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피곤함이 연속으로 와서 피곤하면 얼굴까지 아플 정도로 상태가 안좋아지곤했다. 그럴 때는 전신마사지를 받거나 머리에 침을 맞거나 심하면 링거를 맞거나 했다.
하루는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갔다가 진맥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몸이 안 좋으니 내과에 가보라고 하여 기본검사를 하니 이미 당뇨병초기였다. 보약 먹으라고 하지않고 우선 피검사, 소변검사를 해보라고 한
그 한의사분에게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참 고마운 분이다. 그래서 당뇨를 비교적 빨리 발견하여 다행이었다.
맛집을 자주 다니고 공사다망했던 필자는 모임메뉴에 따라 아주 맛있게 식사를 하였다. 반찬 남으면 밥을 추가로 주문하고 밥이 남으면 반찬을 리필 받았다. 한참 일을 많이 할 때라 피곤도 모르고 지방도 다니고 날아다녔다. 50세 중반 넘어 가장 바쁜 사람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서울에서 새벽ktx타고 부산 갔다가 점심먹고 대구와서 일보고 밤에 다시 서울와서 저녁식사를 하였으니 체력적으로나 식사메뉴조절도 안하고 먹는 것도 단 것, 기름진 것을 좋아했으니 몸이 안 좋아진 것 그때였던 것이다.
발견 이후 당뇨체크를 하면서 흰밥의 양을 줄이거나 선택이 가능하다면 비빔밥이나 샤브샤브를 주문하여 야채를 많이 먹고 흰밥과 국수의 양을 줄였다. 이전에는 밤에 일을 해야 할 경우에는 야식으로 식빵두개속에 땅콩버터와 딸기잼을 넣고 믹스커피 두 개를 뜯어서 뜨거운 물을 붓고 마시면서 그 맛있는 땅콩딸기잼샌드위치를 다 먹고 새벽까지 일을 하였다. 밤에 애들 핑계대고 피자나 치킨 주문하여 입이 짧은 가족들 남긴 것까지 다 먹고 탄산음료도 많이 마셨다.
이제는 정말 라면이 많이 먹고 싶으면 물과 함께 배추속이나 버섯을 세로로 슬라이스 하여 넣고 끓이면서 라면은 원래 한 봉지 양의 4분의 1정도를 넣고 스프는 다 넣는다. 한결 그 국물이 야채나 버섯의 성분이 국물 속에 우러나고 간도 딱 좋다. 정말 먹고 싶은 날에는 피자도 토마토슬라이스하여 그 위에 토핑하듯 토마토위에 피자 조각을 얹어서 하나씩 먹는다. 하나둘 먹으면 먹고 싶은 욕구도 해소되고 이러면 안 되지 하는 맘도 들어 저절로 손을 놓게 된다.
그렇게 하고 잠자기전 당뇨수치를 재어본다. 신기하게도 생각보다 평소보다 약안먹고도 낮은수치에 놀란다. 반대로 먹고 싶다고 무방비상태로 마구 당뇨수치올릴 음식을 먹으면 영락없이 후회한다.
혈압도 당뇨도 매우 걱정스런 병이지만 더불어 잘 다스리면 오히려 준비 없이 당하는 경우보다 훨씬 삶이 건강하게 유비무환의 양호한 인생으로 안정되게 살아가게 된다. 밤의 야식과 밀가루음식과 기름에 튀긴 음식을 즐기지만 않아도 혈액이 맑아지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훨씬 가벼운 느낌을 갖게 된다. 내 몸이 몇 년간 스스로 임상 실험하여 얻은 내용이고 실제로 검사하러 가면 결과에 다 나온다. 당뇨와 혈압은 이미 아직 안 걸린 분들에게도 발옆에까지 언제나 와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더 가까이 다가온다. 인생의 모범생이 되기 위해 의사선생님말씀 잘 듣고 약도 생활도 처방대로 하려고 오늘도 노력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맘이 편해야 한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항상 새롭고 바쁘고 할 일도 많다. 한 가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마무리 하고 끝나는 일은 거의 없다. 이것 하다 보면 또 새로운 일이 생기고, 일하는 중에 더 급한 일을 처리하기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실수도 가끔은 하게 된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발생했다.
자격증 발급을 위한 사진 스캔을 맡겼는데 맡긴 서류가 오리무중이 돼 버린 것이다. 맡긴 사람도 시켜 놓고 다른 일에 바쁘니까 금방 챙기지 못했고 일을 맡은 직원도 일하다 이것저것 일이 밀리니 잊어버린 듯했다. 얼마후 그때 그 스캔 맡긴 것이 어떻게 됐느냐고 찾았는데 얼떨떨해진 것이다. 일을 맡은 직원은 ‘그때 스캔한 기억은 나는데 안 드렸느냐고 반문하고, 맡긴 사람은 분명히 주긴 했는 데 받지는 않았다.’라고 하고. 없어서는 안 될 자료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다시 한 번 잘 좀 찾아보라고 소동이 났는데 아무리 찾아도 각자에게는 없다고 했다.
분실된 자료를 놓고 상황이 복잡해졌다. 30여 명 사진을 다시 받는다는 것도 힘든 일이다.
함께 있는 다른 직원들까지 불안해 졌고 분위기는 다운되어버렸다. 이쯤 되면 당사자는 완전 자존심이 걸린 게임처럼 되어 버린다.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치킨게임처럼...만약 자신의 실수가 인정되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자못 심각해지고 험악해지자 필자가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좀 더 시간을 갖고 차분히 찾아보자.’라고 제안을 했다. 어딘가 분명히 있을 터이니 다시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며칠이 지났다. 직원 한 사람이 없다던 서류를 찾아들고 들어왔다. “제가 미쳤나 봅니다. 제 가까운 데 있었던 걸 못 찾았습니다.” 하며 자신의 잘못이었다며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그래? 거 봐! 내가 있을 거라고 했잖아. 아무튼 다행이다. 수고했다.” 하면서 등을 두들겨 주었다. “ 죄송합니다.” 자신이 찾는 곳만 찾아봤지 설마 하는 곳은 건너뛰고 찾은 듯했다.
그 험악하던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실수를 고백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이럴 때 “제 실수입니다. 제가 미쳤나 봅니다.” 하며 쾌히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을 보면 더 신뢰가 간다. 실수를 고백할 때도 용기가 필요하다. 최대한 빨리 탁 터놓고 해야 멋지다.
이러 저러한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용기가 퇴색될 수 있어서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다. 두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언쟁이 붙어 치열하게 싸우다 폭발하기 직전, “ 그래 성질 좋은 내가 참지.” 하며 양보하는 사람이다. 지는 것 같지만 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하다 보면 언제나 크고 작은 일은 생기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서로 간 오해도 생기게 되고 얼굴을 붉히게도 된다. 그러나 그때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게 되면 신뢰는 더욱 깊어진다. 그런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일할 맛이 난다. 그래서 나는 실수를 쾌히 인정하는 용기있는 사람이 좋다.
서울 개포동에서 치킨 집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다. 어릴 때부터 한 동네서 자랐고 나이도 같으니 같은 길을 걸어왔다. 그러다가 필자는 1999년 말에 퇴직했고 그때부터 16년간 퇴직자의 길을 걸은 셈이다. 그러나 이 친구는 그 당시 마지막 직장을 퇴직하고 6년을 집에서 놀았다. 내 한 몸 간수하면 그만인 필자와 처지가 다른 것은 처자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인은 치킨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댔다. 필자도 노는 처지라 놀지 말고 돈을 벌라고 할 처지가 못 되었으나 보기 안쓰러웠었다. 그러다가 치킨 집을 인수하고 부부가 운영하게 된 것이다.
