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인문학자라 불리는 김찬호(金贊鎬·57)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그는 인간의 영혼이란 매우 여리고 취약한 것이라 말한다. 누구든 작은 말 한마디와 눈빛만으로도 타인의 영혼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자기 영혼을 다스릴 수 있는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울러, 이러한 감수성은 인간의 언어를 ‘경청’하는 경험에서 나온다고 덧붙인다. 그는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서해문집)를 통해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구술생애사를 통해 본 희망의 노년 길 찾기’라는 부제의 도서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공동저자인 김찬호 교수와 문학평론가 고영직, 여성학자 조주은은 각자 베이비부머를 한 사람씩 인터뷰하며 그들의 생애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반평생 은행원으로 일하다 늦깎이 시인이 된 최영식 씨, 전업주부로 살며 포기했던 꿈에 다시 도전하는 김춘화 씨, 이우학교를 만들고 현재는 ‘50+인생학교’ 학장이 된 정광필 씨. 그중에서 김 교수가 만난 이는 정광필 학장이다. 일전에도 대안 교육과 관련한 공식 모임에서 만난 적은 있지만, 단둘이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은 처음이다.
“아는 사이지만 사적인 대화를 한 적이 없어 호기심이 생겼어요. 정광필 학장은 고등학생 때부터 정치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고 용기 있는 실천을 해왔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을 텐데, 모든 일을 게임 감각으로 풀어나가는 경쾌한 분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인생 선배에게 배운다는 게 이거구나, 말보다는 어떤 기운으로 그가 살아온 인생이 묵직하게 느껴졌죠.”
그는 10시간 가까이 정 학장을 인터뷰 했지만, 한 가지 묻지 못한 것이 있었다. “오랜 시간 누군가에게 내 삶을 말 해보니 어떤가요?”라는 것. 질문을 바꿔 김 교수에게 물어봤다. “오랜 시간 누군가의 삶을 들어보니 어떤가요?”
“나의 스토리가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 즉 스토리가 텔링이 되면 또 다른 힘이 생깁니다. 수박 겉핥기이지만, 한 사람의 60년 인생을 따라간 거 아녜요. 일종의 시간 여행이죠. 그분의 삶을 통해 나를 잠깐 떠나볼 수 있는, 나를 객관화하고 낯설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인터뷰할 땐 그 사람의 삶에 온전히 들어가 있으면서 동시에 나와 있어야 하거든요. 살아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그의 표정과 함께 다가올 때, 그 삶을 내가 잠깐 살아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인터뷰라는 게 참 재미있죠.”
삶의 공백을 채우는 자기 언어
김 교수는 생애 전환기의 중장년 세대가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그 발걸음이 품고 있는 내재율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기 삶을 되짚어보길 바랐다.
“베이비부머가 압축 성장한 산업화 시대를 살았다고 하는데, 당시엔 민주화도 아주 급진적으로 이뤄졌어요. 그 시기 산업화와 민주화의 공통점은 자기 삶이 없다는 거예요. 그냥 내던진 거죠. 돈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그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친구들이 끌려가고, 가족이 죽고, 자기도 당하고, 그런 아픔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채 살아왔죠. 그런데 세월이 흘러 외적으로는 뭔가 생겼어요. 돈, 지위, 명예… 내적으로는 굉장히 공허한데 말이죠.”
그는 현재 시점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음미해볼 것을 권했다. 이를 위해서는 삶의 여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여유로운 중장년의 경우 삶의 여백이 많다고 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백과 공백은 다르죠. 디자인도 잘못한 걸 보면 여백이 아니라 공백처럼 느껴지잖아요. 마찬가지로 시간이 비었다고 무조건 여백은 아닙니다. 노후에 할 일이 없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엔 공백이라고 봐야죠. 그러니 공허한 거고요. 빈 시간이 여백이 되려면, 그만큼 자기 마음에 그릇이 생겨야 해요.”
마음의 그릇은 어떻게 만드느냐고 묻자, 김 교수는 ‘자기 언어’가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가 강조하는 ‘자기 언어’는 무엇일까?
“언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의 도구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의 한마디가 사람들을 울릴 때가 있잖아요. 또 극한의 고통에 빠진 사람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호소, 그때의 언어는 신호가 아니거든요. 그 존재가 다가오는 거지. 이때 느끼는 자기 언어의 생명력은 대단한 학식이 없더라도 누구나 경험하고, 감동할 수 있죠. 자기 언어는 내면에서 생성되는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 바깥에서 지식으로 언어를 흡수하기 때문에 일상의 언어가 도구화되어 버렸죠.”
그는 특히 중장년 세대가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하고 살아왔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명령의 언어, 힘겨루기의 언어, 과시의 언어 등에 익숙해져버린 것. 이에 대한 해답 역시 ‘경청’이라 제안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에 경청할 여유가 없었고, 반대로 온전히 나를 경청해주는 사람 앞에서 말해본 적도 없어요. 늘 대화하면서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하죠. 그건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닌 견제거든요. 서로 위협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정서적 신뢰를 쌓는 안전한 관계가 필요한 거죠.”
내 남은 생애가 쓰이길 바라며
경청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마음먹고 잘 들으려 하다가도 어느새 잔소리를 늘어놓기 일쑤다. 이에 김 교수는 ‘감수성’ 차이에서 오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내가 잘해주고 싶은 것보다 상대가 필요로 하는 걸 헤아려야죠. 그게 감수성이고, 센스인데, 의지만으로 생기지 않는 것들이에요. 먼저 자기 삶을 들여다보는 훈련이 돼 있어야 해요. 관찰, 통찰, 성찰은 함께 이뤄져요. 상대에 대한 이해는 나에 대한 이해와 같습니다. 남에게 친절한 사람은 그만큼 자신을 사랑하는 거고, 늘 화내는 사람은 자신과도 불화 관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나와 잘 지내기가 곧 남과도 잘 지내는 방법이라는 것. 그렇다고 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게 꼭 자기만 생각하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삶을 좋게 만들고자 할 때 자연히 나의 삶과 관계도 편안해질 수 있다고.
“꼰대질이라는 걸 왜 하게 될까요? 에고(ego)에 갇혀 있기 때문이에요. 에고에서 벗어나려면 자기를 넘어선 세계를 지향해야 합니다. 공적인 영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 역사의식 등이죠. 내 남은 생이 인생 후배들의 삶을 위해 쓰이도록 초점을 맞춰야 해요. 그러면 꼰대질을 덜 하게 되죠. 꼭 내가 인정받지 않아도 되니까요. 여생의 능력이 쓰여 누군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기면 내가 대접받고 아니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져요.”
책 말미에서 정 학장은 “나이 들어 더 좋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세월이 갈수록 이해가 많이 된다. 스스로 내려놓으면 오히려 많은 걸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에게 같은 질문을 하자,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포기할 게 많아진다는 것?(웃음) 선택지가 줄어들거든요. 이미 많은 게 굳어진 상태니까요. 좋은 의미의 체념이랄까? 고민할 게 줄어드니 마음이 한결 편안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하는 취미는 무엇일까?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에 의하면 등산이다. 2015년 9월 25일 발표한 조사 결과인데 국민 100명 중 14명이 등산을 꼽았다. 그다음은 영화 및 음악감상(6%), 운동헬스(5%), 게임(5%)순이었다.
등산은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취미라고 한다.
나도 한때 주말이면 어김없이 산에 오르던 시절이 있었기에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결과다. 지금 살고 있는 파주로 이사 오기 전까지 서울 관악산 자락 아래 살면서 ‘동네 뒷산’을 오르는 일로 주말 아침을 열곤 했다. 아파트 뒷길로 해서 관악산으로 곧장 이어지는 왕복 3시간 코스의 산을 걷다 보면 지나간 일주일 동안의 스트레스, 관계의 고단함 등으로 꼬여 있던 마음의 매듭이 사르르 풀리면서 홀가분해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
혼자 하는 산행이 몰입과 명상에 가깝다면, 함께하는 산행은 관계의 충만함을 준다. 가파른 봉우리를 나란히 오르다 보면 어느새 동지애 비슷한 느낌이 생기면서 서로의 삶 속에 한 발 더 다가선 느낌이 든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모임이 봄가을 산에서 개최되는 것은 다 까닭이 있다. 한국인의 취미 1위로 꼽히는 등산은 이처럼 몰입과 관계성 모두를 충족시킨다.
