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사람이 난다는 말도 있다. 책과 함께하는 습관은 남달라 보이기도 하고, 한 권의 책이 사람들의 인생을 우지 좌지 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젊은이들이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책을 본다. 예전처럼 독서실이나 도서관이 아니다. 음악이 살아있고 비싼 커피와 분위기가 있어야 더 머릿속에 잘 들어가는 모양이다. 하기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스타벅스나 카페 빈 같은 카페에는 누구나 노트북을 지니고 홈 워크(숙제)를 하거나 책을 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널려진 책들의 현주소
어느 집이나 책들과의 전쟁이다. 이사할 때마다 소동이 벌어진다. 어느 것을 버려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부부싸움이 나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 박스 속으로 다소곳이 들어간다. 당연히 책이 들어간 박스가 가장 무겁다. 책에 대한 넘치는 욕심이었지만 결코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위안을 갖기도 한다.
필자에게도 아이들이 자라가면서 한 권 두 권 쌓이는 책들이 수없이 짐이 되어갔다. 사전에서부터 학습서, 각종의 어학 책, 문학 책들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종류의 다양한 책들이 여기저기 공간을 차지했다. 물론 서재 방을 만들어 한 곳으로 몰아 놓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필자는 사방이 책으로 가득한 서재와, 음악과 커다란 스크린이 함께하는 감상실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 책은 늘 영혼을 풍성하게 해주니 가난이 무섭지 않았고, 음악은 듣고 있으면 마음을 치유해주니 더 없는 삶의 약이었다. 또 하나, 그 안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소중한 바람이었다.
이사를 다니고 결국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그동안 간직해온 수많은 책들을 시댁에 맡기고 떠났다. 거기에는 고급 오디오 세트와 그 옛날의 레코드 원판, 엘피 판 그리고 백판 등 몇 트렁크를 고이 모셔놓았다. 필자의 남편도 음악에는 조회가 깊어 취미가 같았고, 집에만 들어오면 음악을 틀어 감상하는 것이 생활의 시작이며 공동의 관심사였다.
*북 카페로 변신을
오랜 세월 후 고국으로 돌아와보니 모든 것들이 온데간데없어진 것이다. 필자가 직접 관리를 못했으니 어디 하소연을 할 데도 없다. 미국에서도 이삿짐을 싸면서 미국에서 사온 오디오 세트와 가장 먼저 귀한 책들을 챙겨왔다. 지금은 나름대로 간직한 책들과 구형 오디오, 흘러간 메모리 음악이 담긴 CD들이 필자의 소중한 재산이다.
아이들이 남겨놓은 책들과 필자의 책들이 정신없이 널려져 있다. 거실의 한쪽에 다행히도 공간이 있었다. 필자는 오디오가 자리 잡고 있는 거실 옆으로 빈 공간에 책방을 만들었다. 음악과 책과 그림이 어우러지는 카페를 만들기로 했다. 언제라도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이름하여 멋진 북 카페를 만드는 것이다.
집 꾸미기를 좋아하는 필자는 남편과 함께 한쪽 벽면에 선반을 직접 만들었다. 그리고 장르별로 책들을 분리하며 정리를 했다. 예를 들면 여행에 관한 책들은 한 곳으로 몰아놓아 언제라도 꺼내어 볼 수 있는 간편함이 있도록 했다. 그 옆에는 여행을 하면서 수집해온 소품으로 군데군데 디스플레이를 해놓았다.
창가에는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편안하게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도록 넓은 소파도 마련해놓았다. 영락없는 카페가 되었다. 언제든지 책과 함께하는 분위기가 넘치는 북 카페가 만들어졌다. 이제 모든 것들은 분위기가 좌우하는 세상이고, 무엇보다 책을 읽고 싶은 충동적 분위기가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하면, 그곳이 가장 먼저 발길을 유혹하는 열린 공간이 되었다. 꾸며 놓은 책들과 소품들이 마치 훌륭한 카페 같다며, 이 책 저 책에도 관심을 보이면서 모두가 최고라고 했다.
분위기가 흐르는 필자의 북 카페에서는 오늘도 은은한 음악과 함께 마음의 글을 써 내려간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이 있다. 화려하게 화장을 하고 외출하는 날은 하루가 당당하다. 그러나 자신만의 개성과 멋을 외면하고 유행만 따라 치장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가 될 수도 있다.
