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골프 유머 몇 가지로 시작해 본다.
- 100 깰 때 필요한 3無 무욕(無慾), 무력(無力), 무념(無念)
- 90 깰 때 무서워하지 말아야 할 3가지 벙커, 미들아이언, 마누라
- 80 깰 때 있어야 할 4가지 돈, 시간, 건강, 친구
- 70 깰 때 버려야 할 3가지 직장, 가정, 돈
- 골프 폼도 좋고 스코어도 좋으면 금상첨화
- 폼은 좋은데 스코어가 나쁘면 유명무실
- 폼은 안 좋은데 스코어가 좋으면 천만다행
- 폼도 안 좋고 스코어도 안 좋으면 설상가상
골프 사자성어
- 일취월장(一取越長) 잘 친 퍼터 샷이 길게 친 드라이버 샷보다 낫다
- 이구동성(二球同成) 세컨 샷을 잘 치면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
- 삼고초려(三高初慮) 골프 라운딩 때 세 명의 고수와 함께 치게 되면 초반부터 심려가 많다.
- 사고무친(四高無親) 드라이버, 세컨 샷, 어프로치, 퍼터 네 가지를 모두 잘 치면 사장님 손님 떨어져요~친구가 없어요~
같은 뜻의 말이라고 해도 생생하게 말할수록 설득력이 있고 기억도 오래 간다. 재미있게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의 귀에 쏙 들어온다. 재치 코드는 그래서 필요하다. 살아 있는 말은 사람의 마음 속에 쏙 들어온다. 구체적인 사례와 예증을 제시하면 더 흡인력이 있다. 다음의 예를 보자.
“나이가 들어도 여러 가지 일을 성취할 수 있다.”
똑같은 내용이지만 이렇게 말하면 그저 그렇다. 다 아는 이야기요, 들으나 마나 한 이야기다.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흘려들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런 일반론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을 구체적인 사례와 실제 인물의 경우에 연결해서 말하면 뜻이 더 살아난다.
“러시아의 소설가인 파스테르나크는 68세에 노벨문학상을 탔다.”
“프랑스의 소설가 콜레트는 그녀의 유명한 소설 ‘지지’를 71세에 썼다.”
“이탈리아의 토스카니니는 86세에 정열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다.”
“피카소는 87세에 걸작을 여러 점 그렸다.”
“두 살 때 시각과 청각을 잃은 헬렌 켈러는 88세에 사망할 때까지 글을 쓰고 강연을 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훨씬 생생하고 귓속에 쏙쏙 들어온다.
언젠가 받은 어느 회사의 카드에는 1세부터 100세에 이르기까지 나이에 따라서 한 살, 한 살 재미있게 설명해 놓았다. 1세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태어나고, 누구나 비슷하게 생긴 나이란다. 나이 3세에 정약용은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일세’라는 시를 지었단다. 그런데 보통 나이 3세는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는 나이다.
21세에 스티브 잡스는 애플 컴퓨터를 설립했고, 보통 나이 21세는 사과 같은 얼굴을 갖기 위해 변장을 시작한다. 35세에 퀴리 부인은 남편과 노벨상을 받았고, 보통 나이 35세는 이제 혼자 아니라는 사실을 엄청 느끼게 된다. 36세에 스티븐 스필버그는 ET를 만들었지만, 보통 나이 36세는 절대로 ET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44세에 원효대사는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도를 깨달았지만, 보통 나이 44세는 약수터의 약수물도 믿지 못하는 나이다. 47세에 이순신 장군은 옥포에서 승리를 거두었는데, 보통 나이 47세에는 싸울 일이 있으면 피하고 본다.
54세에 디즈니는 디즈니 왕국을 만들었지만, 보통은 꿈의 왕국을 꿈속에서나 보게 된다. 59세에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했는데, 보통 나이 59세는 성골, 진골이 아니면 아무 일도 안 된다고 생각한단다. 68세에 갈릴레이는 천동설을 뒤집어서 지동설을 주장했지만, 보통 나이 68세에는 생각을 뒤집으면 민망해진다. 91세에 샤갈은 마지막 작품을 완성했지만, 보통 나이 91세는 나이 자체가 작품이 된다. 93세에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의 기둥을 세웠다지만, 보통은 한국말도 통역이 필요해지는 나이가 된다.
나이에 관한 유머는 청중에 맞춰서 부담 없이 쓸 수 있다. “언제 나이 드셨다는 걸 느끼십니까?”하고 묻는다. 여러 사람이 이런 저런 대답을 하고, 본인이 몇 가지를 덧붙인다.
- 종로, 신촌, 명동 거리에서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몇 번씩 지나다녀도 아는 사람 한 명을 만나지 못할 때
- 크리스마스 이브의 귀가 시간이 매년 빨라질 때
- 나도 모르는 사이 택시기사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있을 때
- 오랜만에 찾은 오락실에서 계속 두리번거리며 테트리스를 찾을 때
- 후배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제 본 TV 이야기를 하던 중 “그전에는 잘 몰랐는데 ‘가요무대’도 꽤 재미있더라고”라고 자연스럽게 말할 때
- 몸에 좋다는 음식이나 약 이야기가 들리면 귀가 솔깃해질 때
- 대한민국 군인이 더 이상 아저씨가 아니라고 느껴질 때
-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나온 여자가 무척이나 어리게 느껴질 때
유머는 인상적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초면의 어색함과 거리감을 없애는 데 유머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또한 유머는 팽팽한 긴장을 풀어 주는 돌파구가 된다. 협상의 마지막 고비를 남겨두고 팽팽하게 긴장감이 돌고 있을 때, 한마디 유머를 던지는 장면은 영화에서도 많이 볼 수 있지 않은가? 긴장되고 숨 막히는 분위기,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유머로 반전시킬 수 있는 사람은 대인관계에서 실패할 수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사람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15분 정도라고 한다. 15분이 넘으면 잡념이 생기고 주의가 산만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유머 한마디는 집중력을 회복시켜 준다. 그런데 유머를 섞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유머 전에 “지금부터 농담 한마디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농담 하나 있습니다. 정말 우스운 이야기예요”라고 해서는 곤란하다. 이 말을 함으로써 뒤에 오는 농담의 김이 빠지고 만다.
유머의 매력은 놀라움에 있다. 미리 예고를 해서 김을 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미 들으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농담 하나 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듣는 사람들을 썰렁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유머를 섞더라도 이야기의 주제와 연결될 수 있는 유머가 좋다. 유머라고 해서 전혀 관계 없는 ‘무슨 무슨 시리즈’를 읊는 것은 컨텍스트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 강미은 교수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전 미국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미국 미시간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박사,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저널리즘 석사.
