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exhibition)
1) 프랑스 국립 오르세미술관 이삭줍기 전: 밀레의 꿈, 고흐의 열정
일정 3월 5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9세기 서양미술사를 빛낸 거장들의 명작 130여 점을 만날 기회다. 작품 보존을 위해 엄격하게 관리하는 고흐의 ‘정오의 휴식’은 오르세미술관 개관 이래 수십 년 동안 유럽 이외 지역으로 반출된 적이 없으나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대여를 허가했다.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아카데미즘과 사실주의, 인상주의와 자연주의, 상징주의와 절충주의, 20세기 예술의 다양한 원천 등 5개의 테마로 나누어 각 주제를 중심으로 작품 간의 대비와 유기성, 예술사의 흐름까지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2) 닉 나이트 사진전: 거침없이, 아름답게
일정 3월 26일까지 장소 대림미술관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로 손꼽히는 닉 나이트(Nick Knight)의 국내 첫 사진전이다. 사진과 디지털 그래픽 기술의 결합이 돋보이는 닉 나이트 특유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상 실험을 접목한 패션필름까지 폭넓게 마련돼 있다. 초상사진, 디자이너 모노그래프, 페인팅·폴리틱스, 정물화·케이트 등을 주제로 한 110여 점의 각양각색 작품을 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 매주 일요일에 열리는 ‘선데이 라이브 앤 클래스(SUNDAY LIVE & CLASS)’ 등 유익한 전시 연계 교육 프로그램들도 살펴볼 만하다.
◇도서(book)
1) 인생의 발견(시어도어 젤딘 저·어크로스)
21세기의 예언자라 불리는 영국의 철학자 시어도어 젤딘이 유명 인물들의 전기와 철학적 탐색을 통해 발견한 28가지 질문을 담았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인간과 삶에 관해 끊임없이 성찰해온 저자의 성숙한 지혜와 혜안을 엿볼 수 있다.
2) 브릿마리 여기 있다(프레드릭 배크만 저·다산책방)
로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소설이다. 59세 중년 남성 오베와 얼핏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향을 지닌 63세 중년 여성 브릿마리. 누군가의 그늘에서만 살아온 그녀가 삶의 위기를 통해 온전한 자신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그렸다.
◇영화(movie)
1)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희귀암에 걸린 26세 청년이 한국인 최초로 49일 만에 뚜르 드 프랑스 풀코스를 완주한 실화를 영화화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체육교사를 꿈꾸었을 정도로 건강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절망스러운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던 그는 뚜르 드 프랑스 완주라는 꿈을 키운다. 3500km 레이스의 마지막 지점인 파리 개선문을 통과하며 꿈을 이룬 순간의 가슴 벅찬 감동이 영화의 포스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봉 1월 12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이윤혁 출연 임정하, 전일우, 박형준 등
2)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떠돌이 음악가와 고양이 한 마리가 우연히 만나면서 인생의 희망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제목처럼 주인공 제임스는 어깨에 고양이 밥을 올리고 거리 이곳저곳에서 기타를 치고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따뜻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두 주인공은 2007년에 만나 현재까지 뜨거운 우정을 나누고 있다. 데이비드 허슈펠더 음악 감독과 싱어송라이터 찰리 펑크 등 실력파 제작진이 대거 참여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개봉 1월 4일 장르 드라마 감독 로저 스포티스우드 출연 루크 트레더웨이, 루타 게드민타스 등
◇공연(stage)
1) 인간
프랑스의 천재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유일한 희곡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인류 마지막 생존자인 화장품 연구원 라울과 호랑이 조련사 사만타가 ‘인류는 이 우주에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재판을 벌이는 2인극이다.
일정 3월 5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연출 문삼화 출연 고명환, 오용, 박광현 등
2) 꽃의 비밀
네 명의 아줌마가 보험금을 타기 위해 각자의 남편으로 변장해 벌이는 사건들을 유쾌하게 그렸다. 장진 감독이 직접 쓰고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코미디 장르의 연극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일정 2월 5일까지 장소 대명문화공장 연출 장진 출연 배종옥, 소유진, 이청아 등
3)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중국 고전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를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의 비극성에 희극적 요소를 곁들여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2015년 이 작품의 무대에서 유명을 달리한 배우 고 임홍식의 공손저구 역은 중견 배우 정진각이 이어받았다.
일정 1월 18일~2월 12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연출 고선웅 출연 장두이, 하성광, 정진각 등
4) 아이다(AIDA)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던 해 토니 상과 그래미상 등을 휩쓸었던 명작으로 한국에서는 2012년 이후 5년 만에 막이 오른다.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파라오의 딸인 암네리스, 두 여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라다메스 장군의 사랑을 노래한다.
일정 3월 11일까지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키스 배튼, 박칼린 출연 윤공주, 아이비 등
◇ 전시
1) 위대한 낙서(The Great Graffiti) 전
일정 12월 9일~2월 26일 장소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그라피티(Graffiti) 전시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수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앞다투어 그라피티 전시를 여는 등 현대 미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으며 마니아층이 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팝 아트 이후 동시대를 기록하는 대표적인 예술로 자리 잡고 있는 그라피티의 역사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담았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라피티 아티스트 7인의 수준 높은 작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아티스트 중 일부는 한국을 방문해 라이브 페인팅을 선보일 계획이다.
2) 올라퍼 엘리아슨: 세상의 모든 가능성 전(Olafur Eliasson: The parliament of possibilities)
일정 2월 26일까지 장소 삼성미술관 리움
자연, 철학, 과학, 건축, 사회, 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예술의 새로운 형태를 표현한 아이슬란드계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개인전이다. 미술관이라는 인공적인 공간에서 만나는 물, 바람, 이끼, 돌 등의 자연 요소와 기계로 만든 유사 자연 현상, 거울 착시 효과 등으로 오감을 자극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세상과 세상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나의 작품을 통해 세상과 관계 맺고, 세상 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 도서
1)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 (오도엽 저 · 한빛비즈)
시인이자 르포 작가인 저자가 고집스럽게 자신의 일터를 지키며 살아가는 9명의 아버지를 만나 ‘당신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들은 대답 대신 자신들의 삶을 풀어놓는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노동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올려놓기까지의 절절한 사연이 들어 있다.
2) 희로애락 레시피 (무관스님, 혜일스님 공저 · 웜홀)
강원도 횡성의 금수사에서 함께 사는 무관스님과 혜일스님이 만든 레시피북이다. 그들은 “감정도 요리의 재료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두 스님이 직접 고안한 다양한 자연 요리 비법이 기쁨·고마움·분노·짜증·미움·슬픔·즐거움·설렘 등 각각의 감정이 가지는 색깔에 따라 담겨 있다.
◇ 영화
1) 위대한 두 예술가의 40년 우정
개봉 12월 예정 장르 드라마
감독 다니엘르 톰슨 출연 기욤 카네, 기욤 갈리엔, 데보라 프랑소와 등
근대 회화의 아버지 화가 폴 세잔과 의 소설가 에밀 졸라의 특별한 우정을 그렸다. 유년 시절부터 모든 것을 함께하며 지낸 두 사람은 서로를 동경하면서도 때론 냉혹한 평가를 서슴지 않으며 성장해나간다. 포스터에는 폴 세잔의 대표작인 ‘생트빅투아르의 산’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폴 세잔과 에밀 졸라가 서로 마주 보며 걷는 모습이 담겨 있다. , 을 연출한 다니엘르 톰슨이 16년간 제작을 염원하며 준비한 신작으로 기대를 모은다.
2) 오감이 즐거운 아름다운 로맨스
개봉 12월 7일 장르 뮤직 로맨스
감독 다미엔 차젤레 출연 라이언 고슬링, 엠마 스톤, J.K. 시몬스 등
배우 지망생과 재즈 피아니스트의 꿈과 열정 그리고 사랑을 그린 뮤직 로맨스 영화다. 주연 배우들이 노래에서부터 피아노, 연주, 탭댄스까지 대역 없이 소화하며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로 주목받은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신작으로 제73회 베니스영화제 개막작 선정·여우주연상 수상, 제41회 토론토영화제 관객상 수상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예매 오픈 1분 만에 매진을 기록하는 등 국내에서도 열기가 뜨겁다.
