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 큐레이터 출신의 미학자로 어언 30년째 미학을 탐미 중인 최광진(60) 교수. 현재는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틈틈이 미학 방송을 진행하는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책을 통해 한국의 미의식을 소개해왔는데, 최근엔 한국의 소박미를 조명하는 신간 ‘기교 너머의 아름다움’으로 돌아왔다.
그는 한국의 미의식인 신명, 해학, 소박, 평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2018년부터 미의식 시리즈 도서를 기획했다. 최근 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으로 한국의 소박미를 집중 조명한 ‘기교 너머의 아름다움’이 출간됐다.
“시작은 2015년부터였다. 한국의 미학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고, 오죽하면 열 군데 이상의 출판사에 연락을 했는데 응답이 없더라. 우연히 미학을 전공한 출판사 대표와 연이 닿아 겨우 책을 냈다. 비인기 장르였지만 의외로 그 책이 잘 팔렸다. 그것을 발판 삼아 시리즈를 기획했다. 우리가 가진 고유한 미의 DNA를 추적한 결과 한국의 미의식을 신명, 해학, 소박, 평온으로 추릴 수 있었다. 이번 책은 건축, 공예, 문인화 등을 통해 본 소박미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소박미는 과연 무엇이고,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소박미는 기교 없는 자연스러움이다. 배산임수는 산과 강의 자연스러운 조화이며, 우리의 도자기는 자연스러운 비대칭을 그대로 살린다. 문인화는 자연을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고 자연과 함께 공명하고자 했던 화백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그림이다. 이렇듯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기교가 아닌 본질을 추구했던 선조의 정신이 바로 ‘소박미’다. 소박미는 혐오와 갈등, 그리고 전염병 창궐로 인해 어지러운 현시점에 필요한 통합 백신일지도 모른다. 소박미 기저에 깔린 본질에 대한 성찰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미의식 독립운동
원래 건축학도였지만 중퇴 후 오랜 방황 끝에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에 입학했다.
“건축학을 전공했는데 체질과 맞지 않았다. 형제들이 모두 음악 계통에 있어서 음악을 하려고 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음악은 시간의 예술인데, 공연이 끝난 후에 몰려오는 공허함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반면 그림은 오랫동안 남는 축적의 예술이라 흥미로워 보였다. 다만 순수미술을 할 정도로 재능이 있지는 않았다. 공대생이 될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지만, 성격이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편이었다. 마침 비평과 큐레이팅을 배울 수 있는 학과가 생겼다기에 잘 맞을 것 같아 지원해서 들어갔다.”
졸업 후에는 이병철 회장의 호를 따서 만든 호암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했다.
“삼성은 문화적인 힘이 있는 곳이다.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 모두 안목이 뛰어나고 예술에 대한 열정이 컸다. 실제로 저녁마다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새벽까지 예술 공부를 하셨다. 공부 후엔 모두 택시를 태워서 보내셨다고 하더라. 이건희 회장의 집에 우연히 간 적이 있는데 각종 영화와 다큐멘터리 비디오가 무척 많았다. 기업 대표로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상상력의 토대가 예술 공부에서 비롯된 것 같다. 예술의 본령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전통을 토대로 새로운 바탕을 쌓는 것. 비단 경영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정신이다.”
큐레이터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모두가 말렸지만, 그는 “안락함에 젖은 노예로 살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이미지연구소’였다.
“미학 공부로 축적한 콘텐츠를 잘 가공해서 대중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이미지연구소를 창립하고 아카데미를 통해 미학의 관점과 지식을 공유했다. 30명 정도가 꾸준히 찾아오셨는데, 어떤 분은 15년 동안 내 강좌를 들으셨다. 같은 내용을 전달하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콘텐츠 개발에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은 유튜브로 비대면 강의를 하는데, 현장 강의만큼 생생한 소통은 힘들다. 다만 더 다양한 분들과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서구 문명으로 인해 잃어버린 우리의 고유한 미의식을 되찾는 독립운동이라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유튜브 촬영을 하는 스튜디오가 독립운동 거점이다.(웃음)”
미학으로 세우는 대안학교
그는 “노후를 위해서도 미학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소박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은퇴 이후 공허함에 시달리는 중년이 많다. 노후 준비를 위해 지갑을 메우려고 했을 뿐, 정신적인 토대를 쌓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미의식이다. 고유한 미의식은 존재의 가치를 설명하는 ‘정체성’과도 같다. 아름다움을 지향할수록 우리의 정신은 더욱 성장한다. 특히 우리 민족이 지향했던 소박미가 필요하다. 소박미의 정수(精髓)는 본질을 찾는 것이다. 자신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노후 준비다. 미학 공부는 개인의 미의식을 개발하기 위한 첫 단추다.”
끝으로 미학자로서의 계획을 말했다.
“물질문명에서 정신문명으로 넘어가는 전환기가 왔다. 미의식은 갈등과 대립을 봉합하는 통합의 지혜다. 미(美)를 추구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적으로 변한다. 이 험난한 시대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 심는 미학이란 종자가 필요하다. 앞으로 미학을 바탕으로 한 대안학교를 유튜브에 만드는 것이 꿈이다. 미학을 통해 우리의 삶을 잘 가꾸기 위한 지혜들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 한 10년치 정도의 계획이 있는데, 앞으로도 성실히 움직이면서 하나둘씩 해보고 싶다.”
그의 삶은 소박미를 닮았다. 본질을 성찰하듯 자신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했다. 안락한 노예가 아니라 능동적인 영혼이 되기를 원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때론 외로웠다. 소속된 직장이 없어서 대출이 안 될 만큼 힘든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국의 미학을 연구하고, 그 미학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그는 알아주는 이는 적지만 고유한 가치를 지닌 미학의 특별함을 연구하는 학자였다. 그의 특별함이 앞으로도 빛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마친다.
‘헉! 이거 뭐지? 혹시 그날 아람이가 얘기했던 게 이건가?’
누리는 미술관의 다섯 번째 전시실 모퉁이에 걸린 그림을 보다가 놀라 뒷걸음질 쳤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마침 까만색 유니폼을 입고 목에는 스태프 라고 쓰인 표를 달고 있는 남자가 느린 걸음으로 5전시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 아저씨! 저 그림 좀 이상해요.”
“응? 뭐가?”
“그러니까 저게...”
하면서 누리가 다시 그림을 보니 그림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멀쩡했다.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고 갸름한 얼굴에 눈에는 슬픔이 가득 담긴 채 마치 맞은편에 있는 남자 그림을 바라보는 것 같은 모습. 조금 전 누리가 봤던 그 놀라운 모습이 아니었다.
“저- 그게 저 그림이... 아, 아니에요.”
직원은 누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더니 다시 천천히 걸으며 다음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전시실에 상태를 살피는 거 같았다.
누리는 자기가 착각을 한 걸까 생각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 전시를 오픈하던 날, 아람이가 했던 말이 떠오르자 자기가 본 것이 착각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누리는 다시 그 여자그림 앞으로 가려다가 그만 두었다. 무슨 괴기 영화나 환타지 영화에서 본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으면서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해줄 사람이 그리웠다. 아람이랑 얘기를 하고 싶었다.
전시 개회식은 일주일전 목요일 오후 5시에 있었다.
할머니는 미술관을 놀이터 드나들 듯 좋아하는 누리 때문에 미술관에 자주 가시게 됐다. 그러다가 지난 가을부터 미술관에서 하는 도슨트 교육을 받으셨다. 도슨트는 미술관에서 관람객에게 전시에 대한 여러 정보와 전시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봉사자라고 한다. 그날 할머니가 누리에게 전시 오픈식에 참석해서 작가들을 만날 거라고 함께 가자고 하셨다. 누리는 미술관엔 자주 가서 그림과 조각들을 보았지만, 작가들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다. 더구나 오픈식이 끝나면 맛있는 다과 파티도 있다는 할머니 말씀에 누리는 냉큼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 그렇지만 아람이는 시큰둥했다.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아람이와 누리는 불과 32분 차이로 세상에 나왔다.
아람이는 12월 31일 밤 11시 49분, 누리는 다음 해 1월 1일 0시 21분.
부모님은 출생신고를 하면서 잠깐 같은 날로 올릴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 병원에서 기록한 그대로 출생신고를 해서 아람이는 학교도 한해 먼저 들어갔다. 4학년이 된 아람이는 걸핏하면 3학년 보다 4학년이 되니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유세를 부렸다.
쌍둥이지만 둘은 비슷한 것보다 다른 면이 훨씬 많다.
아람이는 책을 좋아하고, 누리보다 덩치는 작지만 야무져서 누나답다는 얘길 많이 듣는다.
누리는 활발하고 덜렁거리는 편이다. 그렇지만 게임이나 그림 그리는 것, 만들기는 아람이보다 선수다. 그래서 할머니와 엄마는 ‘금손 누리’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오픈식 때, 아람이가 미술관 건너편에 있는 학원에서 수업이 일찍 끝났다며 미술관으로 왔다. 전시 담당 큐레이터가 인사를 하고 전시 기획의도를 알려주는 동안 할머니는 메모장을 들고 제일 앞쪽 자리로 가서 앉으셨고, 누리는 다과가 차려지는 쪽 가까이 앉았는데 아람이는 지루했는지 혼자 전시실로 들어갔다.
