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여행용 가방에서 사망한 '천안아동학대사건'과 4층 높이의 베란다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창녕아동학대사건'은 국민들로부터 “부모가 자식에게 이럴 수 있느냐?”는 공분을 샀다. 최근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생후 3개월 된 아들이 운다고 유아용 손수건을 말아 입에 넣고 방치해 아기가 사망했다.
재판부는 “누구보다도 아이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할 의무가 있는 친부가 단순히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손수건을 집어넣은 채 방치한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단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 이런 행위를 했다면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아이 아버지인 20대 남성은 7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20대에 7년 형기라면 젊은 시절은 다 가고 만다.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할 수 없다.
옛날 대가족 사회에서는 아기 양육을 도와줄 할머니 할아버지나 고모 삼촌이 있었지만 요즘처럼 핵가족 사회에서는 오직 부모밖에 없다.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이 부모가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준비나 아이를 양육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다 보니 축복받고 자라야 할 아기가 귀찮은 존재, 천덕꾸러기가 된다. 아이가 사랑받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를 안은 채 성인이 되면 또 다른 불행의 싹이 된다.
자기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건 모든 부모의 공통된 마음이지만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아기를 키우는 젊은 부부들 집에 가보면 책상 위에 육아에 관한 책들이 꽤 있다. 젊은 부부들이 육아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다는 반증이다. 이렇게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육아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학교 교육을 받을 때부터 부모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하나둘 익힌다면 어떨까. 젊을 때 한 공부라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이다.
영유아기는 신체, 인지, 언어, 정서, 사회 등 발달의 모든 영역에서 급격한 성장과 발달이 이루어지는 민감한 시기다. 생애 최초의 교사인 부모의 양육 태도와 가치관은 아이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이 영향은 절대적이며 일생 동안 지속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모두 밝혀졌다. 영유아기 때 부모가 알고 있어야 할 육아 상식은 한둘이 아니라 결코 만만치 않다.
사회적으로도 아이를 학대하거나 문제를 야기한 부모를 색출해 처벌하는 것만을 능사로 해서는 아동학대가 근절되지 않는다. 결혼과 육아 문제를 결혼 전에 충분히 학습해 육아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이해하고 물심양면으로 성숙한 사람이 부모가 되어야 한다. 남학생들에게도 육아교육을 받게 한다면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무뚝뚝한 아버지가 아니라 아이와 대화할 줄 아는 자상한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교육을 통해 좋은 부모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국가에서 출산장려정책에 힘을 쏟고 있다. 여기에 건전한 부모교육이 추가되어야 한다. 지금도 지자체별로 부모교육 강좌가 있기는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간이 짧고 대상 인원도 너무 적다. 학교에서 부모교육을 정규 강좌로 편성해 실시할 때가 되었다.
공제조합에서 조합원 각자의 생각을 묻는 설문지를 보내왔다. 큰 타이틀이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었고 구체적인 질문은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었다. 이번 설문에 응답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를 알게 됐다.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먼저 학업과 자기계발에 대해 물었다. 우리 시대는 공고나 상고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사람이 많았다. 직장에 뿌리를 내리고 자리가 잡히면 부족한 공부를 위해 야간 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주경야독이라는 사자성어가 등댓불처럼 좋았다. 수업이 끝나고 자정 무렵 집으로 오면 몸은 피곤해도 희망이 있어 마음은 뜨거웠다. 대학 졸업장이 나를 당당하게 했고 각종 자격증이 몸값을 높이는 잣대가 됐다. 이를 바탕으로 사다리 오르듯 회사에서 승진도 했다.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요인에서 학업과 자기계발을 빼놓을 수 없다.
행복의 조건으로는 결혼을 물었다. 청춘이란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도전이요 과정이자 종착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젊은 시절을 다루는 소설 대부분이 짝을 찾으려는 연애 이야기다. 시인 박목월 선생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란 말 대신 “당신을 생각합니다”라고 했다고 고백했다. 고민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랑은 있을 수 없다. 결혼은 현재진행형으로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임에 틀림없다.
다음 항목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질문이었다. 여성에게는 당연하고 남성에게도 인생의 변곡점을 찍는 하이라이트다. 자식을 얻던 날은 인생에서 손꼽을 만큼 기쁜 날이었다. 아들을 안고 병원을 나서던 날 그 작은 무게에도 책임감으로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육아는 엄마의 몫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은 아버지의 지원도 적극 필요한 세상이다.
