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우리가 얼마나 늙어가고 있는지 측정하고 평가할 수는 없을까? 노화를 최대한 천천히 진행되도록 하거나, 예방하거나, 가능하다면 역으로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노화 데이터를 수집해 신체 나이와 노쇠 정도를 측정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디파이’는 이 고민에서 출발했다.
디파이(DeFi)라고 하면 블록체인에서 언급되는 탈중앙화 금융이 떠오를 수 있다. 이번 기사에서 소개할 디파이(DYPHI)는 건강한 노화를 돕는 디지털 솔루션 스타트업이다. 노인의학 연구에 기반해 우리 신체가 얼마나 노화했는지, 노쇠 정도에 맞춘 운동과 영양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한 예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들어간다.
신체 나이 알려주는 ‘안단테핏’
디파이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안단테핏’(AndanteFit)은 임상 검증된 자동 신체기능평가 솔루션이다. 노인 신체기능검사(SPPB)를 수행하고 연구를 기반으로 도출해낸 노쇠 지수(신체 나이)를 보여준다. SPPB 검사는 보행 속도, 특정 자세를 잘 유지할 수 있는지, 앉았다 일어서기를 얼마나 빨리 할 수 있는지 등을 종합해 점수화하는 검사다. 1980년대 후반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처음 만들어 전 세계로 보급됐다. 그동안 SPPB 검사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 초시계로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안단테핏은 기계가 자동으로 측정해주며, 검사 시간은 3분으로 줄였다.
윤성준 디파이 대표는 “신체 기능이 떨어져 움직이지 못하면 근육이 빠지면서 근감소증이 생기고, 침대에 누워만 있다 보면 사회적 교류도 끊어진다. 잘 먹지 못하니 영양 상태도 나빠진다. 이 모든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신체 기능은 굉장히 중요한 포지션이다”라고 설명했다. 신체 기능이 곧 노쇠의 정도를 알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셈이다.
디파이는 안단테핏으로 진행한 신체 기능과 노쇠 지수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신체 나이도 제공한다. 신체 나이는 복지관, 치매안심센터, 요양 시설, 데이케어센터(주야간 보호센터) 등에서 활용도가 높다. 이 개념을 도입하니 검사 결과를 설명하는 시설 담당자도, 설명을 듣는 노인도 이해가 쉬워졌다. 노화 정도가 좋아진다는 것이 직관적으로 보여 돌봄을 받는 고령자의 효능감도 높아진다. 안단테핏을 이용한 노쇠 평가는 서울 강서구 치매안심센터 등 서울 권역 치매안심센터, 인천광역치매센터 등 인천 권역 치매안심센터와 서울·인천 복지관 등에서 시행 중이다.
근감소증 디지털 치료기기 ‘싸코핏’
2021년 근감소증이 국내에서 질병으로 분류되고, 예방적 통합돌봄 서비스에 노쇠 평가가 핵심으로 도입되면서 신체기능평가 수요가 늘어났다. 안단테핏으로 누구나 신체 기능을 측정할 수 있도록 했다면, 현재는 근감소증 진단 후 처방되는 디지털 치료기기를 만들고 있다. 팔십 평생 운동을 안 했던 노인을 운동하도록 유도하는 건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같은 나이여도 신체 기능 상태가 천차만별이다. 개인 상태에 맞춘 운동 설계와 유도가 중요한 이유다.
디파이는 근감소증 디지털 치료기기 ‘싸코핏’(SarcoFit)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근감소증 약물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운동 및 영양 중재(처치)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싸코핏은 △신체 기능에 기반한 개인 맞춤형 운동 중재와 △순응도를 높이는 디지털 인지행동 치료로 구성된다. 싸코핏이 디지털 치료기기 품목 허가를 마치면, 운동·영양·인지·사회적 교류의 다면적 중재에 기반해 지역사회에 노쇠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헬스케어 서비스 ‘마이 비바체’를 선보일 계획이다.
윤성준 대표는 “노년기에 병원에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나의 생활권인 지역사회에서 노쇠 관리 평가는 더욱 중요하다. 집에 살면서도 나의 신체 기능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떨어질 것 같다면 미리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시간이 많이 흐르면 회복하기 어렵지만, 초기 단계에서는 회복을 넘어 오히려 더 건강해지는, 이른바 역노화도 가능하다. ‘노쇠를 관리한다’는 개념을 만들어가는 디파이는 지역 곳곳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자 한다.
최근에는 노인 인구 비율이 높은 반면 개호보험 인정자 비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일본 후쿠이현(福井)과 일본의 요양·재활·방문 돌봄 시스템을 선도하고 있는 홋도리하비리시스템즈(ほっとリハビリシステムズ)의 초청을 받았다. 일찍이 지역사회 통합돌봄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는 일본에서도 노쇠 예방을 위해 안단테핏에 관심을 보인 것.
윤 대표는 “단순히 만성질환 수가 적으니까 건강하다는 개념보다, 질환이 있더라도 얼마나 나의 신체 기능, 영양, 사회관계를 잘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고령자는 노후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의 노쇠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 50대 얼리 시니어 단계부터 디파이가 만들어놓은 서비스를 이용하면, 건강하게 잘 늙어갈 수 있다는 답을 주고 싶다”며 디파이의 비전을 제시했다.
칠레의 65세 이상 인구는 1990년 인구의 6.2%를 차지했으나, 2017년 11.1%로 그 비율이 급증했다. 현재 칠레 인구의 220만 명이 65세 이상 고령자로, 2035년에는 399만 3821명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UN에서는 2041년 65세 이상 인구가 21%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칠레의 고령친화도시 이니셔티브는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산티아고 시를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고령친화 도시로 지정하며 시작됐다. 그 이후 발파라이소(Valparaíso), 코킴보(Coquimbo), 콘셉시온(Concepción)을 포함한 칠레의 다른 도시가 이니셔티브에 참여했다. 칠레의 고령친화도시 사업은 급속한 고령화 속도에 대응하기 위함이며,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더 살기 좋고 이들이 환영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칠레 역시 노인들이 접근 가능하고, 안전하며, 그들을 포용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네에 넓은 보도, 접근이 쉬운 대중교통, 휴식을 위한 벤치 등을 마련하거나 지역사회 행사, 문화 활동 및 세대 간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들의 사회적 참여를 촉진하는 식이다.
광합성 배우며 ‘선배시민’ 역할 깨우쳐
WHO 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칠레 카우틴(Cautín) 주의 소도시 론코체(Loncoche)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인구의 20% 이상이 60세 이상인 이 지역은 2016년 6월 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에 가입했다.
지역 특성에 기반해 ‘노인통합센터’가 개설된 점이 특징이다. 론코체의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60세 이상 주민은 40%에 달한다. 이들을 태우고 도심지를 오가는 셔틀버스는 하루에 한 번 운행하는데, 도심의 쇼핑몰에서 장을 본 노인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머물 수 있는 공간을 고안하다 탄생했다. 이곳 센터에서는 커피를 마시거나 화장실을 이용하고,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의 모든 활동을 무료로 할 수 있다.
