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먹고살기가 힘들어 흰쌀밥을 먹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백미만 먹으면 좋지 않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현미나 잡곡밥을 많이 먹고 있다. 약은 아플 때만 일시적으로 먹지만, 곡식은 매일 먹기 때문에 효능이 조금만 달라도 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땀이 자주 나고 기운이 없다면 찹쌀밥을 먹어야 한다. 더운 여름에 몸의 습기를 빼고 체중을 줄이려면 안남미를 먹어야 하고, 콩국물이나 미숫가루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모든 만물은 각각의 효능을 지니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체질이나 병증에 적합한 음식을 늘 먹어 보양하는 것이 좋다.
먼저 쌀에 대해 알아보자. 쌀에는 안남미와 우리 쌀이 있다. 안남미로 밥을 지으면 푸석푸석하고 찰기가 없는데, 이런 음식을 먹으면 우리 몸도 영향을 받는다. 즉 살을 빼주고 날씬하게 해준다. 그래서 안남미는 열대지방이나 우리나라의 여름처럼 습열이 많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이 먹으면 좋다.
우리 쌀은 밥을 하면 찰기가 있고 찧으면 떡이 된다. 그래서 우리 몸도 찰지게 해준다. 즉 적당하게 살이 붙게 하고 추위를 이기도록 해준다. 추위를 더 강하게 이겨내려면 떡으로 만들어 먹는 것이 좋다. 그래서 가을송편, 겨울새알 등 추운 계절에 먹는 음식이 떡이다. 여름에는 떡을 먹지 않는다. 찹쌀은 찰기가 더 많아서 소화가 잘되고 기운을 보충해준다. 사상의학에서도 찹쌀은 소음인 음식으로 소개하는데, 허약해서 땀이 나거나 자주 설사하는 사람에게 좋다. 또 임신 중 산모가 허약해서 유산 위험이 있을 때도 찹쌀을 먹으면 좋다. 산후 젖 분비에도 좋다. 찹쌀은 살찐 사람이나 얼굴이 붉은 사람에게는 맞지 않고, 마르고 몸이 차며 소화력이 약한 사람에게 적합하다.
쌀은 백미로 먹을 때와 현미로 먹을 때 차이가 있다. 백미와 현미는 도정을 어느 정도 했느냐의 차이다. 즉 속껍질을 남겼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데, 속껍질은 위장관과 혈관, 피부를 청소해 깨끗하게 해준다. 일을 많이 하고 자주 굶주리던 시절에는 영양 공급이 가장 중요했기에 백미를 먹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몸은 많이 쓰지 않으면서 너무 많은 것을 먹고 있다. 이럴 때 몸 내부 특히 위장관과 혈관이 더러워져 청소가 중요한데, 현미의 속껍질과 씨눈이 이 역할을 해준다. 아토피와 당뇨 등에 현미가 좋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물론 현미를 먹을 때는 환자의 체질과 위장 능력을 살펴봐야 한다. 소화가 안 되는데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다.
좁쌀은 매우 작고 둥근 쌀이다. 허약하거나 허열이 있을 때,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 허열을 내려준다. 몸이 약해지면서 진땀이나 구토, 설사가 잦은 사람에게 좋다.
‘동의보감’에서는 오곡 중 보리가 가장 따뜻하다고 했다. 그래서 보리밥을 먹으면 위장관이 잘 움직이면서 방귀가 나온다. 가스가 잘 차거나 대변이 무르거나 설사를 할 때, 그리고 소변이 시원치 않은 사람에게 좋다. 몸을 데워주므로 겨울철에 먹는 것이 더 좋다. 그런데 껍질째 볶아서 먹는 보리차는 성질이 차다. 맥주가 차갑듯이 말이다.
귀리는 2002년 ‘타임’ 지가 선정한 10대 슈퍼푸드 중 하나다. 귀리는 고단백, 저당(低糖) 식품이라 당뇨병 환자에게 알맞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동맥경화, 고혈압에 좋으며 땀이 자주 나거나 변비가 심할 때 좋다. 또 산모의 젖 분비를 촉진하고, 소아 발육부진과 허약증에 좋다. 그러나 과하게 섭취하면 위경련과 더부룩함을 유발한다. 많이 먹으면 대변을 자주 보게 하고, 분만 촉진 효과가 있으므로 산모는 주의해야 한다.
요즘은 메밀을 섞어 먹기도 하는데, 메밀도 혈관과 위장관을 청소해준다. 열이 많고 잘 먹는 사람이 몸에 여드름이나 종기 같은 피부병이 생기거나 당뇨, 고혈압, 동맥경화 등의 혈액 관련 질환이 있는 경우에 좋다. 겨울에 땀을 배출하지 못하고 기름진 음식만 먹어 피가 탁해졌을 때는 메밀이 좋다. 단, 몸이 차갑고 소화력이 약한 사람은 섭취를 주의해야 한다.
홍국(紅麴, red yeast rice)쌀은 일반 쌀을 쪄서 홍국균(紅麴菌)으로 발효시켜 만든 붉은 쌀이다. 북경오리의 겉이 빨간 것은 홍국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홍국은 발효시킨 쌀이어서 소화가 잘되도록 도와주고 혈중 콜레스테롤도 낮춰주고 고지혈증에도 효과적이다. 한의학에서는 어혈 제거에 좋은 홍국쌀을 활용해, 교통사고 등 상처를 입었을 때 회복을 돕는다. 혈압과 혈당, 갱년기 증후군과 골다공증에도 효과적이다.
율무는 소변을 잘 나가게 해서 몸의 습기와 부종을 없애준다. 그래서 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이 율무를 자주 먹는다. 다리가 붓거나, 남자의 경우 낭습이 차거나, 아침에 일어나면 손발이 붓거나, 몸이 무거운 사람, 몸이 부으면서 설사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다리가 부으면서 쥐가 잘 나는 경우에도 좋다.
강낭콩, 완두콩, 서리태, 팥 등은 모두 콩과인데, 소변을 잘 나가게 해서 부기를 빼주는 효능이 있다. 해독하는 힘도 강해 술독을 잘 풀어주고 종기나 염증을 해결해준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이 있다.
올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한 달 넘도록 열대야와 40℃에 육박하는 무더위와 싸워야 했다. 폭염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열사병으로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매년 여름 이런 더위와 싸워야 한다면 서울 사람,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의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여름마다 이렇게 사람 지치게 하는 원인이 열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캐나다, 미국, 케냐, 호주에 가보면 기온이 40℃라 해도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다. 당연히 열대야도 없다. 습기가 없기 때문이다. 습기는 열기나 한기를 더 잘 전파한다. 한국이나 일본은 여름에 그늘에 들어가도 덥다. 추운 날도 마찬가지다. 습기 많은 계곡을 가면 햇볕 속에 있어도 뼈가 시릴 만큼 춥다.
여름철에 대관령이나 태백 같은 고산으로 피서를 가는 것은 습기가 없어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기 때문이다. 습기가 많은 물가에 살면 관절이 약해진다. 습이 몸의 순환을 막아 관절을 붓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습기는 우리 몸에 큰 영향을 미친다.
힘들 때 우리는 몸이 마치 물먹은 스펀지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기운이 순환되지 않고 정체되어 막히면 몸에 습이 쌓이기 때문이다. 습기는 바깥에서 들어오는 습이 있고, 인체 내부에서 생긴 습이 있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 이슬, 안개 등이 많으면 외부에서 습기가 들어오는데, 다리가 무겁거나 각기병이 생긴다. 이럴 때는 땀으로 습기를 배출해야 하는데, 오래된 습은 소변으로 빼줘야 한다. 날것, 습한 것, 밀가루, 유제품 등을 많이 먹거나 술을 자주 마시면 인체가 습해지는데, 속이 더부룩하고 메슥거리며 온몸이 붓는다. 이때는 대소변을 통해 습을 제거해줘야 한다.
몸속의 습기를 제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주거 환경 개선, 음식 조절이 그것이다. 몸이 무거울 때는 대관령이나 태백, 백두대간 등 고산으로 가 쉬면 좋다. 습이 낮은 환경에 있어야 몸속의 습이 빠져나간다. 높은 산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 몸이 개운한 것은 그 때문이다. 반대로 물가나 호숫가는 피해야 한다. 그러나 바닷가는 얼핏 보면 습기가 많은 것 같지만 소금기를 띤 습이라서 오히려 인체의 습을 제거해준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삼투압 때문에 몸의 수분과 습기가 빠져나간다. 그래서 장수마을이 고산과 바닷가에 많은 것이다. 습이 적어야 장수할 수 있다.
자연에서는 바람이 안개와 습기를 흩어지게 한다. 몸속에서는 향기가 바람의 역할을 하며 습을 없애준다. 술 먹은 다음 날 몸이 무거운 건 술로 인해 습이 몸속에 생겼기 때문이다. 이때는 유자, 모과 등 향이 나는 과일이나 깻잎, 배초향 등 향이 강한 채소를 먹는 것이 좋다. 칡꽃, 팥꽃, 국화로 만든 차도 좋다. 귤껍질이나 허브티를 달여 마셔도 도움이 된다. 안개의 나라 영국에서 향기 좋은 커피와 홍차가 발달한 이유에는 이런 맥락이 있다.
