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수원인가? 어디니?”
“엄마, 이천이야.”
휠체어에 앉아 바람과 소통하고 계시던 엄마의 쓸쓸한 뒷모습을 소리 없이 눈물을 삼키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집으로 모셔가라는 서울 S병원의 통보를 받고, 막내는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어머니를 이천 D병원으로 모셔갔다. 밖에서 마지막 식사로 평소 좋아하시던 우리밀국수를 드셨다. 엄마는 세상과의 이별을 그렇게 시작하셨다.
자식들이 오는 날이면 푸짐히 음식을 준비하셔서는 자식들 트렁크에 가득 채워 보내시곤 했던 엄마, 겨울철이면 손수 지으신 채소로 집집마다 김치냉장고를 가득 채워주셨던 엄마는 어느 날 병이라는 악마 앞에 무너져 침대 위에 누워버리시고 말았다. 힘드니까 농사 그만 짓고 편히 쉬시라는 자식들의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면서 “난 너희들 챙겨주는 재미로 산다. 농사를 안 지으면 무슨 재미가 있나?” 하시던 울 엄마. 울 엄마만큼은 안 아프시고 건강하실 거라 믿었는데 더 말리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고 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현실은 가르쳐주고 있었다.
“엄마! 운전면허증 따면 내가 차 사드릴게.”
운전을 하시고 싶어 하시던 엄마의 말씀에 여동생은 한글도 잘 모르시고 농사만 지으시던 엄마가 설마 면허증을 따실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속에 약속을 했다. 하시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 아버진 운전학원에 등록을 해주셨고 엄마는 주경야독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셨다.
‘설마 엄마가 필기를 통과하실 수 있을까?’ 자식들은 엄마의 인지가 한 장을 채워 넘기는 것을 보고 애처로운 마음에, 최선을 다하셨으니 이제 그만하시고 관광이나 다니시며 즐겁게 사시라고 말씀드렸다.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하시던 엄마는 인지 한 장 반을 붙이신 어느 날 합격했다는 전화를 주셨다. 그 전화를 받는 순간 쏟아졌던 감격의 눈물. 68세가 되어 받으신 면허증을 우리 가족은 크게 확대해서 코팅을 한 뒤 대대손손 자식들에게 조상의 영광을 알려야 한다며 한바탕 눈물파티를 했다. 그리고 동생의 축하 선물로 자동차 시승식을 하시는 엄마를 감격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 후 엄마는 이건 아무개 친구가 병원에 데려가줬더니 준 선물이구, 이건 울 곗날 친구들 태우고 바람 쐬게 해줬더니 준거라며 콩에 들기름에 과자에 선물이 가득하셨다.
동생이 “엄마! 친구분들 모시고 다니다 사고 나면 큰일 나. 그니까 다른 사람 태우고 다니지 마” 하니 불호령을 내리셨다. “아파하는데 어찌 보고만 있냐. 내가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하셨다.
삶의 팍팍함에 지치고 힘들다가도 엄마가 해내신 노력의 결실을 생각하며 ‘나도 할 수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를 되새기며 나를 희망의 마술 속으로 끌어들이곤 했다. 그렇게 우리 자식들의 롤 모델이셨는데 엄마가 큰 병 앞에 갑자기 쓰러져버리셨다. 씽씽 달리던 시골 할머니의 자가용도 그렇게 멈춰버렸다. 그리고 누우신 뒤에는 오히려 자식들 마음 기둥이 흔들리실까봐 안타까워하셨다.
누워 계시는 내내 필자는 무력함으로 엄마를 바라만 봐야 했고, 엄마는 서서히 삶을 정리하며 가파른 호흡을 기계에 의지하시다가 미국 출장 간 큰아들을 보시고서야 눈을 감으셨다. 늘 사랑과 열정을 우리에게 심어주신 엄마. 아직 돌려드리지 못한 사랑이 너무나 많은데 울 엄마는 어느 날 우리 곁을 그렇게 조용히 떠나가셨다.
“엄마! 죄송합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백인 경찰의 흑인 폭행으로 시작된 흑백 갈등이 엉뚱하게도 코리아타운으로 불똥이 튀었다. LA폭동이었다. 미국 매스컴들의 편파보도는 살림 잘하고 있던 한 한국 아줌마를 ‘욱’하게 만들었다.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그녀는 그 길로 정치판으로 뛰어든다. 이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주인공은 미셸 박 스틸(62). 미주 한인 커뮤니티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여성 정치인이자, 현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슈퍼바이저 위원장이다. 그녀를 미국 현지, 산타에나 오렌지카운티 청사에서 만났다.
카운티 슈퍼바이저(County Supervisor). 우리에겐 무척 생소하니 단어 정리부터 해보자. 카운티는 미국 주 정부의 하부 행정 구역으로 캘리포니아 주(州) 오렌지카운티 안에는 총 34개의 시(市)가 포함되어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세 번째, 미국 전체에서는 여섯 번째로 크다. 인구 320만 명에 한해 예산만 6조원에 이르는 오렌지카운티는 한국의 광역시와 비슷한 규모의 자치단체다.
카운티는 각 지역구에서 선출된 5명의 슈퍼바이저(슈퍼바이저 위원회)가 이끌어 가는데 박 위원장은 2014년 선거에서 한인 최초의 슈퍼바이저로 당선됐다. 지난 1월에는 만장일치로 위원장에 선출, 그녀는 명실상부 오렌지카운티의 행정 수장이다.
“한국뿐 아니라 이곳 한인분들도 낯설어했어요. 당선되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슈퍼바이저가 뭐하는 자리냐는 거였으니까요. 그만큼 한인 정치인이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죠. 저는 한마디로 오렌지카운티의 모든 살림을 맡아서 합니다. 법을 만들고 집행도 하지요. 소방국, 경찰국, 보건국 관리는 물론 교육, 사회복지, 심지어 쓰레기를 수거·처리하는 일까지 모두요.”
얼마나 바쁘냐는 질문에 다이어리를 살핀다. 존웨인공항의 리모델링과 국제선 비행기의 공항 사용료 문제, 야생 코요테의 사체 처리 법안, 등·하교시간 교통 체증에 대한 주민 항의, 노숙자 샤워와 숙박시설 허가…. 박 위원장의 수첩을 꽉 메우고 있는 현안들이다. 오늘 잡힌 미팅만 4개. 자잘한 방문 약속까지 소화하려면 오늘도 칼퇴근은 어렵겠다며 웃는다. 그녀의 기분 좋은 미소 뒤로 성조기가 아닌 태극기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가 정치인이 된 이유
한국 이름 박은주. 그녀의 고향은 서울 성북동이다. 어린 시절 뛰놀던 학교 운동장이며 창경원(現 창경궁)에 놀러갔던 일, 경복궁에서 스케이트를 타던 추억이 그녀의 뇌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일본 한국교육문화원으로 발령이 나면서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동경여자대학교 영문학과 1학년이던 1975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페퍼다인대학(Pepper dine University)에서 경영학을 전공할 때만 해도 박 위원장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예쁜 앞치마를 입고 쿠키를 구우며 아이들을 키우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고. 1981년 테니스 동호회에서 만난 전도유망한 청년 변호사 션 스틸과 결혼해 예쁜 두 딸도 얻었다. 그렇게 현모양처의 꿈을 이루는 듯했지만 그녀의 길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LA에서 홀로 옷가게를 운영하던 어머니가 어느 날 국세청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어요. 세금을 속였다며 정말 어마어마한 벌금을 부과했더라고요.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어요. 어머니는 한국과 일본에서 교편을 잡았던 분이세요. 평생 정직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사셨던 분이 탈세라니… 너무나 억울했지만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소수계가 당하는 부당함과 설움을 알게 됐어요. 거기에 불을 지핀 것이 4·29 폭동이었고요.”