◇ 공연
1) 3색 공연으로 즐기는 따뜻한 12월
일정 12월 24일 , 12월 25일 , 12월 31일 장소 꿈의숲아트센터 콘서트홀
웅산밴드의 재즈콘서트 , 유터피 목관5중주단의 , 서울 페스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팝페라 가수 최의성, 소프라노 윤정인이 들려주는 등 각기 다른 색의 세 가지 공연을 선보인다.
2) 키니와 함께 떠나는 달나라 모험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압구정 윤당아트홀
연출 박찬 출연 윤효상, 유수호, 조용민, 권세봉, 박상아 등
크리스마스이브, 혼자 놀다 낮잠에 빠진 주인공 ‘감자’가 꿈속 고무줄 요정들과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싶어 하는 물고기 ‘키니’를 만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관객들은 입장할 때 받은 고무밴드로 배우들과 함께 별, 산호초를 만들어 주인공의 모험을 도와줄 수 있다.
3) 가장 행복했던 그때 그 시절로
일정 2월 5일까지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연출 한진섭 출연 남경주, 서영주, 서범석, 전수경, 김선경 등
전 세계를 사로잡은 팝의 거장 닐 세다카의 주크박스 뮤지컬 의 한국 초연 무대다. 1960년대 미국 마이애미 리조트를 배경으로 여섯 명의 주인공을 둘러싼 사랑 이야기를 중·장년 세대에게 친숙한 닐 세다카의 팝송 21곡에 담았다.
4) 반복되는 폭력, 반복되는 아픔
일정·장소 12월 6~15일 나루아트센터 소공연장, 12월 21~31일 대학로 게릴라극장
연출 이해성 출연 강애심, 이영숙, 김동완, 최유송, 유성진 등
일본군 위안부 사건과 한 여배우를 죽음까지 몰고 간 성 상납 사건 등 두 가지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지난 9년간 수요시위에 참석한 이해성 연출가의 절실함과 진정성이 녹아 있다. 제7회 대한민국연극대상 희곡상, 작품상, 여자연기상 등 3관왕에 이름을 올렸다.
◇ Exhibition
1) 태양의 화가 반 고흐: 빛, 색채 그리고 영혼 전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apM CUEX홀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새롭게 연출한 전시다. 고흐의 수작들을 디지털 영상 기술과 접목한 최첨단 전시 기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체험하도록 했다. 인상파와의 교류, 대자연, 고흐의 방, 동양의 색채, 초상, 동생 테오와의 편지 등 8개의 존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대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와치아웃 시스템을 이용한 멀티채널과 1만 픽셀 이상의 초대형 화면의 이머시브(Immersive) 시네마 등을 마련했다.
2) 최순우가 사랑한 전시품 전(CHOI SUNU’S FAVORITE)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미술학자 최순우(1916~1984)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로, 그가 생전에 아끼고 좋아했던 작품들을 글과 함께 소개한다. 평생 한국의 미를 탐색하고 박물관을 발전시키는 데 헌신한 최순우의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리다. 1층 통일신라실에서는 돌함과 뼈단지 등 일제강점기에 약탈됐다가 돌아온 문화재를, 2층 서화관에서는 김홍도서첩, 달마도 등을, 3층 조각·공예관에는 반가사유상, 달항아리 등 15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3) 코디최 개인전 CODY CHOI Color Painting: Frustration is Beautiful
일정 10월 28일~11월 20일 장소 PKM 갤러리(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40)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출품 작가인 코디최(Cody Choi)의 개인전이 10월 28일부터 11월 30일까지 PKM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11년 이후 5년 만에 개최되는 개인전으로 회화와 설치 작업 약 20 여 점이 전시된다. 특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출품 준비를 위한 기금마련 전시라는 점에서 뜻 깊은 자리다.
1980년대 중반부터 작가이자 문화이론가로서 활동하는 코디최는 현대사회의 문화정체성과 권력관계에 관해 탐구한다. 현시대 다양한 문화가 빚어내는 충돌과 간극에서 태어난 제3의 문화 혹은 혼종문화, 동시대 사회현상에 주목하며 회화·조각·설치 등의 작업으로 표현하고 있다.
LA 아트센터 칼리지를 졸업한 코디최는 LA 현대미술관, 타이페이 현대미술관, 토탈미술관 등 국내외의 주요전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현재 독일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와 프랑스 마르세유 현대미술관 등 유럽에서 순회 회고전을 진행하고 있다. 20세기 문화 지형도 (2010), 동시대 문화 지형도(2010) 등 현대문화에 관한 전문비평서를 출간했다.
◇ Book
1) 초혼 (고은 저 · 창비)
고은 시인의 3년 만의 신작 시집이다. ‘때’와 ‘곳’에 얽매이지 않는 ‘자가지무(自歌自舞)’ 정신으로 우주와 소통하는 대자유의 세계를 펼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을 아우르는 우주적 상상력과 예리한 통찰력이 담겨 있다.
2) 보고 시픈 당신에게 (김광자 외 86명 공저 · 한빛비즈)
전국 한글학교에서 늦깎이로 한글을 배우고 있는 어르신들의 시와 산문을 엮었다. 글자를 익히면서 느끼는 기쁨, 가족에 대한 사랑, 삶의 애환 등이 돋보인다. 손글씨의 느낌을 살려 원문을 그대로 옮기고, 저시력자를 위해 큰 글자로 다시 정리했다.
◇ Movie
1) 기적을 증명한 두 남자 이야기
개봉 11월 3일 장르 드라마
감독 맷 브라운 출연 데브 파텔, 제레미 아이언스, 토비 존스 등
인도 빈민가의 한 수학 천재와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영국 수학자의 특별한 우정을 그렸다. 숫자가 유일한 친구였던 순수한 수학 천재 ‘라마누잔’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해 그의 열정적인 천재성과 삶의 고뇌 등을 담았다. 라마누잔 역을 맡은 배우 데브 파텔이 해외 유수 언론에서 “실존 인물 라마누잔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연기했다”는 평을 받는 등 작품성 못지않게 그의 연기력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개봉 11월 10일 장르 드라마
감독 나가이 아키라 출연 사토 타케루, 미야자키 아오이, 하마다 가쿠 등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남자가 하루를 더 사는 대신, 세상에서 무언가를 한 가지씩 없애야 한다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영화다. 전 세계적으로 130만부 이상 판매량을 올린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제작했다. ‘세상에서 전화가 사라진다면, 당신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까요?’라는 포스터 속 문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선한 스토리 전개로 잊고 지낸 것들에 대한 소중함과 인생의 행복을 선사한다.
◇ Stage
1) 연극 재공연, 이웃사촌들의 수상한 진실게임
일정 10월 27일~11월 20일 장소 대학로 선돌극장
연출 이동선 출연 이황의, 김수보, 리우진, 곽지숙 등
지난 3월 초연돼 뜨겁게 주목받았던 극단 몽씨어터의 (작가 석지윤, 연출 이동선)가 11월 20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재공연 된다. 연극 는 치밀한 구성과 전개, 팽팽한 긴장감과 반전, 그 사이를 비집고 터지는 폭소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이웃 혹은 사람 간 의심이 한순간에 누구든지 싸이코패스로 몰아갈 수 있는 현대인의 각박한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예작가 석지윤의 독특한 언어, 이동선 연출가의 감각적인 연출에 힘입어 씁쓸하면서도 웃음 터지는 우리시대의 슬픈 자화상과 마주하게 한다.
빌라의 고양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나간다. 주민들은 벌어지는 상황을 진단하고 해결하고자 대책회의를 연다. 그런데 301호의 혼자 사는 남자가 수상하다. 사람들은 그가 분명 고양이를 죽인 싸이코패스가 틀림없다고 믿게 된다. 싸이코패스를 잡기 위한 평범한 이웃들의 위험하고 묘하게 웃긴 진실게임, 바로 연극이다.
2) 천재 시인의 삶과 사랑을 노래하다
일정 11월 5일~1월 22일 장소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
연출 오세혁 출연 강필석, 오종혁,이상이, 정인지, 최주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모던보이였던 시인 백석의 시가 뮤지컬로 재탄생한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으로 백석과 그의 연인이었던 김영한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그의 시 노랫말로 표현했다.
