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전 오늘, 1972년 8월 30일은 평양 대동강문화회관에서 남북적십자회담 제1차 본회의가 열린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분단 이후 첫 공식적인 남북대화가 이뤄지자 많은 사람이 감격했으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북적십자회담은 1000만 남북 이산가족들의 재결합을 주선하기 위해 남과 북의 적십자 간에 열린 회담이다. 1971년 8월 12일 최두선 대한적십자사(한적) 총재의 ‘남북이산가족찾기운동’ 제의로 성립됐다.
1945년 국토 분단으로 한반도에는 1000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3년 7월 휴전 이후 이산가족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전개했으나 북한과의 직접 교섭에 실패했다.
남북적십자는 이산가족의 확인, 상봉, 재결합 등을 의제로 삼아 서울과 평양에서 교대로 회담을 개최했다. 그러나 회담은 북한적십자회(북적)의 정치문제 제기로 실질적으로 해결을 보지 못하고 수많은 회담 중단사태만 거듭해오고 있었다.
이에 1954년부터 적십자사 국제위원회의 중개를 통해 ‘남북자 송환교섭’을 전개했다. 하지만 이 교섭에서도 납북자 일부의 생존을 확인하는 대답만 들은 채 귀향 희망자들을 데려오지 못했다.
제자리걸음이던 이산가족상봉은 1970년대부터 물꼬를 튼다. 1970년 8월 1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평화통일구상’ 선언을 발표했다. 통칭 ‘8‧15선언’으로 불리는 이 선언은 남북간 군사 대결을 지양하고, 인도적 문제 해결의 의지가 있음을 밝혔다.
‘8‧15선언’ 후 1년 만인 1971년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 최두선 총재는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최 총재는 “남북이산가족들의 비극은 금세기 인류의 상징적 비극”이라며 “남북통일이 단시일 내에 이뤄지기 어려운 현실에서 적어도 1000만 이산가족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소식을 전해 주며 재회를 알선하는 가족찾기운동이라도 우선 전개할 것”을 북한에게 제의했다.
남측의 ‘남북적십자회담’ 제의에 북측은 그 해 8월 14일, 평양방송으로 이를 수락하고 “가족만이 아니라 친척‧친우까지 포함해 그들의 자유 왕래를 실현하자”고 역제의했다. 이에 따라 그 해 8월 20일부터 9월 16일까지 판문점에서 다섯 차례 파견원 접촉이 이뤄지고, 판문점에서 예비회담을 여는 데 합의했다.
남북적십자 본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예비회담은 1971년 9월 20일부터 1972년 8월 11일까지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개최됐다. 남북적십자에서 각각 5명의 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총 25회 열렸다.
예비회담에서는 본회담 장소, 일시, 의제, 대표단 구성 등을 논의했다. 초기에는 순조롭게 진행됐으나 정치적 문제가 불거져 교착 상태에 빠졌다. 북측이 이산‘가족’을 찾아주기도 전에 ‘친우의 자유 왕래’를 요구한 것이다. 이는 훈련된 공작원을 대량으로 남파해 남한의 정치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서 국제 적십자활동의 기본 원칙인 ‘정치적 중립’ 위반이었다.
이에 남북적십자사는 비공개 실무회의를 통해 적십자회담과는 다른 정치적 대화 통로를 마련하는 데 동의했다. 그 결과 남측에서는 이후락 정보부장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측에서는 박성철 부수상이 서울을 방문했다. 그리고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통일 원칙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 정부 간 관계가 부드러워지자 적십자 예비회담도 급진전돼 1972년 8월 11일 예비회담을 모두 마무리했다.
국토분단 27년 만에 처음 이뤄진 남북대화라는 기대 속에 본회담이 진행됐다. 본회담은 서울과 평양에서 모두 7차례 개최됐다. 1차 본회담은 평양에서, 2차 본회담은 서울에서 개최됐다. 분단 후 첫 남북대화라는 감격에 축제 분위기에서 진행됐으나 차츰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남북 간 인식 차이가 있음이 드러났다.
남측은 정치성을 배제한 다음 ‘가족찾기사업’을 전개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북측은 가족찾기사업의 선결조건으로 반공법‧국가보안법 철폐, 반공교육과 반공정책 중지 등 적십자사 권한 밖인 정치적 요구들을 내세웠다. 결국 돌파구를 찾지 못한 본회담은 1973년 8월 28일 북한의 전면 대화 중단 선언과 함께 단절됐다. 이후 남측이 몇 차례 회담을 이어가고자 했으나 교섭이 반복해서 결렬됐다.
최근에는 이산가족 당사자들이 가족을 직접 찾아 나서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이산가족찾기운동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러 갈래로 발전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적십자를 통한 방법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현재는 민간단체를 통하거나 개별적으로 가족을 찾는 방법만 통용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2018년 8월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화해 분위기 속에서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개최됐으나, 이를 마지막으로 당국 차원의 교류는 전면 중단됐다. 현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해 당분간은 이산가족 상봉 성사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다.
기분 좋지 아니한가. 무표정하지도 소란하게 호탕하지도 않은, 빙그레 웃는 남도의 섬. 섬은 그렇게 여행자를 맞는다. 뭍과 다르게 섬을 달리다 보면 바다가 있고, 조금 더 달리면 물 빠진 뻘이 나타나고, 저 건너편으로는 또 다른 작은 섬이 오도카니 물속에 잠겨 있다.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비릿한 갯내음이 벌써부터 가슴을 뛰게 한다.
해신(海神) 장보고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섬, 완도. 통일신라시대 이 땅의 해상로를 통해 국제무역을 주도했던 장보고의 이야기는 드라마 ‘해신’이 아니어도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역사 이야기다. 이 섬에서 장보고 찾기는 도무지 어려울 게 없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른바 ‘장며들기’에 빠져드는 곳이 완도다.
장보고 해상무역의 흔적들, 완도 청해진 유적지
장보고의 활동 근거지 청해진 유적지가 있는 장도를 가려면 완도 동쪽의 장좌리 앞바다로 가야 한다. 한때는 마을에서 하루 두 차례의 썰물 때만 걸어 들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장도 목교가 놓여 있어서 출입이 자유롭다. 특히 바다에 물이 빠졌을 때 갯벌에 나타나는 ‘목책’은 중요한 역사적 흔적이다.
목책은 청해진 방비를 위해 굵은 통나무를 섬 둘레에 박아놓은 것으로, 지금도 1000여 개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무심히 바닥을 들여다보면 잘 알 수 없는데, 찾기 쉽게 깃발을 꽂아놓은 친절함. 물 빠진 갯벌에선 살아서 꿈틀거리는 갯고동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부디 오염되지 않은 천연의 땅으로 오래오래 유지되기를.
청해진 유적지 쪽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6m 깊이의 우물을 지나게 된다. 바닷속 지하수를 길어 올려 청해진 군단의 식수원으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쪽으로 올라가면 청해진 터였던 곳의 전진기지와 초소 역할을 했던 모습도 남아 있어서 그 시절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지역에 청해진을 설치한 장보고는 신라, 일본, 당나라 3국의 해상무역권을 장악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적한 분위기의 바다 풍경과 역사적 사실에 다가가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무엇보다도 자연 속의 완도를 피부로 느낀다.
장보고 대사의 해상 활동과 일대기, 장보고기념관
청해진 옛 터에 해상왕 장보고의 일대기를 전시와 영상으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기념관이 설립돼 바다를 향한 모습이 고즈넉하다. 상설전시관과 중앙홀 전시관이 있어 장보고 대사의 흔적을 만날 수 있으며, 체험형 입체 관람 시스템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현장이나 유적지, 기록물 전시장을 ‘아이들과 함께 가보면 좋은 곳’이라고 소개하는 걸 자주 보게 된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보고 배우고 즐길 이 모든 것들이 그저 ‘교육적’이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좋은 곳이라고만 하니 이 말이 당키나 한가.
죽청리 쪽으로 가면 장보고 동상이 우뚝 서 있는 장보고 어린이놀이공원이 있다. 장보고라는 역사적 테마로 감성과 호기심을 유발하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거대한 동상 아래로 장보고의 유년기부터 활동기의 기록이 전시된 전시관이 있으니 꼼꼼히 살펴보는 것도 뜻깊다. 완도는 장보고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는 묘미를 빠뜨릴 수 없는 곳이다.
완도의 랜드마크, 완도타워
당일 여행에는 완도타워가 더욱 필요하다. 높은 타워에 올라 완도를 한꺼번에 바라볼 수 있으니, 이럴 땐 슬기로운 여행법이다. 완만한 속도의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노라면 양옆의 산책로와 다도해 일출공원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
높이 오를수록 완도의 면면이 속속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앞바다에 보이는 동그랗고 예쁜 섬은 천연기념물 28호인 ‘주도’로 상록수림이 빽빽하다. 녹음이 싱그러운 숲과 선명한 빛깔의 꽃들, 바다를 둘러싼 완도를 바라보면서 타워에 다다른다.