문화재단 대표이사가 활짝 웃으며 조선 왕릉이 세계문화유산의 반열에 오른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오랫동안 얘기 했다. 그다음엔 그 왕릉 중 8기가 우리 시에 있으니 큰 자랑거리라고 시장이 더 길게 길게 얘기했다. 누리가 보니 가슴에 꽃을 달고 한쪽에 쭈-욱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작가들 같았다. 작가들도 지루한지 얘기하는 시장을 보다가 바닥을 보다가 자기 손을 맞잡았다가 했다. 그때 얼굴빛이 빨갛게 상기된 아람이가 누리 옆으로 오더니,
“누리야, ‘류원’이란 화가는 어디 있어?”
하고 물었다. 행사 식이 끝나면 재빨리 좋아하는 케잌을 먼저 집으려고 음식물들이 있는 상을 보고 있던 누리는
“나도 몰라. 아직 작가들은 인사 안 했어. 저쪽에 있는 사람들 중에 있을 거야.”
하며 작가들 쪽을 가리켰다.
그때, 드디어 누구에게 감사하고, 또 누구에게 감사하고, 또, 또 누구에게 감사말씀을 전하는 바라고 말하던 시장님 얘기가 끝나고 작가들 인사 차례가 되었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어떤 인물과 관계된 것인지 어떤 방법과 의도로 제작한 것인지를 짧게 얘기했다. 그런데 여덟 명의 얘기가 다 끝났는데 ‘류원’이란 작가는 없었다.
사회를 보던 큐레이터가 말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총 11명인데 그중 세 분은 개인 사정과 해외 전시에 참여하느라 못 왔으니 양해바랍니다.”
아람이는 실망하는 표정이 되었다.
“왜 그러는데?”
누리가 이상하다는 듯 묻자,
“글쎄- 내가 잘 못 본 걸 수도 있어서......”
하다가 누리를 빤히 보며 물었다.
“너 다음에 또 올 거니?”
누리는 전시가 열리는 동안 적어도 두세 번은 관람을 하곤 했다.
집에서 10분 거리인데다가 시립 미술관이라서 입장료도 저렴하다.
또 미술관 간다고 하면 엄마는 늘 입장료에 1,000원을 더 얹어 준다.
그러니 누리에게 미술관 관람은 그야말로 1석 2조, 아니, 1석 3조도 넘는 거다.
“당연하지. 오늘은 사람들이 많아서 제대로 볼 수도 없을 걸.”
“그럼 다음에 올 때 5 전시실에 있는 ‘류원’이란 화가 그림 좀 자세히 봐줘. 정말 이상했거든.”
“뭐가?”
“그건 네가 그림 보고난 다음에 얘기 할 게.”
‘그래. 아람이도 그날, 분명 나랑 같은 걸 봤을 거야.’
마음이 급해진 누리는 여섯 번째, 일곱 번째, 그리고 마지막 전시실도 그냥 지나쳐 집으로 내달렸다.
현관문 번호단추를 빠르게 눌렀다. 운동화는 벗겨져 날리듯 흩어졌지만 그건 쳐다볼 생각도 없었다.
“아람아, 아람아 너 그거 봤지?”
급하게 자기를 찾는 누리를 보면서도 아람이는 소파에 앉아 동화책을 읽다가 느긋하게 한 마디 했다.
“저런~ 누나라고 불러야지. 3학년 꼬마야.”
“웃기지마. 너 그거 봤지, 맞지?”
“음- 너, 지금 미술관 갔다 온 거구나?”
“그래. 그 ‘류원’이란 화가가 그린 여자 그림 봤어.”
“어땠는데? 너도 이상했어?”
“있잖아. 꼭 ‘헤리포터’ 영화에서 본 그림들처럼 움직이고 나한테 말을 거는 같았어.”
“그래? 내가 볼 때도 그랬어. 근데 그거 너 혼자 봤어? 무슨 말을 했어?”
“몰라. 무서워서 뒤로 물러섰더니 원래대로 안 움직이는 그림이 됐어. 넌?”
“나도 잘 모르겠어. 갑자기 그림이 움직이면서 말하는 거 같아 얼른 밖으로 도망쳤지. 다른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든.”
“나는 거기 직원 아저씨한테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림이 그대로 안 움직이는 거야. 그래서 미쳤다는 소리 들을까봐 그냥 한참 동안 서 있다가 너랑 얘기하려고 얼른 온 거야.”
“마법 그림인가? 그런 게 정말 있는가봐. 그치?”
아람이가 일어나며 말했다.
“이상해, 이상해. 우리 지금 가 보자.”
“안 돼. 지금 가도 소용없어. 미술관은 6시까지만 연단 말이야.”
아람이가 다시 소파에 앉으며 무슨 큰 결정이라도 내리는 듯 누리에게 나직이 말했다.
“우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우리끼리 비밀을 풀어 보자.”
“무슨 비밀?”
“그림 속 여자는 왜 우리에게 말을 건 것인지, 정말로 그림이 움직이는 게 우리 눈에만 보인 건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왜 있잖아, 동화나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거. 우리가 그 여자의 원한이나 비밀을 푸는 순수한 아이들로 선택된 걸지도 모르잖아.”
아람이는 야무지게 말했지만, 누리는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누리야, 우선 이번 전시의도를 알아야 하고 ‘류원’이란 화가는 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알아야 해.”
“그건 어렵지 않아. 전시가 설명된 리플릿도 있고 10시, 11시, 오후 2시, 3시엔 전시를 설명해 주는 선생님들도 있거든. 아, 이번부터 할머니도 미술관에서 도슨트 하니까 할머니한테 물어보면 간단하겠다.”
“아냐. 그럼 재미없지. 우리가 선택됐으니까 우리가 해결하는 거야. 어른들에겐 비밀로 하고.”
아람이는 다시 눈동자를 굴리며 입술을 옴찔거리며 생각을 모으느라 애썼다.
“그래. 우선 전시 리플릿부터 보자. 너 갖고 있지?”
“물론이지. 난 여태껏 전시 리플릿은 다 모았다니까.”
누리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뒷주머니에서 리플릿을 꺼내 놓았다.
아람이와 누리는 머리를 나란히 하고 전시 설명이 담긴 네 면으로 된 리플릿을 읽었다.
앞면엔 전시 제목과 대표 작품 사진, 전시 날짜가 적혀있고, 안쪽 두 면에는 전시 내용과 사진 두 개가 있었다.
왕릉의 전설
-조선 왕족들의 미술관 행차-
은 조선왕조 500년을 이끌어 왔던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가장 화려한 삶의 중심에 있었으면서도, 권력과 명분 획득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혹독한 고독과 괴로움을 겪어야 했던 증언자들이기도 하다. 이들 왕족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처절한 주인공으로 8인을 선정하고 각 존재들에 대한 시각적 대화를 시도하는 작가 11명의 작품을 소감형식으로 구성한 전시이다.
전시의 소재가 된 왕족은 인수대비, 폐비 윤씨, 인종, 소현세자, 숙종, 희빈 장씨, 의빈 성씨, 그리고 철종이다.
왕릉이라는 신들의 정원에는 그들이 마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전설이 전해온다.
인간의 삶이 언제나 그러하듯 온전하게 충족되지 못한 애절한 마음은 후손인 우리의 심정을 흔들어 생각을 일으킨다.
사실 조선왕조의 역사적 의의가 갖는 무게에 비해 현대인들의 그에 대한 관심은 가벼웠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그 표현 중심에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과 치열한 꿈의 허상을 새로운 예술적 형식으로 보여줄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자 누리가 투덜거렸다.
“이게 뭔 말이야아~? 난 짜증나.”
“어른들한테 보여주는 거라 그래. 어쨌든 조선시대 왕족들 얘기를 그린 작품이란 말이지 뭐.”
“그럼, 류원이란 화가는 누구 얘길 그린 걸까?”
누리가 마음이 급해져서 뒷장으로 넘겼다.
뒷면에는 참여 작가 11명의 이름과 간단한 작품 내용이 있었다. 문경은, 태인주, 노장현, 박영훈, 류원, 신희경, 백승민, 최원범, 우정석, 김화준, 이민숙. 누리와 아람이는 류원 작가 옆에 있는 글만 소리 내어 읽었다.
“류원은 신비한 전설 속 이야기를 끊임없이 제작하고 있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는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그동안 작가가 그려오던 기법에서 크게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의빈 성씨 얘기라고?”
아람이는 의빈 성씨를 아는 거 같은 표정이었다.
“그게 누군데? 너 알아?”
“응.”
“어떤 사람인데?”
아람이가 좀 뻐기는 표정으로 누리에게 말했다.
“누나, 아니 '누님 알려 주시옵소서.'하면 가르쳐 주-지.”
“야! 겨우 32분 먼저 태어났다고 그 소릴 듣고 싶냐? 나 같으면 그냥 친구먹자고 하겠다.”
“싫음 말구.”
“어-휴!”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궁금증이 풀릴 열쇠인 것만 같아서 누리는 ‘이번만’하는 맘으로 더 과장되게 아양을 떨었다.
“누님, 저는 의빈 성씨가 누구인지 매우, 매우, 매우 궁금하옵니다. 알려 주시옵소서.”