◇미용 법을 배우다.*
물론 미용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부인하지 않는다. 대학 시절부터 튄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유행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조금만 소박하게 연출을 해도 눈에 띄는 모양이었다. 필자는 옷을 절대로 아무렇게나 입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색상과 자신에게 어울리는 조화로움을 그 우선으로 한다. 길거리나 혹은 백화점에 나가 눈에 띄는 옷이 있으면 그때마다 가급적 저렴한 것으로 구입을 한다. 단지 때와 장소에 따라 코디만 잘하면 멋지게 연출이 된다.
어쩌면 타고난 피부를 갖고 있는 것도 필자에게는 큰 행운이다. 예전에는 피부 좋은 여자로 불리기도 했다. 덕분에 우연히 미용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오랜 시간에 걸쳐 거금을 들여 전 미용법을 배우기도 했다. 수년 동안 피부미용 학원도 경영을 했다. 주위의 추천으로 시작된 모험이기도 했다. 더구나 틈새시장을 이용해 피부 보건학을 다시 공부했고, 피부미용 전임교수까지 지내왔다.
요즈음은 남자들도 화장을 하는 시대이다. 화장을 하면 모습이 훨씬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얼굴에 변화를 주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을 꾸미기 위한 첫 단계인 피부 관리와 화장법은 개성에 따라 자신을 과감하게 표출해주고 멋지게 만들어 준다.
◇액세서리의 이용
필자는 젊어서부터 머리에 숱이 없어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러나 색깔과 디자인을 자신에 맞게 보는 감각이 있었기에 멋지게 활용하는 액세서리의 이용을 최대한 좋아했다. 여러 가지 스카프를 사용하여 분위기를 맞추거나 귀걸이 목걸이 등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화려하게 연출하기를 좋아한다.
필자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은 여러 가지 형태의 멋진 모자들이다. 계절에 맞는 모자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필자에게 모자가 잘 어울린다며 멋을 부리기 위해 일부러 쓴 줄로 알기도 한다. 모자의 첫 번째 장점은 머리를 만지는 시간이 많이 단축되는 것이다.
필자는 머리가 숱이 적고 가늘어 모양을 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머리에 에센스를 바르고 대강 하나로 묶어놓고, 모자를 하나 집어 푹 쓰면 그야말로 딴 사람이 된다. 때로는 멋진 모델이 된듯한 착각도 일으켜 기분이 좋아진다. 젊은 시절에는 그 모습에 반해 뭇 남자들에게 시선을 받은 적도 더러 있었다. 남자들은 대체로 멋지고 화려해 보이는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구두와 핸드백으로 마무리를*
발은 신체의 건강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외출을 하면서 발이 불편하면 쉽사리 피곤해져 만사가 귀찮아진다. 구두는 제값을 주고 가급적 좋은 것으로 택한다. 필자는 색깔과 옷에 따라 신중하게 구두를 연출한다. 예전 같으면 색색으로 수많은 구두가 있었지만 지금은 몇 개의 색깔 계열로 나뉘어 있다. 어느 정도 옷과 어울리는 것으로 디자인과 색을 고려해 선택을 하면 그럴듯한 패션이 완성된다.
핸드백 또한 신경을 써서 구입을 한다. 모든 패션의 완성은 구두와 백이라는 말이 있다. 옷은 그야말로 3년이 수명이라면 구두와 백은 아주 오랫동안 소장이 가능하다. 외국에서는 대를 물리기도한다. 그러므로 가급적이면 질 좋은 것으로 소장을 한다. 물론 손톱과 발톱. 네일에도 세심한 신경을 쓴다. 다만, 업소에서의 가격이 만만치 않아, 홈쇼핑에서 구입을 해, 집에서 직접 자신이 손질을 한다.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멀고 먼, 자신을 꾸미고 가꾸는 일은 부지런해야만 가능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필자도 머리가 희끗희끗하며 몸 무거운 시니어가 되었다. 높다란 뾰족구두보다는 건강을 생각해야 하는 납작 구두가 타이틀에 어울린다. 이제는 화려하기 보다는 중후하고 우아하다는 인사가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이 되었다. 가장 멋진 것은 내면, 마음속이 아름다운 모습이다.