타워까지 이르는 길목에 자리한 중앙광장의 장미터널이 환영하듯 화사하다. 산책하는 걸음으로 언덕배기를 오르면서 고개를 돌려보면 야트막한 완도 시내의 풍경이 아기자기하다. 이어서 가슴이 탁 트이는 전망대. 360도 파노라마로 구성되어 한 바퀴 돌면 완도의 풍경을 한눈에 다 담을 수 있다. 크고 작은 섬과 다리들, 멀리 영암의 월출산, 전복 양식장, 봉수대가 눈앞에 있다. 야간에는 환상적인 조명 레이저쇼가 진행되고, 날씨에 따라 제주도가 보인다는 높이다.
타워 주변엔 현장 수업 중인 아이들이 재잘대며 선생님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땀 뻘뻘 흘리며 아이들을 인솔하면서 완도 역사를 가르치는 젊은 선생님의 열정에 몇 번씩 바라보게 된다. 선생님도 멋지고 아이들도 그저 예쁘다.
여름 한낮, 덥다. 완도에서 맛볼 수 있는 비파주스가 있다. 연한 주황색의 비파는 아열대 과일로 완도의 특산물이다. ‘비파나무 한 그루 있으면 아픈 사람이 없다’라는 옛말이 있듯이 건강에 좋은 과일이라고 한다. 살구 비슷한 모양에 복숭아와 감의 중간인 듯 부드러운 맛이다. 짚라인 탑승장 옆의 완도타워 매점에서 얼음 가득 넣고 만든 비파주스 한 잔으로 시원하게 갈증을 날리고~.
깊은 숲의 기운, 완도수목원
전남 유일의 난대림 수목원이다. 수목원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싼 산을 포함해서 상왕봉 아래 조성된 수목원이 어마어마한 규모인 걸 비로소 알고 놀랄 수밖에. 2000ha의 광활한 면적. 거의 축구장 2000개 넓이라고 하니 입이 떡 벌어진다. 동식물과 상록활엽수로는 세계 최대 집단 자생지다.
완도수목원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공존상’을 수상한 숲이기도 하다. 산책 삼아 걷기 좋은 깨끔길은 ‘동네 앞의 나지막한 산’이라는 전라도 사투리다. 푸르름으로 울창해서 피톤치드 속에 갇힌 듯하다. 빼어난 풍치의 수목원 안에는 산림전시관, 열대·아열대 온실, 동백숲, 관찰로, 수생식물원, 전망대, 야영장, 농구장 등이 갖추어져 있어서 돌아보기만 해도 시간이 한참 걸린다.
난대림 산길을 몇 군데 걸으며 둘러보고 산림전시관을 돌아보았는데, 당일 나들이다 보니 아주 조금 맛만 본 셈이다. 엄청난 넓이, 한나절로는 어림없다. 하루나 이틀쯤 피톤치드 가득한 숲의 기운을 받으며 느릿하게 ‘숲멍’도 하면서 푹 쉬는 여유를 갖는다면 실로 멋진 힐링이 될 듯하다.
완도의 맛, 전복거리
섬을 떠나기 전 들렀다 가야 할 곳이 있다. 완도 하면 무엇보다 전복 아니던가. 바다의 산삼이라고 불릴 정도로 맛과 영양의 최고 식품. 전복거리를 걸으며 수산물과 건어물을 구경하다 구입하기도 하고, 수협 수산시장의 살아 있는 삶의 현장도 느끼는 시간이다. 김이나 전복 등 수산물을 현장에서 구입한 후 가족이 있는 집으로 즉시 택배송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코로나19의 여파인지 거리도 한산하고 수산물시장도 북적이지 않았다. 어서 빨리 소란스럽고 붐비는 파시를 이룬다면 좋으련만.
때가 되면 기분 좋게 허기를 채워야 한다. 완도에선 당연히 신선한 생선구이 밥상이다. 푸짐하게 생선을 구워와 직원이 두툼한 살점까지 발라주고 간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생선의 신선도가 확실히 다르다. 된장에 해초류를 넣고 끓인 갯국의 시원한 맛도 독특하다. 또한 전복 특산지 완도답게 전복 하나가 통째로 고스란히 들어간 전복빵이 있다. 장보고빵이라고도 한다.
빙그레 웃는 섬 완도의 푸른 여름
빙그레 웃는 섬답게 걷다 보면 빙그레식당, 빙그레공원, 빙그레마트, 빙그레… 이런 상호들이 흔하다. 절로 빙그레 미소 짓게 하는 섬. 당일로 가볍게 다녀왔지만, 여유 있게 며칠 정도 완도의 푸르고 느린 풍경 속에서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 지낼 수 있다면 더없이 충만한 휴식이 될 것이다. 하루 코스로도 버겁지 않았던 스마일의 섬 완도. 그 섬은 지금 푸름에 잔뜩 물들어 있다.
이젠 섬도 당일치기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이라는 말은 이제 구닥다리 옛말처럼 들릴 만도 하다. 그런데도 섬 여행은 좀 예외가 아닐까 생각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단 하루쯤이라도 뚝 떨어진 섬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면 망설일 이유 없다. 한반도 남서쪽 끝자락에서 빙그레 웃음 짓고 있는 청정한 섬, 완도. 당일 도전도 어렵지 않다.
KTX가 바쁜 현대인의 시간을 단축시켜준 것이 여행뿐일까 싶지만, 어쨌든 우리에게 여유 있는 시간을 제공했고 어디든 훌쩍 나서볼 수 있게 해주었다. 용산역에서 이른 아침 KTX 첫차를 타면 광주역(편의에 따라 목포나 나주역도 가능)에 두 시간 남짓이면 도착한다. 이어서 버스나 각자의 기동성을 이용해 완도로 곧장 이동하면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현상으로 행동반경이 좁아졌다. 하지만 덕분에 덜 알려진 이 땅의 자연을 찾는 기회를 얻었다. 유서 깊은 지역이거나 핫 스팟이라고 해서 우르르 찾아가는 곳이 아닌 홀로 조용히 의미 있게 찾아가는 여행지인 셈이다. 비대면을 강조하는 현실에 제격이다. 관심조차 없던 곳이 ‘이렇게 좋았네’라고 비로소 깨닫기도 하고, 좋았다고 생각한 기준도 바뀌는 뉴노멀 시대이기도 하다.
잠깐씩 일상을 환기시키는 짧은 여행은 삶에 활기를 더해 주는 휴식으로 보답한다.코로나19는 멀리 가지 않고도 자연을 충분히 즐기며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하루를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 산책이나 외출과는 사뭇 다르고, 새롭게 만나는 풍경은 비대면으로 답답했던 일상을 따뜻한 평화로움으로 가득 채운다.
진천 초평호(저수지)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여유만만하게 시간을 보내는 낚시꾼들이다. 좌대에 앉아 낚싯줄을 드리우고 초집중 상태에 있는 모습과 멍하니 찌를 바라보며 세상 편한 자세를 취하는 대조적인 두 모습은 바삐 지나가던 나그네의 발걸음조차 멈추게 만든다. ‘이렇게나 평온한 모습이라니…….'
초평호는 주변 지역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진천 최대의 저수지다. 다른 낚시터보다 손꼽히는 담수량으로 깨끗한 호수와 자연이 잘 보존돼 있어 휴식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곳이다. 자연과 한껏 어우러짐에 봄이면 벚꽃으로 가득 찬 꽃섬으로 변신한다. 그래서일까. 낚시 명소인 초평호가 수변 풍경과 걷기 좋은 숲길로 더 알려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으로 둘러싸인 저수지 위로 떠 있는 좌대들이 알록달록 다양한 색으로 마치 수상리조트처럼 화려하다. 좌대가 자그마치 160개가 넘는다고 하니 무심코 본 초평호가 얼마나 넓은지 가늠케 한다. 가끔씩 토종 붕어를 만날 수 있다는 정보가 낚시 애호가들을 이곳으로 안내하고 있다.
요즘 좌대는 작은 가전제품들까지 대부분 구비하고 있을 정도로 편리해 물 위의 펜션이라고 부를 만하다. 편안한 수상 가옥에서 물고기를 낚다가 TV도 보고 낮잠도 잔다. 한밤에는 물 위에 뜨는 달빛을 바라보고, 별을 올려다본다. 이렇게 넋을 잃고 바라보는 새벽 풍경이 가져다 주는 행복을 감히 누가 짐작이나 해볼 수 있을까.