젊은 세대 사이의 노인, 노화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해소하기 위한 지역 차원에서의 농업 교육 프로그램도 시행됐다. 선배 세대인 고령자는 그들의 농업에 대한 경험과 광합성, 식물 생장과 관련한 과학 지식을 후배 세대에게 나누고, 농작물을 심고 관리하는 실무를 담당했다. 프로젝트는 후배 세대들로 하여금 ‘노인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인지하는 효과를 얻었다.
고령인구 활용한 新모델 개발 실험 나서
발파라이소 시는 65세 이상 시민이 20.6%에 달하는 지역이다. AARP의 보고서는 ‘칠레 내에서 노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도시’로 소개하고 있다. 이곳의 발파라이소 대학교(Universidad de Valparaíso)에서는 2006년 ‘게로폴리스’(Gerópolis) 프로젝트로 노인과 함께 살기 위한 사회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실험을 일찍이 수행했다. 고령자 인구가 많은 지역적 특성을 살린 것이다.
프로젝트에서는 도시의 내외부 유관 분야의 관계자를 모아 ‘에이징 인 플레이스’(AIP) 모델을 만들었다. 이 모델은 시니어 건강 증진에 힘쓰는 ‘시니어 요원’들을 양성하거나 노인 대상 모바일 건강 플랫폼을 개발하는 등의 성과를 냈다. 이외에 노인을 위한 공간이나 장치를 설계하는 도시 계획 또한 시행하고 있다.
‘서비시니어’(ServiSenior)는 2015년 발파라이소 시에서 설립된 대학 이니셔티브다. 50세 이상 성인이 노동할 수 있도록 돕는 이 프로그램은 노인이 수행할 수 있는 작업 및 서비스를 고안하고, 이를 패키지로 만들어 사기업에 판매한다. 또한 고령자 고용을 고려하는 기업을 직접 방문해 회사가 고령의 구직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AARP는 서비시니어 프로그램에 대해 ‘아직 사업 규모는 작으나 서비스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전국으로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경제협력기구(OECD)는 스페인은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노인이 많은 국가에 등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지난 2017년에 발표한 ‘불평등 노령화 예방 보고서’(Preventing Ageing Unequally)에서 스페인의 65세 인구 비율이 2050년에 40%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측에 근거한 주장이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초고령화시대를 문제없이 헤쳐 나가기 위해 고령층 건강 대책을 시행하고, 취약 계층을 위한 복지 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또한 노인복지청(IMSERSO)을 정부 부처 내 독립 부서로 두고 국민들의 노후를 지원하고 있다. 노인복지청의 사업으로는 1985년부터 이어진 ‘고령자 여행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65세 이상 연금 수급자와 배우자를 대상으로 하며,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스페인 관광지의 교통, 숙박 시설 등을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한다.
지난 2일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ís)의 보도에 따르면 여행 상품과 여행지를 다양화해 스페인 내 52개 지방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프로그램은 문화나 자연 경관을 선호하는 노인의 요구에 근거해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사회인권부에 따르면 이로 인해 이용 요금 인상이 이뤄질 수 있지만, 지난해 연금 인상률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스페인 대학들은 55세 이상 시민들을 대상으로 ‘경험자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를 경험과 지식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쉽게 접근하고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대학 내에서 사회적 상호 관계를 형성하고 이어나가게 하고 △노인이 아닌 다른 집단에게도 도움을 줌으로써 사회적으로 연대하는 태도를 취하도록 하는 데에 목표를 둔다. 인문학, 과학, 사학, 예술 분야 등의 강의를 제공하는 이곳의 이름은 노인을 단지 나이든 존재로 보지 않고 그들의 경험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 외에도 지자체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고령자 친화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수도인 마드리드와 주 도시 바르셀로나의 사례를 살펴보자.
마드리드, ‘영원한 현역’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
스페인에는 기업의 전 임원을 지내고 은퇴한 중년들이 경험과 노하우를 제공하는 비영리법인 ‘세콧’(SECOT)이 운영되고 있다. 1989년 마드리드에서 처음 설립돼 현재는 스페인 내 도시 외에도 유럽 연합(EU) 22개국의 조직이 모여 30세 미만의 실업자 혹은 실직자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45세 이상 중년의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다.
세콧 회원은 창업, 마케팅, 기업 경영에 필요한 지식이나 재무 관리 방식 등에 대한 강의를 무급 자원봉사로 제공한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며, 전 직장과 업무를 고려해 업무를 배당한다. 또한 실전 강의를 나가기 전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세 번의 모의 강의에서 통과해야 기업에서 강의할 수 있다.
마드리드 내 자치지역인 트레스 칸토스(Tres Cantos)에서는 지난해 고령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인도와 공원 내 벤치, 횡단보도 등을 점검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해당 사례를 소개하며 60세 이상 지역 주민 50명이 직접 18개 구와 2개 공원의 GPS 사진을 수집해 정비가 필요한 부분을 확인했으며,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웃에게 이동 편의나 접근성에 대해 직접 확인하는 등 사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고 전했다.
온‧오프라인서 1인 고령가구 챙기는 바르셀로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시는 2017년 말 기준, 총인구 160만 명 중 65세 이상 30만 명이며 이중 4분의 1은 홀로 거주한다. 시 정부는 홀로 거주하는 노인을 위해 ‘빈끌레스바르셀로나’(VincleBCN)와 ‘내 나이가 어때서?’(Soc gran, i que?) 프로그램을 도시 전역으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빈끌레스바르셀로나는 노인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관계를 형성, 강화하고 노인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시행됐다. 행정상 바르셀로나에 주민으로 등록된 65세 이상 주민이 이용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사는 곳이나 관심사가 일치하는 노인들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어 서로 일상을 공유하고,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참여자는 프로그램과 이름이 같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해 가족과 친구,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커뮤니티 구성원과 일상을 공유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스마트 기기가 없지만 참여를 희망하는 경우 시에서 기기를 대여해주고 있다. 앱은 노인의 사용 편의를 위해 메시지를 텍스트 외에 음성으로도 입력할 수 있고, 커뮤니티 구성원과의 일정을 기록해 알림을 받을 수 있는 등의 기능이 탑재돼있다. 2021년 10월부터는 청력이 좋지 않은 이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이메일이나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왓츠앱’(WhatsApp) 연동 기능을 추가했으며, 수화가 가능한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게 됐다.
디지털 세대 격차를 없애기 위한 프로그램도 시행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나는 블로거다’(soy blogger). 바르셀로나 시의회의 아동‧청소년‧노인 서비스국의 노인 홍보부서에서 추진하는 시민 저널리즘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바르셀로나 노인들은 소셜 네트워크와 시니어 시민을 위한 시 웹사이트 블로그에 기고하는 자원봉사 기자 및 사진작가로 활동한다. 이들은 활동 전 디지털 및 저널리즘 교육을 사전에 이수한다. 프로그램의 목표는 오늘날 자주 쓰이는 SNS 중 하나인 페이스북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나, 최종적으로는 이들이 직접 도시에 얽힌 콘텐츠를 취재해 제작하고, ‘시니어 웹’(Web de la Gent Gran) 블로그와 바르셀로나 시립 SNS 계정에 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페이스북과 유튜브 계정이 운영 중이다.
단순히 요양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 요양보호사, 수급자 모두가 존중받는 선순환을 만든다. 더 많은 시니어가 주체적으로 살며, 결국 방문요양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 시니어 케어 요양 기업 ‘케어링’의 목표다.