3) 꿈과 희망을 위해 링 위에 서다
일정 11월 1일~1월 15일 장소 디큐브아트센터
연출 노우성 출연 신성우, 송창의, 신구, 김진태, 김지우 등
영화 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로 실베스터 스탤론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며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박진감 넘치는 권투시합 장면을 무대 위에 생생하게 그려내며 2014년 토니어워드와 드라마데스크어워드에서 무대디자인상을 받았다.
4) 고모와 조카의 예측 불허 동거
일정 11월 22일~12월 11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연출 구태환 출연 하성광, 정영숙
세상을 곧 떠날 것 같다는 고모의 편지 하나에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30년 만에 고모를 찾아가는 조카의 이야기를 담았다. 배우 인생 첫 2인극 도전이라는 중견 배우 정영숙이 고모 그레이스 역을 맡아 섬세한 감정연기를 펼친다.
5)인간의 죄의식과 예술가의 고뇌
일정 11월 20일까지 장소 아트원씨어터 3관
연출 김동수 출연 남명렬, 이명호, 박지일, 김병철, 손성호 등
1995년 제26회 동인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정찬의 소설을 연극화한 작품이다. 같은 해 11월 첫 공연한 이래로 상업성이 짙은 작품들이 주목받는 공연계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통의 밀도를 담아내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서울에 몇 십 년을 산 서울사람이라도 정작 남산 팔각정에 못 가본 사람들이 많다. 63빌딩도 그렇고 창경원도 그렇다. 오히려 외국 관광객들이나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가보는 곳이다. 서울 사람들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갈 일도 없다. 그렇다고 서울이 남산 팔각정이나 63빌딩이 서울을 대표하거나 전부는 아니다. 서울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대충 알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속속들이 아는 편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필자는 이제는 서울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회원들과 함께 1년 반 동안 매주 한 차례, 3시간 씩 걸어 60개 코스를 완주했다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60개 코스란 서울시에서 만들어 놓은 서울둘레길 22개 코스, 한양도성길 4개 코스를 중심으로 나머지는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코스를 짰다. 그래서 도심 옛길 11개 코스, 대공원길 7개 코스, 한강 물길 6개 코스, 지하철 따라 걷기 10개 코스를 개발했다. 그래서 60개 코스인 것이다.
60개 코스 안에는 산도 있고 도심 길도 있다. 대공원처럼 힐링이 되는 코스도 있고 역사 길도 있다. 서울의 중심에 한강이 자리 잡고 있어서 한강 물길도 있다.
인원과 시간, 참가하는 사람들의 나이나 체력 등을 감안할 때, 가장 적당한 산행 코스가 어디냐고 물으면 바로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초보 레벨이라면 독립문역 뒤의 안산을 추천할 수 있고, 중급 수준이라면 구파발역에서 출발하여 월드컵 공원으로 걷는 앵봉산 코스를 추천하는 식이다.
가장 독창적인 코스는 지하철 노선 따라 걷기였다. 평소에는 지하로만 다니다 보니 지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지나다녔더라도 차를 타고 지나쳤기 때문에 겉만 본 셈이다. 그러나 걷기를 하게 되면 골목까지 속속들이 보게 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도 걷기가 아니면 일부러 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코스에 있으면 들어가 볼 수 있는 덤이 있다. 입장료가 있다 하여 겉만 보고 돌아서는 경우도 있는데 되도록 입장료를 내더라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 언제 다시 보러 갈 것인가.
걷기는 시니어에게 가장 적합한 운동이다. 거의 평지를 걷기 때문에 무리가 없다. 그러나 어쩌다 참여한 운동 부족인 사람들은 3시간 걷기도 부담되는 모양이었다. 1만5천보에서 2만보 정도를 걷는데다 남자들은 걷는 속도가 빠른 편이다.
걷기운동은 가장 저렴한 운동 방식이다. 특별한 장비도 필요 없고 걷기를 마친 후에 1만원 수준으로 식사와 막걸리 정도를 즐길 수 있다.
도심을 걸을 때 간혹 워킹화 대신 캐주얼 신발을 신고 오는 여성들이 있다. 멋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걷기도 3시간이나 걷는 운동이기 때문에 반드시 워킹화나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으상도 그에 맞게 입어야 한다.
서울은 아름다운 도시이다. 세계 여러 나라를 가 봤지만, 서울도 자랑할 만한 도시이다. 교통도 편리하고 안전하다. 몇 달 후 다시 가보면 또 새로운 건물이 들어 서 있을 정도로 역동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 전시
덴마크 디자인 전(DENMARK:DESIGN)
일정 11월 20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카레 클린트(Karre Klint), 한스 베그너(Hans J.Wegner) 등 11명의 거장 디자이너 작품을 만날 기회다. 로얄 코펜하겐(ROYAL COPENHAGEN), 뱅앤올룹슨(BANG&OLUFSEN)을 포함한 11개 브랜드가 참여했다. 덴마크 왕실 도자기, 케네디 대통령이 앉았던 의자, 브릭아트의 대명사 레고(LEGO) 등 덴마크를 대표하는 디자인 작품 200점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덴마크 근대 디자인의 황금기라 불리는 20세기 이후의 디자인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 전(The History of Korean Abstract Art)
일정 10월 29일까지 장소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 발굴, 수집하여 제반 연구 성과를 공개하는 아카이브 전시다. 1957년 이후 연대별로 최근 추상미술 전시와 단색화에 대한 관심까지 아우르며, 미술에 대한 관념과 형식을 뛰어넘고자 한 한국 추상미술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추상미술 단행본, 도록, 팸플릿, 주요 전시 기사, 평론, 포스터, 사진, 작품 등 각종 실물자료를 다양하게 마련했다.
◇ 도서
여행자의 하룻밤 (이안수 저·남해의봄날)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촌장인 저자가 자신이 운영하는 북스테이 ‘모티프원’에서 일어난 10년간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모티프원에서 하룻밤을 지낸 여행자들이 풀어놓은 진심 어린 이야기가 책에 온기를 더한다. 전 세계 방문객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각자의 삶을 나누는 경험을 ‘글로벌 인생학교’라 부르며 인생의 공감과 영감을 자아낸다.
마르지 않는 붓 (자유칼럼그룹 저·두리반)
지난 10년간 자유칼럼그룹이 발표한 3000여 편의 글 중에서 24명의 필진이 추린 74편을 담은 칼럼집이다.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인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추천사를 썼다. ‘마르지 않는 붓’이라는 제목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붓, 평생 녹슬지 않는 펜을 들고 살아온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이 이사장의 추천사에서 따왔다.
◇ 영화
박카스 아줌마의 인생 딜레마
개봉 10월 6일 장르 드라마 감독 이재용 출연 윤여정, 전무송, 윤계상 등
종로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성매매하는 이른바 ‘박카스 아줌마’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가난한 노인들 사이에서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로 통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주인공이 사는 게 고통스러워 ‘죽고 싶은 고객’들을 도와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죄책감으로 혼란에 빠지는 주인공 역에 배우 윤여정이 캐스팅돼 기대를 모았다.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 등에 초청돼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마음이 먼저 가 있는 곳
개봉 9월 29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이소현 출연 박삼순, 이소현, 장춘옥 등
어린 시절 함께 살던 할머니의 자살 시도 소식을 들은 손녀가 다시 할머니 집에 들어가 동거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감독인 손녀가 담아낸 할머니와의 가슴 따듯한 이야기로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으며 호응을 얻었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할머니 집을 배경으로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할머니와 손녀가 서로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에서 애틋함이 묻어난다.