1980년대, 이윤택(李潤澤·64·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칼을 갈 듯 날카로운 기운으로 연극계 안을 찢고 등장했다. 부산에서 극단 ‘연희단거리패’와 함께 연극을 시작한 이윤택. 맹렬한 전투력으로 1990년대 서울 연극 중심에 깃발을 깊숙이 꽂더니 ‘이윤택’ 아니면 볼 연극이 있나 싶을 정도로 무섭게 판세를 뒤엎었다. 무대와 객석을 호랑이처럼 맨발로 뛰어다니며 연출하던 모습은 늘 뇌리에 남아 있다. 21세기를 앞두고서는 새로운 연극의 뿌리를 내려 보겠다며 이윤택은 고향 땅으로 훌쩍 떠나 버렸다. 최고로 기 센 사람이라 여겼던 그는 지금,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백발(白髮)의 방랑자로 풀밭 위를 걷고 있다.
이윤택은 60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연극 연출가로 살고 있다. 독자에게는 강부자의 (이하 오구)이나 손숙의 가 이윤택이 쓰고 연출한 작품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부산을 기반으로 1990년대 서울 연극계를 점령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만들며 얻게 된 ‘문화게릴라’라는 별명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을 듯싶다. 지역 곳곳에서 거의 매일 정신없이 무대가 올라가기 때문에 좀처럼 인터뷰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6월의 첫날, 그것도 오전 시간이 괜찮다는 말에 새벽같이 일어나 한참을 차로 달려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본거지 도요창착스튜디오(경남 김해시 생림면 도요리)로 이윤택을 만나러 갔다.
한창 서울에서 연극을 하다 작정하고 밀양연극촌(경남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으로 연희단거리패가 찾아 들어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17년 전 일이란다. 도요로 옮긴 지도 7년이 됐다. 현재 밀양에는 30여명 도요에는 40여명의 단원이 생활하고 있다고. 한적한 시골에 젊은이들이 많이 있는 것 또한 진풍경이었다.
올해로 제16회를 맞이하는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7·27~8·7) 주제는 바로 ‘연극, 지역에 뿌리를 내리다’. 실제로 지역에 연극이 제대로 뿌리를 내렸는지 궁금했다.
“여름이 되면 한국연극의 장이 밀양으로 넘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연극이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 근래에 한국 연극계 전체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첫째는 시대적인 어려움이죠. 즉, 20세기가 인문주의가 중심이었다면 21세기는 ‘엔터테인먼트의 시대’입니다. 두 번째는 서울의 대학로가 예전에는 연극인들이 모이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대단한 상업지구로 바뀌어 버렸어요. 마산, 거창. 춘천, 안동, 과천 등의 지역 연극축제가 없어졌습니다. 과천은 경마축제가 됐고요.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밀양시와 협업이 아주 잘 되고 있습니다. 올해 참가팀을 보더라도 오태석, 박정자 같은 원로들부터 박근형, 임형택. 극단으로는 백수광부, 청우, 골목길, 목화 등이 참여합니다. 대학극 수준도 상당히 높아져서 경복대학은 정약용을 주제로 한 창작 역사 뮤지컬 을, 서울예대는 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진 작업을 하며 나는 종종 프랑스의 곤충학자 파브르(1823~1915)를 떠올린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찾는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1897년에 시리즈가 세상에 나왔을 때, 이 책의 독자는 과학자에 국한되지 않았다. 수많은 독자를 확보한 이 책은 과학서의 범위를 뛰어넘어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파브르는 집요한 관찰을 통해서, 곁에 있지만 우리가 모르고 지내던 세계를 보여주었다.
나도 누구도 상상 못했을 세계를 찾아다닌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도구는 자그마한 ‘어둠상자’다. 사람들이 카메라라고 부르는 그것에 빛이 모이고 숨어 있던 아름다운 상(像)이 맺히자, 나는 그 모습들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마치 파브르가 곤충들을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던 것처럼.
어둠상자는 현대의 발명품이 아니다. 우리 짐작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어두운 벽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들어온 빛이 반대편 벽에 밖의 사물을 비춘다.”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50년
“작은 구멍으로 통한 빛은 거꾸로 벽에 비친다.” -동양의 책자, 기원전 1500년
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 Volume 4, Physics and Physical Technology, Part 1, Physics. Taipei: Caves Books Ltd. Page 82. - Needham, Joseph.
사람들이 일부러 연구하고 공부해서 어둠상자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우연처럼, 운명처럼 어느 날 갑자기 마주치게 된다. 그 운명이 나에게는 1960년 봄에 찾아왔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학교 가는 길에 문방구 앞 구멍가게 안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멍가게의 양철 덧문에 난 못 구멍을 뚫고, 한 줄기 빛이 꽂혀 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은 내 등 뒤의 회벽에 위아래가 바뀐 상을 만들어냈다. 사운드까지 또박또박 들리는 동영상 컬러였다. 다만 소리는 오른편으로 지나갔는데 영상은 그 반대였다. 방향이 엇갈렸다. 뾰족구두를 신고 또박또박 걷는 빨간 원피스는 내 기억 깊숙이 저장되었다. 단순한 저장이 아니었다. 각인이었다. 결국 삼십 년이 지나서, 그 빛이 내 삶에 새 길을 열어주었다. 마흔을 넘은 나를 카메라에게 인도해준 것이다.
서양에서 어둠상자를 ‘카메라 옵스쿠라’라고 명명했다. 어두운 방의 지붕이나 벽 등에 작은 구멍을 뚫고 그 반대쪽의 하얀 벽이나 막에 옥외의 실상을 거꾸로 담아내는 장치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그 속이 칠흑같이 어두운 방이라 해서 ‘칠실파려안(漆室坡黎眼)’이라 불렀다. 카메라를 만나기 전의 내 인생이 바로 그랬던 것 같다. 겉은 멀쩡했지만 속은 깜깜했으니까.
사진은 사실 허상이다. 현실 세계의 그림자, 또는 바늘구멍이 만들어내는 일루전(illusion), 환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로 사람을 변화시키기에 힘이 있다. 아름다운 사진에 즐거워하고, 세상의 그늘진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사진 한 장에 눈물 흘리며, 마음을 열기도 한다.
이처럼 허상을 가지고 실체인 세상과 사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사진은 예술로서의 덕목을 지녔다. 이것이 사진의 가치이자, 내가 사진을 하는 이유다. 보통 카메라는 보이는 그대로의 현실을 필름에 찍어내지만, 나의 작업은 그 이미지 뒤에 있는 다차원의 현실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빛을 통해 사람을 움직이는 길이 사진에 있다. 나는 그런 점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즉 인문학의 한 길이 사진에도 있는 것이다.
파브르가 눈에 잘 보이지 않았던 곤충의 세계를 탐험한 것처럼, 나는 사람들이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카메라 렌즈를 통해 찾아 나서게 하고 싶다. 굳이 산이나 위험한 곳, 신비로운 장소를 찾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우리 주위의 익숙함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요즘같이 카메라가 필수품이 된 시대에, 기계적으로 사진을 찍기보다 자기 주변에 있는 아름다움을 찾는 도구로 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카메라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이 열리고 또 다른 눈을 뜨기 바라는 꿈이 내게 있다.
사서오경 중 하나인 의 학기(學記)편은 배우고 익히는 일에 대한 최고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옥은 쪼고 닦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않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리를 모르게 된다”는 말이 여기에 나옵니다.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성어와도 관련된 가르침입니다.