케어링은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어르신들을 돌보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내 가족을 돌보고 정부 지원을 받는 가족요양, 요양보호사의 방문요양 및 방문목욕, 건강관리·치매 예방 등 간호를 지원하는 방문간호, 욕창 매트리스 등을 구매할 수 있는 복지용구 커머스, 케어링 고객이라면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공동구매 커머스, 장기요양등급 신청을 무료로 돕는 등급신청 대행, 주야간보호센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9년 설립 후 2020년 매출 20억 원을 달성, 복지용구 및 방문간호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2021년에는 매출 110억 원을 달성했다. 2020년에는 대한민국 최고브랜드대상의 ‘방문요양 서비스’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2022년에는 소셜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다.
요양보호사의 처우 개선부터
케어링의 성장은 ‘요양보호사의 처우 개선’을 기반으로 이뤄졌다. 케어링 직원과 돌봄 종사자 사이에 신뢰가 쌓이고 만족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 수급자의 만족도도 높아질 것이라 믿는 점이 케어링의 성장 포인트다. 김태성 케어링 대표가 말하는 ‘존중의 선순환’이라는 가치다.
케어링의 돌봄 서비스는 수급자와 요양보호사 혹은 간호사의 1:1 매칭에 공을 들인다. 방문요양의 경우 이용자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요양보호사를 케어링이 매칭하면 가정에 직접 방문해 대화를 나누며 성향이 맞는지 살핀다. 일종의 면접인 셈. 2023년 1월 기준 케어링 이용자는 8358명, 요양보호사는 약 2만 7000명이다.
케어링은 가족요양이라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직계 가족을 요양하고 급여도 받을 수 있는 제도지만 많은 요양보호사들이 모르고 있었다. 또한 방문요양 시급 1만 3750원, 방문목욕 시급 2만 200원으로 최고 수준의 시급을 제공하고 있다. 퇴직금 제도도 운영하며 배상책임보험을 제공한다. 올해 3월에는 요양보호사 감사 축제로 ‘제1회 케어링 요양보호 사랑해 축제’를 연다.
케어링이 요양보호사의 처우에 신경 쓰는 만큼 이들의 만족도도 높다. 남춘화 요양보호사는 “요양보호사가 일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매달 확인해주고, 센터와 교류가 잘되는 게 좋다”고 전했다. 김은숙 요양보호사는 “현실적으로 가족요양 시급을 받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케어링의 요양보호사 대기인력으로 등록하려면 홈페이지나 전화 상담으로 신청할 수 있다. 원하는 지역 근처에서 일자리가 생길 경우 문자로 알림을 보내준다. 매칭이 완료되면 센터에 고용되어 시간제로 일하게 된다.
조용욱 케어링 운영총괄 이사는 “요양은 수급자에 따라 정말 다양한 상황에 놓여 있어 다양한 요구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개인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잘 맞는 요양보호사가 함께하는 것이 방문요양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는 요양보호사를 위한 멤버십 제도나 커뮤니티 등도 만들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시니어가 모여 사는 마을
최근 케어링이 집중하는 분야는 공동구매와 커뮤니티케어 센터를 운영하는 일이다. 돌봄이 필요한 시점이 되면 기저귀, 건강식, 물티슈 등 고정적으로 필요한 물품이 생긴다. 거동이 불편하면 직접 구매하러 나가기도 어렵고, 온라인 구매도 쉽지 않다. 그래서 케어링은 공동구매라는 커머스 서비스를 통해 인터넷 최저가보다 더 저렴하게 필요 물품을 판매한다.
커뮤니티케어는 주야간보호센터를 말한다. ‘어르신 유치원’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어르신들이 모여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식사도 함께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노인들을 위한 서비스다. 이 센터를 구심점으로 지역사회 안에서 하나의 커뮤니티로서 서로가 돌볼 수 있는 요양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목표도 있다. 현재 부산에 4개의 지점을 오픈했으며, 4년 안에 전국에 100개 센터를 만드는 게 목표다.
케어링은 고령자의 생활 주기에 맞게 거주지를 리모델링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은퇴 후 시니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만들고자 한다. 일본과 미국에는 시니어 배리어프리 주택 단지가 있다. 김 대표는 15만 명이 모여 사는 미국 플로리다주 시니어타운을 직접 다녀왔다. 그는 “몸이 아프기 전에 은퇴한 사람들이 모여 레저나 친목 활동을 함께하며 즐겁게 지내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케어링이 이런 비즈니스까지 확장되도록 할 것”이라고 향후 목표를 설명했다.
케어링은 방문요양으로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종합 시니어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2022년 8월 300억 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받은 케어링은 데이케어센터를 늘리고, IT를 통한 돌봄 서비스 향상, 시니어 구인·구직 앱 서비스, 요양보호사 교육원 확장 등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의료진 입장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를 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예기치 못한 합병증이 발생하기도 하고,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하다. 게다가 지칠 대로 지친 가족까지 상대하는 일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비유될 정도다. 그런데 병원이 아닌 말기 환자의 집을 직접 찾아가 치료하는 의사들이 있다. 바로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에 참여하는 ‘마지막 주치의’다. 인천성모병원에서 만난 서민석 교수도 그중 한 명이다.
“이 환자의 마지막 주치의는 나다. 늘 이런 마음가짐으로 다녔죠. 다른 의료진이 더 이상 무언가를 해줄 수 없다고 판단한 상태에서, 나는 이 환자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요. 그렇게 한집 한집 찾아다녔어요.”
서 교수는 2016년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의 시범사업이 진행될 때 참여한 의사 중 한 명이다. 5년간의 시범사업 내내 인천 지역 환자를 찾아다녔고, 매년 100곳 이상의 가정을 방문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서 교수의 활약을 높이 평가해, 지난해 장관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병원이 참여 기피
가정형 호스피스는 초고령사회로 초고속 진입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제도다. 임종이 가까워진 암 환자나 만성호흡부전, 만성간경화, 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를 가정에서 돌볼 수 있도록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성직자, 자원봉사자 등이 각 가정을 방문한다. 집에서 치료하거나 임종하기를 바라는 고령 환자들의 선호도가 높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필요로 하지만 운영하기는 가장 어려운 제도로 꼽힌다. 바로 의사 부족 때문이다.
가정형 호스피스에 참여하는 의사들은 하루에 네다섯 가정을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리 동선을 잘 계산해도 물리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의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가정의학과 평균 환자 수는 주당 312명. 주 6일로 계산해도 하루에 52명을 진료하는 셈이다. 모시기 힘든 몸값 높은 의사를 데려다가 일반적인 진료의 10% 환자만 치료하는 제도를 병원 측이 좋아할 리가 없다. 때문에 전국에서 이 제도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은 37개소뿐이다. 대부분 종교병원이나 공공병원이고, ‘알 만한’ 유명 대학병원들은 쏙 빠져 있다.
