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8일 ‘브라보 2018 헬스콘서트’에 다녀왔다. 입담 좋은 이윤철 아나운서의 소개로 이어 첫 순서로 김형석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백세를 눈앞에 두고도 젊은이와 비교해 손색없는 꼿꼿한 모습은 강연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닮고 싶은 소망 하나를 슬며시 얹어 놓기에 손색이 없다. 백세를 살아도 저리 건강할 수만 있다면!
이투데이 김상철 대표의 간략한 인사말이 있은 후 자생한방병원의 한창 원장과 예풍한의원 백태선 원장이 나와서 우리 몸의 건강과 관련한 강연을 했다. 특히 혈압으로 가족력이 있는 나는 백태선 박사의 혈압에 대한 얘기가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특히 혈압 약은 꼭 양약으로 챙겨 먹으라고 했는데, 한약으로 혈압을 어느 정도 낮출 수는 있지만 잡을 수는 없다는 것. 양약은 약값으로 한 달에 만원이면 가능하니 부담도 없다는 것이 백태선 박사의 추천 이유다.
1부 순서가 끝나고 잠시 휴식이 있은 후 2부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그 사이 근처에서 다른 동년기자가 인터뷰 중인 이윤철 아나운서의 영상을 조금 찍을 수 있었다. 운이 좋다. 스스로 60이 넘었다고 밝힌 그의 외모는 10년은 젊어 보였다. 비결이 궁금했지만 2부가 시작되어 인터뷰를 끝내는 바람에 영 알 수 없게 되었다.
2부에는 평균 나이 75세 시니어 치어리더 '낭랑18세'가 첫무대를 열었다. 공연을 보는데 얼마 전 쓰러져 요양병원에 계신 친정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이제 겨우 81세이신데…. 이어서 신계행의 ‘가을사랑’을 들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음색이 그대로였다. 김목경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나도 모르게 쓸쓸한 심정이 되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콘서트를 보면서 동년기자로서 영상을 찍다 보니 '그동안 이곳이 많이 익숙하고 편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설레는 마음으로 동년기자 신청을 하고 1차 합격을 거쳐 면접을 본 후 발표까지 마음 졸이며 손꼽아 기다리던 순간이 떠오른다. 사람이 처음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은 반성도 한다. 어설프고 정제되지 않은 실력으로 글 쓰는 현장에 겁 없이 뛰어든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막연히 글 쓰는 게 좋다고 기자라는 명함을 받아들고 과연 그 책임을 다했는가? 하고 말이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혼자만의 이야기는 그냥 적으면 된다. 하지만 기자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게 되면 읽을 대상, 즉 독자를 고려하는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 누가 읽을 것인지. 읽는 대상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글인지, 자기생각에 빠져 독자가 이해 못할 글을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을 생각하여 글쓰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쉽지 않으니 차일피일 미루게 되고 그러는 사이 시간만 하릴없이 보낸 것 같다.
경품추첨을 하는 중에 영상을 찍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신기하게 내가 초대한 분도 작은 행운을 잡았다. 영상을 찍느라 바로 인사를 못 건네고 끝난 후에 축하를 해주었다. 집 밥 활동가인 이 분은 치아를 보이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주변에 베풀기를 좋아하는 이 분. 무언가 주는 기쁨도 좋지만 우연찮은 곳에서 받는 기쁨도 만만치 않게 좋을 것이다.
돌이켜 보니 동년기자가 된 덕분에 경험하게 된 것들이 꽤 많다. 중년 이후를 건강하게 사는 분들의 좋은 기운을 받은 ‘브라보!2018헬스콘서트’에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외치며 1년 후에도 이 자리에 있기를 바라본다. 물론, 더 좋은 모습으로!
농구스타 박찬숙은 필자보다 한 학년 아래였기 때문에 그녀의 성장기를 통째로 외우고 있다. 박찬숙은 고1 때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후 한 시대를 풍미한 대한민국 최고의 농구스타였다. 특히 1984년 LA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농구 사상 전무후무한 은메달을 획득했을 때의 쾌거는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당시 천하무적 미국이 상대 팀이었기 때문에 결승전에 오르는 순간 이미 금메달을 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후 농구 대표팀이 세계 무대에서 빛을 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금은 간신히 세계 무대에 나간다고 해도 거의 꼴찌 수준이다. 박찬숙을 필두로 한 당시 한국 여자농구를 세계 언론들은 “예술이다”라고 극찬했다. 미국이나 유럽 선수들의 키는 대부분 2m에 가깝거나 그보다 훌쩍 넘는 선수가 많았기에 키 작은 한국 대표팀의 빠르고 조직적인 예술 농구에 세계가 반한 것이다. 박찬숙의 키는 188cm로 한국 선수 중에서는 큰 키였지만 서구 센터들과 비교하면 한 뼘 정도 작았다. 그러나 언제나 유연하고 빠른 몸놀림으로 상대 팀을 무력화해버렸다.
큰 키에 어울리지 않는 예쁜 외모 덕분에 당시 남학생들에게 배우 임예진과 쌍벽을 이루는 스타였다고 한량 이봉규가 치켜세우자 숭의여고 동창인 탤런트 김미숙도 있었다고 말을 거든다. 숭의여고는 예나 지금이나 농구의 명문이다. 지금도 우승을 한다며 모교 자랑도 잊지 않는다.
박찬숙은 필자 여동생과 행당여중 6개월 동창이었기 때문에 더욱 잘 기억하고 있다. 여동생은 중학교 입학 때 “박찬숙이 우리 학교에 들어왔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후 박찬숙은 농구를 위해 숭의여고로 전학했다. 축구에 차범근, 복싱에 홍수환, 프로레슬링에 김일 선수와 비견되는 역대급 농구스타가 박찬숙이다.
큰 키 때문에 외출을 싫어했다
비슷한 나이로 함께 이 시대를 살아온 이봉규가 슈퍼스타를 만나기 위해 WKBL Korea 3대3 국제농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고양 스타필드를 찾았다. 3대3 농구는 한국에선 이제 시작이지만 서구에선 인기종목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길거리 농구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박찬숙을 인터뷰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그곳으로 찾아갔지만, 3대3 농구 경기에 홀려버려 한참을 구경하느라 박찬숙과의 인터뷰는 나중이었다. 공격과 수비가 쉴 틈 없이 바뀌기 때문에 박진감이 넘쳤고, 남자 농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미가 덜하다는 편견이 깨져버릴 만큼 격렬했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아차!” 하고는 박찬숙을 찾기 시작했다. 본부석에서 하얀색 운동복을 입고 앉아 있는 그녀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큰 키도 큰 키이지만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배어나오는 포즈로 앉아 있는 박찬숙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도 그런데 현역 시절에는 얼마나 눈에 띄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요즘 한창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서장훈이 방송에서 “큰 키 때문에 사람들 눈에 잘 띄었다. 그 시선이 괴로워 외출도 꺼렸다”고 푸념한 적이 있다.
박찬숙을 마주해보니 서장훈 말이 실감이 났다. 174cm인 이봉규가 188cm의 박찬숙의 옆에 서니까 느티나무에 매미가 붙어 있는 느낌이어서 몹시 위축되었다. 그녀에게 잽싸게 의자에 앉기를 권하고는 내가 먼저 주저앉아버렸다. 앉아 있으니까 조금 안정이 되었다. 큰 키로 압도하는 분위기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명랑하고 예쁜 꽃중년 여성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위축된 나를 배려해서 편안하고 밝게 미소를 지으면서 너스레까지 떨어주었다.
알고 보면 프리티 우먼
그녀는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와는 달리 깜찍하고 귀여운 캐릭터의 여인이었다. “현역 시절에는 팬들이 어마어마하게 찾아왔는데 이제는 팬들을 찾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최근에는 야구나 축구에 비해 여자 농구는 인기가 없다. 평생 농구인으로 살아왔기에 예전의 농구에 대한 팬들의 인기를 되찾는 데 본인이 할 일이 있으면 어디든 찾아갈 계획이라는 것. “농구가 이렇다!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길거리 농구가 활성화되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주먹을 불끈 쥔다. 박찬숙은 엘리트 선수로 발탁되어 자신은 좋든 말든 죽기 살기로 농구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시대에는 농구를 좋아하면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대중화되어야 한다고 그녀는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3대3 길거리 농구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좋아서 취미로 하는 것이 생활체육이라는 얘기다.
예전에는 엘리트 선수들을 국가대표로 키우고 ‘죽기 살기’식으로 훈련을 시켜 경기장에 내보냈지만, 지금은 즐기는 스포츠를 해야 한다는 것. 생활체육에 대한 그녀의 사명감이 커 보였다. 그러면서 엘리트 선수인 박지수 선수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한다.
예전의 박찬숙처럼 박지수 선수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한국 여자농구의 대들보이자 10년을 이끌어갈 재목이란 찬사를 받아왔다. 198cm의 장신이면서 몸놀림도 좋아서 2018년 미국 프로농구 WNBA에서 활동하고 있다.
