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의 꿈을 품은 채 서울로 상경해 20여 년 동안 공직에서 일하고, 공직을 나와서는 한국신용평가 CEO로 활동했다. 은퇴 후 인생 2막으로 택한 것이 바로 ‘시조’였다. 2017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송태준(75) 시조 시인은 성실한 공무원처럼 시조도 성실하게 쓰는 노력파였다. 그를 만나 그간의 여정과 더불어 시조의 가치와 매력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201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수원화성을 배경으로 한 노인의 삶을 그린 시조 ‘다산(茶山), 마임 무대에 선’이 당선되면서 시조 시인으로 등단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71세. 늦은 나이로 등단한 후, 4년 만에 첫 시조집 ‘바람의 노래’를 출간했다.
“등단 직후엔 때가 아니라고 봤어요. 책을 신중하게 내고 싶었어요. 성격상 대충 하는 건 못 견뎌요. 일종의 결벽이라고 할까요? 종잇값이 아깝지 않은 시조집을 내고 싶었어요. 공을 들여서 책을 만들자고 생각했는데 4년이란 세월이 훌쩍 가더군요. 습작한 지 10년 만에 나온 첫 책이라 원래는 작년 말쯤 출간하고 독자분들과 얘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올해 4월에 드디어 출간하게 됐죠.”
늦깎이 시인이 10년의 세월을 압축해 만든 시조집 제목은 ‘바람의 노래’. 그는 어떤 바람을 담았던 걸까?
“중의적인 의미예요. 하나는 자연현상으로서 바람(wind)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적인 바람(want)이에요. 인공지능의 시대라고 하지만, 자연현상만큼 보편적 공감과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또 있을까요? 자연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이며, 그중에서 바람을 무척이나 좋아해요. 바람은 기척도 없이 왔다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사라지는 것. 인간의 삶도 바람과 매우 닮았죠. 바람과 닮은 삶의 유한함과 공허, 그런 것을 시조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더 나아가 좋은 시조를 쓰고 싶은 결연한 의지와 소망이 담긴 책이에요.”'
시조와 첫사랑
70년은 반세기를 넘어 한 세기에 가까운 나이다. 그가 처음 시조에 눈을 뜨게 된 시기는 언제였을지 궁금했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중학교 시절 문학에 막연한 관심이 있어서 특별활동으로 문예반을 골랐어요. 알고 보니 문예반 지도 선생님이 그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자였죠. 문예반 활동 자체에 대한 기대도 컸는데, 신춘문예 당선자인 선생님으로부터 지도를 받게 돼 더 즐거웠어요. 선생님이 직접 쓴 시부터 시작해 다양한 시조를 배웠죠. 시조 시인으로서의 기초체력을 다진 시기라고 할까요?”
시조의 포문은 문예반 선생님과 함께 열었지만, 시심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첫사랑’ 덕분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자유로운 연애를 하던 시절이 아니었는데,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윗동네 여학생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어요. 얼마나 좋아했는지 잠도 못 자고, 온종일 그녀 생각밖에 안 했어요. 그렇게 밤마다 그녀를 생각하면서 시조를 매일 한 편씩 적어나갔는데, 1년 6개월 정도 지나니 대학노트 3권 정도 분량이 나오더군요.(웃음) 이대론 안 될 것 같아 고민 끝에 그 동네에 사는 동급생을 통해 편지와 함께 가장 잘 쓴 시조 한 편을 그녀에게 보냈어요. 바로 답이 없어서 차였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뒤 긍정의 답장이 오더군요. 시조는 첫사랑과의 연을 이어준 큐피드 화살이었죠.”
사귄 지 얼마 안 돼 그녀는 떠나갔고, 시조도 그와 멀어져갔다.
“첫사랑과 헤어진 후론 시조를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대신 문학적 재능을 수필이나 소설로 옮기려고 부단히 노력했죠. 고등학교 때는 신춘문예에 2번이나 지원했는데 매번 떨어지더군요. 더불어 문학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고, 문학적 재능이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어요. 한편으론 글쟁이의 삶이 너무 고단해 보였어요. 가난한 예술가보다는 성실한 생활인으로 살고 싶었어요.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출세와 사회적인 성공에 대한 열망이 컸어요. 대학도 서울로 오기 위해 죽어라 공부했죠.”
공직은 실패작
순수한 시골 청년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당당하게 서울대학교에 합격했고, 남들처럼 평범한 대학 생활을 보냈다. 대학 졸업반 시절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해 2번 만에 합격했다. 그는 “당시 공직에 진출해서 이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싶었다”라고 말하며 그 시절을 회상했다.
“공직에 나가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공직은 제 인생의 실패작이에요. 국무총리실로 첫 발령을 받고 사무관에서 서기관으로 승진할 때는 몰랐어요. 동기 중에서 진급이 빠른 편이라서, ‘이대로만 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죠. 이후 대대적인 부서 통폐합으로 인해 새로운 부서로 발령을 받았어요. 근데 다른 부서에서 와서 그런지 알게 모르게 텃세가 심했어요. 그래도 견뎌냈는데, 상사와의 갈등이 심했어요. 원리 원칙대로 일을 진행하고 보고드렸는데, 그 상사분이 일을 이따위로 하냐며 면전에 서류를 집어던졌어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이외에도 이유 없이 불합리한 대우를 많이 받았어요. 승진에서도 밀려났는데, 나중엔 그 상사가 저를 좌천시키려고 하더군요.”
이런 갖은 수모를 견뎌냈지만, 그는 끝내 22년 만에 공직 생활을 접고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다만 이 선택도 그에게 불가피한 일이었다.
“상사와의 갈등도 있었지만, 개인적인 시련도 있었어요. 빚보증을 서달라는 친한 친구의 부탁을 받았어요. 정말로 친한 친구라 거절하기 힘들었죠. 보증인 중에 공무원이 꼭 필요하다고 신신당부를 하길래 무심코 해줬는데, 이로 인해 끝내 친구 하나를 잃게 됐어요. 그 친구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빚을 못 갚게 된 거죠. 공무원 월급의 반을 압류당해 경제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때 마침 좋은 제의가 와서 한국신용평가 CEO로 활동했는데, 그 월급마저도 빚 갚느라 전부 썼어요. 제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어요.”
마음의 숨구멍
22년의 공직 생활. 한국신용평가, 한국농어촌공사 등에서 대표와 비상임이사로 활동. 숨 가쁘게 달려오다 10년 전에 은퇴했다. 그간의 경력으로 볼 때 다른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터. 어쩌다 시조 시인의 길로 가게 된 것일까?
“뜻밖의 우연이 겹쳤어요. 은퇴 이후 시간이 많이 생겨 취미를 찾다가 우연히 도보동호회를 알게 됐죠. 전국에 도보동호회가 참 많더군요. 한번 몰입하기 시작하면 뒤도 보지 않고 달리는 성격인데, 걷는 재미에 빠져서 동호회에 가입하게 됐어요. 전국 각지의 도보 대회를 다녔는데 우연히 강원도 고성에 갔다가 축제에서 하는 백일장을 발견했어요. 이런 백일장은 보통 하루 만에 끝나는 것이 다반사죠. 그런데 이 대회는 보름 정도 제출기한이 있더군요. 학창 시절에 썼던 시조 생각이 나서 응모했는데 덜컥 대상을 받았어요. 예전의 감각을 잃지 않았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그때부터 습작을 시작했죠.”
아무리 좋은 연장이라도 오랫동안 쓰지 않으면 녹이 슬기 마련이다. 그도 창작의 고통을 수없이 맛봐야 했다.
“은퇴 후 남는 게 시간인데, 삶이 무료하더라고요. 이왕 하는 거 신춘문예 당선을 목표로 삼아 시조 시인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해보고 싶었어요. 육십 넘어 시작한 일인데, 몇 년 더 한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어요. 다만 시조 부문이 있는 신문사도 적고, 인원도 한 명밖에 안 뽑아서 고시보다 더 치열했어요. 앉으나 서나 시조 생각만 했죠. 길 가다가도 메모를 하고, 한밤중에 시상이 떠오르면 불을 켜고 시조를 쓰기도 했고요. 들인 노력에 비해 매번 떨어지다 보니 이 무모한 객기를 그만하고 싶더군요. 그래서 2017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덜컥 신춘문예에 당선됐어요. 운이 정말 좋았어요.”
삶을 이기는 글은 없다고 하는데, 그간의 경험이 시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공직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순탄치 못했죠. 억울한 일이 많다 보니 반항심이 커졌어요. 상사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아 대드는 경우도 왕왕 있었고요. 젊은 날의 치기 어린 객기였죠. 다만 실패가 자꾸 쌓이면 성찰이 발달하는 것 같아요. 항상 마음을 돌아보고, 삶의 상태를 점검하는 게 습관이 된 탓에 글을 안 쓸 수가 없더군요. 창작의 고통은 괴로운데, 어느샌가 본능처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어요. 제게 시조는 마음의 숨구멍과도 같아요. 제 안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편히 눕힐 수 있는 쉼터예요.”
