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기가 오른 탓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피아노 선제공격이 먹혔다. 임수정이 바로 옆에서 노래하고 내가 피아노 반주를 했다. 이슬 같은 여자 임수정과 참이슬을 마주하고 흥이 돋는 밤을 보냈다.
“무작정 당신이 좋아요~ 이대로 옆에 있어주세요~” 이 노래가 TV에서 흘러나올 때 나는 가사 그대로 무작정 임수정이 좋아 죽었었다. 이 노래가 하루에도 몇 번씩 라디오로 흘러나오던 그녀의 전성기 시절 피가 끓는 청년 이봉규는 마치 그녀가 나에게 옆에 있어 달라고 애타게 원하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입을 헤~ 벌리고 넋을 놓은 적이 많았다.
중년이 되어서도 “임수정은 어디서 뭘 하고 지낼까?” 궁금했다. 그러던 중 몇 년 전에 배철수가 진행하는 ‘콘서트 7080’에 오랜만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을 보곤 깜짝 놀랐다. “아니 어쩜 나이를 먹어도 아직도 이슬 같은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까?” 오늘 임수정을 만나고는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조그만 선술집에서 만나자마자 그녀에게 대뜸 물었다. “아직도 이슬 같은 비결이 뭡니까?” 그녀는 그런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일까? 담담한 표정으로 “‘참이슬’을 많이 먹어서 그래요”라고 받아치며 소주병을 능숙하게 흔들고 딴다. 정확한 주량은 말하지 않았지만 “남들 마실 만큼은 마신다. 어지간해서 잘 취하지 않는다”고 믿기 힘든 말을 던진다. 의아한 반전에 한량 이봉규도 움찔하고 말았다.
이렇게 시작한 술자리가 2차까지 이어지면서 한바탕 무르익어갈 무렵에서야 눈치를 챘다. 술도 약한 편은 아니지만 정신력이 강해서 절대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질 않는다는 걸. 임수정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 술자리에서 흐트러지면 늑대들은 아마 제정신 차리기 힘들 것이다. 어려서부터 약간 틈만 보이면 자신에게 남자들이 달려든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본능적으로 자기방어가 몸에 배어 있다. 특히 술자리에서는 더욱 철저하다. 인터뷰하는 나와의 술자리도 매니저인 그녀의 사촌 동생이 옆자리에 딱 붙어서 경호했다. 매니저가 사촌 동생인 점도 아마 철저한 자기관리의 하나일 것으로 짐작된다.
여전히 매력적인 임수정
이자카야에서 소맥 폭탄주로 한껏 흥이 오른 우리는 2차로 피아노가 있는 라운지로 자리를 옮겼다. 젊은 시절 꿈에 그리던 임수정을 바로 앞에 앉혀놓고 나는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취기 때문에 용기를 냈지만 내심 그녀에게 피아노를 치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평소 TV에서 도발적인 톤으로 윽박지르는 이봉규의 거친 표정을 많이 보아왔던 임수정은 놀란 토끼 눈으로 쳐다보면서 나의 노래를 경청했다. 내친김에 그녀를 무대로 불러냈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른 탓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피아노 선제공격이 먹혔다. 그녀가 바로 옆에서 노래하고 내가 피아노 반주를 했다. 네다섯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던 20여 명의 손님들은 환호했다. 나의 손놀림은 평소보다 더 들떴고 힘이 들어갔다.
가슴은 뿌듯했고 온몸의 마디마디는 ‘연인들의 이야기’ 음절에 따라 춤췄다. 노래가 끝난 후 박수가 터져 나오자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멀리 떨어진 바텐의자에서 슬며시 웃으며 박수 치는 내 아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인터뷰하면서 나는 임수정에게 내 아내를 소개했고 아내는 인터뷰에 방해되지 않도록 저만치 바텐의자에 앉아 관람하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임수정도 무장해제하고 나와 2차까지 상당히 마실 수 있었고 또 노래까지 부른 것이다. 대중가수가 조그만 라운지에서 노래를 한다는 것은 큰 인심을 쓴 것이나 마찬가지. 나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고 거기 오신 손님들에게 엄청난 서비스를 제공한 셈이다. 어쨌거나 그날 밤은 황홀한 밤이었다.
그녀는 왜 갑자기 사라진 걸까?
임수정은 여고 재학 중 미인대회에서 포토제닉상을 수상하면서 모델로 먼저 데뷔했다. 모델 활동을 하면서도 그녀는 가수와 배우를 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러던 중 작곡가 계동균을 만나면서 그녀의 인생이 달라졌다. 계동균과 작사가 박건호 두 사람은 임수정의 외모와 음색에 딱 어울리게 남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노래를 만드는 데 의기투합했다.
1982년 서라벌레코드에서 발매된 앨범의 타이틀곡 ‘연인들의 이야기’ 연주곡이 그해 방영된 KBS2 드라마 ‘아내’의 OST로 삽입되었는데 발칵 뒤집혔다. 드라마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자 방송국에 이 노래에 대한 전화와 편지 문의가 빗발쳤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와 두 명의 여성이 엮어가는 기구한 스토리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 ‘연인들의 이야기’ OST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앨범은 발매 몇 달 만에 30만 장이 넘는,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음반 판매 기록을 세웠다. 뒤돌아보면 미처 준비도 안 된 임수정에게 벼락스타의 자리는 쉽지 않았다. 그녀는 이와 관련해서 “한번은 탤런트 강부자 씨가 슬픈 노래인데 왜 웃으면서 노래를 하느냐고 핀잔을 줄 정도로 준비가 안 됐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이제 나이를 먹고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니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런 시절을 겪고 난 후 임수정은 노래나 삶의 철학이 원숙해졌다. “최근에 강부자 씨를 만났더니 노래가 확 달라졌다고 칭찬을 해줬다”며 자신을 스스로 평가했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당시에는 별의별 소문이 난무했다. 배우 정윤희와 맞먹는 외모의 소유자이고 한창 인기를 누리던 임수정이 갑자기 사라졌기에 호사가들은 소설을 쓰면서 입방아에 올렸다.
그녀가 사라진 이유는 정작 따로 있었다. 당시 임수정에게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 한꺼번에 밀어닥쳐서 젊은 나이에 감당할 수 없었다. 일종의 현실세계로부터의 도피였다. 30만 장의 앨범이 팔려나간 ‘연인들의 이야기’에 이어 1985년 ‘사슴 여인’이란 곡을 내놓았는데 그 가사가 문제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나는 밤거리에서 사랑을 먹고 사는 사슴 여인”이라는 가사가 직업여성을 뜻한다며 방송사 심의에 걸려 노래가 전파를 탈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무렵 임수정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여기에 레코드사 이적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힌 것이 결정타였다.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면서 여린 성격의 임수정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모든 걸 다 던지고 1989년 미국으로 떠났다. 그녀는 자신의 음악성에 대한 비판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에 대해서도 견디기 힘들었다. “너무 비주얼만 강하고 오디오가 약하지 않느냐?”는 말을 감당하기엔 어린 나이였고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고생 끝에 정상의 자리에 올라간 분들은 소중하게 그 자리를 지켜내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정상에 올라가다 보니까 소중함을 잘 몰라서 공백기를 갖게 된 것 같아요”라고 그녀는 나이를 먹은 지금 뒤늦게 밝히고 있다.
제2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다
사실 임수정은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청순한 목소리와 그녀만의 독특한 비브라토(vibrato)는 상당한 음악적 가치가 있었다.
임수정이 가창력이 없다는 비판은 일종의 어깃장이다. 음악에 정석이 어디 있을까? 어떤 목소리와 창법이 노래를 잘하는 것일까? 수치로 계량화된 것도 없고 그저 당시의 유행과 통론에 치우쳐 마음에 안 든다고 비판하는 군중심리의 일종이다.
임수정의 ‘연인들의 이야기’가 대중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니 그녀의 실력을 인정해줘야 한다. 대중이 선택한 음악이고, 대중이 사랑한 가수다. 거기에다 이슬 같은 청초한 외모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임수정의 매력이다. 음악의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가수의 외모는 아주 중요한 자산으로 여긴다. 심지어 스포츠인과 정치인의 외모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임수정은 제2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추억을 무너트리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20대 때 제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릴까봐 많이 망설였지만, 팬들이 ‘감성가수’ 하면 ‘임수정’ 하고 바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꿈이에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노래를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고 예쁜 얼굴은 더 상기되었다.
100세 시대다. 팬들도 나이를 먹고 가수도 함께 나이를 먹는다. 70세에 아직도 전 세계 무대에서 매력을 발산하는 ‘올리비아 뉴튼 존’보다 임수정은 열다섯 살이나 어리다. 그녀의 전성기는 이제부터다.