“좋다! 내 알려주지. 잠시만 기다리거라.”
그러더니 아람이는 누리에게 의빈 성씨가 누구인지 얘기는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왜? 가르쳐준다면서 왜 가?”
아람이는 책 한 권을 들고 나오며 말했다.
“내가 좀 똑똑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걸 다 외우는 건 아니쥐이. 여기 봐-.”
아람이는 ‘조선왕조실록’이란 만화책권을 펴서 195쪽에 있는 ‘제 22대 정조 가계도’를 손가락으로 톡톡 가리켰다.
거기엔 정조 밑으로 ‘효의왕후 김씨(1753~1821)- 후사 없음’ 이라 적혀 있고, 그 다음 줄엔 ‘의빈 성씨(1753~1786)-1남, 문효세자 일찍 죽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림 속 여자가 이 사람이구나. 그런데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야?”
“이거 봐. 의빈 성씨는 겨우 서른네 살에 죽었어. 그러니까 뭔가 사연이 더 있을 거야. 이 책에서 보면 화빈 윤씨가 미워한 거 같거든.”
아람이는 입을 야무지게 다물더니 말했다.
“그래서 화빈이 의빈 성씨를 죽였대?”
“아니. 그런 건 없어. 그렇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원한이 있어서 우리한테 말을 걸었는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알아내야지. 그림 속 여자가 우리한테 하려고 하는 말도 뭔지 알 수 있고, 영혼을 달래줄 수도 있겠지.”
“하~ 아람아! 내가 보기엔 넌 이상한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거 같아.”
“뭐라구? 너도 그림이 움직이면서 말하는 거 봤다며? 얼마나 억울하면 그림이 말을 다 하겠니?”
“엄마랑 아빠한테 물어 보자. 아니 이따가 할머니한테 물어 보는 게 낫겠다.”
“안 돼, 안 돼. 하지 마! 이렇게 재밌는 사건이 우리 평생에 얼마나 있겠어? 어쩌면 이건 우리 생애 최고로 짜릿한 비밀을 만들 수 있는 기회란 말이야.”
“치~ 비밀 만들고 싶은 거야?”
“동화를 읽다보면 비밀이나 엄청난 사건이 생겨서 주인공이 재미난 경험을 하는데, 우린 언제 그런 일이 생기겠어? 만날 똑같은 날이니... 그러니까 너랑 나, 둘이서만 이 문제를 풀어보자고. 내가 너한테 슬라임 전부 다 줄게.”
“진짜? 앗~싸~. 그러지 않아도 만들고 싶은 게 있어서 엄마한테 사달라고 조르려고 했는데... 좋아! 어떻게 하면 돼?”
“우선, 의빈 성씨에 대한 자료를 더 찾는 거야. 그리고 미술관에 가는 거야.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어떻게 알고? 5 전시실에서 사람들이 나가길 기다려야 하나?”
“그렇지! 자, 이제 자료를 어떻게 찾는다? 도서관에 가야 할까?”
“에이 바보! 컴퓨터로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게 빠르지.”
아람이는 민망한 듯,
“아하하... 그렇구나. 근데 조금 있으면 엄마랑 아빠 집에 올 시간이야. 그니까 일단 오늘은 숙제 하는 척 하면서 이 책을 보고, 내일 학교 갔다 와서 찾아봐야지.”
“와~ 철저하네. 난 그냥 내일 학교 끝나고 곧장 미술관에 가서 의빈 성씨랑 단판을 내고 싶구만...”
다음 날 오후, 누리는 학교 운동장에 땀을 흘리며 친구와 축구공으로 놀고 있는데 아람이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누리야, 누리야아~~ 지금 미술관 가자~~”
“너네 누나도 미술관 좋아하냐? 이상한 남매야. 나도 이제 학원 가야겠다.”
하며 친구가 교문밖으로 나갔다.
“나 입장료도 없단 말이야.”
누리는 아람이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야! 내가 누구냐? 초대권을 할머니한테 두 장 받았어. 그리고 인터넷 검색은 아까 점심시간에 도서실에서 해놨고.”
“역시! 짱인데.”
“학습지 선생님 올 시간 맞추려면 빨리 갔다 와야 해. 뛰자~”
1 전시실에서 4 전시실까지는 건너뛰고 5 전시실로 들어간 아람이와 누리는 다른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의빈 성씨의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아주 잠깐, 그림은 그림인 채로 있었다. 그런데 그림 앞 1m 정도로 바짝 다가가자 그림이 움직이며 말을 걸었다.
“어서오세요.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헉! 정말요? 왜요?”
누리가 깜짝 놀라 물었고, 아람이도 서둘러 말했다.
“무슨 사연이 있으신 거죠? 혹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셨나요?”
“아~ 글쎄... 왜 그렇게 생각지?”
“내가 다 찾아봤어요. 이름은 성덕임이고, 정조 임금님이 무척 사랑했고, 아들인 문효세자는 다섯 살에 죽고, 딸도 태어나서 첫돌도 안 돼서 죽었잖아요. 또 세 번째 아기를 낳기 두 달 전에 죽은 것도 알아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아닌가요?”
“어머나! 나에 대해서 많은 걸 공부했구나? 고맙다. 그렇지만- ”
그때, 세 사람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5전시실로 들어 왔다.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 아람이랑 누리네! 책가방도 메고 있는 걸 보니 학교에서 곧장 왔구나?”
“네, 할머니.”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며 그림을 돌아보니 그림은 다시 멈춰 있었다.
아람이와 누리는 눈을 맞추고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그림이 다시 움직이며 말을 시작했다.
“정조 임금님과 나는 금슬 좋은 부부였지요. 정조 임금님은 내가 죽은 후 저를 애도하는 글을 많이 써 주셨지요. 저는 지금도 그분이 그리워 이렇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누리와 아람이와는 달리 할머니와 다른 두 분은 웃으며 그림을 향해 인사했다.
“수고가 많아요. 박선생님!”
다시 또 놀란 누리가 물었다.
“할머니! 어떻게 된 거에요?”
“이런 작품은 누리도 처음 보지? 이런 작품을 ‘인터렉티브 아트’라고 하는 거야. 테크놀러지가 결합되어 관객을 만나야 완성되는 작품. 관객들이랑 얘기도 나눌 수 있어.”
“그럼 그림 안에 AI라도 들어 있는 거예요?”
이번엔 아람이가 물었다.
할머니가 바닥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건 아니고 여기 이 지점에 사람이 서면 센서가 작동해서 관람객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그림 뒤에 숨어 있는 분이 말을 하는 거지. 그러면 디지털로 된 그림이 움직이는 거야.”
“그림 뒤에 있는 분은 우릴 볼 수 있어요?”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보지는 못 해. 컴퓨터를 앞에 놓고 검색어를 치면서 여러 가지 질문에 답도 해야 하니까. 하하, 내가 비밀로 해도 될 걸 너무 많이 알려준 건가?”
그제야 아람이와 누리는 모든 게 이해되었다. 그러면서도 누리는 디지털 그림이 너무나 감쪽같아 놀라웠고, 아람이는 신비한 경험을 놓친 거 같아 크게 서운했다.
나중에 아람이와 누리에게 둘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얘기 듣고, 할머니는 즐겁게 웃으며 말했다.
“애들아! 할머니는 너희들 덕분에 미술관에서 새로운 걸 많이 배우고 또 그걸 여러 사람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구나. 더구나 그림 하나가 호기심을 자극해서 이렇게 배워나가는 아람이랑 누리를 보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수상소감 - 우수상 동화 배홍숙
“동화나 그림책을 쓸 땐 내 생각이 신기해 기분이 좋아져요”
감사합니다.
블로그에 동화를 몇 편 써 두고 공개는 안했는데,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에 처음 응모해서 이렇게 상을 받으니 많이 기쁩니다.
독서 동아리 회원이 공모전이 있다고 단톡방에 링크를 걸어주셨어요. 그 분도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응모 부문에 동화가 있어 용기를 내봤습니다. 어쩌면 50대 이상이 참가하는 거라면 동화 부문 응모자가 적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면서…
글쓰기 관련 책을 보기도 하고, 강의도 가끔 듣습니다. 함께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는 친구들과 가족, 제가 하는 모든 활동이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적극적인 글쓰기엔 특별한 동기가 필요한 거 같아서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이후에 다른 공모전이 있나 살펴보고 있습니다.
어떤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요청이 온다면 글쓰기에 더 큰 동기부여가 될 것 같네요.
내가 쓴 에세이는 항상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화나 그림책을 쓸 땐, 내가 해낸 생각들이 신기해서 기분이 좋아지고요.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동화나 그림책 글을 계속 쓰면서, 감동을 주는 좋은 수필도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공모전 정보를 주셨던 선생님, 잘못된 파일 경로를 수정하라고 알려주신 담당자에게 감사드리며, 독서동아리 친구들과 어린 시절에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던 엄마와 외할머니, 응원해 주는 식구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웃는 얼굴, 난처한 얼굴, 우는 얼굴. 직접 나누는 대화보다 메신저로 주고받는 메시지가 익숙해진 요즘. 한 줄짜리 짧은 메시지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표정’이 있다. 바로 이모지(Emoji)다. 한국에서는 이모티콘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모티콘의 한 종류로 보면 된다.