낚시는 명상하는 이들의 레크리에이션이라고 하니 떠날 때도 아니 온 듯 깔끔하게 치우고 가는 예의도 잊지 않을 터. 맑은 공기 속에서 심신을 쉬었으면 현지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떠나는 일은 자연을 향한 당연한 이치다. 연간 3만 명이 넘는 낚시인들이 찾는 초평호는 그들의 '낚멍'으로 온 산하가 입을 다문 듯 조용하다.
호수를 벗어나 붕어마을을 거쳐 근처의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는 시간도 즐겁다. 걸어가기엔 꼬불꼬불하고 경사가 높아 숨이 차, 자동차로 가는 게 편하다. 커브길이 좁기 때문에 초보운전은 잠깐씩 아찔할 수도 있다. 호수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두타산에 오르면 호수가 둘러싸고 있는 독특한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반도 지형 전망 공원'이다.
한반도 지형은 자연이 만든 걸작품이다.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이렇게 다른 대상을 떠올리는 지형을 잘도 찾아낸다. 진천 초평호에서 만나는 한반도 지형은 S자 굴곡으로 승천하는 청룡을 품은 한반도라고 한다. 한반도의 남쪽 부분이 더 강조된 지형으로 보인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시야에 들어오는 한반도가 온통 뿌옇다. 북한 쪽은 더욱 짙은 안개로 마치 이산가족들의 그리움처럼 아득한 풍경이다. 전망대 꼭대기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무념무상으로 잠깐 넋을 잃어 본들 어떠랴.
전망대 꼭대기에 오르면 마음껏 초평호를 눈에 담고 가슴에 담을 수 있다. 호수 위로 작은 집들과 점점이 둥둥 떠 있는 낚시 좌대 색감이 자연 속에서 예쁘게 어우러진다. 바라보기만 해도 여유와 한가로움을 느끼게 한다. 때로 순간 먼 이국의 어딘가로 데려다 주기도 한다.
한반도 지형을 봤다면 귀갓길에 올라도 괜찮다. 하지만 시간이 급하지 않다면 초평호와 이어진 초롱길을 따라 걸어봐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 천년의 시간을 보내고도 지금까지도 견고한 농다리를 지나칠 수는 없지 않는가. 무수한 장마에도 유실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이 돌다리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도 선정된 명소다.
다듬어지지 않은 넙적한 자연석을 겹겹이 겹쳐 쌓아 다리를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큰 홍수가 나도 끄떡하지 않는 놀라운 내구성을 자랑한다. 다리 가운데에는 사람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반반한 돌들이 길게 이어져 있다. 오가는 사람들이 있을 땐 옆으로 기다렸다가 건널 수 있도록 틈틈이 폭을 넓힌 배려까지 담아놓았다.
농다리를 건너 초롱길과 하늘 다리, 수변에 현대 모비스가 조성한 미르숲의 야외음악당으로 올라 본다. 호수를 앞에 두고 음악당이 있고 건너편으로 하늘 다리가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하늘과 산과 호수만으로 이뤄진 세상에 서 있는 기분이다. 음악당 옆으로 이어진 초롱길은 모두가 싱그럽고 초롱초롱하다. 호수를 둘러싼 초록의 자연을 바라보며 조용히 초록 숲으로 파묻힌다.
계속 가다보면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난 김유신 장군 탄생지와 태실을 지난다. 이팝나무가 입구에서 새하얗게 반긴다. 화랑무예와 태권도의 성지, 호국보훈의 마음을 한 번쯤 엄숙하게 짚어보게 하는 진천군 도당공원의 충혼탑을 거치며 생거진천의 산천을 느껴보는 시간이다.
떠나기 전에 산속의 예쁜 정원인 듯 아름다운 사찰 보탑사의 꽃구경을 하고 돌아가야 제 맛이다. 사찰 구석구석을 꽃으로 가득 채워, 자연 속에서 또 다른 자연을 누리기 딱 좋은 곳이다. 여름이 시작된 보탑사 입구에는 작약이 고적한 절 마당을 화사하게 만든다.
절 마당엔 기도하러 온 사람과 꽃 속에서 차분하게 산책하는 사람들이 조용히 오간다. 사찰인 듯 사찰이 아닌 듯 편안한 동네에 마실 온 듯 돌아보며 사람들은 말한다. '무슨 절이 이리도 이쁜 가요.'
너무 '멀리'란 말에만 맞추느라 떠나기를 미루지 않았는지. '낯선' 곳에만 매달려 이 땅의 친숙한 풀냄새와 흙냄새에 무심하지는 않았던가 생각해 볼 일이다. 견뎌야 할 일 이유가 많은 나날들 속에서 하루쯤 아무 부채감 없이 지내보면 어떨까. 몸과 마음이 뒤숭숭한 시절에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아침 일찍 만나 하루를 함께한 진천의 산하가 채워 준 감성은 내일의 활력을 기약한다. 차분한 추억 쌓기는 덤이다.
숨을 쉬고 싶어 시작한 달리기였다. 울트라 트레일러너 심재덕(52)은 칠전팔기의 도전으로 미국, 일본 등 산악마라톤 강국의 ‘강호’들을 찾아가 한판 승부를 겨루는 과정에서 꿀 같은 우승도 여러 번 맛봤다. 최근 인생의 숙원이었던 또 다른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 중인 그를 만났다.
코로나19가 바꾼 일상의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를 꼽는다면 사람들의 야외 활동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 아닐까. 그중에서도 ‘등산’과 ‘러닝’이 세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대중적 인기를 얻는 이유는 큰 제약 없이 언제든지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취미 활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마따나 옷과 신발만 있고 체력과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지 산을 오르고, 또 어디든지 달릴 수 있다.
‘트레일러닝’(Trail Running)은 등산과 러닝을 합한 산악 종목의 아웃도어 스포츠다. 전 세계적으로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스포츠는 국가와 지역에 따라 마운틴러닝(Mountain Running), 펠러닝(Fell Running), 알파인러닝(Alpine Running), 스카이러닝(Sky Running) 등으로 불리며,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기간 산악마라톤(Climbathon)으로 소개됐다. 1990년대 초반 북한산과 설악산 일대에서 산악구보 형태로 열린 대회를 효시로 볼 수 있다.
그 시작점에 울트라 트레일러너 ‘심재덕’이 있다. 트레일러너이기 전에 마라토너이기도 한 그는 오늘까지 30년 가까이 달려오면서 총 315회가량 풀 코스 마라톤 서브3(42.195km를 3시간 이내에 달리는 것)를 달성했고, 그중 100여 회 우승한 바 있는 ‘철의 사나이’다. 그를 일컬어 ‘철의 사나이’라고 부르는 건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그는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34년 동안 근무하며 조선업에 종사 중인 ‘철의 노동자’다.
철의 노동자는 어쩌다 달리게 됐을까?
모든 러너에게는 ‘러너가 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심재덕은 왜 달리게 됐을까? “1992년 말, 그러니까 제 나이 스물다섯 살에 기관지 확장증 판정을 받았습니다. 폐 속 기관지가 손상을 입어 점차 후각을 잃게 됐고, 비염과 축농증으로 끊임없는 잔병치레를 해야 했습니다. 입을 거의 벌린 채로 살았어요.” 일종의 직업병이었을까. 잠수함을 만드는 과정에서 과도한 화공약품에 노출되어 호흡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 이상할 리 없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게 됐을 때, 역설적으로 그는 ‘숨을 쉬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전 달리고, 출근 후 점심시간을 쪼개 30분 동안 달리고, 퇴근 후 또 달렸다. 야간근무를 하면 달빛 아래 달렸다. 달리면 숨이 가빴지만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렇게 회사 근로자의날 기념 4km 마라톤에 출전해 우승했고, 이를 계기로 거리를 늘려 5km, 10km 마라톤 대회에도 출전했다. 나가는 족족 우승했다.
우승이라니! 어릴 때 괴산 분지골에서 학교 다닐 때도 공부로 상 한 번 받아본 적 없었던지라 갑작스럽게 발견한 재능 앞에서 얼떨떨해도 기분은 좋았다. 내가 이걸 잘하는구나, 열심히 하니까 이렇게 잘하게 되는구나, 더 잘하고 싶다! 그 후로 거리를 늘려 훈련해 하프 코스 마라톤에 출전했고, 달린 지 2년 만인 1995년 가을, 생애 첫 풀 코스 마라톤 대회인 춘천마라톤에서 2시간 39분 39초를 기록했다.
회사에 잘 뛰는 사람이 있다고 소문이 나니 사내를 비롯해 학교, 공공기관, 단체 등에서 마라톤 강연 의뢰가 빗발치듯 이어졌다. 특히 산업재해가 많은 조선업 종사자들에게 최고의 화두는 언제나 ‘건강’이었다. 6개월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수백 명의 사람들 앞에서 마라톤 강연을 했다. 덕분에 근골격 환자가 눈에 띄게 줄었고, 사내에 달리기 붐이 일어 무려 20개 정도의 마라톤 동호회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변화에는 IMF의 영향도 있었다.