2017년도 저물어가는 12월 10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우연히 정미조 콘서트를 관람 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브라보마이라이프 동년기자 몇 명에게 특별히 연말보너스 처럼 돌아온 선물이었다. 오래된 서재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꺼내 든 책 한 권, 책장을 넘기다 책갈피처럼 끼워진 빛바랜 네잎클로버나 꽃잎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빛바랜 책갈피에 우러나오는 은은한 향기처럼 정미조는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콘서트는 정미조가 1년 반 만에 발표하는 새 앨범을 기념하는 무대다. 그는 45년의 긴 세월 동안 가수에서 화가로, 다시 가수로 돌아오는 드라마틱한 여정을 걸어왔다. 정미조는 작년, 37년 만에 가요계에 극적으로 복귀하며 많은 화제를 만들었다. 컴백 앨범은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청취의 환희” “결코 세월이나 명성에 빚지지 않은 앨범” 등의 절찬을 받았다. ‘휘파람을 부세요’ ‘불꽃’ ‘사랑의 계절’ 등 주옥같은 히트 곡을 줄줄이 쏟아냈다. 1972년 한국 가요사에 불멸(不滅)로 남은 ‘개여울’을 발표하고 일약 스타덤에 오른 후, 돌연 가요계 은퇴를 선언한 1979년까지 7년간은 정미조를 위한 시간이었다. 그의 ‘마이 웨이’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이번 공연엔 12살 ‘제주 소년’ 오연준이 특별 게스트로 출연했다. 오연준은 정미조의 새 앨범에 수록된 ‘바람의 이야기’를 함께 불렀다. 그리고 오연준 소년 단독으로 크리마스 캐럴을 불러 많은 갈채와 사랑을 받았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네 명이 근처에 있는 자그마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18시 공연이라 저녁을 먹지 않고 관람했기에 '오삼불고기'를 시켜 뒤풀이 삼아 막걸리잔을 돌렸다. 건조한 공연장으로 컬컬했던 목을 추기면서 공연에 관한 뒷담화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지나간 세월만큼 원숙하면서도 열정적으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최고의 히트작으로 꼽혔던 ‘개여울’은 김소월 시에 곡을 입혀 부른 노래로 유명하다. 개여울은 어떤 여울일까? 누군가 궁금해 했다. 개여울은 명사로써 개울에 물이 얕거나 폭이 좁아서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리 깊지는 않지만 물살이 빠른 곳으로 개울의 여울목이란 뜻이기도 하다. 노래 가사 중에 ‘가도’는 ‘가기는 가도’의 줄인 말로 개여울가에 앉아 여울져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연인인 그가 간다는 허전함을 애써 마음 쓰지 않으려는 애틋한 마음과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어린시절 여울에서 돌수제비를 날리던 기억도 어렴풋 떠오른다.
한창 잘 나가던 시절, 음악을 접고 갑자기 파리로 미술 유학을 떠난 정미조의 삶이
과연 성공적이고 좋았던 삶이었을까? 하는 논제를 가지고 서로의 생각을 들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의견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 “꽤나 의미 있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세상 살아가면서 ‘우물을 판다’ 의미도 중요하겠지만, 음악 말고도 자신이 좋아하던 일을 선택한다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학을 떠나 새로운 배움을 통해 다시 돌아와 대학에서 당당하게 미술을 가르치는 교수로 자리매김한 삶이 칭찬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는 고희[古稀] 가까운 나이에 잊고(?) 지내왔던 음악계로 컴백했다. 작년에는 신곡 귀로(歸路)를 발표하면서 앨범도 내고, 이렇듯 콘서트를 통해서 음악적으로 자신의 건재함을 끊임없이 과시하는 모습이야말로 경이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귀로(歸路)의 노랫말과 영상은 정미조의 해석처럼 ‘담벼락에 기대 울던 작은 아이’ 같은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 울컥한다는 의미에 공감이 간다.
중년의 세월을 묵묵히 이고 가는 우리가 그를 보면서 용기를 북돋을 수 있어 의미가 깊었다. 홀짝홀짝 막걸리 네 병을 해치우고 밥 두 공기를 볶아서 마무리 하면서 겨울 밤의 우리들만의 파티는 끝났다. 밖으로 나오니 찬바람만 휭 하니 몰려와 취기를 건드린다.
“어린 꿈이 놀던 들판을 지나 아지랑이 피던 동산을 넘어 나 그리운 곳으로 돌아가네~”…
한 시대를 풍미하고 아스라이 손 흔들며 사라졌던 대형 가수가 있었다. 화려한 드레스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와 198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던 가수, 바로 김연자(金蓮子·58)다. 오랜 시간 일본에서 ‘엔카(えんか)의 여왕’으로 군림하던 그녀. 한국으로 돌아와 조용히 활동하는가 싶더니 8년 만에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트로트도 엔카도 아닌 강렬한 사운드의 댄스음악 이른바 EDM으로 말이다. 세대를 뛰어넘어 젊은이들의 마음까지 단숨에 사로잡은 김연자와의 만남. 수은등 불빛 아래를 지나 찬란한 인생을 다시금 맞이한 그녀는 이렇게 외친다. 아모르파티(Amor Fati!)!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고.
김연자는 몰라도 ‘아모르파티’는 안다
가수 김연자가 부른 ‘아모르파티’의 인기는 대단하다. 좋아하는 연령대도 어린이에서부터 시니어 세대까지 다양하다. TV는 말할 것도 없고 거리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아모르파티’가 흘러나온다. 한 번 들으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전자악기 리듬에 몸을 맡기다가 결국에는 가사의 매력에 더 빠져버리고 마는 노래가 ‘아모르파티’다.
“이 곡을 쓴 작곡가 윤일상씨가 어떤 음악을 만들고 싶냐고 묻더라고요. 지금까지 내가 굴곡진 인생을 살았지만 이 모든 것이 앞으로 다가올 내 인생을 위해서 있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후회하지 않고 앞만 보고 살겠다는 ‘인생 찬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죠. 그렇게 탄생한 곡이 ‘아모르파티’입니다. 가사는 ‘철이와 미애’의 신철씨가 써줬어요. 아모르파티란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라 하더군요.”
‘아모르파티’는 2013년 발표곡이다. 윤일상씨는 이 노래가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놓아야 할 대박곡이라고 예견했지만 지금과 같이 폭발적이지 않았다. 노래가 빠르다 보니 따라 부르기 힘들어 중년 팬들에게 어려운 곡이었다. 4년이란 시간이 흘러 이 곡의 매력 포인트를 찾아낸 이들은 중년 팬이 아닌 10대 팬들. 올해 TV의 한 음악 프로그램을 방청한 10대들이 김연자가 부르는 ‘아모르파티’를 듣고 SNS에 퍼트린 것. 신나고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찾아내 그들의 문화로 김연자와 ‘아모르파티’를 끌어당긴 것이다. 음악 순위 역주행 신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어제 무주 구천동에서 노래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는데 학생들이 ‘꺅! 언니!’ 하고 난리가 났어요. 저인 줄 몰랐는데 시선이 저를 향하고 있더라고요. 어머니들이 환호해 주시는 건 있었어도 이런 기분 처음이죠.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거든요. 근데 어쩜 그렇게 꺅 하고 소리를 잘 내요(웃음)? 육십을 바라보는 나한테 언니래요. 근데 너무 좋더라고요. 새로운 행복감에 젖어 있어요.”
국보급 가수 한류 열풍 초석을 다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김연자의 인기는 톱스타란 말로 부족했다. TV만 틀면 안 나오는 곳이 없었다. 가요 프로그램이며 합동 공연이며 대미는 늘 김연자 차지.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간드러지면서도 폭발적인 목소리는 국보급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홀연히 사라졌다. 너무 갑작스러운 행보. 대스타가 한순간에 떠나는 일이 있었던가.
“사라진 게 아니에요. 시댁이 일본이었고, 속으로 늘 그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때 우리나라에서 계속 일이 잘되니까 갈 기회를 놓치고 있었던 거죠. 마침 무슨 사정인지 당시 매니저가 일본에 가도 된다고 했어요. 이때다 싶어 얼른 간 거죠. 그런데 그때가 일본에 처음 간 것은 아니었어요.”
이발소를 하던 아버지 손에 이끌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가요계에 데뷔한 김연자는 일본 음반회사 오디션을 통해 일본에 진출할 기회를 얻었다. 그때 나이가 열여덟이었다.