“처음 시범사업이 시작됐을 때 모든 언론이 주목했어요. 주치의가 직접 가정을 방문하는 풍경이 이색적이었을 테고, 정부도 제도 홍보에 집중했으니까요. 그러다 환자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병원 수 때문에 항의가 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난감해했죠. 의사를 확보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어요. 결국 방문한다는 것은 외래 진료나 병동 환자의 진료 시간을 빼야 하는데, 호스피스 전담 인력이 충분한 의료기관이 아니라면 어려운 부분이 있죠. 방문을 통해 발생하는 의료수가(진료비)도 낮게 책정되어 있어 병원의 참여를 유도하기 어려워요. 수가를 높이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테고, 결국 봉사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암 환자를 기준으로 본인부담금은 대략 의사 방문 시 6300원, 간호사는 4200원, 사회복지사는 2500원이다.
병원 밖을 나서 환자의 집을 찾아다니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더운 여름이나 한겨울엔 한두 곳만 돌아도 녹초가 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서 교수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뻐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모습이었다고.
“실제로 환자 가족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하면 가정형 호스피스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아요. 의사가 직접 찾아와 병원에서만 가능했던 치료를 해주니 좋아할 수밖에요. 특히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또 의료적인 처치 이외에도 사회복지사님이 장기요양서비스와의 연계라든가 장례식장 등 임종 전에 준비해야 하는 다양한 부분을 안내해드리기도 하고, 신부님이 같이 가셔서 미사를 드리기도 하고, 음악·마술요법 선생님이 함께 가기도 하니 만족도가 매우 높죠.”
남의 집도 내 집처럼 편안해져
가정형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는 환자들이 임종하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적으로 한 달. 죽음과 가까운 환자만 상대하는 일은 의료진 입장에서도 감정적으로 지치는 일이다. 실제로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들은 병원 측에서 제공하는 심리 관리 프로그램에 주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신적 소모가 크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어땠을까?
“의료진 입장에선 ‘소진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죠. 다행히 저는 성격적으로 우울감이 심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어요. ‘마지막 주치의’로서 임종하는 과정까지 최선을 다해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임종 이별이라는 것이 슬픈 과정이지만,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도왔다고 생각하면 막 지치지는 않아요.”
서 교수의 이런 성품은 가정의학과를 전문과목으로 선택한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전문적으로 하나의 질환만 파고드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결국 의사가 대하는 것은 질병이 아닌 환자이니, 환자의 여러 문제를 두루 배워서 이야기 나누며 치료하는 것이 내게 맞을 것 같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처럼, 간병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당연히 살림에는 소홀해지고, 집 안은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 의료진의 방문, 그것도 대학병원 교수라는 의사가 방문한다면 환자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당연히 긴장을 하세요. 저는 그냥 환자를 보러 간 것이기 때문에 집 안의 환경이 어떻든, 지저분해도 상관없는데 환자나 보호자분들이 너무 조심스러워하세요. 청소를 해야 하나, 대접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세요. 하지만 아무것도 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편히 대하시면 돼요. 저도 그냥 방바닥에 털썩 앉아 일부러 더 제 집처럼 행동해요. 처음에는 쭈뼛대기도 했는데, 제가 편히 행동해야 가족들의 마음도 안정되더라고요.”
아직은 병원 임종 많아
사회가 고도화되고 가정의 형태가 달라지면서, 가족을 돌보고 임종을 맞이하는 과정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가정형 호스피스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서 교수는 임종 때까지 집에서 머물 수 있는 기간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단다.
“대가족이 많았던 과거에는 가정에서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자원이 풍부했죠. 충분히 집에서 간병할 수 있었고, 가정에서 임종하면 장례까지 치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녀들이 경제활동에 매달려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나이 많은 환자의 배우자가 돌보는 경우가 많고, 그마저도 어려우면 병원으로 오시죠. 집에서 임종까지 바라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막상 그날이 가까워지면 가족이 돌볼 수 없는 어려움이나 다른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병원행을 선택하게 되죠. 집에서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텨보다가 입원을 하는 겁니다. 애초에 가정형 호스피스는 가정에서 임종까지 맞이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사업을 막상 진행해보니 집에 계시고 싶은 만큼 계실 수 있게 돕고 이후 임종은 병원에서 맞이하는 형태로라도 가정형 호스피스로서 의미는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국내 베이비붐 세대는 기준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600만 명에서 8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어느 쪽이더라도 대단한 숫자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요양 서비스가 필요할 15~20년 후에 대해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요양시설 등 기반은 한정되어 있는데,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정부가 가정이나 마을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이나 일부 질환에 대해 가정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일차의료 방문진료 사업 등을 추진하는 것도 이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가정형 호스피스 역시 같은 선상에 있다. 그 미래를 서 교수는 “의원급이 활발히 참여하는 형태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각 병원마다 코로나19 치료 병상 확보를 위해 가장 먼저 줄인 것이 있어요. 바로 호스피스 병동이에요. 병동이 사라지면서 당연히 이용하는 환자 수도 통계상 감소했는데, 줄지 않은 분야가 있었어요. 바로 가정형 호스피스 이용자죠. 게다가 앞으로는 노인 인구가 더욱 증가하니까 이 서비스를 원하는 환자들도 늘어날 겁니다. 네 가지로 제한되어 있는 대상 질환도 만성질환이나 치매 등으로 확대가 예상되고요. 이런 질환은 임종까지 기간이 긴 만큼 가정형 호스피스를 받는 사람도 더 많아질 겁니다. 물론 지금 담당기관에서 이 많은 수요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고, 해외 사례처럼 지역사회 의료기관과 연계해서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차의료 방문진료 사업에 참여하시는 선생님들의 의견을 들어봐도 결국 임종까지 돌봐주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하시고요. 대만이 이와 비슷한 모델입니다. 호스피스 이용률이 58.7%에 달해요.”
우리나라 호스피스 대상자 중 서비스 이용률은 20% 정도다.
서 교수는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그래도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는 존재 의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초기에 만난 환자분인데, 유방암이 뇌에 전이돼 뇌압 조절이 안 되어 정기적으로 뇌척수액을 빼내야 했어요. 뇌압이 올라가면 의식이 떨어지고 호흡도 억제되니까요. 병원에선 퇴원을 말리는데 환자는 집에서 지내길 너무나 원했어요. 다행히 저희에게 의뢰가 와서 의료진이 방문해 도와드렸습니다. 하필 병원에서 가장 먼 송도 지역이어서 하루를 그 환자만을 위해 써야 하는 상황이었죠. 뇌압 조절만 해드리면 다른 증상이나 통증 없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어서, 군대 간 아들이 제대하는 것까지 보고 집에서 돌아가실 수 있었어요. 한 사람으로서 존엄을 지키면서 평소 지내던 곳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고 가족이 지켜보는 상태에서 임종을 맞이하셨죠.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캐나다는 1986년부터 고령친화적 지역사회를 표방했다. WHO의 고령친화도시는 2007년 도입했고, 브리티시 컬럼비아주를 비롯한 4개 주에서 지역별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캐나다의 고령친화정책은 거주자가 나이, 민족, 인종, 성별 또는 능력에 관계없이 존중받고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고령친화적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앞으로 살펴볼 사례에도 고령자를 약자로 보고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기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회적 주체임을 인정하는 면모가 드러나 있다.