◇ 공연
국화꽃 향기처럼 아련한 첫사랑
일정 10월 1~23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블루
연출 이성모 출연 박형준, 장덕수, 서지유, 정서희, 황정윤 등
2000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김하인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2014년 이후 1년 8개월 만에 선보이는 이번 공연에서는 여주인공의 입장에서 고민이 극대화됐던 이전 무대와는 다르게 남주인공 ‘승우’의 시선과 심리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왕비의 얼굴
일정 10월 11~23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연출 이지나 출연 김선영, 조풍래, 정원영, 박영수, 이창엽 등
명성황후라는 실존 인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한 창작가무극이다. 사진 찍기를 즐겼던 고종과는 달리 명성황후의 사진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 미스터리한 에피소드와 가상의 인물이 주는 신비감을 더했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일정 10월 26일~11월 6일 장소 LG아트센터
연출 장우재 출연 이호재, 오영수, 윤상화, 최광일, 이명행 등
조선시대 문인 성현(成俔)이 쓴 기행문 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으로, ‘기지’와 ‘경숙’이라는 두 대감이 왕의 질문을 갖고 금강산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장우재 연출은 “제목처럼 어두운 세상을 뒤집어 밝게 보려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햄릿으로 태어나 줄리엣을 꿈꾸다
일정 9월 30일~10월 16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김광보 출연 강신구, 최나라, 이지연, 윤나무, 황성대 등
셰익스피어의 을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여자 햄릿’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연극이다. 기본적인 가족 구도와 인물 관계는 유지하면서 햄릿의 고독과 남성적인 복수극 뒤에 숨어 있는 섬세한 여성성에 주목했다.
최근 걷기 운동을 하면서 서울에 가볼 만한 박물관과 미술관 등이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가본 곳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새로 알게 된 곳도 많다. 이런 곳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다니면 관람시간을 배정하기가 쉽지 않다. 또 입장료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입장료가 아주 비싸지 않으면 간 김에 관람을 하는 것이 좋다.
서울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대부분 강북에 위치해 있다. 신흥도시인 서초구, 강남구는 그래서 삭막한 동네다. 강남은 경부고속도로가 생긴 후 새로 형성된 도시라서 역사도 당연히 없겠지만,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짓기에는 땅값이 너무 비싼 것도 문제다.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려면 시간을 얼마나 잡을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마음먹고 제대로 돌아볼 생각을 하고 나왔다면 한나절 정도의 시간이면 큰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다. 그러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때는 작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좋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 어떤 볼거리가 있는지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
큰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둘러보고 싶다면 독립문역 서대문형무소, 이촌역 중앙박물관 및 한글박물관, 삼각지역 전쟁기념관, 한강진역 리움미술관, 풍납토성역 한성백제박물관 등을 추천하고 싶다. 경복궁역 서울역사박물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도 규모가 크다. 시청역 근처 서울시립미술관도 있다. 전철로 가기에는 경복궁역에서는 좀 멀지만 부암동 서울미술관도 가볼 만하다. 월드컵공원역에서 30분은 걸어야 하는 박정희기념관도 그렇다.
작은 박물관으로는 경복궁역 경찰박물관, 농업박물관, 경교장, 동아일보 신문박물관, 동대문역 한양도성박물관, 청계천박물관, 제기역 한방박물관 등이 있다. 양재시민의숲역 윤봉길기념관, 강서 쪽에는 허준박물관도 있다. 인사동에는 작은 미술 전시회들이 상시 열린다.
박물관은 귀한 자료를 한 곳에 모아놓은 곳으로서 국가나 지자체가 만들기도 하고 개인들이 희사해서 만들기도 한다. 역사가 있는 민족이라면 당연히 박물관이 많아야 한다. 미술관도 작가들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전시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귀중한 장소다. 작품 감상을 제대로 하려면 전시 관련 홍보물이나 작가소개 등을 미리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너무 빨리 변하고 바뀌는 세상이라 그런지 요즘 사람들은 멀쩡한 물건들도 주저 없이 내다버린다. 구식이라거나 공간을 차지한다는 게 이유다. 아파트 같은 공동 주택에서는 공간 활용이 빤하기 때문에 옛 물건들을 무작정 쌓아둘 수 없어 버리기도 한다. 다듬잇돌 등과 같은 옛날에 흔하던 물건은 다 내다버려서 이젠 골동품에 속한다. 혼수용품으로 집집마다 있던 재봉틀도 사라진 지 오래다. 옛 물건들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옛것들을 그나마 볼 수 있는 곳이 박물관이다. 생활 속에서 친숙하게 봐왔던 것을 보는 시니어들과 어디에 쓰는 용도인지도 모르고 보는 젊은 세대들과 관람하는 느낌은 다르겠지만 각 세대가 공감하고 소통하기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올 가을에는 산책과 함께 박물관, 미술관 나들이를 해보자.
경계의 떨림이 느껴지는 눈빛이 입을 열었다. 머리에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한다며 가벼운 질문에도 얼음 위를 걷는 듯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누군가 알아봐 주는 것도, 맞서는 것도 이제는 ‘정신 사납다’고 표현하는 이 사람,
코디 최(최현주 崔玄周·55).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대나무 위 무림고수를 만나고 온 기분이 바로 이런 느낌인가 보다.
코디 최란 이름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다. 그를 꼭 만나야 하는 이유 세 가지가 생겼다. 어려운 문화이론을 귀에 쏙쏙 들어오게 하는 강의실력자. 현재 유럽에서 회고전을 열 정도로 유명한 미술 작가. 마지막으로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됐다는 점이다. 문화이론을 가르치는 미술 작가. 이론과 실기를 엄연히 다른 분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에서 그런 게 가능한 능력자가 궁금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대외적으로 직업이 두 가지입니다. 미술 작가 겸 문화이론가 아니면 교수. 학교를 졸업하고 작품 활동과 강의를 거의 동시에 시작했어요. 학교에서는 이론 강의를 주로 하고 밖에서는 미술 작품 활동과 전시회 하면서요. 작가로 한 30년, 강의는 27년째 하고 있어요.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뉴욕대학교(NYU)에서 강의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줄곧 미술대학 교수였던 코디 최. 한국에서는 문화이론을 가르치다 보니 언론정보대학이나 언론학부, 건축디자인학과, 공대, 국제대학 등에서 강의 요청이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그곳에서 재능을 발견하다
코디 최는 미술 세계에 첫발을 디딜 때만 해도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20대 초반까지 한국인이던 코디 최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재학 시절 집안 사정으로 이민 길에 올랐다.
“그때 저는 80학번 어린 대학생이었습니다. 모든 게 불안한 시대였죠. 광주민주항쟁, 학교도 오랫동안 휴교하고요. 1학년 내내 서너 달 수업했을까요. 2학년에 올라갔어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어요. 한국에 있는 것도, 그렇다고 미국에 가는 것도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 가자마자 막노동 같은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코디 최. 그러면서 그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공부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공부하기 싫어서 도망 다녔는데(웃음) 미국에서는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야간대학에 다녔어요. 한 학기 등록금 몇 십만 원만 내면 수업이 거의 무료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사회학을 계속하겠다는 마음이었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삶. 그때 조금이라도 피곤을 달래주는 것이 바로 일반교양으로 듣게 된 미술 과목이었다.
“전공과목 외에 일반교양수업 중에서 미술 과목 하나를 들었어요. 너무 피곤해서 숨 좀 쉬려고요. 수업시간에 들어가서 낭만을 좀 느끼고 싶었나 봐요.”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관심 갖고 바라봐 주는 교수들이 생겨났다. 제대로 된 대학교에 입학하겠다는 목표가 뚜렷해졌을 때 코디 최를 유심히 봐 왔던 상담 교수가 미술대학을 권유했다. 한국에서 붓 한 번 잡아 보지 않은 사람에게 미술이라니.
“미술이요? 저는 돈이 필요합니다. 돈 버는 전공을 선택하고 싶다고 교수에게 말했더니 요즘 디자인 분야가 돈을 많이 번다고 말해 주더군요. 그러면서 예술대학으로 유명한 LA 아트센터 칼리지(Art Center College of Design, Pasadena)에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본격적으로 디자인과 순수미술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국제무대가 주목하다
입학 초기 디자인을 전공한 코티 최는 점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뭔가 불편했어요. 잘 안 맞고 힘들었어요. 우선 언어가 자유롭지 않았고 이해하기도 어려웠어요. 그리고 또 내 나라가 아니니까. 모르는 곳에 가 있으면 불안하잖아요. 눈치도 보게 되고요.”
