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폭염이 이어지고 있으니 일단 더위는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말이다. 집 안에서 에어컨 바람 쐬는 것도 좋지만 전국 각 지역의 더위를 잊게 해주는 축제에서 가는 세월을 즐겨보면 어떨까? 더위!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핫(?)한 여름을 책임질 전국 방방곡곡의 축제를 찾아봤다.
연재순서 ① 축제? 먹고 즐기자! ② 개운하게 한잔 촤악! 마시자 ③ 시원하게 솨악! 물놀이
사진 제공 각 지자체
개운하게 한잔 촤악! 마시자
한여름 살얼음 낀 잔에 따라 마시는 맥주 한 잔이면 독일의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가 부럽지 않다. 더위가 시작되는 6월부터 늦더위가 남아 있는 9월, 10월까지도 맥주 축제가 이어진다. 성인들에게 가볍게 한 잔 마시고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맥주의 장점. 푸드트럭은 물론 버스킹 공연과 신나는 한판 놀이장이 되는 곳이 바로 맥주 축제 현장이다. 게다가 몇 년 사이 수제 맥주 제조는 물론 다양한 세계 맥주가 유입되면서 오로지 취하기 위해 마시던 맥주가 맛과 향을 즐기는 문화의 주인공이 됐다. 6월 말에서 8월 사이,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질러 제주도에서 느낄 수 있는 시원한 맥주 축제를 소개한다. 단, 더운 날의 과음은 금물이라는 걸 잊지 마시라!
비어페스트 광주
2019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기간에 맞춰 문화수도 광주의 랜드마크인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비어페스트 광주 마셔BREWER’가 열린다. 전라도 방언 ‘~브러’를 사용해 진한 사투리의 가락을 축제에 녹였다. 마셔브러, 즐겨브러, 놀아브러! 시원한 맥주와 신나는 음악이 함께하는 맥주 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외 다양한 맥주를 마실 수 있고 푸드트럭존과 아기자기한 소품을 구매할 수 있는 플리마켓존이 운영된다.
기간 7월 11~20일 장소 전남 광주 서구 상무누리로 김대중컨벤션센터 야외광장
비어고을 광주
올해로 2회째를 맞이하는 광주의 맥주 축제 ‘비어고을 광주’는 ‘술 한 잔이 주는 진심, 진심들이 모여 만드는 축제’라는 주제로 1913 송정역 시장 근처에서 개최된다. 소맥 제조 최고의 경지를 보여줄 주인공을 뽑는 소맥 제조 자격시험, 시장에서 준비된 안주 중 최고의 안주 찾기 대회인 안주대첩, 음주와 관련한 3행시 실력을 증명해줄 음주 인재 찾기인 ‘비어고을 신춘문예’ 등이 펼쳐진다. 광주 지역 청년들이 침체된 상권을 살려보겠다는 일환으로 시작돼 맥주를 즐길 줄 아는 모든 사람이 함께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기간 6월 28~29일 장소 전남 광주시 광산구 1913 송정역 시장 일대
제주 짠 페스티벌
제주 최대 맥주 축제인 ‘짠 페스티벌’이 7월 26일부터 28일까지 서귀포시 성산읍 플레이스 캠프 제주에서 진행된다. ‘짠’은 술잔을 마주칠 때 하는 소리다. 올해 3회째를 맞은 ‘짠 페스티벌’은 매회 5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축제로 제주도민과 제주 여행객들의 필수 여름 코스로 불린다. 올해는 제주를 대표하는 맥주와 약 50여 종의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맥주 빨리 마시기, 맥주 많이 마시기, 맥믈리에, 노래자랑 등의 프로그램도 축제 참가자들을 맞이할 예정이다. ‘짠 페스티벌’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플레이스 캠프 제주 공식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확인하면 된다.
기간 7월 26~28일 장소 제주 서귀포시 플레이스 캠프 제주
대구 치맥페스티벌
치맥의 인기 덕에 매년 열리는 페스티벌이 있으니 바로 대구 치맥페스티벌이다. 대구와 아프리카의 합성어인 ‘대프리카’로 불릴 만큼 폭염이 심한 대구. 긴 세월의 오명을 씻어내고 여름을 즐기는 도시로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수중 아이스 카페, 아이스 테이블 등 이색적인 공간을 즐길 수 있다. 축제의 인기에 힘입어 축제 종료시간을 기존보다 연장해서 운영한다고. 축제 마스코트를 활용한 손선풍기와 캐릭터 모자, 꼬꼬머리띠 등 20여 종의 기념품이 준비되어 있다.
기간 7월 17~21일 장소 경북 대구시 달서구 두류공원 일원
이런 기분이었다. 시원하게 속이 뻥 뚫리고 세상이 진짜 내 것 같은 느낌 말이다. 노곤한 몸을 일으켜 잠에서 깰 때까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왜 이 새벽에 뛰겠다고 모이는가 생각했다. 그 생각은 너른 호수가 눈에 들어오고 푸르른 나무 사이를 지나다 햇살이 몽환적으로 몸을 감싸는 순간 사라진다. 아침에 달리는 느낌이 이런 것! 하루를 만나고 또 만나다 보니 15년 한결같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뛰게 됐다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바로 ‘런조이일산마라톤클럽’이다.
매주 토요일 아침 6시. 일산호수공원 제1주차장에서 호수공원 쪽으로 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런조이일산마라톤클럽 회원들이 삼삼오오 모이다가 금세 40명에서 50명으로 무리를 이룬다. 시간이 되면 빙 둘러서서 함께 몸을 풀고 뛸 준비를 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벤치에 놓인 과일과 물을 나눠 마시고 난 뒤 대열을 맞춰 호수공원 트랙을 뛰기 시작한다. 매번 이렇게 모여 호수공원을 두 바퀴 뛰면 일정이 마무리된다. 말이 쉽지 일산호수공원 두 바퀴는 10km 코스를 의미한다. 이들은 매주 수요일 밤과 토요일 새벽에 만나서 어김없이 뛴다고 했다. 사실 런조이마라톤클럽은 일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 동작구의 보라매와 여의도, 잠실 등지에서 먼저 생겨났고 일산은 마지막에 조직됐다. 게다가 꽤 유명한 마라토너가 창단한 클럽이라고 이희준 훈련감독이 말했다.
“이 클럽은 이홍렬 감독님이 마라톤에 대한 열정을 담아 ‘뛰는(RUN) 기쁨(JOY)’이란 이름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0년 동안 넘어서지 못하던 2시간 15분대의 벽을 1984년 동아마라톤대회에서 1초 앞당겨서 깨신 분입니다. 국가대표도 오래하셨고 마라토너 출신 첫 체육학 박사이십니다. 저도 감독님께 배웠죠.”