몰입의 황홀함
교육학·심리학의 세계적인 권위자 칙센트미하이 박사는 그의 저서 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는 순간 삶이 변화된다고 말했다. 어딘가에 빠져든다는 것, 몰입은 황홀한 경험이다. 몰입은 현재의 나와 단절이자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삶이 고단하고 그 무게로 인해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고통스런 현재와 잠시라도 단절할 수 있다면 고통은 견딜 만하다. 정신분석가이자 거리의 치유자로 불리는 정혜신 박사는 세월호로 자식을 잃은 유가족을 위해 치유공간 ‘이웃’을 마련했는데 세월호 유가족 엄마들의 그 고통스런 시간을 버티게 해준 것은 따뜻한 치유의 밥상과 뜨개질이라고 말했다. 뜨개질을 하는 동안만큼은 고통을 잊을 수 있어서 엄마들은 무서운 집중력과 속도로 뜨개질에 몰입했고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나는 요즘 달리기에 빠져 있다. 일주일에 평균 3회를 달린다. 퇴근 후 밤늦게 한 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어제 걸었던 길이 오늘은 다르게 느껴지는 등 매번 새롭다. 새로움은 신선한 자극이자 즐거움의 원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달리는 순간만큼은 내 몸의 변화에 몰입하게 되면서 어제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달리기 전엔 지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다가도 막상 달리다 보면 몸이 살아남을 느낀다. 몰입이 주는 경이로움이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오십에 들어서는 나는 갱년기라는 인생의 피할 수 없는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오후만 되면 몸이 땅속으로 꺼질 듯한 피로감이 몰려오고 무력감으로 도통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3년 전 경기 북부 신도시로 이사해 출퇴근 시간이 길어진 탓에 집에 도착하면 떡실신이 되어 침대에 쓰러지기 일쑤다. 저녁이 있는 삶은 요원하고, 버티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었다. 우울감과 심리적인 변덕도 불쑥불쑥 찾아왔다.
이런 변화들을 보면서 스스로 갱년기라 진단내리고 시작한 것이 걷기와 달리기였다. 몰입과 명상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기, 현실의 얽힌 매듭을 내려놓음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는 데는 딱이었다. 달리다 보면 변하고 있는 나, 기존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쁨도 찾아온다.
그래서일까. 출구가 아직은 한참 남았지만 갱년기, 더 나아가 노년기도 삶의 일부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든다.
시니어에게 취미는 행복의 필수 조건
젊은 사람들에게 취미는 일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여가생활에 가깝다. 반면 생활전선에서 은퇴한 후 상대적으로 시간이 넉넉한 대다수 중장년층 또는 시니어들에게 취미는 생활을 활기 있게 구성하는 핵심 축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취미가 일의 보완재라면 시니어들에게는 필수 항목에 가깝다.
취미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삶이 지루할 틈이 없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다양한 취미로 생활을 즐겁게 꾸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시니어에게 넉넉한 시간은 견뎌야 하는 지루한 날들이 아니라 축복이다.
몇 달 전 일이다. 경의선 퇴근길에 라이딩 복장을 한 어르신 몇 분이 내 옆자리에 앉게 되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주에 사는 자전거 동호회 회원인데, 지난봄 개통된 동해환상자전거길을 3박 4일 라이딩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함께 달리고, 먹방도 시도하는 즐거움 속에 삶이 매번 새로워진다며 즐거워했다.
실제로 행복한 시니어가 친구 관계를 즐긴다는 사실이 여러 지표에서 나타나고 있다. 돈이 있고 친구가 없는 것보다 돈이 없어도 친구가 많은 사람이 행복하다는 사실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상식이다. 특히 여성일수록 취미, 교양, 스포츠, 친구가 많을수록 행복하다고 한다. 친구 또는 이웃과 함께할 때 더불어 행복의 기쁨을 알고 추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의 기쁨은 홀로 느끼는 행복감과는 비교할 수 없다.
사람은 늙어서 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놀지 못해서 늙는다는 말도 있다. 나이 듦을 핑계 삼아 삶을 무료하게 보내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고 잘 놀아야 멋지게 나이 들어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잘 노는 것은 취미생활을 잘 꾸린다는 것과 동의어다.
행복은 더불어 잘 놀 때 찾아오는 것
노년의 행복에 있어 소득과 건강의 역할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 두 가지를 제쳐둔다면 행복한 노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 활용이라고 한다. 수많은 행복연구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바다. 특히 가족,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행복감은 고조된다고 한다.
한국 노인 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사회로부터의 고립’이다. 고립은 정서적 소외감으로 이어지면서 삶의 질, 행복을 저하시킨다. 고립되지 않도록 누군가와 연결되는 것, 즉 사회적 관계는 삶의 질 회복을 위한 버팀목이다. 물론 가족의 역할이 일차적으로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가족에만 의지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노년으로 갈수록 사회적 교류, 관계성 회복이 절실하다.
취미활동은 사회적 관계를 자연스럽게 활성화시키는 시간 활용 방법이다. 다양한 문화·레저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관계를 가질 때 행복감은 높아진다. 50플러스재단, 인생이모작센터 등을 중심으로 최근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노후 프로그램은 대체로 취미활동을 즐겁게, 이왕이면 경제적으로도 유익하게 꾸리도록 하는 데 있다.
많은 노인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TV 시청은 오히려 행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드라마에 푹 빠져 재미를 느끼는 것은 그 순간일 뿐 지속적인 즐거움이 없다. 무엇보다 함께 도모하고 나누는 ‘관계’에서 비롯된 기쁨이 없다. 행복은 더불어 함께할 때 온다. 가족이든, 친구이든, 이웃이든. 인생의 황혼이 깊어갈수록 절실하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며칠 지나면 크리스마스이고 다음 날은 아버님 기일이다. 형제자매와 조카들에게 "아버님 기일 오후 4시에 메모리얼 파크에서 모이자“고 ‘가족밴드’에 올렸다. 형제자매들은 가족들의 소통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가족밴드를 이용한다.
의사소통의 변천사
통신수단이 발달하기 전에는 직접 대면하여 소통하였다. 어른이나 상사를 찾아뵙고 말씀을 나누고 지인을 직접 만나서 의사소통하는 방법이다. 지금도 이 방법이 최고의 예절로 자리하고 있다. 우편제도가 발달하면서 편지를 애용하였다. 정성이 제일 많이 들어가는 이 방법은 중장년이면 꼬박 밤을 새운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글재주 좋은 사람은 ‘편지대필’로 친구의 연애를 돕기도 하였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거의 사라졌지만 비싼 요금에도 불구하고 빠른 전보가 이용되었던 시대도 있었다. “만원속히송금요불효자" 10자 기본요금이 적용되던 50여 년 전 도시에 유학하던 친구가 시골 부모님께 학자금을 이중으로 보내달라는 전보내용이다. ”직접 찾아가서 설명하는 것은 거짓말이 되어서 싫고, 편지는 한 장을 다 채우기 귀찮다.“고 너스레를 떨던 친구가 생각났다.
통신수단과 의사소통의 발달
80년대 전화사용이 보편화 되면서 세상이 전화기 속으로 다 들어오는 것 같았다. 시골 이장 집에서 전화를 기다리던 일이 추억으로 남고, 공중전화, 삐삐를 거치면서 주요 통신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세월 풍미했던 전보처럼 휴대폰의 발달에 따라 메시지문자도 많이 이용되고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SNS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족밴드’가 가족들과 서로 소통하면서 정보를 하나의 장에서 공유할 수 있어서 매우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밴드의 소식은 모두가 공유할 수 있어서 좋다. 자유토론을 하고 합의 결과를 착오 없이 실행할 수 있다. ‘아버님 기일 공지’를 마치고 올해를 회상했다. 여름에 어머님이 소천하셔서 내년에는 두 차례 ‘추모모임’이 예정되었다.
부모님 덕분에 건강하게 살고 있는 나이 든 형제자매 세대보다 아들ㆍ딸ㆍ조카와 손주들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다음세대 아이들은 서울에서 나서 자라고 학교도 마쳤지만 전문 직업인이 되어 세종ㆍ대전에 멀리 울산까지 사는 곳은 전국구다.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매우 슬펐지만, 막내 동생의 딸의 교사 취임 등 좋은 소식이 많아 ‘40년 가족모임’ 중에서 제일 기분 좋은 날이 될 것 같다.
문명의 이기를 활용한 가족밴드
요즘은 길거리에서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누구든지 기쁘거나 급한 소식을 전하고 축하와 격려를 한다. 밴드가족이 소식을 공유하여 언제나 쌍방소통이 가능하다. 댓글로 참석가능 여부까지 다 알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형제자매와 온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부모님의 기일을 가다린다. 가족밴드를 기다린다.