대한민국은 급성장했다. 바야흐로 선진국 대열에 우뚝 서섰다. 가장 하찮게 여기던 화장실 문화가 세계 1위 급이다. 그러나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주축 대가 흔들리는 기둥에 이상한 지붕을 얹힌 듯한 불균형이 보인다. 국민 국고가 낭비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돌아온 고국은 엄청 많이 변해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화려하게 단장하고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고급스러운 화장실의 모습이다. 20여 년 전, 지방의 한 정치인으로부터 시작된 깨끗하고 아름다운 화장실 가꾸기가 전국으로 파생되었다. 예전에는 뒷방 문화로 하찮게 여기고 뒤쪽에 위치하여 뒷간으로 불리던 것이 새롭게 탄생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 뒷간이란 사람들의 배설물 처리장으로 냄새가 많이 나고 지저분한 곳이라 사람 사는 생활공간과는 격리되어있었다. 요즈음의 화장실은 용변뿐만 아니라 깨끗하게 손을 씻고 화장하는 다양한 기능으로 어느덧 한나라의 문화 수준 평가의 잣대로 인식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각지방 자체 별로 막대한 국고 거금을 경쟁적으로 고급 화장실 만들기에 쏟아붓는 느낌이 들었다.
필자는 지난겨울, 동네마다 잘 꾸며진 둘레 길을 따라 걷다가 예쁘게 지어진 작은 건물로 들어갔다. 달라진 공중화장실의 변모 사실에 깜짝 놀랐다. 추운 겨울날, 빵빵하게 데워진 화장실이 필자를 반기니 더없이 흐뭇했다. 아기자기하게 가꾸어진 화장실 안 벽면은 편 백 나무로 곱게 단장이 되어있어, 볼일을 보면서도 이리저리 눈이 휘 동그래졌다. 더구나 일반 가정집에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고급 비대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양평 세미 원을 가는 길목에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피아노 화장실이라는 곳이 있었다. 필자는 엊그제 두물머리로 향하던 중에 호기심으로 그곳에 잠깐 들렀다. 하수처리장이라고 쓰여있는 입구에서 주차를 했다. 내리는 순간부터 이상한 오물 썩는 냄새가 풍겨왔다.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으나 잘 정돈된 환경에는 실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조용히 흐르는 계곡물 위로 정수 처리를 이용해 만들어낸 인공적 폭포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여름의 찌는 더위를 한방에 날려주었다. 그 광경에 시선을 멈추었으나 물살과 함께 퍼져오는 하수구 냄새는 기분을 망가트렸다. 하수처리장 위에도 그랜드피아노의 외형으로 멋진 화장실을 연출했다. 건물 꼭대기 옥상 위로는 그랜드 피아노 뚜껑을 열어 상징적인 지붕을 만들어 냈다.
처리장 건물 앞, 작은 건물에도 피아노 의자 형태가 그대로 만들어져 있다. 기가 막힌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호기심도 많고 볼일도 있기에 2층 화장실로 오르려니 계단에 건반이 놓여있다. 층계를 밟는 순간 한음이 흐른다. 올라가는 대로 피아노 건반처럼 리듬 소리를 내는 것이다.
밟을수록 신나는 음악이 되어 크게 울려 퍼졌다. 한순간에 쾌쾌한 냄새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아담하고 예쁘게 가꿔진 식물 화단이 보인다. 잠시 쉬어가는 벤치와 아가들 수유하는 곳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어딘가 구조가 어색해 보인다. 잘 꾸며진 고급스러운 세면대에서 손만 대충 닦고는 그냥 내려왔다. 어쨌든 화장실이라 오래 머무르기가 찜찜했다.
화장실이란 더럽고 부정한 것 같은 냄새로 일단은 청결 상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묘한 냄새가 나는 듯해 서둘러 내려오는데 잘 가라고 또 인사를 한다. 계단 층계가 건반이 되어 밟는 대로 음계 소리를 내며 손을 흔들었다. 위대한 창조의 힘, 사람의 작은 아이디어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커다란 힐 링을 주었다.