특히 런조이일산마라톤클럽이 받은 혜택이 있다면 이홍렬 감독이 초창기부터 꽤 오랜 시간 일산에 거주했다는 것. 다른 지역 클럽은 애써 찾아갔다면 일산은 매번 와서 함께 훈련하고 뛰었다. 바탕이 튼튼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회원들이 찾아온다고. 매주 이렇게 모여서 뛰면서도 줄곧 하는 얘기는 또 마라톤 이야기다. 회원들은 자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다 뛰고 나면 다 같이 몸을 푼다. 15년 된 초창기 회원도 매주 나와 뛰고 있고 적게는 3년, 평균적으로 10년 정도 이곳에서 마라톤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이 많다.
사뿐히 뛰는 아름다운 꽃중년 미녀들
런조이일산마라톤클럽 부회장을 맡고 있는 정혜경 씨는 이곳에서 10년째 뛰고 있는 베테랑 중 한 명. 취재를 할 때도 뛰면서 이야기하자고 할 정도로 자신감과 활기가 넘쳤다. 팔다리가 길고 여린 체구의 그녀에게 “요즘은 여자들을 위한 실내운동이 많은데 왜 마라톤을 선택했냐”고 묻자 참 단조로운 답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었거든요. 나중에 지인들이 뼈가 부러질 거라면서 말리더라고요. 물론 여자로서 꺼려지는 게 있죠. 햇빛에 노출되어 주근깨도 생기고 피부 걱정이 돼요. 그런데 야외에서 뛰다 보니까 실내운동은 생각만 해도 답답해요. 매일매일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자연과 호흡하면서 뛰는 느낌이 정말 좋습니다.”
7년 전 갑상선암 수술을 한 뒤 1년 쉰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주 호수공원 트랙을 돌고 있다. 덕분에 남들이 걱정하는 골밀도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했다.
“완전 정상이에요. 갑상선암 수술하면 골밀도가 문제라던데 저는 전혀 그런 거 없고 지금은 갑상선 약도 끊었어요. 마라톤 덕을 확실히 봤죠.”
긴 머리 휘날리며 호수공원을 뛰는 또 한 명의 미녀가 있다. 올해 4월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온 정경화 씨다.
“작년에 개띠 선배님들이 보스턴에 다녀왔는데 너무 좋으셨다며 자꾸 바람을 넣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보스턴마라톤대회 참가자 2기가 꾸려졌습니다. 보스턴마라톤대회에는 42.195km 풀코스밖에 없어요. 그런데 진짜 말로만 들어서는 이해하지 못할 감동이 있어요. 동네가 온통 축제 분위기이더라고요. 다들 손 흔들어주고요. 첫발부터 결승점까지 계속 감동이에요. 눈물 날 것 같았어요.”
마라톤 경력 3년, 과감한 도전을 하고 감동까지 만끽하고 돌아왔다는 그녀의 눈빛이 촉촉하게 빛났다.
팔순잔치 삼아 참가한 보스턴마라톤대회
런조이일산마라톤클럽에서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바로 이명희 씨다. 이 모임의 최고 연장자이지만 열정만큼은 20대를 방불케 하는 인물. 젊은 회원들하고 뛸 때도 뒤처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80대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리 근육도 단단해 보였다. 그의 마라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작년에 참가했던 제122회 보스턴마라톤대회. 정경화 씨가 언급한 58년 개띠들과 함께 보스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저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작년에 제가 80세였거든요. 그걸 기념하고 싶었어요. 마침 회원 들 중 작년에 환갑을 맞이한 58년 개띠들이 보스턴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가겠다고 했죠. 생일은 6월인데 팔순 기념으로 4월 말 보스턴에 다녀왔죠. 제가 참가했던 첫 마라톤이 2005년에 열린 ‘보스턴제패기념마라톤대회’였거든요. 그때부터 보스턴에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꿈을 이뤘죠. 폭풍우가 몰아쳤지만 완주는 했습니다.”
현역 시절 공인노무사로 일하다가 정년퇴임 뒤 일산 신도시로 들어오면서 그의 마라톤 인생이 시작됐다.
“2004년부터 였으니까 우리 클럽이 생기기 전부터 뛰었습니다. 일산에는 65세에 이사 왔어요. 그때 제 눈에 운동할 만한 곳이 호수공원밖에 없어서 매일 나왔습니다. 어느 날 보니까 런조이마라톤클럽이 회원을 모집하더라고요.”
이제 정말 마라톤 은퇴를 생각한다면서도 미련을 버릴 수가 없는 모양이다.
“팔십 먹어 마라톤 하면 사람들이 욕해요. 죽으려면 집에서 죽지 미쳤다고 길거리에 죽냐고요.(웃음) 금년까지는 뛰고 싶습니다. 하프 코스에서 10km로 조금씩 줄여나가야죠. 이제는 좀 힘들어요.”
15년을 함께 뛰다 보니 기념일도 챙긴다. 매년 6월에 있는 클럽 창립 기념일에는 환갑을 맞이하는 회원들을 위해 ‘환갑 마라톤’을 연다. 올해는 정년퇴임을 하는 회원과 함께 양평으로 가서 뛸 예정이다. 혹시 마음속에 질주 본능이 있다면 토요일 아침 6시 일산호수공원으로 나가보시라.
※ 라이프@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창회, 동호회 등이 있다면 bravo@etoday.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초록이 드리우는 6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축제) 고성 하늬라벤더팜 라벤더 축제
일정 6월 1~23일 장소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꽃대마을길 175 하늬라벤더팜
매년 6월이면 고성 하늬라벤더팜에는 라벤더가 만개해 보랏빛 물결을 이룬다. 이번 축제는 라벤더 수확 체험, 피자 만들기 등 허브를 활용한 다양한 체험 행사로 운영된다. 라벤더 향수 추출 시연, 향기 음악회, 포토 콘테스트 등 오감 만족 이벤트도 열린다.
(공연) 운당여관 음악회
일정 6월 4~20일 장소 서울돈화문국악당
운당여관은 조선시대 후기 전통 한옥으로 예술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그 시절의 운당여관을 추억하며 다양한 예술가들이 펼치는 음악회다. 행사기간 매일 다른 국악 예술인이 여관 주인이 되어 다채로운 공연을 펼친다.
(전시) 그리스 보물전
일정 6월 5일~9월 15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그리스 유명 박물관들이 소장한 보물 총 350여 점이 최초로 공개된다. 황금의 시대 미케네, 트로이 전쟁에서 이기고 금의환향한 아가멤논, 동방 원정의 주인공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서구 문화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축제) 2019 고창 갯벌 축제
일정 6월 7~9일 장소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애향갯벌로 320 만돌갯벌체험장 일원
2010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고창 갯벌. 다양한 갯벌 생물이 서식하는 이곳에서 축제 동안 자연생태체험과 전통어로방식을 경험해볼 수 있다. 트랙터를 개조한 갯벌버스로 갯벌 위를 달리며 색다른 추억도 쌓을 수 있다.