그 불편함은 위장병으로 나타났다. 심리적인 불안과 불편함, 한국과 미국의 음식 차이 등 여러 가지가 요인이 합쳐지면서 먹기만 하면 체했다. 책가방에 넣고 다니며 수시로 꺼내 먹던 분홍색의 현탁액 소화제 펩토비스몰을 이용해 문화 정체성의 혼동과 불안을 작품으로 표현하게 됐고 그 신선한 충격은 국제무대에 코디 최를 알리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90년대는 초 뉴욕에서 꽤 많이 주목받는 작가였고, 한국에도 이름을 좀 알리던 시기였어요. 한국의 국제화랑 전속 작가로 10년 동안 활동했어요. 2, 3년에 한 번 정도는 한국에서 전시했습니다.”
미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뉴욕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1990년대 초 NYU에서 강의 제의가 왔다. 강의에 대한 학생들 반응도 좋았다. 그러다보니 ‘Adjunct professor’ 즉, 강의만 전문으로 하는 교수로 10년 넘게 있었다.
“2002년 이화여대에서 NYU 미술대 학과장한테 한 학기 초빙교수를 보내 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제가 한국 출신이니까 가 보지 않겠냐며 권유하더군요.”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가 시작됐다. 뉴욕과 유럽을 돌며 활동하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뭔가 복잡해졌다. 개인사정이 생겼고, 50대를 바라보던 상황에 미국생활이 외롭고 모든 게 지루해진 시점이었다.
“2002년에 이화여대에 초빙교수로 와서 한 한기 동안 외국인 교수 기숙사에서 생활하다가 뉴욕으로 돌아갔어요. 그때 내가 더 늙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강의를 하며 사는 것도 내 인생에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2004년 한국에 들어온 코디 최는 2년 전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미국 사회에 적응하느라 20년여 고생했는데 또 다시 한국 사회에 적응해야 했다.
“미국과 한국의 대학 시스템이 달라서 힘들었어요. 저도 어렵고 한국의 대학도 저를 받아들이기 어려웠고요. 문화 차이였던 거죠. 제가 한국에 살다가 미국에서 겪었던 문화적 충돌이 한국에 오니까 다시 또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이해가 돼요. 한국에 돌아왔을 당시 30대도 아니고 50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학과장이나 주임교수쯤 할 나이에 강의만 하는 교수를 하겠다고 온 거죠. 근데 이제는 괜찮아요. 마음은 자유로워졌는데 최근 몇 년 동안 그 부분이 좀 억울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세상에 바랄 것도 없고 욕심을 버려야 하는 시간이 온 거 같아요.”
코디 최, 유럽 회고전은 순항 중
현재 그의 작품은 유럽 각지를 돌며 ‘코디 최 컬처 컷(CODY CHOI Culture Cuts)’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고 있다. 작년 5월부터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할레(미술관)에서 시작해 프랑스 마르세유현대미술관 전시도 8월에 끝났다.
“올해 12월에는 스페인 렉토레이트 대학 미술관과 살라 모레노 빌라 전시관 두 곳에서 동시에 회고전이 있을 거예요. 내년 4월엔 독일 켐니츠 국립 미술관으로 가요. 제가 1986년부터 했던 작품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90점 정도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 얘기를 듣는 동안 변신 안 한 슈퍼맨과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문화이론을 가르치고 이런 저런 편견 때문에 피곤하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비행기 타고 저 멀리에 가면 화려한 망토 두른 코디 최가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나이 들어서 조용히 있고 싶었는데 한 3~4년 전 쯤 뒤셀도르프 미술관 관장이 다른 일로 한국에 왔다가 미술계에 수소문했다더군요. 최근 서구 미술 시장에 동양 작가, 특히 중국 작가의 활동이 활발한데 그런 관점에서 쭉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부터 뉴욕에서 활동하던 아시아 작가 코디 최라는 사람이 있었고 재조명해 보고 싶다고 했어요. 고마운 마음으로만 생각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저와 함께 작업하던 마이크 켈리 파운데이션의 평론가 존 워시맨과 프랑스의 퐁피두센터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마리드 부르졸라가 합세했습니다. 그렇게 2,3년 준비해서 유럽 순회 회고전이 기획된 것이죠.”
현재 그의 순회 회고전은 미국과 중국에서도 전시 일정을 조율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계획은 아직 없다고 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100% 안 될 거라 믿었다
코디 최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이완이라는 젊은 작가와 함께 대표 작가가 됐다는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이대형이라는 큐레이터가 저에게 차 한 잔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만나 보니 20년 전쯤 제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라더군요.”
이대형씨는 ‘2017 베니스 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발탁돼 한창 작가 찾기에 골몰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대형씨가 나에게 와서 지금 베니스 비엔날레에 원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완이라는 젊은 작가와 함께 이 프로젝트를 함께하면 어떻겠느냐고 묻더군요.”
입으로는 감사하다 말하면서도 100%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국제 행사에 나가기엔 이완씨가 어렸고 무엇보다 한국 미술계에서 코디 최 자신에게 손들어 줄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됐다는 겁니다. 안 될 줄 알고 주위에 알리지도 않았어요.”
최근에 와서 이대형씨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작가 선정 작업을 하면서 젊은 작가와 함께할 연배 있는 작가를 찾아 조언을 구하기 위해 영국까지 날아가 사람을 만났다고 말이다.
“본인 생각에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밀려서 한 번도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코디 최가 적격이라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10명 중 6명은 말리더라는 거죠. 그럼에도 본인 의지를 믿었다는 말에 정말 많이 고마웠습니다.”
코디 최가 베니스 비엔날레 대표 작가가 됐다는 소식에 유럽 미술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원래 내년 4월로 잡혀 있던 독일의 한 미술관에서 베니스 비엔날레 딱 끝나기 일주일 전에 전시를 시작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또 다른 독일 화랑에서는 베니스 비엔날레 시작하고 한 달 후인 6월 24일 코디 최의 전시를 열겠다고 날짜까지 못을 박았다. 사실 코디 최의 작은 바람이라면 아내와 함께 평화롭고 조용히 사는 것. 그런데 베니스 비엔날레 덕(?)에 당분간 그 바람은 잠시 묻어두어야 할 것 같다.
미술은 눈으로 보고 온몸으로 느끼는 예술이다. 그것이 코디 최의 직업 중 큰 영역을 차지한다면 피곤하지만 즐기는 것이 순리 아닐까?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는 이들에게 시원하게 뭔가 보여주시길. 부탁해요, 코디 최!
‘펩토비스몰(소화제)’ 수만 통으로 적신 화장지를 뭉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패러디한 . 세계가 코디 최를 주목하게 된 대표작 중 하나다.
>>코디 최(최현주)
LA 아트센터 칼리지 학사,
1994~2004년 뉴욕대학교
Adjunct professor
(강의전문교수), 2002년 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 前문화창조아카데미 지식융합 감독, 연세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의,
2017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대표 작가,
저서
◇ 전시(Exhibition)
앤서니 브라운 전-행복한 미술관 (Anthony Browne Exhibition-Happy Museum)
일정 9월 25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림 200여 점을 만날 수 있는 대규모 전시다. ‘행복한 미술관’이라는 부제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6월 개막 첫 주에 1만여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남녀노소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그림들과 더불어 앤서니 브라운의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행복한 도서관’ 코너도 마련돼 있다. 전시장에서 관람한 그림들을 책을 통해 다시 감상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 좋다.