그의 마라톤 서브3의 신화는 계속됐다. 1990년대 중반, 당시만 해도 마라톤 대회가 지금처럼 성황리에 열리지 않았다. 많아야 1년에 2~3회 정도. 지병이 있어서 뛰는 데 불편함이 컸지만 참고 잘 뛰었다. 뛰는 게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기관지 확장증 환자가 달린 지 2년 만에 서브3라니. 어쩌면 ‘타고난 재주’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성취에 대해 극구 ‘99%의 노력’이라고 말한다.
“타고났다니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자신합니다. 학창 시절에 100m 달리기를 하면 15초 안에 들어온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 스피드로 그렇게까지 달릴 수 있었던 건 순전히 99%의 노력이었죠. 그만큼 열심히 달렸습니다.” 달리는 중에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장점을 발견했다. 바로 끈기, 인내, 즉 ‘지구력’이 좋다는 점이었다. 그는 자신이 오래, 멀리, 긴 거리를 달릴수록 도리어 힘이 나는 체질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산길’을 달릴 때 더욱 힘이 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마라톤에 이어 산악마라톤에 발을 딛게 된 이유는 앞서 말했듯 그 시기에 마라톤 대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99%의 노력으로 기량은 한껏 올라와 있는데 솜씨를 발휘할 무대가 없는 상황. 있는 대회 없는 대회 전부 찾아다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간헐적으로 열리던 산악마라톤 대회에까지 출전하게 됐다. 1997년 제천 금수산 마라톤 대회였다.
산악마라톤의 황제가 되다
숨을 쉬고 싶어 시작한 달리기였다. 그리고 산을 달리는 동안에는 정말이지 이제야 자신의 호흡을 찾은 것 같다는 고조된 감정이 들었다. 산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내달리는 것이 평지를 달리는 마라톤보다 몇 배로 힘은 들었지만 그만큼 살아 있다는 기분 또한 강하게 들었다. 어릴 때 산과 들에서 뛰어놀며 터득한 감각이 산을 달리면서 터져 나왔다. 달리면 달릴수록 힘들었지만 돌아서면 즐거웠다. 행복했다. 계속 산을 달리고 싶었다.
30대 중반, 그는 삶의 순리처럼 산악마라톤에 빠져들었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마라톤과 달리 풍경과 지형이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산악마라톤에서 그는 인간 본연의 호연지기를 찾았다. 달릴 때, 특히 산을 달릴 때,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감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온 그간의 세월을 180도 뒤집는 강렬한 경험이었다.
더 크고 높은 산을 달리고 싶다는 열망이 국경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즈음 달리기 실력도 전성기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해외에서는 산악마라톤 대회가 많이 열리고 있었어요. 바야흐로 저의 산악마라톤 ‘원정’ 시대가 시작됐죠!(웃음)” 자영업자도 아닌 월급쟁이가, 그것도 거주지가 서울도 아닌 한반도 끝자락인 거제에서 해외의 산을 달리려 분투했으니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따랐을까.
해외여행이 활발했던 시기도 아니었고 마라톤이 지금처럼 인기를 끌던 시기도 아니라서 해외 마라톤, 특히 해외의 산악마라톤 대회 정보를 찾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울트라 마라톤을 다룬 책이라면 어떻게든 구해 읽었고, 해외 마라톤에 관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감사한 마음으로 호의를 받았다. 특히 영어라는 난관 앞에서 어려움이 컸지만 그때마다 신의 이끄심을 느꼈다.
그런 칠전팔기의 도전으로 미국, 일본 등 산악마라톤 강국의 ‘강호’들을 찾아가 한판 승부를 겨루는 과정에서 꿀 같은 우승도 여러 번 맛봤다. 특히 2006년 미국에서 열린 MMT(Massanutten Mountain Trail) 100mile 레이스에서는 세계적인 선수 칼 멜처를 제치고 17시간 40분 45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같은 해 일본의 대표적인 산악마라톤 대회 하세츠네컵에서는 71.5km 산길을 최초로 8시간 이내 기록으로 우승해 유명세를 떨쳤다. 이듬해 출전한 미국의 유서 깊은 트레일러닝 대회 웨스턴 스테이츠 100mile에서도 전체 순위 10위라는 좋은 성적을 냈다.
산악마라톤이 무엇인지, 칼 멜처가 누구인지,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고 박수 쳐주는 관중도 없는데, 그렇게 갈급해 해외의 산을 찾아다닌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우승하려고요. 세계 최고의 울트라 러너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세계의 센 놈들(?)과 대결해 이기는 기쁨을 맛봤으니까요.” 그렇게 산악마라톤 해외 원정에 쏟아부은 비용만 연간 1000만 원 정도. 10년이 넘었으니 합하면 1억이 훌쩍 넘는다. 그 돈 아꼈으면 지금쯤 아파트 한 채는 샀을 거라고. 하지만 후회는 없다.
영원한 현역을 꿈꾸며
그는 지금도 여전히 달리고 있다. 보통 등산객들이 2박 3일에 걸쳐 완주하는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의 지리산 주능선) 47km도 무려 7시간 42분 만에 내달린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20~40대 후배 러너들과 같은 대회를 달려도 거뜬히 우승할 정도로 울트라 마라토너로서, 트레일러너로서 그는 건재하다. 또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 유지하고 있는 ‘턱걸이 60개 철칙’(턱걸이를 60개 하지 않으면 밥상 앞에서 숟가락을 들지 않는다) 또한 변함없이 실천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인생의 숙원이었던 또 다른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 중이다. 바로 그의 달리기 인생을 담은 단행본 작업이다. “요즘은 퇴근하면 집에 가서 컴퓨터 켜고 매일 원고를 쓰고 있어요. 보통 새벽 1시까지 쓰고, 일찍 잔 날은 새벽 5시에 일어나 마저 원고를 씁니다. 24년 가까이 훈련일지를 써온 것이 도움이 됐어요. 책을 쓴다는 게 쉽지 않았는데 역시 노력하니 끝이 조금씩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 출간 예정입니다.”
그렇게 뛰었는데 ‘무릎’ 아프지 않냐고 물었다. 어떻게 달려야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달릴 수 있냐고. “달리기를 시작하시는 분은 처음부터 뛰지 마세요. 걸으세요. 걷다가 뛸 수 있는 체력이 되면 그때부터 조금씩 뛰면서 그 거리를 늘려보세요. 그리고 기본은 언제나 준비운동과 정리운동입니다. 이런 기초가 잘 닦이면 부상 없이 오래, 멀리, 즐겁게 달리실 수 있을 겁니다.”
세월이 흐르고 지금보다 더 나이 들면 그의 몸도 노화가 올 것이고 지금과 같은 기량도 언젠가는 과거의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날에 대한 아쉬움이나 조바심은 없다고 말한다. 그 또한 삶의 순리대로 가는 것 아니겠냐며. 다만 그날까지 한 점의 후회도 없이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자신의 한계를 보고 싶다고. 남다른 달리기 열정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여러 모로 자극과 귀감이 되고 있는 심재덕은 ‘영원한 현역’으로 남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달리고 있다.
입문자들에게 안내하는
트레일러닝 필수 아이템 11
1 기능성 상의와 방풍 재킷 면 소재 의류는 땀이 잘 마르지 않아 체온을 떨어뜨리므로 쿨맥스 소재의 기능성 상의를 착장한다. 변화무쌍한 기온에 대비해 방풍 재킷도 준비한다. 비 소식이 있다면 방수 소재 재킷을 챙긴다.
2 기능성 하의 면이나 청 소재 바지는 하체의 활동성을 떨어뜨리며 신체 컨디션을 조절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최근 기능성 하의는 바지 내부에 속옷이 달려 제작된다.
3 모자 계절과 날씨 등 상황에 따라 선캡, 비니, 바이저 등의 모자를 착용한다.
4 GPS 시계 개인의 활동 거리, 시간, 고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GPS 시계를 활용하면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운동할 수 있다. 고가이므로 입문 단계에서는 휴대폰 앱을 활용해도 무방하다.
5 서바이벌 블랑켓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로 인한 저체온증 사고에 대비해 배낭 안쪽에 항상 챙겨둔다.
6 헤드램프 길을 잃어 하산 시간을 놓치는 사태에 대비해 항상 준비한다.
7 과일 개인의 기호에 따라 수분과 당을 동시에 보충할 수 있는 과일을 준비한다.
8 트레일러닝 배낭 산에서 빠르게 물과 간식 등을 보급할 수 있도록 평소 트레일러닝 배낭을 등에 멘 채 달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착용했을 때 몸에 이물감이 없으면서 활동 거리에 적합한 용량의 트레일러닝 배낭을 준비한다. 보통 4~12리터를 착용한다.
