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물러나면서 날씨가 선선해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부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면 온몸으로 가을을 느끼게 된다. 지루했던 장마 이후 맞는 상쾌한 가을의 정취가 반가워 자칫 소홀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환절기 건강이다. 변덕스런 날씨가 반복되는 가을 환절기를 슬기롭게 넘기기 위해서는 더욱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시니어들은 호흡기 질환을 조심해야 한다. 큰 일교차와 건조해진 환경으로 기관지 점막이 마르면 호흡기 기능이 악화되고 체내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 천식 등 각종 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 늦여름과 초가을 시기에 기침이나 가래, 콧물 등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자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환절기가 되면 으레 찾아오는 미세먼지나 황사도 문제다. 미세먼지와 황사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면 기침과 재채기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또 기관지를 자극하면 세균이 쉽게 침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는 혈관 내 염증 반응을 증가시켜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성도 크게 높인다.
결국 기관지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가을, 겨울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관지를 튼튼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염증 발생을 줄이며 피를 맑게 해주는 음식이 제격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는 도라지, 오미자, 미나리 등이 있다.
먼저 도라지는 한방에서 폐, 기관지 질환을 치료하는 약재로 널리 쓰일 정도로 폐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데 제격이다. 폐뿐만 아니라 기도를 편안히 해주고 외부 자극으로 인한 기침이나 가래가 생기는 것을 막아준다. 또한 미나리는 피를 맑게 해주고 열과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능이 있다. 폐, 기관지 등 호흡기의 열을 내려 촉촉하게 만들어줌으로써 증상을 완화하는 데도 좋다. 도라지와 미나리는 양념에 무쳐서 먹기도 하고 각종 요리의 재료로 쓰이는 등 활용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
요즘 제철을 맞은 오미자도 성질이 따뜻해 기침과 헐떡거림을 멈추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실제로 오미자 추출물을 동물에게 정맥 주사하면 기침을 억제하고 호흡을 촉진한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오미자는 대개 차로 마시는데, 500㎖ 물에 오미자 10~15g을 넣어 충분히 우러날 때까지 은근하게 달이면 된다.
잦은 기침과 재채기는 기관지를 손상시킬뿐더러 척추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기침과 재채기를 하면 복부의 압력이 상승하고 몸 앞과 뒤로 반동이 빠르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순간적으로 척추에 큰 부담을 주는데 허리가 약한 시니어의 경우 근육 수축과 인대 긴장으로 인해 허리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별것 아닌 듯 보여도 기침은 요통을 발생시키는 주 요인 중 하나다. 심하면 척추 뼈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는 추간판(디스크)이 제자리를 벗어나는 요추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기침과 재채기는 자연스러운 면역 반응인 만큼 참기가 어렵다. 억지로 참으면 오히려 복부의 압력이 더 크게 척추에 전달될 수 있다. 따라서 기침과 재채기를 막으려 애쓰기보다는 입을 크게 벌려 시원하게 하는 편이 낫다.
기침과 재채기를 할 때 척추를 보호하는 몇 가지 요령이 있다. 먼저 기침이나 재채기가 나올 때 배에 힘을 주고 무릎을 약간 굽혀주면 척추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앉은 상태에서 기침이나 재채기가 나올 경우에는 양손으로 무릎을 잡는 것이 좋다. 주변에 벽이나 가구 등 의지할 수 있는 사물이 있다면 손으로 단단히 짚어 목과 허리가 구부러지지 않게 한다.
특히 시니어의 경우 노화로 의한 골다공증이 많이 나타나는데, 골밀도가 낮은 골다공증 환자들은 기침이나 재채기만으로도 척추 뼈가 주저앉거나 찌그러지는 ‘척추압박골절’이 생길 수 있다. 척추압박골절은 등에도 심한 통증을 유발하므로 더욱 조심해야 한다.
한방에서는 면역력을 높이고 기침과 재채기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법을 시행한다. 대표적인 게 침과 뜸이다. 이 치료법은 기혈 순환 및 경혈 흐름을 촉진하고 체내 노폐물의 배출을 도와 면역력을 상승시킨다. 또 뼈와 신경 재생 및 강화를 촉진하고 기력 회복에 좋은 청파전, 연골보강환 등 한약을 복용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몸도 큰 변화를 맞이한다. 이에 잘 적응하려면 건강한 생활 습관을 통해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 하루 30분 이상 걷기, 맨손체조 등 꾸준히 운동을 해주는 것이 좋다. 하루에 6시간 이상 수면을 취해 피로를 풀어주는 것도 필수적이다.
그리스 신화에 젊은 영웅들이 배를 타고 세계의 동쪽 끝까지 가서 황금양털을 찾아오는 설화가 있다. 바로 ‘아르고호 이야기’다. 이아손 원정대는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황금양털을 찾는 모험을 한다. 마침내 그들이 도착한 곳은 흑해 연안에 접한 고대 조지아의 첫 번째 국가 ‘콜키스’(Kolkhis)였다. 그곳에서 원정대는 이아손에게 반한 ‘메데아’(Medea)의 도움을 받아 황금양털을 가지고 그리스로 돌아간다. 조지아가 신화의 땅으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다.
흑해의 진주 바투미의 핫 플레이스
흑해의 석양이 아름다운 고급 휴양도시 바투미는 조지아의 여름 수도라고 부를 만하다. 여름철이면 주변국에서 온 많은 사람이 휴가를 보낸 후 돌아간다. 그렇다 보니 현대식 건물과 유럽 양식의 건축물과 집들이 뒤섞여 있다. 관점에 따라 난개발로 볼 수도 있고, 신구(新舊)의 조화로 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조지아에서 가장 복잡한 거리이면서 현대화된 도시라는 점이다.
바투미는 ‘불러바드(Boulevard) 해변’과 유럽광장이 중심인 ‘구시가’로 나눠 둘러보는 게 좋다. 다양한 공원과 테마파크가 모여 있는 불러바드 해변에서 여름철에만 영업을 하는 ‘선셋 레스토랑’이 있다. 음식뿐 아니라 조지아의 화려한 전통 무용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불러바드 해변에서는 뮤직 페스티벌 등 크고 작은 축제가 매일 밤 열린다. 해변을 걸으며 이곳 분위기에 푹 빠져보는 시간만으로도 행복하다. 미학적 감동을 넘어 잠들어 있는 나를 깨워주는 해방의 공간에 온 듯한 자유가 느껴진다.
해변 옆 힐튼호텔 20층 ‘스카이라운지’는 전망을 즐길 수 있는 바투미의 숨겨진 명소다. 시시각각 다르게 물드는 바다와 하늘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수평선을 향해 기울어가는 붉은 태양을 배경으로 나뭇잎 떨어지듯 활강하는 패러글라이딩과 오렌지색 바다 위로 검은 물살을 남기며 가로지르는 배를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클라리넷의 선율이 감미롭게 들려온다. 흑해가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거대한 공간이 되는 시간이다.
무슬림을 상징하는 남자 ‘알리’와 조지아 정교회를 상징하는 여자 ‘니노’의 이야기를 담은 두 조형물 ‘알리&니노’는 저녁 7시가 되면 조금씩 움직이며 서로 아슬아슬하게 만나지만 키스도 못하고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며 다시 멀어진다. 안타깝고 가슴 저리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한 이 작품도 바투미를 상징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운 좋게도 행복한 기운이 느껴지는 마을에 들를 때가 있다. 바투미 구시가지가 그런 곳. 마치 동화 속 마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메데아 동상’이 있는 유럽광장을 중심으로 천문 시계탑, 황금빛 공연 예술극장, 황금 포세이돈 동상, 신화 속 마녀 사이렌의 조형물, 꽃 장식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들이 모여 “이곳이 신화의 땅“이라고 속삭인다. 기꺼이 길을 잃고 한 집 한 집 들어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다.
‘보르조미’ 광천수는 신의 선물
조지아 중부지방에 있는 보르조미 국립공원은 유럽 최대 규모의 공원이다. 침엽수와 활엽수의 광활한 원시림으로 이루어져 있어 몸에 좋은 피톤치드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조지아 사람들은 자녀가 천식을 앓으면 이곳에 데려와 요양을 시킨다. 뇌전증을 앓았던 차이콥스키도 이곳에서 치유하며 음악적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보르조미 시내에 그의 동상이 있다.
