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그때도 “오빠 믿제, 한잔해?”라는 말이 있었다는 뜻이다. 2천여 년 전, 고구려 건국 전이다.
주인공은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하백(河伯)의 딸 유화 부인이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의 기록을 따라간다. 하백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 유화, 훤화, 위화다. 이들이 강가에서 놀다가 해모수를 만난다. 청춘 남녀가 만났다. 게다가 ‘천제의 아들’과 ‘강물의 신’의 세 딸이다. 잘나가는 집안의 ‘엄친아’다. 스토리가 뻔하다. “유화가 술에 취해 해모수와 통정을 했다”는 거다. 예나 지금이나 ‘술이 웬수’다. 아마 해모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오빠 믿제?’
믿을 만했다. 유화 부인은 큰 ‘알’을 낳았고 그 알에서 고구려 시조 주몽(朱蒙)이 태어났다. 주몽은 고구려를 세웠고, 주몽의 아들들이 백제를 세웠다. 무척 ‘생산적인 오빠 믿제?’였던 셈이다.
해모수가 유화 부인을 꼬드길 때 사용한 ‘작업주’는 발효주(醱酵酒)다. 발효주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긴다. 과일이나 곡물을 자연 상태에 두면 주변의 효모 등과 작용하여 술이 된다. 막걸리, 맥주, 각종 과일주, 곡물주가 모두 발효주다.
막걸리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발효주다. 누룩을 미지근한 물에 푼다. 쪄서 식힌 고두밥과 누룩 푼 물을 섞어서 술독에 넣는다. 이게 전부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술이 괸다. 거품이 보글보글 나온다. 효모의 작용이다.
이 간단한 과정을 제대로 하는 양조장이 드물다. 장난을 친다. 누룩 대신 얄궂은 일본식 개량 누룩도 사용하고, 정제한 ‘고우지[麴, 국]’도 쓴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양한 술맛이 아니라 일정한 단맛이 난다.
막걸리로 한정하자면, 전북 정읍 태인의 ‘태인양조장’에서 빚는 ‘송명섭막걸리’ 정도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술을 내놓는다. 자기 손으로 재배한 밀로 빚은 누룩과 자가 재배 쌀로 막걸리를 빚는다. 제대로 만든 술은 약이다. 한두 잔 가볍게 마시면 약이 된다.
막걸리는 우리 고유의 술이다?
참 섭섭하게도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나라에는 자기들의 발효주가 있다. 곡물, 과일의 종류가 다르고 이름이 다를 뿐이다.
아주 좋은 막걸리는 ‘순료(醇醪)’라고 부른다. 순료는 물을 타지 않은 무회주(無灰酒)다. 진한 술, 즉 농주(濃酒)다. 진국, 전국술이라고도 부른다. 오래전에는 양조장에서 ‘진땡이’라고 불렀다. 진땡이가 사라진 것은 세금 때문이다. 알코올 도수에 따라 세금을 매기고 도수가 높으면 세율이 높다. 주세법상, 8도 이하의 술인 막걸리는 세금이 낮다.
오나라 주유(175~210)는 성격이 호탕하면서도 퍽 괜찮은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오나라 장군 정보는 “주유와 사귀면 마치 순료를 마신 듯, 마침내 스스로 취한 줄을 모른다”고 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순료도 역시 ‘진짜 막걸리’다. 중국에도 막걸리 혹은 막걸리 비슷한, 발효주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막걸리의 장점은 다양성이다. 산촌에서 빚은 것은 ‘산료(山醪)’라 부르고, 거친 것은 ‘박료(薄醪)’라 불렀다. 조선 중기 문신 조임도는 시에서, “산촌 막걸리에 취해 세상사 잊을 수만 있다면/사람 사는 곳 어딘들 도원이 아니랴”라고 했다.
귀한 쌀로 산촌의 거친 막걸리를 빚었을 리 없다. 잡곡으로 빚은 술이니 거칠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료라도 있으면 곧 무릉도원이다. 우리는 거친 것도 귀하게 여겼다.
주막은 조선 후기에 발달한 ‘사설 음식점 겸 숙박업소’다. 밥값, 술값은 받고 잠자리는 무료였다. 봉놋방에 여러 명이 웅크리고 잔 이유다. 술은 주로 막걸리다.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만든 역참제도 아래의 역이나 참, 점과 달리 주막(酒幕)은 주점(酒店) 노릇을 했다. 술 마시는 곳이다. 물론 정부에서는 막았다. 불법이니 세금을 걷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술을 만들면 반드시 곡물을 허비하게 된다. 막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막은 꾸준히 발전한다. ‘막(幕)’은 천막이다. 가건물이라는 뜻이다. 이 가건물이 조선 후기에는 제법 모양을 갖추고 세금도 내는 합법적인 공간이 된다.
술은 어떻게 먹어야 할까? 조선 후기 문신 이민서(1633~1688)는 “산으로 놀러 다니는 일과 술 마시는 일은 같은데, 여럿이는 시끄럽고 번잡스러우며 혼자는 무료하다”고 했다. 이민서는, “금강산에 갔을 때 미처 동행이 없어 쓸쓸했는데 다행히 산속에서 사람을 만났으니 마치 순료를 만난 것같이 기쁘다”고 했다. 나이 들어 술 마시는 일은 의 저자 이규경(1788~1863)의 말을 귀담아들을 일이다. 이규경은, ‘나이 든 이의 겨울철 섭생법’으로 ‘새벽에 일어나 순료를 마시고 양지쪽에 앉아 머리를 빗는다’고 했다. 잘 마시는, 좋은 술은 약이다.
소주 마시고 패전?
증류식 소주는 몽골의 원나라가 전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소수설도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송나라 사람 전석의 말을 인용, 섬라주(태국 술)는 소주를 두 차례 내린 술인데 우리나라 환소주와 같다고 했다. 송은 원나라 이전이다. 원나라의 고려 침공 이전에 이미 한반도에 소주가 있었다는 뜻이다.
고려 말, 경상도 원수 김진은 술꾼이었다. 평소 기생, 측근들과 자주 소주를 마셨다. 주변에서는 이들을 ‘소주도(燒酒徒)’라 불렀다. ‘소주 퍼마시는 무리’라는 뜻이다. 막상 왜구가 합포(마산)를 침략하자, 병사들은, “소주도에게 공격하라고 하십시오. 우리는 싸우지 않을 겁니다”라고 했다. 김진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가덕도로 귀양을 떠났다.
소주는 한반도에서 여러 번 대형 사고를 친다.
태종 4년, 조정에서 경상도로 보낸 경차관(敬差官) 김단이 옥주(沃州·지금의 옥천)에서 급작스럽게 죽는다. 사인은 소주 과다 음주였다. 김단은 청주에서 소주를 과하게 마셨고 멀지 않은 옥천에서 사망했다.
태종 17년(1417), 수원부사 박강생과 과천현감 윤돈이 파직된다. 죄목은 ‘소주 과다 음주로 인한 동료 과실치사죄’다. 윤돈이 과천현감을 그만두었을 때 금천현감 김문 등 인근의 고을 관리들이 이별 파티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강생과 윤돈이 김문에게 소주를 과하게 권했고, 김문은 소주 과다 음주로 사망했다. 태종은 “설마 죽이려고 술을 과하게 권했겠는가? 파직 정도가 적당하다”고 말한다.
세종의 형 양녕대군도 소주 과다 음주에서 빠지지 않았다. 일하는 인부들에게 술을 과하게 권했고 그중 한 명이 과다 음주로 죽었다. 대신들이 양녕대군을 탄핵하지만 세종은 관대하게 대한다. 양녕대군은 죽을 때까지 꾸준히 소주를 마신다.