개포동은 그런대로 장사가 잘 되었다. 브랜드도 잘 알려져 있고 맛도 있어서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점포 내에는 4인용 작은 테이블이 2개 있을 뿐이고 대부분 배달 주문이다. 그간 다른 치킨 브랜드들이 7개나 새로 생겼지만, 여전히 이집은 매출이 꾸준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큰 이벤트가 있으면 매출이 급증하며 중계시간에 맞춰 밤을 새우기도 했다.
다른 치킨 브랜드와 맛의 차이를 물었다. “닭고기는 어떻게 조리하든 원래 다 맛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 닭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맛이 있다. 필자가 가면 맛있는 윙을 주로 골라 주니 더 맛있게 느껴졌다.
더운 여름 날, 기름에 닭을 튀기느라고 땀 흘리며 고생하는 부부의 모습을 볼 때 좀 미안했다. 나는 도와준다고 손님으로 가서 여유롭게 먹고 앉았고 그들 부부는 닭고기 튀기느라고 땀을 흘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친구인 필자에게는 돈을 많이 받지도 않았다. 생맥주 무한 리필에 닭고기도 무한 리필이다. 바쁘니까 생맥주는 아예 필자가 따라 먹는다. 처음에는 안 받으려 하다가 일인당 1만원을 받았다. 그래서 갈 때마다 과일이나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갔다.
밤 12시쯤 일이 끝나는데 필자가 그 시간까지 있어주면 같이 술 한 잔 할 수 있지만, 그것도 그에게는 사치였다. 하루 종일 고생한 부인을 집까지 태워다 줘야 하는데 술을 마시면 운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술을 안 마신다고 해도 다음 날 장사 준비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필자 때문에 수면 부족이 되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게 뭐냐고 물으니까, 더운 날 뜨거운 기름 앞에서 조리하는 것도 힘들지만, 배달도 힘들다고 했다. 스쿠터로 배달하는데 그간 교통사고로 몇 번이나 사고가 났었다. 본인이 배달하는 것도 힘들지만, 아르바이트생들을 쓸 때 툭하면 지각하거나 안 나오기도 하고 그만두는 일이 속을 썩였다고 한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쉬는 날 없이 일을 했다. 그럼에도 돈이 손에 쥐어지는 재미에 힘 드는 줄 몰랐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학비가 필요했다.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친구들이 모임장소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쉬어가면서 하라고 권고하자 가장 한가한 매주 월요일은 휴무일로 정했었는데 경쟁이 심해지자 2주에 한 번 쉬거나 아예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벼락 선언을 했다. 올해까지만 하고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돈도 벌만큼 벌었고, 아이들도 더 이상 뒷바라지가 필요 없을 만큼 다 컸다는 것이다. 그간 부인 고생 시킨 것도 미안하고 환갑잔치도 못해줬다는 것이다. 몸도 여기 저기 아파서 더 이상 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개포동이 재건축으로 사람들이 차츰 빠져 나가서 장사가 덜 될 거라는 생각에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가까운 양평에 전원주택 한 채 사서 텃밭이나 일구며 여생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큰 농사를 지으면 힘드니까 저절로 열리는 과수 정도를 재배하다가 따먹으면 되는 정도로 쉽게 살겠다고 했다.
이제 필자 나이가 정말 은퇴할 나이라는 게 실감 난다. 인생 100세라지만, 앞으로 건강나이만 따지면 정말 많이 남지도 않았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면 좋을지 차분하게 주변을 돌아 볼 때라는 생각이 든다.
덜덜거리는 중고차를 끌고 남편을 마중 나갔다. 미리 나와 기다리던 남편은 반갑게 가족을 향해 달려왔다. 남편은 그날 저녁을 쏘겠다며 ‘엘폴로코’라는 멕시칸 음식점으로 안내를 했다. 온갖 인종 사람들이 주문을 하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처음으로 먹어보는 훈제 치킨요리는 소오스가 약간은 이상했지만 그런대로 동양인 입에는 맞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필자는 일 주일에 한번씩은 멕시칸 음식을 즐겨먹었고, 다이어트 식으로도 아주 좋았다. 온 가족이 기분 좋게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남편이 일하는 세탁소는 다우젼옥스라는 동네에 있었고 필자의 집은 시미벨리라는 곳에 있었다. 23번 후리웨이를 타다가 다시 101번 후리웨이를 타고 또다시 118번 후리웨이를 타야만 비로소 씨미벨리라는 시골 동네로 들어 설수가 있다. 말이 시골동네이지 숲이 우거지고 나무들이 무성한 완전한 전원도시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 라이브러리(기념 도서관)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동네이기도 하다. 집들은 거의 궁전처럼 커다랗고 전형적인 서부 미국의 베드타운 도시였다.
동네 뒤편으로는 뺑뺑 돌아 겹겹이 울창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그 아래 골짜기에 아늑하게 집들이 분포되어있는 분지 형 도시였다. 백인들은 주로 은퇴를 하고 조용히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 도시는 한적했다. 한인들도 약 300명 가량 살고 있어 너나 할 것 없이 가족 같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특히 여름이면 뜨겁고 건조해서 더운 동네로 이름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한낮에는 그 열기로 집밖에서는 숨을 쉴 수가 없어 나가 돌아 다닐 수가 없었고, 밤에는 너무 건조한 탓에 코가 헐기도 했다. 모든 실내에서는 가습기와 에어컨이 왕왕 돌고 있었다.
퇴근길에 이런 저런 이야기로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앞으로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에는 석양의 노을이 길고 멋지게 깔려 있었다. 너무나 또렷하고 아름다운 붉은 빛으로 필자는 눈을 뗄 수가 없어 가족들에게 손짓을 하며 가리켰다. 남편과 두 딸도 두리 번 거리며 멋진 노을장면을 눈에 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아무리 쳐다봐도 무어라 표현 할 수 없는 묘한 광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멋진 사진 같은 장면은 무언가 지나침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필자의 집 쪽으로 다가 갈수록 매쾌한 냄새가 풍겨오며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열심히 앞을 주시하며 산등성이 고개 길을 돌아 씨미벨리 초입으로 들어서자마자 남편은 소리를 질렀다.