이 공원에서 조지아 3대 상품 중 하나인 ‘보르조미 생수’가 생산된다. 한국에서도 수입했던 보르조미 광천수는 자연 탄산 미네랄워터가 빙하로 덮여 있다가 여과되어 내려오는 물이다. 제정 러시아 시절 이곳에 주둔해 있던 러시아 군대 지휘관이 광천수를 마시고 위장병이 나은 후 휴양지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 후 러시아 왕족과 귀족들도 이 물을 들여와 마셨다고 한다. 1894년에는 광천수를 병에 담기 위한 공장까지 생겼다. “신은 아제르바이잔에게는 원유를, 조지아에게는 물을 선물했다”는 말이 있다. 1000년을 마셔도 마르지 않을 물이 보르조미에 있기 때문이다.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린 후 광천수를 마셔봤다. 쇳물 냄새에 짭조름한 맛이었다.
고즈넉하고 쓸쓸한 그리움의 도시 ‘쿠타이시’
조지아를 여행하다 보면 교회가 참 많이 보인다. AD 337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할 정도로 조지아 사람들의 삶에는 종교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교회도 많다. ‘쿠타이시’(Kutaisi)에 있는 ‘바그라티 대성당’(Bagrati Cathedral) 역시 의미 있는 교회 중 하나다. 조지아 역사상 최초의 통일 왕국을 이룩한 후 그 상징으로 지었다고 한다. 웅장한 규모와 녹색 지붕이 인상적인 이 성당은 조지아 건축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기원전부터 도시로 형성된 쿠타이시는 고대부터 조지아 역대 왕국의 수도였다. 현재도 교통, 행정의 중심도시 역할을 한다. 교회 앞마당에서 내려다본 쿠타이시의 해질녘 시가지는 지나온 굴곡의 시간을 대변하듯 고즈넉하면서도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물들어갔다.
조지아의 경찰은 1등 신랑감
조지아에서 유리로 만들어진 가장 멋진 건물은 무조건 경찰서로 보면 된다. 경찰서 건물이 이토록 환하고 밝고, 멋진 데는 이유가 있다.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후 집권한 ‘사카슈빌리’ 전 대통령은 경찰 개혁을 추진했다. 2004년 부패의 화신이었던 경찰 수장과 3만 명의 경찰을 일시에 해고한 뒤 새 경찰을 모집해 완벽한 물갈이를 했다. 뇌물을 받지 못하게 하려고 급여도 20배 이상 인상했다. 또 모든 경찰 활동을 밖에서 볼 수 있도록 건물을 투명한 유리로 만들었다. 당시의 개혁은 한계와 어두운 측면도 있었지만, 일선 경찰들은 크게 변했다. 이때부터 조지아에서 경찰은 1등 신랑감이 됐다.
요즘 조지아 청소년들은 ‘케이팝’(K-pop)에 열광하고 있다. 탈레비에서 있던 일이다. 일몰을 감상하기 위해 공원으로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세 명의 소녀가 “안녕하세요?” 하면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반갑고 신기해서 30여 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소녀들은 케이팝이 너무 좋아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고리’(Gori)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케이팝 때문에 전공을 아예 ‘동양 언어’로 선택하려 한다는 ‘타마르’(Tamar)도 우리를 반겨줬다. 한국인을 직접 만나 정말 기쁘다며 한국 드라마와 노래에 대한 꽤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준비한 김밥과 라면으로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그녀는 자신의 친구를 숙소로 불렀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기타를 치며 케이팝과 ‘술리코’(Suliko)를 비롯한 조지아 노래를 부르며 작은 콘서트를 열어줬다.
고리의 광장에서 만난 스탈린타마르를 만났던 ‘고리’는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고향이기도 하다. 시청 광장에 아직도 그의 동상이 있다. 사진과 유물을 모아놓은 박물관과 생가, 그가 사용했다는 전용열차를 전시해놓은 공원도 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역사의 패륜아라는 생각에 그곳을 둘러보는 동안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바람의 나라 아르메니아로 가는 길
바르지아에서 출발해 11번 도로를 타고 아르메니아 제2의 도시 ‘규므리’(Gyumri)로 향했다. 1번 도로를 이용할 것을 주로 추천하지만, 이동거리 때문에 11번 도로를 선택했다. 염려했던 것보다 도로 상태는 좋았다. 새롭게 포장된 구간도 많았다. 오히려 차량이 별로 없어 한갓지고 더 좋았다.
국경을 넘자 고원지대 특유의 초원이 펼쳐졌다. 초원의 풀밭을 쓸며 지나가는 바람의 출렁임이 보였다. 누런 벌판으로 여름날 오후의 햇볕이 쏟아졌다. 눈이 부셨다. 그대로 서서 두 눈을 감고 두 팔을 한껏 벌렸다. 바람이 담아 오는 오래된 전설을 듣고 싶었다. 부드러운 저음색의 목관악기 소리가 끊이지 않고 바람에 실려 왔다. 한이, 처연함이, 소망이 스며 있는 소리였다. 바람은 손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며 빠져나갔다. 노아의 이야기와 격조 높은 아르메니아의 문화와 검소한 신앙이 남아 있는 곳으로.
◇조지아 중서부 지역에서 꼭 가봐야 할 곳◇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의 ‘고대 동굴도시’
기원전 10세기경에 만들어진 고대 동굴도시다. 바위를 깎아 공동 집회장소, 궁전, 와인 저장고, 감옥 등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태양신을 섬기는 종교도시였는데 기독교인들이 이주해오면서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됐다. 11세기에는 실크로드의 거점으로 인구가 2만여 명까지 늘어날 정도로 커졌지만 13세기에 몽골 침입으로 폐허가 됐다.
아할치헤(Akhaltsikhe)의 ‘라바티’(Rabati) 성’
13세기에 세워진 도시다. 조지아어로 ‘새로운 요새’라는 의미를 지닌다.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할 때 구시가지에 있던 ‘라바티 성’은 폐허가 됐다. 2011년 복원을 시작해 새로 문을 열면서 조지아의 유명 관광지로 변신했다.
바르지아(Vardzia)의 ‘동굴도시’
쿠라 강변의 ‘에루쉐티’(Erusheti) 산비탈에 동굴을 파서 만든 도시다. 12세기에 몽골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짓기 시작해 타마르 여왕 때 완공됐다. 서쪽과 동쪽에 각각 6개의 수도원과 여왕 타마르의 방, 접견실, 회의실, 대장간 등 300여 개의 방과 25개의 와인 저장실로 이루어진 군사요새다. 한때는 5만 명을 수용할 만큼 큰 규모였다. 중세 때는 수도원으로 사용됐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환절기 면역력에 대한 중요성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면역력 향상에 좋은 비타민C부터 유산균, 홍삼 등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관심과 함께 태반제제의 의약품이 주목 받고 있다.
태반은 이미 수천년 전부터 한의학에서 ‘자하거’(紫河車)라고 불리며 여러 질환을 치료할 목적으로 널리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옛 의서에서 자하거는 무독하고 성질이 따뜻해 기운을 돋우고, 피를 보양하고, 정(精)을 보하는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동의보감’에서도 “기운과 영양이 부족해 몹시 야윈 것과, 허약하고 과로로 몸이 상한 것, 기미가 돋고 피부가 검게 되는 것을 치료한다“고 언급돼 있다.
이런 자하거의 장점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항병(抗病) 능력을 키워주는 ‘항상성(homeostasis) 유지 작용’이다. 자하거는 내분비 조절작용, 자율신경 조절작용, 면역 조절작용을 가지고 있어 내분비계, 자율신경계, 면역계의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시키고 있다.
둘째로는 질병과 노화의 중요한 원인이 되는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활성산소 제거작용’이다. 자하거는 항산화 비타민, 항산화 미네랄, 항산화 물질 등이 많이 함유돼 활성산소로부터 인체를 방어한다.