학기의 여섯 번째 문단이 제 글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학기에 나오는 대학이 오늘날의 대학교와 같은 의미는 아닙니다. 큰 배움, 제대로 된 공부라는 뜻일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대학의 교육은 철에 따라 바른 학업이 있다. 즉 봄 가을에 예악(禮樂)을 가르치고 여름 겨울에 시서(詩書)를 가르친다. 물러가서 쉴 때에도 반드시 배움을 함께 해야 한다. 한가하게 쉴 때 악기를 연주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소리가 아름답게 될 수 없고, 여러 방면으로 넓게 배우지 않으면 시를 잘 지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갖가지 예복을 입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예절을 잘 행할 수 없는 것이니 그 예능이 흥겹지 않으면 배움이 결코 즐겁게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말이 이어집니다. “이러한 까닭에 군자는 배운 것을 마음에 간직하고[藏焉] 익히고 실천하며[修焉] 물러가 쉬면서 학예를 익히고[息焉] 놀면서 견문을 넓힌다.[游焉]” 이른바 장수식유(藏修息遊)입니다. 부분적으로 다르게 해석한 글도 있지만, 장수식유는 공부의 네 가지 양태나 방식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날의 학제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정해진 학기나 제도교육 내에서의 공부란 장과 수에 직결된 일인 것 같습니다. 주어진 교재로 공부하고 선생님이 내준 과제를 해결하는 공부이지요. 학생들은 이를 통해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고, 다음 진도와 윗 단계에 적응해 갑니다. 그러나 제도교육에서 졸업했거나 삶을 바꾸어 새로운 공부를 하는 사람들, 시니어들의 공부는 그 뒤의 두 가지, 식과 유에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학생 시절의 공부란 학위 취득이나 입학 취직 등 ‘지식의 증명’을 위한 성적 향상이 그 목표입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교육(敎育)은 가르치는 것과 심신을 기르는 것을 뭉뚱그린 말인데, 우리는 지금 가르치고 배우는 것만 중시하고 심신을 기르는 일은 뒷전으로 젖혀둔 채 돌아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과 저것을 동떨어진 별개의 것으로 보거나 하나에 충실하면 다른 하나는 버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적 지상, 서열 중심의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불행하고 힘든 일입니다.
제도교육의 틀과 둘레 안에서 ‘성적공부’를 하는 학생들과 시니어들의 공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더욱이 자기실현 욕구가 크고, 지나온 삶과 배움에 대한 반성과 개선 의지가 강한 데다 새로운 기능과 교양 습득을 희망하는 신중년세대에게는 공부의 의미가 새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역사상 어떤 세대보다 더 이 세대는 그 나이에 아직도 젊고, 그 나이에 여전히 공부를 하고 싶어 합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논어의 첫 말씀이 시니어들의 즐거움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시니어들의 공부란 예전의 자신이나 예전 세대의 시니어들과 달리 놀면서 쉬면서 하는 공부, 즉 유(遊)와 식(息)의 공부요 잘 놀고 잘 쉬기 위해서 하는 공부, ‘눈뜬 공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차이와 구별을 잘 알아야 공부에 성공할 수 있고 새로운 공부를 통해 삶의 보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니어의 공부는 기본적으로 지식을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꼭 그래야 좋은 것도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지식은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으로 얻어지지만 지혜는 하루하루 덜어내는 것에서 얻어진다고 합니다. 시니어들에게는 즐기면서 쉬면서 하는 공부, 덜어내는 걸 배우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어떤 공부든 쉬지 않고 꾸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대해(大海)를 향하는 물처럼 날마다 꾸준해야 합니다. 한(漢)나라 양웅(揚雄)이 쓴 의 학행(學行) 대목에는 “모든 냇물은 바다를 배워 바다에 이르고, 구릉은 산을 배우지만 산에 이르지 못한다.”[百川學海而至於海 丘陵學山不至於山]는 말이 있습니다. 구릉은 왜 산이 되지 못할까? 움직이고 이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니어들도 그렇게 쉬지 않고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그런데 시니어 공부의 가장 큰 특징은 남과 공유하는 공부, 배워서 남에게도 주는 공부라는 점입니다. 후배나 제자를 가르치든 동료들과의 사교와 교류에서든 시니어의 공부는 남과 함께 더불어 즐기고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이 ‘내 삶의 가락’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축제처럼 젊음이 만개한 이화의 교정에서 내가 배운 가장 커다란 진리의 하나는 배우는 것은 자유에 속하지만 가르치는 것은 무거운 의무에 속한다는 진리다.” 그분은 교육자였으니 이렇게 직설적으로 엄중하게 말했겠지만 교육자가 아닌 누구라도 선배세대는 후배를 이끌고 가르치는 데 소홀하면 안 됩니다.
남을 가르치고 뭔가 일러주는 것은 실상 자기를 가르치는 일입니다. 후기 스토아학파의 철학자 세네카는 “사람은 가르치면서 배운다”고 했습니다. 동양에서 말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입니다. 남을 가르치는 일은 자기 학업의 반을 차지한다는 ‘효학반(斅學半)’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예기에는 “배운 연후에야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연후에야 어려움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학문의 어려움을 알면 힘써 공부하게 되고 가르치다 보면 학문의 어려움을 알게 돼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후배세대에 대한 시니어들의 교육은 주입이나 설교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경험을 제시하고 보여주는 정도에 그치는 게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특히 평소 교육직에 종사해온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1919년에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역사학자 헨리 브룩스 애덤스(1838~1918)는 “퇴직한 교육자처럼 지루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자신이 지루한 게 아니라 남들에게 지루한 사람이 된다는 경고인데,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영국 속담에는 “배우기 위해서 살고 살기 위해서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받아서 시니어들은 “잘 배우기 위해서 살고, 잘 살기 위해서 배운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삶의 경험과 지식의 절대량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의미와 질적 수준, 품질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스승에게서 배우는 곳이다. 스승이 있은 뒤라야 학교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다산 정약용이 에서 한 말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스승은 우리 삶의 도처에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학교에 가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학교가 멀지 않고 학창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학교에 갑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을 감동케 한 동영상이 있습니다. 독일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에데카(Edeka)의 광고입니다. 이 광고에서 매년 혼자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던 아버지는 자신의 거짓 부고를 자식들에게 보냅니다. 충격과 슬픔 속에 모여든 자식들 앞에 펼쳐진 것은 장례식이 아니라 성탄절 만찬 테이블이었습니다. 놀라는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너희 모두를 불러 모을 수 있었겠니?”라고 말합니다.