롤모델은 두보
사실 시조는 자유시와 비교해 인기 있는 분야는 아닌데, 그가 생각하는 시조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시조는 간결한 언어의 리듬이에요. 글자 수의 제약 안에서 절제된 언어, 규칙적인 반복과 특유의 배열을 통해 리듬을 만들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르죠. 몇 자 되지 않는 단어의 배열로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굉장히 어렵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죠. 규칙이 없는 스포츠는 의미가 없죠. 규칙이란 제약 안에서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선수의 덕목이 아닐까요? 시조도 마찬가지예요. 자수의 제한 안에서 함축된 언어를 통해 독자의 마음에 잊을 수 없는 문장을 남기는 일. 그게 시조의 미학이죠.”
시조 시인으로서의 지향점과 시조를 쓰는 자신만의 철학에 관해 물었다.
“타성을 경계하고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보려고 노력해요. 타성을 거꾸로 되짚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에요. 시조를 쓸 때는 관념적인 언어가 아닌 감각적인 언어를 쓰려고 노력해요. ‘꽃이 아름답다’라고 하는 것보다 ‘꽃은 너의 입술이다’처럼 감각적으로 명확한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죠. 그 이미지가 오랫동안 맴도는 것. 그게 정말 좋은 시조예요. 이태백처럼 타고난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퇴고의 달인 두보처럼 한 편 쓸 때마다 수백 번을 고쳐요. 두보처럼 사회적 문제를 시조에 녹이려고 하고요. 일종의 롤모델이죠.”
끝으로 시조 시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조언과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시조 시인을 꿈꾸고 있다면 일기 쓰듯 가볍게 써보는 게 좋아요. 스타일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학도 흐름이 있어서 시대성을 잃어버리면 안 되죠. 이론서부터 시작해 다양한 시조를 읽어보는 게 좋고, 일본의 하이쿠도 좋아요. 시조는 민족 문화의 자산이라고 할 정도로 역사가 깊고,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장르예요. 시조의 매력과 가치를 알리는 데 시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현재는 단시조집 출간을 위해 매일 시조를 쓰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단 한 편이라도 좋으니 독자에게 여운을 깊게 남기는 시조를 쓰고 싶어요.”
그는 자신의 삶을 “무모한 객기가 부른 재앙”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처럼 객기가 객기로만 남았다면 그의 삶은 정말로 재앙이었을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잠시나마 엿본 그는 대단히 성실한 사람이었다. 은퇴 후 그가 시조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성실함 덕분이었고, 성실함의 바탕은 성찰에 있었다. 시련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 부단히 반성하고 노력했다. 그의 객기는 용기였고, 시조는 시련 속에서 피워낸 하나의 꽃이었다. 활짝 만개한 꽃처럼 아름다운 시조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마친다.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 올림픽 열기가 뜨겁다. 이 같은 분위기를 더 뜨겁게 만든 메달로 효도한 스포츠 선수들의 사연이 공개돼 화제다.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를 위해 도마와 골프장 필드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0 도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여서정(19·수원시청)과 1996 애틀랜타올림픽 도마 은메달리스트 여홍철(50) 경희대 교수가 주인공이다. 여서정은 1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기계체조 도마 결선에서 3위를 기록했다. 이번 동메달은 선수 개인에게 첫 올림픽 메달이자 한국 여자 체조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이어서 더욱 값졌다.
부녀는 실수하는 모습마저 닮았다. 여서정은 결선 2차 시기에서 난도 5.4의 비교적 쉬운 기술을 시도했으나 착지 과정에서 탄력을 이기지 못하고 세 발짝 물러나는 실수를 했다. 이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여홍철이 2차 시기에서 착지할 때 뒤로 밀렸던 장면과 똑같았다.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낸 여홍철·여서정 부녀는 한국 첫 ‘부녀 올림픽 메달리스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여서정이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면서 여서정 가족이 11년 전 출연한 방송도 화제가 되고 있다. 2010년 9월 28일 KBS 교양프로그램 ‘여유만만’에 출연한 여홍철과 여서정의 발언이 재조명됐기 때문이다.
당시 여홍철 교수는 “2020년 올림픽에서 딸이 메달리스트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조를 시작한지 3개월 차였던 9살의 여서정은 “6, 7세부터 체조선수가 꿈이었다”며 “훌륭한 국가대표가 돼서 메달을 많이 따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1년 미뤄졌지만 대회 이름은 ‘2020 도쿄올림픽’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에 부녀는 결과적으로 그 꿈을 이룬 셈이다.
남자 골프 금메달리스트인 잰더 쇼플리(28·미국)의 올림픽 출전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잰더는 그의 아버지이자, 유일한 골프 스승인 스테판 쇼플리가 못다 이룬 꿈을 위해 올림픽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독일계 미국인인 스테판은 젊은 시절 독일 대표 육상선수로 올림픽 출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을 2년 앞 두고 발생한 불의의 사고로 출전이 좌절됐다. 스무살 때 훈련하러 가던 길 음주운전 차량과 추돌 사고가 나면서 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잰더가 목에 건 메달은 80여 년 전 할아버지인 리처드 쇼플리가 꿨던 꿈이기도 했다. 리처드 역시 국가대표급 육상선수로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준비했으나 부상으로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대만 출신이자 일본에서 생활한 어머니 덕분에 일본 문화에 익숙한 잰더에게 이번 메달은 더욱 의미가 남달랐다. 잰더 쇼플리는 “아버지는 나의 성공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셨다. 어머니의 고향도 여기여서 내겐 많은 것들이 (메달 획득의) 동기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 1일 2020 도쿄올림픽 골프 남자부 4라운드에서 4언더파를 쳐 최종합계 18언더파 266타를 기록했다. 이로서 미국은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골프 부문 금메달을 획득했다.
시니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이벤트는 단연 올림픽이다. 올림픽은 1896년부터 열린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 스포츠 축제다. 올림픽 여러 종목의 선수 중에는 올림픽 하나만을 위해 4년 동안 준비해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있다. 그만큼 깊은 역사와 이야기를 자랑하는 지구촌 대형 이벤트다.
하지만 최근에는 월드컵과 급격히 커진 e스포츠에 밀려 스포츠 이벤트로서 중요도가 점점 떨어지는 추세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쳐 개최 자체가 불투명했던 시기도 보냈다.
올림픽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경험한 시니어들에게 올림픽은 최고의 스포츠 제전이기도 하다. 이에 시니어들은 이번 도쿄 올림픽에 남다른 기대를 갖고 있을 것이다. 브라보는 올림픽을 즐길 시니어들을 위해 이번 올림픽이 기존 올림픽과 어떻게 다른지, 한국 대표팀 관전 포인트에 무엇이 있는지 정리했다.
도쿄 올림픽, 무엇이 다른가?
2020 도쿄 올림픽은 2021년 7월 23일부터 8월 8일까지 진행된다. 지난해 여름에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여름으로 연기됐다. 대회 명칭은 그대로 사용한다.
사상 첫 무관중 올림픽이다. 당초 일본인과 일본 거주자에 한해 관중을 받으려고 했지만 일본 내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해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결국 IOC와 합의해 일본인 관중도 입장하지 않는 걸로 결정했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이 열린 이래 125년 역사상 최초다. 다만 상대적으로 코로나19 확산이 덜한 미야기현과 시즈오카현, 이바라키현 경기장에는 일부 관중 입장을 허용한다.
러시아 대표팀은 올림픽 참가가 금지됐다. 러시아 체육계 선수들이 금지약물을 복용하고 국가적으로 도핑테스트 샘플을 은폐하는 등 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포츠중재재판소가 2020년 12월 러시아의 도핑 샘플 조작을 인정했고, 러시아는 2년 동안 국가 자격으로 국제스포츠대회 참가가 제한됐다.
하지만 러시아 국적 선수가 올림픽에는 참여한다. 파견된 335명 선수들은 ‘러시아’라는 국가명 대신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라는 이름을 달고 뛴다. 메달을 따도 시상대에는 국기 대신 오륜기가 올라온다. 국가는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제1번으로 대체한다.
경기 종목에도 변화가 많다. 레슬링과 야구가 다시 정식 종목이 됐다. 여성 선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양궁과 수영, 탁구 등에서 혼성 종목이 대거 늘어났다. 사격에서는 진종오 선수의 주 종목인 50m 권총을 비롯한 3개 남자 종목이 폐지되고, 3개 혼성 종목이 신설됐다.
농구는 세부종목으로 남자 3대3 농구, 여자 3대3 농구가 추가됐다. 사이클은 남녀 BMX 프리스타일, 트랙 남녀 매디슨 종목이 추가됐다. 펜싱은 세부종목인 플뢰레, 사브르, 에페 중 남녀 단체전이 1개씩 번갈아가며 제외돼 총 10개 종목만 배정되던 관행이 있었다. 이번에는 관행이 깨지면서 12개 종목 모두 올림픽 세부종목으로 확정됐다.