양녕의 아버지 태종도 술고래였다. 아들 세종 역시 술을 잘 마셨다고 하니 이 집안의 음주 내력도 범상치 않다. 태종의 형 진안대군 이방우도 술꾼이었다. 에는 “진안군이 결국 소주를 마시고 병이 나서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왜 소주 술꾼들이 쉽게 목숨을 잃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독하다. 자연발생적인 술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증류한 독주다. 독주를 지나치게 마시면 목숨이 위태롭다. 간단한 이치다. 위스키, 보드카, 한국 소주, 중국 고량주 모두 증류주다. 물에 섞어 부드럽게 마셔야 하는 이유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1966년 12월 초 어느 날이었다. 교양학부 도서관의 세미나 룸에서 송년다과회가 열렸다. 대학에 입학한 뒤, 매월 책 한 권을 정해 읽고 토론회를 열어온 학생들이 지도교수와 함께 마지막 모임을 갖는 자리였다.
그 모임을 지도해온 철학과 S 교수가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S 교수가 말을 마치더니, 학생들에게 새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포부를 말해보라고 했다. 여러 명이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이, 2학년에 올라가면 전공 공부를 하면서 교양도서도 열심히 읽겠다고 말했다. 기대한 반응이었는지, S 교수는 줄곧 웃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J 차례가 되었다.
“저는 1년 계획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러나 새해 첫날 계획은 있어요. 1월 1일 0시가 되면, 5분간 저와 제 가족의 건강을 비는 기도를 올릴 거구요, 0시 5분에 마음에 담아 둔 남학생에게 편지를 쓸 거예요.”
많은 학생이 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시절에 여학생이 공개된 장소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파격이었다. J는 언행을 절제하는 모범생이지만, 어쩌다 가끔은 그렇게 당돌함을 보이기도 했다.
차례가 오자 나는 J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를 빤히 응시하며 내가 말했다.
“저는 1년 계획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러나 새해 첫날 계획은 있어요. 1월 1일 0시가 되면 5분간 저와 제 가족의 건강을 비는 기도를 올릴 거구요, 0시 5분에 마음에 담아 둔 여학생에게 편지를 쓸 거예요.”
나는 ‘남학생’을 ‘여학생’으로 바꾼 것 말고는 J의 말에 한 자도 보태지도, 덜지도 않았다. 학생들이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웃었다. J도, S 교수도 웃었다.
내가 J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학기 초 독서토론회 이후였다. 지정도서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이었다. 토론회에 참여한 학생들은 입을 모아 두 연인의 순수성을 예찬했다. 순수한 사랑이야말로 그 희곡의 주제이자, 대학 새내기들의 한결같은 소망이었다.
몇 학생이 두 연인의 무모함이나 맹목성을 지적했다. 어떤 학생은 우연한 사건이 중첩되고 있다며 작품의 플롯을 비판했다. 그러나 누구도 분위기를 뒤엎지는 못했다. 입을 다물고 있던 나를 보며 S 교수가 말했다.
“김 군. 작품을 읽었을 텐데, 독후감을 말해보게.”
기다리던 바였다. 1학기 말의 토론회에서 S 교수로부터 칭찬을 들었기 때문에, 나는 교수가 나에게 반드시 발언할 기회를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저는 이 희곡의 작품성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녀 주인공의 사랑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행위도 사회적 상황을 덮어두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에 대해 평가를 달리하고 싶습니다. 이탈리아 역사에서 보면, 스토리가 전개되는 16세기 후반에 세상을 바꾸는 혁명이 시작됩니다. 무역을 바탕으로 한 새 세력이 대두하고, 토지를 바탕으로 한 구세력은 뒤로 밀립니다. 사회적 기반을 뿌리째 뒤흔든 엄청난 혁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구세력 지배층인 귀족 자녀들이 사랑에 탐닉해 있다가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들에게는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보입니다. 사회변화의 변곡점에서 볼 수 있는 말기적 현상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역사성이나 사회성이 배제된 그런 사랑을 지고지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았다. 나는 목적을 달성했음을 직감했다. 이제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했다.
“제가 그 시대를 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제 곁에 줄리엣 같은 여인이 있었다면, 물론 저 역시 앞뒤 살피지 않고 사랑에 빠졌을 겁니다.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는데, 그럴만한 기회가 오면 당연히 바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학생들이 와, 하고 웃었다. 누구보다도 S 교수의 웃음소리가 컸다. 토론회가 끝나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J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가지고 놀아도 되나요?”
“가지고 놀다니?”
“학생들 뒤통수를 쳐놓고, 마무리로 앞이마까지 쳤잖아요?”
J는 고개를 돌려 상긋 웃고는 버스에 올랐다. 바로 그 미소가 화살이었다. 그러니까 그 찰나에 J는 말 위에서 등을 돌리고 화살을 쏜 고구려 궁사였다.
1967년 1월 1일 자정이 되자 나는 5분 동안 나와 가족의 건강을 비는 기도를 올렸다. 종교가 없는 내가 손을 모아 기도한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철필에 검은 잉크를 찍었다. 편지를 다 쓴 뒤에 날짜를 쓸 수도 있겠지만, 그땐 0시 5분이 훨씬 지난 뒤일 것이었다. 나는 편지지 맨 위에 ‘1968년 1월 1일 0시 5분’이라고 적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쏟아 편지를 써 내려갔다. J에게 보낼 편지였다. 마을 앞에도 우체통이 있지만, 나는 이튿날 이른 아침에 십리를 걸어 우체국으로 가서 편지를 부쳤다.
드디어 1월 4일이 왔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바람도 없는데 울안에 서 있는 동백나무에서 붉은 동백꽃 한 송이가 뚝 떨어졌다. 이건 길조일까, 흉조일까? 나는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것이 있었다.
오후 4시가 조금 지나 집배원이 우편물을 가져왔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J가 보낸 편지가 있었다. 봉투를 뜯었다. 그 편지지 맨 위에도 ‘1967년 1월 1일 0시 5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J의 편지를 손에 쥐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쭉 뻗었다. 그야말로 천하가 내 손 안에 있었다.
편지 내용에, 보고 싶다든가 좋아한다든가 사랑한다든가 하는 구절은 없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음으로써 상대를 마음에 담고 있음을 서로 확인한 셈이었다.
우리는 그 후 2월 20일까지 5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를 받고 그 답을 쓰는 식이 아니었다. 답장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편지를 썼다. 나도 그도 몇 번인가는 하루에 두 통을 써서 부치기도 했다. 평생 쓸 편지의 반쯤을 50여 일 동안에 쓴 셈이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안개처럼 말없이 다가와 나를 휘감는 그리움일까? 그리움이 사랑이라면 나의 J에 대한 사랑은 안개보다 짙었다. 사랑이란 내 곁에 그가 없어도 그를 내 마음에 담는 것일까? 담는 것이 사랑이라면 내 마음에서 사랑은 흘러넘쳤다.
그래서 나는 편지에다 사랑한다는 말을 쓸까 몇 번이고 망설였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아끼고 싶었다. 그래. 그 말은 직접 만나서 할 거야. 그것도 여러 번 만난 뒤에 해야 해. 나는 그런 절제가 사랑의 품격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나는 2월 20일에 상경할 예정이라며 21일에 만나자고 편지를 보냈다. J는 하루 뒤에 보자고 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숫자를 맞추어 2월 22일 오후 두시에 둘이 만나자는 것이었다. 장소도 J가 정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근사한 곳을 찾으려고 여러 군데를 돌아봤다고 했다. 그가 결론을 내린 곳이 바로 신설동 로터리의 어느 다방이었다.