9 에너지젤 우리 몸의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간편하고 빠르게 섭취할 수 있도록 젤 형태로 만든 혼합음료다. 1시간에 30~60g 정도 섭취하길 권한다.
10 물 사용하기 편한 형태의 수통 안에 1리터 이상의 물을 준비해 수시로 급수한다. 트레일러닝 배낭 내부에 하이드레이션 시스템의 물팩을 넣어 호스를 이용해 마실 수 있고, 트레일러닝 배낭 어깨 밴드 부분의 주머니에 수통을 장착해 마실 수 있다.
11 트레일러닝화 발의 볼과 아치 등 족형에 맞는 트레일러닝화를 준비한다. 활동 중 발이 부을 것을 대비해 일상화보다 한 치수 큰 사이즈의 신발을 권한다. 자신의 족형에 맞는 트레일러닝화를 추천받고 싶다면 신촌 ‘러너스클럽’을 방문해보자.
최근 날씨가 급격하게 더워지며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시니어는 어지럼증으로 균형을 잃어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어 특히 조심해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0년 어지럼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85만5608명이다. 이 중 7월이 11만3447명으로 가장 많았다.
어지럼증은 자신이나 주위 사물이 정지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 모든 증상을 말한다.
여름철에 어지럼증이 심해지는 이유는 급격히 더워진 환경에 신체가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져서다. 게다가 여름철은 무더위와 수분 부족이 뇌 혈액량을 줄여 일시적으로 어질어질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특히 뜨거운 햇빛에 장시간 노출되거나 땀을 많이 흘리면 온열 질환과 탈수로 어지럼증을 느끼기 쉽다.
또 섭씨 30도 이상을 웃도는 날씨에 실내 온도를 크게 낮추면 기온 차이가 심해진다. 이때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기면서 어지럼증이 심해질 수도 있다.
이뇨제나 고혈압약처럼 심혈관계에 작용하는 약이나 항우울제, 항불안제, 항히스타민제를 오래 먹어도 어지럼증이 나타날 수 있다.
김선숙 인천힘찬종합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은 “통증을 줄이기 위해 먹는 소염 진통제나 감기약도 어지럼증을 일으킬 수 있다”며 “어지럼증을 계속 경험하는 고령 노인이라면 평소 복용하는 약과 관련 있는지 살펴보고, 증상이 반복되면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령층, 낙상·골절 조심해야
어지럼증은 특히 시니어에게 위험하다. 고령층은 온도에 대한 신체 적응능력이 낮고, 심뇌혈관 질환이나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아서다. 무더위와 뙤약볕이 유발하는 어지럼증은 젊은이들이라면 충분히 쉬면 사라진다. 하지만 노인들은 잠깐의 어지럼증으로도 균형을 잃어 넘어지며 다칠 수 있다. 이때 골절을 입으면 회복이 어려워 특히 조심해야 한다.
뼈가 약하고 순발력이 떨어지는 70세 이상 노인이 넘어지거나 떨어질 때 엉덩이관절 부위 골절을 주의해야 한다. 엉덩이관절 골절을 입으면 격심한 통증과 함께 움직이지도 못하고, 허벅지 안쪽에 출혈이 생겨 사타구니와 넓적다리가 붓는다.
김태현 목동힘찬병원 정형외과 원장은 “대퇴골의 목 부분이 부러지면 계속 누워있어야 하기에 고령자에게 엉덩이관절 골절은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지내다 보면 합병증이나 기존 지병 악화로 인해 사망할 가능성이 커진다.
넘어지거나 떨어질 때 척추 압박 골절도 발생할 수 있다. 간격을 유지하면서 맞물려 있어야 할 척추뼈가 골절되면 주저앉아 납작하게 바뀐다. 심호흡을 하거나 기침하는 것도 힘들고, 특히 고령이라면 움직이기 힘들어 만성질환이 악화할 수 있다.
구부러진 척추가 내부 장기를 압박해 또 다른 합병증을 초래하기도 한다. 척추 압박과 더불어 허리가 점점 굽어 척추가 변헝되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폐 기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증세를 동반한 어지럼증 ‘뇌졸중’도 의심해봐야
여름철 어지러움과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은 데 드물게는 뇌졸중이 원인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어지럼증은 귓속 전정기관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드물게 척추기저동맥 협착이나 후방 순환계 뇌졸중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방치하면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특히 더운 여름철에 땀을 흘리거나 체하면 설사로 탈수가 심해지면서 뇌혈류량이 떨어져 기존에 혈관 협착이 있을 경우 뇌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이 높다.
이시백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신경과 교수는 “어지럼증으로 내원하는 환우분들을 진료하면 어지럼증 증세가 다양하다”며 “여러 증상 중에서 심각한 어지럼증 증세는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귀에서 기인한 보통 어지럼증은 대체로 주위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양상으로 느낀다. 전정신경염은 왼쪽 귀나 오른쪽 귀 중 병이 생긴 쪽으로 몸이 쏠리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지러움 증상 중에도 다음과 같은 증세가 동반될 때는 뇌졸중 징조일 수 있어 더욱 주의해야 한다.
뇌졸중 징조
1. 갑자기 사물이 둘로 보인다. (복시)
2. 발음이 꼬인다. (구음장애)
3. 한 쪽 편 힘이 빠진다. (편마비)
4. 한 쪽 편의 감각 저하.
이와 같은 증세가 나타나면 후방 순환계 이상에 의한 뇌졸중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바로 전문의를 찾아 체계적으로 진료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
뜨거운 공기가 상공을 뒤덮는 ‘열돔(Heat Dome)’ 현상으로 20일 이후 한반도에 강력한 폭염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폭염 가운데 어지럼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 갈증을 느끼지 않더라도 물을 자주 마셔야 한다. 또 햇살이 강한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 사이에는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외출할 때는 양산이나 모자로 햇빛을 차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옷은 헐렁하게 입고 어두운 색보다는 밝은 색을 입는 것이 좋다. 음식은 잘 익혀 먹고, 틈틈이 충분하게 쉬어야 한다.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70) 주교가 바티칸 교황청의 장관에 임명됐다. 교황청에 한국인 성직자 장관이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70대 시니어도 현역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려준 사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일(현지시간) 바티칸 시국에서 유흥식 라자로 주교를 교황청 고위직인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하고, 대주교 칭호를 부여했다. 교황청 성직자성은 세계에서 사제·부제의 직무와 생활 업무를 관장하는 부처다. 신부의 사목 활동을 감독·심의하고, 신학교 관할권도 갖는다.
유흥식 대주교가 맡게 될 성직자성 장관은 교황, 국무원장 등으로 구성되는 교황청 행정 10위권 안에 포함되는 핵심 보직이다. 한국인 성직자가 차관보 이상 고위직에 임명된 건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유 대주교에 따르면 이번 임명은 이탈리아에서도 이례적인 일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추기경이나 대교구의 대주교가 아닌, 극동의 주교가 유서 깊고 영향력 있는 부서 장관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유 대주교는 대전교구 홈페이지에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에게 전하는 서한’을 올려 지난 4월 프란치스코 교황 알현 당시 교황에게서 장관 제안을 받은 사실을 알렸다. 장관 제안을 받고 당황해하는 그에게 교황은 “교황청에는 아프리카 출신 장관은 두 분인데 아시아 출신 장관은 한 분뿐”이라며 “유 주교는 세계 보편교회에 매우 중요한 아시아 대륙 출신”이라고 설득했다.
바티칸 현지에서는 유 대주교의 장관 임명을 두고 북한이나 중국 문제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보도가 나왔다. 유 주교는 지난 12일 세종시 대전교구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제적으로 고립되면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북한이 교황님을 초청한다면 북한으로서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황님께서도 북한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며 “제 자신이 교황청에 갔을 때 그러한 역할이 주어진다면 기꺼이 모든 일에 참여하고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축전을 보내 “한국 천주교회의 경사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위상을 드높인 기쁜 소식”이라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오신 분이어서 더욱 기대가 크다”고 축하했다.
195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유 대주교는 1979년 이탈리아 로마 라테라노대 교의신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현지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대전가톨릭대 교수와 총장을 거쳐 2003년 주교 서품을 받았다. 2005년 4월부터 지금껏 대전교구장을 맡고 있다.
유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깝게 소통하는 몇 안 되는 한국인 성직자 중 한 명이다. 2014년 열린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충남 당진 솔뫼성지)에 교황을 초청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 한국을 찾았다. 지난 4월 바티칸에서 교황을 알현해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최양업 신부 시복 문제와 한반도 평화 이슈 등을 설명하기도 했다.
유흥식 대주교는 다음 달 말 교황청이 있는 로마로 출국해 8월 초부터 성직자성 장관직을 수행한다. 일반적으로 장관 임기는 5년이다.