LA 4·29 폭동은 박 위원장에게 ‘행동하지 않으면 변화하지 않는다’는 신념과 자신이 ‘한국인’임을 각인시켜준 사건이었다. 1992년 4월 29일 흑인 로드니 킹을 폭행한 백인 경찰관들이 무죄 선고를 받자 흥분한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공권력은 부유한 백인들이 살고 있는 비벌리힐스를 보호하기에 바빴고 결국 폭도들에게 한인 타운으로 가는 길을 내준 꼴이 되었다. 맨손으로 일군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한인들은 직접 총을 들었고 미국 매스컴들은 앞다투어 한·흑 갈등으로 몰고 갔다.
닷새간 이어진 방화와 약탈로 2300여 한인 업소가 피해를 입었고 피해액만 5억달러에 이르렀다. 돈 벌기 위해 너무 앞만 보고 달렸다는 각성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그 대가치고는 너무나 참혹했다. 한인 타운은 그야말로 잿더미로 변했다.
“한마디로 미디어의 횡포였어요. 뉴스, TV 쇼에서 잘못된 내용을 말하고 있는데 누구 하나 정정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뭔가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어요. 정치인 친구들이 많았던 남편에게 부당함을 쏟아냈고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말했어요. 정말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았어요. 남들 앞에 나서기를 지독히도 싫어하던 제가 말이죠.”
1993년 LA시장에 출마한 리처든 리오든 선거캠프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그녀는 미국 정치판으로 뛰어들었다. 안 하면 안 했지 적당히 하는 꼴은 못 보는 한국 아줌마의 힘은 어디서나 단연 돋보였다.
시장에 당선된 리오든 시장은 그녀를 LA소방국 커미셔너로 전격 발탁했고 이후 LA공항, LA아동복지국 커미셔너를 역임했다. 커미셔너는 해당 분야의 정책자문 역할을 하면서 시의 전반적인 행정에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직책이다.
박 위원장은 이어 1999년 한미공화당협회 회장, 2001년 부시 행정부에서는 아시아태평양 자문위원을 거치며 차근차근 정치 이력을 쌓게 된다.
한인 커뮤니티가 사랑하는 선거의 여왕
사실 박 위원장이야말로 ‘선거의 여왕’이라 불릴 만한 전력의 소유자다. 24년 정치인생에서 세 번의 선거에 출마, 모두 승리했다. 특히 2006년 당시 ‘듣보잡’ 후보에 가까웠던 그녀가 도전한 ‘캘리포니아 조세형평국 위원’은 캘리포니아 조세 정책을 총괄하는 막중한 자리였다.
그녀는 이 선거에서 정치 거목이었던 상대 후보를 꺾고 60.5%라는 득표율로 압승했다. 한국 커뮤니티는 물론 그녀가 속한 공화당 내부에서도 놀란 결과였다. 목소리까지 가냘퍼 보이는 그녀의 이런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박 위원장은 서슴없이 ‘한국인의 DNA’ 덕분이라고 말한다.
“처음 출마선언을 하고 후보 인준을 받기 위해 연설을 한 날이었어요. 얼마나 무서웠던지 연설을 마치고 나와서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결국 울음이 터졌죠. 옆에 앉은 분이 걱정이 되어 남편에게 전화를 하더라고요. 전화를 끊고 아무 말이 없길래 남편이 뭐라고 하더냐 물었더니 그냥 놔두라고 했대요. 금방 다시 씩씩해질 거라고. 미셸은 한국 여자라고요(웃음)!”
박 위원장은 2010년 재선에서도 거뜬히 승리하면서 8년간 조세형평국 위원으로 재직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그녀의 이름 앞에는 ‘가주 내 한인 최고위 선출직 공직자’,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공화당원’ 등의 수식어가 붙게 된다.
미셸 박 스틸의 러닝메이트는 바로 한인 커뮤니티다. 그녀는 한인 커뮤니티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며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것은 모두 한인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선거는 선거자금이 당락을 결정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미국 정치인들에게는 선거자금 캠페인, 모금행사 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기부금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인들에게는 이것이 낯설기만 하다. 또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유권자 등록이나 투표는 늘 딴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아쉬운 이야기이지만 한인 유권자 등록률과 투표율은 아시안 커뮤니티에서 늘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셸 박 스틸이 출마하는 선거는 유독 한인들의 투표율이 높다. 박 위원장이 슈퍼바이저로 당선된 지난 2014년 선거에서 오렌지카운티의 한인 유권자 투표율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미셸 박 스틸만큼은 밀어줘야 한다는 분위기다. 이렇다 보니 미주 한인사회의 오랜 숙원인 연방하원에 입성할 인물로 박 위원장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박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시정에서는 한인 커뮤니티를 어떻게든 메인스트림으로 끌고 들어오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카운티에 공식적으로 미주 한인의 날을 만드는가 하면, 한인 단체가 벌이는 행사를 카운티가 공식 후원함으로써 힘을 실어주고 있다.
조세형평국 시절에는 정부 공식 홈페이지에 한글로 된 안내문을 올리기도 했다. 부당한 세금이 청구된 납세자가 있다면 자신에게 연락하라, 혐의가 입증되기 전에는 무혐의로 믿고 끝까지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그녀 어머니가 당했던 억울함을 한인들에게 다시는 없게 하겠다는 의지였다. 강철 벽처럼 느껴지는 주 정부 홈페이지에 한글로 된 안내물이라니… 어찌 한인들이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연한 일이에요. 메인스트림 안에서 한인을 대변하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으니까요. 임기 동안 하나라도 더 정착시켜놓으려 합니다. 제가 이 자리를 떠나더라도 카운티 차원에서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요. 그만큼 어깨가 무겁기도 하지만 보람도 있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해요. 내가 왜 이 자리에 오려 했는가를 생각하죠. 정치인은 유권자의 선택으로 살아남는 사람들이에요. 유권자가 내려가라 하면 내려가야죠. 다행히 아직까지는 저를 많이 사랑해주고 계세요(웃음).”
박 위원장은 내년 그녀의 네 번째 선거를 치러야 한다. 슈퍼바이저 재임에 도전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역시 선거자금을 모으는 일이다. 이제 곧 후보들 간의 모금 현황부터 비교하며 당락 가능성을 점치는 언론들의 보도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다시 전쟁이다.