“제가 운이 좋은지 주위 사람들 도움으로 좋은 기획사에 들어갔어요. 월급이 꽤 괜찮았던 곳입니다. 25만엔을 벌면 집으로 20만엔을 보냈어요. 엔화 가치가 높을 때라 그런지 한국에 갈 때마다 집이 바뀌더라고요.”
김포공항으로 가족이 마중 나오지 않으면 집을 찾아갈 수 없을 정도였다. 마지막 일본 생활을 접고 들어갔을 때는 작은 연립주택을 장만했다. 일본에서 보낸 돈을 어머니께서 열심히 모아주신 덕이다.
“3년 동안의 일본 생활이 성공적이지 않았지만 제 인생에는 많은 도움이 됐어요. 실패의 원인을 생각해봤는데 일본을 갈 때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더라고요. 진짜 몸만 갔죠. 일본에 다시 가려면 일본에 대해서 알아야겠다 싶어서 일본어와 일본 문화, 한문 등을 따로 공부했어요. 스물아홉 살에 다시 갔을 때는 마음이 참 편했어요.”
한류의 원조, 20년 생활의 막을 열다
서울올림픽 찬가였던 ‘아침의 나라에서’를 일본어로 번안해 부르며 자연스럽게 일본 음악계에 진출했다. 각종 공연이며 TV며 행사며 한국에서는 대형 가수였지만 신인의 자세로 매사 임했다. 언어의 장벽도 내려앉았다. 일본인들도 감탄하면서 그녀의 노력에 박수를 보냈고 응원해줬다.
“다 내려놓고 마음만은 스타라는 생각으로 갔어요. 캠페인에도 나가고요, 일본 신인들하고 똑같이 했죠.”
유독 공연 무대가 많은 일본에서는 노래 가사를 완벽하게 외우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엔카 가수이지만 탱고, 블루스, 발라드 등 다양한 노래를 배우고 관객 앞에서 선보이는 것이 일상이었다. 무대에서 최소 20곡은 소화해야 하는 강행군. 한국어도 아니고 일본어로 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솔직히 어려운 일이었다.
“매년 가을에 3400석 규모의 NHK홀에서 콘서트를 했어요. 공연을 위해서 여름에는 계속 노래 연습을 했어요. 가끔 쉴 때는 집 앞 공원으로 반려견들을 데리고 나가 산책하면서 노래 가사도 외우고 그랬어요. 사람들이 없으면 노래 연습을 하느라 중얼중얼… 그때 당시 저희 집에 많을 때는 반려견이 다섯 마리도 있었는데 사람들이 저를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했겠어요(웃음). 일본에서의 여름은 그렇게 보냈습니다.”
나도 뮤지컬 배우였다!
일본에서의 다양한 활동 이야기를 하다 보니 뮤지컬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자연스럽게 김연자의 뮤지컬 도전기로 이어졌다.
“니나가와 유키오(1935~2016)라는 유명한 연출가가 계셨는데 제 목소리가 좋다고 불러주셨어요. 라는 작품에서 집시 역할을 맡았어요. 연기 진짜 어렵더라고요. 노래는 5절까지 이어져도 하나도 안 잊어버리는데 대사는 맨날 까먹는 거예요(웃음).”
역시 김연자의 이름에 걸맞게 개런티도 주연배우 다음으로 많이 받았다고. 그런데 개런티로 받은 돈을 의상비로 다 써버렸다는 톱스타 김연자.
“사실 말이 좋아 주인공 다음이지 뮤지컬 한 달 하고 받은 개런티가 제가 노래 하루 불러서 받는 개런티에도 못 미쳤어요. 원래 의상팀에서 의상을 다 준비해주기는 했는데 너무 값싸 보이는 거예요. 역할이 집시이지만 밍크도 가짜고, 자존심이 너무 상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제 옷으로 다 하겠다고 허락받고 따로 준비했어요. 그랬더니 개런티가 그렇게 없어지더군요(웃음).”
동경과 오사카에서 공연하는 동안 동생들도 공연을 관람하러 왔다고.
“나 같지가 않았나봐요. 저는 노래 부를 때 외에는 저 같지가 않아요. 다른 거 하면 작아 보이고 불안해 보이고요. 아, 연기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때 알았죠.”
단 한 번의 배우 체험 뒤 연기 분야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일본에서 한국 가수 그리고 한국 사람
지금 젊은이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김연자가 일본으로 무대를 옮겼을 때는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전이었다. 문화·정치적으로 냉랭하던 시절을 버티고 이겨내 엔카 여왕의 자리에 앉은 김연자. 결코 쉬운 일도 아니었고 모두에게 허락된 일도 아니었다. 처음보다 마음이 편했다지만 한국인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은 물론이고 숱한 편견과 맞서야 했다.
“제가 그냥 보통 가수였다면 진작 문제 일으키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거예요.”
한창 일본에서 활동할 때 일이 힘들면 여권을 들고 길을 나서기도 했다는 충격 발언.
“한국에 가려고 공항으로 갈 택시를 잡는 거죠(웃음). 그런데 살던 동네가 시내와 너무 떨어져서 택시가 안 오는 거예요. 그러면 택시 기다리다 생각을 하는 거죠. 가수 김연자에 대한 것은 참겠는데 ‘한국 가수’ 김연자가 뭘 잘못했다는 기사는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내가 한국으로 가버리면 이런저런 매스컴에서 ‘한국 가수’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떠들어댈 것이 뻔하잖아요. 한국 사람으로서 어떤 부정적인 말 한마디도 듣기 싫었어요.”
길에 서서 망설였던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 했다. 그때마다 다음 날 신문에 올라갈 지독한 기사 제목이 떠올랐다. ‘한국 가수 김연자가 스케줄 펑크 내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 우리나라를 힘들게 하면 안 되겠지. 그러고는 마음 다잡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내 감정을 억누른 것 같아요. 그렇게 20년을 일본에서 생활했어요.”
아버지 때문에 한국행을 결심하다
“우리 아버지는 말이 안 통했어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아련하게 말끝이 잦아든다. 광주에서 이발소를 하시던 아버지에게 노래 잘 부르는 딸은 그저 자랑이었다. 아버지의 “야! 너 서울 가서 가수 돼!” 한마디에 무대에 올라갔다가 아직도 그 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
“아버지 때문에 가수가 된 거죠. 감사하죠. 가수 될 운명을 알아보시고 어린 시절에 빨리 뭔가를 겪게 해주셨죠. 한국 복귀도 아버지 때문이었고요.”
8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하지만 가족들은 바쁜 김연자에게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돌아가시고 열흘이 지난 다음에 엄마가 전화를 하셨어요. 스케줄이 있는지 물으셔서 없다고 했더니 그제야 아버지가 떠났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날 일본의 작은 고깃집에 앉아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버지도 공연 보러 일본에 많이 오셨었죠.”
아버지가 타계한 후 한국으로 돌아온 김연자는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오가며 활동 중이다. 그사이 재일교포 남편과는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하고 헤어졌다. 김연자가 일본에서 거액의 돈을 벌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남겨진 재산은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매니저 겸 밴드 단장이던 전 남편을 평생 동반자로 생각했기에 쓰지 않았던 계약서가 문제였다. 일본에서는 계약서를 쓰지 않은 김연자를 오히려 더 이상하게 생각했다. 일본 팬들과 연예 관계자들을 마주하면서 사정을 얘기했고 조금씩 김연자의 말에 귀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전 남편과 지낸 세월이 아깝지 않은지 물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거액은 숫자일 뿐이죠. 제 눈에 현금이 오가는 것도 아니고요. 사실 제가 후회를 별로 안 해요. 이 순간이 제일 중요해요. 지금이 이 순간이 있어야 내일도 있잖아요. 난 항상 그렇게 살기 때문에. 어떨 때는 좋은 기억이건 나쁜 기억이건 다 잊어버려요(웃음). 단념도 빠르고 꿈도 빨리 꾸고. 그런 거 없어요. 그리고 저는 부자는 아니지만 하루 삼시 세끼 잘 챙겨먹고 사니까 괜찮아요. 나름 부동산도 있고 집도 있어요.”
어렸을 때 많이 의지했던 전 남편에 대해 그녀는 남은 감정이 없는 듯했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을 내보였다.
“솔직히 저나 전 남편이나 0에서 시작했죠. 오랜 시간 정신적으로 의지했어요. 일본 연예계에 대해서도 그 사람이 전부 알려줬어요. 서로 상부상조한 거죠 뭐.”
미국에 셰어가 있다면 한국에는 김연자!
“어머니가 오래전 저에 관한 점을 보셨다는데 제가 일흔까지 노래를 부른대요.”