야구 종목 부활, 한국야구도 부활할까
2008년 베이징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은 영광의 시간을 보냈다. 류현진, 김광현, 이대호, 이승엽 등 황금세대가 김경문 감독 지도로 9전 전승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야구 종목은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빠졌다. 2020 도쿄 올림픽에 한해 일본의 국기인 야구가 정식 종목에 포함됐다. 이런 이유로 한국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디펜딩 챔피언이다. 야구선수들은 다시 올림픽 무대를 밟을 좋은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국내 야구 상황은 좋지 않다. 10번째 구단까지 출범해 양적 성장은 이뤘지만 코로나 19여파와 e스포츠에 익숙한 젊은 팬의 선호가 떨어지며 야구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대표팀에 뽑혔던 일부 선수가 방역수칙을 위반해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리그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둬, 돌아선 야구팬들의 마음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2024 파리 올림픽부터는 야구가 올림픽 종목에서 빠진다. 이번에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야구선수들이 다시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없을지 모른다. 베이징 황금 세대의 일원이었던 강민호, 오승환 등 베테랑들에 이정후, 강백호, 원태인 같은 새로운 세대가 수혈됐다. 영광의 세대와 영광의 순간을 보고 자란 세대가 다시 한번 김경문 감독과 함께 베이징의 감동을 재현할지가 주목된다.
사격의 전설 진종오, 새로운 도전
대한민국 사격의 전설 진종오는 한국뿐 아니라 올림픽을 통틀어 사격 역사에서 최고 선수다. 올림픽 개인 사격에서 금메달 4개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선수다. 이런 진종오가 이번 올림픽에서 큰 변화를 맞았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지난 2014년 IOC가 발표했던 ‘어젠다 2020’에 따라 남자 종목과 여자 종목의 메달 숫자를 맞췄다. 원래 사격은 남자 종목 9개, 여자 종목 6개였다. 하지만 어젠다 2020이 내건 ‘여성 참가 비율을 50%’ 방침에 따라 진종오의 주 종목인 50m 권총을 폐지됐다. 또 다른 남자 종목인 50m 소총 복사, 더블트랩까지 총 3개 남자 종목이 폐지됐다. 대신 10m 공기권총, 10m 공기소총, 트랩에서 3개의 혼성 종목이 신설됐다.
진종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부터 13년 동안 50m 권총에서 챔피언 자리를 지켰다. 많은 선수가 그와 실력을 겨루었지만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2016 리우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은 진종오의 몫이었다. 올림픽 3연속 금메달이라는 업적을 세우는 동안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주 종목이 아닌 10m 공기 권총 종목에서도 금메달을 추가했다.
4개의 금메달과 2개의 은메달. 진종오는 총 6개의 올림픽 메달을 따 ‘신궁’ 김수녕과 함께 한국 올림픽 역사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발자취 자체가 곧 역사인 진종오가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사격 역사에 또 다른 기록이 세워진다. 사격의 전설 진종오의 10m 공기권총 남자 개인전은 7월 24일, 10m 공기권총 혼성 단체전은 27일에 열린다.
한편 올림픽 중계는 KBS, MBC, SBS 채널에서 볼 수 있다. 3사 모두 개폐회식과 일부 종목을 4K UHD로 생중계한다고 밝혔다. 특히 KBS는 특설 홈페이지를 통해 TV로 중계되지 않는 종목도 생중계한다. 네이버와 웨이브, 아프리카TV와 LG 유플러스 모바일 TV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올림픽 중계를 볼 수 있다.
농부가 땅에 비지땀을 쏟아 필수 식량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농업은 신성한 직업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천하의 뿌리’에 관여된 일이 농업이다. 반면 믿기 어려운 직업이 농사다. 땀 흘린 만큼의 공정한 대가가 주어지는 경우가 흔하던가?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에 따라 좌우되는 작황, 널뛰기하는 가격, 불안정한 판로 등 리스크 요인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의 악조건을 끔찍하게 여기면서도 귀농을 하는 이들이 많다. 나만큼은 성취할 수 있다는 뜨거운 신념을 가지고 농사에 뛰어든다. 경북 상주시의 산골로 귀농한 임원식(61, 상주갑장산굼벵이농장) 씨도 그랬다.
“경치 좋은 시골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정원이나 농장을 가꾸며 마음 편하게 사는 삶. 이건 대부분의 남자들이 가진 로망이 아닐까? 내게도 막연하나마 오래전부터 그런 꿈이 있었다.”
귀농은 임원식 씨에게 오래 묵은 꿈이었던 거다. 비록 막연한 바람이었지만. 다시 말해 언젠가 기회가 오면 시골에서 한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언젠가’가 오지 않아도 무방할 몽상 차원의 꿈이었다. 그런데 그 ‘언젠가’가 별안간 도래했다. 회사에 감원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그는 경남 거제시에 있는 삼성중공업 직원이었다. 이름난 대기업이고 연봉도 높은 수준이라 자청해서 그만둘 이유가 없었으나, 구조조정의 칼바람 앞에서는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선배 직원들부터 차례로 무자비하게 잘리는 걸 본 그는 곰곰 궁리하다가 자신의 차례가 오기 전에 명퇴를 신청했다.
명퇴 뒤 그의 고민은 본격적으로 깊어졌다. 이제 어떡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 체인점? 창업? 그가 생각한 건 장사였으나 가만히 따져보니 그건 당최 적성에 맞지 않았다. 간이라도 빼줄 듯이, 심지어 영혼까지 팔 듯이 자세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상업인데 그건 참 싫었던 것이다. 이때 그는 오래된 꿈인 귀농을 카드로 뽑아들었다. 그리고 숙고에 들어갔으며, 결국은 귀농만이 믿을 만한 대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머리를 감싸 쥐고 더 고민할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내 박선숙(56) 씨의 동의를 얻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것. 남편들이 마치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는 투로 열렬히 귀농을 선창해도 아내들은 십중팔구 앵돌아앉기 십상이다. 그의 아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여러 가지 합리성 있는 이유를 내세워 ‘강력한’ 반대를 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아내와 함께 귀농해야 한다는 기본 방침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설득에 나섰다. 그 과정이 길고 힘들었다고 한다. 마침내 동의를 얻어내 귀농을 한 건 2016년 8월. 부부는 손잡고 나란히 경북 상주시 낙동면 갑장산 기슭의 산골로 들어갔다.
귀농 한 달 만에 시작한 굼벵이 농사
“터는 미리 사두었다. 인터넷을 통해 전국의 농지 매물을 검색해 곳곳을 답사한 끝에 이곳의 땅을 사들였다. 적은 자금으로 마음에 드는 터를 구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터는 좋아도 너무 외지거나 길이 없는 땅이 많더라. 헛걸음이 잦았지.”
Q 작물 선정도 미리 해두었나?
A “아니다. 일단 시골로 빨리 내려가고 싶어 작물에 대한 모색 없이 그냥 내려왔다. 산자락에 사둔 땅 인근에 있는 빈집을 임시로 빌려 살며 작물 구상을 시작했다. 처음엔 사슴농장이나 옻나무 재배에 관심을 가졌으나 실상을 좀 파악해보니 만만치 않겠더군. 생산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과수 농사나 자금이 많이 드는 시설 하우스 농사도 그렇고. 그러던 차 TV 방송에 나온 굼벵이(흰점박이꽃무지의 유충) 사육 농가의 성공 스토리를 보고 굼벵이 사업이 유망하겠다고 판단했지. 그게 굼벵이 농사에 뛰어든 계기였다.”
Q 귀농하자마자 곧바로 굼벵이 사육을 시작했나?
A “지체 없이 일을 착수했다. 경기도 연천에 있는 굼벵이 농가를 찾아가 상담을 하고, 교육을 받고, 굼벵이 종자(종충)를 분양받아 사육에 나섰던 거지. 셋집에 있던 창고를 사육사로 썼고.”
Q 보통은 미리 작물 선정과 공부를 하고 귀농을 한다.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지. 당신은 일사천리로 진도를 냈네?
A “사실 굼벵이 사육과 가공 생산이 별로 어렵지 않다. 여느 농사에 비해 한결 수월하거든. 물론 굼벵이 공부는 사육 착수 이후 충실하게 했다. 경북농민사관학교를 통해 2년에 걸쳐 천적곤충과정과 유용곤충과정 교육을 이수했으니까. 여하튼 귀농 한 달 만에 굼벵이 농사를 시작했으니 엄청 속도를 낸 셈이다. 내 땅에 내 집도 신속하게 지어 이사도 했다. 불과 서너 달 만에 이 두 가지 일을 해치웠지.”