나이·인종·성별 무관하게 지원 받도록 돕는 사회
브리티시 컬럼비아주는 지역사회 주민 대상 고령친화도시 지침(Seniors in British Columbia: A Healthy Living Framework)을 발표했다. 2007~2010년 1기 고령친화도시가 실행되고, 참여지역에 대한 평가를 실시했으며, 2011년부터는 전략을 새롭게 수립해 추가 예산을 지원하고, 지역정부 차원의 인증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의 노력을 지속한 바 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경우 2020년부터 주 자체적으로 노인 안내서를 7개 언어(영어, 프랑스어, 펀자브어, 중국어, 한국어, 베트남어, 이란어)로 제공하고 있다. 노인들이 가능한 한 오래, 자신의 집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건강하고 활동적인 일상생활을 장려하며, 주민들이 필요로 할 때 언제 어디서나 최상의 치료와 지원 제도 등을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보건부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예약제 교통편 제공, 간단한 가사나 정원 일을 돕고 식료품 쇼핑이나 집 수리를 지원하는 ‘가정에서 보다 나은 삶’(Better at Home) 프로그램이 대표적 고령친화정책이다. 원주민이나 토착민 고령자가 연례 모임을 갖는 데에 필요한 교통 경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개설돼 있는 것 역시 눈에 띈다. 황혼의 나이에도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가 이용할 수 있는 상담전화, 보육 보조금 프로그램에 대한 이용 방법 역시 안내돼 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거나, 청각장애 유무를 고려한 통역 서비스나 청각 장애인용 연락처를 일일이 기술해둔 점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책자에는 이처럼 노인 본인이나 가족 및 간병인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와 정보, 이용 방법이 정리돼 있다. 라이프스타일, 건강, 주택, 교통, 재정, 안전 및 보안 등으로 분류돼 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홈페이지에서 PDF 파일로 다운로드 받아 확인 가능하다.
캘거리 시 역시 고령자 지원 정책에 대한 안내 사항을 9개 언어로 번역해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다. 캘거리는 2036년 거주민 5명 중 1명은 60세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다. 이에 시는 건강 프로그램이나 거주 지원 서비스 등을 포함해 노인 학대를 예방하고, 교통 통신 등에서의 지원을 우선적으로 시행했다. 또한 넓은 범위의 레저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재정적 지원을 함께 하고 있다.
‘연륜의 미’ SNS로 홍보하기도
온타리오주의 더럼 지역은 주민의 약 28%가 55세 이상이며, 2031년에는 34%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더럼에서는 노인과 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지우고자 '연륜의 미덕'(Beauty of Experience) 캠페인을 열었다.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들과 심화 인터뷰나 설문 조사 등을 통해 상의한 결과, 노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지역사회 통합과 안정감 유지에 해를 끼친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캠페인은 노인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있는 8개 지역 24명의 노인을 소개했다. 경험으로부터 오는 지혜, 기술 등 나이 듦으로 인해 생기는 긍정적 면모를 포스터나 교육용 영상, 지역 신문, 라디오, 지역 내 대중교통 광고 등을 통해 내보였다. 트위터, 링크드인, 페이스북 등 SNS 역시 활용했다.
더럼 지역의 캠페인은 전 연령대의 주민들로 하여금 노화에 대한 오해를 약화시키고, 거주하는 노인을 위한 사회적 통합과 안전을 강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WHO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해당 사례를 소개하며 "참가자들에게 긍정적 경험을 제공했으며,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대유행사태로 인해 놓쳤던 사회적 유대감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치매 환자가 이해‧존중받고 기여할 수 있는 도시(cities), 타운(towns) 또는 마을(villages)로, 지역 주민은 치매에 대해 이해하고, 치매 노인은 지역사회 일원으로서 자기주도적으로 살 수 있는 지역사회’. 영국 알츠하이머협회(Alzheimer’s Society)에서 ‘치매 친화 지역사회’(dementia-friendly community)에 대해 내린 정의다.
모든 노인이 거주하던 동네에서 계속 일상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치매 노인에게 지역사회의 의미는 더욱 중요할지 모른다. 길 리빙스턴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정신의학 교수는 2017년 연구에서 사회적 고립이 완전히 제거될 수 있다면 치매 사례가 5.9% 줄어들 수 있다고 계산했다. 해당 연구 결과를 소개한 KBS는 “결혼과 혈연으로 이어진 전통적 형태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성장과 노화에는 상호 간의 소통과 교류가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영국은 치매 문제를 세계 최초로 국가적 안건(아젠다)로 설정한 나라다. 2009년 ‘국가치매전략’을 도입하고, 2012년에는 ‘치매 친화 지역사회’ 관련 정책을 시행했다. 치매 치료제 개발 투자, 치매에 대한 국민적 인식 개선, 치매 환자와 간병인의 여건 개선 등을 위한 노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국 지역사회에서는 치매 노인을 비롯한 고령자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여기 앉으세요” 의자 내어주며 외출 장려
영국 노팅엄 시에서는 미국 뉴욕시와 맨체스터시의 유사한 프로젝트에서 착안한 ‘여기 앉으세요’(Take a seat) 캠페인을 열었다. 캠페인에 참여하는 상점은 외부에 ‘우리는 고령 친화 상점입니다’(We are Age Friendly) 스티커를 부착한다. 노인은 부담 없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상점에서는 차나 커피, 물 한 잔을 제공하지만 구매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캠페인은 2015년 시작된 이후 노팅엄 내 28개 지역, 300개 이상의 사업장에서 운영되고 있다. 상점, 백화점, 건축 협회, 카페, 술집, 미용실 등 참여 업종이 다양하다. 고령친화적인 지역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실제 사례인 것이다.
이 캠페인은 외출한 노인이 앉아서 숨을 돌릴 곳을 마련하고, 노인에게 쉴 곳이 부족하다는 점을 모두가 인식하게끔 하고자 시행됐다. 고립감이나 고독감을 느끼기 쉬운 노인에게 외출을 꺼리게 하는 요소를 줄여 외출을 장려하는 것이다. 영국의 비영리단체 ‘노화개선센터’(Centre for Ageing Better)는 “기업이나 가게 주인으로서도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배려하는 업장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인 캠페인”이라고 평가했다.
고령자가 기획하는 고령친화 문화 프로그램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영국의 치매 친화 지역사회 정책’ 연구에 따르면 영국 치매 친화 지역사회 인증 프로그램은 민간이 주도하고 운영하며, 지역 정부의 참여와 인준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 병‧의원, 거주시설이나 학교, 상점, 기업이나 은행, 여가문화시설 등 다양한 기관의 역할을 강조한다. 지역 내 은행 지점은 기억카페에서 치매 노인의 금융 관련 조치, 은행에서 운영하는 금융자산 보호 정책(규정) 등에 대해 홍보하는 식이다.
유명 축구팀의 연고지로 유명한 영국 맨체스터는 영국 내에서 고령친화도시 선두주자로 꼽힌다. 2010년 영국 도시로는 최초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고령친화도시 국제 네트워크에 가입했다. 또한 노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 노화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기념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생동감 있고 다양한 모습의 노인 사진을 사용하는 식이다. 이러한 전략은 연령 차별주의(ageism)를 약화하고 노화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나 묘사를 바로 잡기 위해 쓰였다.
맨체스터시가 사용한 고령친화도시 전략 중 하나는 문화다. 50세 이상, 특히 사회적 고립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 의한 고령 친화적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문화 챔피언’(Culture Champions) 봉사 프로그램이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150명 이상의 노인 자원봉사자들은 도시 전역에서 문화 대사로 활동한다.