처음에 그 얘기를 우습게 들었는데 이제 슬슬 현실이 돼가는 느낌이 밀려온다고. 하고 싶은 공연만 하고 여유롭게 사는 것을 꿈꿨는데 젊은 가수들하고 똑같이 뛰고 있어 자기 모습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좋다.
김연자와 인터뷰를 마치고 미국 가수 셰어(Cher)가 떠올랐다. 1960년대까지 포크 가수로 활약하던 셰어. 한참을 배우로 지내더니 1999년 ‘빌리브(Believe)’란 음악을 선보이며 전 세계를 전자 음악 열풍에 빠뜨렸다. 올해 71세인 셰어는 지난 5월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빌보드 아이콘 어워드를 수상했다.
김연자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성인 팬을 상대로 노래 부르다 어느 날 갑자기 세대를 뛰어넘어 EDM 열풍에 불을 지폈다. 71세의 셰어 언니도 망사옷 입고 무대를 누비고 있으니 한국 ‘EDM 대모’, ‘연자방아’로 거듭난 70세 김연자의 무대도 기대한다.
◇exhibition
王이 사랑한 보물: 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전
일정 11월 26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독일 드레스덴을 18세기 유럽 바로크 예술의 중심지로 이끌었던 폴란드의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그가 수집한 예술품 중 130점을 총 3부로 구성해 전시한다. 제1부에선 아우구스투스의 군복과 태양 가면, 사냥 도구 등 그의 권력을 상징하는 유물들이 소개된다. 아우구스투스가 수집한 예술품을 공개하기 위해 만든 보물의 방 ‘그린볼트’를 소개하는 제2부에선 당대 최고의 장인을 동원해 제작한 공예품을 선보인다. 각종 보물이 사용된 작품을 통해 화려한 바로크 예술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제3부에선 18세기 중국과 일본의 수출 도자기와 초기 마이센 자기를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다. 전시장 내부를 확대사진 기술을 사용해 드레스덴 궁전 내부와 비슷하게 연출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도그 in 강남
일정 11월 19일까지 장소 강남미술관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를 맞이해 동양화작가 곽수연, 사진작가 김현욱, 입체작가 빅터조, 업사이클링작가 엄아롱, 일러스트레이터 이연경, 도예작가 틸다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가 모였다. 반려동물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회화, 설치, 사진, 조형 등으로 표현된 총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강남미술관이 무료로 제공하는 애견기저귀를 착용할 경우 반려동물도 입장이 가능하다. 반려동물이 있다면 함께 관람해도 좋다. 다양한 작품 외에도 유기견을 입양한 견주들이 보내준 사연을 읽어볼 수 있다. 또 반려동물 관련 서적을 비치하는 등 반려동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전시장 건물 옥상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쉴 수 있는 ‘반려동물 놀이터’가 마련되어 있다.
◇book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저·민음사)
15년 전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다 세상을 떠난 장남 준페이. 작품 속의 ‘오늘’인 그의 기일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하루를 담아낸 이야기다. 가족 간의 쉽지 않은 소통과 그럼에도 연결하고자 하는 욕구를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는 여정으로 그려내며 아스라한 동경과 영원한 그리움의 상대는 가족임을 들려준다.
향기 탐색 (셀리아 리틀런 저·뮤진트리)
고고학자인 어머니를 따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성장한 저자 셀리아 리틀턴의 향기 탐색서다. 냄새로 기억되는 곳들을 추억하며 향의 발자취를 답사하고 회고한다. 각 나라 특유의 향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향의 기초적인 원료와 재배법, 향수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movie
유리정원
칸,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신수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국내에선 보기 드문 소재와 독창적인 스토리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끌었다. 은 베스트셀러 소설에 얽힌 미스터리한 사건을 중심으로 그 속에 감춰진 슬픈 비밀을 그린 작품이다. 10월 22일에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몽환적이면서도 독특하다”, “신수원 감독의 남다른 상상력을 실감하게 만든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 숲속의 유리정원에서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며 초록 피가 흐르는 ‘재연’ 역을 맡은 문근영이 2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작품으로 기대를 모았다.
개봉 10월 25일 장르 미스터리, 드라마 감독 신수원 출연 문근영, 김태훈, 서태화, 임정운 등
리빙보이 인 뉴욕
이후 , 시리즈를 연출한 마크 웹 감독이 다시 한 번 로맨스 영화로 돌아왔다. 은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젊은 남녀 간의 로맨스를 통해 도시 뉴욕의 풍경을 스크린에 담았다. 마크 웹 감독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도시인 뉴욕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며 뉴욕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을 드러냈다. 맨해튼의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을 배경으로 촬영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국내에선 로 얼굴을 알린 칼럼 터너가 남자 주인공 ‘토마스 웹’ 역을 맡았다.
개봉 11월 9일 장르 드라마, 로맨스 감독 마크 웹 출연 칼럼 터너, 케이트 베킨세일 등
◇stage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된 이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항상 사랑받기를 꿈꾸며 살았던 여인 마츠코의 기구한 삶을 감성적인 연출과 음악으로 그려내며 진정 그녀의 인생이 혐오스러운 삶이었는지 되묻는다.
장소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일정 10월 27일~2018년 1월 7일 연출 김민정 출연 박혜나, 아이비, 강정우 등
도둑맞은 책
인간의 행동은 의지인가 욕망인가. 영화대상 시상식 날 납치된 시나리오 작가 서동윤, 그리고 그를 납치한 보조작가 조영락. 두 사람을 통해 연극 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 몰려 사람다움을 포기할 때 얼마만큼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장소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블루 일정 10월 13일~12월 3일 연출 변정주 출연 이현철, 이갑선 등
에어포트 베이비
미국으로 입양된 조쉬가 친부모를 찾아 한국을 방문하면서 겪는 이야기다. ‘입양’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백하고 재치 있는 대사로 풀어내면서 감동을 선사한다. 8년 동안 수정과 보완작업을 거친 작품으로 현실적 소재를 잘 소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장소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 일정 10월 17일~12월 31일 연출 박칼린 출연 최재림, 유제윤, 강윤석 등
오펀스
새로운 시도와 도전으로 공연계의 독보적인 연출가로 불리는 김태형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고아 형제 트릿과 필립, 그리고 중년의 부유한 갱스터 해롤드. 아픔과 상처를 지닌 세 인물을 통해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전한다.
장소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일정 9월 19일~11월 26일 연출 김태형 출연 박지일, 손병호, 장우진 등
‘삼포세대’, ‘비혼’, ‘1인 가구’ 등의 유행어는 전통적 가족 형태의 붕괴가 급속하게 진행됨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말조차 시대와 트렌드에 뒤처진 박제된 구호로 전락한 지 오래다. 취업난과 치솟는 집값 등으로 초래된 경제적 어려움이 고조되고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꺼리는 ‘관태기(인간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의 사람들이 늘면서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요즘 TV 화면은 이 같은 현실과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남녀 만남을 전면에 내세운 다양한 포맷의 짝짓기 프로그램들이 쏟아지고 있다. 젊은 남녀의 만남을 내세운 채널A의 , Mnet의 , E채널의 부터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된 중년의 짝 찾기를 다루는 KBS Drama의 까지 남녀 만남 프로그램이 시청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이전의 남녀 만남 프로그램보다 진화된 채널A의 은 폭넓은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9월 1일 막을 내린 . 남녀 각각 4명의 출연자가 한 달 동안 정해진 숙소에서 동거하며 자신에게 맞는 상대를 선택한다. 각자 자기 일을 하면서 퇴근 후나 휴일에 숙소에 머물며 관심이 가거나 호감을 느끼는 상대를 찾는다. 매일 상황과 감정 변화에 따라 전개되는 밀당과 탐색전으로 달라지는 남녀 만남의 판도가 매우 흥미롭다. 여기에 윤종신, 이상민 등 판정단은 연애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출연자의 감정 변화의 원인을 분석하며 성격, 취향, 심리, 직업, 외모 등 출연자의 상황에 따른 만남을 전망한다.
Mnet의 역시 과 기본 포맷이 비슷하다. 서로 ‘남사친(남자사람 친구)’, ‘여사친(여자사람 친구)’이라고 생각하는 네 쌍의 남녀들이 일상을 공유하며 만남에 이르는 과정을 관찰 카메라로 보여준다. 또한 은 최양락, 김태원 등 4명의 연예인 딸들이 남자 친구를 소개받고 만나는 과정을 보며 아버지의 입장에서 코멘트하는 포맷의 남녀 만남 프로그램이다. 은 황혼 로맨스 심폐소생 프로젝트를 표방한 프로그램으로 사별, 이혼 등으로 혼자된 연예인 어머니에게 데이트 상대를 찾아주는 과정을 담았다.