다음 질문은 자녀교육이었다. 우리 시대는 자식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스스로 기러기 생활을 하는 사람이 허다했다. 부모를 떠나 자식이 서울로 가는 게 아니라 자식을 위해 아버지가 사우디, 이란, 이라크 등 해외 건설현장으로 취업을 떠났다. 자녀 교육은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결코 외면할 수 없다.
다음 항목은 직장생활에 대한 물음이었다. 생존수단으로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도 많지만 자본주의 현대사회에는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더 많다. 안정된 직장은 편안한 가정을 만든다. 직장이 흔들리면 가정도 흔들린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소확행의 뿌리는 건강한 직장생활에 있다.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해 노후도 물었다. 젊었을 때 아무리 떵떵거리며 잘 살았어도 노후가 비참하면 실패한 삶이다. 늙음이란 사그라짐이다. 가만히 둬도 모닥불처럼 꺼져가는 게 노후다. 그래서 노후를 건강하고 여유롭게 보내기 위해 돈을 벌고 저축을 하고 건강보험에 가입한다. 노후 준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위에 든 6가지 항목 중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노후를 들겠다. 수많은 어제가 모여 오늘을 만든다. 좋든 나쁘든 기억과 실체가 모인 것이 오늘의 나다. 어제가 좋으면 오늘이 좋고 내일이 좋고 노후가 좋다. 오늘을 더 성실히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설문을 마쳤다.
올 2월, 대구신천지교회의 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 친구가 남미 쪽으로 33일간의 장기 해외여행을 떠났다. ‘집 떠난 지 15일 차 칠레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며 사진 몇 장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볼리비아 우유, 소금사막의 정경, 콜로라도 국립공원 등 아름다운 영상도 보내왔다. 여행 22일째에는 아르헨티나 남극 빙하지대로 내려간다는 소식도 들었다. 뉴스에서 하루 종일 귀가 따갑도록 전해주는 ‘코로나19’ 상황에 겁먹고 있던 날들이어서 유유자적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는 친구가 샘이 나도록 부러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미는 청정지역으로 코로나19와는 무관해 보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곳도 난리였고 친구는 부랴부랴 귀국길에 올랐다. 어렵게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해 3월 23일 한국행 비행기 표를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 인천공항에서는 철통같은 방역시스템이 작동했다. 귀국 후 4시간 걸려 도착한 아산 합숙소에서 하룻밤 자고 제천 청풍호 특급호텔에서 3박 4일을 보내고 다시 서울 한양대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불행하게도 증세 없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이 나왔다.
병원 독방에서 지내면서 친구는 국가에서 내 몸을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해 관리를 잘해줄지 몰랐단다. 병원생활이 답답했지만 고마움을 넘어 미안하기까지 하더란다. 다행히 5월 1일 음성판정을 받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퇴원하는 날 친구는 아들에게 병원으로 자동차를 갖고 오라고 해 집으로 가지 않고 가평에 있는 농장으로 들어갔다. 혹시 모를 가족 전염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나는 친구와 전화 통화는 했지만 자가격리 기간 2주가 지난 후에도 직접 만나자는 연락을 하기가 꺼림칙해서 우물쭈물 망설이고만 있었다. 코로나19 감염은 혼자 아프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직장동료나 가족, 지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 양성 판정을 받으면 동선을 샅샅이 뒤져 거쳐온 모든 장소를 폐쇄하고 소독 작업에 들어간다. 그동안 접촉한 사람도 검사하고 그 사람이 또 누구를 접촉했는지도 찾는다. 수많은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당사자는 미안함과 고통스러움에 몸서리를 치게 될 것이 뻔하다. 이런 생각을 하니 동선을 숨기려 거짓말을 하는 확진자의 심리가 다소 이해가 가기도 한다.