마지막 셋째로는 세포분열을 촉진시켜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병들거나 노화된 세포가 건강한 세포로 변하게 하는 ‘성장인자(growth factor) 작용’을 들 수 있다.
이렇듯 다방면으로 높은 효능을 가진 자하거는 알레르기성 질환(알레르기성 비염, 천식), 위장기능, 만성피로증후군, 남녀의 갱년기장애, 고혈압 등의 순환기질환과 통증질환(오십견, 요통), 피부나 모발(탈모) 등의 다양한 적응증에서 우수한 효과를 보인다. 환자와 병증에 따라 반응도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초래된 적이 거의 없다는 것도 자하거의 큰 장점이다.
대표적인 태반제제의 의약품 중 하나인 경남제약의 '자하생력'은 과학적 기술 공정의 도입을 통해 자하거(인태반) 원료의 과학화 및 규격화를 실현한 자하거엑스를 주성분으로 사용했다. 비타민 B군, 무수카페인 등 원재료의 효능을 조화시켜 피로 회복, 만성스트레스 개선, 체력 및 면역력을 강화시켜 주는 제품이다.
경남제약 관계자는 “자하생력은 원료 태반의 선별, 운반, 처리, 가공을 과학적으로 진행하고 원료에 대한 검증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현재 신약 원료를 관리하는 프로그램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DMF를 승인 받아 안정성을 확보한 제품”이라며 “소포장에서 대포장까지 다양한 규격의 선택이 가능하고 금박포장으로 패키지를 고급화해 선물용으로도 용이하다”고 말했다.
올해 나이 60세로 데뷔 47주년을 맞은 가수 이은하가 방송을 통해 최근 소식을 알렸다. 18일 방송된 KBS 1TV ‘아침마당’ 화요초대석에 출연한 이은하는 아버지의 빚을 떠안은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아버지가 당신 나름대로 사업을 하고, 온 식구가 다 살 수 있는 건물을 짓고 싶으셨던 것 같다”며 “하지만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계약서도 잘 모르고 모든 담보를 책임지다 보니 빚이 내 앞으로 왔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1997년도였는데 6억~7억 원 정도였다. 가장 힘들었던 것이 사채 이자였다”며 “하루 이자를 안 주면 ‘방송국에 폭로한다’, ‘얼굴을 어떻게 한다’는 협박을 받았다. 이자만 10배 정도 됐고, 지금은 70억 원을 모두 갚았다”고 밝혔다.
이은하는 그동안 겪어온 쿠싱증후군 증세가 많이 호전된 소식도 알렸다. 쿠싱 증후군은 천식, 관절염, 낭창 등의 질환 치료를 위해 코르티코스테로이드를 복용하거나,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이 과다 분비될 경우 발병할 수 있다.
과거 쿠싱증후군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고 던 그는 “디스크 협착이 됐는데 수술을 안 하고 버텼고, 갱년기도 오고 호르몬 밸런스도 깨지면서 통증과 부작용 등이 생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다 나았다고 볼 수 있다”며 “이젠 살과의 전쟁이 남았다. 지금은 건강해져서 주변에서 살 빼는 방법을 많이 알려준다”고 말했다. 비정상적으로 코르티솔 호르몬을 과다 분비하는 쿠싱증후군의 대표적인 증세가 체중 증가다.
미세먼지에 대한 이슈가 끊이지 않는 요즘 시니어와 기저질환자(호흡기질환, 심뇌혈관질환, 천식)의 건강에 각별한 신경 써야할 때이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이사장 장준영)은 미세먼지를 낮추는 국민의 생각을 정책을 비롯해 다양한 사업에 반영하기 위한 ‘미세먼지 저감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한다. 3월 19일부터 4월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공모전은 ‘당신의 생각(아이디어)이 미세먼지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듭니다’를 주제로 열린다.
일상생활, 과학기술 등과 접목해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는 창의적이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기대효과 등을 담아 공모제안서를 작성해야한다. 일반 의견이나 단순 건의사항, 기존 미세먼지 대책에서 추진 중인 사항, 타 공모전 수상작은 심사에서 제외된다. 미세먼지에 관심이 많은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선정된 우수작은 관련 사업 추진 시 적극 검토, 반영될 예정이다.
접수된 제안은 1단계로 누리집을 통해 일반에 공개하여 기존 미세먼지 대책 등과의 비슷한 점을 검토를 받게 되며된다. 이어서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2단계 심사를 진행한다. 심사 기준은 실현가능성, 효과성 및 지속성 등이다. ‘실현가능성‘에서는 실생활 적용이나 사업 가능성 여부, ‘효과성’에서는 아이디어를 통한 기대효과나 이익의 정도, ‘지속성’에서는 제안의 적용 가능기간 등을 살펴본다. 5월 중 대상을 포함한 총 6건의 우수 아이디어를 발표할 예정이며, 수상자에게는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상과 대상 100만 원 등의 상금을 준다. 한명당 하나의 아이디어만 신청이 가능하다. 한국환경공단 누리집(www.keco.or.kr)에서 공모양식을 내려 받아 이메일로 제출하면 된다.
최근 미세먼지 주의를 알리는 안전 안내 문자를 자주 받는다. 연일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을 예보하는 가운데, 노약자와 기저질환자(호흡기질환, 심뇌혈관질환, 천식)의 경우 건강보호에 더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미세먼지는 피부와 눈, 코, 인후 점막뿐만 아니라 호흡기와 혈관을 통해 인체 곳곳에 자극을 준다. 특히 폐렴, 폐암, 뇌졸중, 심장질환, 천식 등의 질병을 악화하고, 노년층의 경우 호흡기질환, 심혈관 질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질병관리본부가 제안하는 ‘미세먼지 대비 건강보호 수칙 5가지’는 다음과 같다.
주거지역의 미세먼지 예보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기
미세먼지 농도가 나쁠 시, 외출 자제하기
기저질환자의 경우, 기존 치료를 잘 유지하기
의사와 상의하여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식약처 인증) 착용하기
증상 악화 시 의사 진료받기
특히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를 착용했을 때 호흡곤란, 두통 등의 발생한다면 마스크를 즉시 벗고 의사와 상담 후 사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기저질환자의 경우 무엇보다 미세먼지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바깥 활동을 줄이고, 창문을 닫은 채 실내에서 지낼 것을 권한다. 아울러 다음 수칙을 건강관리에 참고하자.
# 호흡기질환자
꼭 외출을 해야 할 경우 COPD(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는 구제약물을 반드시 소지한다. 호흡곤란, 가래, 기침 등 증상이 악화되면 바로 병원으로 간다. 부적절한 마스크 착용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으니, 의사와 상의 후 알맞게 착용한다.
# 천식환자
외출 시에는 천식 증상 완화제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미세먼지가 높은 날이 지나도 한동안 그 영향이 지속되므로, 평소 하던 천식 치료를 더욱 철저하게 유지한다. 비염 등 동반질환이 있는 경우 미세먼지의 영향이 클 수 있으니 필요시 의사와 상담한다. 기침, 호흡곤란, 쌕쌕거림 등 천식 증상과 최대호기유속을 측정해 천식 수첩에 꼼꼼히 기록해둔다.
# 심혈관질환자
심장 및 뇌혈관 질환자는 장시간 힘든 육체활동을 줄인다. 기존 질환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되 실내에서는 공기청정기 등을 사용한다. 물을 적당히 마시는 것은 몸 밖으로 노폐물을 내보내는 효과가 있어 도움이 된다.
의학의 신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고 말했다. 음식은 몸이요, 마음이다(食卽身心). 음식을 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도 편안하며 각종 질병에서 해방된다. 좋은 음식은 에너지원 제공뿐만 아니라 영양소도 골고루, 충분히 함유해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면역력을 키워준다.
평소에 식습관을 제대로 들인 사람은 몸이 곧고 눈에선 광채가 나며 활력이 넘친다. 마음도 넉넉해 다른 이들에게도 친절한 눈길을 주는 편안한 사람이 된다. 좋은 음식은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준다. 또한 에너지원과 영양소들이 골고루 들어 있어 매일 섭취하면 신진대사가 활발해 활력이 충만하고 면역력이 높아져 대부분의 질병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다.