역사와 전통, 자연이 어우러진 고창군을 즐겁게 설명하는 그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모든 요소를 가진 천혜의 환경 속에 여러 가지 특용작물 재배로 의욕적인 발걸음을 이어나가고 있는 고창군은 이미 귀농귀촌인들에게 자연과 사업을 아우르는 이상적인 곳으로 소문나 있다. 유기상 군수의 목소리로 도시민들이 고창에서 살고 싶어 하는 진짜 이유와 고창군의 특별한 매력과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광범위한 고인돌 유적지가 알려주듯 고창군은 3000년 전 한반도에서 해양 문화, 대륙 문화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곳입니다. 가히 한반도의 수도였다고 할 수 있죠. 산, 들, 강, 바다, 갯벌까지 자연의 모든 게 있는 곳이며,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기상 고창군수의 목소리에 배어든 자신감처럼 전라북도 고창군은 우리에게 꽤 익숙한 지명이다. ‘삼시세끼’, ‘1박2일’, ‘6시 내 고향’, ‘한국인의 밥상’ 등 시청률 높은 다양한 방송을 통해 산과 바다, 들녘이 공존하는 깨끗한 환경의 청정 지역으로 꾸준히 전국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2013년 5월에는 고창의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청정한 자연환경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다. 이를 증명하듯 고창에는 선운산 도립공원, 노래로도 익숙한 선운사, 운곡습지, 학원농장 청보리밭, 동호해수욕장, 구시포해수욕장, 석정온천 등 관광지가 많고, 고창읍성, 무장읍성 등 역사·문화유적지가 계속 이어진다.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다.
하늘·땅·사람이 상생하는 고창
서울과 경기도를 제외한 지방 소도시 대부분이 당면한 문제는 바로 인구 감소 현상이다. 기존 인구는 고령화되고 젊은 인구는 대도시로 유출되다 보니, 출생자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아서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그런 반면 은퇴한 시니어들과 도시 생활에 지친 젊은 세대에게 귀농귀촌이 삶의 대안으로 각광받는 현상 또한 그 이면에 있다. 도시민이 농촌에 정착할 수 있을지 결정짓는 열쇠 중 하나는 농업 소득 창출에 있는데, 그 부분에서 고창은 특별한 장점이 있다.
“고창은 다른 지역에 비해 농토가 넓고, 다양한 소득 작물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복분자, 수박, 멜론, 블루베리, 쌀, 인삼, 고구마, 땅콩, 고추, 김 등 고소득 작물이 많고, 이런 작물들을 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육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고 평가받고 있죠. 그리고 고창의 농경지는 대부분 황토로 구성되어 게르마늄 성분이 타 지역보다 11% 더 많고, 볏짚에 많이 들어 있는 고초균도 타 지역 토양에 비해 5배 이상 많은 것으로 김길용 전남대학교 교수님의 연구 결과가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천 년을 가는 식초 만들다
유 군수는 고창에는 특산 고소득 작물이 많은 덕분에 부모님 대를 이어 농업에 도전하는 청년 농부들이 꽤 있다고 밝혔다. 그가 요즘 특별히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이 있다. 바로 식초다. 최근 마이크로바이옴 등의 이슈로 발효식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커진 상황. 그는 고창의 특산품인 복분자로 만든 식초는 기존 발사믹 식초보다 항산화 효과가 네 배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한 마실거리 중 최고는 식초죠. 천 년을 갈 수 있는 식초는 사람을 살리는 식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창을 세계 4대 식초도시 중 하나로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고창군은 식초 원료가 되는 쌀과 보리 등 곡류와 복분자, 아로니아 등 베리류의 국내 최대 산지로 유명하다. 복분자 가공산업의 발달로 시설 기반이 이미 조성되어 있으며, 관련 분야 전문 인력 및 자체 연구소도 확보하고 있다. 식초 시장은 다른 발효식품과 달리 선도 지역이 없는 초기 산업 형태이기 때문에, 차별성과 경쟁력을 갖춘다면 고창식초가 세계적인 명품 식초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에 따라 2021년에는 식초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이 추진된다. 발효식품 공유 시설을 구축하기 위한 발효식품 공유 플랫폼 구축 사업과 복분자식초를 활용한 면역력 제품 개발 사업, 식초 문화 확산을 위한 식초마을 구축 확대 등 식초산업이 미래 농생명 식품산업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문화·치유 도시로서의 귀농귀촌 지역
최근 5년간 해마다 평균 1300세대, 1600명 이상 인구 유입 성과를 올리고 있는 고창군이 귀농귀촌인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는 무엇이 있는지 들어봤다.
“우선 예비 귀농귀촌인을 위한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를 2018년부터 30세대 규모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1950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를 대상으로 입교신청서를 접수한 결과 39명이 지원했더군요. 이후 서류심사 및 면접을 통해 30세대를 선정했습니다. 입교생들은 센터 내 공동주택 및 단독주택에 거주하면서 3월부터 11월까지 공동 실습 하우스와 텃밭을 활용한 작물 재배, 선도 농가 현장 견학, 고창군의 문화유적지 답사 등 다양한 교육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귀농인을 위한 영농정착금 지원과 초보귀농인 서포트 사업도 있다. 영농정착금은 주민등록 주소 기준으로 도시 지역에서 12개월 이상 거주하다 고창으로 전입(3년 이내)해 농업경영체로 등록된 만 60세 이하 귀농인을 대상으로 1인당 100만 원을 3년에 걸쳐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초보 귀농인 서포트 사업은 고창으로 전입 3년 이내, 만 60세 이하로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귀농인에게 종자·비료·농약 등 농업에 필요한 경상비용으로 200만 원 이내의 지원금을 준다.
귀농창업 활성화 지원 사업은 좀 더 고참(?) 귀농인을 위한 사업이다. 이는 고창으로 전입 5년 이내, 만 65세 이하 귀농인 세대주로서 창업자 또는 창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필수 교육과 창업 컨설팅 완료 후 사업계획서 발표 및 심의 결과에 따라 창업실행비를 차등 지원한다. 고창에서 거주지 마련을 희망하는 도시민을 위해 시행하는 귀농귀촌 농가주택 수리비 지원 사업은 고창으로 전입 5년 이내로 주택을 구입 또는 임차 후 수리하여 정착하고자 하는 세대주에게 지붕·화장실·주방 개량 및 보일러 교체 등 주거 생활에 꼭 필요한 수리비를 3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최근 인구 통계적인 급격한 변화에 따른 가족과 이웃의 해체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고창군에서는 이러한 점에도 주목해 소규모 귀농귀촌 기반조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5세대 이상이 협의체를 구성하여 대표자를 선정, 건축 허가를 받은 후 사업을 신청하여 대상자로 선정되면 5000만 원 이내의 사업비로 진입로 포장, 상하수도 관로 매설, 배수로 및 옹벽 설치 등 필요한 기반을 조성해준다.
귀농 인구 전국 1위 기록
이러한 배경과 노력 덕분일까.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고창으로 전입한 귀농귀촌 총 인구는 1만2755세대, 1만7842명이다. 특히 통계청 조사 결과 2018년에는 1363세대 1748명이 전입하여 전국 기초지자체 중 귀농 인구 1위를 했으며, 2019년에는 1104세대, 1370명이 전입하여 전국 5위(전라북도 1위)의 성과를 달성했다.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에서의 성과 또한 출중했다.
“지난해 27세대가 체류형 시설에 입주하여 8개월간 영농 관련 교육을 받고 총 20세대가 고창에 정착, 74%의 정착률을 기록해 체류형 시설을 운영 중인 전국 8개 지자체 중 가장 높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지난해 교육을 수료한 후 고창에 정착한 20세대는 고창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며, 도시에 사는 친구 및 지인들에게 아름답고 깨끗한 고창으로 오라고 권유하는 등 고창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고창군은 이러한 가시적 성과를 바탕으로 귀농귀촌인 재능기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쌓고 귀농이나 귀촌을 해 농촌에서 소중한 재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고창군 자원봉사센터 및 각 읍면 귀농귀촌협의회 지회와 연계하여 각 마을 상황에 맞는 재능기부가 가능하다. 이런 재능기부를 통해 성취감 및 자존감 향상은 물론, 기존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며 갈등도 해소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유 군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해도 귀농귀촌은 어려운 일이다. 생활의 근거지를 변경하는 것은 큰 변화가 뒤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 군수는 예비 귀농귀촌인들에게 귀농귀촌을 한 후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농사를 짓는다면 어떤 작물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고 연구하고 많은 정보를 찾아서 비교 분석해보라고 조언했다. 목표를 분명히 설정한 다음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곳을 귀농귀촌지로 정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주거지 및 농지 마련 문제를 해결하려면 해당 지역을 자주 찾아서 여기저기 다녀보길 바랍니다. 먼저 귀농귀촌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도 들어보고, 행정에서 운영하는 귀농귀촌 상담실을 찾아가 상담도 해보고, 발품 팔아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결정했을 때, 귀농귀촌에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아질 것입니다. 새로운 가치, 삶의 가치를 위해 생활의 틀을 바꾼다는 생각으로 오시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지원정책이나 보조금만 기대하고 오시지 않길 바랍니다. 그저 자연과 하늘·땅·사람과 함께하는 고창에서 치유하며 사는 행복한 삶을 생각하고 내려오시면 참 좋겠습니다.”