1915년 5월 27일생이신 아버지와 1922년 11월 1일생이신 어머니 사이에서 1946년 1월 4일 8시께 1942년 8월 13일 누님에 이어 둘째로 태어났다. 2년 뒤 여동생, 4년 뒤 또 여동생이 태어났고 막내 남동생과는 9살 터울이다
어릴 적 기억은 4세 때 한국은행 돌계단을 오르면서 엄마 손 잡고 명동 가던 것뿐이다. 누나는 공부를 잘해 늘 전교 1등이었는데 그 동생은 말썽꾸러기라서 늘 창피하다며 야단을 쳤었다. 학교에서 누나에 거는 기대가 크면 클수록 필자는 야단을 적게 맞고 반대로 장난은 늘어만 갔다.
드디어 누나가 50년 개교 이래 처음으로 경기여중을 들어갔다. 누나 졸업과 동시에 필자는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었다. 무엇 조금만 잘못해도 엄청 꾸중을 들었다. 아마도 그동안 적립해 놓은 야단을 한꺼번에 듣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학교 주변은 피난민이 많이 살았는데 대개 남대문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의 자제였다. 학교 끝나고 오는 길에 그들 몇이 모여 한 아이를 끌고 가 여럿이 골목에서 때리는 것을 보았다. 말썽부리고 공부는 잘못 해도 남을 해치고 약자를 괴롭히지는 않았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뛰어들었고 우릴 아는 애들이 뒤따라 들어와 패싸움이 되어 일이 엄청 커졌다.
다음날 부모가 들어왔는데 그악스런 이북말씨에 네 일도 아닌데 싸움판에 끼었다는 요즘 말로 하면 변호사법 위반으로 징계를 먹었다. 다행히 초등학교여서 퇴학이 없어 전학으로 결정됐다.
5학년 후반 남대문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런데 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과를 끝내고 집에 오려는데 왠지 많은 아이가 빨리빨리 교실을 빠져나가고 열 두어 명이 남더니 뒤에서 양동이를 머리에 씌우고 몰매를 놓는 것이었다.
학교 근처에 서울역 양동이라는 사창가가 있었는데 그곳 아이들이 뭉친 게 한패, 남대문 시장 뒤 고아원 아이들이 한패로 그들만의 리그가 볼만했다. 전학생이 왔는데 패싸움 때문에 전학 왔다니까 기선을 잡기 위해 선수를 친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망치를 하나 들고 갔다. 노는 시간에 하면 여러 명에게 당할 것 같아 공부시간 중간에 뒤에서부터 한 명씩 깼다. 당연히 학교가 난리 났다. 결국 3개월 만에 멀고도 먼 교동초등학교로 전학 갔다. 이곳은 맹모삼천지교란 말이 실감 나는 곳이었다.
한반이 72명인데 왜 이렇게 조용히 공부만 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필자도 할 일이 없어 공부하기 시작했다.
두 달 후 6학년이 되었다. 72명이 어깨 맞대고 촘촘히 앉아 시험을 봤다. 그래도 두 달 공부 열심히 했다고 아는 문제가 많아 정말 신나게 시험 봤다. 일요일이 주일 후 시험성적표가 성적순으로 나와 뒷벽에 붙었다. 그런데 나름대로 시험도 잘 봤는데 팔저 이름이 없는 것이었다.
“선생님 제 이름은 없는데요?” “그래? 번호는 몇 번까지 있니?” 72번이요.” “그럼 맞는데 어디 보자.” 갑자기 머리에 벼락이 떨어졌다. “야 임마 여기 있잖아. 너는 네 이름도 못 읽냐.” 아차 필자 번호 67번에 필자 이름이 있는 것이다
필자 생전 그렇게 재미있게 시험 본 경험이 없을 정도로 재밌게 봤는데 이상했다. 시험지 확인을 해보니 평균 82점인데 67등이었다. 그렇다면 점수 18점 안에 66명이 있다는 것 아닌가. 6년 내내 최고 점수 평균 91점 받아봤지만 등수에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중학교 입학해 공부 좀 하려는데 집에 큰일 생겼으니 빨리 가보라는 담임교사 말에 어리둥절해 가보니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갔다. 5남매 장남으로 7식구 돌보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우선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신문 배달뿐이었다. 대학도 안 가려는데 어머니가 앞으로는 대학 졸업장 없으면 행세를 못 하니 앞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나오더라도 졸업장은 반드시 가지라고 말했다.
공부 잘하는 누나 한 사람 대학 보내기도 쉽지 않은데 필자 덜컥 시험을 봐 경희대에 턱걸이로 합격하니 어머니는 얼마나 심란했을까. 그 시절은 생애 최고의 순간이기도 했고 불안의 나날이기도 해다.
필자는 누나가 결혼한 뒤 군대에 갔다. 훈련을 마쳐 각자 본대로 가는데 그 많은 훈련병 다 호명해 갔으나 마지막까지 혼자 남았다. 알고 보니 육군본부였다. 군대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필자 복에 육군본부라니 말도 안 됐지만 사실이었다.
근무 중 월남파병 백마부대에 차출되어 강원 화천 오음리서 훈련받았다. 만기 제대를 하고 도저히 경희대 주간을 다닐 형편이 되질 않아 건국대 야간대학으로 옮겨 낯에는 일하고 밤에 학교를 다녔다. 경희대 다니며 친구들과 만든 “포도원”이란 모임은 지금도 50년 넘게 만나고 있는데 이혼, 상처, 상부, 본인 사망한 친구가 없는 모임이다.
건국대 야간은 낙원동에 위치한 96%가 직장을 다니며 주경야독하는 백전용사들이다. 지금도 매월 첫 수요일 저녁은 그들과 함께하는데 시멘트에서도 싹 튼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입가에 웃음이 걸려 있는 지독한 독서광들인 친구들이다. 건국대 야간 경제과를 졸업하고 학사가 되었다. 어머니 말대로 앞으로 들어가 뒷문으로 나온 기분이었다.
그해 10월 아내와 결혼했다. 그리고 1973, 75, 78년 생 딸 2, 아들 하나 아이 셋을 낳았다. 그리고 큰애가 아들과 딸, 작은애가 딸 둘을 낳았다.
1998년 소마라는 개인회사를 만들었다. 특수방식의 사료 첨가제였다. IMF가 왔지만 사료비를 아끼려는 농가가 많아져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크기를 키워 주식회사로 만들고 상호도 (주)지니 바이오로 변경했다.
이후 회사는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사옥도 사고 직원도 늘리고 거의 수직 상승곡선이 그려졌다. 하루 운행 거리가 최고 762km. 평균 500km가 넘을 정도로 영업하고 다녔다.
그리고 영업을 위해 삼성 SM5를 샀다. 이 차는 세상에 차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내게 알려준 최초의 차였다. 차 뺀 지 2년 만에 35만km를 달렸지만 잔 고장 하나 없이 잘도 달려주었다.
그런데 2000년 구제역이 왔다, 매출이 100%에서 3%로 떨어졌다. 1년 후 재기를 노려 농가를 다니길 약 20일. 그러나 다시 구제역이 왔다. 사옥도 팔아가며 버티고 버티며 2011년까지 왔지만 역부족 결국 남에게 넘겼다.
그러는 사이 나라에서 지하철 공짜카드가 나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이가 벌써? 대한노인회에 이모작 준비에 관해 문의했다, 그런데 답이 “집에서 가까운 경로당에 가서 봉사하라”라고 하는 것 아닌가.
.
잔버들 경로당에 가서 한 달을 버텼다. 경로당은 구립이라 지원금이 일 년에 360만원이 전부였다. 그래서 근처 절, 성당, 교회, 기업체를 다니며 ‘한 달에 한 번 어르신들께 점심 기부를 해 달라’며 다녔다. 많은 사람 앞에서 직접적인 필자 일도 아닌 금전적인 것을 부탁하러 다니다 보니 얼굴만 벌게 지며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40여년을 오로지 스피치 교육만 하고 있다는 ’한국언어문화원’을 찾아갔다. “지금처럼 서로 마주 보고 일대일로 상대를 설득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낚시법이라 한다면 저희는 일대 다중을 설득하는 투망법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하는 원장 말에 뿅 가서 그날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발성 연습을 하며 우리말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처음 알았다.
6개월 하고 나니 발성이 제대로 나오게 되었다. 얼마나 배웠는지, 남 앞에 제대로 설 수 있는지 알아보려 2012년 11월 3일 전남 광주시에서 열리는 제38회 박정희대통령기 쟁탈 전국웅변대회에 그 당시 한참 신문, 방송에 오르내리는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웅변했다
.