친구가 보내준 이 동영상을 본 60대 후반의 여성은 이런 글을 썼습니다. “눌리듯 아픈 그 순간들을 그들이 어찌 알리오? 묻어두고, 그리곤 눌러 놓고 흐르는 눈물 못 흐르게 하늘을 쳐다보는 그 아픔을 알 리가 없지요. 한 겹은 그들을 향한 그리움, 한 겹은 저 아이가 저런 아이였나 하는 낯섦, 한 겹은 흥건한 서러움... 그 여러 겹 사이사이는 저 아이를 붙들어 주시고 인도해 주십사는 기도로 가득 차고, 나는 괜찮으니 저 아이만 늘 괜찮게 해주십사고 비는 마음. 저 아이의 가슴을 옥토로 만드사 그곳에 말씀의 씨 떨어뜨려 주소서. 한평생 주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모릅니다. 시경 개풍(凱風)에 “슬하에 일곱 형제가 있지만/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지 못하네”라는 말이 있습니다. 법구경에는 “열 아들을 양육하는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아버지 한 분마저 봉양하지 않는 열 아들도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알고 보니 비슷한 말이 여러 나라 속담에 나옵니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에 대해서는 동·서양이 같고, 옛과 지금이 다르지 않습니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자식은 어려서 양팔의 짐, 자라서는 마음의 짐”, 이건 영국 속담입니다. “어린 자식은 어머니의 얼을 밟고, 큰 자식은 어머니의 마음을 밟는다”, 이건 독일 속담입니다. 우리 속담에는 “무자식 상팔자”라는 게 있습니다.
아들과 딸을 일컫는 자식의 息자는 참 절묘합니다. 쉬다, 숨 쉬다, 생존하다, 번식하다, 자라다, 키우다 이런 뜻 외에 그치다, 그만두다, 중지하다, 망하다라는 뜻이 있으니 인간의 일생을 담고 있는 게 바로 이 글자입니다. 태어나서 자라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 늙어서 죽게 되는 과정이 息, 한 글자에 다 새겨져 있습니다.
인생이란 부모를 만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함께 살다가 부모와 이별하고, 그러는 동안 스스로 부모가 되어 자식들이 부모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이 세상을 떠나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모를 골라 태어날 수 없듯이 자식도 골라 낳는 게 아니지만, 나는 부모의 분신이며 자식은 나의 분신입니다. 분신이 된 인연을 보살피고 갚아야 합니다. 시경에 “아버지 없으면 누굴 믿으며 어머니 없으면 누구를 의지하랴”[無父何怙 無母何恃]라는 말이 나옵니다. 부모는 자식이 믿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부모은중경에는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메고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메고 살갗이 닳아 뼈가 드러나고 다시 골수가 보이게 되도록 수미산을 수천 번 돌더라도 부모님의 깊은 은혜에 보답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를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은 바로 자신을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이며 자식을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도 자신을 염려하고 생각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나와 다름없는 자식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 어버이는 제 자식을 가르치기 어려우니 남들과 바꿔 가르친다[易子敎之]는 게 동양의 옛 가르침이었고, 공자도 아들에게 직접 글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버이는, 특히 아버지는 어떤 방식으로든 아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다산 정약용은 둘째 아들 학유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나이는 가슴속에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듯한 기상을 품고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손으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옳다.” 폐족(廢族)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식에게 할 법한 말입니다.
제갈량의 계자서(戒子書)는 천고의 명문입니다. 제갈량은 “군자는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른다”는 말부터 합니다. 그리고 저 유명한 말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게 할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나아갈 수 없다”[非淡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고 강조합니다. 바빠서 아들을 가르칠 여유가 없었던 제갈량은 편지 한 통으로 중요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는 “나이는 시간과 함께 내달리고 뜻은 세월과 함께 사라진다”며 정진과 분발을 촉구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아들을 위한 기도서’는 용맹과 겸손 온유 소박함 유머를 주시기를 주님께 빌면서 “그리하여 주시면 그의 아비인 저는 헛된 인생을 살지 않았노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라고 끝을 맺습니다. 맥아더의 기도도 행동이나 일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자세를 알려주려는 것이었습니다.
자식은 어버이의 분신이지만 어버이의 것은 아닙니다. 대장 부리바는 적국의 여인에게 마음을 뺏겨 조국을 배반한 아들을 총으로 쏴 죽입니다. “네 생명을 내가 주었으니 내가 거둔다”고 했지만, 부모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준 것은 생명이지만 그 뒤에 줄 수 있는 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지혜를 말보다는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주는 대로 받게 됩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받은 게 적거나 없더라도 자식에게는 많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보다 나은 자식을 만드는 것이 부모의 할 일입니다.
이제 삶이 더 이상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시니어세대에게는 아쉬움과 후회가 많습니다. 지자막여부(知子莫如父), 아들을 아는 데 아버지만한 사람이 없다지만 자식에 대해 뭘 알고 있으며 그들이 자랄 때 무슨 대화와 접촉을 해왔던가를 생각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살고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저절로 좋은 영향을 주고 교육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모습 아닙니까?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아쉬움이 많은 세월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립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이제는 그런 마음을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내 자식을 기를 때의 아쉬운 마음을 내 자식이 그의 자식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극복의 대상이며 때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과 같은 대화 단절과 갈등의 시대에는 무엇보다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마음의 바탕부터 새로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아들이 이에 응해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고 아들세대의 땅으로 건너뛰어 가야 합니다. 아버지는 낡은 세대, 지는 세대라는 걸 스스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식을 옳게 가르치는 자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어느 책을 읽다가 체코의 속담에 마주쳐 한방 맞은 것처럼 잠시 멍해졌던 일이 있습니다. 그 속담은 “겨울이 우리에게 묻는 날이 있으리라. 여름에 무엇을 했느냐고”였습니다. 이렇게 속담의 추궁을 받다 보니 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속담이라기보다 하나의 잠언, 격언으로 보이는 말을 음미하면서, 한 해의 마무리와 지난여름의 일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영화가 있었지만, 지난여름에 나는 무슨 일을 했던가?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나는 모르는데, 남들이 오히려 더 아는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여름은 활동하는 계절, 뜨거운 감정 소비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어느덧 다 보내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가을도 배웅하고, 모든 것이 침잠하고 스스로 감추어 웅크리는 차가운 계절을 맞았습니다. 갈수록 가을은 짧아지고, 봄도 오는 듯 바로 돌아서서 가버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이제 여름과 겨울만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려서 배운 계몽편(啓蒙篇)은 계절의 의미를 이렇게 알려주었습니다. “봄이 되면 만물이 처음 생겨나고 여름에는 만물이 성장하고 자라나며 가을에는 만물이 성숙하고 겨울에는 만물이 감추어진다. 그런즉 만물이 생겨나서 자라나며 거두어지고 감추어지는 것이 사시의 공이 아닌 것이 없다.”[春則萬物始生 夏則萬物長養 秋則萬物成熟??冬則萬物閉藏? 然則萬物之所以生長收藏 無非四時之功也]
사계절의 일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장수장(生長收藏)입니다. 이 겨울을 맞아서 무엇을 무엇으로부터 닫고 무엇을 위해 무엇을 저장할까. T S 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장시 ‘황무지’에서 ‘여름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Summer surprised us)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겨울이 오히려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었지/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고/마른 뿌리로 작은 생명을 길러주었어’(Winter kept us warm,/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라고 합니다.