박찬숙은 고등학생 때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너무 받아 싫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과분한 대접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박지수가 예전의 저나 남자 선수들처럼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기자들 볼 때마다 얘기한다”면서 내게도 거듭 당부를 한다. 농구 발전에 대한 생각뿐이다.
당시 박찬숙은 세계적인 미녀 스타로 인기 절정이었다. 농구선수 중에서 제일 미녀를 뽑는 미스월드바스켓(7회 세계선수권대회)에 뽑힐 정도였다. 얼굴도 예쁘고 농구도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더욱 혼련에 집중했다는 그녀는 너무 힘들어서 눈물로 일기를 썼던 그 시절을 잠깐 회상한다. 눈물이 하도 흘러내려 일기를 쓸 수 없었던 날도 있었다고 한다.
재혼은 싫지만 남자 친구 하나 있으면 좋겠다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급히 화제를 돌렸다. “피부가 곱다, 열 살은 어려 보인다”면서 몸매와 미모 관리에 관해 물었더니, 숨쉬기운동 하는 것 외에 별로 하는 것이 없다고 재치 있게 받아친다. 그 틈에 어느새 동행한 내 아내와 살빼기와 피부 관리에 관해 수다를 늘어놓는다. 박찬숙은 운동할 때보다 5kg 이상 쪘다고 불만이지만, 은퇴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현역 선수 버금가는 몸매와 열 살 이상 어려 보이는 피부를 소유하고 있다. 아마도 긍정적인 마인드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연예계에 종사하는 아들과 딸에 관해 물었더니, “이럴 줄 알았으면 키 크고 운동 잘하는 남자 만나서 다섯 명쯤 낳았으면 그중에 최소한 두 명 정도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을 것”이라며 농담한다. “당시 인기가 너무 많아서 데이트 신청이나 프러포즈를 많이 받았을 텐데?”라고 떠봤더니 “운동선수 중매도 많이 들어왔다”고 솔직하게 대답한다. “어떤 선수? 누구냐?”고 집요하게 물어봤지만, “그건 비밀!”이라고 한다. 아마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사람이라서 그러는 듯싶다. 궁금했지만 그녀만의 추억을 훼방하고 싶지 않아 넘어갔다.
남편과 사별하고 단 한 번도 데이트를 해본 적이 없다 하길래, 대뜸 “내가 좋은 사람 소개해줄 테니까 재혼 생각이 있나?” 하고 물었더니 “재혼은 하기 싫고 그냥 남자 친구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주위에 편안한 아저씨는 많은데 전혀 느낌이 없다면서 소개를 하려면 본인보다 키가 크면 절대 안 되고 편안하고 대화하기 좋은 남자로 해달라고 한다. 그러고는 연하도 괜찮다는 말을 슬쩍 끼워넣는다. 자신이 키가 커서 어지간한 한국 남자들은 주눅이 든다고 말하기에 “외국 사람은 어때?” 하고 도발했더니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박찬숙은 큰 키만큼 시원시원했다. 한량 이봉규와 왠지 느낌이 통하고 코드가 맞아 보여 조만간 술자리를 갖기로 의기투합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고민이 깊어진다. 박찬숙과 어울리는 남자가 누구일까? 예쁘고 순진하고 명랑한 박찬숙. 60세에도 멋진 남자 친구를 만나 제3의 인생 행복하게 살 자격이 충분하다.
대체로 사람들은 국민연금공단(이사장 김성주, 이하 ‘공단’)을 국민연금만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알고 있다. 60이 되고부터 연금을 받는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올해로 31주년을 맞은 국민연금은 가입자 수가 215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절반에 이른다. 연금수급자 431만 명, 기금도 601조 원에 이르는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한 종합복지서비스 기관이다. 국민연금의 궁극적 목표는 ‘노후의 행복한 삶’이라는 사회적 가치 실현이다. 노후준비 서비스는 어쩌면 공단의 당연한 업무. 공단은 100세 장수 시대를 맞아 연금을 중심으로 신중장년과 시니어를 위한 노후준비서비스팀을 운영하고 있다. 공단의 각 지역본부에서는 국민연금 관리에 덧붙여 국민의 노후준비를 위한 “NPS 아카데미”를 2017년부터 개설했다. 첫 프로그램으로 작년 7월 한 달여 간 ‘작가탄생프로젝트’ 진행한 바 있다. 이를 비롯해 ‘신중년 글쓰기 마라톤’, ‘1인 크리에이터 과정’, ‘비행(飛行) 신중년 프로젝트’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으로 은퇴자의 구미를 잡아끌었다. 적당한 놀이터가 없는 신중년들에게 문화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즐겁고 보람과 의미를 함께 할 수 있는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신중년을 위한 문화 플랫폼 특화 서비스
국민연금관리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백수현 본부장(이하 북부본부)은 ‘노후준비 서비스가 공단의 소명 같은 것’이라고 밝혔다.
“공단 사업의 기본은 연금관리입니다. 더 큰 틀에서 봤을 때 국민들의 안정된 미래 노후 생활에 기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부본부에서 ‘신중년 특화서비스’를 2017년부터 시작했습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기여하는 참신한 노후준비 롤모델로 발전함에 미래의 희망이 보였습니다.”
중단 없는 핵심 사업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백 본부장은 덧붙였다. 공단 업무의 블루오션으로 나아가 글로벌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했다.
“국민연금 관리의 근본 취지를 살리는 광의의 사업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구체적 목적은 첫째, 역량 있는 시니어가 노후를 스스로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둘째, 수요자 중심의 프로그램 기획으로 자발적 노후 준비 서비스 희망 고객을 발굴하여 사업 추진 효과를 높인다. 셋째, 국정과제의 하나인 ‘신중년 일자리 보장 및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한 신중년 노후준비 교육 특화 사업으로 일자리 및 커뮤니티 활동 지원 서비스를 연계 추진한다. 지금까지 ‘작가탄생프로젝트’와 ‘글쓰기 마라톤’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쓰게 하는 작가탄생프로젝트
첫 번째 아카데미 프로그램이 바로 작년 여름내 진행된 ‘작가탄생프로젝트’였다. 방법과 내용이 신선하고 파격적이었다. 많은 사람이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를 의아해하거나 불가한 일로 단정 짓거나 반신반의했다. 일주일에 2회 강좌와 글쓰기 지도를 통하여 한 달 동안에 참석자 모두가 각자 1권의 책을 쓰는 프로그램이었다. 참여자 40명 중 37명이 그 기간 안에 집필을 마치고 37권의 책을 출간했다. 한 달 안에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출간하는 참으로 어려운 일로 신중년의 가능성을 보여준 프로그램이 됐다. 그러한 성과를 안고 뒤이어 2018년도에 2기 작가탄생프로젝트를 출범시켜 가능성을 재차 확인했다. 1기와 마찬가지로 한 달에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쓰는 프로그램으로 43명이 참가하였고 그중 36명이 총 6,352페이지의 책 38권을 만들었다. 수강생 김도영 씨의 “은퇴 그리고 아름다운 삶”, 곽정숙 씨의 ”나를 위한 여행” 황선호 씨의 “황 첨지의 독일 유랑기” 등이 있다. 수강생들의 참가 소회에서 프로그램의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다. 강정석 씨는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시점에 만난 “작가탄생프로젝트”는 새로운 도전의 출발”로 표현했다. 신영균 씨는 이렇게 소회의 글을 남겼다. “이 변화의 와중에 덤으로 성찰의 기회까지 주어졌다.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고 말이다.
다양한 신중년 문화 플랫폼 성공리에 안착
이러한 여세를 몰아 공단의 북부본부는 지난 5월 5일 일정으로 책 한 권을 쓰는 “글쓰기 마라톤 과정”을 새로 열었다. 2018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마라톤 거리와 같은 총 42.25시간에 걸쳐 글을 온종일 집중적으로 쓰게 했다. 33명이 참가하여 23권의 책을 완성됐다. 권수연 씨의 ‘마르지 않은 그리움과 사랑이 담긴 화수분’, 장의영 씨의 ‘더 곱게 살즈아’, 조왕래 씨의 ‘브라보마이라이프’, 김종억 씨의 ‘별 하나 꿈 하나’ 등이다. 시니어에 불가능은 없음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북부본부는 여행을 콘텐츠로 하는 ‘비행(飛行) 신중년 프로젝트’를 2017년 11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37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해 여행 커뮤니티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도보 여행가 황안나 씨가 함께해 ‘여행하고 일하며 나이 들기’가 주요 과제다. 매달 한 번 국내외 도보와 여행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동영상 시대에 발맞춰 1인 크리에이터을 위한 과정을 열기도 했다. 2018년 2월 2일부터 4월 13일까지 매주 금요일에 총 30시간 일정으로 23명이 참가하여 인기리에 진행됐다. 유튜브 채널 기획, 촬영, 편집 과정이었다. 동영상을 통한 새로운 후반생 활기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은퇴자 1000만 명 시대다. 변화무쌍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신중년들에게 삶의 보람과 가치를 창출해갈 수 있는 신중년 문화 플랫폼 구축은 크게 기대되는 사업으로 보인다. 특히 고령 사회에 접어든 시점에서 희망의 빛으로 다가옴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소일거리가 없어 고민하는 시니어에 적당한 놀이터 플랫폼으로 여겨진다. 보람 있는 후반생을 꿈꾸는 시니어가 함께하면 좋은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다.