둘이 만나 나눌 이야깃거리는 거의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J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의 삶의 지표 셋을 밝혔다. 가난하게 산다.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산다는 게 그것이었다.
J는 처음에는 가난이야말로 극복의 대상일 뿐이라고 했다. J가 강조한 것은 전문성이었다. 언젠가 나라가 전문인을 요구할 것이고, 그 준비를 하는 것이 젊은이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편지를 서른 통쯤 주고받은 무렵부터, J도 가난의 의미를 재음미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각기 강조하는 것이 서로 대립하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공감했다. 둘이 만나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접점을 찾기가 어렵지 않을 터였다.
21일 상경한 나는 절친인 P의 집으로 갔다. P는 나에게 깜짝 놀랄 사실을 털어놓았다. 겨울방학 동안에 다른 사람이 아닌 J에게 집요하게 접근한 모양이었다. 편지도 보내고, 집으로 찾아가기도 하고, 골목길에서 기다리다가 만나보기도 했지만, J가 끄덕도 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P가 말했다.
“나는 부모 없이 자랐어. 피난길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 잃었어. 내 꿈은 출세하는 것이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내 꿈이야. 난 여자를 찾았어. J야. 내가 걔하고 결혼한다면 내 인생은 성공이야. 그렇지 못하면 난 살 이유가 없어.”
사랑에 목숨을 걸겠다는 것이었다. P의 표정은 진지함을 넘어 결연했다.
그날 저녁 나는 P의 집을 나와 제기천 천변의 어느 판잣집 주막에 들어가 혼자서 막걸리를 마셨다. 주막을 나온 나는 무심결에 J의 집을 찾아 나섰다. 주소는 기억에 생생했다. 골목 입구에 들어섰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일본식 2층 저택이 골목 양 쪽에 죽 늘어서 있었다. J의 집은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부티가 났다.
문득 희곡 이 생각났다. J는 줄리엣이지만, 안타깝게도 로미오와 나의 처지는 하늘과 땅이었다. 오래전부터 심하게 해소를 앓는 아버지와 그 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동생들 얼굴이 떠올랐다.
더욱 불행한 것은, 독서토론회에서 내가 한 말,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는데 그럴만한 기회가 오면 당연히 바보가 되어야 한다고 한 내 말이 J의 집 앞에서는 떠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친구도 친구려니와, 이런 부잣집 딸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나는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결국 나는 2월 22일 오후 두 시에 J와 만나기로 한 다방에 가지 않았다.
가난하게 산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산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산다는 것이 젊은 시절의 내 삶의 지표였다. 그러나 나는 그 삶의 지표를 쓰레기통에 버린 지 오래다. 나는 내 뜻과는 무관하게 아직 가난하게 살고는 있지만, 내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고, 내 주변에는 부유한 사람이 많다. 반대로 서울의 부잣집에서 나고 자란 J는 빈민운동을 하는 가난한 목사와 결혼해 평생을 가난한 사람 가운데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가난하게 살고 있다. 이미 손자를 거느린 할머니가 되어 있을 J가 그리울 때가 있다.
역모 혐의로 능지처참을 당한 허균(1569~1618)은 수많은 조선조 인물 가운데 여러 모로 특이한 사람입니다. 고리타분한 유교질서에 염증을 냈던 허균은 어머니 상중에도 기생을 끼고 놀아 비난을 받은 바 있습니다. 광해군일기에는 ‘천지간의 괴물’이라고 기록된 인물입니다.
그가 광해군 3년(1611)에 귀양지인 전북 함열에서 엮은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 ‘도문대작(屠門大爵)’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8도의 명물 토산품과 별미를 소개한 음식 안내서입니다. 귀양살이를 하다 보니 지난날에 먹었던 음식 생각에 견딜 수 없어 종류별로 기록해 놓고 때때로 보아가며 한번 맛보는 것처럼 한다는 게 집필 동기였습니다.
허균이 참 가엾습니다. 처형 직전에 “잠깐 할 말이 있다”고 소리쳤지만 무시당한 채 처참하게 죽은 그는 마지막으로 무슨 음식을 먹고 갔을까?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이 처형장에서 지은 절명시(絶命詩)에는 “황천길엔 주막 하나 없다는데 오늘 밤은 뉘 집에서 잘까?”[黃泉無一店 今夜宿誰家]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곧 죽을 사람들이 왜 먹는 생각을 할까? 음식이란 몸을 살찌우거나 생존을 이어주는 영양소만이 아니며 정신의 허기를 달래고 불안을 덜어주는 그 무엇입니다. 생존의지에 관한 행위와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음식은 마시고[飮] 먹는[食]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저작(詛嚼)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심신을 기르고, 세상과 함께 하면서 사람들과 정을 다지고, 그 시대와 사회를 섭취합니다.
음식남녀 인지대욕존언(飮食男女 人之大慾存焉), 예기(禮記)가 갈파한 대로 음식과 남녀의 정, 쉽게 말해 먹는 것과 섹스는 인간의 가장 큰 욕망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원초적 본능을 다스려 사회질서와 양속(良俗)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제도와 절차를 만들고 규제와 금지 장치를 마련해왔습니다.
음식은 예절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숟가락 젓가락 포크는 어떻게 쥐고 어른 앞에서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배운 뒤 식사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됩니다. 밥상머리교육은 인간의 품성을 결정하는 원초적 교육기제입니다.
쌀을 뜻하는 글자 ‘米’를 파자(破字)하면 八十八이 됩니다. 옛 어른들은 쌀 한 톨을 얻기 위해서는 88번이나 농부의 손길이 가야 하는 걸 알라며 이 글자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예절은 먹는 방법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음식 자체에 대해 지켜야 할 예의가 있습니다. 먹을 게 귀하고 쌀이 모자라던 시절에는 밥풀을 남기면 꾸중을 들었고, 맛있는 것만 먹거나 같은 반찬을 두 번 떠가는 것도 남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최근 번역된 댄 주래프스키 교수(미 스탠퍼드대·언어학)의 ‘음식의 언어’(The language of food)에 의하면 고급한 식사일수록 에티켓을 따집니다. 요리의 이름이 길수록, 식재료의 출처를 거론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음식 값이 비싸집니다.
음식은 정입니다. 온 가족이 모여서 밥 한 끼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가요? “음식 끝에 의 상한다”는 말, “콩 한 쪽도 나눠먹는다”는 말에서는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인심과, 누구에게나 똑같은 고통인 가난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술꾼 3형제는 명절에 모이면 소주를 궤짝으로 갖다 놓고 마시면서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웁니다. 어차피 가실 분인데, 병상에 누워 “한 잔만, 한 잔만” 하는데도 끝내 술을 드리지 않았던 불효를 그들은 지금 후회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또는 주부는, 또는 아내는 가족을 위해서 정으로 다듬고 무치고 사랑 양념을 넣어 음식을 만듭니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는 제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와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려서 어머니가 해주었던 반찬이나 요리가 맛이 없어지면, 그때는 죽을 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과학적 근거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음식은 소통입니다. 왕조시대에 기근이 들고 흉년이 심하면 왕은 부덕의 소치라고 자성하며 하늘에 빌면서 반찬 가짓수를 줄였습니다. 이른바 감선(減膳)의 소통정치라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서로 자기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손님 접대랍시고 내놓은 두루미와 여우의 우화는 달리 해석하면 서로 다른 음식을 통한 소통의 시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음식은 배려입니다. 우리는 요리를 잔뜩 빚어 내놓고도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십시오” 하고 인사를 합니다. 예전에 중국인들은 “이미 익힌 걸 날것으로 되돌릴 수 없지요”[熟不還生]라고 말하며 식사를 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고(장 지글러 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세계의 절반은 먹거나 더 먹거나 또 먹고 있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기아의 진실, 과식과 체증의 진실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중국 북송시대의 명재상 범중엄(范仲淹·980~1052)은 ‘강상어자(江上漁者)’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강 위를 오가는 사람들/농어 맛을 즐길 줄만 아는데/그대들 보시게나 작은 배 하나/풍파 속에 출렁거리는 것을.”[江上往來人 但愛?魚美 君看一葉舟 出沒風波裏] 농어만 즐기지 말고 농어를 잡는 이들의 고생도 알라는 뜻입니다.