“이모지처럼 시대를 초월한 개념이면서 현대적인 것도 없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건축·디자인부 수석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는 이모지(Emoji)를 이렇게 평가했다. 1999년 일본에서 탄생한 최초의 이모지는 2016년 뉴욕 현대미술관의 수장품이 됐다. 올해 발표된 ‘이모지 14.0’ 후보에는 임신한 남성을 본뜬 모습의 이모지가 등장해 전 세계 누리꾼들의 논쟁거리로 등극했다.
이렇듯 이모지는 단순히 감정을 전달하는 이모티콘의 개념을 넘어, 첨예한 사회적 이슈를 비추는 창이 됐다. 사회적 성을 의미하는 ‘젠더’나 다양성을 존중하는 MZ세대의 가치관과 맞물려 디지털 세상에서 폭발적인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젊은 신입사원이나 손주를 이해하고 싶은 시니어라면 이모지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소수 세계를 담는 12픽셀 그림
지난 17일 발표된 ‘임신한 남성’ 이모지 외에도 다양성을 반영한 사례는 꾸준하게 나오고 있다. 내년에 출시될 이모지 14.0의 최종 후보군에는 왕자나 공주로 성별을 구분 짓지 않은 ‘왕관을 쓴 사람’ 이모지, 다양한 피부색을 지닌 손이 악수를 나누는 이모지가 포함됐다. 또 케이팝(K-POP) 아이돌 가수와 팬덤이 자주 사용하는 손가락 하트 이모지는 케이팝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한다.
성별·인종에 대한 선입견을 부수는 이모지도 지속적으로 추가됐다. 2012년에는 손을 잡은 동성 커플의 이모지가 등장했고, 2015년에는 같은 모양의 이모지를 피부색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변화했다. 지난해 출시한 산타 할머니, 우유병을 물린 남성 이모지나 턱시도를 입은 여성, 결혼식 면사포를 쓴 남성도 궤를 같이 한다. 2019년부터는 청각장애 등 다양한 장애를 이모지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실제 사용자 반응도 좋다. 소프트웨어 회사 어도비가 지난 4월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새롭게 추가된 이모지’ 중 가장 인기 많은 이모지 1위는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는 사람’, 3위는 ‘턱시도를 입은 사람’으로 나타났다. 두 가지 모두 성별을 드러내지 않은 성 중립적인 디자인의 이모지다.
전통적 관념이 익숙해 이러한 변화를 낯설어하는 시니어가 반길만한 이슈도 있다. 지난해 한 대학생이 알약을 장기모양으로 디자인해 세계 디자인상을 싹쓸이했다. 출품자인 최종훈 씨가 디자인에 붙인 이름은 ‘피모지’. 약(pills)과 이모지(emoji)의 합성어다. 할머니 댁에 쌓여있는 약 봉투를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린 그는 출품서에 “시각장애인들, 특히 노인들이 직관적으로 자신이 복용하는 약의 효능을 알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라고 적었다. 복용하는 약이 여럿인 노인들이 약물을 잘못 복용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태어난 디자인이다.
우려 섞인 시선도 존재한다. 정확한 용량에 따른 조제가 어렵고, 일정하지 않은 모양의 알약은 쉽게 부서져 복용량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시력이 좋지 않은 노인이 알약 모양으로 정확히 식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해당 디자인에 대한 수상 소식이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하지만 배려가 돋보이는 착한 디자인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주기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며 제품이나 서비스, 콘텐츠 등을 이용하는 ‘구독경제’의 몸집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뿐 아니라 의식주부터 취미와 여가 등 삶의 전반에 다양한 방식으로 침투하고 있다. 심심할 때 TV 대신 넷플릭스를 보고, 유튜브 구독자 수로 인기를 가늠하는 구독 전성시대, 시니어가 알아두면 좋을 이색 서비스를 소개한다.
사진 오픈갤러리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한 지 1년, 집에 머무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주거 공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단순한 의식주 생활을 넘어, 개인의 취미와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카멜레온처럼 변하고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은 다양한 커피용품으로 ‘홈카페’를 만들고, 영화광들은 빔프로젝터를 구매해 ‘홈시네마’를, 운동 마니아들은 각종 운동기구를 들여 ‘홈짐’을 차리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 집의 기능이 겹겹이 추가되는 현상을 ‘레이어드 홈’이라고 명명했다.
다양한 인테리어와 가전용품으로 주거 공간의 역할이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전시회·갤러리 등 문화생활을 편히 즐기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림 소장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미술관에 가는 대신 집 곳곳에 그림을 걸어 자신만의 갤러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명 화가의 원화는 구하는 과정부터 어렵고,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전문가가 아닌 이상 어떤 작품을 어디에 걸어야 하는지 등 지식이 부족해 혼자 결정하기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림 렌털 서비스 ‘오픈갤러리’
‘오픈갤러리’는 이처럼 그림을 소비하고 싶지만 선뜻 시도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국내 인기 작가의 원화를 대여하는 그림 렌털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큐레이터와의 상담을 통해 어울리는 작품을 선정하면 전문 업자가 작품 설치를 돕는다. 최초 이용 시에는 큐레이터가 방문해 도슨트 서비스도 제공한다. 그림은 3개월을 기준으로 교체가 이루어져 계절이나 유행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2021년 2월 기준 약 1100명의 작가와 3만7000여 점의 작품이 등록돼 있으며, 이 중 오픈갤러리가 중장년층 고객에게 주로 추천하는 작품은 전미선, 이현열, 임은정, 고재군, 류지선 작가의 그림이다.
대여 요금은 작품 크기에 따라 다르며, 1개월 기준으로 책정한다. △10호(약 50×45cm) 이하 3만9000원 △20호(약 70×60cm) 이하 6만9000원 △30호(약 90×70cm) 이하 9만9000원 △40호(약 100×80cm) 이하 12만 원 △60호(약 120×90cm) 이하 15만 원 △80호(약 145×110cm) 이하 20만 원 △100호(약 160×130cm) 이하 25만 원이다. 이는 작품 원래 가격의 1~3% 수준이다.
대여 전 상담은 온라인 및 오프라인 방식으로 진행한다. 온라인은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보낸 뒤 유선 상담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성된 제안서에서 원하는 작품을 고르면 된다. 제안서에는 약 5점의 작품이 추천된다. 신청서를 작성할 때는 개인의 취향이나 공간의 특성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 취향을 모른다면 오픈갤러리 홈페이지에서 AI 취향 분석 서비스를 이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오프라인 상담은 큐레이터가 가정을 방문해 공간을 확인하고 어울리는 작품을 추천한다. 단 서울·경인 지역에 한하며, 6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그림이 마음에 든다면 기간을 연장하거나 구매할 수 있다. 대여에서 구매까지 이어지는 비율은 3% 정도다. 대여 기간 지불한 요금을 제외한 금액으로 살 수 있다. 만일 이용자의 실수로 작품에 복구 불가능한 정도의 손상이 발생할 경우 매매가의 50%를 청구하며 작품을 회수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 주의는 필요하지만, 눈으로만 감상한다면 결함이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픈갤러리 관계자는 “중장년층 고객 90%가 만족하고 있다”며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멋진 풍경이나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Plus+] 시니어 홈갤러리 엿보기
[CASE 1] 송그림 씨 (구독 14개월)
“자식을 다 키워 보내니 쓸데없이 집이 넓다며 외로워하시는 엄마를 위해 선물해드렸어요. 그림 하나로 집 안 분위기가 확 바뀐다고 지금까지 해드린 선물 중에 제일 좋아하시네요!”
작품 임은정, DOOR-초대(Invitation)
대여 요금(월/VAT 포함) 6만9000원
구매 가격 900만 원
[CASE 2] 박미술 씨 (구독 7개월)
“여행 가면 미술관, 박물관부터 가실 정도로 ‘아트러버’인 엄마를 위해 그림을 걸어드렸어요. 코로나19 때문에 강제 ‘집콕’ 중이신데, 집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너무 좋아하세요!”
작품 이여운, duplicate_3
대여 요금(월/VAT 포함) 15만 원
구매 가격 750만 원
소마미술관엔 행정상 내부 관장이 있고, 외부 전문인 명예관장이 있다. 큐레이터의 역할과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 큐레이터는 전시 기획은 물론 미술품의 수집·연구·관리에 관한 실무를 전담하기에 ‘미술관의 꽃’으로 일컫는다. 화가·평론가와 함께 현장미술의 삼각 축을 이룬다. 소마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박윤정 씨. 그는 소마미술관 근무 15년을 포함, 20여 년간 큐레이터로 활동한 베테랑이다. 소마미술관에 대해, 그리고 미술 감상법에 대해 묻기 위해 마주앉았다.
“소마미술관은 88올림픽 문화제전을 계기로 출발한 역사성, 그리고 올림픽조각공원이라는 매우 강력한 하드를 가지고 있다. 그 정체성을 바탕으로 구축한 소프트도 뒤처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강점을 살려 ‘다시 가고 싶은 미술관’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과 미술관이 직결되는 출입 통로가 이상적이다. 접근이 쉬워 관람객이 많을 것 같은데.