한 번쯤은 들어보고, 한 번쯤은 이뤄야겠다고 다짐하는 버킷리스트. 그러나 막상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애써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도 어떻게 이뤄가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매달 버킷리스트 주제 한 가지를 골라 실천 방법을 담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앞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시니어를 대상으로 진행한 버킷리스트 서베이에서 4위를 차지한 ‘외국어 배우기’에 대해 알아봤다.
도움말 박현영 수퍼맘북스·지니앤토비 대표
학생, 직장인 시절 외국어는 시험이나 취직을 위한 통과 의례였을 것이다. 그러나 입시와 취업 경쟁에서 벗어난 중장년의 경우, 취미 또는 도전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이가 많다. 외국어 교육 전문가 박현영 수퍼맘북스·지니앤토비 대표는 “시니어가 젊은 시절 외국어를 배울 때는 주로 문법 위주였다. 때문에 중년 이후에는 생활 영어를 취미 삼아 하거나, 해외여행을 위한 실용 회화를 공부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또는 외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준비하거나 학창 시절 배우지 못한 것에 한을 느끼시는 분들도 외국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고 설명한다. 배우고 싶은 이유가 다양한 만큼, 그 실천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저마다 수준 차이가 있겠지만, 가장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영어 초보자들을 위한 조언을 담아봤다.
독학보다는 맨투맨 회화가 효과적
박 대표는 “시대가 바뀌면서 인터넷 강의나 스마트폰 앱 등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도 다양해졌지만, 아무래도 시니어는 아날로그 세대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익숙한 방법대로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외국어를 배우기 전 스마트폰 앱 사용에 능숙해져야 하고, 컴퓨터나 휴대폰 화면을 오래 보면 눈과 몸이 쉽게 피로해져 시니어에게는 무리가 있다는 것. 아울러 문법보다는 회화를 목표로 공부하는 경우가 많아 소싯적 달달 외우듯 독학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덧붙인다. 박 대표가 적극 추천하는 것은 주민센터나 복지관 등 시니어만을 대상으로 한 강좌다. 일반 학원 강좌는 입시생이나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진도도 빠르고 공부량도 버거울 뿐더러 다른 학생과 수준 차이가 나면 위축되기도 한다. 반면 주민센터나 복지관 수업 등의 경우 가격도 저렴하고, 시니어의 패턴에 맞춰 수업 스케줄과 목표를 잡아 차근차근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외국어 초급 딱지 떼기 단계
[step1] 필수단어 100개 익히기
아이들이 처음 말을 배울 때 그림 카드에 적힌 이미지를 보고 단어를 말하듯,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100개를 그림과 함께 익혀보자. 이때 발음이나 스펠링 등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음식, 가족, 동물 등등 장르별 6~7개 정도 단어이면 충분하다. 먼저 100개의 단어가 친숙해졌다면 수준에 따라 200개, 300개까지 늘려간다. 너무 쉽지 않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쉬운 것부터 즐겁게, 꾸준히 그리고 익숙해지는 것을 외국어 배움의 목표로 여겨야 한다.
step2] 필수표현 50개 익히기
박 대표는 다수의 외국어 관련 서적을 집필한 경험으로 볼 때 ‘안녕’, ‘고맙습니다’, ‘잘 가요’ 등 유용한 필수 표현은 50개 남짓으로 정리된다고 말한다. 앞서 기초 단어를 익히듯 글자나 발음보다는 표현 자체에 익숙해지는 것에 중점을 두고 공부한다. 한두 단어로 이뤄진 짧은 문장이라도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라면, 막상 써야 하는 순간에 잘 생각나지 않는다. ‘thank you’, ‘sorry’처럼 굳이 머리로 생각해내지 않고도 곧바로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올 정도로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step3] 글자 익히기
아이들이 먼저 ‘엄마’라고 말하고, 나중에 ‘엄마’라는 글자를 배우는 것과 같은 과정이다. 입에서 익숙해진 단어와 표현을 글로 배웠을 때 더 재미있고 가속도가 붙는다. 영어라면 알파벳, 일어라면 히라가나 등을 익히는 게 이번 단계의 목표다. 앞서 두 단계가 없이 바로 글자 쓰는 법을 배우면 철자와 단어의 뜻을 한꺼번에 익혀야 한다. 먼저 단어와 표현이 익숙해지면, 직관적으로 그 의미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글자를 익힐 때도 효율적이다.
step4] 문장의 뼈대 익히기
마지막 단계는 문장의 패턴을 외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I want it’(나는 그것을 원한다), ‘I want coffee’(나는 커피를 원한다), ‘I want love’(나는 사랑을 원한다) 등 ‘I want ~’(나는 ~를 원한다)라는 기본적인 패턴을 외우고 그동안 외운 단어를 접목하는 단계다. 반복해서 응용하고 그것이 익숙해지면 말로 문장을 내뱉는 힘을 키울 수 있다. 여기까지가 초보자가 목표로 할 수 있는 단계이고, 약 1년 정도 시간을 두면 좋다.
영어가 아니라면? 일본어에 도전!
대부분 외국어를 배운다 하면 1순위로 영어를 떠올린다. 이미 영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라면 또 다른 언어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이다. 중장년의 학창 시절에 남자는 독일어, 여자는 프랑스어를 배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익히는 것도 좋겠지만, 40~50년 전 이후로 전혀 공부하지 않았다면 새로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언어는 익힌 뒤 자주 활용해야 입에 붙고 수준이 올라가는데, 아무래도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여행하거나 언어를 접할 기회가 적은 편이다. 이에 박 대표는 비교적 활용도가 높은 일본어나 중국어를 추천한다. 특히 일본어의 경우 발음이나 어순, 문법 등이 비슷해 공부하기가 비교적 수월한 편이라고. 물론 일본어를 포함한 다른 외국어 역시 말부터 익히고 글로 쓰는 과정을 따를 것을 권한다.
[Tip] 소리의 바다에 빠져라
외국어에 익숙해지려면 자주 그 나라 언어를 소리로 접하는 게 중요하다. 때문에 팝송을 듣거나 미국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며 공부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팝송의 경우 시적인 표현이나 슬랭(slang: 비속어, 은어)이 많고, 드라마와 영화 대사는 줄임말이나 유행어 등이 많아 초·중급 단계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그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영어 동요를 불러보면 좋다. 따라 부르기도 쉽고, 거의 직역으로 뜻이 전달돼 노래를 통해 단어와 표현을 익히기에도 효과적이다. 어린 손주와 놀아주며 함께 영어 동요를 익혀보는 건 어떨까?
애초부터 걷기와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고비’라는 말과 맞닿아 있던 삶. 다양한 운동 방법이 세상에 넘쳐나지만 걷는 게 그에게는 최적, 최상, 최고의 선택이었을 게다. 극복을 위한 아주 원초적 접근 방법.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뎌 무조건 길을 나선다. 걷는다. 여행한다. 궁극의 선택 안에서 자유를 찾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내가 목소리만 좋았으면 배우가 됐을 거예요!(웃음)”
사진을 찍는 동안 오십 넘은 중년의 얼굴이 어린 소년처럼 한껏 생기가 넘친다. 모델로서 이런 포토제닉 또한 오랜만이다. 기본적으로 재밌고 대화하는 상대를 편하게 해준다. 자신에 대한 사랑까지 충만하다.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걷기에 여행 이야기가 더해지니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다. 최근 ‘마흔 넘어 걷기 여행’이라는 책을 낸 걷기 여행 전문가(?)이자 강동경희대학교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김종우(金鍾佑·53) 교수를 만났다.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세계의 걷기 성지까지 두루두루 섭렵했다.
“제 나름대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걷기 여행에 관한 책을 쓰게 됐습니다. 제 삶의 철학 중 하나죠. 여행을 가더라도 좀 걷자! 대학생인 딸도 그렇고 저보다 어린 직장인, 병원 내 레지던트들이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도 그렇고. 좀처럼 재미가 없어요. 안타까워요. 어디를 가도 장소를 점처럼 찍어서 가요. 마치 사진작가처럼, 먹는 것을 찾아 떠난 셰프처럼 그렇게요.”