“산불이다. 산불! 저거 불 난 거야!” 자세히 보니 정말 뺑뺑 둘러진 산등성이를 따라 불꽃이 길다랗게 잔잔한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었다. 필자가 본 것은 석양이 아니라 산불이 나면서 시작된 불꽃의 여명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바라보는 잊지 못할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가족들은 당황과 흥분이 시작되었고, 필자가 사는 동네 쪽이라 우선 빨리 집으로 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동네 입구로 들어서자 회오리 바람이 탄내를 몰고 다니기 시작했다. 차 창문을 꼭 닫고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도 아파트 주변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필자가족은 궁금해서 그냥 집에 머물 수가 없었다. 불구경 이나 싸움구경은 누구도 못 말린다고 다같이 구경을 나가기로 합의 끝에 온 가족은 다시 밖으로 나갔다. 집에서 조금 멀리 산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동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와서 이리저리 더 잘 보이는 장소를 찾고 있었다. 맥없이 돌아다니는 차들이 어찌나 많은지 혼란스러웠으나 모두들 긴장한 두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북쪽 산등성이로 갔을 때는 이미 도착한 차들이 빈틈없이 들어 차있어서 차를 세울 공간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 백인 흑인 멕시칸들은 각양각색의 카메라를 손에 들고, 그 신비로운 자연의 놀라운 한 장면을 담아두기 위해 하나같이 애를 쓰고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불꽃들을 찍어대느라 산등성이에 서있는 사람들은 또 하나의 작품이었다. 필자가족도 얼떨결에 빈손으로 나온 것을 후회 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눈으로 구경하기도 바쁜데 그것들을 촬영까지 한다는 여유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불은 조용히 점점 더 길게 뻗쳐 나갔고 그 불 줄기는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타고 밤하늘에 꽃처럼 피어올라 석양의 노을처럼 환하게 비추어나갔다. 목이 칼칼하게 매연으로 가득한 공기였지만,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한인주민들은 들뜬 마음으로 이 집 저 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멀쩡한 평일 저녁에 한자리에 모여 티타임을 갖게 되었다. 터주대감인 집주인 집사님도 조금은 당황한 듯 흥분된 목소리로 그 동네 역사를 설명해 주었다.
캘리포니아 전 지역은 해마다 여름이면 산불이 연중행사가 되었고, 다만 그때마다 어느 곳에서 일어날지는 모른다고 했다. 씨미벨리에도 10여 년 만에 찾아온 큰불이라고 했다. 캘리포니아는 사막지대로 무척 고온 건조했다. 특히 여름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풀이나 나무들이 바싹 말라 바람만 심하게 스쳐도 그 부딪힘으로 불이 날수도 있다고 했다.
간혹 누군가 담뱃불을 아무 곳에나 버려서 그 불씨들이 끝내는 몇 날 몇 일, 심지어는 몇 달 동안 불꽃의 행진이 이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방화범은 언젠가는 꼭 잡혀왔고, 하늘에 뜬 헬기와 함께 소방관들은 맞불작전으로 뜨거운 열기를 진압해 나갔다. 미국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소방관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중에 하나라고도 했다.
한 달 내내 타오른 거대한 산불이 초보 이민가족에게는 경이롭고 대단한 경험이었다. 어쩌면 천사의 도시라는 대자연의 축복아래로 인간이 겪어야 할 한편의 재앙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하늘아래 축복과 재앙의 아이러니, 지구의 균형된 일면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도 캘리포니아는 전 세계 최고의 기후를 자랑하지만 매년 여름이면 산불이라는 골치 아픈 연중행사가 자리매김을 한다. 천사의 도시 산등성이에는 올 여름에도 타오르는 불꽃들이 수를 놓으며 이글거리는 붉은 빛으로 하늘을 향해 치닫고 있다.
갖가지 향신료를 넣어 만든 인도 요리를 통틀어 커리(curry)라 한다. 인도는 치매 발생률이 낮은 국가로 잘 알려졌는데, 그 일등 공신으로 커리의 주성분인 강황을 꼽는다. 강황에 들어 있는 커큐민이 뇌 속에 쌓여 있는 단백질을 제거하는 효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뇌를 건강하게 하는 향긋한 커리 맛집 ‘나마스테’를 소개한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5월 가족 외식엔 영양 만점 인도 커리
인도에서 시작된 커리는 영국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카레’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해진 음식이다. 채소와 고기를 넣고 뭉근하게 끓여 밥에 얹어 먹는 한국식 카레라이스도 맛있지만, 다양한 재료와 향, 색깔로 입맛을 사로잡는 인도식 커리 맛집을 찾는 이도 늘고 있다. 특히, 중·장년의 치매 예방은 물론 성장기 아이들의 두뇌 발달에도 좋아 가족 외식 메뉴로 즐기기에 알맞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인도 커리 전문점 ‘나마스테(NAMASTE, 인도 인사말이기도 함)’는 30여 가지 커리(1만4000원~1만6500원 선)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채소, 닭고기, 양고기, 소고기, 해산물 등 (돼지고기는 들어가지 않는다) 주재료와 향신료 배합에 따라 어른들이 좋아하는 매콤한 커리부터 아이들이 먹기에 부담 없는 달콤한 커리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나마스테에는 커리 외에도 인도 셰프들이 엄선한 현지 식재료로 만드는 애피타이저와 탄두리(tandoori: 화덕에서 구워낸 요리), 디저트 메뉴 등이 있다.
메뉴 고르기가 어렵다면 런치세트나 디너세트를 추천한다. 런치 코스A(1인 1만3200원)는 그린샐러드, 커리(치킨 마크니와 믹스 베지터블 중 택1), 난 또는 밥, 후르츠 라이타(과일 수제 요거트)로 구성된다. 런치 코스B(1인 1만9800원)는 그린 샐러드, 탄두리치킨, 커리(프론 마크니와 팔락 파니르 중 택1), 난(플레인, 갈릭, 버터 중 택1), 밥, 차 또는 커피를 제공한다. 디너에는 애피타이저나 탄두리, 케밥 등이 어우러진 코스(1인 A-2만8000원, B-3만5000원, C-4만5000원)로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인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빨간 벽에 아기자기한 타일 문양이 어우러진 홀(hall)과 짙은 푸른빛 벽지에 금색 무늬가 돋보이는 룸(room)이 대조를 이룬다. 곳곳에 인도의 상징인 코끼리 장식이 놓여 있다. 조명이 살짝 어둡지만 매장 가운데 놓인 촛불이 은은한 분위기를 더한다. 초 밑에는 초 4~5배 정도 길이의 촛농이 쌓여 마치 얼음기둥처럼 보인다.
보통 여러 명이 주문을 하면 다양한 커리를 시켜 나누어 먹는데, 조금씩 덜어서 맛볼 수 있도록 커리 그릇에 숟가락을 꽂아 낸다. 밥 위에 한꺼번에 부어 먹는 카레라이스와는 다르게 여러 가지 커리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커리와 함께 먹는 밥은 3종류가 있다. 한국 쌀로 만든 플레인 라이스(2000원), 인도 쌀로 만든 바스마티 라이스(3500원), 그리고 사프란(saffron)을 넣어 만든 사프란 라이스(5500원)이다. 꽃잎을 말려 만든 고급 향신료인 사프란을 넣은 밥은 노란빛을 띠는데 별미로 즐길 만하다.
한국인은 밥이 익숙하지만, 인도에서는 주로 화덕에 구운 부드럽고 납작한 빵인 ‘난(nan)’을 곁들여 먹는다. 커리에 찍어 먹거나, 탄두리 치킨 등을 싸서 먹기도 한다. 나마스테에는 기본 난(2500원)을 비롯해 버터 난(3000원), 갈릭 난(3500원), 치즈 난(6500원), 나마스테 스페셜 난(5500원, 견과류를 넣어 만든 난)을 판매한다.