중국의 사천 요리는 매운맛으로 유명하다. 사천 지방은 왜 매운맛을 즐겨 먹는 것일까? 중국 속담에 “촉나라의 개는 해를 보면 짖는다”는 말이 있다. 어쩌다 해를 보게 되니 개가 이상해서 짖어댄다는 의미다. 촉나라는 사천 지방에 있던 나라인데, 이 지방은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어 해를 보기 힘들다. 당연히 습이 많고 이 습을 제거하기 위해 매운맛의 화초(花椒)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한 거라 한다. 동남아 등 습도가 높은 지방에서도 향신료를 즐겨 먹으며 습기를 극복한다. 숙취를 깨기 위해 사람들이 얼큰한 해장국을 많이 먹는 이유도 매운맛이 술로 인해 생긴 습을 제거해주기 때문이다.
덩굴 식물도 몸속의 습기를 잘 뽑아내준다. 술을 마시고 칡즙, 칡차, 수박, 키위, 방울토마토, 포도 등을 먹으면 습 배출에 효과가 있다. 식물의 넓은 잎도 습기를 제거해준다. 연잎밥이나 호박잎밥, 바나나잎밥, 쌈밥은 습기 제거, 특히 여름철 습기를 없애는 데 도움을 준다.
몸속에 습기를 쌓이게 하는 음식은 피해야 한다. 인공적인 식품은 대부분 습기를 조장한다. 미원 등 인공 조미료를 많이 넣은 음식을 먹으면 갈증이 나고 다음 날 몸이 찌뿌둥하고 소변을 봐도 시원치 않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음식, 정제 음식, 탄산음료, 튀긴 음식 등도 습을 조장한다. 또 음식이 아닌 에어컨이나 온풍기, 인공적인 빛과 소리도 몸속에 습을 조장해 몸을 무겁게 하고 머리도 띵 하게 만든다.
방 안에 숯을 갖다 두면 습 제거에 효과를 볼 수 있다. 음식은 담백한 것 위주로 먹고 먹을 때는 10번 이상 꼭꼭 씹어 먹는 것이 좋다. 음식을 너무 싱겁게 먹으면 습이 쌓이고 소변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몸이 붓는다. 적절히 죽염으로 간을 해서 먹어야 습이 제거된다. 미역국, 다시마, 퉁퉁마디 등 해조류나 염생식물의 약한 짠맛은 습 제거에 좋다. 여름에 콩국수나 우뭇가사리를 먹는 것도 같은 이치다. 붕어, 잉어, 미꾸라지, 게, 조개류 등 연못이나 갯벌에서 사는 생물들도 습 제거에 도움을 준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
처음에는 귀촌 목적이 아니었다. 꽃향기, 흙냄새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텃밭 하나 장만할 생각이었다. 부부는 사랑에 빠지듯 덜컥 첫눈에 반해버린 땅과 마주했다. 부부는 신이 나서 매일 밤낮없이 찾아가 땅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응답이라도 하듯 땅은 씨앗을 감싸 안았고, 뿌리 깊은 나무는 온몸으로 품었다. 텃밭은 꽤 큰 대지가 됐고, 이후 정자와 살 만한 집도 마련됐다. 나무와 숲을 가꾸는 것이 평생 직업이던 조연환 前 산림청장의 귀촌 인생은 그렇게 준비됐다.
13년 차 귀촌인 조연환 전 산림청장 이야기
충남 금산군 조연환 전 산림청장의 귀촌 하우스에는 점심시간이 다 되어 도착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와 압력밥솥으로 갓 지은 밥 냄새가 진동했다. 이른 아침 서울을 출발해 살짝 출출했던 탓에 당장 밥상 앞에 앉아 한 숟가락 뜨고 싶었다. 밥상 위는 말 그대로 시골밥상. 비름나물 무침, 엄나무 장아찌. 깻잎볶음, 호박 무침, 김치, 전날에 담갔다는 오이소박이, 굴비 구이가 상 한가득이었다. 완두콩을 넣어 지은 밥과 반찬으로 식사를 뚝딱 끝내고 숭늉을 마신 뒤, 조 전 청장이 손수 탄 봉지커피까지 들이키면 점심코스가 마무리된다. 녹우정(조 전 청장 집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정자 이름. 나무와 숲을 가꾸는 사람들의 우정이 깃든 정자라는 뜻이다) 정식이라 불러도 될 만했다. 식사를 마치고 날씨가 좋을 때 사진 찍기를 부부에게 권했다. 귀촌생활에 있어 텃밭은 기본 아닌가. 텃밭이라기에 따라 내려간 곳은 그냥 큰 밭이었다. 고구마, 팥, 깻잎 없는 거 없이 다 있었다. 이 큰 밭의 고랑을 만들고 구획을 나눠 정리 정돈하는 일은 이 집 머슴인 조 전 청장의 몫이다. 총 관리감독은 마님인 정점순 여사가 한다. 텃밭이 아니라 농번기 농사꾼 부부를 제대로 만난 느낌이었다.
귀촌 13년 차란 말에는 조연환 전 산림청장이 자리에서 물러난 지 13년 됐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금산에 땅을 장만하고 귀촌을 준비한 것은 18년 전이다. 산림청이 발족된 1967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최말단 9급 산림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조 전 청장. 2004년 제25대 산림청장으로 취임해 파란만장한 1년 6개월을 보내고 2006년 자리에서 물러나 귀촌했다. 산림청장직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농협경제연구소장과 생명의숲국민운동 상임공동대표, 천리포수목원장 등을 잇달아 역임하며 산림 전문가로서 끊임없이 일해왔다. 2011년부터는 한국산림아카데미 이사장을 맡아 귀·산촌 희망자에게 실직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모색하며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퇴임을 언제 했나 싶을 정도로 늘 바쁜 현역 산림 운동가가 바로 조 전 청장이다.
“처음에 이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과연 사람들이 관심이나 있을까 싶었는데 90명 정원에 120명이 몰렸습니다. 프로그램을 10기까지 진행했는데 졸업생을 980명이나 배출했습니다. 500명은 임업인이고 나머지는 아카데미에 와서 산을 알게 된 사람들이죠. 정확하게 통계를 낸 건 아니지만 제가 알기로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귀촌했습니다. 굉장히 성공한 것이죠.”
올해 6월 출간한 ‘산림청장의 귀촌일기’도 조 전 청장의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의 요구에 부합해 서두르게 됐다. 책에는 조 전 청장이 SNS에 꼼꼼하게 적어 올렸던 개인 경험과 함께 똑똑한 귀촌 설계, 귀·산촌 사례자 이야기 등을 실었다. 책을 내야겠다고 결심한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바로 아내의 건강 때문이었다.
“아내 나이가 칠십이 넘으면서 무릎이 점점 안 좋아졌어요. 더 이상 농사 못 짓고 서울로 가면 책을 못 낼 것 같더라고요.(웃음) 우리가 이곳에서 행복하게 사는 동안 책이 나오면 좋잖아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세 산림청 공무원이었던 조 전 정창은 어리다고 무시당할까봐 나이를 두 살 높여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때 하숙집 아주머니가 괜찮은 동갑내기(?) 처자가 있다면서 소개시켜준 이가 바로 정점순 여사다. 첫눈에 반해 연애하다 1년 반 만에 결혼한 당시에는 보기 드문 연상 연하 커플이다.
“지금도 병원에 가면 일하지 말라고 의사가 말합니다. 이 사람을 살살 꾀어 2년 전인가 여길 팔자고 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이 사람한테 우울증 올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다, 밭일 못한다고 포기할 때까지 그냥 살려고 합니다.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밖에서는 조 전 청장이 산림 전문가로 알려졌지만 알고 보면 정점순 여사도 고수 중에 고수다. 조 전 청장이 천리포수목원장을 할 때 숲해설가로 활약할 만큼 식물 생태에 관심이 많다. 남들 못 키워내는 나무며 화초며 정 여사 손에 들어오면 죽어가던 것들도 되살아났다. 너른 텃밭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다 보니 고왔던 손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시간만 나면 밭에 앉아 풀 뽑고, 복숭아 봉지를 싸고 식물을 바라보고 보살피는 게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다. 조 전 청장이 말단 공무원에서 산림청장이 되기까지 정 여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내조가 한몫했다는 것을 주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농촌에 은퇴자 네트워크를 만들어주십시오
“제가 강조하는 것은 귀농이 아닙니다. 귀산이나 귀농은 아카데미 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돈이 조금 생기면 좋고, 그게 아니더라도 시골이 좋다고 하시는 분은 대환영입니다.”
현재 운영 중인 한국산림아카데미 최고경영자과정을 듣기 위해 모이는 대부분이 도시에서 성공한 시니어 혹은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조 전 청장은 산에 관심을 갖고 터를 잡고 들어가 길을 내고 가꾸기에 관심을 갖는 인구가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을 가꾸면서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야 합니다. 상추 심어봤더니 또 싹이 나고 그거 뜯어서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 나눠도 줘보고 말이죠. 골프장 가는 거보다 훨씬 재밌다며 골프 끊은 분도 주위에 있습니다. 산을 알아가는 삶이 생긴 것이죠.”