이런저런 연유로 만나자는 말을 선뜻 하지 못하고 있는데 7월이 되자 친구는 자신감이 생겼는지 농장에 음식을 준비해놓을 테니 놀러오라는 연락을 해왔다. 순간 마음속에서 두 가지 갈등이 일었다. 치료가 끝나고 공식적인 검사를 통해 음성 판정을 받아 퇴원을 했고 그 후 두 달이 지났으니 함께 식사를 해도 괜찮을 거라는 이성적 판단과, 음성 판정 후 다시 양성 판정을 받는 사람도 있다는데 혹시 친구가 다시 양성이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었다. 이런 마음을 속 시원하게 친구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갈까 말까 망설일 때는 가는 거라고 했다. 나는 오랜 우정과 앞으로의 우정을 위해 결정을 내렸다. 친구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의 가족들도 모두 불렀다. 농장으로 가니 바비큐와 맛난 음식들이 그득했다. 다시 태어난 듯한 친구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술잔을 돌리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워주는 서비스는 했다. 이날의 자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코로나19 확진자라는 족쇄를 완전히 풀어주는 잔치였다. 코로나19는 서로를 불신하게 한다. 더러는 친구간의 우정도 금이 가게 한다. 전염성 질병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소멸되어 서로를 불신하는 마음고생이 없었으면 한다.
며칠 전 부산에서 파주까지 국토 종주 400km 울트라 마라톤을 달리던 선수 3명이 음주 운전자의 차에 치어 사망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났다. 마라톤 100회를 완주하고 울트라 마라톤까지 달려본 나는 안타까움이 더하다. 울트라 마라톤이란 마라톤 정식코스인 42.195km를 넘어서 달리는 모든 마라톤을 말한다. 100km가 일반적이고 짧게는 60km 길게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600km도 있다. 이밖에 사하라 사막을 달리는 마라톤도 있지만 앞으로는 빙하지대나 열대우림을 내달리는 울트라 마라톤도 생길지 모른다. 한계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더 먼 거리, 더 악조건 속의 마라톤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인간에게는 나쁜지 알면서도 하고 싶어 하는 중독성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약이고 도박이다. 스포츠도 중독성이 있다. 내가 겪어본 마라톤도 그렇다. 긴 시간을 달리면서 느끼는 고통이 클수록 완주 뒤에 해냈다는 성취감은 더하다. 달릴 때는 고통스러워 왜 이런 운동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자신을 질책하다가도 완주하고 나면 고통을 싹 잊어버린다. 산모가 출산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또 임신하는 것처럼 끝까지 달리고 나면 힘든 것들은 잊은 채 다음 대회를 또 검색한다.
일반 마라톤이 누가 빨리 결승점에 들어오는가를 가리는 속도 경주라면 울트라 마라톤은 긴 거리를 제한시간 내에 완주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스포츠다. 그래서 자기만의 성취감에 도취한다. 하지만 여간 힘든 게 아니어서 참가 선수가 적다. 사고가 난 이번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70명이었다고 한다. 메이저급 마라톤 대회 인원이 1만 명을 넘는 것에 비하면 아주 보잘것없는 숫자다. 출발점에서는 동시에 출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선수들의 실력에 따라 간격이 벌어진다. 그 거리는 수십 ㎞에 달할 수도 있어 혼자서 달리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고 당시 피해자들 주변에 안전관리 요원이나 차량도 없었다고 하지만 주최 측에서는 선수가 어느 구간을 달리는지 파악이 어려워 주로에 안전요원과 안전차량을 배치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게 하려면 비용이 상당할 것이다. 문제는 울트라 마라톤은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데 있다. 선수들 참가비와 주최 측 호주머니 돈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할 수 없이 각자가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밤거리에는 헤드라이트를 쓰고, 교통사고 방지를 위해 눈에 쉽게 보이는 표식 등을 몸에 부착하고 달리지만 밝기가 약해 과속 운전자의 시야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인도가 없는 곳도 많아 어쩔 수 없이 차로의 갓길을 달리지만 심야에 트럭이 달리며 지나갈 때면 찬바람이 스치며 깜짝깜짝 놀란다. 운전자들도 갑자기 나타난 선수들 때문에 당황하곤 한다.
음주운전이 큰 문제였지만 갓길이라 해도 자동차도로를 달리는 것은 위험하다. 이번사고로 안전 조치를 주최 측에 더 요구하면 울트라 마라톤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만족시켜주면서 근본적으로 사고를 없애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낙동강 자전거길(389km), 남한강 자전거길(136km) 등 여러 곳에 설치돼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를 이용하는 것도 대안이다. 평소는 자전거길로 사용하고 특정한 날에만 울트라 마라톤 구간으로 변경해 경기를 치르도록 하면 된다. 위험하니 무조건 하지 말라는 금지령보다는 위험 요인을 없애고 허용하는 긍정적 사고가 필요해 보인다.