, 를 비롯한 요즘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은 취업난과 경제적 고통, 인간관계 맺기의 어려움, 가족 해체 등 사회경제적인 상황에 따른 남녀 만남 풍속도의 변화를 반영해 눈길을 끌고 있다. 결혼은 아득하고 연애조차도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서로 좋아하고 자주 연락하며 데이트는 하지만 정식으로 교제하지 않는 ‘썸’과 사랑이 아닌 우정 관계인 이성 친구를 의미하는 ‘남사친’, ‘여사친’처럼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남녀관계를 흥미롭게 드러내 인기가 높다.
같은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의 역사는 오래됐다. 남녀의 만남만큼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없기에 방송사들은 오래전부터 남녀 만남 프로그램을 제작해왔다. 이들 프로그램에서는 남녀 만남의 트렌드와 문화를 엿볼 수 있고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관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연애와 결혼에서 사랑, 외모, 성격, 성적 매력, 직업, 재산, 학력, 지위 등의 영향과 비중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 사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남녀의 만남 과정과 행태를 공적 공간인 방송으로 드러내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고 엿보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은 그 시대의 남녀 만남 풍속도나 트렌드를 반영하거나 선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남녀 만남 프로그램을 방송하기 시작했을까. 남녀 만남 프로그램은 크게 일회성 이벤트로 보여주는 연예인 만남 프로그램과 일반인 남녀가 출연하는 일반인 만남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시청자와 대중의 관심을 이끈 것은 일반인 남녀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다.
산업 성장기 초입에 돌입했지만, 여전히 가난한 서민이 많았고 가부장적 분위기가 엄존했고, 남녀의 공개적인 만남이 자유스럽지 않았던 1970년대에 남녀 만남 프로그램이 등장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바로 1977년에 방송된 MBC의 다. 코미디언 구봉서와 곽규석이 진행한 는 각각 3명의 남녀가 나와 대화를 나누며 데이트 상대를 찾는 TV 맞선 프로그램이었다. 공개적인 만남이 많지 않았던 시절의 는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며 큰 인기를 누렸다. 그 관심은 22 대 1이라는 출연자 경쟁률에서도 잘 드러났다.
고도성장과 가부장적 분위기가 감소하면서 남녀의 만남이 자유롭게 이뤄졌던 1980년대의 대표적인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은 1989년 MBC의 다. 1명의 여성과 4명의 남성이 출연해 만남 상대를 찾는 포맷이었다. 는 당시 사회문제로까지 떠오른 농촌 총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촌 총각과 도시 처녀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경제가 발전하고 가족 해체가 본격화하며 남녀의 만남이 매우 자유스러웠던 1990년대에는 남녀 만남을 주선하는 프로그램들이 쏟아졌다. KBS, MBC, SBS 등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사들은 한두 개의 남녀 만남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금까지 남녀 만남 프로그램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MBC의 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방송되며 높은 인기를 얻은 는 남녀가 각각 4명씩 출연해 게임과 대화를 하며 마음에 드는 상대를 선택하는 일명 ‘사랑의 작대기’가 일치하는 남녀 커플이 데이트를 하는 포맷의 프로그램이었다. 1990년대 대학생들의 미팅 문화를 보여준 는 7년 동안 1432쌍이 출연했고 이 중 47쌍의 커플이 탄생해 화제가 됐다.
학벌, 재산, 직업, 외모에 의한 서열화가 본격화하면서 결혼이 재산, 외모, 학벌 등 외형적 조건의 교환시장 성격을 띠기 시작한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남녀 만남 프로그램도 물화된 조건이 중시되는 풍속도를 보여줬다. KBS2의 , Mnet의 , JTBC의 등 진화된 형태의 다양한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들이 시청자와 만났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방송된 SBS의 은 이전과 전혀 다른 포맷의 남녀 만남 프로그램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논란도 컸다. 남녀 9~16명이 ‘애정촌’이라는 공간에서 합숙 생활을 하며 짝을 찾는 과정을 리얼리티 쇼 방식으로 보여준 은 연애와 섹스에 대한 개방적 자세, 외모, 재산, 직업 등 외형적 조건 중시 등 2000년대 남녀 만남의 현실을 반영했다. 여기에 관찰 기법, 사회자의 이야기 등 사실성과 일상성을 높이는 다양한 장치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남녀 만남의 극단적 상품화라는 논란 속에서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은 한 여성 출연자가 촬영 도중 자살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해 막을 내렸다.
이처럼 남녀 만남 프로그램은 시대와 현실, 그리고 남녀 만남의 풍속도를 반영하고 선도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남녀 짝짓기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에게 남녀 만남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트렌드를 제공하는 등 긍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은 남녀 만남을 외형적 조건의 교환시장으로 전락시키거나 극단적으로 상품화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청춘이란 꼬리표 때문에 중년들에게는 어색하고 불편했던 청바지. 하지만 청바지는 스타일링 회춘을 위한 필수 품목이다.
(다니엘 밀러·소피 우드워드 지음)이란 책에는 청바지에 관한 흥미로운 통계가 나온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전 세계 대도시를 갈 때마다 무작위로 지나가는 사람 100명의 옷차림을 관찰했고, 그 결과 절반 이상의 사람이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또 대부분의 사람이 일주일에 평균 3.2일꼴로 청바지를 입는다는 결과도 있다. 인종과 지역을 불문하고 청바지가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청바지가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수많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입는 사람 의도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린 청바지를 ‘가장 정치적인 옷’이라고도 부른다. 때때로 딱딱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청바지에 셔츠를 입고 나오는 것 역시 청바지가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하지만 중년들에게 청바지는 가깝고도 멀다. 청바지에 늘 붙는 꼬리표, ‘청춘’이란 두 글자 때문이다.
“왜 청바지를 안 입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너무 어려 보여서”라는 대답을 한다. 넝마처럼 너덜너덜한 청바지부터, 하지정맥류를 유발하는 스키니 진, 엉덩이를 반쯤 드러내는 핫팬츠 등 요즘 청바지는 젊은이들에게 포커싱되어 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청바지가 가진 장점이 너무 많다. 특히 편안함(실제 느낌이든, 이미지이든)을 포기할 수 없다.
중년 여성의 몸과 청바지가 멀어지기 시작한 건 극단적인 디자인 탓이 크다. 중년 여성이 청바지를 고를 때는 딱 세 가지를 염두에 두면 좋다. 몸매를 커버할 핏, 적당한 밑위길이, 그리고 뒷주머니 디자인! 청바지는 한 번 사두면 길게는 10년 가까이 입을 수 있는 아이템이다. 그러므로 유행을 타는 핏보다는 스트레이트 같은 클래식한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리바이스나 아페쎄 같은 전통적인 데님 브랜드에서 클래식 라인을 고른다면 핏이나 밑위길이에 대한 걱정은 덜어낼 수 있다. 세월의 흔적이 가장 잘 드러나는 엉덩이를 커버해줄 수 있는 뒷주머니 모양 역시 중요하다. 주머니의 착시 효과는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엉덩이도 달라 보이게 만든다. 너무 작은 사이즈의 주머니는 엉덩이를 크게 보이게 할 수 있으니 피하는 것이 좋고, 장식이 과한 주머니 역시 시선을 끌게 하므로 주의하는 게 좋다.
편하다는 이유로 제깅스라 불리는 레깅스 스타일의 탄성이 좋은 청바지를 고를 경우 우둔한 상체를 더욱 돋보이게 할 수도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청바지 스타일링 법이 궁금하다면 일본의 스타일리스트 이누바시리 히사노의 조언도 참고할 만하다. “나이 든 여성이라면 더 이상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매치하지 맙시다. 청바지에 스니커즈란 캐주얼한 패션의 정석이겠지만, 그것은 젊은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로퍼 같은 가죽 소재의 슈즈를 매치하세요.”
평생 양복만 입고 살아온 남자들에게 청바지는 더욱 낯설다.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할지, 벨트는 어떤 걸 골라야 할지, 셔츠는 넣어서 입는 게 좋은지 빼서 입는 게 좋은지 등등 구색을 맞추기가 어렵기만 하다. 청바지의 편안함은 누리고 싶지만, 그렇다고 카우보이처럼 터프한 데님 룩은 싫은 남자들에게 유럽 남자들의 데님 사용법은 큰 도움을 준다. 그들은 50여 년 전, 전통과 편안함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았다. 즉 재킷에 캐주얼하지만 시크한 구두를 신고 잘 재단된 청바지를 매치한다.