이러한 자연음식 중에서도 으뜸이 바로 자연의 미생물들을 이용해 만든 발효 음식이다. 특히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없고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물성 재료를 오랫동안 자연 발효시켜 만든 장류나 김치를 비롯한 한국의 발효 음식은 건강의 대명사로 음식 한류를 주도하고 있다.
이제는 이윤 추구를 위해 단기간에 값싼 재료로 만들어 영양소가 결여된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fast food)를 멀리하고 슬로푸드(slow food)인 우리 고유의 전통발효 식품들을 가까이해야 한다.
각종 질환, 음식이 문제다
그런데 요즘 건강한 발효 한식의 계승자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반대다. 활력이 없고 피곤에 지친 눈들이 많다. 사람에 대한 불신도 팽배해 안타깝다. 심지어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서로 외면하며 사는 게 보통이다. 외국인들 눈에 비친 한국 사회는 너무 경쟁적이다. 돈만 좇고 사는 머니좀비(money zombi) 사회라 표현되기도 한다. 누구든 이런 환경에서는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트레스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음식이다. 우리가 자주 먹는 가공식품은 미네랄 같은 필수 영양소가 부족한 텅 빈 음식이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밀물처럼 들어오기 시작한 패스트푸드점과 패밀리레스토랑 때문에 아이들은 김치나 된장국을 외면하고 동그랑땡 같은 가공식품이 밥상 위에 올라와야 숟가락을 들었다.
아이들이 패스트푸드를 먹기 시작하면서 인체 면역 시스템이 고장 나 아토피 피부염이 만연했다. 아토피 피부염은 100명 중 한두 명이 걸리고 돌이 되면 저절로 낳아 태열이라 불렸는데 요즘은 30~50%의 아이들이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고 그중 3분의 1은 평생 짊어지고 다닌다. 더구나 사철 미세먼지에 포위되면서 어른들까지 비염, 천식에 노출되고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들도 크게 증가했다.
최근엔 원룸에서 살면서 대학을 다니거나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불규칙적인 식생활을 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또 즉석조리 음식과 항생제 남용으로 장기가 염증질환에 노출돼 죽어가는 크론병도 이제는 희귀병이 아니라 흔한 병이 되었다. 이러한 질병은 면역력을 키워주는 파이토케미컬, 즉 식물성 미량 영양소들이 결여된 음식들 때문에 발생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 사회는 잘못된 음식 섭취로 질병 공화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건강에 좋은 우리 음식
그렇다면 어떤 음식이 좋은 걸까? 당연히 세포를 건강하게 만드는 음식이다. 세포는 신진대사가 원활하고 면역력이 높아져야 활발해진다. 신진대사가 원활하려면 미네랄, 비타민, 효소, 식이섬유, 항산화제 등이 풍부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이런 영양소가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이 바로 김치, 된장, 청국장 등 우리의 발효 음식이다. 영양이 풍부한 배추나 콩을 원료로 사용해 가공 과정에서도 미네랄, 식이섬유 등 영양가의 손실이 거의 없다.
또한 필수아미노산이나 각종 생리활성 펩타이드, 비타민 등이 미생물 작용으로 생성돼 영양가도 높다. 다양한 맛과 향기도 생성되어 풍미가 깊어지고 먹으면 속이 편해진다. 물론 김치나 청국장처럼 처음엔 냄새가 고약한 음식도 있지만 익숙해지면 오히려 더 찾게 된다.
발효식품은 자연의 미생물들이 난소화성 물질들을 분해시켜 소화를 도울 뿐만 아니라 항산화제나 항암제 등 생리활성 물질들을 생성한다. 유익한 미생물들은 장을 건강하게 만들어 각종 질병을 예방하게 해준다.
인체 내 미생물들은 제2의 장기라 불릴 만큼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발효 식품들 중에서도 김치는 물론 콩을 발효시켜 만든 장류 위주의 우리나라 음식은 미네랄과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이 없어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 할 만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중국으로부터 ‘발효식품의 나라’로 불리었다. 발효 음식은 현대인들을 살찌게 만드는 초고열량·저영양 가공식품의 폐해로부터 건강을 지켜줄 미래의 음식이다.
이기영(李起榮) 교수
고려대 식품공학과 학·석사 졸업. 현재 호서대학교 자연과학대 보건생명과학부 식품공학과 교수.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귀가 닳도록 듣던 말이다. 세월이 갈수록 이 말이 실감 나는 것은 나이 듦의 증거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강건한 정신, 건강한 육체를 유지할 것인가. 건전한 사회에서 어른으로서 중심을 잡는 비결은 무엇인가. 이 화두를 놓고 심혈관 세계적 권위자로서 대중을 위한 건강전도사로도 활약 중인 엄융의(73)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를 만나봤다. 대학로에 있는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영국 출장에서 돌아와 전작 ‘내 몸 공부’에 이은 후속작을 집필 중이었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엔 ‘온 세상 천지가 헬스 클럽이다’란 문장에서 커서가 반짝이고 있었다.
심혈관 분야의 권위자이신데, 요즘 일반인을 위한 강연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고 계십니다. 건강 전도사로 나선 동기가 있으신지요.
“한마디로 내 몸을 알자는 것입니다. 건강 정보는 넘치는데 정작 자신의 몸에 대해선 몰라요. 발에 신발을 맞춰야 하는데, 신발에 발을 맞추는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심장이나 혈관 건강에 좋은 식품, 심지어는 약 이름까지 줄줄 꿰면서 그것들이 우리 몸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잖아요. 아무리 많은 건강 정보를 알고 있어도 자신의 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입니다. 건강은 ‘내 몸 스스로 알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는 “육체적 건강은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문학작품을 통해 작가의 건강을 짐작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도스토옙스키나 마르셀 프루스트가 대표적인 경우. 간질병을 앓고 있었던 도스토옙스키는 작품에서 보통 사람은 알 수 없는 간질의 전조증상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내면 의식의 흐름을 추구한 것은 신병인 천식의 영향도 크다. 천식 발작으로 고생한 그는 외출하기가 힘들어 실내 생활을 주로 하며 내면에 집중했다. 모두 자신의 지병을 수용, 강점으로 역전시킨 경우다.
문학 작품을 통해서도 작가의 건강을 유추할 수 있군요. 혹시 사람을 처음 만나실 때 상대의 건강 상태 등을 유의해 살피십니까.
“그런 직업병은 없습니다. 다만 술, 특히 와인을 잘하게 생겼나, 아닌가는 꼭 봅니다.(웃음) 제가 와인을 즐기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프렌치 패러독스를 언급했다. 프랑스 사람들이 기름진 것을 자주 먹고 담배도 많이 피는데 미국, 북구 등 다른 국가에 비해 심장질환이 걸리는 비율이 낮은 것은 지중해식 식생활 때문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매일 적당량의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오래 살고 뇌졸중에도 덜 걸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평소 식습관과 여유로운 마음가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젊은 제자들과 와인 담화를 나누는 게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말했다.
신세대 제자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시는지요.
“저는 제 동료, 동년배들보다 제자들, 젊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재미있어요. 제가 그들과 어울리는 비결은 지갑은 열고, 입은 닫는 것이지요. 훈계하기보다 그들의 관심사, 와인에 얽힌 이야기 등을 나누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우리 집은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지트예요.”
지난해 출간하신 저서 ‘내 몸 공부’는 서울대학교 비자연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셨던 교양강의를 기본으로 저술한 것이지요. 강의 당시에도 파격적 평가방식으로 화제였다고 들었습니다.
“평가를 내 방식대로 했어요. 출석, 시험은 각각 25%로 하고 나머지는 ‘우리 몸의 이해’를 자신의 전공과 연결해 자유 형식으로 제출하라고 했지요. 에세이든, 음악이든, 무용, 미술작품이든…. 단 자신의 주장을 담으라는 게 제 요구사항이었어요. 우리나라 학생들은 제한 범위를 정해주면 잘하는데요. 오히려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 어쩔 줄 몰라 해요. 늘 밑줄 좍, 별 세 개의 참고서식 요약정리, 받아쓰기에만 익숙해 있기 때문이지요. 대학은 내 주장을 펼치는 연습을 하는 곳이란 게 제 신조입니다."