이들은 동년배를 위한 활동을 구상하고 기획해 운영하거나 소속된 예술단체를 홍보하고, 단체 운영에 대해 조언을 하는 등의 활동을 펼친다. 노인을 위한 라이브 공연이나 디제잉이 준비된 ‘클럽의 밤’(Club Nights)이나 기타, 드럼, 키보드 등의 악기 레슨, 도시의 문화유산과 특색있는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버스 투어 등 자체적인 행사나 축제를 계획하고 운영하기도 한다.
노인 인식 개선에 노력하는 미술관
맨체스터시의 고령친화적 문화 프로그램을 논할 때 휘트워스 갤러리(Whitworth Gallery)를 빼놓을 수 없다. 휘트워스 갤러리는 맨체스터 시의회가 주도하는 ‘고령친화도시 맨체스터’ 사업의 파트너다. 1889년 설립된 이후 19세기 맨체스터가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첫 도시로 성장함에 따라, 휘트워스 갤러리는 교육 및 사회 기관의 역할을 맡게 됐다. 2007년부터 맨체스터시의 노인들을 위해 보건‧복지 분야에 예술을 접목하는 ‘문화 제공 프로그램’(Cultural Offer programme)을 운영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노인들과 함께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
휘트워스 갤러리의 프로그램은 2018년에는 주한영국문화원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공동으로 마련한 ‘문화접근성 향상 미술관 교육 워크숍’에서 영국의 우수 사례로 소개된 바 있다. 주한영국문화원의 ‘한‧영 참여예술 자료집’에 따르면, 갤러리의 예술 프로젝트 ‘비욘드 디멘시아’(Beyond Dementia)에 참여한 치매 환자들은 예술 작품을 탐구하는 시간을 가진 뒤 실제로 작품을 창작해냈다. 이 작품들은 전시회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됐다.
휘트워스 갤러리의 고령 친화 프로그램은 워크숍이나 예술 참여 프로젝트뿐 아니라 리서치, 간행물을 통해서도 이뤄졌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프로그램에 잘 참석하지 않는 점을 고려해 ‘남성 노인의 문화 활동을 위한 핸드북’(Handbook for Cultural Engagement with Older Men)을 제작하거나, 치매 환자와 간병인을 위한 애플리케이션 ‘아트 센스’(Art Sense)를 개발하는 식이다.
에드 와츠 휘트워스 학습‧참여 팀장은 2018년 우리나라를 방문해 아트 센스 앱에 대해 설명하며 “요양사들과의 면담이나 치매 환자와 대화하거나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좋은 도구임을 깨달아 이를 활용하고자 했다”라며 “젊을 때에 섬유 산업에 종사하던 노인이 아트 센스 앱을 실제로 활용해본 뒤 디지털 방식으로라도 섬유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 좋아했다”고 전했다.
2060년에는 유럽 인구의 1/3이 65세 이상일 것이라는 전망치가 쏟아진다. 유럽 각국은 고령화 사태를 주시하며 대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 중 독일은 통상적인 ‘선진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 문제에 대면한 국가다. 1932년에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1972년에 고령사회, 2008년에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가 되었기 때문.
[노인돌봄, 지역사회가 열쇠다]에서 두 번째로 소개할 국가는 독일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 문제를 떠안은 독일의 지역사회에서는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등받이 설치‧공중화장실 개방으로 고령자 챙긴다
독일연방노인문제연구소(Deutsches Zentrum für Altersfragen)는 고령화 관련 조사와 연구, 정책 컨설팅, 정보 제공 활동을 펼치는 연구 기관이다. 차수마다 보고서 작성을 위한 전문가위원회를 구성하며, 1993년 1차 보고서 이후 3~5년 간격으로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독일 정부가 발간하는 노년보고서(Der Altenbericht) 작성을 담당하는 명예전문위원회는 이 연구소에서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발간한 ‘50+해외동향리포트’에 따르면, 독일 정부가 2016년 발간한 노년보고서는 ‘공동체 내에서의 돌봄과 책임’을 주제로 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집과 사는 동네 위주로 행동반경이 좁아지고, 사는 동네에 대한 애착과 안정감이 커져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WHO는 ‘고령친화도시’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우수한 고령친화도시의 정책 사례들을 선정해 소개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라데보름발트시의 외부 시설이 소개됐다. 이는 201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고령친화도시 프로젝트’ 팀이 만들어낸 결과물로, 도시 인구의 22%가 60세 이상인 라데보름발트시 역시 WHO의 8가지 요건을 근거로 고령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다.
우선 고령자협의회의 주도로 도시의 모든 벤치에 등받이를 새로 설치해 노인들이 쉽게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길을 지날 때에는 불편하지 않도록 연석(도로경계석)의 높이를 낮췄다. 도로에 특수 포장 돌을 깔고, 독일 행정부가 설치한 특수 흰색 자갈을 이용한 횡단보도로 시력이 저하된 노인이나 시각 장애인의 접근성‧안전성을 높였다.
WHO가 ‘외부 환경 및 시설’ 영역에 대해 제시하고 있는 고령친화적 항목 중 하나는 ‘충분한 공중화장실’이다. 이에 라데보름발트시는 정부가 조성한 ‘Hürxthal 시민센터’(원문 Meeting House of Hürxthal)에 배리어프리 화장실을 추가로 설치했다. 대부분의 공중화장실에서 사용료를 내야 하는 독일이지만, 라데보름발트시의 모든 식당에서는 고령친화 환경 조성의 일환으로 화장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도심 내 동측 거리의 공중 화장실 개조 공사가 이뤄졌다. 이외에도 라데보름발트시에서는 고령층이 바깥 활동을 하는 데에 있어 장애물이 되는 요소를 찾아내기 위한 노인협의회의 정기점검이 이뤄지고 있다.
사회참여 위해서 정부‧지역사회‧민간 삼박자 맞아야
삶의 질을 보장하려면 거주 환경 뿐 아니라 사회적 참여 및 소통의 기회가 충분해야 한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이슈리포트에 실린 ‘독일 중‧고령자의 고용 및 사회참여’ 연구에 따르면, 독일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자원봉사제도를 운영하며, 민간의 자원봉사 활동에 대해서도 세제 혜택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봉사제도에는 나이 제한이 없어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 모두가 참여 가능하고, 참여자는 활동기간 동안 용돈과 활동비를 지급받는다. 이외에도 독일의 고령자들은 ‘무보수 명예직’(Ehrenamt) 제도나 노인자체결성조직인 ‘노인사무국’(Altenbuero)을 이용해 자원봉사에 나선다.