이 패션을 가장 잘 즐긴 사람은 예술가 앤디 워홀이다. 오죽하면 이 룩을 ‘워홀 룩’이라고 불렀겠는가. 앤디 워홀은 마치 몸에 맞춰 재단한 듯 딱 맞는 청바지를 즐겨 입었다. 허벅지에서부터 발목까지 여유롭게 떨어지는 핏인데(남자들에게 절대 권하고 싶지 않은 건 부츠 컷이다. 분명 그 바지를 입으면 앞코가 뾰족한 구두가 신고 싶어질 테고, 자연히 당신의 태도는 불량스러워질 거다) 자연스럽게 물이 빠진 무릎이나 주머니 부위가 자연스러웠다.
그와 같은 ‘인생 청바지’를 찾는다면, 이미 물이 빠져 있는 하늘색 청바지보다는 짙은 컬러(생지 데님)의 청바지를 사서 자연스럽게 물이 빠지게 하자. 자연스러운 사용감이야말로 청바지를 멋지게 만드는 포인트다. 앤디 워홀은 여기에 화이트 셔츠, 블랙 재킷, 체크 무늬 타이는 기본이었고, 겨울에는 블랙 터틀넥을 매치했다. 도톰한 양말이나 브라운 슈즈로 포인트를 주기도 했다. 머리가 하얗고, 그다지 크지 않은 키. 솔직히 조금 못난 그였지만 이 룩만큼은 앤디 워홀을 스타일리시하게 만들어줬다. 이번 가을, 당신도 스타일 회춘을 원한다면 청바지 사냥에 나서보는 건 어떨까.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영화와 공간: 홍콩’이라는 주제로 홍콩 영화 수작들을 상영했다. 상영작 중 두 편이 허안화 작품이었다. 홍콩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허안화(쉬안화, 許鞍華)의 작품들은, 일상을 통해 인생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여백과 깊이를 안겨준다. 현실에 발 디디고 사는 서민의 삶을 그려내는 감독 중 허안화만큼 진실한 감독도 드물다. 허안화 작품 세 편을 차례로 소개해보려고 한다.
1
여인 사십(女人, 四十)
주연: 소방방, 교굉
1999년에 국내에서 개봉된 허안화 감독의 (1997) 리뷰에서, 국내의 한 영화 평론가는 “세계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여성 감독 중의 일인”이라고 언급했다. 허안화의 작품은 수준 차가 심하고, 은 비슷한 주제의 걸작 멜로 (1996)을 이미 봐버린 우리의 눈높이를 채워주지 못하는 범작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모녀의 20년 세월을 그린 (1990), 치매 노인을 둔 가정 이야기를 주부 중심으로 그린 , 매염방의 연기로 길이 기억될 (2002)을 보면, 과대평가된 감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허안화 감독의 섬세한 관찰력과 표현력은 관객들의 가슴을 찡하게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 이런 면까지 빠뜨리지 않고 보는구나.”
“대사 한마디 않고 저런 감정을 표현해 내다니.”
여성 감독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장면들이 많이 발견된다. 여류라는 수식어를 자랑스럽게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은 허안화의 이 같은 매력들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치매 노인을 둔 가정의 어려움, 부모와 자식, 자식을 거두며 직장생활까지 해야 하는 중산층 중년 여성의 애환을 이보다 더 잘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인생의 뒤안길, 그 허무까지 보여준 깊이 있는 작품이 이라면, 은 고령화 사회, 중년을 맞은 직장 여성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디테일하게 다룬 영화다.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 등을 거머쥔 의 수상 내역이 백 마디 칭찬보다 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작품․감독․연기․ 촬영 등 전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필자는 특히 각본을 칭찬하고 싶다. 자상한 시어머니와 생활력 강한 큰며느리, 엄격한 시아버지와 그에게 쩔쩔매는 가족들, 시아버지 모시는 일에 나 몰라라 하는 동서와 시누이, 도움을 주지 못하는 소시민 남편, 여자 친구에게 채였다고 찔찔대는 아들. 마흔 살 생일을 맞은 며느리, 아내, 어머니에게 돌아오는 짐을 묘사하기 위한 가족 구성원의 행동과 대사, 세세한 삶의 장면들에 감독의 애정이 가득 담겨 있다. 이처럼 디테일한 묘사는 직접 체험 또는 발로 뛰며 수집한 자료들이 있어야 가능한 것들이다.
사실 소재는 너무 진부하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라서 이렇게 평범한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게 옳은 것일까 생각하게 할 정도다. 차라리 TV 드라마가 소화해내야 할 내용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어느 가정에서나 겪을 수 있는 진부한 삶의 조각들을 가지고 어떤 색과 모양을 빚어내고 통찰력을 이끌어내는가는 대본을 쓰는 사람이나 감독의 철학과 관련이 있다. 맏며느리를 도덕군자 같은 여인으로 묘사하길 즐기는 전근대적이며, 비현실적이고, 가부장적인 시선이 에는 없다.
자상한 시어머니에게는 마음을 열고, 못살게 구는 시아버지에게는 마지못해 공경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고, 착하긴 하지만 가사 분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남편이나 아들에게는 투정도 부린다. 자기감정에 충실한 40대 가정주부가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를 잘 돌보는 것은 단지 맏며느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깊은 이해, 인간애, 연민 등에서 우러나는 보다 근본적인 행동임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허안화 영화의 힘이다.
허안화의 다른 영화들을 평가절하한다 해도 과 두 편은 홍콩 영화사에 이름을 남길 자격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40회 생일을 맞은 손 여사(소방방 蕭芳芳)에게 철없는 아들은 마른 거위를 사다 주고, 남편(나가영 羅家英)은 부모님도 오시니 재료를 아끼지 말고 요리하라고 주문한다. 큰며느리인 손 여사를 마땅찮게 여겨온 시아버지(교굉 喬宏)는 식구들이 식탁에 앉기도 전에 혼자 맛난 음식을 다 골라먹은 후 아내를 재촉해 휭 가버린다.
어느 날 시아버지는 “마누라가 일어나 밥할 생각도 안한다”며 큰며느리를 찾아온다. 큰며느리는 자상했던 시어머니의 죽음으로 망연자실해한다. 아내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시아버지는 아들딸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데, 그토록 미워했던 큰며느리만은 알아보고 의지한다.
화장지를 만들어 파는 중소기업의 업무부 주임인 손 여사는 가사노동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주변머리 없는 남편, 철없는 대학생 아들과 함께 어린아이처럼 변한 덩치 큰 시아버지를 모시느라 고군분투한다.
시장에서 생선을 사며 실랑이를 하는 첫 장면에서 손 여사의 생활력과 성격을 알아챌 수 있다. “아직도 고르지 못했느냐?”고 다그치는 생선 장수. 살아 있는 생선이라 더 비싸게 받는 거라는 말에 몰래 생선을 때려죽인 후 죽은 생선이라며 억지를 부리는 깍쟁이 주부. 다음에 먹을 요량으로 생선 가운데 토막을 냉장고에 보관해두려는 아내를 보고 남편은 전부 다 요리하라며 잔소리를 한다. 시어머니는 새우 요리를 해와 주방에서 큰며느리에게 먹이고, 선물도 잊지 않고 건네준다. 유별난 성격의 아들과 살며 직장생활에 빠듯한 살림을 꾸려가는 큰며느리가 기특해서 신경을 써주는 것이다. 시아버지는 식탁에 떡 버티고 앉아 배가 고프다며 젓가락을 두드리고, 슬리퍼는 여자가 신겨줘야 한다며 위엄을 부린다.
초반의 몇 장면만으로도 가족의 성격, 큰며느리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이런 장면은 이후로도 계속 나온다. 손 여사 남편이 동생 부부를 만나 시아버지 모시는 문제를 의논하는 자리에서 동생 부부와 조카들은 스테이크를 시켜먹고 손 여사 남편은 볶음밥을 시킨다. 먹성 좋은 조카들이 볶음밥도 먹겠다고 투정을 부리자 두 조카에게 기꺼이 밥을 나누어주는 손 여사 남편. 잘사는 동생은 회사 일이 바쁘다며 밥값을 형님에게 떠넘기고 일어난다. 가정부를 두고 사는 동서는 두 말썽꾸러기 아들 뒷바라지와 강아지 돌보기, 영화 관람, 파티 때문에 시아버지를 모실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운전면허시험장 감독관인 손 여사 남편은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말단 공무원이다. 직장 동료들과 술집에 둘러앉아 자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지인 이야기, 부모와 장모 모시는 어려움을 토로하며 노래 한 곡조를 뽑으면 젊은 손님들은 "도대체 몇 년도 노래를 부르는 것이냐"고 야유를 퍼붓는다. 손 여사 남편은 자기 세대의 처지와 시대 변화를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받아들인다.