겨울은 그러니까 모든 게 죽는 계절이 아니라 되살리기 위해서 따뜻하게 묻어두고 그 생명을 잘 기르기 위해 감추는 시기입니다. 동양의 사유나 철학에서는 자연의 운행질서는 조물주의 신공(神功)이며 우리 인간은 그 질서를 거스르지 말고 잘 순응하고 조화를 지향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겨울이 지나지 않고 봄이 오랴?”라는 게 있습니다. 세상일에는 일정한 순서와 법칙이 있는 법입니다.
겨울은 달력으로 입동부터 입춘 전까지, 천문학적으로는 동지부터 춘분까지를 가리킵니다. 이 맹동(孟冬) 중동(仲冬) 계동(季冬)의 삼동세한(三冬歲寒)을 건강하고 보람 있게 보내야만 그 이듬해의 삶을 충실하게 꾸려갈 수 있습니다.
“바깥세상이 폐쇄되면 내부의 세계가 넓어진다. 겨울은 내면의 계절이다.” 일찍이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에서 한 말입니다. 그는 또 ‘떠도는 자의 우편번호’라는 글에서 “겨울은 ‘나는 것’이 아니라 ‘부딪쳐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은 절망 속에 희망을 잉태한 거대한 역설의 구근인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엇의 시를 연상시키는 문장입니다.
청마 유치환도 ‘나는 고독하지 않다’라는 글에 “온갖 생물을 시들리고, 움츠려뜨리기 마련인 것으로만 알고 있는 그 서글프고 가혹한 추동(秋冬)이라는 계절이 실상은 온갖 생물의 생명들이 다시 움트고 소생함에는 없지 못할,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나는 겨울을 ‘벗과 책의 계절’이라고 말하려 합니다. 옛 선비들은 추운 겨울이 되면 난로회(煖爐會)라는 모임을 즐겼습니다. 벗들을 불러 모아 화로에 솥뚜껑을 올려놓고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을 난로회 또는 철립위(鐵笠圍)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다산 정약용의 시에 이런 게 있습니다. “관서 땅은 시월에 눈이 한 자 넘게 쌓이면/겹겹의 휘장에 푹신한 담요 깔아 손님을 잡아두고/삿갓 모양 솥뚜껑에 노루고기를 구워/가지 꺾어 냉면에다 파란 배추김치 먹는다네.” 흥겹고 정겨운 술자리의 모습이 약여합니다.
추사 김정희의 저 유명한 세한도(歲寒圖)에는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잣나무와 소나무가 더디 시드는 걸 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는 논어의 말이 씌어 있습니다. 추사는 중국 연경에서 경세문편(經世文編)을 구해 유배지에 가져다준 제자 이상적에게 이런 말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그림에 ‘오래 서로 잊지 말자’는 장무상망(長毋相忘) 인장을 찍었습니다. 빈궁하고 어려워지면 벗과 우정의 소중함을 더 잘 알게 됩니다.
도연명의 ‘의고(擬古)’라는 시에는 의복이 언제나 남루하고, 한 달에 아홉 끼니를 먹을 만큼 가난하고, 10년을 관(冠) 하나로 지내지만 언제나 얼굴빛이 좋은 동방의 선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사람을 보려고 새벽에 강나루를 건너가니 거문고를 끌어당겨 나를 위해 연주를 합니다. 도연명의 시는 “바라건대 그대 곁에 머무르면서 지금부터 한겨울을 지냈으면”[願留就君住 從今至歲寒]으로 끝납니다. 맑은 인격의 만남이 참 아름답고 부럽습니다.
이제 책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독서를 하기 좋은 때인 삼여(三餘)는 농사일이 없는 겨울과 밤, 일을 못 하는 비 오는 날을 말합니다. 농사만을 짓고 살던 시대에 만들어진 말이지만 오늘날의 생활에 맞게 개념을 확대해 적용하면 책 읽을 시간을 많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 어느 책을 읽어야 좋은가. 독서에도 그에 맞는 시간이 있습니다. ‘시보다 아름다운 수필’을 쓴 사람으로 평가받는 중국 청(淸)초의 무명 문인 장조(張潮·1650~1703?)는 “경서(經書)를 읽는 데는 겨울이 알맞고, 역사서를 읽는 데는 여름이 알맞고, 제자백가서를 읽는 데는 가을이 알맞고, 여러 사람의 문집을 읽는 데는 봄이 알맞다”고 했습니다.
계절별로 다 이유가 있지만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와 같은 경서는 방 안에 앉아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는 겨울에 읽어야 좋다는 뜻입니다. 여름에 역사서를 읽는 것은 낮이 길기 때문인데, 지금도 여름 휴가철에 대하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 같습니다.
겉으로는 벗과 사귀고 어울리며 속으로는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읽음으로써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1년을 맞는 힘을 갈무리하고 비축하고자 합니다. 2015년 한 해도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지만, 제야와 송년처럼 가는 것과 보내는 것의 아쉬움만 생각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체코의 속담을 바꾸어 말하면 “여름이 우리에게 묻는 날이 있으리라. 겨울에 무엇을 했느냐고”라는 질문과 추궁 앞에 의연하게 마주 설 수 있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원효 이래 1300년에 걸친 한국 철학사를 강의를 하듯 현대적 언어로 쉽게 풀어낸 . 저자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역사적 인물 35명의 삶의 철학을 비롯해 성리학과 양명학, 서학과 동학 등 대립하는 철학의 주요 개념과 차이까지 설명한다. 아울러 유학, 불교, 도교, 동학, 마르크스주의 철학, 기독교 사상의 개념을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철학의 전체상을 그리고 있다.
Intervew>>
언제부터 계획하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완성하게 됐나요? 또, 두세 권으로 나누어 낼 수도 있었을 텐데, 총 800페이지가 넘는 한 권의 책에 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대학에 있지만 시민강좌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한국철학이라는 주제는 그다지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2012년에 동대문정보화도서관에서 한국철학을 주제로 40회 강의를 진행했는데, 100명 가까운 분들이 오셔서 많이 놀랐습니다. 그때 메멘토 출판사 대표가 제 강의를 모두 듣고 녹음한 내용을 풀어서 책으로 펴내자고 제안해서 그것을 토대로 집필한 겁니다. 896쪽 분량이니 조금 두꺼운 편이지만, 여러 권으로 나누는 것보다는 한 권으로 엮는 것이 단숨에 읽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서양 철학서가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가 주는 의미는 남다를 것 같습니다.
한국철학을 정리하면 한마디로 ‘통합과 포용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한국철학사를 읽으면 현대 한국인들이 마주한 온갖 어려움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지눌의 글을 읽으면 내 마음속에 있는 미움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그로 인해 미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박지원의 글을 읽으면 부자간의 사랑이나 형제간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혹 가족 간의 다툼을 경험해 본 분이 계신다면 이 책을 읽고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는 오래된 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원효와 의상, 균여와 의천, 정몽주와 정도전, 박지원과 정약용 등 우리 철학사의 라이벌로 거론되는 인물들의 사유를 비교할 수 있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화두가 되고, 사고를 할 만한 두 인물로는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꼽으라면 박지원과 정약용을 비교하면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박지원과 정약용의 경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와 삶의 태도, 정치적 입장 등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지만 두 철학자 모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생각 거리를 던져줍니다.