Q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
A “지금 와서 돌아보면 너무 조급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월급이라는 게 없으니 한시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만 했던 거다. 매사 추진력을 가지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게 좋은 거라는 생각과 그렇게 살아온 습성도 작용했지만.”
땔나무를 베겠다면서 종일 낫만 가는 건 바보짓이다. 저 굴 속에 호랑이가 있는지 고양이가 사는지 궁금하면 굴로 들어가 봐야 한다. 그는 성격 자체가 느긋하기는커녕 박력이 넘쳐 뭐든 영감이 떠오르면 즉시 판단해서 즉시 해치우는 사람인 거다.
알아주는 굼벵이 농가로 부상했으나
허준의 ‘동의보감’에선 굼벵이를 아주 좋은 약용곤충으로 적시했다. 굼벵이 섭취를 혐오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지만, 예부터 약용은 물론 식용으로 민간에서 흔히 쓰인 곤충이었다. 굼벵이 사육이 농업의 한 장르로 등장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효능이 탁월하지만 식품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가 2016년에야 식약처에 의해 식품 원료로 승인됐으니까. 그즈음 곤충산업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굼벵이 농사가 블루오션으로 부각되면서 사육 농가가 급증했다. 1000개 이상으로까지.
상품화되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산란한 굼벵이 알을 리빙박스 안에서 3개월 정도 길러 살을 찌운 뒤 환, 분말, 엑기스 등 식용상품으로 가공하면 되니까. 질병이 거의 없고, 투자 비용도 적게 들고, 게다가 온·습도만 잘 맞춰주면 크게 손이 가지 않아서 매력적인 고소득 특화작물로 각광을 받았다. 민첩한 머리와 바지런한 손발을 가진 임원식 씨는 이 기특한 애벌레를 야무지게 잘 길러 고품질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상주에서 알아주는 농가로 급부상했다.
“굼벵이 농사는 신선놀음에 가깝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수월하다. 그러나 차별화된 고품질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선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역시 판로다. 기르기는 쉽지만 팔기는 쉽지 않은 거다.”
Q 어느 정도 수익을 올리는가? 사육 농가가 급증하면서 고전하는 농가들이 많다던데. 폐업도속출하고.
A “처음 3년간은 부진했다. 어떤 농사든 초기의 바닥 다지기에 3년은 걸린다. 시행착오도 겪으며 성장의 힘을 얻어가는 필수적인 수련기지. 아무튼 부진한 가운데에서도 서서히 매출이 올라 2019년엔 연매출 9000만 원을 기록했다. 블로그를 운영하고 노하우를 활용한 덕분이었다. 이젠 궤도에 올라섰구나! 그런 판단을 했지. 농장 이름이 알려지면서 견학을 오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다 코로나로 위기를 맞이했다.”
Q 매출이 급감했나? 코로나의 횡포로 곤경에 빠지지 않은 분야가 드물다.
A “2020년 매출이 반 토막 났다. 소비가 위축되고 주요 판로였던 지역 축제장에서의 가판이 불가능해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사육 농가가 포화 상태이기도 했고. 올해는 더 상황이 나쁜 것 같다.”
불운이라 할 수밖에. 아무도 못 말릴 급한 성격대로 후다닥 일을 진행했음에도 궤도에 올라섰으나, 코로나의 기습으로 주춤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절체절명의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낙심이 컸던 모양이다. 그러나 일단 대차게 강물에 오른 사공은 멈추지 않는 법이다. 급물살에선 노를 묘하게 잘 저어 나가면 그만이다. 비바람에 시달리지 않고 피는 꽃이 있겠는가. 그는 방향을 선회하기로 했다. 굼벵이의 사육 규모를 왕창 줄여 코로나 종식 이후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새 작물에 도전했다. 그 이름도 참신한 참두릅을 기르기로 하고, 올봄에 스마트 팜 타입의 시설 하우스를 지었다. 귀농 5년 차 이상의 귀농인에게 주는 연리 2%짜리 영농자금 3억 원을 지원받아서.
“내가 시작한 참두릅 농사는 기존 노지 재배 방식과 크게 다르다. 노지에서 기른 두릅나무의 마디마디를 잘라 하우스 안의 물병에 꺾꽂이처럼 꽂아 기르는 방식이거든, 이걸 ‘마디수침 재배법’이라 부른다. 이 재배법으로 연중생산이 가능해 최대 10배까지 수익 증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메리트가 큰 농법이라 성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
‘이미 남들도 많이 하는 재배법 아닌가?’ 하는 생각이 대번에 들었지만 아직은 선도적 농법이란다. 이 분야의 고수를 만나 멘토로 삼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성공 보증서는 어디에서도 발부받을 수 없다. 인생이라는 미스터리가 늘 그렇듯, 농사에도 역시 복병과 변수가 음흉하게 나타나 행패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들 대수로울 것 없다. 행복이라는 밥상에는 늘 고난이라는 양념이 동행하므로 복병은 복병대로 열나게 때려눕히면 되는 거다. 임원식 씨의 기본 태도가 그렇다. 그는 약 7억 원의 자금을 들고 귀농했다. 내 생각엔 그 돈이면 그냥 경치 좋은 산골에 오두막 하나 짓고 놀고먹겠다만 그는 생각이 영 다르다. 백수에 흥미 없다.
“그간 지니고 온 자금은 전부 사라졌다. 농토를 사고 집을 짓는 데 주로 사용됐지. 적자에 따른 손실금도 좀 있지만 그건 수업료가 아니고 뭐겠는가? 다 투자분이라 생각한다. 75세까지는 열심히 농사를 지을 작정이다. 월 350만 원 정도는 가져야 생활이 되던데, 그걸 벌기 위해서도 뛰어야 한다.”
Q 월 100만 원으로 희희낙락 사는 시골 부부도 많던데?
A “내가 단지 돈벌이만을 위해 뛰는 건 아니다. 도시와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열심히 하며 살고 싶다는 기본 이상을 좇아 달리는 거거든. 당신 행복해? 누가 그리 물어보면 답은 ‘그렇다!’다. 몸은 고달프고 고민도 많지만, 난 지금보다 더 좋은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자유로운 영혼이 된 느낌이다.”
어떤 직업이든 유쾌하기만 하겠는가. 애환과 성취는 궁합이 잘 맞는다. 고로 그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는 거겠지. 그의 뇌에 세팅된 목적은 삶의 질을 높이는, 즉 자기 확장에 있는 것 같다.
임원식 씨가 주는 귀농 팁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짓는다고? 어림없다. 귀농은 절대 쉽지 않다. 단단한 각오와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하자.
•자칫하면 원주민들에게 왕따당한다. 절대적인 신임을 얻도록 노력하자. 인사부터 잘하고. 목에 힘주면 발붙이기 어렵다.
•관행 농사는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다. 똘똘한 작물 선정을 위해 미리 심각한 고민과 연구를 해두는 게 좋다.
•작목을 정했다면 확실한 멘토를 만나라. 그 사람의 실패담이 거울이다.
•교육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하라. 새로운 지식도 얻고 멘토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다. 각종 지원사업도 교육을 이수해야 받을 수 있다.
•직거래만이 답이다. SNS 마케팅을 공부해 적극 활용하라.
7월 1일부터 예방접종 완료자는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모임 인원제한에도 속하지 않는다. 실내나 다중이용시설에서는 예방접종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가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백신을 맞은 시민들은 '이것 만으로도 어디냐'며 반기는 분위기다.
그런데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 국내 지역이 있다. 반면 접종증명서만 있으면 2주 자가격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해외 여행지도 있다. 백신도 맞았겠다, 들뜬 마음으로 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는 백신 맞은 시니어를 위해 관련 내용을 정리해 소개한다.
제주도, 야외서도 노마스크 안 돼!
대표적인 여름 휴가지인 제주도에서는 아쉽게도 ‘야외 노마스크’가 불가능하다. 7~8월 두 달간 백신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실외와 실내공간에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하루 4만 명이 넘는 불특정 다수가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다음 달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에 따라 수도권에 준하는 기준을 제주에 적용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7월 1일부터 14일까지 2주간 사적모임 인원을 수도권 수준인 6인까지만 허용한다. 직계가족은 8명까지 모일 수 있다.
7명 이상이 모이는 동호회와 동문회, 동창회, 직장 회식, 친구 모임 등 사적모임과 행사는 금지한다. 식당과 카페, 상점 등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할 때에도 7명 이상은 동반 입장과 예약을 할 수 없다. 백신을 접종한지 14일이 지난 접종 완료자는 인원수 제한에서 제외하기, 테이블간 1m 거리두기나 한 칸 띄우기는 지속된다.
5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지역축제와 설명회 같은 행사는 자체적으로 방역계획을 준비해 소관 부서에 사전 신고를 해야만 개최할 수 있다. 집회는 500명 이상 참여가 금지된다.