굶주리는 이들도 많고, ‘혼밥’이나 불기 없는 1회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족과 따뜻한 음식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이걸 좋아한다고 내세울 만한 음식이 없는 사람, 함께 먹자고 남에게 권할 만한 메뉴나 음식점에 무지하거나 무신경한 사람, 무엇이든 한 가지라도 남을 위해 만들어 먹일 수 있는 음식이 없는 사람의 삶은 끝내 불행합니다. 구차하고 용렬합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어느 책에서 “여성이 매일같이 요리를 하는 것은 작은 기적을 만들어 내는 일상의 기도와도 같은 것”이라고 썼습니다. 이제는 남자들도 나를 위해, 남을 위해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TV화면을 점령하다시피 한 먹방, 쿡방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조류입니다.
요리는 본질적으로 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 먹을 것으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 생명을 살게 합니다. 그러니까 역설적이지만 음식은 삶입니다. 그리고 살림입니다. 이 경우의 살림은 생계를 꾸려가는 일이나 세간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것들이 목숨을 이어가게 해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움직이는 것, 푸른 것, 부드러운 것, 따뜻한 것, 촉촉한 것, 선한 것, 맛있는 것입니다. 일용(日用)하고 장복(長服)하는 음식을 통해 삶과 살림의 길을 찾아가는 일이 늘 즐거움과 행복이 되기 바랍니다.
※추위 때문일까. 몸과 마음이 자꾸 움츠러든다. 그렇다고 실내에만 있을 수는 없는 법. 마음을 따스한 온기로 채워줄 감성여행지를 찾아가자. 여유롭게 강변을 거닐며 겨울 낭만을 맘껏 누려보는 것도 좋겠다.
◇두 강줄기를 품에 안은 ‘두물머리’
양평 두물머리는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흘러온 북한강과 태백산 금대봉 기슭에서 시작된 남한강이 예서 몸을 섞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해 수 백 km에 이르는 멀고도 험한 길을 흘러온 두 강물이 아무렇지 않은 듯 어우러져 한몸이 된다. 예로부터 따뜻하고 여유로운 성질을 가진 남한강은 ‘암물’이요, 차갑고 거친 북한강은 ‘숫물’이라 했다. 태생부터 다른 두 물이 자연스레 하나가 되는 그 오묘한 조화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이다.
이곳은 한때 번성했던 나루터였다. 조선시대 한강의 4대 나루터 중 하나로 물길을 따라 한양을 오가던 이들의 쉼터 역할을 했던 곳이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나루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지금은 표석만 쓸쓸하게 세워져 있다. 하지만 강변의 낭만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어 그 명성은 여전한 모습이다. 그 시절 주막에 둘러앉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던 길손들이 그랬듯, 굽이굽이 흘러온 강물에는 우리네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는 듯하다.
두물머리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웅장한 풍채의 느티나무다. 400년이 넘는 세월을 품고 당당하게 서있는 이 나무는 두물머리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도당할배’라 부른다. 원래 ‘도당할매’와 함께 있었지만,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되면서 할매나무는 수몰되고 할배나무 혼자 남게 되었다. 세월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위풍당당한 할배나무는 고요하고 아늑한 경치와 조화를 이뤄 찾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두물머리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빼어난 풍경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노라면 마치 산수화 속으로 들어온 듯 착각할 정도다.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풍경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했다. 조선시대 이건필의 ‘두강승유도’와 겸재 정선의 ‘독백탄’으로 남겨져 지금까지 전해 내려올 만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이러한 연유로 영화나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고, 사진작가나 동호회의 출사 장소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한다.
다온광장은 소원쉼터에서 산책로를 따라 10분 정도 가면 나온다. 다온광장에는 한강8경 중 제1경을 알리는 ‘두물경’ 표지석을 세워놓았다. 바닥에는 1750년대에 제작한 해동지도 광주부 지도와 정약용이 두물머리를 보며 읊었다는 시가 새겨져 있다. 두물경 뒤로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 되어 한강을 이루는 장엄한 광경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를 감동이 차오른다.
사실 두물머리는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다. 단지 고즈넉한 풍경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풍경 속을 거닐다 보면 마음에 담아올 것이 참 많다.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는 두물머리는 언제 찾아가더라도 만족스러울 만한 곳이다. 낭만적인 감성을 살며시 건드려 놓는 옛 나루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근사한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마음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정원
이제 세미원으로 가자. 세미원은 늪지를 생태공원으로 조성한 곳으로, 두물머리 산책길에 함께 둘러보면 좋다. 두물머리에서 세미원으로 가는 길은 조금 특별하다. 배다리를 통해 강을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러 갈 때 한강에 설치했던 배다리를 재현한 것이다. 254m 구간에 52척의 목선으로 만든 이 다리는 정조의 효심과 정약용 선생의 지혜를 기리기 위해 설치해 놓았다. 배다리를 설계한 정약용 선생의 생가가 근처에 있어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깃발이 나부끼는 배다리를 건너면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진다. 세미원은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관수세심 관화미심)’는 뜻이 담겨 있는 곳이다. 마음을 씻어내라는 의미를 담아 빨래판 모양으로 조성한 산책로가 인상적이다. 이외에도 일 년 내내 수련을 볼 수 있는 세계수련관, 화가 모네의 정원,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웠던 유상곡수 그리고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본떠 만든 세한정 등의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다양한 테마로 꾸며진 세미원은 자연 속에 담긴 참뜻을 배울 수 있는 정원이다.
돌아서는 길, 마음이 한결 포근해졌음을 느낀다. 그저 강물을 따라 느긋하게 걸었을 뿐인데 말이다. 잔잔한 감동이 흐르는 풍경 속에서 겨울의 낭만을 오롯이 느끼고 가는 듯하다. 커피향처럼 은은하게 스며든 여운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다.
◇여행가이드
- 두물머리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697
△관람시간 제한 없음
△입장료 무료
△주차비 무료(공영주차장, 교각주차장) / 2,000원(사설주차장)
- 세미원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로 93
△문의 031-775-1834 / www.semiwon.or.kr
△관람시간 3월~10월 09:00~18:00 / 11월~2월 09:00~17:00
△관람료 성인 4,000원 / 어린이, 청소년, 65세 이상 2,000원
△휴무 매주 월요일
경기도에서 드라마와 영화에 빠지지 않고 나왔던 두물머리. 두물머리 느티나무는 오고가는 사람들의 든든한 쉼터로 400년동안 굳건히 지키고 있다.
※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손해보는 일이 많으니 주의하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타인의 의견에 귀기울일 것이니 혼자만의 속단은 화를 부르니 의견 수렴을 하기 바란다.