“대중에게 미술관 문턱은 아직도 낮지 않은 것 같다. 과거에 비해 관람 인원이 크게 늘지 않은 추세이니까.”
미술관 측이 문턱을 낮춰야 하지 않나? 재미가 있으면 찾아가게 마련이다.
“소마미술관은 물론 요즘의 미술관들은 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단순히 전람회만 여는 공간이 아니다. 멀티 컬처의 열린 장으로 바뀌었다. 각종 문화와 교육 관련 프로그램, 심포지엄, 작가와의 대화, 그리고 축제나 공연까지 펼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관람객이 적은 건 왜지?
“이론 중심의 미술교육 제도가 문화의 성장 속도를 저해하는 걸로 보인다. 어려서부터 예술에 젖어들 수 있는 풍토 조성이 필요하다.”
그간의 전시회 중에서 가장 성황을 이루었던 건?
“2015년에 가진 ‘프리다 칼로-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 전이다. 어릴 때엔 교통사고로 몸이 다 부서지다시피 했고, 바람둥이 남편에게 평생을 시달렸으며, 멕시코 패션의 아이콘이기도 했던 프리다의 드라마가 알려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전시장을 찾아왔다. 한동안 ‘프리다 신드롬’이 일 정도였다.”
조각공원의 작품들 중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사견임을 전제하자. 잔바람에도 작품이 움직여 신선한 감흥을 주는 조지 리키의 ‘비스듬히 세워진 두 개의 선들’이 좋더라. 대칭과 비대칭의 조합을 평생의 화두로 삼았던 문신의 ‘대한민국 올림픽-1988’과 이우환의 ‘관계항-예감 속에서’도 내겐 특별했다.”
미술작품 감상법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미리 사전 정보를 알아두는 게 좋겠다. 미술은 어렵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내가 느끼는 모든 게 예술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도 있다. 전시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는 방법도 고려하자. 무엇보다 쉽고 좋은 건 도슨트의 설명을 경청하는 일이다.”
괴짜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그는 작업실에 갈 때면 정장 차림에 단장까지 들고 안방을 나섰다. 그 작업실이라는 게 몇 발짝이면 도착하는 집 안의 주방이었다. 힘들이지 않고 사람을 웃기는 이색 소극(笑劇)이다. 소다미술관(SoDA, Space of Design and Architecture)은 짓다가 버린 찜질방을 고쳐 만든 미술관이다. 이 역시 주방 화실만큼이나 이색이라 흥미롭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던 폐건물에 생명을 주입했으니 태생부터가 예술적? 스러지는 사물에, 무의미한 존재에 숨을 불어넣는 게 예술이지 않은가.
영국 런던의 내로라하는 미술관인 테이트모던(Tate Modern)은 공해 문제로 가동을 멈춘 화력발전소를 고스란히 살린 뮤지엄이다. 해마다 5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아든다. 부산 망미동의 F1963은 45년간 와이어로프를 생산했던 폐공장을 재생시킨 복합문화공간이며, 청주의 골치 아픈 초대형 흉물이었던 구 연초제조창은 ‘청주공예비엔날레’를 펼치는 공예 클러스터이자 시민 예술촌으로 부활했다. 이 특별한 공간들은 모두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의해 되살아났다. 소다미술관의 발생 역시 ‘재생’을 키워드의 하나로 삼은 요즘의 건축적 사조에서 추동되었다.
소다미술관은 사립 미술관이다. 경영학을 공부한 디자인 컨설턴트 장동선 씨가 관장을 맡았으며, 그의 남편 권순엽(건축가, ‘SOAP 디자인스튜디오’ 대표) 씨가 조력자로 움직인다. 이 부부는 어느 날, 찜질방을 짓다가 혼란에 빠진 어느 건축주의 컨설팅 의뢰를 받았더란다. 당시 건축주는 1층 철근 콘크리트 벽체와 천장 구조까지 마무리한 과정에서 건축을 중단, 이후 4년여를 방치한 상황. 입지의 열악한 조건과 소비 트렌드의 변화로 준공을 해도 사업성이 없을 거라는 판단을 하고서였다.
‘재생’의 취지를 살린 별난 미술관
짓다가 포기한 찜질방 풍경은 슬럼화로 스산했다. 쓰레기와 풀들이 부지를 뒤덮은 채 뼈대만으로 멈춰선 건물의 내부로까지 틈입하고 있었다. 장동선 씨 부부는 숙고 끝에 지역사회에 유용할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생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이를 공감한 건축주는 완공 후의 운영 책임까지 장동선 씨에게 맡겼다. 이렇게 해서 2015년 소다미술관이 개관됐다.
리모델링은 최소한에 그쳤다. 건축주는 적극적인 구조 변경도 무방하다, 싹 부숴도 좋다 했지만 ‘재생’의 취지를 고수, 거의 건드린 곳이 없다시피 은근슬쩍 손질을 했을 뿐이다. 빛과 구름이 풍경을 연출하는 허공의 동향을 조사할 수 있도록 건물 일부의 천장만 도려냈으니까. 애초 부실한 공사라 바닥의 높낮이도 불균형했으나 그대로 놔뒀다. 휑하게 늘어선 콘크리트 벽면엔 약간의 그래픽 아트를 입혀 이곳이 예술 공간임을 나타냈다. 마당과 옥상엔 화물용 컨테이너 박스들을 조형적으로 배치해 실용성과 미감을 동시에 확보했다.
이렇게 해서 통째 건축 폐기물로 버려질 뻔한 쓸쓸한 건조물이 독특한 형태의 미술관으로 순식간에 진화했다. 정밀한 의도, 파격적인 실험, 대담한 근성이 발현된 공간임을 직감할 수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사설 미술관의 안정적 운행 사례는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물다. 흔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운영을 한다. 그럼에도 어떤 풍랑이 몰아칠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바다에 미술관을 띄우다니. 응분의 항해술과 순항에 관한 확신이 선행했을 테다. 미술관 측의 얘긴 이렇다.
“(소다미술관은) 기존의 고답적인 미술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과 가능성을 모색하는 미술관으로서, 문화 불모지인 인근 지역에 도시재생의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버려진 것들이 디자인 순환(Redesign)을 통해 재발견-재해석-재생산될 수 있다는 것을 철학으로, 창작자들과 대중이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적·체험적 문화 소통의 공간적 매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소다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줄여 해석하면, 값진 항해를 하겠다는 뜻. 개관 이후 5년이 흐른 현재, 소다미술관은 쿵쿵 뛰는 심장으로 생동한다. 초기의 고전(苦戰)은 살풍경이었겠으나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즐비하게 입장하는 요즘의 풍경은 자못 윤택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미술관은 형상부터 편안한 느낌을 줘 다가가기 쉽다. 콘크리트 벽체에 으슴푸레 서린 잿빛. 이는 한때 퇴기처럼 버림받았던 건물이 지닌 상처의 잔영? 오래 낡은 사물이 아니면서도 미묘하게 허름하다. 그래 만만해 보이며, 그 내부에선 뭔가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을 하게한다. 여느 화려한 대형 미술관들이 지닌 딱딱한 위압이 없다. 빈티지 풍색이면서도 세련된 모더니티는 또 어떻고?
와우, 별난 미술관이네! 단박에 호기심과 친근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외양은 어쩌면 이 미술관이 보유한 최상의 자산이 아닐까. 곁을 오가던 지역 주민들은 심심하던 차에 출현한 예술 공간의 의미에 대해 한 번쯤은 곰곰 생각해봤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들어가서 살펴보고 싶었을 것이다. 소다미술관은 이처럼 사람들의 내면에 잠재한 본능적인 문화 욕구를 수면 위로 쓰윽 끌어올렸다. 다양한 콘텐츠 개발로 미술관의 힘과 개성을 돋우었다.
다양한 콘셉트로 보여주는 예술의 맛
소다미술관은 미술작품전은 물론, 건축과 디자인에 관한 기획전도 주기적으로 펼친다. 음악공연, 아트장터, 플리마켓, 크리스마스 파티, 할로윈 파티 같은 이벤트도 잦다. 아이들 대상의 스카이샤워, 액션페인팅, 무빙아트 등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예술과 놀이, 문화와 소비에 관한 엄밀한 분석으로 도출했을 이 다양한 콘셉트는 용케 먹혀들고 있다. 입장객이 늘어나면서 문화적 토양과 시설이 유난히 취약한 지역사회에서 존재감을 부각하게 되었다. 서울을 비롯한 외지에서 찾아오는 이들도 증가하고 있다지.
국내엔 엄마와 함께 찾아와 뜰에서, 전시장에서, 팔랑팔랑 뛰노는 아이들을 작품처럼 유심히 관찰하기 좋은 미술관이 하나 있는데 바로 소다미술관이다. 어린아이란 천진난만한 요정을 하나씩 가지고 사는 존재. 이 미술관은, 알고 보면 저마다 맛이 약간 간 어른들(아닌가? 나만?)과 다른 종(種)인 아이들에게 예술의 맛을 살짝 보여주는 일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것 같다. 그게 미술관의 역할이라 믿어 담장을 팍 낮췄을 게다. 이 미술관의 종사자들은 국가의 평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동들과 동네의 평화쯤은 구현하는 게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는지도 모르겠다. 미술관 큐레이터의 얘기를 들어볼까.