임태봉 제주도 보건복지여성국장은 “제주는 변이바이러스 감염자 발생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관광지 특성상 강화된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며 “7~8월 두 달만큼은 제주도에서 모두가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트래블 버블 사이판, 격리 없지만 5일간 숙소서 머물러야
반면 접종 완료자는 ‘노 자가격리’ 사이판(미국령 북마리아나제도) 단체여행을 꿈꿀 수 있다. 이르면 다음 달 말부터 사이판 단체여행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단 여행사를 통한 단체여행객만 허용하는데, 여행 기간 방역안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정부가 30일 저녁 사이판과 ‘트래블 버블(여행안전권역)’ 시행 합의문 서명식을 연다고 밝혔다. 트래블 버블은 방역관리에 대한 신뢰가 확보된 국가 간 격리를 면제해 자유로운 여행을 허용하는 제도다. 이번 합의는 방역 신뢰국과 맺는 첫 트래블 버블이다.
여행객은 양국 국적자나 그 외국인 가족으로, 자국 보건당국이 승인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접종을 완료하고 14일이 지난 사람만 가능하다. 양국 보건당국은 화이자와 모더나, 얀센, 아스트라제네카 4종 백신만 인정한다.
여행객은 자국 보건당국에서 발급한 예방접종 증명서와 출발 전 72시간 이내 코로나19 검사 음성확인서를 소지해야 한다. 예방접종증명서는 종이증명서(양국 모두 해당)나 전자 예방접종증명(‘질병관리청 COOV’ 애플리케이션, 한국만 해당)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자가격리를 면제 받는 대신 사이판 입국 절차는 다소 까다로워졌다. 현지 도착 당일에 한 번 더 진단 검사를 받아야 한다. 지정된 호텔 객실 내에서 대기하다가 음성확인이 돼야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첫 5일 동안은 지정 숙소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다만 격리 숙소 부대시설과 지정구역 내에 있는 해변, 쇼핑몰, 골프장은 이용할 수 있다. 입국 5일째 되는 날 다시 코로나19 검사 후 음성 판정을 받으면, 6일째부터 지정 숙소와 구역을 벗어날 수 있다.
현지에서 드는 검사 비용은 북마리아주 정부가 전액 부담한다. 여행 기간과 함께 늘어난 숙박비 등 비용도 여행사와 항공사를 통해 일부 지원한다. 여행 중 양성 판정이 나오면 전담 치료시설로 즉시 격리돼 치료를 받는다. 치료비용 역시 전액 무료로 지원한다.
여행 재개 시점은 현지 방역조치 사전점검과 여행사의 모객을 위한 준비기간 등을 감안할 때, 이르면 7월 말~8월 초로 예상된다. 그러나 방역상황이 악화되면 ‘서킷 브레이커’ 제도로 트래블 버블을 일시 중단할 수 있고, 양국 합의 후 개시일자를 미룰 수도 있다.
김홍락 국토부 국제항공과장은 "이번 협정 체결이 항공 및 관광사업 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방역우수 국가와 트래블 버블 체결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외 해외여행지 관련 정보는 인터파크투어 ‘그린여행’ 홈페이지와 외교부의 해외안전여행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린여행 홈페이지에는 나라별로 요구하는 코로나19백신 접종과 음성확인서 제시 여부, 자가격리 일수 등 필요한 조건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정리돼 있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각국의 검역과 격리 기준이 수시로 변하는 만큼, 올 여름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시니어라면 참고할 필요가 있다.
외교부는 현재 세계 모든 나라에 대해 특별여행주의보를 내린 상태다. 중동과 아프리카, 중남미 일부 국가는 여행경보 3단계인 ‘철수권고’ 또는 4단계인 ‘여행금지’ 지역으로 분류했다.
그린여행 데이터에 따르면 현지 자가격리가 면제돼 여행지 도착 후 바로 여행 가능한 지역으로 하와이, 괌, 사이판, 몰디브, 푸켓, 미주, 프랑스, 독일, 스위스, 체코, 크로아티아, 터키, 그리스, 스페인이 있다.
조상의 얼이 담긴 성곽과 고즈넉한 멋이 흐르는 선운사 등의 문화유적과 수박, 풍천장어, 복분자 등 각양각색의 먹거리가 넘치는 고창. 봄이면 짙푸른 청보리밭이 반기고, 여름에는 샛노란 해바라기가 인사한다. 가을에는 마치 구름이 내려앉은 듯한 하얀 메밀꽃밭이 손짓하고, 겨울이면 눈 덮인 하얀 설원도 유혹한다. 한반도 첫 수도 고창군은 농생명 식품산업을 천년대계로 설정한 도시답게 이름난 특산물이 넘쳐나며, 유입 인구도 많아 귀농귀촌인의 만족도가 특히 높은 곳이다. 새로운 행복을 찾아 떠나려는 예비 귀농귀촌인이 산, 들, 바다, 강, 갯벌이 모두 있는 고창을 선택하는 이유를 찾았다.
걸음걸음마다 문화와 치유가 깃들다
도시 생활에 지친 예비 귀농귀촌인이 정착지를 고를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자연 환경이다. 고창은 청정한 자연환경과 다양한 생태계의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최초로 2013년 5월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신비로운 원시 해안을 간직한 갯벌을 비롯해 고인돌 박물관, 선운산 도립공원, 운곡람사르습지, 동림저수지 등이 핵심 관광지로 특별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고창군의 다양한 즐거움
또한 고창에는 구석구석 전통과 문화가 새겨진 명소가 꽤 많다. 산세 좋고 물소리 좋은 선운사 계곡 아래 홀로 핀 한 송이 꽃이 그림 같다. 누군가는 사계절 모두 명소가 되는 고창 선운사로 진입하는 첫 관문인 선운산 도립공원에 발을 들이고서야 고창 여행이 시작됐음을 실감한다고도 말한다. 그만큼 선운사는 고창을 대표하는 명소다. 선운사는 고즈넉한 멋이 어우러진 외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역사적으로도 유서가 깊다. 백제 위덕왕 24년인 577년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산이고, 조선 후기에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가 산중 곳곳에서 장엄한 불국토를 이뤘다. 그림자 짙은 숲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사찰에서는 흔하지 않은 강당 건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봄을 알리는 3~4월의 동백꽃과, 9~12월 초 꽃무릇과 단풍으로 이어지는 가을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또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약 5000평의 동백나무숲과 높이가 15m나 되는 천연기념물 제367호인 삼인리 송악도 있다.
선운사에서 역사와 자연의 진수를 경험했다면 발걸음을 옮겨 성곽길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좋다. 고창의 중심에 다다르면 길게 뻗은 성곽과 웅장한 문이 시선을 사로잡는데, 바로 고창읍성이다.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1년인 1453년에 왜침을 막기 위해 전라도민들이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서 축성했는데, 원형이 잘 보존된 성곽으로 평가받는다. 현지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모양성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전라남도 장성군에 있는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활약했다. 30~40분 동안 고창의 전경과 숲을 보며 느긋이 성곽을 걸어 보면 고창읍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고창을 채색하는 또 하나의 색다른 문화지로 학원관광농장을 들 수 있다. 학원농장은 청보리밭축제로 유명한 관광 농장이며, 봄이 되면 청보리밭과 함께 광활한 유채꽃밭이 장관을 이룬다. 서울 여의도의 4.5배에 달하는 면적이 노란 유채꽃으로 뒤덮인 땅은 고창의 새로운 봄 풍경으로 각광받는 중이다. 또한 여름에는 수천 수만 그루의 샛노란 해바라기가 인사하며 가을에는 메밀꽃이 이어지는 등 봄, 여름, 가을에 걸쳐 꽃의 축제가 계속된다.
3만 평에 달하는 대지에 만들어진 농촌 체험형 테마공원인 상하농원으로 들어서면 우선 유럽풍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부에는 햄 공방, 과일 공방, 빵 공방, 발효 공방 등이 있어 다양한 가공품을 만드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고, 농원상회에서는 각각의 공방에서 솜씨 좋은 농부들이 만들어낸 먹거리들을 구입할 수 있다. 가볍게 공방과 상회를 구경한 후 유기농 목장으로 향하면 젖소들이 풀을 뜯고 있고, 옆에는 양떼 목장이 있어 귀여운 양들을 구경할 수 있는 등 이국적인 광경들을 볼 수 있다.
고창군에서 만나는 다채로운 특산품 먹거리
고창 하면 볼거리와 함께 먹거리로도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먹거리는 복분자와 풍천장어다. 단맛과 신맛을 함께 지닌 복분자는 뛰어난 효능으로도 유명한데 간을 보호하고, 눈을 밝게 하며, 기운을 도와 몸을 가뿐하게 만든다고 한다. 특히 복분자로 만든 담금주는 기름진 장어와 궁합이 좋아 고창 내 어느 장어 식당을 가더라도 판매하니 풍천장어 구이와의 절묘한 맛의 조화를 느껴보자.