결과는 특등. 그 한 번의 경험으로 연단 공포증을 단숨에 없애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쉬지 않고 매주 월요일이면 스피치 공부하러 다니고 있으며 현재는 한국언어문화원에서 교수진에 등록되어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특등으로는 성이 차질 않았다. 2015년 11월 7일 광주에서 열리는 제41회 박정희대통령기 쟁탈 전국웅변대회 주제는 그해 대단히 가물어 식수마저 끊기는 지역까지 있어 ‘환경은 생명이다’”라는 원고로 참가해 마침내 대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1년 후 조선에듀케이션과 유어스테이지(주) 시니어파트너즈에서 강사 과정이 있다기에 응시해 생애 재설계를 배웠다.건강, 인식, 관계, 경제, 직업, 주거, 여가, 계획과 실천, 교수법을 배웠다. 그렇게 죽을 만큼 공부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결과는 합격. 필자가 강사가 되다니 꿈만 같았고 그 길을 계속 가고 싶었다. 2013년 3월 11일 강사자격인증서를 받았고 3월 21일 드디어 강사위촉장을 받으며 강사생활이 시작됐다.
필자는 무엇이든 빠르지 않고, 재주부릴 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절대 뒤로 가지는 않는다. 필자는 강사 과정을 함께 공부했던 사람 중에 대단히 해박하고 아는 것이 많았다. 공부해 보니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회 각당복지재단에서 웰다잉을 공부하라 지도해 주셔 죽음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죽음의 의미를 알아보는 로고테라피 강의는 그 중에도 백미였다.
다모작포럼협동조합에서 “한(정수) 이사”의 준말인 ‘하니’란 애칭으로 교장 선생 일도 보람 있게 하고 있다.
필자에게 강사라는 꿈이 있었을까? 연단에서 누굴 가르친다는 게 가능했을까?
필자는 돈만으로 격을 따지는 세상에서 인성의 사각지대에 있는 그들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동안 배운 모든 과정을 녹이고 녹여 재미있는 강의를 하다 보니 지금은 공무원연금공단 변화관리 전문강사로 활동하며 직접 겪은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전환 과정'을 중장년에게 전수해주려 하고 있다.
아울러 '다가치포럼 협동조합' 전무이사로 '중장년 미래전략 강사양성'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정부 지도자 과정도 다음 달에 개설할 예정이다. 교육이 대세라는 생각은 팔저를 생각하면 당연한 길이다.
무궁한 발전이 있을 것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길이기에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치과에 중장년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4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4년에 치과를 방문한 55세 이상 환자 수는 2010년에 비해 47%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부터는 노인틀니가, 지난해부터는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이 시작된 데다, 치아 건강을 찾고자 하는 환자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에 치과들도 달라지고 있다.
“어머니, 다음 주 월요일에 오셔야 하는데요, 너무 일찍 오시면 힘드시니까 아침에 ‘별이 되어 빛나리’ 보시잖아요? 그 드라마 보시고 나서 천천히 나오세요.”
신당동의 한 치과에서 고령의 환자를 진료한 치과위생사가 다음 진료 약속을 잡기 위해 하는 말이 이채롭다. 약속 시간을 잡을 때 형식적인 숫자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좀 더 쉽고 잘 기억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화를 준 것이다.
한양여자대학교 치위생과 황윤숙 교수는 “의료기관과 환자 사이에서 정보 전달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소통입니다. 각 세대나 연령층은 그들에게 맞는 고유한 언어방식이 존재하는데, 이 부분을 맞춰 가족과 같은 공감을 얻어내야 효과적인 건강관리가 가능합니다”라고 설명한다.
요즘은 치과도 환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기실에 소파 대신 온돌의자를 비치한다거나, 테이블에 돋보기를 준비하는 등의 작은 배려는 이제 기본이 됐다.
이런 변화는 동네 치과의원들만의 것이 아니다. 대형 대학병원들도 마찬가지인데,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의 경우 시니어 진료실을 따로 운영하면서 연령에 따른 특화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고,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은 노인구강진료실을 만들어 운영할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이런 변화는 학술 분야도 마찬가지여서 노인의 구강건강이나 효과적인 치료법을 연구하기 위한 치과의사들의 모임도 활발하다. 2004년 설립된 대한노년치의학회가 그 대표적인 단체로, 치과에서 노인 환자들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학회 김경선 부회장은 “예전에는 나이 든 치과의사 모임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젊은 치과의사들도 중장년층 환자들을 좀 더 잘 치료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학구열이 높아지고 있고, 학회 내부적으로도 치료법뿐만 아니라 시니어 구강관리 전문가 과정 도입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 나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의료용 기기나 구강용품 등도 중장년의 치료와 관리를 위해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치를 위한 임플란트도 바이오 신기술을 이용한 노인맞춤형 임플란트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고, 입냄새의 심한 정도를 숫자로 보여주는 측정 장비도 이미 시중에 선보여, 일부 치과에선 사용 중에 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자일리톨 껌 역시 의치에 잘 붙지 않고 단단해 씹는 운동도 겸할 수 있는 제품까지 등장했다.
또 최근에는 미래 의료시장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한 치과치료 기술이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최근 세미나를 위해 방한한 독일 Envisiontec社의 도미닉 크루거 연구원은 “새로 개발되는 기술이 병원에 적용되면 치료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돼, 오랜 치료시간을 힘들어 하는 중장년층에겐 희소식이 될 것입니다. 또한 정밀도도 향상돼 의치의 수명도 향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직사각형 가로 90mm, 세로 50mm, 하얀 종이 위에 덩그러니 놓인 회사 로고, 나를 말하는 단 몇 글자의 직책, 조선시대라면 없었을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까지. 보통의 명함은 그러했고, 지난날 당신의 명함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평범한 명함은 그야말로 명함도 못 내밀 시대가 왔다. 은퇴 이후, 인사치레할 명함 한 장이 없어 마음이 헛헛하고 어깨가 축 처진 이들이 많다. 그러나 직장 생활이 끝났다 해서 그것이 곧 내 인생이 끝났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명함은 ‘직장 증명’의 도구가 아닌 나를 이야기하는 ‘존재 증명’의 매개체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그 흔한 직장 명함에 대한 집착은 버리고, 독특하고 세련된 나만의 명함으로 자존심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글 이지혜 기자
도움말 아날로그엔진
▲ 조립식 명함이 등장했다. 직사각형 명함 위에 비행기의 몸체, 날개, 프로펠러 등을 뜯어 조립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 자신을 드러내는 이미지만 있다면 테두리를 잘라 세우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명함을 만들 수 있다.
]
▲ 크루즈 여행이나 낚시 동호회 회원들에게 안성맞춤인 디자인이다. 모임에 나가 이런 명함을 건넨다면 대화 소재가 생겨 자연스럽게 친목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 조기축구회 스트라이커의 명함이다. 꼭 직장을 다니고 직업이 있어야만 명함을 만든다는 편견을 깬 사례다.
▲ 오른쪽 이젤은 위의 비행기와 같은 조립식 명함이다. 이젤 위의 미니 명함만 소장하고 다닐 수도 있고 책상이나 테이블 위에 이젤과 함께 세워둘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왼쪽 그림 액자 명함처럼 좋아하는 그림을 넣고 다녀도 좋겠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중년 여성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는 레이스 명함이다. 파스텔 계열의 펄이 가미된 종이를 사용하면 훨씬 우아한 느낌을 줄 수 있다.
▲ 은퇴이후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를 살려 강사로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강연에 사용되는 마이크를 메인 이미지로 활용한 디자인이다.
▲ 중장년의 세컨드라이프에 빠지지 않는 창업. 카페, 음식점, 부동산 등 창업 아이템과 연관된 이미지로 명함을 제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 오른쪽 명함은 연말 파티 등에서 초대장 대용으로 활용되는 디자인이다. 근사한 파티를 계획하고 있다면 이러한 디자인 명함을 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왼쪽은 책갈피로 활용 가능한 명함이다.
▲ 증명사진이 들어간 명함이 조금 쑥스럽다면 캐리커처를 넣어보는 것도 좋다. 그 어떤 디자인보다 나를 잘 드러내는 명함이 될 수 있다.
▲조기 축구회 회원들이 선호하는 또 다른 디자인 명함이다. 활동하고 있는 팀이 있다면 선수들의 등번호에 맞춰 명함 선물을 해보는 것도 기념이 될 것이다. 자동차 모양을 본 뜬 명함도 눈길을 끈다. 택시기사라 해서 명함이 필요 없을 것이란 생각은 버려라. 택시기사도 고객 관리가 필수인 만큼 독특한 명함으로 서비스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날로그 엔진 장미지 대표
“명함은 곧 자신감이죠.”