84년생 : 짜증나는 일이 많이 생기나 이겨내야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다.
72년생 : 남의 주머니를 믿으면 더욱더 힘들어지니 잘 견디어 내야 된다.
60년생 : 어디서 차용하더라도 이 일은 해결해야 뒷일에 문제가 없다.
48년생 : 자식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 힘든 일이 해결된다.
◇ 소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호사다마라 좋은 일에는 반드시 방해가 따르니 감수하고 진행하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진행이 빠르고 얻음도 클 것이나 방해가 있으니 차근히 진행함이 길 할 것이다. 자중하여 행하라.
85년생 : 새로운 아이디어 샘처럼 떠오를 때니 좋은 곳에 쓰도록 하라.
73년생 : 길가다 보석을 줍는 격이니 출입에 새로운 길이 보인다.
61년생 : 계약 건은 힘들고 재수는 좋으니 다른 쪽을 알아봄이 길하다.
49년생 : 명예는 오르나 재수에는 흠이 많아 구하지 않음이 마음이 편하다.
◇ 호랑이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재주는 곰이 돈은 엉뚱한 사람이 다가져가니 힘만 드는구나. 동분서주하여 일을 도모해 이익은 타인에게 돌아가니 허망히 하늘을 바라보는 격이라.
86년생 : 할 일 없이 서성대면 시간만 낭비되니 가던 길이나 열심히 가라.
74년생 : 귀인이 따로 없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도와주니 놓치지 마라.
62년생 : 근본을 한 번 돌아보면 무엇이 막혔는지 알 수 있어 열어가리라.
50년생 : 지금은 답답하나 인내하면 길이 보일 것이니 기다림이 상책이다.
◇ 토끼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망망 대해를 떠도는 배도 길이 있는데 사람의 갈 길이 없겠는가.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굳건히 맡은 바를 행하라. 길함이 유할 것이니 노력하지 않은 자에게는 어두운 구름만이 머물게 된다.
87년생 : 좋은 계획을 세워놓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니 세운 것만 못하다.
75년생 : 새로운 구상 나침반이 필요한 때이니 계획을 잘 세우면 길이 보인다.
63년생 : 재수가 생기다 마니 답답할 것이나 오후에는 조금 풀리니 기다 리라.
51년생 : 점심 약속이 틀어지니 기분이 안 좋으나 더 좋은 일이 생긴다.
◇ 용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손오공이 날아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 경거망동은 금물이다. 잔 꾀를 부려 어려움에서 모면하고자 하나 모두 발각되어 일신에 신용이 실추되니 망동은 삼가하고 중도의 길을 걸으라.
76년생 : 가슴을 활짝 열어 툭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해결책이 나온다.
64년생 : 마음에 있는 소리도 안 하면 상대가 모르니 속 시원히 해 보라.
52년생 : 상대를 칭찬하고 세워주면 술밥간에 먹을 것이 생긴다.
40년생 : 나를 내세우지 말고 일을 도모하면 얻는 것이 크다.
◇ 뱀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하려다 망설여 그만둔 일이 새로이 떠오르니 적당한 시기를 찾음이라.미루어 왔던 일이 실마리를 찾으니 길함이 있어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정진하라. 득이 있을 것이다.
77년생 : 불편한 마음을 가지면 재수가 오다가도 돌아가니 편한 마음을 갖자.
65년생 :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결정하라.
53년생 : 대궐 출입의 꿈을 꾸어 감투 쓸 일이 생기니 사양하지 마라.
41년생 : 나에게 좋은 일거리를 만들어주니 힘이 절로 나는구나.
◇ 말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사방을 돌아봐도 꽉 막혀 있어 불안하나 하늘이 도우니 힘을 얻는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어려움에 직면해 있어도 뜻하지 않게 실마리를 찾아 해결을 하게 될 것이다. 노력하는 자에게는 길함이 있음을 잊지 말라.
78년생 : 구관이 명관이라 버리고 돌아선 곳에서 연락이 오면 다시 가라.
66년생 : 안 된다고 실망 마라 바른 일이라면 하늘은 도움을 줄 것이다.
54년생 :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면 안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42년생 : 오랜 친구들과 한해를 보내는 기분으로 주석을 만들면 즐거우리라.
◇ 양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청탁을 받을 때가 좋은 것이다 거절도 기분 상하지 않게 하라. 일신이 높은자리에 유하니 여러사람들이 몰려 들어 부탁의 소리가 분분하다 자못 기분을 상할 일이 발생하니 처신을 잘하라.
79년생 : 언짢은 심부름도 하고 나면 훗날 나에게 득이 된다.
67년생 : 일을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처리하면 꼬일 일이 없어 모든 게 밝아진다.
55년생 : 옥에 티가 있어 나를 몰라주니 기분이 상하나 옥은 옥이다.
43년생 : 나를 찾는 사람이 많으니 겸손히 대하면 새로운 등용의 문이 열린다.
◇ 원숭이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심기 일전하여 다시 한 번 힘을 쓸 때가 되었으니 망동만 삼가라. 오뚜기 처럼 다시 일어나는 의지가 필요할 시기이니 실의에 자책하지말라. 운기란 돌고 도는 것이니 구름이 걷히면 밝은 빛을 보게 됨과 같다.
80년생 : 자책은 그만두고 일어서라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면 좋은 일이 생긴다.
68년생 : 심혈을 기울인 일이 허탕이나 탈기 말고 다시 도전하면 알아준다.
56년생 : 아직도 길은 많으니 좌절하지 말고 동쪽을 찾아보면 길이 있으리라.
44년생 : 체통은 뒤로하고 코미디를 하더라도 아랫사람의 인정받으면 좋으리라.
◇ 개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배속은 비었는데 주막은 멀어 그래도 주먹밥이 허기를 면해준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라 운기가 길하니 순순히 해결할 것이며 지체하다 때를 놓치기 쉬울 것이다. 매진하라.
82년생 : 괴로움에서 벗어나 두드리면 열릴 것이니 일단 두드려 보라.
70년생 : 집착한 만큼 일의 성과도 크니 공을 드려야 소득이 커진다.
58년생 : 기름진 고기로 배를 채워 만사가 눈에 안 들어오니 조심해야 한다.
46년생 : 어물전 망신을 꼴뚜기 시키나 재주는 부릴 줄 아니 잘 다스 리라.
◇ 돼지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누구에게나 끼는 있다. 전문적인 끼는 좋은 예술을 창조하는 법이다.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때가 이른다. 하지만 나만의 재능인냥 자만하지 말라. 경거망동은 운기를 불길하게 하니 자중함이 길하다.
83년생 : 한가지 재주로 일어서 보자 오늘 하루가 즐거워진다.
71년생 : 나의 기량을 알아주도록 보여줌이 모든 일에 생기를 넣는다.
59년생 : 돼지꿈을 꾸었으니 복권은 이럴 때 한 번 사보는 것이다. 금전 운 길.
47년생 : 찾아가서 해결을 봐야지 기다리면 일을 그르친다.
※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손해보는 일이 많으니 주의하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타인의 의견에 귀기울일 것이니 혼자만의 속단은 화를 부르니 의견 수렴을 하기 바란다.
84년생 : 짜증나는 일이 많이 생기나 이겨내야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다.
72년생 : 남의 주머니를 믿으면 더욱더 힘들어지니 잘 견디어 내야 된다.
60년생 : 어디서 차용하더라도 이 일은 해결해야 뒷일에 문제가 없다.