18장 조식의 이야기에 ‘100권의 책을 한 번씩 읽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100번씩 읽는 것이 나은 것 같다’고 나옵니다. 그동안 가장 많이 읽었던 책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떤 분야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으려면 많은 책을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전공이 아닌 경우에는 한두 권이라 하더라도 즐겨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 , 를 가장 자주 읽었습니다. 는 일상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기 때문에 늘 곁에 둡니다. 를 읽으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또, 는 철학우화집인데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재미있습니다.
양도 많고 조금은 어려울 수 있을 텐데요. 일반 독자들을 위한 독서 방법을 추천한다면?
이 책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강의하듯 풀어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양도 한국철학의 장구한 역사에 비하면 오히려 짧다고 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연대기 중심의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읽을 때 굳이 앞에서부터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펼쳐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영향을 받은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지.
저는 철학이 삶에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 같은 철학 전공자는 철학에 봉사해야겠지만, 결과물은 시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아무래도 정약용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정약용은 18년간의 유배가 말해주듯 세상에서 완전히 버림받은 지식인이었지만 한 번도 세상을 잊은 적이 없었던, 지식인의 책임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 학자이니까요.
△저자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 , , 등을 펴냄.
조선시대 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시 노인일쾌사에서 우리는 조상들 역시 구강 질환에 시달렸음을 알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게 되는 여섯 가지 즐거움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이 시에서, 그는 노인의 또 다른 즐거움은 치아가 없는 것(齒豁抑其次)이라면서, 치통이 없어 이제는 잠을 편안히 잔다(穩帖終宵睡)고 적었다.
하지만 다산(茶山)이 미처 몰랐던 것이 하나 있다. 그를 괴롭혔던 치통과 이가 빠져버리게 된 원인이 바로 그가 마지막까지 의지했던 잇몸 때문이었다는 것 말이다.
흔히 우리는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물론 은유적인 속뜻도 있겠지만, 그만큼 잇몸은 꽤 튼튼해서 치아만큼 버텨 줄 것이라는 믿음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치과의사들은 그 믿음을 헛된 믿음이라고 단언한다.
치과질환 잇몸관련이 압도적
의료현장에서 치과의사들은 특히 중년으로 접어들수록 치주질환과 관련한 치료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2013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단일상병으로는 치은염과 치주질환이 8번째로 진료비가 많았으며, 치과 질환 중에서는 유일하게 발표한 순위 20위 안에 포함됐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잇몸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잇몸을 구성하는 두 가지 조직 중 어느 곳에 발병하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잇몸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이 잇몸에 염증을 일으키게 되면 ‘치은염’이라 부르는데, 치은염은 제때 치료만 이뤄진다면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치주염은 상황이 다르다. 잇몸의 염증이 잇몸뼈까지 전이된 상태를 치주염이라 부르는데, 치주염으로 잇몸뼈를 잃게 되면 회복은 쉽지 않다.
특히 이로 인해 잇몸뼈의 높이가 낮아지게 되면 치아가 벌어지고, 음식물이 끼면서, 다시 염증의 원인이 되고 결국 악순환을 반복시킨다. 또 노안(老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여기서 더 주의해야 할 것은 치근우식. 치근우식은 말 그대로 치아의 뿌리가 썩는 것을 이야기 한다. 잇몸으로 보호되고 있던 뿌리 부분이 점차 노출되면서 충치균에 감염되면 발생한다.
치근우식이 무서운 것은 진행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것. 일반적으로 치아를 보호하고 있는 법랑질은 성인이 되면 잘 썩지 않고, 설사 충치가 생긴다 하더라도 그 진행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다. 하지만 치아 뿌리 쪽에 충치가 생기면 속도가 빠르고 치명적이다.
특히 이 치아우식은 지독한 입냄새의 원인이 되므로, 새로운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중년들에겐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치주질환으로 치아 흔들리면 ‘사망선고’
치주질환에서 최악의 상황은 치아가 견디지 못하고 빠져 버리는 상황이다. 치주질환은 상태가 악화가 되어서야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치아가 흔들리는 상황이 되면 이미 살리기 어려운 상황인 경우가 많다.
구로이즈치과의원 채규창 원장은 “치은염은 염증을 긁어주는 치주소파술 정도로 치료하면 되지만, 치주염까지 진행되면 잇몸을 일부 잘라내는 등의 수술이 필요하게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치주질환을 예방하는 길은 아주 단순합니다. 원인이 되는 치태를 없앨 수 있도록 스케일링을 통해 치석을 제거하고, 치실이나 고압 구강세정기 등으로 치아관리를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영양상태 역시 잇몸건강에 영향을 주니 이 점도 신경 써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치석제거를 위한 스케일링은 국민건강보험 적용대상이므로 낮은 본인부담금(1만3000원)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잇몸약에 대해서 치과의사들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대부분의 잇몸약이 비타민과 칼슘이 주성분인 영양제에 지혈제와 부종완화제를 더한 것이어서,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것이 그리 추천할 만한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치주질환이 전신질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가 나오기도 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이효정 교수는 최근 발표를 통해 대만 의료진의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연구진이 10년간 71만 9426건의 치료 사례를 연구한 결과, 치주질환을 방치한 환자의 경우가 치료한 환자에 비해 뇌졸중 발병이 37%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발병 후에는 반드시 치료를 받기를 주문했다.
조부모가 아이들에게 주는 영향이 부모만큼 많아진 사회상을 반영해 건강과 관련한 습관에 대해서도 인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강릉원주치과대학 박덕영 교수는 “결국 건강한 잇몸은 본인 스스로가 평소에 어떤 습관을 갖고 관리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올바른 관리방법과 습관을 익히고, 손자, 손녀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교육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입니다”라고 조언했다.
고재종은 농사를 지으며 시를 써온 전남 담양 출신의 시인입니다. 그의 빼어난 작품 중에서 ‘한바탕 잘 끓인 추어탕으로’부터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길지만 전문을 인용합니다.
우리 동네 성만 씨네 산다랑치논에, 그 귀퉁이의 둠벙에, 그 옆 두엄 자리의 쇠지랑물 흘러든 둠벙에, 세상에, 원 세상에, 통통통 살 밴 누런 미꾸라지들이, 어른 손가락만 한 미꾸라지들이 득시글벅시글 거리더라니, 그걸 본 가슴팍 벌떡거린 몇몇이, 요것이 뭣이당가, 요것이 뭣이당가, 농약물 안 흘러든 자리라서 그런가 벼, 너도 나도 술렁대며 첨벙첨벙 뛰어들어, 반나절 요량을 건지니, 양동이 양동이로 두 양동이였겄다!