그는 연구실에 놓여 있는 손 모양의 조각상을 가리켰다. “강의 때 학생이 제출한 과제물”이라며 “창의성 부족을 탓하기보다 자극하는 교육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수님은 정신적, 육체적 건강 외에 사회적 건강을 함께 강조하십니다.
“사회적 건강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환경을 말합니다. 그 지표는 배려지수입니다. 정신과 육체처럼 개인과 사회의 건강도 분리되지 않아요. 사회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데 어떻게 개인이 건강할 수 있겠습니까. 비교, 경쟁이 만병의 근원입니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분노조절장애는 비교-경쟁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객관성이란 명목 하에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다른 항목은 배제하고, 인정을 안 해요. 겉으로 드러난 것만 실력으로 인정되니 모두 한줄서기, 1등만 하려고 목을 매게 되는 것이지요. 내 뜻대로 이기지 못하면 개인적으로 우울증, 사회적으로 분노조절장애 증상을 보이게 됩니다. 남과 더불어 살아가기, 서로 배려하고 협동하는 사회적 건강 회복 운동이 필요합니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엄 교수는 선진국에서 어린이들에게 팀 스포츠, 청년들에겐 오페어(Au-Pair) 제도를 활발히 시행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딸이 영국에서 워킹맘으로서 직장과 가정 일을 병행할 수 있는 것은 오페어 덕분”이라고 말했다. 오페어 제도는 외국인 가정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는 대가로 숙식과 일정량의 급여를 받고, 자유시간에는 어학공부를 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문화 교류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도 점수따기 경쟁보다 이 같은 폭넓은 사회경험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사회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의사가 말하는 대로는 실행하고, 하는 대로는 실행하지 말라”는 시쳇말이 있지요. 교수님이 직접 행하시는 건강 습관이나 비결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내 방식에 맞춰 마음 편하게 사는 겁니다. 저는 의학 통념이나 유행을 무조건 따르지 않아요. 진리라기보다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한시적 학설이니까요. 먼저 나를 알고자 하고, 나에게 직접 실험해보는 편입니다. 평균적인 인간의 리듬은 말 그대로 평균이니까요. 내가 거기에 반드시 속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유행이나 학설이 내 몸에 맞나 실험해보고 관찰하는 게 내 기본 신조예요. 가령 예전에 ‘아침형 인간’ 바람이 불지 않았습니까. 저는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이에요. 새벽 두세 시까지도 너끈히 일하지만 아침엔 일어나기가 힘들어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헌 나라의 노인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웃음) 아침형 종달새 스타일에 맞춰 생활하는 실험을 해보니 나랑 영 맞지 않더군요. 그래서 내 올빼미 스타일대로 살기로 했지요. 나를 관찰하고 거기에 맞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사는 것이 건강 비결입니다.”
엄 교수는 스마트 밴드를 팔목에 차고 있었다. 이를 통해 깊은 잠, 얕은 잠을 몇 시간 잤는지, 심장박동수를 체크해 그에 따른 생체리듬을 읽고, 자신의 건강상태는 물론 라이프스타일도 조정한단다. 이외에 그가 실천하는 건강 습관은 걷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되도록 앉지 않으며, 목적지보다 한두 정거장 먼저 내려 ‘하루 1만 보 이상 걷기’를 생활화하고 있다.
중년 이상이 되면 영양제든 뭐든 약을 한 움큼씩 복용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지요.
“모든 약은 기본적으로 독입니다. 한 가지 증상에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다른 기관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요. 자연식과 균형 잡힌 식단으로 치유하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음식은 가공이 안 된 것일수록 몸에 좋고요. 접시에 담겼을 때 원래의 재료를 알아볼 수 있는 음식일수록 몸에 좋습니다.”
그는 “한국의 의사들이 지나치게 복잡한 검사와 약, 주사 위주의 처방에 의존하는 것은 불합리한 의료수가 시스템, 보험 체계 때문”이라고 말했다. 식이요법에 대한 전문적인 조언은 수가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 모두 불행을 겪고 있다는 문제 제기다.
청·장년기 이후의 건강관리는 예전과 달라야 하는지요. 특히 유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건강에도 내려놓기가 필요합니다. ‘건강 과신하지 말라, 비교하지 말라’입니다. 장년기 이후 건강 적신호가 울리는 사람은 두주불사의 타고난 건강체질파입니다. 이들은 젊었을 때의 건강을 과신하기 쉬워요. 오히려 한두 가지 지병을 안고 사는 사람이 건강한 것은 평소 주의를 하고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은 ‘비교하지 말라’입니다. 만보계를 갖고 걷더라도 참여자 비교 순위를 체크하며 경쟁에서 꼭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어요. 피트니스 클럽에서 트레드밀을 뛸 때도 옆 사람의 속도를 따라 하려고 하거나 더 빠른 속도로 뛰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경쟁심은 오히려 건강을 해치기 쉽습니다. 남과 비교하기보다 자기 스타일, 페이스, 리듬을 알고 즐기세요.”
교수님은 50대 중반부터 기러기 부부 생활을 시작, 1년 반 정도를 떨어져 사시는데 어떠십니까.
“손주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집사람과도 그렇습니다.(웃음) 평생 전업주부로 살다가 50대 중반에 애 다 키워놓고 영국 유학을 가 공부를 하겠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것 해보라’고 찬성했지요. 우리 부부가 45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원만히 해온 비결은 ‘덜 간섭하기’예요. 부부 갈등은 내 스타일대로 바꾸려 하는 데서 옵니다. 우린 체질, 습관, 성향이 다르지만 최대한 존중하려고 해요. 제가 주례사를 할 때 늘 강조하는 것도 ‘상대를 내 스타일대로 바꾸려 하지 말라’입니다.”
교수님은 황우석 교수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 활동을 같이하셨죠. 또 지금은 정계에 있는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의 스승이기도 하셨고요. 이들의 부침(浮沈)을 보면서 깨달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입니다. 황 교수, 안 대표 모두 재능 있는 인물인데요. 황우석 교수는 능력보다 너무 많이 나갔어요. 자신의 관리 범위를 벗어났는데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몰랐다고나 할까요.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려면 학문 분야는 적절히 위임해야 합니다. 그걸 못 한 게 문제였어요. 안철수 전 대표도 기대가 되는 제자였지요. 학계에 딱 적합한 사람인데… 생각이나 꿈이 커도 현실이 잘 따라주지 않을 때 기다리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진득함, 그게 아쉽지요. 너무 빨리, 높이 가고자 하기보다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즐기며 가는 게 내가 생각하는 인생 의미이자 재미입니다.”
공자는 일흔의 나이에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 바 있다. 종심(從心)은 세상의 기준에 휩쓸리지도, 나의 기분에 휘둘리지도 않는 중심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마음을 풀어놓지도(방심, 放心), 잡아놓지도(조심, 操心) 않고 고삐를 늦췄다 당겼다 조절할 수 있는 경지…. 엄융의 교수의 인생 키워드는 종심과 통한다. 새로 보는(see) 내 몸, 마음공부를 시작하면서 새 봄맞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리더의 언어병법’, ‘성공하는 CEO의 습관’, ‘하이터치 리더’, ‘용인술, 사람을 쓰는 법’ 등이 있다.
백년 안짝에 이 세상을 지나가는 덧없는 나그네. 그게 인생길. 이제 남은 생을 들판에서 일하며 만족을 구가하리라, 하득용(52) 씨는 그런 생각으로 산골에 입문했다. 산촌 노장들이 보기엔 짠했던 모양이다. “멀쩡하게 서울에서 그냥 살지 어쩌자고 내려와 생고생이오?” 오나가나 듣는 소리가 늘 그 소리였단다. 그러나 하 씨의 귀엔 맺히는 게 없는 관전평에 불과했다. 귀농에 아무런 회의가 없기에. 자연스러운 귀결이기에.