은퇴하고 명함 디자인을 의뢰하시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자신감이 없어 보여요. 내세울 만한 직장도 없고, 이렇다 할 직책도 없어서일까요? 하지만 그럴수록 명함에 더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범한 명함을 받게 되면 ‘이 사람은 어디에 다니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자신을 잘 드러낸 독특한 명함을 건넨다면 그 사람의 스펙보다는 스토리가 더 궁금해지죠. “명함이 정말 근사하네요.” “이런 명함은 처음 보는데요?” 등 명함이 대화 소재가 되고, 자신감을 높여줄 수 있는 존재가 되기도 해요. 오직 나만을 위한 나를 대표하는 명함 한 장은 여느 회사의 대표 명함보다 더 빛나지 않을까요?
중.장년의 희망은 오직 기술뿐 !.
자신과의 싸우며 기술 배우기를 3년……
수백 통의 이력서로 취업 활동 후 드디어 취업에 성공!
저는 56년생으로 2010년 10월 은행 경영의 악화의 원인으로 고액 연봉자들의 대대적인 명예퇴직을 유도하여 전직원의 25%인 3800명이 퇴직할 때. 저 또한 나이가 정년에 가깝고 경영악화의 주범으로. 그리고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하여 자리를 양보하고 퇴직을 하였습니다..
2010년 11월부터 그동안 여행하고 싶었던 몇 몇 곳을 선정하여 나 홀로 도시락을 배낭에 넣고 전국으로 여행 다녔으나. 마음은 항상 퇴직 후 무엇 하며 노후를 보낼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가볍지만은 아니하였습니다.
◆무엇으로 제2인생 준비할 것인가? “노력하는 자에겐 하늘이 돕는다”
퇴직을 결심하고 돈을 절약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 집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로 이동하기 위해, 그동안 타지 않았던 자전거를 수리하기 위하여, 동네 자전거 수리점을 찾아가서 고치면서 기다리는 중에 주인 사장님의 친구분들이 옆에 있어, 물었죠, ‘이 자전거 가게 사장님은 노후 걱정은 안하셔도 되겠다’고, 그랬더니 가게 주인 사장님의 친구분들이 하시는 말씀이’이 자전거 가게를 이 자리에서 40년을 했는데 큰돈은 벌지 못해도 자식을 공부시키고 결혼도 시켰으며, 작은 건물도 구입했노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또한 같은 60대 나이에 은퇴도 없고 자식들에게도 손 내 밀지도 않고 친구들 모임에 회비를 낼 수 있고 가끔 막걸리도 사주는 친구들 중 가장 유일하며,가장 행복한 친구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아! 그렇구나.
‘기술만이 남은 여생 30년을 보낼 수 있겠구나’를 생각하였으며, 나도 자전거 수리를 배워, 노후를 보낼까를 생각하면서 삼천리 자전거 홍보부에 근무하는 후배를 만나 자전거 수리점에 대하여 많은 의견과 자문을 받아 보는 등 여러가지로 고민하며 수일을 보냈습니다.,
2010년11월 은퇴 후, 12월 중순에 은행으로부터 2년 계약직(지점감사업무)으로 근무할 수 있다고 통보 받아 1월 초에 근무지로 출근하던 중. 지하철역에 붙여있는 홍보 벽보에 서울시에서 기술교육을 무상으로 가르쳐 준다는 포스터를 보았으며. 아! 그렇구나 내가 여생은 큰 힘 들이지 않고, 적은 수입이라도 뭔가 할 수 있는 일거리로 보람을 느끼며 앞에서 언급한 자전거 가게 사장님과 같이 뭔가 기술을 배워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며, 늙어서 할 수 있는 기술이 뭔지를 고민하였습니다.
◆어떤 기술을 배울 것인가?
그동안 강남의 대형 점포 지점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알고 지냈던 사장들과 식사하는 중에 ‘조경과 보일러, 목공, 자동차 수리, 조리 기술 중 어느 기술을 배우는 것이 미래가 가장 유망 하겠나’를 물었더니, 조경 쪽으로 교육 받으라고 하였으며, 조경은 무료교육 대상자 모집에서 연령제한이 없었으나, 보일러, 자동차 수리 등은 만 55세는 이후 노령자는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하여, 연령이 제한되기 전에 보일러, 자동차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였으며, 보일러 기술은 월급이 적지만 힘이 들지 않는 직종이라 생각하여, 2011년 2월에 서울종합직업학교(현 동부기술교육원) 보일러과에 지원하였습니다.
등록 후 합격자 발표만을 손 꼽고 기다렸으나, 합격자 발표일에 제 이름 석자가 없었기에, 아! 그럼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또 고심하게 되었습니다..
발표일 3일 후 기술학교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등록학생 중 몇 명이 주간으로 등록을 변경하게 되어 야간학생 결원이 있어 예비 합격자 중에 제가 포함되어 합격 했으니 3월 3일부터 학교에 나와서 기술을 배우라고 하여, 3월부터 기술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기술 취득과정
(1) 보일러 기능사 취득 과정
2011년 3월부터 고덕동 소재 서울종합직업학교에 오후 6시부터 9시 30분까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6개월 공부하였으며, 실습할 때는 30년간 책상에 앉아서 근무한 은행원이 보일러 용어 하나하나가 생소하여 용어를 익히는데 부단히 노력하였으며, 특히, 가스나 전기 용접시에는 옷을 태우기도 하였으며, 손이나 발을 다치기도 하는 등 잦은 실수를 연발하여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로부터 웃음꺼리가 되기도 하여 창피하기도 하였으며, 개인적으로 자존심이 많이 상했으나 참고 견디었습니다.
필기시험은 과거 5년간 시험 출제 문제를 컴퓨터에 입력하여 어느 문제가 자주 출제되는지를 분석하고 외웠습니다. 입학 2개월 후 용어도 잘 모르던 제가 현장에 근무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하여 입학하여 공부한 학생들도 낙방하는 보일러 기능사 필기시험에 합격하였으며, 5월부터 보일러 기능사 2차 실기시험을 준비하였으며, 6월에 최종 합격하여 보일러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2) 공조냉동 기능사 취득과정
공조냉동시험 준비는 기술학교에서 보일러시험 끝난 후 기초적인 내용을 가지고 졸업할 때까지 약 2개월간 배우고 실습하였으며, 학생들이 쉴 때도 수업이 끝난 후에도 틈틈이 홀로 가스 용접 실기에 매달렸으나 무난히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한 것과는 달리 2차 시험인 실기 시험에 낙방하여 10월에 재 응시하여 12월에 어렵게 합격하여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3) 에너지산업기사 취득과정
공조냉동을 가르쳐 주시는 교수님께서 보일러, 공조냉동 자격증을 취득 후에는 요즘에 인기 있고 정부차원에서 각종 지원되는 에너지관리 기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셨으나, 정해진 수업기간이 끝나 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기술학교 보일러 과정을 끝마친 후 또 다른 기술을 준비 중에 기술학교 홈페이지를 열어 보았더니, 에너지 관련 수업이 9월부터 진행된다고 하여 9월에 지원하여 9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에너지관리기사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에너지 기사시험은 실무 경력이 없어 에너지관리 산업기사 시험만 응시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시험은 1년에 1회밖에 없으며, 2011년의 경우는 124명이 응시하여 한 명도 합격하지 못하는 아주 어려운 시험이라고 유념하여 공부하라고 하였다. 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공부할 때는 33명이었으나, 각종 공식이나 수치 계산 등으로 점차 공부가 난해 함을 느끼고 또한 수업하는 교실이 추워서 공부하기가 너무 힘드니까, 다들 중간에 포기하였으며, 마지막 남은 3명의 학우들도 포기하자고 하였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금년 아니면 내년에 공부한다고들 하지만 저의 경우는 나이가 60대를 바라보니 지금 이 기술 공부를 포기하면 갈 곳이(취직할 곳)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하며 끝까지 기술 공부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2011년에는 한 명도 합격하지 못하는 어려운 시험이지만, 2012년에는 내가 한번 도전하여 합격 했다는 소문을 듣게 하겠다고 하면서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에너지관리시험 준비하기를 7개월,.. 드디어 1차 시험을 무사히 합격하고, 2차 실기시험을 주관식을 치르게 되었으며, 합격자 발표 전날 밤 꿈에, 합격자 명단을 보니까 4명이 있는데 나의 이름이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합격자 발표하는 날 인터넷 검색을 하니, 전국에 단 4명만이 합격하였으며, 그 명단에 제 이름이 있어 크게 감동했으며 노력하는 자는 하늘이 돕는 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근무하던 지점의 은행 직원들이 더 좋아했으며 같이 공부한 동료학생들과 교수님으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았습니다. 1차 시험에 60점으로 겨우 통과했는데, 2차 시험은 과연 몇 점이나 되는지? 인터넷으로 검색 했더니, 문답 50점 만점에 22점, 동영상 문제 50점 만점에 38점으로 더도 덜도 아닌 합격점수 커트라인인 60점으로 합격하여 감동의 드라마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4) 전기기능사 취득과정
보일러, 공조냉동, 열에너지관리산업기사 자격증 있으면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은행보다는 조건이 더 좋은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취업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전경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 가입하여 컨설턴트와 상담도 하고, 베이비부머 취업박람회에 참가하는 구직활동에 전념하였지만 성사되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회 전반적으로 많이 활용되며 취업대상업체가 더 광범위한 전기기술을 배워 기술력을 더욱 향상시켜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전기기능사과정 교재와 동영상 C/D를 구입하여 혼자 독학으로 공부하였으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 전기기술을 가르쳐 주는 기술학교 야간과정에 등록하여 9월부터 수업을 듣게 되었으며, 수업 듣는 그해 12월에 같이 수업 듣는 학생들보다 먼저 1차 필기 시험과 2차 실기시험을 통과되어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5)전기산업기사 자격증 취득 도전기
2012년 12월에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하여 이젠 취업이 쉽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여러 곳에 취업활동을 하여 00시설관리공사, 00회사, 00구청 등 무려 수십 곳에 서류전형에 합격하여 면접을 보았으나 결과는 역시 나이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젊은이에게 밀려 나기를 수십 번….