밥과 난에 잘 어울리는 인기 커리 메뉴는 신선한 토마토, 크림 허브로 만든 치킨 마크니(1만5500원), 매콤한 맛이 일품인 비프 빈달루(1만6500원), 시금치와 쿼티지 치즈가 들어간 팔락 파니르(1만4500원) 등이다. 식후에는 디저트로 인도식 수제 요거트로 만든 라씨(5500원, 플레인·망고·딸기·키위)나 마살라 차이티(5000원, 시나몬·카더멈·우유를 넣고 끓인 차) 등을 즐기면 이색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52길 5 지하1층 (압구정 로데오역 4번 출구·학동사거리 일지아트홀 근처)
문의 02-549-4667
영업시간 11:00~22:00 (연중무휴)
오랫동안 로제 와인은 하잘 것 없는 싸구려 와인으로 남프랑스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때 더위를 식히기 위해, 목마름을 가시게 하기 위해 마시는 휴가용 와인 정도로 치부되었다. 타벨(Tavel)이나 방돌(Bandol)과 같은 지극히 예외적인 몇 종류를 제외하면, 로제의 명성은 언제나 그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로제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다. 마시기 편하고, 색깔이 아름답고, 향도 좋고, 가격도 적당하고, 게다가 질적인 면에서 괄목할 만한 향상을 이루었다. 한마디로 로제 와인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일종의 유행 혹은 모드가 되었다. 이는 기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우선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향상이 눈에 띈다. 발효 시 적절한 온도 조절로 향이 보다 향상되었고, 탄산가스의 사용으로 황의 첨가를 줄였고, 사용하는 효모의 선택도 보다 엄격해졌다. 다음으로 포도 재배와 품종의 선택과 같은, 보다 본질적인 측면에 많은 노력이 경주되었다. 수확량의 감소, 농약 사용의 제한, 보다 고귀한 세빠주의 사용, 적절한 수확기의 선택을 통한 잘 익은 포도 수확 등등… 로제 와인의 이 같은 질적 향상을 위해 요술방망이 같은 특별한 무슨 비결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로제의 부상(浮上)은 위에 열거한 것과 같은 여러 작고 섬세한 노력이 모인 결과다.
아직 우리의 로제 와인 소비는 매우 적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와인이기도 하다. 흔히 로제 와인은 레드와 화이트를 섞어서 주조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부 와인 책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을 정도다. 프랑스에서도 14%에 달하는 와인 소비자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조사도 있었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2009년 유럽연합은 로제의 주조방식으로 레드와 화이트를 섞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프로방스를 중심으로 하는 로제 생산자들은 ‘섞는 것은 로제가 아니다!(Couper n’est pas rose!)’라는 기치 아래 거세게 저항했으며, 이에 세계의 언론들도 프랑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국 유럽연합이 제안한 법안은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같은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로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주조된다. 첫째, 가장 전통적인 마세라시옹(maceration) 방식이다. 수확한 적포도를 로제의 색깔이 우러날 때까지 24시간 혹은 48시간 정도의 짧은 기간 탱크(tank)에 담아둔다. 그런 다음 포도를 압착해서 즙을 짜고, 발효를 시킨다. 단지 그리(gris/grey) 방식은 마세라시옹 절차를 거치지 않고, 화이트 와인 주조처럼 바로 적포도를 압착해서 발효시키며, 그 결과 색깔이 대단히 옅다. 이런 로제를 따로 ‘그리’라 부른다. 둘째, 세눼 방식(methode saignee)이다. ‘세눼’는 불어로 ‘피를 흘리다’(saigner)라는 뜻의 동사에서 온 것인데, 수확한 적포도를 레드 와인을 주조하는 탱크에다 넣고 원하는 로제 색깔에 이르면 흐르는 즙의 일부를 받아 주조한다. 이렇게 생산된 로제는 부드럽고(supple), 섬세하며(fine), 민감(delicate)한 특성을 지닌다. 끝으로 샹파뉴 로제의 주조 방식이다. 일반 로제는 레드와 화이트를 섞는 것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반면, 샹파뉴 로제를 주조하는 데는 유일하게 이 같은 방식이 허용되어 있다. 하지만 보다 구조가 탄탄한 샹파뉴 로제를 주조하기 위해 전통적인 마세라시옹 방식을 적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샹파뉴 로제의 주조에는 두 가지 방식이 모두 사용될 수 있다.
로제 하면 흔히 핑크(pink) 색깔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영어와 독어로는 그대로 ‘로제’, 스페인어로는 ‘로사도’(rosado), 이탈리아어로는 ‘로사토’(rosato)라 불리는데, 창백(pale)하거나 투명(clear)한 것, 양파껍질 색, 자고새 눈 색깔(eil-de-perdrix), 산호 색(coral), 연어 색, 체리 색, 기와 색(tuile) 등 매우 다양하다. 이는 사용하는 세빠주의 영향도 받지만, 위에서 설명한 주조 방식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것이다. 혹 로제를 마실 기회가 있으면, 다양하고도 아름다운 로제 색깔의 팔레트를 눈요기해보기 바란다.
와인을 색깔로 구분하면 레드·로제·화이트 세 종류가 있다. 레드와 화이트를 적절히 섞으면 얻을 수 있는 색깔이지만, 위에서 보았듯이 샹파뉴 주조만 제외하고 아직 프랑스에서는 이 방식은 금지되어 있다. 문제는 ‘붉은색이 어느 정도 이상일 때 혹은 이하일 때 로제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명백한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기에 지역에 따라 얼마간의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알사스에서 레드로 간주되는 많은 피노 누와는 사실 보르도에서 로제로 여겨지는 클라레(claret)에 비해 몸체나 색상이 로제에 가깝다.
로제는 최근의 인기와 더불어 프랑스의 여러 지역을 비롯해 많은 뉴 월드 지역에서도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로제 생산지역은 남부 프랑스의 프로방스(Provence) 지역이다. 총 2만6890ha의 재배면적을 지닌 프로방스는 프랑스 총 로제 생산량의 38%, 세계 총생산량의 8%를 차지하고 있다. 2년 전부터 프랑스는 화이트보다 로제를 더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만큼 최근 들어 로제의 성공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양질의 로제를 생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양조 테크닉과 다방면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마침내 오크 통에서 숙성시킨 로제가 등장하기도 했다.
로제가 과연 오크 통 숙성에 적합한 특성을 지닌 와인인지에 대한 의문이 일지만 이제 막 시작단계라 충분한 검토가 어려워 여기서는 언급을 하지 않겠다. 다만 로제의 인기와 더불어 로제의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모든 메달에는 이면이 존재하는 것’인가 보다.
누가 뭐래도 로제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쉽게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와인이라는 점이다. 색깔이 아름다워 우선 눈이 즐겁고, 타닌이 적은 대신 과일향이 좋아 코가 즐겁고, 더운 날 시원하게 한 잔 마시면 갈증이 말끔히 해소되어서 좋고, 술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알코올 도수가 다른 와인에 비해 낮아서 부담 없어 좋고, 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에 함께 마시면 분위기를 맞추는 데도 그만이다.
또한 서로 다른 음식을 주문해 레드와 화이트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해야 할 때 고민을 해결해줘서 좋고, 샌드위치나 치킨 등과 같은 간단한 음식과도 잘 어울려 좋고, 특히 가격이 부담 없어 주머니 사정 고려하지 않고 마음껏 즐길 수 있어 더욱 좋은 와인이 로제다. 물론 몸체가 탄탄하면서도 부드러우며, 깊고 복잡한 3차 향이 나는 고급의 훌륭한 와인을 마시고 싶을 때 어울리는 와인은 아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언제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로제도 한번 즐겨 보라고 권하고 싶다.