어릴 적부터 하득용 씨에겐 우렁찬 꿈 하나가 있었다. 바로 농사였다. 농대에 진학한 것도 농사 실력을 쌓기 위해서였다. 쉰 줄에 접어든 그는 현재 오미자 농원의 쥔장. 말하자면 드디어 꿈을 이루었다. 그는 번쩍거리는 서울의 요지 강남에 살며 근사한 직장을 다녔었다. 그랬던 그의 귀농 뉴스를 접한 초등학교 동창들은 이구동성으로 합창했다지. “야야, 놀랍지 않다. 너는 일찍부터 늘 시골에 살겠다 하지 않았냐.” 그의 오래 숙성된 꿈을 훼방할 의사가 전혀 없었던 아내 역시 순순히 부응했다. 뱀이 바람처럼 스며들어 소파 위에서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리는 식의 불상사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기꺼이 동행하겠다고 장단을 맞췄다. 그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귀농을 실행했다.
농경은 인류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준 혁명적 사건이었다. 대략 1만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장수 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 이 나라에서 농업이란 가장 못 믿을 직업으로 밀려나 있다. 무엇보다 허리 휠 신역이 자심한 반면 타산을 맞추기가 영 힘들다. 사정이 이러했지만 하 씨는 밀어붙였다. 자신의 삶의 방향에 관한 확신과 긍지에 찬 귀농임을 이미 알 만하지만, 나는 바보처럼 물었다. 농사의 그 무엇에 매력을 느꼈는가?
“제가 시골 태생입니다. 어린 눈에도 농사란 힘겨운 일로 보였어요. 그러나 꽃과 나무들 속에서 산다는 게 참 좋았어요. 시골의 목가적인 정경이랄까, 그런 게 천성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어렴풋하게나마 농부의 꿈이 발아했던 거죠. 중학생 때 치른 적성검사에선 농학 적성 비율이 98%로 나왔어요. 아, 농부가 나의 길이구나, 일찌감치 확신을 품기 시작했죠. 시골의 자연 풍경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농업이 내겐 가장 잘 어울린다는, 가장 좋은 삶일 거라는 끌림이 있었던 겁니다.”
“농부의 꿈을 품고 살았지만 정작 사회생활은 서울에서 했어요.”
“고등학교 졸업 뒤 의심의 여지없이 농대를 선택했고 일본 유학까지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꿈을 접고 서울의 화학 회사에 취직하는 걸로 사회생활에 뛰어들었어요. 처자를 건사하고, 기반을 다져야 했으니까. 10년만 직장생활을 하고 시골로 내려갈 작정이었지만, 20년이 지나고서야 사직을 하고 귀농할 수 있었어요. 여건이 비로소 무르익었다는 판단으로.”
“처음엔 혼자 산골로 들어갔죠? 선발대로 뛰어들어 일단 물정을 익힌 거예요?”
“귀농교육도 받았고, 귀농박람회도 찾아다녔고, 사전에 서울에서 충분히 준비를 해뒀죠. 휴가를 얻어 전국을 돌며 마땅한 귀농지를 물색하기도 했어요. 지리산 자락 하동군 악양이 맘에 들었으나 땅값이 너무 비싸더라고요. ‘귀농의 압구정동’이라 하더군요. 포기했죠. 이후 문경 산북면의 시골 농토와 빈집을 임대해 농사를 짓는 걸로 귀농생활에 돌입했어요. 식구들은 서울에 두고 혼자서 말이죠.”
“차근차근 신중한 수련 과정을 밟으셨구나.”
“단신으로, 초심자로 농사를 한다는 게 예상보다 버거웠어요. 정말 고생했죠. 1식 1찬으로 끼니를 채우며 부지런히 배웠습니다. 살이 쭉쭉 빠지더라고요.(웃음) 그러나 꽤나 시골 물정을 터득할 수 있었죠. 1년쯤의 견습기를 지날 즈음, 마침 이화령 산중에 괜찮은 부지가 나와 매입을 하고 이주, 본격적인 귀농생활로 접어들었어요. 서울의 아파트를 팔고, 식구를 불러들이고, 집을 짓고, 묵정밭을 갈아 농장을 만들고, 그렇게 나름의 공을 들여 꾸려온 게 현재의 모습입니다.”
그의 ‘오래된 미래’는 시골
하 씨 부부가 이화령 기슭에 자리 잡은 건 2013년의 일. 터는 널따랗다. 5000평의 부지를 사들여 3000평을 오미자 농장으로 개발했다.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첨단 단열공법으로 지은 북유럽식 2층 페시브하우스도 큼직하고 준수하다. 자금력이 수반되지 않고선 엄두를 낼 수 없는 행보렷다.
늘그막까지 우리를 일쑤 끙끙거리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는 돈 문제다. 헐거운 소유로 오히려 진정한 만족을 누리는 도류(道流)도 없지 않지만, 일테면 시골살이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난적이 물적 토대의 여하라는 문제이기 십상이다. 하 씨는 이 난적의 농간을 면제받은 것으로 보인다. 숙원의 해결 또는 삶의 질적 지향이라는 문제를 풀기 위해 그의 머리는 민첩하게 움직였으며, 준비는 충실했고, 실천은 적시에 행했다. 광란처럼 기똥차게 치솟은 강남의 아파트를 미련 없이 처분, 그의 ‘오래된 미래’인 시골에 무난한 터전을 장만한 행장은 슬기의 소산일지도. 이제 농사 얘기를 들어볼까. 오미자를 주 작목으로 선택한 이유는 뭘까?
“‘해당 지역의 특산물을 재배하라!’ 귀농교육을 받을 때 자주 들었던 얘기였어요. 합리적인 권장이죠. 이곳 문경의 특산물은 사과와 오미자입니다. 기술 숙달이 필요한 사과 재배는 초보 농부에겐 너무 힘들다 판단해 오미자를 택했어요.”
“약재를 전문으로 하는 어떤 노인께서 제게 권합디다. 구기자와 오미자를 장복하시오! 그 둘의 약성이 탁월하다는 얘기였죠.”
“이왕 농사를 할 바엔 가족들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작물을 하자, 그렇다면 오미자가 적격이다, 그런 판단도 했습니다. 저나 아내나 서울에선 천식과 알레르기에 시달렸는데 그게 싹 사라졌어요. 맑은 공기, 깨끗한 지하수, 그리고 오미자 덕분이라 봅니다.”
“문경은 오미자 주산지로 널리 알려졌어요. 농가들의 경쟁이 치열하겠죠? 하 선생의 생산물은 어떤 특장이 있죠?”
“무농약 고품질 오미자를 생산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습니다. 제대로 된 청정 농산물을 생산하는 게 농사꾼이 할 일이라는 생각을 고수해왔어요. 무엇보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덜 쓰는 게 요체라 봤고요. 과거의 농사엔 화학비료라는 게 쓰이질 않았어요. 자연과 절기에 순응하는 지혜를 필요로 했을 뿐이죠. 어떤 학자는, 철없는 사람들이 철없는 농산물을 먹어 오히려 심신의 건강을 해친다는 투의 말을 했는데, 경청할 만한 얘기이지 않겠어요?”
“요즘의 농작물은 파종 단계에서부터 농약을 투여하죠. 농약이 아니고서는 생육 자체가 어렵도록 농약 의존도가 심화됐어요. 무농약 농사를 실행할 경우엔 생산량도 매우 낮다죠? 결국은 채산성 악화로 이어지고 말이죠.”
“제가 오미자 농원 3000평을 운영하며 목표치로 잡은 게 연매출 5000만 원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턱없이 미달이에요. 농업 소득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면 생계조차 위태로웠겠죠. 다행히 모아둔 게 좀 있어서 헤쳐 나가고 있어요. 향후 4년쯤 지나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봅니다만, 무농약 농사란 어떻게 보자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에요. 생산량은 관행농에 비해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가격은 20% 정도를 더 받을 수 있을 뿐이니 사실상 암담한 상황이라는 거.(웃음)”
적막도 즐길 만한 대상
세상에 유쾌하기만 한 직업은 없다. 설사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돼도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직업에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나를 쏟아 부을 경우엔 문제가 달라진다. 꿈이 실린 직업은 고독한 인생을 보완해준다. 이상으로 삼은 일에의 몰두가 깊을수록 만족감이 커진다. 하 씨의 경우는? 그는 양양하다. 속사정까지야 깊숙이 들여다볼 길이 없지만 그늘이 없다. 말쑥한 언사로 귀농의 만족감을 표한다. 비록 아직은 형편이 열악하지만 성취감을 느낀다는 게 아닌가.