조상의 얼이 담긴 성곽과 고즈넉한 멋이 흐르는 선운사 등의 문화유적과 수박, 풍천장어, 복분자 등 각양각색의 먹거리가 넘치는 고창. 봄이면 짙푸른 청보리밭이 반기고, 여름에는 샛노란 해바라기가 인사한다. 가을에는 마치 구름이 내려앉은 듯한 하얀 메밀꽃밭이 손짓하고, 겨울이면 눈 덮인 하얀 설원도 유혹한다. 한반도 첫 수도 고창군은 농생명 식품산업을 천년대계로 설정한 도시답게 이름난 특산물이 넘쳐나며, 유입 인구도 많아 귀농귀촌인의 만족도가 특히 높은 곳이다. 새로운 행복을 찾아 떠나려는 예비 귀농귀촌인이 산, 들, 바다, 강, 갯벌이 모두 있는 고창을 선택하는 이유를 찾았다.
걸음걸음마다 문화와 치유가 깃들다
도시 생활에 지친 예비 귀농귀촌인이 정착지를 고를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자연 환경이다. 고창은 청정한 자연환경과 다양한 생태계의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최초로 2013년 5월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신비로운 원시 해안을 간직한 갯벌을 비롯해 고인돌 박물관, 선운산 도립공원, 운곡람사르습지, 동림저수지 등이 핵심 관광지로 특별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고창군의 다양한 즐거움
또한 고창에는 구석구석 전통과 문화가 새겨진 명소가 꽤 많다. 산세 좋고 물소리 좋은 선운사 계곡 아래 홀로 핀 한 송이 꽃이 그림 같다. 누군가는 사계절 모두 명소가 되는 고창 선운사로 진입하는 첫 관문인 선운산 도립공원에 발을 들이고서야 고창 여행이 시작됐음을 실감한다고도 말한다. 그만큼 선운사는 고창을 대표하는 명소다. 선운사는 고즈넉한 멋이 어우러진 외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역사적으로도 유서가 깊다. 백제 위덕왕 24년인 577년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산이고, 조선 후기에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가 산중 곳곳에서 장엄한 불국토를 이뤘다. 그림자 짙은 숲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사찰에서는 흔하지 않은 강당 건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봄을 알리는 3~4월의 동백꽃과, 9~12월 초 꽃무릇과 단풍으로 이어지는 가을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또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약 5000평의 동백나무숲과 높이가 15m나 되는 천연기념물 제367호인 삼인리 송악도 있다.
선운사에서 역사와 자연의 진수를 경험했다면 발걸음을 옮겨 성곽길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좋다. 고창의 중심에 다다르면 길게 뻗은 성곽과 웅장한 문이 시선을 사로잡는데, 바로 고창읍성이다.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1년인 1453년에 왜침을 막기 위해 전라도민들이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서 축성했는데, 원형이 잘 보존된 성곽으로 평가받는다. 현지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모양성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전라남도 장성군에 있는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활약했다. 30~40분 동안 고창의 전경과 숲을 보며 느긋이 성곽을 걸어 보면 고창읍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고창을 채색하는 또 하나의 색다른 문화지로 학원관광농장을 들 수 있다. 학원농장은 청보리밭축제로 유명한 관광 농장이며, 봄이 되면 청보리밭과 함께 광활한 유채꽃밭이 장관을 이룬다. 서울 여의도의 4.5배에 달하는 면적이 노란 유채꽃으로 뒤덮인 땅은 고창의 새로운 봄 풍경으로 각광받는 중이다. 또한 여름에는 수천 수만 그루의 샛노란 해바라기가 인사하며 가을에는 메밀꽃이 이어지는 등 봄, 여름, 가을에 걸쳐 꽃의 축제가 계속된다.
3만 평에 달하는 대지에 만들어진 농촌 체험형 테마공원인 상하농원으로 들어서면 우선 유럽풍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부에는 햄 공방, 과일 공방, 빵 공방, 발효 공방 등이 있어 다양한 가공품을 만드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고, 농원상회에서는 각각의 공방에서 솜씨 좋은 농부들이 만들어낸 먹거리들을 구입할 수 있다. 가볍게 공방과 상회를 구경한 후 유기농 목장으로 향하면 젖소들이 풀을 뜯고 있고, 옆에는 양떼 목장이 있어 귀여운 양들을 구경할 수 있는 등 이국적인 광경들을 볼 수 있다.
고창군에서 만나는 다채로운 특산품 먹거리
고창 하면 볼거리와 함께 먹거리로도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먹거리는 복분자와 풍천장어다. 단맛과 신맛을 함께 지닌 복분자는 뛰어난 효능으로도 유명한데 간을 보호하고, 눈을 밝게 하며, 기운을 도와 몸을 가뿐하게 만든다고 한다. 특히 복분자로 만든 담금주는 기름진 장어와 궁합이 좋아 고창 내 어느 장어 식당을 가더라도 판매하니 풍천장어 구이와의 절묘한 맛의 조화를 느껴보자.
선운산 일대에 서식하는 풍천장어는 고창의 으뜸 식재료로 유명하다. 풍천은 선운사 어귀 바닷물과 민물이 합쳐지는 인천강 지역을 뜻한다. 실뱀장어는 민물에 올라와 7~9년 이상 성장하다 산란을 위해 태평양 깊은 곳으로 회유하기 전 바닷물과 민물이 합쳐지는 지역에 머무는데, 이때 잡힌 장어를 풍천장어라고 한다. 하루 두 번 바닷물이 들이칠 때 장어가 바람과 함께 바닷물을 몰고 온다고 해서 풍천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고창의 풍천장어는 유달리 고소한 맛이 강하며 육질이 탱탱해 씹는 맛도 좋다.
고창 먹거리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고품질 다품종이라는 것이다. 고창군은 최고의 자연 생태 환경을 자랑하듯 복분자, 수박, 멜론, 고추, 땅콩, 고구마, 아로니아, 블루베리, 풍천장어, 바지락, 천일염 등 전국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가진 농특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기업에서도 그러한 고창 먹거리의 강점과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다. 예를 들어 하이트진로는 고창군의 흑보리를 이용해 인공 첨가제가 없는 기능성 건강음료 ‘블랙보리’를 출시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고창 식품 산업 성공 신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복분자 발사믹 ‘식초’도 핫하다. 2019년에는 국내 최초로 ‘식초문화도시’ 선포식을 했는데,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면역력 열풍을 타고 복분자 발사믹 생산 업체가 4배 이상 매출 증대를 기록했을 정도다.
귀농귀촌 1번지, 고창군의 귀농귀촌 정책들
살아보니 더 좋아진다는 입소문이 도는 고창군은 대한민국 귀농귀촌 1번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귀농귀촌인이 다른 지역보다 고창군을 더 많이 찾는 요인으로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귀농귀촌인 유치 노력이 꼽힌다. 고창군은 2007년 전북 최초로 귀농인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귀농귀촌 전담 부서를 설치했다. 또 귀농귀촌인 모임과 협의 체제를 구축해 귀농귀촌인의 눈높이에 맞는 차별화된 귀농귀촌 정책을 펼치고 있다.
고창군 대산면으로 내려온 지 4년째라는 한 60대 귀농인은 “주변의 많은 귀농귀촌 선배들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고창은 외지인이 텃새 걱정 없이 뿌리 내리기 좋은 곳”이라며 “온천과 실버타운이 있어 적당히 바쁘게 살면서 농촌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즐기며 노후를 꿈꿔보는 것도 괜찮다”고 말하기도 했다.
2021년 고창군 귀농귀촌 관련 총사업비는 7억5100만 원으로 4개 분야, 20개 사업을 추진한다. 4개 분야는 귀농귀촌 유치와 활성화, 정착, 귀농창업 활성화다. ▲귀농귀촌 유치 사업비는 2억1000만 원으로 귀농귀촌의 최적지로서 고창을 홍보하기 위한 박람회 참가와 농촌 체험을 위한 홈스테이, 고창에서 한 달 살아보기, 초보 귀농인 서포트 지원 사업 등을 추진한다. ▲귀농귀촌 활성화 사업비는 1억7600만 원으로 마을환영회, 재능기부, 실용교육, 동아리 지원, 귀농체험학교 등으로 꾸려진다. ▲귀농귀촌 정착 지원 사업비는 3억3250만 원으로 영농 정착금과 농가주택 수리비, 소규모 귀농귀촌 기반 조성을 지원한다. ▲귀농창업 활성화 사업비는 3250만 원으로 컨설팅과 창업 실행비로 구성되어 있다.