선을 연결해 영토를 확장하듯 면을 만들고 입체적인 그림을 그려가는 게 걷기 여행이다. 돈도 적게 들고 좋은 것도 많이 볼 수 있다. 여행자 자신의 관심사를 명확히 알게 해주기 때문에 걷기 여행이 매력적이라고..
“걷기는 인간의 본능적 행동이자 의도하는 바를 이루게 하는 행위이죠. 여행은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서 진짜 나를 찾아가는 작업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걷기와 여행이 결합하면 떠나는 순간부터 마칠 때까지 여정 속에 푹 빠져서 자기 자신을 찾고 새로운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걷기에 의사의 해석이 더해지다
걷기 여행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걷기가 뭔지 들어보기로 했다. 걷기에는 운동이라는 요소와 철학이라는 요소가 맞물려 있다고 김종우 교수는 말한다. 걷기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육체적인 성취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걸으면서 여행하고, 세상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문화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는 단순하지만 놀라운 행위가 걷기다.
“한 일간지에서 걷기 두 시간 해봤자 운동 효과 제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요즘 쓰고 있는 문화일보 고정 칼럼에 ‘걷기는 굉장히 중요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숭고한 철학이 담긴 활동’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걷기를 그냥 운동이라고만 생각하면 그건 걷기가 아니죠.”
스트레스와 화병 전문가인 김종우 교수는 오랜 기간 한 월간지에서 주최하는 건강캠프 등에서 상담과 주치의를 맡아왔다. 한의학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 치료의 가장 좋은 조건이 자연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 대부분 활동량이 많이 떨어집니다. 가장 큰 해결책이 어떻게 하면 활동량을 늘리느냐 하는 점이죠.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 자연만 한 좋은 환경은 없죠. 물론 자연에서 어떤 방법을 쓸 것인가도 중요하겠지만 조용히 걷고 사색하는 것만으로도 심적 치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걷기 여행이 주는 매력을 말하다
치유 프로그램이나 트레킹 스태프로 참여할 때마다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참여자들과 토론을 하고 강의도 한다. 선정된 주제에 관련한 책들을 먼저 많이 읽어두고 그 느낌을 걸으면서 계속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스태프로 참여할 때는 걷기와 관련해 훨씬 더 많은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걷기 여행의 콘셉트을 제대로 가지고 가고 싶어서요.”
문득 걷기 여행을 예찬하는 김종우 교수가 이렇게 스스로 준비해 참가자들과 철학적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부담 되지 않는지 물었다. 예전부터 자신도 비슷한 방식으로 여행을 해왔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나이 오십이 넘으면 내가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얻은 것을 전해야죠. 선생의 즐거움은 가르침을 주는 것이잖아요. 가르침의 즐거움이 없으면 선생을 할 필요가 없죠.(웃음)”
김종우 교수는 일반인과 함께 참여하는 걷기 프로그램을 즐긴다.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걷고 명상하는 일을 반복하지만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저는 정말 굉장한 스태프예요.(웃음) 아침 6시부터 명상이나 새벽 산책을 해요. 이때는 주로 육칠십대 분들이 참여합니다. 그리고 두 시간 걷죠. 아침식사를 하고 한나절을 걷고 점심을 먹고 또 걸어요. 저녁식사 후에는 허리나 무릎에 침을 놔줘요. 물집도 다 따주고요. 그러고 나서 오후 8시, 9시쯤 되면 밤 산책을 나가요. 그때는 사오십대가 많이 가세요. 대신 이 사람들은 다음 날 새벽에 절대 안 나와요. 저는 다시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걷죠. 풀타임으로요.(웃음)”
그렇다면 하루 중 가장 걷기 좋은 시간은 언제일까? 김종우 교수는 이른 아침 통이 트기 시작할 때를 꼽았다. 도시건 자연이건 가장 근본적인 원초적 에너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새벽이라는 것이다.
“가장 큰 접점은 해 뜰 때거든요. 여명이 딱 깃들 때 도시와 자연은 정말 달라요. 자연은 특히 이탈리아의 돌로미티 같은 곳에 가면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요. 새벽에는 그 도시의 풋풋함이 느껴집니다. 자연의 기운을 그대로 내 몸에 받아들이는 것이 명상인데 새벽에는 장애 요소들이 없잖아요. 새벽 산책은 도시건 자연이건 각성, 깨달음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에요. 만약 도시여행이라면 해가 뜨고 나서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카페에 들러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 하나 딱 먹으면 최고죠. 그리고 새벽에 걸으면 두 배는 더 여행할 수 있고요.”
모두가 말린 히말라야에 오르다
걷기 프로그램 주치의로 활동하다 급기야 히말라야 트레킹에까지 참여하게 됐다. 히말라야는 김종우 교수가 가서는 안 될 장소였다.
“저는 세 살, 일곱 살 때 심장병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뛰지를 못하니까 체육시간에 맨날 낙오됐어요. 30대 중반에 부정맥 증상이 나타나서 반복적으로 응급실에 갔었고 중환자실에도 들어갔다 왔고요. 그런 저에게 히말라야가 다가왔습니다. 무조건 간 거죠.”
이런 제안이 없으면 언제 또 히말라야에 가보나 생각했다. 심장병 주치의가 말렸지만, 비아그라를 처방받아 네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이다.
“도보 코스도 굉장히 좋았고 마지막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모든 것이 너무 좋았어요. 1000m에서 2000m, 3000m 갈 때 힘들어지는데 산은 올라갈수록 에너지가 생겨요. 반복적인 리듬으로 계속 가다 보면 걷는 게 쉬워지거든요. 트레킹을 아주 재밌고 멋지게 다녀왔죠.”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사지 보행을 하면서 힘들게 올라갔다는 고백(?)을 받아냈다. 그 후로 스페인 순례자의 길인 산티아고를 비롯해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도로와 터키의 리키안 웨이 등 세계 유수의 트레킹 코스를 다녀왔다. 그렇게 걸어 다니면서 꼭 지키는 법칙이 있는데 밤 12시에는 반드시 잔다는 것.
“일과를 마치고 나면 마을 사람들이 다니는 선술집에 가요. 맥주 한 병 혹은 와인 두 잔이 딱 적당하죠. 그리고 함께 걸었던 사람들과 여행 이야기를 해요. 사람들이 똑같은 길을 온종일 걸었다고 칩시다. 그럼 다 똑같은 거만 볼까요? 얘기를 하다 보면 훨씬 더 다양한 느낌이 와요. 그러고는 밤 12시에 취침에 들어가는 거죠.”
가족과 함께 나서는 길
꼭 프로그램을 통해 걷기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걷기 여행 조기교육을 받은 대학생인 아이들과 아내가 함께 할 때도 있다. 작년에는 호주의 그레이트 오션 워크를, 올해는 일본 순례자의 길인 오헨로에 다녀왔다.
“그레이트 오션 워크는 100km인데 3일 동안 60km를 걸었습니다. 어렸을 때도 아이들이 배낭 메고 10km, 20km 걸었거든요. 일본 시코쿠에 1400km의 오헨로 길이 있어요. 88개의 절을 지나는 순례길이죠. 한 번 갔을 때 다 걸으려면 45일은 걸립니다. 저는 직업도 있고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딱 10년 계획을 세웠어요. 1년에 일주일 정도 120km만 걷자. 아내하고 아이들 다 데리고 갔어요. 그런데 기특하게도 우리 애들은 걷자고 하면 걸어요.”
물론 가족들과 가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계속 걷기보다는 도시 여행도 한다. 오헨로 길 여행 때는 이틀은 걷고 이틀 노는 방식으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다음 달에도 오헨로 길을 가는데 아내와 6일 내내 걷기로 했다.
“아내가 날 좋아하니까요.(웃음) 나 혼자 즐기는 게 억울해서 가는 거겠죠. 그런데 아내가 대단한 것이 10년 동안 그 길을 걸을 계획이라니까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떠날 때마다 제안하겠지만 아마도 아내랑 함께 걷게 될 거 같아요.”
생사를 넘나드는 삶 속에서 얻은 깨달음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네 번의 전신마취를 했다. 그때 깨달았다. 수술대에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굴곡진 길 또한 쉼 없이 걸었다. 명상하고 마음을 다잡고 하는 건 벌써 오래전에 끝냈다는 김종우 교수.
“삶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봤자 달라지지 않아요. 문득 떠오르는 생각 속에서 ‘내가 이렇게 살아왔구나!’ 하고 한두 번 씩 깨달으면 됩니다. 내면의 뭘 찾겠다고 해봤자 다 내 삶이거든요.(웃음)”
올 초에도 몇 번이나 힘든 일들을 겪었다. 1월에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번졌다. 수술 도중에 담석이 발견됐지만 곧바로 제거하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심장이 약해 전신마취가 쉽지 않았던 것. 결국 일본 오헨로 길 여행을 다녀온 후에 담석 제거를 했다.