헌혈 100회째. 드디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오랜 기간 헌혈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을 주신 부모님께 우선 감사드렸다. 코로나19로 헌혈자가 급감한 시기에 이룬 쾌거라 더욱 기쁘다. 대한적십자사가 헌혈자들에게 명예의 전당이라는 제도를 마련한 것은 수혈을 필요로 하는 환자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 헌혈이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어도 사람의 피를 인공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오직 인간의 몸만이 인간의 피를 만들 수 있다. 게다가 혈액은 살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장기간 보관이 불가능(농축 적혈구 35일, 혈소판 5일)하다. 그래서 적정 혈액 보유량 5일분을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 이런 사정으로 헌혈자가 연간 300만 명이나 필요하다고 한다.
헌혈할 마음이 있다고 헌혈이 다 가능한 것은 아니다. 건강한 몸이 뒷받침돼줘야 한다. 헌혈 가능 연령은 65세까지다. 체중이나 혈압이 적절하고 헤모글로빈 수치도 기준치에 들어야 한다. 문진을 통해 외국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나 약물을 복용한 사람은 일정 기간 헌혈할 수 없다. 임산부도 태아의 건강을 위해 임신 중에는 헌혈할 수 없다. 헌혈을 한 뒤에도 혈액원에서 다시 피를 세밀히 분석 검사한다.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 감염 등 건강하지 못한 혈액은 폐기처분된다.
질병에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피를 수혈하기 위해 헌혈자에 대한 기본 검사가 있다. ‘B형 간염’, ‘C형 간염’, ‘매독’, ‘말라리아’ 항체 검사와 함께 ‘T형 림프구’수치를 조사하고 ‘비예기항체’와 ‘ABO혈액형아형 여부도 체크한다. 추가로 ‘요소질소’, ‘총콜레스테롤’, ‘AST알부민’ 검사도 한다. 이런 까다로운 기준을 다 통과해야 건전한 혈액 자격을 얻어 다른 사람에게 수혈이 된다. 헌혈을 할 수 있다는 말은 다른 말로 건강하다는 의미다. 혈액을 분석하면 그 사람의 건강상태를 알 수 있다. 헌혈도 하고 건강도 체크하고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다.
‘명예의 전당’ 제도가 여기저기 다양하게 많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10만 시간을 무사고로 운전한 택시기사, 10만 켤레의 구두를 닦은 구두닦이, 30년을 동네 이장으로 활동한 사람들에게도 명예의 전당에 오를 자격을 주면 어떨까.. 오랜 시간 한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은 모두 박수받아 마땅하다.
대한민국이 코로나19 대처의 모범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거리에 나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보기 어렵고 수시로 손을 씻는 국민 위생도 놀라보게 달라졌다. 공공기관에서 시행하는 단체 행사는 줄줄이 취소되었고 개인들의 친목 행사도 취소를 권유받고 있다. 행사뿐만 아니라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으로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아예 문을 닫은 곳이 많다. 박물관이 그렇고 체육시설이 그렇다. 관리 주체가 공공기관인 경우는 문을 닫고 사설 단체는 눈치를 보면서 열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고 이용객 실태는 파악하지 않고 무조건 문부터 걸어 잠그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특히 건강한 사람이 찾는 야외 체육시설 문까지 닫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사설 체육시설은 영업권 보장 측면에서 개방을 용인하면서 말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여권도 없이 전 세계를 누비며 사설기관이든 공공기관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그런데 관리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어떤 곳은 문을 열고 어떤 곳은 문을 닫는 불공평함을 여러 곳에서 목격한다. 내가 다녀온 어느 결혼식장에서는 축하객 모두 발열 체크를 하고 연락처를 기입하게 했다. 거짓 연락처를 작성해도 어쩔 수 없지만 스스로 연락처를 기재하게 하는 행위는 몸에 이상을 느끼는 사람은 양심상 출입을 포기하라는 메시지가 강하다. 그러나 또 다른 예식장에서는 축하객 발열 체크도 없었고 누구나 출입이 가능했다. 법적 의무사항이냐 자발적 권고사항이냐에 따른 차이로 보이지만 하객의 목숨은 어느 장소에서든 존중되어야 한다.