△ 장 홍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알자르 소믈리에협회 준회원이며,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살펴본 와인, 인류역사 속 와인의 의미와 파워, 예술 인문학을 통해 본 와인 등에 대해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글 권택명(한국펄벅재단 이사, 시인)
애송시 을 쓴 故 청마 유치환 시인은 그의 시 에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쓰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그 행복을 넘어서는 것이 사랑하는 것, 즉 사랑을 주는 것이라는 시인의 표현은 시적 수사(修辭)이고 역설적 표현이지만 한 차원 높은 행복론이다. 근원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받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에서 비켜서는 것이기에 그런 만큼 성숙함의 증표라 할 수 있다.
시혜(施惠)를 자랑하거나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아름답다. 이는 주위를 여유롭게 하고 선순환하게 한다. 물론 줄 수 있는 ‘여건’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는 대상물보다 주는 마음이고, 태도이며, 습관이다. 가진 것의 크기나 양보다 이를 나누려는 마음과 이웃과 세계의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惻隱之心: compassion/sympathy]이 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기부는 단순히 ‘GIVE’ 하는 것만이 아니다. 마음을 담은 자선 행위는 더 높은 차원의 행복을 누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여러 조사에 따르면, 자신보다 남을 위해 쓸 때 한 차원 높은 행복감을 느끼게 되며,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행위가 뇌에서 사회적 유대감과 관련된 부분을 활성화시킨다고 한다. 남을 돕는 사람들이 혈압과 스트레스 정도가 낮아 더 건강하고 장수한다는 조사 자료도 있다.
기부가 바꾸는 세상
‘부자의 기부는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 지난 8월, 2000억 원의 전 재산을 통일나눔펀드에 기부한,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 관련 언론의 기사 제목이다. 세계 기부 역사를 새로 쓴 철강왕 카네기나 석유재벌 록펠러, 기업인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등의 거액 기부자들, 삼성·현대·LG 등 한국 대기업들의 기부, 그리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 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Honors Club’ 등. 이들 고액의 기부 단체나 기부자가 복지 제고 차원에서 사회와 세계를 바꾸는 역할을 한 것은 자명하지만, 반드시 고액 기부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커피 2잔(1만 원)이면 아프리카 영양실조 아동 1명의 1주일 치 영양치료식, 치킨 1마리(2만 원)면 빈곤국가 6인 가족 한 달 치 식량, 회식 1회(3만 원)면 빈곤국가 6인 가족 1개월 치 식량 제공이 가능하다’는 어느 국내 비영리자선단체의 모금 광고처럼, 소액이라도 얼마든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금보다 더 낫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복지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지만, 국가만으로 사회 전반의 복지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양식 있는 시민사회의 기부와 나눔 활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때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생활고로 인한 송파동 세 모녀 자살 사건 등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돌봐야 할 벼랑 끝에 선 이웃들은 너무나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부문화의 현주소
2013년도 기준 총 기부금액 약 11조8000억 원(종교기부 포함) 중 개인이 7조7000억 원으로 65% 정도를 점하고 있다. 현금을 기부한 개인 비율 약 33%, 1인당 평균 기부금액 약 16만 원으로, 2011년도 기준 미국의 82%, 1000달러 수준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수치이다. 또한 고소득층의 기부 참여율이 중·저소득층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고액 기부자들을 중심으로 기부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할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국제기부문화선진화컨퍼런스 주제 강연 차 방한한 영국 자선사업감독위원회의 케네스 디블 법률서비스국장이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국에서 기부는 경제의 필수 요소다. 영국인의 삶 속에 기부는 관습(ethos)처럼 스며들어 있다”라고 말한 것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기부금 수준은 국민들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한 좋은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 축소 후 기부금이 많이 줄었다는 뉴스가 있다. 다행히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 법안들이 기부금의 세금공제 혜택을 늘리는 쪽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므로, 경주 최 부자나 제주 거상 김만덕, 개성상인의 나눔정신, 두레나 품앗이 등으로 이어져온, 우리의 나눔과 기부 전통이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손쉬운 기부의 실천
IT 기술과 SNS의 발달 등으로 기부의 방법도 다양화하고 있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다. 또 그동안 모금을 하는 비영리자선단체들의 재정 투명성 문제로 기부를 꺼리게 되는 경우도 많았으나, 지금은 많은 모금단체들이 국세청 자료나 홈페이지 등을 통해 재정 상태를 상세히 공개하고 있어서 신뢰성 확인도 쉬워졌다.
기부의 사전적 뜻은,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해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놓는 것’(네이버 국어사전)으로 되어 있다. 필자는 즐겁게 낸다는 ‘희사(喜捨)’ 쪽을 더 선호하지만, 기부는 꼭 물질만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사회 지도층이나 문화·예술인, 연예인들의 재능기부를 비롯하여, 이·미용 기술, IT 등 각종 재능기부에서 장기기증까지 다양한 기부들이 실행되고 있다.
흔히 재산이 많은 부자를 ‘잘 산다’라고 표현하는데, ‘부자는 그저 재산이 많아 부유하게 사는 사람이고, 잘 사는 사람은 자신과 가족을 넘어 그 부를 사회 전반에 유익하게 사용하며 사는 훌륭한 품격을 갖춘 사람이다’라고 늘 주장하시던 필자의 친척 한 분이 생각난다. 이제 자선활동의 피크인 연말이 다가온다.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기부든, 국내외 불우아동에 대한 1:1 후원이든, 고액이든 소액이든, 한 해가 가기 전에 일단 기부를 하여 차원 높은 행복감을 맛보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유한한 이 세상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걸크러시(Girl’s Crush)’. 여자가 여자에게 반하거나 동경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신조어다. ‘여자의 적(敵)은 여자’라는 옛 말이 무색하게 요즘의 젊은 여성들이 같은 여자를 동경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년 여성부호들에게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찾는 젊은 여성들이 많이 늘었다. 전보다 많은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와중에, 권위적이고 남성적인 조직문화에 좌절하지 않고 성공을 이뤄내는 이들의 모습에 반하는 것이다.
김유준 프리랜서 기자 dongbackproject@gmail.com
장르 영화에는 관습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영화 유형에서 보편화된 극적 요소나 제재 또는 양식화된 표현방법’으로, 영어로는 컨벤션(convention)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서부영화에는 정의감 넘치는 주인공이 황야에서 말을 달려 추격을 펼치고 마지막에 결투를 벌여 악당을 물리치고는 고독한 모습으로 떠나는 모습이 종종 그려진다. 주인공이 못나게도 악당 짓을 하거나 “그리하여 스티브는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하고 끝나는 서부영화를 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말, 질주, 추격, 결투, 고독한 주인공 등은 서부 영화의 대표적인 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 멋지다는 이유로 벤 존슨이라는 마부가 서부 영화에 기용되어 일약 영화계의 스타가 된 것은 그 덕분이다. 영원한 청춘스타라는 제임스 딘이 남긴 세 작품은 모두 현대극이지만, 그 작품들은 서부 영화의 전통에 따라 젊은 주인공을 고독하고 투쟁적으로 그림으로써 영화의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의 이른바 ‘치킨 런’ 장면이 오래도록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청바지를 입었거나 카우보이모자를 쓴 제임스 딘의 스냅 사진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여성, 과연 걸림돌이었나?