“간단한 수술이기는 한데 일본 트레킹 가서 아이들한테 그랬어요. 아빠는 언제 갈지 모른다고요. 너희들 대학교까지 보내고 잘 키워놨으니까 언제든 혼자 살 수 있겠다고 말했죠. 물론 술 먹으면서 잘 풀어서 대화했습니다. 우리가 걷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자연과 교감을 하는 것이죠. 건강한 삶을 추구하지만, 또 언제든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니까요. 자연의 이치 같은.”
가보고 싶은 길이 있냐고 물었다. 어디를 가도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회 때문에 미국 미니애폴리스에 갔을 때도 3시간씩 걸었어요. 어디가 중요한 것이 아니죠. 걸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습니다. 적당한 장소에 에스프레소와 크루와상이 있으면 정말 끝내주겠죠.”
벚꽃이 만발하는 4월, 이달의 추천 전시·공연·행사를 소개한다.
진해군항제
일정 4월 1~10일 장소 중원로터리 및 진해 일대
국내 최대의 벚꽃축제로 손꼽히는 ‘진해군항제’가 개최된다. 벚꽃 명소인 여좌천, 경화역, 진해탑 등에선 36만 그루의 아름다운 왕벚나무를 감상할 수 있다. 축제 동안에는 평소 출입이 어려운 해군사관학교, 해군진해기지사령부의 영내 출입이 가능하며 해군복 입기, 요트크루즈 승선 등 다양한 체험 행사가 열린다. 특히 금요일 저녁과 주말에 개최되는 군악의장페스티벌은 진해군항제에서만 볼 수 있다.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
일정 4월 3~8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당신은 지금 바비레따에 살고 있군요’는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공연으로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없앴다는 점이 특징이다.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중년 여성들에게 아직도 아름답고 열정을 내뿜을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지난 6년 동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민참여형예술프로젝트,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신나는 예술여행 등의 사업에 선정됐다.
돌아온다
일정 4월 5일~5월 6일 장소 드림아트센터 2관 더블케이씨어터 출연 강성진, 정상훈, 김수로, 김곽경희 등
포스터에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연극 ‘돌아온다’는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초등학교 여교사, 집 나간 필리핀 아내를 기다리는 청년, 욕쟁이 할머니 등 후회와 미련이 많은 주인공들의 사연을 통해 기다림과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배우 김수로와 강성진을 필두로 다양한 연극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정상훈, 김로사, 김사울 등이 참여한다.
아드만 애니메이션 – 월레스&그로밋과 친구들
일정 4월 13일~7월 12일 장소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아드만 스튜디오’는 영국의 유명한 클레이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드만 스튜디오의 대표작 ‘윌레스와 그로밋’, ‘숀더쉽’, ‘치킨런’ 속의 주인공들을 만나볼 수 있다.
2018 앙상블마티네
개막 4월 2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지휘 윤승업 연주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단
모차르트 시리즈를 목관, 현악, 금관, 심포니 총 4가지 테마로 나눴다.
이번 첫 번째 시리즈에서는 모차르트 작품 중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1악장’이 연주될 예정이다.
사랑해요, 당신
일정 4월 28일~6월 3일 장소 KT&G상상마당 대치아트홀 출연 이순재, 장용, 정영숙, 오미연 등
연기 베테랑 이순재, 장용이 남편 '한상우' 역을, 정영숙, 오미연이 아내 '주윤애' 역을 맡았다. 연극 '상랑해요, 당신"은 평범했던 부부에게 치매라는 불청객이 찾아오면서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렸다.
유튜브 채널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 구독자 수 36만 명 돌파, 인기 동영상 조회 수 200만 뷰를 기록하며(2018년 2월 기준) 남다른 메이크업 비법을 전수하는 71세 뷰티 크리에이터 박막례 씨. 그녀의 메이크업 노하우를 따라가면 긴 영어로 뒤섞인 화장품 이름도, 까다로운 메이크업 테크닉도 애써 알 필요 없다. 내가 좋아하는 느낌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면 그뿐. 자신 있게 두드리고 바르다 보면 솜씨는 자연스레 늘고 미모는 물오를 것이다.
도움말 박막례 크리에이터 사진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 유튜브 영상 캡처
◇ 메이크업 순서
기초화장품(스킨, 로션 등) → 자외선차단제 → 프라이머 → 메이크업베이스(CC크림, BB크림 등) → 파운데이션 → 컨실러 → 파우더(루즈파우더, 파우더팩트, 노세범파우더 등) → 하이라이터 → 섀딩 → 아이브로우(눈썹) → 아이라이너 → 마스카라 → 치크(블러셔) → 립(립틴트, 립스틱, 립글로스 등)
◇ Step 1 맨들맨들 동안피부 만들기
기초화장품을 충분히 흡수시킨 뒤 베이스메이크업 제품을 발라야 들뜸이나 밀림 현상을 막을 수 있다. 피부가 건조하면 베이스메이크업 전 미스트를 뿌려 수분을 더하는 것이 좋다. 시니어의 경우 피부 노화로 인한 색소침착과 잔주름이 있어 베이스메이크업 단계에 신경 써야 곱고 환한 피부를 연출할 수 있다.
퍼프로 ‘팍팍팍’ 두드려라 베이스메이크업 제품을 손으로 문질러 바르는 것보다 퍼프(puff)로 두드려 사용하면 밀착력이 높아진다. 라텍스, 쿠션, 실리콘 등 다양한 퍼프가 있으니 취향에 맞게 골라 사용해보자. 퍼프에 미스트를 뿌리면 촉촉하게 피부 톤이 정돈된다.
‘프라이머’로 피부를 매끄럽게 늘어난 모공, 잔주름 등으로 피부 표면이 울퉁불퉁하다면 프라이머를 이용해보자. 모공과 주름 사이를 메워 피부 결을 고르게 만들고 파운데이션의 밀착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 Step 2 메이크업으로 초간단 성형하기
메이크업을 잘하면 피부가 좋아 보이는 것 외에도 성형과 다이어트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물론 실제 성형이나 살을 빼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섀딩을 이용해 얼굴 윤곽을 따라 음영을 잘 표현하면 코도 오뚝하고 턱선도 갸름해 보인다.
‘섀딩’으로 오뚝하고 갸름하게 볼륨 없이 푹 꺼진 얼굴 때문에 고민이라면 섀딩을 적극 추천. 이마, 콧대, 광대 등 볼록한 부위는 밝은 톤으로 턱선이나 콧대 양옆 등은 어두운 톤으로 발라 준 뒤 퍼프로 고르게 두드리면 입체적으로 얼굴을 표현할 수 있다.
‘컨실러’로 무결점 커버 컨실러는 기미나 주근깨, 잡티 등을 가려주는 효자 아이템이다. 커버력이 높아 특정 부위에 소량만 사용하는데 눈썹 메이크업에 활용 가능하다. 눈썹을 잘못 그렸거나 문신이 흐릿하게 남아 있는 경우 컨실러를 이용해 가릴 수 있다.
◇ Step 3 블링블링한 마무리
이른바 ‘개기름’이라고도 하는 얼굴 유분은 자칫 관리를 잘못하면 메이크업 제품이 밀리고 색조가 얼룩덜룩 번질 수 있다. 기름기를 잡는 노세범파우더로 마무리한 뒤 하이라이터로 윤기를 더해보자. 여기에 글리터 아이섀도를 바르면 화사함이 배가 된다. 의상과 어울리는 색깔의 립 제품으로 마무리하자.
아이섀도는 다양하게 레이어드 한 가지 색 아이섀도만 바르기보다는 여러 색상을 겹겹이 발라보자. 브러시를 써도 좋지만 손으로 이용하면 더 쉽고 자연스럽게 색을 혼합할 수 있다. 색 조화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스트레스받지 말 것. 닦아내고 다시 하면 그만이니까!
메이크업의 하이라이트 ‘하이라이터’ 얼굴에 유분을 잡으려고 노세범파우더나 매트 타입 제품을 과하게 바르면 피부가 건조하고 푸석해 보인다. 이때 하이라이터를 이용해 이마, 광대, 콧등, 턱 등을 큰 브러시로 가볍게 쓸어주면 자연스럽게 윤기를 더할 수 있다.
◇ mini interview 박막례의 ‘참 쉬운 메이크업’ Q&A
메이크업 제품은 주로 어디서 구입하나요?
요즘 화장품은 어려워서 뭐가 뭔지 몰라요. 그럴 땐 직원 추천을 받기도 해요. 또 백화점이나 길거리(로드숍)나 다를 거 없이 제품이 다 좋은 것 같아요. 들어가서 모르는 거 물어보면 잘 안내해주니까 걱정 말고 한번 가보세요.
어떻게 하면 ‘화장이 잘 먹게’ 할 수 있나요?
그냥 팍팍 두들겨 바르는 것이 내 비밀이여. 잔주름도 팍팍 때리면 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메이크업하기 전에 기초제품을 잘 바르고, 무엇보다 각질제거도 잘해야 들뜨는 게 없어요.