남편, 그리고 엄마
박 위원장의 정치인생에 없어선 안 될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남편 션 스틸 변호사(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와 어머니 정옥희 여사(2011년 작고)다. 박 위원장이 정치를 시작하면서 함께 살기 시작한 세 사람에게는 소소한 추억들이 많다. LA 문단에서 수필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정옥희 여사의 수필집 곳곳에는 딸과 사위 이야기가 있다. 특히 사위 스틸 변호사에 대한 묘사에는 애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사람. 우리나라 함경도 사람처럼 일하며 처자 권속을 확실히 지키는 사람. 내가 여행이라도 가는 날이면 손에 돈과 정을 같이 쥐어줄 줄 아는 사람이 우리 사위다. 집에 돌아오면 조용한 집 안을 장터같이 활기차게 만들고 장모의 김치볶음밥과 순두부찌개가 최고라고 치켜세우는 사위는 가정을 지키는 것이 생애 최고의 행복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정옥희 수필집 모음 중에서)
결혼 36년 차의 남편은 박 위원장에게 늘 휴식 같은 존재다. 캘리포니아 공화당협회 의장까지 지냈지만 정치적 조언보다는 시정에 지친 아내를 살피는 일이 우선이다.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박 위원장을 늘 웃게 만들어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지난해 큰딸 채안(29)이 결혼하면서 박 위원장은 사위를 봤다. 그래서인지 돌아가신 ‘엄마 생각’(박 위원장은 꼭 엄마라고 불렀다)이 더 잦아졌다고.
“참 강하고 현명하셨던 거 같아요. 그때는 엄마로서 이민자로서 살기가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던 시절이었는데 말이에요. 처음 일본에 가서 말도 못하고 친구가 없는 저를 보고 엄마는 늘 웃으라고 했어요. 내가 웃기만 하니 아이들이 ‘아호(바보)’라고 하더군요. 엄마는 그래도 계속 웃으라고 했어요. 정치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미셸은 잘 웃어서 좋다는 말이에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라면 뭐라고 했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엄마가 딸을 위해 내어놓는 솔루션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박 위원장은 자신이 엄마를 추억하듯, 훗날 딸들이 자신을 그렇게 추억해주기를 원한다. 그녀의 뒤를 이어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할 차세대 정치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삶에 덕이 되고 싶고, 길을 먼저 가는 선배로서 그들이 올 길을 조금은 편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정치적 야망이요? 그렇게 거창한 표현은 안 어울리고요. 정치인으로서 잃고 싶지 않은 것은 있어요. 민심과의 소통, 발로 뛰는 열정 그리고 정직이요. 어디까지 가든 소통과 열정, 정직 없이 가게 될까봐 겁이 납니다. 연방하원… 가야죠. 제가 아닌 누구라도 가야 합니다. 제가 갈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갈 것이고 혹 나보다 더 좋은 후보가 나타난다면 저는 미련 없이 그를 밀 것입니다.”
인터뷰 말미, 그녀가 고향 성북동의 안부를 묻는다. 두어 차례 한국 지자체의 초청을 받아 남편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지만 정작 추억 어린 곳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서울 시내 곳곳이 너무 많이 바뀌었지만 성북동은 아직 옛 정취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하니 아이처럼 반가워한다. 남편과 함께 꼭 가볼 거라고 코를 찡긋거리며 웃는 그녀.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으며, 열정적이고, 그대로의 자신을 내어 보이는 미셸 박 스틸은 아름다웠다.
해외에서도 데이터 포기 말자, 저렴하게 쓰는 무선 와이파이
국내여행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해외여행 갈 때는 특히 정보가 많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검색하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필요한데, 해외에서는 데이터 설정을 따로 해야 한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해외여행지에서 데이터를 마구 쓰면 요금폭탄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데이터 요금이 많이 부과된다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듣고 데이터 기능을 아예 꺼버리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데이터 기능을 꺼버리면 우리가 사용하는 카톡은 물론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다. 패키지여행을 하더라도 가이드가 설명해주는 내용 중 궁금한 것이 있으면 검색해서 찾아볼 때가 있는데 데이터를 아예 꺼놓으면 접속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사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각 통신사의 데이터 로밍 서비스다. 그런데 데이터 로밍 서비스는 혼자서만 사용해야 하고 여행기간이 길어지면 비용이 조금 부담스럽다. 이럴 때 최근에 많이 애용되는 도구인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다. 바로 ‘포켓와이파이’라는 이름을 가진 디지털 도구다.
단체여행 갈 때 여럿이 함께 쓸 수 있는 ‘포켓와이파이’
포켓와이파이는 현지 통신망을 잡아 무선 와이파이로 바꿔주는 통신 기기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사용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이 됐기 때문에 해외여행 때도 꼭 챙겨야 할 도구가 되었다. 포켓와이파이는 스마트폰처럼 작게 만들어져서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가장 중요한 건 요금이다. 여행지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며 아시아에서는 하루 사용 요금이 5000원 정도다. 앞서 이야기한 서비스인 데이터 로밍에 비하면 반값 정도밖에 안 돼 사용자에게 부담이 적다. 요금 외 포켓와이파이의 장점은 기계 하나에 여러 사람이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대 10명까지 사용할 수 있으므로 20명이 단체여행을 갈 경우 포켓와이파이 두세 개만 있으면 충분하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대여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포털 검색창에서 포켓와이파이를 검색한 뒤 해당 업체에 여행지, 여행기간, 연락처를 작성하고 금액을 결제하면 여행 가는 날 공항에서 받을 수 있다.
국내에서 길 찾듯 목적지를 알려주는 ‘구글지도’
해외여행을 할 때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으면 스마트폰에 있는 지도로 여행 목적지를 찾을 수 있다. 지금 위치해 있는 곳이 어딘지, 근처에 약국이나 은행이 있는지, 쇼핑센터는 어디에 있는지 지도로 모두 검색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다음지도나 네이버지도는 국내에 특화된 지도라서 해외에서는 각 나라에 맞는 지도를 선택해야 한다. 그중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지도가 바로 구글지도다. 해외 어디에서든 사용이 가능한 구글지도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아침에 공원을 걷고 싶으면 근처 공원을 구글지도로 검색할 수 있다. 이때 위치해 있는 곳이 일본이므로 일본어나 영어로 검색해야 할 것 같지만 구글지도는 한글로도 검색이 가능하며 검색 결과도 한글로 나온다.
예들 들어 삿포로에 있는 공원을 가고 싶으면 검색창에 ‘삿포로 공원’이라고 입력하면 된다. 삿포로에 있는 가까운 공원들이 검색되면서 현재 자신이 위치해 있는 곳에서 자동차로 얼마나 걸리는지, 도보로는 얼마나 걸리는지 시간까지 나온다. 혼자 여행을 떠날 때 좀 더 편하고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다면 이러한 디지털 필수품을 꼭 챙겨 가길 바란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세계적 문화유산 2가지를 말하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아주 많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 불국사, 석굴암, 수원화성, 고인돌 유적, 해인사 대장경판, 종묘, 판소리, 강강술래 등 유형 및 무형 문화유산이 많은 편이다. 특히 제주도는 최근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되었다.