조 전 청장이 정말 퇴임한 산림청장이 맞나 싶을 정도다. 여전히 사회 전반에서 이뤄지는 일에 관여를 하며 쉬지 않고 귀·산촌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 ‘산림청장’이라는 문구를 치면 유독 조 전 청장의 행보가 눈에 띈다. 1년 6개월 짧고 굵었던 임기와 퇴임 후 여섯 번 바뀐 산림청장 자리이지만 여전히 조 전 청장이 회자된다. 그는 끝까지 힘을 다해 뛰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대통령이 나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퇴직한 사람들이 시골에 내려가서 농촌의 인적 네트워크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2005년 8월 21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 부부와 조연환 전 산림청장 부부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청와대 입성 이후 딱히 산책할 곳이 없었던 노 전 대통령이 산길 정비가 되지 않은 북악산을 자주 오르내렸다. 이후 산림청에 기별이 와서 청와대 뒤 숲을 가꾸고 꽃을 심었다고. 그것이 고마워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부른 것이다.
“‘청장님이 이렇게 잘해주셔서 제가 뒷산을 잘 다니고 있습니다’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말씀하시길, ‘다음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도, 그다음에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도 농촌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손자들에게 내가 멱 감고 고기 잡고 놀던 시냇물을 복원해주고 싶다, 나는 퇴임하면 시골로 내려가겠다’며 계속 그 말씀을 하셨어요.”
도시에는 사람이 넘쳐나는데 농촌에 사람이 없으니 도시에서 성공한 은퇴자들이 자리를 잡고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만 있다면 꽤 괜찮은 미래 그림이 될 것이라고 노무현 대통령은 말했다. 그리고 퇴임 후 시골로 내려가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은 고향인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조 전 청장에게 길고 긴 시간을 들여 했던 말들을 이행하고자 대통령 스스로 부단한 노력을 했다.
“책에도 썼지만 대통령이 나한테 지시를 한 거잖아요. 내가 시골에 내려와 살아야 하는 이유, 가장 큰 명분, 내가 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어 귀촌을 택했던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께서는 ‘대통령’을 역임하시고도 봉하마을에 내려가 주민들과 밤새 토론하고 행정 관계자를 설득해가며 마을을 가꾸셨는데, 저는 산림청장을 했다고 해서 귀촌해 편하게 살고 있는 거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노 전 대통령을 함께 만나러 갔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퇴임 후 부여로 내려가 휴휴정이라 이름 붙인 집을 지었다. 조 전 청장이 금산에 갈 때 같이 입주했을지도 모를 좋은 친구 중 하나가 유홍준 전 청장이다. 하지만 각자 맡은 바 소임이 달라 한 명은 산이 가까운 금산에, 한 명은 역사가 가까운 부여에 둥지를 틀었다.
“유 전 청장도 부여에 땅을 잘 마련했습니다. 저도 한 번 가봤는데 잘 꾸며놓았더라고요.”
이 두 사람은 재임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제안해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를 150년 후 문화재용으로 쓰자고 협약했다. 살면서 봤던 아름다운 협약으로 두고두고 기억돼 뜬금없지만 적어본다. 나무건 문화재건 한 세기는 지나봐야 알 수 있으니 미래 세대를 위한 든든한 보험(?)을 어른들이 들어준 것 아닌가.
공직자 퇴임 이후 정계에 입문해 지금까지 쌓아온 명망을 순식간에 까먹는 이도 있고, 좋지 않은 일에 휘말려 아름답지 않은 뒷모습을 보이는 이도 종종 보곤 했다. 푸른 산새에서 만난 조연환 전 산림청장의 의미 있는 사명과 서슴없이 들려준 많은 이야기가 귀감이 됐다. 미래를 걱정하는 한 사람의 마음에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모아 점점 더 푸르러지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현재 한국 농업·농촌에 대해, 이동필(李桐弼·63)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간단하게 ‘전환기’라고 명명했다. 자신의 고향이자 농업 현장인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농부로 일하면서 느낀 솔직한 속내였다. 그러나 그는 전환기 속에서 맡은 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고자 한다.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후 스스로 돌아보는 ‘마음공부’ 뜨락에 씨앗을 뿌리고 일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농촌경제연구원에서 장관을 거쳐 귀향한 후 농부의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서 한국 농업과 농촌이 직면하게 된 현재와 미래의 활로에 대해 물어봤다.
경상북도 의성군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마늘로 친숙한 도시다. 그리고 지난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특별하게 유명해진 지역이기도 하다. 전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컬링 종목의 스타들이 모두 의성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다. 의성은 컬링 종목의 스타들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컬링의 수도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아낌없는 지원도 이루어지고 있다.
30년 뒤면 사라질 수도 있는 도시
그러나 이처럼 사람들에게 알려진 의성의 대외 이미지와는 달리,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걱정이 많았다. 그는 인터뷰를 하던 중 서산대사의 시를 읊었다. ‘환향’이라는 제목의 시다.
삼십 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사람은 죽고 집은 부서지고
마을은 황폐화됐는데
청산은 말이 없고 봄 하늘은 지는데
어디서 두견새 우는 소리만
들리는구나
그야말로 막막하다.
“이게 내 심정이에요.”
그의 먹먹한 기분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었다. 그가 장관 퇴임 후 한 명의 농부가 되어 귀향한 의성군은 2016년 ‘중앙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30년 뒤 사라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그러한 현실을 체감하고 있었다.
“고령화, 양극화, 그리고 예전 같은 공동체가 스러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죠. 연구소나 중앙부처에 있을 때는 망원경으로 세상을 봤지만 현장에서는 현미경 보듯 보이지요.”
장관, 농부가 되다
이 전 장관은 뼛속까지 농업인이다. 그의 경력을 보면 바로 드러나는 사실이다. 농촌지도자였던 아버지를 둔 그는 영남대학교 축산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와 미국 미주리주립대학교에서 농업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30여 년 넘게 근무하면서 농촌의 현실과 문제를 연구하고 대안을 내놓는 일을 했으며 2013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입각해 역대 최장수인 3년 6개월의 시간을 지냈다. 그리고 2016년 9월 5일 퇴임한 다음 날 고향으로 돌아와 2500평(8264㎡)의 땅을 관리하는 농부가 되었다.
“요즘은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동물들 밥 먹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해요. 온몸이 타박상과 상처투성이예요.(웃음) 며칠 전에는 경운기 사고가 나서 갈비뼈가 부러졌어요. 도처에 해야 할 일이죠. 옛날 방식으로 농사를 하면 힘만 들고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귀향할 때 나름 세운 ‘일이삼사 원칙’이 있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하루 두어 차례 텃밭을 돌보고, 삼시 세끼 어머니와 밥을 먹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말동무가 된다’는 것이었다. 3년간 보리·콩·팥·참깨·마늘·양파·옥수수 등 온갖 농사를 다 지어봤다.
그 과정에서 사모님은 반대 안 했느냐고 묻자 퇴직한 그날 밤에 어찌 내려가느냐며 딱 하루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로는 함께 고생하면서 도와주고 있다 한다.
“가끔 외롭고 답답할 때가 있는데 아내가 그걸 풀어줘요. 신세를 많이 지고 있죠.”
남는 농산물을 판매하는 수고로움은 모두 아내 이정숙 여사가 맡아서 하고 있다. 노모를 돌보고 남편 수발하고 농사일까지 거들며 집안 곳곳을 돌보는 1인 다역을 하고 있는 만큼 이 전 장관은 이런 아내를 인생 최고의 반려자라고 손꼽았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먼저 오래된 집을 손보면서 마당에 5평(16.5㎡)짜리 사랑채를 지어 사원재(思源齋)라 이름 붙였다. 농사일하며 이곳에서 책을 읽고 손님을 맞는다. 사원재라는 말은 조상과 부모, 그간 살아오며 도움을 줬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의리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또 40년이 다 된 부친의 생가 마당 한가운데에 작은 정자를 세우고 애일당(愛日堂)이라 이름 지었다. 노모가 황반변성 때문에 눈이 불편하신데 남은 날 하루하루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뜻을 새겨 넣었다. 이 또한 안빈낙도(安貧樂道)가 아니겠는지.
‘故鄕創生’에 몰두하다
하지만 눈앞의 일을 두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종일 흙에 파묻혀 있다 들어오면 너무나 피곤해 바로 쓰러져 자는 현실. 그는 자신의 현재를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농가에 비유했다.
“이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게 세상 근본 이치란 주장을 했어요. 그런 주장을 갖고 등나라를 갔죠. 그 나라 임금이 너희들의 주장은 뭐냐 물어보니 첫째는 근면 검소해야 한다, 둘째로는 왕과 왕비도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대답했어요. 왕이 그 말을 듣고는 첫 번째는 공감할 수 있는데 두 번째는 못하겠다며 거절했죠.(웃음) 이 사람들은 농업인들과 함께 일만 열심히 하다 보니 자기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했어요. 당시 유가들은, 실천보다 말로 사는 사람들이니까 자신들의 주장을 다 책으로 만들었죠. 나도 이렇게 농사일만 하다가는 정작 농촌의 살길에 대해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마는 게 아닌가 걱정돼요.(웃음) 이제 좀 바꿔야겠어요.”
그렇다고 그가 다시 정치의 세계로 돌아올 것이라는 얘기인가 하면, 전혀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 때도 얘기들이 있었지만 그는 손사래를 쳤다.