공공 체육시설을 오픈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있어 문을 열었다가 코로나19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다시 종합운동장의 공공 체육시설까지 문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사설 체육시설은 영업권 보장이라는 이유로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설 테니스장은 열고 공설 테니스장은 문을 닫았다. 공공시설물 관리 책임자는 이용객 불편은 자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며 일단 문을 걸어 잠근다. 수익이 중요한 사설시설물 책임자는 소독 후 문을 연다. 이렇게 오픈하고 손님을 받아도 코로나19 확진자는 없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공공시설물과 사설시설물을 구분하지 않는다. 야외 체육시설물도 소독과 출입자 관리만 잘하면 문제없다고 본다. 건강한 사람의 야외 체육시설 이용까지 무조건 막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행정편의 위주의 천편일률적인 규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등산로 입구에 걸려 있는 “마스크를 하고 등산하십시오”라는 현수막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마스크를 하면 숨이 가빠 등산이 불가능하다. 그것도 요즘 같은 무더위에 가당키나 한 말인가. 옆 사람과 손잡고 등산하는 사람은 없다. 자연스럽게 2~3m는 떨어진다. 대부분의 등산객은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올라간다. 그래도 등산로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는 보고는 없다.
책임회피성 규제 문구만 내려 보낼 것이 아니리 보건 전문가들이 야외운동장, 체육시설, 등산로, 결혼식장, 장례식장 등을 직접 찾아가 방문객의 행동반경을 철저히 살펴본 후 장소에 적합한 지침을 마련했으면 한다.
오랜 방콕생활에 피로도도 올라가고 슬슬 짜증도 난다. 아픈 사람은 병원으로 가고 건강한 사람은 운동장으로 달려가도록 해줘야 한다. 병원에 가야 할 사람이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 되듯 건강한 사람은 에너지를 발산하도록 해줘야 면역력도 증강되고 삶의 활기도 찾을 수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무조건 출입부터 막는 조치를 너무 쉽게 결정하는 것 같다.
오늘 헌혈은 나로서는 의미가 깊다. 헌혈을 100회 하면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데 오늘이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바로 앞 관문인 99회째다.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홈페이지에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사람을 조회해보니 오늘 기준 5136명이고 60대 이상 그룹에서는 253명이 검색되었다. 나는 적십자사 총재로부터 30회 헌혈은장을 받을 때도 50회 헌혈금장을 받을 때도 명예의 전당에 오를 자신은 없었다. 69세까지만 헌혈이 가능한데 그때까지 100회를 채울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영문도 모르는 빈혈이 있다고 헌혈하러 가서 퇴짜를 당하는 경우도 자주 있어서 용기를 꺾었다.
한번은 직장 부하직원과 함께 헌혈을 하러 갔는데 전혈비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모처럼 함께 와준 직원 앞에서 체면을 구긴 것 같아 창피했다. 변명 삼아 “내가 철분이 부족하다 하니 우리 시장에 가서 순대나 사 먹자” 하고 직원을 꼬드겨 재래시장으로 갔다. 철분이 많을 것 같은 순대와 소, 간 등을 주문해 배부르게 먹었다. ‘이 정도면 이제 철분이 충분해졌겠지’ 하고 내심 만족해했다. 그런데 함께 갔던 직원이 사무실에 와서 “우리 과장님은 아직 철이 덜 들었답니다” 하고 떠들어 영문을 모르는 다른 직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직원들이 한발 늦게 웃음을 팡 터뜨렸다. 단체로 헌혈을 하러 가 보면 부적격자로 판정받는 사람이 많다. 헌혈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건강상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헌혈은 피를 뽑아 남에게 주는 행위다. 타인의 혈액을 받는 사람은 사고나 수술로 인해 피를 공급받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다급한 상황에 있는 이들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피는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다. 동물의 피를 대신 수혈할 수도 없다. 헌혈은 오직 사람이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사랑의 행위다. 숭고한 희생정신을 높이 사서 세계 모든 나라들이 매혈은 금지하고 있다.