그러나 바람이 부는 대로 시궁창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놀라운 발상에 잠시 스쳐가는 곳이었다. 더러운 냄새로 버려진 곳을 사람 발길을 이끌며 멋지게 피아노가 있는 풍경으로 그려낸 것은 실로 감탄할 만 했다.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 화장실 문화는 매우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구석구석 손대야 할 곳이 너무나 많은데 특별히 화장실에 낭비가 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 개개인에게 어쩌면 필요한지도 모르지만 과연, 외출해서 그것도 공중화장실이라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대를 쓰는지는 의심스럽다. 그 비싼 금액은 도대체 어디서 충당이 되는지라는 의문점도 생긴다. 결국은 국민들의 피땀 어린 세금 창고가 이리저리 세어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은 이리저리 몸살을 앓고 있다. 지 자체마다 독립적 행정으로 저마다 지역의 발전을 과시하는 난 개발이 우후죽순 벌떼를 쑤셔 놓은듯하다. 여기저기 공사판에 난장판은 주야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통행은 물론 차선도 가로막는다. 그나마 잘 꾸며진 둘레 길로 향하는 길가에도 미세먼지가 남발하고, 사람들 얼굴에는 온통 가면을 쓰고 거리를 활보한다.
가장 선진국인 미국에도 화장실은 깨끗하고 청결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족하다. 거금을 들여 멋지게 꾸미기보다는 철저한 관리가 더 중요하다. 한국은 시간이 걸려 사용되는 비대가 줄 서서 기다리는 공중 화장실에 거의 설치되어있다. 마치 허술한 집에 화려하게만 꾸며진 화장실의 겉치레를 연상케 한다. 물론 서로가 앞다투어 먼저 이루어낸 아름다운 화장실 문화가 나쁘지만은 않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미흡한 것들과 잘 어우러져, 보다 멋지고 훌륭한 나라, 기둥이 튼튼한 나라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언젠가 멋진 ‘피아노 화장실’ 소리가 더욱 아름답게 들려올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이민 가방을 챙겼다. 큰딸이 학교에 휴학계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필자를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었나 보다. 아이는 엄마가 하루라도 빨리 동생과 아빠 곁인 미국으로 가기를 원했고, 카이스트가 어떻게 들어간 학교인데 필자의 허락도 없이 일을 저질렀다. 드디어 왔다 갔다 이산가족 생활 3년 만에 한국의 모든 생활들을 말끔히 정리했다. 물론 큰딸은 여전히 한국에 돌아와 남은 학기를 마쳐야 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되어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13시간의 지루한 비행시간이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방학이 끝나면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 오히려 마음은 편안했다. 비행기 조그만 창문 아래로 두둥실 떠 있는 구름들이 어디론가 희망의 솜사탕 날개를 펴고 있는 것 같았다. 필자의 부푼 마음도 그 구름을 타고 조금씩 설레 이기 시작했다. 이제 또 새롭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 내딛는 발걸음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막연한 환상이었다. 나름대로 각오는 했지만 그저 무덤덤하게 몸에 와 닿지는 않았다. 작은 아이와 남편은 미리 나와서 흥분된 모습으로 진한 포옹을 해주었다. 불과 6개월 만의 만남이었지만 작은 아이의 얼굴에는 엄마와 다시는 떨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환희의 미소가 안정감을 말해주고 있었다.
제일 먼저 식구가 늘었으니 살 집부터 구했다. 같은 동네 씨미벨리에 거금 1250달러 월세인 투 베드 룸을 얻었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풍의 카펫이 깔린 아담한 아파트에 미국적 정서가 배어있는 화이어 플레이스(벽난로)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꾸미기를 좋아하는 필자는 시차 적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 분위기 넘치고 아늑한 집으로 꾸며나갔다. 베란다 밖으로는 평화롭고 예쁜 동네가 나무도 제법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마치 영화 속의 전원도시 같았다.
새 식구가 된 큰딸과 필자는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흥분과 함께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동네 여기저기에서 자동으로 돌아가는 스프링클러가 신선한 삶의 충격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때에 맞춰 조용히 잔디밭 위로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물먹은 파란 잔디가 고개를 살포시 들어 생동하는 생명의 꽃향기로 필자를 환영해 주는듯했다.