선운산 일대에 서식하는 풍천장어는 고창의 으뜸 식재료로 유명하다. 풍천은 선운사 어귀 바닷물과 민물이 합쳐지는 인천강 지역을 뜻한다. 실뱀장어는 민물에 올라와 7~9년 이상 성장하다 산란을 위해 태평양 깊은 곳으로 회유하기 전 바닷물과 민물이 합쳐지는 지역에 머무는데, 이때 잡힌 장어를 풍천장어라고 한다. 하루 두 번 바닷물이 들이칠 때 장어가 바람과 함께 바닷물을 몰고 온다고 해서 풍천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고창의 풍천장어는 유달리 고소한 맛이 강하며 육질이 탱탱해 씹는 맛도 좋다.
고창 먹거리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고품질 다품종이라는 것이다. 고창군은 최고의 자연 생태 환경을 자랑하듯 복분자, 수박, 멜론, 고추, 땅콩, 고구마, 아로니아, 블루베리, 풍천장어, 바지락, 천일염 등 전국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가진 농특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기업에서도 그러한 고창 먹거리의 강점과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다. 예를 들어 하이트진로는 고창군의 흑보리를 이용해 인공 첨가제가 없는 기능성 건강음료 ‘블랙보리’를 출시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고창 식품 산업 성공 신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복분자 발사믹 ‘식초’도 핫하다. 2019년에는 국내 최초로 ‘식초문화도시’ 선포식을 했는데,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면역력 열풍을 타고 복분자 발사믹 생산 업체가 4배 이상 매출 증대를 기록했을 정도다.
귀농귀촌 1번지, 고창군의 귀농귀촌 정책들
살아보니 더 좋아진다는 입소문이 도는 고창군은 대한민국 귀농귀촌 1번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귀농귀촌인이 다른 지역보다 고창군을 더 많이 찾는 요인으로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귀농귀촌인 유치 노력이 꼽힌다. 고창군은 2007년 전북 최초로 귀농인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귀농귀촌 전담 부서를 설치했다. 또 귀농귀촌인 모임과 협의 체제를 구축해 귀농귀촌인의 눈높이에 맞는 차별화된 귀농귀촌 정책을 펼치고 있다.
고창군 대산면으로 내려온 지 4년째라는 한 60대 귀농인은 “주변의 많은 귀농귀촌 선배들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고창은 외지인이 텃새 걱정 없이 뿌리 내리기 좋은 곳”이라며 “온천과 실버타운이 있어 적당히 바쁘게 살면서 농촌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즐기며 노후를 꿈꿔보는 것도 괜찮다”고 말하기도 했다.
2021년 고창군 귀농귀촌 관련 총사업비는 7억5100만 원으로 4개 분야, 20개 사업을 추진한다. 4개 분야는 귀농귀촌 유치와 활성화, 정착, 귀농창업 활성화다. ▲귀농귀촌 유치 사업비는 2억1000만 원으로 귀농귀촌의 최적지로서 고창을 홍보하기 위한 박람회 참가와 농촌 체험을 위한 홈스테이, 고창에서 한 달 살아보기, 초보 귀농인 서포트 지원 사업 등을 추진한다. ▲귀농귀촌 활성화 사업비는 1억7600만 원으로 마을환영회, 재능기부, 실용교육, 동아리 지원, 귀농체험학교 등으로 꾸려진다. ▲귀농귀촌 정착 지원 사업비는 3억3250만 원으로 영농 정착금과 농가주택 수리비, 소규모 귀농귀촌 기반 조성을 지원한다. ▲귀농창업 활성화 사업비는 3250만 원으로 컨설팅과 창업 실행비로 구성되어 있다.
본지에서 기획한 귀농귀촌 우수 지자체 10選의 심사 기준은 귀농귀촌을 선택한 퇴직 예정자들이 △지원정책 내용 △자연과 문화환경 △ 귀농귀촌 멘토 조언 △토양 특산물 현황 등을 고려해 선정했다.
‘삶의 내용에는 건강과 즐거움, 질병과 슬픔, 늙음과 죽음이 있다. 질병을 통해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죽음을 통해 삶의 귀함을 아는 것이 삶의 본질이다.’ 정현채 교수의 책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결국 죽음을 잘 준비할수록 삶을 더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변화하는 장례 문화를 통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 살펴보자.
“죽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세상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가족은 무엇인지 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다시 곱씹어보고 생각해보고 그러면서 좀 성숙한 다음에 죽는 게 좋겠다. 한마디로 위엄이 있어야 하겠다. 밝은 눈빛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죽음과 마주하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故 정기용 건축가의 삶과 마지막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에 나오는 대사다. 죽음을 어떤 마음과 자세로 준비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성찰은 곧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최철주 웰다잉문화운동 고문은 “존엄한 죽음을 위해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할지 미리 생각하고 공부하는 모든 과정이 웰엔딩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죽음을 앞두고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이제껏 살아온 삶을 잘 정리하는 웰엔딩이 필요하다.
최근 웰엔딩을 위해 생전 장례식을 하는 곳도 생겼다. 라온 피플은 ‘내가 준비하는 나의 마지막-웰엔딩페스티벌’을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이 축제는 삶에 대한 회고와 죽음에 대한 성찰 등을 주제로 웰다잉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해 마련됐다. 생전 장례식 체험 과정을 영상을 통해 보여줬는데, 유언장을 쓰고 입관 체험을 하는 생전 장례식장에서는 눈물을 보이는 참가자가 많았다. 생전 장례식을 마친 참가자 A씨는 “생전 장례식 이후 선물과 같은 두 번째 삶이 시작된 기분이다”라고 밝혔다.
친한 친구나 가족들을 불러서 생전 장례식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장례식은 보통 사후에 진행하다 보니 고인의 뜻과 마음을 미처 전하지 못하고 떠나기 때문에, 생전에 관계를 맺었던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보는 것이다.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문상 절차’만 있지 정작 ‘장례식’은 없다. 장례식에서 문상객끼리 잡담하다 오는 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생전에 자신이 직접 장례식을 디자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결혼식처럼 장례식 식순도 짜보고, 초청할 사람도 미리 정해보고, 신세 진 분에게는 살아 있을 때 만나 인사를 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례의 새로운 대안들
2000년대 초반부터 국가적으로 화장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는데, 그 결과 현재는 ‘화장의 천국’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화장이 늘어났다. 실제로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1월 기준 화장률은 90%에 육박한다. 묘지 면적을 줄인 점은 좋았지만, 화장도 역시나 문제가 있다. 증가한 화장률에 비해 화장 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장례업계 관계자는 “화장률은 높지만 화장 시설 설치 반대로 인해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후화된 화장 시설을 개선하고 공급을 늘릴 필요가 있다. 기술의 발달로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고 있는 만큼 사회적인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새로운 대안으로 ‘수목장’이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국수목장문화진흥재단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2%가 수목장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고, 응답자의 65.4%가 수목장을 장례 방식으로 선호한다고 대답했다. 한국수목장문화진흥재단 관계자는 “현재 수목장에 관한 긍정적인 인식이 크게 높아지면서 자연 친화적인 장례 문화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함을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디지털로 소통하는 장례
코로나19는 장례식의 풍경을 언택트로 바꾸고 있다. 장례식과 같은 대규모 시설에서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조문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실제로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직장인들의 경조사 참석 횟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잡코리아와 알바몬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남녀 직장인이 참석한 경조사는 평균 3회 정도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경조사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직장인도 10명 중 4명에 달했다.
더불어 조의금 문화도 달라졌다. 최근 장례식을 치르는 유족들은 조문객 사절과 함께 계좌번호가 적힌 부고장을 보내기도 한다. 상주 측은 조문을 받지 않으며 계좌번호를 적은 문자를 통해 조의금을 받고, 조문객도 조문 대신 계좌이체를 통해 마음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카카오페이 같은 모바일 간편 전송을 통해 부의금을 많이 전달했다.
언택트 기술은 새로운 장례 문화를 만들고 있다. 모바일 앱 ‘다큐다’는 유족과 조문객에게 새로운 IT 추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회고 영상, 추모 메시지 및 영상을 통해 유족과 조문객의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고 서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 다큐다 관계자는 “회고 영상과 더불어 장례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어 해외 거주로 인해 장례에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인기가 높다”라고 설명했다.
조문객은 해당 앱을 통해 추모 메시지와 영상을 유족에게 보내며 위로를 전한다. 유족은 사진만으로 쉽고 빠르게 회고 영상을 제작할 수 있고, 앱을 통해 부고 알림, 장례 일정 등을 한꺼번에 관리할 수 있어서 편하다. 회고 영상, 추모 메시지 등과 같은 조문 기록은 모두 저장되며, 실물 앨범으로도 제작하여 유족에게 제공된다. 다큐다 관계자는 “고인과의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분들은 앨범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삶과 함께하는 죽음
한편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장례식은 간소하게 변하고 있다. 이전에는 3일장이 대부분이었으나, 현재는 1·2일장이나 무빈소 장례와 같이 규모와 기간이 줄어든 장례를 선호한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 뷰’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변한 장례 문화에 대해 10명 중 6명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전 계층에서 모두 긍정적 평가가 높은 가운데 전통장례 문화에 익숙한 50대(68.1%)와 60대(73.4%)에서 특히 높았다.