(전시) 베르나르 뷔페展
일정 6월 8일~9월 15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구상회화와 거친 느낌의 인물화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베르나르 뷔페. 생전에 프랑스의 문화훈장을 두 번이나 받았으며, 세계적인 디자이너 ‘디올’이 초상화를 부탁했을 정도로 유명했다. 한국에서 처음 여는 단독 대규모 회고전으로 4m가 넘는 대형 작품을 포함해 유화 작품 92점을 선보인다.
(클래식) 야성적인 로맨티시즘의 거장, 라흐마니노프
일정 6월 12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크고 두꺼운 손으로 로맨틱하면서도 힘찬 고난도 작품들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공연에선 국제 콩쿠르대회 다회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타라소프와 지휘자 성기완이 이끄는 ‘밀레니엄 심포니오케스트라’의 협주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싱그러운 5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공연) 나빌레라
일정 5월 1~12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출연 강상준, 이찬동, 진선규, 최정수 등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나빌레라’는 ‘다음(Daum)’ 웹툰 연재 순위·독자 평점 1위에 오른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발레를 소재로 청년과 노인의 교감과 성장을 그려낸 이 작품은 ‘세대 간 소통’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축제) 제45회 보성다향대축제
일정 5월 2~6일 장소 한국차문화공원 (보성차밭 일원)
보성다향대축제는 영화 및 CF 촬영지로 유명한 보성차밭 일원에서 열린다. 이번 축제에는 전국사진촬영대회, 녹차요정 퍼포먼스, 녹차 스탬프 투어, 화관 상상 무도회 등의 프로그램이 신설됐다. 이외 녹차비누·녹차향초 만들기, 한지공예 등 다채로운 체험도 할 수 있다. 잔디공원에는 관광객이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그린티 쉼터’도 마련돼 있다.
(콘서트) 2019 조수미 콘서트 ‘Mother Dear’
일정 5월 8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늘 재미있고 즐거운 감동을 주는 성악가 조수미가 ‘사랑하는 어머니’를 주제로 한 공연을 선보인다. ‘맘마미아’, 이탈리아의 어머니 노래, 한국의 창작가곡 등 서정성이 돋보이는 곡들을 중심으로 따뜻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테너 겸 기타리스트인 ‘페데리코 파치오티’도 함께한다.
(오페라) 오페라가 들리는 48시간 이탈리아 여행
일정 5월 12일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출연 소프라노 홍혜란, 테너 최원휘, 해설 김문경
휴양의 도시이자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다.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와 푸치니의 작품 위주로 구성되며 해설자 김문경이 음악 중심의 이탈리아 5개 지역 명소를 소개하며 숨은 이야기도 들려줄 예정이다. 따스한 봄, 낭만적인 음악 여행을 떠나보자.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일정 5월 17일~7월 14일 장소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구 삼성전자홀) 출연 김소현, 김우형 등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 주인공 ‘안나’를 통해 보편적인 삶의 가치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실제 스케이트장 같은 무대 연출, 원작 공연에 출연한 러시아 스케이터도 참여해 풍부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오페라) 가족과 함께하는 금난새의 오페라 이야기
일정 5월 26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출연 금난새, 김순영, 김성현, 유동직 등
베르디의 걸작 ‘라 트라비아타’를 ‘콘서트오페라’로 특별 구성했다. 콘서트오페라는 무대 장치와 의상 없이 콘서트 무대에서 하는 공연이다. 이번 공연은 지휘자 금난새가 지휘와 해설을 맡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다. 줄거리를 따라 작품 속 숨은 이야기를 들으며 아름다운 아리아의 선율에 빠져보자.
기분 좋은 봄바람이 불어오는 4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클래식) 2019 교향악축제
일정 4월 2~21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출연 17개 국내 교향악단, 중국 국가대극원 오케스트라
이번 공연의 부제는 ‘제너레이션(Generation)’으로 우리 클래식 음악을 세계에 알릴 젊은 협연자들이 교향악단과 동행한다. 또한 국내에서 초연되는 블로흐의 교향곡 ‘C#단조’도 감상할 수 있다.
(연극) 패왕별희
일정 4월 5~14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 출연 국립창극단
국립창극단과 대만 배우이자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우싱궈(吳興國)가 중국의 대표 경극 희곡 ‘패왕별희’를 창극화했다. 동명의 영화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패왕별희’는 초나라의 패왕 항우와 그의 연인 우희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판소리와 다양한 음악의 결합으로 재탄생한 ‘패왕별희’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은다.
(공연) 이사오 사사키 벚꽃 낭만
일정 4월 6일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출연 이사오 사사키, 마사츠구 시노자키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가 내한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다. 이번 공연에서는 지브리 영화 OST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마사츠구 시노자키와 함께 따뜻한 봄에 어울리는 연주를 들려줄 예정이다.
(전시) 그림책NOW
일정 4월 12일~7월 7일 장소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더 서울라이티움 5관
그림책 작가들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과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상, 미디어아트, 조형물을 감상할 수 있다. 현대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의 다양한 표현과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8년 안데르센상 수상자 이고르 올레니코프의 원화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개되며, 98개국 1844개 작품이 응모한 2019 나미콩쿠르의 수상작도 처음으로 선보인다.
(축제) 태안 세계튤립축제
일정 4월 13일~5월 12일 장소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꽃지해안로 400 코리아플라워파크
태안 세계튤립축제에서는 튤립뿐만 아니라 수선화, 히아신스, 겹벚꽃 등 다양한 봄꽃을 만나볼 수 있다. 곳곳에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3만5000평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꽃을 배경으로 사진도 남길 수 있다. LED 빛이 반짝이는
야간 축제장은 낮과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축제) 고양국제꽃박람회 2019
일정 4월 26일~5월 12일 장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호수로 595
고양국제꽃박람회는 국내 최대 규모의 꽃 축제이자 국내 유일의 화훼 전문 박람회다. 실내정원과 야외 테마정원, 문화 공연 프로그램, 화훼 직판장 등이 운영된다. 특히 올해는 ‘원당화훼단지’와 이원 개최된다. 박람회장에서 화훼 단지까지는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농가 견학, 체험 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수 있다.
따뜻한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3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일시 3월 5~17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출연 박영수, 신상언, 김도빈 등
서울예술단의 대표작 ‘윤동주, 달을 쏘다.’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완성도 높은 무대로 돌아온다. 시인 윤동주의 치열했던 삶과 예술을 담아낸 뮤지컬로 비극의 시대에 써내려간 그의 시(詩)들이 노래와 춤으로 어우러져 감동을 선사한다.