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능사 자격증만으로는 나이에 대한 한계를 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점점 나이에 따른 압박관념에서 모든 일이 점점 위축되었으며, 노후에 대한 자신감과 활기를 잃어가며 가족들 간의 유대도 소홀해 지며, 패배의식이 팽배해져 가며, 우울증으로 지내기를 수개월 지난 후 어느 날
한편의 신문에 실린 다음의 이야기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참판집 종으로 일하며 ‘도둑공부’… 신분벽 넘어 형조판서 우뚝
공부하고 싶은 노비의 열망이 높은 신분의 장벽마저 뛰어넘었다. 참판 집안의 종에서 형조판서로 우뚝 선 반석평(潘碩枰·?∼1540)의 이야기다.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조상이다.19세기의 족보 ‘만가보’에 따르면 석평은 충북 음성에서 아버지 반서린(양반으로 추정)의 서자로 태어났다.
석평은 1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노비 신분으로 서울의 이 참판 집에서 종노릇을 했다. 본래 똑똑했던 그는 얼마나 공부가 하고 싶었던지 자기 또래였던 주인집 아들 이오성이 방에서 글을 배우고 있을 때 밖에서 ‘도둑공부’를 했다. 땅바닥에 글씨를 쓰면서도 배우는 대로 외우는 영리한 아이였다.
석평의 도둑공부를 알게 된 이 참판은 그를 기특하게 여겼다. 석평은 이 참판에게 집을 나가 공부를 더 해서 과거시험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당시 종은 공민권이 없어서 과거시험을 볼 수 없었다. 석평의 재주와 성품을 남달리 여긴 이 참판은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석평의 노비문서를 불태워 없애고 아들이 없는 친척 양반집에 양자로 보낸 것이다.
석평은 1507년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했다. 이후 예문관검열(예문관에서 사초를 기록하던 정9품 벼슬)이 되었다. 경차관으로 함경도에 파견되어 여진의 동정을 보고했으나 천얼(賤孼)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1516년 문신 안당의 추천으로 경흥부사가 되었고 이후 함경남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병조참의,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충청도 관찰사 등을 지내고 1531년에는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예조참판, 전라도 경상도 평안도 관찰사, 형조참판, 한성부 판윤 등을 거쳐 형조판서(정2품·지금의 법무부 장관에 해당)를 지냈다.
그는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석평이 형조판서일 때 길에서 옛 주인집 아들 이오성이 거지가 다 되어 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석평은 초거(종2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타던 수레)에서 내려 그의 앞으로 달려가 절했다. 석평은 왕에게 자신의 원래 신분을 밝히고 자신의 벼슬을 깎아 이오성에게 주기를 청했다. 조정에서는 이를 오히려 기특하게 여겨 용서하고, 이오성에게 사옹원 별제 벼슬을 내리고 석평의 관직도 그대로 유지했다.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석평과 조정을 모두 높이 평가하며 “이와 같이 한다면 세상 풍속이 어찌 분발하지 않겠으며 재주 있고 덕 있는 자가 어찌 감동되지 않겠는가”라고 썼다. 물론 석평의 출세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이 참판이 스스로 노비문서를 불태워 양인이 되게 해 주었고 석평이 노력해 정식으로 문과에 급제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의 처지를 보살펴 준 이 참판의 아들이 거지꼴이 된 것을 마음 아프게 여기고 양심고백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 중종실록에는 석평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특히 그가 종 출신이지만 문벌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으로 등용된 바람직한 사례로 든 것이 인상적이다.
위 기사에 힘을 얻어 다시 전기산업기사에 도전하면서 취업 활동을 해 보겠다는 마음에서 2013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도시락을 지참하여 인근 도서관에 9시에 도착하여 밤 10시까지 공부하였으며, 친목회,동창 모임 등 참석하지 않고 기술 공부에 홀인 하였습니다.2014년 3월 제1회 전기산업기사에 시험을 응시했으나 역시 유사직종에 근무한 경험이나 유사한 학과에 공부하지 않는 터라, 또다시 5~8점 차이로 낙방하는 쓴 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격증으로 재 취업!
전기기능사는 어느 정도의 노력으로 합격하였으나, 역시 기사 시험은 실무나 관련 학과와 인연이 있어야 이해가 쉬워 기사 시험 응시에 쉽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도서관 다니며 공부하다보니 경제적 어려움과 마음마저 우울해지게 되어 기사 시험 종료와 동시에 취업하겠다는 마음으로 매일 전경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홈페이지와 노동부의 워크넷에 등재된 채용공고를 검색하던 중에 2014년 2월 27일 국민은행 본점 시설과 근무 직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을 보고 28일 이력서를 제출하여 가진 자격증으로 응시하여 서류 전형과 면접을 거친 후 2014년 3월5일부터 근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결론적으로 말하면 눈높이를 낮추면 미래가 보이며
국가나 사회나 자식들에게 손을 내 밀수 있는 것보다 은퇴후에도떳떳한기술하나라도배우고익히면,개인이 행복하고 가정이 건전하며 나라가 튼튼해진다고 확신합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다음 세가지만 유념 하시면 됩니다.
첫째, 지난 것 다 잊으시고, 오직 기술만이 살길이라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과거에 지점장을 했느니? 정부, 재계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했느니? 월급을 얼마나 받았느니? 이런 생각을 버리고 가장 낮은 자세라야 기술을 배울 수 있으며, 같이 배우는 옆 학우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요즘 시대는 과거 어느 학교 출신인가, 어느 직업을 가졌나 보다는 오직 자격증만이 살길입니다. 자격증 없이는 사회적으로 대우도 못 받으며 월급도 많이 받지 못합니다. 물론 경력도 중요하지만 당장 회사에 취직을 한다든가, 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자격증을 소지해야만 우선 지원서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금이 넉넉하여 쉽게 회사나 가게를 차리실 수는 있겠지만, 기술이나 경험이 없이 시작하는 것은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둘째, 처음 시작하는 아름다운 마음 변하지 마시고 끝까지,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기술을 배울 때는 하루 빠지시면 그 다음 수업과 연결이 안 됩니다. 특히, 기술을 배우시는 분들은 더 더욱 그렀습니다. 용어 등이 생소하기 때문이며, 교수님께서 설명하시는 용어들을 그때그때 듣고 놓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저와 같이 보일러과에 등록하신 분들 중에 열심히 참석하신 분들은 보일러 기능사 자격증을 다 취득하셨으며, 또한 공조. 냉동자격증 까지 바라보고 공부하여 원하는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반면에 상반기 공부했던 학생들 중에 출석이 부진 했던 분들은 교수님께서 출제 예상 문제를 가르쳐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결석이 빈번하여, 불합격 원인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물론, 기술을 배우시려고 하신다면 중간에 여러 가지 극복하셔야 할 일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야간으로 기술 받는 기간 중에도 여러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자는 제안이, 유혹이 많았습니다.