“우리의 의도는 문화예술을 친숙하게 소개하는 데 있다. 미술에 관심이 없거나 모르는 사람들도 미술관에서의 시간과 공간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콘셉트를 마련했다. 전시실의 미술작품만 아니라, 건물의 구조와 디자인, 다양한 이벤트 등 이곳의 모든 게 예술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미술만 아니라 삶과 일상 전체가 예술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김모란 큐레이터)
기발하다, 예사롭지 않게 섬세하다
소다미술관의 창의적인 전시 기획력도 돋보인다. 개관하던 해엔 세계 3대 디자인상에 속하는 ‘레드 닷 디자인상(2015 Red Dot Design Award)’의 디자인 분야 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건축가들의 지어지지 않은 꿈’이라는 타이틀의 건축 전(展)에 주어진 상이었다. 이 미술관은 그간 건축가들이 작가로 참여하는 다양한 공간설치전을 펼쳐왔다. 현재 천장 없는 전시 동(棟)에서 ‘모으고 잇다: gather together’ 전이 진행 중이다.
실내 전시장에선 인간의 우울한 감정을 테마로 한 ‘COMPLEX SOCIETY: 불완전한 아름다움’ 전이 펼쳐진다. 코로나19와 맞붙은 국면이라는 시의성에 착안한 전시회다. 감상자들에게 위안과 관조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기획했다. 앙리 마티스는 말했다. “예술은 진통제이거나 피로를 푸는 안락의자”라고. 그렇다면 예술가는 치료사? 감염병의 발호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감정은 자주 억압돼 감옥살이를 한다. 화가는 그 억압을 유심히 관찰한다. 관찰을 통해 그가 발견한 감정의 본질을 표현해 억압으로 아픈 자신과 남들을 위로한다.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울 단서를 찾게 한다. 날뛰던 마음이 미술관에서 잠시나마 얌전하게 가라앉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소다미술관은 기발하다. 예사롭지 않게 섬세한 전시 디테일로 감상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준다. 전시실 한편에 정갈하게 진열한 마음 관련 책자들. 무료 벤딩머신을 누르면 튀어나오는 위안의 글귀들. ‘잘 지내!’라는 타이틀을 달고 탁자에 올라앉아 은은한 향을 풍기는 디퓨저. 미술관도 이쯤이면 미련퉁이 애인보다 낫다.
● Exhibition
◇ 프렌치 모던: 모네에서 마티스까지, 1850-1950
일정 6월 14일까지 장소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미국 최초로 인상주의 전시를 열었던 브루클린 미술관의 유럽 컬렉션 중 59점의 대표작을 만날 기회다. 이번 전시에서는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프랑스 모더니즘 예술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폴 세잔,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클로드 모네 등 총 45명 작가의 작품들을 풍경, 정물, 인물, 누드 등 4개의 섹션으로 구성했다. 각 작품의 의미와 특성을 통해 모더니즘 전반에 걸친 미술사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시간대별 관람 인원을 제한하며, 고양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사전 접수 후 입장 가능하다.
◇ 가능성에 대한 가능성: 오브제 시리즈
일정 7월 28일까지 장소 아이러브아트센터 셀린박 갤러리
개인과 사회, 정치적 이슈를 테마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셀린박 디자이너가 작업한 사물 시리즈 전이다. 앞서 2018년 런던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과 2019년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에 초청돼 전시한 바 있다. 비판적 디자인을 기반으로 사회 구조의 이면적인 모습을 사물기호증(움직이지 않는 특정 물체에 초점을 둔 성도착증의 일종)과 관련지어 예술작품으로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사회적 이슈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관객 스스로 구조와 제도의 모순으로 생긴 결함을 통찰하도록 이끈다.
◇ 모두의 건축 소장품
일정 6월 14일까지 장소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전관
서소문 본관 ‘모두의 소장품’ 전과 연계한 전시로, 동시대 수집의 범위와 행위를 성찰하고 미래의 소장품 형식을 탐색한다. 1980년대 초반 중구 회현동에서 현재 관악구 남현동으로 이축된 서양 고전양식의 구 벨기에 영사관을 중심으로 건축 수집의 기원, 의미, 방법을 체험하는 2개의 섹션으로 마련했다. 건축을 수집하는 8개 국·공·사립 기관과 40여 명의 건축가가 함께한 150여 점의 전통 건축과 근·현대 건축자료를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코로나19로 인한 잠정 휴관으로 서울시립미술관 SNS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 있다.
◇ 메이커 탐구생활
일정 9월 30일까지 장소 크리타
과학과 예술의 유쾌한 연결을 이어가는 메이커 세 팀이 함께한 전시다. 50만 구독자를 보유한 공학 유튜버 ‘긱불’(GEEKBLE), 을지로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디자인과 메이커의 경계를 허무는 ‘프래그’(PRAG), 가족과 어린이를 위한 메이커테인먼트 콘텐츠를 선보이는 ‘크리타’(CR!TA)가 참여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은 일상의 탐구에서 시작된다”라는 메시지 전달을 위해 전시품 외 큐레이터 기획공간을 별도로 꾸렸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실천으로 최대 10인까지 입장 가능한 소규모 전시 예약제를 잠정 운영하며, 일일 8회 진행된다.
● Stage
◇ 2020 디즈니 인 콘서트
일정 5월 23~24일 장소 세종문화회관대극장 출연 디즈니 콘서트 싱어즈, 디토 오케스트라
미국 월트 디즈니 본사의 프로듀서이자 음악 작·편곡가로 활동해온 테드 리케츠가 전 세계를 무대로 선보였던 오리지널 프로덕션 공연이다. ‘인어공주’, ‘신데렐라’,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알라딘’을 비롯해 ‘겨울왕국 2’까지, 디즈니 대표 명작들을 대형 LED 화면과 더불어 60인조 이상의 풀 오케스트라 연주로 즐길 수 있다. 화려한 무대와 아름다운 선율의 향연으로, 손주와 함께라면 더더욱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 로빈
일정 5월 1일~8월 2일 장소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 연출 정태영 출연 김대종, 임찬빈, 박정원 등
지구 밖 행성을 배경으로, 유능한 과학자이지만 자식과의 교감에 서툰 아빠와, 답답한 우주를 벗어나 지구로 돌아가려는 딸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다. 부녀 사이에 중재자로 나선 로봇 ‘레온’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기억, 가족의 사랑에 대한 의미를 일깨운다.
◇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일정 6월 27일까지 장소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출연 클레어 라이언, 맷 레이시, 커트 올즈 등
프랑스 소설가 가스통 르루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작품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최초 1만 회 공연을 돌파하며 가장 오래된 뮤지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새롭게 단장한 월드 프로덕션 팀이 8년 만에 한국 관객을 찾아 더욱 압도적인 스케일의 무대와 진한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 Movie
◇ 나는 보리
개봉 5월 21일 장르 드라마 감독 김진유 출연 김아송, 이린하, 곽진석, 허지나 등
농인 가족 사이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11세 ‘보리’는 왠지 모를 외로움을 느끼는 아이다. 그런 보리가 소외감을 벗어나기 위해 특별한 소원을 빌게 되며 벌어지는 일련의 성장 스토리를 담았다. 정겨운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보리네 가족의 일상과 주인공의 고민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제24회 독일 슈링겔국제영화제 관객상과 켐니츠상, 제20회 가치봄영화제 대상 등을 수상해 국내외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 레미제라블: 뮤지컬 콘서트
개봉 5월 14일 장르 공연실황 감독 제임스 파우웰, 장 피에르 출연 마이클 볼, 알피 보 등
지난해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선보였던 ‘레미제라블: 뮤지컬 콘서트’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됐다. 콘서트 형식의 작품으로 모든 대사가 노래로 진행되는 송스루 공연의 생생한 현장을 담았다
◇ 보이콰이어
개봉 5월 14일 장르 드라마 감독 프랑수와 지라르 출연 더스틴 호프만, 캐시 베이츠 등
상처가 있는 소년이 국립 소년합창단에서 인생 스승을 만나며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아카데미 주연상에 빛나는 더스틴 호프만과 캐시 베이츠 등 연기파 배우들의 참여로 기대를 모은다.
● Book
◇ 백세 일기 (김형서 저ㆍ김영사)
올해 4월, 만 100세 생일을 맞아 펴낸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의 신간. 소박하지만 특별한 ‘일상’, 온몸으로 겪어온 격랑의 ‘지난날’, 100세의 지혜가 깃든 ‘삶의 철학’, 고맙고 사랑하고 그리운 ‘사람’ 등 4가지 주제로 70여 편의 글을 엮었다. 한 세기를 살아보니 알게 된 깨달음과 솔직한 심정, 그간의 희로애락 등을 담담하면서도 재치 있게 들려준다.
◇ 천년의 수업 (김헌 저ㆍ다산초당)
존재와 죽음, 자존과 행복, 타인과의 관계 등 인생에서 주요한 9가지 질문에 대해 통찰한다.
수천 년 동안 서양 고전이 던져온 물음들을 통해 ‘나다운 삶은 무엇인가’를 고찰하게 한다.