2016 광주비엔날레 ‘제8기후대(THE EIGHT CLIMATE)’
일정 9월 2일~11월 6일 장소 광주 비엔날레전시관, 아시아문화전당, 무등현대미술관 등
‘제8기후대’라는 콘셉트로 열리는 전람회인 만큼 전시 공간마다 온도, 밀도, 분위기, 기압 등 다양한 기후 환경을 연출한다. 절제된 색과 요소들로 표현한 이번 공식 포스터에는 예술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담겨 있다. 방향성, 발전, 흐름, 변화하는 움직임, 목표를 향한 전진 등을 의미하는 화살표를 통해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37개국 97팀(119명)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 도서(Book)
세종의 서재(박현모 외 11명 공저ㆍ서해문집)
여주대 ‘세종시대 문헌연구팀’의 심층해제문 중에서 ‘세종시대를 잘 드러내는 문헌’과 ‘세종을 만든 책’을 선별해 담았다. ‘1부-세종시대가 만든 책’, ‘2부-세종을 만든 책’으로 크게 분류해 등 12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헌별로 전문가들의 해제와 더불어 그 책이 세종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도넛을 구멍만 남기고 먹는 방법(오사카대학 쇼세키카 프로젝트ㆍ글항아리)
도넛을 구멍만 남기고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상식을 의심해 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책이다. 수학, 공학, 미학, 역사학, 법학, 화학, 경제학, 정신의학 등 다양한 학문의 관점에서 ‘도넛의 구멍’이라는 개념에 대해 파헤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문과 탐구라는 영역을 더 흥미롭게 접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 영화(Movie)
평범한 50대 주부가 찾은 인생의 행복
개봉 9월 29일 장르 드라마 감독 미아 한센 러브 출연 이자벨 위페르, 로만 콜린카, 에디뜨 스콥 등
2016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프랑스 신예 감독 미아 한센 러브의 신작이다. 한 가정의 아내·엄마이자, 존경받는 교사로 평범하게 살던 50대 여성이 갑작스러운 남편의 고백 이후 불안한 삶 속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평온했던 일상이 파괴되며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을 마주하는 주인공 역에 세계 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니스)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던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캐스팅돼 기대를 모았다.
폭탄 달린 경성행 열차에 탄 두 남자
개봉 9월 7일 장르 액션, 드라마 감독 김지운 출연 송강호, 공유, 한지민, 엄태구, 신성록 등
1920년대 말, 일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조선인 일본 경찰의 갈등과 우정을 그렸다. 김지운 감독은 과 에 이어 이번 영화로도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김 감독과 네 번째 영화를 작업하는 배우 송강호가 조선인 일본 경찰 역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흥행작 의 주인공 공유가 의열단의 리더를 맡아 미묘한 두 남자의 관계를 연기한다.
◇ 공연(Stage)
부를수록 그리운 어머니의 사랑
일정 9월 10일~10월 30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연출 이종훈
출연 고두심, 김영옥, 이홍렬, 이종원 등
1998년 세종문화회관 초연 당시 전회 매진을 기록한 작품으로, 1990년대 대표 악극 중 하나다. 올해는 원작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해석과 세련된 무대 연출로 50일간 공연한다. 이전보다 젊은 배우들을 캐스팅해 그간의 신파형 악극을 탈피하고, 우리 춤과 노래를 보강했다.
아름다운 초상화에 가려진 욕망
일정 9월 3일~10월 29일 장소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연출 이지나
출연 김준수, 박은태, 최재웅, 홍서영 등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 소설 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불멸의 아름다움을 얻고자 했던 도리안의 삶과 깨달음을 노래한다. 체코 프라하의 이국적 풍경에 몽환적인 색감이 어우러진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20년 전 사라진 그날의 사건
일정 11월 6일까지 장소 충무아트홀 대극장 연출 장유정 출연 유준상, 지창욱, 오만석, 오종혁 등
고(故) 김광석이 불렀던 노래와 더불어 청와대 경호관이라는 인물을 통해 펼쳐지는 미스터리한 전개가 돋보이는 창작 뮤지컬이다. 2013년 초연부터 참여한 배우 유준상과 지창욱을 비롯해 장유정 연출, 장소영 음악감독, 신선호 안무 감독이 함께해 완성도를 높였다.
음악으로 만나는 서울
일정 9월 8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황준연 출연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서울의 620년 역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관현악 연주회다. 북한산, 청계천 광통교 서화시장, 보신각, 전차 등 서울이 걸어 온 자취와 미래의 모습을 담은 음악들을 감상할 수 있다. 자동차가 달리고 고층빌딩으로 가득한 오늘의 서울, 산과 들, 강이 어우러진 옛 한양의 모습을 담았다.
“팔다리는 물론 얼굴에까지 뜨듯한 오줌이 그대로 튀어요. 얼굴은 똥, 오줌 범벅이 돼도 ‘똥은 흙, 오줌은 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은 이때가 사진 찍기 가장 좋은 때거든요.” 7개월 동안 돼지의 생활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박찬원(朴贊元·72) 사진작가가 겪은 일이다. 그는 돼지만 사진을 찍어서 ‘사진작가는 미친놈이다, 아니면 내가 전생에 돼지였는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단다. 확실한 것은, 그가 사진에 미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제2 인생의 즐거움과 사진예술 인생의 새로운 가치를 들어본다. 글 사진 김영순 기자 kys0701@
이제는 사진작가라고 불러야 한다. 과거에는 사장, 한때는 교수라고 불렸던 이다. 바로 박찬원 사진작가의 이야기다. 1944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대표, 삼성그룹 부사장을 지내면서 전 세계로 뻗은 거대한 재벌 기업의 의사결정권자로 일했고, 코리아나화장품 사장을 끝으로 기업에서 은퇴한 후에는 성균관대 석좌교수로 교육자로서의 삶도 겪어 봤다. 그러나 40년을 직장인으로 산 그가 인생 후반전에 도착한 곳은 사진이라는 예술이었다. 그는 지난 6, 7월에 걸쳐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이포’와 은평구 녹번동 ‘서울혁신파크’에서 두 번의 ‘돼지’ 테마 전시회를 마친 뒤였다. 지난 8월에는 12일간 종로구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숨 젖 잠’이라는 초대전도 열었다.
“원래 초대전을 여는 걸 사진 배우기 시작한 10년째인 2018년에 계획했는데 기회가 일찍 왔어요. 문래동에 위치한 대안공간 이포가 원래 실험적인 젊은 작품들을 전시하는 곳인데 내 작품을 보고 좋다고 해서 열게 됐죠.”
‘예술은 돈이다’라고 이야기한 피카소의 말이 생각났다. 박 작가한테 전시 작품에 ‘빨간딱지’ 가 붙어 있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물었다.
“전문 사진가라면 작품이 판매되어야 하죠. 처음 판매되었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2011년 코엑스 CEO 특별전으로 기성 작가들과 호주에서 사진전을 열었을 때에요. 가슴이 쿵쾅거렸어요. 구매한 그분께 정말 감사했고 부담도 느꼈어요. 아마추어는 전시만 하면 되지만 프로는 팔려야 하죠. 작가와의 친분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좋아야 사는 거잖아요. 나중에 누가 샀는지 알아보지 말 걸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작품이 팔리고 보니 진짜 작가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웃음)”
작가는 작품이 판매될 때 비로소 첫걸음을 떼는 것이다.
누드 사진을 계기로 사진예술에 눈 뜨다
박 작가와 사진과의 인연은 올해로 8년째다. 2008년에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강연을 듣다가 미술과 사진을 배우면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미술과 사진 둘 다 지금도 꾸준히 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시 ‘본업’은 사진이다.
“처음부터 사진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사진작가 조세현 선생이 가르쳤는데 하루에 인물, 풍경, 누드, 종합으로 테마 하나씩을 세 시간에 걸쳐 네 번 찍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세 번째 날인 누드 사진을 찍은 날, 내가 대상을 받았어요. 그때 썼던 카메라들이 모두 삼성 카메라였는데, 조세현 작가가 제 걸 보더니 ‘이건 카메라 광고로 써도 손색이 없겠다’라고 말하더군요. 그 사진이 누드의 실루엣만 찍은 건데, 저는 마케팅 쪽을 했기 때문에 보는 눈은 좀 있다고 자부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곳에 가서 엎드려서 찍었는데 성공적이었던 거죠. 그때 ‘야, 이거 할 만하네’라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박 작가는 이때 때로는 초보도 프로 못지않은 명작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인생 자체가 작품 같은 박찬원
박 작가는 코리아나화장품에서 은퇴하고 성균관대에 석좌교수로 초빙되어 마케팅을 강의하게 됐다. 그런데 하다 보니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젊은 박사들은 경력을 위해서 강의를 맡는 게 중요한데 나는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아, 내가 할 자리가 아니구나’ 싶어서 한 3년 하고 나서 그만두었어요. 그리고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2010년에 상명대 예술디자인 대학원에 멋모르고 지원했죠. 그러면서 고생 엄청 했어요.”