물론, 2~3년은 현재보다는 더 많은 월급 받고, 대우도 받으며 살겠지만,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하여 정중히 거절하였으며, 또한, 연말 연시 때나 주말에 동창, 동료직원, 각종 사회모임으로부터 회식, 등산, 골프, 낚시 등 많은 종류의 유혹들도 있었지만, 제2인생을 준비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회사 퇴근 후나 주말에는 곧바로 기술학교로, 도서관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말입니다.
셋째,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과 협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를 잘하면 또 다른 하나를 못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즉, 필기 시험에 자신이 있는 분은 실기 시험에 약한 분들이 있고요. 실기시험에 강한 분들은 필기 시험에 약한 분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은 서로 협력하여 같이 합격하실 수 있도록 상호 서로 도와주라는 뜻 입니다. 그래야, 힘들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는 기억력이 약하여 외워도 외워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게 되고. 특히 실기시험은 완전 빵점 인생 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을 위해 필기시험에 대비하여 교수님께서 설명하신 내용을 요약하여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제공 하였더니, 필기시험에 도움 받은 동료 학생들이 실기 때는 제가 모르는 각종 공구들, 밸브들, 전기용접 및 가스용접 등등… 많은 도움을 주어 쉽게 실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끝으로, 지난날들을 회상해 볼 때 힘들었지만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에게 은행 지점장이 겨우 보일러 기능사 공부 하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와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했습니다만, 기술만이 남은 30년 인생을 하나님을 위하여!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자원봉사하며! 내가 배운 기술로 겨울을 따뜻하게, 여름을 시원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너지를 절약하도록 기술을 펼치며 보람 있게 살며, 멋지게 보내리라 확신하기 때문에 선택한 것입니다.
끝으로 이 모든 것들을 먼저 기도로 준비했으며, 다음에는 앞뒤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위 내용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에서 올해 초 실시한 중장년 재취업 성공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친한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폐쇄형 SNS'가 인기몰이 중이다. 국내에선 네이버의 '밴드', 카카오의 '카카오그룹'이 대표적이다. 네이버 자회사 캠프모바일의 밴드는 2012년 8월, 카카오의 카카오그룹은 2013년 9월에 선보였고 최근엔 다음(Daum)이 쏠그룹을 출시해 경쟁에 가세했다. (Daum은 항상 뒷북이다.)
'국내'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선 카카오의 카카오톡이 네이버 라인을 멀찌감치 앞서있지만 폐쇄형 SNS 시장에서는 반대로 카카오의 카카오그룹이 네이버 밴드를 추격하는 양상이다. 기능은 사실상 별 차이가 없다. ‘선점’이 곧 시장 지배력 확보의 지름길인 것이다. 편한 만큼 골치 아픈 SNS세상, 뜨거운 밴드(BAND) 열풍에 대해 잠깐 살펴볼까 한다.
‘우리끼리 BAND' 열풍
스마트폰을 활용한 SNS는 현대인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장점 때문이다. 최근에는 한국인이 주로 사용하는 SNS가 ‘개방형’에서 ‘폐쇄형’으로 옮겨가고 있다. 폐쇄형 SNS로의 전환은 30대 이상 이용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밴드(BAND)’ 열풍이 거세다. 2012년 8월 출시된 밴드는 최근 글로벌 가입자가 23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 가운데 국내 가입자가 1천800만명이다. 개별 밴드 수는 800만 개에 육박한다. 해외 사용자는 공동체 의식이 있는 일본, 대만, 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 중심으로 늘고 있다.
쉽고 편리한 기능
이토록 밴드 가입자가 급증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우선 밴드는 이용 방법이 간단하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으며, 초대를 받고 가입하면 바로 활동할 수 있다. 멤버들끼리 비밀을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그만큼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유출 등 SNS 부작용에서 자유롭다.
대화를 위한 채팅방 외에 게시판을 별도로 둔 것도 호평을 받고 있다. 중요한 정보가 대화창에서 흘러가 버리는 일이 없어진 것이다. 게시판에는 용량이 큰 사진이나 동영상도 올릴 수 있고, 게시물 중 3개까지 공지로 등록할 수도 있다.
또 사진첩 기능이 있어 사진들을 따로 모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 투표, 음성메시지, 사진댓글 등 색다른 기능이 계속 추가되고 있다.
‘우리가 남이가!!’ 끈끈한 유대감→높은 충성도
밴드는 학연(동창회), 지연, 혈연(가족), 동아리 등이 모임을 만들고 그 안에서 멤버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방식이다. 멤버들 간의 끈끈한 유대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충성도가 매우 높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무려 21개의 밴드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네이버가 2013년 8월 동창 찾기 기능을 추가한 이후 밴드 체류 시간은 수직 상승했다. 특히 40~50대 중장년층의 유입이 급증하며 과거 '아이러브스쿨'의 돌풍을 재현하는 느낌마저 든다. 중장년층은 향수에 젖어 있기 때문에 밴드를 통해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유쾌 상쾌 통쾌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만큼 ‘밴드 중독’에 빠지기도 쉽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개방형 SNS에서는 누군가 자신에게 악성 댓글을 남기면 주눅이 든다. 무심코 SNS에 남긴 말로 구설수에 올라 집단공격을 당하는 사례가 늘면서 ‘SNS 포비아(Phobia·공포)’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 결과 사람들은 (개방형 SNS에선) 자기 포장에 열중하고 완벽한 모습에 집착한다. 반면 밴드는 아는 사람들끼리만 소통하니 그럴 걱정 없고 마음이 편하다.
네이버는 밴드에 모바일게임 플랫폼 기능을 추가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한국 모바일 게임 플랫폼 시장은 사실상 '카카오'가 독점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네이버 형제인 라인과 밴드의 협공에 카카오가 어떻게 대응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엔, 얼마나 갈까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프리챌, 아이러브스쿨…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서비스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2000년대 초반 '도토리' 열풍을 몰고 왔던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이제 국내 SNS시장에서 비주류로 밀려났다. 야후는 한국시장에서 철수했다.
밴드 열풍, 그 바람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아는 사실이 있다. 끝은 반드시 온다는 것. IT산업에서 방심은 금물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경쟁업체의 공격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언제든 떠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면도날 위를 걷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비즈니스에 임해야 할 것이다. 변화는 너무 빠르고 시장은 혹독하다.
글=건설워커 유종현
유종현은 취업포털 건설워커 대표, 메디컬잡 대표, (주)컴테크컨설팅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며, 취업전문가, 잡(JOB)칼럼니스트, 뉴스에듀 고문으로도 활동 중이다.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엔지니어링에서 근무하였으며, 1990년대에는 공학 소프트웨어 국제 공인 개발자, 소호 창업전문가, PC통신 취업정보제공자로도 활약했다.
직장생활 20년, 마흔 여섯 나이에 퇴직하고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한 시기. 정은상(61세) 씨는 혼자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배우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이걸 이용해 홍보하는 법을 알려주던 것이 계기가 돼 새 직업을 찾게 됐다.
주 타깃층은 주로 예비 퇴직자나 퇴직자였는데, 상당수 직장인들이 은퇴하면 당장 뭘 해야 할지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며 은퇴 이후 삶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오버랩 됐단다. 이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던 정 씨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멘토링’을 제공했다.
“크게 호응하고 고마워하는 중장년층의 메시지를 받고서 이 사람들을 돕는 데서 오는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 열기가 오래도록 가시지 않더라고요. 내가 SNS를 이용한 홍보 노하우를 코칭(coaching)하고 그 덕분에 은퇴자들이 집중하고 기뻐하는 분위기를 계속 만들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정말 신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준 SNS
평소 SNS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사용, 동영상 및 홈페이지 제작 등 SNS와 관련된 각종 강좌는 죄다 찾아다니며 듣고 배우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가르쳐줬다. 2년쯤 지나자 그는 스마트폰과 SNS를 자유자재로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전문가’가 됐다.
“제 지식과 경험을 주변인, 특히 퇴직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퇴직한 이들에게 일대일 코칭하던 일을 좀 더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1인 기업이자 1인 창직의 개념으로 독특한 학교를 구상했죠.”
그는 2011년, SNS를 통해 다양한 홍보를 할 수 있도록 돕는 ‘맥아더스쿨’을 세웠다. 콘셉트는 ‘5060세대를 위한 소셜 비즈 코치 멘토링 프로젝트’. 학교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나이가 70세였어요. 그에 비하면 50~60대는 새파랗게 젊은 나이죠. 100세 시대를 앞둔 요즘은 더더욱 그렇고요. 이 땅의 모든 5060세대가 용기를 갖고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미로 학교명을 지었습니다.”