섀딩을 해보니까 어떻던가요?
손녀가 알려줘서 섀딩을 처음 써봤는데 콧대 양옆이랑 턱을 발라주면 코도 오뚝해 보이고 갸름하니 좋더라고요. 잘못 바르면 얼룩덜룩해 보이니까 골고루 두드려서 발라주세요.
시니어들에게 권하고 싶은 립 컬러나 제품은 무엇인가요?
자기가 바르고 싶은 거 발라요. 나도 내가 바르고 싶은 거 바르는 거여. 손녀가 이거 발라봐, 저거 발라봐 해도 난 내가 원하는 거 발라요. 예쁘게 바르고 “음마음마” 여러 번 해봐요.
시니어들이 갖는 메이크업 고정관념은 무엇일까요?
모르겠네요. 고정관념은 우리한테 있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들한테 있는 거겠지.
나만의 메이크업 꿀팁이 있다면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감을 가지면 더 예뻐져요. 이게 내 팁이야. 내 얼굴에 내 맘대로 화장하는데 너무 스트레스받거나 남들 신경 쓰지 마세요. 자신 있게 이것저것 한번 해봐요. 아침에 거울 앞에 앉는 게 재밌어지니까!
◇ 新메이크업 제품 사전 ㉠ to ㉭
㉠ 글리터 : ‘반짝반짝 빛나다(glitter)’라는 뜻으로, 화려한 컬러의 펄 제품
㉡ 노세범 : 피지(sebum)가 없다(no)는 뜻으로, 유분을 잡아주는 제품
㉢ 더마코스메틱 : 피부과학(dermatology)과 화장품(cosmetics)의 합성어로 의사가 만든 또는 의사에게 처방받은 화장품이라는 뜻
㉣ 루즈파우더(loose powder) : 미세한 입자의 가루 파우더, 고체 파우더는 팩트라고 부름
㉤ 매트(mat) : 유분감과 광택이 없는 제품. 지성 피부에 알맞고 색조화장품의 경우 선명한 컬러로 발색되는 것이 특징
㉥ BB크림 : 블레미시 밤(Blemish Balm)의 줄임말로 본래는 피부과 치료 후 피부 재생과 보호를 위해 사용. 자외선 차단과 메이크업베이스 효과로 잡티를 가려주고 피부톤을 정돈해주는 제품
㉦ 섀딩(shading) : 얼굴의 일부를 어둡게 또는 밝게 해 입체감 있고 작아 보이도록 하는 방법 또는 제품. 컨투어링(contouring)이라고도 함
스트로빙(strobing) : 펄이나 글리터 제품 등을 이용해 얼굴을 빛나게 하는 메이크업
CC크림 : ‘Color Corrector’, ‘Complete Combo’ 등의 줄임말로 피부 본연의 색을 살리면서 잡티를 가리는 제품. 자외선 차단과 메이크업베이스 기능을 겸하지만 BB크림보다 커버력이 약함
㉧ 일루미네이터(illuminator) : 얼굴에 빛을 더해주는 리퀴드(액체) 타입의 펄 제품
㉨ 젤아이라이너(jel eyeliner) : 펜슬보다 부드럽고 선명하게 발리는 젤 타입 아이라이너
㉩ 치크(cheek) : 흔히 ‘볼연지’, ‘볼터치’로 부르는 색조 메이크업. 블러셔(blusher)라고도 함
㉪ 컨실러(concealer) : 잡티, 기미, 주근깨, 주름 등 피부 결점을 커버하는 기능성 제품
크리즈(crease) : 눈가 주름, 쌍꺼풀에 아이섀도나 파우더 등 메이크업 제품이 끼인 상태
㉫ 틴트(tint) : 입술표면을 물들여 립스틱이나 립글로스보다 발색과 지속력이 강함
㉬ 프라이머(primer) : BB크림이나 파운데이션 이전 단계에 피부에 밀착력을 높여주고 모공을 가려 피부 결을 매끈하게 정리해주는 제품
㉭ 하이라이터(highlighter) : 이마, 코, 광대, 턱 등을 밝혀 입체감을 더해주는 제품
작은 체구에 은빛 단발을 한 여자가 바람 부는 거리에 나타난다. 아직 조금은 쌀쌀한 날씨. 길 위에 선 여자는 뭔가 투덕거리더니 마이크를 집어 들고 청중 앞에 선다. 잔잔하게 선율이 흐르면 그녀의 인생이 담긴 목소리가 터져 안기다 마음속에 녹아든다. 바삐 가던 이의 속도가 느려지고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귀 기울인다. 그녀의 마법에 하나, 둘 빠져들더니 멈춰서는 발걸음, 또 발걸음. 길 위의 예술가 한복희(韓福姬·58) 씨의 노래가 울려 퍼지면 모두가 판타지 속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장소협조 보수동 정.[점]
저기 저 분 노래 되게 잘 불러요!
부산의 남포동 밤거리를 거닐던 어느 날. 사람들이 몰려든 곳을 향해 누군가 소리쳤다. 음악이 들리는 곳은 이미 인산인해. 길거리 공연을 많이 봐왔지만 노래 부르는 이가 인파에 묻혀 보이지 않는 건 드문 일이다. 그때 딱 스치는 사람이 바로 중년의 버스커(거리 예술가) 한복희 씨였다. 언젠가 SNS 영상을 통해 그녀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봤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1915~1963)의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를 부르는 모습이 압권이었다. 언젠가 우리 지면을 통해 꼭 소개하겠노라 사진까지 저장해놓았었다. 그런 그녀가 앞에 나타났으니 머뭇거릴 틈이 있겠는가. 노래를 마치고 잠시 쉬고 있는 한복희 씨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며칠 후, 햇볕이 따뜻하게 비추는 부산시 보수동 책방 골목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환하게 반겨 웃는 모습에 포근함이 느껴진다. 50대 끝자락. 그녀는 왜 부산 길거리 귀퉁이에서 노래를 부르게 됐을까.
대인공포증을 이기려고 대중 앞에 섰어요
누가 믿겠는가.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순간 길거리는 콘서트 현장이 된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서서 그녀를 응원하는 팬 또한 상당수다. 대중 앞의 그녀가 사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니!
“전문 버스커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본격적으로 노래하기 전까지는 섬유공예를 했어요. 광목 위에 매일 그림을 그리고 빨래하고 염색하고 다림질도 하고요. 그 세계에서 충분히 바쁘고 즐겁고 행복했어요. 누구를 만날 시간도 음악을 집중해서 들을 여유도 없었어요. 그 일을 너무나 사랑했지만 인간관계가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어요.”
어려서부터 자신이 꾸며놓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았다. 친구들도 그 안에 오게 해서 함께 놀았다. 그런데 나이 오십이 넘어 새로운 삶이 열렸다.
“지금은 돌아다니며 살고 있죠. 처음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어요. 내가 부산에 와 있는 건 예전이라면 상상 못할 일이죠.”
관객들 중에는 한복희 씨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기 위해 다가오는 이들이 있다. 공연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다고 느끼면서도 남자에 대한 경계는 여전하다. 중년 남자들이 와서 악수라도 하자고 하면 정중히 거절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쭉 싱글인 것 같다고 멋쩍게 웃는다.
“물론 정말 노래가 좋아서 다가오는 사람도 있지만 가끔은 술 냄새 나고 비릿한 냄새 풍기는 남성분이 있어요. 정성스럽게 노래를 불러드렸으면 됐지 뭘 손까지 잡아줘요.(웃음)”
영국 노처녀의 모습에서 본 희망
그녀에게 단비 같은 용기를 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가수 수잔 보일(Susan Boyle, 1961~)이다.
“그분이 저에게 절대적인 용기를 줬어요. 예술가처럼 보이지도 않고 시골에서 올라온 푸짐한 시골 노처녀가 뮤지컬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을 부르는데… 관객 모두의 입이 떡 벌어지잖아요. 내 안에 노래를 향한 불씨가 있는지 몰랐는데 수잔 보일을 보고 난 뒤에 힘이 났어요. 며칠 동안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리고. 그 사람이 나오는 영상을 보는데 너무 떨리는 거야.”
한복희 씨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일반인의 숨은 재능을 발굴하는 tvN ‘코리아 갓 탤런트(Korean got talent)’를 통해서였다. 생업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심하던 상황이었다. 그녀 나이 53세. 대단한 도전이 시작됐다.
“섬유공예를 하면서 줄곧 써오던 염료 때문에 건강이 많이 나빠졌습니다. 천식이 발병했어요. 이제 어떤 일을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을 때 마침 그 프로그램이 생긴 거죠. 나는 정말 악보도 볼 줄 몰랐어요. 음악을 좋아하고 꾸준히 들은 것 말고는 뭐가 없었어요. 막연한 자신감이었어요.”