48년생 : 자식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 힘든 일이 해결된다.
◇ 소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호사다마라 좋은 일에는 반드시 방해가 따르니 감수하고 진행하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진행이 빠르고 얻음도 클 것이나 방해가 있으니 차근히 진행함이 길 할 것이다. 자중하여 행하라.
85년생 : 새로운 아이디어 샘처럼 떠오를 때니 좋은 곳에 쓰도록 하라.
73년생 : 길가다 보석을 줍는 격이니 출입에 새로운 길이 보인다.
61년생 : 계약 건은 힘들고 재수는 좋으니 다른 쪽을 알아봄이 길하다.
49년생 : 명예는 오르나 재수에는 흠이 많아 구하지 않음이 마음이 편하다.
◇ 호랑이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재주는 곰이 돈은 엉뚱한 사람이 다가져가니 힘만 드는구나. 동분서주하여 일을 도모해 이익은 타인에게 돌아가니 허망히 하늘을 바라보는 격이라.
86년생 : 할 일 없이 서성대면 시간만 낭비되니 가던 길이나 열심히 가라.
74년생 : 귀인이 따로 없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도와주니 놓치지 마라.
62년생 : 근본을 한 번 돌아보면 무엇이 막혔는지 알 수 있어 열어가리라.
50년생 : 지금은 답답하나 인내하면 길이 보일 것이니 기다림이 상책이다.
◇ 토끼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망망 대해를 떠도는 배도 길이 있는데 사람의 갈 길이 없겠는가.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굳건히 맡은 바를 행하라. 길함이 유할 것이니 노력하지 않은 자에게는 어두운 구름만이 머물게 된다.
87년생 : 좋은 계획을 세워놓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니 세운 것만 못하다.
75년생 : 새로운 구상 나침반이 필요한 때이니 계획을 잘 세우면 길이 보인다.
63년생 : 재수가 생기다 마니 답답할 것이나 오후에는 조금 풀리니 기다 리라.
51년생 : 점심 약속이 틀어지니 기분이 안 좋으나 더 좋은 일이 생긴다.
◇ 용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손오공이 날아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 경거망동은 금물이다. 잔 꾀를 부려 어려움에서 모면하고자 하나 모두 발각되어 일신에 신용이 실추되니 망동은 삼가하고 중도의 길을 걸으라.
76년생 : 가슴을 활짝 열어 툭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해결책이 나온다.
64년생 : 마음에 있는 소리도 안 하면 상대가 모르니 속 시원히 해 보라.
52년생 : 상대를 칭찬하고 세워주면 술밥간에 먹을 것이 생긴다.
40년생 : 나를 내세우지 말고 일을 도모하면 얻는 것이 크다.
◇ 뱀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하려다 망설여 그만둔 일이 새로이 떠오르니 적당한 시기를 찾음이라.미루어 왔던 일이 실마리를 찾으니 길함이 있어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정진하라. 득이 있을 것이다.
77년생 : 불편한 마음을 가지면 재수가 오다가도 돌아가니 편한 마음을 갖자.
65년생 :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결정하라.
53년생 : 대궐 출입의 꿈을 꾸어 감투 쓸 일이 생기니 사양하지 마라.
41년생 : 나에게 좋은 일거리를 만들어주니 힘이 절로 나는구나.
◇ 말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사방을 돌아봐도 꽉 막혀 있어 불안하나 하늘이 도우니 힘을 얻는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어려움에 직면해 있어도 뜻하지 않게 실마리를 찾아 해결을 하게 될 것이다. 노력하는 자에게는 길함이 있음을 잊지 말라.
78년생 : 구관이 명관이라 버리고 돌아선 곳에서 연락이 오면 다시 가라.
66년생 : 안 된다고 실망 마라 바른 일이라면 하늘은 도움을 줄 것이다.
54년생 :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면 안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42년생 : 오랜 친구들과 한해를 보내는 기분으로 주석을 만들면 즐거우리라.
◇ 양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청탁을 받을 때가 좋은 것이다 거절도 기분 상하지 않게 하라. 일신이 높은자리에 유하니 여러사람들이 몰려 들어 부탁의 소리가 분분하다 자못 기분을 상할 일이 발생하니 처신을 잘하라.
79년생 : 언짢은 심부름도 하고 나면 훗날 나에게 득이 된다.
67년생 : 일을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처리하면 꼬일 일이 없어 모든 게 밝아진다.
55년생 : 옥에 티가 있어 나를 몰라주니 기분이 상하나 옥은 옥이다.
43년생 : 나를 찾는 사람이 많으니 겸손히 대하면 새로운 등용의 문이 열린다.
◇ 원숭이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심기 일전하여 다시 한 번 힘을 쓸 때가 되었으니 망동만 삼가라. 오뚜기 처럼 다시 일어나는 의지가 필요할 시기이니 실의에 자책하지말라. 운기란 돌고 도는 것이니 구름이 걷히면 밝은 빛을 보게 됨과 같다.
80년생 : 자책은 그만두고 일어서라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면 좋은 일이 생긴다.
68년생 : 심혈을 기울인 일이 허탕이나 탈기 말고 다시 도전하면 알아준다.
56년생 : 아직도 길은 많으니 좌절하지 말고 동쪽을 찾아보면 길이 있으리라.
44년생 : 체통은 뒤로하고 코미디를 하더라도 아랫사람의 인정받으면 좋으리라.
◇ 개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배속은 비었는데 주막은 멀어 그래도 주먹밥이 허기를 면해준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라 운기가 길하니 순순히 해결할 것이며 지체하다 때를 놓치기 쉬울 것이다. 매진하라.
82년생 : 괴로움에서 벗어나 두드리면 열릴 것이니 일단 두드려 보라.
70년생 : 집착한 만큼 일의 성과도 크니 공을 드려야 소득이 커진다.
58년생 : 기름진 고기로 배를 채워 만사가 눈에 안 들어오니 조심해야 한다.
46년생 : 어물전 망신을 꼴뚜기 시키나 재주는 부릴 줄 아니 잘 다스 리라.
◇ 돼지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누구에게나 끼는 있다. 전문적인 끼는 좋은 예술을 창조하는 법이다.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때가 이른다. 하지만 나만의 재능인냥 자만하지 말라. 경거망동은 운기를 불길하게 하니 자중함이 길하다.
83년생 : 한가지 재주로 일어서 보자 오늘 하루가 즐거워진다.
71년생 : 나의 기량을 알아주도록 보여줌이 모든 일에 생기를 넣는다.
59년생 : 돼지꿈을 꾸었으니 복권은 이럴 때 한 번 사보는 것이다. 금전 운 길.
47년생 : 찾아가서 해결을 봐야지 기다리면 일을 그르친다.
충북 음성이 ‘품바 축제’ 준비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음성군 축제추진위원회는 ‘음성 품바 축제’를 다음 달 22일부터 25일까지 진행할 것이라고 11일 밝혔다.
올해로 15회를 맞이하는 품바축제가 지난 축제와 달라진 점은 음성 복개천 지하를 또 하나의 축제의 장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품바 축제는 설성공원에서만 열렸다.
이곳은 과거 시대의 아련한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공간으로 이용될 예정이다. 주막, 극장, 양품점, 이발소, 에코아트 등 옛 거리가 재현된다. 또한 ‘최귀동 품바와 함께하는 시간여행’이 100m정도 조성되는데 이곳에서는 각종 체험과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아울러 천변 야외무대에서는 품바와 7080 가요제 틈새 공연도 열린다.