◇ 50, 이제 나를 위해 산다 (호사카 다카시 저ㆍ상상출판)
50세를 앞두거나 접어든 사람이 참고할 만한 ‘행복 습관’ 80가지를 정리했다. 취미, 공부, 인간관계, 건강, 마음가짐 등 행복한 노후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일상의 노하우를 소개한다.
◇ 더 월 (론 란체스터 저ㆍ서울문화사)
2019년 부커상 후보에 오른 작품으로 기후 변화로 인해 황폐해진 미래 세상에서 벌어질 문제를 그린다. 시사적이고 풍자적인 시선으로 갈등을 드러내면서 경고의 메시지도 담았다.
모네, 세잔, 샤갈, 르누아르, 로댕 등 서양 근·현대 화가들의 걸작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고양문화재단(이사장 이재준)은 지난 2월 아람미술관에서 전시 개막 후 4일 만에 코로나19로 휴관에 들어갔던 ‘프렌치 모던: 모네에서 마티스까지 1850-1950’전을 지난 4월 7일부터 재개관했다.
클로드 모네와 앙리 마티스, 폴 세잔, 마르크 샤갈 등 후기 인상파의 대표작을 비롯해 미국 브루클린 미술관의 컬렉션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총 45명의 회화와 조각 59점을 전시함으로써 서양 미술사의 황금기이자 혁명기를 관통하는 사조를 망라했다.
이번 전시는 미국에서 최초로 인상주의 전시를 열었던 브루클린 미술관의 유명한 유럽 컬렉션 중 일부를 소개하고 있다. 프랑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모더니즘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그 과정의 대표 작가들 작품을 통해 미술사의 맥락과 흐름을 한눈에 보여준다. 크기와 소재, 미술사조가 각각 다른 전시품들은 프랑스에서 태어났거나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이다.
앞서 말한 100년 동안 프랑스는 1848년 혁명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미술사도 리얼리즘,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등이 등장하며 모더니즘이 전개됐다. 그 중심에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있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맨 먼저 장 프랑소아 밀레의 ‘양 떼를 치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삭 줍는 여인들’과 ‘만종’으로 고단한 노동자들이 삶을 주로 그렸던 밀레는, 반 고흐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전통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자연을 보았던 바르비종파의 대표 화가이기도 하다.
밀레에게 깊이 공감했던 클로드 모네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경을 담아내 색채 묘사의 혁명가라 불린다. 이번 전시의 포스터로 활용된 그의 작품 ‘밀물’은 가파른 벼랑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 보는 듯한 시점을 사용하여 해안선에 자리한 오두막집의 배치를 극적으로 강조했다. 그의 힘찬 붓놀림은 휘몰아치는 자연의 힘을 전달하는 듯 강렬하다.
전시는 풍경, 정물, 인물, 누드의 총 4개의 장르로 구분돼 자연주의에서부터 추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모던 시기의 변화과정을 보여준다. 풍경 섹션에서는 모네의 ‘밀물’ 외에, 구스타브 쿠르베의 ‘파도’, 폴 세잔의 ‘가르단 마을’ 등을 만날 수 있다. 정물 분야에는 르누아르의 ‘파란 컵이 있는 정물’, 앙리 마티스의 ‘꽃’ 등이 전시돼 있다. 인물 부분에는 밀레, 모리조, 부게로 등의 작품이 있고, 누드 파트에서는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작품 ‘청동시대’, 에드가 드가의 ‘몸을 닦는 여성’ 등이 눈길을 끈다.
전시장에서 기자를 안내해준 고양문화재단의 김언정 수석큐레이터는 이런 대규모 전시를 유치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와 현대 미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서양미술 전환기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골고루 프렌치 모던 시기의 중요한 작가들을 다 모아서 기획하고 작품을 가져온 경우는 많지 않아요. 게다가 지금 같은 블록버스터급 전시를 하기 위해서 특정 기획사가 아니라, 뉴욕에서 세 번째로 큰 브루클린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들을 통해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전시라서 더 의미가 있습니다.”
더불어, 상업적인 목적을 가진 기획사가 개입하지 않은 덕분에 시민들도 저렴한 입장료(성인 1만 원, 고양시민은 5천 원)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전시 관람을 원하는 관람객은 고양문화재단 홈페이지(www.artgy.or.kr)에서 사전예매를 통해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시간대별로 관람 인원을 제한해 진행하고 있는 이번 전시는 6월 14일까지 계속된다.
전시장소: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주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중앙로 1286 아람누리
힘내라 대구! 대구미술관
코로나 바이러스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구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00점의 작품을 전시하는 소장전을 컴퓨터 화면으로 감상할 수 있다. 대구미술관은 현재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잠정적으로 휴관을 한 상태.
유튜브 박물관이란 말처럼 유튜브 상에 현재 전시하고 있는 전시회를 대구미술관 학예사들의 설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코로나 시대를 반영하는 온라인 미술전시회 감상을 맛볼 소중한 기회.
또한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대구와 광주의 ‘달빛동맹’을 미술관 프로그램에서 구현한 ‘달이 떴다’는 대구시립미술관의 소장품과 광주시립미술관의 소장품을 함께 전시하고 있는 기획전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대구가 힘들 때 가장 먼저 병상을 내어주고 도움을 줬던 도시가 광주였다는 점에서 직접 가서 볼 수는 없지만 유튜브 상에서 만나보는 ‘달이 떴다’는 한번쯤 볼만한 온라인 전시가 아닐까 싶다.
이밖에 한국의 신진작가와 중견작가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당신 속의 마법’이 온라인 전시로 기획돼 업로드 돼있으므로 멀리 대구까지 가지 않더라도 내 손안 갤러리에서 작품들을 감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또한 국외 미술관 관계자 초청 특강, 대구미술관 실습생 블로그 등 미술관과 관련된 다채로운 콘텐츠들이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kfRXhh7ib_bOzUmDNFWghg/featured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한국어와 영어로 제공되는 큐레이터 라이브 투어가 진행된다. 큐레이터가 미술관을 직접 돌아보며 작품 해설을 하고 있어 말처럼 방구석 1열이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전시회 감상 영상이다.
‘광장:미술과 사회 1900-2019’ 학예사 전시투어가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가장 최근 전시로는 덕수궁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술관에 書’ 를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에 書’ 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전시하는 한국 근현대 서예전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휴관으로 전시가 불가능해졌다가 이렇게 영상으로 만나게 됐다.
배원정 학예연구사가 직접 설명하며 한국 근현대 서예에 관한 설명을 해주고 있어 서예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관람객들이 들어와 댓글을 남겨놓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https://youtu.be/Sx1Vr7vNtcw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 과천관에서 열릴 ‘한국 공예 지평의 재구성 5070’ 전시회도 투어 영상과 VR영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쓸쓸한 폐교였다. 마을 아이들이 재잘거리던 초등학교였으나, 시간의 물살이 굽이쳐 교사(校舍)와 운동장만 남기고 다 쓸어갔다. 적막과 먼지 속에서 낡아가다가 철거되는 게 폐교의 운명. 그러나 다행스레 회생했다. 미술관으로. 시골 외진 곳에 자리한 미술관이지만 1000명 이상이 관람하는 날도 많다 하니 이게 웬일? 이곳에서 관람할 게 미술 작품만은 아니다. 오래된 건물 안팎에 내려앉은 시간의 더께. 사계의 문양을 저마다 자동기술법으로 표현하는 정원수들의 동향. 야트막한 뒷산 위에 얹힌 하늘의 표정. 보란 듯이 있는 볼 것들이 많다. 충남 당진시 순성면에 있는 아미미술관이다.
화가 부부가 운영하는 미술관이다. 남편 박기호(65, 회화)가 관장으로, 아내 구현숙(58, 설치미술)이 큐레이터로 손발을 맞춘다. 애초 미술관을 만들 생각은 없었단다. 지난 1995년, 그저 작업 하나만 마음껏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폐교를 빌려(나중엔 아예 사들였다) 둥지를 틀었다. 폐교의 환경은 이상적이었다. 공간은 헐겁도록 널찍하고, 어지러운 잡사는 침범 못할 시골 산자락이니 창작을 능사로 삼을 만한 환경이지 않은가.
이후 부부는 작업에 매달려 살았다. 미술만 작업은 아니었다. 퇴락한 교사를 단장하는 일에도 공을 들였다. 원형을 살려둔 채, 가필처럼 조심스레 부분적인 보수만을 한 건, 학교 건물에 서린 유서(由緖)를 존중해서였다. 시간이 머물다 간 흔적을, 시간 속에서 쌓여 이제는 숨결로만 남은 수많은 옛이야기들을, 그 애틋한 가치들을 또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폐교
외부 조경에도 정성을 쏟았다. 바지런히 수백 종의 나무와 화초를 심어 가꾼 건 식물을 좋아하는 부부의 취향 탓이기도 하겠지만, 자칫 건조한 느낌을 줄 수 있는 폐교 공간에 미감을 부여하려는 뜻도 컸다. 교장 관사로 쓰였던 한옥의 보일러 시설을 뜯어내고 구들장을 들이는 작업도 부부가 손수 해치웠다. 먼 데서 주워온 돌들로 쌓은 담장엔 한 드럼 이상의 땀방울이 흘러내렸을 것이다. 이렇게 온갖 단장에 몸이 닳도록 힘을 쓰고 시간을 썼다. 어느 한 구석, 어느 한 모롱이도 부부의 품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도록.