맥아더스쿨을 설립하는 데 별다른 비용은 들지 않았다. 오랜 기간 축적된 그의 SNS 지식과 코칭 기술이 기반이 됐다.
◆시니어 소셜 비즈 코치 양성
정 씨는 맥아더스쿨을 통해 중견 및 중소기업, 소상공인, 1인 기업, 시니어 창업, 학원, 갤러리, 음식점, 제과점 등 다양한 분야의 5060세대 시니어 소셜 홍보 전문 코치를 길러내고 있다.
신청자를 받아 지역별로 3~7명 단위의 반을 편성, 주 1회 이상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코칭 대상에게 일대일 멘토링을 진행한다. 코칭 프로그램은 이론보다는 철저한 실습 위주로 진행된다.
“멘토가 멘티와 함께 현장을 다니며 어떻게 잠재 고객을 만나 대화하는지, 어떻게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하고 설득해 고객의 요구사항을 효율적으로 반영하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식이에요.”
교육 기간은 6개월이며 초기 3개월은 필수과정에 해당된다. 이 기간에 멘티의 출석률이 80% 이상이면 과정 수료증을 주고, 비즈니스 코칭 실적이 10회 이상 되면 소셜비즈코치 자격증을 부여하고 있다.
처음엔 무료로 할까도 생각했지만 공짜 교육이 배움의 열정과 가치를 퇴색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 교육비를 받기로 했다. 다만 부담되지 않으면서도 돈이 아까워 거르지 않고 수업을 받으러 올 수밖에 없는 수준으로 비용을 책정했단다.
정 씨는 “제2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도록 시니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이야말로 맥아더스쿨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라고 강조했다. 중·장년층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갈수록 사업이 확장되면서 개인 코칭뿐 아니라 기업 및 단체와 연계해 프로젝트별 마케팅을 대행하는 일도 하고 있다고.
일대일 코칭이 일주일 평균 3~5회. 이 외에도 비즈니스 관계자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낸다는 정 씨. 피곤할 법도 한데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이 정말 행복하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만약 그때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요. 지금의 저는 없었을 테니까요.”
“사람이 살아갈 때 사랑이 존재해야 늙지 않고 긴장하며 살 수 있어요.”
올해 78세인 가수 현미는 젊게 사는 비결로 주저 없이 ‘사랑’을 꼽았다. 싱글인 그는 지난해 말, 한 방송에서 15세 연하의 남자친구와 연애 중이라고 밝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젊음이 경쟁력으로 인정받는 시대, 중·장년 스타들이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중은 열광한다. 도대체 세월을 거스르는 동안과 건강의 비결이 뭘까. 그래서 ‘꽃중년’ ‘꽃장년’으로 소문난 스타들의 ‘젊음의 비법’을 알아봤다.
◇“건강은 한 순간 얻을 수 있는 게 아냐”…생활습관 형
얼마 전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지하철 속 한 노인의 사진이 많은 네티즌의 이목을 끌었다. 노인이 앉아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거나 수첩에 무언가를 메모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방송인 송해 얘기다.
그는 얼마 전 실제 나이가 알려진 것보다 두 살 위인 1925년생이라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올해로 89세가 된 송해의 건강 비법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항상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거나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며 꾸준히 다리의 힘을 길러왔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그는 지금까지 장시간 서서 진행해야 하는 TV 장수 프로그램 ‘전국 노래자랑’의 터줏대감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라!”…젊은 친구 형
배우 임예진(54)은 몇 년 전 방송을 통해 딸의 청바지와 스니커즈, 백팩까지 애용하며 트렌드를 따라가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아이템으로 어려보이고자 노력했다는 것. 비록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변의 반응으로 그만둬야했던 굴욕적인 이야기를 털어놨지만 내 나이 때에 맞는 옷만 고집하는 대신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 보고자 시도하는 것은 분명 젊게 살 수 있는 비결이다.
그 비결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스타가 바로 배우 윤여정이다. 윤여정(67)은 작년 한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패션 비결은 배우 공효진, 김민희와 같은 옷을 구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김민희에게 먼저 쇼핑을 한 뒤 연락하라고 말해서 그 옷을 산다”고 고백했다. 이어 “같은 옷 다른 느낌”이라고 덧붙이기는 했지만 그녀에게는 젊은 패셔니스타들이 뿜어 낼 수 없는 완숙미가 더해진다. 트렌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내는 것. 그것이 윤여정의 젊음의 비결이다.
가수 겸 MC 조영남(69)은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다”고 고백했다. 그는 흔한 동안형 스타와는 거리가 멀지만 ‘젊게 사는’ 대표적인 스타다. 그가 꾸준히 밝혀온 그의 젊음의 비결은 ‘젊은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교제다. 그는 몇 년 전 한 토크쇼에 출연해 24세부터 70세까지 다양한 연령의 여자친구(애인이 아닌 그냥 ‘친구’)가 있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여자친구들 외에도 일명 ‘청담학교’라고 불리는 모임을 만들어 젊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교제한다고 알려졌다. 진짜 젊음은 젊은 마인드에서 나온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조영남. 그의 철없는 행동들이 밉지만은 않은 이유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식단관리 형
서양 속담 중에 “당신이 먹은 음식이 곧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건강해질 수도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법. 당연히 스타들도 그들의 젊음의 비법으로 음식을 꼽는 것을 잊지 않는다.
여자 스타들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뭘 먹을까. 최근 케이블채널 tvN의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배우 김희애(47)는 여행을 떠나기 직전 “우리가 견과류를 먹어야 하잖아”라며 견과류 조림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배우 이미연(43) 역시 이에 동조하며 “(견과류는) 피부에도 좋고 노화방지에도 좋다”며 견과류를 필수 식품으로 뽑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꽃보다 누나’를 연출한 나영석 PD는 이러한 여배우들의 대화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여행 중 공개된 이들 ‘누나’들의 매끈한 민낯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견과류를 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운동은 거짓말하지 않는다”…운동 형
호피무늬 비키니에 탄력 있는 몸,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 주인공은 60대의 배우 김수미(65)다. 그는 재작년까지 방송됐던 MBC 드라마 ‘애정만만세’에서 당당하게 비키니 몸매를 선보였다. 이에 대해 그녀는 “매일 눈을 뜨자마자 동네 한 바퀴를 돌고 헬스와 반신욕도 빼놓지 않는다”고 밝히며 그 몸매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했다.
오윤아, 박하선 등 젊은 배우들이 자신의 몸매관리 비법으로 ‘줄넘기’를 꼽은 가운데 중년배우 김미숙도 여기에 동참했다. 김미숙은 작년 9월 방송된 한 토크쇼에 출연해 자신의 날씬한 몸매의 비결은 줄넘기라고 밝히며 즉석에서 줄넘기 실력을 자랑했다. 초반에는 어설픈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2단 뛰기(쌩쌩이)를 연이어 성공하며 꾸준한 노력을 증명했다.
◇“커피를 멀리하라”…피부 미인 형
여배우들은 아침 식사로 아메리카노 한 잔에 토스트 한 조각을 곁들여 먹을 것만 같은데 의외로 배우 박정수가 밝힌 피부 비법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이다. 2005년에 자신의 뷰티비법을 책으로 엮은 ‘박정수의 이너뷰티’를 발표하기도 한 박정수(61)는 60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동안피부로 유명하다. 그가 밝힌 자신의 피부 비법은 아침에 커피대신 물 한잔을 마시는 것.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이뇨작용을 활발하게 해 우리 몸의 수분을 빼앗기 때문이다. 이렇듯 음료 한잔을 마실 때조차 피부의 건강을 고려하는 섬세함이 그의 젊음의 비결이다.
◇“요즘은 이 맛에 살아”…취미생활 형
가수 서수남(67)에게는 요즘 또 다른 직함이 있다. 파워블로거 겸 사진작가. 한때 노래교실 사업을 하며 10년간 쉬는 날도 없이 일했다는 그는 어느 날 삶이 허무하다고 느꼈다. 그동안 벌어두었던 돈 대신 10억의 빚만 남긴 채 아내가 잠적을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파워블로거이자 사진작가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
그의 블로그 ‘서수남의 마이라이프’에는 그가 직접 포스팅한 여행, 음악, 맛집, 리뷰 등의 글이 가득하다. 블로그를 하기 위해 시작한 사진도 이제는 준전문가 수준이 돼 그는 이 재능을 봉사활동을 하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고. 작년에는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새로운 일에 대한 열정이 그를 젊게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