“밖에 나가면 말이 많아 거의 두문불출하고 있어요. 무슨 운동을 하거나 당을 같이 해보자며 찾아오는 이도 있지만, 차나 한잔 먹고 가라며 돌려보내요. 한 눈 팔지 않고 텃밭 일구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평생의 과업인 희망찬 농업, 활기찬 농촌을 만드는 생각을 하기에도 바쁩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집에는 신문도 TV도 없었고 라디오 하나만 틀어놓고 있었다. 외부 활동이라면 가끔씩 강의를 나가는 정도다. 요즘 그의 주된 관심사는 ‘지방소멸과 고향창생’, ‘청년창업과 귀농귀촌’ 그리고 ‘농협의 역할’ 등이다. ‘늙고 지친 고향을 어떻게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화두와 관련한 고민거리인 것이다.
극장 하나 없는 곳, 젊은이들에게 와서 살라 말할 수 있나
“지역발전이라 하면 흔히 돈 버는 얘기만 하는데, 그에 못지 않게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너그러운 마음과 역량을 갖춘 인재양성, 그리고 생활환경 및 복지 서비스의 질적 개선도 중요하다고 봐요. 의성만 해도 극장 하나 없어요. 그런데 말로만 여기 와서 살라고 권유할 순 없죠.”
사실 농업·농촌 발전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많은 예산과 인력을 동원해 노력을 하고 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전 장관은 지역활성화를 위해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정부는 지방 분권과 지원체제 정비를 하고 지방에 도전할 기회를 준 후에 결과에 책임지도록 해야 해요. 지역의 특성과 농가를 유형별로 구분하여 맞춤형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거든요. 또한 조건불리지역 직불제도를 개선하여 개발 여건이 불리한 지역에 대해 지원을 차등화할 필요가 있어요.”
그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의 조속한 시행과 함께 고향기부금제를 도입할 것을 적극 주문했다.
“무역이득공유제의 대안으로 매년 1000억 원씩 10년간 모으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는데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어요. 당시 한중 FTA 협약 비준을 전제로 여야가 합의한 약속입니다.”
아울러 지방의 역할을 강화하고 주민과 민간 부문의 참여를 촉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농촌에 젊은 사람들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스마트팜이나 공동경영체 등을 통해 고부가가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고 가공, 유통, 체험관광 등과 결합한 6차산업으로 매력적인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농교류를 하고 귀농·귀촌을 통해 외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책임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역 스스로 자기들의 문제와 가능성, 부존자원을 기초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농가 유형별 육성정책 완성해야
이는 그가 장관 시절에 핵심적으로 추진한 과제 중에서 못 다 이룬 숙원과도 관계가 깊다.
“농정의 새 틀을 짜고 싶었어요. 농업·농촌을 둘러 싼 대내외 여건이 다 바뀌어버린 지금은 그 변화에 걸맞게 정책 프레임도 달라져야 한다고 봤죠. 그중 하나가 농업경영체를 등록하고 이에 기초하여 농가 유형별 육성정책을 추진하는 일이었어요.”
그는 경영주가 65세 미만이면서 소득이 연 5000만 원 이상인 농가는 규모 있는 농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장기저리 융자와 컨설팅, 경영안정대책 등 맞춤형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계자가 없는 영세고령농가는 농업 경영에서 은퇴를 유도하여 사회안전망으로 커버하고, 나머지 중간 규모 농가는 가공, 유통, 관광 등을 결합한 6차산업화를 통해 추가적인 소득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농가를 한데 묶어놓고 획일적인 정책을 추진하니 돈은 돈대로 쓰고 손에 잡히는 효과를 못 볼 수밖에요. 이웃인 성주는 참외 하나만 갖고도 잘살아요. 참외 주산지로서 품목이 특화되어 전후방 관련 산업이 발달하고 6차산업으로 수급까지 안정되니 가능한 거죠. 이처럼 지역 및 농가 유형별 육성정책을 완성해야 했는데, 끝장을 못 보고 나온 게 아쉬워요.”
지역의 농업·농촌 관련 사업이 중앙정부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천편일률적으로 획일화해 특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도 같은 문제다. 농촌 중심 활성화 사업을 보면 지역 여건이나 부존자원에 대한 고려없이 주민 의사나 참여도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건물이나 지어놓고 활용을 못해 심지어 전기세도 안 나온다는 얘기를 듣는다는 것이다.
“지역이라는 공간 정책 위에 산업 정책을, 그 위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복지정책이 이루어져야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제각기 따로 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사후관리는 안 되고 지자체는 책임 안 지려 하고…. 지역이 정책을 좀 더 주도하고 책임지도록 추진체계를 보강해야 해요.”
어쩌면 농협이 대안이 될 수도
그는 1·2·3차산업을 융복합해 농가에 높은 부가가치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6차산업을 주창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시아 몬순기후대의 영세소농이란 구조적 특징 때문이다. 여름에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에 논농사에 특화하다 보니 계절별 유휴인력이 발생하게 되고, 유휴노동력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농외소득원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농업생산이란 1차산업과 가공이란 2차산업, 그리고 유통 및 관광서비스 등의 3차산업을 결합한 6차산업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렇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간단치 않았다. 그는 지난해 수확한 팥 서 말과 양파 100kg을 팔 곳이 없었던 것이다. “콩 750kg은 다행히 인근 농협에 판매하였으나 시중보다 낮은 가격으로 넘겼어요. 오죽하면 농민들이 농협에 바라는 소망이 수확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아달라는 것이겠어요. 농사짓는 것도 힘들지만 판매하는 것은 더 어렵습디다.”
정부는 농협 개혁을 통해 경제사업을 활성화하려고 애쓰고 있으나 아직도 체감하는 성과는 얻지 못하고, 대부분의 사업장들도 적자 신세를 면치 못하는 실정이다. 더구나 농업인의 고령화로 준조합원 수가 늘어나면서 신용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농협 회원 중 농사를 짓지 않는 준조합원이 정조합원보다 30% 정도 많고, 농협 계통 매장의 농산물 책임판매율이 50%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농협이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2014년부터 개혁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농협은 정조합원이 준조합원보다 훨씬 더 많은데도 농산물 책임판매율은 25%에 불과해 농민들로부터 돈장사만 한다고 비판받는 거예요.”
그는 오랜 연구생활과 장관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감 없이 농협 유통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고령화로 인한 지방소멸 시대에 있어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농협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했다.
“농협이 지역 단위의 6차산업을 주도해야 한다고 봐요. 경제사업의 수지개선을 위해서는 경영 능력을 향상하고 규모화, 전문화해야 합니다. 인근 지역과 품목을 생산하는 농협과의 통합 또는 사업을 연계하거나 연합사업단을 운영할 수도 있겠지요.”
어째서 농협일까? 그는 지금처럼 개별 농가가 따로따로 로컬푸드니 직거래니 하는 식으로 장사를 하면 비용절감을 고사하고 소비자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표준화, 규격화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개별 농가가 하기 힘든 그 작업을 농협이 해줬으면 하는 의견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농협은 농기계를 구비하고 영세농들의 영농을 대행할 수도 있습니다. 농촌지역의 교육, 의료, 복지 등 서비스 전달 체계로서 농협의 새로운 역할도 생각해볼 수 있겠죠. 그것이 농협이 살길이에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농협이 대체 뭐하는 곳이냐는 정체성 논란이 심화될 겁니다. 농협이 당면한 현안을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도록 스스로 혁신하고 노력해야 해요.”
귀농·귀촌, 국가 정책으로 시행해야
이 전 장관은 요즘 세상이 시끄럽다는데 다 잊고 산다고 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씨 뿌리고 가꾸는 즐거움이 여간 아니라고 한다. 농업과 농촌에서 미래의 꿈을 키우는 젊은이들은 물론 은퇴 후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려는 사람들에게도 보람을 느끼는 새로운 삶이 가능함을 농촌이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지역의 균형발전은 물론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귀농·귀촌 정책은 어느 한 부처가 아니라 여러 부처가 협력해 국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농촌은 흡사 요양병원과 비슷해요. 우리 집 왼쪽으로 있는 집 세 채는 빈집이고, 오른쪽의 두 채는 독거노인이 살고 있어요. 소멸위험 지역에서 벗어나는 길은 외지 인구를 유입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이사비 몇 푼 보태주는 게 자랑이 아니라 이주자들이 필요한 것을 도와줘야죠. 여기서 태어나 20여 년 살았고, 지금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저도 적응이 쉽지 않은데 낯설고 물선 객지로 이사와서 얼마나 답답한 게 많겠어요? 지역을 찾아 온 외지인을 축복으로 여기고 따스하게 배려하는 너그러운 이웃이 있어야 이곳에 눌러 살고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답니다.”
그는 귀농·귀촌 통계확립과 관련 정책의 정비, 농촌지역에 대해 1가구 2주택에 추가적인 감세를 포함한 제도정비등과 함께 주민들의 귀농·귀촌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청복(淸福)을 위해 노력할 때
오로지 고향의 발전과 활기찬 농촌을 위한 생각에 둘러싸인 그에게서 못다한 책임감과 꺼지지 않은 열정이 보였다. 해야 할 일과 책임이 없다면 그렇게 힘들게 생활할 리가 없다. 그에게 견딤의 비법을 물었더니 정약용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산 정약용은 복을 열복(熱福)과 청복(淸福)으로 나눴어요. 열복은 출세해 권세를 누리는 것이고, 청복은 청빈한 삶을 통해 욕심과 번뇌를 지움으로써 얻는 복이죠. 다산은 열복보다는 청복을 얻기가 훨씬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제 인생을 돌아보면, 이미 열복은 과분하게 누린 셈이죠. 이제 마음을 내려놓고 이웃과 더불어 즐겁게 사는 복이 남았습니다.”