역설적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에 등 뒤에서 총 쏘는 것은 예사에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일 보는 상대에게 총격을 가하는 등의 비열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관습을 뒤집어 서부극을 사실적으로 승화했다’는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석권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관습은 액션이나 스릴러 같은 장르 영화에도 뚜렷이 존재한다. 여성이나 어린아이가 맡는 역할은 대표적인 예. 그들은 불꽃 튀기는 영화에서 자랑스러운 배역들을 맡지 못해왔다. 그들은 언제나 남성 주인공들의 질주를 가로막는다. 주인공이 파죽지세로 적들을 물리치려는 순간,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성은 약속이나 했다는 듯 적에게 인질로 잡힌다.
악당은 여성의 목을 팔로 휘어 감고 여성의 정수리에 총을 겨누고 있다. 그 광경을 남성 주인공은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어떤가?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지 않은가?
카우보이 영화의 전통을 고스란히 현대에 이어받아 전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한 액션 영화 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형사 존 매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의 부인인 홀리(보니 베델리아)는 마지막 장면에서 한스 그루버(앨런 릭맨)에게 인질로 잡힌다. 매클레인은 등 뒤에 숨겨둔 권총으로 악당을 처치하고 총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입김으로 훅 분다. 전형적인 서부 영화의 컨벤션이다.
구태여 옛날 작품들을 예로 들 것도 없다. 의 이정범 감독이 장동건을 주연으로 내세운 신작 에서도 이런 장면은 여지없이 등장한다.
지금껏 장르 영화에서 여성은 ‘걸림돌’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그 정도에 머물렀음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여성, 스토리라인 끌어가고 있다
이제 영화 교과서의 이런 예들은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최근 영화들에서는 더 이상 여성이 나약하게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영화에서 여성들은 스토리라인을 적극적으로 끌어나가고 있다.
액션 영화 장르의 대표주자 격인 시리즈부터 변화가 뚜렷이 감지된다. 최근작 에서 여주인공 일사(레베카 퍼거슨)는 기존의 여성 배역과 다르다. 누구 못지않은 역량의 소유자로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남자 주인공 에단 헌트(톰 크루즈)를 들었다 놨다 한다. 2000년도에 오우삼 감독이 연출했던 작품과 비교하면 차이는 확연하다. 2편의 니아(탠디 뉴턴)가 헌트에 종속돼 있는 캐릭터라면 일사는 단연 독립적인 존재. 나아가 헌트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내기도 한다.
조지 밀러 감독의 에서는 숫제 캐릭터의 비중이 뒤바뀌었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작 에 이르러 타이틀롤인 맥스(톰 하디)보다 여성 캐릭터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가 더 두드러진다.
외국 영화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영화는 오히려 한발 더 앞서 나간다. 일찍이 박찬욱 감독은 라는 완전무결한 ‘여성 주인공의 영화’를 발표한 바 있다. 박찬욱 감독은 제작 발표회에서 “우리나라에서 감독은 두 가지로 나뉜다”며 그 두 종류가 “배우 이영애와 작업해본 감독과 그렇지 못한 감독”이라고 말했다. 그가 얼마나 여성 배우와 캐릭터에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신작인 또한 제목에서 눈치 챌 수 있듯 여성 중심의 영화가 분명하다. 정확한 구성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귀족 여성과 소매치기 여성이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고 알려졌다.
그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또 한 명의 거장 봉준호 감독은 라는 걸출한 영화에서 강인한(또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머니 상을 표현했다. 신작 에서는 10대 소녀인 여성 주인공이 그 역할을 떠맡는다.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1000만 관객을 불러들이는 최동훈 감독 역시 여성을 보는 시각이 전향적이다. 그의 초기 대표작인 이나 에서부터 여성들이 맡은 배역이 범상치 않았지만, 대단한 흥행을 기록한 에 이르러서는 안옥윤(전지현)이 맡은 비중이 다른 어떤 영화보다 크다. 어떤 평론가는 “전지현에 의한, 전지현을 위한, 전지현의 영화”라고까지 말했을 정도.
할리우드에서 돌아온 김지운 감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의 제목은 . 송강호와 공유라는 두 배우가 주연을 맡아 항일무장투쟁 운동을 펼치는데, ‘밀정’이라는 제목 캐릭터가 다름 아닌 여성이라는 후문이다.
여성이 당당히 주역
이런 현상은 영화뿐 아니라 대중문화의 다양한 장르에서 폭 넓게 드러나고 있다. 같은 뮤지컬, 등의 TV 드라마, 같은 게임에서 강인한 여성이 주역을 맡고 있다. 무엇보다 상업성에 민감한 대중예술 제작자들이 여성을 주인공을 내세우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그러한 여성 캐릭터가 지금의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에는 남성 대중이 혀를 끌끌 찼을 여성 캐릭터들을 요즘 사람들은 바람직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알파걸’이니 ‘걸크러시’니 하는 낯선 용어들이 언론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심심찮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게 된 이유에 관해서는 비교적 분석이 완료된 느낌이다. 서울대 배은경 교수(여성학 협동과정)는 대학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적 변화가 이런 현상을 낳았다. 경제적 능력을 통해서만 안정적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지위가 높은 전문직· 고연봉 여성들이 칭송받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현상이 대중문화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경제 불황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분석도 많다. 이런 시기라면 남성들이 사회에서 경제력을 잃어가는 대신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이 ‘과거에 비하면 바람직한 편이지만 여성의 활약만 강조되었을 뿐 불평등한 사회 구조는 여전하며 이에 대한 비판도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에는 이런 지적에 대한 반성까지 대중문화에 투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성난 엄마’의 출현이다. 여성 중에서도 어머니들이 나서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같은 영화들은 모두 어머니가 가족을 잃고 복수에 나선다. 영화뿐만 아니다. 지난해 방영된 서울방송의 을 비롯해 올해 문화방송이 공개한 과 서울방송 등은 아예 제목에서부터 어머니가 주인공임을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그들은 하나같이 여성이나 어린이 같은 약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 권력층의 부패 커넥션 등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의 주인공 조강자(김희선)는 자녀와 관련된 사회문제에 분노하고, 그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우리 시대의 ‘앵그리 맘’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은 아예 어머니로서의 주인공보다는 여형사로서의 캐릭터에 더 집중한다. 강력계 형사인 주인공 최영진(김희애)은 누가 봐도 ‘나쁜 아빠’인 강태유(손병호)가 상징하는 남성 중심적 권력의 부조리와 강력히 맞붙어 싸운다. 단지 여성의 몫이 늘어난 정도가 아니라 과거의 투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게 된 것이다. 남성들과 경쟁해 성공한 여성들의 모습은 같은 여성들에게 당연히 쾌감을 준다. ‘롤모델’이 된 여성 리더들은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여권(女權) 문제를 공식석상에서 거론하면서 여성들의 대변인이 돼주기도 한다.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성의 몫이 늘어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부터 그런 양상은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최근의 현상들은 지난날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발적이며 더불어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과거의 힘센 여성들이 단지 자신들을 핍박하는 남성에게 대항했다면, 요즘 여성들은 사회라는 시스템 자체에 저항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여성들의 활약은 수준과 차원을 드높이고 있다. 지금의 여성들은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다.