주무대인 설성공원에서는 익살스러운 움막을 짓는 품바 움막 짓기 대회부터 전국에서 모여든 품바들의 공연 등 다양한 문화ㆍ체험 행사가 펼쳐진다.
열림식이 열리는 5월 22일에는 가수 태진아 특별공연, 품바왕 앵콜공연 등이 다채롭게 막을 올릴 예정이어서 관람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축제 추진 실무위원회는 이번 축제를 위해 지난 축제까지 가장 문제가 됐던 주자문제 해결에 중점을 뒀다. 매년 약 3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면서 주차 문제에 애를 먹었던 탓이다. 유엔 반기문 기념 광장 주차장, 음성종합운동장과 각급 학교 운동장을 임시 주차장으로 확보하는 등 주차문제에 대책을 마련했다.
◇ 쥐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손해보는 일이 많으니 주의하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타인의 의견에 귀기울일 것이니 혼자만의 속단은 화를 부르니 의견 수렴을 하기 바란다.
84년생 : 짜증나는 일이 많이 생기나 이겨내야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다.
72년생 : 남의 주머니를 믿으면 더욱더 힘들어지니 잘 견디어 내야 된다.
60년생 : 어디서 차용하더라도 이 일은 해결해야 뒷일에 문제가 없다.
48년생 : 자식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 힘든 일이 해결된다.
◇ 소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호사다마라 좋은 일에는 반드시 방해가 따르니 감수하고 진행하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진행이 빠르고 얻음도 클 것이나 방해가 있으니 차근히 진행함이 길 할 것이다. 자중하여 행하라.
85년생 : 새로운 아이디어 샘처럼 떠오를 때니 좋은 곳에 쓰도록 하라.
73년생 : 길가다 보석을 줍는 격이니 출입에 새로운 길이 보인다.
61년생 : 계약 건은 힘들고 재수는 좋으니 다른 쪽을 알아봄이 길하다.
49년생 : 명예는 오르나 재수에는 흠이 많아 구하지 않음이 마음이 편하다.
◇ 호랑이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재주는 곰이 돈은 엉뚱한 사람이 다가져가니 힘만 드는구나. 동분서주하여 일을 도모해 이익은 타인에게 돌아가니 허망히 하늘을 바라보는 격이라.
86년생 : 할 일 없이 서성대면 시간만 낭비되니 가던 길이나 열심히 가라.
74년생 : 귀인이 따로 없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도와주니 놓치지 마라.
62년생 : 근본을 한 번 돌아보면 무엇이 막혔는지 알 수 있어 열어가리라.
50년생 : 지금은 답답하나 인내하면 길이 보일 것이니 기다림이 상책이다.
◇ 토끼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망망 대해를 떠도는 배도 길이 있는데 사람의 갈 길이 없겠는가.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굳건히 맡은 바를 행하라. 길함이 유할 것이니 노력하지 않은 자에게는 어두운 구름만이 머물게 된다.
87년생 : 좋은 계획을 세워놓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니 세운 것만 못하다.
75년생 : 새로운 구상 나침반이 필요한 때이니 계획을 잘 세우면 길이 보인다.
63년생 : 재수가 생기다 마니 답답할 것이나 오후에는 조금 풀리니 기다 리라.
51년생 : 점심 약속이 틀어지니 기분이 안 좋으나 더 좋은 일이 생긴다.
◇ 용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손오공이 날아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 경거망동은 금물이다. 잔 꾀를 부려 어려움에서 모면하고자 하나 모두 발각되어 일신에 신용이 실추되니 망동은 삼가하고 중도의 길을 걸으라.
76년생 : 가슴을 활짝 열어 툭 털어놓고 이야기하면 해결책이 나온다.
64년생 : 마음에 있는 소리도 안 하면 상대가 모르니 속 시원히 해 보라.
52년생 : 상대를 칭찬하고 세워주면 술밥간에 먹을 것이 생긴다.
40년생 : 나를 내세우지 말고 일을 도모하면 얻는 것이 크다.
◇ 뱀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하려다 망설여 그만둔 일이 새로이 떠오르니 적당한 시기를 찾음이라.미루어 왔던 일이 실마리를 찾으니 길함이 있어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정진하라. 득이 있을 것이다.
77년생 : 불편한 마음을 가지면 재수가 오다가도 돌아가니 편한 마음을 갖자.
65년생 :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결정하라.
53년생 : 대궐 출입의 꿈을 꾸어 감투 쓸 일이 생기니 사양하지 마라.
41년생 : 나에게 좋은 일거리를 만들어주니 힘이 절로 나는구나.
◇ 말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사방을 돌아봐도 꽉 막혀 있어 불안하나 하늘이 도우니 힘을 얻는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어려움에 직면해 있어도 뜻하지 않게 실마리를 찾아 해결을 하게 될 것이다. 노력하는 자에게는 길함이 있음을 잊지 말라.
78년생 : 구관이 명관이라 버리고 돌아선 곳에서 연락이 오면 다시 가라.
66년생 : 안 된다고 실망 마라 바른 일이라면 하늘은 도움을 줄 것이다.
54년생 :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일을 처리하면 안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42년생 : 오랜 친구들과 한해를 보내는 기분으로 주석을 만들면 즐거우리라.
◇ 양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청탁을 받을 때가 좋은 것이다 거절도 기분 상하지 않게 하라. 일신이 높은자리에 유하니 여러사람들이 몰려 들어 부탁의 소리가 분분하다 자못 기분을 상할 일이 발생하니 처신을 잘하라.
79년생 : 언짢은 심부름도 하고 나면 훗날 나에게 득이 된다.
67년생 : 일을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처리하면 꼬일 일이 없어 모든 게 밝아진다.
55년생 : 옥에 티가 있어 나를 몰라주니 기분이 상하나 옥은 옥이다.
43년생 : 나를 찾는 사람이 많으니 겸손히 대하면 새로운 등용의 문이 열린다.
◇ 원숭이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심기 일전하여 다시 한 번 힘을 쓸 때가 되었으니 망동만 삼가라. 오뚜기 처럼 다시 일어나는 의지가 필요할 시기이니 실의에 자책하지말라. 운기란 돌고 도는 것이니 구름이 걷히면 밝은 빛을 보게 됨과 같다.
80년생 : 자책은 그만두고 일어서라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면 좋은 일이 생긴다.
68년생 : 심혈을 기울인 일이 허탕이나 탈기 말고 다시 도전하면 알아준다.
56년생 : 아직도 길은 많으니 좌절하지 말고 동쪽을 찾아보면 길이 있으리라.
44년생 : 체통은 뒤로하고 코미디를 하더라도 아랫사람의 인정받으면 좋으리라.
◇ 개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배속은 비었는데 주막은 멀어 그래도 주먹밥이 허기를 면해준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라 운기가 길하니 순순히 해결할 것이며 지체하다 때를 놓치기 쉬울 것이다. 매진하라.
82년생 : 괴로움에서 벗어나 두드리면 열릴 것이니 일단 두드려 보라.
70년생 : 집착한 만큼 일의 성과도 크니 공을 드려야 소득이 커진다.
58년생 : 기름진 고기로 배를 채워 만사가 눈에 안 들어오니 조심해야 한다.
46년생 : 어물전 망신을 꼴뚜기 시키나 재주는 부릴 줄 아니 잘 다스 리라.
◇ 돼지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누구에게나 끼는 있다. 전문적인 끼는 좋은 예술을 창조하는 법이다.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때가 이른다. 하지만 나만의 재능인냥 자만하지 말라. 경거망동은 운기를 불길하게 하니 자중함이 길하다.