우리는 그런데도 공기나 물처럼 그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고마운 것인지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그중에서도 세계 제일인 것을 말하라면 한국인에게 자랑스러운 유형의 한글과 무형의 선비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높은 문맹률 퇴치와 자본주의의 폐단인 이기적인 삶의 만연으로 인하여 정신적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는 이러한 아름다운 문화를 전파하는 일에 우리나라 발전의 새로운 동력인 액티브 시니어들이 나선다면 우리의 인생 2막은 훨씬 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삶이 되리라 생각한다.
1. 훈민정음
한글은 유엔이 인정한 세계 최고의 문자다. 유엔의 산하기관인 유네스코는 매년 지구촌 문명퇴치에 공이 큰 각국의 기관과 단체에게 세종대왕 문해상(King Sejong Literary Prize)을 수여하고 있다. 현재 서울 간송 미술관에 보관 중인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훈민정음은 국보 제70호(1962.12.20)로 지정되어 있으며 세종 28년 (1446년) 창제 반포된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다.
한글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는 이유는 표음문자, 음소문자, 자질문자의 3요소를 모두 갖춘 지구상의 유일한 문자일 뿐만 아니라 인류가 발명한 문자 중 창제 목적이 확실하고, 창제 일이 정확하고, 창제자가 분명한 문자는 한글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 한글은 과학적이고, 보편적이며 아주 실용적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글은 인류가 발명할 수 있는 최고의 문자라고 격찬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 IT시대를 맞이하여 한글의 우수성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한글의 세계화 운동을 더 적극적으로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어를 제1외국어 또는 제2외국어로 가르치는 국가가 2012년 현재 23개국 799개 학교로 증가하고 있다고 하며 그 학생 수는 약 7만6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가 세계 10대 무역국가로서 농수산물, 공산품 등 제품의 수출입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이제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한글이라는 문화도 함께 수출하여 세계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한글이 지구촌 인류의 소통과 평안, 평등,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위대한 문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글은 자음과 모음 24자로 모든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체계다. 오늘날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영어는 자음과 모음이 26자이지만 사실상 이를 표현하는 데는 26x4=84자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문화를 통일하는 것은 쉽지 않으나 한글로 문자를 통일한다면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2. 선비정신
오늘날 선비라는 말은 뭔가 고전적이며 구태의연한 느낌을 주는 단어다. 또 막상 선비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라면 머리에서만 맴돌 뿐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는 일제 통치시대 때 일본의 한국 문화 말살 정책 결과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일 수도 있다.
선비란 “인·의·예·지의 인간 본성으로 개인 인격을 수양하고, 효·충·경·신의 조직 원리로 사회 인격을 수행하여 만인에게 이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 홍익인간을 실천하는 리더다”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아주 멋진 말이다. 좀 더 쉽게 표현하면 오늘날 영어의 신사(gentleman)나 군자의 의미이지만 이런 낱말이 주는 뉘앙스보다 훨씬 더 멋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선비라는 말의 어원은 대략 3가지 설이 있다.
첫째, 선비란 어질고 지식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 알타이 어족 몽골어 기원설이다.
둘째, 고구려 조의선인(皁衣仙人)의 호칭인 선배(신라의 화랑도와 유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셋째, 선비 사(士, 하나를 알면 열 가지를 안다), 선비 유(儒,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 선비 언(彥, 문무를 겸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나온 의미라고 한다.
선비들이 갖춰야 하는 근본정신과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오늘날 한국 선비정신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선비 아카데미 회장인 화원 선생은
다섯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살신성인, 거의소청, 극기복례, 법고창신, 솔선수범이다.
그러면 선비 정신의 보편적 핵심 가치는 무엇일가?
공자가 강조한 것은 인간은 개인적인 존재이자 사회적인 존재로서 대동사회를 펼치기 위해 유학사상을 창안했고 이는 선비정신의 근본이다.
유학은 인도주의 사상으로 수기치인지학(修己治人之學)이다.
유학은 현실 중심 사상이다. 매순간 인간의 삶에 최선을 다하자는 강령으로 하의상달로 요약된다. 유학은 실천중심 사상이다. 유학은 관계구현 사상이다.
공부와 학습은 개인의 인격 완성을 위해 하는 것이고 나아가 조직의 인격완성을 위해 하는 것이다.
퇴계 이황은 개인 인격의 완성으로 독립할 수 있고 사회 인격의 완성으로 상생할 수 있다.
개인 인격은 인간의 근본인 진실함인데 이를 실천하기 위해 격물, 치지, 성의, 정심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며 이를 지도자의 셀프 리더십 근본으로 삼았다.
이는 사람의 생각과 말과 태도 및 행동의 뿌리다.
여기서 격물이란 대상에 대한 깊은 궁리로 밑바닥까지 캐내고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을 뜻하며 과학적 탐구를 뜻한다.
치지란 정확한 지식의 종착점을 말하며, 성의란 성실한 의지로 열정과 집중을 한곳에 투입함을 뜻한다.
정심은 하늘로부터 받은 본래의 양심으로 옳고 바르며 순수한 편견이 없는 마음이다.
수신이 이루어지면 개인 인격의 독립이 완성되고 스스로 빛을 밝히게 된다.
그다음 단계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빛을 이끌어내는 행위다.
즉 나와 남이 빛을 함께 발할 수 있어야 대동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
따라서 선비 리더십의 8가지 요소는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다.
이황이 성의 정심에 무게를 두고 정신적인 면을 강조했다면 이이는 격물, 치지에 중심을 두고 물질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요컨대 선비란 어짊인 사랑과 섬김인 존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또한 선비는 자기 자신을 닦아 개인 인격을 완성하고 나아가 공동체를 위한 조직 인격과 사회 인격을 확립시키는 사람이다.
선비가 되기 위해서는 수기안인, 위기지학, 법고창신을 해야 한다.
오늘날 사용하는 언어로 대체하면 인간성 교육, 전문성 교육, 창의성 교육을 의미한다.
이러한 선비정신은 붓의 문화이며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인 칼의 문화와 구분된다.
따라서 한국은 붓의 문화로 칼의 문화를 감싸 안고 이를 극복하여 세계 문화의 창달에 힘을 써야 한다. 또 나아가 선비정신을 전 세계에 수출하여 아름다운 세계문화 창달과 홍익인간의 이념 실현을 위해 다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외국인이 한국어가 유창하면 질투가 깔린 선망을 하게 된다. 화가 나기도하고, 한 발 더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외국인이 한국의 역사나 문화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한국미와 한국의 진정한 가치를 논하는 한글문장이다. 그들의 한국어와 한글은 필자의 30년 이민생활의 시간을 한 칼에 무참하게 만들어버린다. 질투는 두뇌능력에 대한 열등감이고 노력부족에 대한 후회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한다. 무덤이 있을 때는 있는 것에 대한 있음의 사유가 있다는 것은 자연법칙이다 그러나 인간의 두뇌에 저장하는 지식까지 그 자연법칙에 따를 수 있는가 하는 자책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핑계가 있긴 하겠다. 옹색한 핑계지만, 일하느라 달러 벌어들이느라 바쁘고 에너지는 모두 소진되었다
급한 것부터 하느라 언어에 까지 노력할 여유가 없었다는 변명이 있다 이 변명에는 반박하는 논고가 따른다. 이민 전에 이미 10년간 영어공부는 하였다 교육 커리큘럼에 투자한 모든 것들은 어떻게 된 것이냐.