청복을 누려보겠다고 다짐했다는 말에서 그가 유독 마음가짐을 강조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더구나 그에게는 아직 풀어야 할 평생의 숙제, 희망찬 농업과 활기찬 농촌을 통해 국민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도전이 있다. 도전은 사람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마음의 가치를 알게 된 그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만들어내는 위대한 변화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향창생은 우리들 마음의 재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살아갈 지역의 미래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주민들의 염원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 활력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라면에 넣는 스프는 모두 맵다. 매워야 체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랜 기침엔 오미자차를 마시고 땀이 많이 날 때도 설사를 할 때도 오미자차나 매실차를 마신다. 약한 신맛이 몸의 진액이 새어나가는 것을 수렴하기 때문이다. 무리해서 허열이 날 때는 약한 짠맛이 들어간 콩국이나 죽염수를 마시면 열이 내려 땀이 덜 나고 머리가 맑아진다. 이렇듯 맛은 우리 몸에서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 한의학에서는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이나 후끈한 맛, 짠맛을 오미(5가지 맛)라 한다.
약초는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맛을 머금고 있다. 야산 뽕나무의 오디는 새콤하고 단맛이 진하지만, 재배한 뽕나무의 오디는 맹맹하다. 야산에서 자란 작은 돌배는 시큼하지만, 재배로 키운 배는 그 맛이 싱겁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퉁퉁마디, 칠면초 등 염생식물은 염도가 높은 바닷물에 수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스스로 염도를 높여 짠맛이 난다. 즉 약초의 오미는 자연에서 살아남으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맛인데, 이것이 약효로 나타난다. 한의학에서는 오미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번 호에서는 오미 중 신맛에 대해 설명하겠다. 신맛에는 강한 신맛과 약한 신맛이 있다. 강한 신맛은 막힌 것을 뚫어주고 약한 신맛은 몸의 진액이 새어나가는 것을 수렴한다. 강한 신맛은 끝 맛이 달지 않고 침도 은은하게 고이지 않는다. 그래서 식초를 예로부터 고주(苦酒)라 불렀다. 강한 신맛은 목을 마르게 하고 물을 찾게 만든다. 염산이나 황산이 옷에 떨어지면 옷이 녹아버리듯, 음식이나 약초의 강한 신맛도 강산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녹여버리고 뚫어버리는 성질을 갖는다. 음식을 먹고 체하면 보통 매실 엑기스나 산사나무 열매, 식초 등 강한 신맛이 나는 것을 먹는다. 또 연탄가스 중독으로 심장과 정신을 연결하는 통로가 막혀 의식을 잃었을 때도 식초나 신 김칫국 등 강한 신맛이 나는 음식을 먹는다. 막힌 것을 뚫어 의식을 찾게 하기 위해서다. 육류나 자장면을 먹을 때 식초가 빠지지 않는 것은 신맛으로 소화를 도우려는 것이다. 몸에 멍울이 만져질 때도 식초를 먹어서 녹인다. 고깃집 메뉴를 봐도 늘 콜라, 사이다 등 탄산음료가 있다. 역시 고기를 소화시키는 강한 신맛의 효과 때문이다.
팥은 강한 신맛이 난다. 팥에 강한 신맛이 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의학에서의 강한 신맛, 약한 신맛은 화학적인 pH와는 다른 개념이다. 강한 신맛은 pH가 낮고, 약한 신맛은 pH가 높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팥은 시큼한 맛이 강하지 않지만 강한 신맛에 해당한다. 현미식초는 강한 신맛인데, 100배 희석해도 강한 신맛이다. 현미식초를 희석하면 강한 신맛의 작용이 약해질 뿐, 절대 약한 신맛으로 변하지 않는다. 약한 신맛은 끝 맛이 달고 침이 은은하게 나와야 한다. 청매실은 강한 신맛이지만, 오래 묵힌 황매실은 약한 신맛이다. 먹어보면 끝 맛과 입에서 침이 나오는 정도가 다르다. 그리고 하나의 약재가 강한 신맛과 약한 신맛의 작용을 동시에 하기도 한다. 일반 식초는 강한 신맛이 대부분이지만, 약한 신맛이 나는 것도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침이 잘 나오지 않으면 강한 신맛이고, 침이 잘 나오면 약한 신맛이다. 팥은 강한 신맛이 난다. 그래서 붕어빵, 찹쌀떡, 호빵 등에 들어간 팥은 밀가루를 먹고 체하는 것을 방지해준다.
강한 신맛이 나는 음식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뼈와 이가 녹아버릴 수도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보약을 먹을 때 식초를 먹지 말라 조언한다. 청매실, 산사나무 열매, 모과, 석류 등 강한 신맛이 나는 과일을 많이 먹으면 뼈와 이가 손상될 수 있다고 주의를 주고 있다. 식초, 탄산음료 등을 많이 마시면 뼈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강한 신맛이 나는 음식은 대부분 발효시켜 먹는다. 풋과일(매실·살구·석류 등)이나 식초는 강한 신맛이 난다. 그러나 발효시키거나 오래 묵히면 강한 신맛의 부작용이 약해져 약한 신맛으로 변하기도 한다.
약한 신맛은 끝 맛이 달고 입에 침이 고인다. 오미자, 산수유, 유자차, 괭이밥, 흑초를 먹으면 약간 시큼한 맛에 몸이 움츠러들면서 피부 구멍이 닫힌다. 전신 피부가 긴장하면서 힘이 들어가고 심하면 닭살이 돋기도 한다. 약한 신맛 때문이다. 약한 신맛은 기침, 땀, 설사, 단백뇨, 냉 등 몸의 진액이 밖으로 새어나오는 것을 막아준다. 기운이 떨어져 설사를 하거나 땀이 많이 나면 오미자차나 황매실차, 괭이밥 등을 먹어주면 좋다.
기침에 오미자와 배를 쓰는 것은 약한 신맛으로 기침이 나오는 것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춘곤증에 괭이밥, 돌나물 등 새콤한 봄나물을 먹는 것은 기운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다. 여름에 더위를 먹어 땀을 너무 많이 흘릴 때는 약간 시큼한 과일(오미자, 복숭아, 포도, 묽은 매실)을 먹고 땀과 기운을 수렴한다. 남자에게 좋다고 알려진 산수유도 약간 시큼한 맛인데 정액이 새나가지 않도록 수렴한다. 전통 식초는 대부분 강한 신맛이지만, 발사믹식초나 흑초, 홍초는 끝 맛이 단 약한 신맛이다. 그래서 이런 식초가 장수에 좋다고 한다. 같은 식초라도 오래 묵히면 끝 맛이 달달해진다. ‘동의보감’에는 “약에 넣을 때는 2~3년 묵은 쌀 식초가 좋은데, 이는 곡기가 완전하기 때문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한의학에서는 허실 개념이 중요하다. 약한 신맛은 허약한 사람, 허약한 질병에 맞다. 기운이 너무 좋거나 몸 여기저기가 잘 뭉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 더 뭉치게 하기 때문이다. 기침에 좋다는 오미자도 감기 초기에는 좋지 않다. 기침으로 나가야 할 나쁜 것들마저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기운이 너무 좋거나 잘 뭉치는 사람은 강한 신맛이 나는 음식이 좋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
한약을 먹을 때 밀가루 음식을 주의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왜 밀가루 음식을 주의해야 할까? 밀가루 음식은 정말 안 좋은 것일까? 밀가루는 ‘찰지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밀가루 음식의 부작용을 말할 때 글루텐을 자주 언급한다. 그런데 밀가루에는 글루텐이 없고, 반죽해서 면이나 빵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보리를 이용해 보리빵을 만들고, 밀가루를 이용해 빵·국수·만두·라면을 만들며, 쌀을 이용해 떡을 만든다. 이들의 공통점은 찰지다는 데 있다. 찰지지 않으면 면·떡·빵을 만들 수 없다.
찰진 성질은 피부와 위장을 두텁게 하는 효능이 있다. ‘동의보감’에는 “기름진 것을 먹으면 피부가 촘촘하고 두꺼워져 양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따라서 기름진 음식은 속에 열이 생기게 한다”라고 씌어 있다. 이때 기름진 음식은 고기뿐만 아니라 찰진 식재료까지도 포함한다.
이스트 속성 발효, ‘더부룩’의 원인
찰진 음식은 인체의 내부 껍질인 위장 점막을 두텁게 해서 소화기를 튼튼하게 한다. 또 피부와 땀구멍을 틀어막아 땀을 덜 나게 하고 인체 내부를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면·떡·빵은 추운 지역이나 겨울철에 적합한 음식이다.
찰진 음식이 피부를 두껍게 하고 몸에 열을 발생시키면 풍선이 부풀듯 덩치도 커진다. 위도가 높은 곳에서 사는 유럽인들은 찰진 음식인 빵을 많이 먹는데 피부가 두텁고 단단하다. 중국의 북부 지역 사람들과 겨울이 몹시 추운 몽골 사람들 역시 밀가루로 만든 면·빵·만두를 많이 먹는다. 밀보다 찰기가 떨어지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 일본 사람들은 이들에 비해 피부가 얇다. 푸석푸석한 안남미(安南米)를 주식으로 하는 동남아 사람들은 피부가 더 얇다.