사진을 배우러 들어갔는데, 정작 대학원에선 사진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기술은 이미 대학교에서 배웠다고 생각하고 예술가가 되는 훈련을 시켰기 때문이다. 여전히 초보였던 그로서는 많이 힘들었지만 그러한 훈련 덕분에 예술, 예술가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다고 말한다. 인생 후반기의 보람을 느끼는 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 쓰는 언어, 노는 물도 달라졌다. 그리고 그간 고생한 것이 아까워 졸업하자마자 라는 책도 썼다. 이제 박 작가의 목표는 영원한 현역이다.
“사진작가를 업으로 가는 건 정해졌습니다. 제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는 게 목표예요.”
작품의 진정성을 추구하기 위한 100일 촬영
박 작가는 하나의 주제에 100일 촬영을 목표로 작업하는 순수 사진가로 ‘생명의 의미’를 담았다. 현재 작품 세계의 주요 테마는 ‘돼지’와 ‘염전’이다. 얼마 전에 쟁쟁한 기성 작가들과 함께 전시했던 테마도 ‘돼지’를 소재로 한 ‘꿀 젖 잠’이라는 제목이었다. 각각 ‘꿀’은 돼지가 내는 소리, ‘젖’은 돼지의 젖, ‘잠’은 돼지의 영혼을 사진으로 잡아내고자 한 시도다.
‘돼지’ 테마는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촬영할 수 있는 곳을 섭외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그것도 운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겨우 섭외한 양돈장에서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매주 2박3일씩을 현장에서 먹고 자며 촬영했다.
“똥 냄새 엄청나죠. 지금도 자동차 트렁크를 열면 그 냄새가 날 정도예요. 젖 사진을 찍을 때는 얼굴에 똥이 다 묻어요. 그리고 돼지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긴장해서 오줌을 싸고요. 그런데 돼지가 오줌을 싸면 움직이지 않아서,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있어요. 상황이 이런데 막상 사진을 찍을 때면 냄새가 안 납니다. 의식을 못하는 거죠.”
100일 촬영하기를 한다고 했을 때, 2주에 한 번 간다고 하면 2년이 걸리고 1주에 한 번 가면 1년이 걸리는 긴 시간이다. 당연히 사진 촬영 때문에 다른 모임은 일절 참석할 수 없게 된다. 얼마나 사진에 올인하여 새로운 즐거움을 갖게 됐는지를 알 수 있다.
“막상 셔터를 누르는 시간은 얼마 안 걸려요. 나머지는 다 생각하는 시간이죠. 그 시간이 주제가 구체화되는 지점입니다.”
3년 동안 염전 사진을 찍었다 소금밭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염전 안에는 삶과 죽음이 모두 담겨 있더라고요. 처음으로 빛을 느낀 곳이기도 합니다. 바닷물이 노구(老軀)를 끌고 찾아와 햇볕에 몸을 맡기면 육신은 소금으로 남아 생명의 물질이 되고, 영혼은 수증기가 돼 다른 세상으로 날아갑니다. 죽음과 탄생이 공존하는 공간이죠. 나비, 하루살이, 거미 등을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어요. 눈을 뜨고 마음을 여니 새로운 세상이 보이는 듯했어요.”
박 작가에게 염전은 성지와도 같다. 처음으로 사진다운 사진을 찍었고 많은 고민을, 많은 생각을 했던 곳이다.
날것 그대로, ‘생명’을 사진에 담는다
어디를 가나 그는 연장자다. 전문작가도 사진을 정리할 나이 65세에 사진을 시작했다. 아랫사람보다 10년 이상 차이가 난다. 나이가 많다고 대접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체력의 한계, 감각의 한계가 핸디캡이 될까 봐 그래서 항상 조심스럽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몸과 마음이 따라 주지 않는다. 최근 사진들은 리터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런 기술적인 부분까지 직접 다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박 작가는 리터치(보정)를 잘 못하고, 가급적 안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어쩌면 그러니 제 작품을 어설프지만 인정해 주는 것일 수도 있어요. 리터치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보면 다 알거든요.”
가공이 거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사진. 그래서인지 박 작가의 사진에는 유난히 담백한 맛이 있다. 그것은 다큐로서의 시선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게 그냥 찍는 게 아니고 사람과 사귀어야 하고 동물하고도 사귀어야 하고 그런 것들을 해야만 개념도 잡히는 거죠.”
박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세계의 궁극적인 지점은 ‘생명’이다. 다음 테마는 비밀이지만 역시 그가 추구하는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미 결정됐다고 하며 10월 부터 착수한다.
“작품 사진이 좋을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답은 간결했다.
“즐기면서 찍을 때 좋은 사진이 나오고, 힘을 빼고 작업할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것은 진리예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
“우리 집사람은 수채화를 그려요. 그러니 호흡이 딱 맞아요. 저도 처음에 대학원을 갈 적에 그림으로 가느냐 사진으로 가느냐 고민이 많았는데, 그림은 앉아서 하니까 건강에 도움이 안 될 것처럼 보였어요. 반면 사진은 움직이면서 찍으니까 활동적이어서 그쪽을 선택한 것도 있죠. 지금은 더 건강해진 느낌이에요.”
상당수의 시니어들은 뭔가를 새롭게 하려고 해도 늦게 시작하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있다. 그래서 감히 못하는 경우 많다. 그러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해요. 의외로 나이든 예술가들이 자기 명성만 가지고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젊은 친구들은 장래가 두려워서 방향을 잘 못 잡고 몰입을 잘 못하죠. 난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됐고 다른 일이 없으니까 필요한 건 용기였죠.(웃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기에 박 작가 혼자 히죽 웃는다. 제2 인생도 용감한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영원한 현역을 다짐하다
그는 나이를 먹어서 가져야 할 것은 용기를 내는 것이라는 걸 재차 강조했다. 자신도 주변에 추천은 많이 해줬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기를 못 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해야 하는데 취미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나이 들어 자기 자신의 역량이나 잠재력을 발견하게 되는 중요한 관점도 거기에 있었다.
“호기심, 그리고 노력인 거 같아요. 그림도 사진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재능 없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제가 찍는 정도의 사진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시도를 안 하는 거라고 봅니다.”
다소 어리석은 질문 같지만 인생에서 가장 흥분되는 때가 언제인지 물어 봤다. 그의 대답은 즉각적이고, 예상한 그대로였다.
“바로 지금이지! 즐거워!”
자기만의 인생을 사는 사람, 박찬원 작가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이었다.
“2018년은 사진을 시작한 지 10년째 되는 해예요. 10년간 사진 공부를 하고, 10년간 사진가로 활동하겠다는 계획을 잡았어요. 우리 나이 65세에 사진 공부를 시작했고, 75세에 나만의 작품으로 데뷔전을 하고 85세에 마지막 사진전과 사진 책을 발간할 작정입니다.”
20여 년 전, 미술평론가 이주헌(李周憲·55)은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유럽 미술관을 순례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은 그동안 14만 부가 넘게 팔리며 대중에게 꾸준히 사랑받았고, 이를 발판으로 그는 미술평론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지만, 당시 기저귀조차 떼지 못한 한 살, 세 살배기 아이들을 데리고 먼 길을 떠났던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1993년 언론사 기자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무렵, 그는 미술평론가로서 대중에게 인정받을 만한 ‘자격’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관련 학위를 더 쌓아 대학교수가 되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그는 ‘책’이 그 자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술평론가로서 활동하려면 기반이 되고 신뢰하게 할 만한 계기가 필요했죠. 때마침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졌는데, 국내에는 서양 미술관을 소개한 책이 단 한권도 없더라고요. 그 전에 일본 서점에 갔더니 그런 책이 10~20권 정도 있었어요. 우리나라 대중에게도 그런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해외에 가면 유명한 미술관을 안 들를 수 없는데, 그러면 아무런 정보 없이 가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는 알고 가는 것이 좋거든요. 그런 면에서 해외 미술관 관련 책을 사람들이 선호할 수 있으리라 믿었죠.”
책을 쓰기 위해서라면 혼자 가거나 미술 관련 전문가와 함께 가는 것이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온 가족이 함께, 그것도 한 살, 세 살,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손이 많이 가는 두 아이를 데리고 생고생(?)을 자처한 이유가 궁금했다.