본지에서 기획한 귀농귀촌 우수 지자체 10選의 심사 기준은 귀농귀촌을 선택한 퇴직 예정자들이 △지원정책 내용 △자연과 문화환경 △ 귀농귀촌 멘토 조언 △토양 특산물 현황 등을 고려해 선정했다.
한반도 전체가 독립의 외침으로 물들었던 3.1절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매년 3.1절에는 각종 지자체 및 공공기관에서 각종 기념행사를 열곤 했지만, 올해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될 계획이다. 거리에서 만세 삼창을 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으로나마 기념하고 싶다면 영화를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시대적 정신을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3.1절에 볼 만한 가슴 벅찬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항거:유관순 이야기 (A Resistance, 2019)
‘3.1운동’ 하면 가장 먼저 어떤 인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가. 누구나 그러하듯 ‘유관순’이라는 이름 석 자는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1919년 3.1운동 이후 서대문 감옥 8호실에 갇힌 유관순 열사(고아성)와 여성 독립운동가의 1년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30여 명 가까이 되는 여성 수감인의 투옥 생활은 처참하다. 세 평도 안 되는 좁은 방에서 다리가 부을까 다 같이 빙글빙글 돌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내하고, 모진 고문과 핍박도 이를 깨물고 견뎌낸다. 그럼에도 “하나뿐인 목숨 내가 바라는 것에 맘껏 쓰다 죽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는다. 영화는 유관순 열사의 삶과 함께 유관순 열사의 선배 ‘권애라’(김예은), 산모 ‘임명애’(김지성), 다방직원 ‘이옥이’(정하담), 기생 ‘김향화’(김새벽) 등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서사도 재조명한다. 극적인 연출, 혹은 흥행을 위해 3.1운동 당일의 내용을 담을 수도 있었지만, 영화는 그날의 뒷이야기만을 과장 없이 정직하고 묵직하게 담았다. 그래서 더욱 깊고 진한 울림을 남긴다.
2. 박열 (Anarchist from Colony, 2017)
건들건들한 걸음걸이에 정리되지 않은 머리, 무엇 하나 두려운 것 없다는 표정. 겉모습만 보면 패싸움을 하며 온갖 사고를 칠 것 같은 이 남자는 조직폭력배의 우두머리가 아닌 항일운동단체 ‘불령사’의 리더 박열이다. 진짜 건달은 아니지만, 사고를 치긴 한다. 오직 조국 독립을 위해서다. 영화 ‘박열’은 관동대지진 후 발생한 조선인 대학살에 정면으로 맞선 청년 박열(이제훈)과 그의 동지 겸 연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의 이야기를 다룬다. 박열이 일제에 저항하는 방식은 거친 외양처럼 저돌적이다. 끔찍한 현실에서는 감옥이 더 안전할 거라며 제 발로 감옥에 들어가고,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국왕 암살 계획을 자백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자살폭탄 역할을 자처하면서도 한 치의 두려움이 없었던 그는 재판대에 서는 순간까지 한복을 입고 등장하며 독립에 대한 기개와 의지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성냥처럼 활활 타올랐던 박열의 삶은 시대를 막론하고 불의에 맞설 정의와 용기가 있는지 반문하게 만든다. 배우 이제훈의 밀도 높은 연기가 몰입도를 더한다.
3. 허스토리 (Herstory, 2017)
과거를 되새기고 기억하는 것만큼 현재를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 또한 모든 국민의 역사적 숙제이다. 영화 ‘허스토리’는 이 같은 메시지를 평범한 인물 ‘정숙’(김희애)의 시선으로 풀어나간다. 영화는 1992년부터 6년간 일본과 부산을 오가며 힘겨운 법적투쟁을 벌인 위안부 할머니와 승소를 위해 함께 싸운 정숙의 이야기를 다룬다. 부산에서 큰 여행사를 운영하는 정숙은 역사보다는 먹고사는 일, 혹은 눈앞의 현실에 더 관심이 많은 인물이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여행사 사무실에 위안부 피해 신고 전화를 설치하면서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분노하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돕기로 나선다. 자신밖에 몰랐던 그녀가 재산을 털어 할머니들의 조력자가 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혼자 잘 먹고 잘살았던 게 부끄러워서”다. 영화는 주변 인물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고, 지워질 수 없는 아픔에 귀 기울이며 연대할 것을 호소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유명한 말을 새삼스레, 계속해서 곱씹게 되는 영화다.
어느덧 11월입니다. 지구온난화의 여파인가 아직 겨울의 찬 기운보다는 가을의 그림자가 길게 그리고 더 짙게 남아 있음을 실감하는 나날입니다. 구절초꽃 피면 가을 오고 지면 가을 간다는데, 구절초꽃 한 송이 소개 않고 가을을 맞았으니 이제라도 구절초 꽃다발 한가득 내밀며 가을을 보내려 합니다. 그것도 우리나라 특산식물로서, 높은 산 바위 절벽에 피는 희귀한 구절초 한 다발 치켜들며 가는 가을에 작별인사를 합니다.
이름하여 바위구절초가 그 주인공입니다.
구절초, 이화구절초, 울릉국화, 포천구절초, 남구절초, 한라구절초, 신창구절초, 산구절초 등과 함께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등록된 9종의 국내 자생 구절초 가운데 하나입니다. 강원도 이북의 높은 산 능선에 주로 자라며, ‘바위’란 단어가 이름의 앞자리를 차지할 만큼 암벽을 유난히 좋아하는 전형적인 북방계 고산식물입니다. 당연히 ‘한반도 북방계 식물의 고향’인 백두산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는데, 수목한계선 위 화산석이 바닥에 깔린 평원지대에서 흔히 자랍니다. 백두산의 가을이 이미 시작된 8월 초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원형의 능선 주변 암벽에 핀 꽃도 바로 바위구절초입니다.
생존 환경이 열악한 암벽에 붙어사는 바위구절초는 돌마타리나 바위떡풀, 산솜다리, 벌깨풀 등 비슷한 여건에서 사는 다른 고산식물들과 마찬가지로 악조건들을 이겨내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진화했습니다. 세찬 바람과 추위를 견디기 위해 키를 낮추고 줄기나 잎 등 전초를 가는 털로 감싼다거나 하는 식입니다.
실제 바위구절초는 전초의 높이가 20cm 안팎에 불과한데, 이는 구절초 중 가장 작은 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위 겉이나 좁은 틈새에 붙어사는 만큼 땅속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하고 옆으로 뻗으며 번식합니다.
8월에서 10월 사이 한 뼘 정도 길이의 꽃대 끝에 백색 또는 연한 홍색의 꽃이 하나씩 달리는데, 지름 3cm 안팎의 머리모양꽃차례는 전초나 화경에 비해 매우 크게 느껴집니다. 돌려나는 잎은 가늘고 깊게 깃꼴 모양으로 갈라집니다.
바위구절초는 가늘고 긴 잎 때문에 ‘가는잎구절초’라고도 불리는 산구절초의 일종인데, 바위구절초와 산구절초를 같은 종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산구절초는 깊은 산 중턱부터 자생하며, 키가 높게는 60cm까지 자라 바위구절초의 3배 정도 됩니다. 높은 산 정상에서 만나는 바위구절초는 대개 고산식물의 꽃들이 그러하듯, 잡티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한 꽃색으로 눈길을 끕니다. 산구절초는 물론 낮은 곳에서 자라는 여타 구절초에서 느낄 수 없는 고졸한 기품과 기상이 엿보인다고 할까요.
Where is it?
“한국 북부, 중국 동북, 러시아 극동지구에 분포한다. 전국의 고산지대 산정에서 자란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의 분포지 설명인데, 막연하다. “강원도 금강산·설악산, 함경남도 부전고원, 함경북도 관모봉 등지에 분포한다.” 국립공원공단의 식물종 정보인데, 역시 아쉽다. 백두산 이외, 남한 땅에서 바위구절초를 손쉽게 만나는 곳은 석병산(石屛山)이다. 강원도 강릉시에 위치한 해발 1055m의 석병산은 정상 일대를 석회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쌓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었다. 바위구절초는 물론 두메닥나무, 바위솜나물, 시호, 큰제비고깔 등 희귀 북방계 식물의 보고로 유명하다. 바위구절초는 정상인 석병산 표지석 주변 일월문, 일월봉 등 암벽까지 올라야 만날 수 있다.