찹쌀·찰기장·밀·보리·메밀 등은 추운 북쪽 지방에서 잘 자란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필요한 음식은 그 지역에서 잘 자라는 법, 그야말로 신토불이다. “메밀묵 사려, 찹쌀떡!” 하는 소리가 겨울철에만 들리는 것은 찰진 음식이 겨울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음식을 살펴봐도 떡은 주로 가을과 겨울에 먹는다. 가을 송편, 동지팥죽에 들어간 새알, 설날의 떡국, 두텁떡 등. 그리고 만두와 붕어빵까지 모두 추운 날 자주 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밀가루로 만들어진 음식이 몸에 좋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밀가루가 위장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밀가루 음식을 잘못 먹으면 쉽게 체한다. 특히 이스트로 속성 발효시킨 빵이나 기계식 반죽을 한 면을 먹으면 위가 더부룩하다. 햄버거를 먹으면서 탄산음료를 같이 마시는 것은 이 때문이다. 탄산음료가 소화를 도와 체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다. 배탈이 났을 때 면·떡·빵을 피하라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동의보감’에는 “살찐 사람에게 중풍이 많다. 살이 찌면 피부가 치밀해져 기혈이 막힐 때가 많아서 갑자기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찰진 음식이 피부를 너무 틀어막으면 열이 빠져나가지 못해 중풍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면·떡·빵의 재료가 되는 찰진 곡식들에는 모두 중풍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다.
적당한 신맛은 소화에 도움
아토피는 피부가 호흡을 못하고 두꺼워지는 질환이다. 그런데 찰진 음식을 먹으면 피부가 더 두꺼워져 증상이 악화된다. 아토피 환자가 밀가루 음식을 피해야 하는 이유다. 감기나 열병을 앓을 때 밀가루 음식을 금하는 것도 피부를 틀어막아 체온을 더 올리기 때문이다. 술 먹고 나서 국수를 피하라는 이유도 똑같다. 술독을 땀이나 소변으로 빼야 하는데 국수가 피부를 틀어막아버리니 술독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면·떡·빵은 피하기 힘든 음식이다. 부작용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 소화력이 좋은 아이들은 자장면을 좋아하고 소화도 잘 시키지만, 소화 기능이 떨어진 노인들은 자장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밀가루 음식을 먹고 체하는 것을 막아주려면 흩어줘야 한다. 흩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강한 신맛과 매운맛이다. 중국집에 가면 테이블 위에 식초와 고춧가루가 놓여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초고추장이나 냉면에 넣는 식초와 겨자도 같은 역할을 한다.
강한 신맛은 뭉친 것을 녹여버린다. 그래서 체했을 때 매실 엑기스를 먹으면 위장이 편안해진다. 소화가 안 되는 음식, 즉 육류나 면을 먹을 때 식초로 드레싱해서 먹고 식초를 이용한 소스를 곁들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식초에 절인 단무지도 같은 역할을 한다. 팥도 강한 신맛이 있어 밀가루 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다. 떡처럼 뭉친 음식도 잘 풀어준다. 그래서 붕어빵, 찐빵, 송편, 다이야키, 팥칼국수, 동지팥죽, 찹쌀떡 등에 궁합이 잘 맞는 팥이 들어가 있다.
매운 고추를 먹으면 열이 나고 땀이 난다. 매운맛은 흩는 힘이 좋다. 중국집의 단무지는 생무다. 생무는 맵다. 같이 나오는 양파도 맵다. 밀가루로 만든 라면도 체하기 쉬운 음식이라 라면 스프가 모두 매운맛이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
2018년 개띠의 해가 열렸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구는 돌고 역사는 기록될 것이고 개개인의 삶은 흘러갈 것이다. 올 새해맞이는 따뜻한 휴양지 코타키나발루에서 ‘지치지 않는’ 여행을 하면서 쉬는 것. 낮에는 바닷가에 나가 물놀이를 하고 배가 고프면 슬렁슬렁 시장통에 나가 애플망고를 실컷 먹고 저녁에는 밤하늘을 보면서 수영을 즐기는 일. 한 해의 초문을 여는 방법으로 이보다 행복한 여정은 없다.
툰구 압둘 라만 해양공원에서 놀고 액티비티 투어도 하고
코타키나발루는 사바 주의 주도(州都)다. 사바 주는 우리 귀에 아주 익숙한 보르네오 섬의 북쪽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여행은 서두를 이유가 없다. 낮에는 툰구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 해양공원의 5개 섬을 골라 다니면서 놀면 된다. 가야(Gaya), 마누칸(Manukan), 사피(Sapi), 술룩(Sulug), 마무틱(Mamutik) 섬이다. 툰구 압둘 라만 해양공원의 이름은 말레이시아 초대 총리인 툰쿠 압둘 라만(1903~1990)의 이름에서 따왔다. 물빛이 아주 맑은 수트라 항구(Sutera Harbour)에서 배를 타고 빠르게 달려 5분도 안 돼 마무틱 섬에 이른다. 5개 섬 중에서 규모가 가장 작고 산호초로 둘러싸여 있어 일명 ‘산호섬’으로 불린다. 섬에서 노는 게 지겨운 날에는 시내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키나발루 국립공원(Kinabalu National Park)으로 가서 트레킹을 하면 된다. 골프를 하고 싶다면 탄중아루(Tanjung Aru) 리조트 내의 골프 코스를 찾으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제셀턴 포인트(Jesselton Point)에서 배를 타고 반딧불 투어, 밀림 투어 등을 해도 좋다. 제셀턴 포인트는 주변 섬으로 갈 수 있는 페리 탑승장이다. 이 도시와 인근 섬들을 연결하는 여객선이 드나든다. 수많은 현지 여행사가 있어 각종 투어와 액티비티 투어 등을 예약할 수 있다. 참고로 제셀턴은 과거 영국의 식민통치 시대에 말레이시아의 물자를 실어 나르던 항구로 1945년 오스트레일리아 군인이 내려 거주하던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끝 무렵 일본군으로부터 코타키나발루(당시 이름 제셀턴)를 탈환하기 위해 진입한 오스트레일리아 군이 야영했던 곳이라서 붙여진 지명. 기념 동판 하나만이 남아 그날을 일러준다.
필리핀 마켓 야시장에서 애플망고 실컷 사 먹기
코타키나발루 여행의 백미는 야시장 구경이다. 이 도시로 이주한 필리피노들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하나둘씩 내다 팔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시장. 오후 4시경 문을 여는 노천 야시장엔 활력이 넘친다. 상인들 거의가 무슬림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도 어렵지 않다.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에 ‘히잡’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시장에는 망고가 지천이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사 먹을 엄두를 낼 수 없는 애플망고를 보고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새우튀김도 사고 닭 날개(사테, Satay)도 사 먹는다. 한국인이 많이 오는지, 구운 닭 날개 소스에 대해 능숙하게 말한다. ‘매운 맛’이나 ‘맛있어요’라는 말은 아주 잘한다. 바나나튀김도 맛있고 작은 팬케이크는 보는 재미가 있다. 또 첸돌(Chendol)도 재미있다. 간 얼음 위에 꼬물꼬물한 연두색 첸돌과 코코넛밀크, 흑설탕을 넣어 만든 빙수다. 이와 비슷한 아이스카장(Ice Kajang)도 있다. 잘게 간 얼음 위에 야탑 열매와 옥수수, 팥, 젤리 등과 여러 가지 시럽을 넣은 빙수다. 시장 구경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질 시간. 시장통을 비껴 워터 프런트 쪽으로 걸어가면 바다 너머로 해가 진다. 지는 해의 열기는 생각보다 뜨겁다. 숙소로 피신하는 게 답. 달빛과 별을 보며 수영하면서 맛있는 애플망고와 새우튀김을 안주 삼아 지역 맥주 한잔 곁들이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행자가 된다.
전통 부족민 볼 수 있는 ‘카다잔-두슨 원주민 민속촌’
사바 지역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어 전통가옥을 재현해놓은 사바 카다잔-두슨 문화협회(Kadazans-Dusuns Cultural Association Sabah)를 찾는다. 사바 주의 용맹한 ‘카다잔’ 원주민 전사와 몬소피아드 사냥꾼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민속촌이다. 카다잔족, 두슨족, 룬구스족, 바자우족, 무루트족(Murut) 등은 이 나라 대표적인 전통 부족들. 카다잔족과 두슨족은 사바 주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으로 전체 인구의 30%나 된다. ‘키나발루’라는 이름도 카다잔족의 언어로 ‘죽은 자들의 안식처’를 뜻하는 ‘이키나발루’에서 유래되었다.
두 부족은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했다. 다른 점이라면 카다잔족은 분지에서 쌀농사를 짓고 두슨족은 구릉성 산지에서 산다는 것. 카다잔-두슨 민속촌에 이들이 살던 집과 풍습 등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이 마련되어 있다. 또 매년 5월 30~31일에는 추수 축제가 열린다. 벼를 수확한 후 한 달 정도 풍성한 축제가 벌어질 때 훨씬 볼 만하다.