실생활에 필요한 말은 생존의 절대요구라 빠르게 배우게 된다. 얼마간의 단어와 몇 개의 문장이면 충분하다. 간단한 생활언어 몇 개를 구사하는 것으로 인간의 말이라 할 수 있으며 외국어를 말한다 할 수 있을까. 동물과 식물과도 인간은 충분히 소통한다. 그 정도의 소통인 기본생활 언어를 생각과 문화전달의 매체로의 언어와 동일하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문법으로 배운 말이라 구어가 오히려 어렵다. 모국어처럼 사용 할 수 없음은 이론을 먼저 배워 언어 탑의 기반이 되었고 그 기반에 가운데를 훌쩍 뛰어넘어 최소한의 소통언어를 익힘으로 꼭대기만 올린 것이다 기둥이라 할 수 있는 가운데 부분을 채울 수 있다면 모국어처럼 사용할 수 있으리라 필자는 생각했다
손자가 태어났다. 이 기회를 단단히 잡기로 마음먹었다 애기가 그림책을 볼 때부터 아이와 함께 영어를 배우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배운 영어라면 손자와의 소통도 좋을 것이고 영어 독서 속도도 낼 수 있고 말 안에 숨어있는 은근하고도 구수한 언어의 진 맛을 흡수하리라, 언어 안의 혼까지도 배우게 될 것이란 흥분감마저 들었다
백날이 되기 전부터 그림책은 늘 주변에 늘려있다. 처음 시작하는 그림책에는 그림만이라 손자에게 보여주기만 했다 겨우 옹알이 기간을 벗어나면서 그림과 그림을 말과 글 하나로 인식하게 하는 그림책을 읽어준다 옳다구나 이제부터 차근차근 아이의 자세로 단어를 배워가면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림책을 펴는 순간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책을 많이 읽는다. 아들이 출퇴근 시간 기차 안에서 읽으려고 가판대에서 사들여 읽고 나면 필자의 순서다. 영문의 베스트셀러 책을 읽을 경우 넉넉하게 잡아도 10% 이상 모르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손자의 그림책은 90% 내가 모르는 단어다. 동물들의 이름은 동물 자체도 필자가 흔히 보는 가금류나 애완동물이아니라 낯설다. 이름이 라틴어에서 유래한 학명인지 발음하기도 어렵다 전자사전에서 발음을 듣고 그대로 따라하지만 정확한 발음이 되지 않는다. 그림책은 술술 읽으리라 생각한 것은 완전 오판이었다. 아기의 그림책에 나오는 단어는 지능으로 구분되거나 사회 환경에서의 사용언어가 아니었다.
도시생활만 해온 사람이 무모하다 싶게 은퇴지를 결정했다. 은퇴지가 제주도라서 무모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제주도에도 택지로 조성된 터가 많고 도시적인 주거 조건에 맞는 집들이 많다. 꼭 제주도에서 집을 신축할 필요도 없고 집터가 임야일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아무 생각 없이 빈터를 매입했고 그 빈터는 임야였다. 억새와 잡풀은 나무라 할 만큼 키가 웃자라 있었고 덩굴식물들이 엉겨 붙어 있어 걸으면 수북하게 쌓인 눈길을 걷는 것처럼 발이 푹푹 들어갔다.
우선 나무라도 심어야겠다고 마음먹고부터 굴삭기 기사를 불렀다. 토목에는 전혀 안목이 없고 땅을 어떻게 고르는지도 몰라 아이디어가 전혀 없었다. 필요한 만큼만 조금씩 공사를 해나가기로 했다. 우연히 소개로 만난 굴삭기 기사는 성격이 유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필자에게 자기 의견을 강하게 제시하거나 자기 아이디어대로 일을 밀고 나가지 않았다. 필자가 요구하면 큰 무리가 없는 한 필자 원하는 대로 일을 해주어 고마웠다. 그 인연이 20년이 훌쩍 뛰어넘었고 이제는 매해 만나는 사이로 발전했다.
며칠 전에도 굴삭기 작업을 했다. 말할 것도 없이 바보처럼 살자는 굴삭기 기사와 함께했다. 이전에 땅을 고른 후 판판한 터에 깡마른 나뭇가지 같은 향나무, 단풍나무, 애기동백나무, 은목서 같은 정원수 묘목을 심었다. 이놈들이 제법 자라 빽빽하여 답답해 보였다. 저들도 공기가 필요할 것도 같았다. 그보다는 정원수라는 관념 때문인지 밭의 다른 농작물이나 땅꼬마 화초들 같지 않게 군거하니 오히려 주위와 어울리지도 않았다. 잘난 사람이 노숙자로 전락한 모양새라 그들에게 어울릴 법한 자리로 이식을 했다. 필자 집에서 지대가 좀 높은 위치의 공터로 나무를 이식하면서 굴삭기 기사는 다른 기사들 같으면 담배 한 대 피우고 잠시 휴식할 시간에 멋들어진 노래 한 가락을 뽑는다. 애기동백을 옮길 때는 동백아가씨가 애잔하게 흘러나온다.
굴삭기 기사는 오래전에 취미생활을 즐기는 멋쟁이로 제주신문에 소개되기도 했다. 필자가 기사를 처음 만났을 때는 해변 외딴 집에 드럼 세트를 구비하고 드럼을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그 무렵 밤낚시를 즐긴다기에 초대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어느 날 집으로 오라 했다. 집에 가서 보니 창고로 사용하는 해변의 외딴 집은 사람이 생활하는 흔적은 없으나 그런 대로 큰 생활 터전이었다. 그런데 그 집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필자 눈에 들어온, 힘찬 휘호로 쓴 한글 액자가 보였다. 내용은 ‘바보처럼 살자’였다.