(행사) 2019 광양매화축제
일시 3월 8~17일 장소 전남 광양시 다압면 섬진강 매화마을 일원
전라남도 섬진강변 매화마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광양매화축제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축제다. 새하얀 눈처럼 만발한 매화와 아름다운 섬진강이 함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산책로를 걸으며 백(白)매화뿐만 아니라 홍(紅)색, 청(靑)색 다양한 매화의 색과 향기에 취해보자. 인근 청매실농원에서 광양의 특산품인 새콤달콤한 매실도 맛볼 수 있다.
(클래식) 송영훈의 클래식 큐레이터, 낭만에 대하여
일시 3월 10일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출연 해설가 및 첼리스트 송영훈, 비올리스트 이신규 등
클래식 음악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공연이다. 음악과 미술사의 숨은 이야기들을 대한민국 대표 첼리스트 송영훈이 이해하기 쉬운 해설과 수준 높은 연주로 풀어낸다. 차세대 클래식 아티스트들의 연주로 낭만시대와 인상주의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일시 3월 15일~5월 12일 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출연 이순재, 신구, 권유리, 채수빈 등
까칠한 성격의 고집불통 할아버지 ‘앙리’와 꿈을 찾아 방황하는 대학생 ‘콘스탄스’가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다. 세대 간의 갈등을 소통으로 풀어가는 주인공들은 보는 이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2017년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내공을 자랑하는 배우 이순재와 신구가 ‘앙리’ 역을 맡았다. ‘콘스탄스’ 역에는 권유리, 채수빈이 더블 캐스팅되어 색다른 분위기가 기대된다.
(행사) 제20회 구례산수유꽃축제
일시 3월 16~24일 장소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온천관광지 일원
산수유꽃이 만발하는 지리산에서 봄의 정취와 시원한 고로쇠 약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꽃축제다. 행사장에서 산수유꽃으로 만든 먹거리를 맛볼 수 있으며, 산수유떡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행사와 공연도 펼쳐진다.
(오케스트라) 노다메 칸타빌레 인 클래식
일시 3월 24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일본과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이 드라마 속 정통 클래식이 오케스트라로 찾아온다. ‘한국판 노다메 칸타빌레’인 KBS ‘내일도 칸타빌레’의 연주 대역을 맡은 피아니스트 이현진과 풀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로 클래식 음악을 새롭게 즐길 수 있다.
‘153웨더’에 따르면 이번 주 내내 전국 최고 기온이 10℃ 안팎을 넘나들며, 한낮에는 따뜻한 봄 날씨를 즐기게 됐다. 봄꽃이 만개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특히 올해는 평년보다 1~4일, 작년보다 1~2일 가량 봄꽃을 일찍 만날 수 있다. 개화에 영향을 미치는 2월 하순과 3월은 이동성고기압 영향을 받아 기온이 예년과 비슷하거나 높고, 강수량은 비슷할 것으로 전망한다.
대표적인 봄꽃 개나리, 진달래, 벚꽃의 개화기를 살펴보자.
먼저 개나리는 3월 15일 제주를 시작으로, 남부(3월 16~24일), 중부(3월 25일~4월 2일),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및 산간지방(4월 3일 이후) 순으로 개화할 예정이다. 개나리보다 한발 늦게 피는 진달래의 경우 3월 18일 제주를 시작으로, 남부(3월 19~27일), 중부(3월 28일~4월 2일),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및 산간지방(4월 6일 이후) 순으로 만날 수 있다.
서울시 홈페이지 내 ‘우리동네 봄꽃길 찾아가기’에는 산책 삼아 둘러보기 좋은 봄꽃길을 소개한다. 개나리와 진달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은 서울 강서구 궁산공원·우장산공원, 종로구 인왕산길, 중랑구 용마폭포공원 등이다. 그밖에 철쭉, 산수유, 유채꽃 등이 핀 봄꽃길 정보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다양한 축제로 기대를 모으는 벚꽃은 3월 22일 제주를 시작으로, 4월 중순까지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제주에 이어 남부(3월 23~28일), 중부(4월 2~7일),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및 산간지방(4월 7일 이후) 순으로 피어날 전망이다.
벚꽃 군락지로 잘 알려진 서울 광진구 워커힐길, 양천구 안양천 제방길, 영등포구 윤중로 등을 비롯해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를 찾아가도 좋겠다. 올해 예정된 대표 벚꽃 축제는 진해군항제(4월 1~10일), 팔공산 벚꽃축제(4월 11~15일), 석촌호수 벚꽃축제(4월 5~13일), 섬진강변 벚꽃축제(4월 7~8일), 영등포여의도봄꽃축제(4월 7~12일) 등이다.
나이가 들어도 여배우는 여배우다. 자신감 가득한 눈빛과 표정은 기본, 자기관리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대사 연습은 또 얼마나 많이 했을까. 대본에 빼곡하게 적어놓은 메모를 보니 지금까지 어느 정도 노력을 기울였을지 짐작이 간다. 배우들의 평균 나이가 70대인 ‘느티나무 은빛극단’을 만났다. 설렘과 벅찬 감동. 무대는 그들에게 언제나 꿈이다.
구로구를 대표하는 시니어 극단
구로문화재단 아트벨리 지하 소강당, 매주 화요일은 정기적으로 구로 시니어 연극 동아리 ‘느티나무 은빛극단’이 모이는 날이다. 지금까지 함께 작품을 해온 세월도 11년째. 2007년 구로문화재단이 설립되고 1년 뒤 시니어 연극 동아리가 생겨난 것이 느티나무 은빛극단의 시초다. 시니어 세대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으면 좋겠다는 재단의 뜻이 컸다. 마침 설립 당시 구로구민회관에서는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시니어 교육 프로그램 ‘꿈꾸는 청춘예술대학’이 운영되고 있었다고. 그곳에서 교육받던 시니어를 대상으로 단원을 모집해 창단 당시 20여 명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작년 입단한 신입 배우 우성연(66) 씨를 포함해 현재 13명이 정식 단원으로 활동한다.
배우들의 평균 나이가 70대라지만 시민극단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다. 2018년 제1회 영동생활시민연극제 초청 공연과 함께 성미산동네연극축제, 서울시민연극제에서 2016년과 2017년 각각 무대에 올린 ‘어미’와 ‘우당탕탕, 이사 왔어요!’로 2회 연속 시상대에 오른 바 있다. 느티나무 은빛극단이 아마추어 연극계에서 나름의 성과를 내는 데에는 구로문화재단의 뒷받침이 있다. 단원의 능력 향상을 위해 연극에 필요한 전문 강사를 초빙해주고, 연극 연습이 있는 날이면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소강당도 빌려준다.
육십 넘어 찾은 재능
느티나무 은빛극단 단원들이 자랑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출석률. 정기적인 만남은 당연하고 연극 공연을 앞두고 거의 매일 일정이 잡혀도 밤이고 낮이고 제시간에 맞춰 연습 장소에 전원이 모인다. 이유는 단 하나, 무대에 서는 것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란다. 초등학교 학예회 때 연극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 신정례(73) 씨는 느티나무 은빛극단에서 연극을 하면서 우울증이 싹 나았다며 밝게 웃었다. 구로구 토박이이자 극단 최고 연장자인 안영분(81) 씨는 어릴 적 못다 이룬 꿈을 이뤘다고 했다.