반대머리에다 안경을 쓴, 마르고 작은 체구의 손 여사 남편은 공군 조종사 출신으로 당당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는 일흔 살 아버지에게 멱살을 잡히기도 한다. 손 여사는 “아버님은 저렇게 체격이 좋은데 당신은 왜 그 모양이냐”고 나무라며 파스를 발라준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버린 중년 부부의 아름다운 한때를 정감 있게 표현한 장면이다.
손 여사 남편은 가끔 가장의 권위를 세우고 싶어 한다. 아내가 너무 힘들다고 투정을 하자 “내게 시집 온 게 최대 행복이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맞받아친다. 그러나 “그건 다 옛날이야기”라는 아내에게 더 이상 한마디도 못하는 남편. 그는 아버지의 치매로 인한 소동이 그치질 않자 “차라리 내가 치매에 걸려 모든 걸 잊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소심하고 착한 이 시대의 중년 가장, 남편, 아버지를 대표한다.
손 여사는 남편에 비해 사회적 욕구와 책임감이 강하다.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를 돌보라고 하자 “회사 다니는 게 나의 유일한 낙”이라며 거절한다. 수십 년간 회사의 모든 업무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신속하게 처리해온 손 여사는, 젊고 예쁜 여직원이 들어와 전산화를 구축하는 바람에 뒷전으로 밀린다. 그러나 컴퓨터 고장으로 회사 업무가 마비되었을 때 수많은 거래처와 주문량을 완벽하게 처리해온 솜씨를 발휘해 다시 사장의 신임을 얻는다. 바이어의 식성까지 기억해두었다가 싸고 맛있는 음식점을 예약해 회사 경비를 줄일 만큼 애정과 완벽성을 갖춘 프로 직업인이다.
손 여사는 택시 기사가 요구대로 운전하지 않자, 교통불편처리센터에 전화를 걸어 고발하려 한다. 작은 불의도 참아 넘기지 않는 손 여사의 시민 의식. 물건 값을 깎는 깍쟁이이긴 하지만 그 선은 어디까지나 자잘한 생활의 눈속임을 넘지 않는 정도다.
손 여사는 재치 있고 영민한 여성이다. 공군 장교였던 시아버지가 전쟁 시절을 떠올리며 낙하산 타기, 포로 족치기와 같은 전쟁놀이를 할 때 그녀는 시아버지와 똑같은 전쟁놀이로 시아버지를 안전하게 돌본다. 남편이나 아들은 전혀 생각해내지 못한 지혜다.
할아버지의 치매로 인한 부모님의 고생을 바라보는 대학생 아들의 심정, 즉 젊은이들의 시선도 감독은 지나치지 않는다. “어머니, 아버지도 할아버지처럼 되는 건 아니겠지요? 오래 살지 마세요. 모두 힘들잖아요”라는 아들의 말에는 늙음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다. 그러나 아들의 통찰은 여자 친구가 연락을 하지 않는다며 징징대는 사랑 투정에 묻힌다. 대학생 아들에게 늙음은 아직 눈앞의 일이 아닌 것이다.
반면 손 여사 부부에게 노년은 머잖아 닥칠 일이다. “당신이 추하게 오래 살면 내가 먼저 죽어버릴 거야”라고 남편이 말하자, 손 여사는 “당신이 추해지면 내가 죽여줄게요”라고 말한다. 노년의 두려움은 손 여사의 이모 부부를 통해서도 반복된다.
양로원에서 이모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 이모부는 이모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경질만 부린다. 이모는 위암에 걸려 먼저 죽게 되자 남편과 이별을 고하며 이렇게 타이른다. “당신이 날 데려가야 하는데. 이제는 성질부리시면 안돼요. 저 세상에서 만나면 나는 당신 부인 노릇 안 해요. 다시 부부가 되어야 한다면 그때는 당신이 부인 노릇 해요.” 이 짧은 장면은 우리 어머니 세대의 긴 인고의 세월을 대신 보여준다.
가혹하게 따지고 들면, 긍정적이며 바람직한 여성상으로 그려진 손 여사와 이모는 남성들이 바라는 여성상일지도 모른다. 자기를 우선으로 내세우는 손 여사의 동서와 시누이가 현대 여성에겐 더 와 닿는다. 그러나 신뢰와 연민이 결여된 이기주의는 남성이건 여성이건 옳지 않다. 손 여사와 시어머니의 관계처럼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살펴줌으로써 그리운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그리고 바람직한 모습 아닐까.
시시콜콜 장면을 설명하듯 이야기해봤다. 볼 마음이 없어진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의 설명만으로는 감독의 영상을 따라잡지 못한다. 옮기지 못한 장면이 더 많다. 특히 이 영화의 주제라 할 수 있는 ‘그래도 살 만한 세상’임은 직접 영상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인 ‘Summer Snow’처럼, 무더운 여름날에 내리는 눈꽃을 맞아보는 기쁨을 만끽하길 바란다.
필자 지인들은 은퇴 후에도 어울려 재미있게 지낸다. 몇 달에 한 번씩 모였던 동창들도 더 자주 모임을 갖고 우정을 다진다. 하지만 일원 중에 허풍쟁이가 있으면 화기애애한 모임 분위기가 가끔씩 망가지는 경우가 있다.
요즘은 모이면 막걸리 한 사발씩 돌리기보다는 건강 음식을 먹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둘레길 산책·문화유적지 탐방·영화 감상 등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야 모임이 활발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꽃향기가 진하게 풍기던 지난 봄, 고등학교 동창 몇십 명이 ‘안개 낀 장충단 공원’에서 만나 호젓한 성곽 길을 걸어 남산에 올랐다.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며 친구들과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그날은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대화 소재였다. 대부분 손주를 거느린 할아버지이지만, 손주를 안아보기는커녕 아직 결혼도 안 한 자녀와 함께 사는 친구도 있었다.
그날도 딸만 있어서 서운하다는, 평소 말을 많이 하는 친구의 딸 자랑이 여느 때처럼 뻥뻥 터졌다. “딸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격한다”면서 하나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상식선을 넘고 있었다. “말 같은 소리를 해라.” 듣다 못해 한 친구가 냅다 소리를 질렀다. 필자 기억으로도 얼마 전에 하던 얘기보다 허풍이 더 심한 것 같았다. 물론 사실일 수도 있지만 그 내용이 점점 더 믿기 어려웠다.
이 친구의 딸 자랑은 이전에도 있었다. 처음에는 두 딸의 효도 이야기에 모두들 감동하며 부러워했다. 친구들은 “딸이 효녀네~ 행복하겠어~”라며 칭찬했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더 부풀려진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도 친구들은 열심히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얼마나 딸 자랑을 하고 싶으면 저러는가 싶어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듣는 사람이 추임새라도 넣어주면 그의 이야기는 어느새 산더미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한두 번도 아니고 이번에는 딸 자랑이 좀 위험하게 들려왔다.
그렇다! 듣는 사람 중에 아직 결혼도 안 한 자녀 때문에 속이 새까맣게 탄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망각한 것이다. ‘이야기를 할 때는 듣는 사람 입장도 생각하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실감했다. 결국 이번에는 필자가 못 참고 터지고 말았다. “한 번쯤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항상 그럴 수는 없을 거야!”라며 허풍쟁이 친구를 쏘아붙였다.
남산타워가 우뚝 솟은 262m 높이의 나지막한 남산. 광장에 가 보니 붐비는 여행객만큼 수많은 사연이 담긴 사랑의 자물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지나온 세월이 문득 그리워졌다. 젊은 시절에는 케이블카 좀 타보려고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렸다. 중년에는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던 길, 이제는 건강을 위해 그 길을 다시 걷는 나이가 되었다. 빌딩이 가득한 시가지 모습이 눈에 가득 담겼다. 고층 건물이 몇 개밖에 없었던 젊은 시절에는 삼일고가도가 웬만한 건물보다 높았다.
친구와 함께 걸으며 아름답게 추억할 일도 많은데 마음이 소란스러워졌다. 허풍을 떨면서 딸 자랑을 늘어놓는 친구 때문에 마음이 상했을 친구와 어깨를 나란히 맞춰 걸어본다. “그 친구 말은 거의 허풍이야.”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짓는다. 그 미소를 보니 끓어올랐던 화가 슬며시 가라앉는다.