그 소식을 듣곤, 동네 아낙들이 성만 씨네로 달려오는데, 누군 풋배추 고사리를 삶아 오고, 누군 시래기 토란대를 가져오고, 누군 들깨즙을 내오고 태양초물을 갈아 오고, 육쪽마늘을 찧어 오고 다홍고추를 썰어 오고, 산초가루에 참기름에 사골에, 넣을 것은 다 넣게 가져와선, 세상에, 원 세상에, 한 가마솥 가득 붓곤 칙칙폭폭 칙칙폭폭, 미꾸라지 뼈 형체도 없이 호와지게 끓여 내니
그 벌건, 그 걸쭉한, 그 땀벅벅 나는, 그 입에 쩍쩍 붙는 추어탕으로 상치(尙齒)마당이 열렸는데, 세상에, 원 세상에, 그 허리가 평생 엎드렸던 논두렁으로 휜 샛터집 영감도, 그 무릎이 자갈밭에 삽날 부딪는 소리를 내는 대추나무집 할매도, 그 눈빛이 한번 빠지면 도리 없던 수렁 논빛을 띤 영대 씨와, 그 기침이 마르고 마른 논에 먼지같이 밭은 보성댁도 내남없이, 한 그릇 두 양품씩을 거침없이 비워 내니
봉두난발에, 젓국 냄새에, 너시에, 반편이로 삭은 사람들이, 세상에, 원 세상에, 그 어깨가 눈 비 오고 바람 치는 날을 닮아 버린 그 어깨가 풀리고, 그 핏줄이 평생 울분과 폭폭증으로 막혀 버린 그 핏줄이 풀리고, 그 온몸이 이젠 쓰러지고 떠나 버린 폐가로 흔들리는 그 온몸이 풀리는지, 모두들 얼굴이 발그작작, 거기에 소주도 몇 잔 걸치니 더더욱 발그작작해서는, 마당가의 아직 못 따 낸 홍시알들로 밝았는데,
때마침 안방 전축에선, 쿵짝 쿵짝 쿵짜자 쿵짝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눈물도 있고 이별도 있다고 하며, 한번 놀아 보장께. 기필코 놀아 보장께, 누군가 추어대곤, 박수 치고 보릿대춤 추고 노래 부르고 또 소주 마시니, 세상에, 원 세상에, 늦가을 노루 꼬루만 한 해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한바탕 잘 노니, 아 글쎄, 청천하늘의 수만 별들도 퉁방울만 한 눈물 뗄 글썽이며, 아 글쎄, 구경 한번 잘 하더라니!
절로 흥이 나고 즐거운 이 시의 세 번째 연에 상치(尙齒)마당이 나옵니다. 상치는 이를 받들어 모시는 것이니 나이든 노인들을 위해 베푼 잔치마당을 말합니다. 가을철 미꾸라지 보양식으로 한데 얼려 흥겹게 한때를 보내는 마을공동체의 존노상치(尊老尙齒) 전통이 핍진하고 약여합니다.
예로부터 “조정에서는 작위만한 것이 없고 마을에서는 나이만한 것이 없으며 세상을 돕고 백성들의 어른 노릇함에는 덕망만한 것이 없다”[朝廷莫如爵 鄕黨莫如齒 輔世長民莫如德]고 했습니다. 신라 3대 유리왕부터 16대 흘해왕 때까지 썼던 왕호 ‘이사금’은 이가 많은 사람, 즉 연장자는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聖智人]이라고 한 데서 유래된 치리(齒理)라는 말입니다. 유리왕과 탈해왕이 서로 왕위를 양보하다가 이가 더 많은 유리왕이 먼저 즉위한 다음부터 왕을 이사금으로 불렀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흥겨운 상치모임이라도 이가 없으면 저작(詛嚼)을 할 수 없습니다. 못된 사람을 일러 불치인류(不齒人類), 사람 축에 들지 못한다는 말도 하지만 이가 없으면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 없는 입으로 한없이 오물오물하며 식사를 하던 시골 할머니들 생각이 납니다. 그런 분들의 고통과 불편을 스스로 낙치(落齒)의 나이가 돼서야 알았으니 이가 나는 것도, 이가 빠지는 것도 다 인간이 철드는 일 중 하나인가 봅니다. 견마지치(犬馬之齒)란 개나 말처럼 헛나이를 먹었다고 겸손하게 하는 말인데, 지금 이 나이가 견마지치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의술이 발달해 치아를 때우고 새로 해 넣고 교정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예전엔 이가 빠지면 그저 잇몸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지난해 어금니 한 개 빠지더니/올해는 앞니 한 개가 빠졌다/어느새 6, 7개가 빠졌는데/그 기세가 줄어들지 않는구나.” 당송 팔대가 중 한 명인 한유(韓愈·768~824)의 시 ‘낙치(落齒)’ 중 일부입니다. 마지막은 이렇게 돼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네/이가 빠지는 건 수명이 다한 거라고/나는 말하네. 인생은 유한한 것/장수하든 단명하든 죽는 건 마찬가지.”
여섯 수로 이루어진 다산 정약용의 시 ‘노인일쾌사(老人一快事)’에도 치아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산은 첫 번째 시에서 “늙은이 한 가지 유쾌한 일은/민둥머리가 참으로 유독 좋아라”라고 합니다. 이어 두 번째 시에서 “늙은이 한 가지 유쾌한 일은/치아 없는 게 또한 그 다음이라”고 한 다산은 마지막에 “유쾌하도다. 의서 가운데에서/치통이란 글자는 빼버려야겠네”라고 합니다. 이가 다 빠졌으니 이제 아플 일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 빠지는 게 유쾌할 리 없지만, 이렇게 달관과 해학적인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는 건강과 노화, 두 가지를 알려주는 인체 측정장치입니다. 노(老)를 쇠퇴나 쇠약이 아니라 노숙과 노련으로 해석하려 해도 빠진 이가 새로 날 수 없고 만든 이가 온전히 내 이와 같을 리 없습니다.
한국인들은 참 악착같이 살아왔습니다. 악착도 이와 관련된 말입니다. 작은이 악(齷)과 이 마주 붙을 착(齪)이 합쳐진 악착의 본뜻은 ‘작은이가 꽉 맞물린 상태’ ‘앙다물어 이가 맞부딪히는 상태’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를 앙다물고 악물고 살아온 게 아닐까요?
그러나 이제 나이 들고 여유가 좀 생겼으면 달라져야 합니다. 재미있는 시를 많이 쓴 오탁번 시인은 ‘문학청춘’ 올해 여름호에 발표한 ‘늙은이애’에서 이렇게 말했더군요.
‘애늙은이’라는 말은 있는데/‘늙은이애’라는 말은/왜 없을까//콩팔칠팔/흘리고 까먹고/천방지방 하동하동/나는 나는/늙은이애!//‘늙은이애’라는 말을/국어사전에 등재는 하지 않고/국립국어원은/낮잠 주무시나?