“구로구청 뒤가 제가 태어난 곳입니다. 세 자매 중 막낸데 언니들이 마차 4개를 붙여놓고 학예회를 하는 것처럼 공터에서 뭔가를 하는 거예요. 언니들이 노래를 부르면 저는 그 옆에서 엉덩이를 막 흔들고 춤을 췄습니다. 공부는 잘 못해도 남들 앞에 서서 하는 건 잘했어요. 동네 아이들한테 무용도 가르치고 나름 공연도 했고요. 중학교 때는 청춘극단 단원이었던 동네 오빠를 따라다녔어요. 당시 유명했던 영화 ‘별들의 고향’을 연극으로 만들어 지금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자리에 있었던 제5보충대에서 공연도 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15세였는데 아버지가 그만두라고 해서 배우의 꿈을 포기했습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얌전하게 지내다가 스무 살에 결혼해서 살던 그녀가 바깥 활동을 시작한 건 환갑이 넘어서였다.
“처음에는 구로구민회관에서 노래를 배웠고요. 그 인연으로 연극까지 하게 됐어요. 1년에 한 작품씩은 꼭 하니까 너무 좋아요. 그래서 늙지 않나봐요.(웃음)”
창단 멤버인 이필연 씨는 구내 복지관에서 연극을 하다가 창단 소식을 듣고 입단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곳에서 활동하며 배우로서의 재능을 새롭게 발견한 이도 있다. 2012년에 입단한 강정자(75) 씨는 지금까지 연극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생각도 못했는데 우연히 알게 되었고 용기를 냈습니다. 와서 보니까 이렇게 좋은 인연들도 만나고 행복하더라고요. 제가 참 내성적인데 몰랐던 재능을 발견했어요. 대사 외우는 게 치매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가족들도 좋아합니다.”
양양례(72) 씨도 이렇게 뒤늦은 나이에 연극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안 해봤다고 말한다.
“안영분 씨가 어느 날 같이 가자고 했어요. 한 번도 연극을 해본 경험이 없다 했더니 공부하면 다 할 수 있다 하더라고요. 그렇게 인연이 된 지가 벌써 10년입니다. 살면서 슬프고 힘든 시간도 있었는데 연극 때문에 잘 넘길 수 있었습니다. 여기 오면 마냥 즐거워요.”
서막동(78) 씨는 식당 운영을 잠시 쉬고 있을 때 느티나무 은빛극단 공연을 보러 왔다가 배우가 됐다. 벌써 11년 차 베테랑이다.
“경남 하동 화개장터 쪽이 제 고향인데 연극을 한 번이라도 봤겠어요? 처음에는 떨렸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다른 복지관에서도 연극을 합니다. 가끔 연기 잘한다는 소리도 들어요.”
다양한 사연이 연극으로 모여들다
이곳에서 배운 실력을 봉사활동에 연계하는 단원도 있다. 성모병원 과 마포요양원 등에서 봉사를 해온 임절자(77) 씨다.
“봉사활동한 지는 21년 됐어요. 처음 배울 때는 인형극을 했는데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어떤 날은 연극하듯 어르신들과 얘기해요. 우리 아이들이 그러더군요. 엄마는 정말 열정적으로 산다고요. 연극은 인생 같아요. 굴곡지고 희로애락도 있잖아요.”
젊은 시절 교편을 잡았다는 안옥희(73) 씨는 직장에 다니는 막내딸의 육아를 책임져줄 생각에 한국방송통신대학 교육학과에 편입한 것이 계기가 돼 연극을 하게 됐다.
“손주 육아와 함께 공부하며 사람들을 만나다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그동안 극단 작품 ‘산불’과 ‘어미’에도 출연했습니다. 제가 원래 남자 전문 배우인데 요즘은 연출도 겸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느티나무 은빛극단에는 남자 배우가 없다. 주로 안옥희, 안영분 씨가 남자 역을 맡는다. 한봉애(66) 씨와 임절자 씨도 남자 역으로 무대에 선 적이 있다고. 처음에는 남자 배우도 있었지만 남자 단원의 출석률이 점점 떨어져 여배우 극단이 됐다.
극훈도 있다. “우아하고, 멋있고, 겸손하자”이다. 죽을 때까지 멋진 모습으로 무대에 설 것이라는 느티나무 은빛극단. 2월까지는 휴식시간을 갖고 3~4월 중으로 올해 무대에 올릴 작품을 고를 예정이다. 느티나무 은빛극단을 기억하시라. 한 명, 한 명 연륜에서 우러나온 귀한 열정을 조명 불빛 아래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mini interview◆
‘여성 리더십’으로 우아하게 극단을 이끌다, 느티나무 은빛극단 대표 이정란
목소리에서 강한 힘이 느껴지는 느티나무 은빛극단의 이정란(78) 대표는 소녀 시절부터 품어왔던 꿈 이야기부터 꺼냈다.
“어려서부터 무용을 했죠. 굉장히 잘했어요. 배우도 해볼까 생각해본 적 있는데 집안 반대로 못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다 결혼을 했다. 남편은 살림하면서 아이 잘 키우는 아내를 원했다. 아이들 다 키우고 맞이한 여유로운 시니어의 삶. 부부가 함께 노후를 잘 보내는가 싶었는데 남편이 10여 년 전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우리 집 양반 돌아가시고 나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지역 신문을 들춰보다가 인형극 학교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첫 번째 등록자였어요. 그때부터 연극하고 인연이 됐습니다.”
구로문화재단이 시니어 연극 동아리를 만들어보자며 이정란 대표에게 제안을 했다.
“재단에서 시니어 극단을 만들자고 했을 때 너무 좋았어요. 제가 하고 싶어 했던 거였거든요. 여기저기 다니며 새로 생길 극단을 홍보했어요.”
느티나무 은빛극단을 알릴 수 있는 곳은 다 찾아다녔고 관심 있는 이들과 얼굴을 맞대면서 열정을 불태웠다.
“정말 열심히 했어요. 나이 들면 다들 한 고집하잖아요. 지금까지 모르던 사람들이 연극을 통해 만났으니 무조건 감싸고 서로를 보듬자고 생각했어요. 공연 연습을 할 때 혹시 따라오지 못하는 분에게는 따로 시간을 내서 함께 공부도 하고요.”