“아내와 함께 농장의 풀을 손수 뽑아야 하는 일부터 농사의 전 과정은 고됩니다. 일머리가 서툴러 고생도 많았고, 극심한 가뭄으로 한 해 농사에 완전히 실패하기도 했고, 애환이 많은 게 농사예요. 하지만 매번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농사더라고요. 풀을 뽑고 난 뒤 깨끗해진 농장을 바라볼 때, 하루하루가 다르게 잘 자라 오르는 오미자 덩굴을 바라볼 때, 붉게 물들어가는 열매를 바라볼 때, 그럴 때마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성취감을 톡톡히 맛봐요.”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주로 머리를 썼어요. 귀농 이후엔 달라졌어요. 몸을 덩달아 최대치로 쓰고 있어요. 그러자 머릿속에 가득했던 욕망이나 욕심이 줄어드는 반면, 몸으로 오감으로 느껴지는 성취감이 자주 찾아오더라고요. 좋다, 참 좋다! 속으로 그렇게 탄성을 내지르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다채로운 자연의 변화와 생동감이 주는 즐거움과 활력은 도시에서는 누릴 수 없는 최상의 가치예요.”
“이곳의 산세는 통쾌하고 수려해요. 하지만 적막강산이에요. 아무리 일에 바쁘다지만, 때로 권태롭진 않을까?”
“삶이란 즐기라고 부여된 것. 일의 노예로 산다면 인생이 지루하겠죠. 낮에는 일하고 해 저무는 하오엔 읍에 나가 테니스를 즐깁니다. 한국화도 배우고, 난타와 색소폰도 교습받아요. 적막? 그 역시 즐길 만한 대상이죠. 언젠가 아내와 둘이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참 좋았어요. 고요한 산중 생활에 깃드는 내적인 평화, 이 역시 귀농을 통해 받은 큰 선물이구나, 아내와 둘이 그런 얘길 나눈 적이 있습니다.”
하 씨의 농사 실적은 아직 시원치 않다. 애당초 귀농 목적을 돈벌이에 두지도 않았다. 가급적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개인적인 용무를 보고 싶었을 뿐이며, 용무란 농사 그 자체였으며, 마침내 농부로 변신, 결국은 해묵은 꿈을 이룬 셈이다. 그러자 또 하나의 세계가 조용하게 열렸다. 자연과 동행하는 삶의 길이 가지런히 펼쳐지고 있는 것. 이미 유년기에 시골에서 싹 텄을 자연에 관한 감수성이 귀농으로 되살아나 생태계를 존중하고 교감하는 버릇이 몸에 배기 시작한 것.
상쾌한 예화 하나를 볼까? 하 씨 부부는 어느 날 숲에서 꿩 둥지를 발견했다. 둥지 안에는 조르르 알들이 놓여 있었다. 알들의 일부는 깨져 있었다지. 뭔가가 둥지를 건드렸다는 증거였다. 일단 둥지가 노출되면 어미 새는 알들을 더 이상 돌보질 않는다. 그걸 알았던 부부는 읍내로 달려가 사온 부화기에 알들을 고이 길러 날려 보냈다.
“어느 날은 새 한 마리가 유리창에 부딪쳐 나동그라졌어요. 죽었는지 기절했는지 숨을 쉬지 않더라고요. 우리는 서둘러 인공호흡에 나섰어요. 저는 놈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줬고, 아내는 부리를 벌려 빨대를 꽂아 숨을 불어넣었어요. 앗, 그러자 살아나 후루룩 날아가는 게 아니겠어요?”
소소하면서도 짜릿한 감흥을 주는, 동화를 닮은 일화다. 보는 눈이 없더라도 그물에 걸린 어린 고기나 금지 어종을 풀어주는 어부라면, 그는 이미 자유로운 영혼이다. 새 한 마리의 목숨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희귀하게도 잘 사는 사람이다. 나이 들어서도 우리의 이기심이 종종 놓치는 건 공생의 가치이지 않던가.
박원식 소설가 >>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작은 체구에 은빛 단발을 한 여자가 바람 부는 거리에 나타난다. 아직 조금은 쌀쌀한 날씨. 길 위에 선 여자는 뭔가 투덕거리더니 마이크를 집어 들고 청중 앞에 선다. 잔잔하게 선율이 흐르면 그녀의 인생이 담긴 목소리가 터져 안기다 마음속에 녹아든다. 바삐 가던 이의 속도가 느려지고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귀 기울인다. 그녀의 마법에 하나, 둘 빠져들더니 멈춰서는 발걸음, 또 발걸음. 길 위의 예술가 한복희(韓福姬·58) 씨의 노래가 울려 퍼지면 모두가 판타지 속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장소협조 보수동 정.[점]
저기 저 분 노래 되게 잘 불러요!
부산의 남포동 밤거리를 거닐던 어느 날. 사람들이 몰려든 곳을 향해 누군가 소리쳤다. 음악이 들리는 곳은 이미 인산인해. 길거리 공연을 많이 봐왔지만 노래 부르는 이가 인파에 묻혀 보이지 않는 건 드문 일이다. 그때 딱 스치는 사람이 바로 중년의 버스커(거리 예술가) 한복희 씨였다. 언젠가 SNS 영상을 통해 그녀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봤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1915~1963)의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를 부르는 모습이 압권이었다. 언젠가 우리 지면을 통해 꼭 소개하겠노라 사진까지 저장해놓았었다. 그런 그녀가 앞에 나타났으니 머뭇거릴 틈이 있겠는가. 노래를 마치고 잠시 쉬고 있는 한복희 씨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며칠 후, 햇볕이 따뜻하게 비추는 부산시 보수동 책방 골목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환하게 반겨 웃는 모습에 포근함이 느껴진다. 50대 끝자락. 그녀는 왜 부산 길거리 귀퉁이에서 노래를 부르게 됐을까.
대인공포증을 이기려고 대중 앞에 섰어요
누가 믿겠는가.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순간 길거리는 콘서트 현장이 된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서서 그녀를 응원하는 팬 또한 상당수다. 대중 앞의 그녀가 사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니!
“전문 버스커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본격적으로 노래하기 전까지는 섬유공예를 했어요. 광목 위에 매일 그림을 그리고 빨래하고 염색하고 다림질도 하고요. 그 세계에서 충분히 바쁘고 즐겁고 행복했어요. 누구를 만날 시간도 음악을 집중해서 들을 여유도 없었어요. 그 일을 너무나 사랑했지만 인간관계가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어요.”
어려서부터 자신이 꾸며놓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았다. 친구들도 그 안에 오게 해서 함께 놀았다. 그런데 나이 오십이 넘어 새로운 삶이 열렸다.
“지금은 돌아다니며 살고 있죠. 처음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했어요. 내가 부산에 와 있는 건 예전이라면 상상 못할 일이죠.”
관객들 중에는 한복희 씨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기 위해 다가오는 이들이 있다. 공연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다고 느끼면서도 남자에 대한 경계는 여전하다. 중년 남자들이 와서 악수라도 하자고 하면 정중히 거절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쭉 싱글인 것 같다고 멋쩍게 웃는다.
“물론 정말 노래가 좋아서 다가오는 사람도 있지만 가끔은 술 냄새 나고 비릿한 냄새 풍기는 남성분이 있어요. 정성스럽게 노래를 불러드렸으면 됐지 뭘 손까지 잡아줘요.(웃음)”
영국 노처녀의 모습에서 본 희망
그녀에게 단비 같은 용기를 준 사람이 있었다. 바로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가수 수잔 보일(Susan Boyle, 1961~)이다.
“그분이 저에게 절대적인 용기를 줬어요. 예술가처럼 보이지도 않고 시골에서 올라온 푸짐한 시골 노처녀가 뮤지컬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을 부르는데… 관객 모두의 입이 떡 벌어지잖아요. 내 안에 노래를 향한 불씨가 있는지 몰랐는데 수잔 보일을 보고 난 뒤에 힘이 났어요. 며칠 동안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리고. 그 사람이 나오는 영상을 보는데 너무 떨리는 거야.”