처음 일을 맡기려고 전화로 거래를 틀 때다. 너무 쉽게 이쪽에서 하자는 대로 ‘그러라고 그러자고’ 쉽게 동의하기에 필자는 ‘내가 도인을 만났나? 혹 뻥은 아닐까?’ 했다 사실은 가격도 필자가 깎는 대로 그대로 응해주었다. 고맙고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스럽기도 했다. 일 시작하면서 보기 드문 사람임을 금방 알아챘다. 생활 속에서 힘들이지 않고 말없이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터득한 사람이라 느껴졌다. 같이 일하는 기회가 거듭되면서 신뢰도 생기고 친밀감도 쌓였다. 평소의 생활 태도와 속사람이 궁금해지기 시작하여 집 방문의 기회를 만든 것이다. 다른 동업자에 비하여 적은 값으로 일을 해주는 그와 일을 하려면 적어도 두어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 늘 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혹 너무 오래 기다렸다 싶으면 쉬는 날 하루를 억지로 내어 필자 집에 온다. 얼굴에서 피로함이 느껴지면 “급하지 않으니 다음에 해도 되는데…”라고 말한다. 참 반가운 소식은 요지의 상가에 4층 빌딩을 올렸단다. ‘바보처럼 살자’의 힘찬 울림이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안부와 덕담을 주고받는 때다. 직접 종이카드를 마련해 인사말을 쓰면 좋겠지만 일일이 준비하기엔 시간도 부족하고 번거롭기도 하다. 그렇다고 스마트폰 메시지만 보내자니 어쩐지 성의가 부족해 보이고 아쉽다. 이럴 땐 종이카드처럼 예쁘게 꾸밀 수 있고, 문자처럼 간단하게 쓸 수 있는 앱 ‘어썸데이’를 활용해보자.
SNS소통연구소 이종구 소장
1. 어썸데이 다운로드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어썸데이’ 또는 ‘AWESOME DAY’를 검색해 무료로 다운로드한다. 별도의 회원가입 없이도 사용 가능하다.
2. 배경 선택
내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을 사용하거나, 앱에서 제공하는 카테고리별 다양한 이미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30여 개 카테고리에 깔끔하고 분위기 좋은 사진이 가득하다.
3. 인사말 쓰기
배경 이미지를 고르고 나면 화면을 두 번 두드려 키패드를 활성화한다. 원하는 인사말이나 좋은 짧은 글귀 등을 적는다. 편지처럼 긴 문장을 쓰려면 문자 크기 조절을 하면 된다.
4. 폰트 다운로드
폰트 메뉴에서 폰트 관리 버튼을 누르면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글씨체 목록이 나온다. 한글과 영어로 구분해 수십 가지의 폰트를 사용할 수 있다.
5. 글자 꾸미기
원하는 글씨체를 설정한 뒤 글자 크기와 색깔, 그림자, 정렬, 간격, 패턴, 투명도 설정 등을 조절해 취향에 맞게 세부적으로 꾸밀 수 있다.
6. 저장 및 공유
완성한 카드는 저장하거나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으로 공유한다. 사진 파일로 저장되기 때문에 문자나 SNS 등에도 첨부할 수 있다. 카드 이외에 모임 공지 글귀 등으로도 활용하기 좋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삶의 지혜를 말하고 있다. 필자는 어느 날 인생 1막에서 인생 2막으로의 변화에 대응해야 했다. 그리고 ‘용도변경’이라는 적극적인 자기 변신을 통해 활기찬 후반 인생을 맞이하게 되었다. ‘용도변경’은 필자의 이름 ‘변용도’를 원용해 만든 단어다. 한자의 의미는 다르지만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도(用途)와 한글 표기는 같다. 필자는 이 단어로 가족을 위한 그동안의 헌신적 삶에서 자신을 위한 삶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또 생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접어두었던 꿈에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다. 47세의 조기퇴직, 금융위기 등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용도변경’된 삶을 통해 사진작가, 강사로 거듭나 현재는 인생이모작의 결실을 거두고 있다. 손해보험사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필자는 이후에도 보험과 관련한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고 지금은 평생 일거리를 만들어냈다. 그 스토리를 오늘 들려드리려고 한다.
47세에 용도 폐기되다
필자는 대학교 졸업 직전 고려화재해상보험에 입사해 20년을 다녔고 촉망받는 직장인이었다. 20년 전에는 임원으로서 부산·경남 본부장을 맡았고, 1977년 12월 말에 해임되었다. 회사에서 쓸모가 없는, 즉 용도가 없어진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필자는 이름에 빗대어 ‘용도폐기’되었다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 금융위기(IMF)까지 닥쳐 재취업의 희망은 보이지 않았고, 밥벌이를 위해 고육지책으로 창업을 해야 했다. 만화방으로 시작해 부대찌개 음식점까지 열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 또 다른 일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급여의 많고 적음을 신경 쓸 처지가 아니었다. 월 40만원을 받으며 작은 회사 조경관리사로 취업해 매일 아침 긴 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회사 마당을 쓰는 마당쇠 역할도 했다. 일당을 벌으려 MBC 드라마 의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했다. 퇴직 후 10년간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엔 자존심이 많이 상하기도 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보고 용도변경된 삶을 살기로 하다
필자의 나이 57세 때 두 친구를 갑자기 잃었다. 모두 심장에 이상이 생겨 어느 날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친구의 죽음을 보면서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 곰곰 생각했다. 퇴직 후 잡다한 일을 하며 보낸 10년을 되돌아보았다. 분명 열심히 살았으나 세월만 쏜살같이 지나가고 내로라할 만한 성취는 없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두 친구처럼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게 될 것 같았다. 100세 장수시대에 어떻게 하면 보람 있는 후반 인생을 보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40, 50년이 될지도 모르는 노후의 긴 시간이었다. 필자와 같은 세대는 가족을 위해 하기 싫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것은 내 인생이면서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 사는 삶이었고, 타인을 위한 용도, 즉 타(他) 용도로 사는 삶이었다. 뒤늦게나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는 주인공으로 내 인생을 살아보자!” 필자는 먹고사느라 오래전에 접어둔 꿈을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들은 꿈을 실현하는 데 쓰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사진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은퇴하면 언덕배기에 캔버스를 세우고 그림을 그리는 꿈을 꾸곤 했는데, 그 꿈과 유사한 사진으로 바꾸었다. 붓 대신 카메라를 든 인생 2막의 길이었다.
60세에 늦깎이 사진작가가 되다
필자는 지리산 청학동에서 태어나 유·소년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자연과 함께하며 감성을 키웠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수채화를 자주 그렸던 기억이 있다. 사진은 직장에서 홍보 업무와 사보편찬 업무를 담당할 때 흥미를 키웠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60세라는 뒤늦은 나이에 사진을 배울 용기를 가졌던 것 같다. 2010년 7월, 필자는 고양시 무료사진 교실에 참여했다. 환경은 열악했다. 초보자 솜씨에 카메라 장비 또한 콤팩트 카메라가 전부였다. 함께 공부한 다른 수강생의 고가 카메라에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현실과 형편을 인정하고 사진 실력 향상에만 몰입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지 3개월 후부터 공인 사진작가 공모전에 도전했다. 공인 사진작가 인증을 받으려면 공모전에 출품해 입선이나 입상으로 일정 점수를 얻어야 했다. 이 목표를 이뤄내고 싶었다. 그러나 일 년에 스물여덟 번 응모해 절반을 낙선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많았지만 멈추지 않고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2011년 9월에 드디어 인증을 받아 공인 사진작가가 되었다. 그 뒤에도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도전을 이어갔다. 그리고 사진을 배운 지 3년째 되던 해 국전에 입선했고 부산일보가 주최한 전국사진대전에 출품한 작품 ‘닭장’이 좋은 심사평으로 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주관한 8만 시간 디자인 공모전 사진 부문에서 ‘몰입’이라는 작품이 우수상으로 뽑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이러한 결과의 이면에는 사진을 통한 재능기부가 큰 역할을 했다. 좋은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스스로 더 많은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게 배우는 것이라는 말은 옳은 말이었다.