도시 전망은 시그널 힐에서, 낙조 감상은 탄중아루에서
시그널 힐(Signal Hill) 전망대도 오른다. 걸어서 가기에는 가파른 길이다. 낙조를 감상하기 제일 좋은 곳이지만 낮에는 도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의 역할을 한다. 전망대에서는 코타키나발루 시내 전경과 페낭 해변을 둘러볼 수 있다. 근처 시계탑은 랜드마크로 원래 등대 역할을 담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의 융단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유일하게 피해를 입지 않은 건축물이다.
마침 일요일이라서 근처의 선데이 마켓으로 간다. 잘란 가야(Jalan Gaya)에서 열리는 선데이 마켓은 300개 이상의 노점이 생활용품, 식재료, 약초, 의류 등 다양한 품목을 판매한다. 원래는 현지인들을 위한 작은 로컬 마켓이었지만,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판매 품목도 다양해졌다. 필리핀 마켓과 달리 수제품이나 공산품이 많다. 보기 드문 제비집도 있다. 마켓은 생각보다 일찍 파장한다. 다시 가장 번화한 원보르네오(One Borneo)와 와리산 스퀘어(Warisan Square)로 이동해 마사지를 받고 천천히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낙조를 볼 수 있는 탄중아루로 간다. 탄중아루는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 이 도시의 낙조는 그리스 산토리니, 남태평양 피지와 함께 세계 3대 해넘이로 꼽힌다. 아쉽게도 바닷가에는 비가 내린다. 낙조를 보지 못하면 어떠리. 맘껏 휴식했으니 이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Travel Data
항공편 인천에서 코타키나발루까지 직항편은 대한항공이 주 2회, 아시아나와 이스타항공이 주 4회 운항하고 있다. 말레이시아항공 직항편도 있다. 매주 금요일 출발.
기후 1년 내내 덥고 습한 기후다. 평균 기온은 영상 30℃. 계절에 따른 기후변화가 없어서 여행 성수기와 비성수기가 나뉘지 않는다. 날씨는 대체로 맑은 편이지만 하루 한 번 열대지방의 소나기인 스콜이 내린다. 코타키나발루의 1월은 우리나라의 한여름 날씨와 비슷하다. 통풍이 잘되는 얇은 옷 위주로 챙기고, 한 달 평균 일주일 이상 비가 내리기 때문에 우산은 필수다. 고산인 키나발루 산과 쿤다상(Kundasang) 지역은 기온이 서늘한 편이다.
언어 공식 언어는 말레이어다. 하지만 호텔 및 관광지에서는 영어가 널리 사용된다.
통화 정보 자국 통화인 말레이시아 링깃(Ringgit)이 통용된다. 1링깃은 260원대다. 인천 공항에서 환전해서 가면 된다.
사용 전압 200~240V, 50Hz다. 우리나라와 콘센트 모양이 다르니 꼭 어댑터를 준비하자.
음식 정보 해산물이 풍부하다. 그 외 볶음밥인 나시고렝(Nasigoreng)이나 국수 등 메뉴가 다양하다. 한국인이 일부러 찾는 집으로는 ‘웰컴씨푸드’가 있다. 주문하면 수족관에 있는 해산물로 즉석요리를 해준다.
숙박 정보 휴양도시라서 고급 호텔, 리조트, 콘도, 레지던스, 아파트 등 묵을 곳이 많다. 골프를 원한다면 리조트를 선택하는 게 좋다. 한 달 정도 머물 예정이면 아파트를 추천한다. 거실 하나에 방 두 개다. 아파트 객실은 에어컨, 평면 TV를 갖추고 있으며, 일부 객실에는 냉장고 등이 완비된 간이 주방도 마련되어 있다. 1일 7만~10만 원 선이다. 수트라 항구 근처의 이마고(Imago) 쇼핑몰·콘도는 장기투숙자가 많이 이용한다. 또 KK 베케이션 아파트먼트 @ 마리나 코트 리조트 콘도미니엄을 비롯해 여럿 있다.
기타 볼거리 북보르네오 증기기차 투어나 새로 지은 시청사, 석호(潟湖, lagoon) 위에 세워진 시티 모스크, 사바 주 모스크(Sabah State Mosque)가 있다. 건물 돔은 온통 황금으로 뒤덮여 있다.
코타키나발루 여행정보 www.mtpb.co.kr
시니어 한 달 여행 포인트 코타키나발루는 관광지를 찾아다니느라 애쓸 필요 없는 곳이다. 많은 곳을 다니기 싫어하는 시니어에게 좋은 여행지다. 대부분의 숙소에는 수영장, 피트니스 센터, 마사지 숍 등이 갖춰져 있다.
인간은 누구나 노화라는 신체의 변화를 겪는다. 어떤 노화는 아주 천천히 조금씩 나타나고, 어떤 변화는 갱년기라는 이름으로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다가온다. 이런 변화 속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지는 몸이다. 땀이 많던 10년 전, 열이 많던 20년 전 몸이 아니다. 먹는 음식도 마찬가지다. 젊었을 때의 기준으로 음식이나 약재를 고르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몸을 살린다는 것이 되레 망치는 원인이 된다고 한의사들은 경고한다. 시니어들이 조심해야 할 음식과 약재를 알아보았다.
도움말 강남동약한의원 이기훈(李起熏) 원장
율무
율무는 외떡잎식물 벼목 화본과의 한해살이풀이다. 민간에서는 밥으로 해먹을 정도로 흔하게 먹는 식품이고, 말린 율무를 분말로 만들어 차로 애용하기도 한다. 또한 오랫동안 먹으면 소화기능을 돕는다고도 알려져 있다.
한의학에서는 씨껍질을 제거한 율무의 씨를 의이인(薏苡仁)이라고 하는데, 주로 몸속의 나쁜 수분을 빼는 데 사용한다. 그러나 율무는 찬 성질로 인해 배가 찬 사람은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변비가 있는 사람에게도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일부 사람들은 율무가 머리카락을 나게 하는 발모 효과가 있다고 알고 있지만, 율무는 몸속 수분을 빼내는 식품으로 장복하면 오히려 탈모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적당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 율무 역시 임신부가 복용하면 태아에게 위해를 끼치는 식품 중 하나다
결명자(決明子)
콩과 식물인 결명초의 여문 씨를 말린 것이 결명자다. 차로 우려 마시는 것이 대중화돼서, 티백(tea-bag)이나 음료수 형태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결명의 종자인 결명자는 눈을 맑게 해준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결명(決明)이라는 단어에도 눈을 밝게 해준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한의학에서도 안과 질환에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성질이 차기 때문에 설사를 자주 하거나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사람, 저혈압 환자인 경우는 복용을 금해야 한다.
특히 몸이 찬 시니어가 장복을 하게 되면, 설사를 하거나 체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질 수 있으므로 장기간의 복용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이 열이 많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갱년기를 겪으면서 몸이 차가운 체질로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시니어들은 몸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해봐야 한다.
팥
콩과에 속하는 팥은 팥죽, 팥시루떡, 팥빙수 등으로 만들어져 사람들 입을 즐겁게 하는 식품이다. 최근에는 팥을 달인 물을 다이어트 식품이라고 소개해 파는 경우도 많다. 이 다이어트법은 한 여배우가 붓기를 빼주고 포만감을 준다고 공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한의학에서는 팥을 적소두(赤小豆)라고 칭하는데, 몸속 잉여 수분을 빼내주는 효능이 있어서 부종이 있는 경우나 종기가 생겼을 때 약재로 활용한다.
그러나 체력이 약하고 설사를 많이 하는 사람은 팥의 복용을 주의하는 것이 좋다. 또한 오랜 기간 팥을 복용하면 정상적인 체액까지 빠져나가 몸이 검어지고 마를 수 있기 때문에, 체력을 증진해야 할 시니어들이 팥을 장기간 섭취하는 것은 해롭다.
우슬(牛膝)
비름과 쇠무릎의 뿌리인 우슬은 소의 무릎과 유사하게 생겼다고 해서 ‘쇠무릎’이라고 불린다. 모양만 소의 무릎과 비슷한 게 아니라 실제로 무릎 통증이 있는 경우 우슬을 사용하기도 한다. 한의학에서는 부인과의 어혈증, 즉 혈액순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피가 정체되는 증상에 자주 사용하는 약재다. 그러나 현재 출혈 증상이 있는 사람이 복용할 경우 더 악화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특히 큰 수술을 앞둔 시니어들은 아예 금하는 것이 좋다. 동맥경화 등의 질환과 관련한 약을 먹고 있는 사람은 담당 의사와 상의한 후 복용해야 한다.
임신부들은 우슬을 절대로 섭취하면 안 된다. 한의학에서 우슬과 같은 어혈에 효과가 있는 약재가 태아에게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생리량이 많은 젊은 여성이 복용할 경우에도 과도한 생리량 증가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오가피(五加皮)
두릅나무과의 오갈피나무의 껍질이 오가피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든 자주 볼 수 있는 오가피는 지난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한 업체가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전달하면서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본 약재. 이후 오가피는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몸값도 상승했다. 오가피는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시니어들이 특별히 선호하는 약재 중 하나다. 실제로 몇 년 전까지 집집마다 오가피를 복용할 정도로 유행을 탄 적도 있다.
그러나 따뜻한 성질의 오가피가 몸의 수분을 빼내고 열이 오르는 증상을 일으킨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마른 체형 또는 체액 부족으로 인해 피부가 건조한 시니어는 오가피가 그리 도움이 되는 약재가 아닐 수 있다.