‘시니어사무소’(Seniorenbüros) 역시 고령자의 사회참여를 돕는 기관 중 하나다. 50세 이상 시민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봉사활동, 기업 연계 프로젝트 등 다양한 활동을 지원한다. 독일 내 약 450개의 노인 사무소가 있으며, 각 사무소는 동네에 거주하는 50세 이상 중장년을 위해 자원봉사활동이나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소개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50+ 해외동향리포트 2018’에서는 시니어사무소의 우수 사례로 베를린의 ‘시니어컴퓨터클럽 베를린 미테’를 소개했다. 이곳은 전문적인 시니어 컴퓨터 기관으로, 휴가를 떠나기 위해 숙박이나 항공권을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등 초보자를 위한 일반 컴퓨터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컴퓨터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는 60세 이상 세대들이 참여하는 컴퓨터 게임 개발 프로젝트까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폭이 넓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스타트업 회사와의 연계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이용하는 시니어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세대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고령자가 능동적인 삶을 살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독일 연방가족부(BMFSFJ)가 실시하는 ‘독일자원봉사조사’(Deutscher Freiwilligensurvey)에 의하면 65세 이상 연령대의 자원봉사 참여율은 2019년 31.2%에 달했다. 이들 중 22.2%는 주당 6시간 이상을, 25.8%는 주당 3~5시간을 자원봉사활동에 사용하고 있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많은 시간을 자원봉사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중‧고령자의 고용 및 사회참여’ 연구의 저자는 “독일의 사례를 고려할 때, 고령자의 사회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노화를 겪는 몸은 돌봄을 필요로 한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둔, 노인의 나라에서 돌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돌봄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OECD는 2040년 우리나라가 2040년에 세계에서 요양 서비스 인력이 가장 부족한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치를 냈다. 고령화 속도가 너무 빨라 벌어진 일인데, OECD는 2040년까지 노인돌봄인력을 140% 이상 충원해야 한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게다가 노인 스스로가 대표적인 노인돌봄시설인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등의 장기요양기관 입소를 원치 않는다. 노인 스스로가 지역 사회를 떠나기 싫어하는 것은 다양한 통계자료로 검증된 사실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의 83.8%가 건강할 때 현재 집에서 거주하기를 원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이들은 거동이 불편해져도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했다. 살던 집에서 노후를 보내고, 그간 맺어 온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서 정서적 안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지역사회’에 주목한다. 서울연구원의 도시사회연구실 연구위원들은 책 ‘노인을 위한 동네-고령친화 지역사회 만들기’에서 고령화 시대에 적합한, ‘고령친화사회’의 열쇠가 노인의 일상생활이 이뤄지는 동네에 있다고 말한다. 지역사회 안에서 노후를 보내는 것이 노인에게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
그러나 저자들이 책에서 짚었듯, “하나의 정책만으로 오랜 시간 고성장 산업화에 맞춰 형성되어 온 우리 도시와 동네가 금세 노인도 행복한 삶터로 바뀔 수 없다.” 노인이 집을 떠나 요양시설에 입소하지 않고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삶의 직접적 공간이 되는 지역사회가 ‘노인이 살기 좋은 동네’로 재편돼야 한다는 것.
이에 미국, 독일, 영국 등 선진국은 취약계층인 고령층을 위해 어떤 지역사회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차례는 미국이다.
WHO 기준 맞춰 운용, 뉴욕‧포틀랜드 참고해야
세계보건기구(WHO)는 노인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대해 일찍이 관심을 표한 바 있다. WHO는 2006년부터 ‘고령친화도시’ 프로젝트를 시행해오고 있다. 지난 2006년부터 세계적 문제로 대두된 고령화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도시에서 거주하는 노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교통, 주거, 사회참여 등 8개 영역, 84개 세부항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에 부합하는 지역에 고령친화도시 인증을 부여한다. 지난해 말 기준 51개국, 1445개 도시가 가입해 상호 교류 중이며, 국내에는 서울 도봉구, 영등포구, 마포구, 전라북도 완주군 등 40개 지자체가 가입 완료된 상태다.
지난 2007년 ‘고령친화 뉴욕’ 정책을 발표한 뉴욕시는 2010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고령친화도시에 가입했다. 이에 걸맞게 뉴욕은 고령자에게 친절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정책들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고령친화 안전도로조성사업을 통해 버스정류장의 휴식시설을 늘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택시 바우처를 개발하는 식이다. 또한 고령자 커뮤니티 지원 사업을 통해, 고령자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고령친화지구’로 지정하고 교통 편의나 사회적 교류 활동 등을 지원한다.
포틀랜드의 사례도 눈여겨 봄직하다. 2006년 미국에서 최초로 WHO 글로벌 고령친화 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일한 도시로, 현재까지도 주택, 교통, 디자인 등 물리적 환경에 중점을 두고 보다 고령 친화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한 시 정책을 펴고 있다. 지역사회 내 50세 이상 중장년이 어린이를 가르치는 튜터링 자원봉사 프로그램 역시 성과를 내고 있다. 자원봉사에 참여한 중장년 튜터 97%가 학생의 학업 성취도에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 중 57%가 읽기 쓰기 능력이 향상되는 결과를 얻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주택 수리비 지원하고 대중교통 시설 정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국제사회보장리뷰’ 2022 가을호에 실린 ‘미국의 고령친화 지역사회 정책’ 연구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도 WHO의 기준에 근거해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 주택도시개발부는 노인이 거주하는 집 안의 위험 요소를 줄이고, 주택의 안전 및 기능을 향상함과 동시에 주택을 소유한 저소득층 노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연 3천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한다. 프로그램은 화장실의 미끄럼을 방지하고 단차를 제거하거나, 안전바‧손잡이를 설치하고, 보조의자나 가정용 리프트를 두는 식으로 진행된다.
집을 수리할 금액을 마련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위한 금전적인 지원도 있다. 농무부는 △거주지 중위소득 50% 미만이며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실거주자이고 △62세 이상 노인에게 보조금을 지급한다. 대출금 상환이 어려운 자는 최대 1만 달러, 대출 받을 자격이 인정된 노인은 대출금 4만 달러를 합쳐 최대 5만 달러를 지원받을 수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노인 대상 교통 지원 프로그램은 ‘미국노인법’(Older Americans Act)에 기초한다. 고령자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에 의한 노인 교통 지원 프로그램은 노인과 장애인의 이동성을 보장하기 위해 교통수단이 부족한 지역의 비영리기관에 예산을 지원한다. 예산은 교통수단의 유지‧보수, 휠체어 관련 장비 구매, 대중교통 운행 시간표와 같은 정보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의 분야에 쓰인다.
이러한 교통 지원 프로그램은 노인을 돌보는 가족 요양인도 이용할 수 있다. 미국노인법의 ‘가족 요양인지지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이외에도 가족 요양인에게 상담이나 자조모임, 요양자 훈련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은 60세 이상 노인이나 알츠하이머‧치매 환자를 돌보는 18세 이상의 가족 요양인 혹은 55세 이상의 친척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이 당연해진 사회, 인터넷 요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비대면 사회 교류를 돕는 곳도 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2021년 ‘EBB’(Emergency Broadband Benefit) 프로그램을 통해 저소득 노인에게 매달 최대 50달러의 인터넷 요금 할인을 제공했다. 프로그램의 자격 요건을 충족한 이용자들은 노트북이나 컴퓨터를 구매할 때 최대 100달러의 할인까지 받을 수 있다.
