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는 아기를 맞이하는 첫 작업으로 아기 방을 꾸몄다. 첫 아기가 성별이 중요하지 않았겠지만 아기를 모실 방을 꾸미기 위하여 성별을 알아야만 했다. 탄생 전의 아기 성별이야 식은 죽 먹기 의술이다. 아기궁의 주인은 왕자였고 아기방은 은은한 푸른색의 세상이 되었다. 천장에는 하늘의 별이 반짝인다. 요람의 모서리에는 늠름한 장군의 천리마가 아기를 호위할 모양이다.
아기 방은 화려하다 하지만 태어날 아기는 낯선 보모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 ‘풍요한 물질의 환영’은 있지만 세상과의 첫 만남은 시간당 노동을 계산한 보모의 손에 맡겨져야만 한다. 피뿐인 송편이 아닌가. 손자 키워주겠다고 선심 쓰지 말라는 주위 사람들의 충고를 뭉개버리고 아기를 키우기로 했다.
좀 늦은 듯한 산모의 나이라 친구들로부터 물려받은 아기 가구, 장난감 옷 그리고 물려받은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젊은 엄마가 사들인 아기용품이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집안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유치원 하나를 세워도 부족하지 않은 아이 물품이라 필자는 절대 물건으로 손자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리라 미리 결심했다. 아이와 함께 행복하려고 필자가 동심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지루해하지 않고 즐기는 놀이를 늘 생각했다. 배터리 장착하여 가볍게 터치만 하면 노래하고, 돌아가고, 달리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뒤로했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놀이만을 고집했다. 아들 세대에서도 밀려버린 필자 어린 시절에 하였던 비가공의 놀이를 했다. 술래잡기, 땅 뺏기, 헌 신문 조각내기, 구슬치기, 딱지놀이 모래성 쌓기, 의자 이어 전차 놀이, 나뭇가지 멀리 던지기, 장님놀이, 다섯 알 가지고 노는 공기놀이를 했다. 아이가 자란 후에는 설날의 민속놀이, 제기차기, 윷놀이도 했다.
부모가 아이에게 배려하는 플레이 데이(play day)는 아이가 다른 아이 집에 가서 놀기도 하고 다른 집의 아이가 우리 집에 와서 놀기도 하는 날이다. 플레이 데이로 우리 집에 온 아이들과도 손자와 하였던 놀이를 했다. 인종이 다른 아이들도 많이 즐겼다. 신선하고 인간 냄새나는 놀이가 테크닉을 주제로 한 놀이보다 아이들의 동심에는 더 잘 어울린 것 같다.
손자가 유치원에 다니고부터 학교가 파한 후 학교 운동장에서 놀이할 때면 손자반 아이들과 함께 부러진 나뭇가지 모아 높이 쌓기 경쟁을 하기도 했다. 이런 놀이로 정이 들어 여러 인종의 아이들이건만 필자를 부를 때는 손자가 부르는 “올치 할머니”라 정확한 발음으로 부른다.
미국 학교에서는 반의 학부모 중에서 반 전체의 아이들에게 엄마 역할을 하는 사람을 클래스 맘으로 정하여 한 해 동안 담임교사를 보조하게 한다. 그런데 하루는 손자의 클래스 맘이 필자가 운동장에 크게 사각형의 그림을 그리고 네 모서리를 한 사람씩 차지하여 작은 조약돌을 엄지와 검지로 튕겨 땅뺏기 하는 모양을 보더니 “너 클래스 그랜마다”란다. 처음 이 놀이를 할 때 흙에는 세균이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엄마가 저개발형 놀이라 비웃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야만인들이나 하는 게임을 한다고 손자를 따돌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컸다. 예상외로 아이들도 좋아하지만 학부모도 얼굴 찡그리지 않아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세 해가 후딱 흘렀다. 지난 2월 손자를 데리려 학교엘 갔다. 공기의 드나듦도 관리하겠다는 묵직하고 문틀에 꽉 끼였던 교문이 열렸다. 백인 아이, 남미 아이, 중국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면서 필자를 보더니 ‘웰컴 올치 할머니’를 합창한다. 픽업 나온 보호자들도 필자 손을 툭툭 치고 지나갔다. 이 정도면 명예 클래스 그랜마였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