승승장구, 탄탄대로 인생을 사는 이들이 있다. ‘천운을 타고났나?’, ‘사주팔자가 좋은가?’라며 그들의 성공을 진단해보기도 하지만, 뭐든 타고난 운만 가지고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성공운을 거머쥘 수 있었던 이들의 유형을 살펴봤다.
◇ 운명개척형
일본 최대 소프트웨어 유통회사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손 마사요시) 대표는 젊은 시절 자신의 운명을 미리 점쳐놓았다. ‘20대에 이름을 날린다. 30대에 최소한 1000억엔의 군자금을 마련한다. 40대에 사업에 승부를 건다. 50대에 연 1조엔 매출의 사업을 완성한다. 60대에 다음 세대에게 사업을 물려준다.’ 손정의가 20대에 세운 50년 인생계획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스스로도 자신을 천재라 여겼다고 한다. 사업 제휴를 맺는 상황에서도 “나는 천재다”라고 말했을 정도. 일찍이 그는 자신의 잠재성향과 운을 꿰뚫었고, 그 덕분에 막힘없는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스타항공 회장을 지낸 이상직 전 국회의원은 요즘말로 흙수저 출신이지만, 자신만의 ‘텐배거’ 로드맵을 만들어 금수저 반열에 올랐다. 텐배거(Ten bagger)는 10루타라는 뜻으로 야구가 아닌 금융투자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투자자에게 10배, 1000%의 수익률을 안겨주는 대박 종목을 의미하는데, 이상직은 1998년 텐배거에 도전해 2년 만에 투자원금 1300만원으로 그의 15배에 달하는 2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후 그는 텐배거 법칙을 사업뿐만 아니라 인생의 기본 원리에 적용했다. ‘10루타를 쳐라’를 좌우명으로 삼았던 그는 현대증권에서 10루타 종목을 연이어 터뜨렸고, 이스타항공의 대박 신화를 창조해냈다.
◇ 대기만성형
피카소처럼 타고난 천재성 덕분에 명성을 떨친 예술가가 많다. 그러나 근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잔의 경우는 달랐다.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법과 대학을 다녔던 그는 돌연 화가라는 꿈을 꾼다. 이후 세잔은 선천적인 재능이 아닌 고뇌와 노력의 산물로 세계적인 명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실제 피카소는 20대 중반에 그린 작품들이 60대에 그린 작품들보다 4배가량 비싸게 팔렸는데, 세잔의 그림은 60대 중반에 그린 것들이 젊은 시절 작품들보다 최대 15배의 가격에도 팔렸다고 한다. 현재 파리 오르세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최고 작품들 역시 모두 인생 말기에 그려진 것이다.
20세기 세잔이 대기만성형 예술가라면, 21세기 대기만성형 과학자를 꿈꾸는 이가 있다. 서울중앙지법원장 출신 강봉수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물리학에 관심이 많아 고등학교도 이과를 택했고, 서울대 원자력학과를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유로 서울대 법대를 지원했고, 이후 40년간 잘나가는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도 과학자의 꿈을 잃지 않았던 그는 퇴직 후 66세에 물리학 공부를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난다. 그 후 7년 만에 머시드 캘리포니아대 대학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땄다. 당시 그의 나이 73세였다. 하루 15시간씩 공부에 매진한 덕분에 이제는 ‘강봉수 물리학 박사’로 불리며 활발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 장수형
무병장수를 꿈꾸는 100세 시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도 무탈한 인생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조선시대 왕 중에서 가장 오래 산 왕은 83세까지 살았던 영조다. 영조의 장수비결은 규칙적인 식사습관과 소식(小食)이었다고 한다. 고기와 생선을 멀리하고 보리밥과 채소를 즐겨 먹었던 영조는 감선(減膳: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왕이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줄이며 근신하는 것)을 89차례나 했는데, 신하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는 감선을 넘어 단식까지 감행하며 절대권력을 유지했다고 한다. 이러한 식습관으로 영조는 장수뿐만 아니라 그에 비례하는 수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영조처럼 식습관을 잘 다스린 덕분에 장수한 역대 대통령 중에는 제4대 대통령인 윤보선이 있다. 그는 94세까지 살았는데, 평생 절주를 하며 콩·보리·팥 등이 섞인 잡곡밥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1949년 상공부장관 시절 도시락을 들고 다녔던 윤보선의 일화도 유명하다. 도시락은 부인인 공덕귀 여사가 직접 만든 샌드위치와 잡곡밥 등 검소한 식단이었다고. 이런 소박한 식습관은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계속됐고, 그의 삶을 오랫동안 건강하게 해주었다.
◇ 인(人)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남다른 인연 덕분에 승승장구하는 일생을 살았다. 그가 남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6기)에 다니던 시절, 당시 교관으로 있던 박정희 대통령은 수학 실력이 뛰어난 박태준을 눈여겨보게 된다. 성격이나 취향이 비슷했던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를 벗어나 인간적인 정을 쌓게 됐고, 서로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게 될 때도 만남을 이어간다. 이후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됐고, 같은 해 박태준은 소장 진급과 함께 군복을 벗었다. 이듬해 설날 박정희는 박태준을 청와대로 불러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관련해 박태준을 대통령 특사로 일본에 보낸다. 특사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박태준은 철강과 제철 분야에 매진했고, 강철 1000만 톤 시대를 연 주역으로 우뚝 선다. 이후 국회의원, 국무총리, 포스코 회장, 포스텍 창립자 등 수많은 직함을 얻었지만, 퇴직금 한 푼, 주식 한 주도 갖지 않았을 정도로 청렴한 철강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 별별유형
1) 독서형: 미국의 대부호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는 젊은 시절 도서관에서 읽은 책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의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도 자신의 성공의 8할은 독서에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 외에도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박원순 서울시장, 윤송이 엔씨소프트 회장,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 등도 잘 알려진 독서광이다.
2) 명상형: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과 코비 브라이언트 등은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명상의 효과를 언급했다. 포드자동차의 빌 포드 회장도 명상으로 경영위기를 극복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 메이저리그의 신화 박찬호 역시 현역 시절 슬럼프가 찾아올 때마다 명상을 통해 마음을 다스렸고 124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3. 산책형: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생각의 발로는 ‘발’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셰익스피어, 괴테, 칸트, 베토벤, 모차르트 등은 산책이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2011년 여름 49일간의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등산을 통해 인재를 모으고 집권했는데, 민주산악회가 대표적인 핵심 조직이다. 김 대통령은 매주 목요일 등산을 즐겼고, 산에 올라 기도를 했다고 한다.
✽참고 도서 , , ,
어제는 동지였다. 동지 하면 바로 팥죽이다.
예로부터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먹지 않으면 쉬이 늙고 잔병이 생기며 잡귀가 성행한다는 속신이 있어, 동지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 팥의 붉은색이 양색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팥죽을 먹는 것이 악귀를 쫓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고향에 정착을 한지도 어느덧 4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고향의 중심에는 백운산이 있고 그 산 중턱에 천년고찰 용궁사가 자리하고 있다.
용궁사에 대한 추억은 어린 시절 봄이 되면 어김없이 이곳으로 봄소풍을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올라가는 길 따라 벚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으며, 용궁사 경내가 가까워지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냄새가 매캐한 향냄새와 어우러져 황홀지경에 빠질 정도였다. 특히 소풍날이나 운동회 날이나 되어야 맛볼 수 있었던 사이다의 톡 쏘는 맛에 취해 마냥 행복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런데, 용궁사에서 동짓날 팥죽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현수막이 눈에 띄어 기회가 되면 꼭 한번 가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드디어 동짓날이 되어 어린 시절 친구에게 같이 갈 것을 권고하니 흔쾌히 동행해 주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12시에 산 아래에서 만나 쉬엄쉬엄 백운산을 오르기 시작한지 불과 20여분 만에 용궁사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아도 경내 주차장에 여러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절간 마당에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팥죽을 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아는 사람들 몇이 그 곳에서 팥죽 봉사를 하고 있다가 필자를 보고는 반색을 하며 자리를 안내해 준다. 김이 설설 오르는 팥죽 한 그릇에 동치미까지 곁들여서 차려 내왔다. 시장하던 차에 게눈 감추듯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나니 떡에 커피까지 대접을 받게 되었다. 뒤꼍으로 가니 커다란 솥에 불을 지피고 대형 주걱으로 팥물을 휘휘 저으면서 팥죽을 쑤고 있었다. 어찌 그냥 지나칠쏘냐. 대형 주걱을 받아들고 노력봉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팥죽이 끓으면서 솥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부지런히 주걱을 저어야 한다고 귀띔을 해주니 참으로 열심히 노력봉사를 했다. 덕분에 내려올 때에는 포장용기에 팥죽을 여섯 개나 선물로 받아 휘파람을 불면서 내려왔다.
동지 날에 먹는 팥죽은 잡귀를 쫓고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지만 팥죽은 몸에도 좋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의미로 일석이조라고 할까?
동지에는 팥죽을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 벽에 뿌리기도 한다. 또한 팥죽을 먹는 풍습에는 풍작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동짓날 우연히 천년사찰 용궁사에서 팥죽을 얻어먹었으니 이제 잡귀는 모두 물러가고 내년에는 좋은 일들만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산새가 지저귀는 오솔길을 따라 내려왔다. 포근한 고향의 정이 듬뿍 느껴지는 동짓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