다양한 방면에서 고령자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미국이지만 한계는 있다. ‘미국의 고령친화 지역사회 정책’ 연구의 저자는 “동‧서부의 큰 도시에만 정책이 몰려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작 시골에 사는 노인들은 지원 프로그램이나 혜택에서 빗겨나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고령화를 대비해야 할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2023년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이하 노인 일자리) 참여자 모집이 시행됐다. 앞서 정부가 노인 일자리, 그중에서도 공공형 일자리를 축소한다고 밝혔던 바. 내년도 노인 일자리에 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노인 일자리의 변화와 그로 인해 미칠 영향에 대해 짚어봤다.
공공형 일자리 축소, 개선되나
지난 8월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노인 일자리 공급은 82만 2000개다. 올해 84만 5000개보다 2만 3000개 줄었다. 특히 공공형 일자리가 축소돼 노인 빈곤율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샀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2020년 기준)은 40.4%로 OECD 국가 중 1위다.
노인 일자리는 세 가지 유형 공공형, 민간형, 사회서비스형으로 나뉜다. 정부는 공공형 노인 일자리 수를 올해 60만 8000개에서 내년 54만 7000개로 6만 1000개 줄인다고 밝혔다. 대신 민간·사회서비스형 노인 일자리를 3만 8000개 늘리기로 했다.
공공형은 정부가 돈을 직접 지원해 직접 일자리라고도 불린다. 환경정비, 교통안전 보조 등 공익형 단순 업무가 대부분이다. 참여 노인은 월 최대 30시간 일하고 활동비 27만 원을 번다. 단순 노무에 적은 돈을 번다는 이유로 공공형은 ‘질 낮은 일자리’, ‘세금을 축내는 일자리’로 비판받아 왔다.
그러나 공공형 일자리는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수급자가 주 대상이다. 저소득층의 저학력 노인이 많이 참여한다. 이들에게 월 27만 원을 주지 않는다면 생계가 흔들린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공공형 일자리를 보충 연금의 성격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서비스형은 공공형과 하는 일은 비슷한데 돈은 두 배로 번다. 월 최대 60시간 근무하고 71만 원 정도를 벌 수 있다. 공공형 일자리와 차이점은 관련 경력이 있는 사람을 우선 선발한다는 점이다. 만약 스쿨존 교통정리, 급식 지원 등 학교 관련 일자리면 교육 업무를 한 사람을 우선 선발한다는 뜻이다.
민간형은 민간이 주관하고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형태다. 정부 예산이 기업을 통해 근로 노인에게 지원되며 급여도 많은 편이다.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를 위해 마련된 일자리다. 카페를 포함한 식품 제조·판매, 택배 배달, 세탁소·편의점 운영 등의 일을 한다.
결과적으로 사회서비스형과 민간형은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의 저학력 노인이 참여하기 어렵다. 때문에 공공형 일자리가 축소되면 노인 빈곤율이 심화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노인 일자리가 축소된 것이 아니라는 견해다. 고용노동부가 지원하는 고령자 고용장려금 일자리까지 고려하면 2만 9000개가 늘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노인 일자리 예산도 올해 1조 4584억 원에서 720억 원이 늘어난 1조 5304억 원으로 편성됐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에 대한 개선의 여지 또한 남아 있다. 공공형 일자리 축소에 반발이 거세자 정부는 결국 입장을 바꿨다. 지난 11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경호 부총리는 “현장에서 연로하신 분들이 단순 일자리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면서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노인 빈곤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기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공공형 노인 일자리 예산이 얼마나 늘어날지 촉각이 모인다. 정부가 줄인 6만 1000개의 일자리가 원상 복구되는 선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간·사회서비스형 확대의 명암
지난 5일부터 2023년 노인 일자리 참여자 모집이 실시됐다. 모집 공고를 보면 공공형 일자리는 확실히 줄어들었고, 정부의 입장과 방향이 보인다. 내년에 노인 일자리는 공공형 54만 7000개, 사회서비스형 8만 5000개, 민간형 19만 개 등 총 82만 2000개다. 고령자 고용장려금 대상 일자리는 올해 9000개에서 6만 1000개로 5만 2000개 늘어난다. 결국 내년 노인 일자리는 민간 연계형을 중심으로 확대 재편되는 것이다.
증가 폭이 두드러지는 고령자 고용장려금은 올해 신설된 사업이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노인을 채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골자다. 과거 3년보다 노인을 많이 고용하거나 퇴직 연령대 고령자에 대한 채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지급한다. 노인 고용 창출 효과가 있다.
보건복지부 최종균 인구정책실장은 “2023년 노인일자리사업 추진 방향은 직업 경험이 풍부하고 건강한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민간 및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를 지원하고, 저소득·고연령 어르신들에게는 공익활동형 일자리를 계속 제공하여 생계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공형 일자리는 돌봄·안전 등을 중심으로 전환하여 공익적 가치를 제고할 수 있도록 했다고도 밝혔다.
각 지자체의 노인 일자리 모집 공고를 봐도 민간 및 사회서비스형이 확대되고 있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를 보면, 총 266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일자리 6만 9900개를 마련했다. 서울시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년층 진입 양상을 반영해 사회 경험과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형 일자리 2000여 개를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시장형 일자리도 올해보다 1200개 늘어난 6049개가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공공형 일자리는 현재 5만 3249개의 일자리가 마련됐다. 서울시는 “향후 정부 예산안과 서울시 예산안 심의 결과에 따라 늘어날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다른 지자체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올해는 모집 인원이 줄어들었지만 정부의 예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 전북 남원시는 자체 예산을 투입해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는 자체 예산 2억 5000여 만 원을 투입했다. 이에 따라 남원 지역 공공형 노인 일자리는 내년에 248개가 줄 전망이었으나, 올해와 비슷한 연간 3900여 개가 제공된다.
정부의 정책에 대한 노인 단체의 입장은 어떨까. 노동조합 노년유니온의 고현종 사무총장은 “공공형 노인 일자리 예산이 늘어날 수 있다고 하지만, 현재 나온 모집 공고를 보면 공공형 노인 일자리가 줄어든 게 확실히 느껴진다. 지금 ‘나 이제 일 못 하는 거 아냐?’라면서 걱정하는 어르신들도 많다”고 말했다.
고 사무총장은 “정부의 목표는 정부의 재정이 투입되지 않아도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공공형뿐만 아니라 모든 노인 일자리에 정부의 재정이 들어간다”면서 “민간형 사업도 정부의 재정을 당장 중단하면 문을 닫는다. 존속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고현종 사무총장은 공공형 일자리가 늘어나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고 사무총장은 “사회서비스형 한 자리 재정으로 공공형 일자리는 세 자리를 만들 수 있다. 또한 현재도 같은 세대 안에서 불평등이 심한데,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해 사회 서비스형과 민간형을 늘린다면 빈부 격차만 더 커지게 된다.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라도 공공형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고현종 사무총장은 “정부가 노인 일자리 사업을 한 지 20년이 되어 간다. 이제 새롭게 비전을 정리해야 할 때다. 첫 번째, 노인 일자리는 보충연금 형태로 가야 한다. 두 번째, 나이로 구분해서 일자리도 분명히 노선을 정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고 사무총장은 “현재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는 노인은 70대가 많은데 정부는 베이비부머를 타겟으로 잡으려고 하니깐 혼재되는 것이다. 노인이 되기 전 50대부터 64세까지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 베이비부머를 위한 일자리 등, 나이로 구분 짓는 정리가 필요하다”라면서 노인 일자리 정책 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