극단을 이끌던 지난 11년 동안 지각, 결석, 조퇴를 한 번도 안 해봤다는 이정란 대표. 독하고 무섭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우리 극단 단원은 한 번 나가면 다시 못 들어와요. 나간 사람들이 다시 들어오고 싶다고 해도 냉정하게 잘랐어요. 너무한가요?(웃음)”
대본 외울 때가 제일 즐겁다는 이정란 대표. 대사를 다 외우고 난 다음에는 단원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지금은 다들 너무 잘하셔서 보람을 느껴요. 강사들도 다 딸 같은 사람들이지만 깍듯하게 대우합니다. 단원들 출석률은 칭찬받을 만큼 좋고요. 참 2011년도에 극단 이름을 공모했는데 제가 응모한 아이디어가 채택됐어요. 느티나무는 구로를 상징하고 은빛은 시니어를 의미합니다.”
이 대표는 최근 또 새로운 도전을 했다. 바로 복화술이다.
“연극과 구연동화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배우는 겁니다. 나는 나이 먹어서 못한다는 소리를 안 해요. 자존심 상해서요. 우리 며느리가 그러더라고요. 내가 롤 모델이라고. 나처럼 늙고 싶대요. 항상 도전하는 정신으로요. 연기는 ‘80세까지만 하자!’ 했는데 벌써 팔십이 다 되어가네요. 대본 외울 수 있을 때까지는 무대에 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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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했던 뜨개질 방이 술렁거렸다. 이제부터 다른 것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안 하던 것을 하다니. 잠시나마 당황했다. 손녀뻘로 보이는 어린 선생님이 알록달록 형형색색 끈을 펼쳐보였다. 막상 눈앞에 놓아둔 것을 보니 새록새록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엄마랑 할머니랑 도란도란 앉아서 우리네 옛 매듭을 엮어 만들던 모습이 기억 저편에서 샘솟았다. 전통매듭과 함께 소녀시대로 돌아간 송파시니어클럽의 술술맵시단을 찾아갔다.
전통매듭이 뭐길래?
“작은 선생님, 이리 좀 오셔봐요. 나 길을 잃어버렸어. 요놈 가져다가 넘기지? 하나는 잘 넘어왔는데 하나가 영 안 되네.”
어딘가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책상에 바짝 앉아 ‘오벌가락지매듭’을 만들고 있던 한미자 씨였다. 매듭이 제 길을 찾아 잘 가나 싶었는데 결국 헤매고 말았다며 최현숙 선생을 불러 세운다. 바늘을 사용하지 않고 손을 이용해 끈과 끈이 오가다 보면 소박한 아름다움이 우러나는 전통매듭이 된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송파시니어클럽에는 60대 후반부터 80대까지 8명의 여성 시니어가 모여 매듭을 배우느라 열기가 가득하다. 작년 8월부터 시작했으니 1월이면 전통매듭을 만난 지도 5개월째다. 기초 매듭에서부터 섬세한 작업을 해나가는 시니어의 모습이 꽤나 진지하다. 젊은이들처럼 손이 빠른 것은 아니지만 세월의 노련함이 묻어난다. 나아가 예술성과 함께 상품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만들어 시니어 취미를 넘은 수익활동 영역으로까지 가능성을 넓히는 중이다.
전통매듭을 시니어와 함께 해보겠다며 송파시니어클럽에 노크를 한 이들은 30대가 주축인 문화예술사업단 술술공작소다. 술술공작소 강순주 대표는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배우고자 하는 시니어의 자세가 남달라 새삼 놀랐다.
“기초적인 매듭부터 하나하나 지어나가면서 완벽하게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까지가 수업입니다. 저희가 매번 와서 가르쳐드릴 수는 없어 하루는 교육하고 그다음 시간은 숙제로 내드린 것을 해오게 합니다.”
매듭을 배우기 위해 시니어 학생들이 교실 안 책상 앞에 자연스럽게 둘러앉은 것처럼 보이지만 좌석 배치에는 나름의 공식이 있다. 기본매듭을 배우는 단계와 만들어진 매듭을 적당한 색상으로 배합하는 단계, 마지막으로 끈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단계로 나눠서 일사분란하게 구성원들끼리 호흡을 맞춘다.
술술맵시단, 젊은이와 전통을 공감하다
전통매듭이라는 분야를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나누고 보급할까 고민했다고 강순주 대표는 말했다.
“다른 지역의 시니어 관련 기관에도 가봤습니다. 마침 송파시니어클럽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해주셨어요. 이곳에서 뜨개질하는 시니어분들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전통매듭을 하는 시니어는 송파시니어클럽의 사업단 중 하나인 한코한코손뜨개사업단 소속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주방용 아크릴 수세미 상품을 만들어 수익사업을 해왔다.
“뜨개질도 하는데 전통매듭을 만들어보시라고 제안을 드린 것이죠. 아무래도 손뜨개를 하는 분들이니까 잘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흥미로운 점은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웠다거나, 집에서 만드는 것을 봤던 경험이 있다고 말하는 80대 시니어가 적지 않았다고. 30대 젊은 강사가 전통매듭을 가르치기 위해 왔다가 시니어에게 옛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오히려 더 많은 감동을 받는 시간이라고 한다.
“지금 만들고 계신 것이 연봉매듭이에요. 왕의 곤룡포를 비롯해서 한복이 쓰이는 단추매듭이죠. 한 어르신이 옛날에는 시집가기 전에 옷감 자투리를 말아서 단추를 해가지고 가는 것이 혼수품이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자주 만들어 쓰던 매듭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매듭이 생각 안 나면 어른들이 그러셨대요. 내가 이제 갈 때가 됐구나.(웃음)”
세대 간 소통 부재의 세상에서 이렇게 어우러지기도 쉽지 않을 텐데 서로 상부상조하는 세대 공감 프로젝트로 보였다. 5개월쯤 함께 활동한 후 이들을 대표하는 이름도 신중한 고민을 거쳐 내놓았다. 바로 술술맵시단. ‘매듭을 만드는 시니어 모임’이라는 뜻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잖아요. 설명해드려도 모르는 게 있다 하시면 옆에서 말씀드리고 또 말씀드립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없을 때도 작업을 꽤 잘하십니다. 앞으로의 바람이라면 이분들이 정식으로 자격증을 따고 더 나아가 또래 시니어는 물론 다양한 분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전통매듭을 가르쳤으면 하는 겁니다.”
새로운 것 가르쳐줘서 고마워요
작고 아담한 작업물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요한 시간이 흐른다. 그러나 눈과 손은 예리하게 반응하며 정성을 기울인다.
뜨개질을 오래도록 해왔던 이희자 씨는 “전통매듭이 생소한 분야라 두려움도 있었지만 만들면서 가치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팔 수 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고 했다. 수업 초반 ‘오벌가락지매듭’으로 고생하던 한미자 씨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어머니가 만들던 모습만 봤는데 젊은 선생님에게 배우게 됐다”며 좋아했다. 술술맵시단 고령자 중 한 명인 김정애 씨는 “손을 많이 쓰는 게 치매 예방에 좋다고 들었다”면서 “특히 지역 행사 때 어린아이들한테 매듭 만드는 법을 가르쳐줬는데 보람 있었다”고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80대인 김을용 씨는 “너무 못 따라가고 민폐일까봐 고민을 했는데 여기 모인 분들과 선생님이 친절하게 가르쳐주시고 말동무도 해주셔서 만나는 시간이 늘 기다려진다”고 했다.