헌혈자는 깨끗하고 건강한 피를 나눠줘야 한다. 나는 언제나 기도하는 심정으로 헌혈을 해왔다. 헌혈 예정 1주일 전부터는 술을 멀리하고 가벼운 운동으로(심한 운동은 안 좋다)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렇게 관리를 해도 언제나 헌혈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혈액 속 헤모글로빈이 부족해 전혈비중 체크에서 안타깝게 탈락한 적이 많았다. 최근에서야 내 몸의 비밀을 알게 됐다. 내가 고기를 잘 먹지 않아 피를 만드는 원료인 철분이 부족하고 마라톤이나 테니스 등 무리한 운동도 그 원인이 됐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 뒤 고기를 먹으면서 빈혈은 사라졌다.
헌혈 과정도 간단하지 않다. 헌혈하기 전 문진표를 작성하면서 건강체크를 해야 한다. 다음으로 간호사가 혈압과 빈혈 테스트를 하고 해외여행 경험, 먹고 있는 약, 최근 다녀온 병원 등을 물어보고 헌혈하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이 되면 바코드가 있는 팔목밴드를 손목에 감아준다. 순서를 기다리다 호명이 되면 물 한 컵 마시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 헌혈 베드에 오른다. 매회 경험하는 감정이지만 헌혈 주삿바늘이 팔에 꼽힐 때까진 좀 두렵다. 간호사의 실수로 주삿바늘이 혈관을 관통해 근육을 찌른 경우도 있고 잘못 꼽아서 다시 한 적도 있다.
헌혈이 끝나면 모두 전산화되기 때문에 헌혈 후 유의사항이 문자로 온다. 내 혈액이 지금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도 조회하면 알 수 있다. 채취된 혈액은 혈액원에 전달되어 다시 정밀검사를 거쳐 안전하다고 판정이 되면 수혈에 사용된다. 검사 결과도 검색하면 알 수 있다. 혈액은 장기간 보관이 불가능해(농축 적혈구 35일, 혈소판 5일) 적정 보유량인 5일분이 항시 있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헌혈자가 눈에 뛰게 줄었다고 한다. 비축 혈액량이 3~4일분에 불과하다는 혈액원 안내판을 볼 때면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불안하고 안타깝다. 외국에서 혈액을 수입하지 않으려면 연간 약 300만 명의 헌혈자가 필요하다. 여기에 동참하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곧 명예의 전당에 오를 걸 생각하면 흐뭇하다.
한국은행이 지난 26일 발표한 ‘2020년 5월 소비자동향조사’에 의하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4월보다 6.8포인트 오른 77.6으로 집계됐다.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현재생활형편(79)·생활형편전망(85)·가계수입전망(87)·소비지출전망(91)·현재경기판단(36)·향후경기전망(67) 등 6개 지수를 이용해 산출한 지표로 100보다 낮으면 장기평균(2003∼2019년)과 비교해 소비심리가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이번에 조사된 소비자심리지수(77.6)는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0월(77.9)과 비슷한 수치다. 다만 4월보다는 7포인트 가까이 올라갔다. 소상공인 카드결제 정보관리기업인 한국신용데이터의 5월 둘째 주 조사에서는, 소상공인 매출액이 전년도 5월 매출액과 비슷하게 나타났다. 언론은 정부의 재난지원금이 마중물 효과를 톡톡히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반응했다.
실제 재래시장 경기를 피부로 체감하고 싶어서 강동구 암사시장을 5월 27일 저녁 7시경 찾아갔다. 입구에서부터 긴급재난기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확실히 재난기금이 시장에 온기와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암사시장은 8호선 암사역 인근에 위치해 있어 손님들이 늘 북적이는 곳이다. 자주 암사시장을 방문하기 때문에 평소 시장을 찾는 손님들의 숫자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정부의 재난기금 덕분인지는 몰라도 지난달보다는 확실히 손님들이 늘어난 듯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만큼은 아직 아닌 것 같다. 기자의 눈으로 볼 때는 재래시장을 찾는 손님의 숫자가 코로나19사태 이전보다 20% 정도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장에는 꼭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가벼운 군것질을 하러, 또는 놀이 삼아 구경하러 오는 사람도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그런 손님들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매출액은 전년도 수준으로 회복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시장 입구에는 손님들이 언제든 손 소독을 할 수 있도록 상인회에서 비치해놓은 손 소독제가 보였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간이라는 특성상 시장 관계자들이 코로나19 방역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주변도 이전보다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장 안에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뒹굴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조명도 밝게 밝히고 상인들도 더 활기차게 움직였다. 손님이 늘어나자 저절로 활기가 생기는 모양이다. 정부의 재난지원금을 이용해 평소에 먹기 어렵던 고기를 많이 산다는 얘기가 있는데 통계에 따르면, 고기보다는 쌀을 사는 데 더 많이 썼다고 한다. 시장 안 정육점 여러 곳을 눈여겨봤는데 손님이 특별히 많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서민들의 의식도 많이 바뀌었다. 허례허식이 줄고 가성비를 많이 따진다. 천호동의 유명 순댓국집은 포장 순댓국 할인을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고기와 국물과 양념파만 주고 대폭 활인 된 가격 4900원을 받는다. 손님이 깍두기와 다진 양념을 요구하면 6000원을 받는다. 기본적인 것만 제공하고 가격을 낮춘 판매 전략이 눈에 띈다. 어떤 음식점은 밥이 부족한 손님을 위해 반 공기에 500원을 받는다. 밥을 더 주문하면 한 공기에 무조건 1000원을 받는 등식도 깨지고 있다.