# 알파걸 Alpha Girl 공부, 운동, 대인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또래 남학생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성과를 보이는 엘리트 계층의 여성을 일컫는다. 그리스 알파벳의 첫 자모인 알파(α)에서 유래됐다. ‘첫째가는 여성’이라는 의미에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아동 심리학자인 댄 킨들런 교수가 북미지역에 거주하는 113명의 소녀를 인터뷰하고 남녀학생 900여 명에게 편지로 설문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만든 개념으로 2006년 그의 저서 <알파걸, 새로운 여성의 탄생>을 통해 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 걸 크러시 Girl Crush 어떤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느끼는, 일반적으론 섹슈얼한 감정이 동반되지 않은 강렬한 호감 혹은 감탄을 뜻한다. 남성들이 스포츠 스타들에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된 의 여성 래퍼들이 여성 팬들에게 강력하게 지지받은 것은 대표적인 걸 크러시 현상으로 꼽힌다.
중국, 프랑스와 함께 세계 3대 음식으로 꼽히는 터키 요리. 그 명성에 비해 터키의 맛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터키’ 하면 케밥만 떠올리는 이들에게 터키의 맛을 제대로 각인시켜줄 맛집 케르반을 소개한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이국적인 음식점들로 가득한 서울 이태원 거리를 거닐다 보면 유독 케밥(Kebob)집이 눈에 자주 띈다. 대부분이 얇은 빵으로 고기와 야채를 감싼 모양을 케밥의 전형이라 생각하지만 실제 케밥은 ‘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운 고기’라는 뜻이다. 그래서 굽는 고기와 속 재료에 따라 그 가짓수가 수백 가지에 이를 만큼 다양하다. 케밥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종류가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터키요리의 특징이다.
이런 터키음식을 정통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케르반(Kervan)이다.
터키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지 않은 한국인들을 위해 2011년 터키 현지인 오너와 셰프가 함께 문을 연 케르반은 터키에 있는 여느 식당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한 음식 맛을 자부한다. 실제 케르반을 방문하는 터키인들 사이에서도 ‘터키에서 먹던 것보다 더 맛있다’고 소문이 났을 정도다. 그들이 케르반을 인정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엄격하기로 잘 알려진 할랄(halal: 무슬림에게 종교적으로 허용되는 식재료 종류와 생산형태를 지킨 식품) 인증을 국내 최초로 받은 곳이기 때문이다. 할랄 규정에 맞게 돼지고기와 주류는 일절 판매하지 않고, 음식을 조리 할 때도 알코올 성분을 전혀 넣지 않는다.
모든 메뉴의 조리방법이나 맛을 내는 데 있어서는 한국적인 것을 가미하거나 한국 스타일로 변형하지 않고 터키 정통방식을 고수한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고 향신료를 강하게 쓰지 않기 때문에 굳이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해 만들지 않아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가장 터키다운 맛으로 승부를 거는 만큼 그 내공을 아는 이들은 케르반의 고집스러운 맛에 찬사를 표한다.
한국인이 공깃밥을 먹듯 터키인들은 라바쉬를 찾는다. 케르반에서는 주문 즉시 반죽을 해 화덕에 구워 낸 쫄깃하고 따끈한 라바쉬를 맛볼 수 있다. 그 크기가 성인 머리 크기만 하지만 다양한 요리와 잘 어울리기 때문에 실제 터키인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한 사람당 라바쉬 하나쯤은 거뜬하게 먹는다. 케르반 케밥 메뉴의 경우 사용하는 고기와 소스 등에 따라 요구르트양념 치킨 케밥(2만1000원), 소고기 쉬시 케밥(2만5000원), 양갈비 쿠주 피르졸라(3만9000원) 등 15가지가 넘는다. 케밥을 먹을 땐 토마토, 오이, 고추, 파슬리 등을 작게 썰어 버무린 초반 샐러드(9500원)와 함께 먹어볼 것을 추천한다. 그 맛이 깔끔하고 시원해 입맛을 돋우고 입안을 개운하게 해준다.
터키식 피자 피데(pide)도 한국인 고객들이 즐겨 찾는 메뉴 중 하나다. 도우 끝이 도톰한 미국식 피자나 얇은 도우가 특징인 이탈리아 피자와는 또 다른 맛을 느껴볼 수 있다. 미국과 이탈리아 중 어느 쪽에 가까운 맛이냐는 질문에 그들은 “어느 쪽에도 가까운 맛이 아니다. 오직 터키의 맛이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직 그들이 말하는 ‘터키의 맛’을 느껴본 적이 없다면 케르반을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케르반 베이커리
케르반에서 푸짐하게 식사를 즐겼다면 치명적 달콤함으로 혀끝을 감동시킬 터키 디저트를 맛보러 가자. 케르반 레스토랑에서 5분 남짓 거리에 있는 ‘케르반 베이커리’는 터키 출신 파티시에가 만드는 정통 터키식 디저트를 판매하고 있다. 케르반 베이커리 역시 레스토랑과 마찬가지로 모든 디저트 메뉴는 할랄의 원칙에 따른다.앙증맞은 모양에 비해 어마어마한 단맛을 내는 당도 최강 디저트 ‘터키쉬 딜라이트’와 피스타치오에 달콤한 시럽이 어우러진 ‘바클라와’를 비롯해 얼핏 우리나라 옛날 빵집에서 본 듯 소박한 생김새의 디저트들이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주소 (레스토랑)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190 2층 (베이커리)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04
영업시간 (레스토랑) 오전 11시 30분~오후 11시, 런치 오전 11시 30분~오후 2시 30분
(베이커리) 오전 10시~익일 새벽 1시
주차 발레파킹 가능, 요금 3000원
문의 (레스토랑) 02-792-4767 (베이커리) 02-790-5585
전 세계 16명의 신도를 자랑하는 무슬림은 코란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생활양식과 식문화도 이에 따라 형성돼 있다. 아랍어로 할랄은 ‘허용할 수 있는’이라는 의미이며, 이와는 상반되는 개념으로 ‘하람(haram)’이 있다. 할랄은 허용되는 음식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보다 넓은 개념으로 활용되어 허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하고 같은 맥락으로 하람은 금지된 모든 것을 말한다.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종교가 곧 삶인 이들이 무엇을 지키고자 하고 금기시 하는지 알아두는 것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지구촌에서 존중과 배려의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금지된 식품, 하람으로 규정된 식품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돼지고기와 돼지의 부위로 만든 모든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축을 하지 않고 죽은 동물의 고기나 썩은 고기, 육식하는 야생 동물의 고기 등도 먹지 않는다. 메뚜기를 제외한 곤충도 먹지 못하며 개와 고양이와 같은 애완동물 그리고 당나귀, 노새, 말 또한 금지한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비늘이 있는 모든 물고기는 할랄이며, 해산물을 먹는 것은 허용하지만 무슬림 사이에서도 이부분에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새우와 가재·게·조개를 포함하는 모든 갑각류를 하람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고기를 도축하는 방식도 할랄만의 계율에 맞는 독특한 방식이 있는데,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면서 예리한 칼을 이용하여 한번에 경동맥과 숨통을 절개한 후 피를 모두 뽑아낸다. 이때 도축 직전에 병들지 않은 깨끗한 상태여야 한다. 사실 이러한 방법은 대대로 내려온 인류의 지혜가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도축방법은 가장 고통을 주지 않고 도살하는 방법 중 하나이며, 세균 번식을 막아 보존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할랄식 도축과정을 거친 고기는 부드럽고 맛이 좋다는 사실이 알려져 할랄 고기만을 따로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도 고객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안전하고 건강한 식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연간 20%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할랄 식품의 인증을 받으려면 3가지가 없어야 하는데 독이 없고, 정신을 혼미하게 하지 않아야 하며, 위험하지 않아야 한다. 이슬람의 음식 검수는 무척 까다로워 중금속이나 수질 방사능 오염 검사 등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를 가리는 안전성 검사를 거치며 비할랄(non-halal) 식품이 조금이라도 섞여서는 안된다.
