 무르익어가는 봄으로 상큼했다. 둑길에 가지런히 피어 있는 라일락 꽃의 향기가 코끝을 야릇하게 자극하고 서울에서는 아직은 철 이른 아카시아 꽃도 흐드러지게 피어 달콤한 향기와 백색의 우아한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5월의 아카시아 꽃잎은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어린 시절 꽃잎을 입에 넣고 우걱거리면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히 퍼졌다.
낙동강 물줄기는 광활한 평야의 젖줄처럼 유유히 흐르고 물줄기가 휘돌아 치는 모퉁이마다 기암괴석과 수목이 어우러져 참으로 멋진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멋진 풍경 속으로 우리는 미끄러지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가히 한 폭의 그림이었다.
몇 개의 고개를 넘은 뒤 굽이굽이 강줄기를 따라 페달을 밟으니 어느덧 안동시 하회마을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잠시 가쁜 숨을 고른 뒤 다시 달려 예천군으로 접어들 무렵 온몸이 묵직하고 다리가 뻐근해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길가의 어떤 상점 앞에 멈춰 목을 축이는 동안에 우연히 해맑은 표정의 두 젊은이를 만났다. 그곳에서 만난 그들의 자전거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무거운 많은 짐이 실려 있었다. 숙식에 필요한 텐트와 일체의 장비를 갖추고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누군가 ‘청춘은 꽃’이라고 했던가?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그들은 부산까지 자전거로 이동한 다음 전남 목포시까지는 대중교통으로 점프해 목포에서 제주도까지 배를 타고 간다고 했다. 환상의 제주도 자전거 일주도로를 정복한 다음 서울로 돌아가는 방법은 그때 가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고 한다. 누구나 젊다고 해서 다 이런 도전을 감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일행 모두는 침이 마르도록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격려를 나눈 뒤 다시 출발해 달리는 내내 그들의 젊고, 건강한 향내가 깊은 여운으로 남아 있었다.
한 바닥 겨운 아쉬움으로 낙서를 했다.
그때 했었고 그때 하지 못했던 말들이 추억이 되어 시간에 남겨졌다.
낙서#1
2013년 9월 7일
강촌에는 가을 내음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성환과 땅꼬맹이 그리고 꽁이는 밤이 깊어가는 강촌에서
호롱불만큼 보이는 길을 따라
이제는 철길이 사라진 강촌역까지 걸었다.
그들은 더 이상 비둘기호 열차가 이 역에 정차하지 않는 것에 아쉬워하며
그리고 이 순간을 그리워하며
‘PM 11:43’ 하얀 도화지에 시간을 그렸다.
낙서#2
신촌의 허름한 주점이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
술잔에 담긴 말들은 주점의 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야기가 됐다.
‘우리 자주자주 모이자고, 애들아 사랑해.’
얼마 후 짧은 도심 속 여행이 끝난 빈자리와 아쉬움의 시간은 짧은 글귀로 아로새겨졌다.
그들에게 어느 날 오후의 공간은 너무나도 소중했다.
낙서#3
2013년 7월 19일
또경이랑 또민이는 청량리역 플랫폼에서 정동진행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그 여름 둘만의 1박 2일 여행.
여행을 마칠 무렵 손끝에서 ‘빙빙’ 바닷바람이 맴돌았다.
연인은 아쉬움을 바람에 던져 ‘정동진’을 ‘우리 공간’으로 기록했다.
정동진 시비의 한 뼘 남짓한 공간에서 그들의 여정이 다시 살아났다.
연인이 한잔 술에 속삭였을 사랑이 동해의 파도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Where the sidewalk ends.
이야기가 끝나는 공간에서 그렇게 낙서가 시작됐다.
기억의 부재…더 이상 희로애락을 추억하지 않는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과거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비밀의 메시지를 담은 낙서는 그날, 그 시간, 그곳에 있던 그들을 기억하게 했다.
낙서는 젊음의, 추억의, 인생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