시장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손님들은 필요한 물건만 사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코로나19 사태가 우리의 일상을 알게 모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재래시장도 이제 가성비를 생각하는 손님들의 트렌드에 맞춰 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1950년대에는 땔감으로 나무를 사용했다. 그 뒤 석탄이 나오면서 황폐해진 산이 푸르름을 겨우 찾아갔지만, 연탄가스 중독사거니 신문 지상에 오르내렸다. 연료는 기름으로 바뀌고 이제는 가스연료가 대세다. 불과 60년 만에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다. 변화되는 사회를 혼자 거역해서는 살 수가 없다. 선두주자는 못되더라도 후미에서라도 따라가야 한다.
코로나19가 세상의 큰 변혁을 요구한다. 언택트 (Untact: 비접촉, 비대면 즉 사람과 직접 연결되거나 접촉하지 않는다는 뜻)시대가 도래하는 것을 이제 필연으로 여겨야 한다. 생활 속 거리 두기 포스타가 시내 곳곳에서 나부낀다. 마스크를 꼭 쓰도록 하고 사람 사이의 직접 대화는 줄어든다. 친밀도를 더하는 ‘허깅’ 같은 신체접촉은 인제 그만이고 생활 속 거리두기라 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를 2m 이상 떨어지라고 한다. 전차를 타는 승강장에서도 계단에서도 식당에서도 서로 떨어져 앉아야 한다. 코로나19의 위력을 아는 처지에 누구도 못하겠다고 저항을 못한다. 마치 서로를 전염병 환자 보듯 경계를 한다. 외출하고 오면 병균이 손에 덕지덕지 묻은 것 마냥 비누로 박박 손을 씻어야 겨우 안심한다. 앞으로 코로나19에 대한 예방, 치료 약이 나온다 해도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을 겁내 이런 행동은 비슷하게 유지될 것이다.
어느 동물학자가 말하길 인류가 다른 동물들보다 진화되고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로 사람만이 모여서 웃고 떠들고 서열을 지키는 공동체생활을 했기 때문이란다. 동물 중에서 지능지수가 높다는 개들이 서로 사이좋게 놀고 있는 장소에 먹이인 뼈다귀를 던져주면 죽자 살자 서로 먼저 먹겠다고 덤벼든다. 사람만이 사회적 동물로서 체면도 알고 물러서는 양보도 안다. 이제 몸으로 모이는 공동체 생활이 어려우면 마음으로 모이는 공동체 생활로 변화해야 인류의 미래가 있다. SNS 활용이 언택트 시대의 답이다.
SNS로 소통은 습관화되면 편하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고 머리를 빗지 않고도 가상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하루 열 번이라도 만나고 서울서 부산사람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만날 수도 있다. 변화된 새로운 소통방법이다. 꽃 그림도 보내고 세계의 멋진 풍광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 입으로 전하기 어려운 말도 글로서는 전할 용기가 난다. 감동적인 말보다 가슴 떨리는 글이 더 많다.