한복희 씨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일반인의 숨은 재능을 발굴하는 tvN ‘코리아 갓 탤런트(Korean got talent)’를 통해서였다. 생업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심하던 상황이었다. 그녀 나이 53세. 대단한 도전이 시작됐다.
“섬유공예를 하면서 줄곧 써오던 염료 때문에 건강이 많이 나빠졌습니다. 천식이 발병했어요. 이제 어떤 일을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을 때 마침 그 프로그램이 생긴 거죠. 나는 정말 악보도 볼 줄 몰랐어요. 음악을 좋아하고 꾸준히 들은 것 말고는 뭐가 없었어요. 막연한 자신감이었어요.”
무대에 서서 에디트 피아프의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를 부르는 순간 관객들은 환호했고, 심판단의 극찬이 뒤를 이었다. 몇 년 후 ‘아시아 갓 탤런트’에도 초청됐다.
“‘코리아 갓 탤런트’가 끝나고 노래 연습도 안 하고 있을 때였는데 ‘아시아 갓 탤런트’가 노래를 향한 두 번째 불을 지펴줬어요. 역시 나는 노래를 할 때 굉장히 행복하구나, 건강 때문에 힘들 때였는데 노래는 굉장한 기쁨의 순간을 경험하게 해줬어요. 불 속에 뛰어드는 마음이었어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거 하다 죽자!”
한복희 씨는 인터뷰 내내 숨을 깊게 내쉬고 기침을 했다. 그러면서도 노래하며 사는 삶에 대해 얘기할 때는 웃음이 넘치고 생기가 솟았다. 그녀에게 노래는 수많은 의미를 담은 보약이다.
서울 인사동에서 부산 남포동까지
길바닥에 누워 자는 한이 있어도 노래하는 삶을 택하겠노라 굳은 다짐을 했다. 언제 올지도, 내 앞에 설지도 모르는 관객을 만나기 위해 거리를 나섰다. 2015년 11월, 서울 인사동에 작은 스피커와 마이크를 들고 섰다. 당시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돌보느라 추워진 날씨가 돼서야 밖으로 나왔다.
“그때는 뭐 진짜 노숙자 같았어요. 노래를 부르고 싶은 절박함도 있었어요. 부랑자가 되더라도 나는 음악을 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었어요. 그래야만 내가 충격을 덜 받으니까요. 산발한 긴 백발에 군용 잠바를 입고 그렇게 나섰어요.”
개업(?) 첫날. 빛이 점점 잦아드는 오후 5시. 조그마한 박스 하나 놓고 준비한 노래를 불렀다. 삽시간에 구름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저 사람이 누구냐?”며 수군대는 사람들. 정신없이 노래를 부르고 난 뒤 눈을 떴을 때!
“비현실적이었어요. 꽃 선물에 돈은 물론이고요. 이렇게 계속된다면 달리 노래를 부르기 위해 직업을 찾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신호가 굉장히 좋았죠.”
알고 보니 인사동은 버스커들이 좋아하는 장소였다. 동창 모임이나 출판기념회 등을 하고 나온 중년들이 쉬이 지갑을 열어 팁 박스 두둑하게 돈을 넣는다.
“인사동 거리에는 내 나잇대의 기억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서성입니다. 그러다 보니 팁도 후하고 앞에서 춤도 추고 그러죠.”
비현실적인 인사동 거리는 반할 만했지만 다른 블루오션을 찾기로 했다. 젊은 버스커들과 소위 자리 경쟁 같은 건 하기 싫었다. 인사동에서 이태원으로 대학로로 자리를 옮겨 다녔다. 그러다 2016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부산으로 향했다.
“글로벌 스타가 되어 브로드웨이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고 싶어요. 제 목표죠. 그래서 가요보다 외국 노래를 많이 부릅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외국 문화계 인사들이 많이 오잖아요. 그래서 갔어요. 기대를 했는데 태풍이 몰려와서 영화제가 거의 폐점 상태였어요. 제가 지방마다 팬이 좀 있는데 부산 팬이 며칠 동안 가이드를 해줬어요. 그때 찾은 곳이 바로 남포동입니다.”
부산 하면 꼭 남포동이 생각났다. 서울로 가기 전에 남포동에 좀 데려다 달라고 팬에게 부탁했다.
“차에서 딱 내리자마자 느꼈어요. 남포동이 나를 환영하더라고요. 활짝 팔을 벌려서요. ‘어서 오세요’라고요.”
곧바로 노래를 한 곡 했더니 관객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다. 비로소 부산 팬하고 축포를 터뜨렸다.
“부산에서 재밌는 일이 많아요. 노래하는 친구들이 저한테 ‘너무 감동받았습니다. 우리는 가짭니다!’ 이러기도 하고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모두들 표현이 강렬했어요.”
자기 세상 속에 살던 엄지 공주 한복희 씨는 매력적인 남포동 기운에 이끌려 부산행을 결심했다.
“부산 생활은 1년 좀 넘었어요. 친근하고요. 부모님 두 분 다 함경도 출신이세요.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던 지식인이셨고요. 제가 사는 보수동에는 함경도 사람들이 많이 살았대요. 우연이라기보다 DNA의 이끌림? 정서적으로 이물감이 없고 자연스러워요. 서울 생각 잘 안 나요.”
욕망과 집념으로 인생을 그려가다
“제가 그림을 그리고 천식이란 병을 얻게 되는 과정은 욕망이 많았던 시간이었어요. 표현의 차이겠지만 나는 뭘 하든지 욕망 강한 사람이에요. 노래를 하면서도 굉장히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요. 반드시 정점에 올라야 하는 승부사 기질이 있는 거예요. 지나치게 올인하죠.”
강원도 원주에 작업실을 꾸며 2년여 섬유공예를 할 때 밥 먹는 시간을 잊어버릴 정도로 천과 색에 매료돼 있었다. 작은 결과물이라도 손에 쥐어지면 황홀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쉼 없이 몰두하던 어느 날 숨소리에 이상이 왔고 더 이상 염료들과 마주할 수 없게 됐다. 그때 빛처럼 다가온 것이 노래, 노래였다.
“그림을 그릴 때도 프랑스 노래 좀 배워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파니핑크’에 삽입됐던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 이 노래가 극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러곤 나도 멋지고 강렬한 노래 한번 불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어려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웃음) 너무 어렵더라고요.”
한복희 씨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에디트 피아프의 대표곡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 사실 이 노래를 듣는 사람 대부분은 한복희 씨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다.
“명절에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노래를 하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밌지만 감동이 없잖아요. 제가 원어민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면 최대한 원어에 가깝게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프랑스어는 정말 할 줄 몰라요.”
완벽하게 노래를 부르기 위해 천 번 이상 듣고 공부했다.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일도 없다. 동영상 속 에디트 피아프 선생님(?)을 모시고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정열을 쏟아 얻어낸 결과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하루하루를 만들어가면서 공연이 다 끝나면 장비를 챙긴 후 내가 나한테 얘기해요. ‘오늘 노래 참 괜찮았다, 그렇지? 오늘 괜찮은데?’ 이런 기쁨, 자긍심이 생겼어요.”
인생의 아름다움은 비현실에 있다
최근 천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한쪽 눈을 실명했다는 한복희 씨. 그럼에 불구하고 노래만 부를 수 있다면 어디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물론 꿈은 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극장이 있으면 좋겠다.
“나만의 공연장이 있으면 꼭 하고 싶은 것이 모노드라마예요. 내가 부르는 노래는 제가 성장하면서 알게 된 곡들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인생 이야기도 하고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한복희 씨.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어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좋은 음식도 만들어 먹고 싶단다.
“내 삶의 가치는 행복에 있어요. 경제력은 자존감이 손상되지 않는 선만 지키면 될 거 같아요. 약간 비루하고 불편해도 상관없어요. 노래를 선택하면서 저는 그 대가를 지불했고 잘했다고 봐요.”
인생의 맛을 이제 알았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느껴진다고. 그래도 노래로 행복할 수 있다면 그녀는 순간순간 기쁘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