장례 문화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은 ‘가족장 등 새로운 장례 문화 확산’(37.9%), ‘식사 등 불필요한 문상 문화 축소’(27.1%), ‘검소한 장례 문화 확산’(18.3%), ‘문상객 감소에 따른 상주의 피로감 감소’(13.8%) 등을 이유로 꼽았다. 장례 문화 스타트업 ‘꽃잠’ 유종희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작은 장례식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고, 긍정적인 반응도 많다.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작은 장례식의 대중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가족 중심의 작은 장례식이 확산될 전망이다. 실제로 위의 조사에서 장례 문화 전망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1·2일장, 무빈소 장례 문화 확산(29.8%) ▲장례식 중 화장 문화 인식 확산(20.7%) ▲밝고 긍정적인 죽음맞이 문화로의 변화(16.3%)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길 원하는 장례 문화 확산(14.5%) 순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천편일률적인 장례가 아니라 가족 중심의 작은 장례로 변하면서, 유족 중심의 장례 문화에서 고인을 중심으로 한 깊은 추모로 장례가 변할 가능성이 크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 장례 문화는 유족에게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는 겉치레만 있을 뿐 내용이 없다. 결혼식처럼 특정한 날과 장소에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행하는 의례가 없다. 일본이나 미국의 장례식은 어느 한 날을 정해 사람들을 불러 함께 의례를 치르며, 고인을 충분히 추모하고 유족들을 위로한다”라고 말했다.
시대가 지나면서 장묘 문화도 바뀌고, 장례의 규모나 일정, 조문 방식 등 여러 가지가 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장례의 본질은 변함없다. 또한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고 외면할 이유도 없다. 죽음은 삶의 피할 수 없는 단계이므로. 당사자는 죽음을 잘 준비하고, 이들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도록 주변인들이 도와주는 것. 그것이 서로에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최 교수는 “죽음은 지상의 삶을 마치고 가는 인생의 졸업식과 같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죽음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일과 같으므로 슬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축하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죽음을 삶의 적으로 두기보다는 ‘삶과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주기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며 제품이나 서비스, 콘텐츠 등을 이용하는 ‘구독경제’의 몸집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뿐 아니라 의식주부터 취미와 여가 등 삶의 전반에 다양한 방식으로 침투하고 있다. 심심할 때 TV 대신 넷플릭스를 보고, 유튜브 구독자 수로 인기를 가늠하는 구독 전성시대, 시니어가 알아두면 좋을 이색 서비스를 소개한다.
속도 모르고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이 야속한 봄이다. 장미부터 튤립, 유채꽃까지 오색 봄꽃이 만발하는 5월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세로 겨우내 꽃놀이를 기다려왔던 상춘객의 발이 꽁꽁 묶였다. 지난달 벚꽃 명소인 서울 여의도, 잠실 석촌호수 일부 구간도 코로나19 방지 차원으로 통제되면서 벚꽃 축제도 물 건너갔다. 계절을 만끽하지도 못한 채 속절없이 흘려보내는 것 같아 아쉽다면 집 안을 꽃향기로 가득히 채워보는 건 어떨까. 복잡한 인파를 뚫고 꽃 시장을 가지 않아도 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꽃 구독 서비스 ‘꾸까’
핀란드어로 꽃을 의미하는 꾸까는 2주 간격으로 계절이나 콘셉트별로 어울리는 꽃을 정기배송 한다. 스몰(1만7900원)·미디엄(2만6900원)·라지(3만4900원)·엑스라지(4만9900원) 가운데 원하는 꽃의 크기를 고르고 구독 기간을 선택하면 알록달록한 플라워 박스가 집 앞으로 도착한다. 구독 신청 시 수령할 요일도 설정할 수 있어 “비 오는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주고 싶다”는 옛 노래 가사처럼 자신에게 깜짝 선물을 하는 기분을 낼 수 있다. 이용자 대다수는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 자신을 위해 꽃을 산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그 매력에 빠져 2주 뒤를 기다리게 된다는 반응이다.
박춘화 꾸까 대표가 추진하던 화장품 정기구독 사업을 접고 꽃으로 시선을 돌린 것도 같은 이유다. 박 대표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기분전환을 위해 꽃집을 찾는 이들이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일상에서 꽃을 향유하는 것을 낯설게 여긴다”며 “그동안 경조사나 선물용으로만 소비되던 우리나라의 꽃 문화를 좀 더 일상적으로 바꿔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박 대표는 ‘꽃의 일상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구독경제’라는 용어가 대중화되기도 전인 2014년에 꽃 구독 서비스를 고안해냈다.
기존 인터넷 꽃 배달 서비스를 통해서도 꽃을 받아볼 수 있지만, 만족도는 들쑥날쑥한 편이다. 콜센터를 통해 지역별 꽃집을 중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신선도나 보관 방식, 재고 등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꾸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산자와의 직거래로 꽃을 대량 주문하고, 본사 작업실에서 플로리스트가 직접 꽃을 손질하는 방식으로 품질을 표준화한다. 꾸까를 단순 배달 서비스가 아닌 전문성 있는 꽃 브랜드로 발돋움시키겠다는 취지다. 박 대표는 “다양한 꽃을 자주 접하기 어려운 지역에 거주하는 분들이 좋은 후기를 남겨주실 때 가장 뿌듯하다”고 설명했다.
서울 광화문·잠실·월계·구로점에서 선보이고 있는 오프라인 쇼룸에도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 꽃을 접하길 바라는 박 대표의 소망이 담겼다. 유럽의 파머스 마켓(전통시장)과 카페를 결합한 콘셉트로, 음료를 주문하면 꽃 한 송이를 제공한다. 또 꽃에 관심이 생긴 이들을 대상으로 수준별 플라워 클래스도 진행한다. 따분한 ‘집콕’ 일상으로 기분전환용 취미를 찾고 있거나, 인생 삼모작으로 새로운 도전을 모색 중인 시니어에게 솔깃한 기회다. 박 대표는 “꽃을 경험하는 데 거창하고 대단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며 “앞으로도 일상에서 꽃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브라보’ 독자에게 추천하는 5월의 꽃
작약 꽃 시장에서 3월부터 6월까지 만나볼 수 있는 작약은 ‘봄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계절을 대표하는 꽃이다. 특히 새하얀 속잎과 분홍빛 겉잎이 수줍게 조화를 이루는 가드니아 작약은 그 자체로 봄의 전경을 닮았다. 개화할수록 겹겹이 풍성하게 피어나, 같은 공간에 두어도 매일 색다른 무드를 선사한다. 추천 꽃다발 로즈 앤 피오니 가격 3만7900원
캄파넬라 하늘에서 축복의 햇살이 내리쬐는 듯 노란빛의 화사하고 우아한 색감을 자랑하는 캄파넬라는 ‘축복’이라는 꽃말에 걸맞게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웨딩 부케다. 주변에 축하할 만한 소식이 들려올 때 샴페인과 함께 캄파넬라 한 다발을 건넨다면 그야말로 센스 만점 시니어가 될 수 있다. 추천 꽃다발 캄파넬라 에디션 가격 5만4900원
델피늄 & 블루 스위트피 흔치 않은 분위기를 원한다면 오묘한 푸른빛을 띠는 델피늄과 블루 스위트피를 한데 담아보는 것도 좋다. 특히 향수의 원료로 쓰일 정도로 달콤하고 진한 향이 매력적인 스위트피는 꽃잎의 모양이 나비가 모여 있는 모습과 닮아, 향기 가득한 정원을 거닐다 나비를 만난 듯 기분 좋은 설렘을 전한다. 추천 꽃다발 파랑새 에디션 가격 5만6900원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 신종 코로나 팬데믹은 일상 속에서 즐겨볼 수 있는 여행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일상 속 여행. 홀로이 걸어서 다녀오기, 또는 자전거나 자동차로 한두 시간 내에 돌아올 수 있는 일종의 근교 여행, 마이크로 투어리즘이 대세인 요즘이다. 마이크로 투어라는 산뜻한 형태로 가뿐하게 즐길 수 있으니 나서는 기분도 가볍다.
이제 3월이다. 3.1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막상 천안의 독립기념관도 함께 떠올려 보지만 선뜻 나서지 못한다. 늘 그래 왔다. 언제든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거리가 멀다고 핑계 댔고 도로가 막힌다는 이유도 있었고 볼거리가 더 많은 곳이 있다 해서 밀려나기도 했었다.