“여행 가는 사람들을 위해 미술관에 대한 책을 쓰더라도 막상 독자가 미술을 어렵고 낯설게 느낀다면 책에 손이 덜 가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만 해도 미술에 대한 관심은 음악에 비할 수 없이 낮았죠. 무엇보다 미술을 쉽게 접하도록 해야 했고, 그러려면 책을 부드럽게 꾸며야 했어요. 젊은 아빠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배낭여행을 가면 당연히 좌충우돌 사고가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누구나 예상하고 재미를 느낄 만한 에피소드들을 넣어 준다면 쉽게 책을 다 읽어낼 수 있고, 다 읽고 나면 미술을 어렵지 않게 느낄 것 같았죠. 물론, 바삐 살며 가족에게 소홀했던 것을 만회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요.”
‘미술’, 공부하지 말고, 친구처럼 다가가라
그가 일종의 모험을 감수하며 자신의 체험을 통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는 대중이 미술에 친근하게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여전히 미술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이들에게 그는 두 가지를 조언한다. 첫째, 미술을 알려고 하지 말고 먼저 느끼라는 것이다.
“중요한 건 느낌이에요. 대부분이 오해하는 게, 예술적 지식이 없으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는 게 중요하다고 느끼고 공부부터 시작하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맞지만, 그렇다고 아는 만큼 꼭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아이들이 어른보다 지식이 모자란다고 해서 덜 느끼는 것은 아니잖아요. 길가에 핀 꽃을 보고도 어른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 꽃을 보고 강렬한 느낌을 받아 꼼짝을 못할 수 있어요. 아주 좋아할 수도, 슬퍼할 수도 있는데 그게 바로 감상이거든요. 감상이란, 느낌을 얻는 거예요. 내가 어떤 대상을 보거나 듣거나 지각해서 내 마음에서 느낌이 일어나고 그 느낌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는 경험을 하는 거죠.”
그는 미술 감상은 지식을 넓히기 위한 행위가 아닌 느낌을 얻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지식을 넓히려면 지금 당장 도서관에 가서 열심히 책에 밑줄 긋고 열심히 공부하면 그만이라는 것. “어떤 사람을 아는 것과 친구가 되는 것이 다르듯, 미술을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며 그는 줄곧 미술을 ‘친구’에 비유했다. 미술을 친구 사귀듯 하라는 것이 그의 두 번째 조언이다.
“세상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미술 작품도 다 알 필요 없어요. 아무리 인기 있는 사람이라도 내가 끌리지 않으면 사귀지 않잖아요. 피카소나 고흐의 작품처럼 유명하다 해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먼저 내가 어떤 그림에 끌리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죠. 풍경화든, 추상화든, 인물화든 좋아하는 게 뭔지 알고 그 위주로 즐기고 보면 돼요. 그러면서 내가 공부를 안 해도 점점 아는 것들이 생겨요. 그러다 관련된 글을 읽거나 책을 보면 확 이해되고 더 깊이 알게 되죠. 유사한 작가나 작품도 찾게 되고요. 깊어지면 넓어지는 건 순간이거든요. 미술은 그렇게 다가가고 공부하는 거예요.”
그는 책을 보고 하는 미술 공부는 관념의 연장선이지만, 그림을 느끼고 감상하는 것은 관계의 연장선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중·장년에게 미술 감상은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좋아하는 작품을 발견하는 건, 친구가 생기는 거예요. 나이 들수록 나를 든든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친구잖아요. 대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힘들고 슬플 때 음악을 듣죠.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예술의 기본적인 기능이 있다고 하면 그건 ‘위로’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전환되는 것처럼 좋아하는 그림을 보면 힘이 나고 위로받을 수 있어요. 좋아하는 그림 전시가 열리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기분으로 가서 보고, 해외여행을 할 때도 멀리 사는 친구를 보러 가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작품을 찾아가 보면 반갑고 즐거워지죠. 저도 힘들 때 마티스나 케테 콜비츠의 그림을 보면서 용기를 얻곤 해요.”
20년 후, 여섯 가족이 함께한 유럽 미술관 여행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미술은 그야말로 ‘절친’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그 못지않게 미술을 가장 친한 친구로 만든 이들이 있으니, 바로 그의 아들들이다. 20년 전 함께 여행을 다녀온 두 형제와, 그 이후 태어난 셋째까지 세 아들은 모두 미술을 전공하고 있다. 그는 책이 나오고 20년 후, 세 아들과 아내, 그리고 막둥이 딸을 데리고 다시 유럽 미술관 순례 길에 올랐다. 늘어난 식구만큼이나 이전과는 사뭇 다른 여행이었다.
“가자마자 달라진 걸 느꼈죠. 예전에는 제가 짐을 가장 많이 들었거든요. 젖병, 기저귀, 유모차까지 보통 짐이 아닌 데다가, 아이들 자체도 짐이나 다름없었죠. 근데 이번에 가보니 애들이 크고 힘도 세져서 제 짐도 들고 다니고 알아서들 잘 다니니 아주 편했어요. 스마트폰 지도 앱을 보고 저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더라고요. 무엇보다 전에 갔을 때는 밤 문화라는 것을 상상도 못 했는데, 이번엔 유명한 펍(pub)이나 바(bar)에 가서 아이들과 이야기도 하고 즐기니까 진짜 여행 온 기분이 들었어요. 여러모로 아이들이 나와 아내를 케어해 주니까 도움이 많이 됐고, 여행의 질 자체가 달라졌죠.”
그의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라면 한 번쯤 그처럼 온 가족이 유럽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생각해 볼 것이다. 경험자로서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부탁했다.
“가족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워크’와 ‘프로그램’이에요. 어디를 가서 뭘 즐길 것이냐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지낼 수 없다면 의미 없는 여행이 되고 말죠. 가족끼리 가는데 무슨 프로그램을 짜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녀들이 크고 나면 각자 취향에 따라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다를 거거든요. 사전에 가족끼리 합의하고 배려해서 프로그램을 짜면 수월한데, 막상 가서 정하려고 하면 밥 한 끼 먹는 거로도 트러블이 생길 수 있어요. 현장에 가서 이러자 저러자 하지 말고, 미리 양보하는 마음을 갖고 서로를 배려해 플랜을 짜면 기분 좋게 여행을 즐길 수 있죠.”
미술관을 테마로 여행을 갈 계획이라면 유명한 명소보다는 작고 한적한 곳을 찾아갈 것을 추천했다.
“루브르처럼 유명한 곳을 가는 것도 좋지만, 그러다 보면 미술관의 참맛을 느끼지 못할 수가 있어요. 관광객이 몰려 복잡하고, 입장하는 데만 시간도 한참 걸리기 때문에 정신없이 관람하고 지치기 일쑤죠.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 미술관을 가족과 산책하는 기분으로 간다면 더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거예요. 최근 자동차 테러가 있긴 했지만, 제가 가장 추천하는 곳은 프랑스 니스예요. 니스에 가면 마티스나 샤갈미술관도 있고 인근에도 좋은 미술관이 많아요. 주변 풍경이나 밤바다도 참 아름답죠. 반대로 조금 복잡하더라도 비엔날레 기간엔 베네치아에 가면 시끌벅적하지만 워낙 보고 즐길 거리가 많아지는 시기니까 한 번쯤 가보면 좋아요.”
그는 유럽 어느 지역을 가도 가 볼 만한 미술관 몇 곳은 있기 때문에 미술관을 테마로 계획을 짜면 여유롭고 감성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으리라 추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을 권하는 데는 ‘편안함’에 있었다. 가족과 떨어져 여행을 가면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데 그런 염려 없이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한다.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그에게 언제 또 온 가족이 여행을 갈지, 그리고 10년 후에도 책의 개정판이 나올지를 물었다.
“글쎄요. 10년 뒤에도 개정판이 나온다는 게 쉽지 않으리라 보지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또 다른 방향으로 꾸며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그 자체로도 무척 고마운 일이고요. 가족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해야겠죠. 근데 아이들이 크고 나니까 각자 바빠요. 친구들과 여행도 가야 하고 자기 계획이 있으니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죠. 그래도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자연스럽게 또 떠나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