83년생 : 한가지 재주로 일어서 보자 오늘 하루가 즐거워진다.
71년생 : 나의 기량을 알아주도록 보여줌이 모든 일에 생기를 넣는다.
59년생 : 돼지꿈을 꾸었으니 복권은 이럴 때 한 번 사보는 것이다. 금전 운 길.
47년생 : 찾아가서 해결을 봐야지 기다리면 일을 그르친다.
출처| 운세사랑(http://www.unselove.net)
글ㆍ사진| 정성기
오늘은 징글맘께서 토마토소스로 비빔밥을 해주라고 하셔 우선 먼저 만들어서 드리고 이 늙은 취사병은 그것도 이제 질리고 그래서 찬밥이 남았을 때 가장 쉽게 처리하는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은 라면에 말아 먹는 것과 볶아서 먹는 것인데 오늘은 김치볶음밥을 먹고 간편하고 맛있게 만드는 법을 소개하려고 해요.
김치볶음밥을 만들 때 그냥 밥과 김치를 바로 볶아도 되는데 그러면 볶음밥이 비빔밥과 죽밥 중간 수준으로 변하니 가급적이면 김치를 따로 볶는 것이 좋답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이고 머슴살이하려면 과붓집 머슴살이라도 김치볶음밥도 맛있게 만들어야 먹는 사람도 기분이 좋고 만드는 사람도 보람이 있는데 무슨 음식이든 "주고 싶은 마음과 먹고 싶은 마음"인데 먹는 사람이 "음!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면 요리하여서 주는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지요.
볶을 때 식용유보다는 버터나 마가린이 더 좋은 것은 김치가 부대찌개에서 변신과 같은 이치로 맛의 동서 교류라고 봅니다.
돼지고기나 쇠고기도 좋지만, 햄을 넣고 김치볶음밥을 만들면 더 맛있는 것 같고 햄과 버터 등이 김치와 음식의 속궁합이 잘 맞는 것 같은데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면 이혼한 부부들이 말하는 '성격차이'는 솔직히 한자 그대로 '성(性)의 격(格)'이 다른 것인데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부부의 밤일에서 차이가 심해 그런 것인데 한쪽이 변강쇠이면 반대가 옹녀면 괜찮은데 거꾸로 여자가 옹녀인데 남자가 꼴문만 적시는 비실이거나 남자가 변강쇠 수준인데 여자가 석녀면 곤란하니 따로국밥이 되다가 나중에 "우리는 사랑하지만 성격 차로 헤어진답니다." 하는데 다 알지요?
버터나 마가린으로 볶은 볶음김치 위에 햄을 이렇게 얹히고 잠시 더 볶습니다.
김치와 햄이 어느 정도 궁합을 맞춘 후에 이렇게 찬밥을 그냥 밥그릇에서 프라이팬에 패대기치듯 부어요.
볶은 김치와 햄과 밥이 어울려 지르박을 치고 블루스를 치다보면 맛있는 김치볶음밥이 이렇게 되니 정말 간편식이라고 보는데 어느 집이나 부인에게 남편이 첫째 돈을 제대로 가져다주고 둘째로 "여보! 허니! 흥흥"을 잘하면 부인 콧노래를 부르고 엉디 들썩들썩하는데 둘 다 못하면 설상가상으로 되고 돈이라도 벌면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여자들이 밖에서 대충 애인을 만들고 그냥 산다고 어느 드라마를 보니 그런 것 같아 그러려니 하고 웃었답니다.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이니 계란후라이를 하나 김치볶음밥에 얹혀서 먹으면 맛도 좋지만, 시각적 무슨 브래지어 광고 이미지 같기도 하고 그러니 계란후라이 하나도 정말로 무시할 수 없지요.
우선 김치볶음밥을 그릇에 이렇게 담으면 오늘의 요리가 완성되지만 그래도 한번 남은 기회를 보면 더 느낌이 다르답니다.
계란후라이를 이렇게 김치볶음밥 위에 얹히면 정말 맛있는 요리가 끝나지요.
이 비빔밥은 욕대학 총장님이신 징글맘이 주문한 것인데 마카로니와 햄을 토마토소스에 볶은 것에 밥을 비비고 이렇게 계란후라이까지 해드렸는데 "애비야, 참기름하고 구운 맛김을 다고." 하니 이놈이 또 돌겠답니다.
개꿈
풍기 오일장에서 보았던 막사발로
소백산자락의 허름한 주막에서
구수하게 생긴 여인이 따르는 막걸리로
목을 축이다가 코가 빨개진다.
아직도 사내라고 여인 분내를 맡으니
옷고름을 푸는 주막집 여주인에게
교합주(交合酒)를 따르며 하나가 되는데
저 멀리서 개 짖는 소리에 깬다.
2011년 2월 23일에 남긴 낙서 메모에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전국 도성 성곽길이다. 성곽은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현장학습이다. 거기에 운동효과까지 얻을 수 있어 일석삼조다.
서울에도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성곽길이 많다. 그중 한양도성 성곽길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서울 토박이라도 한양도성에 가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옛 서울 한양이 18.6㎞ 성곽으로 둘러싸인 성곽 도시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급속히 진행된 도시화·현대화로 인해 잊혀진 유적지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양도성 성곽은 수도권 지하철을 이용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트레킹 코스로는 안성맞춤이다.
한양도성 성곽은 현재 삼청동·장충동 일대와 숭례문·흥인지문·홍예문만이 남아 있다. 우리 조상들이 나라를 지키려는 호국정신이 깃든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조선시대 성 쌓는 기술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도 있다. 북촌 전망소와 옛 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북악산 정상 백악마루, ‘1·21 사태 소나무’ 등이 인기 코스다.
서울 광진구의 아차산성은 백제가 한강 유역을 처음 차지했을 당시 쌓은 성으로 현재 몇 개의 보루(지금은 초소)만 남아 있다. 그러나 아차산성은 1보루 위에 오르면 한강을 비롯한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요새다. 산성 규모는 크지 않지만 천혜의 입지와 빼어난 자연경관 덕에 일출 명소로도 손꼽힌다.
수원화성은 정조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명물로 총 길이 5.7㎞다. 대부분의 성곽이 그대로 보존·복원돼 성곽을 따라 걷기만 하면 완벽한 트레킹 코스다. 소요시간은 약 1시간으로 변화무쌍한 코스 덕에 지루함이 없다. 화서문 앞 이름 없는 주막과 먹자골목에서는 다양한 요리를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부산 금정구의 금정산성은 동서남북으로 총 4개의 문이 있다. 길이는 17.34㎞로 넓어 어떤 문으로 들어가 어떤 문으로 나오느냐에 따라 답사 코스가 달라진다. 게다가 산길 양쪽으로 음식점도 많아 식도락가 사이에 인기다. 산성막걸리와 흑염소불고기가 대표 먹을거리다.
충남 공주의 공산성은 백제의 도읍 웅진(현 공주)을 수비하기 위해 축조된 성으로 총길이 2.6㎞의 포곡형이다. 한 바퀴 둘러보는 데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며, 금서루에서 왕궁추정지와 쌍수정까지는 30분이면 충분하다. 성벽 길을 따라 펼쳐진 멋진 풍광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공주를 관통해 흐르는 금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관광객들이 몰린다. 4~10월 매주 토·일요일 금서루에서는 웅진수문병교대식이 열리며, 백제 의상 체험, 활쏘기, 백제 왕관 만들기, 백제 탈 그리기 등 다양한 체험 코너도 마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