무슬림들의 주식은 역시 빵이다. 유목민들에게 구운 빵은 이동 중에도 쉽게 먹을 수 있고 보관도 용이해 매우 간편한 음식이었다. 빵과 더불어 주요한 음식으로는 육식이 있다. 캅사는 닭고기, 소고기, 양고기 등의 붉은 고기와 함께 조리한 쌀 요리로 다양한 양념과 샐러드를 곁들여 먹는다. 케밥은 꽤 알려진 음식으로 꼬치에 끼워 구운 고기를 의미하며 유목생활을 하던 몽골인들이 빠른 시간 안에 이동하기 위해 간단하게 만들어 먹은 음식으로 터키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조리법에 따라 그 종류가 수백가지로 나뉘어 이슬람 54개국이 주식으로 한다. 첼로 케밥, 주제 케밥, 머히 케밥 등이 있다. 첼로 케밥은 양고기를 다져서 요리한 쿠비데와 양고기를 얇게 베어 구운 바르그가 있다. 양고기에 다진 양파와 소금, 후추로 간을 맞추어 구운 쿠비데는 양고기 냄새가 덜 나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도 인기이다. 주제 케밥은 닭고기를 꼬치에 끼워 굽는 요리로 우리나라의 닭 고치를 연상하게 한다. 머히는 생선이라는 뜻으로 생선을 통째로 굽거나 토막을 내서 꼬치에 끼워 구운 음식이다. 대게 해안 지방에서 보편화된 음식이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코프타’라는 음식이 있다. 코프타는 잘게 다진 양고기에 여러 가지 양념과 재료를 섞어 버무린 다음 소시지 모양으로 만들어 구운 것이다. 또한 일종의 샌드위치인 ‘샤와르마’라는 음식도 즐겨 먹는다. 이것은 큰 꼬챙이에 수직으로 켜켜이 쌓인 양고기나 쇠고기를 가스 불판 앞에서 돌리면서 굽는 것이다. 구운 고기는 얇게 잘라 빵 사이에 오이피클이나 샐러드와 함께 넣어 샌드위치를 만드는데 이것이 샤와르마다.
무슬림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는 주로 커피와 차다. 커피는 무슬림들이 커피 수출로 유명했던 예멘의 모카 항구를 통해 인류에 보급시킨 음료다. 커피가 무슬림들의 기호식품으로 이슬람 세계에 퍼져 나가게 된 것은 15세기 중반부터다. 예멘의 수피 수도사가 에티오피아 지방을 여행하다 열병에 걸려 앓아 누웠을 때 원주민들이 커피 가루를 물에 타 먹여 회복했다고 한다. 이 수도사에 의해 예멘 지방에 커피가 알려지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이슬람의 신비주의 종단인 수피종단에서 수도사들이 모여 앉아 설교를 들을 때나 명상중에 잠을 쫓을 때 커피를 즐겨 마셨다. 기록에 의하면 이미 1511년 이슬람의 성지 메카에서 성지 순례자들에게 커피를 팔았던 것으로 전한다. 곧이어 커피는 성지 순례자들에 의해 이집트·시리아·이란·터키 등지로 퍼져 나갔다. 무슬림들은 커피가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회복시키며 열을 내리게 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여 즐겨 마셨으며 도시 곳곳에 커피점이 성행했다. 커피가 이처럼 빠른 속도로 전 이슬람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술을 금지하는 이슬람법 때문이다. 이슬람에서는 음주를 금하기 때문에 술을 대신할 음료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곧 커피였으며 선술집과 같은 사교장소를 대신한 곳이 커피점이었다. 커피와 함께 차도 무슬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기호식품이다. 차는 19세기 이후부터 서구 열강의 식민지 정책과 더불어 소개돼 이슬람 세계에 널리 퍼졌다.
무슬림들은 ‘샤이’라고 불리는 차를 우리처럼 한 잔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보통 두세잔을 계속해서 마신다. 차는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끓이는 시간과 첨가하는 재료가 다르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박하 잎을 넣어 박하향을 나게 하는 ‘나으나으’다. 보통 차에는 많은 설탕을 넣어 달게 마시는데, 이것은 설탕이 더운 날씨에 지친 몸의 피로를 회복시켜 주기 때문이다.
◇ 대표적인 음식
# 코프타
쇠고기 500g 정도, 충분히 자른 양파 2개, 쌀 3TS, 파슬리 가루1/4TS, 박하가루 1TS, 소금, 검은후추, 계피 1TS, 계란 4개, 밀가루 1/2컵, 베이킹파우더 1TS, 기름 1~1/2C
1. 쌀을 씻고, 거기에 고기와 파슬리, 양파, 박하, 후추, 계피와 소금을 같이 넣고 충분히 섞어준다.
2. 그 혼합물에서 작은 덩어리를 떼어낸 다음 젖은 손으로 공모양을 만들고 팬위에 둔다. 그리고 계속해서 반죽을 한다.
3. 따뜻한 물 반컵을 코프타위에 붓고 팬 뚜껑을 덮은다음에 쌀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약한 불에서 조리해 준다.
4. 팬이 식을 때까지 요리한 것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은 다음 계란과 밀가루, 베이킹 파우더를 섞는다. 손가락으로 소금 약간을 잡은 것과 따뜻한 물 반컵을 반죽에 더 넣는다. 그리고 팬에 기름을 붓고 코프타를 밀가루 반죽에 담근다. 코프타를 반죽에서 건져낸 다음 센 불에서 요리해서 갈색으로 잘 익힌다.
# 캅사
양고기 또는 닭고기, 쌀, 쇼트닝, 라임, 계피, 사프란, 통후추, 디마, 오레가노, 당근, 건포도
1. 쌀을 쇼트닝에 볶다가 물을 알맞게 넣는다.
2. 향신료로 라임, 계피, 샤프란, 통후추, 디마, 오레가노 등을 넣는다.
3. 닭고기 또는 양고기는 양념을 하지 않고 가스불로 직접 굽는다.
4. 당근을 채썰어 찐다.
5. 밥 위에 당근 채와 건포도를 뿌린다.
6. 가장 위에 닭고기 또는 양고기를 올린다.
# 케밥
요구르트 1C, 소금 11/2ts, 후추(또는 고춧가루)1/2ts, 다진마늘 30ml, 닭가슴살(뼈와 껍질이 없는 것으로 케밥용으로 자른다) 600g, 밀가루 전병(또띨라), 토마토(중)3개-슬라이스, 양파(중)2개-슬라이스, 실란트로, 레몬(1/4)2개 또는 라임(1/4) 4개
1. 요구르트, 소금, 후추, 마늘을 볼에 담고 잘 섞은 다음 치킨을 넣고 실온에서 1~2시간 정도 절인다음, 2일 정도 냉장하여 보관해둔다.
2. 치킨을 꼬치에 끼워서 뜨거운 숯불위에 석쇠를 놓고 굽는다.
3. 따뜻하게 데워진 전병을 놓고 고기를 올린다. 토마토와 양파 슬라이스 한 것, 실란트로를 그 위에 얹고, 전병을 접어 싼다. 레몬이나 라임과 함께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