무대에 서서 에디트 피아프의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를 부르는 순간 관객들은 환호했고, 심판단의 극찬이 뒤를 이었다. 몇 년 후 ‘아시아 갓 탤런트’에도 초청됐다.
“‘코리아 갓 탤런트’가 끝나고 노래 연습도 안 하고 있을 때였는데 ‘아시아 갓 탤런트’가 노래를 향한 두 번째 불을 지펴줬어요. 역시 나는 노래를 할 때 굉장히 행복하구나, 건강 때문에 힘들 때였는데 노래는 굉장한 기쁨의 순간을 경험하게 해줬어요. 불 속에 뛰어드는 마음이었어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거 하다 죽자!”
한복희 씨는 인터뷰 내내 숨을 깊게 내쉬고 기침을 했다. 그러면서도 노래하며 사는 삶에 대해 얘기할 때는 웃음이 넘치고 생기가 솟았다. 그녀에게 노래는 수많은 의미를 담은 보약이다.
서울 인사동에서 부산 남포동까지
길바닥에 누워 자는 한이 있어도 노래하는 삶을 택하겠노라 굳은 다짐을 했다. 언제 올지도, 내 앞에 설지도 모르는 관객을 만나기 위해 거리를 나섰다. 2015년 11월, 서울 인사동에 작은 스피커와 마이크를 들고 섰다. 당시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돌보느라 추워진 날씨가 돼서야 밖으로 나왔다.
“그때는 뭐 진짜 노숙자 같았어요. 노래를 부르고 싶은 절박함도 있었어요. 부랑자가 되더라도 나는 음악을 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었어요. 그래야만 내가 충격을 덜 받으니까요. 산발한 긴 백발에 군용 잠바를 입고 그렇게 나섰어요.”
개업(?) 첫날. 빛이 점점 잦아드는 오후 5시. 조그마한 박스 하나 놓고 준비한 노래를 불렀다. 삽시간에 구름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저 사람이 누구냐?”며 수군대는 사람들. 정신없이 노래를 부르고 난 뒤 눈을 떴을 때!
“비현실적이었어요. 꽃 선물에 돈은 물론이고요. 이렇게 계속된다면 달리 노래를 부르기 위해 직업을 찾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신호가 굉장히 좋았죠.”
알고 보니 인사동은 버스커들이 좋아하는 장소였다. 동창 모임이나 출판기념회 등을 하고 나온 중년들이 쉬이 지갑을 열어 팁 박스 두둑하게 돈을 넣는다.
“인사동 거리에는 내 나잇대의 기억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서성입니다. 그러다 보니 팁도 후하고 앞에서 춤도 추고 그러죠.”
비현실적인 인사동 거리는 반할 만했지만 다른 블루오션을 찾기로 했다. 젊은 버스커들과 소위 자리 경쟁 같은 건 하기 싫었다. 인사동에서 이태원으로 대학로로 자리를 옮겨 다녔다. 그러다 2016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부산으로 향했다.
“글로벌 스타가 되어 브로드웨이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고 싶어요. 제 목표죠. 그래서 가요보다 외국 노래를 많이 부릅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외국 문화계 인사들이 많이 오잖아요. 그래서 갔어요. 기대를 했는데 태풍이 몰려와서 영화제가 거의 폐점 상태였어요. 제가 지방마다 팬이 좀 있는데 부산 팬이 며칠 동안 가이드를 해줬어요. 그때 찾은 곳이 바로 남포동입니다.”
부산 하면 꼭 남포동이 생각났다. 서울로 가기 전에 남포동에 좀 데려다 달라고 팬에게 부탁했다.
“차에서 딱 내리자마자 느꼈어요. 남포동이 나를 환영하더라고요. 활짝 팔을 벌려서요. ‘어서 오세요’라고요.”
곧바로 노래를 한 곡 했더니 관객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다. 비로소 부산 팬하고 축포를 터뜨렸다.
“부산에서 재밌는 일이 많아요. 노래하는 친구들이 저한테 ‘너무 감동받았습니다. 우리는 가짭니다!’ 이러기도 하고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모두들 표현이 강렬했어요.”
자기 세상 속에 살던 엄지 공주 한복희 씨는 매력적인 남포동 기운에 이끌려 부산행을 결심했다.
“부산 생활은 1년 좀 넘었어요. 친근하고요. 부모님 두 분 다 함경도 출신이세요.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던 지식인이셨고요. 제가 사는 보수동에는 함경도 사람들이 많이 살았대요. 우연이라기보다 DNA의 이끌림? 정서적으로 이물감이 없고 자연스러워요. 서울 생각 잘 안 나요.”
욕망과 집념으로 인생을 그려가다
“제가 그림을 그리고 천식이란 병을 얻게 되는 과정은 욕망이 많았던 시간이었어요. 표현의 차이겠지만 나는 뭘 하든지 욕망 강한 사람이에요. 노래를 하면서도 굉장히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요. 반드시 정점에 올라야 하는 승부사 기질이 있는 거예요. 지나치게 올인하죠.”
강원도 원주에 작업실을 꾸며 2년여 섬유공예를 할 때 밥 먹는 시간을 잊어버릴 정도로 천과 색에 매료돼 있었다. 작은 결과물이라도 손에 쥐어지면 황홀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쉼 없이 몰두하던 어느 날 숨소리에 이상이 왔고 더 이상 염료들과 마주할 수 없게 됐다. 그때 빛처럼 다가온 것이 노래, 노래였다.
“그림을 그릴 때도 프랑스 노래 좀 배워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파니핑크’에 삽입됐던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 이 노래가 극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러곤 나도 멋지고 강렬한 노래 한번 불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어려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웃음) 너무 어렵더라고요.”
한복희 씨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에디트 피아프의 대표곡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 사실 이 노래를 듣는 사람 대부분은 한복희 씨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다.
“명절에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노래를 하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밌지만 감동이 없잖아요. 제가 원어민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면 최대한 원어에 가깝게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프랑스어는 정말 할 줄 몰라요.”
완벽하게 노래를 부르기 위해 천 번 이상 듣고 공부했다.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일도 없다. 동영상 속 에디트 피아프 선생님(?)을 모시고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정열을 쏟아 얻어낸 결과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하루하루를 만들어가면서 공연이 다 끝나면 장비를 챙긴 후 내가 나한테 얘기해요. ‘오늘 노래 참 괜찮았다, 그렇지? 오늘 괜찮은데?’ 이런 기쁨, 자긍심이 생겼어요.”
인생의 아름다움은 비현실에 있다
최근 천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한쪽 눈을 실명했다는 한복희 씨. 그럼에 불구하고 노래만 부를 수 있다면 어디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물론 꿈은 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극장이 있으면 좋겠다.
“나만의 공연장이 있으면 꼭 하고 싶은 것이 모노드라마예요. 내가 부르는 노래는 제가 성장하면서 알게 된 곡들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인생 이야기도 하고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한복희 씨.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어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좋은 음식도 만들어 먹고 싶단다.
“내 삶의 가치는 행복에 있어요. 경제력은 자존감이 손상되지 않는 선만 지키면 될 거 같아요. 약간 비루하고 불편해도 상관없어요. 노래를 선택하면서 저는 그 대가를 지불했고 잘했다고 봐요.”
인생의 맛을 이제 알았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느껴진다고. 그래도 노래로 행복할 수 있다면 그녀는 순간순간 기쁘게 살아갈 것이다.
50여 년간 장미를 그려온 화가의 심상은 무엇일까? 그것도 화병에 꽂은 정물이 대부분일 때는 의아할 수밖에 없다. 장미의 화가라면 김인승(金仁承, 1910~2001)이나 황염수(黃廉秀, 1917~2008) 화백이 떠오르지만, 성백주(成百冑, 1927~) 화백만큼 긴 세월 ‘장미’라는 주제에 천착해오지는 않았다.
성백주 화백은 화필이 무르익은 중년을 지나는 1960년대 말부터 장미만 그려왔다. 물론 바닷가 풍경이나 누드화도 간간이 눈에 띄지만, 아주 드문 편이다. 성 화백은 경북 상주에서 출생해 초·중등학교 교사, 지방 방송국 편성부 등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산 권역을 벗어나지 않고 동아대학교, 부산여자대학교에도 출강했다. 1955년 부산에서 ‘민주신보 창간 10주년 기념 초대전’이 열린 것을 보면, 1948년 초등학교 교사로 첫 부임한 이래 그림에 정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72년, 1975년 서울 명동화랑과 공간화랑의 전시가 중앙 화단에 진출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1992년의 여의도 정송갤러리 초대전이 전국적으로 자신의 그림 세계를 각인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 무렵부터는 장미 그림만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두어 점의 풍경이나 누드화가 겻들여지기도 했으나 장미만큼 압도하지는 못했다. 그의 장미는 꽃병에 꽂힌, 그래서 식탁이나 서재 책상 위에 무심코 놓인 정물화다. 청화백자 항아리나 유리단지에 성기게 꽂힌 몇 송이 혹은 꽉 찬 아름진 장미 다발이 언제나 맑은 향을 뿜는다.