이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늙은이애’처럼 살아가는 게 보기 좋을 것입니다. 각자무치(角者無齒), “뿔이 있는 건(동물) 이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가 없는 분들은 뿔이 있다고 생각하고 각자 자기 분야에서 두각(頭角)을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너무 서두르거나 다투지는 말고!
먼저, 한자를 이용한 측자(測字) 파자(破字) 수수께끼부터 풀어봅시다. ‘아라비안 나이트’를 한자로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답은 壬子(임자)입니다. 壬을 파자하면 千一이 됩니다. 子는 한밤중[夜]인데 1001일 동안 밤에 이야기하면 곧 千一夜話(천일야화), ‘아라비안 나이트’가 되지요. 톨스토이의 ‘부활’은 復活이 아니라 甦(소)라고 쓰면 더 재미있습니다. 한 글자에 갱생(更生)이 들어 있지 않습니까? 잠이 깨다, 다시 살아나다, 이런 뜻이 있는 글자입니다.
이번엔 거꾸로 물어, 四季如春(사계여춘)이 무슨 말일까요? 1년은 네 계절[四季]로 되어 있고 봄은 새싹이 푸르게[靑] 자라는 계절인데 늘 봄과 같다니 얼마나 좋을까? 사계여춘은 청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늘봄이라고 아호를 지은 분도 있던데, 그만큼 청춘은 소중하고 값진 것입니다.
청춘이라면 생각나는 게 소설가 우보(牛步) 민태원(閔泰瑗·1894~1935)의 ‘청춘예찬’입니다. 이 글은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잃고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 있던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헌사였습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우보는 청춘이 갖춰야 할 것은 끓는 피와도 같은 열정이라고 했습니다. 시인 고은은 이 글을 읽었을 때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듣고, 그 어떤 바윗덩이도 굴리며 앞으로 나아갈 것 같은 힘이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인류의 중요한 문화유산은 청춘의 열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며 청춘과 사랑 자체를 주제로 한 것들이 많습니다. 청춘에 대한 생각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청춘은 아름다워라’, 이 제목에 다 들어 있습니다. 청춘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아리고 아쉬운 것입니다. 청춘이라는 말을 들으면 joyful이라는 영어단어가 늘 생각납니다. ‘기뻐하는, 즐거움을 주는’ 이런 뜻인데 젊음의 낭만과 장난, 유희, 용서될 수 있는 실수라는 의미도 함께 갖춘 말처럼 느껴집니다.
구스타프 말러의 ‘대지의 노래’ 중 세 번째 곡은 ‘청춘에 대하여’(Von der Jugend)입니다. 말러가 ‘편안하고 명랑하게’ 부르라고 한 이 곡은 어느 한가로운 날 작은 연못 한가운데 있는 정자에서 잡담하는 젊은이들을 묘사한 시를 가볍고 산뜻한 악상으로 들려줍니다. 늘 뭔가 새로운 일이 생길 것 같고 ‘어느 갠 날 아침 갑자기’ 온몸을 바칠 만한 사랑이 올 것 같은 예감과 충동 속에 약동하는 청춘의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청춘을 잃는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잃거나 생명을 잃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단가 ‘사철가’를 봅니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 청춘이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한들 쓸 데 있나.” 이 노래는 “세월아 가지 마라. 가는 세월 어쩔거나. 늙어진 계수나무 그 끄트머리에다 대란 매달아놓고, 무법도식하는 놈과 부모 불효하는 놈과 형제화목 못하는 놈 차례로 잡아다가 저세상으로 먼저 보내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여앉아 한잔 더 묵소, 덜 묵게 하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라고 끝납니다.
청춘은 다시 오기 어려우니 즐겁게 마시며 놀아야 할 시기입니다.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리는 게 청춘이라니 그대로 있을 수 없지요. 중국에는 무슨 무슨 춘이라는 술이 많습니다. 당나라 시대에 마신 술을 꼽아보면 대춘(大春) 석동춘(石東春) 부영춘(富永春) 약하춘(若下春) 죽엽춘(竹葉春) 이화춘(梨花春) 등 많기도 합니다. 이 술을 마시면 젊어진다, 젊음이 유지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청춘을 버린다는 뜻인 포청춘(?靑春)은 역설적으로 청춘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술의 대명사입니다. 고산 윤선도는 “산골에 갇힌 뒤부터/길고 긴 한낮이 늘 지겹구나/포춘을 무슨 수로 이어갈까/근매의 옛 다짐이 부끄럽네”[自我囚山後 常嫌白日遲 抛春何計繼 勤買愧前期]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여기 나온 포춘이 곧 포청춘입니다. 勤買는 부지런히 술을 사서 마신다는 뜻으로 당송 팔대가 중 하나인 한유(韓愈)의 시 ‘감춘’(感春)에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석양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는 노래대로 다시 못 올 청춘을 술로 배웅하며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라고 해본들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내 것이었던 것, 그러나 이제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욕심을 내서는 안 됩니다. 젊음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걸 모르지는 않지만 어쨌든 청춘과의 작별은 아쉽고 슬픈 일입니다. 다산 정약용은 ‘귀양살이의 여덟 가지 흥취’[遷居八趣]라는 시에서 “실버들 천 가지 만 가지/가지마다 모두 청춘/그 가지들 봄비에 젖으면/가지가지 사람 괴롭게 하네”[楊柳千萬絲 絲絲得靑春 絲絲霑好雨 絲絲惱殺人]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은 여덟 가지 흥취 중 맨 마지막 ‘버들을 찾는 것’[隨柳]인데, 반복되는 말 絲絲(사사)에 청청한 버드나무와 자신을 비교하는 다산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윤동주의 시 ‘병원’에는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윤동주가 만난 그 의사가 그런지 몰라도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이의 병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 병을 겪었고, 어떤 형태로든 이기고 살아 오늘에 이른 사람들입니다. 젊은이들이야말로 나이든 이들의 병을 모릅니다.
나는 1973년 신문사 입사시험을 칠 때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연년세세화상사 세세연년인부동)을 ‘해마다 피는 꽃은 비슷하건만 사람은 매년 달라져 가는구나’라고 풀었습니다. 해석문제는 풀었지만 그 문제를 낸 사람의 마음은 알지 못했습니다.
청춘은 세대 간 이해와 공감의 바탕이며 원천입니다. 자신의 청춘은 물론 남의 청춘에 대해 생각해야 할 시기입니다. 아울러 지금 청춘들의 처지와 고통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청춘이 힘겹지 않은 적은 어느 시대에도 없었지만 요즘 청춘은 특히 가엾기 그지없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니,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겠습니까?
1910년 5월 29일에 태어나 2007년 5월 25일에 타계한 금아(琴兒) 피천득선생은 ‘5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라고 썼습니다. 왜 하필 스물한 살일까? 사랑의 고통 때문에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가서 모래밭에 몇 자 써놓은 뒤 죽지 않고 돌아온 나이가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금아는 ‘밝고 맑고 순결한 5월은 지금 가고 있다’고 썼지만, 나는 ‘밝고 맑고 순결한 청춘의 달 5월이 왔다’라고 글을 맺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