조용필(67), 안성기(65), 전영록(64), 윤석화(61), 김창완(63), 하춘화(62), 김해숙(62), 배철수(64), 송승환(60), 손석희(61), 장사익(68), 임성훈(67), 강석우(60), 혜은이(61), 태진아(64), 최백호(67), 양희은(65), 윤여정(69), 이수만(65)….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유행하는 코드와 아이콘이 급변하는 영화, 방송, 드라마, 대중음악, 공연, 연예기획사 등 대중문화와 엔터테인먼트 산업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며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연예인과 방송인, 사업가라는 점이다. 그리고 60대라는 공통점도 있다.
60대 관련한 새로운 문화와 산업이 뜨고 있다. 과거의 60대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 라이프스타일과 소비패턴, 활동 양태를 보이는 뉴식스티(New Sixty)를 겨냥한 다양한 문화와 산업들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중년도 노년도 아닌 나이를 잊고 사는 ‘논 에이지(Non Age)’ 대표적인 세대가 요즘 60대다. 뉴식스티로 불리는 60대는 베이비붐 세대로 1970~1980년대 산업화 시대의 주역이자 1990~2000년 아파트 호황기를 누리며 민주화의 정치적 격변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다. 이들은 패션에서부터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와 상품을 본격적으로 소비한 세대이기도 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요즘 60대는 가장 오랫동안 일했고 가장 많은 돈을 벌었으며 소비욕망이 강한 세대로 은퇴를 본격화하며 100세 수명시대에 인생 2막을 열고 있는 주역이다”라고 분석한다.
2013년 기준 우리의 기대수명은 81.8세로 요즘 60대는 평균 20년의 삶을 더 산다. 그동안 60대 하면 인생이 끝났다고 보고 퇴직 이후 새로운 시작을 하지 않았지만, 기대수명 82세 시대에선 60대가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며 다양한 취미와 문화생활을 시작하고 새로운 사업이나 일에 도전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세대별 가구당 평균 자산 규모는 50대가 4억2229만원으로 가장 많고 60대가 3억642만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다음은 40대(3억3175만원), 30대(2억4007만원), 30세 미만(8998만원)의 순이었다. 이처럼 자산이 많은 60대는 이전과 다른 왕성한 소비 스타일을 보인다.
서울문화재단이 최근 발표한 ‘서울시민 문화향유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60대 연평균 문화예술 관람 횟수가 38.6회로 30대(37.3회), 40대(30.1회), 50대(31.6회)를 압도했고 문화예술 동호회 참여(66.2%)와 창작적 취미활동(44.6%)도 활발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은 ‘라이프 트렌드 2017’에서 “오늘날의 60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나이다. 중년도 노년도 아닌 특별 지대인 셈이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60대가 등장했다. 나이를 잊은 60대의 변신, 멋쟁이로 거듭나는 ‘뉴식스티’를 주목하라. 60대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소비 주체로 급부상한 새로운 60대의 실체가 보일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60대는 인생을 즐기고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며 노인이기를 당당하게 거부하고 왕성한 소비활동과 여가생활을 하는 뉴식스티를 겨냥한 다양한 문화와 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젊은 주인공과 식사하는 장면에만 모습을 보여 ‘식탁용 캐릭터’로 전락한 60대 조연 캐릭터를 등장시켰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영화,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들이 최근 들어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60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나 영화 등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60대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그린 작품에서 새로운 60대의 변화된 생활과 심리를 소재로 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60대 주인공 캐릭터를 내세운 다양한 내용과 소재의 영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연극, 뮤지컬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요즘 중년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소설 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뮤지컬과 연극, 자식 세대의 결혼 인턴제, 부모 세대의 졸혼 등 변화된 가족 풍속도를 담은 KBS2 주말극 , 60대 부부가 자식을 다 결혼시킨 후 황혼 이혼 대신 한집에 살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사는 해혼(解婚) 생활을 다룬 SBS 주말극 , 60대인 윤여정이 요리사로 나오는 tvN 예능 프로그램 , 김윤진이 40대와 60대 엄마를 오가며 연기하는 영화 등 60대 주인공을 내세운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60대를 겨냥한 대중문화 작품이 붐을 이루면서 이전에는 ‘퇴물’ 취급을 받았던 60대 연예인과 방송인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안성기, 윤여정, 김해숙, 강석우, 송승환 등은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활동하고 있고 윤석화, 예수정은 젊은 연극배우들도 소화하기 힘든 모노드라마 등에서 주연으로 나서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배철수, 임성훈은 음악 프로그램과 교양 프로그램 메인 MC로 맹활약하고 있으며 손석희는 JTBC 앵커로 나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조용필, 김창완, 하춘화, 장사익, 태진아, 전영록 등 60대 가수들은 신곡을 발표하며 정기적으로 콘서트를 갖는 등 전성기 못지않은 현재진행형 가수로 활약하고 있다. 경쟁이 가장 치열한 대중문화 산업의 선두주자인 SM엔터테인먼트를 이끄는 수장은 60대 이수만이다.
60대에도 주연을 맡으며 한국 영화계를 선도하는 안성기는 “나의 최고 작품은 언제나 다음 작품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60대 배우만이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나 내용, 소재의 영화들이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대중문화뿐만이 아니다. 이전의 60대와 전혀 다른 소비 스타일과 여가생활을 보여주는 뉴식스티를 겨냥한 패션, 화장품, 여행, 통신 상품 등도 본격적으로 출시되며 성업 중이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다 올해 초 정년퇴임한 정영재(65)씨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스킨스쿠버를 배우기 위한 여행상품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 레저와 결합한 여행상품은 젊은 층만 이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 나 같은 60대도 많이 이용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뉴 식스티는 이제 새로운 대중문화와 산업의 트렌드의 진원지이자 새로운 문화의 핵심 키워드로 확고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주책이란 말은 사전적 용어로 ‘일정하게 자리 잡힌 주장이나 판단력’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어 주책이 없다는 말은 이러한 냉철한 판단력이 없다는 뜻이다. “노인네가 주책없이! 남 보는 앞에서 뽀뽀한다”는 말은 남의 이목도 있는데 젊은 애들 앞에서 주책을 떠는 것이며 줏대 없이 되는 대로 하는 짓이라는 뜻도 된다. 물론 아낙네들의 애교 섞인 핀잔은 내심 싫지 않다는 정겨움이 담겨 있다.
조금은 허풍스러운 면도 있어야 사는 재미가 있다.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사는 삶은 무미건조하기 십상이다. 특히 부부 사이에서는 가끔 주책스런 장난기가 발동해야 한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살았을 때 이웃집 중년 부부가 장난치는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아내가 마당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는데 남편이 지나가다 돌담 너머로 조그만 돌을 물통에 던져 물을 튀게 하고는 담장 밑으로 몸을 쏙! 숨기고 아내를 두리번거리게 만드는 모습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그런가 하면 영화 *의 한 장면은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눈을 *한주먹 뭉쳐 할머니에게 던지며 눈싸움을 하고 할머니는 그 복수를 반드시 할 거라며 비장한 각오를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 밥 잡수실 때 쌈에 소금이나 매운 고춧가루를 넣어 매운맛으로 복수를 한다. 또 익은 감자를 드시라고 먹여주며 *숫깜뗑이를 얼굴에 묻혀 복수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부부는 가끔 이렇게 주책없이 살아야 자녀들이 나가버린 빈 둥지 같은 집에서 외롭지 않게 애틋한 정을 나눌 수 있다.
필자의 부부관계에서도 주책없음은 큰 위력을 발휘한다. 거실에서 부엌으로 오갈 때 아내의 엉덩이를 툭 치거나 쓰다듬어주면 밥 짓다 말고 기겁을 하며 ‘주책없다’며 핀잔을 준다. 그러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부부간의 애정은 값비싼 선물을 사줄 때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작은 스킨십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가끔은 자식들 앞에서 “오늘 된장찌개가 최고의 맛”이라며 기습 뽀뽀를 감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일에는 시집와줘서 고맙고 수고했다고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등에 없고 거실을 한 바퀴 도는 것도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주책없음은 조금은 갑작스럽고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어야 제맛이 난다. 예측되는 행동이 아니라 전혀 예측되지 못한 것이어야 한다. 아내는 다리를 바둥거리며 내려놓으라며 난리를 필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얼굴에 도는 화색을 감출 수 없다. 아직도 나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구나 하며 감사해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시작한 신혼 초는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산 비결은 이런 작은 주책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앞으로도 필자는 이 사랑의 묘약을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부부의 사랑의 묘약을 살짝 공개한다.
주책 사용법: 너무 과하지 않게,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기습적으로 아내가 다리를 바둥거리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