오후쯤 되어 큰딸과 함께 남편이 있는 곳으로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 언제나 남편은 아이보다 먼저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작은 아이를 기다렸었다. 그 이유는 빈집에 아이 혼자 들어오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우선 챙겨온 국제 운전면허증으로 제법 용감하게 남편을 픽업하기 위해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캘리포니아의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바람이 행복을 마구 실어다 주는 듯했다. 그때는 방문객도 임시 운전면허증으로 운전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 기쁜 감동도 지나치면 탈이라고 이게 웬일인가 일이 터졌다. 갑자기 머리 뒤로 삐웅삐웅 대며 뱅글뱅글 돌아가는 경찰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뒤쫓아 오고 있었다.
아뿔싸! 정신이 몽롱해지고 앞이 캄캄해졌다. 큰일 났구나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스쳐가며 하얗게 몸이 오그라졌다. 미국은 한번 걸렸다 하면 몇 백 달러는 기본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기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길가로 차를 정지 시켰다. 키가 커다랗고 번쩍번쩍 장식을 단 우람하고 건장한 백인 경찰 한 명이 옆으로 다가왔다. 당황한 필자가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 순간 큰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있으라고 했다. 겁에 질려 꼼짝없이 운전석 차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앉아 두들기는 유리 창문을 밑으로 내렸다.
경관은 운전면허증을 요구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손이 어찌나 벌벌 떨리는지 큰딸이 옆에서 도와주었다. 다음으로 보험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꼼짝 말라는 것 외에는 한국과 똑같았다. 경관은 어디를 가는 중이냐고 했고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필자가 스톱 사인에 무조건 정차하지 않아 위법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특히 동네 길가뿐만 아니라 길바닥에 스톱 사인이 군데군데 있어서 속도를 높이 낼 수 없도록 되어있었다. 긴장한 탓인지 영어가 잘 들리지도 않았지만 무어라 답변을 해야했기에.더듬거리는 영어로 답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WHAT? WHAT?”하더니 무슨 말인지 영 알아듣지를 못하고 티켓을 끊어야만 한다고 했다.
그때, 갑자기 딸아이가 울기를 시작했다. 갑자기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는 더 큰소리로 엉엉 울어대는 것이었다. 필자도 깜짝 놀랐다. 아이는 지금 배가 몹시 아프다고 배를 움켜잡았고, 미국에 처음 와서 지리도 잘 모르고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경관이 이리저리 머리를 돌려가며 특유의 제스처를 쓰면서 당황하는 눈빛이었다. 그때다 싶어 필자도 합세를 해서 도와 달라고 온몸으로 사정을 했다. 여행객이라 돈도 없다며 불쌍한 척 애원을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경관은 여전히 갸우뚱거리더니 갑자기 얼굴빛이 달라지면서 아주 부드럽게 말을 돌리기 시작했다.
오히려 왜 그러느냐면서 그만 진정하라고 다독거렸다. 경관은 단순히 필자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애써서 친절을 베풀어 이것저것 설명과 함께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는 유유히 사라져갔다. 가난한 첫 이민 살림에 몇 백 달러가 순간에 눈앞에서 날아갈 뻔했다.
그뿐이랴 보험료 할증과 더불어 교통위반 교육까지 미국은 장난이 아니었다. 필자와 큰딸은 잠시 큰 숨을 고른 후에 박장 대소를 하며 손뼉을 쳐댔다. 어찌나 큰딸이 연기를 잘했던지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었지만 일단은 대단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시동을 걸고 두리번 거려 스톱 사인을 주시하면서 조심조심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열려 있는 차창 문을 타고 맑고 깨끗한 5월의 타국 땅 바람이 머리를 신나게 날려주었다. 무시무시한 미국 경찰관과 대면한 한판 승부였고, 어쩌면 비겁한 수단이었지만 무섭고 떨려왔던 한 건을 요행하게도 잘 해결했다. 그것은 남의 나라, 낯 선 땅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세찬 소나기였다.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달려가는 10번 프리웨이(고속도로)에는 'LA의 파란 하늘'이 새롭게 시작하는 삶위로 푸른 희망을 쏟아붓고 있었다.
