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 하슬라아트월드

기사입력 2017-05-08 09:47 기사수정 2017-05-08 09:47

짙푸른 동해 바다. 저 멀고 깊은 곳으로 눈길이 따라가면 하늘이 시작된다. 바람과 파도소리도 경계가 흐려져 귓가에는 하나의 소리로 들릴 뿐이다. 구름 아래 뻗은 손가락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주황색 빛이 몸을 감싸 내린다. 그곳에 서 있는 기분? 이게 바로 축복 아닐까.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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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바다, 하늘이 이어진 예술가의 놀이터

멀리 바다에서 시야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면 청록색 소나무 숲길과 다양한 형상을 한 조각상이 자유로이 서 있다. 한적한 해안도로 옆, 예술가의 숨길과 손길이 쉼 없이 스쳐지나가는 하슬라아트월드(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발길이 머무는 순간 관람객이 아닌 설치된 미술작품의 한 소재로서 존중받는 곳이다. ‘하슬라’는 고구려·신라시대에 사용됐던 강릉의 옛 지명으로 ‘해와 밝음’이라는 의미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여기에 ‘아트월드’를 붙여 ‘강릉에 세워진 예술가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강릉 출신 미술가 박신정·최옥영 부부의 예술가적 기질이 이 공간을 채웠다. 박신정 대표는 하슬라아트월드 홈페이지를 통해 “외국에 작품 전시를 다니면서 예술품뿐만 아니라 전시 장소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감동을 받아왔다”며 “모든 것이 조화롭게 화합하는 곳을 꿈꿨다”고 공간 건립 배경을 설명했다. 2003년 조각공원을 시작으로 2009년 뮤지엄 호텔(24개 객실), 2010년 현대미술관, 2011년 피노키오 박물관과 마리오네트 미술관을 순차 개관했다. 하슬라아트월드는 연간 약 15만 명이 찾는 강릉의 관광 명소다. 최근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와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촬영 장소로 이용됐고, MBC 드라마 <호텔킹>의 주요 무대가 됐다.

▲스테이플러를 촘촘하게 찍어서 만든 거대한 악어는 멀리서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스테이플러를 촘촘하게 찍어서 만든 거대한 악어는 멀리서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하슬라아트월드의 크고 작은 모든 공간이 예술가들의 작업 현장이자 방문객의 관람 장소다. 이곳은 뭐든 다중적인 감각과 의미가 부여돼 있다. 호텔일 수도, 전시실일 수도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이 이곳의 특징. 보는 사람에 따라 자유로이 생각하고 상상을 즐기는 곳이다. 작가들은 이곳에 상주하면서 작품 활동도 한다. 취재를 갔던 4월 초에는 마침 최옥영 대표가 전시에 필요한 작품을 손보고 있었다. 작업복 차림의 최 대표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온몸에 먼지가 잔뜩’이라고 멋쩍게 웃었다. 최 대표는 “자연 자체로도 아름다운 곳과 인연이 된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면서 “예술가라 타협도 잘 못하고 부족하지만 생긴 대로 오랫동안 이곳을 지킬 것”이라고 말하고는 다시 작업에 집중했다.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고래 뱃속을 걷는 피노키오처럼

하슬라아트월드는 정해진 방식은 아니지만 현대미술관, 피노키오 박물관, 마리오네트 미술관 순으로 관람한다. 현대미술관은 호텔 건물 로비에서부터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지상에서 지하로, 다시 지상으로 오르내리며 작품 감상을 하는 구조다. 동해의 파란빛과 자연광, 목조 마루, 겉치레 없는 시멘트벽을 배경으로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건물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마치 어딘가 ‘툭’ 하고 놓아둔 느낌에 시선이 간다. 감각적이고 기발함이 돋보이는 회화와 조각 작품 200여 점도 전시되고 있다.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손자·손녀의 감성자극 미술 공간이 현대미술관 다음에 이어지는 피노키오 박물관이다. 특히 박물관으로 향하는 통로가 매우 인상적이다. 피노키오가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형상화한 공간으로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다. 큰 원형 통로 내부를 플라스틱 비닐로 촘촘하게 감싸놓았고, 형형색색 움직이는 조명을 설치했다. 마치 고래 뱃속을 여행하는 피노키오가 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사각거리는 비닐 소리와 사람의 말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조명이 마블링되듯 섞여 완벽한 예술작품으로 거듭나는 곳이다.

피노키오 박물관에는 피노키오 관련 작품 500여 점이 있다. 3개월에 한 번씩 작품과 전시 성격을 바꾸고 있다고. 이곳에는 꽃으로 만들어진 피노키오와 유럽에서 들여온 각양각색의 피노키오를 만날 수 있다. 디즈니 만화영화 피노키오 관람은 덤이다.

마리오네트 미술관에서는 센서로 움직이는 하슬라아트월드의 특허품 ‘마리봇’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이 가까이 오면 팔과 다리를 흔들어 몸을 움직인다. 체코,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가지고 온 특별한 마리오네트가 관람객을 맞는다.

▲오죽헌에 있는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조형물은 최옥영 대표가 만든 작품이다. 오죽헌에 다녀온 관람객에게 한 번 더 이곳이 강릉이라는 것을 알리고 보이기 위해 설치해놓았다.(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오죽헌에 있는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조형물은 최옥영 대표가 만든 작품이다. 오죽헌에 다녀온 관람객에게 한 번 더 이곳이 강릉이라는 것을 알리고 보이기 위해 설치해놓았다.(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편견 없이 예술작품을 감상할 것

실내 관람을 마치면 조각공원 산책을 한다. 호텔 안 매표소 쪽으로 다시 돌아가 실내 계단을 이용해 조각공원 입구로 간다. 반드시 편한 신발을 준비하라. 빨리 다녀도 최소 30분이고 나지막한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솔향 가득한 소나무 정원을 지나 무심히 서 있는 조각들을 보며 걷다 잠시 뒤를 돌아보시라. 자연이 내려준 예술작품(?)을 벅찬 마음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동해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바다카페와 전망대, 아이들의 체험학습장과 소똥박물관 등이 있다. 자연 속 나 자신이 작품의 하나라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소중한 공간이 하슬라아트월드 안에 있다.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하슬라아트월드에서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 작품의 제목, 작가 이름 그리고 거울이다. 심지어 거울은 화장실에도 없다. 시멘트벽도 골조 외에 별다른 장치가 없다. 이 모든 것에는 편견 없이 작품을 바라보고 집중해달라는 대표의 철학이 담겨 있다. 단, 예약제로 진행되는 도슨트 시간에는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품에 관한 설명이 듣고 싶다면 도슨트 설명을 들어보시라.

▲‘산 위의 바다’라는 별명이 있는 하슬라아트월드답게 산과 바다가 그리고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산 위의 바다’라는 별명이 있는 하슬라아트월드답게 산과 바다가 그리고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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