선한 말이 오가야 한다. 악플은 말보다 더한 흉기가 된다. 또 하나 남들에게 전해 받은 멋진 글과 그림을 그대로 전해주는 게으름은 피해야 한다.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는 속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SNS의 전파속도는 빠르다. 어느 날은 여기저기서 같은 글 그림이 오는 경우가 있다. 물론 보내준 내용이 좋아서 보내는 사람은 처음 받아 볼 것이라고 보내주지만 세상은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하다. 몇 군데서 이미 받아 복사판을 받는 사람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좋은 글 그림의 의미는 살리면서 창작해서 지인들에게 보내면 좋겠다. 글은 말보다 무게감이 있고 흔적이 있다. 코로나19의 돌발적 사태를 문명의 이기인 SNS를 활용하여 새로운 문화지성 시대를 열어보자.
‘네 신랑 아직도 직장 다니느냐? 요즘 젊은 애들도 취직 못 해 난리인데 정말 너 남편 대단하다.’
아내가 친구에게서 들었다는 그 말을 전해 들으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예순을 넘어 정년퇴직하고 새로운 직장을 잡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첫째의 걸림돌이 건강이다. 공장이나 아파트를 짓는 건설현장에서 인력 부족이라 하면서도 나이 든 사람을 꺼린다. 기술력 때문에 꼭 필요한 사람도 병원 의사가 발행한 ‘일을 시켜도 좋다’는 건강진단서를 요구한다.
건강이라고 하면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탤론’처럼 근육질의 몸매를 떠올리지만 노동력이 있어야 하는 건설 현장마저도 힘든 일을 하려는 근육질의 몸은 필요 없다. 땅을 파는 삽질은 '포클레인(Poclain)‘이라는, 기계가 한다. 철근 같은 무거운 물건을 높은 곳에 올리려면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니라 타워 크레인( tower crane)이 머리 위를 빙빙 돌면서 금방 해치운다. 힘든 일은 대부분 기계가 해치우니 경험 많고 노련한 나이 든 사람이 환영받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시니어의 약점은 파워가 아니라 사실 민첩성이다. 건설현장에서도 힘이 부족한 게 아니라 순발력에서 젊은이에게 밀린다. 잘 넘어지고 순간적인 판단력이 둔하고 위험에 대처하는 안전에 문제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안전이다. 공사현장에는 크고 작은 위험이 새벽 안개처럼 스멀스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좁은 철근 위를 걸어야 한다. 발에 걸리는 장애물도 많고 갑자기 옆에서 돌발흉기도 튀어나온다. 귀가 어둡지 않아야 작은 위험한 소리(예: 가스가 새는 소리, 불타는 소리 기계의 파열음 등)를 듣는다. 순간 집중시력이 좋아야 넘어질 것 같은 물체를 볼 수 있고 튀어나온 못이나 삐딱한 받침대 등 위험인자를 발견하여 몸을 틀어 피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지혜는 늘지만 오감은 떨어진다. 한마디로 몸이 둔해진다. 필자가 오래 했고 즐기는 테니스라는 운동도 구력(球歷)이라는 연륜이 있다. 상대의 약점을 빨리 간파하고 효과적인 공격에 구력이 작용하지만 상대의 빠른 공에는 발걸음이 느려 속수무책이거나 설령 공을 쫓아갔다 하더라도 마지막에 몸을 돌려 공을 받아칠 균형 감각이 떨어져 실수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젊은 사람들보다 민첩성이나 순발력이 늦음은 고백한다. 속도감이 있는 운동경기에서 승부에 지는 가장 큰 이유는 힘이 아니라 순발력과 민첩성에 있다.
나이 들어도 현역으로 오래 근무하기 위해서는 헬스장에서 파워를 기르는 것 못지않게 청력과 시력 등 오감을 제대로 유지하기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눈감고 한쪽 발로 오래 서기. 호각소리에 빨리 반응해서 몸 틀어보기, 작은 소리를 들으려 청력 집중해보기, 눈동자 굴리고 일정 지점에 시선집중하기, 입 안에 있는 음식 맛을 느끼고 맞춰보기를 해보면 작음 몸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모 방송사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보폭 넓혀 걷기’가 방영되었다. 나이가 들면 걷기가 어려워지면서 자연히 균형을 잡기 위해 보폭은 좁아진다. 평소의 보폭보다 10cm 넓히는 걸음을 걸으면 근육이 활성화되고 균형 감각도 좋아진다. 평소 균형감각과 민첩성을 위해 자기만의 운동법을 개발해서 그런 운동을 해보자. 보폭을 넓히고 빨리 걷는 습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