독일 베를린 여행 중에 브란덴부르크 남단의 숲 쪽 방향의 추모공원 홀로코스트에 들른 적이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고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를 드러내며 오늘을 사는 그들의 자세가 신뢰를 갖게 했다. 그래서 독일의 현재가 있음을 느끼게 했던 곳이었다. 역사 왜곡에 안간힘을 다하는 일본의 모습이 겹쳐졌다. 이렇게 역사를 잊지 않고 개방하여 널리 알리는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Memorial)까지 가보았으면서 가끔씩 이렇게 눈앞의 것을 무심히 지나치곤 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역사적 사실과 그 정신을 가끔씩이라도 기려볼 일이었다.
독립기념관은 천안의 목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을 기준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만 달리면 김포에도 독립운동기념관이 있어서 가까이서 쉽게 그 의미를 돌아볼 수 있다. 물론 규모는 많이 다르다. 그뿐 아니다. 독립만세를 불렀던 천안의 아우내 장터와 같은 김포 오라니 장터에 만세운동의 현장이 있다. 경서 지방의 대표적인 장터였던 김포 양촌리의 오라니 장터와 월곶면 군하리 장터에서 3.1 만세운동을 조직적으로 벌였다는 사실도 새롭다.
시절 탓인지 독립운동기념관은 한적하다. 전시장 입구에서 맞아주는 멋진 영상의 선명한 태극기가 반갑다.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이와 전시실을 묵묵히 오가는 어르신이 눈에 들어온다. 만세운동을 재현한 미니어처와 캐릭터들이 첨단의 세상에 사는 이들에게 지루함을 덜어준다.
독립운동기념관 건물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획전시실, 사료열람실, 영상실, 로비, 상설전시실로 구성되었다. 잊고 살았던 시간을 재조명해 볼 기회다. 2층의 청소년 문화의 집이나 북카페 등은 코로나의 현실로 지금은 열리지 않지만 1층의 전시실만으로도 볼거리가 쏠쏠하다.
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3.1 운동 이야기는 물론이고, 김포지역에서의 3.1 만세운동과 항일의병활동, 그 배경과 특징, 발발 과정을 음성이 포함된 영상과 함께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김포는 독립운동가와 항일의병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리고 김포 전 지역에서 주민들의 3.1 만세운동이 전개될 만큼 큰 규모로 투쟁했던 유서 깊은 고장이기도 하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약 2천만 명이었는데 3.1 독립운동 참여 인원이 2백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일제의 총칼 앞에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쳐댔던 순박했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비폭력 저항의 모습에 가슴 뭉클해진다.
이 모든 역사의 흔적들이 성실히 모아졌다. 당시 일본군들의 야만적이고도 처참한 만행을 볼 수 있고 독립군들의 유물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을 한 바퀴만 돌아도 당시의 독립을 향한 열망이 전해진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멋지게 조성해 놓은 기념관이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음을 모르고 지냈다니 이런 무심함이 어디 이뿐일까만.
독립의 함성이 느껴지는 전시물을 감상하다 보면 나라를 구하기 위한 그분들의 아픈 과거가 눈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특히 1910년 안중근 의사가 32세 나이로 뤼순감옥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받은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글 앞에서는 심장이 멈추는 듯하다.
“나라를 위한 죽음이라면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벌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글이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서신이 될 것이다. 여기 너의 수의를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 이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서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서서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겠지만 이런 기념관 관람만으로도 잊고 지냈던 시간을 되짚어 만날 수 있으니 다행이다. 덕분에 저절로 호국과 애국의 DNA를 되살려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기획전시실은 매 주기마다 다양한 주제로 기획전시를 열고 있다. 3.1 만세운동의 태극기 물결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장이다. 독립의 역사를 쉽게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결집력을 보여준 태극기의 다양함이 펼쳐진다.
‘역사가 담긴 태극기’ 전의 기획전시실이었다. 태극기의 상징성과 태극문양의 의미, 독립운동의 간절함을 담은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태극기 목판 등 저마다의 의미가 담긴 태극기들, 역사와 용도가 다양한 태극기의 면면을 알아가는 게 새롭고 흥미롭다. 한 점 한 점 아프고 묵직한 의미를 담은 태극기들과의 조우가 독립을 향한 당시 우리 국민들의 3.1 운동 정신을 절절히 전한다.
기념관 주변 언덕 위로 조성된 공원이 다시 찾은 평화로움을 대신하는 듯하다. 산책하듯 걸으며 3.1 운동 기념비와 위령탑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쳐 나라를 지키려고 항거했던 이들을 비로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기념관은 소박하지만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 속에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가득하다.
기념관 가까이에 있는 오라니 장터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축제가 열린다. 그 날의 함성을 떠올리며 3.1 만세운동 퍼레이드를 하고 다채로운 행사를 한다. 그렇게 3.1 운동 100년의 기억을 되살린다. 살면서 가끔씩 잊고 지냈던 것을 모두 함께 되짚어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김포의 독립운동기념관과 주변으로는 산성이나 돈대, 다양한 갤러리와 문화시설이 포진해 있다. 봄 햇살이 따사로워지면 소풍삼아 찾아볼만 하다. 조용한 하루나들이 코스로, 역사여행으로 의미 있음을 알아차렸다면 가볍게 나서보아도 좋을 듯. 한나절이면 된다.
주변 볼거리
김포 아트빌리지 아트센터 & 김포 인삼쌀맥주 갤러리
백제 고대국가의 시원(始原)으로 추측하는 김포 모담산 운양동 자락에 위치한 김포 아트빌리지, 그곳에 수준 높은 전시를 볼 수 있는 아트센터가 있다. 쾌적하고 모던한 현대식 예술공간에서 감상하는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 공간이 고퀄리티다. 훌쩍 떠나온 하루 외출에서 품격 있는 시간 획득이다.
아트센터 앞의 너른 야외 공간과 전통놀이체험마당, 주변의 전통한옥 숙박시설, 맛집 등 누구나 언제라도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용요금 무료, 주차무료.
품질 좋은 쌀과 인삼의 특산지인 김포, 김포의 6년근 인삼과 김포쌀로 빚은 인삼쌀맥주와 인삼 전시장도 둘러볼만하다.
소마미술관엔 행정상 내부 관장이 있고, 외부 전문인 명예관장이 있다. 큐레이터의 역할과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 큐레이터는 전시 기획은 물론 미술품의 수집·연구·관리에 관한 실무를 전담하기에 ‘미술관의 꽃’으로 일컫는다. 화가·평론가와 함께 현장미술의 삼각 축을 이룬다. 소마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박윤정 씨. 그는 소마미술관 근무 15년을 포함, 20여 년간 큐레이터로 활동한 베테랑이다. 소마미술관에 대해, 그리고 미술 감상법에 대해 묻기 위해 마주앉았다.
“소마미술관은 88올림픽 문화제전을 계기로 출발한 역사성, 그리고 올림픽조각공원이라는 매우 강력한 하드를 가지고 있다.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구축한 소프트도 뒤처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강점을 살려 ‘다시 가고 싶은 미술관’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과 미술관이 직결되는 출입 통로가 이상적이다. 접근이 쉬워 관람객이 많을 것 같은데.
“대중에게 미술관 문턱은 아직도 낮지 않은 것 같다. 과거에 비해 관람 인원이 크게 늘지 않은 추세이니까.”
미술관 측이 문턱을 낮춰야 하지 않나? 재미가 있으면 찾아가게 마련이다.
“소마미술관은 물론 요즘의 미술관들은 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단순히 전람회만 여는 공간이 아니다. 멀티 컬처의 열린 장으로 바뀌었다. 각종 문화와 교육 관련 프로그램, 심포지엄, 작가와의 대화, 그리고 축제나 공연까지 펼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관람객이 적은 건 왜지?
“이론 중심의 미술교육 제도가 문화의 성장 속도를 저해하는 걸로 보인다. 어려서부터 예술에 젖어들 수 있는 풍토 조성이 필요하다.”
그간의 전시회 중에서 가장 성황을 이루었던 건?
“2015년에 가진 ‘프리다 칼로-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 전이다. 어릴 때엔 교통사고로 몸이 다 부서지다시피 했고, 바람둥이 남편에게 평생을 시달렸으며, 멕시코 패션의 아이콘이기도 했던 프리다의 드라마가 알려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전시장을 찾아왔다. 한동안 ‘프리다 신드롬’이 일 정도였다.”
조각공원의 작품들 중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사견임을 전제하자. 잔바람에도 작품이 움직여 신선한 감흥을 주는 조지 리키의 ‘비스듬히 세워진 두 개의 선들’이 좋더라. 대칭과 비대칭의 조합을 평생의 화두로 삼았던 문신의 ‘대한민국 올림픽-1988’과 이우환의 ‘관계항-예감 속에서’도 내겐 특별했다.”
미술작품 감상법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미리 사전 정보를 알아두는 게 좋겠다. 미술은 어렵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내가 느끼는 모든 게 예술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도 있다. 전시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방법도 고려하자. 무엇보다 쉽고 좋은 건 도슨트의 설명을 경청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