“그는 꽃의 실제적 형상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감성의 파상적 율동에 의해 창출되어 나온 선과 터치에 의한 궤적이다. 꽃을 응시하고 연후에 그것을 화면 형상으로 바꿀 때 표현은 부드럽고 경쾌하며 리드미컬하다. 담채와 농채가 적절히 배분된 화면은 활기차 보이며 따스한 온기가 감돈다”라고 평자는 말한다.
주로 정물을 그리는 화가들을 만나보면 “꽃, 그것도 장미 그리기가 제일 어렵다”고 말한다. 장미는 그 종류만 수백 종에 색깔도 가지각색일 뿐만 아니라, 꽃잎이 수십 장 포개져 있어 입체감의 표현과 꽃잎마다 빛의 반사가 다채로워 평면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성 화백의 장미는 극사실의 요염한 자태가 아니다.
“나는 그동안 장미를 많이 그렸지만, 한 번도 장미라는 물질적 속성을 생각해본 일이 없다. 화폭에 어떻게 조형성을 심어가느냐의 문제였다. 항상 그랬듯이 남에게 보이기보다 내 작업을 연출된 공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성찰해보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어느 전시회를 앞두고 그가 한 말이다.
이 그림[사진1]은 1992년, 서울 여의도 정송갤러리에 전시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청화백자 항아리에 꽃송이와 줄기가 얼비추어 푸르른 그림자를 만들고 속도감 있게 처리된 배경과 꽃잎 끝에 건듯 묻어나는 옅은 색깔, 꽃송이와 봉오리에 깊은 마티에르가 하모니를 이룬 회심작이라 생각한다. 식탁에 걸어놓고 맑은 향을 맡는다.
한때 나팔꽃을 좋아해서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나팔꽃 덩굴을 만나면, 씨가 여물 때를 기다려 몇 알씩 따두었다가 이른 봄, 마당 창가나 담장 아래 씨앗을 틔워 줄기가 늘어뜨린 끈을 감고 공중에 꽃 피우는 신선함을 즐겼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가요의 가사처럼 짧은 꽃피움이 애잔했다. 나팔꽃 기르기를 좋아하던 서예가와 경기도 여주의 도예촌을 동행하며, ‘백제도예연구소’의 정지현(1958~) 도예가를 찾았다. 몇 차례의 방문이라 익숙하게 후원을 빙 돌며 작약이며 들꽃 틈에 깨뜨려버린 도자기를 휘감은 나팔꽃 덩굴의 진분홍 꽃을 감상했다.
“어느 날 새벽 도자기 작품 구상이 안 떠올라 이곳을 거닐다가 무심코 도자 파편 위 저 나팔꽃이 이슬을 머금고 활짝 핀 모습을 보고 큰 영감을 받았어요. 그래서 나팔꽃 이미지를 도자로 빚어보았지요.”
작업실 안에는 철화와 진사채로 완성된 나팔꽃 이미지의 아름드리 대형 도자기와 초벌구이한 도자기가 나란히 있었다. 정지현 도예가는 뒤늦게 도예에 입문해 예술자기와 생활자기 사이에서 많은 고뇌를 했다. 현실적 생활고도 체감했다. 이제는 일본이나 유럽으로 생활자기를 수출하며 경제적 안정을 얻었지만, 문득 일상의 쓰임을 벗어난 도자에 예술혼을 굽고 있다 고백했다.
이 대형 푼주[사진2]는 몇 달 후 그날 동행했던 서예가가 우리 집까지 날라준 크나큰 선물이다. 혼자 들기도 버거워 아내와 거실 탁자 위에 놓고 마음 깊게 감상했다. 겉은 정지현이 개발한 특유의 연록빛 유약이 자연스레 흘러넘쳐서 나팔꽃 줄기와 잎의 싱싱함을 나타내었다. 입술부터 안쪽으로는 붉은 진사의 유약을 두텁게 발라 고상함을 더해주고 있다. 도자기 속에다 속삭이면 그 잔잔한 울림이 좋았다. 이 푼주의 쓰임을 놓고 가족회의도 열어보았다. 겉과 속을 두루두루 볼 수 있는 낮은 탁자 위가 제자리다 싶으면, 찻잔을 나르거나 과일을 나르다 부딪힐까봐 조바심되었다. 마침내 거실 큰 유리문 앞 튼튼하고 낮은 탁자를 따로 마련해 옆에 백자 달항아리를 나란히 두어, 사계절 남향 타고 스미는 햇빛이 부서지는 반사광까지 즐기고 있다.
“가마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사위고 첫닭이 우는 새벽, 부끄럽고 두려움에 떨면서 죄를 짓고 용서를 비는 심정으로 도자기를 꺼내죠. 무슨 항아리가, 어떤 작품이 나올지 몰라요. 반은 내가 만들고 반은 불이 만들거든요. 꿈꾸던 작품을 얻었을 때의 감동과 희열, 그건 맛본 사람들만 알아요. 도예가들의 삶의 원천이죠.”
어느 일간지 인터뷰에서 정 도예가가 한 말이다.
꽃은 인류가 문명세계를 열기 이전부터 생명의 원천이었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꽃은 기쁨의 표상이고 추모의 상징이다. 구순 넘긴 노 화백의 여린 붓끝에서 피어나는 장미에서 인생의 환희를 느끼고 연륜 깊은 향을 맡는다. 하늘을 향해 입 벌린 푼주에서도 ‘아침의 영광(Morning glory)’을 듣는다.
>>이재준(李載俊)
아호 송유재(松由齋). 1950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났고 미술품 수집가로 활동 중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달과 6펜스’, ‘사랑과 인식의 출발’을 읽고, 붉은 노을에 젖은 바닷가에서 스케치와 깊은 사색으로 화가의 꿈을 키웠다. 1990년부터 개인 미술관을 세울 꿈으로 미술품을 수집해왔다.
이런 영화가 있는 줄 몰랐다. 그리 대단한 흥행을 한 것도 아니고 마케팅도 열심히 한 것 같지 않다. 저예산 영화라서 그랬을지 모른다. 그런데 묘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와 함께 마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조성규 감독 작품이다. 주인공인 영화제작자 조 대표 역으로 류승우, 젊은 여대생 민아 역으로 신인 배우 이솜이 나온다. 한때는 잘나가던 40대 영화제작자 조 대표는 최근 만드는 영화마다 망한다. 거래처 전화에 시달리다가 훌쩍 바다가 보고 싶어 차를 몰고 강릉으로 혼자 향한다. 무작정 떠난 것이다. 호텔을 정하고 레스토랑에서 차 한잔 하려는데 서빙하는 한 아르바이트 여대생에게 전류가 흐르듯 시선이 꽂힌다. 긴 생머리에 청순한 얼굴, 날씬한 몸매의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다.
그런데 여대생이 조 대표가 유명한 영화제작자라는 것을 먼저 알아본다. 더구나 팬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쉬는 날이라며 강릉 가이드를 자청한다. 돌이켜보니 20년 전 친구들과 강릉에 왔을 때 묵었던 민박집에 또래의 딸이 있었다. 당시 친구들과 누가 그녀와 잘 수 있는지 내기를 했고, 조 대표가 그녀를 유혹해 하룻밤 정사를 나누곤 다음 날 새벽 서울로 도망쳤던 기억이 있다.
둘은 강릉 일대를 다니며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아름다운 여대생과 중년 남자의 꿈같은 여행이었다. 유명한 명소와 맛집, 커피숍 등을 다니며 둘은 많은 대화를 나눈다. 조 대표는 민아에게 묘한 떨림과 끌림을 느낀다. 20년 전 하룻밤을 나눈 그녀의 딸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조 대표는 민아가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점점 민아가 자기 딸이라는 심증을 굳힌다. 그리고 자책감에 시달린다.
드디어 여행 마지막 날, 둘은 어두운 바닷가에 앉아 서로 고백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조 대표는 20년 전 일을 고백하려고 했지만 민아가 먼저 고백하겠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가 바로 조 대표라고 말한다. 충격적인 그녀의 고백에 잠시 당황하던 조 대표는 돌아서서 그 길로 차를 몰고 서울로 돌아온다.
남자들에게는 조 대표와 비슷한 죄책감이 있다. 젊은 시절은 이성보다는 본능이 더 강할 때다. 여자들은 혹시 이 남자는 뭔가 다를까 하고 받아들이지만 결국에는 남자들은 다 똑같다는 말을 한다. 민아도 얼마 전까지 사귀던 또래 남자가 있었지만 헤어지고 보니 역시 똑같더라는 말을 한다.
영화 제목을 왜 ‘맛있는 인생’으로 지었을까 의아했다. 영어로 번역한 ‘Second Half'는 ’후반전‘이란 의미다. 40대에 인생 후반전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곰곰 생각해볼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