40만장을 찍다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2010년 7월부터 지금까지 6년 4개월을 매일같이 사진에 빠져 살았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의 숫자는 무려 40만장에 이른다. 역산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200여 장을 찍어야 나오는 숫자다. 어느 날은 파파라치로 오인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뒤늦은 나이에 도전해 좌절과 고난의 순간도 있었지만 몰입하고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 24일에는 KBS 1TV 에 사진작가로 출연함으로써 삶의 정점을 찍기도 했다. 최근에는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사)은퇴연금협회와 머니투데이 방송이 주최한 ‘The Senior 2016’에 사진 전시 초대를 받아 ‘카메라로 그린 수채화 10선’을 주제로 사진을 전시했다. 판매 목적이 아니었는데 작품 모두가 팔려나가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사진을 바탕으로 명강사에 도전장을 내밀다
카메라를 들면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 시간이 짧기만 하다. 이제 사진은 취미가 아닌 일상이 되었고 카메라는 필자의 또 다른 친구다. 100세 장수시대가 두렵지 않다. 은퇴 전의 직업과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뒤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참 잘 선택한 결과가 됐다. 이후 필자는 사진을 바탕으로 또 다른 영역 확대를 꾀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통한 여가관리의 모범적 사례가 되면서 그 경험을 배우려는 퇴직 예정자와 은퇴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62세에 또 다른 분야인 강사 활동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여가설계, 변화관리 강사로 활동을 넓혀나갔다. 이제는 사진작가로서의 활동보다 강사로서의 활동이 더 많아져 기업체와 국가 산하 인력개발원, 대학교의 평생교육원, 사회종합복지관 등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KBS 1TV , SBS라디오 러브에프엠의 프로그램에 3년간 고정 출연, 토마토TV와 머니투데이 방송에서 특강, 한국직업방송 로 출연도 했다.
열악한 환경을 기회로 전환하는 ‘용도변경’의 삶이 성공의 핵심
필자는 사진작가, 강사로서 삶의 보람을 만끽하면서 평생 현역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제2직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전에는 열악한 환경 속에 있었지만 과거를 내려놓고 현실을 인정하며 몸집 줄이기(다운사이징)로 환경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한 ‘용도변경’의 생활 방식이 성공의 핵심 역할을 해줬다. 뱀이 고통을 참으면서 허물을 벗어야 살아갈 수 있듯 환경 변화에 대한 꾸준한 자기 변신, 즉 용도변경을 통한 2차 성장은 인생 2막의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라 생각하고 실천한 결과다.
베풀고 나누면서 다 쓰고 가리라
필자의 오늘은 많은 사람의 도움과 은혜로 이루어졌다. 이제 그 은혜에 보은할 할 때라 여긴다. 이웃과 사회를 위해 경험과 지혜를 베풀고 나누는 사회공헌을 위해 또 다른 용도변경, 즉 ‘공(公)용도’를 인생의 최종 목표로 삼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과정의 하나로 두 권의 책, 와 를 출간했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가보지 않은 길도 많음을 느낀다.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꿈을 꾸며 도전을 멈추지 않으리라. 필자의 소소한 경험담이 같은 길을 가려는 분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 Exhibition
1) 태양의 화가 반 고흐: 빛, 색채 그리고 영혼 전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apM CUEX홀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새롭게 연출한 전시다. 고흐의 수작들을 디지털 영상 기술과 접목한 최첨단 전시 기법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체험하도록 했다. 인상파와의 교류, 대자연, 고흐의 방, 동양의 색채, 초상, 동생 테오와의 편지 등 8개의 존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대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와치아웃 시스템을 이용한 멀티채널과 1만 픽셀 이상의 초대형 화면의 이머시브(Immersive) 시네마 등을 마련했다.
2) 최순우가 사랑한 전시품 전(CHOI SUNU’S FAVORITE)
일정 12월 31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미술학자 최순우(1916~1984)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로, 그가 생전에 아끼고 좋아했던 작품들을 글과 함께 소개한다. 평생 한국의 미를 탐색하고 박물관을 발전시키는 데 헌신한 최순우의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리다. 1층 통일신라실에서는 돌함과 뼈단지 등 일제강점기에 약탈됐다가 돌아온 문화재를, 2층 서화관에서는 김홍도서첩, 달마도 등을, 3층 조각·공예관에는 반가사유상, 달항아리 등 15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3) 코디최 개인전 CODY CHOI Color Painting: Frustration is Beautiful
일정 10월 28일~11월 20일 장소 PKM 갤러리(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40)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출품 작가인 코디최(Cody Choi)의 개인전이 10월 28일부터 11월 30일까지 PKM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11년 이후 5년 만에 개최되는 개인전으로 회화와 설치 작업 약 20 여 점이 전시된다. 특히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출품 준비를 위한 기금마련 전시라는 점에서 뜻 깊은 자리다.
1980년대 중반부터 작가이자 문화이론가로서 활동하는 코디최는 현대사회의 문화정체성과 권력관계에 관해 탐구한다. 현시대 다양한 문화가 빚어내는 충돌과 간극에서 태어난 제3의 문화 혹은 혼종문화, 동시대 사회현상에 주목하며 회화·조각·설치 등의 작업으로 표현하고 있다.
LA 아트센터 칼리지를 졸업한 코디최는 LA 현대미술관, 타이페이 현대미술관, 토탈미술관 등 국내외의 주요전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현재 독일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와 프랑스 마르세유 현대미술관 등 유럽에서 순회 회고전을 진행하고 있다. 20세기 문화 지형도 (2010), 동시대 문화 지형도(2010) 등 현대문화에 관한 전문비평서를 출간했다.
◇ Book
1) 초혼 (고은 저 · 창비)
고은 시인의 3년 만의 신작 시집이다. ‘때’와 ‘곳’에 얽매이지 않는 ‘자가지무(自歌自舞)’ 정신으로 우주와 소통하는 대자유의 세계를 펼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을 아우르는 우주적 상상력과 예리한 통찰력이 담겨 있다.
2) 보고 시픈 당신에게 (김광자 외 86명 공저 · 한빛비즈)
전국 한글학교에서 늦깎이로 한글을 배우고 있는 어르신들의 시와 산문을 엮었다. 글자를 익히면서 느끼는 기쁨, 가족에 대한 사랑, 삶의 애환 등이 돋보인다. 손글씨의 느낌을 살려 원문을 그대로 옮기고, 저시력자를 위해 큰 글자로 다시 정리했다.