그렇게 보낸 15년. 어느덧 알아주는 눈들이 많아지고, 멀리까지 소문이 나면서 일부러 찾아드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신역(身役)을 마다않고 공간을 꾸민 건 오직 부부 자신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미술관이라는 이름의 공유공간으로 개방할 경우엔 더 가치 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지역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키우고 싶은 생각, 역량 있는 청년작가들을 밀어줘야겠다는 포부도 옹골찼다.
그렇게 아미미술관이 태동했다.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당진과 충남 지역을 넘어 전국적 명소로 부상했다. 부침이 없는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한 결과로. 근래 5년여 사이에 다녀간 유료 관람객 누적 인원은 자그마치 30여 만 명. 지역 미술관이, 그것도 시골의 폐교 미술관이 거둔 성과가 놀랍다. 자본력을 펀치로 약자를 링에 눕히는 승자독식 사회에서 미술관들의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재력으로 무장한 전문화랑, 공적자금이 투입된 공공미술관, 대기업 문화재단이 설립한 대형 미술관이 결국은 독주한다. 화가 부부가 맨몸을 우직하게 던져 가꾼 아미미술관이 그 틈새에서 기세를 돋우고 있으니 이 무슨 야무진 진격인가.
청춘들에겐 ‘취향 저격 핫플’
아미미술관이 지닌 힘과 매력은 한둘이 아니다. 우선은 산기슭 자연 속에 자리해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띠고 있다는 점을 꼽아야 한다. 부부가 공들여 가꾼 정원마저 아름다워 한결 순수한 휴식을 누릴 수 있게 한다. 도시의 화려하지만 딱딱한 느낌을 주는 미술관에서 맛보기 어려운 자연미. 그건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 이상의 만족감을 선사한다. 자연 속에서 얻는 담백한 쾌감보다 개운한 게 다시 있던가.
원형을 해치지 않은 지성적인 개량으로 근대 건축의 고태(古態)를 고스란히 유지한 교사, 즉 전시관의 멋과 맛은 아마도 이 미술관이 보유한 최대 자산이다. 쓸모를 잃고 폐기될 운명에 처한 사물이 인간의 혜안을 만나 부활, 다시금 쓸모를 되찾은 특유의 사례에 속할 건물이지 아니한가. 이 명물에 우련히 뒤엉긴 건 시간이다. 죽어라 내빼기만 하는 게 시간이지만(시간은 허무주의자?), 여기에선 아쉬워 차마 다 훌쩍 떠나지 못했나. 잔영으로 남은 시간의 형적인가, 무늬인가. 노랑 병아리처럼 동동거리며 복도 마루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룽거린다. 그립고 애잔하다, 아, 옛날이여!
우수 절반, 향수 절반으로 짜인 그리움이 가슴을 친다. 학동 시절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과거로 돌아가는 의식이란 허망한 것이지만 그 옛날의 교실에 왔거들랑, 그대여 맘껏 추억에 잠기라! 교실이 두런거리는 소리의 뜻이 그렇다. 중장년 관람객의 거의 대부분은 어쩌면 추억을 움켜쥐기 위해 아미미술관을 찾아올 게다. 젊은 관람객에겐 근사한 빈티지 컬렉션처럼 느껴질지도. 근대와 모던이 결합된 이채를 오래 남기기 위해 그들은 인증샷을 찍는다. 자랑할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누른다. 다음에 만나 아미! 그러고선 다시 오기도 한다.
화가 부부에 따르면, 아미미술관이 단박에 부상한 건 순전히 젊은 디지털 유목민들 덕분이다. 그들은 미술관의 거의 모든 공간에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건물의 내·외벽은 물론, 외부 정원 공간의 다양한 사물들에, 하다못해 나뭇가지에조차 모빌이나 조각 소품, 에스키스 등으로 데커레이션을 해둔 효과가 그렇게 크다. 어디건 포토 존이 되는 것이다. 그러자 청춘 군상들이 환호하며 사진을 찍어 블로그,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 올렸고, 이게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켰단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홍보대사들이 대거 출현한 셈이다. 고즈넉한 운치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좀 과한 데커레이션으로 느껴질 테다. 청춘들에겐 ‘취향저격 핫플’로 많이 알려졌지만.
기획전시전이 열렸다. 부부는 어떤 작가를 선정하느냐에 따라 미술관의 품질이 결정된다고 믿는다. 신중을 다해 매번 참여 작가를 엄선한다. 아내가 큐레이터이지만 또 한 명의 큐레이터를 고용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첨단 트렌드의 작품을 하는 유망한 젊은 작가를 주로 고른다. 현재 진행되는 4인전의 타이틀은 ‘Selfie시대의 자화상展’이다. 셀피족(스스로 자신의 사진을 찍길 즐기는 사람, 또는 그런 무리)이 넘쳐나는 이 사회를 작가들은 어떻게 해석하는가? 그걸 보여주는 전시회다.
작가 김태헌의 가벼운 소품 한 점이 재미있다. 꽃 속에 들어간 행복한 사내를 그려놓고, ‘나는 거짓말쟁이 화가’라 화폭 안에 써넣었다. “알고 보면, 나 나쁜 놈이야! 근데 넌?” 작가는 그리 묻고 있다. “나? 나라고 별수 있음?” 관람객은 그리 답하기 십상이지 않을까. 우리가 외면하고 사는, 심지어 믿을 수 없는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보신책이라 여기는 내 안의 위선, 가식, 내로남불! 작가는 그걸 까발리고, 관람자는 뭔가 켕기면서 ‘나’를 모처럼 들여다본다. 속된, 너무도 속된 외부로만 편재된 눈을, 두뇌를, 욕망을 내부로 돌린다. 잠시 잠깐이나마. 미술관 그림들은 이렇게 우리에게 삶을 환기시킨다. 족쇄를 풀고 자유롭게 살 생각을 해보게 한다. 너무 가르치려 드는 그림은 따분하지만.
아미미술관장 박기호
바닷가 소금창고, 통째 예술로 바꾸겠다
지난 1983년, 박기호 관장은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양화 구상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부상으로는 프랑스 여행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게 계기가 돼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유학을 했다. 아내 구현숙 역시 영국에서 공부한 뒤 프랑스 디종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이들은 파리에서 우연한 인연으로 만나 사귀다 결혼에 이르렀다. 결혼과 동시에 귀국,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 여기 당진으로 내려온 것이다. 당진은 박 관장의 고향이다.
널찍하고 천장 높고. 그는 그런 작업 공간을 찾다 폐교에 자리를 잡았다. 원하는 공간을 얻었으니 작업에의 몰두가 깊었을 게다. 폐교를 다듬는 데에도 비지땀을 쏟았다. 4600평 부지 안에서 폐허의 표정을 짓고 있었을 교사와 부속건물, 그리고 운동장. 이 모든 걸 쓸 만하게 바꿔놓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보냐. 청소를 하는 데만 반년이 걸렸단다. 방독면을 쓰고 천장을 털어냈을 때 쏟아진 쓰레기가 트럭으로 열 대 분량이었다. 쥐들의 낙원이기도 했다. 교실 한 칸에 꾸민 침실의 커튼을 타고 부산히 오르내리는 쥐들로 잠을 설친 밤도 많았다. 쥐보다 더 바삐 움직인 건 박 관장이었다. 다듬고 고치고 칠하느라고. 그러니까 청소부이자 수리공, 목수이자 페인트공으로도 살았던 셈이다. 어디서 이런 뚝심과 요령이 나왔을까.
“파리로 유학을 갈 때 1원 한 장 지닌 게 없었다. 생활이 어려울 수밖에. 고암 이응로 화백께서 쓰던 작업실을 한동안 얻어 쓰는 행운이 있었지만, 숙식 문제부터 늘 곤란했다. 부지런히 그림을 그려 팔았다. 그리고, 알바 삼아 집 고치는 업자들을 따라다니며 돈을 벌었다. 그때 공사판에서 익힌 기술을 폐교 수리에 활용했다.”
“당신은 화가다. 폐교 단장에, 그리고 미술관 운영에 힘을 너무 소모하는 건 아닌가? 그림밖엔 난 몰라! 화가들은 흔히 그런 말을 하는데.”
“캔버스 안의 그림만 예술이 아니다. 나는 여기에서 긴 세월 동안 실로 많은 작업을 해왔다. 공간 곳곳을 디자인하고, 손수 가구를 만들고, 돌담을 쌓고, 심혈을 기울여 조경을 했다. 사람들은 이것들을 단순한 인테리어라 규정할지 모르지만, 최상의 디자인이 가미된 작품으로 보길 바란다. 관점을 넓히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일상에 이미 예술이 들어가 있는 걸 알 수 있다.”
소변기에다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장에 내놓았던 마르셀 뒤샹. 그는 공장에서 나온 기성품도 예술일 수 있다고 보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게 예술이라 했다. 박 관장이 뒤샹과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관점을 확장하고 틀을 깨는 거. 그게 자유로운 삶이자 예술이라는 얘기이겠지. 그는 요즘 오브제로 사들인 해변 마을의 소금창고를 통째 작품화하기 위해 구상 중이다. 폐어선 한 척도 같은 용도로 이미 접수해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