며느리는 아기를 맞이하는 첫 작업으로 아기 방을 꾸몄다. 첫 아기가 성별이 중요하지 않았겠지만 아기를 모실 방을 꾸미기 위하여 성별을 알아야만 했다. 탄생 전의 아기 성별이야 식은 죽 먹기 의술이다. 아기궁의 주인은 왕자였고 아기방은 은은한 푸른색의 세상이 되었다. 천장에는 하늘의 별이 반짝인다. 요람의 모서리에는 늠름한 장군의 천리마가 아기를 호위할 모양이다.
아기 방은 화려하다 하지만 태어날 아기는 낯선 보모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 ‘풍요한 물질의 환영’은 있지만 세상과의 첫 만남은 시간당 노동을 계산한 보모의 손에 맡겨져야만 한다. 피뿐인 송편이 아닌가. 손자 키워주겠다고 선심 쓰지 말라는 주위 사람들의 충고를 뭉개버리고 아기를 키우기로 했다.
좀 늦은 듯한 산모의 나이라 친구들로부터 물려받은 아기 가구, 장난감 옷 그리고 물려받은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젊은 엄마가 사들인 아기용품이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집안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유치원 하나를 세워도 부족하지 않은 아이 물품이라 필자는 절대 물건으로 손자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리라 미리 결심했다. 아이와 함께 행복하려고 필자가 동심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지루해하지 않고 즐기는 놀이를 늘 생각했다. 배터리 장착하여 가볍게 터치만 하면 노래하고, 돌아가고, 달리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뒤로했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놀이만을 고집했다. 아들 세대에서도 밀려버린 필자 어린 시절에 하였던 비가공의 놀이를 했다. 술래잡기, 땅 뺏기, 헌 신문 조각내기, 구슬치기, 딱지놀이 모래성 쌓기, 의자 이어 전차 놀이, 나뭇가지 멀리 던지기, 장님놀이, 다섯 알 가지고 노는 공기놀이를 했다. 아이가 자란 후에는 설날의 민속놀이, 제기차기, 윷놀이도 했다.
부모가 아이에게 배려하는 플레이 데이(play day)는 아이가 다른 아이 집에 가서 놀기도 하고 다른 집의 아이가 우리 집에 와서 놀기도 하는 날이다. 플레이 데이로 우리 집에 온 아이들과도 손자와 하였던 놀이를 했다. 인종이 다른 아이들도 많이 즐겼다. 신선하고 인간 냄새나는 놀이가 테크닉을 주제로 한 놀이보다 아이들의 동심에는 더 잘 어울린 것 같다.
손자가 유치원에 다니고부터 학교가 파한 후 학교 운동장에서 놀이할 때면 손자반 아이들과 함께 부러진 나뭇가지 모아 높이 쌓기 경쟁을 하기도 했다. 이런 놀이로 정이 들어 여러 인종의 아이들이건만 필자를 부를 때는 손자가 부르는 “올치 할머니”라 정확한 발음으로 부른다.
미국 학교에서는 반의 학부모 중에서 반 전체의 아이들에게 엄마 역할을 하는 사람을 클래스 맘으로 정하여 한 해 동안 담임교사를 보조하게 한다. 그런데 하루는 손자의 클래스 맘이 필자가 운동장에 크게 사각형의 그림을 그리고 네 모서리를 한 사람씩 차지하여 작은 조약돌을 엄지와 검지로 튕겨 땅뺏기 하는 모양을 보더니 “너 클래스 그랜마다”란다. 처음 이 놀이를 할 때 흙에는 세균이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엄마가 저개발형 놀이라 비웃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야만인들이나 하는 게임을 한다고 손자를 따돌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컸다. 예상외로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학부모도 얼굴 찡그리지 않아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세 해가 후딱 흘렀다. 지난 2월 손자를 데리려 학교엘 갔다. 공기의 드나듦도 관리하겠다는 묵직하고 문틀에 꽉 끼였던 교문이 열렸다. 백인 아이, 남미 아이, 중국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면서 필자를 보더니 ‘웰컴 올치 할머니’를 합창한다. 픽업 나온 보호자들도 필자 손을 툭툭 치고 지나갔다. 이 정도면 명예 클래스 그랜마였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