◇ Movie
1) 기적을 증명한 두 남자 이야기
개봉 11월 3일 장르 드라마
감독 맷 브라운 출연 데브 파텔, 제레미 아이언스, 토비 존스 등
인도 빈민가의 한 수학 천재와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영국 수학자의 특별한 우정을 그렸다. 숫자가 유일한 친구였던 순수한 수학 천재 ‘라마누잔’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해 그의 열정적인 천재성과 삶의 고뇌 등을 담았다. 라마누잔 역을 맡은 배우 데브 파텔이 해외 유수 언론에서 “실존 인물 라마누잔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연기했다”는 평을 받는 등 작품성 못지않게 그의 연기력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개봉 11월 10일 장르 드라마
감독 나가이 아키라 출연 사토 타케루, 미야자키 아오이, 하마다 가쿠 등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남자가 하루를 더 사는 대신, 세상에서 무언가를 한 가지씩 없애야 한다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영화다. 전 세계적으로 130만부 이상 판매량을 올린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제작했다. ‘세상에서 전화가 사라진다면, 당신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까요?’라는 포스터 속 문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선한 스토리 전개로 잊고 지낸 것들에 대한 소중함과 인생의 행복을 선사한다.
◇ Stage
1) 연극 재공연, 이웃사촌들의 수상한 진실게임
일정 10월 27일~11월 20일 장소 대학로 선돌극장
연출 이동선 출연 이황의, 김수보, 리우진, 곽지숙 등
지난 3월 초연돼 뜨겁게 주목받았던 극단 몽씨어터의 (작가 석지윤, 연출 이동선)가 11월 20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재공연 된다. 연극 는 치밀한 구성과 전개, 팽팽한 긴장감과 반전, 그 사이를 비집고 터지는 폭소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이웃 혹은 사람 간 의심이 한순간에 누구든지 싸이코패스로 몰아갈 수 있는 현대인의 각박한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예작가 석지윤의 독특한 언어, 이동선 연출가의 감각적인 연출에 힘입어 씁쓸하면서도 웃음 터지는 우리시대의 슬픈 자화상과 마주하게 한다.
빌라의 고양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나간다. 주민들은 벌어지는 상황을 진단하고 해결하고자 대책회의를 연다. 그런데 301호의 혼자 사는 남자가 수상하다. 사람들은 그가 분명 고양이를 죽인 싸이코패스가 틀림없다고 믿게 된다. 싸이코패스를 잡기 위한 평범한 이웃들의 위험하고 묘하게 웃긴 진실게임, 바로 연극이다.
2) 천재 시인의 삶과 사랑을 노래하다
일정 11월 5일~1월 22일 장소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
연출 오세혁 출연 강필석, 오종혁,이상이, 정인지, 최주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모던보이였던 시인 백석의 시가 뮤지컬로 재탄생한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으로 백석과 그의 연인이었던 김영한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그의 시 노랫말로 표현했다.
3) 꿈과 희망을 위해 링 위에 서다
일정 11월 1일~1월 15일 장소 디큐브아트센터
연출 노우성 출연 신성우, 송창의, 신구, 김진태, 김지우 등
영화 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로 실베스터 스탤론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며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박진감 넘치는 권투시합 장면을 무대 위에 생생하게 그려내며 2014년 토니어워드와 드라마데스크어워드에서 무대디자인상을 받았다.
4) 고모와 조카의 예측 불허 동거
일정 11월 22일~12월 11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연출 구태환 출연 하성광, 정영숙
세상을 곧 떠날 것 같다는 고모의 편지 하나에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30년 만에 고모를 찾아가는 조카의 이야기를 담았다. 배우 인생 첫 2인극 도전이라는 중견 배우 정영숙이 고모 그레이스 역을 맡아 섬세한 감정연기를 펼친다.
5)인간의 죄의식과 예술가의 고뇌
일정 11월 20일까지 장소 아트원씨어터 3관
연출 김동수 출연 남명렬, 이명호, 박지일, 김병철, 손성호 등
1995년 제26회 동인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정찬의 소설을 연극화한 작품이다. 같은 해 11월 첫 공연한 이래로 상업성이 짙은 작품들이 주목받는 공연계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통의 밀도를 담아내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최근 걷기 운동을 하면서 서울에 가볼 만한 박물관과 미술관 등이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가본 곳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새로 알게 된 곳도 많다. 이런 곳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다니면 관람시간을 배정하기가 쉽지 않다. 또 입장료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입장료가 아주 비싸지 않으면 간 김에 관람을 하는 것이 좋다.
서울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대부분 강북에 위치해 있다. 신흥도시인 서초구, 강남구는 그래서 삭막한 동네다. 강남은 경부고속도로가 생긴 후 새로 형성된 도시라서 역사도 당연히 없겠지만,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짓기에는 땅값이 너무 비싼 것도 문제다.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려면 시간을 얼마나 잡을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마음먹고 제대로 돌아볼 생각을 하고 나왔다면 한나절 정도의 시간이면 큰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다. 그러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때는 작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좋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 어떤 볼거리가 있는지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
큰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둘러보고 싶다면 독립문역 서대문형무소, 이촌역 중앙박물관 및 한글박물관, 삼각지역 전쟁기념관, 한강진역 리움미술관, 풍납토성역 한성백제박물관 등을 추천하고 싶다. 경복궁역 서울역사박물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도 규모가 크다. 시청역 근처 서울시립미술관도 있다. 전철로 가기에는 경복궁역에서는 좀 멀지만 부암동 서울미술관도 가볼 만하다. 월드컵공원역에서 30분은 걸어야 하는 박정희기념관도 그렇다.
작은 박물관으로는 경복궁역 경찰박물관, 농업박물관, 경교장, 동아일보 신문박물관, 동대문역 한양도성박물관, 청계천박물관, 제기역 한방박물관 등이 있다. 양재시민의숲역 윤봉길기념관, 강서 쪽에는 허준박물관도 있다. 인사동에는 작은 미술 전시회들이 상시 열린다.
박물관은 귀한 자료를 한 곳에 모아놓은 곳으로서 국가나 지자체가 만들기도 하고 개인들이 희사해서 만들기도 한다. 역사가 있는 민족이라면 당연히 박물관이 많아야 한다. 미술관도 작가들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전시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귀중한 장소다. 작품 감상을 제대로 하려면 전시 관련 홍보물이나 작가소개 등을 미리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너무 빨리 변하고 바뀌는 세상이라 그런지 요즘 사람들은 멀쩡한 물건들도 주저 없이 내다버린다. 구식이라거나 공간을 차지한다는 게 이유다. 아파트 같은 공동 주택에서는 공간 활용이 빤하기 때문에 옛 물건들을 무작정 쌓아둘 수 없어 버리기도 한다. 다듬잇돌 등과 같은 옛날에 흔하던 물건은 다 내다버려서 이젠 골동품에 속한다. 혼수용품으로 집집마다 있던 재봉틀도 사라진 지 오래다. 옛 물건들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옛것들을 그나마 볼 수 있는 곳이 박물관이다. 생활 속에서 친숙하게 봐왔던 것을 보는 시니어들과 어디에 쓰는 용도인지도 모르고 보는 젊은 세대들과 관람하는 느낌은 다르겠지만 각 세대가 공감하고 소통하기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올 가을에는 산책과 함께 박물관, 미술관 나들이를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