“나이 든 사람에게 누가 이렇게 다가와 새로운 걸 가르쳐줍니까.” 술술맵시단 시니어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느리고 서툴지만 섬세함과 정교함을 높여가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진지하게 매듭을 알아가는 중이다. 오늘도 내일도 하루하루 성장해가는 술술맵시단의 멋진 미래를 기대한다.
mini interview 술술공작소 강순주 대표
클래식 소녀 국악을 만나 전통예술을 깨치다
“추계예대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습니다.”
전통매듭을 가르친다는 말에 나이 지긋한 사람을 상상했는데 만나고 보니 35세의 클래식 전공자였다.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총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여러 교수들과도 격 없이 지냈다는 강순주 대표에게 국악과 교수들은 “클래식 작곡 전공자가 국악을 하면 더 가치 있지 않겠냐”며 조언했다. 그때의 강한 끌림으로 졸업과 함께 락음국악단(예술나눔청년사업단)에 들어가 3년 여 활동했다. 뜻 맞는 음악 친구들과는 전통예술단 ‘호연(浩演)’을 만들어 11년째 활동 중이다.
“예술 분야는 사회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요. 지원금이 없으면 예술 단체는 힘들거든요.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큰 일들이 많았잖아요. 지원도 걱정이 되고 자립 방법을 찾아보자 했는데 국악기에 달린 매듭술이 눈에 들어왔어요.”
악기는 애지중지 닦고 조율하면서 매듭술은 악기 처음 샀을 때 있던 것을 그대로 달고 있어 꼬질꼬질해졌다. ‘매듭술 만드는 곳 어디 없나?’ 하다가 공방을 찾아갔다.
“공방 선생님한테 제 전공부터 시작해서 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말씀드렸어요. 상황을 들으시고는 제대로 배워보라고 하셨어요. 사범증을 따고 나니 뭔가 더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술술공작소다. 작년 3월에는 서울대학교 스타트업센터 예술 분야 업체로 선정돼 입주했다. 다양한 축제에 전통매듭으로 참여하다 보니 협업이 가능한 동반 집단이 있으면 좋을 듯싶어 다양한 계층을 만났다.
“다문화가정 여성들도 가르쳐보고 보호관찰소 여학생들도 만나봤어요. 꼼꼼하고 실력은 좋은데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시니어에게는 다가가기가 조심스러웠어요.”
전통이나 매듭을 생각하면 시니어를 떠올리게 되니 진부하게 보이면 어쩌나 걱정됐단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궁합이 꽤 괜찮았다. 그 시대를 살지 않으면 모를 얘기, 특히 매듭과 관련한 추억을 들려주시는 시니어 덕이 컸다. 최근엔 조금씩 수익도 내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송파시니어클럽 술술맵시단과 작업했던 작품이 면세점에서 판매됐다. 올해는 좀 더 열심히 뛰어서 우리 전통을 시니어와 함께 알릴 계획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통 스토리를 담은 음악극도 훗날 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서 음악가로서 포부도 밝혔다.
“우리 것을 만들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전통매듭이 자리를 잡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원활하게 돌아가면 음악과도 어우러질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죠?”
※ 라이프@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창회, 동호회 등이 있다면 bravo@etoday.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바깥에서 유리문 가까이 고개를 낮춰 눈을 들이밀었을 때 그녀의 얼굴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깜짝 놀라 몸이 뒤로 밀렸다. 점심시간.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손맛 좋기로 소문난 동네 맛집으로 고민 없이 향했다. 가을볕 맞으며 맛난 된장찌개 삭삭 긁어 나눠 먹고는 그녀의 별로 들어가 향 깊은 커피를 마주하고 앉았다. 음악소리가 나뭇결을 타고 전해지는 문화살롱 ‘아리랑’ 안. 그곳에서 노래하는 예술가 최은진(崔銀眞·58)의 지나온 인생과 살아갈 날의 이야기 실타래를 조금이나마 풀어봤다.
“문화쟁이들은 나 모르면 간첩이지!”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헌법재판소 옆에 예술인 최은진의 문화공간 ‘아리랑’이 있다. 사람들이 익히 알 만한 설명이라면 말 많고 탈 많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우리 선희’의 주요 무대가 바로 아리랑이다. 낮에는 손님 받을 생각 없는 듯 늘어지고 한산한 모습이다. 밤이 되면 그녀의 별 ‘아리랑’에서는 따뜻한 불빛 아래 술잔이 오간다. 기분이 좀 오른다 싶으면 최은진의 노랫가락에 흠뻑 젖을 수도 있다. 화가, 글 쓰는 작가, 건축가, 교수 등 예술에 조예가 깊다는 이들은 성지마냥 이곳을 찾는다.
“예술가들 많이 오죠. ‘평범’이라는 것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예인들이 많이 와요.”
최은진의 인생 스토리를 다룬 한 프로그램에서 그녀를 만요 가수로만 소개한 것이 아까울 정도로 재능이 많다. 타고난 음색은 노래 분위기에 따라 아이 목소리도 됐다가 농염한 재즈가수도 된다. 옛 가요에 세련미와 특별함을 더해 사랑받고 있다.
인천 출신인 최은진은 초등학교때 인생 최초로 듣게 된 ‘흑자청춘(1966년·정원 노래)’ 한 곡으로 노래에 빠져들었다. 동춘 서커스단 공연 모습을 보고는 교내 체조부에 입단해 활동했다. 20대에는 영혼에 대한 갈증으로 신학교에 들어가 목회자의 길도 꿈꿨다. 지금은 동서양 모든 종교와 철학적 경계를 뛰어넘어 정신세계에 관한 공부와 수행, 묵상하는 삶을 산다. 젊은 시절연극배우로서도 두각을 보여 각종 무대에 올랐다. 그 후 결혼과 출산으로 잠시 활동을 멈췄다가 1999년 현대방송 슈퍼보이스 탤런트 선발대회에서 우수상을 타면서 매스컴 앞에 섰다. 그때 최은진 나이 마흔. 예인의 길을 걷고자 신중하게 진로를 고민하면서 우리의 음악 아리랑과 인연을 맺었다.
아리랑에 정착하다
“젊지도 않은 나이에 방송사에서 시키는 거 하는 게 싫었어요. 대신 재즈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어서 뉴욕으로 유학을 가려고 마음을 굳혔어요. 그때 우리 아들이 어리니 한 5년만 다녀올까 생각했는데 제 앞에 아리랑이 다가왔어요. 오케스트라 협주로 된 아리랑을 듣고 눈물을 잔뜩 쏟아냈습니다. 이게 내 운명인가보다. 아리랑도 결국 재즈잖아요. 우리만의 소울이 깃든 재즈요. 2003년에 나운규 탄생 100주년 음반 ‘다시 찾은 아리랑’을 낸 것이 새로운 삶의 시초가 됐습니다.”
진정한 음악을 찾아 뉴욕에 가고자 했다. 알고 보니 영혼이 깃든 음악의 본질은 최은진 자신이 서 있는 토양에도 있었다.
“이생에서 정체성을 찾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해요. 아리랑을 하러 세상에 왔구나. 아리랑 음반을 내고 나서 이곳에 터를 잡았어요. 마이크랑 스피커도 가져다 놓고요. 여기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더니… 희한해요. 사람 구경 못하던 거리에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저기 가면 옛날 목소리 나는 여자가 있다면서요.”
아리랑에 무슨 애환이 있기에 최은진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는 일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언젠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국제교류 아리랑 축제에 초청돼 갔어요. 그때가 추석쯤이었는데 아리랑 요양원이라는 곳에서 위문공연을 했어요.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목화밭에서 그렇게나 많이 고생하셨답니다. 차를 타고 가는데 나도 모르게 입구에서부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공연을 못할 뻔했어요. 너무 울어가지고요. 일주일 전쯤 소록도에 갔을 때도 화장장 근처에서 비슷한 경험을 또 했죠. 교감이 되는 거죠. 그 당시 힘들었던 사람들의 삶이 저에게 그대로 오는 거예요. 나도 조금은 특별한 별인 셈이죠.”
다가오는 영혼들의 울림이 있기에 곡마다 정성과 마음을 담아낸다. 2010년에는 지극정성의 보답처럼 2집 음반 ‘풍각쟁이 은진’이 1만 장 이상 팔려나가며 인기를 얻었다.
“‘오빠는 풍각쟁이(1938)’를 리메이크한 앨범을 냈어요. 처음에 음반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줄 서서 구입했다더군요. 서점에 가서 모르는 척하고 물어봤죠.(웃음) 인터넷도 안 하고 매일 이곳에 있으니 알 수 있겠어요? 마니아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었대요. 이 여자가 누구냐고요.”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강산에도,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부른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도 그녀의 왕팬을 자처했다. 그렇게 최은진의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소문을 타고 흘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가들에게도 알려졌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치가 세션과 프로듀싱을 담당하면서 그녀의 두 번째 음악 작업에 힘을 보탰다.
진정한 레트로 음반 ‘헌법재판소’
최근 최은진은 엄청난 시도를 감행했다. 아리랑 소리꾼 혹은 조금 현대적인 느낌으로 편곡된 옛 곡을 부르던 것과 차원이 다른 음악 장르에 도전한 것. 바로 옛 가요를 1980~90년 대 인기를 끌었던 일렉트로닉 스타일로 재해석한 세 번째 앨범 ‘헌법재판소’다.
아들 또래인 젊은 음악가와 작업을 하고 음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으로 앨범을 제작했다. 그녀의 이전 음반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같은 사람이 불렀다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로 파격 그 자체다. 시니어가 노래방에 가서 18번으로 잘 부르는 남인수의 ‘무너진 사랑탑(1960)’과 백년설의 ‘아주까리 수첩(1942)’은 젊은 세대의 숨을 불어넣어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으로 거듭났다. 원곡을 즐겨듣던 시니어에게는 신선함을, 곡을 전혀 모르는 세대에게는 새로운 음악으로 느껴질 만하다. 지난 호 ‘브라보 마이 라이프’ 커버스토리로 다뤘던, 진화하는 레트로 열풍의 기류에 최은진의 새 앨범도 합류했다.
“정말 현대적으로 만든 거예요. 나이어린 음악인들과 같이 작업하면서 새로운 걸 배우는 거죠. 젊은 세대도 저하고 음악을 만들면서 배우는 게 있었을 겁니다. 옛날 정서를 무시하고 과정 없는 음악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해줘요. 그리고 가사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요즘은 ‘아리랑’ 문을 여는 일 외에는 새 앨범 홍보 쇼케이스 무대에 선다. 12월 1일에는 홍대 더스텀프에서 새 앨범을 소개하고 알리는 쇼케이스를 열어 성황을 이뤘다.
“처음에는 ‘아우! 전자악기 반주에 맞춰 어떻게 노래하지?’ 그랬는데 들을수록 좋아요. 이게 정서에 맞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제가 작사, 작곡한 음악도 수록했고요.”
군대 간 아들을 생각하며 썼다는 ‘양구’는 최은진이 작사와 작곡을 맡았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깊이 배어 있는 노래인데 여성들은 무덤덤하게 듣는 반면 남성들은 곡을 듣자마자 “엄마 보고 싶다”를 연발한단다.
삶의 씻김, 문화살롱 ‘아리랑’
3집 타이틀곡인 ‘헌법재판소’는 이노경이 쓴 곡에 최은진이 가사를 붙였다. ‘아리랑’에서 만나온 사람들을 생각하며 써내려간, 모든 세대를 위로하고 싶어 만든 곡이다.
“사람들이 술 한잔 마시면 그렇게들 울어요. 속에 있던 이야기를 꺼낸단 말이죠. 대부분 다 울어. 그러면 나도 울고. 저마다의 인생에는 어마어마한 일이 많잖아요. 위로가 필요한 모두를 위해 썼어요. 해우소라는 말 있잖아요. 내가 볼 때 이 집은 울다가 웃다가 위로받는 집이야.(웃음)”
어떤 것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뭘 하든 이렇게 가는 거지 뭐”라고 답한다. 그냥 매일을 사는 것. 시상이 떠오르면 적고 악상이 떠오르면 함께 작업하는 음악인들과 얘기하면 된단다.
“그 젊은 친구들 밴드 이름도 만들었어요. 대열차강도밴드래요.(웃음)”
무엇보다 공연에 힘을 좀 기울이고 싶다고 했다. 무대가 늘 그리운 천생 무대 체질 그녀다. 세상을 위한 조언이 마지막으로 이어졌다.
“머리 말고 가슴을 써야 해요. 그래야 바로 연결될 수 있죠. 소통 말입니다. 그러려면 시간 낭비하지 말고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해요. 후배들에게 고독한 시간이 중요하다고 조언해요. 오늘 인터뷰 때문에 산책을 못했는데 조금이라도 할 수 있으려나….”
시간을 너무 많이 뺏은 걸까. 헌법재판소 옆. 땅거미가 지면 작은 별 하나가 떠오른다. 위로받고 싶은 이들이 호주머니에 손 넣고 한 명, 두 명 들어와 착석. 위로가 필요한 당신들을 위해 오늘밤도 아리랑의 문은 열린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너무 많이 수고하셨습니다.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